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의 별명 중 하나는 ‘티라노사우루스 렉스(Tyrannosaurus Rex)’이다. 티라노사우루스 렉스는 오래전 지구를 주름잡았던 최강의 육식공룡이다. 엄청난 양의 독서와 다양한 지적 편력을 자랑하는 에코에게 티라노사우루스 렉스라는 별명은 어색하지 않다. 그래서 에코의 책 속에는 또 다른 책이 들어 있다. 책을 많이 읽은 독자일수록 에코의 소설 속에 암시하고 있는 책들을 더 많이 발견할 수 있다. 나는 에코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책에 대한 정보를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글쓰기에 여러 번씩 감탄하게 된다.

 

 

 

 

 

 

 

 

 

 

 

 

 

 

 

 

 

 

 

* 움베르토 에코 《장미의 이름》 (열린책들, 2009)

* 움베르토 에코 《장미의 이름 작가 노트》 (열린책들, 2009)

* 움베르토 에코 《나는 독자를 위해 글을 쓴다》 (열린책들, 2009)

 

 

 

 

에코는 『나는 어떻게 소설을 쓰는가』라는 글(문학과 관련한 에코의 강의록과 글을 엮은《나는 독자를 위해 글을 쓴다》에 수록되어 있다)에서 자신의 글쓰기 습관을 자세하게 소개한다. 그는 글을 쓰기에 앞서 책을 읽고 나면 소설에 나올 등장인물들의 초상화, 소설에 묘사할 장소들을 표시한 지도 등을 그린다고 한다. 에코는 이미 《장미의 이름 작가 노트》에서 《장미의 이름》을 쓰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밝힌 적이 있다.

 

 

 소설의 집필을 시작한 첫 해를 나는 바로 이 소설의 세계를 구축하는 작업에 바쳤다. 중세 자료가 소장되어 있는 도서관에서 발견될 수 있는 방대한 서명 목록을 뒤적거리는 일도 거기에 포함된다. 이어서 나는 등장인물이 될 만한 무수한 사람들의 이름과 성격의 자료까지 준비했다.

 

(《장미의 이름 작가 노트》 41쪽)

 

 

에코가 소설을 쓰게 된 동기는 아주 단순하다. 그저 소설 하나 써보고 싶은 생각이 떠올랐고 한다. 에코의 머리에 떠오른 것은 ‘어느 수도사가 도서관에서 살해됐다’는 상황이었다. 그는 소설을 쓸 땐 언제나 ‘씨앗’ 같은 사소한 생각에서 출발해 인물들이 움직이는 소설의 전체적인 배경을 만들어내고, 글 쓰는 작업은 맨 나중에 한다고 밝혔다. 에코는 한 권의 소설을 쓰는데 걸리는 시간을 ‘자신만의 세계(소설)를 구축하는 데 걸리는 시간’으로 비유하면서 길게는 8년이나 걸린다고 했다. 작가는 지금 존재하는 세계뿐만 아니라 존재하지 않는 세계도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작가는 종이 위에서 현실을 부수고 새로운 언어의 집과 세계를 만들어 낸다. 에코는 일 년에 한 편씩 장편소설을 쓰는 사람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왜냐하면 일 년마다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낸다는 것은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에코가 생각하는 문학은 단순히 즐거움을 주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에코는 오로지 독자를 위해 소설을 썼다. 그는 설혹 우주의 종말을 앞둔다고 해도 글을 계속 쓸 것이라고 했다. 그는 우주의 종말에서 살아남은 미래의 누군가가 자신이 쓴 글의 기호들을 해독할 것으로 기대했다. 에코가 소설의 세계를 구축하는 방법을 알고 나서 다시 그의 소설들을 다시 읽으면 그 책에서 한번 봤던 부분을 다시 보게 된다. 에코는 독자를 즐겁게 해주는 요소, 즉 이스터 에그(easter egg: 작가가 자신의 작품 속에 숨겨 놓은 재미있는 것들)를 아주 살짝살짝 끼워 넣었기 때문에 그런 것을 한눈에 알아보기가 쉽지 않다.

 

 

 

 

 

 

 

 

 

 

 

 

 

 

 

 

 

 

 

* 움베르토 에코 《제0호》 (열린책들, 2018)

* 움베르토 에코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열린책들, 2009)

 

 

 

독자를 위한 에코의 장난기 어린 애정은 그의 마지막 소설 《제0호》에서도 변함없이 보여준다. 에코가 문장 곳곳에 숨겨둔 이스터 에그를 찾아보는 것도 굉장히 흥미로울 것이다. 에코의 수필집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은 《제0호》의 이스터 에그를 찾는 데 유용한 단서 중 하나이다. 이 수필집에 수록된 『반박을 반박하는 방법』『셰틀랜드의 가마우지를 가지고 특종 기사를 만드는 방법』을 읽으면 《제0호》의 이스터 에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에드거 앨런 포 《도둑맞은 편지》 (문학과지성사, 2018)

* 에드거 앨런 포 《검은 고양이》 (민음사, 2017)

* 에드거 앨런 포 《에드거 앨런 포 소설 전집 1 : 미스터리 편》 (코너스톤, 2015)

* 에드거 앨런 포 《도둑맞은 편지》 (바다출판사, 2010)

 

 

 

 

 

 

 

 

 

 

 

 

 

 

 

 

 

 

 

 

 

 

 

 

 

 

 

 

 

 

* 코난 도일 《셜록 홈스의 모험》 (엘릭시르, 2016)

* 코난 도일 《셜록 홈즈의 모험》 (코너스톤, 2016)

* 코난 도일 《주석 달린 셜록 홈즈 1》 (현대문학, 2013)

* 코난 도일 《셜록 홈즈의 모험》 (문예춘추사, 2012)

* 코난 도일 《셜록 홈즈의 모험》 (황금가지, 2002)

 

 

 

 

《제0호》 1장에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의 추리소설 『모르그 거리의 살인』『도둑맞은 편지』, 그리고 코난 도일(Conan Doyle)셜록 홈즈 시리즈와 관련된 문장이 나온다.

 

 

 

 내 아파트에 벽난로가 있다면 「모르그 거리의 살인」에 나오는 커다란 원숭이가 지나갈 수도 있었겠지만, 여기에는 그런 벽난로가 없다.

 

(13쪽)

 

 

 그런데 오늘 아침에는 물이 나오지 않았다. 그렇다면 친애하는 와트슨, 급수관의 손잡이는 밤중에 잠긴 거야. 물론 자네가 잠근 건 아니지.

 

(13쪽)

 

 

  그들은 무엇을 찾아내리라고 기대했을까? 분명한 것은 그들이 우리 신문에 관한 무언가를 찾고 있었으리라는 것이다. 그들은 바보가 아니다. 우리가 편집부에서 하고 있던 모든 일에 관해서 내가 메모를 했으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또한 내가 브라가도초 사건에 관해 무언가를 알고 있다면 어딘가에 적어 놓았으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들의 짐작은 틀리지 않았다. 실제로 나는 모든 것을 디스켓에 보관하고 있으니까. 분명 그들은 간밤에 편집부 사무실에도 들렀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디스켓을 찾지 못했다. 따라서 그들은 지금쯤 디스켓이 내 호주머니에 들어 있다고 결론을 내고 있으리라. 우리가 멍청했어, 그자의 재킷을 뒤져 보았어야 하는데, 하고 그들은 푸념하고 있을 것이다. [중략]

  이제 그들은 다시 올 것이다. 적어도 탐정이 <도둑맞은 편지>를 찾으러 오는 것과 비슷한 일이 벌어질 것이다. 어쩌면 가짜 소매치기들이 길거리에서 기습을 가할지도 모른다.

 

(14~15쪽)

 

 

 

‘친애하는 왓슨(My dear Watson)’은 홈즈가 자주 쓰는 말 중 가장 유명하다. 내가 인용한 《제0호》 14~15쪽 문장은 포의 『도둑맞은 편지』와 홈즈가 나오는 단편 『보헤미안 스캔들(《셜록 홈즈의 모험》에 수록되어 있다)와 관련되어 있다. 두 작품 모두 주인공인 탐정이 비밀 편지를 찾는 과정을 보여준다. 『도둑맞은 편지』의 범인은 별다른 장치 없이 훔친 비밀 편지를 숨기는 트릭(속임수)을 쓴다. 『보헤미안 스캔들』에서 홈즈는 편지를 가지고 있는 아이린 애들러(Irene Adler)에게 접근하기 위해 목사로 변장하여 자신이 고용한 가짜 소매치기들과 함께 ‘연극’을 펼친다. 에코는 추리소설이 탄생하는 데 기여한 두 작가의 작품을 오마주한 이스터 에그를 숨겨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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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테뉴(Montaigne)는 평생 “나는 무엇을 아는가(Que sais-je)?라는 질문을 가슴에 품고 살았다. 그 몽테뉴가 남긴 책이 우리에게 ‘수상록’이란 제목으로 알려진 <에세(Les Essais)>다. 1572년 공직에서 물러나 세상을 떠날 때까지 20년 동안 집필한 방대한 기록이 이 책이다. 몽테뉴가 살았던 시기는 지리학, 지도제작술, 항해술이 발전하고 있었다. 값비싼 물건들이 무역 항로를 통해 유럽으로 전해지고, 상업에 종사하는 시민들의 부는 축적됐다. 그리고 종교 개혁에 따른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의 대립 양상도 치열하게 전개됐다. 몽테뉴는 교회도, 이성적 학문도 신봉하는 태도를 멀리하고 세상의 온갖 문제에 찬찬히 생각하면서 글을 남겼다.

 

 

 

 

 

 

 

 

 

 

 

 

 

 

 

 

 

 

* 몽테뉴 《몽테뉴 수상록》 (동서문화사, 2016)

* 몽테뉴 《몽테뉴 수상록》 (동서문화사, 2007)

 

 

 

몽테뉴는 자신의 성에 은둔하면서 책을 읽거나 수상록을 쓰는 데 몰두했다. 그가 읽은 것 중에는 ‘미지의 땅’에 사는 원주민들과 그들의 풍습을 소개하는 책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 책을 접하지 않고선 『식인종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글을 쓸 수가 없다. 몽테뉴는 원주민들의 식인 풍습을 언급하면서 자신의 풍습이 아니면 ‘야만적인 행위’로 규정한 유럽인들의 사고방식을 지적한다.

 

 

 

 나는 이러한 행동이 흉측하고 야만적인 행위인 것을 주목하여 언짢게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오히려 우리가 그들의 잘못은 잘 비판하면서, 우리의 야만스런 행위는 주목하지 못하는 일이 슬프다. 나는 산 사람을 잡아먹는 일이 사람을 죽여서 먹는 것보다 더 야만스럽다고 본다. 아직도 아픔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신체를 고문과 고통스러운 형벌로 찢고, 불에 달군 쇠로 지지고 개나 돼지에게 물어 뜯겨 죽게 하는 일이(우리는 이런 일을 글에서 읽었을 뿐 아니라 생생하게 우리 눈으로 보았고, 그것은 옛날이 아니라 우리 이웃 사람들, 같은 시민들 사이에서 일어났으며, 더 나쁜 일로는 종교의 경건한 신앙심에서 그런 짓을 하고 있었다) 사람을 죽인 뒤에 구워서 먹는 것보다 더 야만스런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식인종에 대하여』 중에서, 동서문화사, 2007년 판, 232쪽)

 

 

 

유럽인들은 변방에 있는 대륙에 식인종이 살고 있다고 믿었다. 로마의 박물학자 플리니우스(Plinius)가 쓴 <박물지(Historia Naturalis)>에 식인종을 언급한 내용이 있다.

 

 

 

 

 

 

 

 

 

 

 

 

 

 

 

 

 

 

* 콜럼버스 《콜럼버스 항해록》 (서해문집, 2004)

* 콜럼버스 《콜럼버스 항해록》 (범우사, 2000)

 

 

 

 

콜럼버스(Columbus)는 항해일지에 카리브해 식인종의 존재를 언급했다. 그는 자신이 상륙한 땅을 인도라고 생각했고, 이곳 원주민들을 인도의 군주 칸(Grand Khan)의 지배를 받는 부족으로 오해해 카니바스(canibas)라고 불렀다. 그러나 콜럼버스는 식인종을 실제로 보지 못했다. 그에게 식인종의 존재를 알려준 사람은 다름 아닌 카리브해 원주민인 아라와크족(Arawak)이었다. 콜럼버스의 진술이 알려지면서 식인종을 뜻하는 ‘카니발(carnival)이라는 단어가 생겼고, 원주민을 식인종으로 묘사하는 책들이 우후죽순 나왔다.

 

 

 

 

 

 

 

 

 

 

 

 

 

 

 

 

 

 

* 톰 닐론 《음식과 전쟁》 (루아크, 2018)

* [절판] 앤서니 그래프턴 《신대륙과 케케묵은 텍스트들》 (일빛, 2000)

 

 

 

 

1557년에 독일의 군인 한스 슈타덴(Hans Staden)은 자신이 목격한 남아메리카 원주민 투피남바족(Tupinamba)의 식인 풍습을 <포로로 잡힌 진짜 이야기>라는 책을 통해 생생하게 묘사했다[주1]. 이 책에 따르면 투피남바족은 인육을 구워 먹었는데 성대한 행사가 있는 날에는 삶아 먹는다. 또 투피남바족 어린이들은 인간의 내장으로 만든 스튜를 먹기도 했다. 원주민의 식인 풍습을 묘사한 책들은 ‘식인종은 야만인’이라는 관념을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 자신을 ‘문명인’이라고 생각한 유럽인들은 식인종을 미개한 원주민으로 봤다.

 

 

 

 

 

 

 

 

 

 

 

 

 

 

 

 

 

 

 

* 마빈 해리스 《문화의 수수께끼》(한길사, 2017)

* 마빈 해리스 《음식문화의 수수께끼》(한길사, 2018)

* [품절] 마빈 해리스 《식인과 제왕》(한길사, 2000)

 

 

 

미국의 문화인류학자 마빈 해리스(Marvin Harris)《음식문화의 수수께끼》(한길사), 《식인과 제왕》(한길사)에서 잔인해 보이는 식인 풍습을 좀 더 폭넓은 시각으로 바라본다. 그가 쓴 ‘문화인류학 3부작’의 첫 번째 책 《문화의 수수께끼》(한길사)는 우리나라에서 문화인류학에 대한 대중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킨 책이다. 그는 이 책에서 가족제도와 재산, 정치 · 경제 제도, 종교와 음식 등의 진화 · 발전의 원인과 결과를 문화생태학적 측면에서 분석한다. 해리스가 바라보는 ‘문화’는 인류의 생존과 밀접하게 관련된 생활양식이다. 지역마다 인류의 생존방식이 다른 이유는 주어진 환경이나 물질적 조건 등이 문화권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문화인류학 3부작’을 관통하는 해리스의 관점은 ‘문화유물론’이라고 한다. 문화유물론은 모든 문화현상이 자연환경에서 비롯된다고 보는 관점이다. 따라서 한 지역의 문화적 전통은 인간이 주어진 환경에서 효율적인 생존 전략을 찾는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제각각 다른 삶이 서로 다른 문화의 결을 만들어 낸다. 문화에 대한 유물론적인 해석을 통해 해리스는 육식 금기, 성차별적 전통, 식인 풍습 등에 내재한 생태학적 원인을 파악하여 ‘문명-야만’의 이분법적 구도로 문화를 보는 서구중심주의의 허구와 한계를 비판한다. 인도에서는 소고기를 먹지 않고 무슬림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 이러한 음식에 대한 종교적 금기는 그 땅의 기후와 생활 방식에 영향을 받으면서 생긴 것이다. 해리스는 무슬림을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것은 돼지를 사육하기 위해 곡식이 많이 소모하기 때문이고, 인도인들이 소고기를 먹지 않는 것은 소는 농사짓는 데 있어서 중요한 노동력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해리스는 식인 풍습을 ‘문화’의 형태로 보면서 그것이 성행하거나 사라지게 된 원인을 환경적 · 경제적 이유에서 찾고 있다. 해리스의 주장에 따르면 아메리카의 자연환경은 단백질이 많이 들어 있는 식용 동물들이 많이 살지 않을 정도로 척박하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단백질을 섭취할 수 있는 영양원이 필요했고, 다른 부족과 전쟁하면서 잡은 포로를 잡아먹었다. 그들은 단지 인육을 먹기 위해서 전쟁을 한 것이 아니다. 원주민들에게 인육은 생존에 필요한 식량인 동시에 자신들의 용맹함을 보여주는 증표이기도 하다. 농사짓는 법을 알기 시작한 원주민들은 전쟁 포로를 노예로 삼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식인 풍습은 점차 사라지게 된다.

 

 

 

 

 

 

 

 

 

 

 

 

 

 

 

 

 

 

 

 

* 임호준 《즐거운 식인》(민음사, 2017)

* 이상희, 윤신원 《인류의 기원》(사이언스북스, 2015)

* 프랜시스 바커 외 엮음 《식인문화의 풍속사》(이룸, 2005)

 

 

 

그런데 1979년에 미국의 인류학자 윌리엄 아렌스(William Arens)는 식인 풍습 분석에 반기를 드는 도발적인 주장을 펼친다. 그는 <식인 신화>라는 책에서 식인 풍습에 대한 유럽인들의 기록은 모두 날조된 것이며, 각종 문헌에 언급된 식인종과 식인 문화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주2]. 그에 따르면 식인종과 식인 문화는 ‘신화’에 불과하며 야만과 문명의 차이를 과장하려는 목적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당연하게도 마빈 해리스를 포함한 인류학자들은 식인 풍습의 흔적으로 볼 수 있는 근거들을 제시하면서 아렌스의 입장을 비판한다. 지금도 식인 풍습을 연구하는 인류학자들은 아렌스의 입장을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 여러 명의 학자가 식인종 담론을 분석한 글을 모은 《식인문화의 풍속사》(이룸)에 아렌스가 쓴 『카니발리즘을 재고하며』라는 글이 있다. 아렌스는 이 글에서 <식인 신화>를 공격한 인류학자들(마빈 해리스도 포함되어 있다)의 주장을 재반박한다.

 

물론 식인 풍습에 대한 문화유물론적 분석도 한계가 있으며 비판받고 있다. 생태학적 원인만으로는 문화가 발전되는 과정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마빈 해리스의 ‘문화인류학 3부작’은 추천도서 목록에 심심찮게 들어있을 정도로 많이 알려져 있다. 작년부터 올해까지 1부, 2부(《음식문화의 수수께끼》) 개정판이 나왔다. 3부 《식인과 제왕》(한길사)만 개정판이 나오지 않았다. 시간이 많이 흐른 만큼 문화유물론은 유행이 지난 이론이 되었다. 마빈 해리스의 주장을 ‘확고한 정설’인 것처럼 받아들이면서 읽으면 문화 발전의 인과적 요인을 설명할 수 있는 다양한 관점을 놓치게 된다. 《음식문화의 수수께끼》의 역자 해설은 문화유물론의 특징뿐만 아니라 한계도 아주 잘 설명한 글인데, 우리나라에서 문화유물론의 한계에 주목한 글이나 문헌을 찾기가 쉽지 않다. 사실 인류학자들은 마빈 해리스의 식인 풍습 분석도 극단으로 보고 있다[주3]. 주류 학설이 아닌 셈이다. 아렌스의 입장도 동의하기 어렵지만, 식인 풍습을 둘러싼 인류학자들의 간의 논쟁을 크게 보려면 서로 정반대인 ‘극’과 ‘극’ 모두를 알아야 한다. 이제 우리나라도 ‘마빈 해리스 신화’에 벗어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주1] 투피남바족의 식인 풍습을 증언한 한스 슈타덴의 저서와 여기에 실린 도판에 대한 설명이 나오는 책 : 《신대륙과 케케묵은 텍스트들》 (일빛), 《음식과 전쟁》 (루아크), 《음식문화의 수수께끼》 (한길사)

 

[주2] 윌리엄 아렌스의 주장을 소개한 책 : 《인류의 기원》(사이언스북스), 《즐거운 식인》(민음사)

 

[주3] 《즐거운 식인》, 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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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18-12-14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교수님이 에세이가 몽테뉴의 에세에서 나온 거라고 강조하시던 게 생각나네요. 진짜 온통 밑줄 그어가며 읽었는데, 이젠 기억도 가물가물하네요. 다시 펼쳐봐야겠어요 ㅎㅎ

cyrus 2018-12-14 18:12   좋아요 0 | URL
수상록이 워낙 많은 분량이라서 한 번에 다 못 읽고, 생각날 때마다 읽습니다. ^^

2018-12-14 17: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12-14 18:16   좋아요 0 | URL
승자의 기록을 비판하려면 양심만 있어서는 안 될 거예요. 비판의 후폭풍을 감당할 수 있는 용기와 인내심도 있어야 해요. 그래서 승자의 기록에 정면으로 맞서는 건 정말 힘든 일이에요. ^^;;

페크pek0501 2018-12-14 2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몽테뉴의 식인종에 대한 지적은 날카롭군요.

<수상록>을 두 권 가지고 있어요. 출판사가 다르죠. 예전에 산 책이 맘에 들지 않아 홍신문화사 걸로 다시 샀어요. 왠지 모르게 홍신문화사 책은 맘에 들어요. 글자가 짙고 종이가 넓어요. 사람으로 말하면 잘생겼어요.

cyrus 2018-12-17 13:21   좋아요 0 | URL
완역본으로는 동서문화사가 최고입니다. 그런데 번역문이 올드해서 잠 오게 하는 마취 성분이 있습니다.. ㅎㅎㅎ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950년대 터키, 수많은 이민자가 돈을 벌기 위해 이스탄불로 들어온다. 그들은 공터에 정착해서 불법으로 집을 짓는다. 정부는 싼값에 일할 노동자들이 필요했기 때문에 이민자들이 불법으로 공터를 차지해도 눈감아준다. 메블루트와 그의 가족도 그중 하나였다. 열두 살 소년 메블루트는 학교에 다니면서 아버지와 함께 터키의 전통 음료인 ‘보자’를 팔면서 지낸다. 그는 매일 “맛 좋은 보오자아아!”라고 외치면서 골목을 누빈다. 메블루트는 사촌 형의 결혼식장에서 우연히 본 라이하라는 소녀에게 한눈에 반해 3년 동안 연애 편지를 쓴다. 그는 한밤중에 라이하와 함께 ‘사랑의 도피’를 감행한다. 그러나 어둠 속에서 라이하의 얼굴을 처음 보았을 때 눈앞의 그녀는 예전에 사랑했던 소녀가 아님을 확인한다. 하지만 메블루트는 운명의 장난을 받아들이고, 그녀와 결혼까지 해 아이도 낳는다.

 

 

 

 

 

 

 

 

 

 

 

 

 

 

 

 

 

* 오르한 파묵 《내 마음의 낯섦》 (민음사, 2017)

 

 

 

오르한 파묵(Orhan Pamuk)의 장편소설 《내 마음의 낯섦》(민음사)은 이스탄불 거리를 누비며 보자를 파는 메블루트와 가족들의 이야기이다. 파묵은 근대 도시 사회로 변하는 이스탄불 속에서 살아가는 이민자들의 삶을 다채롭게 그려낸다. 전통과 현대가 충돌하는 과도기와 소시민의 삶이 정교하고 촘촘하게 교차하며 엮인다. 이 소설을 통해 터키 현대사의 굵직한 역사적 사실들을 확인할 수 있다.

 

 

 

 

 

 

 

 

 

 

 

 

 

 

 

 

 

* 이희수 《터키사 100》 (청아출판사, 2017)

* 전국역사교사모임 《처음 읽는 터키사》 (휴머니스트, 2010)

 

 

 

오스만 제국 해체 후 1923년에 출범한 터키 공화국은 세속주의와 민족주의를 국시로 삼았다. ‘터키의 아버지(Atatürk)케말 파샤(Kemal Pasha)가 이끈 군부는 터키 공화국을 수립하면서 세속주의와 정교분리 원칙을 강조했다. 이슬람이 정치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케말 파샤는 터키를 유럽 국가로 만들기 위해 여성들이 서양식 옷을 입고 다니게 한 것은 물론 선거권도 부여했다. 아랍 문자 대신 로마자를 약간 변형한 터키어도 제정했다. 덕분에 터키는 이슬람 국가로서는 처음으로 1952년 나토(NATO)에 가입했고, 유럽의 일원이라는 평가도 듣게 됐다. 그러나 경제 성장 등 많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급속한 근대화 과정에서 ‘그늘’이 발생했다. 기득권층이 된 터키 근대화 세력의 부패 문제가 심각했다. 그들은 권력을 장악하는 데 성공했지만, 문화적 · 이념적 주도권을 이슬람 세력으로부터 완전히 빼앗아 오지는 못했다. 점점 시대가 바뀌면서 군부 중심 체제는 한계에 부닥쳤고, 21세기 들어와서 권력이 민주주의와 국민 주권을 외친 이슬람주의 세력에 넘어갔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Recep Tayyip Erdoğan)은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터키 민주화의 상징이었다. 군부가 주도한 근대화 정책에서 소외된 계층을 대변하는 민주 투사로 떠오른 에르도안은 이슬람주의 세력의 지지를 받아 2002년 총선에서 승리했고, 2003년에 내각책임제 총리로 선출됐다. 그러나 2014년에 에르도안이 내각책임제를 직선제로 바꿔 대통령에 당선되면서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에르도안 세력에 반대하는 언론인과 정치 인사들이 탄압받았다. 에르도안 정부를 공개적으로 비판한 파묵은 터키를 떠나 미국에 거주하고 있다. 에르도안 정부는 2016년 쿠데타를 진압한다는 명목으로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여 세속주의 세력을 숙청했다. 작년 국민투표를 통해 대통령 중심제로 개헌하는 데 성공하면서 에르도안은 ‘터키의 술탄(Sultan)’으로서 입지를 다졌다. 술탄은 이슬람의 최고 권위자인 칼리프(Caliph)가 수여한 정치적 지배자의 칭호이다. 에르도안 정부는 이슬람주의를 바탕으로 오스만 제국의 영화를 재현하려고 있다.

 

《내 마음의 낯섦》에는 전통 관습을 옹호하는 터키 사람들과 세속적인 터키 사람들이 나온다. 특히 이 소설에서 터키 여성들은 전통을 거부하면서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라이하의 언니 웨디하는 담배를 피우며, 메블루트의 사촌 쉴레이만의 아내 멜라하트는 자유분방한 연애를 하면서 살아온 여성이다. 그러나 군부 세력이 터키 여성을 위한 정책을 만들었다고 해도, 가부장적 사회를 잊지 못하는 이슬람세력의 반발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1980년에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은 케난 에브렌(Kenan Evren)은 헌법을 마음대로 고치면서까지 독재 정치를 일삼았지만, 임기 초기에 임신 중지(낙태)를 허용하는 정책을 내세웠다. 《내 마음의 낯섦》에서 웨디하는 에브렌 정권의 임신 중지 허용 정책을 ‘좋은 일’이라고 말한다.

 

 

 나는 케난 에브렌 장군이 1980년에 군사 쿠데타를 일으키고 삼 년이 지나 좋은 일을 했는데, 그건 다름이 아니라 미혼 여성에게 임신한 지 십주가 지나기 전까지는 병원에서 낙태 수술을 받을 권리를 주었다고 말했다. 이 권리는 혼전에 사랑을 나눌 수 있는 미혼의 용감한 도시 여성에게 유용했다. 기혼 여성이 권리를 누리기 위해서는 남편들을 설득하여 낙태에 동의한다는 사인을 받아야 했다. 둣테페에 사는 많은 남편들은 그럴 필요가 뭐 있어, 죄악이야, 애들이 크면 우릴 보살피겠지 하면 사인을 해주지 않았다. [중략] 어떤 여자들은 서로에게서 배운 원시적인 방법으로 낙태를 시키기도 했다. 나는 동생에게 말했다. “메블루트가 사인을 해 주지 않아도 절대 동네 아낙네들의 말에 솔깃해서 그런 짓 하지 마, 알았지, 라이하? 나중에 후회할 거야.”

 

(《내 마음의 낯섦》, 464쪽)

 

 

글쎄, 내가 보기엔 그다지 좋은 일은 아닌 것 같다. 시골에 사는 터키 여성은 합법적인 임신 중지를 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왜 남편이 아내의 선택에 동의를 받아야 하는가? 남편들은 임신 중지를 받아들일 리가 없다. 남편의 동의를 받지 못해 임신 중지를 할 수 없게 된 여성은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불법 임신 중지를 행한다.

 

 

 

 

 

 

 

 

 

 

 

 

 

 

 

 

* 엄익란 《금기, 무슬림 여성을 엿보다》 (한울아카데미, 2018)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임신 중지를 엄격히 금하고 있다. 이슬람 경전 코란(Quran)은 태중의 자식을 살해한 부모는 신의 심판을 받을 것이며, 살해된 자식이 그 부모의 죄를 증언할 것이라고 언급한다. 심지어 강간에 의한 임신의 경우에도 임신 중지를 허용되지 않는다. 코란의 가르침을 받고 자란 무슬림 여성에게 출산과 육아는 ‘삶의 완성’을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이슬람은 ‘명예’를 중요시한다. 무슬림 여성은 정숙하게 행동하면서 순결을 지켜야 하고, 아이를 낳아야지 ‘명예로운 여성’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된다. 출산 거부와 불임은 무슬림 여성의 명예를 위협하는 요인이다.

 

라이하는 아이를 원하는 메블루트를 설득하지 못해 ‘혼자서’ 임신 중지를 시도하게 되고, 끝내 과다 출혈로 사망한다. 이때 그녀의 나이는 서른 살이다. 이 소설에서 메블루트는 정직하게 사는 인물로 나오지만, 그는 출산과 육아에 대한 라이하의 정신적 부담감을 감지하지 못한다. 그리고 라이하의 배 속에 있는 아이가 아들이기를 바란다.

 

 

 라이하는 울기 시작했다. 메블루트가 돈을 잘 벌지 못하고, 매니저 일을 성공적으로 해내지 못했으며, 이번 보자 가게도 실패할 거라는 생각에 겁을 먹었고, 베이올루의 혼수품 상점에서 주문받아 하는 바느질 일이 없었더라면 매달 말까지 근근이 버티며 살았을 거고, 아기가 제 먹을 것을 달고 세상에 나온다는 말에만 의지할 수는 없고, 이미 결심이 확고하다고 말했다. 어차피 네 명이 아침저녁으로 꽉 끼어 사는 단칸방에는 새 사람을 위한 공간이 전혀 없다고 덧붙였다.

 

(《내 마음의 낯섦》, 464쪽)

 

 

 

 메블루트는 배 속에 있는 아이가 어쩌면 아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흥분하여 상상을 펼쳤다. 아이의 이름은 메블리드한이 될 것이다. [중략] 메블루트는 라이하가 아이를 지우는 데 이토록 단호한 까닭은 돈이 없고 성공하지 못한 남편에 대한 항변, 심지어 일종의 벌주기가 아닐까하는 의심과 원망이 일었다. 아이를 낳으라고 설득하면 그들의 삶에 어떤 결핍이나 부족함이 없다는 것을 보여 줄 수 있을 듯했다. 더욱이 악타쉬 가족보다 더 행복하다는 게 확실해질 거였다. [중략] 행복한 사람은 자식이 많다. 불행한 부자들은 터키에 인구 제한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유럽인들처럼 가난한 사람들의 아이들을 질투했다.

 

(《내 마음의 낯섦》, 465쪽)

 

 

메블루트는 자신이 경제적으로 성공하지 못한 남편이 되지 못해서 라이하가 아이를 지운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무능력한 모습을 보는 아내를 원망한다. 그는 열등감을 떨쳐내려고 ‘희망 고문’을 한다. 라이하가 아이를 많이 낳아주면 행복한 가족이 될 수 있다고 착각한다. 메블루트는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명예를 회복하고 싶어 하며, 가부장으로서의 본인의 경제적 무능력을 은폐하려고 한다. 그래서 그는 라이하가 아이를 낳아주기를 희망한다. 메블루트의 순진한 발상은 아내의 희생을 강요한다.

 

 

 

 

 

 

 

 

 

 

 

 

 

 

 

 

 

 

* 우유니게, 이두루, 이민경, 정혜윤 《유럽 낙태 여행》 (봄알람, 2018)

* 조은주 《가족과 통치》 (창비, 2018)

 

 

 

우리나라에서 임신 중지는 불법이다. 우리나라에서 ‘낙태죄’가 처음으로 규정된 것은 1953년 형법이 제정되면서부터이다. 박정희 정부는 경제 성장을 위해 적극적인 산아제한 정책을 도입하면서 불법 낙태를 묵인했다. 한 자녀 출산 후 불임 시술을 하면 국가의료원에서 그 자녀 출산 비용을 무상화했고, 불임한 부부에겐 주택융자의 우선권이 주어졌다. 남성이 불임을 택하면 예비군 훈련 면제의 특혜를 제공했다. 그러나 산아제한 정책은 주로 여성의 몸에 집중되었다. 국가 권력은 여성의 몸을 통치의 대상으로 삼았다. 하지만 2000년 이후 출산율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정부는 저출산 대책의 일환으로 불법 낙태 시술을 단속하기로 했다.

 

낙태죄 논란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세계 곳곳에서 여성들은 임신 중지를 ‘범죄 행위’로 만드는 법적 규제나 종교적 · 문화적 장벽들로 인해 불평등을 겪고 있다. 라이하처럼 불법 임신 중지를 행하다가 생명을 잃는 여성들도 늘어나고 있다. 에도르안 정부는 낙태 금지법 도입을 추진하려고 한다. 불법 임신 중지는 여성의 생명을 위협한다. 파묵은 소설에서 라이하의 최후를 단 한 줄로 묘사한다.

 

 

 라이히는 원시적인 방법으로 낙태를 시도했고, 끔찍한 일이 벌어져 출혈과 고통으로 반쯤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내 마음의 낯섦》, 475~476쪽)

 

 

이 문장을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세밀한 묘사로 정평이 난 파묵은 왜 그녀의 임신 중지 행위를 자세히 묘사하지 않았을까? '원시적인 방법'이라는 게 과연 무엇일까? 그리고 왜 라이하는 혼자서 비참하게 죽음을 맞이해야 했을까? 여성 작가가 이 소설을 썼더라면 라이하는 쓸쓸하게 죽지 않았을 것이다. 임신 중지에 대한 두려움과 죄책감을 감당하지 못하는 여성들은 어머니나 동성 친구와 동행하면서 불법 낙태 시술을 받는다고 한다. 라이하의 복잡다단한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알던 언니 웨디하가 그녀 곁을 끝까지 지켜주지 않은 게 아쉽다. 이런 묘사가 없다는 건 ‘남성’ 작가의 한계로 봐야 하는가? 이 슬픈 장면에 대한 해석과 평가는 자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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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돼지 2018-12-06 14: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한 100여 페이지 정도 읽다가 그만둔지 거의 반년 정도 된 것 같습니다. 같이 야반도주한 그녀가 다른 사람임이 밝혀지는 장면은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

cyrus 2018-12-07 12:28   좋아요 0 | URL
파묵의 소설이 독서모임 선정 도서가 아니었으면 읽을 일이 없었을 거예요.. ^^;;

레삭매냐 2018-12-06 1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저도 궁금하기는 한 데 원체 파묵의
책이 좀 지루하다는 썰이 있어서 선뜻
도전하기가 그렇네요...

cyrus 2018-12-07 12:31   좋아요 0 | URL
분량이 많아서 마음잡고 읽기가 힘들어요.. ㅎㅎㅎ 파묵 작품 전작 읽기에 성공한 독자는 정말 대단한 사람입니다.. ^^

2018-12-06 17: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12-07 12:44   좋아요 0 | URL
제가 왜 남의 글을 검토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병신’은 장애인을 비하하는 단어인 것 맞습니다. 대부분 장애인 인권론자들은 ‘병신’을 쓰지 말자고 주장했습니다만, 여기에 대해서 다르게 생각하는(‘반대’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장애인 인권론자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언어 사용에 있어서 ‘정치적 올바름’에 사로잡히면 장애인 인권 운동에 도움이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물론, 저는 ‘병신’을 가벼운 농담으로 써서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미국에서 이런 비슷한 논의가 진행되었고요, <거부당한 몸>이라는 책에 보면 장애인을 비하하는 용어를 둘러싼 장애인 인권론자들의 논의에 대한 내용이 나옵니다. ‘병신’을 써야 할지 안 써야할지에 대한 논의는 간단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장애인들도 비장애인의 시선을 가지면서 살아가고 있고, 또한 그들도 가끔 ‘병신’이라는 말을 쓰니까요.

[‘병신’은 쓰지 말아야 할 표현? 그전에 따져야 할 것]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47&aid=0002187121

페크pek0501 2018-12-08 1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묵직한 책을 읽으셨네요. 노벨 문학상 수상자라서 그런지 파묵의 책을 선뜻 읽게 되지 않더라고요.
내년에 도전해 봐야겠군요,

cyrus 2018-12-09 16:10   좋아요 0 | URL
오스만 제국의 역사와 터키 문화를 어느 정도 이해한 상태에서 파묵의 소설을 읽으면 흥미진진합니다. 그런데 파묵의 장편소설 대부분은 분량이 많은 편이라서 완독하기가 쉽지 않아요. ^^;;
 

 

 

 

그리스인 통역사는 영국의 작가 코난 도일(Conan Doyle)이 쓴 단편소설이며 셜록 홈즈의 회상록(The memoirs of Sherlock Holmes)에 수록되어 있다. 이 작품에 셜록 홈즈의 형 마이크로프트 홈즈(Mycroft Holmes)가 처음으로 등장한다.

    

 

 

 

 

 

 

 

 

 

 

 

 

 

 

 

 

 

 

 

 

 

 

 

 

 

 

    

 

 

* 셜록 홈즈의 회상록(엘릭시르, 2016)

* 셜록 홈즈의 회고록(코너스톤, 2016)

* 주석 달린 셜록 홈즈 2(현대문학, 2013)

* 셜록 홈즈의 회상록(문예춘추사, 2012)

* 셜록 홈즈의 회상(시간과공간사, 2002)

* 셜록 홈즈의 회상록(황금가지, 2002)

    

 

 

마이크로프트는 홈즈보다 일곱 살 많고, 홈즈 본인이 자신보다 추리력과 관찰력이 뛰어나다고 말할 정도로 비범한 인물이다. 홈즈는 왓슨(Watson)에게 친형이 있다는 사실을 고백하면서, 형을 기괴한 사람 또는 특이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디오게네스 클럽은 런던에서 가장 기괴한 클럽이고, 형은 가장 기괴한 사람 축에 들지.”

 

(주석 달린 셜록 홈즈 2중에서, 311~312)

 

 

 디오게네스 클럽은 런던에서 가장 특이한 클럽이고 마이크로프트 형 또한 아주 특이한 사람이지.”

 

(셜록 홈즈의 회상중에서, 정태원 번역, 279~280)

 

 

이 문장의 원문은 다음과 같다.

 

 

 “The Diogenes Club is the queerest club in London, and Mycroft one of the queerest man.”

    

 

‘queerest’‘queer’의 구어이다. ‘기괴한’, ‘특이한이라는 뜻을 가진 형용사이지만, 남성 동성애자를 가리키는 속어이기도 하다. 홈즈 시리즈의 화자는 왓슨이다. 작품 속에서 왓슨은 홈즈가 해결한 사건들을 기록하여 책을 펴내는 작가이다. 그러므로 홈즈가 대화중에 꺼낸 ‘queerest’는 왓슨이 글을 쓰면서 표현한 단어일 수 있다. 그렇다면 홈즈 또는 왓슨은 ‘queerest’동성애자와 무관한 의미로 썼을까?

 

 

주석판(주석 달린 셜록 홈즈 2》)‘queerest’에 대한 학자의 견해를 인용한다. 그레이엄 로브라는 학자는 1894년에 이미 ‘queerest’는 속어의 의미로 사용하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리스인 통역사18939<스트랜드 매거진(The Strand Magazine)>에 발표되었다. 1895년에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는 동성애 혐의로 기소되어 체포되었고, 2년 강제노역형을 선고받았다.

 

와일드는 1891년에 스무 살의 옥스퍼드 대학생 앨프레드 더글러스(Alfred Bruce Douglas)를 만나 사귀었다. 더글러스의 아버지인 퀸즈베리 후작(Marquess of Queensbury)은 아들의 비행에 못마땅했으며 두 사람의 관계를 눈치챘다. 결국 후작은 ‘snob queer(속물 동성애자)’라는 표현을 써가면서 그를 공개적으로 비난했고, 명예훼손죄로 고소했다. 이로 인해 와일드는 명성뿐만 아니라 가족과 전 재산까지 잃어버렸다.

 

    

 

 

 

 

 

 

* [절판] 페터 풍케 오스카 와일드(한길사, 1999)

    

 

 

주석판은 그레이엄 로브의 견해를 인용하면서 퀸즈베리 후작이 1894년에 와일드를 비난했다고 언급한다. 그러나 와일드가 퀸즈베리 후작의 비난으로 인해 동성애 혐의를 받은 연도는 1894년이 아니라 1895년이다. 와일드의 생애 전반을 소개한 오스카 와일드(한길사)에는 퀸즈베리 후작이 와일드를 ‘sodomit’의 오자인 ‘sondomit’라고 부르면서 비난했다는 내용이 있다. ‘sodomit’남색가를 뜻하는 독일어 단어이다. 오스카 와일드를 쓴 저자가 독일인이라서 영국인 후작이 ‘sondomit’를 사용했다는 내용을 그대로 믿기 어렵다. 영국 출신 후작이 ‘sodomy(남색가를 뜻하는 영단어)를 놔두고, 왜 틀린 철자의 독일어 ‘sondomit’를 써야만 했을까? 그 점이 궁금하다.

 

다시 홈즈 이야기로 돌아가서, ‘queerest’로 인해 홈즈 연구가들은 홈즈 형제의 성 정체성에 대해 여러 가지 가설을 제기했다. 홈즈를 여성으로 보는 사람이 있고, 홈즈가 동성애자라서 여성을 싫어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1971년에 <셜록 홈즈의 성적 모험>이라는 제목의 소설이 나왔는데, 여기에 나오는 홈즈 형제와 왓슨 모두 동성애자이다.

    

 

 

 

 

국내에 오스카 와일드의 평전이라고 할 만한 책이 없다. 한길로로로 시리즈오스카 와일드는 평전 형식을 따르고 있지만, 그럼에도 무언가 허전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와일드의 삶과 문학 세계를 반 정도 축약해놓은 듯한 느낌이 든다.

 

 

 

 

 

 

 

 

 

 

 

 

 

 

 

 

 

 

* [품절] 플로랑스 타마뉴 동성애의 역사(이마고, 2007)

* [품절] 도미니크 페르낭데즈 가니데메스 유괴(수수꽃다리, 2004)

 

 

 

와일드의 동성애를 비중 있게 분석한 책도 많지 않다. 동성애의 역사(이마고)가니데메스 유괴(수수꽃다리)는 서양 문학과 예술에 나타난 동성애 코드를 시대별로 정리한 책이다. 동성애의 역사에 따르면 와일드가 동성애 혐의를 받기 전에 그가 동성애자라고 믿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사람들은 그가 (남성이 표현하는) 여성화된 미학이 무엇인지 행동으로 보여주기 위해 동성애자인 척 연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가니데메스 유괴를 쓴 프랑스의 작가 도미니크 페르낭데즈(Dominique Fernandez, 우리나라에선 생소한 이름이지만, 콩쿠르 상을 받은 중견 작가이다)는 와일드의 동성애 성향을 기성 사회에 저항하는 최선의 방법이었다고 해석한다. 우리나라에선 오스카 와일드는 동화 작가로 많이 알려져 있다. 이러한 인식 때문인지 그가 냉소적인 문장으로 삶을 통찰했던 촌철살인의 면모가 크게 주목받지 못한 듯하다. 또 우리나라에 성소수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남아 있어서 그런지 동성애자 작가 오스카 와일드보다는 동화작가 오스카 와일드를 더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동성애 코드를 완전히 떼어내면서 와일드의 문학 세계를 본다는 건, '문호'로서, 또 한 '인간'으로서 그를 존중하지 않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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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십 걸(Gossip Girl)>은 맨해튼의 사립 고등학교에 다니는 재벌 2세들의 사랑과 삶의 방식을 보여주는 미국 드라마다. 2003년에 출간된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며, 2007년부터 2017년까지 총 6개의 시즌으로 방영되었다.

 

 

 

 

 

 

 

 

 

 

 

 

 

 

 

 

 

 

 

 

 

 

 

 

 

 

 

 

 

 

 

* 세실리 본 지게사 《가십 걸》 (황매, 2005, 2008)

* 캐서린 하킴 《매력 자본》(민음사, 2013)

* 앤디 자이슬러 《페미니즘을 팝니다》(세종서적, 2018)

 

 

 

‘가십 걸’은 극 중 재벌 2세들의 일거수일투족이 연재되는 익명의 인터넷 홈페이지 운영자이다. <가십 걸>의 주인공은 좋은 학교에 가고, 명품을 사 모으고, 멋진 남자들과 연애 끝에 결혼에 이르는 젊고 진취적인 여성이다. <가십 걸>은 이야기가 탄탄한 드라마는 아니다. 이 드라마는 형식 자체가 연예인들의 온갖 사생활을 전달하는 할리우드 연예 뉴스와 같다. 이야기 이외에 ‘소비 욕구’를 불러일으키며 시청자들의 관심을 이어가고 있다. 극 중 여배우들의 옷이나 장신구는 PPL(Product Placement, 간접 광고)이다. 이야기를 떠나 드라마 속 인물들의 패션 자체는 화젯거리가 된다. 10대, 20대 여성층들은 <가십 걸>의 주 시청자이면서 가장 충성스러운 소비자이다. 소비를 통해 자아실현을 추구하는 여성의 생활방식을 그린 <가십 걸>은 화려한 상류층 여성의 이미지만 보여주고, 여성들이 직면하는 현실적인 문제를 가린다.

 

페미니즘은 종종 여성을 위한 자기계발의 한 양상으로 오해받곤 한다. <가십 걸>에 열광한 젊은 여성들은 기존 페미니즘이 비판했던 외모 가꾸기 등을 스펙의 한 부분으로 여기고 ‘매력 자본(Honey Money)을 늘리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한다. 영국의 사회학자 캐서린 하킴(Catherin Hakim)은 아름다운 용모, 건강미와 활력 등을 ‘매력 자본’이라고 규정했다. 사회, 문화, 경제적 자본처럼 외모도 하나의 자본으로 작용해 개인의 부를 늘리는 데 작용한다는 것이다. 매력 자본은 단지 잘생긴 외모나 멋진 옷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유머, 예의범절, 미소, 건강한 활력, 춤 실력 등이 포함된다. 하킴은 매력 자본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지능처럼 노력하고 발전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고소득자, 상류층은 외모와 여가문화 등의 자본을 더 늘릴 수 있는 여건이 되고 이는 다시 더 많은 부를 창출할 가능성이 높다. 결국 외모에 투자하는 여성들 사이에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벌어지게 된다. 결혼과 사회생활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 여성들은 매력 자본을 전략적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페미니즘을 팝니다》(세종서적)는 이러한 현상을 ‘시장 페미니즘’이라 이름 붙임으로써 페미니즘이 상업적으로 어떻게 포장되며, 대중문화를 통해 페미니즘 본래의 의미가 어떻게 변질하는지 보여준다.

 

 

 

 

 

 

 

 

 

 

 

 

 

 

 

 

 

 

* [절판] 에드가 모랭 《스타》(문예출판사, 1992)

 

 

 

‘가십(gossip)’은 개인의 시시콜콜한 사생활에 대한 소문을 보도하는 기사를 뜻한다. 예나 지금이나 가십이 강력한 위세를 부리는 곳은 연예계다. 기존에는 신문 등 대중매체가 취재해 가십을 유통했다면 이제는 연예기획사나 연예인 스스로 가십의 생산자로 나서고 여기에 방송이 매개 역할을 하며 인터넷, SNS 등이 확대 재생산해 대량으로 유통하는 구조로 변화했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에드가 모랭(Edgar Morin)이 쓴 《스타》(문예출판사)는 출간된 지 꽤 오래된 책이지만, 연예인의 가십을 만드는 대중문화의 허상과 폐해를 지적한 저자의 분석은 지금도 유효하다. 모랭은 가십을 ‘스타 시스템을 키우는 플랑크톤’이라고 표현했다. ‘스타’가 된 연예인은 대중의 우상이 된다. 스타를 추종하는 팬들에게 스타가 사는 세계란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과는 다른 별천지다. 그래서 연예인의 사생활은 대중의 호기심을 끌어낼 수 있는 시청률 보증수표와도 같다. 이들을 스타 또는 공인이라고 부르는 데에는 대중의 사랑과 관심으로 부와 인기를 누리는 대신 일정 부분 자신의 사생활 노출을 감수해야 한다는 측면도 포함돼 있다. 스타는 ‘꿈의 빵’이라고 했던 모랭의 지적처럼 연예인들은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팔리는 특수 상품이다. 따라서 가십이 유통되지 않으면 연예인은 ‘상품’으로서의 가치가 돋보이지 않으며, 대중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

 

 

 

 

 

 

 

 

 

 

 

 

 

 

 

 

 

 

* 조지프 엡스타인 《성난 초콜릿》(함께읽는책, 2013)

* 강준만 《교양 영어 사전 2》(인물과사상사, 2013)

* 메릴린 옐롬, 테리사 도너번 브라운 《여성의 우정에 관하여》(책과함께, 2016)

 

 

 

‘가십’과 마찬가지로 ‘가십 걸’도 영어사전에 있는 단어이다. 영어사전에 나오는 ‘가십 걸’의 뜻은 이렇다. 수다를 떠는 여자, 남 얘기하는 것을 좋아하는 여자, 뒷얘기를 좋아하는 여자. 그런데 ‘가십 보이’는 영어사전에 없다. 남자들도 은근히 남 얘기하는 것을 좋아하고, 동성끼리 모여서 뒷얘기를 하는 걸 좋아하는데 말이다. 가십은 원래 성별에 상관없이 사람들이 서로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뜻했다. 집안에 머무르면서 생활해야 했던 여성들은 외출하면서 이웃이나 친구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16세기에 가십은 ‘여성 친구’를 뜻하는 단어로 사용되었고, 여성들의 대화를 경멸하는 뉘앙스가 없었다. 과거의 가십은 사회 집단 내 일원들끼리 주고받는 유용한 정보였다. 그런데 사람들은 집단적 소속감을 느끼기 위해 가십에 쉽게 끌린다. 검증되지 않은 가십임에도 그것을 이야기하면서 열을 올린다. 진실이 아니라도 상관없다. 내용이 자극적일수록 사람들은 더 빠져들고, 또 다른 이에게 옮겨질 때는 강도가 더 커진다. 《성난 초콜릿》(함께읽는책)은 내 귀에 달콤하지만, 누군가에겐 자칫 치명적일 수 있는 가십의 양면성을 보여주는 책이다. 인간이면 누구나 타인이 숨기고 싶은 내밀한 부분을 엿듣고 싶은 욕구가 있다. 치명적일수록 효과가 배가되고 알고자 하는 욕망을 부추긴다. 가십은 우리 눈과 귀를 유혹하는 달콤한 초콜릿과 같다.

 

누구든지 가십의 유혹에 벗어날 수 없다. 그런데 오랫동안 가십은 여성들끼리 주고받는 대화를 부정적으로 가리킬 때 사용되어 왔다. ‘가십 걸’의 ‘걸’은 ‘연예계 가십에 관심이 많은 여성’, ‘가십의 유혹에 쉽게 빠져드는 (미숙한) 여성’이다. 그 단어 속에는 여성이 남성보다 지적으로 열등하다는 편견과 차별이 반영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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