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판된 책이 다시 나왔다. 책 제목은 미술과 문학에 나타난 그로테스크. ‘그로테스크(Grotesque)의 정의는 다양하다. 우리말로 쉽게 표현하면 괴상한’, ‘끔찍한’, ‘불쾌한’, ‘기묘한’, ‘으스스한 등이 있다. 흔히 그로테스크라고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정의는 괴상한이다. 그렇지만 시대와 당대에 유행한 문화 양식에 따라 그로테스크의 정의가 조금씩 달라졌고, 여기에 새로운 의미들이 부여되었다. 미술 및 문학 작품 속에 반영된 그로테스크의 풍부한 정의를 분석한 책이 미술과 문학에 나타난 그로테스크
















* 볼프강 카이저 미술과 문학에 나타난 그로테스크(아모르문디, 2023)

 



이 책의 저자인 독일의 문학비평가 볼프강 카이저(Wolfgang Kayser)는 그로테스크의 핵심을 생경해진 세계라고 주장한다. 생경하다, 일상에서 잘 쓰이지 않는 표현이라서 생소하다. 국어사전에 기재된 생경하다의 뜻은 다음과 같다. ‘글의 표현이 세련되지 못하고 어설프다’, ‘익숙하지 않아 어색하다.’ 즉 카이저가 말한 생경해진 세계익숙하지 않아서 어색한 세계. 불합리하고, 비일상적이고,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세계.


















* 움베르토 에코 장미의 이름(열린책들, 2009)

 

* 움베르토 에코 추의 역사(열린책들, 2008)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의 장편소설 장미의 이름의 작중 화자인 아드소는 그로테스크에 매료된 인물이다. 그는 젊은 수련사 시절에 성서를 처음 읽고 난 후 환상을 보기 시작한다. 그래서인지 아드소는 <요한 묵시록> 119(‘지금 본 것을 기록하여라.’)을 떠올리면서 교회의 벽과 기둥에 있는 장식을 아주 상세하게 묘사한다. 아드소는 무엇을 보았을까? 지옥에 나타날 법한 기이한 형상의 괴물과 악마를 묘사한 장식인데, 여기에 탄복한 아드소는 장식된 그로테스크한 존재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열거한다(장미의 이름상권, 16시과). 



 악마의 우화집에 등장하는 모든 짐승들이 추기경 회의를 위해 모인 듯, 옥좌를 향해 영광의 노래(자신들에게는 패배를 뜻하는)를 부르며 옥좌를 보호하고 있다. 판 무리, 양성 동물들, 손가락이 여섯인 축생들, 세이네레스 무리, 켄타우로스 무리, 고르곤 세 자매, 하르피아이, 인쿠부스, 용어(龍漁) 무리, 미노타우로스, 스라소니, 표범, 키마이라, 콧구멍으로 불을 뿜는 카이노팔레스, 악어, 꼬리가 여럿이고 몸에 털이 난 도마뱀 무리, 도롱뇽, 뿔 달린 살모사, 거북이, 구렁이, 등에 이빨이 나 있는 양두수(兩頭數), 하이에나, 수달, 까마귀, 톱니 뿔이 달린 물 파리, 개구리, 그리폰, 원숭이, 루크로타, 만티코라, 독수리, 파란드로스, 족제비, , 후투티, 올빼미, 바실리스크, 최면충(催眠蟲), 긴귀곰, 지네, 전갈, 도마뱀, 고래, 두더지, 올빼미도마뱀, 쌍동(雙胴) 오징어, 디프사스, 녹색 도마뱀, 방어, 문어, 곰치, 바다거북. 이 모든 동물의 무리가 한 동아리가 되어 득실거리고 있었다.



장미의 이름이 나온 지 20여 년이 지난 뒤에 에코는 그로테스크 백과사전이라 불릴만한 책을 썼다. 그 책이 바로 추의 역사. 에코는 이 책에서 아드소의 정신을 마비시킨 그로테스크 미학의 특징을 시대별로 분류했다. 그리고 과거부터 현재까지 그로테스크 미학에 부합되는 문학 작품과 예술 작품들을 모조리 소개하는 등 애서가다운 면모까지 보여준다. 도판이 많이 실려 있지 않은 미술과 문학에 나타난 그로테스크를 먼저 읽은 다음에 추의 역사를 읽기를 권한다. , 고어 장르를 좋아하지 않거나 잔인하거나 징그러운 것을 한 번 보면 시각적 여운을 쉽게 지우지 못하는 독자는 추의 역사를 펼치지 마시라. 깜놀 주의!

 




















* 이미상 외 2023 14회 젊은 작가상 수상 작품집(문학동네, 2023)




2023 14회 젊은 작가상 수상 작품집을 읽은 독자들에게 충격과 공포를 선사했고, 대상작보다 더 많이 거론한 소설이라면 아마도 현호정<연필 샌드위치>일 것이다. <연필 샌드위치> 초반부에 묘사된 연필로 샌드위치를 만드는꿈속 장면은 그로테스크하기 때문이다. 꿈속 세계는 생경하다. 왜 꿈에서 연필로 샌드위치를 만들려고 하는지 묻지도 말고, 따지지도 말자. 여기에 의미를 찾으려고 하거나 억지로 꿈의 상징을 해석하려는 순간 그로테스크한 매력이 사라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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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3-06-05 1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코의 <추의 역사>는
오래 전에 사두기만 하고
역시 쓰담쓰담만 하네요.

<장미의 이름>은 정말
읽을수록 진국이라는.

cyrus 2023-06-06 09:22   좋아요 1 | URL
요즘 <장미의 이름>을 읽기 시작한 이후로 가톨릭 성인과 신학자들에 관심이 생겼어요. 이들 중 몇 사람은 중세 철학과 관련되어 있거든요. <추의 역사>도 언젠가는 절판될 수 있으니 소장하고 있으세요. ^^

삽하나 2023-07-09 12: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여름 특집 도서로 딱이네요!! >ㅅ < 잘 읽었어요 :) 어서 장바구니에 주섬주섬...
 




그것이 삶이었는가? 좋다! 한 번 더!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중에서, 김인순 옮김, 208)





최근 들어 내가 읽고 있는 책들에 신기한 공통점이 있다. 이 책들 모두 예전 독서 모임에 활동하면서 한번 읽은 것들이다.

















[대구 장르문학 전문 서점 <환상 문학>-금요 독서 모임 5월의 책] 

* 올더스 헉슬리, 안정효 옮김 멋진 신세계(소담출판사, 2015)



[우주지감-나를 관통하는 책 읽기 20181월의 책]

올더스 헉슬리, 이덕형 옮김 멋진 신세계》 (문예출판, 2018)

올더스 헉슬리, 이덕형 옮김 멋진 신세계》 (문예출판, 1998)



















[대구 장르문학 전문 서점 <환상 문학>-금요 독서 모임 5월의 책] 

* 조지 오웰, 한기찬 옮김 1984(태일소담출판사, 2021)


* 조지 오웰, 정회성 옮김 1984(민음, 2003)




20181월에 나를 관통하는 책 읽기모임에 처음 참석했다. 선정 도서는 멋진 신세계였다. 내가 읽은 것은 문예출판사 판본이었다


당시 나를 관통하는 책 읽기 모임은 오전 반저녁 반으로 나누어서 진행되었다. 나는 저녁 반(2018125)’에 참석했고, 모임 장소는 <읽다 익다>였다. 책방 안에 중년 여성 한 분이 혼자 있었고, 그분은 클래식 음악을 듣고 있었다. 그분은 어색함을 깨뜨리려고 내게 먼저 말을 걸었다. 클래식 음악에 대해 한참 대화하다가 그분이 대화 주제를 바꾸더니 페미니즘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나는 페미니즘에 거부감을 느끼지 않았고, 우리는 페미니즘과 관련된 대화를 쭉 이어 나갔다. 그러더니 그분은 자기가 참석하고 있는 대구 페미니즘 독서 모임이 있다면서 소개했다. 그 모임명은 <레드스타킹>이다.






사진 출처: <환상 문학>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p/CrKP2wDJqyh/




이번 달 <환상 문학> 금요 독서 모임 도서의 주제는 디스토피아. 멋진 신세계조지 오웰(George Orwell)1984는 가장 유명한 디스토피아 고전이다. 이 두 권을 이번 달에 읽어야 한다(!)512일은 멋진 신세계독서 모임이 있는 날이고, 526일에 1984독서 모임이 진행된다198420대 때 읽은 책이라서 올해 다시 읽는다.




















[대구 인문학 서점 <일글책>-온라인 독서 모임 5, 6월의 책]

* 움베르토 에코, 이윤기 옮김 장미의 이름: 디 에센셜 1(열린책들, 2022, 교보문고 한정판)


[우주지감-나를 관통하는 책 읽기 2018년 5월의 책]

움베르토 에코이윤기 옮김 《장미의 이름(열린책들, 2009, 2)



움베르토 에코이윤기 옮김 《장미의 이름 작가 노트》 (열린책들, 2009)




정확히 5년 만장미의 이름를 다시 읽는다. <일글책-온라인 독서 모임>하루 10분 책을 읽는 모습을 타임랩스(동영상)로 촬영해서 카톡 채팅방에 인증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크고 아름다운 벽돌 책 장미의 이름: 디 에센셜 1를 두 달에 걸쳐 완독하는 것이 <일글책-온라인 독서 모임>의 목표다.






사진 출처: <일글책>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p/CrnQGGHrfIt/




장미의 이름: 디 에센셜 1장미의 이름 작가 노트가 수록되어 있다. 그리고 장미의 이름번역에 문제를 제기한 강유원이 번역한 <장미의 이름을 여는 열쇠>라는 글도 실려 있다. 이전에 나온 두 권짜리 번역본에 없는 글이다.


















[<카페 스몰토크> 니체 읽기 모임 도서]

* 프리드리히 니체, 박찬국 옮김 비극의 탄생(아카넷, 2007)


[<카페 스몰토크> 니체 읽기 모임 도서]

* 프리드리히 니체, 김인순 옮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열린책들, 2015)



2021년과 2022년은 읽고 서평을 쓰는 삶으로서 제대로 살아가지 못한 해였다. 그래도 2년 동안 <카페 스몰토크-니체 읽기 모임>을 한 것이 내 삶에서 가장 큰 수확이었다<카페 스몰토크><레드스타킹> 모임 장소이기도 하다니체 읽기 모임은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끝으로 작년 말에 마무리되었다.


비극의 탄생을 다시 읽고 싶어서 올해 1월부터 시작된 <일글책-시카고 플랜 인문 철학 고전 읽기 모임>을 신청했다. <일글책-고전 읽기 모임> 공지 게시글이 나오기 전인 연말에 나는 비극의 탄생을 다시 읽을 겸 고대 그리스 비극도 읽으려고 했다. 신기하게도 <일글책>이 내 독서 계획 실행에 일조한 셈이다. <일글책-고전 읽기 모임>이 없었으면 계획만 세우고 안 읽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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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3-05-05 18: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장미의 이름은 두 권으로 나온 책이었는데, 요즘엔 합본이 되어서 한 권으로 나왔을거예요.
저는 이윤기 번역본을 읽었는데, 지금은 작고하셔서, 시간 지나면 다른 번역자의 책도 나올 수 있겠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cyrus님, 편안한 휴일 보내세요.^^

cyrus 2023-05-07 11:39   좋아요 1 | URL
새로운 역자의 번역, 주석이 새로 추가된 <장미의 이름> 번역본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

새파랑 2023-05-06 0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묻고 더블로가‘ 인건가요?ㅎㅎ 독서모임하면 책도 잘 읽히고 더 재미있을거 같습니다~!!

cyrus 2023-05-07 11:40   좋아요 1 | URL
읽을 책이 너무 많아서 힘들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재미있어요. 일단 지금은 아주 좋습니다. ^^
 




감각의 박물학을 번역한 분은 백영미 씨다. 이분이 번역한 책 중에 가장 많이 팔린 책은 황금가지 출판사에서 나온 셜록 홈즈 전집이다.

















 


* [개정판???] 다이앤 애커먼, 백영미 옮김 감각의 박물학(작가정신, 2023)


* [구판 절판] 다이앤 애커먼백영미 옮김 감각의 박물학》 (작가정신, 2004)




















* 아서 코난 도일, 백영미 옮김 셜록 홈즈 전집 3: 바스커빌 가문의 개(황금가지, 2002)


* 아서 코난 도일, 백영미 옮김 셜록 홈즈: 더 얼티밋 에디션(왓슨 편)(황금가지, 2018)

 


 

감각의 박물학초반부에 셜록 홈스가 언급된 내용이 있다감각의 박물학의 저자 다이앤 애커먼(Diane Ackerman)은 홈스 시리즈 중 하나인 장편 바스커빌 가문의 개에 나온 홈스의 말을 인용한다.

 

 

* 18


 셜록 홈스는 바스커빌가의 개에서 한 여성을 편지지의 냄새로 알아보며, 일흔아홉 가지 향수가 있는데, 수사관이라면 그 정도는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A Natural History of the Senses> 5]

 

 In “The Hound of the Baskervilles,” Sherlock Holmes identifies a woman by the smell of her notepaper, pointing out that “There are seventy-five perfumes, which it is very necessary that a criminal expert should be able to distinguish from each other.”



그런데 일흔아홉 가지의 향수는 오역이다. 원문은 ‘seventy-five perfumes’. 번역하면 일흔다섯 가지의 향수여야 한다. 바스커빌 가문의 개감각의 박물학원서를 살펴보면 ‘seventy-five perfumes’라는 단어를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백영미 씨가 번역한 바스커빌 가문의 개를 살펴보자. 이 책에서는 번역이 잘 되어 있다.

 


* 바스커빌 가문의 개286

셜록 홈즈: 더 얼티밋 에디션(왓슨 편271

 

 “세상에는 75의 향수가 있는데 범죄 전문가라면 반드시 그 냄새를 구분할 줄 알아야 하지.”

 


절판된 감각의 박물학구판(18)에도 오역이 그대로 있다단순히 번역자의 사소한 실수로 보면 안 된다. 책을 만든 편집자도 오역을 방기한 책임이 있다, 다시 한번 감각의 박물학을 펴낸 번역자와 편집자들에게 묻는다(여기서 내가 항의해봤자 그들은 무반응으로 일관하겠지만). 구판에 있는 오역을 확인해보지 않고, 고치지 않은 이 책이 정말 개정판이라고 생각하시는가?



역자는 피라냐식인 물고기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원서에는 식인 물고기에 해당하는 단어가 없다.



* 233~234


 아마존강 유역에서 온 친구는 메인 코스로 호두 버터 맛이 나는 가위개미와 구운 거북 그리고 식인 물고기 피라냐의 맛있는 살을 택한다.


[<A Natural History of the Senses> 134]


 Our Amazonian friend chooses the main coursenuptial kings and queens of leaf-cutter ants, which taste like walnut butter, followed by roasted turtle and sweet-fleshed piranha.



역자도 그렇고, 대다수 사람은 피라냐가 날카로운 이빨로 다른 물고기의 살뿐만 아니라 인간의 살까지 뜯어 먹는다고 믿고 있다. 영화에서는 피라냐가 식인 물고기처럼 나오니까.
















* 매트 브라운, 김경영 옮김, 이정모 감수 개가 보는 세상이 흑백이라고?: 동물 상식 바로잡기(동녘, 2023)



 

그러나 피라냐의 공격성은 과장되었다. 피라냐는 죽은 물고기의 살을 먹기도 한다. 피라냐 떼에 갑자기 가까이 가지만 않는다면 그들은 얌전하게 제 갈 길을 간다. 그리고 또 인간의 살을 먹으려고 공격하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피라냐 떼가 있는 물속에서 수영할 수 있다. 실제로 피라냐 떼에 공격받아 치명상을 입었거나 사망한 사례는 드물다(참고: 개가 보는 세상이 흑백이라고?: 동물 상식 바로잡기》 「피나랴가 사람을 물어뜯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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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3-04-09 2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서를 일일이 대조해서 읽기 전에는 알 수 없는 부분이네요.
책을 읽으면 번역이 된 상태로 읽게 되니까요.
하나씩 찾아서 읽으면 좋지만, 그렇게 하기는 어렵지요.
잘 읽었습니다. cyrus님, 편안한 주말 보내세요.^^

cyrus 2023-04-12 06:33   좋아요 1 | URL
책을 읽다가 이상하건 애매한 단어나 표현이 눈에 들어오면 일단 의심해봅니다. 구글에 검색만 잘하면 원서에 있는 구절을 찾을 수 있어요. 그렇지만 모든 원서가 전체 공개가 된 게 아니라서 아예 못 찾는 경우가 있어요. ^^;;
 





난 잃어버린 나를 만나고 싶어

모두 잠든 후에 나에게 편지를 쓰네

 

- 신해철 노래 <나에게 쓰는 편지> 중에서 -






오늘 진행되는 니체(Nietzsche) 읽기 모임을 위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줄여서 차라투스트라’)를 오랜만에 펼쳤다. 11년 만에 다시 읽었다.





















* 프리드리히 니체, 김인순 옮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열린책들, 2015)


* 프리드리히 니체, 홍성광 옮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펭귄클래식코리아, 2009)




이번에 읽은 번역본은 열린책들 판본이다11년 전에 읽은 책은 펭귄클래식 판본인데, 그때도 읽기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서 읽었다지금도 11년 전의 읽기 모임을 기억하고 있다. 왜냐하면 처음으로 발제를 맡았기 때문이다.


당시 읽기 모임에 관한 기록이 알라딘 블로그에 있다. 읽기 모임 날짜는 2011312, 그날도 토요일이었다! 20대의 나는 발제를 준비하느라 니체와 관련된 책들을 찾아가며 읽었다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책만 잔뜩 빌렸지 제대로 읽지 않았다. 어떻게든 발제문을 잘 만들어야겠다는 욕심이 앞섰고, 니체의 철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책의 내용을 발췌했다내 기준으로 괜찮은 내용을 모아 짜깁기한 셈이다허술하게 발제문, 아니 발췌문을 만들었으니 모인 진행이 미숙했다. 모임 후기도 썼는데, 이 글에 발제문이 수록되어 있다니체의 철학을 간략하게 정리한 발제문이라기보다는 니체의 생애를 요약 정리한 글이다글이 허접하다. 내용이 너무 뻔한데다가 차라투스트라를 읽으면서 접한 니체 철학에 대한 내 견해가 단 한 줄도 없었다니체를 만난 20대의 내 모습을 보고 싶었는데‥…. 과거의 나를 볼 수 없어서 슬프면서도 부끄럽다그때 책을 읽었을 때 나를 잊어버린 걸까, 아니면 지적 허영심이 강해서 책을 제대로 읽은 나를 잃어버린 걸까?


읽기 모임을 하기 5일 전에 쓴 글에 나는 이렇게 썼다. 늘 그랬지만, 과거에 쓴 글은 비문에다가 띄어쓰기가 엉망이다.



 만약에 니체의 사상을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된다면 본격적으로 니체의 다른 책들도 섭렵하고 싶다. 단순히 독서 모임 발제를 위한 수박 겉핥기식 독서보다는 깊이 있으며 나의 정신적인 성장을 위한 거쳐야[주] 할 어려운 공부라는 마음으로 독서하고 싶은 것이다. 혼자서 어려운 고전을 공부한다는 게 무모한 일이지만 스스로 즐긴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해볼 생각이다.


 

P.S 

 이 책들 이외에도 니체의 사상에 대해서 읽어볼만한 책들이 있으면 소개해주세요.

 


[주] 성장을 위해 거쳐야라고 써야 한다.



이 글을 쓰고 10년 후에 나는 본격적으로 니체의 다른 책들을 섭렵하기 시작했다. 작년 5월에 시작한 니체의 저서 열 권을 읽는 독서 모임에 참석했다






























* 프리드리히 니체 이 사람을 보라: 어떤 변화를 겪어서 어떤 사람이 되었는지(세창출판사, 2019)


* 프리드리히 니체, 강영계 옮김 30% 원서 발췌, 선악의 저편: 미래 철학의 서곡(지만지, 2020)


프리드리히 니체박찬국 옮김 선악의 저편》 (아카넷, 2018)


* 프리드리히 니체, 박찬국 옮김 도덕의 계보(아카넷, 2021)


* 프리드리히 니체, 박찬국 옮김 우상의 황혼(아카넷, 2015)

 

 


첫 번째 책은 이 사람을 보라니체가 자신의 생애와 철학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쓴 마지막 책이다이어서 읽은 책은 선악의 저편, 도덕의 계보, 우상의 황혼이다코로나19 재유행으로 인해 우상의 황혼을 마지막으로 읽기 모임이 중단되었다. 만약에 읽기 모임이 계속 진행되었으면 올해 여름에 읽기 모임 마지막 책인 차라투스트라를 완독했을 것이다. 오랜 휴식기를 마치고 차라투스트라로 읽기 모임이 다시 시작된다.


철학에 무지했던 20대의 나는 추신으로 니체와 관련된 책을 추천해달라고 말했다. 20대의 싸군(싸이러스 군)! 네가 정말로 니체 철학을 제대로 알고 싶으면 이 사람을 보라부터 먼저 읽어. 차라투스트라》는 나중에 읽어당부하건대, 제발 시간에 쫓기듯이 책을 급하게 읽지 마
















* 프리드리히 니체, 박찬국 옮김 아침놀(책세상, 2004)




니체는 글을 느리게 쓰는 편이야. 그래서 아침놀 서문에서 자신의 책을 느린 가락의 친구라고 했어. 니체의 친구들을 읽으려면 인내심이 있어야 해. 깊이 생각하면서, 섬세한 손과 눈으로, 천천히, 깊이, 전후를 고려하면서(아침놀)’ 읽어야 해. 그러면 니체를 잘 읽을 수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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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2-10-08 10:41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잘 알려진 철학자의 책 앞에서는 일단 읽어내고 싶다는 허영심과 제대로 이해하고 싶다는 진정한 욕구가 항상 경합하는것 같아요. 저도 늘 허영심에 자리를 내줬는데 남은 삶은 니체,프로이트를 제대로 공부해보고 싶습니다^^ 사이러스님 응원합니다!

cyrus 2022-10-09 11:55   좋아요 2 | URL
맞아요. 책 읽는 저의 20대는 무슨 책이든 열심히 읽으려는 의욕이 넘쳤고 내가 어려운 책을 읽었다는 것을 뽐내고 싶었어요. ㅎㅎㅎ

stella.K 2022-10-08 10:5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제목만 읽고는 싸군이 가을을 타는가 보구만 했더니 니체 옹 얘기였구만. 11년만이라니 감회가 새롭겠어. 열심히 잘 해 봐.😊

cyrus 2022-10-09 11:56   좋아요 3 | URL
올해 연말에 니체와 관련된 글이 많이 나올 거예요. ^^

얄라알라 2022-10-08 18:0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는...항상 탄복하면서 cyrus님의 정교한 거름망 읽기 흔적을 따라가는데요.
본인의 11년 전 글에서도 고칠 부분을 찾아내셨네요...

신체능력이나 암기력(?) 등등 많은 부분에서 나이가 들수록 후퇴 흔적을 보는데
사람이 쓰는 글만큼은 그렇지 않을 수 있겠구나

희망을 가져봐야겠습니다^^

cyrus 2022-10-09 11:58   좋아요 3 | URL
글을 다 쓰면 태그를 반드시 남겨요. 그러면 태그를 통해서 예전에 쓴 글을 확인할 수 있어요. 20대에 쓴 글을 볼 때마다 감회가 새롭고, 부끄럽고, 슬프고, 신기하고, 아무튼 여러 감정이 듭니다. ^^;;

mini74 2022-10-08 21:5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어려운 공부라는 마음으로 독서하고 싶은 것이다 란 사이러스님 마음가짐 참 좋고 배우고 싶습니다. ㅎㅎ항상 좋은 글 잘 읽고 있어요 *^^* 고맙습니다 ~

cyrus 2022-10-09 11:59   좋아요 3 | URL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책을 읽으면서 공부하려고 합니다. ^^

새파랑 2022-10-09 18: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초딩때 신해철의 ‘나에게 쓰는 편지‘를 듣고 니체랑 고흐를 처음으로 알았습니다만 니체는 감히 읽을 생각이 안들더라구요 ㅋ

cyrus 2022-10-09 16:44   좋아요 3 | URL
어른도 어려워하는 니체인데 초등학생이 읽기에는 너무 어려워요. ㅎㅎㅎ

그레이스 2022-10-12 2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니체!
읽다 만 책이 도덕의 계보 등 여러권 있습니다.
니체전집 보고 뿌듯해만 하고 있죠!^^
 











대구 페미니즘 독서 모임 레드스타킹 신비롭지 않은 여자들: 여성과 과학 탐구두 번째 읽기 모임(2022723, 카페 스몰토크) 후기


















[레드스타킹 7월에 읽은 책] 

* 임소연 《신비롭지 않은 여자들: 여성과 과학 탐구》 (민음사, 2022)





신비롭지 않은 여자들: 여성과 과학 탐구두 번째 읽기 모임이 한 주 연기되는 바람에 독서 분량이 늘어났어요. 원래 읽어야 할 범위는 4~6장이었어요. 여기에 세 장이 더 추가되어 9장까지 읽어야 했습니다. 4장은 한때 과학이 주목하지 못한 태반의 역할을 중심으로 임신의 원리를 설명합니다. 5장은 임신과 태아의 건강에 영향을 주는 아버지의 역할을 살펴봅니다. 6장은 난자 냉동 기술의 실태와 한계를 소개합니다. 7장과 8장은 여성 차별을 조장하는 인공지능 기술과 로봇 기술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논합니다. 9장은 진화론을 옹호하면서도 페미니즘의 시각에서 비판해온 페미니스트 진화론자들의 업적을 보여줍니다.

















* 찰스 로버트 다윈, 장대익 옮김 종의 기원(사이언스북스, 2019)

* 찰스 로버트 다윈, 김관선 옮김 종의 기원(한길사, 2014)

* 장바티스트 드 파나피외 가볍게 꺼내 읽는 찰스 다윈(북스힐, 2020)





신비롭지 않은 여자들은 들고 다니기 편한 책이라서 저는 틈만 나면 이 책을 여러 번 읽었어요. 계속 읽어 보니 아쉬운 대목이 한두 개 보였어요. 저자는 9장에서 진화론에 호의적이지 않은 페미니스트라는 통념을 반박하기 위해 ‘1세대 다윈주의 페미니스트를 언급합니다(134~136). 1세대 다윈주의 페미니스트는 찰스 다윈(Charles Robert Darwin)의 저서 종의 기원에 나온 진화론에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구약 성경 창세기』 편은 신이 7일 동안 세상을 창조하고, 최초의 인간 아담(Adam)을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신은 외로운 아담을 위해 그의 갈비뼈로 최초의 여자를 만들었습니다. 이름 없는 여자는 선악과를 먹은 죄로 아담과 함께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습니다. 쫓겨나기 직전에 아담은 여자에게 하와(Ḥawwāh)’라는 이름을 붙여줬습니다. 하와는 생명을 뜻하는 히브리어입니다유럽인들은 세상과 인간을 신의 창조물로 보는 성경 속 내용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서 살아왔습니다. 그런 오래된 믿음을 뒤흔들어놓은 책이 바로 종의 기원입니다다윈은 이 책에서 인간과 동물이 하나의 조상 종에게 나와서 어떻게 진화했는지 과학적 증거를 제시하면서 설명합니다.


종의 기원을 읽은 페미니스트들은 진화론을, 여성을 열등한 존재로 보는 성경의 권위에 맞설 수 있는 지적 무기로 받아들였습니다프랑스의 페미니스트 클레망스 루아예(Clémence Royer)는 종의 기원》을 자국어로 번역했습니다. 그런데 루아예는 진화의 개념을 잘못 알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진화론에 열광한 남성 지식인들처럼 진화를 진보와 같은 의미로 이해했습니다


















[우주지감 나를 관통하는 책 읽기 4월에 읽은 책] 

* 브라이언 헤어, 버네사 우즈 공저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친화력으로 세상을 바꾸는 인류의 진화에 관하여(디플롯, 2021)

 

* 다니엘 S. 밀로, 이충호 옮김 굿 이너프: 평범한 종을 위한 진화론(다산사이언스, 2021)


* 스티븐 제이 굴드 《다윈 이후》 (사이언스북스, 2009)

















* 앤 커, 톰 셰익스피어 공저, 김도현 옮김 《장애와 유전자 정치: 우생학에서 인간게놈프로젝트까지》 (그린비, 2021)


* 김호연 《유전의 정치학: 강제 불임에서 나치의 대학살까지》 (단비, 2020)


* [품절] 앙드레 피쇼 《우생학: 유전학의 숨겨진 역사》 (아침이슬, 2009)





다윈이 생각한 진화는 모든 종이 환경에 적응하면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떤 종은 다른 종과 협력하면서 살아가기도 합니다(공진화). 그는 자연이 점점 더 좋아지는 쪽으로 발전하지 않는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루아예를 비롯한 일부 진화론자들은 진화가 강한 자만 살아남도록’ 작동된다고 믿었습니다. 다윈의 의도와 완전히 다른 적자생존 진화론을 강조하면서 사회 전체에 적응하려고 했습니다. 진화에 잘 적응한 강한 자들이 더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믿었던 거죠. 그들은 진화에 적응하지 못해 밀려난 존재를 ‘신체적으로 약하고 열등한 자’로 규정했습니다. 그런 존재의 등장을 막거나 제거하는 사회 정책이 도입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렇게 진화의 개념을 오용한 진화론자들은 우생학 전파에 동참했습니다.


루아예는 우생학적 관점으로 종의 기원을 해석했고, 자신만의 견해를 종의 기원프랑스어 번역본에 추가했습니다. 다윈은 루아예가 번역한 종의 기원을 읽다가 크게 실망했습니다. 루아예는 우생학과 관련된 구절과 참고문헌이 삭제된 2판 번역본을 내놓았지만, 다윈의 분노를 달래지 못했습니다. 다윈은 다른 프랑스인 번역가에게 종의 기원번역을 맡겼습니다.


신비롭지 않은 여자들의 저자 임소연여성이 진화론의 오랜 친구이자 비판자’였다고 주장합니다(134쪽). 글쎄요, 저는 우생학에 열광한 페미니스트들은 진화론의 친구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신비롭지 않은 여자들읽기 모임에 꾸준히 참석한 분들은 읽으면 읽을수록 책의 한계가 하나둘씩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저자가 각 장의 글에서 다룬 주제에 대해 좀 더 상세하게 설명하지 않아서 아쉽다는 평이 있었습니다. 책은 총 열두 장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열두 편의 글은 원래 신문에 연재되었던 글입니다. 아무래도 지면상 한계 때문에 저자가 길게 쓰지 못했을 것입니다저자는 과학은 여성의 친구임을 여러 차례 강조합니다. 글에서 드러난 저자의 태도가 일방적으로 독자에게 가르치는 것 같아서 거부감이 느껴졌다는 분이 있었습니다.


신비롭지 않은 여자들과학과 페미니즘이라는 주제와 관련된 방대한 내용을 깔끔하게 정리한 책이긴 합니다만, 이 책 한 권만 읽고 주제를 갈무리할 수 없습니다. 이 책에 다루지 못한 내용이 남아 있거든요. 따라서 신비롭지 않은 여자들은 비판적인 읽기가 필요한 책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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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족 2022-07-25 08: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레슨 인 케미스트리,라는 소설을 읽었는데 뭔가 과학에 대한 우상화,가 느껴졌어요^^;;

cyrus 2022-08-01 08:45   좋아요 0 | URL
별족님이 언급한 그 책, 제가 좋아하는 책일 수 있겠어요. 제가 좋아하는 책이란 까야 할 게 많은 책입니다. ^^

별족 2022-08-01 09:29   좋아요 0 | URL
음, 이 책은, 음. 로맨스 소설이라서 못 읽으시지 않을까.

cyrus 2022-08-02 19:01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제가 로맨스 소설 안 읽는 거 잘 아시네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