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고인 하늘을 밟고 가는 일 - 여림 유고 전집
여림 지음 / 최측의농간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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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하다는 것은 견디기 어려운 상태다. 고독하다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소속감이다. 소속감에서 자부심이 생기고, 자부심에서 자신감이 생긴다. 그런데 소속된 공동체로부터 멀리 떨어진 상황은 존재의 뿌리가 흔들리는 고통스러운 경험이다. 그것은 방황의 시작이요, 고독의 시작이다.

 

 

고독은 내적 밝음의 고독과 외적 어두움의 고독이 있다.

내적 밝음의 고독은 자기성숙을 의미하지만

외적 어두움의 고독은 자기 상실을 의미한다.

선택은 자신만이 할 수 있다.

 

(『고독』, 96쪽)

 

 

고독. 누구나 이걸 잘 이겨 열정을 바치면 뭐든 이루고, 지면 병이 된다. 각오가 필요하다. 외로움을 이겨내는 고통을 잘 알기 때문에, 고독에 질 준비를 먼저 할지도 모른다. 고독에 진 사람은 적막한 고독과 자기소멸의 공포에 시달리면서 살아간다. 반면 피하고 싶은 징글징글한 고독감도 나의 일부로 여기면 훨씬 살기 편해질 수도 있다. 고독은 더 깊은 사랑을 주고 더 깊은 인연을 맺기 위한 자기 성찰과 성장을 위한 탐구가 된다.

 

고독은 시인 여림이 고집스럽게 추구하는 가치이다. 어찌 보면 가장 상투적인 감정이다. 이를테면 사랑, 진정한 소통 같은 것. 그렇지만 단순히 타자들의 삶을 이해하고 동정하는 것 정도를 의미하는 게 아니다. 절대고독을 견디며 살아가는 존재들을 통해 시인의 주된 관심사가 존재의 고독에 대한 성찰에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전화는 언제나 불통이었다

사람들은 늘 나를 배경으로 지나가고

어두워진 하늘에는 대형네온이

달처럼 황망했었다. 비상구마다 환하게 잠궈진

고립이 눈부셨고 나의 탈출은 그때마다 목발을 짚고 서 있었다.

살아있는 날들이 징그러웠다. 어디서나

계단의 끝은 벼랑이었고

목발을 쥔 나의 손은 수전증을 앓았다.

 

(『계단의 끝은 벼랑이었다』, 77쪽)

 

 

이 시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빛이 아닌 어둠이다. 그곳은 절망과 좌절의 세상이다. 시의 화자는 사람의 관계에 거리를 두고 있다. 고독은 완벽한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우리는 모두 완전하지 못한 인간들이기에 가까워질수록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고독을 느낀다. 대부분 혼자인 채로 남겨져 있거나 고독 속에서 살아간다. 하지만 그 고독에 몸을 떠는 후유증 속에서 치유의 방법을 발견해 내는 것 또한 우리의 몫이다.

 

 

몇 번이나 주저앉았는지 모른다

햇살에도 걸리고 횡단보도 신호등에도 걸려

자잘한 잡품들을 길거리에 늘어놓고 초라한

눈빛으로 행인들을 응시하는 잡상인처럼

나는 무릎을 포개고 앉아 견뎌온 생애와

버텨가야 할 생계를 간단없이 생각했다

해가 지고 구름이 떠오르고 이윽고

밥풀처럼 입술 주위로 묻어나던 싸라기눈

아줌마 여기 소주 한 병 주세요,

나는 석유 난로 그을음 자욱한 포장마차에 앉아

가락국수 한 그릇을 반찬 삼은 저녁을 먹는다

둘러보면 모두들 살붙이 같고 피붙이인 사람들

포장 틈새로 스며드는 살바람에 찬 손 가득

깨진 유리병 같은 소주 몇 잔을 털어 넣고

구겨진 지폐처럼 등이 굽어 돌아가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나는 오랜 친구처럼

한두 마디 인사라도 허물없이 건네고 싶어진다

 

포장을 걷으면 환하고 따뜻한 길

좀 전에 내린 것은 눈이 아니라 별이었구나

옷자락에 묻어나는 별들의 사금파리

멀리 집의 불빛이 소혹성처럼 둥글다

 

(『나는 집으로 간다』, 27쪽)

 

 

『나는 집으로 간다』 속 세상은 사랑과 교류가 불가능한 곳이다. 그곳에서 화자는 실패한 관계의 상처와 흔적을 지워나간다. 삶의 암흑에서도 화자는 부단히 상처를 치유하고 실존적 사유를 시도할 자신만의 ‘공간’을 추구한다. 예컨대 ‘살붙이 같고 피붙이인 사람들’이 모여 있는 포장마차는 바로 그러한 공간을 상징한다. 그곳에서 화자는 다시 한 번 삶에 대한 진한 감동과 전율을 경험한다.

 

 

종일,

살아야 한다는 근사한 이유를 생각해 봤습니다.

근데 손뼉을 칠 만한 이유는 좀체

떠오르지 않았어요.

 

소포를 부치고,

빈 마음 한 줄 같이 동봉하고

돌아서 뜻모르게 뚝,

떨구어지던 누운물.

 

저녁 무렵,

지는 해를 붙잡고 가슴 허허하다가 끊어버린 손목.

여러 갈래 짓이겨져 쏟던 피 한 줄.

손수건으로 꼭, 꼭 묶어 흐르는 피를 접어 매고

그렇게도 막막히도 바라보던 세상.

세상이 너무도 아름다워 나는 울었습니다.

 

(『살아야 한다는 근사한 이유』 중에서, 70쪽)

 

 

고독감이 짙게 배면서 그리움이 진드기처럼 묻어난다. 이제껏 사는 동안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더 많다고 느껴질수록 지난 시간의 냄새가 뼛속까지 스며든다. 삶의 고통과 고독이 우리를 숨 막히게 하고, 때로 손목을 긋는 무시무시한 충동을 일으킨다. 하지만 여림의 유고시집은 우리가 가진 고독과 쓸쓸함을 확인하는 글이 아니다. 상처로 가득한 자와 상처만 주는 자, 좁은 방, 암울, 불안, 허무, 상처, 외로움. 결국은 사랑. 이것이 여림이 독자에게 세상이란 그런 것이라고 알려준다. 뻔한 것을 쫓아 달려가기도 하고 때로는 가까이 있어도 바라보기만 하지만, 결국은 정답이 없이 또 달려야 하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시인에게 완벽한 고립과 철저한 고독은 곧 완전한 자유와 정신적 성숙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시인이 생각하는 ‘살아야 한다는 근사한 이유’는 궁극적으로 회복과 재생에 대한 염원과 기구의 은유인지도 모른다. 존재 이유를 찾는 과정은 인간의 필연적인 의무이므로 충분히 그 의무를 수행하는 것이 삶을 거역하지 않는 것이다. 진정한 자기 성숙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다.

 

정말이지 인생에서 오롯이 나를 이해하는 것은 나뿐이다. 지독하게도 어렵고 힘든 것이 사랑이고, 가슴 터질 만큼 외로운 것이 우리의 일상이다. 결국 삶을 받아들이는 태도는 선택의 문제이다. 여림, 당신이 가고 나서부터 시가 내렸다.[주석] 우리는 여림의 시를 통해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본다. 여림의 시는 그 누구에게나 있는 감정을 건드리고 있다. 그의 시가 소중한 것도 바로 그러한 동질감 때문일 것이다.

 

 

 

 

[주석] 여림이 쓴 시의 제목 『네가 가고 나서부터 비가 내렸다』를 오마주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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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08-19 0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왜 몰랐을까요..소개 감사드리며 ^^..
바로 장바구니로~

바로 주문 콜!~^^..

cyrus 2016-08-19 16:22   좋아요 1 | URL
혹시 대형서점에 가게 되면 여림 시집을 찾아보시고, 그 자리에서 한 번 읽어보세요. 분명 마음에 드실 겁니다. ^^

또 봄. 2016-08-18 2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주 한 사발 들이켠 기분이에요.

cyrus 2016-08-19 16:23   좋아요 0 | URL
제 글은 시의 감동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다고 생각해요. 직접 시를 읽어보시면 정말 소주가 당길 겁니다.

아무 2016-08-18 2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독>을 읽고나니 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불끈 솟네요 ㅎㅎ 이렇게 또 리스트가 늘고...^^;; 좋은 책 추천 감사합니다 ^^

cyrus 2016-08-19 16:24   좋아요 0 | URL
제가 다른 분들에게 책을 추천하지 않는 편인데, 이 시집만큼은 자신 있게 추천할 수 있습니다.

clavis 2016-08-19 0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cyrus님 덕분에 질렀습니다^^시집을 사는 아침은 행복합니다.시인이 되려면 가질 수 없는..행복ㅠ

cyrus 2016-08-19 16:25   좋아요 2 | URL
고맙습니다. 여림 시집을 펴낸 최측의농간 출판사가 최근에 에세이집도 펴냈습니다. 이 출판사의 책은 믿고 사셔도 좋습니다. ^^

yureka01 2016-08-19 18: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안그래도 오늘 이분 시집 오는데 왠지 빠져들거 같은 예감이 스물스물...ㅎㅎㅎ다시한번 소개 감사드리며 ^^

루쉰P 2016-08-19 2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루스님 이러시면 안 됩니다....저 이거 주문하자나요 ㅋ ㅋ 생큐 투를 눌렀어요 ㅋㅋㅋ 이거 정말 읽어보고 싶은 시집이네요.

시루스님의 소개와 어찌이리도 잘 맞는지 아, 정말 명 리뷰에 좋은 시집인 듯 싶네요 ㅎ

cyrus 2016-08-20 10:32   좋아요 0 | URL
생큐 투.. ㅎㅎㅎ 주문하기 전에 도서관이나 서점에 직접 시집을 천천히 확인해도 좋습니다. 명 리뷰는 아니고요, 확실히 좋은 시라는 것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


페크pek0501 2016-08-21 12: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cyrus 님의 좋은 글과 함께 좋은 시, 잘 감상했어요...

cyrus 2016-08-21 16:51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서평보다 시가 더 좋습니다.

오쌩 2016-08-22 2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출판사이름이 특이하네요. 고독을 모르는자와 인생을 논하지말지어다 ㅎ

cyrus 2016-08-22 20:41   좋아요 0 | URL
출판사 이름이 `최측의농간`입니다. 절판된 책을 복간하는 출판사입니다. ^^
 
빈 배처럼 텅 비어 문학과지성 시인선 485
최승자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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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회 세종도서 독서감상문 대회 출전작

 

 

 

살다 보면, 니체와 쇼펜하우어를 들먹이며 허무에 감염될 때가 있다. 영혼의 복판을 꿰뚫는 통렬한 슬픔을 겪은 사람은 절대 그 아픔을 경험하기 전, 그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최승자 시인은 깊은 내면의 상처를 온전히 끌어안지도, 그렇다고 질끈 무심한 척 내버리지도 못하면서, 끊임없이 상처를 되새김질한다. 그녀의 시는 지금까지의 삶을 되새김질한 결과 찾아낸 결론이다. 《빈 배처럼 텅 비어》는 시인의 피 흘리는 상처를 응시해야 하는 시집이다. 《빈 배처럼 텅 비어》는 아프게 눈물로 그려낸 통렬한 생존 증명서이며, 오랜 시간 자신을 짓눌렀던 고독을 건조한 문장으로 풀어낸 일기다.

 

 


나의 생존 증명서는 詩였고
詩 이전에 절대 고독이었다
고독이 없었더라면 나는 살 수 없었을 것이다

 

세계 전체가 한 병동이다

 

꽃들이 하릴없이 살아 있다
사람들이 하릴없이 살아 있다

 

「나의 생존 증명서는」 50쪽

 


 

한정되고 닫힌 세상에서 자신의 모습을 비범하게 담아온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도 비애와 허무를 드러낸다. 시를 읽으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죽음이다. 시인이 읊조리는 말은 애처로운 묘비명처럼 느껴진다.

 

 

내 손가락들 사이로
내 의식의 층층들 사이로
세계는 빠져나갔다
그러고도 어언 수천 년

빈 배처럼 텅 비어
나 돌아갑니다

 

「빈 배처럼 텅 비어」 9쪽

 

 


시인은 자신의 생존기를 통해 허무와 죽음 앞에서 인간의 허물어지기 쉬운 존재가치와 존엄을 그려냈다. 절망 속에서 삶의 진정성은 어쩌면, 생존 그 자체인지도 모른다. 구원의 가능성이 완전히 차단된 세상에서는 생존하기 위한 삶의 방식이 잘난 지식보다 중요한 것일 수 있다.

 

 


지식과 지식이 싸울 때
自然 소외는 한없이 깊어지고
역사는 흙탕물이 되어 흘러간다
죽으면 땅의 지식은 필요가 없고
하늘의 지식이 필요하다
그 잘난 지식들을 얼굴에 달고 다니는 사람들
들판에서 보리와 밀이 웃더라

저기 지식을 구걸하는
한 무리의 동냥아치들이 지나간다

 

「들판에서 보리와 밀이」 49쪽

 

 

 

시인은 삶의 허무와 우울, 그리고 슬픔의 소리 들을 품어 안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그 운명을 거부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녀는 한 마리의 부운몽(浮雲夢)이 되어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어선 몽유(夢遊)의 세계를 떠돈다.

 

 

 


정신과 병동에서
또 고장난 하루가 펼쳐진다
세상은 흘러가겠지
넋 놓고 세월은 흘러가겠지
하루하루 바보 같은
나날이 지나가겠지

 

(나는 지금 한 마리의
떠도는 부운몽이올시다)

 

「한 마리의 떠도는 부운몽」 21쪽

 

 


인생은 단 한 번에 끝나는 ‘일회용 인생살이’로 보일는지 모르지만, 인생 이면에 보이지 않는 부분도 있다고 믿기에 희망을 품고 버틴다. 일생을 타인의 임종을 지키고 살아온 한 수도사의 증언을 생각해 본다. “사람이 죽을 때 모습은 그가 살아왔던 모습과 같다. 다른 말로 한다면 사람의 죽음은 그 사람의 삶과 동질이다.” 죽음은 평생 살아온 삶의 열매와 같다. 그래서 대충 살고 의미 없이 죽을 수 없다. 내용 없이 사는 무미건조한 인생은 허무하다. 그래서 어떻게 죽을 것이냐의 고뇌가 아니라 어떻게 살 것이냐의 질문에 대답해야 한다.

 

 


모든 사람들이 그러나저러나의 인생을 살고 있다
그래도 언제나 해는 뜨고 언제나 달도 뜬다
저 무슨 바다가 저리 애끓며 뒤척이고 있을까
삶이 무의미해지면 죽음이 우리를 이끈다
죽음도 무의미해지면
우리는 虛와 손을 잡아야 한다

 

「모든 사람들이」 31쪽

 


시인에게 허무는 더 이상 애써 극복해야 할 대상도 끝내 무릎 꿇을 운명도 아닌, 이제 다만 물끄러미 들여다봐야 할 삶의 풍경이다. 허무의 끝에까지 가봤던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정신병동 같은 막다른 세계를 들여다보는 일이다. 김춘수 시인은 ‘무의미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 노력’이라고 말했다. 실눈을 뜨더라도 정면으로 응시해야 해야 한다. 그래야 허무를 견디게 하는 면역성이 생긴다. 우리는 차가운 허무와 손을 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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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05 19: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6-08-06 20:07   좋아요 1 | URL
좋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시를 읽으면서 느낀 감정이 서평을 보는 분들에게 잘 전달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2016-08-06 20: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8-06 20: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틀 전에 민음사가 창립 50주년을 맞았다. 축하할 일이다. 여기에 맞춰 민음사는 창립 50주년을 기념하여 ‘세계시인선’ 15권을 새롭게 출간했다. 세계시인선을 모으는 독자로서 무척 반가운 소식이다.

 

 

 

 

 

 

 

 

 

 

 

 

 

 

 

 

 

세계시인선 리뉴얼판 네 번째 작품은 프랑수아 비용의 《유언의 노래》다. 비용은 프랑스 중세 말기에 활동했던 시인이다. 백년전쟁의 열기가 식지 않은 1431년 파리에서 태어났다. 그의 삶은 평범하지 않았다. 비용은 필립 세르모아라는 신부와 언쟁을 벌인 끝에 단검으로 그를 찔러 죽였다. 사실 피를 부르는 싸움의 발단은 세르모아였다. 그가 느닷없이 비용 일행에게 다가가서 시비를 걸었다. 처음에 비용은 싸움을 원하지 않았다. 그런데 세르모아는 단검을 빼내어 비용의 얼굴에 상처를 입혔다. 비용 입장에서는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세르모아를 공격했을 것이다. 비용은 칼에 찔린 세르모아의 머리에 돌을 던졌다. 길바닥에 쓰러진 세르모아를 내버려둔 채 비용 일행은 부리나케 도망갔다. 싸운 지 3일 뒤에 세르모아는 사망했다. 살인자가 된 비용은 가명을 사용하면서 7개월 동안 도피 생활을 했다. 비용의 범죄 이력은 이게 끝이 아니다. 친구들과 함께 학교 돈을 훔친 사실이 발각되어 또다시 도망자 신세가 되었다. 몇 차례 투옥되기도 했지만, 운 좋게 풀려났다. 비용은 짧지 않은 방랑 생활을 보냈는데, 그간의 행적에 대해선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비용 주변에는 행동이 불량한 친구들이 많았다. 비용이 그들과 같이 다니면 불미스러운 사건이 생겼다. 비용 일행 중 한 사람이 싸움을 걸어 사람을 죽이고 말았는데, 억울하게도 비용이 그 자리에 긴급 체포되고 말았다. 설상가상으로 이 사건의 재판을 담당한 자는 평소 행실이 좋지 않은 자를 엄하게 처벌하기로 악명 높았다. 비용은 물고문당한 후에 교수형 선고를 받는다. 억울한 비용은 판결에 불복상고를 신청했다. 다행히 그는 교수형을 면했고, 10년간 파리추방의 선고를 받았다. 파리를 떠나는 횟수만 해도 세 번째였다. 1463년 1월에 파리를 떠났는데, 그 이후 비용이 여생을 어떻게 보냈는지, 언제 세상을 떠났는지 알 수 없다.

 

비용은 1456년 말 혹은 1457년 초에 <유증시>(Lais)를 썼고, 이를 개작해서 나온 작품이 바로 <유언시> 혹은 <유언의 노래>(Le Testament)다. 비용은 그 당시 유행한 발라드(ballade) 형식을 따랐는데, 발라드란 자유로운 형식의 담시를 의미한다. <유증시>는 비용이 주변 사람들의 이름을 열거하면서 자신의 물품을 유증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진 장시다. <유언시>는 <유증시>를 개작한 것이다. 1461~1462년 수감되었을 때 쓰였을 거로 추정한다. <유언시>는 비용의 심적 변화가 뚜렷하게 드러나는 작품이다. 전반부에서 비용은 자신에게 내려진 처벌이 가혹하다고 호소하지만, 끝내 신 앞에서 회개할 것을 다짐한다.

 

 

나는 죄인이로다, 그것을 잘 알고 있거늘
그러나 신은 내 죽음을 바라지 아니하고
죄에 괴로워하는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행실을 고치고 선하게 살기를 원하도다.
내가 죄로 인하여 죽는다 하더라도
신은 산다고 하셨기에
내 양심이 가책을 느낄 때
그 자비로움은 나를 너그럽게 용서해 주시리라.

 

(<유언시> 문학과지성사 77~78쪽)

 


후반부에 <유증시> 내용 일부가 다시 등장하는데, 전반부에서 보여주던 회개하는 태도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사회를 향해 신랄한 조롱을 퍼붓는다. 창녀, 떠나버린 연인을 비난하는 냉소적인 분위기의 발라드가 있다.

 

 

 

 

 

 

 

 

 

 

 

 

 

 

 

 

 

 

자신의 삶에 회한을 무수히 느끼면서도 갑자기 냉소적인 태도로 돌변하여 세상을 향해 악담하는 비용의 정서적 태도는 훗날 보들레르와 아폴리네르로 이어진다. 보들레르와 아폴리네르도 순탄치 않은 인생을 살았던 시인들이다. 비용과 아폴리네르의 생애를 비교해보면 닮은 점이 몇 가지 있다. 두 사람 다 실연으로 큰 아픔을 겪었고, 시를 통해 떠나간 여인들을 원망하는 심정을 직설적으로 드러냈다. 아폴리네르는 루브르에 전시된 다 빈치의 <모나리자> 도난 사건에 휘말려 한동안 곤욕을 치러야 했다. 아폴리네르는 <모나리자> 도난 사건에 전혀 관련이 없었다. 뚜렷한 직업 없이 파리에 머무는 이탈리아인이란 이유로 절도 범죄자로 몰렸다. 이로 인해 아폴리네르는 상테 감옥에 일주일 동안 수감되었다. 그는 당시 억울함 심정을 담아 ‘상테 감옥으로’라는 제목의 시를 썼다.

 

 

감방으로 들어가기 전에
나는 알몸이 되어야 했으니
어느 불길한 밤새 소리 울부짖는다
기욤 너 이게 무슨 꼴이냐고

 

나는 어찌 되나요 오 내 고통을 아시는 신이시여
 그 고통을 주신 그대여
불쌍히 여기소서 눈물 없는 내 눈을 내 창백한 얼굴을
 사슬에 매인 내 의자 삐걱대는 소리를

 

울고 있는 이 시간을 네 울며 한탄할 날 있으리
어느 시간이나 그렇듯이
너무나 빨리 지나갈 이 시간을

 

(‘상테 감옥으로’ 중에서, 《알코올》 175~179쪽)

 

 

아폴리네르는 기소유예로 풀려났지만, 파리 사회는 무국적자인 그를 ‘잠재적 범죄자’로 몰아세웠다. 국외 추방의 위협을 받은 아폴리네르는 작가 활동에 큰 타격을 입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6년에 아폴리네르는 프랑스 국적을 얻었다. 그가 프랑스군에 자원입대했기에 이루어진 일이었다. 프랑스 국적을 얻은 지 닷새 만에 아폴리네르가 소속된 사단이 최전방에 투입되었다. 전쟁터에 들어가기 전에 아폴리네르는 약혼녀에게 짧은 편지를 보냈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그대에게 유증합니다. 만일의 경우, 이것을 나의 유언으로 간주하시오.” (《알코올》 348쪽)

 

 

불행하게도 아폴리네르는 오른쪽 관자놀이에 포탄 파편이 박히는 부상을 입었다. 오랜 수술 끝에 극적으로 살아남으나, 부상 후유증으로 약간의 마비 증세를 겪어야 했다. 비용과 아폴리네르는 세상으로부터 사랑받지 못한 저주받은 시인이었다. 안정된 삶을 누리지 못한 두 시인은 시집으로 자신들의 삶을 알리려고 애썼다. <유언시>와 《알코올》은 시인들의 회한의 자취와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장대한 묘비명이다. 

 

 

 

 

사진출처: 민음사 공식 블로그(http://blog.naver.com/minumworld/220712963719)


 


프랑스 중세 시인의 작품이 소개돼서 기쁘지만, 출판사 창립 기념의 즐거운 분위기를 망치더라도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민음사 공식 블로그에 들어가 보면 시집을 간략하게 소개한 글들이 있다. 민음사는 《유언의 노래》를 ‘국내 최소 소개’한 시집으로 소개했다. 이는 잘못된 사실이다. 아주 오래전에 비용의 시집이 완역된 적이 있다.

 

 

 

 

 

1980년 플로베르 연구의 권위자이자 불문학자인 송면 교수가 번역한 적이 있다. 번역본 출판사는 ‘문학과지성사’다. 송 교수는 동서문화사판 《레 미제라블》과 1985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 클로드 시몽의 《플랑드르로 가는 길》 등을 번역했고, 1994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가 세상을 떠나고 난 후 이듬해에 나온 유고집이 《프랑수아 비용 : 그 생애와 시 세계》(동문선)이다. 송 교수가 비용을 처음 알게 된 계기가 특별하다. 송 교수가 일본 와세다대학에서 불문학을 전공할 당시 일본인 지도교수로부터 비용 연구를 권유받았고, 비용 연구는 송 교수의 부전공이 되었다. 그의 지도교수가 비용 연구의 권위자였다. 만약 송 교수가 그를 만나지 못했으면, 비용이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시기가 엄청 늦어졌을 것이다.

 

 

 

 

 

 

 

 

 

 

 

 

 

 

 

 

 

 

진중권은 《미학 오디세이》 1권에 송 교수가 번역한 <유언시>를 참고하여 일부 문장을 인용한 적 있다.

 

 

저는 가난하고 늙은 여인입니다
아주 무식해서 읽을 수도 없어요
그들은 저희 마을 교회에
하프가 울려 퍼지는 천국과
저주받은 영혼들이 불타는 지옥을 그려서 보여주었어요
하나는 내게 기쁨을 주지만
다른 하나는 두려움을 줍니다.

 

(《미학 오디세이》 1권 구판 150쪽)

 


저는 아무 것도 모르는,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불쌍한 늙은 여자외다.
제가 속하고 있는 성당에는
수금과 비파가 그려진 천국의 그림과
죄인들이 업화에 타는 지옥의 그림이 있는데
하나는 저를 무섭게 하고 하나는 저를 기쁘고 즐겁게 하나니
하늘의 거룩한 성모여 죄인은 독실한 신앙을 가지고
가식도 거짓도 없이 당신에게 매달리지 않을 수 없은즉
그 기쁨 저로 하여금 느끼게 해주소서.
그러한 신앙으로 살다가 죽으오리다.

 

(<유언시> 문학과지성사 128쪽)

 


진중권은 이 문장을 ‘어머니를 위한 발라드’에서 따온 것이라고 밝혔으나 송 교수의 번역본에 보면 시의 제목이 ‘성모에게 기도하기 위한 발라드’로 되어 있다. 진중권이 책을 쓰는 과정에 성모를 ‘어머니’로 착각한 것일까.

 

‘국내 최초 소개’한 작품을 책으로 만드는 것은 출판사 입장에서는 기념비적인 일이다. 하지만 책을 만들기 전에 이미 나온 적이 있는지 사실을 꼼꼼하게 조사해볼 필요가 있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출판된 사실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면서 ‘국내 최초’의 수식어를 내세우는 일은 옳지 않다. 출판사가 이런 실수를 하지 않으려면 책의 존재가 잊히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 일은 독자의 몫이다. 독자 서평은 단순히 감상 수준에 그치는 개인적인 기록을 넘어선 오랫동안 책의 존재를 알려주는 중요한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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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 2016-05-21 2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민음사 세계시인선을 20여권 모으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잘 보이지 않더군요. cyrus님이 아니었다면 이번에 새로 나왔는지 몰랐을 거에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새로운 디자인도 끌리지만 내용면에서도 번역이나 다른 부분도 만족스러웠으면 합니다.

cyrus 2016-05-22 08:16   좋아요 0 | URL
저보다 많이 모으셨는데요. 저도 이미 다른 분들이 소개한 글을 보고 알았습니다. 그 덕분에 민음사 창립 50주년도 같이 알았고요. ^^

yamoo 2016-05-22 2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코올, 저도 있는데, 도체 어디 있는지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ㅜㅜ

저는 시 선집은 취급안하는지라, 패쑤할게욤^^;;

cyrus 2016-05-23 17:18   좋아요 0 | URL
시인선에 포함된 <악의 꽃>이 기존의 김붕구 번역에서 황현산 번역으로 바뀌었어요. 그런데 완역은 아닙니다. 그게 좀 아쉬워요. 황현산 교수가 완역한 <악의 꽃>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

nomadology 2016-05-24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궁금한게 세계시인선은 원본과 번역이 같이 나왔던가요? 아니면 번역만 나오나요??

cyrus 2016-05-24 14:13   좋아요 0 | URL
원문과 번역문 같이 나왔습니다.
 
시가 뭐고? - 칠곡 할매들, 시를 쓰다 칠곡 인문학도시 총서
칠곡 할매들 지음, (사)인문사회연구소 기획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5년 10월
평점 :
품절


 

 

시는 자기 마음속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이 글쓰기는 옷을 벗고 몸을 드러내는 것처럼 감추었던 내면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시인은 몸을 감싼 외투를 벗어본다. 옷을 벗는 행위는 부끄럽다. 사실 글쓰기는 부끄러운 일이다. 감추었던 내면을 한 편의 글로 표현해서 수줍게 고백해야 하기 때문이다. 글 쓰는 것은 기교나 기술이 아니라 진심을 담는 것이다. 정신의 치유는 자기 안에 감춰진 자신을 찾아내고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사람마다 치유과정은 조금씩 다를 듯하다. 내 식으로 말하자면 치유하는 글쓰기는 잃어버린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이랄까.

 

경북 칠곡군에 거주하는 할머니들이 지은 시집 시가 뭐고?를 들여다보면 글쓰기가 얼마나 훌륭한 치유의 도구인지 쉽게 드러난다. 자식에 대한 걱정을 드러내는가 하면, 제대로 공부하지 못했던 어린 시절의 회한도 털어놓는다. 그저 담담하게 지나온 일생을 돌아보면서 느낀 감정들을 꾸밈없이 써내려갔다. 화려한 기교와 인공조미료를 가득 뿌린 듯한 문장으로 멋 부리기 하는 시와는 확연하게 다르다. 맞춤법이 틀리지만, 걸쭉한 경상도 사투리를 섞은 할머니들의 입말이 시에서 생생하게 느껴진다. 말하자면 이런 식이다.

 

 

논에 들에

할 일도 많은데

공부시간이라고

일도 놓고

헛둥지둥 왔는데

시를 쓰라 하네

시가 뭐고

나는 시금치씨

배추씨만 아는데

 

(‘시가 뭐고소화자, 55)

 

 

사랑이라카이

부끄럽따

내 사랑도

모르고 사라따

절을 때는 쪼매 사랑해조대

그래도 뽀뽀는 안해밧다

 

(‘사랑박월선, 106)

 

 

할머니들에게 시는 자기 고백적 글쓰기다. 다른 곳에서 말하지 못한 경험들을 마음껏 풀어낸다. 가부장제 사회규범 때문에 여성으로서의 경험은 사회적 담론으로 받아들여지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으로 나뉜다. 후자의 경험에 대해 여성들은 경험 자체를 부정하거나 자신의 책임으로 돌림으로써 결국 상처로 남게 한다. 이 때문에 시의 주된 소재가 가부장제 사회규범의 굴레에 벗어나는 내면의 성장이다.

 

 

어릴 적

산골짝에 남자아이들

학교 보내주고 여자들은

공부하면 남의 집에 간다고

보내주지 않았다 남동생

둘은 학교 가고

늦게 언니들은 서당에

갔다 나는 소꼴 베러 다니고

조금 베면 아버지 쫓아냈다

마을회관 한글 공부

내 눈을 뜨게 하고

흐리게 보였던 간판이

환하게 보인다

 

(‘한글 공부박후불, 51)

 

 

어린 시저레 초등학교 3학년예

아버님 살든 집을 다시 짓타가

다처서 병원에 수술을 밧게 댓다

병원생활 일년을 하다보니 엄마가

하신 말씀이 우리 분란이 학교 고마도라

우리집 살림을 사라야 댄다 여자은

공부를 안해도 댄다 하셨다

학교로 안 가니 너무 맘이 아파 밥도 안 먹고

누버서 우럿다 아무리 생각해도

마음대로 안됐다 울고 있으니 엄마가

아버지 병원 대원하면 학교 보내주겠다

그 말에 속았다 이레 속고 저레 속고

한평생 다 갔다

 

(‘이레 속고 저레 속고이분란, 59)

 

 

 

가부장제 사회의 남편들은 사회에서 꽤 근사하고 고상하게 알려졌지만, 그 아내들이 겪는 아픔이나 희생은 묻혀 있었다. 밝은 빛에 가려진 어두운 그림자와 같다. 남편이 집안 활동에 지나치게 무게를 두는 가정일수록 아내가 겪는 아픔은 크다. 이런 아내로 살아왔던 할머니들의 내면은 치유할 게 많다. 적적한 산골에서 친구도 없이 살자니 누가 치유해주는 것도 아니다. 마음속에 드리운 그림자는 누가 대신 걷어주지 못한다. 스스로 걷어내는 수밖에. 할머니들은 시를 쓰면서 가슴속에 들어 있는 납덩이하나씩을 녹아 없앤다. 녹아내린 감정의 응어리를 로 주조한다. 시 쓰기는 상처받은 경험을 의미화하고 객관화함으로써 경험과 자신 사이에 일정한 거리를 만든다. 그리고 그 공간을 비집고 들어가는 것은, 경험을 공유한 다른 할머니들의 공감이다. 할머니들이 시를 쓸 수 있었던 이유는 다른 할머니들을 향한 믿음의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글을 쓰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자신을 당당히 펼치기 위해서 쓰기도 하고, 다른 사람과 소통하기 위해서도 쓴다. 그러나 치유라는 관점에서 볼 때 글쓰기는 남보다 먼저 자기 자신을 위한 길이 된다. 억울하거나 속상한 일이 있을 때 이를 토해내지 않으면 그야말로 병이 된다. 말할 상대조차 마땅치 않을 때 글은 몹시 소중한 상대가 된다. 시 쓰는 할머니들은 과거 상처를 끄집어내어 핥고 어루만지고 보듬어간다. 지금까지 안고 있는 문제도 곰곰이 마음속으로 되씹으면서 안으로 소화한다. 이럴 때 시는 오랫동안 막혀 있던 마음을 뻥 뚫려주는 소화제가 된다. 할머니의 시 속에는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여생을 건강하게 보내려는 열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한편으로는 시는 아픔의 상처를 다른 느낌으로 재생한다는 뜻에서, 덧난 상처를 아물게 하는 연고와도 같다. 할머니들의 시를 읽으면 오랫동안 외롭게 내면의 치유에 집중한 그 힘이 조금씩 가슴 속에 스며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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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레프 2016-05-17 2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왠지 힐링이 되는 듯 합니다 ^^

cyrus 2016-05-18 16:21   좋아요 0 | URL
여태까지 읽은 시집 중에서 가장 마음 편하게 읽었습니다.

singri 2016-05-17 2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레속고 저레속고 ㅡㅜ

cyrus 2016-05-18 16:21   좋아요 0 | URL
이 시가 가장 슬펐습니다. ㅠㅠ

쪼님 2016-05-17 2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항상 좋은글 잘 읽고 있습니다~^^

cyrus 2016-05-18 16:22   좋아요 0 | URL
긴 내용의 글을 북플로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yureka01 2016-05-17 2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동안 얼마나 많은 억눌린 마음이 많았을까요.ㅠ.ㅠ

cyrus 2016-05-18 16:23   좋아요 1 | URL
할머니들은 속마음을 얘기 안 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섭섭한 마음을 드러냈다가 가족들이 눈치 볼까 봐 그냥 꾹 참고 있는 것이죠. ㅠㅠ

비로그인 2016-05-18 01: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네요.. ㅜㅜ

cyrus 2016-05-18 16:24   좋아요 1 | URL
재미있는 시뿐만 아니라 좀 슬픈 내용의 시도 있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5-18 11: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시집 은근 진국이죠..ㅎㅎ

cyrus 2016-05-18 16:25   좋아요 1 | URL
맞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생각했던 시의 정의를 바꾸게 만들었습니다.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도 시가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
 
다음 생에 할 일들 창비시선 390
안주철 지음 / 창비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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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써서 먹고 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원고료라고 해봤자 입에 풀칠하기도 어렵다. 시집을 내봤자 시장에서 주목받지 못하니 그럴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시인을 시를 쓴다. 안주철도 마찬가지다. 그가 시를 쓰는 이유는 살아있음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모진 세상에서 그래도 살아보겠다는 본능이 시에 배어 있다. 안주철의 첫 시집 《다음 생에 할 일들》은 쓸쓸한 시인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한 마디로 그의 시가 전체적으로 어두운 편이다. 그런데 무슨 이유일까? 마치 그 시의 내용이 내 이야기인 것처럼 느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나와 상관없이 제멋대로 굴러가고 있는 세상에 대한 슬픔과 소외감은 나만의 것은 아니리라.

 

 

혼자 밥을 먹어도 외롭지 않다. 식탐 때문에
혼자 밤늦게 산책을 해도 두렵지 않다.
미인이 쓰러져 뒹구는 술집 근처에 살기 때문에
책을 읽고 내용을 정리하지 않아도 된다.
말할 사람도 없고
애써 기억할 필요도 없기 때문에

 

친구를 만나도 심심하다. 친구는
사라진 일자리에 빠져 있고 나는
옆 테이블에 앉은 미인의 다리가 궁금해서
아내와 통화를 해도 할 말이 없다. 애인이라도
생겼다면 거짓말이라도 정성스럽게 할 텐데.
여행지에 도착해서도 신기한 것이 하나도 없다.
사진을 몇장 찍으며 나를 속인다.

 

혼자 밥을 먹으면 눈물이 난다. 식욕이 없어서
혼자 산책을 하면 외롭다. 상점이 모두 문을 닫아서
혼자 영화를 보면 구석에 가서 울고 싶다.
등이 갈라지면서 또 하나의 내가 기어나와
갈라진 등을 두드리며 나를 위로해줄 것 같아서

 

혼자 기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갈 때 집을 지나친다.
더 오랫동안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노인이 되는 법」, 34~35쪽)

 

 

 

고독이라는 감정은 늘 우리를 지배한다. 고독을 극복할 수 있을까. 그늘이 있어도 없는 척 능청스럽게 살 수 있을까. 마음을 정리해도 끝까지 남는 것은 언제나 고독이다. 우울할 때 혼자 있는 것을 못 견뎌 하면서도 끝내 혼자가 되어버릴 때가 있다. ‘혼자 기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갈 때 집을 지나친다/더 오랫동안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라는 구절에서 나는 가슴이 철렁했다. 그렇다. 외롭지 않으면 결코 길을 떠나지 않는다. 시인은 불가항력적인 힘에 끌려 안식처를 지나쳤지만, 결국 고독을 받아들여 맞서 싸우기로 한다.

 

 


아내가 운다.
나는 아내보다 더 처량해져서 우는 아내를 본다.
다음 생엔 돈 많이 벌어올게.
아내가 빠르게 눈물을 닦는다.
나는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다음 생에는 집을 한채 살 수 있을 거야.
아내는 내 얼굴을 빤히 들여다본다.
다음 생에는 힘이 부칠 때.
아프리카에 들러 모래를 한줌 만져보자.
아내는 피식 웃는다.
이번 생에 니가 죽을 수 있을 것 같아.

 

나는 재빨리 아이가 되어 말한다. 배고파.
아내는 밥을 차리고
아이는 내가 되어 대신 반찬 투정을 한다.
순간 나는 아내가 되어
아이를 혼내려 하는데 변신이 잘 안된다.
아이가 벌써 아내가 되어 나를 혼낸다.
억울할 건 하나도 없다.
조금 늦었을 뿐이다.

 

그래도 나는 아내에게 말했다.
다음 생엔 이번 생을 까맣게 잊게 해줄게.
아내는 눈물을 문지른 손등같이 웃으며 말한다.
오늘 급식은 여기까지

 

 

(「다음 생에 할 일들」, 74~75쪽)

 

 


사람이 일상에서 가장 듣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위로다. 그다음이 칭찬이다. 이는 관심과 공감과 이해에서 나온다. 심적 고통의 늪에 빠졌다가도 누군가가 위로와 칭찬의 손길을 내밀면 대부분 그 아픔에서 해방될 수 있다. 내게 어떤 충격적인 일이 일어났을 때, 바로 그 순간 나 아닌 누군가에게 그 일을 말하고 싶어진다. 그러나 그 순간 아무도 없다면? 있어도 내 말과 생각을 믿어주지 않는다면? 상상만 해도 슬퍼진다. 사랑을 받으려면 사랑을 줘야 하는 책임감이 있어야 한다. 사랑을 주기보다 받으려 하기 때문에 고통스럽다. 이때 단절로 인한 고통은 자신이 변해 살 수 있다는 내 안의 ‘경계경보’다. 사랑을 먼저 주고, 곁에 있어 주며, 함께 있는 시간을 많이 갖도록 바뀌어야 한다. 시인은 다음 생에 태어난다는 것을 가정하에 버킷리스트를 만든다. 이름하며 ‘다음 생에서도 행복하게 살 것’. 가족은 시인을 위로한다. 시인은 그런 삶이 자신을 위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사실을 믿는다. 같이 아프고 위로하는 가운데 정은 그 어떤 밧줄보다 튼튼해진다. 그 훈훈함도 산 지 얼마 안 된 따끈따끈한 군고구마 봉지보다 가슴 울린다. 정이 희미해져 가는 세상 속에서 시인은 등 돌린 타자들끼리의 새로운 관계망을 언어로 형성해 보려는 여정에 관심을 가진다. 쓸쓸한 개인들이 힘겹게 친밀성을 획득해가는 과정. 한 달만 지나면 난로보다 사람의 체온이 더 그리워질 것이다. 사람 사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음에도 조그만 관심으로 우리는 하나로 연결되고, 따스함으로 삶이 지탱되는 존재임을 또한 실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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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2015-09-24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헣....이 시집에서 <다음 생에 할 일들>이 참 좋다고 생각했었는데 여기서 또 보게 되네요. 덤덤하고 담담한 시에요, 참.

cyrus 2015-09-24 17:58   좋아요 0 | URL
이 시집 덕분에 안주철이라는 이름을 알게 되었어요. 다음 시집이 기대됩니다. ^^

인디언밥 2015-09-24 14: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닿네요..

나비종 2016-01-04 2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외롭지 않으면 결코 길을 떠나지 않는다.`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이별도 어쩌면 외롭기 때문에 이루어지는 `관계의 떠남`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일상에서 가장 듣고 싶은 말이 위로라면, 가장 필요한 사람은 내 삶을 따스하게 지켜봐주는 관람자일까요? 나를 주인공으로 바라봐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