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를 온종일 착용하면 두 가지 불편한 점이 있다. 끈으로 인해 귀가 아프고, 안경에 김이 껴 앞을 보기가 어렵다. 하루 절반을 밀집 공간에 있어야 해서 실내에서도 마스크를 착용한다. 그렇다고 계속 마스크를 쓰는 건 아니다. 귀가 아프거나 숨쉬기가 불편하면 마스크를 잠시 벗을 때가 있다. 처음에 한 사람이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그 주변에 모든 사람도 마스크를 쓰지 않는다. 마스크를 쓰지 않는 것도 전염이 된다.
나는 마스크 착용이 전염병 예방에 효과가 있는지 아니면 없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도 내가 무증상 감염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마스크를 쓰고 다닌다. 증상 없는 사람의 전염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무증상 감염이 없다고 단언할 수 없다. 온종일 마스크를 써야 하는 생활이 답답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아서 불편함을 감수하고 있다.
* 안톤 체호프 《체홉 명작 단편선》 (작가와비평, 2020)
* 안톤 체호프 《체호프 단편선》 (민음사, 2002)
* [품절] 안톤 체호프 《안톤 체홉의 우수》 (이소북, 2004)
* [품절] 안톤 체호프 《체호프 단편선》 (일송북, 2008)
* [e-Book] 안톤 체호프 《체호프 단편선》 (일송북, 2015)
내가 이런 생각을 언제부터 했냐면 코로나19가 ‘우한 폐렴’이라는 이름으로 국내에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한 올해 1월이었다. 그달 마지막 주 목요일은 ‘우주지감’ 독서 모임이 있는 날이었다. 1월의 도서는 《체호프 단편선》이었다. 이상하게도 1월 독서 모임에 참석한 사람은 나를 포함해서 여섯 명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다음 달부터 시작해서 두 달 연속으로 독서 모임이 연기될 줄은 꿈에 몰랐다. 지금 대구의 상황을 봐서는 이번 달도 독서 모임 진행이 어려워 보인다.
민음사 판 《체호프 단편선》에 ‘티푸스(typhus)’라는 제목의 단편소설이 있다. 이 소설은 알베르 카뮈(Albert Camus)의 《페스트》에 비하면 잘 알려지지 않았다. 내가 확인해보니 《티푸스》를 수록한 체호프 단편선집은 총 네 권이다. 현재 민음사 판과 최근에 나온 체호프 단편선집(작가와비평)을 제외한 나머지 두 권은 절판되었다.
지금 독자들은 《페스트》를 열독하는 중이다. 그 사람들은 《페스트》가 전염병 앞에서 마주하는 다양한 인간 군상을 잘 묘사했다고 말한다. 나는 《페스트》와 체호프(Chekhov)의 ‘티푸스’를 비교하면서 문학적으로 뛰어난 작품이 어느 것인지 판단하고 싶지 않다. 그런 목적으로 이 글을 쓴 것도 아니다. 나는 《페스트》를 읽기 전에 《티푸스》를 읽었고, 이 체호프의 소설을 읽으면서 ‘보이지 않는 적’인 전염병의 위력을 간접적으로 느꼈다.
《티푸스》의 줄거리는 평범하다. 티푸스에 걸린 장교의 이야기다. 이 남자는 아픈 몸을 이끌면서 집으로 돌아온다. 장교는 침대에 눕자마자 의식을 잃어 혼수상태에 빠진다. 다행히 건강을 회복한 장교는 행복함을 느낀다. 그러나 장교의 행복은 오래 가지 못한다. 장교가 혼수상태에 빠져 있을 때 누이동생이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그녀의 사망 원인은 장교로부터 감염된 티푸스였다. 장교가 눈 뜨기 삼일 전에 누이동생의 장례식이 치러졌다. 소설은 눈물을 흘리면서 중얼거리는 장교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마무리된다.
심장이 고통으로 찌그러지는 듯했다. 그는 눈물을 흘리며 창틀에 이마를 기댔다.
“난 왜 이리 불행한가!”
그는 중얼거렸다.
“하느님, 나는 왜 이리도 불행합니까?”
그리하여 그의 기쁨은 일상의 권태와 돌이킬 수 없는 상실감에 자리를 비켜주었다.
(《체호프 단편선》 158쪽)
장교는 자신이 걸린 병 때문에 누이동생이 죽은 사실을 알면서도 살아났다는 기쁨을 억누르지 못해 숙모에게 음식을 달라고 투정을 부린다. 일주일 후에 그는 상실감에 빠진다. 체호프는 전염병으로 인해 두 사람의 운명이 한순간에 엇갈리는 상황을 묘사하면서 삶의 아이러니를 결말에 보여준다.
* 전승규 《인류를 구한 12가지 약 이야기》 (반니, 2019)
* [절판] 최석민 《초대하지 않은 손님, 전염병의 진화》 (프로네시스, 2007)
* [e-Book] 최석민 《초대하지 않은 손님, 전염병의 진화》 (프로네시스, 2012)
* [품절] 마이클 비디스, 프레더릭 F. 카트라이트 《질병의 역사》 (가람기획, 2004)
* [e-Book] 마이클 비디스, 프레더릭 F. 카트라이트 《질병의 역사》 (가람기획, 2010)
* 아노 카렌 《전염병의 문화사》 (사이언스북스, 2001)
코로나19와 흑사병이 가장 위험한 전염병으로 알려져서 그렇지, 티푸스도 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갔으며 인류의 역사를 몇 차례 바꿨을 정도로 엄청난 위력을 가진 전염병이다. 고대 그리스가 멸망하게 된 가장 큰 원인은 다름 아닌 티푸스 때문이었다. 티푸스가 없었더라면 나폴레옹(Napoléon)은 세계를 정복했을지 모른다. 나폴레옹의 사전에 ‘티푸스’라는 단어가 없었다. 전략가 나폴레옹은 전염병이 전세를 뒤집는 복병이 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1812년 러시아 정벌에 나섰던 나폴레옹의 프랑스군을 물리친 것은 동장군과 티푸스였다. 천하의 나폴레옹을 무너뜨린 티푸스의 위력은 인류의 역사에 큰 영향을 준 전염병을 소개한 책에 무조건 나오는 가장 유명한 사례이다.
지금도 자신이 건강하다는 이유로 마스크를 쓰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마스크를 쓰지 않는 사람들이 잘못됐다고 무조건 비난하고 싶지 않다. 그들이 손을 잘 씻고 다닌다면 문제 될 건 없다. 다만 그들의 자만심이 하늘을 찌를까 봐 걱정이 된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와 접촉하여 병에 걸릴 수 있고, 내가 다른 사람들을 감염시킬 수 있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길 바라지만, 사람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를 실은 자만심은 하늘이 아니라 주변 사람의 몸을 찌른다. 《티푸스》에 나오는 남매의 비극이 현실에 일어나지 않으란 법은 없다. “나는 괜찮겠지”라는 마음이 자신과 다른 사람을 불행하게 만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