그 여자네 집 창비시선 173
김용택 지음 / 창비 / 199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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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구꽃 떨어지는 살구나무 아래로
물을 길어오는 그 여자 물동이 속에
꽃잎이 떨어지면 꽃잎이 일으킨 물결처럼 가 닿고 싶은 집

 

(‘그 여자네 집’ 중에서, 12쪽)

 

 

꽃잎이 일으킨 물결처럼 가 닿고 싶은 그 여자네 집은 생각만 해도 가슴이 알싸하게 아파온다. 김용택 시인의 ‘그 여자네 집’을 읽으면 박완서의 동명 소설도 보인다. 박완서 선생이 이 시를 읽고는 반해서 길이가 만만찮은 시 전체를 소설의 앞머리에 인용했다. 일제의 강제 징병과 정신대 징발 때문에 결국 헤어져야만 했던 만득이와 곱단이의 그 아름다운 사랑이야기, 그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가 아슴아슴 피어난다.

 

 

아침 눈이 하얗게 처마끝을 지나
마당에 내리고
그 여자가 몸을 웅숭그리고
아직 쓸지 않은 마당을 지나
뒤안으로 김치를 내러 가다가 "하따, 눈이 참말로 이쁘게도 온다이이"하며
눈이 가득 내리는 하늘을 바라보다가
싱그러운 이마와 검은 속눈썹에 걸린 눈을 털며
김칫독을 열 때
하얀 눈송이들이 김칫독 안으로
하얗게 내리는 집

 

(「그 여자네 집’ 중에서」, 14쪽)

 

 

시에 등장하는 그 여자네 집은 밀착된 풍경이 아니라 적어도 열 걸음 이상 거리를 두고 떨어져 바라본 풍경이다. 그 거리로 인해 그 여자와 화자의 관계는 계속 짝사랑 특유의 떨림을 유지한다. 지금은 가까이 없기에 더욱 그리운 떨림. 사랑이란 그 지독한 열병은 해보지 않은 사람은 열 번을 죽었다 깨어나도 알 수 없는 그 무엇이다. 그런 지독한 열병 같은 사랑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사랑을 모르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사랑을 모르는 사람은 생명에 대한 따스한 사랑, 대자연에 대한 더없이 큰 사랑을 도저히 알 수가 없다. 사랑을 모르므로 어떤 대상을 사랑할 수도 없다.

 

 

나도 아버지처럼
풀과 나무와 흙과 바람과 물과 햇빛으로
시를 쓰고
그 시 속에서 살고 싶다.

 

(「농부와 시인」 중에서, 79쪽)

 

 

김용택 시인은 섬진강을 사랑한다. 그의 삶에서 섬진강을 빼어놓고 말할 수 없듯이 그의 가족, 짝사랑했던 여자 그리고 ‘풀과 나무와 흙과 바람과 물과 햇빛’은 그의 시이자 삶이다.

 

 

강물에 가네
나는 강물에 가네
저문 강물 저물어 나도 가네
강가에 서서
강물을 보네
강물을 보네
아, 이 고요로움을 한움큼 길어
사랑하는 님에게 드리고 싶네
서편에 뜬 붉은 구름이랑 같이 드리고 싶다네
내 깊은 데서 아직도 타는 이 그리움, 이 사랑을
아, 산봉우리 젖네
저 푸르른 솔잎
가을에는 흔들리지 않는 것이 좋다네
물에는 물에만 있네

 

(‘나는 집으로 간다’ 중에서, 34~35쪽)

 

 

시인의 마음에서도 섬진강은 흐르고 흐른다. 그 섬진강은 그저 흘러가는 물결을 바라보는 강이 아니리라 느끼고 겪어야 하는 강이다. 그 강가에서 나고 자란 시인은 섬진강이란 풍경을 두고 느끼고 겪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강가에서 그저 물을 볼 일이요
가만가만 다가가서 물 깊이 산을 볼 일이다
무엇이 바쁜가
이만큼 살아서 마주할 산이 거기 늘 앉아 있고
이만큼 걸어 항상 물이 거기 흐른다
인자는 강가에 가지 않아도
산은 내 머리맡에 와 앉아 쉬었다가 저 혼자 가고
강물도 저 혼자 돌아간다

 

강에 가고 싶다
물이 산을 두고 가지 않고
산 또한 물을 두고 가지 않는다
그 산에 그 강
그 강에 가고 싶다

 

(‘그 강에 가고 싶다’ 중에서, 66~67쪽)

 

 

사는 일이 팍팍할 때 저무는 강물을 바라보며 마음 한끝을 흐르는 강물에 적셔보고 싶다. 강이라면 저리 천천히 흐르며 때때로 고이기도 해야 수면 위에 비진 세상을 볼 수 있다. 기슭에 부딪히는 물결 소리와 뒤섞인 제 울음소리도 들을 수도 있어야 한다. 강물처럼 우리도 천천히 지나가며 때로 멈추어 서서 자신을 가늠해본다.

 

 

강 끝
하동에 가서
모래 위를 흐르는 물가에 홀로 앉아
그대 발밑에서 허물어지는 모래를 보라
바람에 나부끼는 강 건너 갈대들이
왜 드디어 그대를 부르는
눈부신 손짓이 되어
그대를 일으켜 세우는지

 

왜 사랑은 부르지 않고 내가 가야 하는지
섬진강 끝 하동
무너지는 모래밭에 서서
겨울 하동을 보라 

 

 

(‘강 끝의 노래’ 중에서, 68~69쪽)

 

 

김용택 시인의 시에 있는 섬진강은 당신을 못잊어 기다리는 사랑하는 사람의 품과 같이 편안하다. 후미진 하동 포구의 갈대들은 지나가고 지나가는 시간을 온몸으로 견디고 있다. 만나며 헤어지며 흘러가는 강물의 몸짓으로 섬진강의 갈대숲은 기다리며 잊혀가는 세월의 빛으로 그렇게 강인하게 흔들린다. 그런 갈대를 만날 수 있다면 겨울 하동은 춥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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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북 2014-12-27 08: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시나 시가 주는 운율적 서정적 이끌림은 언제나 좋네요 김용택 시인님을 처음 알게되었지만 하동 갈대숲이 부르는 그손짓 느껴보고 싶네요^^

cyrus 2014-12-27 10:13   좋아요 0 | URL
저는 아직 섬진강에 가보지 않았어요. 비록 시에 나오는 섬진강 풍경이 세월이 많이 지나버려 달라졌지만요. 하동에 한 번 가보고 싶어요.
 
땅을 여는 꽃들 문학과지성 시인선 459
김형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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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설이 지났다. 동장군은 벌써 무섭게 우리를 밀어붙인다. 겨울에 돌아다니지 말고 겨울잠이나 자는 게 최상책이라는 걸 실감하고 있다. 올해의 마지막 달도 넘어가지 않았는데도 생명 움트는 소리를 엮어서 뿜어내는 봄기운이 그리워진다. 올해 겨울은 짧다던데 멀리서 느리게 오는 만큼 봄의 발걸음은 느릴 것이다. 누군가 걸어오는 발소리 같기도 한 봄비는 생명의 고동을 울리는 신호이다. 봄비 오는 소리라는 어감은 이래서 한결 다정하고 푸근하고 여유가 있다.

 

 


봄비 오시자
땅을 여는
저 꽃들 좀 봐요.

 

노란 꽃
붉은 꽃
희고 파란 꽃,
향기 머금은 작은 입들
옹알거리는 소리,
하늘과
바람과
햇볕의 숨소리를
들려주시네.

 

눈도 귀도 입도 닫고
온전히
그 꽃들 보려면
마음도 닫아걸어야겠지.

 

봄비 오시자
봄비 오시자
땅을 여는 꽃들아
어디 너 한번 품어보자.

 

 

(「땅을 여는 꽃들」 전문, 10쪽)

 


김형영 시인의 「땅을 여는 꽃들」은 우리가 평소에 보지 못했거나 무관심했던 부산한 봄의 태동을 묘사한다. 봄비는 땅에 가서는 “일어나!”라면서 주룩주룩 봄비는 땅을 간질인다. 겨우내 얼어있던 땅이 열리는 순간, 잠자던 어린 꽃들이 기지개를 켜면서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꽃들은 매서운 겨울을 이겨 낸 후 꽃망울을 터뜨리고, 한 송이 꽃을 피우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건다. 새로운 꽃을 피우려고 낯설게 느껴질 법한 하늘과 바람과 햇볕의 숨소리를 온몸으로 받아들인다. 봄은 우리를 많이 기다리게 했지만 단 한 번도 약속을 어긴 적이 없다. 요즘 세상에 우리는 느림의 미학이나 미덕에 익숙지 못하다. 한때는 봄비 맞으며 걷던 낭만도 있었다. 옛날 선비들은 다정한 벗이라도 불러 한 잔 술을 나누며 정담에 젖는 운치를 즐겼다. 우리는 봄이 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신비스러운 자연의 몸단장 채비를 눈으로 확인하는 여유를 잃어버렸다. 시인은 자신을 기다리는 우리를 위해 약속을 지킨 봄에게 화답하기 위해 봄비 오는 날에 맞춰 땅에서 솟아나는 꽃들을 품어본다.

 

 


내가 날마다 오르는 관악산 중턱에는
백 년 된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데요
팔을 다 벌려도 안을 수가 없어서
못 이긴 척 가만히 안기지요.
껍질은 두껍고 거칠지만
할머니 마음같이 포근하지요.

 

소나무 곁에는 벚나무도 자라고 있는데요
아직은 젊고 허리가 가늘어서
내가 꼭 감싸주지요.
손주를 안아주듯 그렇게요.

 

안기고 안아주다 보면
어느새 계절이 바뀌고
십 년도 한나절같이 훌쩍 지났어요.
이제 그만 바위 곁에 앉아
쉬었다 가는 게 좋겠지요.

 

 

(「쉬었다 가자」 전문, 18쪽)

 


시인은 모든 자연을 안아준다. 차별하지 않고, 더불어 껴안는다. 자연을 볼 수 있을 만큼 맘껏 보고, 자연을 들을 수 있을 만큼 맘껏 듣고, 자연을 말할 수 있을 만큼 맘껏 말하는 시인의 태도는 달관의 경지에 이르렀다. 시인은 세상을 움직이게 하는 만물의 변화 속에 아름다운 공평함을 발견한다. 관악산의 터줏대감이라 할 수 있는 소나무는 벚나무를 위해 자리를 내어준다. 벚나무의 향긋한 봄 내음은 사시사철 녹음을 유지하는 소나무에 비하면 이 세상에 잠깐 머물다가 지나가는 존재뿐인데도 말이다. 관악산을 지나가는 시인은 소나무와 벚나무가 너무나 기특해서 사랑스럽게 안아본다. 함께 사는 세상이다. 공생하는 관계일 뿐이다. 자연의 영성은 누구에게나 살 수 있도록 포근하고 너그럽게 해준다. 시인도 자연의 영성을 온몸으로 느껴본다.

 

 


운명을 견뎌내느라
꿋꿋이 서 있는 너를 볼 때마다
내 팔다리는 가늘어지고
내 생각은 너무 가벼워
몸 둘 바를 모르겠기에
나는 때때로 네 앞에서 서성거린다.
너를 끌어안고서
네 안으로 들어가려고,
너를 통해서
온전히 네가 되어보려고.

 

 

(「나무를 위한 송가」 전문, 76쪽)

 


다른 삶으로, 바깥으로 이행하는 것을 두고 들뢰즈 ‘되기’(devenir)라고 부른다. ‘되기’는 차이를 가로지르는 실천적 활동이다. 자연의 영성을 감지한 시인은 ‘사람-이기’를 넘어 ‘나무-되기’(자연-되기)를 향해 시도한다. ‘사람-이기’였다면, 오랜 세월을 견디면서 자란 나무의 처지를 영원히 모른 채 살아갈 것이다. 내가 나무이고, 꽃이고, 향기가 될 수 있는데도 내가 누군지 모르는 헛것이 된다.

 

 


내가 나무이고
내가 꽃이고
내가 향기인데
끝내 나는 내가 누군지 모르고
헛것을 따라다니다
그만 헛것이 되어 떠돌아다닌다.

 

나 없는 내가 되어 떠돌아다닌다.

 

 

(「헛것을 따라다니다」에서, 90~91쪽)

 


‘나무-되기’는 서로 다른 두 대상(사람, 나무)의 차이를 뚫는 창조적 소통의 행위가 된다. 내가 누군지 모르는 ‘사람-이기’로만 남은 헛것은 세상이라는 자신의 영토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 자이다. 자연을 거리낌 없이 안을 줄 아는 시인의 자세는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자연의 영성을 확인하는 동시에 합일하는 접점을 만든다. 자연과 인간, 그 두 주체가 하나로 엉키고 포옹하는 것. 그 과정에서 생의 본질을 찾을 수 있다. 모든 사물 속에 ‘어떤 최고의 생’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 믿었던 벤야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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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물고기가 한 사람을 바라보는 오후 시인동네 시인선 15
안이삭 지음 / 시인동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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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수 시인은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꽃은 나에게 의미가 되었다’고 했다.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정보와 사물들을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고 본다면 내게 커다란 의미가 된다. 그것들은 보잘것없는 한낱 미물일지라도 세상 모든 만물과 같이 숨 쉬며 삶의 새로운 의미와 영역을 만들어 나간다. 안이삭 시인은 집에서, 길에서, 자연에서 지나치거나 소멸할 수 있는 미물을 발견하고 아름다움의 가치를 부여한다. 시인의 시는 세상 만물과 같이 숨 쉬며 삶의 새로운 의미와 영역을 보여준다.

 

 


너의 이름을 제대로 불러야겠다
징검다리 건너다가
물억새 그늘 흔드는 작은 소요
반갑다, 피라미!

 

 

이쯤에서 가만히 서 있으마!
새끼손가락만 한 몸 구석구석 새겨진 팽팽한 경계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이 사람이라고
어미의 어미 또 그 어미의 어미가 가르쳤구나

 

 

이 넓은 우주
홀씨 하얗게 날리는 봄날
한 물고기가 한 사람을 바라보는 오후

 

 

나지막이
내 이름을 일러주었다

 

 

(‘통성명’, 24쪽)

 


미물을 바라보는 것은 또 다른 나를 만나는 길이기도 하다. ‘홀씨 하얗게 날리는 봄날’에 새끼손가락만 한 피라미의 눈에는 인간은 자연을 지배하는 힘을 가진 거대한 생명체로 보이게 된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인간도 세상에서 제일 무서워하는 것이 같은 종족 인간이다. 만물의 영장인 우리도 넓은 우주 속에 살기 위해 헤엄치는 한낱 미물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식한다. 그래서 시인은 오만함을 벗고 진지한 사색을 시도한다.

 

 


여자가 가진 것은
하얀 벽에 기대어둔 햇빛뿐이다

 

 

처음 보았을 때 여자는
벽에 기대 앉아
햇빛의 털을 고르고 있었다
두 번째 보았을 땐
햇빛의 갈비뼈를 퉁기고
햇빛의 발바닥을 핥아주고 있었다
세 번짼 오래된 햇빛을 꺼내어
때 묻은 소매로 닦고 있었다

 

 

여자는 자주 웃는다
자주 웃으며 이야기한다
반짝이는 나뭇잎에 귀를 문지르는 여자의 말상대는
햇빛이다

 

 

오늘도 여자는 길 위에 있다
지난밤 무슨 일이 있었나
누가 겁 없이
건들거리며 여자의 거처를 침범했나
날카롭고 무거운 노랫소리가
곧장 여자의 무릎으로 떨어져 꽂힌다

 

 

세실카페 모퉁이 저 끝에서
흥분한 바람이 펄럭이고 있고
1억 5천만 킬로미터를 달려온 햇빛은
마침내 여자의 머리카락에 닿아
"괜찮다, 괜찮다" 미끄러지고 있다

 

 

(‘세살카페 옆 고양이’, 18쪽)

 


사람이건 미물이건 이고득락(離苦得樂)을 추구한다. 괴로움을 따르고 즐거움을 배척하는 존재란 없다. 행복은 우리 모두의 희망이요, 바람이다. 인생의 목적이 바로 행복이다. 누구든 행복한 삶을 원하지 않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모두가 행복한 삶을 원하고 꿈꾸며 살아가고 있다. 괴로움이 없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괴로운 일이 없다면 즐겁고 행복한 일이 계속된다. 그러나 우리는 안락한 삶을 침범하는 고통이라는 손님을 맞아들여야 한다. 불청객을 받아들이는 것도 힘들고 보내는 것도 힘들지만, 힘들고 힘든 것 역시 살아있음의 자각이다. 행복은 어느 누가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다. 자신이 행복하거나 불행하다고 하는 것은 생각하기 나름이다. 내 피부와 마음에 닿은 저 포근한 햇빛마저도 우리를 즐겁게 해주고,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넘칠까봐
늘 위태로웠지
몇 개의 뼈와 가죽 안쪽에서
오랫동안 찰랑거리던 것
가끔씩 햇빛에 널어
꾸덕꾸덕 말라가는 것도 같았지만
잠깐 잦아들 뿐 다시 찰랑거리곤 했지
바람이 급하게 구름을 몰아가는 동안
개울물 독경 소리 흘러가는 동안
내 귀가 듣지 못하는 말 있었는지
들고 있던 것들 그만 내려놓고 싶어지네
낮아지고 낮아져서 그만
이마를 바닥에 대고 말았는데
주머니 속에서 때를 놓친 씨앗 한 알
오랫동안 잊고 지낸 작은 물고기
이런 하찮은 것들이 흘러나오데
돌멩이 적시며 개울로 스며들데

 

 

(‘새벽, 대흥사’, 43쪽)

 

 
대자연 앞에서는 인간도 어쩔 수 없는 미물, 산다는 것이 그렇게 덧없고 무상한데 코딱지만 한 달팽이 뿔 위에서 서로 싸우고 있다(蝸牛角上之爭). 끝없는 욕망으로 인한 타락으로 인간의 고결한 품성이 사라진 지 오래며, 오히려 미물만도 못한 신세로 전락해 버렸다. 과연 인간은 얼마나 더 잔인해질 수 있을까. 자연의 맥박이 뛰는 소리에 귀 기울인다면 겸손한 마음을 얻는다. 미물을 소중하게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과 깊은 성찰이 재료가 된 시는 옳기도 하고, 숭고하다. 미물의 세계에도 그들의 숭고함이 있고 성스러운 행위가 엄연하게 존재한다. 내 손에 꾹 쥐고 있는 욕심 덩어리를 내려놓고, 낮은 데를 굽어보면 아름다운 자연에서 나오는 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는 미물이 살아있다는 증거, 즉 우리 역시 그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음을 확인하는 좋은 신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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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소리 없이 가버렸다
김향아 지음 / 책과나무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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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쓰여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윤동주 「쉽게 쓰여진 시」  중에서)

 

 

윤동주 시인은 남의 나라 육첩방에서 시를 쓰고 있는 자신의 상황을 부끄러워했다. 삶의 어려움과 엄숙함에 쓰인 자신의 시가 진실한 것인지 자아 반성을 통해 얻은 시인의 결론은 부끄러움이었다. 그러나 시인이 떠나면서 남기고 간 ‘하늘과 별과 바람과 시’는 지금도 우리 가슴을 뛰게 할 정도로 순수한 심성을 지니고 있다. 유복한 집안의 아들이었지만 이타적인 시인의 시선은 언제나 주변인을 향한 연민과 그리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의 시는 쉽게 써져서 나오는 것이 절대로 아니다. 세상을 넉넉하게 품어주는 감성이 아니면 이런 주옥같은 시가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김향아 시인의 제1시집 『세월이 소리 없이 가버렸다』은 인생 살기 어려운 시대에 나온 쉽게 쓰인 시다. 시는 대체로 단조로운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내용이 긴 시는 많아야 두 쪽 이상 넘게 된다. 그렇지만, 이 시집에 시적 감정을 질질 끌면서 길게 쓴 시가 없다. (이 시집에서 제일 긴 내용으로 이루어진 시가「울 오빠」이다) 그리고 시인은 난해하면서도 추상적인 단어를 쓰지 않는다. 시구 한 줄 한 줄에 여성 특유의 감성이 묻어나 있어 독자의 눈과 마음에 단숨에 박혀 버리게 만든다.

 

 

그냥 당신이 좋아요
왜냐고 묻지 마세요
이유가 없거든요

 

그래도 알고 싶다면
지나가는 바람에게
살며시 물어보세요

 

혼자 하는 독백을
스치던 바람이
들었을 것 같군요

 

당신이 보고플 땐
하늘을 보았어요
떠 있는 뭉게구름이
알려 주겠군요

 

당신을 좋아하는 데는
이유가 없습니다
그래도 묻는다면
"그냥"이라 말하겠어요

 

 

(「당신이 좋은 이유」, 76쪽)

 

 

김향아 시인의 시는 원태연, 용혜원, 이정하의 사랑시처럼 독자에게 해석을 요구하지 않는다. 시적 화자는 자신이 그리워하는 대상 또는 그와 함께한 시간을 그리워한다. 대상을 향한 보고 싶은 감정을 절제하지 않는다. 시에 드러나는 주제는 단순하고, 어디에서 본 듯한 상투적인 표현이 많이 보이게 된다. 시는 쉽게 읽혀지더라도 시인의 개성이 돋보이지 않는다.

 

시를 즐겨 읽고, 시 작문을 오래 해본 사람이라면 이 시집을 야박하게 평가했을 것이다. 이게 과연 정말 시라고 쓴 것이며 독자에게 떳떳하게 보여줄 수 있을 수준이 되는지 시인의 능력에 의아해 할지도 모른다. 시인은 대한문인협회에 등단했다. 하지만 시를 냉정하게 문학성 위주로 평가한다면, 기교와 표현력이 부족한 ‘아마추어’ 수준에 벗어나지 못한다. 시를 너무 쉽게 쓴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예를 들면 「비가 내리는 날」은 감수성이 충만한 독자라면 매력적인 시로 보겠지만, 비가 내리면서 느끼게 되는 센티멘털을 전달하는 비유가 새롭지 못하다.

 

 

비가 내린다
마음에도 내린다

 

창문으로 떨어지는 빗방울은
이내 사라지지만

 

마음으로 내리는 비는
차곡차곡 쌓인다

 

쌓이고 쌓여 강을 이루면
그대 내게 올 수 있도록
작은 종이배 하나 띄우렵니다

 

 

(「비가 내리는 날」, 21쪽)

 

 

비는 하늘에서 뚝뚝 떨어진다. 비가 내리는 날이면 우울해지고, 잊고 있던 감성이 스멀스멀 기어 나온다. 갑자기 울고 싶어진다. 빗방울이 떨어지는 것을 얼굴에 내리는 슬픈 감정의 눈물로 대치되는 비유법으로 묘사할 수 있다. 이러한 비유는 시를 쓰지 않는 사람도 생각할 수 있다. 참신한 비유도 너무 흔하게 사용되면 독자의 딱딱한 마음을 녹이는 감흥을 불러일으킬 수 없다. 시를 쓰게 되면 다양한 비유법을 알아야 하고, 기존에 볼 수 없는 새로운 표현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래서 시는 모든 감정을 문장으로 술술 풀리듯이 써내려가는 쉬운 글이 아니다.

 

시인의 첫 시집은 문학적인 측면에서 좋은 점수를 많이 받지 못할 만큼 부끄럽다. 그렇지만 누구나 공감할 수 있도록 쉽게 썼다는 점에서 시인의 노력을 높게 사고 싶다. 약간 오글거리는 면은 있으나, 대체로 시가 귀여우면서도 순수하다. 반면에 슬픈 여운이 느껴지는 시도 있다. 시집에 병으로 쓰러진 오빠를 걱정하는 각별한 애정(「울 오빠」) 그리고 어머니의 따듯한 품을 그리워한다(「늦은 눈」). 사랑하는 사람은 곁에 없든 같이 있든 그를 영원히 잊지 않으려는 지고지순한 사랑 감정을 과감하게 표출하기도 한다(「당신이 좋은 이유」「님이시여!」「기다림 2」「그거 알아요?」「꿈」)

 

 

어디쯤 와 있을까?
지금 나의 위치는
세월이 이끄는 대로
정신없이 달려왔다
잠시 뒤돌아본 나의 삶에는
참으로 많은 사연들이 빌딩처럼 서 있구나!

 

행복했던 시절들
멈추고 싶었던 순간들
너무나 슬펐던 기억들
지우고 싶은 시간들

 

내 곁에 머물렀던 그리운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떠나갔을까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로 떠나버린
보고 싶은 사람들......

 

 

(「삶」, 116쪽)

 

 

하지만 시인은 그들을 그리워하기보다는 그들과 함께했던, 이제는 소리 없이 지나가버린  세월의 흔적을 만나고 싶어 한다. 시인에게 시는 우리가 잊고 있었던 추억의 대상(어머니, 과거에 사랑했던 사람, 시인의 개인적인 체험 등)들을 다시 불러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시인의 마음으로 되돌아온 것들은 문장으로 형성되어 독자들 앞에서 복원된다. 시인은 시를 통해서 삶의 소중한 순간들을 잊고 산 건 아닌지 자아 반성을 한다.

 

평범한 시를 읽었다고 해서 절대로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혹시 시인이 첫 시집이 흡족하지 않더라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점점 더 인생 살기 어려워지는 요즘, 이런 쉽게 쓰인 시가 나는 더 반갑다. 쉽게 감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순수한 마음으로, 순수한 표현을 구사하는 시인을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그 순수한 감정 그대로 다음 시집에서도 보여줄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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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 포콩  「첫번째 사랑의 방」

 

 

 

그것은 일생에 세 번 또는 네 번 이상 오지 않으리라. 눈을 뜨면, 행복이 지나간 통로인양 완강히 남아 있는 한 꿈의 추억. 행위는 모두 사라지고, 남은 것은 사랑하는 이에 대한, 빛살처럼 느껴지는 인상뿐이다. 그의 곁에 있었고, 그의 존재가 줄 수 있는 모든 은혜를 다 받았다는 무한한 향수가 이어지는 아침나절을 술렁이게 한다. 천사의 그림자, 전부(全部)의 옆을 지나가는 느낌.

 

(베르나르 포콩  『사랑의 방』에서, 32쪽)

 

 

 

 

 

 

 

 

 

 

 

 

 

 

 

 

 

 

 

내 언젠가 히스나무 이 가녀린 가지를 꺾어 두었지
가을도 가버렸으나 잊지는 말아라
우리는 이 땅에서 다시 보지 못할 거야
시간의 이 향기 히스나무의 이 가녀린 가지
그래 내 너를 기다리니 잊지는 말아라

 

(아폴리네르, '고별')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만질 수도, 볼 수도, 소유할 수도 없고, 다시 오지 않는다. 그러나 잊히지 않는다. 그것이 바로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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