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stella.K이 보내준 선물을 받았어요. 이틀 전에 stella.K님이 선물을 확인할 때 깜짝 놀라지 말라고 말씀하셨어요. 저는 그 말을 듣고 많이 기대했어요. 예상한 것보다 선물이 집에 일찍 도착했어요.

 

 

 

 

 

    

상자를 열어보니까 제가 좋아하는 간식과 책이 들어 있었습니다. stella.K님이 제가 단짠단짠간식을 좋아하는 걸 어떻게 아셨는지 단맛이 나는 과자(맛동산)와 짠맛이 나는 과자 한 봉지(프레첼)씩 넣어주셨네요. 그리고 제 건강을 생각해서 영양바 두 개도 챙겨 넣으셨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책은 나오미 울프버자이너입니다. stella.K님이 이 책을 읽고 리뷰를 남겼어요.

 

 

[버자이너는 고발한다] (작성자: stella.K)

http://blog.aladin.co.kr/hjk4429/10166475

 

 

stella.K님의 리뷰 덕분에 책의 존재를 알게 됐어요. 그러나 버자이너가 출간된 지 두 달 정도 지났지만, 대구광역시 모든 공공도서관에 찾을 수 없는 책이에요. 한동안 책의 존재를 잊고 지내다가 stella.K님이 선물로 주셔서 읽을 수 있게 됐어요. 일용할 책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stell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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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프리쿠키 2018-09-16 11:5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알콩달콩하네요~어릴 때 최고의 선물이었던 과자종합선물 세트 같아요.
선물받은 책은 아무래도 더 정성껏 읽게 되고 기억에도 오래 남던데~
두분의 우정 응원합니다^^

카알벨루치 2018-09-16 21:26   좋아요 2 | URL
남매지간은 우정이 아니고 사랑이 아닙니까? 북프리쿠키님은 쿠키 좋아하나요? 우정을 위해 제가 쿠키 하나 보내드려요? ㅎㅎ 근데 여기 싸이러스님 블로그에서 이럼 안되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cyrus 2018-09-17 12:11   좋아요 1 | URL
To. 북프리쿠키님 / 상자 안에 과자만 들어있는 줄 알았어요.. ㅎㅎㅎ

cyrus 2018-09-17 12:15   좋아요 2 | URL
To. 카알벨루치님 / 8년 전에 유럽식 철제 상자에 담은 쿠키가 알라딘에 판매된 적이 있어요. 그래서 누군가에게 책 선물할 때 쿠키도 같이 주문할 수 있었어요. 쿠키 참 맛있었는데. 그 시절이 좋았어요. 반값으로 책을 살 수 있었던 시절.. ^^

서니데이 2018-09-16 20: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stella.K님께서 맛있는 과자 보내주셨군요. 미니프레즐은 먹어보지 않은 과자라서 맛이 궁금합니다. 좋은 책도 한 권 있는, 북프리쿠키님의 말씀처럼 종합선물 세트 같습니다.
cyrus님,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cyrus 2018-09-17 12:17   좋아요 1 | URL
매콤한 맛이 나는 프레즐입니다. 편의점에 가면 구할 수 있는데, 제가 자주 사 먹습니다. ^^

stella.K 2018-09-16 21:2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이거 반칙인데...?!
이렇게 광고할 줄은 몰랐다.
그런 것으로 봐서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간식을 보낸다는 말에 쫄았구나?ㅋㅋㅋㅋㅋ
좋아. 너 하는 거 봐서 다음에 언제가 될진 모르겠지만
책 보낼 때 간식을 또 보내줄지 말지를 결정하겠스~ㅋㅋㅋ

암튼 없는 책 보내게 되서 나도 뿌듯하다.
책 내용이 좋아서 좀 더 간직하고 싶었지만
간직만하지 막상 다시 읽을 것 같지는 않더라.
네가 이쪽에 관심이 많으니까 주인 찾아 갔다고 생각해.
부디 잘 읽어주길 바래.
(근데 나 같은 누나가 어딨냐?
너 당떨어질까봐 에너지바도 넣어주고.
허세 좀 쩔어도 되지?ㅋㅋ)

카알벨루치 2018-09-16 21:27   좋아요 2 | URL
좋다 나도 누나가 있음 좋겠네요 난 여동생 둘이라 이번에 책 두권씩 보내줬습니다 ㅎ

cyrus 2018-09-17 12:21   좋아요 0 | URL
누님의 선행은 당연히 널리 알려야죠. 이 기분 좋은 일을 기록으로 남기지 않으면 잊어버려요. 이제는 제가 누구에게 무슨 책을 선물로 줬는지도 잊어가고 있어요.. ^^;;

stella.K 2018-09-17 18:44   좋아요 0 | URL
ㅎㅎ 그러니까 네가 엄청 나이든 것 같아.ㅋㅋㅋㅋ

2018-09-17 09: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9-17 12:22   좋아요 0 | URL
금요일 저녁, 토요일은 시간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토요일에 만나면 좋을 것 같습니다. ^^
 

 

 

 

나는 누구인가? 이 질문은 가장 궁극적인 철학적 혹은 종교적 질문 가운데 하나이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나의 정체성을 묻는 것이다. 나의 정체성을 알려면 그 ‘나’라는 존재 속에 채워진 내용을 제대로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 내용은 절대로 들키고 싶지 않았던 자신의 치부를 포함한다. 이렇게 시간을 중심으로 나의 정체성을 묻는 실마리는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고백록》을 통해서 했던 작업이다.

 

 

 

 

 

 

 

 

 

 

 

 

 

 

 

 

 

 

* 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 (대한기독교서회, 2003)

* 문시영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 읽기》 (세창미디어, 2014)

 

 

 

《고백록》이 고전이 된 것은 아우구스티누스가 젊은 시절 자신의 방탕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참회했기 때문만이 아니다. 책에 보여준 그의 신앙 고백은 신학적 토대 위에서 이루어졌다. 《고백록》에서 완성된 신학은 역사에서 사라진 수많은 교부(敎父) 중의 한 사람에 지나지 않았던 아우구스티누스를 기독교 역사에 가장 큰 족적을 남긴 교부로 재탄생시킨 힘이 된다. 오늘날 기독교 하면 떠오르는 ‘원죄설’은 아우구스티누스가 확립한 것이다. 창세기에서 아담(Adam)하와(Ḥawwāh)가 선악의 열매를 먹으면서 원죄를 짓게 되었고, 인간은 신으로부터 소외되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창세기를 인간의 속박에 관한 이야기로 읽고, 인간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났다고 주장했다. 인간은 자신에 내재한 죄를 스스로 극복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인간은 신의 도움, 즉 구원을 받을 존재이다.

 

아우구스티누스만큼 자신의 내면세계를 잘 분석한 사람도 없다. 결국 아우구스티누스가 알고 싶었던 ‘나’는 죄를 짓고 살아왔던 자신을 포함한 모든 인간이다. 《고백록》을 읽어보면 그가 어렸을 때 지은 범죄와 그 범죄의 원인에 대한 분석이 기록되어 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나무에 달린 배를 훔친 절도 행위의 동기에 대하여 분석했다(《고백록》 제2권 4장). 자기가 배를 따 먹은 것은 배가 고파서일까? 아니면 훔쳐서 팔고 싶어서였을까? 그는 배를 따서 맛만 보고는 모두 버렸다. 그러면 왜 배를 훔쳐 먹었을까? 아우구스티누스는 이 문제에 대한 대답을 인간 내면의 원죄 의식에서 찾았다. 인간 내면에는 원죄 의식이 자리 잡고 있고 이것 때문에 죄를 짓게 되었다는 것이다.

 

 

 

 

 

 

 

 

 

 

 

 

 

 

 

 

 

 

 

* [품절] 일레인 페이절스 《아담, 이브, 뱀》 (아우라, 2009)

* G. R. 에번스 《중세의 그리스도교》 (예경, 2006)

 

 

 

종교사학자 일레인 페이걸스(Elaine Pagels)는 자신의 책 《아담, 이브, 뱀》(아우라, 2009)에서 아우구스티누스의 원죄설이 기독교 교리의 근간으로 자리 잡게 된 과정과 그 역사적 배경을 설명한다. 이 책과 관련해서 기독교인의 정체성 형성에 영향을 준 기독교의 변천 과정을 압축해서 정리한 《중세의 그리스도교》(예경, 2006)도 참고할 수 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원죄설은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국교로 확립되던 시기에 가장 중요한 교리로 발전하게 됐다. 초기 기독교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강조하던 ‘소수의 종파’였고, 이로 인해 숱한 박해를 받았다. 박해를 받아 수많은 순교자를 낸 기독교는 313년 콘스탄티누스 1세 황제(Constantinus I)밀라노 칙령으로 공인을 받으면서 신앙의 자유를 보장받았다. 그 뒤 여러 가지 난관이 있었으나 이 결정은 번복되지 않았다.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로 개종하고, 로마에 기독교가 합법화되면서 기독교는 대중적인 종교로 발전한다. 아우구스티누스를 비롯한 교부들은 교회에 들어온 신자들을 가르치는 과거 방식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판단한다. 그리하여 아우구스티누스는 ‘어떻게 기독교인이 되는가?’를 가르치기 위해 《고백록》을 쓰게 된 것이다. 인간은 태어나기 전부터 사악한 존재이므로 인간의 자유의지는 왜곡될 수 있다. 이게 바로 아우구스티누스가 《고백록》을 통해 증명한 범죄의 원인이며 ‘원죄설’을 입증하는 증거이다. 페이걸스는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국교로 발전하면서, 아우구스티누스의 원죄설은 개인을 통제하는 정치적 수단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녀의 주장은 권력과 종교의 야합, ‘권력화된 종교’를 새삼 떠올리게 한다. 기독교는 과거를 잊은 듯 권력자 또는 박해하는 자의 위치가 되어 다른 종교에 대해 비관용적인 태도를 보였다. 서구에서 타인의 종교를 인정하는 관용이 자리 잡는 것은 백여 년간 지속한 종교전쟁의 값비싼 희생을 치른 후의 일이다.

 

 

 

 

 

* Trivia

 

선한용 신부가 번역한 《고백록》은 2003년에 ‘문화관광부(현재 문화체육관광부) 추천우수학술도서’로 지정되었다. 하지만 이 책에 고쳐야 할 오류가 있다.

 

68쪽 역주는 유노(Juno)‘주피터(Jupiter)이자 부인’으로 설명되어 있다. 유노는 로마 신화의 최고 여신이며 그리스 신화의 헤라(Hera)와 같은 인물이다. 주피터는 그리스 신화의 제우스(Zeus)의 동일 인물이다. 주노가 주피터의 부인인 건 맞다. 그러나 주피터의 딸은 아니다. 주노는 주피터보다 먼저 태어난 누나이다.

 

 

 

 

 

 

 

 

 

 

 

 

 

 

 

 

 

 

* 아풀레이우스 《황금 당나귀》 (현대지성, 2018)

* [구판 절판] 아풀레이우스 《황금 당나귀》 (매직하우스, 2007)

 

 

 

오자는 아니지만, 79쪽 역주에는 《황금 당나귀》(현대지성, 2018)의 저자 아풀레이우스(Apuleius)‘아플레이우스’라고 표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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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12 12: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9-12 17:27   좋아요 1 | URL
태어난 순간부터 원죄라고 생각하는 건 너무 비관적인 생각 아닐까요? 요즘 쾌락주의자, 이신론자에 관한 책을 읽어서 그런지 종교의 교리에 맞춰가면서 사는 삶이 답답하게 느껴집니다. ^^;;
 

 

 

 

 

 

 

 

책방에 가면 책방 주인이 소중히 여기는 책들을 만날 수 있다. 그 책들은 살 수가 없다. 오직 책방에서만 읽을 수 있다. 책방을 찾는 손님이 보기에는 그냥 언제든지 팔 수 있는 책이지만, 책을 가진 주인 입장에서는 아무에게나 주고 싶지 않은 보물이다. 그 마음, 나도 충분히 이해한다. 읽다 익다책방 주인은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의 글을 좋아한다. 그 분은 헤세가 쓴 작품뿐만 아니라 헤세 읽기에 도움이 되는 책도 모으고 있다. 물론 책 모으는 일에만 열중한 분은 아니다. 책방 주인이 수집한 헤세의 책은 독서모임을 하면서 읽은 것들이다. 내가 보기에 읽다 익다책방 주인은 건강한 애서가이지, 심각한 책 중독자는 아닌 것 같다.

    

 

 

 

 

 

 

 

 

 

 

 

 

 

 

 

* 톰 라비 어느 책중독자의 고백(돌베개, 2011)

* 니콜라스 A. 바스베인스 젠틀 매드니스(뜨인돌, 2006)

* 구스타브 플로베르 애서광 이야기(범우사, 2004)

    

 

 

자신을 책 중독자라고 밝힌 작가 톰 라비(Tom Raabe)는 책 중독을 깊은 수렁에 비유한다. 그가 말하는 책 중독자에는 세 가지 부류가 있다. 장서광, 애서가, 수집가이다. 장서광은 책을 사고 또 사는 사람이다. 애서가는 책을 읽고 또 읽는 사람이다. 책의 겉모습에 열광하는 사람은 장서 광이고, 책의 내용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은 애서가이다. 수집가는 책의 사소한 차이에 열광한다. 그들은 저자 친필 사인이 있는 초판본을 엄청나게 좋아한다. 수집가와 애서광의 경계는 모호하지만, 책을 수집하는 것을 좋아하는 애서광은 남이 갖고 있지 않는 책을 본인이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자긍심을 갖고 있다[1]. 19세기 초 미국 정치가 프랭클린 토머스(Franklin Thomas)는 도서수집가인 할아버지를 가장 고귀한 질병, 애서광에 푹 빠진 분이라고 표현했다. 애서광은 고귀한 광기(gentle madness)이다.

 

톰 라비는 옷보다 책을 사는 것을 좋아했다. 톰 라비가 친구에게 서점에 같이 가자고 말했을 때, 친구는 그를 위아래로 훑어보면서 이런 질문을 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옷을 샀던 날이 언제인지 기억나나?” 책 중독자는 기본적인 소비생활을 잊어버리거나 포기한다. 나 같은 경우에는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는 일이 잘 없다. 영화를 보는 것도 재미있다. 그러나 언제든지 빌려 볼 수 있고, 사서 볼 수 있는 책이 더 재미있게 느껴진다. 책을 사거나 읽는 행위를 삶의 유일한 목적으로 삼는 책 중독자는 심책(審冊)주의자이다. 프랑스의 영화감독 프랑수아 트뤼포(Francois Truffaut)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어딘가 아픈 사람들이다라고 말했다[주2]. 책을 열렬히 사랑하는 사람, 책 중독자들은 어딘가 모자란 사람들이다.

 

    

 

 

 

 

 

 

 

 

 

 

 

 

 

 

* 정희진 혼자서 본 영화(교양인, 2018)

    

 

 

 

 

 

 

 

 

 

 

 

 

 

 

 

 

 

 

* 보들레르 파리의 우울(문학동네, 2015)

* 보들레르 파리의 우울(민음사, 2008)

 

    

 

정희진폭식을 해도 괜찮고, ‘숙취도 없는 것이 바로 영화라고 했다[주3]. 책도 마찬가지다. 보들레르(Baudelaire)의 시구(詩句)처럼 술이든, 시든, 덕이든, 그 어느 것이든 취할 수 있다. 취하라! 그대가 원하는 책에. 책에 취해도 취한 것 같지 않다. 책을 많이 읽어도 지루하지 않다. 자고 일어나면 책 중독자를 유혹하는 새 책들이 나오는데 지루할 틈이 어디 있겠는가.

    

 

 

 

 

 

 

 

 

 

 

 

 

 

 

 

* 알베르토 망겔 서재를 떠나보내며(더난출판사, 2018)

 

 

책 중독자의 정체를 알고 싶으면, 그가 소중히 여기는 애독서를 살펴보면 된다. 그러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 알베르토 망겔(Alberto Manguel)서재를 일종의 자서전이라고 했다[4]. 서재에 있는 모든 책은 책 중독자의 살덩어리요, 피다. , 책 중독자는 예수가 아니다. 모든 책 중독자가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책을 애지중지하게 여기는 심책주의자는 책을 빌려주는 것을 싫어한다. 그러니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 책 중독자 말고 책을 잘 빌려주는 마음씨 좋은 애서가를 만나길. 나처럼 어딘가 모자라고, 책밖에 모르고, 책을 빌려주지 않는 책 중독자, 심책주의자는 되도록 멀리하는 것이 상책이다.

 

 

 

 

 

[1] 플로베르, 이민정 옮김, 애서광 이야기, 범우사, 2004, pp. 62.

[2] 정희진, 혼자서 본 영화, 교양인, 2018, pp. 8.

[3] 같은 책, pp. 11.

[4] 알베르토 망겔, 이종인 옮김, 서재를 떠나보내며, 더난출판, 2018, pp.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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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8-09-06 2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기억이 맞다면 cyrus님의 예전 서재 사진보다 많이 정돈된 느낌입니다^^:)

cyrus 2018-09-07 19:33   좋아요 1 | URL
제가 사진에 대해서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네요. 제 서재는 아니구요, ‘읽다 익다‘ 책방에 있는 책장이에요. 책방지기님이 헤세의 글을 좋아해서 사서 모은 책들을 책방에 꽂아둔거예요.. ^^

2018-09-07 01: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9-07 19:38   좋아요 0 | URL
애서광은 책의 노예라고 하던데, 이 말 그대로 굿즈광도 굿즈의 노예네요.. ㅎㅎㅎ

대부분 외국의 술 도수는 소주보다 높던데 술 잘 마시는 외국인들은 소주를 물처럼 마실거예요. 특히 러시아인들은요. ^^

sslmo 2018-09-07 0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짜 겨울호랑이 말씀처럼 왜 이렇게 단출해졌죠?^^
님도 미니멀라이프들 격하게 실천하고 계신건 아니겠죠?

이제 아침, 저녁으로 찬바람도 살랑~ 불고 책읽기 좋은 계절입니다~^^

cyrus 2018-09-07 19:41   좋아요 0 | URL
‘읽다 익다‘ 책방지기님의 책이에요. 책방에 있는 책장을 제가 사진으로 찍은거예요. ㅎㅎㅎ

요즘은 지출이 많아서 책 구입 횟수가 줄어들었어요. 그래도 원하는 책을 만나면 반드시 구매합니다. ^^

2018-09-07 21: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08 16: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10 14: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10 14: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루쉰P 2018-09-08 23: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언제나 멈춤없이 흐르고 계시는군요. ㅎ 멋져요

cyrus 2018-09-09 20:45   좋아요 0 | URL
오랜만이에요. 잘 지내시죠? 저를 기억해주시고, 반가운 인사해주셔서 고맙습니다. ^^
 

 

 

사드 후작(Marquis de Sade)은 역사상 가장 논쟁적 인물 중 하나이다. 그는 사후 100년이 넘도록 금기와 저주의 대상이었다. 100년 뒤엔 초현실주의자들로부터 ‘역사상 최고의 반항아’란 찬사를 받으며 부활했다.

 

 

 

 

 

 

 

 

 

 

 

 

 

 

 

 

 

* 사드 《사드 전집 1 : 사제와 죽어가는 자의 대화》(워크룸프레스, 2014)

* 사드 《악덕의 번영》(동서문화사, 2011)

 

 

 

 

 

 

 

 

 

 

 

 

 

 

 

 

* [품절] 존 필립스 《HOW TO READ 사드》(웅진지식하우스, 2015)

* [절판] 에스텔라 V. 웰든 《사도마조히즘》(이제이북스, 2006)

* [절판] 스튜어드 후드 《사드》(김영사, 2005)

 

 

 

 

기욤 아폴리네르(Guillaume Apollinaire)는 1909년에 사드의 주요 작품을 선집으로 묶어 출간했다. 이 선집에 아폴리네르의 해설이 있는데, 사드 사후 200주기에 맞춰 나온 《사드 전집 1 : 사제와 죽어가는 자의 대화》(워크룸프레스, 2014)에 수록되어 있다. 1955년, 프랑스 파리 법원이 사드의 작품 네 권을 압수하여 파기하라고 판결하기 직전에 시몬 드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사드를 화형시켜야 하는가(Faut-il brûler Sade?)[주1]라는 에세이를 발표했다. 그녀는 사드를 ‘정신분석학의 선구자’로 칭송했고, 사드의 잔혹한 에로티시즘이 완성될 수 있었던 것은 살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문학적 상상력이라고 옹호했다. 보부아르의 글은 《악덕의 번영》(동서문화사, 2011)에 수록되어 있는데 번역이 썩 만족스럽지 않다. 영국의 페미니스트 작가 안젤라 카터(Angela Carter)는 자신의 책 <사드적인 여자(The Sadian Woman)>에서 사드 작품에 등장하는 여성 ― 《악덕의 번영》의 주인공 쥘리에트(Juliette)[주2] ―을 새로운 시선으로 접근했다.

 

 

 사드 자신은 여성의 성교할 수 있는 권리를 명백히 선언한다. 그는 여성들에게 할 수 있는 한 적극적으로 성교하라고 권장한다. 그리하여 여성들은 지금까지 사용되지 않았던 거대한 성적 에너지로 무장하여 자신들의 방식을 역사와 성교할 수 있을 것이고, 그렇게 함으로써 역사를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주3]

 

 

카터의 주장에 따르면 사드는 여성의 개인적인 성적 경험을 여성의 삶뿐만 아니라 세상을 완전히 뒤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진 가장 중요한 ‘정치적 영역’으로 본 것이다. <사드적인 여자>는 국내에 번역되지 않았고, 생각보다 많이 알려지지 않은 카터의 책이다. 비록 일부분이지만, 사드를 옹호하는 카터의 입장을 확인할 수 있는 2차 문헌은 《사드》(김영사, 2005),《사도마조히즘》(이제이북스, 2006), 《HOW TO READ 사드》(웅진지식하우스, 2008)다.

 

 

 

 

 

 

 

 

 

 

 

 

 

 

 

 

 

 

* 게일 루빈 《일탈 : 게일 루빈 선집》(현실문화, 2015)

* [절판] 안드레아 드워킨 《포르노그래피 : 여자를 소유하는 남자들》(동문선, 1996)

 

 

 

그러나 사드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는 소수에 불과하다. 일반인에겐 사드는 그저 가까이 해선 안 될 ‘위험인물’일 뿐이다. 보부아르와 안젤라 카터 같은 페미니스트들이 사드를 호의적으로 본다고 해서 여성의 신체를 성적 대상화한 온갖 직설적인 사드의 표현들이 가려지는 건 아니다. ‘반포르노 운동’에 앞장 선 안드레아 드워킨(Andrea Dworkin)은 사드가 남성(지식인)들이 만들어 낸 ‘강간 신화’에 의해서 과장된 평가를 받았다고 비판했다. 반포르노 운동을 이끈 페미니스트들은 포르노 영화 속에 묘사된 사도마조히즘을 근거로 사도마조히스트들을 공격했다. 레즈비언 사도마조히즘 그룹을 만든 게일 루빈(Gayle Rubin)은 포르노그래피와 사도마조히즘이 정치적 검열의 표적으로 삼는 것에 반대하는 입장을 드러냈다. 《일탈 : 게일 루빈 선집》(현실문화, 2015)에 포르노그래피를 옹호하는 루빈의 글(『오도된, 위험한, 그리고 잘못된 : 반포르노그래피 정치에 대한 분석』)이 수록되어 있다. 과거 1970년대 여성운동을 회상한 글인 『과거가 된 혈전』에서 루빈은 포르노그래피와 사도마조히즘을 옹호한다는 이유로 반포르노 페미니스트들에게 공격당했던 살벌한 경험을 털어놓는다.

 

 

 

 

 

 

 

 

 

 

 

 

 

 

 

 

 

 

 

 

 

 

 

 

 

 

 

 

 

 

 

 

 

 

 

* 에드거 앨런 포 《검은 고양이》 (민음사, 2017)

* 에드거 앨런 포 《에드거 앨런 포 소설 전집 2 : 공포 편》 (코너스톤, 2015)

* 에드거 앨런 포 《에드거 앨런 포 단편선》 (민음사, 2013)

* 에드거 앨런 포, 마이클 코넬리 엮음 《더 레이븐 : 에드거 앨런 포의 그림자》 (RHK, 2012)

 

 

 

《악덕의 번영》 번역본의 문제점에 대해서 몇 마디 지적하겠다. 첫 번째 각주에 후술하겠지만, ‘사드를 화형시켜야 하는가’는 번역 투 문장이다. 《악덕의 번영》 47쪽에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의 단편소설의 제목 ‘The Pit and the Pendulum’이 나온다. 이 작품은 ‘구덩이와 추(《에드거 앨런 포 단편선》)’, ‘함정과 진자(《에드거 앨런 포 소설 전집 2 : 공포 편》, 《더 레이븐 : 에드거 앨런 포의 그림자》)라는 제목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악덕의 번영》에서는 ‘우물과 진자시계’로 엉뚱하게 번역했다. 소설을 보면 알겠지만, ‘진자’는 시계추가 아니다.

 

72쪽 다섯 번째 주석에 연도 오류가 있다.

 

 

 1972년 6월 25일, 사드는 라투르라는 하인을 데리고 마르세유로 돈을 받으러 갔다가 (…)

 

 

주석의 글자 크기가 깨알과 같이 작아서 오자를 그냥 지나치기 쉽다. 1972년을 ‘1772년’으로 고쳐야 한다.

 

85~86쪽 33번째 주석에 잘못된 인명 표기가 있다.

 

 

 《소돔 120일》은 바스티유에서 분실되어 20세기가 되어 베를린의 정신과 의사 이반 프로흐 박사가 오이겐 뒤랭(Eugène Dühren)이라는 필명으로 과학적 주석을 달아 원문과 함께 편집한 것이 1904년에 베를린에서 처음으로 180부 한정으로 출판되었다.

 

 

‘이반 프로흐’가 아니라 ‘이반 블로흐(Iwan Bloch)라고 써야 한다. ‘Bloch’를 ‘프로흐’로 발음하는 것이 맞으면, 영화 《싸이코》의 원작자(Robert Bloch)는 ‘로버트 플록’으로, 《희망의 원리》를 쓴 독일의 철학자(Ernst Bloch)는 ‘에른스트 프로흐’로 읽어야 한다.

 

 

 

 

 

[주1] ‘화형시키다’는 번역 투 문장이다. ‘사드를 화형에 처해야 하는가?’라고 쓰는 게 맞다. 《악덕의 번영》에는 ‘사드를 화형시켜야 하는가’라고 되어 있다. 유일하게 보부아르의 글이 수록된 《악덕의 번영》의 출판사는 번역 문제로 악명 높은 ‘동서문화사’다.

 

[주2] ‘악덕의 번영’은 국역본 제목이며, 원제는 ‘Histoire de Juliette ou les prosperites du vice(쥘리에트 이야기 또는 악덕의 번영)’이다. 다른 책에서는 이 작품을 주인공의 이름이기도 한 ‘쥘리에트’로 언급된다.

 

[주3] 안젤라 카터, <The Sadian Woman>, 1979. (에스텔라 V. 웰든 저, 최정우 옮김, 《사도마조히즘》, 이제이북스, 2006, pp.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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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우스(St. Anthony)사막의 성인이라는 별명을 가진 수도승이다. 젊은 안토니우스는 마태복음에 기록된 부자 청년에 대한 설교를 들은 뒤 처음으로 성령의 뜨거운 기운을 받았다. 부모에게 물려받은 재산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주고, 사막에 들어가 기도와 묵상에 전념했다.

 

 

 

 

 

 

 

 

 

 

 

 

 

 

 

 

 

 

* [품절] 알렉산드리아의 아타나시우스 사막의 안토니우스(분도출판사, 2015)

* 아타나시우스 성 안토니의 생애(은성, 2009)

 

 

 

온갖 종류의 유혹과 환영이 안토니우스에게 나타나 그를 무너뜨리려 하였다. 그는 이런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하여 아예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사막으로 옮겨갔다. 10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안토니우스는 사막에서 은둔 생활을 했다. 그는 단 두 번 은둔처를 벗어났다. 첫 번째는 311년 알렉산드리아에서 일어난 박해로 유죄 판결을 받은 죄수들을 돕기 위해서였다. 두 번째는 아리우스 파(Arianism)와 논쟁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예수의 신성(神聖)을 부인한 아리우스 파에 맞서 싸우던 알렉산드리아의 교부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of Alexandria)를 도와 교회의 정통 교리를 수호했다. 아타나시우스는 안토니우스의 생애를 기록했고, 그가 쓴 성인 전에 영향을 받은 젊은 성도들이 사막에 찾아왔다. 안토니우스와 그를 따르는 성도들은 사막에 모여든 제자들에게 금식과 기도와 자선에 관해 가르쳤다. 최초의 수도원은 사막에서 시작되었다.

 

 

 

 

 

 

 

 

 

 

 

 

 

 

 

 

 

* 엘리자베트 루디네스코 악의 쾌락 변태에 대하여(에코의서재, 2008)

* 로이 포터, 미쿨라시 테이흐 엮음 섹슈얼리티와 과학의 대화(한울아카데미, 2001)

 

 

 

안토니우스는 금욕과 고행, 그리고 청빈한 생활을 중시했다. 그는 하루 한 끼만 먹었고, 배가 고플 때는 맹물을 잔뜩 퍼마셨으며, 빈 동굴 무덤에서 거지처럼 웅크리고 잠을 청했다. 일정 기간 간격으로 친구들이 마른 빵을 가져다준 덕분에 생명을 부지할 수 있었다. 오늘 우리의 기준으로 안토니우스의 생활을 보면 극단적인 금욕에 가까운 고행으로 보인다. 하지만 당시 중세 시대의 기준으로 보면 마음속의 욕념을 깨끗이 비워 버리는 방법이다. 안토니우스뿐만 아니라 여러 종파의 수도승, 신비주의자들은 마음속에 층층이 남아 있는 잡다한 악덕의 모습을 기도 속에서 훌훌 털어버림으로 마음을 정화하고자 했다. 이들은 예수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십자가 고통을 받아들여 자신의 삶을 믿음에 일치시키기 위해 예수를 따르고자 노력했다. 그리하여 육신의 고통을 받아들이는 고행을 실천했다. 고행자들은 자발적으로 십자가의 고통에 참여하려고 때로는 자신의 몸에 채찍질을 가하는 방법으로 자신의 육신에 직접 고통을 가하기도 했다. 소박한 종교적 반성에서 시작한 채찍질 고행은 마조히즘(masochism)의 이상 현상에 휘말려 미친 듯 인기를 끌게 된다. 중세 말기에 와서 자기 파괴적 고행 방식은 이단으로 규정 받기 시작했고, 채찍질 고행은 악마의 행위와 동일시되었다.

 

정신분석학자 엘리자베트 루디네스코(Elisabeth Roudinesco)는 자신의 책 악의 쾌락 변태에 대하여 (에코의서재, 2008)에 중세의 극단적인 고행 문화를 소개하면서 인류의 도착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섹슈얼리티와 과학의 대화 (한울아카데미, 2001) 2(사디즘, 마조히즘의 역사, 언제 어떤 행동이 사도마조히즘이 되는가)은 사디즘(sadism)과 마조히즘의 용어 성립에 대한 통념을 깨는 글이다. 여기서 말하는 통념이란 사디즘과 마조히즘이 19세기 근대 성과학의 등장과 함께 나타났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볼 때, 사도마조히즘은 병리적인 형태가 아니라 인류의 내면에 잠자고 있는 원초적 본능이다. 섹슈얼리티와 과학의 대화도 중세 고행자들의 마조히즘을 근거로 내세워 고통으로부터 느끼는 쾌락을 누리는 문화가 오래전부터 만연해 있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중세 고행자들은 사드 후작(Marquis de Sade)이 태어나기 전에 마조히스트로 살고 있었던 셈이다.

 

 

 

 

 

Trivia

 

섹슈얼리티와 과학의 대화서론 15쪽에 괴테(Goethe)의 작품명이 언급되어 있다. ‘괴테의 사고력 실험소설 선택적인 유사성(Elective Affinities)이라고 적혀 있는데, 처음에는 이게 무슨 소린가 했다. 우리말로 옮긴 작품명에 영문명이 안 적혀 있었다면 작품의 정체를 알아내지 못했을 것이다. ‘Elective Affinities’18세기에 나온 화학 용어인데 물질의 결합을 일으키는 힘을 뜻한다. 과학에 조예가 깊은 괴테는 이 과학적 개념을 빌려 인간의 관계를 묘사한 친화력이라는 소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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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8-08-22 14: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 안토니우스의 금욕과 고행 그리고 극단적 청빈
이야말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부합할 터인데
오늘날 한국 대형교회의 모습과는 정말 동떨어진 것 같
아 씁스릅하기만 합니다.

cyrus 2018-08-22 17:34   좋아요 0 | URL
종교인들도 사람이라서 쾌락을 누릴 수 있어요. 그런데 성행위를 부도덕한 행위로 보면서도 자신들은 남 몰래 즐기는 위선적인 행동은 마음에 들지 않아요. 특히 ‘신의 이름’을 내세워서 여신도들에게 접근하는 사이비들은 싫어요.

페크pek0501 2018-08-22 2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통으로부터 느끼는 쾌락을 제가 경험한 게 있어요. 발레 시간에 앉아서 동작을 하다가
누워서 동작을 하는데 꽤 힘들어서 끙끙대게 되는데 묘한 쾌감이 있습니다. 윗몸 일으키기도 하는데 꽤 많이 시켜서 땀을 흘리며 고통을 느끼게 되는데 그 시간이 싫지 않은 거예요.
왜 그럴까, 생각을 하곤 해요.
저는 인간들의 공통점이 많을 거라고 봐요. 다만 느낄 기회가 없거나 무지해서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봅니다.
인간은 이상한 존재입니다. ㅋ

cyrus 2018-08-23 17:00   좋아요 1 | URL
페크 님의 경험은 고통의 쾌감이라기보다는 성공에 대한 기대감이 주는 쾌감인 것 같아요. 발레 동작을 하려면 고통을 참아야 하잖아요. 그 고통을 견디면 몸이 유연해지고, 발레 동작이 가능해져요. 발레 동작을 할 수 있다는 성공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면 고통을 못 느낄 수 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