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동원화랑에서 진행되는 박진형 시인의 신작시집 낭독회에 참석했습니다. 박진형 시인이 펴낸 시집 제목은 《고마 됐다》입니다. ‘고마’는 ‘그 정도까지만’의 방언입니다. ‘고마 됐다’는 ‘그 정도까지만 해라’ 또는 ‘그만 됐다’의 의미가 되겠습니다.

 

 

 

 

 

 

 

 

 

 

 

 

 

 

 

* 박진형 《고마 됐다》 (만인사, 2016년)

 

 

 

이 시집은 참말로 독특합니다. 시인은 자신의 고향인 경주에서 사용된 ‘신라 입말’을 발굴하여 시어로 만들어냈습니다. 신라 입말처럼 오래된 말일수록 ‘낮은 말’이 됩니다. ‘낮은 말’의 반대는 ‘높은 말’입니다. ‘높은 말’은 바른말, 고운 말 그리고 표준어인 거죠. 신라가 이 한반도를 지배했을 때까지만 해도 표준어는 신라 입말이었습니다. 나라와 정권이 바뀌면서 신라 입말의 존재는 점점 잊혔고, 연륜이 깊은 소수의 경주 토박이들만 아는 옛말이 되었습니다. 《고마 됐다》는 눈으로 읽는 시집이 아닙니다. ‘신라 입말’이 들어있는 시이기 때문에 입으로 소리를 내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한 신라 입말의 매력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저는 오늘 《고마 됐다》에 수록된 시를 인용하지 않았습니다. 입말로 이루어진 시를 여기에 인용하면, 눈으로 봐야 하는 ‘글말’이 되기 때문입니다.

 

낭독회가 열렸던 장소는 동원화랑입니다. 동원화랑은 1982년에 문을 연, 대구에서 가장 오래된 화랑입니다. 이곳에 대구 출신 화가들의 작품이 걸려있습니다. 저는 어제 알았는데, 연예인 하정우, 구혜선, 조영남 씨의 그림 전시가 동원화랑에서 열리기도 했습니다.

 

시 낭독회가 시작하기 20분 전에 장소에 일찍 도착했습니다. 이곳에서 ‘yrureka01님(유레카)’을 만나려고 했습니다. 여태까지 화랑을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어서 혼자 들어가기가 뻘쭘했습니다. 건물 안에 들어가지 않고, 밖에서 유레카님이 오기를 기다렸어요. 유레카님이 도착하고, 같이 화랑 안에 들어갔습니다. 시 낭독회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앉을 자리가 없어서 시 낭독회가 끝날 때까지 계속 서 있었습니다. 힘들진 않았습니다. 저는 아직 젊으니까요! (찡긋) 오히려 서 있는 게 좋았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서 있었던 곳 바로 앞에 다과상이 차려져 있었으니까요. (개이득) 저는 시를 읽는 척하면서 다과상으로 차려진 쿠키, 육포, 과일 등을 야금야금 먹었습니다. 오래 서 있는 건 참을 수 있었지만, 배고픔은 참지 못했거든요. 음료는 물과 주스 그리고 포도주였습니다. 이 셋 중에 여러분은 뭘 마실 겁니까? 당연히 포도주죠! 포도주 반 정도를 비우고 싶었지만, 참았습니다. 한 컵만 마셨어요. 화랑에 일하는 직원으로 추정되는 분이 제 근처에 서 있어서 술을 홀짝 마실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다과상에 눈독 들이고 있었을 때, 유레카님은 시 낭독회의 생생한 현장을 사진으로 담고 있었습니다.

 

원래 시 낭독회가 참석하기 전에 《고마 됐다》를 읽어보려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대구에 세워진 모든 공공도서관 중에 이 시집을 소장한 곳이 딱 한 군데 밖에 없었어요. 제가 사는 동네에 가까운 도서관이 ‘대구서부도서관’입니다. 이곳에 대구 · 경북 출신의 문인들의 책들을 따로 보관하고, 문인들의 유품까지 전시한 ‘향토문학관’이라는 장소가 있습니다. 그런데 서부도서관에는 《고마 됐다》가 없었습니다. 시집이 잘 안 팔리는 것도 서러운데, 공공도서관마저 홀대합니다.

 

《고마 됐다》 한 부 챙겨왔습니다. 무료로 받은 셈이죠. 이래도 되나 싶었어요. 하긴 안 팔리는 시집을 창고에 썩혀둘 바에 정말 시와 문학을 사랑하는 시인의 지인들에게 나눠주는 것이 모든 이들을 위한 좋은 일입니다. 시인은 돈 몇푼 더 벌려고 《고마 됐다》를 쓴 것이 아닙니다. 시인은 신라 입말과 고향 사람들을 기억하고 보존하기 위해서 시의 형태로 기록했습니다. 역사가들도 하지 않는 일입니다. 《고마 됐다》는 신라 입말을 빌어 기록한 ‘민중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되돌아보면 우리는 말과 글을 통해 세상을 만났고, 사람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고, 세상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기도 했어요, 태초의 입말이 단순히 과거를 알기 위한 증거이기 때문에 소중한 것이 아닙니다. 지금의 ‘나’와 ‘우리’를 이루는 기본적인 말이기 때문에 소중합니다. 입말은 글말의 씨앗입니다. 입말은 사람과 삶에서 떨어질 수 없습니다. 즉 입말이 곧 사람이고 말하고 듣는 것이 곧 사람의 삶입니다. 이런 까닭에 입말을 이해할 수 있을 때야 우리가 사용하는 글말의 세계도 튼튼히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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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프리쿠키 2017-02-25 1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레카님과 두분의 우정이 부럽네요.^^

cyrus 2017-02-25 14:20   좋아요 1 | URL
북프리쿠키님도 대구에 사시는 걸로 압니다. 다음에 유레카님을 뵙게 되면 그날 북프리쿠키님도 뵙으면 합니다. ^^

페크pek0501 2017-02-25 1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 낭독회, 예전에 다녔던 기억이 나네요. 제가 간 곳은 주로 찻집이었는데...
다과상이 있는 시 낭독회의 분위기가 갑자기 그리워지네요.
좋은 소식 주셨습니다.

cyrus 2017-02-25 14:23   좋아요 0 | URL
예전에 제가 가본 시 낭독회는 테이블에 사람들 쭉 모여 앉아서 커피를 마시면서 시를 읽고, 자유롭게 수다를 떨었던 분위기였습니다. 저도 이런 분위기의 시 낭독회를 좋아해요. ^^

표맥(漂麥) 2017-02-25 1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마 됐다... 고마해라~ 이 말 저도 많이 쓰는디... ^^

cyrus 2017-02-25 14:25   좋아요 0 | URL
영화 <친구>의 명대사 ‘고마 해라, 많이 묵었다 아니가’ 때문에 많이 알려졌을 겁니다. ^^

꼬마요정 2017-02-25 1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마 해라... 많이 쓰는 말이지만 점점 안 쓰게 되는 말이기도 하네요... 시 낭독회.. 한 번도 안 가봤는데 꼭 가보고 싶습니다~^^

cyrus 2017-02-25 22:35   좋아요 0 | URL
생각해보니 진짜 ‘고마 해라‘ 쓰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 같아요. 영화 <친구>를 본 세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많이 쓸 겁니다. ^^

yureka01 2017-02-25 15: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즐겁고 재미난 시간이었어요.ㅎㅎㅎ

고마 됐다...이걸 더 줄이면
마,,됐다.,,^^.

cyrus 2017-02-25 22:36   좋아요 0 | URL
역시 수다를 떨면서 시간을 보내는 일이 제일 재미있습니다. ㅎㅎㅎ

서니데이 2017-02-25 1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레카님과 함께 다녀오셨군요.
cyrus님 좋은 주말 보내세요.^^

cyrus 2017-02-25 22:36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

달걀부인 2017-02-25 1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이득!!! ㅋㅋㅋㅋ

cyrus 2017-02-25 22:37   좋아요 0 | URL
저녁 식사를 하지 않은 공복 상태라서 눈앞에 있는 다과상이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ㅎㅎㅎ

붕붕툐툐 2017-02-25 2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래 서 있는 건 참을 수 있지만 배고픈 건 참지 못한다는 말에 완전 공감하며, ‘낭독회‘에 꼭 가보고 싶네요~ 이런 정보는 어디서 얻으시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cyrus 2017-02-25 22:42   좋아요 0 | URL
yrureka01님이 시인님을 알고 지내셔서 시인들 모임 소식을 많이 접합니다. 유레카님이 서재에 모임 일정을 알려주십니다. 유레카님의 서재를 즐겨찾기 하면 됩니다. ^^

stella.K 2017-02-28 1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레카님을 뵈었구나. 어떻든? 캐리커처랑 똑같이 생기셨든?
난 왠지 유레카님 착하게 생긴 이웃집 아저씨일 것 같은데 말야.ㅋ

근데 포도주와 육포. 왠지 묘한 조합일 것 같은데...
괜히 먹고 싶네.ㅠ

cyrus 2017-03-02 13:50   좋아요 1 | URL
정말 ‘착하게 생긴 이웃집 아저씨‘입니다. 캐리커처와 비슷합니다. ㅎㅎㅎ
 
밤의 화학식 문예중앙시선 45
성윤석 지음 / 문예중앙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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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성서》 창세기 3장 19절)

 

 

 

어떤 것은 빨리 썩고 어떤 것은 느리게 분해된다. 물렁물렁한 것은 빨리 찢기고, 딱딱한 것은 천천히 마모된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언젠가는 사라진다.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은 썩어야 생기는 원소를 먹고 산다. 분자로 이루어진 먼지가 더욱 나누어져야 그곳에서 생명의 필수영양원소가 나온다. 썩는 것을 학술적인 용어로 분해라 한다. 형체가 있는 것에서 눈으로 식별하기 어려운 아주 작은 존재로 부서지는 과정이다. 생물체의 모든 성분은 빠짐없이 흙 속에 들어 있는 성분과 같다. 모든 생물체는 화학적으로 성분을 분석하면 흙이다. 따라서 생명을 잃은 존재는 다시 흙으로 돌아간다.

 

성윤석 시인의 시집 《밤의 화학식》의 ‘화학식’은 우리가 학창시절 과학 수업 시간에 배웠을 그 ‘화학식’이 아니다. 시인은 화학을 전공하지 않았다. 그는 원소에 의해 생명이 생성되어 소멸하는 자연의 순리를 화학적 원리로 접근하여 시적 언어로 표현했다. 시적 대상으로서의 원소를 경험적 현실로 인식하고, 나름의 상상력으로 구성된 ‘자연의 순리’를 독자들에게 펼쳐 보여 주고 있다.

 

 

 

 

한 호흡

 

이즈음의, 이즈음의 한 호흡

 

사는 것은 죽어가는 것

 

길고 긴 목포행 완행열차처럼 생의 과정들을 죽 늘어놓고

 

빛나는 것은 소멸한 것, 소멸해가는 것

 

 

(『산소 O』 중에서, 34~35쪽)

 

 

 

 

산소는 인간이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원소다. 호흡을 통해 몸 안에 유입된 산소는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만들 때 사용된다. 하지만 산소가 항상 우리 몸에 이로운 것은 아니다. 산소도 동전처럼 양면성이 있다. 신체의 대사과정에서 불안정한 상태로 변한 ‘활성산소’는 인체에 해를 끼친다. 우리 세포막과 세포 속 유전자를 공격해 몸을 늙고 병들게 한다. 활성산소는 대사과정에서 끊임없이 생성되고 소멸한다. 다행히 우리 몸은 스스로 활성산소의 양을 조절할 능력이 있다. 그렇지만, 소멸의 운명을 피할 수 없다. 자연을 유기체로 보는 동양 전통의 자연관에 따르면 본래 자연의 모든 것은 상호작용을 하면서 살아간다. 즉 인간은 산소를 소비하고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고 배설물을 쏟아내며, 죽어서 육신을 땅에 되돌려줌으로써 식물의 번성에도 기여한다. 우리가 죽어서 마지막으로 뱉어낸 ‘한 호흡’은 또 다른 누군가의 ‘생의 과정’ 일부가 된다,

 

 

얘야, 실제로 무서운 건 우리가 낱낱의 알갱이로 떨어져

서로의 입자들을 다 잃고 난 뒤겠지.

그리고 추운 세상이 올 거야. 넌 혼자가 될 거야.

네가 아닌 사물들이 널 들여다보겠지.

사물들의 뒤편엔 이웃들의 사유들이 먼지처럼 쌓일 거야.

 

(『먼지의 화학식 2』 중에서, 66~67쪽)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사물들은 감정도 없고, 자기표현 방법도 없으니 무생물이다. 그러나 생각을 뒤집어서 사물들에게 감정을 부여한다면, 우리의 존재가 무엇인지 생각해볼 수 있다. 궁극적으로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시도이다. 시인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원소인 주석을 하나의 실체로 인식한다. 그의 ‘우스꽝스러운 질문’은 진지하다. 시인은 눈에도 보이지 않는 조그마한 주석의 실체를 탐구하며 생존 욕구를 가지고 환경에 반응하며 변화해 가는 과정 전체를 관찰한다.

 

 원자번호 50번. 이 지방에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극한의 추위란, 여기에 없을 테니까. 주석이 극한으로 내려가는 기온 속에서 회색 가루로 변할 동안 사람들도 얼어 부서져버릴 테니까. 스스로 가루가 되어버렸던 사람들을 본다. 눈에 뭔가 자꾸 보였던 것. 눈에 뭔가가 자꾸 보일 때, 시간은 스스로를 묶고 사람이 어디로든 되돌아올 때를 기다린다. 주석 같은 사람들을 안다. 빛나는 술을 담아낼 줄 알지만, 때가 오면, 희미한 가루로 남던 사람들. 당신은 어디에서 어떤 상태로 있는가? 당신을 묻는 내가, 너무 진지한가. 아니면 우스꽝스러운가. 세계가 침묵하는 동안 나는 가루가 되어버릴 것 같다.

 

(『주석 Sn』 39쪽)

 

 

사람은 죽어서 먼지가 된다는 말이 있다. 인간을 구성하는 물질은 우주공간에 흩어진 원소들로부터 유래되었고, 생명체가 죽으면 그 구성 물질은 분해되어 먼지가 된다. 그런데 우리의 뇌세포에 의식이 있어서 당연한 운명을 두려워한다. 아무리 많은 연구가 있어도 인간 스스로 소멸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에 대해 아무런 이의제기를 할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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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22 14: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2-22 14:22   좋아요 1 | URL
원효 대사가 해골 물을 마셨던 상황과 비슷하군요. ㅎㅎㅎ
이번 주 금요일에 일찍 퇴근할 수 있습니다. 그 날 일찍 가겠습니다. ^^;;

북프리쿠키 2017-02-22 14: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만물의 근원은 원자라고 말한
철학자 데모크리토스와도 연관이 있겠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cyrus 2017-02-22 17:40   좋아요 1 | URL
제가 읽은 시집의 100자평으로 잘 어울리는 명언입니다. ^^

양철나무꾼 2017-02-22 15: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리뷰의 백 뮤직은 이윤수의 ‘먼지가 되어‘로 하겠습니다.
김광석도 있고 로이킴도 있는데, 이윤수를 안다고 자랑하고 싶은 이 마음이라니...ㅋ~.
연식이 들통나 버릴텐데도 완전 우쭐합니다.
님께도 강.권.합니다~ㅅ!

cyrus 2017-02-22 17:41   좋아요 0 | URL
저는 김광석 버전을 좋아합니다. 이윤수 버전을 안 들어봤어요. 유튜브 영상 올리려고 했는데, 귀찮아서 안 했어요.. ^^;;

캐모마일 2017-02-23 07:45   좋아요 0 | URL
이윤수는 처음 들어본 가수인데, 한번 그 분 버전의 먼지가 되어를 들어봐야겠습니다.

캐모마일 2017-02-23 0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독특한 시집이네요. ㅎㅎㅎㅎ 마치 화학시간에 인문학과 감성이 풍부한 문과 학생이 하나하나 원소와 개념을 배우면서 시로 승화시킨 거 같아요. 말씀처럼 상상과 받아들임이 결국 인간이란 무엇인가로 귀결되는 사색의 여정이요. 이런 말씀 드리면 시인에게 누가 될런지요.

cyrus 2017-02-23 18:21   좋아요 1 | URL
화학에 대한 지식 없이도 읽을 수 있어요. 그런데 몇 편의 시들은 난해했어요. 저는 제가 이해하기 쉽고, 좋은 시가 많다고 느껴지면, 그 시집의 평점을 높게 줍니다. ^^
 
못다 한 사랑이 너무 많아서 문학과지성 시인선 492
황인숙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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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시선은 솔직하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에는 가볍게 지나치기 어려운 특별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독자는 시인의 눈을 통해 때 묻은 상처를 치유하고 인간이 추구하는 진정한 행복의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 황인숙 시인의 시집 《못다 한 사랑이 너무 많아서》는 시인의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느낀 진실 된 작은 이야기들이다. 시인은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랑임을 마음의 깊은 눈을 통해 그 숭고한 뜻을 던져주고 있다.

 

 

 

하얗게

하얗게

눈이 시리게

심장이 시리게

하얗게

 

네 밥그릇처럼 내 머릿속

 

아, 잔인한, 돌이킬 수 없는 하양!

외로운 하양, 고통스런 하양,

불가항력의 하양을 들여다보며

 

미안하고, 미안하고,

그립고 또 그립고

 

(『못다 한 사랑이 너무 많아서』, 55쪽)

 

 

 

톨스토이의 짧은 소설 <세 가지 질문>은 제목 그대로 세 가지 질문을 던지고 있다. 가장 중요한 때는 언제일까, 가장 중요한 사람은 누구일까,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일까. 소설 끝에 이 세 가지 질문에 대한 결론이 나오는데, 이 소설을 안 본 독자를 위해서 결론을 언급하지 않겠다. 이 소설을 읽지 않아도 세 가지 질문의 답이 무엇인지 짐작하리라.

 

늘 그렇지는 못하더라도 우리는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 ‘지금 이 순간’을 즐기면서 세상을 살고 싶어 한다. 실은 누구나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아무리 세상살이가 팍팍하다는 한탄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도 비록 잠깐이지만 언뜻언뜻 행복에 겨운 순간들을 경험하고 있다. 그렇지만 살다 보면 ‘행복한 지금 이 순간’은 ‘행복했던 시절’로 달라진다. 매일 수 시간을 행복했던 순간들을 기억하는 데 쓰고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세월의 변화에 따라 머리카락이 점점 하얗게 변하는 것처럼 머릿속도 점점 하얗게 된다. 머릿속에 있었던 다양하고도 알록달록한 추억들은 시간이라는 흐름에 떠밀려 씻겨 내려간다. 좋은 것들이 사라지기 전에 우리는 살아오면서 행복했던 순간들을 가만히 되짚어본다. 그때의 느낌을 고스란히 지금 이 순간으로 가져와 다시 한번 그 순간을 그리워하면서 간접적으로 경험한다. 그때 무엇이 내 마음을 행복하게 만들었던가. 생각건대, 우리를 진정으로 행복하게 만드는 감정이 ‘사랑’이다. ‘사랑’을 계속 마음속에 채워 넣으면서 살아도, 잠깐 뒤돌아보면 허전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우리는 허전한 마음을 채우기 위해서 단맛 쓴맛 보면서까지 사랑을 하고 싶은가 보다.

 

 

오늘 하루는,

나랑 약속을 잡아놓고도

또 친구를 만나러 가네

그렇게 됐으니 오늘 밤에는 꼭,

미룬 약속을

또 못 지키고 다른 친구를 만나러 가네

아, 정말!

맨날맨날맨날!

나한텐 언제 시간 내줄 거야?

우리가 진짜 ‘자기 사이’ 맞기나 하니?

왜 그런 쓸데없는 소리를 해?

일찍 돌아올게

가책을 누르고 큰소리치며

친구를 만나러 가네

 

(『이렇게 가는 세월』, 145쪽)

 

 

 

『이렇게 가는 세월』은 아주 평범한 내용의 시다. 그렇지만 독자에게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스스로 물어보게 한다. 이 시를 읽으면서 나는 살면서 정말 소중한 것에 대해 소홀하지는 않았는지 뒤돌아볼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지나가는 세월은 우리를 위해 기다려 주지 않는다. 언제인가 이 모든 소중한 것들과 헤어진다. 그 소중한 것은 무척 다양한데 ‘나’와 가족 간의 화목한 관계도 되고, ‘나’와 친구 간의 우정일 수 있다. 이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곤란하다. 둘 다 소중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라도 사라지면 낙담한다. 와야 할 것이 안 오는 상황에 안타까워하고, 또 머물러야 할 것들이 떠나는 상황에 슬퍼하면서 우리는 결별의 아픔에서 잘 헤어 나오지 못한다. 그래서 어떤 일이 닥쳐오면 눈앞의 어떤 즐거움보다는 더 깊은 곳에 있는 참된 부분에 더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

 

 

 

이상하다

거품이 일지 않는다

 

어제는 팔팔했는데

괜히 기진맥진한 오늘의 나

거품이, 거품이 일지 않는다

 

쓰지 않아도 저절로

소진돼버리는

생의 비누의 거품

 

(『묽어지는 나』, 35쪽)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생의 거품이 천천히 소진돼서 편안히 눈을 감으면 좋겠지만, 그게 내 원하는 대로 할 수 없다. 단 한 번의 삶이기에 인간은 죽음에 대한 공포를 가질 수밖에 없다. 세상을 더 오래 살지 못하고 죽어야 한다는 것에 대한 괴로움, 사랑하는 사람들을 남겨둔 채 혼자 떠나야 한다는 아쉬움보다 더 큰 고통은 없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불안한 감정을 삶의 활력소로 승화시킬 줄 아는 자세이다. 생의 거품이 더 일어나도록 사는 것이 쉽지 않지만, 적어도 사그라지지 않도록 살아가야 한다. ‘혼자’보다는 ‘함께’ 살 때 좀 더 수월하게 생의 거품을 만들 수 있다. 아무리 혼자 사는 것이 좋다고 해도 함께 사는 사람에 비해 생의 거품이 빨리 소진된다. 슬프게도 이 세상에 생의 거품뿐만 아니라 사랑마저 식어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평범한 사랑은 가슴을 따뜻하게 만든다. 평범한 사람들 속에서 행복의 온기를 찾아낼 수 있는 게 사랑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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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7-02-10 18: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간이 조금 더 길다면, 좋을텐데, 아쉽네요.^^
cyrus님, 즐거운 금요일 저녁 되세요.^^

cyrus 2017-02-11 10:30   좋아요 1 | URL
시간이 참 빨리 흘러 갑니다. 벌써 오늘이 주말입니다. 정월 대보름 날인데 오곡밥 드셨습니까? 밥보다는 귀밝이술이 더 좋군요. ㅎㅎㅎ 주말 잘 보내세요. ^^

2017-02-10 22: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2-11 10:34   좋아요 0 | URL
현실을 직시하면서 사는 것도 좋지만, 너무 어둡고 힘든 것만 보면 좋은 일에 대한 기억만 찾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가 지나쳐버린 좋은 일들이 있을 겁니다. 시간이 지나고나서야 그 때의 소중함을 깨닫습니다.

transient-guest 2017-02-11 07: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간은 짧은데, 진솔한 이야기를 나눌 사람은 그리 많지 않네요.ㅎ

cyrus 2017-02-11 10:35   좋아요 0 | URL
저도 요즘 그렇게 느낍니다. 슬슬 관계를 유지하기가 버거워집니다. 잡생각도 많아지고요.. ^^;;

표맥(漂麥) 2017-02-11 1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텅~ 터엉~~~ 주말을 그렇게 보냅니다...^^

cyrus 2017-02-12 00:12   좋아요 0 | URL
주말에는 집에서만 쭉 있고 싶어도 가끔 밖에서 사람 만나서 놀고 싶기도 해요.. ^^;;

jeje 2017-02-13 22: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세월! 우리를 좀 기다려줄수도 있는거 아닙니까? 기다려주세요! 떼쓰고 싶은 밤입니다.

cyrus 2017-02-14 12:04   좋아요 0 | URL
가는 세월을 멱살 잡고 싶은 심정입니다. ㅎㅎㅎ

나비종 2017-02-16 04: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바닷가에서 백사장을 바라보다보면 평범하게 펼쳐지던 모래들이 어느 순간 보석 가루처럼 반짝일 때가 있어요. 바라보는 각도가 절묘하게 맞았을 때죠.
평범 속에서 발견하는 행복도, 특별함을 느끼게 하는 사랑도 결국 그 대상을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생각해봅니다. 시인의 시선을 통해 잔잔하게 전해져오는 감동처럼요.

cyrus 2017-02-16 11:49   좋아요 0 | URL
역시 좋은 말씀으로 댓글을 남기시는 모습이 여전하십니다. ^^
 
유언의 노래 민음사 세계시인선 리뉴얼판 4
프랑수아 비용 지음, 김준현 옮김 / 민음사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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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정 · 첨언합니다 (2017년 2월 10일 작성)

 

제가 2월 7일, 그리고 오늘 민음사 세계시인선 리뉴얼판 《유언의 노래》 13연 8행시에 문제를 제기하는 글을 썼습니다. 오늘 오전에 ***님(의 댓글이 ‘비밀’로 되어 있어서 실제 닉네임을 거론하지 않았습니다)께서 제 의견에 대한 이견을 내놓았습니다. ***님의 말씀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제가 참고했던 ‘프로젝트 구텐베르크’ 원문이 잘못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 원문은 1860년대에 나온 것이고, 그 후로 학자들의 연구 결과가 반영된 시의 순서와 머릿수가 체계적으로 정립되었습니다. 《유언시》의 송면 교수와 《유언의 노래》의 김준현 교수는 새롭게 정리된 원본 시집을 참고해서 번역했을 겁니다. ***님이 2012년에 나온 불영 대역본 시집의 시의 순서와 머릿수가 두 권의 번역본과 비슷하다고 했습니다. ‘프로젝트 구텐베르크’는 과거 자료를 디지털화해서 옮겼기 때문에 최근의 연구 성과를 반영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제가 ‘프로젝트 구텐베르크’ 원문을 가지고 두 권의 번역본에 대해 문제점이 있다고 주장한 의견이 잘못되었음을 밝힙니다. 잘못 전달될 소지가 있는 내용은 '취소선'으로 그었습니다. 좋은 의견을 주신 ***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프랑수아 비용(François Villon)의 《유언시》(문학과지성사, 1980년)와 《유언의 노래》를 같이 읽었다. 전자의 책은 3,000행이 넘는 비용의 시를 모두 번역한 전집 형태의 완역본이고, 후자의 책은 선집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두 책의 출간 연도의 차이가 무려 36년이나 된다. 그만큼 번역 어투에도 크게 차이가 난다. 당연히 《유언의 노래》가 읽기 편하다. 《유언시》는 한문이 조금 섞여 있고, 이제는 촌스러운 티가 나는 80년대 외래어 표기법의 흔적이 있다.

 

무모하게 프랑스어 원전 텍스트까지 참고했다. 텍스트는 프로젝트 구텐베르크(Project Gutenberg)에 있는 <Oeuvres complètes de François Villon>(프랑수아 비용 전집)이다.

 

※ 링크 : http://www.gutenberg.org/files/12246/12246-h/12246-h.htm

 

 

솔직히 말하면, 나는 외국어 공부에 담 쌓은 지 오래 되었다. 당연히 프랑스어 기초조차 배운 적이 없다. 그래도 원문을 참고하는 이유가 있다. 프랑스어를 한국어로 번역된 텍스트만 가지고 번역이 좋다 나쁘다고 비교 · 평가하는 건 번역에서 중요한 논의가 아니기 때문이다. 번역문이 최대한 원문과 가깝도록 옮긴 건지 따지려면 비용의 시에 관심이 많은 불문학 전공자가 해야 하는 것이 맞다. 나는 번역자가 문장을 어떻게 이해했고 해석했는지 알고 싶어서 원문을 참고했다.

 

삼중(三重)의 독서를 하느라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원문을 참고하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두 번역본에 공통된 문제점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이 문제점이 무엇인지 설명하기 전에 원문과 이를 번역한 문장들을 소개해본다.

 

 

 

* 《유언시》 53쪽

 

그리고 메트르 로베르 발리에게는

산인지 계곡인지 알 수 없는

고등법원의 말단 서기이기에

목로주점 ‘장화’에 맡겨 둔

나의 긴 바지를 남겨 준다.

우선 그에게 내어 주기 바라거니와

그의 애인 쟌 드 밀리에르에게 입힌다면

여간 잘 어울릴 것이 아니로다.

 

* 《유언의 노래》 16쪽 (『산도 골짜기도 분간하지 못하는』)

 

또 로베르 발레,

산도 골짜기도 분간하지 못하는

고등법원의 불쌍한 서기에게

내 주된 유증물을 정하노니,

선술집 ‘장딴지’에 담보물로 잡힌

짧은 반바지를,

그의 연인인 잔 드 밀리에르에게

매우 걸맞은 머리쓰개가 되도록

그에게 즉시 주기 바란다.

 

 

원문에는 지금은 거의 사용하지 않아 사라진 고어(古語)가 많다. 우리말로 번역된 두 개의 문장을 비교해보면 문맥상의 차이가 확연히 보이지만, 이를 분석하는 일은 불문학 전공자가 하는 게 맞다. 내가 문제 삼고 싶은 건 따로 있다. 두 번역본은 『산도 골짜기도 분간하지 못하는』 8행시 구절 전체를 ‘13연(XIII) 97~104행’으로 소개했다. 그런데 이 8행시 구절은 ‘13연’이 아니라 ‘14연(XIV) 105~112행’이다. 《유언시》를 번역한 故 송면 교수가 13연으로 알려진 8행시를 실수로 빠뜨리고, 14연의 8행시를 13연으로 착각한 것일 수 있고, 아니면 송 교수가 번역하기 위해 참고한 저본에 오류가 있을 수도 있다. 후자의 경우라고 해도, 번역자의 책임을 완전히 면하기 어렵다. 원래 13연의 8행시가 누락되니까 15연의 8행시가 엉뚱하게 ‘14연’으로 표기되어 있고, 뒤에 나오게 될 구절의 연 표시마저 다 틀렸다. 19연의 8행시는 ‘18연’으로 되어 있고, 송 교수는 19연에 원문을 알 수 없는 8행시 구절을 옮겼다. 프랑스어를 잘 몰라서 아직까지 《유언시》의 19연으로 소개된 8행시 구절의 원문을 찾아내지 못했다.

 

 

또 하나, 야경대장(夜警隊長)에게는

투구를 주기로 정해 두고

가게의 대를 어루만지며 야경을 도는

사보(徙步)의 야경 대원들에게는

훔친 멋있는 물건

피에르 오 레 가(街)의 초롱을 남겨 준다.

그리하여 만약 그들이 나를 샤틀레 감옥으로 연행하면

나는 세 개의 백합 무늬의 방을 차지하리로다.

 

(《유언시》 56쪽, 번역자 송면 교수가 ‘19연’으로 잘못 소개한 8행시)

 

 

《유언의 노래》의 번역자 김준현 교수는 비용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고려대 불문학과 부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그런데 그마저도 30여 년 전에 송 교수의 실수를 재현했다. 김 교수도 《유언시》의 존재를 모를 리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비용의 시를 번역했을 때 《유언시》를 참고했을 수도 있다. 송 교수의 번역본을 참고했든 안 했든 간에 13연의 8행시가 빠뜨린 채, 14연의 8행시를 13연으로 소개한 것은 중대한 오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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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블로 네루다의 처녀시집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 제목을 내 식대로 해석하자면 인생이란 많은 사랑의 시와 오직 하나의 큰 절망의 노래로 표현할 수 있다. 『절망의 노래』는 절망 속에 빠져 침잠하지 않고 무거운 인생 위로 가볍게 띄워 올린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 천근 무게의 절망을 띄워 올리기 위해 인간은 얼마나 강력한 희망의 힘을 발휘해야 할까. 네루다는 인간이 역경을 극복하는 과정을 ‘우리가 녹아들고 절망한 / 희망과 힘의 미친 결합’이라고 썼다. 육체적인 큰 고통에 비하면 사소하다 할 만한 것들, 이를테면 사회생활에서 빚어지는 온갖 오해와 갈등들, 그리고 그것들이 자기 비하의 감정과 뒤범벅이 되었을 때 삶은 내던져버리고 싶을 정도로 느껴진다. 그러나 육체적 고통 속에서도 정신적인 건강함을 유지하며 희망을 생각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리면 절망은 잠깐일 뿐이다.

 

 

 

 

 

 

《시, 희망을 노래하다》는 삶의 고통이나 위기를 늘 행복으로 전환하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는데 뜻하지 않게 찾아온 편지처럼 시인들의 시는 세상살이에 시달리는 독자들에게 안도감과 편안함을 느끼게 한다. 일상과 평범함 속에서 느끼는 작은 즐거움 같은 것을 준다. 이 시집을 통해 우리들의 누추한 삶 또한 삶의 아름다움임을 깨닫게 되는 것은 시를 읽는 우리 독자들의 즐거움이자 기쁨이다.

 

 

 

 

 

 

 

 

 

 

 

 

 

 

 

 

 

새벽에 창을 사납게 두드리던 비도 그치고

이른 아침, 햇살이 미친 듯 뛰어내린다

온몸이 다 젖은 회화나무가 나를 내려다본다

물끄러미 서서 조금씩 몸을 흔든다

간밤의 어둠과 바람 소리는 제 몸에 다 쟁였는지

언제 무슨 일이 있기라도 했느냐는 듯이

잎사귀에 맺힌 물방울들을 떨쳐 낸다

내 마음보다 훨씬 먼저 화답이라도 하듯이

햇살이 따스하게 그 온몸을 감싸 안는다

나도 저 의젓한 회화나무처럼

언제 무슨 일이 있어도 제자리에 서 있고 싶다

비바람이 아무리 흔들어 대도, 눈보라쳐도

모든 어둠과 그림자를 안으로 쟁이며

오직 제자리에서 환한 아침을 맞고 싶다

 

(이태수 『환한 아침』, 14쪽)

 

 

삶이 내던져진 채로 바쁘게 살다 보면, 살아가는 나날의 의미 같은 것을 물어볼 틈이 없다. 여유가 없다고 말하지만 풍요로운 삶에 대한 욕망과 안타까움이 교차하는 것을 보면 시간이 없다고 마냥 엄살만 떨 일도 아니다. 오롯이 나만의 공간, 나만의 시간이 없다는 것이 하루를 맞아서 그냥 흘려보내는 것에 대한 합당한 이유일 수는 없다. 무릇 어떤 것에나 비교에는 다양한 층위가 있지만, 어떤 삶이 더 낫고 잘 사는 삶인지 딱 잘라 말하기는 어렵다. 시인에게 삶의 아름다움이란 예술에 있지 않다. 사소한 일상, 익숙한 자연 등 흔한 것들에서 건져 올린 그 무엇이다. 시인은 세상의 탁함에도 찌푸리지만은 않는다. 맑은 언어로 걸러내서 희망의 증거를 찾으려 한다. 그것이 바로 ‘제자리에서 맞이한 환한 아침’이다. 시인이 맞은 아침은 세상과 쉽게 통정(通情)하지 않겠다는 고고한 결의로 읽힌다.

 

 

모처럼 저녁놀을 바라보며 퇴근했다

저녁밥은 산나물에 고추장 된장 넣고 비벼먹었다

뉴스 보며 흥분하고 연속극 보면서 또 웃었다

무사히 하루가 지났건만 보람될 만한 일이 없다

 

그저 별 것도 아닌 하찮은 존재라고 자책하면서도

남들처럼 세상을 탓해보지만

늘 그 자리에서 맴돌다 만다

 

세상살이 역시 별 것 아니라고

남들도 다 만만하게 보는 것이라고

자신 있게 살라고 하시던 어머니 말씀 생각났다

 

사실 별 것도 아닌 것이 별 것도 아닌 곳에서

별 것처럼 살려고 바둥거리니 너무 초라해진다

한심한 생각에 눈감고 잠 청하려니

별의별 생각들 다 왔다 갔다 한다

그래도 오늘 하루 우리 가족

건강하게 잘 먹고 무탈한 모습들 보니

그저 고맙고 다행스러워

행복의 미소가 눈언저리까지 퍼진다

 

(공영구 『오늘 하루』, 122쪽)

 

 

이 시에서 언급된 행복은 그리 요란하지 않다. 가족들이 건강하게 지내는 사소한 일상 자체가 행복이다. 새해에 의례적으로 나누던 덕담은 ‘복 많이 받으세요’다. ‘복’이라는 말에는 재물 복, 자식 복, 부인 복, 남편 복 등 많은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이 중에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것이 제물 복이다. 물질적 풍요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재물은 쉽게 들어오지 않는다. 자신의 벌이로 자신이 풍요로운 삶을 누리지 못한다고 생각할 때 상대적 상실감은 매우 깊어진다. 돈이나 명예는 자신이 추구하는 삶의 참된 의미를 발견함으로써 부수적으로 얻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행복이나 쾌락을 추구할 필요가 없으며, 그것들은 자동으로 무의식적으로 따라온다. 삶을 제대로 바라보기만 한다면 덜 가지고 덜 욕망해도 자유롭고 행복할 수 있다.

 

희망이 있는 사람은 살아있는 사람이며 내일이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절망에 빠진 사람은 살아있어도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비록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생의 위기,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생의 고통을 당했더라도 내게 있는 희망을 찾을 수 있다면 그 인생은 언제든지 새롭게 일어날 수 있다. 자기 자신에게, 가족에게, 이웃에게 절망한 순간 이 삶의 끝에 있는 희망을 생각해보자. 견뎌야 할 삶이 남아 있다는 것은 진정한 복이다.

 

 

 

※ 정경진의 『꽃자리 한때처럼』 9행(34쪽)에 ‘달아나는 베꼽’이라는 표현이 있다. ‘배꼽’의 오자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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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7-01-14 11: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희망이 오늘을 살게 하니까요...지금 죽지 않고 살아 있는 사람들의 이유이기도 하겠지요.^^..

cyrus 2017-01-14 16:06   좋아요 1 | URL
희망이 무조건 내 자신의 마음과 삶에서 우러나오는 것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영향을 받으면서 생깁니다. 그래서 희망을 쉽게 포기해선 안 되고, 그 희망을 꿈꾸면서 살아야 합니다. ^^

프레이야 2017-01-14 11: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늘 하루, 시 내용이 와닿네요. 새해 들어오늘따라. 새해 좋은 희망의 기운 잃지 않기를 바랍니다. 모두.

cyrus 2017-01-14 16:08   좋아요 0 | URL
몇 분을 제외하고는 알라딘 서재에서 알고 지내는 분들과 일면이 없지만, 다들 모두 행복하고, 잘 살고 지냈으면 좋겠습니다. ^^

dellarosa 2017-01-14 12: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별의별 생각들...... 다들 그런것 같아서 힘이됩니다 ^^;

cyrus 2017-01-14 16:11   좋아요 0 | URL
저도 별의별 생각 많습니다. 결혼은 해야 되나, 집은 구할 수 있을까 등 고민이 많습니다. 온라인 공간 속 사람들은 늘 좋은 것만 보여주고, 늘 좋은 것만 보고 싶어 합니다. 표현을 안 해서 그렇지 나름 고민이 있습니다. 몇 몇 분들의 진심어린 위로와 격려는 살아가는 데 힘이 됩니다. ^^

우민(愚民)ngs01 2017-01-14 13: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게 나라냐! 라는 혼란의 시대에 희망이 없다면 살아갈 힘조차 없겠지요
그래서 희망을 가져봅니다. 아자 아자
대한민국 화이팅! !

cyrus 2017-01-14 16:15   좋아요 1 | URL
사회가 잘못 돌아가고 있음을 걱정하고, 이를 바로잡으려고 노력하는 분들이 많아지고 있어서 세상에 대한 희망을 염원해봅니다.

2017-01-15 10:39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