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에 읽다 만 ‘셜록 홈스(Sherlock Holmes) 시리즈’를 다시 읽고 있다. 과장을 조금 보태서 셜록 홈스 시리즈 읽기는 여러 명의 번역가에게 결투를 신청하는 ‘전투적인 독서’였다. 내가 결투에 사용한 무기는 번역기와 영어사전이 전부다. 하지만 번역가들은 내 결투에 응하지 않았다. 하긴 이런 조용한 블로그에 전문적으로 글 쓰면서 먹고 사는 사람들이 자주 접속할 일은 없다. 언젠가 우연히 검색하다 내 글을 보고 딴죽을 걸겠지.

 

이번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읽으려고 했는데, 그러지는 못할 것 같다. 책이 내 심기를 건드린다. 문제의 번역본이 절판되었으면 그냥 넘어가려고 했다. 그러나 그 책은 지금도 판매되고 있다.

 

 

 

 

 

 

 

 

 

 

 

 

 

 

 

 

 

 

 

* 코난 도일, 정태원 옮김 《셜록 홈즈 전집 8: 셜록 홈즈의 마지막 인사》 (시간과공간사, 2002)

 

* 코난 도일, 정태원 옮김 《셜록 홈즈 전집 7: 셜록 홈즈의 마지막 인사》 (시간과공간사, 2013)

 

* 코난 도일, 레슬리 S. 클링거 엮음, 승영조 옮김 《주석 달린 셜록 홈즈 4》 (현대문학, 2013)

 

 

 

 

《셜록 홈스의 마지막 인사(His Last Bow)는 1917년에 발표된 단편집이다. 이 책이 나오기 전까지 코난 도일세 편의 단편집(《셜록 홈스의 모험》, 《셜록 홈스의 회상록》, 《셜록 홈스의 귀환》)을 썼다. 그는 홈스 시리즈를 더 이상 쓰고 싶지 않아서 홈스가 사망하는 이야기(『마지막 사건』, 《셜록 홈스의 회상록》에 수록)를 끝으로 홈스 시리즈를 마무리하려고 했다. 홈스 시리즈 마지막 단편소설이 발표되자 엄청난 파문이 일어났다. 영국과 미국의 홈스 팬들(홈 동생들)은 ‘우리 홈(스)을 살려내라’면서 항의하는 내용의 편지를 도일에게 보낸 것이다. 홈 동생들의 성화에 못 이긴 도일은 장편 소설 《바스커빌 가의 개(The Hound of the Baskervilles)을 발표했지만, 이 작품은 『마지막 사건』이 일어나기 전인 홈스의 모습을 그리고 있었다. 홈 동생들은 ‘우리 홈의 생전 모습’이 아닌 ‘(죽지 않고) 살아있는 우리 홈의 모습’을 보고 싶어 했다.

 

결국 도일은 홈스 시리즈를 다시 쓰기로 했고, 1905년에 홈스가 부활하는 단편이 실린 《셜록 홈스의 귀환》을 발표했다. 홈 동생들은 살아 돌아온 홈스를 격하게 환영했지만, 정작 도일은 울며 겨자 먹는 심정으로 홈스 이야기를 써 내려갔다. 그래서인지 《셜록 홈스의 마지막 인사》는 전작에 비하면 작품의 질이 좋지 못하다. 전작에서 이미 썼던 서사 전개와 약간 유사한 작품(『붉은 원』, 『프랜시스 카팩스 여사의 실종』)이 있으며 작품 곳곳에 ‘설정 오류’로 보이는 내용도 있다. 그리고 전작과 달리 홈스가 크고 작은 실수를 저지르는데, 용의자의 정체를 정확하게 예측하지 못하거나(『브루스 파팅턴 호 설계도』) 자신이 맡은 사건의 유력한 범인을 놓치기도 한다(『프랜시스 카팩스 여사의 실종』).

 

내가 읽은 《셜록 홈스의 마지막 인사》 번역본은 故 정태원 씨가 번역한 것이다. 2002년에 나온 이 번역본은 지금도 판매되고 있는데, 이상한 점은 ‘개정판’과 같이 나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개정판이 나왔으면 당연히 구판은 절판되어야 한다. 2002년 초판 번역본은 ‘구판’이다. 구판은 양장본이고, 개정판은 반양장본인데 가격은 같다. 그렇다면 이 두 권의 번역본 중 무엇을 골라야 할까? 그런데 굳이 두 권 중에 무조건 골라야 하나? 나 같으면 두 권 모두 고르지 않겠다. ‘완역본’이라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 코난 도일, 바른번역 옮김 《그의 마지막 인사》 (코너스톤, 2016)

 

 

 

구판에 왓슨(John H. Watson) 박사의 서문이 누락되어 있다. 왓슨 박사는 ‘홈스의 (약간 머리가 둔한) 조수’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홈스가 해결한 사건들(해결하지 못한 사건들도 포함된다)을 면밀하게 지켜보고 기록하는 작가이기도 하다. 당연히 왓슨 박사의 서문을 실제로 쓴 사람은 도일이다. 개정판에도 왓슨 박사의 서문이 없다. ‘서문이 없는 완역본’은 완역본이라 할 수 없다. 다른 번역본을 살펴보니 추리소설 전문가 박광규 씨가 감수한 ‘코너스톤’ 판본에도 서문이 수록되어 있지 않은 것을 확인했다.

 

오역으로 보이는 문장이 있다. 다음 문장은 『위스테리아 로지(Wisteria Lodge, ‘등나무 별장’이라는 제목으로도 알려져 있다)에서 홈스가 자신의 수사에 만족감을 드러내면서 하는 말이다.

 

 

 전보를 읽고 수첩에 넣어 두려던 홈즈는 내가 궁금해 하는 모습을 보고는 웃으면서 전보를 건네주었다.

“일이 아주 재미있게 되어 가는군.” 홈즈가 말했다.

 

(정태원 옮김, 구판 30쪽)

 

 Holmes read it and was about to place it in his notebook when he caught a glimpse of my expectant face. He tossed it across with a laugh.

“We are moving in exalted circles,” said he.

 

 

‘exalted’는 ‘상류층’ 또는 ‘너무나 기쁜(행복한)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진 단어다. 아마도 정태원 씨는 후자의 의미에 맞춰서 문장을 번역한 것으로 보인다. 홈스는 기이한 사건을 수사하고 해결하는 것을 즐기는 괴팍한 인물이라서 사건을 수사하는 내내 기분이 들떠 있고 즐거워한다. 그렇지만 “We are moving in exalted circles”는 홈스 본인의 시점에서 말하고 있는 문장이 아니다. 이 문장의 주어 ‘We’는 홈스와 왓슨을 의미한다. ‘exalted circles’는 서로 비슷한 이해관계나 직업, 계층 등을 이유로 모인 사람들의 공동체를 뜻한다. 그러므로 “우린 상류사회를 파고들 거야”(승영조 옮김, 주석판 33쪽)라는 식으로 번역하는 것이 적합하다.

 

 

 

 

 

 

 

 

 

 

 

 

 

 

 

 

 

* 박상우 《박상우의 포톨로지》 (문학동네, 2019)

* 토드 로즈 《평균의 종말》 (20세기북스, 2018)

* [절판] 콜린 비번 《지문》 (황금가지, 2006)

 

 

 

『붉은 원』의 역주(구판 108쪽)지문 식별 시스템의 기초를 처음으로 만든 사람인 ‘프랜시스 갤턴’이 언급되어 있다. 외래어 표기법에 맞게 쓴다면 ‘프랜시스 골턴(Francis Galton)이다. 골턴은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의 외사촌 형이며, 그는 인종 분류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그가 시작한 연구는 특정 인종을 촬영한 합성사진으로 지구에서 우수한 인종, 즉 ‘평균인’에 부합하는 인종을 측정하는 것이었다. 골턴은 범죄자의 얼굴이 따로 존재한다고 믿고 범죄자의 특징을 알아내기 위해 합성사진을 이용해 인체를 측정했다. 우월한 인종과 열등한 인종이 따로 있다는 그의 생각은 ‘우생학(eugenics)이라는 학문이 발전하게 만든 씨앗이 되었다. 골턴이우생학의 아버지’라는 부정적인 평가가 너무 많이 알려진 탓에 대부분 사람은 그가 지문 식별 시스템을 고안했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 범죄학의 역사를 논할 때 반드시 언급되는 인물이 골턴이다.

 

골턴과 그 밖의 여러 인물들이 지문 식별 시스템을 고안하게 된 배경을 알 수 있는 책으로는 절판된 《지문》(황금가지)이 있다. 범죄 수사의 기초 증거로 사용되는 지문의 역사를 정리한 책이다. 《평균의 종말》(20세기북스)《박상우의 포톨로지》(문학동네)는 과학(전자의 책은 통계학, 후자의 책은 사진술)이 인종 차별 담론을 형성하는 데 어떻게 개입하게 되는지 보여준다. 사이비 이론이 학문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의 중심에 골턴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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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중고서점 동대구역점 오픈

 

 

 

지난달에 알라딘 중고서점 동대구역점이 문을 열었습니다. 대구 동성로점, 대구 상인점에 이어 대구에서 세 번째로 들어선 알라딘 중고서점입니다. 대구에 있는 중고서점은 총 네 곳입니다. 나머지 한 곳은 ‘Yes24 반월당점’입니다. 대구도 알라딘 중고서점과 Yes24 중고서점이 있는 지역이 되었네요. 중고서점 개장 소식을 접하면 양가적인 감정이 듭니다. 솔직히 말해서 제가 사는 지역에 중고서점이 하나 더 생겨서 기분이 좋습니다. 지갑의 두께가 얇아지더라도 제가 원하는 책이 서점에 있으면 무조건 가서 살 의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중고서점이 늘어나면 헌책방과 동네 책방의 입지가 줄어들 수 있습니다. 헌책방을 찾는 단골손님 대부분은 연세가 많은 분입니다. 그분들의 건강이 점점 좋지 않게 되면 외출을 하지 못할 것이고, 헌책방에 가는 일도 줄어들겠죠. 그리고 헌책방을 오래 운영하신 분들도 나이를 먹을수록 세월의 힘을 이겨내지 못합니다. 제가 자주 가는 헌책방 중에 두 곳은 문을 닫았어요. 손님이 너무 없다 보니 주말에 문을 열지 않는 헌책방도 있어요.

 

동대구역점 후기를 쓸려고 했는데, 헌책방이 사라지는 작금의 현실에 대해 넋두리를 늘어놓으면서 시작했네요. 각설하고 동대구역점을 소개해보겠습니다. 제가 동성로점 후기 이벤트에 참여해서 ‘우수 후기’에 당첨되었고요, 상인점 후기 이벤트에서는 ‘최우수 후기’에 당첨되었어요. 당연히 이 후기를 쓴 목표는 2회 연속 ‘최우수 후기’로 당첨되는 것입니다. 최우수 후기로 당첨될 수 있는 참신한 글을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을 해봤는데요, 남들이 쓰지 않는 방식으로 후기를 써봤습니다. 그리고 중고서점을 자주 애용했던 사람으로서 이번에 새로 생긴 동대구역점에 대해서 소신을 밝혔습니다.

 

 

 

 

 

 

 

서점 내부 모습을 담은 사진을 많이 찍지 않았어요. 지난주 토요일에 동대구역점에 갔는데요, 역시 휴일이라서 그런지 서점에 온 손님들이 꽤 많았어요. 그래서 사진을 마음대로 찍을 수가 없었어요. 손님들의 얼굴이 드러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사진을 찍었어요.

 

새로 들어선 지 얼마 안 된 서점이라서 그런지 내부 공간은 비교적 넓은 편이었어요. 하지만 알라딘 굿즈 진열대가 하나둘씩 늘어나면 점점 공간이 좁아지겠죠?

 

 

 

 

 

 

G(소설, 에세이, 여행) 책장에서 찍은 내부 모습입니다. 벽 쪽에 있는 D 책장음반, 만화, 라이트노벨 등이 비치되어 있습니다.

 

 

 

 

 

 

 

기다란 통로를 따라 끝까지 가면 외국도서로 채워진 D 책장을 볼 수 있습니다.

 

 

 

 

 

 

 

사고 싶은 책을 담을 수 있는 스테인리스강 바구니는 검색용 컴퓨터 책상 밑에 있어요. 동성로점과 상인점에 많이 가본 저는 바구니가 출입구 주변에 있을 거로 생각했어요. 그래서 동대구역점에 들어오면서 한동안 바구니를 찾아 헤맸답니다. 동대구역점에 처음 오신 분은 바구니의 위치를 기억해두세요.

 

 

 

 

 

 

 

 

 

 

책을 읽을 수 있는 책상과 의자는 성인용, 아동용으로 나누어져 있어요. 성인용 책상과 의자는 다른 서점(동성로점, 상인점)에 있는 것과 거의 비슷해요. 책상 위에 휴대폰, 노트북 충전기, USB 등을 꽂을 수 있는 콘센트가 있습니다. 아동용 책상은 의자에 앉은 아이들의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서 비스듬한 형태로 되어 있어요. 그리고 아이들이 마음껏 그림을 그릴 수 있게 책상 위에 스케치북과 물감을 놓여 있네요. 책을 덜 좋아하는 아이들이라면 이 자리를 좋아하겠어요. 물론 성인용 책상에도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자리가 있어요.

 

 

 

 

 

 

 

B 책장(청소년, 부모, 어린이)과 C 책장(유아) 주변 공간이 다른 책장이 있는 공간과 비교하면 넓어요. 서점에는 적어도 손님들이 자유롭게 지나갈 수 있는 쾌적한 공간이 있어야 해요. 그런데 이런 공간을 가만히 놔둘 알라딘이 아니죠. 손님들 지나가는 공간 한가운데에 알라딘 굿즈 진열대를 놓던데요, 저는 진열대를 자꾸만 들여놓으려는 알라딘의 공간 배치 방식이 손님 친화적인 공간과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해요. 손님들의 눈길을 끌도록 상품을 진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손님들의 쾌적한 보행이 가능하도록 공간을 조성하고 잘 유지해주었으면 합니다.

 

 

 

 

 

 

 

A 책장이 있는 곳에 가면, ‘알라디너의 선택’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책장을 만날 수 있습니다. 말 그대로 알라디너들로부터 높은 평점이 받은 책들이 꽂혀 있어요. 막연하게 책장에 ‘알라디너의 선택’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책을 진열하기보다는 ‘특정 알라디너의 닉네임’을 언급하면서 그분들이 직접 추천한 책들 위주로 책장을 마련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를 들면 ‘로쟈의 선택’, ‘다락방의 선택’, ‘syo의 선택’, 이런 식으로 말이죠. 조유식 대표이사님!(이 글을 보진 않겠지만‥…) 알라디너가 ‘온라인 알라딘’과 ‘알라딘 서점’을 지금까지 유지하게 만든 열혈 구매층이고 팬덤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역시 새로 생긴 서점이라서 그런지 제가 사고 싶은 책들이 많았어요. 하지만 제가 요즘 책 소비를 자제하고 있는 중이라서 지름신을 막느라 참고 또 참았습니다. 책장 하나하나 둘러보다가 ‘절대로 사면 안 되는 책’도 만납니다.

 

 

 

 

 

 

 

 

G37 책장 제일 아래쪽에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 소설 전집《우울과 몽상》이 꽂혀 있네요. 가격은 12,000원입니다. 정가(28,000원)의 반값에 2,000원 할인된 가격입니다. 책 상태는 좋아요. 그러나 안사는 게 좋아요. 번역이 정말 구리거든요.

 

 

 

 

 

 

 

G37 책장 제일 아래쪽에 절판된 《주석이 달린 앨리스》가 있어요. 책 겉모습만 보면 소장하고 싶은 욕구가 생기죠. 하지만 이 책의 번역도 그다지 좋지 않아요. ‘빛 좋은 개살구’ 같은 책입니다.

 

서점 후기에 ‘절대로 사면 안 되는 책’을 언급하니까 마치 제가 알라딘 영업을 방해하는 손님 같네요. 그런데 저는 예전부터 이런 후기를 한 번쯤 써보고 싶어요. 저의 오랜 소원을 이루게 해준 알라딘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동대구역 안 생겼으면 이런 솔직한 후기를 못 썼을 거예요.

 

 

 

 

 

 

 

 

 

 

개점한 지 얼마 안 된 서점인데 책을 안사고 그냥 갈 수 없었어요. 언젠가는 읽게 될 책들을 골랐어요. 이 책을 사게 된 이유는 다음 글에서 밝히겠습니다.

 

 

 

 

 

아! 깜빡 잊을 뻔했네. ‘알라딘 중고서점 검색기’ 어플에 ‘동대구역점’을 추가해주세요. 서점이 문을 연지 한 달이나 지났는데 왜 어플 업데이트를 안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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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9-07-30 1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알라딘 서점 거의 안 가는데, 그 이유가 말이 중고서적이지 그냥 현재 유통되는 책이 대부분이에요. 사실, 헌책방 단골들이 헌책방 가는 이유는 절판된 책들을 구입하기 위해서 아닙니까. 그런 책은 거의 없고, 덤핑으로 창고에 박힌 책들만 쌓아놓고 파니....

cyrus 2019-07-31 17:25   좋아요 0 | URL
헌책방과 알라딘 중고서점에 각각 장단점이 있어요. 헌책방이 80년대부터 90년대 중반까지의 절판본이 있는 곳이라면, 알라딘 중고서점은 90년대 중반 이후의 절판본이 있는 곳이에요. 곰발님이 말씀하신 대로 알라딘 중고서점에 있는 책들 대부분은 팔리지 못해 출판사 창고에 있던 것들이죠.

레삭매냐 2019-07-30 1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문 후기가 깔금하네요.

날카로운 지적에 앞으로 나아갈 방향
까지~ 모름지기 이런 후기를 써야 하는
데 너무 천편일률적인 후기로 도전했
다가 물 먹었나 봅니다 ㅋㅋㅋ

하나의 트렌드로 보이는데 일단 새로운
곳 매장이 오픈하면 집중적으로 갠춘한
책들을 몰아 주지 않나 싶네요 :>

사지 말아야 할 책에 대한 정보도 인상
적이었습니다 쵝오.

cyrus 2019-07-31 17:29   좋아요 0 | URL
저는 후기든 리뷰든 눈으로 보거나 직접 만진 것들에 대해 장점과 단점을 솔직하게 쓰는 편입니다. 대부분 리뷰나 후기는 장점만 언급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어요.

저도 대구 알라딘 서점 세 곳을 가보면서 느낀 건데, 개장 초기에 제가 읽을 만한 책을 많이 샀던 것 같습니다. ^^

stella.K 2019-07-30 14: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구누구의 선택 같은 디테일한 건 필요한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중고샵을 찾을 정도라면 책에 대한 애정, 정보 등은 이미 장착하고 있고
그렇게까지 특화할 필요는 없어 보이거든.
하지만 너처럼 번역이 구린 걸 색출해 내는 알라디너의 특별한 시선을
필요하다고 본다. 이런 정보는 정말 필요하거든.
난 중고샵 안 나간지가 꽤 된다.
몸이 안 좋아서 아끼고 있는 중이거든. 보니까 나가고 싶네.ㅠ

헌책방이 점점 설 자리가 없는 건 정말 안타까워.ㅠ

cyrus 2019-07-31 17:33   좋아요 0 | URL
예전부터 중고서점에 있는 책들을 리뷰해볼까 생각해본 적이 있어요. 중고서점에 가보면 ‘정말 내용은 좋은데 팔리지 못한 책’과 ‘내용이 별로라서 사기 아까운 책’을 보게 돼요. 저는 후자의 책에 대한 리뷰를 쓰고 싶었어요. ^^

박균호 2019-07-30 14: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석달린 앨리스가 번역이 구렸군요. 장정이나 디자인은 정말 좋은 책인데...

cyrus 2019-07-31 17:34   좋아요 0 | URL
맞아요. 구성은 정말 좋은데, 번역이 ‘옥에 티’입니다. ^^;;

나와같다면 2019-07-30 1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구에 yes24 중고서점 생긴다는 기사 보고 cyrus님 생각났어요.

동네 헌 책방보면 마음이 짠하지요. 저도 그래요..

cyrus 2019-07-31 17:38   좋아요 0 | URL
만약에 헌책방이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면 90년대 이전에 나온 책들을 접하기 어려워질 거예요. 헌책방이 문 닫아버리면 거기에 있던 책들은 다른 헌책방에 이전하게 되거나 아니면 폐지로 분류되어 처분됩니다.

카스피 2019-07-30 1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헌책방을 찾아 대구를 간 기억이 나는데 서울과 마찬가지로 대구역시 기존의 헌책방들이 이런 저런 이유로 문을 닫게 되어 참 안타깝네요.

cyrus 2019-07-31 17:44   좋아요 0 | URL
주말에 자주 헌책방에 가는데, 문이 닫힌 헌책방의 모습만 보면 가슴이 철렁합니다. ^^;;

syo 2019-07-31 2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 다락방님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인간 취급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출연료는 칼국수로 드리겠습니다.

????

cyrus 2019-08-01 09:13   좋아요 0 | URL
서문시장에 파는 칼국수를 먹고 싶습니다! ^^

syo 2019-08-01 11:15   좋아요 0 | URL
그럴까요 그럼? 저는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는데 잘 되었네요.
 

 

 

1977년 학술대회에 참석한 미국의 시인 오드르 로드(Audre Lorde)는 청중들 앞에 자신이 유방암 진단을 받을 수 있다고 고백한다. 그녀의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이듬해 그녀는 한쪽 가슴을 절제하는 수술을 받았으나 암세포는 이미 다른 장기에 퍼진 상태였다. 1982년에 로드는 간암 진단을 받았지만, 1992년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글쓰기와 사회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 오드르 로드 《The Cancer Journals》 (Aunt Lute Books, 2016)

 

 

 

1980년에 발표된 《The Cancer Journals》(암 일지)는 로드가 유방암 투병 생활을 하면서 쓴 책이다. <암 일지>는 유방암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제고하게 만든 책으로 알려졌지만, 질병을 개인적 문제로 여기는 인식을 비판적으로 고찰한 ‘페미니즘 고전’이다.

 

‘페미니즘 스쿨’ 교육 일정이 최종적으로 확정되기 전에는 로드의 <암 일지>에 대한 강연을 진행할 계획이 있었다. 전혜은 선생님이 ‘암 일지’에 대한 강연을 해야 한다고 레드스타킹에게 먼저 제안을 했다. 그분은 <암 일지>를 ‘교차성을 사유하는 데 있어서, 아픈 사람의 위치에서 어떤 중요한 통찰과 정치를 발굴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지 놀랍도록 멋지게 보여주는 페미니즘 고전’이라고 소개했다. 필자는 이 책의 내용이 너무 궁금해서 <암 일지> 강연을 교육 일정에 포함하는 것에 찬성했다. 나 말고도 <암 일지>에 호기심을 느낀 레드스타킹 멤버들이 많았다. 그러나 공부해야 할 주제가 너무 많은 데다가 <암 일지> 강연을 하기에 시간상 어려울 것 같아서 결정을 유보했다. 하지만 교육 일정이 진행되는 상황이나 분위기에 따라 <암 일지> 강연을 하는 것으로 변경될 수 있다.

 

 

 

 

 

 

 

 

 

 

 

 

 

 

 

 

 

 

* 말린 쉬위 《일기 여행》 (산지니, 2019)

 

 

 

최근에 일기 쓰기가 여성에게 주는 긍정적 효과를 설파한 《일기 여행》(산지니)을 읽다가 로드의 <암 일지>를 언급한 내용을 보게 됐다. 어찌나 반갑던지. <암 일지>에서 인용한 문장도 있다. 《일기 여행》의 저자는 로드가 유방암 투병 중에 일기를 쓰는 행위를 ‘카타르시스(catharsis)에 가까운 글쓰기’로 본다. 로드가 암을 받아들이면서 투병 경험을 공개하는 글쓰기는 안정과 치유 효과를 불러일으키는 ‘카타르시스’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카타르시스는 “예술로 감정을 순화하거나 정화하는 것”이었다. 정신분석적으로 카타르시스는 “과거의 사건들, 특히 억제된 것을 정서적으로 해소하여 장애의 원인과 정직하게 마주함으로써 긴장과 불안을 해소하는 것”을 지칭한다.

 

  가끔 카타르시스적 글쓰기를 통하여 치유된 상처들은 편견과 차별에서 나온 것이다. 일기에서 글쓰기는 역시 카타르시스적인데, 그것은 내가 견디면서, 삶에 존재하는 많은 상처를 치유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오더 로드(Audre Lorde)는 “흑인 여성 동성애자 투사 시인”으로 자신의 유방암 경험을 일기로 쓰면서, 자신의 말이 “자기 치유의 가능성과 모든 여성을 위한 생활의 풍요로움을 강조하는 것”이기를 원했다. 그 일기는 로드의 분노와 절망, 그리고 자신의 질병은 “침묵을 언어와 행동으로 전환하는” 힘으로 만드는 결심을 증언한다. 1979년 11월 19일에 그녀는 적었다. “분노를 쓰고 싶지만 결국 남는 것은 슬픔이다…. 죽음을 삶으로, 죽음을 무시하지 않으면서 그것에 굴복하지 않는 어떤 길을 찾아야 한다.”

 

 로드는 회고한다. 『암 일기(The Cancer Journals)』의 출판 준비는 “그 시점의 나와 그 시간을 지나면서 변화하는 나 자신을 정돈하고, 추후의 검토뿐만 아니라 해소를 위해서, 가공의 나를 내려놓기 위한” 글쓰기 과정이었다. 이것 또한 카타르시스다.

 

 

(《일기 여행》 169, 171~172쪽, cyrus가 임의로 발췌 편집했으며 밑줄 친 문장은 cyrus가 내용을 강조하기 위해 표시한 것임)

 

 

 

<암 일지>의 서문 일부도 인용되어 있다. 《일기 여행》의 저자도 <암 일지>를 극찬한다.

 

 

 암에 대한 나의 분노와 고통과 공포가 여전히 다른 침묵 속으로 화석화하거나, 공공연히 인정되고 검진된, 이 경험의 중심부에 놓인 어떤 정신력도 나에게서 강탈하기를 원치 않는다. 삶의 어떤 영역에서건 강요된 침묵은 분리와 탈권력을 위한 도구라는 것을 인식하고, 모든 연령, 피부색, 성적 정체성에서 다른 여성과 나 자신을 위하여, 내 감정과 생각들을 표명하려고 노력했다…. 이것은 모든 여성들에게 자연 치유의 가능성과 삶의 풍요를 강조하는 표현이 되기 바란다. (<암 일지>의 서문 중에서)

 

 유방암이 자신의 개인적 삶에 미치는 영향의 양상에 대한 혹독한 서술로, 오더 로드는 우리 자신의 높은 위치를 다시 생각하게 유인한다. 이 일기는 모든 여성들에게 정말 좋은 선물이다.

 

 

(380쪽, 밑줄 친 문장은 cyrus가 내용을 강조하기 위해 표시한 것임)

 

 

 

이 ‘좋은 선물’ 안에 무엇이 있을까? 로드가 세상의 모든 여성을 위해 남긴 ‘선물’을 확인해볼 수 있는 날이 확정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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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9-07-12 12: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일기를 쓰고 나면 머릿속이 정돈되고 근심이 줄어드는 효과를 봅니다. 누구에게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저 자신을 위해서 일기를 쓰는 거라고 말할 수 있어요. 글쓰기의 놀라운 효과를 잘 압니다.

cyrus 2019-07-12 15:29   좋아요 0 | URL
맞아요. 지금 글쓰기의 긍정적 효과를 제대로 누리고 있는 분이 페크님이시죠. ^^
 

 

 

조지 오웰(George Orwell)의 에세이 선집 《모든 예술은 프로파간다다》(이론과 실천)《코끼리를 쏘다》(실천문학사)를 동시에 읽었다. 두 권의 책에 수록된 에세이 몇 편이 있는데, 그중 한 편이 『Good Bad Book』이다. 이틀 전에 『Good Bad Book』이 어떤 내용인지 설명했으므로 여기서는 생략하겠다.

 

 

 

 

 

 

 

 

 

 

 

 

 

 

 

 

 

 

 

 

* [품절] 조지 오웰, 박경서 옮김 《코끼리를 쏘다》(실천문학사, 2003)

* 조지 오웰, 하윤숙 옮김 《모든 예술은 프로파간다다》(이론과 실천, 2003)

 

 

 

 

오늘도 내가 『Good Bad Book』을 언급한 이유는 《코끼리를 쏘다》에 발견된 오역(원문에 있는 문장이 빠져 있다)과 오류를 지적하기 위한 것이다. 《모든 예술은 프로파간다다》에 설명이 미흡한 역주가 있던데 일단 이것부터 먼저 언급하겠다.

 

《모든 예술은 프로파간다다》 237쪽에 볼테르(Voltaire)의 시 『오를레앙의 성처녀(La Pucelle d’Orléans)에 관한 역주가 있다. 역주에 볼테르의 작품이 ‘1899년’에 발표되었다는 내용이 있다. 1694년에 태어나 1778년에 세상을 떠난 볼테르가 1899년에 살아 있을 리가 없는데 어떻게 『오를레앙의 성처녀』는 한 세기가 지난 뒤에서야 발표되었을까?

 

‘오를레앙의 성처녀’는 프랑스 백년전쟁의 영웅 잔 다르크(Jeanne d’Arc)의 별명이다. 당연히 볼테르의 『오를레앙의 성처녀』는 잔 다르크의 삶을 모티브로 한 작품이고, 볼테르는 이 시를 1730년부터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오를레앙의 성처녀』는 미완성으로 남게 되었다. 한동안 잊힌 작품은 영국의 작가인 윌리엄 헨리 아일랜드(William Henry Ireland, 1775~1835)가 영어로 번역되면서 다시 알려지게 되었고, 정식으로 출판된 것은 1899년이다.

 

 

 

 

 

 

 

 

 

 

 

 

 

 

 

 

 

 

* 로버트 단턴 《책과 혁명》(알마, 2014)

* 주명철 《계몽과 쾌락》(소나무, 2014)

 

 

 

볼테르의 『오를레앙의 성처녀』는 ‘시’라고 말하기 민망한 ‘포르노그래피’. 제목만 보면 볼테르가 프랑스의 영웅을 찬양하는 시를 섰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내용을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볼테르가 잔 다르크를 음란한 여성으로 묘사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오를레앙의 성처녀』는 외설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는 이유로 금서로 취급받았지만, 자극적인 소재를 좋아하는 독자들 사이에 은밀하게 유통되면서 널리 읽히게 되었다.

 

프랑스혁명이 일어나기 전 18세기 프랑스의 독서 문화와 금서에 대한 대중들의 반응을 분석한 《책과 혁명》(알마)을 쓴 역사학자 로버트 단턴(Robert Darnton)은 1769년부터 1789년까지 불법 유통된 720종의 금서가 적힌 목록을 조사했는데, 그 목록에 『오를레앙의 성처녀』가 포함되어 있었다. 단턴은 『오를레앙의 성처녀』와 같은 특정 인물을 비방하기 위해 만든 포르노그래피가 프랑스 혁명을 일으키게 한 부싯돌 역할을 했다고 주장한다. 포르노그래피 형태로 만들어진 책들 대부분은 군주와 기득권층을 풍자한 내용을 담고 있었고, 정부는 이 포르노그래피 유통을 막기 위해 금서를 지정했다. 그러나 금서는 발 빠르게 유통되었고, 이로 인해 금서를 접한 대중들의 마음에 불합리한 사회 구조에 대한 저항심이 생겨났다. 그래서 단턴은 음란물로 규정된 프랑스의 금서들이 군주와 귀족 중심의 구체제(ancien régime)에 어떻게 균열을 냈는지 《책과 혁명》에서 설명하고 있다.

 

자, 다시 역주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가자. 그래서 정리하자면, 『오를레앙의 성처녀』를 '1899년에 발표된 작품'이라고 대충 설명해서는 안 된다. 역주에 ‘볼테르가 1730년에 쓴 미완성 작품’이라는 사실을 덧붙여야 한다.

 

 

이제 《코끼리를 쏘다》에 발견된 오역에 대해서 설명하겠다. 다음에 나오는 인용문 두 개는 《코끼리를 쏘다》와 《모든 예술은 프로파간다다》에서 발췌한 『Good Bad Book』 번역문이다.

 

 

 

* 원문

A cut above most of these was Barry Pain. Some of Pain’s humorous writings are, I suppose, still in print, but to anyone who comes across it I recommend what must now be a very rare book — The octave of Claudius, a brilliant exercise in the macabre. Somewhat later in time there was Peter Blundell, who wrote in the W. W. Jacobs vein about Far Eastern seaport towns, and who seems to be rather unaccountably forgotten, in spite of having been praised in print by H. G. Wells.

 

 

* 좋으면서 나쁜 책, 《코끼리를 쏘다》, 118쪽, 박경서 옮김.

 

 이들보다 더 우수한 작가로서 베리 페인(Barry Pain)도 있다. 그의 유머스러운 작품들은 지금도 여전히 출판되고 있지만, 그의 책을 접하는 사람에게 오늘날 구하기가 힘든 작품인 『클로디어스의 8일(The octave of Claudius)』을 권하고 싶다. 그리고 그 후의 작가로는 극동지방의 항구도시에 대한 이야기로 출판 당시 웰스(H. G. Wells)의 찬사를 받았지만 이상하게 요즈음은 세인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피터 블룬델(Peter Blundell)이 있다.

 

* 좋은 대중소설, 《모든 예술은 프로파간다다》, 316쪽, 하윤숙 옮김.

 

 이보다 상급에 속하는 작가로는 베리 페인(Barry Pain)이 있는데, 그의 작품 중에는 여전히 판매되는 것들도 있다. 하지만 혹시 읽을 사람이 있다면 지금은 필시 구하기 힘들 『클라우디우스의 8일(The octave of Claudius)』을 추천한다. 이 작품은 섬뜩한 분위기를 띤 탁월한 작품이다. 다음 시기로 내려오면 피터 블런델(Peter Blundell)이 있다. 그는 극동의 항구도시를 배경으로 W. W. 제이콥(W. W. Jacobs) 같은 성향의 작품을 썼는데 H. G. 웰스가 지면상에서 높은 평가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영문을 알 수 없는 이유로 사람들의 머릿속에 잊힌 것 같다.

 

 

 

박경서 씨의 번역문에는 원문에 있는 문장(필자가 밑줄 친 문장) 두 개가 빠져 있다. 박경서 씨는 조지 오웰의 작품을 주로 번역했고, 오웰을 전문적으로 연구한 분인데 원문을 누락한 번역을 했다는 점이 아쉽다. W. W. 제이콥은 ‘제이콥스’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진 영국의 작가다. 그의 대표작은 『원숭이 손』으로, 역대 최고의 공포 단편 소설을 언급할 때 가장 많이 추천받는 작품이다. 필자는 3년 전에 W. W. 제이콥스를 소개한 글을 쓴 적이 있다. 작가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은 분은 내가 쓴 졸문을 참고하길 바란다.[주]

 

 

 

* 원문

 

Enough talent to set up dozens of ordinary writers has been poured into Wyndham Lewis’s so-called novels, such as Tarr or Snooty baronet. Yet it would be a very heavy labour to read one of these books right through.

 

 

* 좋으면서 나쁜 책, 《코끼리를 쏘다》, 121쪽, 박경서 옮김.

 

타르 혹은 속물의 귀족(Tarr or Snooty baronet)과 같은 윈담 루이스(Wyndham Lewis)의 소설을 보면 수십 명의 평범한 작가를 만들 수 있을 만큼의 충분한 재능이 발견된다. 그러나 이런 소설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읽기란 무척 어렵다.

 

* 좋은 대중소설, 《모든 예술은 프로파간다다》, 320쪽, 하윤숙 옮김.

 

 윈덤 루이스가 쓴 『타르』나 『오만한 준남작(Snooty baronet)에는 평범한 작가 12명을 탄생시킬 만한 재능이 들어있지만 이 책을 끝까지 읽는 일은 매우 힘든 중노동이다.

 

 

 

윈덤 루이스(Wyndham Lewis, 1882~1957)는 영국에서 활동한 작가이자 화가이다. 그의 대표작은 1918년에 발표된 장편소설 『타르(Tarr)다. 『오만한 준남작(속물의 귀족, Snooty Baronet)』은 1932년에 나온 소설이다. 그러므로 『오만한 준남작』은 『타르』와 별개의 작품이다.

 

 

 

 

[주] [윌리엄 위마크 제이콥스 <원숭이 손>] (2016년 5월 17일 작성)

https://blog.aladin.co.kr/haesung/8499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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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제롬 데이비드 샐린저(Jerome David Salinger)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호밀밭의 파수꾼》 특별판을 선보였다. 그런데 ‘특별판’인데 특별한 것은 없다. 북 커버 디자인은 1951년에 출간된 초판본 표지이다.

 

 

 

 

 

 

 

 

 

 

 

 

 

 

 

 

 

 

 

 

 

 

 

사실 내용도 특별한 것이 없다. 왜냐하면 민음사는 오역이 많은 예전의 번역본(민음사 세계문학전집 No. 47)을 ‘특별판’이라고 홍보하면서 팔고 있기 때문이다.

 

민음사 세계 문학 전집 뒷날개에 ‘새 문학전집을 펴내면서’라는 제목의 글이 있다. 그 글에 이런 문장이 있다.

 

 

세대마다 문학의 고전은 새로 번역되어야 한다. 엊그제의 괴테 번역이나 도스토예프스키 번역은 오늘의 감수성을 전율시키지도 감동시키지도 못한다.

 

 

민음사는 문학 전집을 펴내면서 번역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런데 지금의 민음사는 초심을 잃었다. 오역이 가득한 ‘엊그제의 《호밀밭의 파수꾼》’을 새로 번역해서 만들 생각은 하지 않고, 샐린저의 탄생을 기념한답시고 뻔뻔하게 특별판을 냈다. 오역 문장을 그대로 놔둔 특별판은 독자들을 감동시키지도 못한다. 오히려 독자들의 분노를 유발한다.

 

 

 

 

 

 

 

 

특별판의 번역을 직접 확인해보기 위해 대구 교보문고에 판매되고 있는 책을 참고했다. 《호밀밭의 파수꾼》(구판) 오역 문장을 기억하고 있어서 그 문장이 있는 쪽수를 확인했다. 역시 내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아주 사소한 오역도 고쳐지지 않았다.

 

 

 

 

 

* 원문

“We studied the Egyptians from November 4th to December 2nd,” he said. “You chose to write about them for the optional essay question. Would you care to hear what you had to say?”

 

* 구판 22쪽, 특별판 26쪽

「우린 11월 넷째 주부터 12월의 두번째 주까지 이집트인들에 대한 공부를 했었다. 자넨 선택 문제로 이집트인들에 대한 에세이를 쓰기로 했어. 자네가 뭐라고 썼는지 한번 들어보겠나?」

 

 

‘11월 4일부터 12월 2일까지’라고 써야 한다.

 

 

 

 

 

* 원문

My brother Allie had this left-handed fielder’s mitt. He was left-handed. The thing that was descriptive about it, though, was that he had poems written all over the fingers and the pocket and everywhere. In green ink. He wrote them on it so that he’d have something to read when he was in the field and nobody was up at bat.

 

 

* 구판 57쪽

동생인 엘리는 왼손잡이용 미트를 가지고 있었다. 그 애는 왼손잡이였기 때문이다. 얼마나 묘사적이었냐 하면, 그 애는 손가락 위도 좋고, 주머니도 좋고, 어디에나 시를 써놓았다. 초록색 잉크로 말이다. 그 애 말로는 수비에 들어갔을 때 타석에 선수가 나오지 않았을 때 같은 때 읽으면 좋다는 것이다.

 

 

* 특별판 70쪽

동생인 엘리는 왼손잡이용 미트를 가지고 있었다. 그 애는 왼손잡이였기 때문이다. 얼마나 묘사적이었냐 하면, 그 애는 손가락 위도 좋고, 주머니도 좋고, 어디에나 시를 써놓았다. 초록색 잉크로 말이다. 그 애 말로는 수비에 들어갔는데 타석에 선수가 나오지 않았을 때 같은 때 읽으면 좋다는 것이다.

 

 

 

→ 밑줄 친 문장은 문법이 맞지 않는 문장이다. 구판에 있었던 ‘수비에 들어갔을 때’라는 구절이 특별 판에서는 ‘수비에 들어갔는데’라고 고쳐졌다. 그래도 여전히 문장이 어색하다.

 

 

 

 

 

* 원문

Old Marty talked more than the other two. She kept saying these very corny, boring things, like calling the can the <little girls room>, and she thought Buddy Singers poor old beat-up clarinet player was really terrific when he stood up and took a couple of ice―cold hot licks. She called his clarinet a <licorice stick>.

 

 

* 구판 104쪽

마티는 다른 두 여자보다도 좀 말을 많이 했다. 그나마 그녀가 하는 말도 케케묵은 이야기에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화장실을 <어린 소녀들의 방>이라고 부르지 않나. 버디 싱어의 밴드에서 불쌍할 정도로 말라비틀어진 첼리스트가 보여준 정말 썰렁하기 짝이 없는 연주를 듣고는 멋있다고 하면서, 그 첼리스트를 <감초 줄기>라고 부르기도 했다.

 

 

 

* 특별판 129쪽

 

 

 

 

 

 

→ 사실 이 오역 문장 하나만 가지고 민음사의 특별 판 출간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따질 수 있다. 출판사는 클라리넷 연주자를 ‘첼리스트’라고 잘못 번역된 문장이 있다는 사실을 아직도 모르고 있는가? 알고 있으면서도 오역을 고치지 않은 건 독자들을 속이는 직무유기다.

 

 

 

 

 

* 원문

“You’re goddam right they don’t,” Horwitz said, and drove off like a bat out of hell. He was about the touchiest guy I ever met. Everything you said made him sore.

 

* 구판 115쪽, 특별판 143쪽

「그렇게 생각하면 됐어요」 호이트가 말했다. 그러고는 총알처럼 사라져버렸다. 그 사람은 이제까지 만났던 사람들 중 가장 화를 잘 내는 사람이었다. 내가 한 말은 전부 그 사람을 화나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 이 번역문을 다시 보면서 알게 됐는데, Horwitz’는 ‘호이트(Hoyt)’가 아니라 ‘호위츠’라고 써야 한다.

 

 

 

 

나는 《호밀밭의 파수꾼》 구판을 사서 읽은 독자이다. 오역을 고치지 않은 채 특별판을 낸 민음사의 행보가 매우 유감스럽다. 내가 보기에 민음사는 작가를 기념하기 위해서 특별판을 낸 게 아니라 ‘리커버판’ 열풍에 편승해서 책을 더 팔아보려는 심산으로 낸 것 같다.

 

민음사는 특별판 판매를 당장 중지하고, 독자들의 지갑을 털 생각을 하지 마시라. 특별판을 구입한 독자들에게 책값을 환불하라! 오역이 고쳐지지 않은 책은 ‘잘못된 책’이며 ‘파본’이다. 민음사는 출판사 이름에 걸맞게 좀 더 ‘백성의 소리(독자의 소리)’를 귀담아들어라. 세계 문학 전집 출간을 위한 새로운 번역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그 마음, 초심을 되새겨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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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3 17: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7-03 17:17   좋아요 1 | URL
세계문학전집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출판사가 민음사에요. 지난달 독서모임 선정 도서가 <동물농장>인데 그 날 참석한 분들 대다수는 민음사 번역본을 읽었어요. 민음사 <동물농장>도 나온 지 꽤 오래된 책인데다가 요즘 나오는 타 출판사 번역본과 비교하면 다시 다듬어야 할 문장들이 있어요. 고전 문학 작품을 읽으려면 ‘탈 민음사’ 인식을 가져야 합니다.. ㅎㅎㅎ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이 국내 최고 문학전집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시절은 지나갔습니다.

잠자냥 2019-07-03 1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리커버 판은 샐린저의 초판하고 표지가 같아서 혹했는데.... 그러면서도 번역은 좀 고쳤을까 하는 의문이 들어서 살까말까 망설이고 있었거든요... 에휴 그만 마음을 접어야겠습니다.

cyrus 2019-07-03 17:22   좋아요 0 | URL
초판본 표지 디자인의 양장본이라서 책의 겉모습은 정말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리고 특별판에는 구판에 없던, 단어의 의미를 설명한 역주가 달려 있어요. 그 외에는 보시다시피 크게 달라진 것 없어요. ^^;;

2019-07-03 17: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7-04 15:21   좋아요 1 | URL
박맹호 회장이 지금 살아계셨다면 이번 일을 용납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雨香 2019-07-03 18: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소설을 읽을 때 번역평을 살피곤 합니다만, 번역평이 없어서 많이 아쉽습니다. ‘최고의 고전번역을 찾아서‘‘영미명작, 좋은 번역을 찾아서‘를 읽어보는데 다루는 책이 많지 않고, 그리고 그 뒤로 번역된 책들에 대해서는 정보가 없어서 아쉽습니다.
예전에 관련 기사인지,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번역평도 상당한 예산을 필요로 하는 작업이라고 ㅠㅠ

조금 더 출판시장이 커지고, 번역본도 많아지고, 번역평도 활성화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을 믿고 읽으시는 분들이 많으시더라고요.

cyrus 2019-07-04 15:24   좋아요 1 | URL
번역 평이 서평보다 쓰기 까다롭다고 생각해요. 제대로 된 번역 평을 작성하려면 번역을 꼼꼼하게 살펴봐야 하고, 번역 평에 대한 예상 반론에 대응해야 하기 때문이죠. 그만큼 정신적 노동의 양이 많이 생겨요. 번역 평을 쓰려면 마음 먹었다면 욕먹을 각오를 해야 됩니다... ㅎ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9-07-03 18: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의 그지같은 번역은 이미 악명이 높죠... 하, 파리대왕 보고 정말 기절하느 줄 알았습니다. 1940년대 말투의 작렬이라니...... 번역의 질 문제는 정말 많은 이들이 지적했을 텐데, 어떻게 눈 깜짝도 안 하고 뻔뻔하게 특별판이라며 책을 내는지..... 판형도 그지 같아서 마음에 안듭니다..

cyrus 2019-07-04 15:27   좋아요 0 | URL
제가 가지고 있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책 중에 제본이 갈라지려고 하는 것이 있어요. 문학전집은 양장본으로 나오는 게 좋아요. ^^

레삭매냐 2019-07-03 21:1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제가 개인적으로 만난 최악의 번역은
오래 전 민음사에서 나온 <한 여름 밤의
꿈>으로 기억합니다.

다른 나라가 배경인데 박혁거세 운운은
도대체 어디에서 온 발번역인지 정말.

그나저나 표지갈이만 하고 번역에는 돈
을 들이지 않았다는 것 같이 들리네요.
언행불일치의 표본으로 보입니다.

cyrus 2019-07-04 15:28   좋아요 0 | URL
헐~ 저 그 책 읽었는데 ‘박혁거세‘가 나오는 대사가 있었군요. 처음 알았어요... ^^;;

Falstaff 2019-07-03 2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악명 높은 역자들이 너무 많은 책을 번역해서, 도무지 이이들을 피해갈 수 없다는 것이 진짜 비극입니다.

cyrus 2019-07-04 15:29   좋아요 0 | URL
네, 오역 문제로 제대로 한 번 찍힌 번역가를 알게 되면 그 번역가가 옮긴 다른 책들까지 번역이 잘 되었는지 안 되었는지 의심부터 하게 되더라고요.. ^^;;

2019-07-04 01: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7-04 15:30   좋아요 0 | URL
제가 영어 독해 능력이 부족합니다. 영어 공부를 안 한지 오래 됐거든요... ㅎㅎㅎ

transient-guest 2019-07-04 0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집단행동이 아니면 회사들은 정신을 못 차리는 것 같습니다. 포장만 다시 해서 ‘리커버리판‘으로 둔갑시키는군요.

cyrus 2019-07-04 15:31   좋아요 1 | URL
이 문제는 민음사만의 문제가 아닐 겁니다. 독자들이 잘 모르는, 리커버판 열풍에 가려진 그늘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비연 2019-07-04 0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번역자가 공경희... 꽤 유명하고 번역도 많이 한 분인데 왜 이런 초보적인 실수들을 했을까 잠시 의아하네요. 저도 이 표지 보고 사려고 보관함에 두었는데 님의 글 보고 당장 내렸습니다. 사실 민음사 세게문학전집 몇 권 보면서 번역에 불편한 경우가 꽤 있었는데 저만 그런 게 아니었다 싶어 이상한 안심이 되구요 =.=;;;

cyrus 2019-07-04 15:34   좋아요 0 | URL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이 나온 지 시간이 많이 흘렀고, 다른 출판사의 세계문학전집 번역과 비교하면 상당히 올드한 편이죠.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중에 개정판이 나온 적이 없는 걸로 알고 있어요. 90년대 후반에 나온 세계문학전집 중에 새로 번역해야 될 게 몇 권 있어요.

목나무 2019-07-04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적어도 특별판이라고 내놓을 거면 기존의 번역 오류는 제대로 확인하고 내놓아야 하는 게 출판인의 도리인 듯 싶은데 그저 표지만 바꾸면 혹해서 살 거라는, 독자들을 얕잡아 보는듯한 행동에 실망스럽고 화도 나네요.
민음사 세계문학은 번역도 편집(오타 등)도 제법 거슬리는 게 많은 건 사실이라 선듯 구입하기가 꺼려지긴 하네요.

cyrus 2019-07-04 15:39   좋아요 2 | URL
네, 맞습니다. 출판사도 회사이니 책을 팔아서 수익을 올려야 합니다. 그런데 독자들을 기만하면서 책을 팔면 안 되죠. <호밀밭의 파수꾼> 오역 문제는 이미 십년 전부터 나왔던 얘기입니다. 저보다 훨씬 먼저 오역을 지적한 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출판사는 문제를 개선할 시간이 충분히 있었는데도 하지 않았어요. 출판사가 독자들의 의견을 귀 담아 듣지 않은 셈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