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서가라면 세상에 몇 권 안 남은 희귀 도서 한 권쯤 가져보는 것이 일대 소원이다. 희귀 도서가 내 손으로 들어오는 순간, 그 쾌감의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로또에 당첨된 기분이랄까. 너무 기분이 좋으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희귀 도서를 공개해서 자랑한다. 그런데 희귀 도서를 공개하면 여러 가지 문제점이 생긴다. 애서가의 마음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책 한 권 가졌다고 자랑하는 태도를 한심하게 본다. 또한, 적지 않은 돈을 내면서까지 책 한 권을 사려는 모습을 이해하지 못한다. 다른 애서가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지 못한 희귀 도서를 획득한 사람을 보면 부러워한다. 그래서 자신이 원하는 희귀 도서를 가진 사람에게 비밀리에 접촉해서 양도해달라고 제안하기도 한다. 단호하게 거절해도 찰거머리처럼 달라붙어 끝까지 요구한다. 특히 희귀 도서에 대한 소유욕이 강한 애서가끼리 만나면 서로 만족하는 협상이 이루어지지 못한다. 책 소유자는 책을 빌려주는 것을 불허한다. 왜냐하면, 상대방이 책을 받자마자 연락을 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책을 원하는 자도 만만치 않다. 쉽게 물러서지 않는다. 소유 집착이 강한 그들은 제본이라도 해서 희귀 도서를 제 손으로 만져보고 싶은 심정이다. 그래서 딱 제본만 할 테니 책을 잠시만 빌려달라고 부탁한다.
오늘 희귀 도서를 소개하면, 책을 원하는 사람이 언젠가 나타날 거다. 미리 밝히겠지만, 양도는 물론, 대출도 허락하지 않는다. 일면도 없는 사람에게 내 물건을 빌려주는 일이 쉽지 않다. 불편하다. 책을 공개하는 일이 부담스럽지만, 출판사 이벤트를 응모하기 위해서 처음으로 공개한다. 책 좋아하는 분들이 눈으로나마 즐거웠으면 하는 바람이다. 희귀 도서와 관련된 경험담이 만우절을 위한 거짓말처럼 보일 수도 있다. 거짓말 같아 보여도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믿으시라.
* 《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1977년 초판, 1982년 중판)
이 책은 2014년에 소개한 적이 있다. 그때가 마르케스가 세상을 떠난 지 2주 지났을 무렵이다. 《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다》는 마르케스의 초기 중단편 소설들을 모은 정식 작품이다. 번역본은 세로쓰기로 되어 있다. 마르케스의 대표작 《백 년 동안의 고독》보다 일찍 나왔다. 마르케스는 처음에 단편소설로 작가 생활을 시작했다. 그 시기에 나온 결과물이 바로 ‘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다’와 ‘마나님의 장례식(마마 그란데의 장례식)’ 등이다. 이 두 작품은 마르케스의 대표 단편으로 알려졌지만, 현재 나오고 있는 마르케스 중단편선집(《꿈을 빌려드립니다》)에 수록되지 않았다. 나는 마르케스의 단편선집을 알라딘 회원 중고로 만 원이라는 가격에 구입했다. 만 원이라면 정말 저렴한 가격이다. 이런 귀한 책은 보통 5만 원 넘어간다.
* 《시와 깊이》 J.P. 리샤르 (1984년) / 《옥따비오 빠스 : 시와 산문》 옥타비오 파스 (1990년)
‘이상북’의 주인장이자 작가인 윤성근 씨는 민음사 이데아총서 전권을 모은 사람을 만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사실 절판된 이데아총서 한 권 가지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운이 좋으면 헌책방에 만날 수 있다. 두 권의 책 모두 대구 헌책방에서 구입했다. 《시와 깊이》는 3,000원, 《옥따비오 빠스 : 시와 산문》는 5,000원이었다.
장 피에르 리샤르는 프랑스 신비평(新批評)을 대표하는 비평가다. 리샤르의 신비평이 본격적으로 소개된 것이 바로 1984년에 나온 책 《시와 깊이》다. 신비평이란 연대기 순으로 정리되는 전기적 관점의 기존 비평을 탈피하여 비평가의 특정한 관점으로 작품을 해석하는 비평 방식이다. 쉽게 말하면 작품 자체만 분석하는 것이다. 신비평 주의자들은 문학 작품의 구조를 파악하지, 작가와 그가 살았던 시대적 연관성과 관련된 분석을 거부한다. 리샤르의 《시와 깊이》는 네르발, 보들레르, 랭보, 폴 베를렌을 ‘깊이’(또는 ‘심연’)라는 관점으로 분석한다. 신비평이 낯선 독자들은 리샤르의 책이 어렵게 느껴진다. 사실 나도 보들레르 편만 읽다가 그만둔 상태다.
옥타비오 파스(1914~1998)는 멕시코 출신 시인이다. 1990년에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옥따비오 빠스 : 시와 산문》는 1990년 10월에 출간되었는데 운 좋게도 시인의 수상 소식에 맞춰 나왔다. 사실 어제 3월 31일이 파스가 태어날 날이다. 파스는 칠레의 파블로 네루다와 함께 스페인어권 중남미문학의 대표적 시인이다. 그는 시를 통해서 잃어가는 인간성에 되찾으려고 했고, 초현실주의로 자신만의 시 세계를 구축했다.
* 《브이를 찾아서》 토머스 핀천 (1991년)
이데아 총서 중에 가장 구하기 힘들고, 애서가들이 가지고 싶어 하는 책이 바로 핀천의 《브이를 찾아서》이다. 회원 중고가 3만 원으로 나온 것을 확인하자마자 바로 주문했다. 책을 주문하기 전에 책 상태가 걱정스러웠다. 다행히 심하게 손상된 곳이 없었다. 네이버 검색창에 ‘브이를 찾아서’를 입력하면 관련 글이 고작 네다섯 개에 불과하다. 나머진 추억의 드라마 ‘V’ 아니면 '태권 V'에 관한 내용이 수두룩하다. 그만큼 《브이를 찾아서》를 소장하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 그뿐만 아니라 이 작품을 제대로 읽고 이해한 사람도 찾기 어렵다. 윤성근 씨도 처음에 《브이를 찾아서》를 읽는 데 줄거리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우스갯소리로 《브이를 찾아서》가 이해 안 되면 핀천 관련 학술논문부터 먼저 읽으라는 말이 전해진다. 핀천의 소설은 미국 포스트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평가받지만, 줄거리가 복잡하고 난해하기로 악명이 높다. 윤성근 씨의 《심야책방》(이매진)에 《브이를 찾아서》의 줄거리가 언급된다. 그리고 윤성근 식 《브이를 찾아서》독서법도 소개되었다. 한 번 따라 해 볼 생각이다.
민음사 판이 나오기 전인 1984년에 학원사(주우세계문학)에서 두 권짜리 번역본이 출간되었다. 이 책 또한 전설의 희귀 도서다. 학원사 판은 하얀 색 표지로 되어 있고, 주우사로 나온 번역본은 기다란 숟가락이 있는 그림을 표지로 사용했다.
모 블로거가 두 권짜리로 된 주우사 판 사진을 공개한 적이 있는데, 표지 그림은 살바도르 달리가 그렸다. 사실 작년에 학원사 판을 회원 중고로 구입한 적이 있었다. 가격이 5만 원. 알라딘 굿즈의 유혹을 피하면서 악착같이 모아놓은 적립금을 쓸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일단 주문하는 데 성공했으나, 주문한 지 네 시간 뒤에 판매자로부터 판매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엄청난 책을 손에 놓친 아쉬운 마음 때문에 잠을 설쳐야 했다. 다행히 5만 원 적립금은 돌려받았지만, 허무한 여운이 사라지지 않았다. 판매가 안 되는 이유가 궁금해서 판매자에게 직접 따지고 싶은 심정이었다.
*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특별판》 (2009년)
혹시 저 표지 속에 있는 돼지가 ...
붉은돼지님...?
이 책 속에는 좋은 기억, 안 좋은 기억 모두 간직하고 있다. 좋은 기억이란 이 책이 서평 이벤트에 당첨되어서 받은 상품이라는 사실이다. 이벤트 명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리뷰 이벤트’였고, 2010년 7월 한 달 동안 진행되었다. 알라딘 블로그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 두 달 뒤에 기분 좋은 성과를 얻었다. 일단 여기까진 좋았다. 문제는 결과 발표 날 그다음부터였다. 8월에 이벤트 결과를 확인하고 한 달이 지나서도 상품이 오지 않았다. 참으면 상품이 곧 올 거라는 긍정적인 마음을 유지했지만, 두 달이 지나도 아직도 함흥차사였다. 어쩔 수 없이 알라딘 이벤트 담당자에게 문의했고, 내 불만사항이 민음사 직원에게 전해졌다. 그 덕분에 이벤트 상품에 관한 메일을 보낼 수 있었다. 그때가 10월 중순이었다.
상품이 받지 못해서 화가 나는데, 직원의 회답 메일 내용이 어이가 없었다. 발송이 늦어진 점에 대해 죄송하다고 대충 사과하고, 상품 관련 제세공과금을 내라고 한 것이다. 특별판 정가가 256,000원이었는데, 내가 내야 할 제세공과금은 56,320원이었다. 아, 진짜 속으로 족구를 여러 번 외쳤다. 분명히 이벤트가 진행되었을 때 제세공과금 언급이 없었다. 무척 억울했다. 이벤트 상품을 받는 것이 아니라 사야 한다니. 이게 무슨 시추에이션이란 말인가. 문득 상품 수령을 포기하고 싶은 생각도 살짝 들었다. 일반 사람이라면 그냥 포기했을 것이다. 그런데 너무 갖고 싶어서 내 통장에 고이 모셔둔 비상금을 깼다. 이 기회를 포기하면, 나중에 후회할 것 같았다. 그래서 입금하고 책이 오기를 기다렸다.
아, 세금을 보냈는데도 책이 안 와!!!
지금도 네이버 개인 메일함에 민음사 직원에게 보낸 메일이 저장되어 있다. 그래서 내가 메일을 보낸 날짜를 기억한다. 12월 2일에 다시 메일을 보냈다. 입금한 지 두 달이 지났는데도 책을 못 받았어요! 이번에는 강경한 자세를 취했다. 빠른 시일 안에 상품이 안 오면 출판사의 늑장 대처를 알리겠다고. 그러자 직원이 다시 한 번 집 주소와 주민등록번호를 알려달라고 요구했다. 저 우리 집에서 장남인데 장난하십니까? 기분을 가라앉히고 개인정보를 알려줬다. 개인정보를 두 번이나 알려달라는 출판사의 태도가 한심하다기보다는 의심스러웠다. 결국, 며칠 지난 후에 책이 도착했다.
선. 견. 지. 명
2010년 후반기 내내 특별판 세트 하나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다. 이 사건 이후로 나는 서평 이벤트를 응모하기 전에 제세공과금 언급이 있는지 꼼꼼하게 본다. 누군가는 내가 세금을 내면서까지 상품에 집착하는 모습이 이상하게 여길 것이다. 생각해 보니 그때부터 내 마음속에 잠자고 있던 책에 대한 애착 본능이 깨어난 듯하다. 지금 상황을 보면 그때 포기하지 않길 잘했다. 특별판 세트는 더 이상 구하기 힘든 책이 되고 말았으니까.
민음사에서 일하는 조XX 님. 잘 지내고 계시죠? 네, 제가 바로 상품을 얼른 보내달라고 메일을 보냈던 독자입니다. 조XX 님이 이 글을 보셨으면 참 좋았을 텐데. 제가 특별판 세트를 집에 잘 모셔두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어요. 사실 오늘 올린 사진 말고도 사서 읽은 민음사 책이 엄청나게 많아요. 그러니까 과거의 일로 인해 열을 올렸던 절 너무 미워하지 마세요.
+ 특이한 책 한 권 더. 이 책은 진짜다.
만우절을 노리려고 일부러 조작하지 않았다.
지금은 절판되어 사라져버린 문학전집 30번 나보코프의 《롤리타》. 《롤리타》 책등에 있는 작가 사진을 보시라. 문학전집 31번 《아메리카》의 작가 헨리 제임스의 외양과 닮아 보인다. 닮아 보이는 것이 아니라 두 사람 다 '헨리 제임스'다. 책이 잘못 만들어졌다. 나보코프는 헨리 제임스처럼 생기지 않았다.
뒤표지에 있는 작가 사진에도 나보코프가 아닌 헨리 제임스가 있다...
+ 지금까지의 모든 내용들에 거짓이 없습니다. 진짜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