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달 ‘최해성 책장’의 큐레이팅 주제는 ‘이상한 책장의 앨리스’다. 3월 1일 분홍색 책장에 앨리스와 관련된 책들을 비치해두었다. 동시에 ‘앨리스 컬렉션’으로 선정된 책들을 소개한 글을 인스타그램 계정에 공개했다. 그렇지만 인스타그램에 긴 글을 쓸 수 없어서 책 한 권 한 권 제대로 소개하지 못한 게 아쉬웠다. 그래서 3월이 지나가기 전에 ‘앨리스 마니아’로서의 면모를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글을 써야겠다고 결심했고, 끝내 목표를 달성했다. 막상 써보니 3월의 독서를 결산하는 글 같군. 그나저나 다음 달 책장 주제는 뭐하지? 일단 글을 마무리 지은 다음에 생각해보자.
올해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약칭 ‘앨리스’)의 작가 루이스 캐럴(Lewis Carrol) 탄생 190주년이다. 대부분 사람은 루이스 캐럴을 ‘동화 작가’로 알고 있다. 《앨리스》가 어린 소녀를 위해 만들어진 동화인 건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알고 보면 《앨리스》가 단순히 동화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앨리스》는 후대의 작가와 예술가, 심지어 철학자와 과학자들에게 영감을 준 위대한 고전이다.
* [품절] 스테파니 로벳 스토펠 《루이스 캐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만나다》 (시공사, 2001)
《앨리스》를 제대로 읽으려면 캐럴의 삶과 《앨리스》의 탄생 과정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루이스 캐럴’은 필명이다. 작가의 본명은 찰스 루트위지 도지슨(Charles Lutwidge Dodgson)이다. 캐럴은 아이들과 어울려 놀기를 좋아했는데, 그가 제일 친하게 지낸 아이가 바로 앨리스 리들(Alice Liddell)이다. 옥스퍼드 대학의 크라이스트 처치에서 수학을 전공한 캐럴은 수학 강사가 되었다. 캐럴은 대학 학장인 헨리 리들(Henry Liddell)을 알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리들 세 자매와 친해졌다. 캐럴이 유독 아낀 앨리스는 세 자매 중 둘째다. 캐럴은 말을 더듬는 편이었지만, 아이들 앞에서는 멋진 이야기꾼이 되었다.
캐럴은 앨리스 단 한 사람을 위한 선물을 공들여 만들었고, 그 선물이 《앨리스》다. 하지만 이때 만들어진 《앨리스》는 우리가 알고 있는 제목과 달랐다. 첫 제목은 《땅속 나라의 앨리스》(Alice’s Adventures Under Ground)였다. 캐럴은 삽화도 직접 그렸다. 그러나 정식 출판을 위해 제목이 변경되었으며 캐럴의 그림 대신에 만평 전문 삽화가인 존 테니얼(John Tenniel)의 그림이 포함되었다. 캐럴은 본인의 그림에 만족하지 못했다. 지인의 소개로 존 테니얼을 만났다. 테니얼은 캐럴의 제안에 수락했으며 두 사람은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삽화를 제작했다. 《앨리스》가 성공하자 테니얼은 후속작 《거울 나라의 앨리스》(Through the Looking-Glass and What Alice Found There, 약칭 ‘거울 나라’) 삽화도 그렸다. 《거울 나라》 삽화가 그려지는 과정에서 ‘가발을 쓴 말벌(The Wasp in a Wig)’이라는 제목의 글이 삭제되었다. 테니얼은 말벌을 그리지 못해서 캐럴에게 이 글을 빼자고 제안했다. 결국 캐럴은 ‘가발을 쓴 말벌’을 삭제했고, 삭제된 이야기가 있는 원고의 행방이 한동안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1974년에 원고가 발견되면서 《거울 나라》 무삭제판이 출간되었다.
* [절판] 마틴 가드너, 존 테니얼 그림 《Alice-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거울 나라의 앨리스》 (북폴리오, 2005)
《앨리스》와 《거울 나라》는 어린이를 위한 동화로 알려졌지만, 전체적으로 내용이 난해하다. 앨리스와 여러 등장인물이 나누는 대화 속에 말장난과 난센스가 가득해서 단번에 이해하기 쉽지 않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앨리스》에 매료된 독자와 학자들은 그냥 지나치기 쉬운 단어도 꼼꼼하게 읽고, 분석하고 있으며 이와 관련된 주석을 만들고 있다. 이 주석의 양이 어마어마한데, 수학자 마틴 가드너(Martin Gardner)의 주석이 달린 《앨리스》와 《거울 나라》(The Annotated Alice)는 너무나도 유명하다.
* 마틴 가드너, 루이스 캐럴 《The Annotated Alice: 150th Anniversary Deluxe Edition》 (W W Norton & Co Inc, 2015)
가드너의 주석이 있는 《앨리스》와 《거울 나라》에 삭제된 ‘가발을 쓴 말벌’도 수록되었다. 하지만 번역본은 절판되었다. 가끔 알라딘 중고도서 서점에 정가의 반값으로 매겨진 번역본이 심심찮게 나온다. 정말 앨리스 상급 마니아가 아닌 이상 이 책을 사지 마라. 절판된 번역본은 1999년에 나온 개정 2판이다. 2015년에 《앨리스》 초판본 출간 150주년을 맞아 개정 3판이 나왔다. 여기에 새로운 주석이 추가되었으며 다른 삽화가들이 그린 그림들도 포함되었다. 잡학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앨리스 백과사전’이나 다름없는 《주석 달린 앨리스》를 선호하겠지만, 방대한 양의 주석을 하나하나 쫓아가면서 읽는 일이 상당히 버겁다. 나처럼 오역이나 오탈자 찾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주석 달린 앨리스》를 여러 번 천천히 읽는 것에 도전해보길 바란다. 나는 고작 오역이 확실한 문장 한 개 찾았다.
* 루이스 캐럴, 존 테니얼 그림, 정병선 옮김 《주석과 함께 읽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앨리스의 놀라운 세상 모험》 (오월의봄, 2015)
* 구와바라 시게오 《그림과 사진으로 풀어보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AK커뮤니케이션즈, 2017)
《주석과 함께 읽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그림과 사진으로 풀어보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쉽게 쓰인 《앨리스》 해설서다.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로 나온 《루이스 캐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만나다》도 내용이 충실한 《앨리스》 해설서이지만, 알라딘에서는 ‘품절’ 도서로 나온다. 캐럴이 어린이를 너무 좋아해서 그를 소아성애자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독자에게 《주석과 함께 읽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권하고 싶다. 존 테니얼의 그림이 워낙 유명해서 그런지 캐럴이 《땅속 나라의 앨리스》를 쓰면서 그렸던 그림은 생각보다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그림과 사진으로 풀어보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캐럴의 삽화 몇 점을 확인할 수 있다.
* 앨리스 설탕 《마이 페이버릿 앨리스: 전 세계 61가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초판본을 찾아서》 (난다, 2021년)
*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살바도르 달리 에디션》 (블랙 라벨 특별판)
살바도르 달리 그림 / 문예출판사 (2022년 2월)
※ 블랙 라벨 특별판은 YES24 한정 판매
* 토베 얀손 그림, 한낙원 · 한애경 옮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창비, 2015)
* 쿠사마 야요이 그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문학수첩, 2015)
* 리스베트 츠베르거 그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어린이작가정신, 2009)
* 앤서니 브라운 그림 《앤서니 브라운이 그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살림어린이, 2009)
《앨리스》가 출간된 이후로 전 세계의 삽화가와 예술가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앨리스를 새롭게 창조했다. 《마이 페이버릿 앨리스》는 다양한 《앨리스》 초판본 삽화를 시대별로 소개한 책이다. 이 책에 ‘무민(Moomin)’ 시리즈로 유명한 토베 얀손(Tove Jansson)의 《앨리스》 삽화 일부와 스페인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가 그린 삽화가 포함되어 있다. 그 밖에도 쿠사마 야요이(Kusama Yayoi), 앤서니 브라운(Anthony Browne), 리스베트 츠베르거(Lisbeth Zwerger)의 삽화를 만나 볼 수 있다.
* [품절] 로버트 휴즈 《마그리트 명작 400선》 (마로니에북스, 2008)
요즘 내가 눈길이 가는 《앨리스》는 앤서니 브라운의 삽화가 있는 책이다. 앤서니 브라운의 《앨리스》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화가 르네 마그리트(René Magritte)의 그림을 패러디한 삽화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음에 쓰고 싶은 글은 앤서니 브라운의 《앨리스》 삽화에 관한 주석이다. 마그리트는 《앨리스》를 주제로 한 그림을 몇 점 남기기도 했다. 이 그림들은 《마그리트 명작 400선》에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