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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치는 대로 끌리는 대로 오직 재미있게 이동진 독서법
이동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법(法)은 국가의 강제력을 수반하는 사회 규범 또는 국가 및 공공 기관이 제정한 법률, 명령, 규칙을 뜻한다. ‘법’은 외로운 글자이다. 그래서 ‘법’은 다른 단어의 뒤쪽으로 다가가서 기대는 것을 좋아한다. 그럴 때 법은 쓸모 있는 꼴이름씨(의존명사)가 된다. ‘법’은 다른 글자와 같이 있으면 혼자 썼을 때 이상의 의미를 만들어낸다. 학습법, 요리법, 운동법 그리고 독서법 등 다양한 예문을 만들 수 있다. 이 예문들은 어떤 행위를 원활하게 진행하기 위해 알아야 할 방법 또는 방식을 의미한다. 그런데 우리는 ‘법’의 의미를 단순하게 생각한다. ‘법’을 정해진 이치, 즉 어떤 행위를 할 때 당연히 해야 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아주 틀린 생각이 아니다. 그렇지만 우린 낱말의 의미가 주는 힘에 쉽게 이끌리고, 그것을 맹신한다. 특히 학습법, 요리법, 독서법이 ‘전문가’를 만나면 낱말의 힘은 한 단계 올라간다. 전문가의 ○○법. 이 낱말은 듣는 이로 하여금 믿음의 확신을 하게 만든다.
이 책의 제목을 살펴보자. 《닥치는 대로 끌리는 대로 오직 재미있게(약칭 ‘닥끌대오’), 이동진 독서법》. 나는 출판사(또는 저자)가 책 제목을 잘못 정했다고 생각한다. 모순된 제목은 독자의 혼란만 가중한다. 이 책의 저자 이동진은 이 세상에 반드시 끝까지 다 읽어야 하는 책은 없다고 말한다. 저자도 끝까지 못 읽은 책이 있다고 고백한다. 책을 많이 읽었는데도 2% 부족하다고 느끼는 애서가 입장에서는 정말 위안이 되는 말이다. 그의 말을 확인한 애서가들은 완독에 대한 부담을 덜어낼 수 있다.
그런데 편안히 독서의 즐거움을 알려준 1, 2부를 읽으면서 마음을 한시름 놓은 애서가들은 또다시 좌절감에 빠진다. 이 책의 3부이자 절정(climax)이라 할 수 있는 ‘목록_이동진 추천도서 500’이다. 이 어마어마한 목록을 눈으로 훑어보면서 독자들은 절정을 느낀다. 말로만 듣던 이동진의 독서 편력에 감탄하게 되고, 최고의 경지에 달한 그의 독서 수준에 탄복한다. 어떤 독자는 독서 목록에 포함된 책 중에 자신이 읽은 것이 있는지 찬찬히 살펴보면서 확인한다. 내가 읽은 책이 이동진도 알고 있으면 뭔가 나 자신이 특별하게 느껴지고 자부심을 가질 것이다. 반면 500권 중에 한 번도 안 읽은 책, 심지어 제목조차 모르는 책이 수두룩하게 나오면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이런 책을 왜 안 읽었을까’ 하면서 탄식의 소리를 낸다.
이동진은 독서의 근본적인 목적을 ‘있어 보이기’ 위한 지적 허영심이라고 말했다. 그가 말한 ‘지적 허영심’은 잘난 척하면서 허세를 부리는 행위를 의미한 것이 아니다. 이동진의 ‘지적 허영심’은 책을 읽으면서 자신의 모자란 부분을 메우기 위해 적극적으로 즐기는 행위에 가깝다. 이것은 ‘착한 지적 허영심’이다. 이동진의 도서 목록은 그가 오랜 기간 지식의 결핍과 동행하고,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만들어낸 좋은 결과물이다. ‘있어 보이고’ 싶은 그의 지적 허영심이 충실하게 반영되어 있다. 이동진은 독서뿐만 아니라 지식의 결핍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다. 그런데 독자들은 독서목록을 확인하는 순간, 《닥끌대오 독서법》을 읽기 전에 느끼지 못했던 지식의 결핍을 뼈저리게 느낀다. 지식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 이동진이 추천한 책들을 읽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독서에 여러 가지 목적이 있고, 특정한 목적이 무조건 나쁘다고 볼 수 없다. 하지만 추천도서 목록에 얽매이면 ‘목적 독서’로 빠질 우려가 있다. 이동진은 이 책에서 ‘목적 독서’를 경계했다. 독자들은 이동진의 추천도서 몇 권을 꼭 읽어야 할 거창한 목적을 세울 필요가 없다. 왜? 이동진은 책을 읽는 행위에 끝까지 책임지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고 강조했다. 즉 독서 행위에 엄격한 ‘의무’를 부여할 이유가 없다. ‘독서법’은 의무적인 느낌이 강하다. 분명 저자는 부담 가지지 말고 재미있게 책을 읽으라고 말하는데(‘닥끌대오’), ‘이동진처럼 책 읽기(독서법)’를 하지 않으면 내가 뒤처지는 느낌을 받는 것이다. 따라서 한마디로 말하면 책 제목 자체가 앞뒤 맞지 않는 ‘모순’이다.
책을 읽는 방법을 알려준 저자의 주장에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이동진은 책을 읽다가 ‘중간 휴식’을 취하는 느린 독서를 권장했다.
저는 책 읽는 중간 중간에 잠시 멈추는 것, 그것도 독서 행위이고, 더 나아가서 그것이 좋은 독서라고 생각합니다. 글을 읽다가 떠오른 생각을 집중하기 위해서, 그것을 넓혀나가기 위해서 또는 스스로 소화하기 위해서 책을 덮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57~58쪽)
나도 몇 차례 ‘중간 휴식’을 하면서 책을 읽는다. ‘중간 휴식’은 단순히 책을 덮는 행위가 아니다. 좀 나쁘게 보면 책을 산만하게 읽는다고 할 수 있다. 책을 읽을 때마다 인상 깊은 내용이 나오면 내가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메모지에 짤막하게 기록한다. 어떤 분야의 책을 읽느냐에 따라서 달라지는데, 보통 메모를 위한 중간 휴식을 수십 번 넘게 한다. 이렇다 보니 책에 몰입하는 집중력이 떨어지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나는 항상 이런 식으로 책을 읽어 왔고, 자연스럽게 몸에 밴 메모 습관 덕분에 지금처럼 리뷰를 쓸 수 있었다.
그런데 이동진은 책 속에 중요 문장을 발견하면 밑줄을 긋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말했다. 이동진이 부담스러워하는 ‘노트나 메모장을 따로 마련해서 적는 사람’은 비효율적인 독서를 하는 것이다.
따로 노트나 메모장을 마련해서 적는 사람도 있는데, 그것도 부담스러운 일이 됩니다. 그냥 읽으면서 바로바로 책을 쓰고 표시하는 게 가장 효율적입니다. (61쪽)
나처럼 ‘중간 휴식’에 메모장을 마련해서 기록하는 독서 방식은 밑줄 긋는 독서 방식과 비교해보면 비효율적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밑줄 긋는 독서 방식을 부담스러워하고, 책을 최대한 깨끗하게 유지하면서 읽어야 마음이 안정되는 애서가들도 있다. 이들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메모하는 습관을 조금씩 개선하면서 자신만의 독서 방식을 만든다. 그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책을 읽는다면 전혀 문제가 없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만의 독서 방식에 단점을 충분히 이해하면서도 책을 즐길 줄 안다. 과연 이런 독서 방식이 ‘비효율적 독서’라고 볼 수 있을까. 책을 읽다가 중간에 메모하는 것도 책을 소화하기 위한 또 다른 방식이다. 양자의 독서 방식을 비교하면서 자신에게 맞는 독서 방식을 일방적으로 옹호하는 저자의 입장에 유감스럽다.
난 이 책의 제목과 책의 구성을 볼 때마다 출판사가 ‘이동진’이라는 명사의 이름을 빌려 ‘독서법’ 관련 책을 쓴 것 같은 기분을 지울 수가 없다. 장담하건대, ‘이동진’이 없는 <독서법>은 많이 팔리지 못할 것이다. ‘이동진’이 있어서 이 책은 지금까지 국내에서 나온 <독서법> 중 단시간 내에 두각을 나타낸 독보적인 존재가 되었다. 하지만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없다는 말이 있듯이 ‘이동진’을 앞세워 소문난 책에 먹을 것이 많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