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에로스(Eros, 로마식 이름은 쿠피도(Cupido))의 연인 프시케(Psyche)‘영혼’‘나비’를 의미한다. 그녀가 그림 속 주인공으로 등장하면 그녀 옆엔 나비가 날아다닌다.

 

 

 

 

 

 

 

 

 

 

 

 

 

 

 

 

 

 

 

 

 

 

 

 

 

 

 

 

 

 

 

 

 

 

 

 

 

 

 

 

 

 

 

 

 

 

 

 

* 루키우스 아풀레이우스 《황금 당나귀》 (매직하우스, 2007)

* 루키우스 아풀레이우스 《청소년을 위한 황금 당나귀》 (매직하우스, 2008)

* 오비디우스, 이윤기 역 《변신 이야기 1》 (민음사, 1998)

* 오비디우스, 천병희 역 《원전으로 읽는 변신 이야기》 (도서출판 숲, 2005)

* 이윤기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1》 (웅진지식하우스, 2000)

* 루치아 임펠루소 《그리스 로마 신화, 그림으로 읽기》 (예경, 2008)

 

 

 

아프로디테(Aphrodite)의 미움을 받고도 갖은 고초 속에 에로스와의 사랑을 이룬 프시케는 순수한 영혼의 힘으로 천상의 사랑을 쟁취한다. ‘육체적 사랑’을 상징하는 쿠피도를 만나려는 프시케의 험난한 여정은 육체와 정신이 합일하는 ‘완전한 사랑’으로 성장하는 과정이다.

 

 

 

 

 

 

 

 

 

 

 

 

 

 

 

 

 

 

 

* 샤먼 앱트 러셀 《나비에 사로잡히다》 (북폴리오, 2005)

* 미야시타 기쿠로 《모티프로 그림을 읽다》 (재승출판, 2015)

 

 

 

나비는 세계 어디서나 사랑받는 곤충이다. 모든 대상을 이분법으로 바라보는 것을 좋아하는 인간은 곤충을 ‘익충’과 ‘해충’으로 나뉜다. 인간이 가장 좋아하는 익충이 바로 나비가 아닐까 싶다. 나비는 ‘봄의 전령사’다. 겨울 동안 보이지 않던 나비가 따뜻한 봄과 함께 꽃들 사이로 날아다니면 누구나 반가움이 앞선다. 그래서 나비는 생명의 새로운 부활이 시작되는 봄과 잘 어울리는 곤충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묘지 주변에 날아다니는 나비를 망자의 영혼으로 생각했다. 애벌레가 번데기 상태가 되어 동작을 멈춘 모습은 사람이 관(棺) 속에서 지내는 것과 같다. 딱딱한 껍데기를 뚫고 나비로 변신해 날아다니는 모습은 육신에 갇혀있던 인간의 영혼이 해방돼 자유로워지는 것과 비슷하다. 아일랜드에는 다양한 요괴 및 요정이 등장하는 전설이 많다. 신비롭고 영적인 이야기를 많이 접한 아일랜드 사람들은 흰나비를 죽은 아이의 영혼이 있는 곤충으로 여겼다. 그래서 아일랜드 사람들은 흰나비를 함부로 죽이지 않았다고 한다. 폴란드의 유대인 강제수용소 건물에 가보면 벽에 그려진 나비 그림이 있다. 그곳에서 비참하게 죽음을 맞이할 유대인 포로들이 부활을 염원하는 마음을 간절하게 표현하기 위해 나비 그림을 그렸던 것이다.

 

 

 

 

 

 

 

 

 

 

 

 

 

 

 

 

 

 

* 김영하 《아랑은 왜》 (문학동네, 2010)

 

 

 

우리나라에서는 나비를 ‘한이 맺힌 영혼’이 깃든 영물로 취급해 왔다. 경남 밀양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아랑 전설’에 나비가 등장한다. 이조 명종 때 밀양부사의 외동딸인 아랑(阿娘, 본명은 윤동옥)은 자신을 탐하는 관노에게 억울한 죽음을 맞는다. 귀신이 된 아랑은 새로 부임하는 밀양부사들의 목숨을 빼앗는다. 신임 밀양부사인 이상사는 그녀의 한을 풀어주기로 약속했고, 아랑의 혼은 이상사에게 범인을 알려주기 위해 ‘흰나비’로 변신한다. 나비가 된 아랑의 혼은 자신을 죽인 관노의 갓 위에 앉았고, 그것을 확인한 이상사는 관노에게 벌을 내린다.

 

일본인들도 나비를 망자의 혼이 변한 곤충이라고 생각한다. 오키나와에서는 밤에 나비가 날아다니는 것을 불길한 징조로 여긴다. 저작권을 무시하고, 일본의 요괴 모음집을 참고하여 만든 《세계의 요괴 도감》(사과나무, 1992)에 나비에 관한 일본 전설이 나온다.

 

 

 

야마가타 지방의 자오 산 기슭을 걷던 한 여행자가 한 채의 초가집을 발견했다. 몹시 지쳐서 잠시 쉬었다 가려고, 여행자는 문을 두드리며 주인을 불렀다. 그러나 아무도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그래서 여행자는 그냥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그 순간, 여행자는 비명을 지르며 그 자리에 멈춰 서고 말았다. 초가집 안은 몇 천 마리나 되는 나비들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이윽고 정신을 가다듬은 여행자는 이 나비 떼들을 자세히 살펴보려고 했다. 그러면서도 자기도 모르게 들창문을 열었다. 그러자 나비들은 일제히 날아올라 마치 무지개처럼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그런데 그 나비들이 다 사라지고나자, 여자의 검은 머리카락만 남아 있는 백골이 나타났다.

 

여행자는 무서운 나머지 여행의 피로도 잊고, 사람들이 사는 마을로 달려갔다. 마을에서 사람을 만나 그 이야기를 하자, 마을 사람은 이렇게 대답했다.

 

“그 집에 살던 여자는 살아 있을 때 나비를 무척 좋아해서 언제나 나비를 따라다니며 살았어요. 그런데 언제부턴가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되었고, 어느 날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녀의 시신은 아무도 돌보지 않는 곳에 방치되었어요. 시간이 지나니까 몸 안에서 구더기가 생겨나, 그것이 나비가 되었을 겁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여행자는 여자가 죽어서 나비가 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 《세계의 요괴도감》에서 발췌함.

 

 

 

 

 

 

 

 

 

 

 

 

 

 

 

 

 

 

 

 

※ 히사오 주란의 『곤충도』가 수록된 번역본

 

* 정태원 역 《공포특급 6 : 일본 편》 (한뜻, 1996)

* 이진의, 임상민 역 《스릴의 탄생 : 일본 서스펜스 단편집》 (시간여행, 2010)

* 엄진 역 《그림자 없는 범인 : 일본 추리소설 단편집》 (페가나북스, 2012, e-Book)

 

 

 

일본의 소설가 히사오 주란(久生十蘭)의 『곤충도』는 ‘망자의 혼=나비’ 모티프를 소재로 한 쓴 짤막한 분량의 소설이다. 추운 11월인데도 어느 화가의 집에 있는 다다미방 안에 파리 떼가 날아다닌다. 일주일 뒤에는 엄청나게 많은 나비 떼가 나타난다. 이 소설에서 나비는 비밀에 가려진 소름 끼치는 진실을 알려주는 자연적인 신호다. 그러나 화가 부부는 다다미방 안에 숨겨진 ‘진실’이 무엇인지 눈치 채지 못한다.

 

 

 

 

 

 

 

 

 

 

 

 

 

 

 

 

 

* 허버트 조지 웰스 《허버트 조지 웰스 : 눈먼 자들의 나라 외 32편》

(현대문학, 2014)

 

 

 

허버트 조지 웰스(Herbert George Wells)『나방』은 나방만 보면 정신을 못 차리는 사람의 이야기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 해플리는 사람을 죽인 죄책감에 시달린다. 그는 자신이 죽인 사람의 혼이 나방을 변한 것이라고 믿게 되고, 나방을 볼 때마다 무서움에 벌벌 떤다.

 

 

 

 

 

 

 

 

 

 

 

 

 

 

 

 

 

 

* 구사노 다쿠미 《환상동물사전》 (들녘, 2001)

 

 

 

나방도 나비와 비슷하게 생겨서 그런지 인간의 지나친 상상력 때문에 사악한 존재가 된다. 미국 웨스트버지니아 주에 나방 형체의 괴생명체 ‘모스맨(Mothman, 나방 인간)’을 목격했다고 사람들의 증언과 모스맨으로 추정되는 동영상들이 나왔다. 도시 전설에 따르면, 큰 사고가 일어나기 직전에 모스맨이 나타난다고 한다. 그래서 모스맨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모스맨이 재앙을 예고하는 무서운 존재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팔랑거리는 나비를 뒤 따라가 보았던 어린 시절이 있을 것이다. 내년 봄이 올 때까진 날갯짓을 팔랑거리며 너울너울 허공을 나는 나비를 볼 수 없다. 아니다. 봄이 와도 나비를 영영 보지 못할 수도 있다. 푸르른 들판 위에는 칙칙한 회색빛 콘크리트가 얹혀있고, 꽃이 있어야 할 자리에 건물이 우뚝 솟아 자란다. 나비를 볼 수 없는 도시의 봄은 상상되지 않는다. 그래도 도시에서 나비를 볼 수 없는 상황이 온다는 것은 인간에게 경고하는 자연의 위험 신호다. 나비가 없는 도시는 ‘영혼이 없는 도시’다.

 

 

 


댓글(18)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겨울호랑이 2017-09-27 20: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 나비 이야기가 나온 김에 어이없는 이야기 하나. 제가 4살 때 노란 나비와 흰 나비를 보고 노란 오줌을 누면 노란 나비가, 하얀 오줌을 누면 하얀 나비가 날아온다고 생각했었던 기억나네요. ˝나비야, 나비야 이리 날아 오너라. 노란 나비 흰 나비 춤을 추며 오너라.˝♪♬ 이 노래를 들으면 그렇게 멋대로 연관지었나 봅니다 ㅋ

cyrus 2017-09-27 20:56   좋아요 1 | URL
그러면 검은 나비는... 응..ㄱ... 아닙니다.. ㅎㅎㅎ

겨울호랑이 2017-09-27 20:58   좋아요 0 | URL
^^: 검은 나비는 건강이 좋지 않은 응가인가 봅니다 ㅋ

cyrus 2017-09-27 21:01   좋아요 1 | URL
네. 공장 연기에 찌든 나비입니다. ^^

북프리쿠키 2017-09-27 2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주도에 프시케월드가면
나비 꽉~있어요ㅎㅎㅎ

cyrus 2017-09-27 21:20   좋아요 1 | URL
제주도에 그런 곳이 있군요. <알쓸신잡> 시즌 2 제주도 편이 제작되면 어느 출연자가 프시케월드에 가게 될까요? 저는 김영하 작가 아니면 정재승 교수라고 생각해요. ^^

transient-guest 2017-09-28 0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비나 잠자리를 보면 그렇게 반가울수가 없어요.ㅎ

cyrus 2017-09-28 12:36   좋아요 0 | URL
어렸을 때 잠자리는 잡다가 손가락을 물린 적이 있어요. 그 이후로 잠자리를 못 잡았어요.. ^^

이하라 2017-10-01 14: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어느 산사를 오르는 길에서 뱀이 자동차 타이어에 터져 죽은 시체위에 나비가 흡입관을 꽂고 있던 모습이 잊혀지지가 않더군요 나비가 뱀시체의 피를 빨고 있었던 것은 아니겠지만 기이함으로 제 기억 속에 새겨져 버렸습니다

행복한 추석되시라고 인사 여쭈러 와서는 이상한 글을 남기고 있군요 ㅋ
cyrus님 행복한 추석연휴 보내세요^^

cyrus 2017-10-02 10:24   좋아요 1 | URL
정말 독특한 장면을 보셨군요. 나비들도 썩어가는 사체에서 나오는 향기를 맡지 싶습니다.

일부러 연휴 인사말을 남기지도, 받지 않으려고 며칠 동안 북플에 접속하지 않으려고 했어요. 그래도 직접 인사말을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이하라님도 추석 연휴 잘 보내시고, 좋은 글로 다시 만나요. ^^

2017-10-01 22: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0-02 11: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표맥(漂麥) 2017-10-03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길을 가다가 손바닥만한 긴꼬리제비나비를 봤습니다.(음... 내 손이 조막손?) 그 자유로움에 한참을 바라봤죠... 여유로운 연휴 되시길...^^

cyrus 2017-10-03 13:57   좋아요 0 | URL
표맥님은 나비 이름을 정확히 아시는군요. 가만히 있는 나비를 몇 분간 관찰하는 일이 어려워요. 우리 인간이 나비를 관찰할 수 있는 여유가 없는 걸까요, 아니면 나비에게 여유가 없는 걸까요? ㅎㅎㅎ

직접 서재에 접속해서 연휴 인사말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표맥님도 연휴 잘 보내세요. ^^

나비종 2017-10-08 1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비와 나방을 앉은 모습으로 쉽게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나비는 두 장의 날개를 겹치듯이 세워서 앉고, 나방은 양쪽으로 납작하게 펼쳐서 앉는다구요. 앉는 방식마저 ‘참 나비스럽다‘ 생각했죠.
벌레를 매우 무서워하지만, 곤충 중에서 비교적 거부감없이 다가갈 수 있는 대상이 나비입니다. 한 번도 만져본 적은 없지만요.^^; 부들부들한 느낌이겠죠?

cyrus 2017-10-10 08:04   좋아요 0 | URL
그러고보니 나비가 날개를 납작하게 펼쳐서 가만히 앉아있는 것을 보지 못했어요. 나비종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역시 이름값 하시는군요. ^^

페크pek0501 2017-10-10 2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읽은 책도 보여 반갑군요.

연휴 잘 보내셨는지요?

지금 갑자기 창문을 통해 빗소리가 들립니다. 비오기 시작인가 봐요.
굿밤 되세요...


cyrus 2017-10-10 23:17   좋아요 0 | URL
정말 행복했던 열흘이었습니다. 이런 황금연휴는 언제 올까요? ^^;;

여기 대구는 비 소식이 없습니다. 8월에 비하면 약해졌지만, 아직은 날씨가 따뜻해요.
 

 

 

 

제게 저만의 글쓰기 원칙들이 있습니다. 첫 번째, 출판사의 리뷰 청탁을 받으면 그 사실을 반드시 리뷰에 명시할 것. 두 번째, 출판사로부터 받은 홍보용 책에 문제점과 한계가 보이면 그 책이 가루가 될 때까지 비판할 것. 비판도 한 권의 책에 대한 진심 어린 애정이 있어야만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세 번째, 나온 지 얼마 안 된 신간도서를 읽고 나면 항상 마이리뷰를 먼저 쓸 것. 일명 () 마이리뷰, () 마이페이퍼 방식입니다.

 

자고 일어날 때마다 나오는 신간 도서에 저 또한 누구 못지않게 관심이 많습니다. 하지만 저는 신간 도서를 주로 소개하는 얼리 어답터(Early Adopter)형 독자가 아닙니다. 그리고 그 일을 의무적으로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책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이 책을 읽어야겠다.’라는 생각만 하는 독자와 책을 읽고 리뷰를 쓰는 독자는 다릅니다. 실천에 방점을 두는 독서가 제가 지향하는 독서관(reading viewpoint)입니다. 책을 사지 못하면, 도서관에 빌려서 읽습니다. 원하는 책을 도서관에서 만나려면 적어도 한 달은 기다려야 합니다. 내 손으로 종이를 쓰다듬고, 눈으로 문장을 어루만져야 책이 살아 숨 쉽니다. 책을 가까이하면 내 피부에 와 닿는 책의 숨결이 느껴집니다. 책의 숨결은 코와 입으로 들어와 우리 뇌와 마음속으로 흘러들어 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증발합니다. 그 느낌의 순간을 잊지 않기 위해서 리뷰를 씁니다. 저는 이 단순하고도 시간이 많이 드는 방식을 좋아합니다.

 

 

 

 

 

 

 

 

 

 

 

 

 

 

 

 

 

* 다치바나 다카시 지식의 단련법(청어람미디어, 2009)

 

 

 

어떤 종류의 책에 관심이 있더라도 행동으로 실천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다치바나 다카시(立花隆)지식의 단련법(청어람미디어, 2009)에 보면 아무 목적 없이 스크랩하고, 자료를 수집하는 사람의 사례가 나옵니다. 모든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일은 시간 낭비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시간을 낭비하는 일은 자료만 잔뜩 모아 놓기만 하는 것입니다. 이 일에 익숙해지면 입력의 양이 출력의 양보다 많아져서 넘치게 됩니다. ‘출력을 전제로 한 독서를 해야 하는데, 이게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면 착각에 빠질 수 있습니다. 자신은 분명히 이 책을 한 번도 읽은 적 없는데 그 책을 읽었다고 믿게 되는 거죠. 지금보다 더 미숙했을 때 제가 이런 착각 속에서 살았습니다. 어리석었던 저를 구제해준 사람이 다치바나 다카시였습니다.

 

서론이 길어졌습니다. 사실은 지난달에 나온 신간도서를 소개하는 글을 써야 해서 미리 사정을 밝혔습니다. 앞서 언급한 세 번째 원칙에 따르면 신간도서를 읽었으면 마이리뷰로 소개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런데 오늘만 특별히 그 원칙을 어기려고 합니다.

 

 

 

 

 

 

 

 

 

 

 

 

 

 

 

 

 

  

* 권택환 맨발 학교(만인사, 2017)

* 유병찬 소리 없는 빛의 노래(만인사, 2015)

* 박진형 고마 됐다(만인사, 2016)

 

 

 

지난주 일요일,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이틀 전입니다. 대구시인협회장이자 만인사 대표인 박진형 선생님과 알라딘에서 ‘yureka01(유레카)’이라는 닉네임으로 알려진 유병찬 님을 만났습니다. 그 날 세 사람은 달성습지 산책로를 맨발로 걸으면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박 선생님과 유레카님은 요즘 맨발 걷기에 꽂혀 있습니다. 유레카님은 저에게 맨발 학교(만인사, 2017)라는 한 권의 책을 권했습니다. 이 책이 바로 제가 오늘 소개할 신간도서입니다.

 

사실 저는 일요일 전까지만 해도 맨발 걷기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했어요. ‘맨발로 땅을 걸으면 가시가 박혀서 따갑지 않을까?’, ‘잘못 하면 발바닥에 생채기가 생겨서 세균에 감염되면 어쩌지?’ 부정적인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걸어보니까 괜찮았습니다. 처음에는 피부에 닿는 작은 모래 알갱이 때문에 따끔거리는 고통이 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고통이 점점 줄어듭니다.

 

 

 

       

 

 

맨발로 땅을 걸으면서 새로운 사실을 몸으로 확인했습니다. 일요일 대구의 낮 기온이 30도를 웃돌았습니다. 세 사람이 달성습지를 걸었던 시간이 정오에서 오후 1시 사이였습니다. 태양 빛을 받아들인 땅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시간대입니다. 하지만 생각보다 땅바닥이 뜨겁지 않았습니다. 뜨겁다기보다는 따뜻했습니다. 양말과 신발을 신었을 때 발에서 느끼는 따뜻함과 다릅니다. 양말과 신발을 오래 신은 채 걸으면 발바닥에 땀이 생기고, 답답한 느낌이 찾아옵니다. 그러나 맨발로 걸으면 발이 시원합니다. 햇볕을 받은 땅을 직접 밟아보면 차가운 기운이 느껴집니다. 발바닥이 땅바닥에서 올라오는 차가운 기운과 맨발을 감싸는 바람을 감지하기 때문입니다.

 

맨발 학교의 저자 권택환 씨는 맨발 걷기 교육 문화 보급에 앞장서는 교육인입니다. 이 분은 지금도 매일 한 시간씩 맨발을 걷고 있습니다. 저자는 우리 뇌와 마음 건강에 미치는 맨발 걷기의 긍정적 영향을 널리 알리기 위해 이 책을 쓰게 됐습니다. 맨발 학교의 책 분량이 얇고, 이 책의 핵심 주제는 단순명료합니다. 그냥 걸으면 됩니다. 딱딱한 콘크리트 바닥보다 흙이 있는 곳에 걸어야 합니다. 흙이 있는 곳에는 분명히 꽃과 나무가 있습니다. 꽃과 나무가 있다면, 그 주변에 곤충이 날아다닐 겁니다. 흙이 있는 곳을 맨발로 걸어 다니면 우리가 살면서 지나쳤던 자연의 진짜 모습을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길을 걷다가 예쁜 꽃을 만나면 다가가서 코끝으로 인사를 나눠도 되고요, 스마트폰으로 굳어진 목을 살짝 위로 올린 채 걸으면 푸르른 하늘 위에 둥둥 떠다니는 구름을 볼 수 있어요. 한결 마음이 편해져요. 맨발 걷기는 돈 안 들이면서 몸과 정신을 건강하게 만드는 운동입니다.

 

맨발 걷기를 낯설게 느껴지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맨발로 어떻게 사람들 앞에 걸어요? 창피한 일이에요.” 그 마음,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이 맨발을 걸으면 못 보고 지나치는 사람들이 많을 겁니다. 보이지 않는 고릴라(invisible gorilla experiment)’는 인지 능력의 한계를 보여주는 가장 유명한 심리 실험입니다.

 

 

 

 

 

 

 

 

 

 

 

 

 

 

 

 

 

* 크리스토퍼 차브리스 보이지 않는 고릴라(김영사, 2011)

* 에이미 E. 하먼 우아한 관찰주의자(청림출판, 2017)

 

 

 

검은 셔츠 셋, 흰 셔츠 셋, 모두 여섯 명의 학생들이 팀을 이뤄 농구시합을 하고 있습니다. 흰 셔츠 팀의 패스 횟수를 세는 게 이 실험의 과제입니다. 1분도 채 안 되는 실험 영상 중에는 고릴라 옷을 입은 학생이 등장해 가슴을 두드리며 포효하고 지나갑니다. 그런데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의 절반가량은 고릴라의 존재를 알아채지 못합니다. 인간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려고 합니다. 여러분들이 맨발로 걸으면 지나가는 사람들 대부분은 눈 뜬 장님이 됩니다. 주변 시선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저는 맨발 걷기 문화 정착에 찬성하지만, 이 운동의 궁극적인 목표에 창조력 함양을 포함한 저자의 관점에 동의할 수 없었습니다. 저자가 참고한 책 중에 이승헌 씨의 책도 있던데, 책 후반부에 맨발 걷기 교육과 뇌 교육을 연관 지어 설명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저는 이승헌 씨의 뇌 교육과 그가 관여한 활동을 과학적인 관점으로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책의 구성이 아쉬웠습니다. 처음에 했던 내용을 문장을 바꿔서 재차 강조하는 글쓰기는 독자들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만, 책의 가치가 낮아집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맨발 학교를 직접 사서 읽을 사람은 많지 않을 겁니다. 제 글이 알라디너의 선택에 노출된다고 해도 출판사 판매 수익, 저의 ‘Thanks to 적립금적립에 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많이 부족해 보이는 책마이페이퍼로 소개한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다. 맨발 걷기는 목적지로 향하는 과정에 불과했던 걷는 행위와 다릅니다. 맨발 걷기는 눈을 뜨면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명상운동입니다. 호흡과 발걸음을 맞출 필요는 없습니다. 흙과 숲이 있는 곳에서 맨발로 걸으면 주변 풍경이 훨씬 더 가까이 다가올 것입니다. 파란 하늘과 흰 구름, 불어오는 상쾌한 바람, 숲 사이로 비치는 따스한 햇살, 새 소리, 풀 향기들이 여러분들의 지친 마음을 포근하게 감싸줍니다. 이 특별한 경험을 공유하고 싶어서 이 글을 썼습니다.

 

 

 


댓글(22) 먼댓글(0) 좋아요(3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yo 2017-09-12 2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쩐지 걷는 모습에서 맨발로 첨 걸어보는 티가 팍팍 나는 cyrus님 ㅋㅋㅋㅌ

cyrus 2017-09-12 20:40   좋아요 0 | URL
저때가 출발점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걷고 있었습니다. 역시 처음으로 맨발로 걸으니까 발바닥에 통증이 찾아왔어요. 지금도 발바닥이 조금 얼얼합니다.. ㅎㅎㅎ

이하라 2017-09-12 2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맨발로 처음 걸어보는 티가 난다면 왼쪽분이 cyrus님이로군요^^

cyrus 2017-09-12 20:44   좋아요 0 | URL
맞아요. 사진을 다시 보니까 초짜와 고수의 차이점이 느껴집니다. ^^

stella.K 2017-09-12 2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뒷모습 얼핏 보니 생각 보다 호리호리 하네.
동안일 것 같군.
뭐 유레카님은 아저씨니까.ㅋㅋ
암튼 좋은 시간이었겠네.^^

cyrus 2017-09-12 23:26   좋아요 0 | URL
한 시간 걷고나서 박진형 선생님과 친하게 지내시는 화가의 아틀리에도 구경했어요. 정말 특별한 일요일이었습니다. ^^

겨울호랑이 2017-09-12 2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맨발걷기가 무좀치료에도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cyrus 2017-09-12 23:28   좋아요 1 | URL
《맨발 학교》에도 맨발 걷기 이후로 무좀이 줄었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플라시보 효과인가요? ㅎㅎㅎ

yureka01 2017-09-12 21: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흙과 내 발바닥의 촉감의 느낌. 전해져 오는 대지의 온도...대기의 기온 이런 것들의 내재됨.. 좋은 시간이었어요..사진 한장 찍을 수 있는 행복..ㅎㅎㅎㅎㅎ네 그럼요....
인류가 신발은 신었던 기간은 몇천년도 안되죠,맨발은 수만년이었을 겁니다.잃어버린 본질의 촉감이라고나 할까 싶습니다..

cyrus 2017-09-12 23:30   좋아요 1 | URL
제가 유레카님을 만나지 않았으면 평생 접하기 힘든 경험과 새로운 만남은 없었을 겁니다. ^^

곰토낑 2017-09-12 2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국 곳곳에 맨발로 산책할수있는 길이 조성되있는건 아는데 실제로 걸어본 적은 없었어요. 곤충이나 돌조각, 유리조각 같이 발바닥을 상처입게할 요소들만 생각해서 저어되더라구요... 그런데 흙길을 맨발로 산책하기엔 여름이 더할나위없이 좋아보이네요. 파삭파삭하고 자근자근한것이...ㅋㅋ 그런데 글을읽다 깜짝 놀랐어요 ^^; 자정에서 1시라고 하셔서 새벽산책이신줄...ㅎㅎㅎ

cyrus 2017-09-12 23:36   좋아요 0 | URL
맨발 산책로가 단순히 건강 증진에 목적을 두고 만들어지는 게 아쉬워요. 그런 길 대부분은 딱딱한 콘크리트로 만들어져 있어요. 정말로 도시에서 흙길을 만나기가 어려워요.

저의 실수를 정확히 발견하셨군요. ‘정오‘라고 써야할 것을 ‘자정‘으로 잘못 쓰고 말았어요.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이 글은 북플로 작성한 것이 아니라서 지금 당장 수정할 수 없어요. 부끄럽지만 어쩔 수 없군요. ㅎㅎㅎ

clavis 2017-09-12 2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걷고싶어져요^^!!

cyrus 2017-09-12 23:40   좋아요 0 | URL
맨발로 걸으면 발이 시원해집니다. 신발이 없으니까 발이 움직일 때 가벼운 느낌이 들어요. ^^

2017-09-13 01: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9-13 12:57   좋아요 0 | URL
대학생 시절의 시간이 소중하다는 걸 요즘 느끼고 있습니다. 이제 밤 11시만 되면 졸려서 책을 못 읽겠어요. 이렇다보니 금방 읽을 수 있는 얇은 책만 찾게 됩니다.. ㅎㅎㅎ

뇌호흡을 뇌과학이 인정한 현상이라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을 겁니다.

sprenown 2017-09-13 0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갑자기 양말을 벗고 싶군요..나도 저렇게 어기적 대면서라도 한번 걸어볼까나?

cyrus 2017-09-13 12:59   좋아요 0 | URL
회사에 있으면 슬리퍼를 신고 다닙니다. 그래야 발이 시원해지고, 발냄새가 날아갑니다.. ^^;;

페크pek0501 2017-09-13 1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세 분이 만들어낸 작품이네요...

저도 보이지 않는 고릴라, 경험했어요. 글을 읽기 전에 사진만으론 맨발인지 몰랐습니다. ㅋ

cyrus 2017-09-14 13:54   좋아요 0 | URL
알라딘 서재의 글을 읽을 때 정작 중요한 내용을 못 보고, 엉뚱한 내용만 보는 경우가 있어요. 또 글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었는데도 오타를 발견하지 못할 때가 있어요. ^^;;

오후즈음 2017-09-14 0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오래 머물렀던 프라이부르크에선 간혹 맨발로 다니는 유럽인들을 볼수 있었는데요. 그들을 볼때마다 자유롭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도시는 어려우니 간혹 저렇게 자연과 친해지고 싶네요.

cyrus 2017-09-14 13:56   좋아요 0 | URL
독일은 우리나라보다 자연친화적 장소가 많을 것 같습니다. 맨발로 걸으면 자연의 소중함을 몸으로 느낄 수 있어요. ^^
 

 

 

 

 

 

 

 

 

 

 

 

 

 

 

 

 

 

아버지 어머니 모두 함경도에서 피난 내려온 실향민이라 우리에겐 친척도 하나 없었어요. 아시다시피 그때는 분유도 귀해서 일제 모리나가 분유를 사야 했는데 우리에겐 그럴 여유조차 없었지요…‥.” (공지영 우리는 누구이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97)

 

 

 

GS25 편의점에 가면 모리나가 밀크캐러멜 맛 아이스크림을 구할 수 있다. 와플 형태의 아이스크림인데 그 안에 캐러멜 시럽이 들어있다. GS25는 이 제품을 대만에서 가장 인기 있는 아이스크림이라고 소개하고 있는데, 회사 이름만 봐도 알 수 있듯이 모리나가는 일본의 업체이다. (GS25일본에 생산되는 아이스크림을 대만 인기 아이스크림으로 둔갑해서 판매하는 이유가 있다. 이유는 곧 알게 될 것이다)

     

1910모리나가 상점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설립되었고, 1912년에 모리나가 제과 주식회사로 변경되었다. 모리나가가 생산하는 대표적인 제품이 모리나가 밀크캐러멜이다. 모리나가 밀크캐러멜은 1979년에 우리나라에 처음 선보였고, 모리나가와 오리온의 기술 제휴로 오리온 밀크캐러멜이 출시되었다. 모리나가와의 기술 제휴로 나온 또 다른 오리온 제품이 초코파이고래밥이다.

     

1949년 모리나가 제과 회사에서 독립한 모리나가 유업은 우유, 분유 등 유제품을 생산하는 회사다. 공지영 소설에 언급된 일제 모리나가 분유가 바로 모리나가 유업에서 제조된 제품이다. 1950년대에 모리나가 분유가 우리나라에 들어왔을 거로 추정한다. 매일유업1974년 모리나가 유업과의 기술 제휴를 통해 맘마분유를 내놓으면서 조제분유 시장에 뛰어들었다.

 

 

 

 

 

 

 

 

 

 

 

 

 

 

* 민족문제연구소 군함도, 끝나지 않은 전쟁(생각정원, 2017)

    

 

 

모리나가 제과와 모리나가 유업. 이 두 회사가 국내 제과 및 분유 산업 성장에 큰 영향을 준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모리나가 제과가 걸어온 길에 우리나라의 가슴 아픈 역사와 관련된 불편한 진실이 있다. 모리나가 제과는 전범 기업이다. 모리나가 제과는 태평양 전쟁에 참전하는 일본군에게 전투식량을 대량으로 제공한 전력이 있다. GS25는 모리나가 제과의 전범 이력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 사실이 알려지게 되면 불매 운동이 펼쳐질 것이고, 제품 판매가 저조해진다. 그래서 GS25은 밀크캐러멜 아이스크림을 대만 인기 아이스크림으로 홍보했다.

 

 

 

※ '모리나가 우유 중독 사건'에 대한 간략한 설명 (환경운동연합)

http://kfem.or.kr/?p=37215

 

 

모리나가 유업이 설립된 지 6년 후에 모리나가 비소 우유 중독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은 일본 최악의 식품 안전사고로 기록되었다. 이 사건으로 우유(환경운동연합은 유아용 분유라는 표현을 썼다. 여기서는 언급된 우유는 유아용 분유를 포함한 것이다)를 먹은 어린이들이 비소 중독을 일으켰다. 130여 명의 어린이가 사망했고, 환자 수는 약 13,000여 명이었다. (환경운동연합의 소개에 따르면 비소 중독으로 사망한 어린이가 ‘13이라고 한다) 우유에 들어간 식품첨가물이 사고의 원인이었다. 모리나가 유업이 사용한 식품첨가물은 비소가 포함된 공업용 약품이었다. 비소 우유를 먹은 어린이 대부분이 십 년 동안 후유증에 시달렸는데도 모리나가 유업은 사고가 일어난 지 15이나 지나서야 보상 조치를 마련했다. 1950년대에 모리나가 분유를 먹으면서 자란 우리나라 어린이들도 비소 중독증에 시달렸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 시절엔 분유가 귀했기 때문에 분유를 먹은 어린이가 그리 많지 않았을 것이다.

 

모리나가 제과가 전범 기업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모리나가 제과의 과자를 먹는 사람들을 비난한다. 모리나가 제과의 불편한 진실을 모르는 채 그 제품을 선호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모리나가제과 그룹은 아베 신조 총리의 부인의 외가 집안이 운영하는 기업이다. 하지만 전범 기업이 만든 과자 하나 먹었다는 이유만으로 친일파라고 자극적으로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다. 오히려 우리나라 사람에게 적대감을 키우는 꼴이다.

    

 

 


댓글(14) 먼댓글(0) 좋아요(3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레삭매냐 2017-09-03 0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리나가가 전범기업인 줄은 미처
몰랐네요.

니콘 카메라로 쓰지 말아야 하는데...

cyrus 2017-09-03 08:42   좋아요 0 | URL
최근에 모리나가 아이스크림을 먹고 나서야 늦게 알았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아이스크림 맛은 좋았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먹을 일이 없습니다.

2017-09-03 08: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9-03 08:44   좋아요 0 | URL
일본 정부가 반성하지 않고, 제대로 사과하지 않으니까 전범 기업들도 과거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합니다.

오거서 2017-09-03 12: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모리나가, 이름 때문이지만, 셜록 홈즈를 괴롭히는 악당 모리아티를 생각나게 합니다. 전혀 상관 없는 얘기지만서도…
모리나가 아웃!

cyrus 2017-09-04 08:57   좋아요 0 | URL
‘모리나가‘를 자꾸 ‘모리가나‘, ‘모리가라‘로 잘못 쓰는 경우가 있어요. ^^;;

잠자냥 2017-09-03 1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그 아이스크림 사먹었는데... 음 이 포스팅으로 많은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감사!

cyrus 2017-09-04 08:58   좋아요 0 | URL
한 두번 먹는 것 가지고 비난하고 싶지 않아요. 그런데 전범 기업 제품이나 식품을 구매한 것을 SNS에 인증하는 행동은 문제 있습니다.

stella.K 2017-09-03 1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대단하다.
모리나가도 그렇지만 우리나라 기업하는 사람들 정신이 나갔구만.
그런 것도 잘 알지도 못하고...
이거 뭐 삼성이 그모냥인데 더 말해 뭐하냐?
삼성이 정신 차리면 바람잡이 효과로 적어도 3분의 1은
나갔던 정신 다시돌아오지 않을까?
그래도 역시 믿을 건 소비자의 고발정신 같다.
더 많이 난리쳐야 하는데...ㅠ

cyrus 2017-09-04 09:03   좋아요 0 | URL
전범 기업의 제품과 식품에 의존하는 실정이라서 불매운동의 파급력이 촛불 운동만큼이나 나오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fledgling 2017-09-03 1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이러스님. 국내저작류에 대한 리뷰가 점점 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은 저만 그런게 아니겠죠~ 본격적으로 이제 국내작가들을 섭렵하는 겁니꽈~^^

cyrus 2017-09-04 09:04   좋아요 0 | URL
오랜만입니다. fledgling님. 섭렵까지는 아니구요, 내용이 궁금한 책이 있으면 그 기분에 따라 읽으려고 합니다. ^^

또 봄. 2017-09-12 0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냉동실에 하이추가 한 박스나 남았는데요.T.T

cyrus 2017-09-12 14:48   좋아요 0 | URL
이미 구매한 것은 버리기가 아까워요. 그냥 먹어야죠. ㅎㅎㅎ
 

 

 

 

 

원래 이 글은 [가이아에서 팔척 귀신까지]라는 제목의 글에 포함될 내용이었다. [가이아에서 팔척 귀신까지]가 긴 분량의 글이 될 것 같아서 핵심에서 조금 벗어난 글감을 쳐냈다. 이 과정에서 탈락한 글감이 공개되지 못한 게 아쉬워서 따로 제목을 붙여서 한 편의 글로 정리했다.

 

 

 

 

 

 

 

 

 

 

 

 

 

 

 

 

 

 

 

 

 

 

 

 

 

 

 

 

 

 

 

 

 

 

 

 

      

* 루이스 캐럴 :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만나다(시공사, 2001)

* Alice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거울나라의 앨리스(북폴리오, 2005)

*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열린책들, 2009)

*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펭귄클래식코리아, 2010)

* 주석과 함께 읽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오월의봄, 2015)

 

    

 

앨리스 증후군(Alice in Wonderland Syndrome)’이라는 게 있다. 루이스 캐럴(Lewis Carrol)의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 앨리스가 작품 속에서 겪었던 것처럼 신체 형상이 왜곡돼 보이는 증상이다.

 

 

 

 

 

 

 

 

 

 

 

앨리스는 나를 마셔요!’라는 문장이 적힌 라벨이 붙은 물약을 마시면서 생쥐만큼 작아진다. 작아진 앨리스는 조그만 문을 통과하는 데 성공했지만, 과자를 집어 먹고 커지게 된다. 그 이후로 앨리스는 몸이 커졌다가 작아졌다 반복한다.

 

캐럴은 소설 속 주인공의 실제 모델인 앨리스 리들(Alice Liddell)을 무척 좋아했다. 캐럴과 앨리스 리들과의 관계를 둘러싼 논란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앨리스 리들에 향한 캐럴의 감정은 어른이 아이를 좋아하는 차원이라고 주장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캐럴을 롤리타 증후군(Lolita syndrome)’이 있었던 건 아닌지 의심하는 사람도 있다. 확실한 근거는 없지만, 어떤 이는 캐럴이 앨리스 증후군을 앓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 올리버 색스 편두통(알마, 2011)

* 이동귀 너 이런 심리법칙 알아?(21세기북스, 2016)

* 김개미 자면서도 다 듣는 애인아(문학동네, 2017)

    

 

 

앨리스 증후군을 겪으면 보통 편두통을 동반하는 경우가 있다. 캐럴도 편두통에 시달렸다고 한다. 앨리스 증후군은 자신의 몸뿐만 아니라 눈앞에 있는 대상의 형체가 변형 또는 왜곡된 것처럼 보이는 시각적 환영을 겪는다. 편두통 증상은 무척 다양하다. 일반적으로 한쪽 관자놀이가 욱신거리는 통증이 간헐적으로 일어나거나 긴 시간 동안 지속한다. 발작이 한 번 일어나면 너무 고통스러워서 욕지기(nausea, 메스꺼운 느낌)를 느낀다. 편두통 환자는 시각적 환각도 경험하게 되는데 이 환각은 환자 스스로 표현하기가 힘들 정도다. 김개미 시인의 시는 삶을 황폐화하는 편두통의 강도(強度)를 잘 표현하고 있다.

 

 

 

나는야 배고픈 딱따구리지

당신 머리 꼭대기에 앉아 있지

당신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있지

상처투성이 당신을 쪼아먹고 있지

당신 머리통에 정 끝을 대고

망치를 두드리고 있지

나는야 부리가 무거워 고개를 들지 못하지

내 부리가 닿은 곳에 당신 눈동자가 있지

동그랗게 눈을 뜨고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당신

나는야 당신 눈동자를 파먹고 있지

당신 눈동자가 너무 굳어 한번에 삼킬 수 없지

나는야 날개가 굳은 딱따구리지

쪼아먹을 것도 없는 당신을 떠나지 못하지

당신의 퀭한 눈 어둠의 통로를 들여다보는

나는야 배고픈 딱따구리지

당산의 눈동자 하나로는 너무나 배고픈

나는야 당신의 딱따구리지

    

 

(김개미 편두통, 자면서도 다 듣는 애인아21)

 

 

 

캐럴은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아이들을 위해 글을 썼다. 그런데 유독 소녀들만 편애했다. 그의 일기에 보면 남자아이만 빼고 아이들을 사랑한다는 문장이 있다. 전기 작가들은 이 일기 구절을 근거로 캐럴의 롤리타 증후군을 의심한다. 하지만 캐럴의 소심한 성격은 다소 거칠고 활동적인 소년들과 맞지 않았고, 쉽게 다가서기 힘들었을 것이다. 남자아이를 부담스러워하는 캐럴의 대인관계 스트레스가 편두통을 일으키는 원인으로 작용했을 수도 있다.

 

편두통의 고통에 벗어나고자 시작한 캐럴의 글쓰기는 병들고 외로운 영혼을 달래는 치유의 글쓰기로 발전했다. 아이들을 위한 글쓰기에 재미 붙인 캐럴은 앨리스 리들에 향한 내밀한 애정의 상징들을 동화 속에 꼭꼭 숨겨 놨다. 그중 하나가 바로 몸이 커진 앨리스. 고독과 어깨동무한 자는 시간의 무상함을 일찍이 깨닫고 있다. 캐럴은 앨리스 리들이 숙녀로 성장하는 운명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소녀가 숙녀로 자라면서 어린 시절 자신과 함께한 소중한 추억들이 잊힐 거로 생각했다. 또 예전의 밝고 앳된 소녀의 모습을 영영 볼 수 없다는 사실에 슬퍼했다. 캐럴의 편지에는 성장하는 아이들이 변하지 않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드러낸 구절이 있다.

    

 

어떤 아이들은 커가면서 너무 보기 흉하게 변하기도 하죠. 나는 우리가 다시 만나기 전에 부디 당신이 그런 식으로 변하지 않기를 희망합니다.” (Alice76)

    

 

캐럴은 얼굴은 그대로이고 몸만 커진 숙녀 앨리스를 만나길 원했고, 자신의 욕망을 몸이 커진 앨리스에 투영했다. 편두통을 동반한 환각 증상이 신체가 자유자재로 변하는 설정에 결정적인 영감을 준 것이다. 몸이 커진 앨리스가 다시 원래 모습으로 작아지는 설정은 캐럴의 일시적인 환각 증세를 암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편두통(알마, 2011)을 집필한 올리버 색스(Oliver Sacks)는 편두통을 뚜렷한 절망과 은밀한 위로라고 표현했고, 책의 부제로 삼았다. 아이들과 어울리는 일과 글쓰기를 통해 고독과 질병의 고통을 치유하고, 마음의 위안을 얻고 싶었던 편두통 환자캐럴의 삶과 제법 어울리는 말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7-08-29 19: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8-29 21:32   좋아요 1 | URL
일상생활에 지장이 줄 정도로 통증이 심하다고 들었습니다. 신체 일부에 통증이 생기기 시작하면 정말 움직일 힘이 나지 않아요. 답답해요.
 

 

 

 

키는 체중과 달리 인간으로서 어찌할 도리가 없는 운명이다. 몸무게는 늘리거나 줄일 수 있다고 하더라도, 키는 유전적으로 결정된 요소인 만큼 싫든 좋든 자신의 타고난 키를 그대로 안고 살아야 한다.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쯤은 거인이 나타나길 기대해보기도 하고, 때론 자신이 거인이 되는 꿈을 꾸기도 한다. 우리의 의식 속에 거대한 체형을 원하는 욕망이 숨어 있다. 세계 곳곳의 전설 및 신화, 문학 텍스트, 그림 등을 살펴보면 심심찮게 거인의 등장을 엿볼 수 있다. 이미 오래전부터 거인은 인간의 상상력을 통해 영원한 생명을 얻고 있었다.

 

거인과 관련된 자료를 수집하면서 새로 알게 된 사실 하나 발견했다. 그것은 바로 여자 거인을 바라보는 남성의 시선이다. 남성 주체의 시선으로 기술하는 불균형을 해소해 왜곡된 문화 속 여성을 복원하는 것이 이 글을 작성한 의도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여자 거인은 다중적 여성의 이미지. 고대 전설에 등장하는 여자 거인은 생명의 창조자였다. 그러나 남성의 시선이 개입되면서 여자 거인의 위상이 달라졌다. 근대에 들어오면서 여자 거인은 남성의 성적 대상이자 구원의 여신상이며 공포의 근원을 상징하여 팜므 파탈(Femme fatale)의 모습으로 드러난다.

 

신화는 전승 과정에서 각종 의식을 동반하면서, 그 신성화의 면모가 강화된다. 따라서 전승 집단의 구성원들은 그 내용 자체보다, 그 속에 담긴 정신을 통해서 신화의 존재 의미를 찾게 된다. 신은 하나의 상징으로 이해될 수 있고, 그 상징의 의미를 해석해냄으로써 우리는 당대 사람들의 인식을 읽어낼 수 있다. 신화의 세계에서 여신은 남성 중심적 사회에서 남신의 존재감을 돋보이게 해주는 병풍이었다. 그래서 신화 속 여신의 이면을 살펴보면 인류가 여성에게 부여했던 신성한 능력을 확인할 수 있다.

 

 

 

 

 

 

 

 

 

 

 

 

 

 

 

 

 

 

 

 

 

 

 

 

 

 

 

 

 

 

 

 

 

 

 

 

 

 

 

 

 

 

* 헤시오도스 신들의 계보(도서출판 숲, 2009)

* 아폴로도로스 원전으로 읽는 그리스 신화(도서출판 숲, 2004)

* 아폴로도로스 아폴로도로스 신화집(민음사, 2005)

* 게르하르트 핑크 WHO : 그리스 로마 신화 속 인물들(예경, 2012)

* 다케루베 노부아키 《판타지의 주인공들(들녘, 2000)

    

 

 

가이아(Gaia)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대지의 여신이다. 아폴로도로스(Apollodoros)는 그녀를 (Ge)’라고 부르는데, 이 명칭이 대지’, ‘지구를 의미하는 어원이다. 헤시오도스(Hesiodos)의 묘사에 따르면 가이아는 태초부터 존재한 신이라고 한다. 그녀는 처녀생식을 통해 하늘의 지배자 우라노스(Uranus)를 낳았고, 그와의 사이에서 여러 명의 자식을 얻는다. 따라서 가이아는 크고 작은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를 비롯해 바람, 토양, , 햇빛 등 자연의 근원을 어루만져주는 어머니 같은 존재다.

 

 

 

 

 

 

 

 

 

 

 

 

 

 

 

* 조현설 우리 신화의 수수께끼(한겨레출판, 2006)

* 김화경 한국의 신화 세계의 신화(새문사, 2015)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창조여신에 관한 신화가 있다. 마고할미 이야기와 제주도에 전해지는 선문대 할망 이야기. 할미는 큰 어머니의 순우리말이다. 할망은 할머니를 뜻하는 제주도 방언이다. 마고할미는 하늘에 닿을 만큼 키가 크고, 산을 들어 옮길 만큼 힘이 센 창조의 여신이다. 옛 문헌 기록에 따르면 선문대 할망은 마고(麻姑)’로도 불렸다. 그래서 마고할미를 선문대 할망의 다른 이름으로 보기도 한다. 선문대 할망은 몸집이 매우 커서 한라산을 베개 삼아 누우면 다리가 제주 앞바다 섬에 걸쳐질 정도였다고 한다. 잠을 자던 할망이 일어나 방귀를 뀌더니 천지가 만들어졌다. 제주의 수많은 오름은 선문대 할망이 치마폭에 흙을 담아 바다에 뿌려 제주 섬을 만들 때 치마의 터진 구멍 사이로 조금씩 떨어진 흙이 쌓인 것이다. 한라산은 마지막으로 날라다 부은 흙이다. 선문대 할망은 자신의 키에서 나오는 장점을 과신해서 어이없는 최후를 맞이한다. 한라산 물장오리 못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수심이 깊어서 터진물이라고 불렀다. 선문대 할망은 이 못에 들어갔다 빠져 죽는다. 신화학자들은 선문대 할망의 최후를 창조신의 지위가 여신에서 남신으로 넘어가는 변화의 결과로 해석한다. 신성성(神聖性)을 상실한 마고할미는 악행을 일삼는 존재(강원도 삼척의 서구할미)로 변형되었다.

 

 

 

 

 

 

 

 

 

 

 

 

 

 

* 문국진 법의학자의 눈으로 본 그림 속 나체(예담, 2004)

* 앵그르(재원, 2005)

*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 앵그르의 예술한담(북노마드, 2014)

 

 

 

근대 서구의 남성 작가와 예술가들은 여성에게 거인성(巨人性)을 부여하여 남성 앞에서 전시하는 대상로 설정했다. 여자 거인의 영혼에 신성한 능력’이 제거되고, 그 자리에 남성의 시각과 상상력이 채워졌다.

 

 

    

 

 

앵그르(Ingres)그랑 오달리스크 좀 더 자세히 보면 이 그림 속 여성이 비정상적인 자세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녀의 허리와 한쪽 팔이 지나치게 길다. 그림을 분석한 학자들은 그림 속 여성이 정상인보다 척추 세 마디 더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앵그르는 정교한 소묘를 통해 완성된 선()이야말로 진정한 아름다움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선이 주는 아름다움을 돋보이려고 의도적으로 해부학적 사실을 무시한 것이다. 그림 속 여성이 일어나 서 있는 자세로 그려졌다면 어떤 모습일까? 아마도 그녀는 한쪽 팔과 한쪽 다리, 허리만 비정상적으로 길어진 거대한 몸집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 보들레르 악의 꽃(문학과지성사, 2003)

*롭스와 뭉크 - 남자와 여자(컬처북스, 2006)

* 이명옥 팜므 파탈(시공아트, 2008)

    

 

 

보들레르의 시 거녀(巨女)젊은 거녀를 예찬하는 내용으로 볼 수 있다. 시에 묘사되는 여자 거인은 어머니의 자궁과 같은 풍요로움과 편안함을 상징한다. 하지만 시인은 그녀가 검은 열정을 품고 있는지 알고 싶어 한다.

 

 

자연이 힘찬 기운에 넘쳐

날마다 괴물 같은 아이를 배던 그 시절

나는 젊은 거녀 곁에 살았으면 좋았으리,

여왕 발 밑에서 사는 음탕한 고양이처럼.

 

그녀의 몸이 그 넋과 더불어 피어나

끔찍한 희롱 속에서 무럭무럭 자라는 것을 보고

그녀의 가슴 검은 열정 품고 있는지

그녀의 눈에 서린 젖은 안개로 짐작할 수 있었더라면 좋았으리.

 

그녀의 웅대한 형체 위로 한가로이 노닐며

그녀의 거대한 무릎을 비탈인 양 기어오르고,

또 때로는 여름날 몸에 해로운 뙤약볕에 지쳐

 

그녀가 들판을 가로질러 드러누울 때,

나는 그 젖가슴 그늘에서 한가로이 잘 수 있었더라면 좋았으리,

평화로운 마을이 산기슭에 잠들 듯이.

 

(윤영애 역, 70)

    

 

     

보들레르는 '정복자'의 입장에 되어 그녀의 거대한 신체 이곳저곳 마음껏 탐하고 싶지만(그녀의 웅대한 형체 위로 한가로이 노닐며 / 그녀의 거대한 무릎을 비탈인 양 기어오르고), 여성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을 강하게 의식하고 있다(그녀의 가슴 검은 열정 품고 있는지 / 그녀의 눈에 서린 젖은 안개로 짐작할 수 있었더라면 좋았으리). 보들레르를 비롯한 19세기 중반 상징주의 예술가들이 팜므 파탈을 대할 때 느끼는 딜레마다. 팜므 파탈은 남성에게 여성이 어떻게 동경과 동시에 두려움의 대상으로 인식되는지를 보여준다. 따라서 보들레르의 거인 여자는 대지의 어머니가 아닌 근대적 팜므 파탈이다. 보들레르는 검은 열정이 품고 있는 여자 거인을 치명적인 아름다움으로 상대를 매혹하고 이내 파멸로 이끄는 위험한 존재로 본다.

 

 

 

  

 

 

르네 마그리트(René Magritte)는 초현실주의적 기법으로 벌거벗은 여성의 신체 크기를 왜곡하여 보들레르의 거녀를 시각화했다. 그림 옆에 있는 시는 보들레르의 거녀원문이다. 방 한가운데 떡하니 서 있는 여자 거인은 왠지 모를 무시무시한 긴장감을 형성한다. 뒷모습만 보인 신사는 여자 거인에게 경외감을 느끼는 보들레르다. 거인 여성의 존재에 압도당하는 신사의 뒷모습은 자신보다 훨씬 큰 여성에게 성적 매력을 느끼는 마크로필리아(Macrophilia)를 암시하기도 한다.

 

 

 

                    

 

 

구스타브 아돌프 모사(Gustav Adolf Mossa)그녀유혹하는 팜므 파탈유혹당한 남자의 관계를 노골적으로 보여준 작품이다. 모사의 여자 거인은 커다란 젖가슴으로 남성 관객을 유혹한다. 그녀의 유혹에 굴복당한 남성들의 시체가 산더미처럼 쌓였다. 그녀의 머리에 해골로 만들어진 핀이 보인다. 뜯어보자면 그림은 여색을 경계하라는 교훈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벌거벗은 거인 여자는 남성 관객들을 위한 눈요기 대상일 뿐이다. 남성 화가들은 여성 누드를 선호하는 남성 관객들을 위한 맞춤 전략을 내세웠다. ‘현실 속 여성이 아닌 여신이나 상상 속 여성의 누드를 그림으로써 외설 시비에 벗어날 수 있었다.

 

 

 

                        

 

 

펠리시앙 롭스(Félicien Rops)는 보들레르에게 영향을 받은 화가다. 그가 묘사한 거대한 사탄이 남성인지 여성인지 구분하기 모호하다. 나는 사탄이 쓰고 있는 챙이 넓은 모자를 보고 사탄을 여성이라고 유추했다. (혹자는 사탄의 모자가 농부들이 쓰는 밀짚모자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남성 농부만 밀짚모자를 쓰는 건 아니잖은가.) 사탄이 여성이라는 설정 하에 롭스의 그림을 살펴보면 사탄에게서 남성상징주의자들을 매료시켰던 고혹적인 팜므 파탈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롭스는 악마적인 여성의 본성을 강조하기 위해 대지의 어머니‘질병과 고통의 천사를 잉태하는 악마로 변형시켰다.

 

 

 

              

 

 

게라케라온나(倩兮女)는 기모노를 입은 중년 여자의 모습을 한 거대한 요괴다. 킬킬거리는 웃음을 지으면서 사람들 앞에 불쑥 나타난다. 일본인들은 게라케라온나가 음탕한 여자의 혼이라고 생각했다.

 

 

 

 

 

 

 

 

 

 

 

 

 

 

* 구사노 다쿠미 《환상동물사전(들녘, 2001)

 

 

 

롭스의 그림을 보면서 일본 괴담에 등장하는 팔척 귀신이 떠오르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심약자들을 배려하기 위해 팔척 귀신 이미지를 공개하지 않았다. 포털사이트에 팔척 귀신이라고 검색하면 기괴한 모습의 이미지가 나온다.) 팔척 귀신은 약 2m 50cm의 큰 키를 가진 여성의 모습이며 팔과 다리가 굉장히 길다. 그리고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있다. 2차 창작에서의 팔척 귀신은 어린 남자아이를 좋아하는 쇼타콘(쇼타 콤플렉스의 준말. 예쁘장하게 생긴 미소년에게 호감을 느끼는 여성)으로 설정된다. 이렇다 보니 쇼타콘이 된 팔척 귀신은 남성들이 선호하는 예쁘장한 외모에 하얀 원피스를 입고, 남자아이를 유혹하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지금까지 남성 중심적 시선으로 묘사된 여자 거인들을 살펴봤다. 생각보다 글의 분량이 길어져서 어쩔 수 없이 포함되지 못한 내용이 있고, 필자의 역량 부족으로 다루지 못한 것도 있다. 그래서 필자가 소개한 내용만 가지고 역사라고하기에 다소 미흡한 면이 있다. 그렇지만, 여자 거인 이미지들을 짚어보면서 제 입맛대로 여성의 신체를 소유하고 즐기는 남성들의 태도를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페미니즘 관점으로 미술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시대가 온 시점에서 남성의 편견이 반영된 작품들을 수준 이하로 보는 우를 범하지 것이 좋다. 비판과 비난은 엄연히 다르다. 예술의 기본은 다양한 눈을 허용하고, 인정하는 것이다. 롭스나 모사의 그림은 시대에 뒤떨어진 작품이지만, 그 그림들을 통해 시대적 한계를 확인할 수 있다. 근대미술 작품들은 인류의 내밀한 욕망이 화석처럼 남아있는 중요한 기록들이다. 우리는 화석이 되어버린 근대 그림을 현대적인 관점으로 바라보면서 지금도 여전한 시대적 한계(남성 중심의 근현대 미술)를 규명하고,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아낼 수 있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3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꼬마요정 2017-08-28 19: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더왕 이야기에서도 대지모신인 귀네비어가 하급신으로 추락하는 모습과 많은 여신들이 몰락하는 모습들이 참 가슴 아팠습니다.

그런데 정말 남자들에게 여자는 엄마 아니면 창녀인건가요??

cyrus 2017-08-29 13:35   좋아요 1 | URL
북유럽 신화에도 여자 거인이 나오는군요. 남성중심사회가 되니까 모신의 입지가 줄어들고, 신화가 전승되는 과정에서 모신은 부정적으로 묘사되는 것 같습니다.

sprenown 2017-08-29 09: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모계중심사회에서 부계중심사회로 오면서 남자들의 희번덕 거리던 눈동자가 더욱더 야비해 졌군요..이젠 성평등의식이 확산되어 덜하지 않을까 싶지만, 상품판매,시청률올리기 등 영화 또는 tv 대중매체 때문에 더욱 더 교묘해 진 것도 같습니다.(역사,환타지)소설이나 드라마,게임,만화 등이 이러한 문화전승에 앞장서고 있지 않은지..그렇다고 막 태어나 사내아이에게 여성학강의를 해 줄수는 없을 것이고, 문명발달의 추이를 보면 다시 모계사회로 회귀할 수도 없을 터, 인류의 진화과정이 돌연변이의 역사였던 사실에 주목하여,언젠가 자웅동체의 신인류가 탄생되는 날! 진정한 성평등은 이루어 질것입니다.

cyrus 2017-08-29 13:41   좋아요 0 | URL
남자들이 벌거벗은 여체를 그리고 싶어서 여신을 이용했습니다. ‘벌거벗은 여신‘은 아름다우니까 예술로 인정했지만, 그냥 ‘벌거벗은 여자‘는 음란한 여자로 봤죠. ‘희번덕 거리던 눈동자‘가 문제입니다. 남자들은 여자에 대해서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려고 했습니다. 여자가 마음에 안 들면 욕을 했죠. ^^;;

2017-08-28 22: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8-29 13:43   좋아요 1 | URL
<진격의 거인>을 본 적이 없어서 언급을 하지 않았습니다. 인터넷으로 검색만 하면 인물에 대한 정보가 다 나옵니다. 그런데 인터넷 정보를 긁어 모아서 언급하고 싶지 않았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