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치다 타츠루(內田樹)대세를 따르지 않는 시민들의 생각법이라는 책에 요시모토 다카아키는 오직 혼자였다라는 글이 실려 있다. 요시모토 다카아키(吉本隆明)2012년에 세상을 떠난 일본의 사상가이다. 그의 이름은 우리에게 낯설지만, 그의 둘째 딸은 국내에 많이 알려진 소설가다. 그녀는 바로 요시모토 바나나(吉本ばなな).

    

 

 

 

 

 

 

 

 

 

 

 

 

 

 

* 우치다 타츠루 대세를 따르지 않는 시민들의 생각법(바다출판사, 2019)

 

    

 

타츠루는 고인이 된 다카아키를 추모하기 위해 요시모토 다카아키는 오직 혼자였다라는 글을 썼다. 다음에 나오는 문장은 타츠루의 글에서 인용했다. 생전에 전후 일본을 대표하는 사상가로 추앙받은 다카아키의 명성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요시모토 다카아키라는 사상가가 우리 세대에 미친 영향은 더할 나위 없이 심오하고 예리하고 압도적이었다. 우리는 요시모토 다카아키의 언어를 본받아 이야기했고, 요시모토 다카아키의 술어를 사용해 논의했고, “, 요시모토 다카아키 책을 읽지 않은 놈이군하고 선고를 두려워했다. 어떤 조직이나 당파에도 속하지 않고 요시모토 다카아키는 오로지 혼자 힘으로 한 시대를 온전히 휘어잡았다고 말할 수 있을 만한 지적 영향을 발휘했다.  (56)

 

 

다카아키는 1960년대 일본 학생운동의 정신적 지주로 주목받았고, 사회적인 문제가 일어날 때마다 앞장서서 싸웠다. 요시모토 바나나는 국내의 어느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아버지를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평생 싸웠고, 말과 행동에 차이가 없었던 존경스러운 분이라고 언급했다. 그녀가 사회적 약자들을 위로하는 소설을 쓰겠다고 생각한 된 데는 아버지의 영향이 크다.

 

다카아키는 마르크스(Marx)자본론천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책이라고 극찬했으며 자신을 좌파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정치적인 영향력을 확장하는 일에만 몰두하는 당파의 행보를 반대했고, 전체주의로 변질한 스탈린주의와 내부 비판에 소극적인 일본 좌파 세력을 비판했다. 1968년에 발표된 공동환상론은 다카아키의 대표작이다. 다카아키는 이 책에서 국가의 정의를 새롭게 정의한다.

 

17~18세기의 계몽주의자들은 국가를 사회계약의 산물이라고 주장했다. 마르크스는 국가를 부르주아지 계급이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억압하는 기관이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다카아키는 이 두 가지의 입장을 거부한다. 그는 국가가 여러 사람(공동)이 모이면서 만들어진 환상이라고 주장한다. 국가에 대한 그의 입장은 일본이라는 동아시아 국가의 존재에 대한 문제 제기로 이어진다. 개인의 이익보다는 민족 또는 공동체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일본의 사회적 분위기를 고려하면, 국가를 민족이 모여서 세워진 거대한 실체가 아닌 환상으로 호명한 다카아키의 주장은 파격적이었다. 공동환상론은 전후 일본 청년 세대의 필독서가 되었으며 그 책을 가슴에 품고 다닌 일본 여학생과 남학생들이 많았다고 한다.

    

 

 

 

 

 

 

 

 

 

 

 

 

 

  

* 동아시아출판인회의 동아시아 책의 사상, 책의 힘(한길사, 2010)

 

    

 

공동환상론2009년에 한국과 일본, 중국, 홍콩, 대만 등 아시아 5개 지역 출판사들의 모임인 동아시아출판인회의가 공동으로 기획한 동아시아 100권의에 포함되었다. 20세기 후반 동아시아에서 출간된 인문 서적 가운데 학술 가치가 높은 책들이 동아시아 100권의 책에 선정되었다. 동아시아출판인회의는 동아시아 100권의 책을 아시아 5개 지역의 언어로 동시에 출간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그로부터 십 년이 지났지만, 한국어로 된 공동환상론》 출간은 깜깜 무소식이다. 동아시아 100권의 책에 대한 해체를 담은 동아시아 책의 사상, 책의 힘을 참고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공동환상론을 간접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유일한 독서 방식이다.

    

 

 

 

 

 

 

 

 

 

 

 

 

 

 

 

 

* [절판] 요시모토 다카아키 요시모토 바나나의 아버지가 들려주는 내 안의 행복(호박넝쿨, 2003)

 

* 요시모토 다카아키 진짜와 가짜(서커스, 2019)

    

 

 

다카아키는 광범위한 주제에 관한 에세이를 많이 썼다. 제목이 너무 평범하게 느껴지는 내 안의 행복과 다카아키가 세상을 떠나기 일 년 전에 나온 진짜와 가짜(저자명이 요시모토 타카아키로 되어 있다)는 에세이집이다. 내 안의 행복번역본에 요시모토 바나나의 아버지라는 문구가 삽입되었다. 이 번역본이 나온 해가 2003년이었고, 이때가 요시모토 바나나의 책이 한창 인기를 끌고 있었다. 두 권의 책 모두 읽기에는 수월한 편이다. 한 번쯤 세상을 살아가면서 생각해봐야 할 내용을 다루고 있다. 다카아키의 글을 읽어 보면 우치다 타츠루의 글을 읽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두 사람이 쓴 에세이는 읽기 쉽다. 또 그들의 관심사도 거의 비슷하다. 우치다 타츠루도 가끔 자신의 글에 철학으로서의 마르크시즘을 긍정하는 입장을 드러냈는데, 아마도 이러한 생각은 다카아키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지금도 우치다 타츠루는 다카아키의 언어와 생각을 본받아 글을 쓰고 있다. 그는 요시모토 다카아키라는 거인의 어깨 위에 서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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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9-11-12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우치다 타츠루의 책을 두 권 가지고 있어요. 철학에 조예가 깊은 저자로 느낍니다.
이 페이퍼를 읽으니 ‘다수를 따라 악을 행하지 말지어다.‘라는 성경? 문구가 생각납니다.
옳은 소수가 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실감합니다.

cyrus 2019-11-18 22:00   좋아요 0 | URL
다수 한가운데서 개인의 솔직한 생각과 의견을 드러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에요. 그 사람들 눈치를 봐야 하죠, 그리고 또 다수 중에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지지해주는 사람을 적어도 한 두 명 정도는 있어야 해요. 소수의 마이너리티가 되는 것은 정말 외로운 일입니다.
 

 

 

 

 

 

 

 

 

귀에 작은 구멍이 있습니다! 여러분, 귀에 작은 구멍이 있습니다!

저는 cyrus라고 하옵니다!

 

 

인간의 양쪽 귀에 구멍이 있다. 이것을 우리는 귓구멍이라고 한다. 그런데 내가 이 글에서 언급하려는 것은 귓구멍이 아니다. 아주 특별한 구멍이다. 정확히 말하면 이것은 귓바퀴 앞에 있는 작은 구멍이다. 내 귀에 4개의 구멍이 있다. 귓구멍과 구분하기 위해 여기서는 작은 구멍이라고 부르겠다.

 

 

 

 

 

    

 

작은 구멍은 말 그대로 작다. 너무 작아서 잘 보이지 않는다. 마치 바늘에 살짝 찔려서 생긴 흉터처럼 생겼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귓바퀴 앞에 아주 미세한 구멍이 있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래도 작은 구멍을 발견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작은 구멍에 대한 호기심을 느낀 그들은 내게 묻는다. 저 구멍은 뭐에요? 정말 신기하네요.”

 

특별한 구멍에 호기심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나는 그 작은 구멍에 향하는 시선들이 너무나도 불편하게 느꼈다. 사람들은 작은 구멍의 정체를 알려고 했다. 내가 그 구멍이 생긴 이유를 모른다고 말하면 사람들의 궁금증은 더욱 커져만 갔다. 어떤 사람은 작은 구멍에 대해 가벼운 농담을 했다. 귀에 구멍이 네 개나 있으니 남들보다 더 잘 들리겠네요.” 사람들은 작은 구멍을 뚫어지라 살펴본 다음에 소감을 밝혔다. 대부분 신기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사실 작은 구멍의 존재감을 드러내게 하는 또 다른 특별한 현상이 있다. 작은 구멍에서 누런 고름이 나온다. 이 고름이 갑자기 나오는 건 아니다. ‘작은 구멍이 있는 부위가 간지러울 때가 있는데, 그쪽을 손가락으로 누르거나 문지르면 구멍에 고름이 나온다. 고름은 아주 불쾌한 냄새를 풍긴다. 초등학생 시절에 나는 이 고름 때문에 놀림을 받았다. ‘작은 구멍에 고름이 나오는 걸 어찌 알았는지 나를 놀리는 아이들은 불쾌한 반응을 보였다. 장난이 심한 어떤 녀석은 나한테 가까이 다가오는 척하다가 네 귀에 냄새나!”하고 큰 소리로 말하기도 했다. 그때 작은 구멍이 생긴 이유와 거기에서 고름이 생기는 원인을 알았더라면 그들에게 설명했을 것이다. 그러나 어린 나는 작은 구멍이 왜 생기게 되었는지 몰랐다. 너무나도 답답해서 부모님에게도 여쭤봤지만, 부모님의 대답도 내 궁금증을 속 시원하게 풀지 못했다. 어머니는 태어날 때부터 작은 구멍이 있었다고 말할 뿐이었고, ‘작은 구멍에 고름이 나오니까 그 부위에 절대로 손으로 건드리지 말라고 당부했다.

 

나는 어머니의 충고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작은 구멍이 있는 부위가 간지러운 것을 참을 수 없었고, 간지러움을 느낄 때마다 손으로 그 부위에 갖다 댔다. 결국, 왼쪽 작은 구멍에 문제가 발생했다. 작은 구멍이 있는 부위에 염증이 생긴 것이다. 염증이 생긴 부위는 점점 부풀어 올랐다. 귓바퀴 앞에 작은 혹이 생기고 말았다. 그 안에 평소보다 더 많은 양의 고름이 생겼다. 그때 당시 혹을 제거하는 수술을 할 수 있었지만, 수술이 두려운 나는 병원에 가는 것을 한사코 거부했다. 부모님은 어쩔 수 없이 혹이 생긴 부위에 고약을 붙여주었다. 고약을 붙이니까 고름이 자연스럽게 빠져나왔고 혹의 크기도 줄어들었다. 그러나 고약을 붙이지 않으면 또 염증이 재발하면서 고름이 생겼다. 그러면서 혹도 다시 커졌다. 반년 동안 고약을 붙인 채 등교를 했다. 나를 만만하게 보던 아이들은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귀에 고약을 붙이고 다니는 나를 놀렸고, 부풀어 오른 귓바퀴를 신기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내 모습이 얼마나 특이했으면 초등학교 담임선생마저 농담할 정도였다. 나는 아직도 담임선생이 한 말을 기억하고 있다. 내가 귓바퀴에 고름이 생겨서 고약을 붙인다고 말하자 그는 회초리를 들면서 고약을 붙인 부위를 때리는 흉내를 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내가 (회초리로 거기) 때려도 돼? 그러면 덜 아플 텐데.”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그는 선을 넘는 말을 하고 말았다. 어린 제자의 아픔을 이해하고 보듬어주지 못했고, 그것을 웃음거리로 만들었다.

 

귓바퀴에 혹이 생기니까 나를 곤란하게 만든 상황이 생겼다. 귓바퀴에 난 혹 때문에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바늘을 찌르는 듯한 통증은 수면을 방해했다. 혹에 물이 들어갈까 봐 조심스럽게 머리를 감았다. 미용실에서 이발하는 일도 쉽지 않았다. 나는 미용실 직원에게 혹에 대해서 일일이 설명해야 했고, 직원은 최대한 혹을 건드리지 않은 채 구레나룻을 잘랐다. 사실 미용실에 가는 것이 너무나도 싫었다. 머리카락을 길게 길러서 혹을 가리고 싶다는 생각했다. 머리를 자르러 미용실에 가면 내 혹을 신기하게 쳐다보면서 한마디씩 말하는 아주머니들이 있었다. 혹이 왜 생겨났는지 물어보는 건 당연했고, 내가 혹이 생긴 원인을 설명하면 불쌍하다는 식으로 얘기했다. “너 정말 안 됐구나.” 나는 미용실에 갈 때마다 아주머니들의 구경거리가 되었고, 그녀들은 날 불쌍한 아이로 취급했다. 아주머니들은 자신들이 한 번도 만나지 못한 불쌍한 아이의 엄마가 누군지 알고 싶어 했다.

 

이제 작은 구멍의 정체를 밝힐 때가 되었다. 이십여 년 만에 작은 구멍의 정체를 알았다. 작은 구멍의 정식 명칭은 선천성 이루공(congenital auricular fistula)이다. ‘이루공(耳瘻孔)귀 주위에 생긴 구멍에 의해 일어난 부스럼 또는 혹을 말한다. 귀 안쪽에 주머니처럼 생긴 빈 공간이 있다. 그래서 작은 구멍을 통해 침투한 세균에 의해서 주머니 같은 공간에 고름이 생기고 염증이 일어난다. 염증이 반복되면 그 부위를 적출하고 구멍을 피부로 메꾸는 수술을 한다.

 

선천성 이루공은 기형의 일종이다. 나처럼 태어날 때부터 귓바퀴에 작은 구멍을 가진 사람은 많지 않다. 우리나라 사람 100명 중 두세 명만이 선천성 이루공이 있다. 선천성 이루공은 엄마 뱃속에서 태아의 귀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귓바퀴의 융합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작은 구멍이 만들어진다. 선천성 이루공은 유전이 된다. 내 외가 쪽 사촌 동생도 선천성 이루공이 있다. 어머니와 고모는 선천성 이루공이 없다. 아마도 외가 쪽 조상 중에 선천성 이루공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 있을 것이다. 기형을 유발하는 유전자는 바로 다음 대에 유전되기도 하지만 몇 대를 지나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이것을 격세유전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내 자식의 귀에 선천성 이루공이 생길 확률은 반반이다.

 

 

 

 

 

 

 

 

 

 

 

 

 

 

 

     

 

* 닐 슈빈 내 안의 물고기(김영사, 2009)

 

 

 

선천성 이루공이 왜 아주 적은 사람들에게만 생기는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그런데 내 안의 물고기라는 책을 쓴 미국의 진화생물학자는 닐 슈빈(Neil Shubin)은 선천성 이루공을 인간 진화의 흔적이라는 흥미로운 가설을 주장한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손, 머리 등 인간의 신체는 물고기의 지느러미, 오래전 멸종한 무악어류(턱이 없는 원시 어류)의 머리와 닮은 점이 많다. 실제로 인간의 해부 구조는 물고기와 매우 유사하다. 슈빈은 2004년에 틱타알릭(Tiktaalik)이라는 물고기 화석을 발견했다. 틱타일락의 해부 구조는 우리가 아는 물고기의 해부 구조와 다르다. 여느 물고기처럼 지느러미와 아가미가 있지만, 초기 육상동물의 팔과 손목에 해당하는 뼈와 관절도 있다. 틱타알릭은 물속에 살던 어류가 땅 위에 사는 양서류로 진화했다는 강력한 증거가 됐고, 슈빈은 인간의 몸은 물고기가 진화한 결과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선천성 이루공은 인간이 가지고 있던 물고기 아가미가 퇴화한 흔적으로 볼 수 있다.

    

 

 

 

 

 

 

 

 

 

 

 

 

 

 

    

 

* 로즈메리 갈런드 톰슨 보통이 아닌 몸(그린비, 2015)

 

    

기형의 몸은 흥미와 혐오를 동시에 유발하는 구경거리가 되기 쉽다. 로즈메리 갈런드 톰슨(Rosemarie Garland Thomson)보통이 아닌 몸(Extraordinary Bodies)에서 설명한 내용에 따르면 프릭 쇼(freak show)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기형 인간 쇼는 비정상이라고 규정된 장애 형상들을 보여 줌으로써, 구경꾼들의 호기심과 두려움을 충족시키는 동시에 자신들은 정상이라는 우월감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기능이 있다. 이제 나는 내 귀를 신기하게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두렵지 않다. 내 귀에 왜 작은 구멍이 있는지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작은 구멍이 이상하고 비정상적인 신체 구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도 여전히 구멍이 있는 부위가 간지럽고 고름이 나오지만, 그것 외에는 불편함 없이 잘살고 있다. 나는 내 귀에 작은 구멍이 두 개나 있구나하고 덤덤하게 받아들인다. 앞으로 나를 만나게 되면 내 귀를 주의 깊게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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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9-10-15 2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 게 있었군요. 너댓 번을 만나도 전혀 몰랐네요.

cyrus 2019-10-17 17:48   좋아요 0 | URL
구멍이 아주 작아서 잘 보이지 않아요. 오래 만난 친구들도 모르는데요.. ㅎㅎㅎ

강나루 2019-10-15 2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당하게 밝히시다니
독서를 통해 당당하게 우뚝서셨군요
님을 응원합니다

cyrus 2019-10-17 17:49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이제야 몸의 비밀을 알게 돼서 속이 시원합니다. ^^

카스피 2019-10-15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아는 친척 형님도 cyrus님처럼 이루공이 있는데 주기적으로 고름을 짜내지 않으면 염증이 생겨서 아프다고 하시더군요.큰 병은 아니지만 생활에 불편함이 많으실것 같아요.

cyrus 2019-10-17 17:51   좋아요 0 | URL
저 같은 경우는 크게 한번 염증이 생긴 이후로는 재발하지 않았어요. 이루공을 건드리지 않고, 고름을 짜니까 염증이 생기지 않았어요. 고름 나오는 건 빼곤 불편한 점은 없어요. ^^;;

감은빛 2019-10-15 2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글을 읽고 처음 알았어요.
어려서부터 많이 불편하셨겠어요. 게다가 놀림까지 받았다니!

유전이라는 건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제 아이들이 정말 애들 엄마와 저를 적절하게 반반씩 닮았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을 때면,
그 생명의 신비에 정말 깜짝 놀라요.
내가 죽더라도 나를 닮은 내 자손이 이 세상을 살아갈 거라는 건 신기한 일인 것 같아요.

cyrus 2019-10-17 17:56   좋아요 0 | URL
유전 현상이 신기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무섭기도 해요. 특히 격세유전이요. 부모와 친자식의 유전은 문제없는데, 그 친자식의 자식이나 후손에게 유전 이상이 생길 수 있어요. 부모 조상이 가지고 있던 유전 문제가 후손에게 나타난 것이죠. 사실 제 친자식이 이루공을 가지고 태어날까봐 걱정됩니다.

2019-10-16 11: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10-17 17:57   좋아요 0 | URL
구멍이 두 개 더 있다고 해서 청력이 좋은 건 아니에요.. ㅎㅎㅎㅎ

붕붕툐툐 2019-10-16 1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 구멍이 있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걸 익히 알고 있는 저는 관찰력이 뛰어난 사람일까요? ㅎㅎ
저도 며칠 전 귀를 뚫어서 혹이 났을 때의 불편함을 조금이나마 공감할 수 있게 되었네요~~

cyrus 2019-10-17 17:59   좋아요 0 | URL
귀걸이를 하는 사람을 보면 대단해요. 바늘로 귀에 구멍을 뚫는 것만 봐도 아픔이 느껴지거든요. 그런데 주사바늘은 무섭지 않아요.. ㅎㅎㅎㅎ

AgalmA 2019-10-25 22: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간은 여전히 진화 중이잖아요. 기형이니 뭐니 떠드는 사람은 자신이 무슨 완전체인 줄 안단 말입니까(도리도리)... 인간의 자의식은 어떤 방식으로도 오만함을 폭로하기에 말하는 게 너무 무서워요😱

cyrus 2019-10-28 17:56   좋아요 1 | URL
맞아요. 미래에는 스마트폰의 영향 때문에 시력이 완전 좋은 사람을 보기 힘들 수 있어요. ^^;;

카렌 2019-12-02 23: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솜씨가 있으신 것 같아요. 재미있게 풀어나가시네요. 이 책을 꼭 읽어보고 싶어졌어요.

cyrus 2019-12-03 20:57   좋아요 0 | URL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지난달에 쓴 로드 던세이니(Lord Dunsany)의 작품에 관한 글을 정정한다. 글 제목은 리라젤과 운디네.

    

 

 

 

 

 

 

 

 

 

 

 

 

 

 

  

* [e-Book] 엘프랜드의 공주(페가나북스, 2019)

    

 

 

던세이니의 작품을 전자책으로 출간한 페가나북스공식 홈페이지에 보면 엘프랜드의 공주(The King of Elfland’s Daughter)던세이니의 첫 번째 장편소설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나는 이 작품을 두 번째 장편소설이라고 주장하면서 홈페이지에 있는 작품 소개 내용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했다. 던세이니의 작품들을 번역한 엄진 씨의 반박 의견에 따르면 1922년에 던세이니가 발표한 초기 작품인 Don Rodriguez: Chronicles of Shadow Valley는 장편이 아니라 연작 단편집으로 분류된다. 그렇게 되면 1924년에 발표된 엘프랜드의 공주던세이니의 첫 번째 장편소설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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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뱀파이어’와 ‘레즈비언 뱀파이어’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두 존재의 차이점을 설명하기 전에 ‘여성 뱀파이어’의 계보를 살펴보면서 이들에게 어떤 특징이 있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 새뮤얼 테일러 콜리지 《콜리지 시선》 (지만지, 2012)

* 존 키츠 《키츠 시선》 (지만지, 2012)

* [품절] 존 키츠 《빛나는 별》 (솔출판사, 2012)

* 괴테 《괴테 시 전집》 (민음사, 2009)

 

 

 

 

우리가 알고 있는 뱀파이어 이미지는 브람 스토커(Bram Stoker)의 소설에 나오는 드라큘라(Dracula) 백작과 이를 원작으로 만든 영화에서 탄생했다. 하지만 드라큘라 백작이 등장하기 전에 이미 뱀파이어에 관한 각종 전설이 전해 내려왔고 낭만주의 문학이 꽃 피던 시대에 뱀파이어는 ‘죽은 연인’ 또는 ‘이승의 남성을 유혹하는 유령 신부’로 묘사되었다. 대표적인 작품은 새뮤얼 테일러 콜리지(Samuel Taylor Coleridge)의 서사시 『크리스타벨(Christabel), 존 키츠(John Keats)의 시 『라미아(Lamia)『무정한 연인』, 괴테(Goethe)의 담시 『코린트의 신부』 등이 있다.

 

 

 

 

 

 

 

 

 

 

 

 

 

 

 

 

 

 

 

 

 

 

 

 

 

 

 

 

 

 

 

 

 

 

* 박선경 엮음 《세계 서스펜스 추리여행 1》 (나래북, 2014)

* 테오필 고티에 《고티에 환상 단편집》 (지만지, 2013)

* [품절] 민경수 엮음 《클라리몽드: 아홉 개의 환상기담》 (작품, 2013)

* 이탈로 칼비노 엮음 《세계의 환상 소설》 (민음사, 2010)

* 이규현 엮음 《이것은 소설이 아니다》 (창비, 2010)

* [품절] 정진영 엮음 《뱀파이어 걸작선》 (책세상, 2006)

 

 

 

 

프랑스의 소설가 테오필 고티에(Theophile Gautier)의 단편소설 『죽은 연인』에 나오는 클라리몽드(Clarimonde)는 남자를 유혹해 피를 빠는 매춘부다. 이 소설은 여러 권의 단편 선집에 수록되었는데 제목이 다양하다. ‘클라리몽드’, ‘사랑에 빠져 죽은 여인(《고티에 환상 단편집》)’, ‘죽은 여인의 사랑(《이것은 소설이 아니다》)’, ‘죽은 여자의 사랑(《세계의 환상 소설》) 등이 있다.

 

앞서 언급한 작품들에 묘사된 여성 뱀파이어는 ‘치명적인 매력을 가진 사악한 존재’이다. 그리고 그녀들은 남성 앞에 성적 매력을 발산하며 그들을 사랑하는 감정을 가지고 있다.

 

 

 

 

 

 

 

 

 

 

 

 

 

 

 

 

 

 

 

* 르 파뉴 《카르밀라》 (초록달, 2015)

 

 

 

 

스토커의 《드라큘라》와 함께 뱀파이어 고전으로 손꼽히는 레 파누(Le Fanu)《카르밀라(Carmilla)는 여성 뱀파이어가 등장한 작품으로 분류된다. 카르밀라는 아름답고 매혹적인 레즈비언 여성으로 묘사된다. 그렇지만 나는 카르밀라를 ‘여성 뱀파이어’가 아닌 ‘레즈비언 뱀파이어’라고 생각한다. 여성 뱀파이어와 레즈비언 뱀파이어는 다르다. 카르밀라는 여성 뱀파이어의 계보에 속할 수 없다.

 

 

 

 

 

 

 

 

카르밀라의 레즈비언 뱀파이어 정체성을 설명하려면 프랑스의 페미니스트 모니크 위티그(Monique Wittig)의 명제를 가져 와야 한다. 위티그는 1980년에 발표한 『여성은 태어나는 게 아니다(On ne naît pas femme)라는 글에서 “레즈비언은 여성이 아니다”라는 파격적인 명제를 제시한다.

 

 

 

 

 

 

 

 

 

 

 

 

 

 

 

 

 

 

 

* 조현준 《쉽게 읽는 젠더 이야기》 (행성B, 2018)

* [품절] 케티 콘보이 외 엮음 《여성의 몸, 어떻게 읽을 것인가》 (한울아카데미, 2001)

 

 

 

 

 

 

 

 

 

 

 

 

 

 

 

 

* 시몬 드 보부아르 《제2의 성》 (을유문화사, 1993)

* 변광배 《제2의 성: 여성학 백과사전》 (살림, 2007)

 

 

 

 

『여성은 태어나는 게 아니다』 번역문은 《여성의 몸, 어떻게 읽을 것인가》(한울아카데미)에 수록되어 있다. 이 글은 레즈비언을 가부장 및 이성애 중심 사회를 전복하는 새로운 주체로 규정한 선언문이다. 안타깝게도 이 중요한 글이 수록된 책이 절판되었다. 《쉽게 읽는 젠더 이야기》(행성B)에 위티그의 이론을 소개한 내용이 있다.

 

‘여성은 태어나는 게 아니다’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위티그는 보부아르(Beauvoir)의 영향을 받은 페미니스트다. 위티그는 보부아르의 명제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를 재해석하고 이를 변용한다. 보부아르가 말한 ‘만들어지는 여성’은 생물학적으로 타고난 여성이 아니라 사회 속에서 형성되는 ‘젠더(gender)’의 여성이다. 그러나 위티그는 그녀의 명제를 동의하면서도 ‘만들어지는 여성’이 이성애 여성에 더 가깝다고 비판한다. 그래서 위티그는 보부아르의 명제를 확장하여 ‘만들어지는 여성’은 레즈비언이어야 한다고 결론을 이끌어낸다. 그녀는 사회적으로 강제된 젠더 역할, 즉 ‘남성’과 ‘여성’으로 설명하는 성의 범주는 ‘이성애적 계약(heterosexual contract)에 기초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여성은 태어나는 게 아니다』에서 보여준 위티그의 문제의식은 ‘이성애 중심 사회 및 문화 비판’이다.

 

위티그는 생물학적 여성의 존재 정당성을 설명하기 위해 모성과 재생산 기능을 강조하는 사회적 인식뿐만 아니라 가모장을 중심으로 한 여성사까지 반대한다. 이러한 설명들이 결국은 이성애에 초점에 맞춰져 있으며 이성애 중심주의는 ‘헤테로 여성의 레즈비언 차별’의 원인이 된다. 이성애 중심 사회에서 여성이 여성을 사랑하는 것은 ‘어머니’라는 정상성의 여성이 되는 것을 거부하는 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카르밀라는 ‘이성애적 계약’에 저항하는 레즈비언이다. 그녀는 결혼과 모성, 재생산을 중요시하게 여긴 빅토리아 시대의 견고한 사회적 질서를 무너뜨릴 수 있는 위험한 존재이다. 위티그는 이성애자가 되기를 거부하는 여성은 레즈비언이라고 주장한다. 이성애자가 되기를 거부하는 것은 결국 남자나 여자 되기를 거부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위티그는 “레즈비언은 여성이 아니다”라는 명제를 도출한 것이다. 위티그가 말한 레즈비언은 남자도, 여자도 아니다. 위티그는 생물학적 · 사회적 남녀 성별 범주를 넘어설 수 있는 유일하고도 특별한 존재가 레즈비언이라고 주장한다.

 

카르밀라는 이성애자들을 공포에 떨게 하는 ‘레즈비언 뱀파이어’다. 카르밀라는 소녀에게 접근하여 밤마다 그녀들의 목을 노린다. 남성들이 카르밀라의 악행을 가만히 지켜볼 리가 없다. 특히 소설에 나오는 슈필스도르프(Spielsdorf) 장군은 카르밀라 때문에 목숨을 잃은 조카딸의 복수를 꿈꾼다. 카르밀라를 퇴치하기 위해 결성된 ‘남성 십자군’의 임무는 가사 및 재생산 노동을 전담하는 헤테로 여성이 되어야 하는 소녀들을 보호하는 것이다. 결국 카르밀라는 ‘남근’을 상징하는 말뚝에 박혀 죽는다.

 

 

 

 

 

위티그의 레즈비어니즘(lesbianism)은 남성 가부장, 이성애 중심의 정치 및 문화 이데올로기에 저항하면서 성적 자율성을 가진 레즈비언 정체성을 제시한다. 그러나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는 가부장 및 이성애 중심 사회에 저항하는 위티그의 입장에 공감하면서도 레즈비언을 특별한 존재로 만든 위티그의 명제를 비판한다.

 

 

 

 

 

 

 

 

 

 

 

 

 

 

 

 

* 주디스 버틀러 《젠더 트러블》 (문학동네, 2008)

* 조현준 《젠더는 패러디다》 (현암사, 2014)

 

 

 

버틀러도 레즈비언이다. 그러나 그녀는 강제적 이성애 중심 사회에 대항하는 유일한 존재가 레즈비언뿐이냐고 반문한다. 레즈비언이 아무리 특별하고도 주체적인 존재라고 해도 레즈비언이 중심이 되는 여성운동은 헤테로 여성과의 연대를 단절하게 만드는 전체주의적 권위로 작동될 수 있다고 비판한다.

 

 

 

  위티그는 보부아르의 선언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에 응답하면서 여성으로 만들어지는 대신에 사람은 (누구나?) 레즈비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성이라는 범주를 거부하면서 위티그의 레즈비언-페미니즘은 모든 종류의 이성애 여성과의 연대를 단절하는 것으로 보이며, 은연중에 레즈비언이야말로 논리적이거나 정치적으로 필연적인 페미니즘의 결과라고 주장하는 것 같다. 이런 종류의 분리주의적 규정주의는 확실히 더 이상은 존속될 수 없는 것이다. 설령 그것이 정치적으로 바람직한 것일지라도 말이다.

 

(《젠더 트러블》, 324쪽)

 

 

나는 버틀러의 문제 제기가 여성주의 운동과 성소수자 운동에 뛰어든 사람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 즉 정체성 문제와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 낸시 프레이저 《불평등과 모욕을 넘어》 (돌베개, 2017)

* 철학아카데미 엮음 《처음 읽는 영미 현대철학》 (동녘, 2014)

 

 

 

미국의 여성주의 철학자 낸시 프레이저(Nancy Fraser)는 ‘여성, 성소수자, 노동자’ 등의 단일 정체성을 강조한 좌파의 사회운동 노선을 비판한다. 그녀는 정체성이 ‘물화(reification)’되는 현상이 어떤 개별 존재를 특정한 정체성에 고정해버린다고 주장한다. 레즈비언이 헤테로 여성을 여성운동 연대자로 보지 않는 것, 그리고 ‘일부’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이 트랜스 여성을 여성운동 연대자로 보지 않는 것은 ‘레즈비언’ 또는 ‘여성’이라는 단일 정체성을 강조하면서 나오는 입장이다. 분리주의식 여성운동은 권위주의, 전체주의의 양상으로 전개된다. 따라서 ‘정체성 인정’으로 일관된 여성운동은 단일 정체성으로 설명할 수 없는 또 다른 여성을 차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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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26 12: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8-26 15:50   좋아요 0 | URL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무성애자 여성이 있으니까요. 레드스타킹 모임에 참석한 이후부터 성소수자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모르는 사실이 많아요. ^^;;
 

 

 

 

《카르밀라》를 펴낸 초록달 출판사1인 출판사다. 한 사람이 혼자서 책 한 권을 만들어 판매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책 한 권 만드는 과정 중에서 가장 힘든 업무는 외국 문학작품을 번역하는 일이다. 번역해보지 않았지만, 조금만 역자들의 삶을 생각해본다면 번역하는 일이 고된 작업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역자는 원문의 단어 하나하나 끊임없이 눈으로 만져본 다음 그 의미와 비슷한 제2의 단어를 찾아내서 종이에 옮겨 써야 한다. 홀로 단어들과 씨름하고 있는 역자들 덕분에 독자는 다른 나라의 글을 편안하게 읽을 수 있다.

 

 

 

 

 

 

 

 

 

 

 

 

 

 

 

 

 

 

* 르 파뉴 《카르밀라》 (초록달, 2015)

 

 

 

초록달 출판사가 레 파누(Le Panu)의 대표작 두 편(『카르밀라』와 『그린 티』)을 번역하기로 한 점, 그리고 이 책의 출간을 위해 후원해준 분들 모두 진심으로 감사하다. 하지만 이 책의 번역문에 아쉬운 점이 눈에 띈다. 먼저 『카르밀라』의 번역문부터 살펴보겠다.

 

 

 

 

 

  아무 말이 없던 아버지가 셰익스피어의 소설 한 구절을 인용하며 말했다. 아버지는 영어 실력을 유지하기 위해 큰소리로 글을 읽고는 했는데, 이번에도 그렇게 소리 내어 말했다. (27~28쪽)

 

 

 

 

 

 

 

 

 

 

 

 

 

 

 

 

 

 

 

* 메리 램, 찰스 램 《명화와 함께 읽는 셰익스피어 20》 (현대지성, 2016)

* 메리 램, 찰스 램 《셰익스피어 이야기》 (비룡소, 2012)

 

 

 

 

셰익스피어(Shakespeare)는 소설을 쓴 적이 없다. 그는 희곡 작품과 소네트(sonnet)를 썼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작품은 소설 형식으로 편집되어 만들어지기도 했다. 영국의 수필가 찰스 램(Charles Lamb)과 그의 누이 메리 앤 램(Mary Ann Lamb)은 1807년에 어린이들의 눈높이를 맞춘 《셰익스피어 이야기》를 썼다. 메리 램은 낭만주의 문인들과 교류하는 작가였으나 정신병 발작으로 어머니를 살해했다. 찰스 램은 평생 독신으로 누이를 간호하면서 살았다. 남매가 함께 쓴 《셰익스피어 이야기》는 어린이를 위한 고전이 되었다.

 

『카르밀라』의 시대적 배경이 정확히 언제인지는 확실하게 알 수 없다. 레 파누가 작중 시간을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독자는 로라(Laura)가 어느 시기에 살았는지 어림짐작해야 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카르밀라』의 작중 시간은 19세기 중반이다. 《셰익스피어 이야기》가 19세기 초반에 나왔으니 로라가 이 책을 모를 리가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셰익스피어가 언급된 원문과 번역문만 봐서는 로라의 아버지가 《셰익스피어 이야기》의 한 구절을 인용했는지 아니면 셰익스피어의 희곡 작품에 있는 구절을 인용했는지 알 수 없다. 원문에는 ‘셰익스피어의 소설’이라고 번역할 수 있는 구절이 없다. 어린 로라는 어른이 읽는 희곡 버전보다 소설 버전의 《셰익스피어 이야기》가 더 익숙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래서 ‘셰익스피어의 소설’이라는 표현을 쓸 수 있다. 하지만 너무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셰익스피어의 소설’은 오역이다.

 

 

 

 

  라폰테인이 머리에 검은색 터번을 쓰고 인상이 험악했던 여인에 대해 설명했다. (38쪽)

 She described a hideous black woman, with a sort of colored turban on her head.

 

 

 

 

 

 

 

 

 

 

 

 

 

 

 

 

 

 

 

 

* [품절] 정진영 엮음 《뱀파이어 걸작선》 (책세상, 2006)

 

 

 

다음 인용문은 흑인 여성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반영되어 있다. 그걸 지적하기 위해서 인용한 것은 아니다. ‘colored turban’을 번역한 표현에 문제를 제기하려는 것이다. ‘coloured’는 흑인을 포함한 유색인을 비하하는 뜻을 가진 단어이지만, ‘검은색 터번을 쓴 여인’이라고 번역하면 독자는 (원문에 분명히 언급된) 그 여인이 흑인이라 사실을 파악하지 못한다. 원문의 뜻을 그대로 살리면서 번역한다면 ‘색깔 있는 터번을 쓰고 인상이 험악했던 흑인 여성’으로 쓰는 것이 적절하다. 이미 『카르밀라』를 번역했던 정진영‘유색 터번을 두른 오싹한 흑인 여자’라고 썼다(《뱀파이어 걸작선》, 36쪽).

 

 

 

 

 

 

 

 

 

 

 

 

 

 

 

 

 

 

 

 

* [품절] 윤호송 엮음 《세계 괴기소설 걸작선 1》 (자유문학사, 2004)

 

 

 

 

다음 인용문은 『그린 티』의 결말에 해당하는 문장의 일부다. 마틴 헤셀리우스 박사(Dr. Martin Hesselius)는 동료 교수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녹차를 마신 뒤부터 악마를 목격하게 된 제닝스(Jennings) 신부의 증상에 대한 소견을 밝힌다.

 

필자는 《세계 괴기소설 걸작선 1》(자유문학사)에 수록된 『녹차』를 읽었는데, 『녹차』(자유문학사)의 결말과 『그린 티』(초록달)의 결말에 있는 내용이 약간 다르다는 걸 느꼈다. 확인해 보니, 『그린 티』의 결말 부분에 오역으로 보이는 문장이 있었고, 심지어 원문의 일부가 누락된 것을 알았다.

 

 

 

  You know my tract on “The Cardinal Functions of the Brain.” I there, by the evidence of innumerable facts, prove, as I think, the high probability of a circulation arterial and venous in its mechanism, through the nerves.

 

 ‘뇌의 기본적인 기능’이란 제목을 붙인 내 논문에 대해 알고 있을 것이다. 나는 거기에서 많은 사례를 들어, 뇌 조직의 기능에 신경이 연결되어 정 · 동맥 혈액의 순환 작용이 크게 이루어지고 있음을 증명했다. 

 

(『녹차』, 343쪽)

 

  제가 뇌 주요기능학회에서 어떤 연구를 발표했었는지 아실 겁니다. 셀 수도 없이 많은 증거를 제시하며, 신경세포가 뇌 메커니즘에서 동맥과 정맥 순환기와 같은 역할을 한다고 밝히지 않았습니까. 

 

(『그린 티』, 250쪽)

 

 

 

‘my tract’ ‘내 (소)논문’ 또는 ‘내 팸플릿’으로 번역해야 한다. 따라서 ‘The Cardinal Functions of the Brain’은 헤세리우스 박사가 쓴 논문 제목이거나 주제이다. 원문에 ‘학회’라고 번역할 만한 단어가 보이지 않는다.

 

 

 

 

다음 문장은 『그린 티』에 누락된 원문과 그 번역문이다.

 

 

 

  The seat, or rather the instrument of exterior vision, is the eye. The seat of interior vision is the nervous tissue and brain, immediately about and above the eyebrow. You remember how effectually I dissipated your pictures by the simple application of iced eau-de-cologne. Few cases, however, can be treated exactly alike with anything like rapid success. Cold acts powerfully as a repellant of the nervous fluid. Long enough continued it will even produce that permanent insensibility which we call numbness, and a little longer, muscular as well as sensational paralysis.

  I have not, I repeat, the slightest doubt that I should have first dimmed and ultimately sealed that inner eye which Mr. Jennings had inadvertently opened. The same senses are opened in delirium tremens, and entirely shut up again when the overaction of the cerebral heart, and the prodigious nervous congestions that attend it, are terminated by a decided change in the state of the body. It is by acting steadily upon the body, by a simple process, that this result is produced—and inevitably produced—I have never yet failed.

 

 

  외적 영상으로서의 역할, 혹은 도구는 바로 눈(eye)이다. 하지만 내적 영상의 역할은 눈 주변에 있는 조직과 뇌가 담당한다. 내가 얼음으로 차게 만든 오드콜로뉴(eau-de-cologne: 향수 이름)를 사용한 것만으로도 당신의 환각 증상을 완전히 없애 버린 것을 떠올려 주길 바란다. 그렇게 신속정확하게 큰 효과를 본 예는 좀처럼 없었다. 어쨌든 차게 한다는 것은 신경 유동체(nervous fluid)를 흩어지게 하는 데 강력한 효과가 있는 것이다. 그 방법을 장시간 연속해서 사용한다면, 마비(paralysis)라는 영속적인 불감성(不感性, 감각이 없는: insensibility)을 생기게 할 것이다. 그리고 더욱 오랫동안 연속해서 사용하면 감각과 함께 근육(muscular)까지도 마비될 것이다.

  사실 나는 제닌구즈(제닝스) 씨가 모르는 사이에, 어떻게 해서든 그의 내면의 시력(inner eye)을 잃게 해서, 마지막에는 결국 그것을 가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와 같은 지각은 섬망증(delirium tremens: 의식장애와 내적인 흥분의 표현으로 볼 수 있는 운동성 흥분을 나타내는 병적 정신상태)의 경우에도 일어나는 신경의 이상 충혈(congestion)이 신체 정황의 결정적인 변화에 의해서 한정될 때에 완전하게 폐지된다. 이런 결과는, 신체상에 항상 작용하는 단순한 과정에서 생겨나는 것으로써, 필연적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 사실을 알기 때문에 나는 실패한 적이 없었다.

 

 

(『녹차』, 343~344쪽)

 

 

 

이 긴 내용을 요약하자면, 헤세리우스 박사는 제닝스의 환각 증상을 녹차에 중독된 ‘내면의 눈(inner eye)’에서 일어난 이상 증세라고 진단한다. 그래서 이 증상의 원인을 제대로 발견한다면 완치가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그린 티』의 역자는 ‘내면의 감각’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나는 이 표현이 ‘inner eye’의 의미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번역을 해본 적이 없는 평범한 독자의 개인적인 의견이므로 이 글에 대한 반박 의견이 나올 것으로 예상한다. 잘못된 내용이 있으면 겸허히 받아들이고 수정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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