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사는 곳은 대구광역시 서구입니다. 불명예스럽게도 서구는 대구 자치구 중 가장 보수적인 곳입니다. 다음 주에 하는 전국 지방선거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걱정됩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서구는 섬유산업의 중심지였고, 지역경제가 활성화된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산업시설의 노후화로 인해 섬유산업이 사양길로 접어들면서 인구도 줄고, 지역 소득도 줄어들었습니다. 속된 말로 서구는 ‘대구에서 제일 못사는 자치구’입니다.

 

서구와 근접해 있는 자치구 중 하나가 달서구입니다. 서구와 이름이 비슷해서 혼동하기 쉽습니다. 1988년에 서구의 일부 지역(내당동 일부, 성서)이 달서구로 편입되면서 서구 면적은 현재의 모습으로 확 줄어들었어요. 이때부터 서구는 흙길을 걷기 시작했죠. 달서구에 있는 공공도서관은 총 세 곳입니다. 도원도서관, 성서도서관, 본리도서관입니다. 저는 달서구에 가면 세 곳만 꼭 갑니다. 그 외에는 달서구의 랜드마크에 가지 않아요. 달서구 면적이 꽤 넓어서 달서구 동네 이름도 잘 몰라요.

 

이번 지방선거에 기초의원 비례대표를 뽑는 지역 자치구가 있습니다. 비례대표 서구의회의원 선거에 후보자 4명이 출마했는데 2명은 더불어민주당, 나머지 2명은 자유한국당 소속입니다. 정의당, 녹색당 소속 후보가 없는 게 아쉽습니다.

 

 

 

 

 

 

비례대표 달서구의회의원 선거에 출마한 후보는 총 8명입니다. 저는 서구에 살고 있지만, 비례대표 달서구의회의원 선거 결과가 제일 궁금하면서도 기대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아는 분이 비례대표 후보로 출마했기 때문입니다.

 

알라딘 블로그를 개설한 이래 처음으로 특정 정당 후보자를 지지하는 글을 쓰는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솔직히 이런 글을 어떻게 써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너무 성의 없이 글을 쓰게 되면 후보자를 지지하는 호소력이 줄어들 것 같고, 그렇다고 구구절절 정성을 다해 호소하면서 쓰면 사족(蛇足)이 늘어날까 봐 신경 쓰입니다. 그냥 후보자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듯이 쓸려고 합니다.

 

 

 

 

 

제가 지지하는 배수정 후보정의당 소속이며 추천순위 1번으로 출마했습니다. 후보자의 약력 및 경력은 인터넷에 검색하면 확인할 수 있으므로 생략하겠습니다. 배 후보가 내세운 공약은 다음과 같습니다.

 

 

 

 

 

* 여성안심도시 실현

* 달서구가 함께 책임지는 아이 돌봄 교육

* 미세먼지 및 대기환경 개선 조례 제정

* 관변단체 보조금 등 특혜 폐지

* 업무추진비 사용내역 공개

 

 

제가 배 후보를 알게 된 계기는 ‘페미니즘 북클럽 레드스타킹’이었습니다. 올해 초에 이 독서 모임에 참석하기 시작하면서 배 후보를 만나게 됐습니다. 배 후보는 오래전부터 레드스타킹에 활동하면서 여성 문제, 사회적 약자 문제에 늘 관심을 가져왔던 페미니스트입니다. 비록 소규모 독서 모임이지만, 배 후보는 모임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갔습니다. 그녀는 확고한 생각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그 생각을 행동으로 표현할 줄 아는 실천력도 지녔습니다.

 

 

 

 

 

 

지난 4월에 경북대학교 교수가 대학원생을 성추행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대구 여성단체들이 진상조사를 촉구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진상조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에 배 후보가 참석했습니다. 저는 그저 생각만 하는 사람(제가 이런 유형의 사람입니다)보다 직접 목소리를 내면서 행동하는 사람이 더욱더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실천력이 겸비된 준비된 행동을 할 줄 아는 배 후보야말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갈 젊은 리더십을 보여줄 수 있다고 믿습니다.

 

 

 

 

 

대구가 보수 아니 자유한국당의 텃밭이라는 오명을 벗고 ‘젊은 대구’로 도약하려면 ‘젊은 정치인’들이 많아져야 합니다. 그러려면 젊은 정치인들이 활동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밀어주는 정당에 투표해야 합니다. 불행하게도 서구에 출마한 후보자 중에 30대 후보자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저는 달서구 주민이 아니라서 배 후보에게 한 표를 줄 수가 없어요. 배 후보가 지인이라서 지지하는 건 아닙니다. 배 후보가 지향하는 정치가 늙어서 힘 빠진 대구를 살리는 데 필요한 에너지이기 때문입니다.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날씨 변화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나비 효과’라고 하죠. 배 후보가 달서구 비례대표로 당선된다면 서구를 포함한 다른 자치구에 영향을 줄 것이고, 자치구 주민들은 ‘젊은 정치’의 필요성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배 후보의 작지만 힘찬 날갯짓은 달서구뿐만 아니라 대구 전역에 긍정적 영향을 주는 나비 효과가 될 수 있습니다.

 

 

 

 

 

 

이 글을 보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영향력 있는 사람이 아니라서 이 글은 오늘 하루 지나면 잊힐 것입니다. 특정 후보자를 지지하는 글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을 겁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배 후보를 지지하는 글을 남겨 봅니다. 이번 주 일요일까지 블로그에 새로운 글을 등록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저는 시간 나는 대로 배 후보를 돕기 위해 선거운동에 나서려고 합니다. 달서구 주민 여러분의 소중한 한 표, 정의당 달서구 비례대표 후보 배수정에게 부탁드립니다.

 

대구가 아닌 다른 지역에 사는 여러분들에게 부탁드립니다. 대구의 민심에 대해 욕만 하지 말고, 대구가 정신 차릴 수 있도록 대구에 사는 가족 또는 지인들에게 ‘젊은 정치인’을 지지해달라고 말씀해주세요. 이제는 선거구에 상관없이 정치인 또는 후보자를 지지할 수 있습니다. 지지하지 못하더라도 대구에도 젊은 후보들이 있다는 사실을 SNS로 널리 알려주세요.

 

 

 


댓글(16)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18-06-07 16: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6-08 18:46   좋아요 2 | URL
대구 민심을 잘 모르겠어요. 이번 선거 기간 동안 돌아다니면서 더불어민주당이나 정의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만났어요. 이번 선거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겠지만, 여전히 자한당이 우세하다면 ‘샤이 자한당‘이 생각보다 많을 것 같습니다. 이러면 진보 성향 후보자들 입장에서는 상당히 힘이 빠질 겁니다.

깐도리 2018-06-07 16: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사는 곳도 보수지역 경북 북부랍니다....요번에 지각변동 있을 것 같아요...

cyrus 2018-06-08 18:48   좋아요 0 | URL
민심이 확 달라지는 게 이렇게 오래 걸린 일일 줄 몰랐습니다. 예상을 뒤엎는 결과가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레삭매냐 2018-06-07 17: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 때 대구가 조선의 모스크바라는 별명
으로 불린 시절이 있었다죠.

21세기 들어 퇴행한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모쪼록
배수정 후보라는 분의 선거운동을 위해
그 좋아하는 책읽기와 글쓰기마저 전폐하고
분연히 일어서 전향한 싸이러스님을 열렬
하게 응원합니다 ㅋㅋㅋ

cyrus 2018-06-08 18:49   좋아요 0 | URL
평일 선거운동은 힘들고요, 주말 이틀은 가능해요. 후보자가 지원을 요청하면 도와주러 가야죠. ^^

2018-06-07 17: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6-08 18:52   좋아요 0 | URL
인터넷에 특정 정당, 정당 소속 후보자를 지원하는 글을 써도 됩니다. 글 쓰기 전에 유권자 선거 홍보 원칙을 확인했습니다. 군인, 공무원 아니면 누구나 후보자를 지지하는 글이나 게시물을 올릴 수 있어요. ^^

2018-06-08 19: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8-06-07 18: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말 웬만해서 안하는 일을 했구나.
서재 사진까지 바꿔가면서.ㅎ
네가 이럴 정도면 일 잘하는 사람인가 보다.

나도 한국당은 별로지만 그래도 여당이 아닌 것에
의미를 둬야지 않을까?
국회의원은 고루퍼져 있는 게 좋은데 말야.
아무리 좋은 당이라고 해도 독주는 좀 위험하잖아.

난 후보들이 공약 발표하면서 떨어져도
그 공약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지 그걸 잘 모르겠어.
공약이 비슷비슷한 것도 내가 떨어져도 누군가는 할 거니까
책임의식에서 좀 자유로울 수 있다고 생각할까 싶기도 하고.

어쨌든 나도 사는 동네가 달라 찍어줄 수가 없지만
선전했으면 좋겠다!^^

cyrus 2018-06-08 18:54   좋아요 0 | URL
이번 기회에 정의당, 녹색당의 활동 범위가 넓혀졌으면 좋겠어요. 저는 보수지만, 여당 또는 보수 정당을 견제할 수 있는 진보 정당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

독돌이 2018-06-07 20: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후보자의 약력 및 경력은 인터넷에 검색‘하면 나오지만 기왕이면 링크를 글 속에 첨부시키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cyrus 2018-06-08 18:58   좋아요 0 | URL
조언 감사드립니다. 네이버 검색창에 후보자 이름만 검색하면 후보자 경력이 나옵니다. 너무나 간단한 일이라서 링크 첨부는 하지 않았습니다. 후보자 공식 SNS가 있긴 한데, SNS를 소개하는 것이 유권자 선거 운동 원칙에 맞는지 살펴보고나서 링크를 첨부하겠습니다. ^^

페크pek0501 2018-06-10 13: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 알리겠습니다.

붕붕툐툐 2018-06-11 1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cyrus님 프사가 바뀌어서 심상잖다 했는데, 이런 사연이 있었군요~ 저도 한 때 열렬히 누군가를 지지해서 선거운동 자원봉사를 했었어요~ 결과가 어찌되었든 그 과정만으로 참으로 소중한 일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cyrus님의 성장을 축하드립니다!!

cyrus 2018-06-12 11:54   좋아요 0 | URL
정신적으로 성장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 정치 문제를 바라보는 일반인과 정당인의 시선이 크게 다르다는 걸 알았어요. 그동안 정치 뉴스를 보면서 아는 척하면서 지적하곤 했었는데 앞으로 정치 현안에 관해서 얘기할 땐 ‘좆문가’ 행세를 하지 말아야겠어요.. ㅎㅎㅎ
 

 

 

‘꽃보다 페미니즘’ 첫 번째 강연은 나에게 무거운 숙제를 던져주었다. 나 스스로 풀어가야 할 숙제이다. 다음 주 토요일(4월 28일)에 있는 두 번째 강연을 위한 ‘예습’도 해야 한다. 집중적으로 읽어야 할 책이 많아져서 다음 주가 고비가 될 것으로 보인다.

 

 

 

 

 

 

어젯밤에 월요일 강연 때 휴대폰으로 찍은 사진들을 정리했다. 나중에 급진 페미니즘을 공부하면서 다시 보려고 사진을 많이 찍었다. 그런데 사진 화질이 구리다. 휴대폰에 저장된 사진 중에는 《성의 변증법》 원서 책표지가 있는 강연 화면을 찍은 것도 있다.

 

 

 

 

 

 

 

 

 

 

 

 

 

 

 

 

 

 

 

* 슐라미스 파이어스톤 《성의 변증법》 (꾸리에, 2016)

* 한우리 역 《페미니즘 선언》 (현실문화, 2016)

* 앨리스 에콜스 《나쁜 여자 전성시대》 (이매진, 2017)

 

 

 

 

《성의 변증법》은 내가 이미 여러 차례 언급했을 정도로 뛰어난 책이다. 이 책은 ‘급진 페미니즘을 대표하는 고전’이다. 슐라미스 파이어스톤은 이 책에서 사랑과 결혼, 그리고 출산의 과정에서 억압받는 여성의 문제를 직설적으로 표현했다. 그녀는 여성을 억압하는 가부장제 자본주의 사회 구조의 뿌리까지 파고들어가 남성 중심의 판을 근본적으로 뒤흔들기 위해 행동했다. 그녀가 1969년에 결성한 ‘레드스타킹(Redstockings)’은 당시 주류 여성단체였던 전미여성기구(NOW)에 반기를 들며 급진적 여성운동을 주도한 단체였다.

 

 

 

 

 

 

강연 자료에 있는 《성의 변증법》 원서는 1970년에 출간된 초판이다. 그런데 나는 초판 표지를 보자마자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표지 디자인이 단순하고 촌스러워서 이상한 게 아니다. 표지 디자인 그림과 급진 페미니즘을 표방한 책이 서로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서 이상하다.

 

여자의 초상화를 그린 화가는 에드가 드가이다. 발레리나, 세탁부, 매춘부 등 여성들을 소재로 이들의 일상을 포착한 작품들을 남겼다. 흔히 드가를 가리켜 ‘무희의 화가’라 부른다. 드가가 평생 그린 그림의 절반 이상이 춤추는 발레리나를 그린 작품이기 때문이다. 말년에 드가는 눈병으로 시력이 심하게 나빠져서 더 이상 그림을 그릴 수가 없었다. 그는 조각 제작에 관심을 보였고, 발레리나의 역동적인 자세를 점토로 빚어냈다. 드가는 여성을 주제로 한 작품들을 많이 남겼지만, 평생 독신으로 살다간 ‘여성 혐오자’였다.

 

 

 

 

 

 

 

 

 

 

 

 

 

 

 

 

 

 

* 베른트 그로베 《에드가 드가》 (마로니에북스, 2005)

* 앙리 루아레트 《드가 : 무희의 화가》 (시공사, 1998)

* 제임스 H. 루빈 《그림이 들려주는 이야기》 (마로니에북스, 2017)

 

 

 

 

대부분 학자는 드가의 여성 혐오 원인을 그의 유년 시절에서 찾는다. 드가는 어릴 적 어머니의 외도를 목격하면서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 이런 어머니를 보고 자란 드가는 여성을 혐오하게 됐고, 공개적인 자리에서도 여성 혐오 발언을 서슴없이 꺼냈다.

 

 

 “혹시 여자 손님이 온다면 향수냄새를 너무 피우지 말았으면 좋겠군. 토스트같이 정말 냄새가 좋은 음식이 나올 때는 그런 강한 향기가 얼마나 거슬리는지 말이야.” (앙리 루아레트 《드가 : 무희의 화가》 158쪽)

 

 

  드가는 모델들에게 악의 없는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당신은 아주 특별한 종족이군.” 어느 모델에게 그가 말했다. “엉덩이가 꼭 서양 배같이 생겼어. 꼭 모나리자처럼.” (앙리 루아레트 《드가 : 무희의 화가》 159쪽)

 

 

 드가는 발레리나를 그린 작품들을 장난조로 “내 상품”이라고 일컬었다. (베른트 그로베 《에드가 드가》 47쪽)

 

 

그러나 드가의 여성 혐오를 ‘괴팍한 화가의 특이 행동’으로 간주해선 안 된다. 여성 혐오는 ‘개인의 문제’로만 볼 수 없다. 여성 혐오는 ‘사회구조의 문제’로 접근해서 인식해야 한다. 여성을 혐오하는 드가의 의식에는 여성을 차별하는 사회적 통념이 반영되어 있다.

 

 

 

 

 

 

 

 

 

 

 

 

 

 

 

 

 

 

 

* 에른스트 헤켈 《자연의 예술적 형상》 (그림씨, 2018)

* 조너선 마크스 《인종주의에 물든 과학》 (이음, 2017)

* 스티븐 제이 굴드 《다윈 이후》 (사이언스북스, 2009)

 

 

 

 

드가가 살았던 19세기에는 인종주의에 가까운 진화론이 유행하고 있었다. 독일의 생물학자 에른스트 헤켈은 다윈의 진화론을 옹호했고, 1천여 종의 생물에 학명을 붙이는 등 계통학, 생태학 연구 등에 많은 업적을 남겼다. 하지만 헤켈이 주장한 진화론은 다윈 진화론의 진짜 의미를 왜곡하는 오점을 남기기도 했다. 헤켈은 “개체 발생은 계통 발생을 반복한다”는 명제를 내세운 ‘발생반복설’을 주장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인간은 자신의 조상들이 겪었던 진화 과정을 되풀이하면서 태어난다. 헤켈의 진화론은 ‘단선적 진화론’이다. 단선적 진화론이란 인간은 처음에는 열등한 상태로 태어나지만, 일정한 진화 과정을 거쳐 우수한 상태로 발전한다고 보는 이론이다. 그래서 헤켈의 진화론은 ‘열등한 종족(문화)’와 ‘우수한 종족’을 판단하는 척도가 된다. 헤켈은 진화론이 ‘역사 발전의 방향성’을 설명할 수 있으며 진화 자체를 ‘진보’라고 생각했다. 또 그는 인종을 계통학적 방식으로 분류하여 흑인을 ‘야만적 인종’으로 규정했다. 헤켈의 진화론은 우생학과 골상학의 이론적 근거로 활용될 뿐만 아니라 ‘여성 차별’을 정당화하는 과학적 근거로도 악용되었다.

 

드가는 골상학에 심취하여 골상학적 이론이 반영된 습작들을 남겼다. 그는 하층계급 출신의 발레리나를 ‘진화가 덜 된 열등한 존재’로 인식했다. 드가의 여성관을 생각한다면 드가의 그림 속 여성들은 ‘인간’이라고 보기 어렵다. 드가는 동물을 관찰하듯이 여성을 그렸다. 여성을 하나의 인격체로 보지 않은 그의 그림이 ‘여성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그려냈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한마디로 말해서 《성의 변증법》 원서 표지는 물과 기름 같은 ‘여성해방론자’와 ‘여성 혐오자’의 잘못된 조합이다. 대체 누가 이런 끔찍한 표지를 생각했을까? 파이어스톤은 본인 책의 ‘얼굴’이 ‘여성 혐오자’의 그림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

 

 

 

 

 

 

 

원서 초판의 ‘이상한 표지’를 생각하면 파이어스톤의 생전 모습이 있는 《성의 변증법》 번역본 표지가 더 마음에 든다. 이 표지야말로 《성의 변증법》의 진짜 얼굴이다.

 

 

 


댓글(5)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tella.K 2018-04-19 14: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970년. 이때만해도 여성학에 관한 책들이 얼마나 나왔을까?
그래서 저렇게 평범하게 나왔겠지.
또 저때만해도 여자 얼굴만 그린 그림이 또는 그런 그림을 표지로 삼는 게
흔한 일이었을까 싶기도 하다.
그에 비하면 정말 지금은 격세지감이지.
그 시절엔 너 같이 문제 삼지도 못했을 거야.

cyrus 2018-04-19 15:10   좋아요 1 | URL
맞아요. <성의 변증법>을 만든 출판사는 ‘여성주의’ 책 표지에 반드시 ‘여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만약 초판 표지가 우리나라에 공개됐으면 난리 났어요... ㅎㅎㅎ 페미니즘 책 표지에 ‘분홍색’이 들어간 것도 별로예요. 빨간색, 보라색이 좋아요. 보라색이 페미니즘을 상징하는 색이에요. ^^

stella.K 2018-04-19 15:28   좋아요 1 | URL
나도 동감이긴 한데 난 솔직히 페미니즘 책이라고 해서
꼭 그렇게 특정색이 들어가야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솔직히 그 책을 고르는덴 표지가 반인데
요즘 나오는 페미니즘 책 표지는 마음에 안 들어.
그런데 오늘 발견한 책이 있는데
<세계 곳곳의 너무 멋진 여자들>이란 책이 있는데
그건 좀 마음에 들더군. 무슨 잡지모냥 세로 이단으로 되어있더라구.
그림도 맘에 들고. 단 얇은 게 흠이긴 해.ㅋ

2018-04-19 16: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4-19 18:03   좋아요 1 | URL
시대에 앞서간 행동을 하셨군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페미니즘 책을 읽어도 모르는 게 많고, 혼란을 겪을 때가 많아요. ^^
 

 

 

 

책을 읽다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단어나 문장을 발견하게 된다. 마리아 미즈《가부장제와 자본주의》(갈무리, 2014)‘알쏭달쏭한 단어’가 있다.

 

 

 

 

 

 

 

 

 

 

 

 

 

 

 

 

 

토지 없고 가난한 인도 여성의 노동과 우유가 빨려 나가가는 이런 과정, 오웰적인 신조어 전통에서 (‘흥건하게 되는’ 것은 도시이고, ‘진액이 빨려나가는 것’은 촌락과 여성이다) ‘우유홍수작전’이라고 불리는 과정에 대한 분석은 인도에서 자본주의 우유 생산에 연루되어 있는 가난한 여성에 대한 극도의 착취와 유럽 공공시장에서 우유의 과대생산이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를 짧게라도 살펴보아야 온전한 분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285쪽)

 

 

오웰적인 신조어 전통? 이게 무슨 말인가? ‘오웰’은 그 유명한 영국의 소설가 조지 오웰을 가리키는 듯하다. 이제 남은 건 ‘신조어 전통’이라는 생소한 표현이다.

 

 

 

 

 

 

 

 

 

 

 

 

 

 

 

 

 

 

 

 

 

 

 

 

 

 

 

 

 

 

 

 

 

 

 

 

 

 

 

 

 

 

 

 

 

 

 

 

 

 

* [에디터스 컬렉션] 조지 오웰, 김병익 역 《1984》 (문예출판사, 2018)

* [스페셜 에디션] 조지 오웰, 이기한 역 《1984》 (펭귄클래식코리아, 2014)

* 조지 오웰, 권진아 역 《1984》 (을유문화사, 2012)

* 조지 오웰, 박경서 역 《1984》 (열린책들, 2009)

* 조지 오웰, 김기혁 역 《1984》 (문학동네, 2009)

* 조지 오웰, 이기한 역 《1984》 (펭귄클래식코리아, 2009)

* 조지 오웰, 김병익 역 《1984》 (문예출판사, 2006)

* 조지 오웰, 정회성 역 《1984》 (민음사, 2003)

 

 

 

 

오웰의 대표작 《1984》빅 브라더는 국민의 사고를 지배하고 독재를 강화하기 위해 ‘신어(Newspeak, 新語)’를 만들어낸다. 을유문화사 판본의 역자는 ‘Newspeak’를 순우리말 ‘새말’로 옮겼다. 소설의 부록으로 실린 『신어의 원리』라는 글에 따르면 신어는 미래의 전체주의 국가인 오세아니아의 공용어다. 이 소설의 주인공 윈스턴은 신어를 만드는 일을 한다. 신어가 만들어지면서 기존에 쓰던 표준 영어(구어, Oldspeak)는 줄어들어 폐기된다. 예를 들어 ‘자유’라는 표준 영어를 폐기하면 통치 체제에 대한 국민의 저항의식이 줄어든다. 신어 정책에 지배당한 국민은 전체주의 독재자로부터 위협받는 자유를 지켜내는 것을 잊어버리거나 아예 자유라는 개념 자체를 모르는 상태가 된다.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역자는 ‘신어’를 ‘신조어’라고 번역했다. 물론, 신어와 신조어를 같은 의미로 볼 수 있다. 신조어는 말 그대로 ‘새로 만든 말’이다. 빅 브라더가 고안한 신어 중에 두 개 이상의 단어를 합쳐 새로 만들어진 것도 있다. 하지만 신어 창안의 목적은 ‘이단의 뜻을 가진 표준 영어를 삭제(폐기)’하는 것이다. 그리고 '전통'을 '정책'으로 바꿔 쓰면 단어의 의미가 비로소 명확해진다. 따라서 ‘오웰적인 신조어 전통’은 《1984》가 보여준 ‘신어’의 의미를 살리지 못한다.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역자가 《1984》의 부록을 알고 ‘오웰적인 신어 정책’ 또는 '《1984》의 신어 정책'이라는 표현을 썼다면 ‘알쏭달쏭한 단어’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prenown 2018-03-28 2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의 해당 페이지를 찾아보니 실제로 그렇게 씌여있군요 ㅎ ㅎ 번역이 좀 아쉽네요!

cyrus 2018-03-29 13:52   좋아요 0 | URL
읽다 보면 원문을 직역한 듯한 긴 문장도 보여요. ^^;;
 

 

 

 

 

 

 

 

헌책방에 잠들어 있는 오래된 책, 또 알라딘 서점에 있는 책을 잘 넘겨보면 편지부터 일기, 사진 등을 찾을 수 있습니다. 며칠 전 알라딘 서점에서 절판된 《제인 오스틴과 19세기 여성 시집》(봄날에, 2017)을 만났습니다. 책 뒷날개에 편지글이 적인 엽서 한 장이 끼어 있었습니다. 엽서에 담긴 글은 보는 이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줍니다.

 

 

 

 


댓글(12) 먼댓글(0) 좋아요(3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sprenown 2018-03-04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사로운 봄햇살 같은 글이네요!
근데, 장선생은 이 소중한 엽서가 들어있는 책을 왜 팔았을까요?

cyrus 2018-03-05 00:00   좋아요 0 | URL
책 안에 엽서가 끼여 있는 줄 모르고 팔았을 수 있어요. 너무 안타까운 일이에요... ㅠㅠ

레삭매냐 2018-03-04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렇게 중고서점에서 사연 있는 책을 만날 때가 있더라구요. 그런데 그 책이 왜 헌책방에 와 있을까 싶더라구요.

cyrus 2018-03-05 00:04   좋아요 0 | URL
알라딘 서점 직원들은 파는 책들의 품질 상태를 따질 때 책 한 권 꼼꼼하게 확인하던데 왜 이 엽서를 발견하지 못했는지 궁금해요. 저도 종종 책을 팔지만, 저자의 친필 사인, 보내는 분의 편지글이 있는 책을 팔지 않아요. 안 읽어도 죽을 때까지 소중히 간직하려고 합니다. ^^

이하라 2018-03-04 2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고서점에서 다른이의 추억과 만날 때도 있군요. 헌책이란 낱말과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으면서도 묘하게 울렁이는 조합 같아요.

cyrus 2018-03-05 00:06   좋아요 0 | URL
책 속지에 적힌 편지와 메모를 읽어보면 과거 사람들의 생각과 속마음을 확인할 수 있어요. 가끔은 명문에 가까울 정도로 좋은 글을 만날 때가 있어요. ^^

붕붕툐툐 2018-03-04 2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미소가 절로 머금어지는 감동적인 글이네요~ 저 엽서에 등장하는 할머니같이 늙고 싶네요~~

cyrus 2018-03-05 00:08   좋아요 0 | URL
나이가 들면 유머 감각이 떨어져요. 체코 할머니처럼 상대방의 마음을 기분 좋게 해주는 귀여운 유머(?)를 하고 싶습니다... ㅎㅎㅎ

북프리쿠키 2018-03-04 2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싸이러스님 행운이군요ㅎ
전 피떡된 모기사체나 코딱지 몇점 이외에
발굴된 게 하나도 없네요.-.,-

cyrus 2018-03-05 00:11   좋아요 1 | URL
벌레 사체 테러... ㅎㅎㅎ 생각하니까 끔찍하네요.. ㅎㅎㅎㅎㅎ
책 읽다가 책에 깔려 죽은 벌레를 만나면 기분 찝찝해요. 책에 묻은 코딱지는 아직 한 번도 보지 못했어요. 책에 남은 코딱지 흔적을 못 봤을 수도 있어요.. ^^;;

오후즈음 2018-03-05 2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타깝네요. 가끔 저런 쪽지가 나를 치유해주는데 말이죠 ㅠㅠ

cyrus 2018-03-06 11:46   좋아요 0 | URL
상대방의 진심이 듬뿍 담긴 손편지가 어두운 헌책방에 있는 게 너무나도 안타까워요.
 

 

 

1월 26일 금요일 11시부터 올재 클래식스 25차 시리즈가 교보문고 광화문점, 인터넷 교보문고에 판매된다. 27일 토요일에는 전국 교보문고 매장에서 책을 구매할 수 있다.

 

 

 

 

 

* 김부식, 허성도 역 《삼국사기》(전 2권)

* 헤르만 헤세, 이인웅 역 《크눌프, 황야의 이리》

* 헤르만 헤세, 이인웅 역 《최초의 모험》

 

 

25차 시리즈 중에 제일 관심이 가는 책은 헤세의 《최초의 모험》이다. 헤세가 젊은 시절부터 83세 때까지 쓴 수필을 발표 연도순으로 수록한 책이라고 한다. 《최초의 모험》에 수록된 수필이 몇 편 있는지 확인이 어렵다. 『작은 기쁨』, 『의사들에 대한 추억』이라는 글이 수록되어 있다는 사실만 확인할 수 있다. 전자의 글은 22세의 젊은 시절이었을 때, 후자의 글은 83세의 헤세가 쓴 수필이다. 《최초의 모험》에 ‘국내 초역’ 수필 작품도 수록되어 있다고 하던데, 헤세의 글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구미가 당길 만한 책이다.

 

헤세의 사후 저작권이 말소되면서 헤세의 작품들이 밀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그래서인지 이번 25차 시리즈 발간 소식을 확인하고도 감흥이 느껴지지 않았다. 한 번도 읽지 않은 민음사 판본의 《크눌프》, 《황야의 이리》를 가지고 있다. 헤세의 작품이 너무 많다. 그래서 ‘전작 읽기’를 도전하기 위한 작가로 헤세를 선택하기가 부담스럽다.

 

 

 


댓글(9)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레삭매냐 2018-01-24 16: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 헤세의 책들이 범람한 이유가 있었군요.
마치 그전에 헤밍웨이 때처럼 말이죠...

그나저나 올재 시리즈를 읽지도 않고 소장만
하면서 또 사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네요.

그냥 패스하기엔 책값이 너무 착해서요.

cyrus 2018-01-24 16:31   좋아요 1 | URL
세상을 떠난 작가의 저작권은 사후 50년까지 보호됩니다.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작가의 작품들이 나왔으면 좋으련만 출판사들이 익숙한 작품들만 번역해서 문제입니다. ^^;;

레삭매냐 2018-01-24 16:35   좋아요 0 | URL
더 웃기는 건,
출판사는 물론이고 표지갈이에 가격까지 얹어서 나왔는데
역자가 같다는 점이지요.

그래서 굳이 새 책을 사야 하나 싶기도 하구요.

syo 2018-01-24 16: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의 올재 파수꾼 사이러스님!

cyrus 2018-01-24 16:31   좋아요 1 | URL
제가 꾸준히 소개한 신간도서는 ‘올재 클래식스’뿐입니다. 이 글이 ‘알라디너의 선택’에 노출되지 않아서 좋습니다. ^^

서니데이 2018-01-24 1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몇년전에 헤르만헤세 저작권이 사후 일정 기간이 지났다는 소식을 들었던 것 같은데, 그래서 데미안을 포함 헤세 저작들이 많이 출간되는 것 같아요. 저도 <최초의 모험>이 초역된 내용이 있다고 하니, 그 중에서는 제일 관심이 가는 것 같습니다.
오늘 많이 추웠어요. 따뜻한 저녁시간 보내세요.^^

cyrus 2018-01-25 12:22   좋아요 1 | URL
이번 주는 1월 중 가장 추운 주가 될 것 같습니다. 햇볕을 받으면 그나마 따듯한데, 북쪽에서 내려오는 한기가 너무 세서 햇볕도 무용지물이네요. ^^;;

transient-guest 2018-01-25 0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살 수 없는 책을 오늘도 이렇게 하염없이 바라보고만 있네요...-_-::

cyrus 2018-01-25 12:24   좋아요 0 | URL
올재 클래식스 시리즈를 중고로 판매하는 판매자들이 있는데, 문제는 ‘한정판’이라는 프리미엄을 붙여서 비싼 액수를 책정해요. 보급판 형태로 나오는 ‘올재 셀렉션스’ 시리즈를 구입하는 것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