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 년 동안 자살에 관한 연구를 해 온 프랑스의 유명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인 마르탱 모네스티에의 『자살』(2002년, 새움출판사, 품절)은 인간의 역사와 자살의 모든 양상들을 환기시키고 있다. 감정적 자살, 가미카제의 자살, 희생자살, 저항자살, 모방자살, 집단자살, 종교적인 자살 권고에 이르기까지 여러 종류의 자살을 소개하고 있다. 아마 지금까지 이 분야에 관하여 출간된 모든 저작들을 집대성한 역작일 것이다. 세계 각국의 살인 범죄 사건을 범죄심리학적으로 분석한 콜린 윌슨의 『현대살인백과』(종합출판범우, 2011년, 품절)와 짝을 맞출 수 있는 ‘현대자살백과’이다.
모네스티에의 책은 1999년 『자살, 도대체 왜들 죽는가』라는 제목으로 첫 선을 보였다. 출판사는 올해 초 카뮈의 대표작 『이방인』 번역 논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된 ‘새움출판사’다. 그러나 1999년에 출판된 책은 원서 일부를 발췌 번역한 것이었다. 완역본은 총 9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999년 판에 소개된 내용은 6부에 불과했다. 2002년에 『자살』이라는 새로운 제목과 표지로 완역본이 나왔고, 이듬해 양장본이 나왔다. ‘자살’이라는 책의 제목이 독자 입장에서는 꺼림칙하게 느껴질 법하고, 선뜻 읽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게 된다. 완역본 표지에 있는 그림도 꽤 충격적이면서도 분위기가 으스스하다. 15~16세기 유럽으로 추정되는 그림 속 여인은 젖가슴을 훤히 보일 정도로 옷을 반쯤 벗은 상태에서 자신의 복부에 칼을 찌르고 있는 중이다. 이제 막 목숨을 끊으려는 여인의 표정은 상당히 멜랑콜리하다.
최근에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2002년 완역본을 발견했을 때 횡재했다. 2008년에 나온 개정판인 『자살백과』도 품절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책을 사기 위해 카운터로 계산했을 때 점원의 눈치가 신경 쓰였다. 아마도 책의 제목과 표지 때문에 점원은 놀라면서도 이 책을 사는 고객이 조금은 이상하게 보였을 것이다. 자살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책을 읽고 있었을 뿐인데...
이 책에 대한 독자서평을 보게 되면 자살에 대한 사례와 유형만 나열되어 있을 뿐, 깊이 있는 분석과 통찰이 부족하다는 평이 대체로 많았다. 다양한 기록에 대한 저널리스트적인 호기심과 수집은 칭찬해줄만 하나, 백과사전 수준의 나열에 그친 ‘자살백과’가 되었다. ‘자살이 과연 나쁜 것인가 ’하는 명제를 철학적으로 파고들려는 시도는 하고 있지만, 몽테스키외, 뒤르켕, 몽테뉴 등 유명 명사들의 말을 단순 인용하는데 그치고 있다.
저자가 아무리 자료 수집이 탁월한 저널리스트라고 해도 사실을 날조한 내용을 진위 여부를 하지 않은 채 소개한 점은 옥에 티다. 저자는 희생적 집단 자살의 사례로 든 ‘칼레의 시민’은 후대에 왜곡, 과장된 내용이다.
‘칼레의 시민’은 영국과 프랑스의 백년전쟁 당시 프랑스의 항구 도시 칼레를 구한 영웅들을 말한다. 칼레 시민군은 영국군의 집중 공격에 끝까지 저항하지만 끝내 함락되어 모두가 몰살될 위기에 처한다. 백기를 든 칼레 시장 비엔은 영국 왕의 선처를 호소했다. 칼레의 저항으로 악전고투했던 영국 왕 에드워드 3세는 조건을 내걸었다. 시민을 대표하는 6명이 스스로 나서 처형을 받는다면 나머지 사람들은 살려주겠다는 것. 가혹했다. 의견이 분분했다. 시민들 각자 무슨 생각을 했을지,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에드워드 3세는 칼레의 분열과 자멸을 의도했을 게다. 그러나 칼레 시민은 달랐다. 최고 갑부가 먼저 자원했다. 이어 가장 존경받는 사람이 따라 나섰다. 이런 식으로 6명은 채워졌다. 영국군 진지 앞에 선 그들에게 마침내 교수형 집행 명령이 떨어졌다. 이때 임신 중이던 왕비가 간청했다. 뱃속의 왕자를 위해서라도 저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에드워드 3세는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는 왕비의 뜻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이야기와 달리 칼레 항복에 관한 기록들에 의하면 에드워드 3세는 칼레의 시민 대표를 처형하려는 의도가 없었다고 한다. 칼레 시민 대표는 처형받기 위해서 나섰다기보다는 자신의 잘못을 참회하는 죄인이 광장에서 공개적으로 행진하는 종교 의례와 유사한 행위로 추정한다. 또 이 이야기는 프랑스인의 애국심이 투영되어 민족 정서에 호소하는 미담으로 가공되었고, 민족주의 열기가 고조되던 19세기부터 칼레의 시민들은 민족 영웅으로 부각되었다. 그래서 칼레 시민 대표의 행위를 집단적 자살의 사례로 보기 어렵다.
책의 완성도를 떨어뜨리는 또 다른 주범은 오탈자의 등장이다. 특히 영문 표기법을 따르지 않은 듯한 인명(人名)의 오탈자는 번역자(두 명의 번역자가 공동 번역했다)의 상식을 의심케 한다. 책을 읽으면서 발견한 오탈자를 소개해본다.
“아베라르는 종교의 길로 들어가면서 로이즈에게 편지를 써서 그녀와 함께 무덤에 들어가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126쪽)
중세 유럽을 발칵 뒤집은 유명한 스캔들의 주인공. 철학의 대가이자 성직자였던 아벨라르와 그보다 16살 어린 엘로이즈를 언급하고 있다.
“임신 중이던 쟌느 에뷰텔느는 모딜리아니가 죽은 다음 날, 너무나 사랑했던 사람이 죽은 것을 슬퍼하여 5층 창문에서 뛰어내렸다.” (126쪽)
이탈리아의 화가 모딜리아니가 병으로 사망하자 그의 아내인 쟌느 에뷔테른(또는 ‘잔 에뷔테른’)가 자살한 사건을 소개했다.
“타시가 쓴 「연대기」에는 텔 식스트가 어머니의 애무를 거부하고 자살한 것으로 되어있다.” (136쪽)
아우구스투스에서 네로까지 네 황제에 걸친 로마의 치세를 정리한 『연대기』의 저자는 ‘타키투스’이다.
“전기작가 에토니우스에 의하면 옥타비아누스는 부르터스의 머리를 잘라 로마로 보내 케사르 동상 아래에 던지게 했다고 한다.” (153쪽)
‘부르터스’(브루투스), ‘케사르’(카이사르)는 봐줄 수 있다. 그런데 12명의 로마황제의 전기를 쓴 고대 로마의 전기 작가 수에토니우스를 ‘에토니우스’로 표기한 점은 너무 심했다.
2008년 개정판이라면 2002년 완역본의 오탈자를 바로 잡을 줄 알았건만, 2008년 개정판 100자평에 오역, 오타를 지적한 내용이 있다. 개정판이 아니라 책 표지와 제목만 살짝 바꾼 것뿐이다.
여러 모로 내용과 편집 면에서 아쉬움이 많이 남은 책이지만, 결국 이 책을 읽으면서 딱 하나 얻은 결론은 이렇다. 인간은 여러 가지 이유로 자살한다. 사랑, 부끄러움, 중상모략, 불명예, 이타적인 희생, 명령, 신념, 정치적 위기, 빈곤과 파산, 정신 질환, 부당한 대우, 미신과 주술 등이다. 쉽게 말해서 삶의 모든 관념과 행위가 죽음의 이유가 될 수 있는 셈이다. 그리고 평범함을 거부하는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자살하는 과정은 죽기 위해 온갖 기발한 방법을 시도하는 토끼가 나오는 앤디 라일리의 만화 『자살토끼』(거름, 2004년)를 떠오르게 한다.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자살들은 신념의 표현이라기보다는 헤어날 수 없는우울의 자기 도덕적인 표현에 가까운 것이다. 미셸 푸코의 지적처럼 자살은 ‘상상할 수 있는 최후의 방법’이다. 자살이 전면화한다는 것은 다른 가능성을 상상할 수 있는 길들이 사회 내부적으로 폐쇄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사회가 막다른 골목일 수밖에 없을 때, 그것처럼 우울한 일이 또 있을까. 막다른 골목의 우울이 사람들을 자살로 이끌었다면, 살아 있는 사람들은 그 막다른 골목의 우울을 살아간다. 따라서 우울은 죽은 자와 살아 있는 자 모두의 것이 된다. 자살이 단발적인 사건으로 끝나지 않고, 자살 신드롬으로 이어지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자살에도 문화적인 요인, 달리 말하면 모방과 유행의 측면이 있다. 하지만 적어도 자살만큼은 문화 현상으로 자리 잡지 않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삶의 고유성과 죽음의 숭고함에 대한 세심한 배려를 회복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절이다.
P.s 마르탱 모네스티에는 독특한 주제에 관심이 많은 언론인이다. 그는 자살뿐만 아니라 심지어 ‘똥오줌’에 관한 역사를 집대성하기도 했다. 문학동네에서 『똥오줌의 역사』(2005년, 품절)로 번역, 출간되었다. 우리가 더럽게 생각하는 똥오줌도 역사의 주제가 될 수 있다니. 지저분한 내용이 많겠지만, 실로 흥미로운 책이 아닐 수 없다. 『자살』만큼 독자들을 확 끌어당길 정도로 책 제목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이 책도 중고샵이나 헌책방에 발견된다면 꼭 구입하리라. 그런데 이 책도 정가보다 비싼 가격으로 책정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