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클리 - 미국 고딕의 검은 영혼
릴라 테일러 지음, 정세윤 옮김 / 구픽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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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점   ★★★★   A-






미국의 작가 러브크래프트(H. P. Lovecraft) 에세이 공포문학의 매혹》(홍인수 옮김, 북스피어, 2012)은 이런 문장으로 시작된다.



 The oldest and strongest emotion of mankind is fear, and the oldest and strongest kind of fear is fear of the unknown.


 가장 오래되고 강력한 인간의 감정은 공포이며, 그중에서도 가장 오래되고 강력한 것이 미지에 대한 공포이다.

 

(홍인수 옮김, 9)



러브크래프트는 자신이 내린 공포의 정의에 부정할 심리학자는 거의 없을 거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문장은 심리학자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인정한다우리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것을 마주치면 긴장한다. 긴장감이 팽팽해지면 공포감은 더 커진다러브크래프트가 생각한 미지의 존재는 예측하기 어려운 존재. 그들은 우리가 알지도 못하고, 어디에 속하지도 않은 영역 속에 있다미지의 존재가 의인화된 것이 괴물이다괴물로 알려진 존재는 공공의 적이 된다.


그런데 러브크래프트가 생각하지 못한 것이 있다. 그는 공포감을 불러일으키는 대상을 미지의 영역으로 한정시켰다. 우리가 괴물을 무서워하는 이유는 괴물의 정체를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지(旣知)의 존재,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존재 역시 괴물로 치환된다그 괴물은 우리의 일상에 가까이 있거나 때론 숨어 있기도 하다. 


고딕 소설(Gothic novel)은 공포문학의 초기 양식이다. 고딕은 하늘로 향해 뾰족하게 치솟은 첨탑이 있는 중세 시대의 건축물을 뜻하는 단어였다. 고딕 소설은 음산한 분위기를 풍기는 고딕 스타일의 건축물을 배경으로 한다. 고딕 소설의 주인공은 이곳에서 초자연적 현상을 경험한다. 러브크래프트는 공포문학의 매혹에서 고딕 문학의 계보를 설명하면서 앤 래드클리프(Ann Radcliffe)를 거론한다러브크래프트는 잔혹함과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소설 속 장면을 효과적으로 묘사한 래드클리프의 필력을 극찬한다. 래드클리프는 결말에 가서야 등장인물들을 벌벌 떨게 만든 망령의 실체를 장황하게 설명하면서 밝힌다. 러브크래프트는 기괴한 환상을 와장창 깨뜨려버리는 작가의 글쓰기를 짜증 나는 습관이라고 표현하면서 비판한다. 러브크래프트는 래드클리프를 비판하면서 다시 한번 책의 첫 문장에 있는 공포의 정의를 상기시킨다.


그렇지만 러브크래프트가 생각하는 공포의 정의와 이를 반영한 비판적인 견해가 무조건 옳다고 볼 수 없다. 러브크래프트보다 먼저 태어난 래드클리프도 공포의 정의를 내렸다. 그녀는 공포의 본질적인 의미를 명백하게 보이는 잔혹성이라고 규정한다. 러브크래프트가 낯설고 불확실한 미지의 존재를 마주하면서 생기는 공포를 선호했다면, 반대로 래드클리프는 예측 가능한 기지의 존재의 행동을 볼 때 느껴지는 공포를 주목했다. 래드클리프가 창조한 망령은 처음에 보이지 않는 불확실한 존재였다가 실체가 드러나는 순간 ‘명백하게 보이는 존재가 된다. 따라서 우리와 가까운 명확한 존재도 괴물이 될 수 있다.


릴라 테일러(Leila Taylor)다클리: 미국 고딕의 검은 영혼》(Darkly: Black History and America’s Gothic Soul, 2019)1927년에 나온 공포문학의 매혹을 더 낡아빠진 책으로 만들어버린다. 재미있게도 테일러는 미국 고딕을 분석한 자신의 책에 단 한 번도 러브크래프트를 언급하지 않는다. 러브크래프트는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와 함께 미국 공포문학의 양대 산맥으로 꼽힌다. 하지만 생전에 러브크래프트는 흑인을 무척 싫어한 인종차별주의자였다. 그는 흑인과 혼혈인이 미국을 세운 백인인 앵글로 색슨족(Anglo-Saxon)을 위협하는 존재로 인식했다. 그의 소설에 등장한 공포스러운 존재는 백인 중심 공동체의 평화를 파괴하는 사악한 인종으로 묘사되어 있다. 테일러가 러브크래프트의 인종 혐오를 까기 위해 의도적으로 배제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흑인을 ‘미국의 괴물로 보이게 만드는 미국 고딕을 비판한다.


흑인성(Blackness)은 흑인을 괴물로 만드는 데 적합한 여러 가지 설정을 담고 있다가난, 범죄, 마약 중독, 난잡한 성생활. 이 모든 것은 백인의 인종적 편견이 반영된 흑인성이다. 백인은 흑인성을 두려워했다. 일상적인 공포를 억누르기 위해 흑인을 멸시했고, 그들을 철저히 배제하는 정책을 만들었다. 과격한 백인 우월주의자들은 미국의 괴물을 집단 폭행했고 처형했다.


테일러는 흑인에 대한 백인의 두려움이 수백 년에 걸쳐 전략적 공포로 길러져 왔다고 말한다. 노예로 살아온 흑인은 자신을 가혹하게 대한 백인을 증오한다. 백인은 흑인에게 보복당할 수 있다는 막연한 두려움을 느낀다. 흑인의 피 한 방울이 섞이면 더러워진 백인의 피는 흑인의 피라고 믿는다. 흑인은 백인 사회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보이는 괴물이 된다.


흑인을 차별하는 사회제도가 사라졌어도 흑인에 대한 암묵적인 차별과 공포는 여전히 백인들의 마음속에 남아 있다. 흑인과 백인이 아닌 다른 인종을 테러리스트나 야만적인 악마 숭배자로 묘사되는 영화는 계속 나오고 있다. 미국의 백인은 무서운 흑인’ 또는 ‘문란한 흑인 여성이라는 편견을 버리지 못한 것일까. 그들은 흑인 인어 공주의 등장을 달갑지 않게 여긴다. 심지어 백인에게 차별당한 아시아인들마저도 흑인 인어 공주를 비난하는 ‘반 흑인 여론에 동참하고 있다. 흑인 인어 공주를 원하지 않는 사람들은 인어 공주가 하얀 피부와 금발의 아름다운 백인으로 영원히 남길 바란다. 상상의 존재의 외모에서 느껴지는 아름다운 매력을 보호하기 위해서 백인성(whiteness)과 순혈주의를 내세우고 있다. 따지고 보면 인어는 인간과 물고기의 몸이 합친 괴물이다다른 인종의 피 한 방울도 섞이는 것을 싫어하는 순혈주의자들이 백인 여성의 피와 인간이 아닌 물고기의 피가 섞인 ‘잡종 괴물 인어 공주를 선호하고 있다니. 코미디에 가까운 모순이다.


다클리공포를 협소하게 정의한 러브크래프트의 한계를 반박하는 동시에 그가 공포문학의 매혹에서 다루지 못한 것을 보여준다. 미지의 존재에만 집착한 러브크래프트는 인종 차별주의가 반영된 흑인에 대한 전략적 공포를 외면했다. 미국의 소설가 랠프 엘리슨(Ralph Ellison)이 표현한 것처럼 백인은 자신들의 눈에 보이는 흑인을 투명 인간(Invisible Man)으로 취급했다. 여기에 테일러의 견해를 덧붙이면 흑인은 미국의 투명한 괴물’이. 백인은 흑인에 대한 공포감을 해소할 수 있다면 그들을 때려죽여도 되며 수상한 행동을 하면 총으로 쏴도 된다고 생각한다. 이렇듯 흑인을 억압하는 전략적 공포는 명백하게 보이는 잔혹성’에 해당한.


공포와 괴물의 정의는 시대가 변하면서 끊임없이 변주된다. 미국 백인 국민을, 미국 백인 국민에 의한, 미국 백인 국민을 위한, 말 그대로 순수한 미국 고딕과 공포 장르는 없다. 괴물을 분류하는 기준은 개인 또는 한 집단의 주관적인 판단과 편견이 뭉쳐진 이분법적 사고다. 이 비합리적인 기준을 해체하면 누구나 괴물이 될 수 있다. 순혈주의가 만든 고딕과 공포 장르는 불편하다. 자신을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로, 타자를 괴물로 몰아세우면서 공포를 즐긴다는 것 자체가 기이하면서도 더 무섭다.





※ 미주(尾註)알 고주(考註)



* 원서에 도판이 있지만, 번역본에는 모든 도판이 빠져 있다.

 

 


* 53




 

 9학년 때 영어 선생님이 오래된 포(E. A. Poe) 작품집을 주셨다. 오래전에 잃어버리기는 했지만, 붉은색 표지는 해지고 종이는 누렇게 변한 그 책을 약간 경외감을 가지고 받았던 건 기억난다. 비싼 건 아니었지만 그 낡은 책은 대형 서점에서 바로 산 것과는 달리, 대물림되거나 우연히 발견된 것처럼 특별하게 느꼈다. 갈까마귀’[주1]는 내가 처음으로 (그리고 유일하게) 암송한 시였다.



[1] 포의 시 ‘The Raven’까마귀(큰까마귀)’로 번역해야 한다. 갈까마귀의 영문명은 ‘Daurian jackdaw’. 큰까마귀와 갈까마귀는 학명도 다른 종이다.





* 58

 

 내가 어렸을 때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보지 않았다. 부모님은 내가 백마 탄 왕자/잠자는 숲속의 공주 같은 쓰레기에 세뇌되는 걸 원치 않았고 당시에 흑인 공주가 없었다. 월트 디즈니(Walt Disney)에 대해 처음 배운 사실은 그는 파시스트였다로 기억한다.[2] 어쨌든 나는 그런 종류의 판타지에 흥미가 없었다.

 


[2] 월트 디즈니와 관련된 음모론이 상당히 많다. 디즈니가 독일의 나치(Nazi)를 지원하는 반유대주의자라거나 백인 우월주의 단체인 KKK의 회원이라는 소문이 있다. 모두 억측일 뿐 사실이 아니다. 디즈니가 파시스트였다라는 주장 역시 근거 없는 소문이다.





* 203~204

 

 현대 폐허의 숭고함은 그것이 가진 상대적인 새로움에 있다. 옛 건물의 용도와 이력은 친숙하고 인지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사는 세상이 먼지로 돌아갈 것이라는 데서 오는 매혹과 혐오 사이의 이분법을 만들어 낸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무너져 가는 모습을 본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죽음을 바라보고 있으며, 사진, 폐허 포르노 웹사이트, 다큐멘터리, 공포 영화를 통해 우리 자신의 장례식을 애도하는 사람이 된다. 이렇게 문명의 종말을 흘낏 보는 것에는 묵시록 이후의 세상을 맛본다는 음침한 즐거움이 있다. 유진 태커(Eugene Thacker)는 이같이 모호한 구역을 우리 없는 세상(world-without-us)”이라 불렀다.[주3] 이는 인간 없는 세상, 인간이 하찮은 존재가 된 장소는 어떻게 될 것인지 살짝 엿보는 것이다.

 


[3] 우리 없는 세상”이라는 용어는 유진 새커의 저서 이 행성의 먼지 속에서: 철학의 공포(김태한 옮김, 필로소픽, 2022)에 나온다.






* 220




 

 외계인에서 복제된[주4] 인간들이 지구를 지배하게 될 게 명백해지고 진짜 인간 생존자들은 몇 안 남은 상황에서 복제인간에 대항하는 유일한 방법은 깨어 있는 것뿐이었다.



[4] 오자. 외계인에게 복제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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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10-10 14: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지배자의 입장에서 타자를 가혹하게 억압한 경험은 그 지배자에게는 타자의 저항에 대한 공포가 내재되어 있을거 같아요. 그런 공포를 지배자 - 백인들은 흑인을 괴물로 나타내는 것으로 또 해소하는거겟죠. 미국 문화에 대한 또 다른 측면을 볼 수 있는 책일듯하여 흥미가 갑니다.

cyrus 2022-10-15 11:41   좋아요 1 | URL
네, 이 책의 주요 내용을 잘 말씀하셨어요. ^^

청아 2022-10-10 16: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신과 비슷한 것에 대한 질투도
마찬가지일까 생각해봅니다.
어쩌면 나와 비교 할 수 있는
대상을 질투하고 혐오하는 것일지 모른다고요.^^

cyrus 2022-10-15 11:44   좋아요 1 | URL
맞아요. 상대방의 약점이 내 약점과 비슷하다면 애써 그 상대방과 비교해서 그를 깔보려고 하죠. 그러면 내 약점이 사람들의 눈에 덜 띄게 되죠. ^^;;

2022-10-10 16: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10-15 11: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10-15 14: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클리 - 미국 고딕의 검은 영혼
릴라 테일러 지음, 정세윤 옮김 / 구픽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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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자 북펀드에 참여했다.

러브크래프트가 창조한 괴물 크툴루는 돌진하는 소형 증기선에 부딪혀 머리가 터져버린 채 죽었다. 얇은 분량의 《다클리》는 흑인과 황인종을 백인을 위협하는 사악한 존재로 설정한 인종차별주의자 러브크래프트의 머리를 제대로 뚫어버린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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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의 위로 - 글 쓰는 사람의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곽아람 지음 / 민음사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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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민음북클럽 독자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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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점  ★★★★  A-





명문대를 나오고, 높은 연봉을 주는 회사에 다니기 위해 죽어라 공부한다는 건 무척 팍팍한 일이다. 그렇게 공부해서 원하는 목표를 달성한 사람은 치열하게 공부했던 자기 삶에 만족할 수 있겠다. 명문대 입학과 대기업 입사를 위한 공부는 나의 사회적 지위를 변화시킨다. 하지만 그렇게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처럼 공부하는 삶은 허하고 질 없다. 공허하고 부질없는 공부는 나를 변화시키지 못한다.

 

학벌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공부에 매몰된 사람들은 나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아가는 기회를 여러 번 놓친다. 이러면 본인의 흥미와 관심에 전혀 관련 없는 분야를 공부하게 된다. 내가 중심이 되지 못한 공부는 나 자신이 성장하는 데 큰 도움을 주지 못할뿐더러 치열하게 공부하다 지친 나를 위로해주지도 못한다. 곽아람 기자의 수필 공부의 위로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그냥 지나쳐버리기 쉬운 공부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저자가 생각하는 공부는 나 자신을 변화시키는 일이다. 저자는 무엇을 더 많이 아는 사람으로 변화하지 않고, 무엇을 모르는지 알아가면서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이는 사람으로 성장한다.

 

공부의 위로는 대학생 시절 저자가 정신적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오늘날 대학교는 취업을 위한 통과 의례로 취급받는다. 그렇지만 20대의 저자는 1학년부터 4학년까지 수강한 교양 과목 수업을 통해 읽고 쓰고 생각하는 훈련을 배운다. 1학년 미술사 수업은 저자에게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게 만드는 획기적인 창문을 알려주었다. 2학년 영미 단편소설 강독은 공부가 무조건 정답을 찾는 과정이 아님을 상기시킨다. 저자는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의 단편소설을 해석하면서 나름의 답을 스스로 찾기 위해 계속 생각하는 훈련을 한다. 4학년 2학기 19세기 미국소설 수업에서 저자는 시대가 변해도 절대로 바뀌지 않을 공부의 본질을 깨닫는다. 나 자신을 위한 공부는 꾸준하면서 성실하게 책을 읽는 일이다.

 

누군가는 먹고사는 데 필요한 분야를 공부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한다. 경제적으로 성공하고 난 후에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면 되지 않느냐면서. 문과를 졸업하면 취업에 불리하다는 위기감이 팽배한 현실에서 인문학은 찬밥 신세다. 그래도 나를 위한 공부는 젊을수록 빨리하는 것이 좋다. 특히 20대는 본인이 마음껏 공부할 수 있는 열정이 가득한 인생의 시기다. 그리고 공부하면서 새로운 자아로 변화할 가능성이 많은 나이대다. 코미디언 박명수는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진짜 너무 늦었다라고 말했지만, 공부는 예외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무언가 제대로 시작할 수 있는 시점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다. 공부의 위로는 다시 공부하려는 의지의 불씨를 일으키는, 모든 사람을 위한 부싯돌이다. 이 부싯돌이 진짜 나를 알아가면서 공부하고 싶은 사람들의 단단한 마음에 제대로 부딪히기를 바란다.






미주(尾註)알 고주(考註)

 

 

* 79




 

 이 그림은 소식의 시 해당(海棠)의 마지막 구절 只恐夜深花睡去 故燒高燭照紅[주1]”(밤이 깊어 꽃이 잠들어 져버릴까 두려워 촛불 높이 밝혀 붉은 모습 비추네.)에서 화제(畫題)를 가져왔다 알려졌는데, 이백(李白)의 시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생각한(국내판 중국 회화사의 번역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면 아마도 헷갈린) 젊은 캐힐은 이렇게 썼다.

 

 

[주1] 저자가 아마도 해당의 마지막 글자를 헷갈린 것 같다. 이 아니라 이다. 두 한자 모두 훈과 음이 같은 단장할 장이다.


[수정: 202341]

(단장할 장)(단장할 장)의 이체자. 따라서 책에 인용된 해당의 마지막 글자는 오자가 아니다.

 





* 161





할로윈 → 핼러윈







* 184~185


 혹여 궁금해할 독자들을 위해 덧붙이자면, History of Art라는 책도 존재한다. 러시아 출신으로 미국에서 활동한 미술사학자 H. W. 잰슨의 책으로 곰브리치의 책보다 몇 배나 두껍고 무겁다. 내 경우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마존 직구를 감행한 책이 그 책이었다.

 친구들이 사는 걸 보니 사야만 할 것 같았고, 보티첼리(Botticelli)이 그려진 하드커버 책[주2]을 끙끙대며 품에 안고 캠퍼스를 지나면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나 미술사 하는 여자야.”라는 티를 팍팍 낼 수 있으니까.

 


[주2] H. W. 잰슨(Horst Woldemar Janson)History of Art1962년에 나온 이후로 현재 8판까지 출간되었다. History of Art는 여러 차례 증쇄되고 개정되면서 책 표지도 달라졌다. 구글에 ‘History of Art’라는 단어로 검색하면 다양한 책 표지가 나온다. 표지 그림의 출처를 알아봤지만, 판본이 생각보다 많아서 출판연도 순서별로 정리하기 어려웠다. 정확하지 않지만, History of Art표지로 사용된 그림 출처는 다음과 같다.

 


2: 고대 이집트 파라오 네페르티티 흉상

3: 사모트라케의 니케

4: 페르메이르의 회화의 기술, 알레고리(부분)

5: 작가명, 작품명 확인 불가(16세기 정물화로 추정)

6: 작가명, 작품명 확인 불가

7: 마네의 폴리 베르제르의 술집(부분)


그 밖의 판본: 라파엘로의 갈라테이아, 페르메이르의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 보티첼리의 시모네타 베스푸치의 초상,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의 페르세포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지네브라 데 벤치의 초상

 


저자는 아마존으로 양장본을 구매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책 표지를 확인하면서 보티첼리의 이 그려진 History of Art는 본 적이 없다. 보티첼리의 이 그려진 서양미술사 책의 정체는 무엇일까? History of Art1985년에 서양미술사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되었다. 이때 나온 표지 그림은 미켈란젤로의 천지 창조에 표현된 아담과 신의 손가락이 맞닿는 장면을 확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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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4-09 11:17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무엇을 모르는지 알아가는 사람 ㅠㅠ 저도 그러고 싶습니다 ㅎㅎ 보티첼리의 봄이 그러진 미술사의 정체 저도 궁금해지네요 ~

cyrus 2022-04-10 08:55   좋아요 2 | URL
모르는 게 많을수록 책에 눈길을 많이 주게 돼요. 시험을 안 쳐도 되는 공부하는 마음으로 책을 읽어야겠어요. ^^

페넬로페 2022-04-09 13:02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저는 대학시절 전공이 저하고 맞지 않아 재미가 없었는데~~
전공말고 교양과목으로 들은 여러 학문에 대한 기초적인 것들이 무척 좋았어요.
그런것들이 지금까지 책을 좋아하게 만든 원동력이 되었던 것 같아요.
근데 전공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아서 일까요?
먹고 사는데는 지금도 허덕입니다 ㅎㅎ

cyrus 2022-04-10 08:56   좋아요 4 | URL
저의 대학 시절을 되돌아보면 전공과목보다 교양과목 강의가 더 재미있었고, 학점을 잘 받았어요.. ㅎㅎㅎ

blanca 2022-04-09 11:45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와, 역시 cyrus님의 예리한 눈썰미! 한자를 한참 들여다봤네요. 저는 대학 이후로 한자와 담을 쌓아서인지 한자를 거의 다 잊어버렸더라고요. 진짜 공부에 대한 이야기로군요!

cyrus 2022-04-10 09:00   좋아요 3 | URL
저도 한자 공부를 안 한 지 오래됐어요. 한자 자격증 2급 공부를 한창 했을 땐 일상에 많이 쓰는 한자어를 쓰고 읽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한자 공부를 오랫동안 안 하니까 한자를 읽고 쓰는 것을 잊어버렸어요. 모르는 한자가 있으면 네이버 한자 사전을 이용합니다. ^^

청아 2022-04-09 14:2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학교때 공부보다 요즘 제가 스스로 찾아하는 공부가 훨 재밌고 만족스러워요. ‘내가 모르는 것을 알아간다‘는게 결국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책 제목을 참 잘 지은것 같네요. *^^*

cyrus 2022-04-10 09:01   좋아요 2 | URL
책을 읽으면서 독서에 푹 빠진 저의 대학생 시절이 떠올렸어요. 그땐 정말 세상 걱정 없이 책 읽고 글을 썼어요. 그 시절이 그립습니다. ^^

얄라알라 2022-04-09 15:5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한자까지 ˝한 자 한 자˝. 저도 대학 입학위한 한자 공부 이후 빠이했더니 올려주신 문장 지적해주셨어도 가물가물. 부싯돌 축언 감사드립니다. 한자1800제.고등학교때.쓰던.책.아직 있는데.부싯부싯 꺼내서 다시~

cyrus 2022-04-10 09:03   좋아요 3 | URL
한자 공부를 다시 해볼까 생각 중입니다. 종종 한문이 섞인 오래된 책을 읽을 때가 있는데, 예전에 배운 한문을 다 잊어버려서 안 읽고 그냥 넘어간 경우가 많았거든요. ^^;;

그레이스 2022-04-10 00:0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제목 넘 멋있어요.
공부하고 싶은 사람을 위한 부싯돌!

cyrus 2022-04-10 09:04   좋아요 4 | URL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글 쓰는 것 다음으로 어려운 게 제목 정하는 일이에요. 제목이 마음에 안 들면 만족할 때까지 여러 번 수정합니다. ^^;;

그레이스 2022-04-10 10:05   좋아요 3 | URL
맞아요~ 저도 제목 붙이는게 어려워요^^

새파랑 2022-05-07 07:5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민음북클럽 독자가 아니신 Cyrus님 축하드립니다.~!! 즐거운 휴일보내세요 ^^

이하라 2022-05-07 08:2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cyrus님 너무 축하드립니다.
기쁘고 즐거운 주말되세요~~^^

thkang1001 2022-05-07 11: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cyrus님!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행복한 주말과 휴일 되시길 기원합니다!

서니데이 2022-05-07 17: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강나루 2022-05-08 1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yrus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편안한 밤 보내세요.

택이 2023-01-30 00: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기, 粧와 妝은 글자 모양은 다르지만 같은 글자로 알고 있습니다. 粧은 妝의 이체자 중 하나로요.

*네이버 사전 참고

妝의 이체자

妆간체자 / 妆속자 / 粧속자 / 娤동자/ 䊋동자 / 糚동자 / 𤖩와자

cyrus 2023-04-01 15:24   좋아요 0 | URL
댓글을 이제야 확인했습니다. 죄송합니다.

택이님 말씀이 맞습니다. 이 글을 쓸 당시에 저도 네이버 한자 사전을 참고했는데 본 자와 이체자를 확인하지 못했어요. 잘못 쓴 내용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쇼펜하우어를 마주하며
미셸 우엘벡 지음, 이채영 옮김 / 필로소픽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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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점  ★★★★  A-






젊은 니체(Nietzsche)는 헌책방에서 우연히 한 권의 책을 만난다. 그 책은 바로 철학자 쇼펜하우어(Schopenhauer)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책을 손에 쥔 니체는 쇼펜하우어의 철학에 심취한다. 하지만 니체가 고전 문헌학자에서 철학자로 변신할수록 쇼펜하우어에 향한 애정이 식어간다. 결국 니체는 세상을 부정적으로 바라본 쇼펜하우어의 염세주의를 망치로 내려친다. 1874년에 쓴 글에서 니체는 쇼펜하우어를 천재라고 표현하지만, 후기 저작 우상의 황혼(1888)에서 삶에의 의지를 제거하려 한 악의에 찬 천재[]라고 비꼰다.


청년 니체의 정신을 송두리째 흔들게 만든 쇼펜하우어의 책은 오랜 시간이 흘러 문학 애호가인 프랑스 청년의 정신을 흔들어 놓는다. 위대한 작가들의 걸작을 섭렵한 미셸 우엘벡(Michel Houellebecq)은 갑자기 균형 잃은 마음을 잡기 위해 헌책방을 전전한다. 2주 동안 헤맨 끝에 그는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드디어 만난다쇼펜하우어 철학을 접한 우엘벡은 과거에 만난 니체 철학과 결별한다십여 년 후에 우엘벡은 실증주의자 오귀스트 콩트(Auguste Comte)라는 새로운 철학 친구를 만난다. 실증주의로 완전히 기울인 우엘벡은 쇼펜하우어와의 지적 동행을 마무리한다.


우엘벡의 에세이 쇼펜하우어를 마주하며는 헌책방에서 우연히 쇼펜하우어를 만나면서 시작된 지적 동행 기록이다국내에 소개된 우엘벡의 에세이는 이 책이 처음은 아니다. 미국의 공포소설 작가 러브크래프트(Lovecraft)의 삶을 분석한 러브크래프트: 세상에 맞서, 삶에 맞서가 작년에 번역 출간되었다(원서는 1991년에 발표되었다). 쇼펜하우어를 마주하며러브크래프트: 세상에 맞서, 삶에 맞서모두 같은 번역자의 손을 거쳤고, 출판사도 같다.


우엘벡은 지독한 염세주의자 쇼펜하우어의 어떤 점에 매료되었나. 그는 말할 수 없는 것들’, 즉 인간이 살면서 겪는 다양한 고통과 언젠가 마주해야 할 죽음을 말한 쇼펜하우어의 정직함과 성실함을 높이 평가한다우엘벡은 쇼펜하우어를 처음 만나면서 느낀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니체의 말을 인용한다대지 위에서 살아가는 부담이 덜어진 기분을 느꼈다고 한다니체는 삶에의 의지를 제거하려 한 쇼펜하우어를 비판하지만, 역으로 우엘벡은 쇼펜하우어야말로 의지의 철학자라고 주장한다. 우엘벡이 생각하는 쇼펜하우어의 철학은 고통스럽고 역겨운 대지를 한 발씩 밟는 데 필요한 정신적인 자양분이다.


쇼펜하우어는 온갖 고통으로 얼룩진 대지를 불행이 끊임없이 지속되는 세계로 본다. 이어서 그곳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 낫다는 결론을 내린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가 죽으면 ()존재가 된다. 쇼펜하우어와 일정 간격 거리를 둔 우엘벡은 비존재로 이르는 죽음을 조용히 기다려야만 하는 쇼펜하우어 철학의 실질적 제안에 동의하지 않는다그렇지만 우엘벡은 무너지기 직전까지 간 자신의 연약한 마음을 지탱해준 옛 철학 친구에게 감사함을 전한다젊은 문학 애호가 우엘벡은 쇼펜하우어를 만난 후부터 소설가로 성장한다. 그의 소설들 속에 옛 철학 친구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쇼펜하우어를 마주하며는 미셸 우엘벡의 소설을 처음 마주하는 독자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쇼펜하우어는 총체로서의 생의 가치를 허무주의적으로 폄하하기 위해 정반대의 것들, 삶에의 의지의 위대한 자기 긍정이나 삶의 풍요로운 형식들을 제거하려 한 악의에 찬 천재이기 때문이다.” (우상의 황혼, 박찬국 옮김, 아카넷, 123)







※ 정오표



* 12 [역주]







출판연도 오류러브크래프트세상에 맞서삶에 맞서는 2021에 출간되었다. 번역자와 출판사 관계자가 자신들이 만든 책이 나온 연도를 착각하면 어떡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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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2-03-19 15: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미셸 우엘벡이 이런 책도
썼나 보네요.

예전에 받은 <복종>도 읽
어야 하는데... 구석에서
먼지만 뒤집어 쓰고 있네요.

cyrus 2022-03-21 21:19   좋아요 2 | URL
저는 <투쟁 영역의 확장>과 <소립자>요... ^^;;

청아 2022-03-19 16: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란 책에서 쇼펜하우어의 철학을 조금 읽어봤는데 좋았던 기억이 있어요! 우엘벡도 늘 궁금했는데 책이 얇으니 도전해볼만 하네요.^^*

cyrus 2022-03-21 21:21   좋아요 2 | URL
대부분 사람은 쇼펜하우어를 세상을 비관하는 염세주의자, 여성을 싫어하는 사람 같은 부정적인 수식어가 달린 철학자로 생각하죠. 저도 그랬어요. 쇼펜하우어의 대표작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가지고만 있지 한 번도 펼치지 않았어요. ^^;;

mini74 2022-03-19 20: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ㅎㅎ헤겔 질투한거랑 여자 싫어했던것만 기억하는 ㅠㅠ 읽어보고 싶습니다 ㅎㅎ

cyrus 2022-03-21 21:28   좋아요 2 | URL
철학 공부하는 지인이 제게 쇼펜하우어와 헤겔과 관련된 일화를 들려줬는데요, 생전 쇼펜하우어의 인지도는 안습이었다고 해요. 헤겔은 정말 인기가 많아서 그의 강의실에 학생들이 엄청 많이 들어왔어요. 정작 쇼펜하우어의 강의는 학생 수가 적어서 폐강되었어요. ^^;;

초란공 2022-03-19 21:4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cyrus님이 책에 별 4개 주시는 경우는 아주 드문데 말입니다^^ 실수는 cyrus님을 비켜나갈 수 없음! ㅋ

cyrus 2022-03-21 21:29   좋아요 3 | URL
제가 오탈자나 오류를 잘 찾아냅니다... ㅎㅎㅎ
 
고독의 창조적 기쁨 - 우리가 사랑한 작가들의 삶과 독신 예찬의 말들
펜턴 존슨 지음, 김은영 옮김 / 카멜북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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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점  ★★★☆  B+







고독의 동굴, 고독의 회랑은

밝고도 캄캄하다


Its Caverns and its Corridors

Illuminate or seal



(에밀리 디킨슨, 777 중에서) [주]





미국의 시인 에밀리 디킨슨(Emily Dickinson)은 자신이 쓴 시에 고독크기를 잴 수 없을 정도로 어둠에 싸인 동굴로 비유했다시인은 스스로 세상을 향한 문을 닫았고, 고독한 삶을 살기로 선택했다. 그녀는 깊고 어두운 자신만의 동굴을 두려워하면서도 그것을 영혼의 창조자(The Maker of the soul)’로 본다. 그래서 고독의 동굴은 밝고도 캄캄하다혼자 생활해본 사람만 아는 고독이란 이런 것일 수 있다. 때론 외롭고 힘겨울 때가 있지만, 자신의 역량을 키울 수 있는 소중한 시간. 그러므로 자발적인 고독은 생각보다 어둡지 않다타인을 만나면 생기는 불필요한 소음을 피할 수 있는 혼자만의 시간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하지만 고독에 너무 빠져버리면 타인과의 관계 거리가 너무 길어지는 것 아닌가 하는 조바심이 들기도 한다.


무엇이 고독을 두려워하게 만드는가. 이에 대해 고독의 창조적 기쁨의 저자 펜턴 존슨(Fenton Johnson)고독을 부정적으로 보는 사회적 풍토라고 지목한다대부분 사람은 결혼하지 않은 사람을 독신자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되면 독신자가 느끼는 고독은 두 개의 성() 또는 동성의 결합(결혼하지 않은 연인 관계, 법적인 부부 관계)이 이루어지지 않은 삶에서 느껴지는 감정으로 단정 지어버린다외로움, 쓸쓸함, 불행, 은둔, 옆구리가 시리다. 이 낱말들과 관용구는 독신자의 삶에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


사람들은 독신자와 관련된 부정적 단어만 늘리는 게 아니라, 편견까지 그들의 삶에 씌워버린다독신자는 금욕주의자라는 편견. 자발적으로 결혼을 거부하는 사람들도 금욕주의자가 되고 만다독신자의 삶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은 독신자에게 연애와 결혼을 재촉한다누군가는 독신자를 자기의 이익만 추구하는 이기주의자 또는 국가의 저출산 문제 해결에 도움 주지 못하는 역적으로 취급한다.


독신자에 대한 기존의 정의에 이성애 중심주의와 가족중심주의가 진하게 농축되어 있다. 저자는 독신자를 새롭게 정의한다. 홀로 명상과 사색에 잠기는 걸 좋아하는 별난 사람, 그러면서 결혼했지만 혼자 있는 삶을 지향하는 사람도 독신자의 범주에 포함시킨다저자는 독신자를 괴롭혀왔고, 고독을 기피하게 만든 부정적인 편견에 균열을 낸다. 그리고 독신자의 정신적 성장에 초점을 맞춘 명상과 사색은 세상을 바꾸기 위한 노동으로 전환한다.


앞서 소개한 디킨슨은 고독의 동굴을 두려워했지만, 그곳은 시를 쓸 수 있는 유일한 은둔처다. 그녀에게 시 쓰는 일은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자신과 주변 세상을 제대로 보게 만드는 노동이다. 이러한 문학에 대한 열정이 어두운 고독의 동굴 안을 밝게 해주었다프랑스의 화가 폴 세잔(Paul Cézanne)은 결혼한 독신자다. 그는 매일 혼자 화구를 챙겨 생 빅투아르 산에 올랐고, 산의 풍경을 반복해서 수십 점 그렸다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수상록의 저자 몽테뉴(Montaigne)와 더불어 성찰의 대가로 손꼽히는 지식인이다. 그는 월든 호숫가의 오두막에 혼자 살았지만, 사람들과의 만남을 피하는 은둔형 외톨이가 아니었다. 도시에 가서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다저자는 독신자의 삶을 살았던 작가와 예술가들의 창작 활동을 면밀히 살피면서, 고독의 장점에 주목한다이들은 고독을 창작 활동에 영감을 주는 스승이자 동료로 받아들였다.


고독의 창조적 기쁨은 고독을 사회적 관계에서의 일탈로 규정하는 통념에 이의를 제기한다. 이 책에 소개된 독신자들은 혼자 있는 시간에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했고, 뛰어난 업적을 남길 수 있었다. 그리고 우정과 동료애의 중요성을 잊지 않았다. 고독은 개인의 행복과 창작 욕구를 샘솟게 할 뿐만 아니라 친밀한 인간관계를 형성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 원래 디킨슨의 시에 제목이 없다. 국내에 번역된 디킨슨의 시 제목은 편의상 시의 첫 번째 행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777번의 제목은 고독은 잴 수 없는 것(The Loneliness One dare not sound)이다. 인용한 시구의 출처는 강은교 시인이 번역한 시 선집 고독은 잴 수 없는 것(민음사, 2016)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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