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은 배출을 원한다. 특히 요즘 같이 추운 날씨에 자주 소변을 보게 된다. 소변, 대변, 방귀는 자연스러운 생리 현상이다. 소변을 가급적 자주 보는 게 좋다고 말한 의학 전문가가 있다. 하지만 소변이 마렵지 않은데도 억지로 힘을 줘서 쥐어짜면(?) 방광에 좋지 않다. 배뇨 횟수는 계절과 온도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보통 성인의 경우 하루 5~6회 정도다. 소변 횟수와 양은 너무 많아도 문제고, 너무 줄어들어도 문제다.


살다 보면 세 가지 생리 현상을 참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몸에서 보내는 신호를 계속 무시하면 언젠가 몸에 이상이 생긴다. 필자는 어렸을 때부터 소변과 대변을 참는 나쁜 버릇이 있었다. 학창 시절에 필자는 시험 성적을 잘 받고 싶은 마음이 너무나도 간절했다. 그래서 쉬는 시간에 화장실에 가지 않고 계속 의자에 앉아 공부만 했다. 재미있는 책을 읽느라 화장실에 가는 일을 미루기도 했었다. 이런 나쁜 버릇이 반복되면 건강에 적신호가 빨리 찾아온다. 2016년에 필자는 통풍 진단을 받았다. 통풍은 혈액 속에 있는 요산이라는 물질이 제대로 배출되지 않아 관절에 염증을 일으키는 질병이다. 통풍 진단을 받았던 당시에 신장에 이상이 있는지 신장 기능 검사를 받지 않았으나 이때 당시 요산을 포함한 노폐물을 걸러주는 신장 기능이 나빠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방광은 신장과 연결되어 있다. 소변을 계속 참으면 방광의 압력으로 인해 요관(尿管)으로 역류하여 신장 기능이 떨어질 수 있다.


어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는 자세는 보기 좋다. 노력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인내심이 강하다. 어느 한 분야의 경지에 오른 사람들의 일화에는 공통점이 있다. 성공한 사람들은 끼니를 거르고, 생리 현상을 참으면서 노력했다고 한다. 한 분야에 제대로 푹 빠진 이 사람들의 열정과 노력은 박수받을 만하다. 하지만 이들처럼 따라 하고 싶지 않다. 목표를 빨리 이루고픈 마음은 잘 알겠지만, 생리 현상을 참으면서까지 노력할 필요는 없다.


















[우주지감 나를 관통하는 책 읽기’ 202012월의 책]

* 게랄트 휘터 존엄하게 산다는 것: 모멸의 시대를 건너는 인간다운 삶의 원칙(인플루엔셜, 2019)



평점

3점   ★★★   B




독일의 뇌과학자 게랄트 휘터(Gerald Huether)는 자신의 책 존엄하게 산다는 것에서 존엄의 의미를 되짚어본다나는 이러이러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내적 표상(內的 表象: 그림이나 언어와 같은 외부적 표현 형태가 아닌 개인의 내적 상태에서 일어나는 표상)은 고유의 한 사람으로서의 행동으로 표출하게 만드는 관념이다. 휘터는 이를 존엄이라고 말한다존엄하게 산다는 것은 결국 외부의 유혹에 맞서 자신의 내면 표상, 라는 존재의 고유한 삶을 지키면서 사는 방식이다


존엄하게 살아가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살면서 존엄하게 살 기회를 받지 못했거나 혹은 빈번히 놓치고 말았다. 존엄하게 살려면 어릴 때부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반드시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를 스스로 인식해야 한다. 그런데 주변 사람들의 관심과 지나친 교육열, 빽빽한 교육 환경은 아이들을 외부의 지시를 그대로 따르는 수동적인 존재로 자라게 했다. 이런 아이들은 나는 이러이러한 사람이 되고 싶다라고 생각할 여유조차 누리지 못한 채 어른으로 성장한다.


자녀를 너무 열심히 가르치는 부모는 자녀에게 과제를 줄 때 과제를 다 할 때까지 절대로 ○○○을 하지 마라!(“간식 먹지 마!”, “스마트폰 들여다보지 마!”, “친구와 만날 생각하지 마!” )고 지시한다. 강압적인 성격의 교사들도 종종 이런 식으로 학생들을 옭아맨다. 그러니까 어떤 하나를 다 끝낼 때까지 다른 어떤 일학생들을 통제하는 부모나 교사는 자신의 지도법에 어긋나거나 따르지 않는 아이의 행동에 부정적인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 딴짓이라고 표현한다을 절대로 하지 말란다. 개인의 자율성을 옥죄는 교육법에 익숙한 학생들은 학교나 집에서 지도받고, 통제당하며, 감시당한다. 이런 갑갑한 분위기에 지배당한 아이들은 화장실에 잠깐 가야 할 상황도 크게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 김영민 공부란 무엇인가(어크로스, 2020)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나 분위기가 갑갑하면 아이들은 공부에 대한 흥미를 잃을 수 있다서울대의 모 교수는 자신의 강의를 듣는 학생들에게 생리 현상을 참는 것이 성인의 자부심이라고 말한다.




* 공부란 무엇인가중에서, 76~77

 

 수업 도중에 화장실에 가도 안 되냐고요? 물론 안 됩니다. 여러분은 성인이고, 성인의 자부심은 똥오줌을 참을 수 있다는 데 있습니다. 여러분이 한 시간 30분 정도는 생리현상을 관리할 수 있으리라는 사회적 기대가 있습니다. 마치 극장에 들어가기 전에 화장실에 들르듯이, 강의실에 들어오기 전에 화장실에 들르기 바랍니다. 그리고 손을 씻기 바랍니다. 예외적인 사정이 있는 사람은 미리 상의해주기 바랍니다.

 아무리 화장실에 미리 다녀왔어도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겠지요. 그렇다고 해서 수업 중에 갑자기 손을 들고, “뭔가 나와요!”라고 울부짖는 것은 민망한 일이겠지요. 그런 경우에는 노래를 부르기로 합시다. 수업 중에 불가피하게 화장실에 가야 할 사정이 생긴 사람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는 겁니다. 어디선가 나직하게 들려오는 노랫가락을 듣고 우리는 누군가 곧 강의실 문을 나갈 것을 예감하고 그에 대해 마음의 준비를 하면 강의에 집중력을 잃지 않을 수 있겠지요. 노래를 부르며 강의실을 떠나는 학우의 고통을 공감하고 양해할 수 있게 될 겁니다. 공감과 양해는 규율 못지않게 중요한 시민적 덕성입니다. 노래하는 목소리가 클수록, 곡조가 슬플수록, 그가 처한 상황이 위중하다는 신호겠지요. 저 역시 만에 하나 급히 용변을 봐야 할 사정이 생기면, 장송곡을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생리 현상을 참으면 건강에 좋지 않다. 생리 현상을 참는 나쁜 버릇 때문에 아파봤던 필자는 무료로 수강할 수 있다고 해도 절대로 그러고 싶지 않다. 똥오줌을 잘 참으면 느낄 수 있다는 성인의 자부심은 쓸데없는 허세다생리 현상을 참고 공부에 매진하길 바라는 사회적 기대는 학생들의 주체성과 (똥오줌을 눌 수 있는) 자유의 욕구를 통제한다교수의 글을 좋아하는 혹자는 필자의 지적에 이렇게 반박할 것이다. “재미있게 하려고 쓴 건데 왜 이리 민감한 반응을 보이세요?”, “그냥 웃고 넘길 수준의 내용 아닌가요?” 교수는 우스갯소리로 생리 현상을 참으라고 말한 것일 수 있다. 하지만 교수의 말에 유머를 싹 다 제거해보면 그 속에 제자들에게 전하는 교수의 본심이 나온다. “내 수업이 끝날 때까지 절대로 수업 도중에 화장실에 갈 생각하지 마!”


필자가 학생이었으면 교수의 지도 방식에 태클을 걸었을 것이다. “교수님, 수업 도중에 화장실에 가는 학생들 때문에 일순간에 집중력이 흐려지는 상황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저도 이렇게 생각하는데 열심히 가르치는 교수님은 오죽하시겠어요. 하지만 수업에 집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똥오줌을 참는 일을 성인의 자부심이고 공부에 매진하는 사람의 미덕으로 여기는 교수님의 말씀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공부든 뭐든 무언가를 끝까지 잘 해내기 위해 인내심을 강요하는 것은 구시대적 어른의 사고방식입니다. 교수님, 저는 생리 현상을 참으면 건강이 나빠지는 체질이에요. 교수님의 수업 내용을 하나라도 놓치고 싶지 않아요. 그러나 수업 도중에 갑자기 똥오줌이 마려우면 망설이지 않고 화장실로 갈 겁니다. 저는 건강을 유지하면서 공부하고 싶어요. 이게 제가 존엄하게 공부하는 방식이고, 존엄하게 똥오줌을 싸야 할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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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0-12-21 17: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지금 읽고 있는 책에서 수용소의 오물통 얘기가 나오는데
더러운 오물통의 존재보다 더 무서운것은 오물통의 부재란 얘기가 있었어요. 우리는 여러 이유로 생리현상을 무시하고 때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데 말씀하신것처럼 건강에 큰 영향을 줄만큼 본질적으론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데 말이죠.
아직 저 두번째 책 읽어보지 못했는데 흠..그런 자부심은 저도 거부하겠습니다^^

얄라알라 2020-12-21 22:54   좋아요 1 | URL
이래서 제가 알라딘 서재에 매일 출석하나 봅니다. 글도 글이지만, 프리즘처럼 다른 각도에서 이야기를 또 이어가는 멋진 댓글을 보면, 온라인 상이지만 대화의 희열을 느낍니다. 제가 두분의 대화에 끼어든 셈이긴 하지만요^^

han22598 2020-12-22 03: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학생뿐 아니라, 선생도 화장실을 가고 싶을때가 있을텐데 말이죠.....ㅋ

cyrus 2021-01-01 13:48   좋아요 0 | URL
대부분 선생님들은 자신이 화장실에 가면 수업 흐름이 끊길까봐 생리 현상을 참고 일했을 것입니다. 선생님의 마음을 잘 알지만, 자신의 건강에 무리를 주면서까지 아이들을 가르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답글이 좀 늦었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han님. ^^

페크pek0501 2020-12-24 0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건강을 유지하면서 공부하고 싶어요. ^^

메리 크리스마스!!!

cyrus 2021-01-01 13:49   좋아요 0 | URL
올해도 건강하면서 좋은 글 많이 써주세요. 페크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초딩 2021-01-01 13: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cyrus 님 새해 복 많이 많이 받으세요~
2021년에는 더 자주 인사 드리고 응원 하겠습니다~
:-)
신정 연휴도 잘 보내세요~
 

 

 

 

 

몇 년 전만 해도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책방이 생기길 바랐다. 작년에 필자의 소원이 이루어졌다. 필자는 대구에서 가장 낙후한 서구에 오래 살았다. 작년에 서재를 탐하다책방이 서구 원대동(신 주소: 고성로)으로 이전하면서 처음으로 서구에 자리 잡은 책방이 되었다.

 

 

 

 

 

 

 

하지만 ‘책방을 탐하다는 대구 서구에서 최초로 문을 연 책방이 아니다. 책방이 처음으로 문을 연 자리는 북구 침산동(신 주소: 옥산로)이다. 책방이 있었던 자리에 큰 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대구 전체를 어둡게 만든 코로나19의 그림자가 좀처럼 걷히지 않았던 시기에 서구에서 아가 책방’이 태어났다. 아가 책방의 이름은 담담책방(약칭: 담담). 책방 이름처럼 아가 책방은 코로나19의 그림자를 서서히 걷어내고, 서구 주민들에게 다가서기 위해 걸음마를 떼기 시작했다.

 

 

 

 

 

 

 

담담은 올해 3월에 서구에서 태어났다. 필자는 여름에 담담의 존재를 처음 알았다. 담담이 있는 동네에 마을도서관이 있다. 필자는 마을도서관에 가다가 우연히 담담을 발견했다. 책방에 가기 전에 담담 책방지기가 만든 인스타그램과 블로그를 구경했다. 인스타그램과 블로그에 책방 내부를 찍은 사진들이 있다. 그냥 사진만 봤을 뿐인데, 책방 내부는 무척 깔끔해 보였고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우주지감연말 모임 전날인 16(목요일)에 지인과 함께 책방에 갔다. 필자와 동행한 지인은 대구 페미니즘 북클럽 레드스타킹의 남성 멤버다. 이분은 공연을 기획하고 제작하는 일을 하고 있다. 이분의 성함은 송승인데, 이 글에서는 특별히 가명을 사용했다. 이제부터 송승씨를 송승환이라고 부르겠다.

 

필자의 집에서 책방까지 걸어가는 데 걸린 시간은 15~20분이다. ‘서재를 탐하다까지 걸어가는 시간과 거의 비슷하다. ‘서재를 탐하다와 담담책방 사이의 거리도 그리 멀지 않다. 버스 타고 조금만 더 걸어가면 금방 도착할 수 있다.

 

 

 

 

 

 

 

 

 

담담이 살아있는 시간은 오후 1시부터 6시까지다. 일요일, 월요일은 책방이 숙면하는 날이다. 가끔 책방지기의 사정에 따라 책방이 조금 늦게 눈을 뜨거나 아니면 일찍 잠들 수 있다. 책방을 만나기 전에 책방 공식 인스타그램을 미리 확인해야 한다.

 

 

 

 

 

 

 

 

책방은 3층에 있다. 승강기는 없고, 계단만 있다(다리가 불편한 손님은 계단에 오르는 일이 벅찰 수 있다). 계단 주변에 아기자기한 소품과 장식이 배치되어 있고, 싸늘하게 느껴질 하얀 벽에 여러 점의 그림들이 붙여져 있다.

 

 

 

 

 

 

 

 

계단을 올라가다 보면 벽에 붙어 있는 담담책방 이용 팁을 발견할 수 있다. 담담은 커피나 그 밖의 음료를 팔지 않는다. 책방에 있는 차와 커피는 손님이 직접 타서 마셔야 한다.

 

 

 

 

 

 

책방 입구에 두 개의 문이 있다. 회색 철제문이 활짝 열려 있으면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오면 된다. 미닫이문 근처에 손 소독제가 있다. 그런데 담담책방의 미닫이문은 한 번 열면 잘 닫히지 않는다. 문이 완전히 닫힐 때까지 손잡이를 잡고 밀어야 한다. ‘서재를 탐하다읽다 익다책방의 문도 미닫이문인데 역시나 한 번에 닫히지 않는다. 세 책방의 작은 결점(?)이 비슷하다.

 

 

 

 

 

 

 

 

책방지기의 첫인상은 정말 좋았다. 책방지기를 보면 약간 살이 빠진 ‘yureka01’ 님이 생각난다. 책방지기가 책방에 처음 온 필자를 위해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대접했다.

 

 

 

 

 

 

 

 

 

 

 

미닫이문 오른쪽에 작은 책상이 있다. 책상 위에 책방 이름이 적힌 여러 종류의 책갈피가 놓여 있다. 미니어처 서재는 책방지기가 손수 조립해서 만든 것이라고 한다.

 

 

 

 

 

 

 

대형 TV에서 음악이 나온다. 성탄절을 코앞에 둔 시기에 맞게 책방 내부에 캐럴이 잔잔하게 흐르고 있었다.

 

 

 

 

 

 

 

 

 

 

 

 

 

책방지기의 가족은 제주도에서 생활하다가 대구에 정착했다. 책방지기는 제주도에 있는 모든 책방을 가봤을 정도로 제주도 여행에 대해 잘 알고 계신다. 그래서 제주도와 관련된 책과 인쇄물을 따로 놓아둔 책장이 있다. 혼자서 제주도를 여행하고 싶은 분은 담담책방에 있는 책방지기를 만나라. 그러면 책방지기가 친절하게 여행 정보를 알려준다.

 

 

 

 

 

 

 

 

책방지기의 부인은 빨간 머리 앤을 좋아한다. 책방지기는 부인을 만나면서 앤을 좋아하게 되었다고 한다. 같은 취향을 공유하면서 지내는 부부의 모습이 정말 보기 좋다.

 

 

 

 

 

 

 

 

 

 

 

책방지기는 대구에서 가장 낙후한 서구에서 책방을 열었을까? 그가 책방을 열려고 한 목적과 이유는 단순하다. 책방지기는 서구 주민들이 편안하게 방문할 수 있는 문화 공간을 만들고 싶어 했다. 책을 사고 싶은 손님이 오는 책방이 아니라 책을 보러 오는 손님, 잠시 책방에서 쉬고 싶은 손님, 그리고 마음대로 그림을 그리고 싶은 손님들도 올 수 있는 편안한 쉼터 같은 문화 공간. 담담책방은 책방이라고 규정할 수 없는 공간이다. 담담책방의 진짜 주인은 바로 이곳을 찾는 손님들이다. 책방을 찾는 손님의 목적에 따라 책방의 용도와 내부 분위기는 달라진다.

 

필자와 송승환 씨는 책방지기와 대화를 나누다가 우리가 하고 있는 독서 모임 활동을 언급했다. 그러자 책방지기는 우리에게 독서 모임을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지 질문했다. 세 사람은 40분 동안 독서 모임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었다.

 

 

 

 

 

 

 

우주지감연말 모임이 있던 금요일에 다시 담담에 갔다. 두 번째 방문이다. 그날 오후를 담담에서 보내다가 담담이 문 닫을 때 연말 모임 장소인 서재를 탐하다로 갈려고 했다. 연말 모임에 항상 하는 행사가 있는데 책 선물을 모임 참석자에게 주는 일이다. 필자는 담담에서 선물용으로 고른 책 한 권과 빨간 머리 앤북 스탬프를 샀다. 포장지도 함께 샀다. 책방지기가 아주 정성스럽게 책을 포장했다.

 

책방지기는 얼마든지 책방에 오라고 말씀하셨다. 그러고 싶은데, 맨손으로 책방에 와서 맨손으로 나가는 일은 여전히 어색하고 괜히 죄송스럽다. 다음부터는 책방에서 신간을 사야겠다. 그러면 담담을 오랫동안 만날 수 있다. 주민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무럭무럭 자라는 담담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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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0-12-20 1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시부터 6시까지만 하면 그 나머지 시간은 그냥 비어있는 건가?

cyrus 2020-12-20 23:44   좋아요 0 | URL
책방지기님에 대해선 자세히 모르지만, 그 분이 예전에 NGO 활동을 하셨대요. 지금도 그 일을 하시는지 잘 모르겠어요. 요즘에는 혼자 또는 여러 명이 책방을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는 예약 서비스가 있어요. 책방 문 닫는 시간이나 책방 쉬는 날에 예약하면 책방을 이용할 수 있어요. ‘서재를 탐하다’ 책방은 이미 예약 서비스를 하고 있어요. ^^

blanca 2020-12-20 1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이 따스해지네요. 담담이 잘 되기를....대구는 저에게 고향 같은 곳이에요..

cyrus 2020-12-20 23:45   좋아요 0 | URL
확실히 대구에 동네 책방과 독서 모임 조직이 많이 생겼어요. 요즘 제일 힘든 시기인데 동네 책방과 독서 모임 조직이 잘 버텼으면 좋겠어요.

막시무스 2020-12-20 1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정 책방이라고 불리는게 맞는것 같네요! 뭔가 포근한 느낌이 강하게 느껴집니다! 번창하시길 바래요!

cyrus 2020-12-20 23:48   좋아요 0 | URL
한 달에 한 번이라고 책방에 있는 책 한 권 사야겠어요. 그래야 책방이 오래 번창할 수 있거든요. ^^

파트라슈 2020-12-21 0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업 이윤이 목적이 아닌 진정 자신이 좋아서 즐기는 일을 하시는 분이 연 책방이 대구에 있었군요.. 대구 서구쪽 광범위한 재개발 예약이 되어 있는데 앞으로 한 5년 뒤에 아파트 숲이 들어서도 이런 동네책방이 여전히 존재하면 좋겠습니다. 책방 감성 잊어버린지 오래인데 책방 가서 이런저런 책들 손에 잡히는 대로 보면 시간가는 줄 모르던 시절이 있었죠. 지금도 가끔은 대백 교보문고나 예스24서점에 가는데 이쁜 책들 사고 싶은 충동 누르느라 혼나죠. 마음에 드는 읽고 싶은 책 한 권 사서 집으로 오는 버스안에서 이리저리 훑어보며 기대하던 그 설렘을 이제 택배기사님이 대신 제공 제공해 주고 있다는 것ㅎㅎ

cyrus 2020-12-21 11:22   좋아요 0 | URL
책방에 시간을 보내면 하루가 금방 지나갑니다. 하지만 그 하루를 알차게 보냈다는 기분이 들어요. 책방에 다른 손님이 오면 전혀 싫지도 않고, 어색하지도 않아요. 담담 책방지기님이 편안하게 대화를 시작하는 분이라서 이 분이 입을 열면 서로 모르는 손님들끼리 대화를 하게 됩니다. 아주 잠깐이지만 한 공간에서 새로운 인연이 맺어지고, 친밀한 소통이 이루어지죠. ^^

psyche 2020-12-22 07: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뜻한 느낌의 책방이네요! 동네 책방들이 오래오래 잘 되었으면 좋겠어요. 미국도 동네책방들이 다 죽고 있어서... 동네 책방만이 아니라 오프라인 책방이 다 죽고 있죠. 너무 안타까워요.

Angela 2020-12-22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과 사진에서 따뜻한 공간이 느껴져서 한번 가보고 싶네요^^
 



네루다의 우편배달부에 보면 네루다가 마리오에게 ‘공인 우체부 찬가를 들려주는 장면이 나온다(요즘은 우체부보다 집배원이라는 말을 더 자주 쓴다). 작중에서 네루다가 들려준 집배원 찬가의 원곡이 비틀스의 <우체부>’라고 나온다노래가 나오자 저택 안에 있는 네루다의 수집품들이 마치 춤을 신나게 추듯이 움직인다. 마술적 사실주의를 떠올리는 인상 깊은 장면이다

 





 

 













* 안토니오 스카르메타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민음사, 2004)

 

 

 시인은 전축으로 발길을 옮기더니 갑자기 행복에 겨워 손가락 하나를 들면서 선언했다.

 “자네에게 줄 아주 특별한 선물 하나를 산티아고에서 가져왔지. 공인 우체부 찬가일세.”

 이 말과 함께 비틀스의 <우체부> 멜로디가 응접실에 퍼졌다. 그러자 뱃머리 장식들이 움찔움찔, 병 속의 돛단배들이 출렁출렁, 아프리카 가면들이 이빨을 으드득으드득, 응접실 돌들이 들썩들썩, 나무에 홈이 쩌억쩌억, 의자의 은 세공이 너울너울, 서까래의 죽은 친구들이 덩실덩실, 오랫동안 꺼져 있던 담뱃대들이 푸우푸우, 배불뚝이 킨차말리 도자기들이 기타를 딩가딩가, 벽을 뒤덮은 벨 에포크 화류계 여인들의 향수가 스멀스멀, 푸른 말이 다그닥다그닥, 휘트먼 시의 고색창연한 기관차가 기적을 울렸다


(77)




하지만 우체부는 정확한 곡명이 아니다. 비틀스의 음악을 정말 좋아하는 독자는 곡명이 틀렸다는 것을 이미 눈치챘을 것이다. 필자는 팝송을 즐겨 듣진 않지만, 집배원 찬가로 알려진 비틀스의 노래가 궁금해서 직접 찾아봤다.








‘Please, Mister(Mr.) Postman’이다. 1963년에 발매된 비틀스의 정규 2집 앨범 <With The Beatles>에 수록된 곡이다. 마리오가 네루다에게 선물로 받은 비틀스 앨범은 2집 앨범일 수 있다.

 

노랫말을 보면 네루다가 왜 이 노래를 집배원 찬가라고 했는지 이해할 수 있다. 노랫말 속에 화자로 나온 남자는 사랑에 빠져 있다. 그는 집배원에게 여자 친구가 자신에게 보낸 편지가 있는지 확인해달라고 애타게 간청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집배원인 마리오가 노랫말 속 남성처럼 사랑에 빠졌다.


사실 ‘Please, Mr. Postman’은 리메이크 곡이다. 원곡은 1961년에 미국의 보컬 그룹 마블레츠(The Marvelettes)가 불렀다. 1974년에 남매 가수인 카펜터스(Carpenters)가 이 노래를 불렀다. 마블레츠과 카펜터스는 이 곡으로 빌보드 차트 1위를 차지했다. 집배원 찬가는 네루다의 수집품들이 살아 움직일 정도로 흥겨운 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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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註釋)은 낱말이나 문장의 뜻을 쉽게 풀이한 글을 말한다. 동서양을 불문하고 옛사람들은 종교 경전에 적힌 모든 내용을 그대로 읽지 않았다. 경전을 공부한 사람들은 책이 귀했던 시대에 살았다. 그들은 특별한 장소(오래된 책들이 보관된 수도원의 도서관)에 가야만 볼 수 있는 책을 어름어름 읽지 않았다. 수준 높은 학자는 책 속에 있는 구절이나 단어의 의미를 보충 설명해줄 수 있는 자신의 견해(저작권이 없는 시대에 살았던 학자들은 다른 책에서 본 내용을 베껴서 쓰기도 했다)를 여백에 적었다. 주석 쓰는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을 주석가(exegetist)라고 한다. 경전의 여백에 익명의 주석가들이 남긴 주석들이 빼곡히 채워져 있으면 경전을 공부하는 사람이나 또 다른 익명의 주석가는 주석들을 하나라도 빠지지 않고 읽었다. 대담한 성격의 주석가는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관점으로 경전 구절을 해석한 내용을 주석으로 쓰기도 했다. 다른 사람이 쓴 주석을 비판하기 위해 꼬리에 꼬리를 물듯이 주석을 새로 단 주석가도 있었다.

 

경전 한 권에 적힌 수많은 주석을 모아놓으면 또 한 권의 새로운 책이 된다. 주석만 모아놓은 책은 경전을 치밀하게 읽은 주석가들의 다양한 생각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주석 전집은 경전 공부를 시작하려는 사람들에게 큰 도움을 준다. 그러나 주석가들도 사람인지라 경전의 원문을 오독할 수 있다. 주석가가 경전을 공부하면서 실수로 내용을 잘못 이해했다면 너그러이 봐줄 수 있다. 그러나 지적 우월감에 빠진 채 허술한 설명의 주석을 달아놓거나 특정 종파 및 학자들의 집단을 옹호하기 위해 정직한 비판을 피한 주석가들은 경전의 소중한 여백을 줄어들게 만든 주범이다.

 

주석을 다는 일은 아주 오래전부터 학자들이 선호한 공부법이자 독서법이다. 그렇지만 오늘날에 주석가라는 직업으로 알려진 유명한 사람을 손꼽기 힘들다. 명망 있는 주석가가 있어도 후대 사람들은 그를 학자로 보지 않는다. 어떤 책을 쓴 저자는 유명한 고대 및 중세 사상가를 학자 겸 주석가로 소개했다. 그러나 학자주석가를 서로 무관한 별개의 직업으로 볼 수 없다. 유명한 학자들은 주석을 달면서 공부했다. 후대의 학자들은 책의 여백에 남아 있는 선대의 흔적들을 쫓아 꼼꼼히 공부하고 분석했다.

    

 

 

 

 

 

 

 

 

 

 

 

 

 

 

 

 

* 표정훈 탐서주의자의 책: 책을 탐하는 한 교양인의 문..철 기록(마음산책, 2004)

 

평점: 3점   ★★★   B

    

 

 

도서평론가 겸 번역가 표정훈은 익명의 주석가(탐서주의자의 책에 수록)라는 글에서 책 읽는 사람(독서인)이란 기본적으로 주석가라고 말했다. 그가 새롭게 정의한 주석가는 책 속에 있는 지식과 정보를 모아서 재편집하는 지식 네트워커(knowledge networker). 지식 네트워커는 지금 들어도 생소한 단어다. 하지만 표 씨의 글이 나온 지 십여 년이 지난 지금 누구든지 글을 쓸 수 있는 시대가 되었고, 지식 네트워커라고 불릴 만한 독자들이 생겨났다.

    

 

 

 

 

 

 

 

 

 

 

 

 

 


 

 

 

* 이반 일리치 텍스트의 포도밭: 읽기에 관한 대담하고 근원적인 통찰(현암사, 2016)

    

평점: 4점   ★★★★   A-

 

 

* 에라스무스 외 공부의 고전: 스스로 배우는 방법을 익히기 위하여(유유, 2020)

 

평점: 3점   ★★★   B

    

 

 

12세기에 활동한 수도사이자 신학자인 성 빅토르의 후고(Hugh of Saint Victor)는 성서에 대한 주석을 많이 남겼다. 그는 성서와 철학 등의 학문을 공부하는 수도원 학생들을 위해 디다스칼리콘(Didascalicon, 교육론)이라는 책을 썼다. 사상가 이반 일리치(Ivan Illich)디다스칼리콘을 분석하여 옛사람들이 생각한 독서와 공부의 의미를 추적했다. 그가 쓴 텍스트의 포도밭디다스칼리콘을 재해석한 주석이라 할 수 있다. 암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후고의 훈계(?)를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독서와 공부의 기본적인 의미를 확인하여 나태해진 마음에 새기고 싶을 때 공부의 고전에 수록된 디다스칼리콘을 읽으면 된다. 공부의 고전공부를 주제로 한 옛사람들의 글 모음집이다. 이 책에 번역된 디다스칼리콘은 서문과 1, 3부의 내용 일부이다. 그래서 글의 분량이 많지 않다.

 

중세 이탈리아의 신학자 보나벤투라(Bonaventura)는 책을 만드는 사람을 4가지로 정의했다. 그 중에 하나가 주석가다.

 

 

 책을 만드는 데에는 네 가지 길이 있다. 한 가지도 보태거나 바꾸지 않고 다른 사람의 말을 적는 사람이 있는데, 그렇게 하는 사람은 서기(scriptor). 다른 사람의 말을 적으면서 자신의 말이 아니라 하더라도 뭔가 보태는 사람도 있다. 이렇게 하는 사람은 편찬자(compilator)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과 말과 자신의 말을 모두 적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 경우에는 다른 사람의 자료가 지배적이며 그 자신의 말은 설명하기 위한 부록처럼 덧붙인다. 이렇게 하는 사람은 저자라기보다는 주석가(commentator)라고 부른다. 그러나 자신에게서 나오는 것과 남에게서 나온 것을 모두 쓰되, 자신의 말을 확인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남의 자료를 붙이는 사람은 저자(auctor)라고 부른다.

 

(텍스트의 포도밭163~164)

 

 

네 가지 유형 중에서 내가 선호하는 것은 주석가다. 나는 익명의 독자들에게 쓸모 있는 익명의 주석가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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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0-12-07 15: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알라딘에 오지 않는 동안 독서에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른 사람들이나
읽을 법한 책들을 읽으셨구만.
난 본문 읽기도 벅차서 주석 달린 책은 잘 못 읽겠더라구.
몇 줄 읽다가 번호찾아 주석 읽으면 흐름이 끊기고 시간도 많이 걸려서
결국 읽다 포기하게 돼.
표정훈의 책 오래 전에 읽었는데 없는 걸 보면 누구한테 보내러렸나 보다.ㅠ

cyrus 2020-12-07 19:05   좋아요 1 | URL
책 본문을 주석과 병행해서 읽으면 시간이 오래 걸리긴 해요. 그래서 요즘은 주석을 보지 않은 채 본문을 다 읽고 난 후에 두 번째 독서를 할 때 주석을 읽어요. 이러면 자연스럽게 한 권의 책을 두 번 읽게 되는 거죠. ^^
 

 

 

이 글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Gabriel Garcia Marquez)One Hundred Years of Solitude(약칭 백 년’) 번역본 2(문학사상사, 민음사)의 번역 비판에 대한 두 번째 글이다. 주요 내용은 민음사 판 백 년2권 전체 본문과 이에 해당되는 문학사상사 판 백 년본문 속에 발견한 오역 문장과 오류들이다.

 

 

 

 

 

 

 

 

 

 

 

 

 

 

 

 

 

 

* 가르시아 마르케스, 안정효 옮김 백년 동안의 고독(문학사상사, 2005)

    

 

 

 

 

 

 

 

 

 

 

 

 

 

 

 

* 가르시아 마르케스, 조구호 옮김 백년의 고독(민음, 2000)

 

 

 

 

    

 

 

5

    

 

* 안정효 씨는 아우렐리아노 세군도(Aureliano Segundo)의 딸 레난타 레메디오스(Renata Remedios)의 애칭 메메(Meme)레메로 잘못 썼다.

 

 

 

 

 

6

 

* 원문

  A while later, faced with a new attempt by the workers the lawyers publicly exhibited Mr. Browns death certificate, attested to by consuls and foreign ministers which bore witness that on June ninth last he had been run over by a fire engine in Chicago.

 

 

* 문학사상사 335

  다시 얼마 있다가 노무자들이 또 들고 일어나려고 하자, 변호사들은 두 나라의 영사관과 외무부의 공증까지 받은 미스터 브라운의 사망확인서를 공개하였는데, 그 사망확인서에는 미스터 브라운이 시카고에서 불자동차에 치여 지난 79에 죽었다고 적혀 있었다.

 

 

날짜가 잘못 적혀 있다. 정확한 날짜는 ‘69이다.

 

 

 

 

7

 

* 문학사상사 358

 

아폴로 신의 거상(巨像, 세계 7대 불가사의의 하나로 에게 해의 로데스 항구에 있음역주)

 

      

Colossus of Rhodes: 로도스라고 표기해야 한다. 아폴로 신의 거상은 현존하지 않으며 로도스 항구(로도스 섬)에 세워져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므로 에게 해의 로도스 항구에 있음이라는 표현은 맞지 않다.

 

민음사 판 2174쪽에 로다스 섬의 거인이라고 적혀 있는데 이 표현 또한 오역이다. 정확한 명칭은 로도스 섬의 거상이다.

 

 

 

 

 

8

 

* 원문

  They found her dead on the morning of Good Friday. The last time that they had helped her calculate her age, during the time of the banana company, she had estimated it as between one hundred fifteen and one hundred twenty-two.

 

 

* 민음사 판 2203

  우르술라는 죽은 몸으로 성 목요일 아침을 맞이했다. 바나나 회사가 있던 시절 여러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마지막으로 그녀의 나이를 계산해 보았는데, 그 당시 그녀가 백열다섯 살에서 백스물 살 사이라고 결론지었었다.

 

 

성 목요일(Maundy Thursday)은 예수가 겟세마네 동산(Gethsemane)에서 체포된 날이다. 성 금요일(Good Friday, 수난일: 십자가형을 받은 예수의 죽음을 기념하는 날) 전날이다. 우르술라가 사망했을 때 그녀의 나이는 백스물 살이 아니라 백스물 두 살이다.

 

 

 

 

 

9

 

 

* 원문: Isaac the Blindman

 

 

* 문학사상사 406

 

장님 이삭

역주: 구약성서에 나오는 장님 이삭

 

 

* 민음사 판 2236

 

장님 이사악

역주: 동로마 제국의 황제(1155~1204)

 

 

장님 이삭에 대한 두 역자의 설명이 다르다. 둘 중에 뭐가 맞는지 필자는 잘 모르겠다. 민음사 판 2236쪽 역주에 언급된 동로마 제국의 황제는 이사키오스 2세 앙겔로스(Isaac II Angelos)를 가리킨다. 그의 출생연도는 불분명해서 1156년으로 추정하는 사람도 있다. 이삭과 이사키오스 2세 모두 말년에 장님이 되었다.

 

 

 

 

 

10

 

 

* 원문

  When he rode the bicycle he would wear acrobats tights, gaudy socks, and a Sherlock Holmes cap, but when he was on foot he would dress in a spotless natural linen suit, white shoes, a silk bow tie, a straw boater, and he would carry a willow stick in his hand.

 

 

* 문학사상사 420

  그는 자전거를 탈 때면, 곡예사의 흘태바지알록달록한 양말을 신고 셜록 홈즈의 모자를 쓰고 다녔지만, 걸어 다닐 때에는 티끌 하나 없는 단정한 양복에 흰 구두를 신고 비단으로 만든 나비넥타이에 밀짚모자를 쓰고 손에는 버드나무 단장을 짚고 돌아다녔다.

 

 

* 민음사 판 2254

  그는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닐 때는 곡예사 바지백파이프 연주자들이 신는 양말을 신고, 탐정들이 쓰는 모자를 썼으나, 걸어 다닐 경우에는 말끔하게 손질한 생 아마포 옷에 흰 구두를 신고, 비단 나비넥타이를 매고, 맥고모자를 쓴 차림으로 버드나무 단장을 들고 다녔다.

 

 

gaudy: 천박한, 촌스러운, 요란스러운, 번지르르한

 

인쇄가 잘못된 건지 아니면 안정효 씨가 잘못 적은 건지 알 수 없지만, 흘태바지가 아니라 홀태바지(통이 매우 좁은 바지)라고 써야 한다.

 

→ 영문판에는 백파이프 연주자들이 신는이라는 번역문에 해당되는 표현이 없다. 그렇다면 스페인어로 쓰인 책에 백파이프 연주자들이 신는’이라는 표현이 있을 수 있다. 필자가 스페인어 판을 확인하지 않았기 때문에 뭐가 맞는 번역인지 판단하지 않았다.

 

그런데 조구호 씨는 ‘Sherlock Holmes cap’탐정들이 쓰는 모자라고 엉터리로 번역했다. ‘Sherlock Holmes cap’은 셜록 홈스가 써서 유명해진 모자(원래는 사냥꾼들이 즐겨 쓴 모자). 탐정들은 홈스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모자를 쓰고 다니지 않는다.

 

 

 

 

 

 

11

 

 

* 문학사상사 428~429(본문 아님)

  아우렐리아노 바빌로니아(Aureliano Babilonia)와 함께 토론하는 네 명의 친구 중 한 사람의 이름이 게르만(Germán)이라고 되어 있다. 스페인어로 된 소설이기 때문에 스페인어 발음에 가까운 헤르만으로 표기해야 한다(민음사 판본 2권 267~268쪽).

 

 

 

 

 

12

 

 

* 원문

  Aureliano put him up several times in the silver workshop, but he would spend his nights awake, disturbed by the noise of the dead people who walked through the bedrooms until dawn. Later he turned him over to Nigromanta, who took him to her well-used room when she was free and put down his account with vertical marks behind the door in the few spaces left free by Aurelianos debts.

 

 

* 문학사상사 431

  아우렐리아노가 은세공 작업실에 몇 차례 그의 잠자리를 마련해 준 일도 있었는데 그는 새벽까지 집 안을 배회하는 죽은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에 불안해져서 뜬눈으로 밤을 꼬박 새우곤 했다. 나중에는 그를 니그로만타에게 맡겨두었는데, 그녀는 손님이 없어 한가할 때면 그를 자기가 주는 쓰는 방으로 불러들여서 즐겁게 해주고는 그에게 외상으로 봉사해 준 계산을 기록해 두기 위해서 손톱으로 아우렐리아노의 빚을 기록한 자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다 새로운 손톱 장부를 마련했다.

 

 

vertical mark: 세로 줄

 

원문을 우리말로 해석하는 게 쉽지 않다. 어쨌든 손톱손톱 장부는 오역으로 보인다.

 

 

 

 

 

13

 

 

* 원문

  She was irresistible, with a dress she had designed and one of the long shad-vertebra necklaces that she herself had made.

 

 

* 문학사상사 432

  손수 지은 드레스를 입고, 청어 를 모아서 만든 기다란 목걸이를 걸친 그녀의 모습은 정말로 매혹적이었다

 

 

* 민음사 판 2270

  스스로 디자인한 의복을 입고, 송어 척추 뼈로 직접 만든 길다란 목걸이를 걸치고 있는 그녀는 저항하기 어려운 매력을 갖추고 있었다.

 

 

shad: 청어

 

vertebra: 척추 뼈

 

청어는 청어과에 속한 물고기이며 송어는 연어과에 속한 물고기다

 

 

 

 

 

14

 

 

* 원문

  There was a big white dog, meek and a pederast, who would give stud services nevertheless in order to be fed.

 

 

* 문학사상사 435

  그곳에는 또한 먹이를 얻으려고 수컷 노릇을 하는 하얀 암캐도 있었다.

 

 

* 민음사 판 2274

  동성애를 했지만 먹고 살기 위해 종견(種犬) 노릇을 하던 유순한 성격의 흰 수캐 한 마리도 있었다.

 

 

meek: 온순한, 유순한

 

pederast: (젊은 소년을 대상으로 한) 남색에 빠진 사람

 

stud: 종마(種馬)

 

 

 

 

 

 

15

 

 

* 원문

  Years before, when she had reached one hundred forty-five years of age, she had given up the pernicious custom of keeping track of her age and she went on living in the static and marginal time of memories, in a future perfectly revealed and established, beyond the futures disturbed by the insidious snares and suppositions of her cards.

 

 

* 문학사상사 436

  여러 해 전에 그녀는 백마흔 살이 되었는데, 그때부터는 자기의 나이를 헤아리려는 헛된 버릇을 버리고 정체된 추억 속에서 여분의 삶을 살아가면서, 카드가 예시한 내적인 고뇌에 찬, 이미 다 알고 있기 때문에 살아버린 것이나 다름없는 여생을 보내고 있었다.

 

 

정확한 번역은 백마흔 다섯 살이다.

 

 

 

 

 

 

16

 

 

* 원문

  Collons, he would curse. I shit on Canon Twenty-seven of the Synod of London.

 

 

* 문학사상사 442

 

우라질!” 그는 욕설을 퍼부었다. “전부 엿이나 먹어라.”

 

 

* 민음사 판 2283

 

제기랄, 런던 종교회의에서 승인된 교회법 27항에 똥을 처발라 버려야겠어.

 

 

의역문(안정효)과 직역문(조구호)의 차이

 

 

 

 

 

 

17

 

 

* 원문

  Three months later they received in a large envelope twenty-nine letters and more than fifty pictures that he had accumulated during the leisure of the high seas.

 

 

* 문학사상사 443

  석달이 지난 후, 그들은 카탈루냐의 할아버지가 항해를 하는 동안 심심할 때면 틈틈이 써서 모아둔 27의 편지50장이 넘는 예쁜 사진이 들어 있는 커다란 봉투를 하나 받았다.

 

 

오역. 정확한 번역은 ‘29통의 편지.

 

 

 

 

 

 

18

 

 

* 원문

  He sold everything, even the tame jaguar that teased passersby from the courtyard of his house, and he bought an eternal ticket on a train that never stopped traveling.

 

 

* 문학사상사 444

  그는 집 앞마당에 묶어놓고 길들여, 지나가는 사람들을 놀려먹던 표범을 포함한 가지고 있던 모든 것들을 팔아치우고는 영원히 내리지 않는 차표를 사서 기차를 타고 떠나갔다.

    

 

* 민음사 판 2286

  그는 집 마당에서 행인들을 놀리곤 하던 우리 속의 호랑이까지 모든 것을 다 팔아 종점이 없는 열차의 평생 탑승권을 샀다.

 

 

재규어(jaguar)는 아메리카 대륙에만 서식하는 동물이라 아메리카 표범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런데 퓨마(Puma)의 이명이 아메리카 표범이다. 재규어, 표범(Leopard), 퓨마 모두 고양잇과 동물이다. 간혹 재규어와 표범을 동일한 종으로 보는 사람이 있다. 재규어와 표범을 구분하는 방법은 얼룩무늬 형태다. 나무위키의 재규어의 명칭항목의 설명에 따르면 남아메리카 국가에서는 재규어를 호랑이(tigre)라고 부른다. 스페인어 tigre’의 뜻은 호랑이와 재규어다(네이버 스페인어 사전 참조).

 

 

 

 

 

 

에필로그

 

다시 검토해야 할 번역문들이 더 있다. 하지만 필자의 부족한 외국어 독해 실력으로 할 수 없는 일(정확히 말하면 해선 안 되는 일이다)이라 이 글에서 제외시켰다. 번역문을 제대로 검토하려면 스페인어 판본도 함께 확인해야 한다. 그러므로 백 년번역본 2종을 비교 검토한 이 두 편의 글은 반쪽짜리 작업의 결과물이다. 당연히 번역문을 지적한 필자의 견해가 미흡하고 틀릴 수 있다. 필자가 쓴 두 편의 글에 대한 비판은 언제든지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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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0-12-05 15: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대단하다. 한 종으로 읽기도 쉽지 않은데
비교분석본을 만들다니.
요런 거 모아서 책 한 권 내도 좋을텐데 말야.
이런 페이퍼 꽤 되지 않나?

cyrus 2020-12-05 15:51   좋아요 0 | URL
번역 전문가도 아닌 ‘보통의 독자’인 제가 번역을 따지는 내용을 담은 책을 쓰면 역자와 출판사에게 혹독하게 까일 수 있어요.. ㅎㅎㅎ 이런 일은 전문가가 해야 해요.

scott 2020-12-05 15:4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대단!
안정효씨는 영어판 조구호씨는 스페인어판으로 번역했을텐데
이렇게 비교해놓고 보니 출판사쪽에서 제대로 교정은 안한것 같아요.
잘팔리니깐 그냥 내버려두고

마르케스는 영어본 번역이 훨씬더 유려해서(자신이 중구난방 산만하게 쓴 스페인어보다 훨씬 깔끔하게 문장을 엮어서) 많은 국가들이 스페인어 원본이 아닌 영어판으로 번역 출간 했다는데 옆나라 일본도 의역과 직역에 차이가 크네요.
스페인어권번역가 중에 조구호 씨 번역은 그나마 낫다고 생각했는데,,,,
오래전 대학가 신문에 자신이 번역한 마르케스 작품에 대한 글을 기고 하신적이 있는데 독자들한테 완벽하게 전달하려고 직역을 고집했다는걸 읽은 기억이 있어요

보르헤스에 픽션들 번역본도 송병선과 황병하 번역에 차이도 의역과 직역이였어요.
스페인어 원본과 비교해보면 송병선씨는 거의 자신의 언어로 번역해버렸고 황병하님은 한문장 한문장 꼼꼼할정도로 직역하며 상세한 주석을 달아놓으셨는데 보르헤스적인 언어를 이해하는데(여러번 읽으면서)는 황병하님의 번역이 훨씬 낫다고 결론을 내렸죠.
그이유가 지나친 의역이 원문을 훼손해버리는게 더 심각하더군요.


cyrus 2020-12-05 15:59   좋아요 2 | URL
네, 맞습니다. 교정을 제대로 한 출판사 측도 책임도 있어요. 가르시아 마르케스 읽기에 푹 빠져 있을 때 보르헤스 읽기에도 도전하려고 했어요. 개인적으로 저는 주석이 많이 있는 번역본을 선호해요. 주석 때문에 독서 속도가 느려지지만, 오히려 주석이 있어야 내용을 이해할 수 있거든요. ^^

scott 2020-12-05 21: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영어-When he rode the bicycle he would wear acrobat’s tights, gaudy socks, and a Sherlock Holmes cap, but when he was on foot he would dress in a spotless natural linen suit, white shoes, a silk bow tie, a straw boater, and he would carry a willow stick in his hand.



스페인어-Cuando andaba en el velocipedo usaba pantalones de acrobata, medias de gaitero y cachucha de detective, pero cuando andaba de a pie vestia de lino crudo, intachable, con zapatos blancos, corbatin de seda, sombrero canotier y una vara de mimbre en la mano.

우선 스페인어 원문에서 pantalones de acrobata-곡예사 바지
medias de gaitero-‘gaitero‘가 백파이프 medias 는 양말 즉, 백파이프 연주자들이 신는 양말이라는 뜻(조구호 번역이 맞음)
특히 영어번역판에 셜록홈즈의 모자 라고 해석했는데 스페인어 원문에는 cachucha de detective-‘탐정들이 쓰는 모자‘라고 쓰여 있어요.(영어판이 의역 원문에 셜록 홈즈라는 단어가 없음)
안정효 번역에 [그는 자전거를 탈 때면]이라고 해석한 부분 스페인어 원문은[pero cuando andaba de a pie vestia de lino crudo]‘andaba de a pie vestia de lino crudo‘ 자전거를 타고 구석구석(목적없이)돌아다니는 어슬렁거리는 의미입니다. pero cuándo~접속사구 해석을 영어에서 단순히 ‘when‘으로 해서 안정효씨가 그냥00~때라고 번역한것 같습니다.

이단락부분은 영어판이 원문과 다른 의미에 단어 없는단어를 넣고 있는 단어를 뺴버림

스페인어 원문에 충실하게 번역한건 ‘조구호‘
안정효:조구호-50:50인것 같네요.

cyrus 2020-12-05 22:24   좋아요 1 | URL
역시 제가 예상한대로 스페인어 판 문장과 영문판 문장의 표현에 차이가 있었군요. 그럴 줄 알고 ‘백파이프 연주자들이 신는 양말’이라는 번역문에 대해선 오역인지 아닌지 판단하지 않았는데, ‘탐정들이 쓰는 모자’라는 표현을 오역이라고 잘못 지적하고 말았네요. 10번 항목의 내용을 수정해야겠어요. scott님이 인용한 스페인어 문장과 번역문을 분석한 의견을 수렴해서 개정문을 쓰도록 할게요.

혹시 부탁해도 될까요? 두 번째 글의 8번 항목의 ‘성 목요일(민음사 2권 203쪽)’, 13번 항목의 ‘송어(민음사 2권 270쪽)’에 해당되는 스페인어 원문을 확인해주실 수 있어요? 정말 궁금해요. 천천히 확인하셔도 돼요. 알려주신다면 제가 사례로 scott님이 원하는 책 한 권을 주문해서 보내드리겠습니다.

scott 2020-12-06 00: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스페인어 원문8번 항목 - Amaneció muerta el jueves santo. La última vez que la habían ayudado a sacar la cuenta de suedad, por los tiempos de la compañía bananera, la había calculado entre los ciento quince y los ciento veintidós años.
*영어 번역본은 good friday라고 했는데 스페인어 원문(el jueves santo) ‘성목요일‘이라고 되어있네요
‘ ciento veintidós‘는 백 스물 두살이 정확한 뜻입니다.
‘ciento quince‘는 백 열다섯살정도
원문에는 백 열다서살에서 백스물두살 사이 라고 적혀 있어요
스페인어 원문 13번 항목-Era irresistible, con su vestido inventado, y uno de los largos collares de vértebras de sábalo,que ella misma fabricaba.

‘청어뼈( vértebras de sábalo)‘기다란 목걸이‘( los largos collares)

cyrus 2020-12-06 00:38   좋아요 0 | URL
알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어제 제가 스페인어 원문을 확인하지 않고, 주제넘게 번역이 잘못 되었다고 지적했네요. 얼른 고쳐야겠어요.

약속한 대로 책 선물을 드리겠습니다. 선물 받는 일에 부담을 느끼지 않으셨으면 해요. 어제 scott님이 댓글을 단 일은 별거 아닌 일일 수 있겠지만, 제겐 큰 도움을 받은 거나 다름없습니다. 이 댓글을 확인하시면 성함, 주소, 전화번호, 우편번호를 비밀 댓글로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