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제임스 써버'라는 작가를 아시는가. 최근 제임스 써버의 책이 출간되고 있다.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생소한 작가의 이름이지만, ‘제2의 마크 트웨인’으로 불리는 미국의 단편작가이자 삽화가다. 마크 트웨인은 『톰 소여의 모험』『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집필하기 이전에 유머 소설 작가로 자신의 이름을 처음 알렸다. 세상을 위트 있게 풍자하는 트웨인의 미국적 유머는 인간성이 상실되는 물질문명을 배격하고 대범하게 비판하는 표현으로 유명하다. 써버의 유머 또한 물질문명 속에 놓여진 개인의 고독을 뒤집어 놓은 점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써버에게 유머란 “어떠한 정서의 혼란을 성찰하여 부드럽게 이야기한 것”이라고 말했다. 써버도 트웨인 못지않게 작가 이전에 많은 직업을 전전했다. 국무성 공무원, 지방신문 기자로 활동했으며 <뉴요커> 지의 편집에 참여함으로써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어릴 때부터 한쪽 눈이 나빠 말년에 실명하고 만다. 어린 시절 자신의 형제들과 ‘빌헬름 텔’ 놀이를 하다가 그만 화살이 한쪽 눈을 찌르는 사고를 겪었다. 비록 한쪽 눈은 보이지 않아도 써버는 죽을 때까지 글과 그림을 남겼다.

 

지금까지 국내에 출간된 써버의 책(e-Book 포함)은 다음과 같다.

 

 

 

 

 

 

 

 

 

 

 

 

 

 

 

 

 

 

 

 

 

 

 

 

 

 

 

 

 

* 『난쟁이 퀼로우』 민음사 (1992년, 품절)
* 『나방과 별』 동천사 (1996년, 절판)
* 『아주아주 많은 달』 시공주니어 (1998년)
* 『열세 개의 세계』 살림어린이 (2009년)
* 『공주님의 달』 이스토리 (2012년, e-Book)
* 『월터 미티의 은밀한 생활』 뗀데데로 (2013년)
* 『공중그네를 탄 중년 남자』 뗀데데로 (2014년)

 

 

알라딘에는 ‘제임스 서버’, ‘제임스 써버’로 표기되어 있는데 둘 다 하나만 검색해도 동일한 저자의 책을 확인 가능하다.

 

작년에 『월터 미티의 은밀한 생활』이 출간되었을 때 알라딘 온라인 중고샵에서 2천 원도 안 되는 싼 가격으로 『나방과 별』을 구입했다. 알라딘에서는 책 표지가 등록되어 있지 않았는데 실물은 이렇다. 초등학생이 보는 동화책이 연상된다. 사실 분량이 얇은데다 우화, 짧은 동화들이 수록되어 있어서 초등학생이 읽어도 좋다.

 

 

 

 

 

 

그런데 이 책이 어느새 절판되고 말았다. 내가 중고샵에서 구입했을 때만 해도 구입이 가능했다. 이렇게 또 한 권의 책이 조용히 사라지는구나.

 

『나방과 별』에는 ‘우리 시대의 우화’, ‘인생의 경주’, ‘다락방의 올빼미’라는 부제목으로 우화와 동화 그리고 써버가 직접 그린 삽화가 수록되어 있다. ‘우리 시대의 우화’는 동물 또는 인간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13편의 우화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 우화에 삽화 한 점이 실려 있고, 이야기의 끝에 짤막한 교훈도 언급한다. ‘인생의 경주’는 글이 아닌 35개의 그림으로 만든 한 편의 이야기다. 인생을 ‘경주’로 비유하여 그림으로 표현했다. ‘다락방의 올빼미’(부제: 애완동물 상담극)은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의 고민을 직접 써버가 해결책을 제시하면서 답변해주는 대담 형식의 콩트이다

 

이 책은 서문의 내용이 독특하다. 써버가 직접 쓴 건데 3인칭 관점으로 자신을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써버는 어린 시절에 겪은 실명한 사고를 언급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별다른 일 없이 평탄했다고만 술회할 뿐이다. 나머지는 간단한 이력만 언급했다.

 

 

 

 

 

책의 동명 제목이기도 한 우화 ‘나방과 별’은 자신만의 꿈을 가지면서 삶의 한계를 넘어서는 노력의 가치를 강조한다. 감수성이 예민한 나방 한 마리는 별로 날아가는 꿈을 가지게 되었는데 나방의 부모는 어림도 없는 일이라고 충고한다. 나방의 부모는 자신들은 별이 아닌 램프 주위에 맴도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별을 쫓는 방향으로 날아가지 말라고 다그친다.

 

그러나 별을 열망하는 나방은 저녁이 되면 별이 있는 곳으로 날기 시작했다. 날마다 아침이 돼서야 녹초가 된 상태로 집으로 돌아왔다. 부모는 주인공 나방이 나방의 습성처럼 램프 주위에 돌다가 타버리지 못하는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도 나방은 램프 근처로 맴돌다가 타다 죽고 싶지 않았다. 오로지 별에 가까이 날아가고 싶었다. 그는 결코 별에 갈 수가 없다. 빛의 속도로도 4년이 넘게 걸리는 아주 먼 곳에 떨어진 곳을 연약한 날갯짓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도 나방은 포기하지 않았다. 이미 나방의 부모와 형제들은 램프 주위를 돌다가 타서 죽었다. 별을 열망하는 나방은 다른 나방에 비해 오래 살 수 있었다. 늙어버린 나방은 생각했다. 비록 실제로는 별에 다다르지 못했지만, 자신은 드디어 별에게 다가갔다는 것을. 이렇게 생각하자 그에게는 영원한 기쁨이 찾아왔다. 그것은 바로 자신을 오래 살 수 있도록 빛나게 해 준 진정한 꿈을 발견한 것이다. 그것이 바로 나방의 삶을 빛나게 해준 진짜 별이었다. 만약에 별에 가고 싶은 꿈을 가지지 않았다면 주인공 나방도 램프 빛에 타서 죽었을 것이다.

 

 

 

 

 

 

 

 

 

 

 

간혹 글 대신 그림만 구성된 이야기도 있다. ‘사냥개와 빈대’는 글이 없다. 16개의 그림으로 이루어져 있다. 앞에 소개한 우화처럼 교훈을 주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그냥 빈대가 움직이는 것을 지켜보는 사냥개의 모습을 관찰해서 그림으로 묘사한 것 같다. 

 

현재 출간된 써버의 책 중에서 내용이 아주 간략해서 킬링타임용으로 읽을 수 있다. 아직 써버의 다른 책을 읽어보지 않아서 『나방과 별』의 삽화가 진짜 써버가 그린 것인지 의문이 조금 든다. 사실 삽화가 너무 단순하면서도 투박하다. 아무래도 초등학생 독자 대상으로 책을 편집해서 그런지 이 책만 가지고 써버의 그림 실력을 알 수 없을 듯하다.

 

솔직히 말해서 『나방과 별』에 수록된 우화, 즉 ‘나방와 별’을 포함해서 몇 편을 제외하면 교훈성과 거리가 먼 곳도 있으며 ‘다락방의 올빼미’는 애완동물 보호자의 고민을 유머스럽게 해결책을 제시하는 써버의 의도가 그렇게 재미있게 느껴지지 않았다. 미국식 유머는 한국식 유머와 차이가 있긴 하다. 써버의 이야기에서 느껴지는 마크 트웨인 뺨치는 유머를 재미있게 살리지 못한 번역도 아쉽다. 

 

책에 수록된 이야기 중에서 가장 내용이 어이없으면서 엽기적인(?) 결말의 콩트 한 편 소개하면서 써버의 절판된 책에 관한 잡문을 마무리짓겠다. 이건 우화라기보다는 우리가 아는 동화 ‘빨간 모자’를 색다르게 비틀어버린 패러디로 봐야하나. 어쨌든 써버의 삽화와 그가 언급한 교훈 한 마디가 유머스럽다.

 

 


<소녀와 늑대> (58~59쪽)

 

 어느 날 오후 어두컴컴한 숲속에서 커다란 늑대가 음식을 바구니에 담아 할머니에게로 가져갈 한 소녀가 숲을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내 소녀가 숲으로 걸어왔다. 음식을 담은 바구니를 들고서 말이다.
 “너는 그 바구니를 할머니께 가져가는 거냐?” 늑대가 물었다.
 소녀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 말은 사실이었다. 그러자 늑대는 소녀의 할머니가 어디에 사는지를 물었다. 소녀는 늑대에게 할머니의 집을 가르쳐주고 숲속으로 총총히 사라졌다.
 할머니가 계신 집의 문을 열었을 때 소녀는 침대 위에 누군가가 나이트캡을 쓰고 잠옷에 갖춰 입고 누워 있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침대로부터 스물다섯 발자국 이상은 가까이 가지 않았다. 소녀는 침대에 누워 있는 것이 할머니가 아니라 늑대라는 것을 눈치 챘던 것이다. 아무리 늑대가 나이트캡을 썼다 해도 할머니와는 조금도 닮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녀는 들고 있던 바구니 속에서 자동권총을 꺼내 늑대를 쏘아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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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20년 전에 명상에 관련된 책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시기가 있었다. 1990년대 국내 출판계에 크리슈나무르티, 칼릴 지브란 등의 책과 함께 많은 작품이 번역 소개되었다. 내가 초등학생 시절(1995~2000년)에 교실 학급문고 책장에 꼭 크리슈나무르티의 <자기로부터의 혁명>과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가 꽂혔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 때만해도 크리슈나무르티와 칼릴 지브란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었고 크게 관심도 가지지 않았다. 그래도 지브란의 <예언자>는 분량이 얇아서 한 번 읽어본 적이 있었다. 그래도 초딩이 심오한 명상의 세계를 제대로 알 리가 있나. 처음에는 지브란의 글을 이해할 수 없었다. 긴 내용의 시 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누군가에게 향하는 일종의 주문서 같은 신비스러운 분위기의 문장은 무척 난해하게 느껴졌다.

 

지브란, 크리슈나무르티 이외에도 국내에 한창 이름을 알리고 있었던 명상철학자 한 명이 또 있었으니 그가 바로 오쇼 라즈니쉬다. 라즈니쉬는 1931년 인도의 자이나교 집안에서 태어나 22세 때 어느 날 공원에서 ‘깨달음’의 세계에 발을 들여 놓은 후 철학을 전공했다. 자발푸르대학에서 강의를 했으며 1964년에는 명상캠프를 열어 동서고금의 종교경전 등에 대해 설법했다. 그는 1990년 1월 ‘바다와 같이 무한하다’는 뜻을 지닌 오쇼라는 이름을 남기고 세상을 떠나기까지 2백여 권에 달하는 저서를 남겼다.

 

 

 

 

라즈니쉬가 작고한지 일 년이 지난 이듬해 출판사마다 다투어 라즈니쉬의 명상서가 홍수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특히 라즈니쉬의 대표작으로 가장 먼저 소개되는 우화모음집 <배꼽>(박상준 역, 장원, 1991년 중판)은 발간 4개월 만에 20쇄 50만부를 찍고, 교보문고 및 각종 서점에서 베스트셀러 종합 1위를 기록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배꼽>을 낸 출판사 입장에서는 라즈니쉬 열풍 덕분에 대박을 쳤다는 점이다. 장원출판사는 1988년 11월 24에 정식으로 법인 등록되었다. <배꼽>은 1990년 연말에 처음 출간되었는데 문을 연지 2년 밖에 안 된 신진출판사의 책이 베스트셀러를 기록한 것이다.

 

지금은 사라진 종로서적이 집계한 1991년 베스트셀러 목록을 보면 당시 우리나라 독자 성향의 일면을 확인할 수 있다. 1991년에 가장 잘 팔린 책들은 공통적으로 인도 명상철학가의 우화집, 사랑을 주제로 한 소녀취향의 시집과 수필집이었는데 그 중에서 라즈니쉬의 <배꼽>은 종교 분야가 아닌 수필/비소설 분야에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했다. 비소설 분야뿐만 아니라 <배꼽>은 1991년 올해의 최고 인기 책이라고 불릴 정도로 가장 큰 대중적 인기를 얻었으며 출판사측 말에 의하면 1991년 11월까지 1백27만부를 팔았다고 한다.

 

라즈니쉬의 <배꼽>이 대박 난 이후에도 국내 출판사들은 앞 다투어 라즈니쉬의 글 모음집이나 저서를 출판했지만 역자와 출판사가 임의대로 편집한 책들이 많았다. 지금까지 국내에 번역한 라즈니쉬의 수십 권의 책들 중에 라즈니쉬가 직접 쓰고 출판한 공식적인 텍스트 자체를 온전히 번역한 책이 있을지 의문이 든다. 왜냐하면 장원의 <배꼽> 같은 경우에도 ‘배꼽’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하나의 완성된 텍스트가 아니기 때문이다. <Tao: The Pathless Path>(전 2권)과 <Sufis: The People of the Path>(전 2권) 외에 10여 권의 텍스트에서 역자가 우화들을 골라서 한 권의 우화 모음집으로 만든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장원 이외에도 타 출판사에서도 제목 그대로 따온 유사도서가 출간되거나 심지어 ‘배꼽’ 인기를 반영한 듯 <배꼽 2><배꼽 3> 같은 후속편도 나왔다. 이러한 출판사들의 과잉 출판은 ‘표절도서’로 문제점이 드러났다. 일부 서점은 독자를 현혹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배꼽> 유사도서를 판매 중단하기도 했다.

 

 

 

 

 

헌책방에서 구한 두 권짜리 <배꼽>은 같은 역자에, 같은 출판사에서 낸 것이 아니다. 1권은 ‘장원’에서, 2권은 ‘카나리아’라는 출판사에서 낸 것이다. 책 표지가 서로 비슷해서 같은 출판사에서 낸 것으로 오해하기 쉽다. 나도 처음에 헌책방에서 발견했을 때 모르고 있었다가 뒤늦게야 출판사가 다른 사실을 알게 되었다. 두 책 다 책 앞, 뒤표지가 너무 유사하다. 아무래도 먼저 나온 장원의 <배꼽> 제목과 표지를 카나리아 출판사가 그대로 따온 듯하다.

 

카나리아 출판사 말고도 <배꼽> 또는 <배꼽> 시리즈를 낸 출판사가 더 있을 것이다. 아니면 <배꼽>에 수록된 우화 일부 내용은 다른 제목과 표지로 바꿔서 출간되었을지도 모른다. 지금도 저자명이 라즈니쉬로 표기된 책들이 간간이 나오고 있기 때문에 그 적지 않은 책들을 일일이 찾아서 확인할 방법이 없다.

 

그러나 확인하기 어려운 더 큰 이유가 그렇게도 많이 내던 라즈니쉬의 책들 절반은 이미 절판되었다는 사실이다. 20여 년 전 베스트셀러 종합 1위라고 해도 세월이 지나고 지날수록 대중의 기억에 잊히는 법이다. 1991년 가장 많이 팔린 장원의 <배꼽>은 헌책방에서 발견할 수 있는 책이 되었고, 한 권의 책 덕분에 잘 나가던 출판사는 1997년 이후로 책을 내지 않았다. 장원 출판사의 운명이 어떻게 되었는지 나름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봤지만, 출판사소식을 확인할 수가 없었다. 장원 출판사가 1997년까지 낸 책들이 현재 절판인데다가 그 이후로 책이 나오지 않는 걸로 봐서는 아마도 IMF 외환위기로 부도가 났을 것으로 생각이 든다.

 

1991년 라즈니쉬 열풍은 짧고 간결하면서도 교훈을 주는 이야기를 통해 정신적인 공허감을 극복하려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단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명상이나 신비주의 철학을 고집하는 독서가 무조건 좋다고는 볼 수 없다. 자칫 현실 문제를 외면하는 위험성이 내포되어 있으며 짧은 이야기로 구성된 우화라는 장르의 특성상 방대하고 심오한 명상철학의 본질이 왜곡될 우려가 있다. 간단하고 보기 쉬운 이야기만 선호하는 독서는 가볍고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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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cene #1   마크 트웨인의 반전(反戰)우화

 

 

   

 

 

 

『톰 소여의 모험』『허클베리 핀의 모험』등의 작품을 남긴 미국의 소설가 마크 트웨인의 『전쟁을 위한 기도』는 작가 사후 발표된 반전(反戰)우화이다. 이 작품이 우리나라에 번역된 시기는 지금으로부터 11년 전인 2003년. 당시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조지 W. 부시가 이슬람 국가들과의 ‘테러와의 전쟁’을 하고 있을 무렵이다. 그 때 미국 내에서 반전 분위기가 조성되었을 때 트웨인의 반전우화가 다시 한 번 조명받기 시작했다.

 

돌베개 출판사에 나온 이 작품은 현재 품절이다. 인지도 높은 작가의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대표작들의 인기에 가려서 크게 빛을 보지 못하고 만 것이다. 그러다가 운 좋게 이 책을 구할 수 있었다.

 

며칠 전, 돌베개 출판사의 공식 팬페이지(www.facebook.com/dolbegae)에서 『전쟁을 위한 기도』두 권이 남아 있는 것을 확인했다. 예전부터 관심 가졌던 책이라서 망설임 없이 책을 구입하겠다고 페이스북 메시지를 보냈다. 우편료 포함 정가로 책을 구입했다. 사실 출판사에서 직접 연락을 취해서 책을 구입한 것이 이번이 처음이다. 팬페이지를 관리하는 분에게 앞으로 돌베개의 품절, 절판된 책을 구할 때 페이스북 메시지를 보낼 수 있게 허락을 받았다. 메일보다는 페이스북 메시지가 답변을 빨리 확인할 수 있으니까.

 

돈을 입금할 수 있도록 팬페이지 관리자께서 성함과 은행계좌를 알려주셨는데 놀랍게도 그 분은 바로 돌베개 대표 한철희님이었다. 출판사 대표님이 지금까지 출판사 페이스북을 관리하고, 책과 관련 소식을 업데이트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대표님 혼자서 관리하지 않을 수도 있다. 웬만한 출판사 공식 카페나 페이스북은 주로 출판사 직원들이 관리, 운영하는 편이다) 독자들과 직접 소통하고, 좋은 책을 알리는 대표님의 모습에 돌베개라는 출판사를 다시 보게 됐다.

 

 

 

 Scene #2   평화로 포장된 전쟁의 비극

 

서로 다른 나라나 진영이 마찰을 일으키고 그 싸움이 무력적으로 번지는 것을 우리는 전쟁이라고 한다. 흔히 전쟁이라고 하면 '우리 쪽이 정의고, 저 쪽이 적이다'는 식으로 정의되어지고, 현란한 무기와 전술들이 구현되어진다. 그리고 우리의 주인공은 이 전쟁에서 승리하여 영웅이 되고, 평화와 정의가 실현된다.

 

‘평화’를 의미하는 영어의 ‘Peace’(피스)는 라틴어 ‘Pax’(팍스)에서 비롯된 말이다. 팍스는 고대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평화의 여신이다. 전쟁이 일어나면 정치적으로 혼란스럽고 사회적 불안감이 높아질수록 팍스는 더욱 신격화되고 숭배 받았다. 그녀는 올리브 나뭇가지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등장하는데 올리브는 ‘평화’와 ‘전쟁에서의 승리’를 동시에 상징한다. 전쟁과 평화가 공존하는 여신, 참으로 아이러니다. 결국 로마식 평화란 모름지기 전쟁(승리)을 통해서만 얻어진다는 것이다.

 

‘팍스 로마나’(Pax Romana), 곧 ‘로마의 평화’란 것도 힘에 의해 성취됐다는 걸 알게 된다. 주변국들을 무력으로 점령해 꼼짝 못하게 만들었으니 평화가 찾아온 것이다. 로마의 막강한 힘에 눌려 숨죽인 평화, 이게 팍스의 본래 모습이었다.

 

팍스가 로마식 평화라면 ‘Shalom’(샬롬)은 영적인 평화, 곧 신앙인의 참 모습이다. 구약시대엔 신이 인간에 내리는 축복을 샬롬이라 불렀다. 부활한 예수가 제자들에 처음 나타나 한 인사말이 ‘평화가 너희와 함께’, 곧 ‘샬롬 알레이켐’이었다.

 

마크 트웨인의『전쟁을 위한 기도』는 팍스의 위선을 통렬하게 꾸짖고 샬롬의 가치를 깨닫게 해주는 작품이다. 출병을 앞둔 젊은이들에게 전쟁의 광기와 맹목적 애국심을 심어주는 교회 목사가 등장한다. 목사의 설교가 끝나자 어느 늙은 이방인이 나타나 그를 나무란다. 알고 보니 노인은 하나님의 메신저. “지금까지는 너희들의 말로 하는 기도를 들었다. 이젠 내가 너희들의 마음속에 있는 기도를 말해 보겠다”며 풍자와 독설적인 언어를 사용해 전쟁의 광기를 고발한다. 다음은 노인이 전하는 '전쟁을 위한 기도' 전문이다.

 

 

 

“오! 주여, 우리 아버지시여!

 

 

우리의 젊은 애국자들이, 우리의 사랑하는 용사들이, 전장으로 나가나이다.

 

이들과 함께 하소서! 우리의 영혼도 이들과 함께 나아갑니다. 따스한 난롯가의 단란한 평화를 뒤로하고 적을 무찌르기 위해.

 

오, 우리 주 하나님이시여! 우리를 도우시어 우리의 포탄으로 저들의 병사들을 갈기갈기 찢어 피 흘리게 하소서. 우리를 도우시어 저들의 청명한 벌판을 저들 애국자들의 창백한 주검으로 뒤덮게 하소서.

 

우리를 도우시어 천둥같은 총성을 저들의 부상병들이 고통으로 몸부림치며 내지르는 비명속에 잠기게 하소서. 우리를 도우시어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포화로 저들의 누추한 집들을 잿더미로 화하게 하소서.

 

우리를 도우시어 저들의 죄 없는 과부들이 비통에 빠져 가슴 쥐어뜯게 하소서. 우리를 도우시어 저들이 집을 잃고 어린 자식들과 함께 흙바람 이는 황폐한 땅을 의지가지 없이 떠돌게 하소서.

 

누더기를 걸친 채 굶주림과 갈증 속에서 여름에는 이글거리는 태양에 겨울에는 살을 에는 한풍에 노리개가 되어 영혼은 찢기고 노고에 지친 몸으로 헤매게 하소서.

 

주님께 안식할 무덤을 갈구하더라도 거절하시고 주님을 경모하는 우리를 위하여, 저들의 소망을 산산이 날려버리시고, 저들의 생명을 시들게 하시고, 저들의 비참한 순례가 끝나지 않게 하시고, 저들의 발걸음을 더욱 무겁게 하시고, 저들의 눈물로 저들의 길을 젖게 하시고, 저들의 상처투성이 발에서 흐르는 피로 흰 눈을 얼룩지게 하소서.

 

우리는 그것을 바라나이다. 사랑의 정신으로 사랑의 근원이신 주님께. 우리는 그것을 바라나이다.

 

 

곤고한 처지에 놓여 회개하는 마음으로 겸허히 당신의 도움을 청하는 모든 이에게 항상 믿음직한 피난처요, 친구이신 주님께. 아멘.”

 

 

 

젊은이의 주검으로 덮인 들판, 부상자의 몸부림과 비명, 죄 없는 과부들의 슬픔, 그리고 끝없는 절망. 노인은 전쟁의 참상을 묘사했지만, 아무도 그를 믿어주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를 ‘미치광이’라고 생각했다.

 

전쟁은 끝나도 비극은 계속된다. 팔다리가 없는 상이군인들이 거리의 성냥팔이로 전락하고 소시민들은 빈곤에 허덕인다. 전쟁으로 특혜를 본 사람들은 사회에서 떵떵거린다. 그들은 폭력에 중독되면, 전쟁범죄를 저질러도 스스로를 합리화한다.

 

19세기 말 미국이 필리핀을 점령하자 마크 트웨인은 이처럼 전쟁의 야만성에 직격탄을 날렸다. 한마디로 로마식의 팍스를 질타한 것이다. ‘전쟁의 위한 기도’라는 제목에 우리 인류가 미치광이 같은 전쟁의 광기에 빠지지 말자는 뜻을 담고 있다. 팍스가 샬롬이 되고, 샬롬이 팍스가 되는 현실. 참으로 헷갈리는 세상이다. 이 세상에서 과연 진짜 ‘미치광이’는 누구인가.

 

 

 

 

 

 

 

 

 

 

 

 

 

 

 

 

 

P.s 마크 트웨인의 이 짧은 우화를 읽고 싶다면 스메들리 버틀러의 『전쟁은 사기다』를 읽으면 된다. 이 책 뒷편에 트웨인의 우화가 수록되어 있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전쟁의 추악한 이면을 고발하고 반전을 강조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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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14-02-14 1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이스 북에서 읽고 관심 가졌는데, 품절이라고 쓰셔서 아쉬웠습니다.
이 내용이 다른 책에도 실려있군요.
보관함에 담아가요.
좋은 정보 고맙습니다! ^^

cyrus 2014-02-14 22:35   좋아요 0 | URL
아니에요. 사실 돌베개 판본에는 삽화와 영어 원문도 수록되어서 얇은 분량인데도 깊이가 있어요. 그냥 가볍게 읽을 책이 아니에요. 저도 이 책이 품절이라서 아쉬워요.
 

 

 

 

 

 

 

 

 

 

 

 

 

 

 

 

 

 

 

 

 

 

 

 

 

 

 

 

 

 

 

 

 

 

 

 

 

 

 

 

 

 

 

 

 

 

 

 

『책은 도끼다』의 저자인 박웅현은 소설가 김훈을 이렇게 표현한다. ‘미친 사람’ 김훈. 박웅현은 김훈 덕후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김훈의 문장마다 감탄하고 있다. 그리고 자신의 줄 쳐놓은 김훈의 문장을 『책은 도끼다』에서도 인용한다. 박웅현이 감탄했던 김훈의 문장 하나 소개해본다.

 

“동백은 한 송이의 개별자로서 제각기 피어나고, 제각기 떨어진다. 동백은 떨어져 죽을 때 주접스런 꼴을 보이지 않는다. 절정에 도달한 그 꽃은, 마치 백제가 무너지듯이, 절정에서 문득 추락해버린다.” (김훈 『자전거 여행』중에서)

 

무엇을 보든 천천히 본다는 김훈다운 관찰의 힘과 탐사정신이 빛나는 문장이다. 박웅현은 "줄을 치고 또 쳐도 마음을 흔드는 새로운 문장들이 넘쳐나는 게 김훈의 책"이라고 말한다. 그만큼 문장마다 빛나는 생각들이 끊임없이 발견되기 때문에 김훈의 책은 될수록 천천히 읽고 음미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우리는 ‘미친 사람’ 김훈의 책을 천천히 읽고 음미하기가 쉽지 않다. 섬세하고 감성적인 김훈 특유의 문장의 맛을 단번에 느끼기 어려운 점도 있지만, 일반 서점에 김훈의 책 몇 권은 구입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특히『자전거 여행』이 그중 하나다. 김훈은 자전거 마니아로 잘 알려졌다. 자전거와 함께한 여정을 기록한 글 일부는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쉽게 읽을 수 있다. 『자전거 여행』은 2002년에 처음으로 출간되어서 2년 뒤에 2권이 나오기도 했다. 출간 당시, 『칼의 노래』와 더불어 많은 독자로부터 큰 인기를 받은 책이었으나 10여 년이 지난 지금, 두 권 다 절판되었다. 김훈을 좋아하는 독자들에게는 이 유명한 책이 서점에서 팔리지 않는다는 사실에 생소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책은 도끼다』에 소개된 김훈의 문장에 푹 빠져서 김훈의 책을 사고 싶은 마음에 당장 서점에 간 독자들은 낭패를 봤을 것이다. 꽤 많은 책을 보유하는 교보문고 광화문점에 가봤자 소용없다. 재고가 없으니까.

 

 

 

 

 

 

 

 

 

 

 

 

 

 

 

 

『자전거 여행』『칼의 노래』 등 김훈이 쓴 다수의 책은 ‘생각의 나무’라는 출판사에서 출간되었지만, 2011년에 부도가 나는 바람에 책이 하나둘씩 품절되고 절판되고 말았다. 그나마 다행히도 『칼의 노래』는 ‘문학동네’가 재출간해서 여전히 스테디셀러로 읽히고 있고, 최근에 문학동네 창립 20주년을 맞아 출간된 한국문학 전집 시리즈에 포함되었다.

 

 

 

 

 

김훈의 책 중 유일하게 소장하고 있던 책이 이제는 구할 수 없는 ‘생각의 나무’판 『칼의 노래』였다. 그러다가 어제 정말 운 좋게도 알라딘 중고샵에서 『자전거 여행』1권을 아주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었다.

 

어제 저녁에 친분이 있는 지인들을 동대구역으로 가는 방향에 있는 평화시장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런데 내가 그만 시장 이름을 착각하고 말았다. 대구역에 있는 번개시장으로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이다. 엉뚱하게 약속 장소가 아닌 대구역에 너무 이른 시간에 도착해서 약속 시간까지 알라딘 중고샵에 책 구경을 할 생각이었다. 알라딘 중고샵 대구점은 대구역에서 도보로 출발하면 10분도 채 안 걸린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가 있겠는가. 그곳에서 마침 『자전거 여행』1권을 발견했습니다. 새 책이나 다름없었고, 거기에 한정특별판 1쇄였다.

 

나는 깨끗한 상태의 책보다는 초판본을 더 선호하는 편이다. 무조건 맨 처음 나온 게 제일 좋은 것으로 생각한다. 평소에 서점에 가면 시중에 구하기 어려운 책을 잘 찾을 정도로 책 구입만큼은 촉이 좋은 편이다. 만약에 약속 장소를 정확하게 안 상태에서 동대구역으로 갔더라면 『자전거 여행』을 구입하지 못했을 것이다. 헌책방이나 알라딘 중고샵에서 절판본 몇 권을 구입했지만, 이런 경우는 정말 기분은 짜릿하게 느껴진다.

 

중고가로는 4500원. 정가가 비하면 상당히 저렴하게 구입했는데 절판본을 이렇게 싼 가격으로 판매되는 경우는 자주 오는 건 아니다. 인터넷 서점 온라인 중고샵이나 인터넷 쇼핑몰에서는 『자전거 여행』한정특별판 1권을 정가(11000원)보다 더 부풀려서 팔고 있다. 18000원에서 크게는 89000원까지 책정된 것도 있다. 그야말로 ‘미친 사람’이 쓴 절판본의 ‘미친 가격’이다. 이래서 터무니없는 금액으로 책을 ‘고가의 상품’처럼 파는 일부 회원들이 야속하게 느껴진다.

 

1권을 가지고 이상, 이제 2권도 마저 구입하는 일만 남았는데 아무래도 쉽지 않을 것 같다. 운이 따라줘야 하는 ‘촉’에 맡길 수밖에 없다. 좋은 책이 출판사를 만나지 못해 한순간에 독자들의 시선에서 사라져, 독자들의 손에서 영영 멀어지는 상황이 너무 아쉽기만 하다. 그저 『자전거 여행』이 다른 출판사에서 재출간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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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한창 헌책방의 매력에 푹 빠진 시기에 운 좋게도 구하게 된 책이다. 손석희 앵커가 쓴 유일한 책이다. 사실 ‘손석희’라는 이름의 활자가 적힌 책이 『풀종다리의 노래(1993년, 역사비평사)』와 『가슴속에 묻어둔 이야기(아침이슬, 2000년)』, 단 두 권뿐이다.

 

 

 

 

 

 

 

 

 

 

그러나 『가슴속에...』는 단독 저자로서 손석희 앵커가 쓴 책이 아니다. 월간 『말』이라는 잡지에 연재된 유명 연사들의 에세이를 모은 책이다. (이 책 또한 절판 상태다) 손석희 앵커를 너무나도 잘 알면서도 90년대에 태어난 젊은 친구들은 그가 쓴 책이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를 것이다. 나도 몰랐다. 헌책방에서 『풀종다리』를 만날 때까지는.

 

 

 

 

 

 

 

『풀종다리』가 출간된 시기는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그러니까 1993년,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가 들어서기 시작한 첫 해였다. 이 때 뉴스에서 많이 회자되었던 그 당시 사건사고에 관한 단상부터 시작해서 뉴스와 보도에 대한 자신의 신념 그리고 1992년 문화방송 노조 파업 이야기까지 책에 수록된 글의 사연은 다양하다.

 

글의 장르는 에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재미있게도 책의 출판사는 ‘역사비평사’다. 『역사비평』이라는 학술지도 만드는 역사 전문 출판사다. 손석희 앵커의 감상적인 에세이와 역사 전문 출판사의 조합. 이렇게 본다면 안 어울릴 것 같지만 에세이를 쓴 필자와 역사 전문 출판사의 만남은 ‘진보에 가까운 정도(正度)’를 지향하고 있었기에 충분히 가능했으리라고 본다.

 

『풀종다리』가 나온 지 20년의 세월이 흐른지라, 아무리 우리나라에 대중적 영향력이 높은 방송인의 글이라도 지나가는 세월의 흐름은 어쩔 수 없다. 2004년에 정식 재판되고 난 이후, 절판이 되었다. 절판된 사연이 궁금해서 인터넷에 남아 있는 손 앵커의 인터뷰 내용이나 기사를 검색해봤는데 출판사에서 더 찍겠다는 걸 말렸다고 한다.  손 앵커는 왠지 책을 더 내면 책 장사하는 것 같아서 재판을 거절했다고 한다.

 

 

 

 

 

현재 알라딘 중고샵에 판매되는 『풀종다리』. 가격이 어마어마하다.

 

 

20년 전 이야기로 가득한 글인데다가 손 앵커가 재판을 허락하지 않는 이상 지금 다시 나올 리 만무하고, 심지어 출판물 DB가 최적화되어 있는 인터넷 서점 알라딘, 교보문고, 예스24에 정식 등록되어 있지 않다. 인터넷 서점 전문 중고샵에 한두 권은 볼 수 있을 정도다. 절판 상태인데다가 유명 방송인이 쓴 유일한 책이라서 그런지 꽤 비싼 가격으로 헌책방 매물(?)로 나온다. 제일 비싼 가격은 55000원(책의 정가는 9000원). 시중에 구할 수 없고 나름 희귀한 가치가 있는 책은 터무니없이 높게 잡은 금액으로 헌책방에서 판매된다.

 

대구에서 알아주는 헌책방에서 구했을 때 판매가는 30000원이었다. 헌책방의 매력은 시중에 구할 수 없는 한 권의 책을 숨겨진 보물을 찾는 소유의 기쁨만 있는 것이 아니다. 웬만한 부탁을 해도 가격을 절대로 깎지 않으려는 고집 센 헌책방 주인과의 가격 흥정에서 승리하는 기쁨(?)도 맛봐야 한다. 헌책방에서 자주 출몰하는 젊은 단골손님이 아니었다면 반값에 가까운 가격으로 구입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흥정한 끝에 15000원으로 구입했다.

 

 

 

 

 

손때와 먼지가 전혀 묻지 않았을 정도로 워낙 깨끗한 상태로 보존된 책이라서 그런지 책장에 꽂혀있는 것을 매일 보면서도 시간이 딱 멈춘 듯한 느낌이 든다. 『풀종다리』가 손석희 앵커 특유의 변함없는 ‘바른 이미지’를 닮아가는 것 같다. 그래서 그의 글은 ‘역시 손석희’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소신 있으면서도 잘못된 세태를 비판하는 ‘바른 말’로 이루어졌다. 글이 참 읽기 쉬워서 거의 ‘칼럼’에 가까운 에세이로도 볼 수 있다. 20년 전에 쓴 글인데도 불구하고 기시감이 느껴진다. 20년 전, 손 앵커가 아쉬워하던 세상의 부조리한 장면은 얼굴과 시간만 달라졌을 뿐이지 여전히 남아 있기에 씁쓸한 기시감이기도 하다.

 

 

 

 

 

 

이틀 전 토요일에 중앙일보 오피니언에 대학생 칼럼을 쓴 학생분들과 함께 JTBC 방송국에서 손석희 앵커를 만나게 되었다.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수 있는 만남일 것 같아서 저자로서의 ‘손석희’의 친필 사인을 받고 싶었다. 그리고 꼭 그 분에게 이 질문을 하고 싶었다. 혹시 글이나 책을 쓸 계획이 없냐고. 만약에 손석희 앵커의 칼럼이 중앙일보 오피니언에 게재된다거나 또 새로운 책이 발간된다면 대중의 엄청난 반응을 상상해본다. (그런데 시간 부족 관계상 질문을 하지 못했다)

 

4시간 걸리는 서울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실을 때도 『풀종다리』를 다시 읽었다. 그 4시간이 지루할 법한데 책 한 권 덕분에 시간 빨리 가는 줄 몰랐다. 그리고 여러 번 『풀종다리』를 읽고 나서 느꼈지만, 손석희 앵커를 직접 뵈면서 느낀 감정을 한 마디로 요약한 문장으로 책의 소개를 마무리한다. ‘손석희 클래스는 영원하다’

 

 

 

 

 

 

 * 방송사 바깥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면 꼭 받게 되는 질문이 있다. “그 뉴스는 다 외워서 합니까?” 당연히 생길 수 있는 의문이겠지만 매번 그런 질문을 받다 보면 좀 답답해질 때가 있다. 사람이 기계가 아닌 이상 어떻게 그 많은 부분을 외워두었다가 카메라 앞에서 밑에 있는 원고를 보지 않으려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나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진행자로서의 나는 그저 단순한 ‘전달자’여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뉴스에서는 진행자 개인이 부각되어야 할 필요가 있어 보이지 않는다. (중략)

 

진행자들이 아무 의미 없이 때로는 현학적 수사로 포장된 기사를 외우고 있고 화면상 보이는 모든 요소들을 치장해 거기에 자족하고 있다면, 또 시청자들 역시 그에 매몰돼 있다면 우리의 방송은 불행하다. (「그 뉴스는 다 외워서 합니까」128쪽, 130쪽)

 

 

 * 오락 일변도의 시청률 경쟁은 결국 비판적 감시 또는 견제 역할이라는 공공성을 중시하는 방송의 이념적 목적지마저도 그 생존의 싸움터에 매몰시켜 버리거나, 아니면 신기루처럼 날려 버릴 것이다. 우리가 진실로 우려하는 것은 이것이다. (「문화관은 슈퍼마켓이 될 수 없다」141쪽)

 

 

 * 문화방송 뒤쪽 아파트 상가의 패스트푸드점 주인 아주머니는 요즘도 날 잘 알아보지 못한다.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않는 것이란 표현이 맞겠다. 기억력 탓이 아니니까...

연전에 동료들과 그 집에 처음 들렀을 때 주인 아주머니는 날 보더니 “얼굴이 어디서 본 것 같기는 한데” 했다. 나는 쑥스럽기도 하여 “이 집에 몇 번 왔었지요”하고 넘어가 버렸다. 그러자 아주머니는 “아, 그랬었지 참”하고 되받는 것이었다. 그냥 웃고 지나갈 참이었는데 우리 중 한 사람이 장난기로 말을 했다.

“아주머니 이 사람 모르시겠어요? 테레비에 나오는 사람인데.”

“테레비?”

“예. 저녁 때 채널 11번 틀면 이 사람 나와요.”

“아, 그래요? 무슨 시간에?”

“뉴스시간에요. 아나운서거든요.”

나는 옆에 앉아 있기가 영 곤혹스러워 이 친구를 연신 쿡쿡 찌르고 있었는데, 아주머니의 다음 얘기를 듣고는 파안대소하지 않을 수 없었다.

“11번이면, 그러니까 그게 TBC지?”

세상에 웬 TBC란 말인가. 십여 년 전에 없어진 동양방송이 멀리도 아니고 문화방송 바로 뒤에서 장사를 하고 있는 아주머니를 통해. 채널 11로 부활한 것이다. (「아나운서, 팔방미인 박명시대」142~143쪽)

 

- comment : 만약 아주머니가 지금 살아 있다고 가정하고 TBC가 채널 15로 부활한 JTBC 뉴스9를 진행하는 손 앵커를 브라운관에서 본다면 무슨 느낌이 들까? 아니, 사실 이 글의 문장만 손 앵커에게 보여주고 싶다. 본인도 20년 전에 만난 아주머니의 말씀처럼 중앙일보의 앞 글자 이니셜 ‘J'가 붙은 TBC에서 일하게 된 운명에 파안대소했을 것이다.

 

 

* 우리가 진실로 부끄러워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광기 어린 시대에 부화뇌동의 차원을 넘어 상쇠 노릇을 한 것만이 부끄러운 것인가. 아닐 것이다. 말할 수 있는 시기에마저도 침묵한 것 역시 부끄러운 일이다. (「잉크물에 담긴 63빌딩」168쪽)

 

- comment : 지금은 말할 수 있는 시기에 침묵하지 않는 사회가 되었다. 그러나 말할 수 있는 시기를 부정하고, 침묵하기를 강요하는 세력이 존재하니, 이마저도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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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4-01-14 1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손석희 아나운서가 책을 낸 적도 있었군요. 그때나 지금이나 그 사람은 여전히 담백한 모습이라 참 좋아 보여요~

cyrus 2014-01-16 23:19   좋아요 0 | URL
네, 그 날 손석희 아나운서를 직접 가까이서 처음 만났는데요, 역시 정직하고 바른 이미지는 평소에도 여전했어요. 그리고 뉴스와 언론에 대한 소신이 변하지 않았고요.

hnine 2014-01-14 1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이 이제는 헌책방에서 구할 수 있는 책이 되었군요.
전 이 책 나온지 얼마 안되어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었어요. 그때는 그저 인기 앵커라고만 생각했지 20년 후 지금과 같은 지명도를 같는 인물이 될지 짐작도 못했어요. 20년이 참 훌쩍 간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cyrus 2014-01-16 23:20   좋아요 0 | URL
20년 전에 나온 책을 썼을 당시에도 손석희 아나운서 본인도 그렇고, 그 누구도 훗날 세상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인이 될 지 예상하지 못했을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