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리 큐브릭(Stanley Kubrick)의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슈트라우스(Strauss)의 교향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웅장한 선율과 함께 인류 역사의 새벽을 보여준다. 인류의 조상은 주변의 사물을 도구로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문명을 만들어 간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니체(Nietzsche)의 철학을 음표로 풀어낸 곡이다.

 

 

 

 

 

 

 

 

 

 

 

 

 

 

 

 

 

 

 

 

 

 

 

 

 

 

 

 

 

 

 

 

*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책세상, 2000)

* 아서 C. 클라크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황금가지, 2014)

* 아서 C. 클라크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황금가지, 2017)

* 세스 S. 호로비츠 소리의 과학(에이도스, 2017)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작곡가 이름을 헷갈리는 사람들이 있다. 성이 슈트라우스라서 왈츠의 왕으로 알려진 요한 슈트라우스 2(Johann Strauss II)로 오해할 수 있다. 소리의 과학을 쓴 저자 혹은 이 책을 우리말로 옮긴 번역가도 작곡가 이름을 혼동했다(소리의 과학초판 231).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작곡가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Richard Strauss). 성이 같을 뿐 혈연관계가 아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교향곡으로 잘못 소개하는 글을 종종 보게 되는데 교향시가 맞다. 교향곡과 교향시 둘 다 관현악곡이지만 조금 차이가 있다. 교향곡이 다악장 형식의 기악곡이라면, 교향시는 단일 악장으로 구성된 표제음악이다.

 

 

 

 

 

소리의 과학》 초판 262빈센트 프린스(Vincent Prince)’라는 미국의 영화배우 이름이 나와 있다. 옮긴이의 설명에 따르면 빈센트 프린스는 공포영화 연기로 유명하다고 한다. 그런데 빈센트 프린스라는 이름을 가진 미국 영화배우는 없다.

 

빈센트 프린스는 빈센트 프라이스(Vincent Price)’의 오식이다. 음산한 분위기를 자아내서 특유의 목소리와 광기가 느껴지는 눈빛을 가진 프라이스는 공포 영화 전문 배우로 자리 잡았다.

 

 

 

 

 

 

 

그의 독특한 목소리는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의 명곡 스릴러 뮤직비디오에서 확인할 수 있다. 프라이스는 뮤직비디오 중반부(유튜브 영상 6분 32초부터)에 나오는 나레이션을 맡았다.

 

 

 

 

 

 

 

프린스하면 마이클 잭슨과 함께 80년대 미국 팝 음악을 주름 잡은 프린스로저스 넬슨(Prince Rogers Nelson)을 빼놓을 수 없다. 프린스는 소울 음악을 대중화시킨 천재 뮤지션으로 평가받는다. 이왕 프린스얘기가 나온 김에 그의 대표곡 퍼플 레인도 듣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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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22 15: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1-22 15:32   좋아요 0 | URL
‘빈센프 프린스’를 보고나서 책 읽기를 잠시 멈추고, 프린스의 <퍼플 레인>을 들었어요. 그 날 저녁에 비가 내리고 있어서 프린스의 곡이 무척 반갑게 느꼈습니다.

stella.K 2018-01-22 1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를 아직도 못 본 1인이다.

몇년 전 교회 청년부 홈커밍데이에서 친구를 만난 적이 있어.
거의 20년이 넘었지. 물론 남자고.
그런데 옛날 모습이 거의 없는 거야.
목소리로는 알아 보겠더군.
그 친구 목소리가 부드러운 중저음이었거든.
거기 모인 사람도 목소리 여전하단 칭찬만 자자하더군.
그때 알았어.
사람은 시각에 민감한 것 같아도 실은 청각에 더 예민하지 않을까?
외모는 변하더거든. 목소리는 그거에 비하면 느려.
못 생겨도 목소리 좋고 예쁜 말 쓰면 사람은 끌리게 되어있는 것 같아.

근데 오늘 글은 제목 먼저 생각하고 쓴 글 같다.ㅋㅋ

cyrus 2018-01-23 14:34   좋아요 1 | URL
저는 중저음인데 경상도식 사투리와 험한 말을 써서 그런지 오해를 많이 받았어요. 군대에 있을 때 선임이 제 말투와 목소리를 처음 듣자마자 마음에 들지 않더군요. 선임 입장에서는 사투리 심한 말투와 중저음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기분 나쁘게 느꼈던가 봐요. 그 이후로 목소리 톤을 부드럽게 하고, 사투리를 안 쓸려고 노력했어요. ^^

제목을 정하느라 나름 고민했어요... ㅎㅎㅎ

stella.K 2018-01-23 15:00   좋아요 0 | URL
ㅎㅎ 그 친구는 목포 사람이야.
거의 안 쓰긴하는데 간혹 전라도 사투리가 섞여있지.
남자가 중저음은 낼 수 있지만 부드럽기는
쉽지 않은 것 같아.
그게 또 보면 성격이나 인품하고도 관련이 있는 것 같아.
좀 성직자 같은데가 있었는데 교육자 집안이더군.
그제서야 이 친구를 이해하겠더군.
물론 그 친구는 교육자는 아니고 사업해.
독특하긴 하지?ㅋ

cyrus 2018-01-23 15:05   좋아요 0 | URL
목소리는 좋은데 사투리가 심하면 확 깨요. 저처럼요.. ㅎ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8-01-22 1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빈센트 프린스 읽고는 이거 혹시 프라이스 말하는 거 아니야.. 했는데 바로 지적하시네요...
ㅎㅎ 프린스라니...

cyrus 2018-01-23 14:35   좋아요 0 | URL
오식 덕분에 프린스의 명곡을 듣게 돼서 기분 좋았습니다. ^^

비연 2018-01-22 2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이 책 흥미로와 보려고 머리맡에 두었는데... 오타 수정되었기를 ㅜㅜ

cyrus 2018-01-23 14:37   좋아요 0 | URL
출판사 직원이 이 글을 확인하고 오류를 수정했으면 좋겠어요. ^^

레삭매냐 2018-01-24 16: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개인적으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보다
왈츠의 제왕 요한 슈트라우스를 더 좋아합니다.

예전에 빈 필의 비엔나 신년 음악회를 즐겨
들었었죠. 요새도 하나 모르겠네요.

개인적으로 엠제이보다 프린스가 더 나은 가수
라고 생각합니다.

<퍼플 레인>도 좋지만 국내 금지곡이었던
<Let‘s Go Crazy>나 처음 들었을 땐 변태같다고
싫어했던 <Kiss>야말로 프린스가 가진 똘기를
더 대변하는 곡이라고 생각합니다.

키스의 가사는 정말 저질스럽다고 할 정도로
노골적이라서요 ㅋㅋㅋ

아, 제가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프린스의 최고
곡은 <U Got the Look>입니다.

cyrus 2018-01-24 16:36   좋아요 0 | URL
프린스의 곡을 추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프린스의 곡을 접한 지 얼마 안 된 초보라서 선뜻 무슨 곡부터 들어야할지 몰랐어요. 다른 분들이 추천하는 곡 위주로 들어보려고 해요. ^^
 

 

 

 

 

나무위키 ‘절판’ 항목에 보면 ‘가치를 인정받는 절판본들의 예’라는 내용이 있다. 여기에 시간이 지나서야 뒤늦게 가치를 인정받은 절판본들의 제목을 볼 수 있다. 이 문서에 법정 스님의 책이 포함되어 있다. 두산동아 판 《이기적인 유전자》는 ‘전설 아니고 레전드’다. 지금도 이 책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더라(그 ‘사람들’ 중 한 사람이 ‘나’다). 제프리 버튼 러셀(Jeffrey Burton Russell)의 《악마의 문화사》(황금가지, 1999)와 《마녀의 문화사》(르네상스, 2004)도 있다.

 

 

 

 

 

 

 

 

 

 

 

 

 

 

 

 

 

 

 

그런데 《마녀의 문화사》는 ‘가치를 인정받는 절판본’에 해당하지 않는다. 《마녀의 문화사》는 2001년에 첫 출간된 이후 절판되었으나 2004년에 재출간되었다(원서는 1980년에 출간). 지금도 이 책은 판매 중이므로 절판본이라 할 수 없다. 그러나 이 책이 더 이상 팔리지 않으면 절판될 수 있다.

 

 

 

 

 

 

 

 

 

 

 

 

 

 

 

 

 

 

 

 

 

 

 

 

 

 

 

 

 

 

 

* 제프리 버튼 러셀 《악의 역사 1 : 데블》 (르네상스, 2006)

* 제프리 버튼 러셀 《악의 역사 2 : 사탄》 (르네상스, 2006)

* 제프리 버튼 러셀 《악의 역사 3 : 루시퍼》 (르네상스, 2006)

* 제프리 버튼 러셀 《악의 역사 4 : 메피스토펠레스》 (르네상스, 2006)

 

 

 

《악마의 문화사》는 절판된 책이다. 그러면 사서 읽을 만한 가치 있는 책인지 살펴보자. 《악마의 문화사》의 원제는 ‘Prince of Darkness : Radical Evil and the Power of Good in History’다. 원서는 1988년에 출간되었다. 이 책이 나오기 전에 러셀은 이미 서양을 대표하는 악마를 다룬 네 권의 책, 일명 ‘악의 역사’ 시리즈를 썼다. 《데블》은 1977년, 《사탄》은 1981년, 《루시퍼》는 1984년, 《메피스토펠레스》는 1986년에 나왔다. ‘악의 역사’ 시리즈 집필이 완료된 이후에 나온 《악마의 문화사》는 네 권의 책에 있는 주요 내용을 선별하여 편집한 책이다. 《악마의 문화사》는 총 17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서론’과 ‘결론’에 해당하는 첫 장과 마지막 장을 제외한 나머지 내용은 ‘악의 역사’ 시리즈 내용 일부와 겹친다. 《악마의 문화사》와 ‘악의 역사’ 시리즈의 대응 관계를 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러셀은 ‘악의 역사’ 시리즈에 있는 오류를 고치고, 거기서 제시된 논지를 좀 더 확장하기 위해 《악마의 문화사》를 썼다고 밝혔다. 이러면 《악마의 문화사》를 요약본이라고 무시할 수 없다. 《악마의 문화사》는 ‘가치를 인정받는 절판본’에 해당한다.

 

 

 

 

 

‘악의 역사’ 시리즈를 완독한 독자라면 ‘악의 역사’ 시리즈와 《악마의 문화사》를 비교하면서 읽는 계획을 설정할 수 있다. 그런데 다섯 권의 책을 다 읽고, 많은 내용을 이해하려면 꽤 오랜 시간이 걸릴 듯하다. 《악마의 문화사》에 저자의 주석, 참고 문헌, 색인이 없는 것이 단점이다. 러셀은 《악마의 문화사》의 인용문이나 특정 주제에 더 알고 싶으면 ‘악의 역사’ 시리즈를 참조(라고 쓰고, ‘읽어라’고 말한다)하고 권한다. 이런, 악마 같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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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8-01-16 1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기적 유전자>에 저런 비화(?)가 있었군요. 말씀하신 링크 타고 들어가서 읽어보니 흥미로운 내용이 많군요. 이용철판 궁금하네요.

cyrus 2018-01-16 15:16   좋아요 0 | URL
저도 이용철 번역의 <이기적인 유전자>를 읽어보고 싶어요. 실물을 본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사진으로만 봤어요. 중고 책은 구할 수 있지만 가격이 비싸요.. ^^;;

stella.K 2018-01-16 1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저 악마 시리즈 이벤트 한 적이 있어 한 권 읽은 적 있는데
읽느라고 얼마나 고생했던지. 정말 악마적이었다.
그때의 악몽이 되살아 나는 것 같군.ㅠ

cyrus 2018-01-16 15:19   좋아요 1 | URL
‘악의 역사’ 시리즈 전체 분량이 장난 아니던데요.. 그 책 한 권 이해하려면 서양 문화에 대한 배경지식이 있어야 할 것 같아요. ^^;;

레삭매냐 2018-01-16 14: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녀의 문화사 저도 쟁여 두긴 했는데
미처 읽지 못하고 있네요...

cyrus 2018-01-16 15:21   좋아요 0 | URL
그 책, 무조건 가지고 계셔요. 언젠가는 읽을 날이 올 겁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레어템이 될 수 있어요. ^^

2018-01-16 15: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1-16 15:27   좋아요 0 | URL
귀한 책을 가지고 계시다니 부럽습니다. 을유문화사 번역본 개정판이 나왔는데도 아직도 두산동아 번역본을 찾는 분들이 있어요. 독서괭님 댓글, ‘비밀 댓글’로 변경해두는 것이 좋아요. 댓글 보신 분들이 그 책을 팔 생각이 있냐고 물어볼 수 있거든요. ^^

2018-01-16 15: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감은빛 2018-01-16 1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집에 있는 [이기적 유전자] 번역이 누군지 확인해봐야겠네요. ^^

법정 스님 저서도 두어권 있었는데,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네요.

cyrus 2018-01-17 10:15   좋아요 0 | URL
을유문화사 판본은 <이기적 유전자>, 이용철 씨가 번역한 두산동아 판본은 <이기적인 유전자>입니다. 제목, 출판사, 번역자 이름을 확인해보세요. ^^

chaeg 2018-01-16 23: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헛.. 초등학교 6학년 때 어머니께서 사주신 이기적 유전자가 저리 귀할 줄이야^^;;;;
원서를 보는게 그래도 가장 낫겠네요..

cyrus 2018-01-17 10:17   좋아요 0 | URL
원서, 두산동아 번역본, 을유문화사 번역본 세 권을 비교하면서 읽어본 분이 있었어요. 그 분도 원서를 읽는 게 낫다고 말했어요. 두산동아 번역본도 결점이 있긴 한데, 2010년 개정판 나오기 전 구판의 번역보다 좋다는 평이 많았습니다. 을유문화사 번역본을 선택하려면 2010년 개정판을 사야합니다. 그 전에 나온 구판들은 중고로 사봤자 의미 없어요. ^^

psyche 2018-01-17 0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녀의 문화사 저 책 저도 가지고 있는거네요. 제가 가지고 있는것은 2001년에 나온것인듯. 오래전 일이라 책을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는 생각이 잘 ...ㅜㅜ

cyrus 2018-01-17 10:20   좋아요 0 | URL
책을 사놓고도 안 읽으면 나중에 그 책을 샀는지 안 샀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요. 가끔 예전에 샀던 책을 또 사는 경우가 있어요. ^^;;
 

 

 

 

절대로 일어나선 안 되지만, 만약 미래에 제3차 세계대전이 발발한다면 ‘암호 전쟁’이 될 것이다. 암호는 핵무기 다음으로 전쟁에서 가장 큰 위력을 발휘할 무기다.

 

 

 

 

 

 

 

 

 

 

 

 

 

 

 

 

 

 

 

 

 

 

 

 

 

 

 

 

 

 

 

* 사이먼 싱 《비밀의 언어 : 암호의 역사와 과학》 (인사이트, 2015)

* 박영수 《암호 이야기》 (북로드, 2006)

* [절판] 데이비드 칸 《코드브레이커 : 암호 해독의 역사》 (이지북, 2005)

* [절판] 루돌프 키펜한 《암호의 세계》 (이지북, 2001)

 

 

 

암호 해독은 군사 비밀 정보활동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적군이 군사 기밀 암호를 해독하면 군 전력뿐만 아니라 국가 전체의 엄청난 타격을 입게 된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연합군은 나치의 암호체계인 에니그마(Enigma)를 완전 해독, 독일 잠수함을 곳곳에서 침몰시켰다. 사이먼 싱(Simon Singh)은 암호의 역사를 “암호를 만드는 사람들과 이를 해독하려는 사람들이 수백 년에 걸쳐 진행된 전쟁의 역사”라고 말했다. 암호 속에 의미를 숨긴 자와 그 의미를 밝혀내는 치열한 수 싸움으로 점철된 암호의 세계는 인류 문명사와 깊숙이 맞닿아 있다.

 

 

 

 

 

 

 

 

 

 

 

 

 

 

 

 

 

 

 

 

 

 

 

 

 

 

 

 

 

 

 

 

* 움베르토 에코 《장미의 이름》 (열린책들, 2009)

* 댄 브라운 《다 빈치 코드》 (문학수첩, 2013)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장미의 이름》댄 브라운(Dan Brown)《다 빈치 코드》의 인기 비결은 책, 그림, 유적 속에 엄청난 비밀이 숨겨져 있다는 가정 아래 과거의 수수께끼를 암호풀이로 해독해 가면서 독자의 두뇌를 자극한 데서 찾을 수 있다. 이 두 소설은 종교와 미술에 대한 해박한 지식의 바탕 위에 도상학과 기호학 등을 끌어들여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켜 주었다. 이렇듯 암호는 비밀을 숨기는 것을 좋아하거나 비밀을 밝히고 싶은 인간을 유혹하는 은밀한 언어다.

 

 

 

 

 

 

 

 

 

 

 

 

 

 

 

 

 

* 더글러스 호프스태터 《괴델, 에셔, 바흐 : 영원한 황금 노끈》 (까치, 2017)

* 진중권 《미학 오디세이 2》 (휴머니스트, 2014)

 

 

 

암호는 음표로 가득한 텍스트에도 적용될 수 있다. 바흐(Bach)는 자신의 은밀한 메시지를 악보 행간에 숨겨놓았다. 『푸가의 기법』은 바흐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 만들어진 미완성곡이지만 풍부한 악상의 변화를 간직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총 열여덟 개의 푸가(fugue)로 이루어진 모음곡이다. 푸가는 하나의 선율이 또 다른 선율을 모방하는 형태로 연주하는 작곡기법이다. 바흐는 죽기 전에 자신의 능력을 악보에 쏟아 부어 푸가 기법의 모든 것을 보여주려고 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만든 음악의 종결부에 최후의 메시지라 할 수 있는 ‘묘비명’을 넣었다. 바흐가 악보에 새긴 묘비명은 더글러스 호프스태터(Douglas Hofstadter)《괴델, 에셔, 바흐》(까치, 2017)의 주요 내용이므로 자세한 언급은 하지 않겠다. 손 안 대고 코 풀 듯이 방대한 분량의 책을 읽지 않고 당장 바흐의 메시지를 확인할 수 있다. 《미학 오디세이 2》(휴머니스트, 2014)‘4성 대위법’ 편을 참고하시길.

 

 

 

 

 

 

 

 

 

 

 

 

 

 

 

 

* 칼 세이건, 앤 드루얀, 티모시 페레스 외 《지구의 속삭임》 (사이언스북스, 2016)

 

 

 

호프스태터는 우주 외계 문명이 알아볼 수 있는 메시지를 만들기 위해선 메시지를 저장한 음반을 우주로 보내면 된다고 했다. 이 주장에 대해서 호프스태터의 책을 우리말로 옮긴 역자(박여성, 안병서 둘 중 한 분)는 ‘이 부분의 논지 전개는 좀 이상해 보인다’라는 주석을 달았다.[1] 외계 생명체의 존재를 믿지 않는 회의주의자라면 호프스태터의 주장이 황당하게 보일 것이다. 그렇지만 인간의 정서를 가진 외계 생명체가 존재한다는 가정을 세운다면 외계 생명체는 음반을 해독할 것이다. 호프스태터의 주장이 현실성이 떨어지고 억지스러운 논지 전개로 보기 어렵다. 왜냐하면 《괴델, 에셔, 바흐》가 출간되기 2년 전인 1977년에 발사된 미국의 우주탐사선 보이저 2호에 지구의 다양한 메시지와 소리, 그리고 음악이 담긴 레코드가 실려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그 유명한 ‘보이저 골든 레코드’다. (그런데 《괴델, 에셔, 바흐》에 실제로 우주에 쏘아올린 인류의 메시지를 담은 음반이라 할 수 있는 '보이저 레코드'에 대한 언급이 단 한 줄도 없다. 미국에 태어난 호프스태터가 보이저 호의 역사적인 발사를 모를 리가 없을 텐데...)

 

 

 

 

 

칼 세이건(Carl Sagan)의 주도하에 만들어진 이 레코드는 혹시 보이저 호를 만나게 될지도 모르는 우주 생명체를 위한 인류 최후의 메시지다. 세이건은 고도의 지능을 가진 외계 생명체를 만나고 싶어 했다. 그는 외계 생명체가 인류와 함께 우주에 살고 있어서 둘 사이의 지식에는 공통점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레코드의 수명은 10억 년이다. 그 사이에 외계 생명체가 존재한다면 그들은 인류의 존재를 알 수 있게 된다. 지구가 파괴되어 인류가 멸망하지 않는다면 인류의 후손은 외계 생명체가 보내는 답변을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호라티우스는 “언어는 영원에 도전한다.”라고 썼다. 우리가 그의 경구를 기억한다는 사실이야말로 그가 옳았다는 증거이다. 보이저호가 방랑을 멈추는 시점에 우리 아름다운 행성에서는 얼마나 많은 것들이 진작 사라졌을지, 우리는 알 길이 없다. 이 레코드판이 칭송했던 목소리들 중 얼마나 많은 것들이 우리의 부주의 때문에, 혹은 그저 세월 때문에 영영 목소리를 잃었을지, 역시 알 길이 없다. 보이저 호는 우리의 메아리와 이미지를 싣고서 우주를 여행하고 있으며, 머나먼 그 여정만큼 오랫동안 우리를 계속 살아 있게 할 것이다. (앤 드루얀) [2]

 

 

암호도 언어다. 암호는 해독해야 할 가짜 문자와 그 속에 숨겨진 진짜 문자로 이루어진 '비밀의 언어'다. 따라서 앤 드루얀(Ann Druyan)이 인용한 호라티우스(Horatius)의 격언처럼 해독하지 못한 암호는 영원에 도전한다. 언어를 만들고 쓸 줄 아는 인간은 위대하면서도 약한 존재이다. 우주의 역사와 대자연의 위력 앞에서 인간은 정말 작다. 대자연이 일으키는 재앙보다 더 끔찍한 재앙이 바로 인류가 일으키는 전쟁이다. 거대한 지구에는 여전히 인류가 밝히지 못한 ‘자연의 암호’가 널려 있다. 우리 몸속에 있는 ‘유전 암호’ 또한 인류가 밝혀내야 할 자연의 암호 중 하나이다. 이 ‘자연의 암호’를 해독하는 사람이 과학자다. 그러나 전쟁에 동원된 과학자들은 적군을 쓰러뜨리기 위해 암호를 해독하는 일을 하게 된다. 인간의 이기심으로 일어나는 전쟁은 자연을 파괴하며 인간을 포함한 모든 것도 파괴된다. 만약 미래의 지구가 죽음의 땅이 된다면 보이저호의 레코드는 수명이 다할 때까지 우주에 외로이 떠다니는 인류의 묘비명으로 남을 것이다.

 

 

 

 

 

[1] 더글러스 호프스태터 《괴델, 에셔, 바흐》(까치, 2017) 216쪽

[2] 《지구의 속삭임》216~2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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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8-01-05 0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늦었지만, 새해 인사 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무심코 연간 통계를 보니, 지난 해 제 서재에 댓글을 가장 많이 남겨주신 분이네요. 감사드립니다.^^

cyrus 2018-01-05 14:19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마립간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양주동의 수필집 문주반생기(최측의농간, 2017) 193쪽에 보면 눈에 띄는 표시가 있다. 젊은 독자들의 눈에는 잘못 인쇄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중장년층 독자는 이 표시가 무슨 의미인지 알 것이다. (? 그렇다면 이걸 아는 나도 중장년층 독자란 말인가?)

 

 

 

 

 

 

 

 

 

 

 

 

 

 

 

 

 

 

 

* 양주동 문주반생기(최측의농간, 2017)

* 최남선 백팔번뇌(태학사, 2006)

   

 

주지하듯이 백팔번뇌는 그때 그가 조선이란 에게 바친 뜨거운, 뿌리 깊은 사랑괴로움의 노래로서, 그의 대표적 시조집으로, 조그만 책자이나 시조사상의 한 중흥 기념탑이 될 만한 역작이다. 거기는 춘원, , 위당 등 당시 문단 거벽들의 서(), ()이 즐비 되어 있고, 끝에 석전 박한영 사()의 한시 명작 제사(題詞)가 실려 있다.

 

 

 

백팔번뇌육당 최남선1926년에 발표한 시조집이다. 이 책이 우리나라 최초의 시조집으로 잘못 알려지는 바람에 육당은 국내 시조 역사의 시작점에 놓인 인물로 '과대 평가'를 받았다. 정확하게 바로 잡으면 백팔번뇌우리나라 최초 근대 시조집이라 해야 한다.

 

 

 

 

 

 

 

 

 

 

 

 

 

 

 

 

 

 

* 최남선, 황충기 해제 육당본 청구영언(푸른사상, 2013)

 

 

 

우리나라 최초의 시조집은 1728김천택이 편찬한 청구영언이다. 청구영언은 총 7종의 이본(異本)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중 한 권이 육당의 손을 거친 육당본이다. 백팔번뇌서문에 육당은 1904년에 자신이 시조를 쓴 사실을 언급했다. 이 문장을 근거로 연구가들은 육당이 최초로 현대 시조를 썼다고 주장하지만, 이 작품의 원본은 발견되지 않았다. 1906721일 대한매일신보에 발표된 대구여사(大丘女史, 필명만 알려졌을 뿐 정확히 누구인지 밝혀지지 않았다)’혈죽가(血竹歌)를 우리나라 최초의 현대 시조로 보고 있으며 이 시조가 발표된 721일을 기념해 시조의 날로 제정되었다.[1]

 

각설하고, 책 속 본문에 있는 표시를 주목해보자. 본문에 가 있다. 어떻게 읽어야 할까? 벽원? 벽 동그라미? 내가 추측하건데, ‘벽초 홍명희를 가리키는 것이다. 그는 육당, 춘원 이광수와 더불어 조선 3대 천재(동경삼재, 東京三才)’로 이름을 날렸다.

 

벽초가 쓴 임꺽정은 일제강점기 최대의 대하소설로 손꼽힌다. 이 작품은 1928년부터 조선일보에 연재를 시작했다. 그러나 일제 탄압으로 조선일보가 강제로 폐간된 1939년에 연재가 중단되었다. 임꺽정1940년 월간지 <조광>에 옮겨 다시 연재되었으나 끝내 미완성으로 남았다. 벽초는 월북하여 김일성의 공산당 정권 수립을 돕는 정치인으로 활동했다. 북한에서의 행적 때문에 벽초는 남한에서 불순한 월북 작가로 낙인찍혔고, 임꺽정은 금서로 지정되었다.

 

분단 이후로 반공 정책이 더욱 강하되어 월북 작가 및 예술가들은 완전히 잊혀졌다. 심지어 그들의 이름을 거론하는 것조차 금기시되었다. 그래서 월북 작가의 이름이 인쇄물에 찍히면 이름 가운데 글자가 있는 자리에 ‘O’ 또는 ‘X’ 표시를 했다. 문주반생기가 발표된 해는 1960년이다. 냉전 반공체제를 유지했던 이승만 정권 시절이다. 그런데 6·25전쟁 당시 월북한 춘원의 이름은 멀쩡하게 나와 있다. 사실 춘원은 자발적으로 북한으로 간 것이 아니라 북한 인민군에게 끌려갔다. 이 시기의 춘원은 병으로 심신이 쇠약한 상태였고 전란이 한창이던 1950년에 사망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 권영민 엮음 정지용 전집 1~3(민음사, 2016)

 

 

 

그런데 내가 봐도 월북 인사 이름 언급의 기준이 모호하다. 아니, 너무 불공평하고 억지스럽다. 반공 정부는 월북 인사의 행방을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무조건 북한으로 건너간 인사들을 친북 인사로 규정했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시인 정지용이다. 1988년에 월북 작가 및 예술가 해금 조치가 내리기 전까지 정지용은 잊힌 이름이었고, 어정쩡하게 X으로 알려졌다. 정지용의 시가 수능 시험 지문으로 출제되는 지금의 상황을 비교하면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 김진송 이쾌대(열화당, 1996)

* 국립현대미술관 거장 이쾌대, 해방의 대서사(돌베개, 2015)

 

 

 

최근 재조명받고 있는 화가 이쾌대도 분단의 비극에 희생당한 불운한 인물이다. 이쾌대는 뛰어난 서양화가로 인정받았으나 여러 복잡한 사정 때문에 월북을 선택했다. 남한에서 그의 이름은 였다. 1991년에 그의 이름을 내건 전시회가 열렸다. 이쾌대는 경북 칠곡 출신이며 1928년 서울의 휘문고보(휘문고등학교 전신)에 진학할 때까지 대구에 거주했다. 이쾌대의 형 이여성은 대구에서 항일운동을 한 공산주의자이며 동생처럼 그림을 출품한 적이 있는 화가이다. 그도 월북하여 북한에서 학자 생활을 했으나 숙청당했다.

 

 

 

 

 

 

 

 

 

 

 

 

 

 

 

 

 

* 김상숙 10월 항쟁(돌베개, 2016)

 

 

 

현재의 경북, 대구는 반공 우파의 성지로 알려졌지만, 일제 강점기 대구는 좌파의 성지였다. 1946‘10월 항쟁은 미 군정의 식량 정책, 친일 인사 등용 등에 항의한 좌파 독립운동가와 민중들이 일으킨 대규모 무장 시위였다. 경찰의 무자비한 진압으로 항쟁에 가담한 독립운동가와 민간인들이 사망했으며 남로당(남조선노동당) 간부 박상희도 경찰의 총탄에 맞아 사망했다. 박상희는 박정희 대통령의 친형이다. ‘빨갱이를 무서워하는 어르신들은 대구 경북이 자랑하는 뛰어난 월북 화가가 있다는 사실을 아시려나? 이쾌대가 누군지 모를 수 있다. 하지만 단지 북한에 건너갔다는 이유만으로 그를 욕할 수 없다. 씁쓸하지만 아직도 과거의 이념에 갇힌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월북 인사들의 이름조차 입에 담기 싫어할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을 좋아하는 어르신들은 죽은 형의 복수를 위해 남로당에 가입했고, 국군 내 남로당 프락치로 활동한 군인 박정희를 아시려나? ‘빨갱이를 엄청 싫어하는 그분들의 단순한 기준에 따르면 공산주의자들과 함께 활동한 적이 있는 박정희 대통령도 빨갱이. 자신들에게 불리한 역사를 철저히 숨기고, 모른 쇠하는 민족 역시 미래는 없다. 아니, 답이 없다.

 

 

 

 

 

[1] [721일은 시조의 날현대시조 100주년 맞아 선포] 국민일보, 2006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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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맥(漂麥) 2017-12-28 12: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음... 저도 ‘중장년층 독자’가 되고 마는군요...^^

cyrus 2017-12-28 17:39   좋아요 1 | URL
저는 아재 독자입니다... 요즘 젊은 독자들이 선호하는 젊은 작가들이 누구 있는지 잘 몰라요.. ㅎㅎㅎ

[그장소] 2017-12-28 1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이책이 자꾸 보인다 싶었는데 개정판으로 다시 나왔군요! 범우사 ㅡ 책으로 알고 있었는데!!
권여선의 안녕 주정뱅이 ~ 가 힙했다면 과거엔 양주동 님의 문주반생기도 만만찮죠!!

cyrus 2017-12-28 17:41   좋아요 1 | URL
초판본의 옛 글자를 고치지 않고, 그대로 살려서 나왔습니다. 이해 안 되는 단어를 설명하는 각주가 있지만, 조금 읽기 힘들었어요. <안녕 주정뱅이>는 제목만 들어봤습니다. 제가 젊은 저자나 작가의 책을 잘 안 읽는 편이에요. ^^;;

[그장소] 2017-12-28 17:46   좋아요 1 | URL
권여선 작가는 젊은 ( 등단 10년정도를 기준이라고 하면) 작가보단 중견 작가에 가까운 듯 싶지만 , 취향이겠죠 ..아마도~
멋진 작가입니다 . 이 권여선 작품들도 ..
개정판이 표지도 그렇고 큰 변화가 느껴지지 않아요 . 아마 그걸 노린 마케팅 같기도 하네요. ^^

레삭매냐 2017-12-28 13: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해방 공간에서 대구가 한 때 동양의 모스크바
로 불린 적도 있다고 하네요.

지금 한창 읽고 있는 <조선공산당 평전>을 보
니 안동 풍산 소비에트에 대해서도 나오고요.

반공 보수우파의 성지가 된 모습과는 격세지감
을 느낀다고나 할까요.

cyrus 2017-12-28 17:45   좋아요 1 | URL
대구에서 가장 많은 책을 소장하고 있는 합동북이라는 헌책방에 가면 8, 90년대에 나온 마르크스, 레닌 관련 서적들을 많이 볼 수 있어요. 사회주의 관련 출판물이 한창 나왔던 시절에 대구에서도 사회주의에 관심 많은 독자들이 많았을 거예요.

지금행복하자 2017-12-28 14: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모르는저는 청년? 아니죠~ 지식이 짧은거라죠~^^

cyrus 2017-12-28 17:53   좋아요 1 | URL
지식의 범위보다는 세대 차이로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

2017-12-28 14: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12-28 17:49   좋아요 1 | URL
대구는 서울과 비교하면 문화적, 경제적 면으로 뒤쳐져 있어요. 이런 열악한 곳에 대구 출신 문인들의 모임, 일반인들의 독서 모임이 이루어지는 서점 등이 생겨서 위안이 되긴 합니다만 그래도 현실은 시궁창입니다... ^^;;

이하라 2017-12-28 2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중장년층 독자 안하겠습니다--; 초보 독자로 남을래요^^;;

cyrus 2017-12-29 08:04   좋아요 0 | URL
나이가 들어서도 스펀지로 흡수하는 것처럼 신선한 지식을 흡수할 줄 아는 젊은 독자가 되고 싶습니다. ^^
 

 

 

최근 뜬금없이 올더스 헉슬리(Aldous Huxley)의 《연애대위법》을 읽고 싶어졌다. 헉슬리의 초기작으로 분류되는 장편인데, 이 소설을 다 읽고 나면 이어서 《멋진 신세계》를 다시 읽어보려고 한다. 헉슬리의 소설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먼저 《연애대위법》 번역본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

 

 

 

 

 

 

 

 

 

 

 

 

 

 

 

 

 

현재 구할 수 있는 <연애대위법> 번역본은 딱 한 권뿐이다. 동서문화사《멋진 신세계, 연애대위법》이다. 동서문화사! 구설수가 많은 출판사다. 저작권을 위반한 채 뻔뻔하게 《대망》을 판매했으며(이 일로 동서문화사 대표 고정일 씨가 검찰에 기소됐다. 그런데도 《대망》은 절판되지 않았다), 기존에 나온 번역본을 표절한 것으로 의심되는 책들이 있다.[1] <연애대위법>이 수록된 동서문화사 번역본도 그냥 넘어가기 힘든 의문점이 남아 있다.

 

 

 

 

1. 《멋진 신세계, 연애대위법》 1판 1쇄 날짜는 1987년 7월 1일이다. 그런데 1판이 출간된 적이 있었는가?

 

 

 

 

 

 

번역본 발행정보에 따르면 1판 1쇄 발행일이 1987년 7월 1일, 2판 1쇄가 2013년에 나왔다. 발행정보 밑에 보면 깨알 같은 글씨가 적혀 있다.

 

 

이 책은 저작권법(5015호) 부칙 제4조 회복저작물 이용권에 의해

중판 발행합니다.

 

 

출판사는 이 번역본이 중판 발행임을 명시했다. 저작권법이 규정한 회복저작물 이용권’이란 무엇일까?

 

 

“회복저작물 등을 원 저작물로 하는 2차적 저작물로서 1995년 1월 1일 이전에 작성된 것은 이 법 시행 후에도 이를 계속하여 이용할 수 있다. 다만, 그 원 저작물의 권리자는 1999년 12월 31일 이후의 이용에 대하여 상당한 보상을 청구할 수 있다.” [2]

 

 

우리나라는 1995년에 세계 저작권 협약(베른 협약)에 가입했다. 2차적 저작물(번역본)을 출간하려면 앞서 원 저작물(외국인의 저작물)의 권리자와 정식 계약을 해야 한다. 즉 세계 저작권 협약을 맺음으로써 1990년대 초반까지 쏟아져 나오던 해적판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예외 조항이 있다. 그것이 바로 회복저작물 이용권이다. 1995년 1월 1일 이전에 나온 2차적 저작물이 정식 계약을 거치지 않은 해적판이라도 출판될 수 있다.

 

1987년에 나온 《멋진 신세계, 연애대위법》은 원 저작물의 권리자와 출판 계약하지 않은 번역본이지만, 이 회복저작물 이용권이 적용되어 중판 형태로 재출간할 수 있다. 그래도 미심쩍은 점이 있다. 정말로 1987년에 동서문화사의 《멋진 신세계, 연애대위법》 1판이 출간된 적이 있었는가?

 

국립중앙도서관동서문화사 판(2013년에 나온 중판)을 포함한 ‘연애대위법’ 번역본 총 12종이 소장되어 있다. 1959년 동아출판사를 시작으로 을유문화사, 삼성출판사 등이 <연애대위법> 번역본을 출간했다. 그런데 1987년에 나온 동서문화사 번역본은 없다! 중판으로 발행된 번역본만 있을 뿐이다.

 

나는 회복저작물 이용권이 정식계약을 하지 않은 책을 오늘날까지 나오게 만드는 ‘악법’이자 비양심적인 출판사들이 좋아하는 ‘편법’이라고 생각한다. 세계 저작권 협약 가입 이전에 나온 해적판의 번역 질은 그리 좋지 않다. 21세기에 요즘 잘 쓰지도 않는 단어, 현행 외래어 표기법에 맞지 않은 외래어를 보는 것이 거북하다. 그런데도 동서문화사는 회복저작물 이용권이라는 ‘편법’을 이용해서 기존의 번역본 일부를 무단 도용하거나 아예 중판으로 출간한다. 편집 교정을 거치지 않은 채 질 떨어지는 해적판 번역본을 내놓는다는 것은 독자를 기만하는 일이다.

 

 

 

 

2. 책을 번역한 ‘이경직’은 누굴까? 설마, 당신도 유령 번역자’인가?

 

 

 

 

 

 

《멋진 신세계, 연애대위법》 번역자인 이경직의 약력이 의심스럽다. 국제대학 영문과 교수’라고 되어 있는데, 혹시 경기도에 있는 ‘국제대학교’를 말하는 것일까? 이 학교는 1997년에 세워진 사립 전문대학이다. 2006년에 ‘국제대학’으로 개명했다. 그런데 이 학교에 ‘영문학과’는 개설되지 않았다. 이거, 경력 위조인가?

 

이경직 씨가 ‘문예지 소설 <추운 밤>으로 등단’했다고 한다. ‘문예지 소설’이라면서 소설이 등재된 문예지 이름은 없는 것일까?

 

 

 

 

 

 

이경직 씨가 지은 책은 <영원과 사랑의 시>, 번역본으로는 윌리엄 사로얀(William Saroyan)의 <인간 희극>이 있다. 이 정보 또한 확실하지 않다. 실제로 <영원과 사랑의 시>라는 제목의 책이 1981년 문학출판사에 나온 적이 있다. 그런데 이 책은 일본 작가의 글을 번역한 것이고, 번역자 이름은 ‘이서종’이다. 또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된 <인간 희극> 번역본 중에 이경직 씨가 번역한 것은 없다.

 

 

 

 

[1] [동서문화사 번역본의 불편한 진실] 2016년 3월 2일

http://blog.aladin.co.kr/haesung/8284417

 

[돈 내놔라! 출판사야!] 2017년 6월 18일

http://blog.aladin.co.kr/haesung/9402985

 

 

[2] 네이버 지식백과, <회복저작물과 출판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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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renown 2017-12-22 1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의 눈이네요..회복저작물 이용권은 처음들어보는데..우리 출판풍토도 이런적폐를 없애야 독자에게 외면받지 않을텐데,한심한 노릇입니다^^.

cyrus 2017-12-22 17:48   좋아요 0 | URL
적폐 출판사들 때문에 정식 계약을 맺고 정당한 절차로 책을 만든 출판사들이 손해를 입습니다. 독자들은 적폐 출판사들의 실체를 모른 채, 허술한 책을 사게 됩니다. 출판 업계 사람들도 동서문화사의 구린 행보를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기호 씨도 자신의 블로그에 동서문화사를 여러 번 깐 적이 있었습니다.

이리스 2017-12-22 1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서문화사 저격수다운 예리함!안그래도 멋진신세게계 읽는중인데, 좀 열받네요. 아무리 세상은 넓고 읽어야하는 책이 많다지만 이런 책들이 버젓이 스리슬쩍 성업중이라는게...

cyrus 2017-12-22 17:49   좋아요 0 | URL
저격수까지는 아닙니다.. ^^;; 동서문화사 책값이 비교적 저렴한 편인데, 사실 저렴하게 만든 책을 많이 팔려는 저렴한 마케팅입니다.

Falstaff 2019-08-17 13: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국제대학˝은 1980년대까지 서대문 로타리에 있었던 ˝야간대학˝이었습니다. 당시 공부는 잘하지만 집이 가난한 학생들이 주로 덕수상고, 경기상고에 입학했는데 사무실이 서울시내에 있던 (그러니 유명 공업고등학교 졸업생들은 다니기 힘들었고요) 직장인들이 많이 다녔던 학교입니다.
머리 좋은, 그러나 가난한 학생들이 많이 다녀서 그 학교 졸업생들이 보통 도전적이고 투쟁적인 경향이 좀 있었습니다. 직장에서 일 하나는 똑부러지게 하지만. 지금은 은퇴한 고위 공무원 가운데 국제대학 출신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이젠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지요.) 국제대학 후신이 성북구 정릉동으로 언덕 꼭대기에 있는 예전 대일고등학교 자리로 옮긴 서경대학교입니다.
저도 더 이상 <연애 대위법>의 새로운 번역을 기다리지 못해 이 책을 구입했습니다. 저는 이 책이 일본어 중역판이 아닐까를 의심하고 있습니다만.

cyrus 2019-08-17 12:18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저자의 약력을 속이는 출판사의 행보 때문에 국제대학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곳이 아닐까 의심한 적이 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