끌리는 박물관 - 모든 시간이 머무는 곳
매기 퍼거슨 엮음, 김한영 옮김 / 예경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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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히 아꼈던 책 한 권이 있다. 오래돼서 낡고 해어졌지만, 정든 거였다. 어렸을 때 읽은 책은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도 보물 상자처럼 남아 그 지나간 시절을 간직하고 있다. 어쩌면 그 시절을 잊고 싶지 않아 가지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추억이 깃든 물건은 함부로 버릴 수 없다. 그것은 흔한 물건이 아니라 추억이 스며든 특별한 무엇이기 때문이다. 어떤 물건은 연락이 뜸한 친구나 옛 연인의 안부가 새삼 궁금하도록 하는가 하면, 어떤 물건은 나만의 사연을 간직한 것도 있다. 그렇지만 나중엔 버리자니 아깝고 당장 쓰일 것 같지는 않은 물건을 죽을 때까지 보관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골치가 아파져 온다. 결국, 조금 아깝다 싶어도 과감히 버리게 된다.

 

자다가 일어날 때마다 등장하는 새로운 물건들을 원하게 되면 과거에 소중히 여겼던 물건들의 자리가 위태해진다. 그들이 놓일 자리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 놓일 자리가 없어진다. 밀란 쿤데라(Milan Kundera)는 추억이 망각의 한 형태라고 말했다. 우리가 경험한 모든 것들은 필연적으로 망각에 이른다. 그렇지만 망각으로부터 추억을 끄집어내는 일은 충분히 가치가 있다. 세태가 변화하면서 사라진 많은 것들이 있다. 그런 것들을 박물관(museum)’이라는 거대한 공간에 진열함으로써 적어도 기록과 흔적을 남기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끌리는 박물관(예경, 2017)이라는 책을 읽으니까 박물관이 있어야 할 이유를 이제 이해할 수 있었다.

 

끌리는 박물관은 박물관에 얽힌 추억과 상념을 진솔하게 표현한 스물네 명의 작가의 글들을 모은 책이다. 이 글은 영국의 시사 주간지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의 자매지 <인텔리전트 라이프(Intelligent Life)>에 연재되었다. 스물네 편의 글은 <인텔리전트 라이프>의 문학 담당 편집장인 매기 퍼거슨(Maggie Ferguson)이 선별했다. 줄리언 반스(Julian Barnes)도 기획물 연재에 참여했다.

 

박물관에 잠들어 있는 물건들은 아날로그 이전부터 존재해온 화석 같은 존재다. 그렇지만 이 책에 소개된 박물관의 소장품들은 특별하다. 과거의 물건이 미래의 괜찮은 물건으로 간주한다.

 

미국 뉴욕에 있는 로어 이스트사이드 주택 박물관(Lower East Side Tenement Museum)화려함이라곤 한 치도 찾아볼 수 없는 곳이다. 그곳에 가면 20세기 초 뉴욕으로 건너온 이민자들의 생활상을 확인할 수 있다. 이곳을 세 번째로 방문한 로디 도일(Roddy Doyle)은 박물관에 사람을 매혹시키는 무언가가 있다고 말했다.

 

나는 종종 낡고 방치된 집들을 둘러보고 다니며 그곳을 내 집으로 삼아 여기저기 수리해서 산다고 상상해본다. 하지만 이곳에는 방치에 딱 들어맞는 이유, 심지어 사람을 매혹시키는 무언가가 있다. 이건 결코 방치가 아니다. 존경이다. 여기 사람이 살았다. 여기 사람의 삶이 있다. (26)

 

대부분 사람은 값비싸고, 모양새가 화려하고, 좀처럼 구경하기 힘든 물건이야말로 박물관에 보존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파리의 미술관 중에서 가장 미술사적인 작품을 많이 소장한 루브르 박물관(Louvre Museum)에서 유독 관람객들이 몰리는 곳이 있다. 루브르의 심장부에 고고한 자세로 서서 미소 짓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모나리자. 가장 많은 관람객이 가장 오래 머물다 가는 작품이 바로 모나리자.

 

 

 

 

 

그녀를 만나기 위해 연평균 500만 명이 몰린다고 한다. 모나리자의 미소는 사람들의 눈길과 발길을 끌어당긴다. 그러나 인산인해를 이루는 장소에서 그녀를 가까이서 보기가 쉽지 않다. 이렇다 보니 모나리자라는 신비스러운 여인의 삶을 상상해볼 여유가 생기지 않는다. 그녀는 가깝지만, 너무나 먼 사람이다. 역사 속으로 사라져간 사람들이 쓰던 물건들은 아스라한 역사만큼이나 신비하고 손때가 묻은 만큼이나 정겹다. 박물관에 보관된 물건 하나하나를 보면서 그때 그 사람은 이렇게 살았을 거야, 저렇게 살았을 거야, 상상해보는 재미가 쏠쏠하고 여유롭다. 현대의 사람과 과거 사람의 물건이 만났을 때 박물관은 살아있다.

 

박물관이 다른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곳이지만 자신에게는 특별한 장소가 될 수 있다. 앨리슨 피어슨(Allison Pearson)은 자신이 사랑하는 장소인 로댕 미술관에 가기 위해서라면 하이힐을 신고 달릴 수 있는 여자다.[1] 그녀는 로댕 미술관이 모두에게 공개된 장소라는 사실에 아쉬움을 드러낸다.

 

 

 

 

 

시인 돈 패터슨(Don Paterson)은 카미유 코로(Camille Corot)의 그림 한 점을 보기 위해 프릭 컬렉션(The Frick Collection)을 찾는다. 그는 힘들 때마다 코로의 그림 속 호수로 피신한다. 그는 무슨 이유인지 알 수 없지만, 코로의 그림이 진정제 같다고 말한다. 이처럼 박물관은 상한 마음을 치유해주는 안락한 장소가 되기도 한다. 그런 장소를 만나면 계속 머물고 싶고, 기분이 좋아지는 특별한 곳을 아무에게나 알려주고 싶지 않다. 그곳에 머무르는 현재의 시간은 앞으로 영영 잊히지 않는 과거의 추억이 된다.

 

요즘 몇 년 새 우리 주변엔 추억의 물건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 사람들은 너나없이 옛날이 좋았다는 말을 자주 한다. 마치 빛바랜 앨범 사진을 꺼내 들고 지나간 자신의 모습을 다시 한 번 들여다보고 싶어서일까. 세상의 속도가 한없이 빨라지면서 조금은 뒤를 돌아보고 천천히 가고 싶은 생각이 더욱 절실해지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그냥 가볍게 지나치는 것들도 저마다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어 그 앞에 종일이라도 머물고 싶어진다. (앤 패칫, 133)

 

추억의 물건을 찾지 못한 사람들은 마음을 안정시켜주는 자신만의 보물을 찾으려고 한다. 박물관에 가면 추억의 물건, 나만 알고 싶은 특별한 보물 모두 만날 수 있다. 박물관은 살아있다. 그곳은 매순간 마음이 흔들리는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늘 변함없이 기다리고 있다.

    

 

 

[1] 앨리슨 피어슨이 쓴 베스트셀러 제목이 하이힐을 신고 달리는 여자(사람in,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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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03 17: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7-04 11:12   좋아요 0 | URL
루브르의 명성을 과시하려고 의도적으로 과장된 통계일 수 있습니다... ^^;;

겨울호랑이 2017-07-03 17: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옛날 사진 특히 흑백 사진을 보면 칼라 사진보다 더 아련함을 느끼게 되네요... 그래서 사람들이 ‘찬란한 슬픔‘이라 하는 것 같습니다.

cyrus 2017-07-04 11:15   좋아요 1 | URL
정말 좋은 표현입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과거가 된 현재가 소중하고, 찬란하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AgalmA 2017-07-03 1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카미유 코로 그림 보면 늘 치유받는 기분이 들어요ㅎㅎ 모나리자 보다 저는 코로 그림이 더 좋음^^

cyrus 2017-07-04 11:16   좋아요 0 | URL
저도요. 모나리자는 너무 흔해요.. ㅎㅎㅎ
 
통섭적 인생의 권유 - 최재천 교수가 제안하는 희망 어젠다 최재천 스타일 2
최재천 지음 / 명진출판사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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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과 과학자, 두 사람이 함께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길옆에는 풀을 뜯는 염소 떼들이 ‘음매~’하며 울었다. 시인은 “저 풀밭에 새끼 염소가 엄마를 찾느라 구슬프게 울어대고 있어”라고 말했다. 길을 걸으면서 생각에 잠겨있던 과학자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면서 대답했다. “염소라고? 자네, 지금 CI를 말했는가?”

 

두 사람의 대화가 이상하게 느껴졌는가? 시인은 가축 동물인 염소를 말한 건데, 과학자는 엉뚱한 소리를 하고 있다. 그런데 알고 보면 과학자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CI는 염소의 원소 기호이다. 과학자가 언급한 염소는 가축 동물이 아니라 살균제의 주성분이다. 경영학을 공부한 사람은 CI를 염소로 생각하지 않는다. 경영학에서의 CI는 ‘Corporate Identity’의 준말, 즉 기업의 이미지를 하나로 통합하는 경영전략을 말한다.

 

‘염소’라는 단어 하나에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 시인과 과학자, 그리고 경영자는 ‘염소’와 ‘CI’를 다르게 바라본다. 문학, 과학, 경영 이 세 가지 분야가 서로 만나면 ‘융합(convergence)’을 시도할 수 있다. 서로 다르다고 생각했던 학문 분야들이 뭉치면 창의적인 사회를 이끌어 가는데 필요한 원동력이 생긴다. 그래서 지금도 학자와 경영자 들은 어떻게 하면 융합을 이룰 수 있는지 끊임없이 고민한다. 또 융합사회에 어울리는 인재를 키우기 위한 노력도 한다.

 

융합이라는 개념은 처음에 ‘통섭(consilience)’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통섭’은 미국의 저명한 생물학자 에드워드 오즈번 윌슨(Edward Osborne Wilson)이 제시했다. 윌슨은 통섭을 통해 서로 다른 학문 간의 경계를 제거하려 했다. 그러면 학자 간의 단절된 관계를 극복하여 지식의 대통합을 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 융합과 통섭 문화가 완전히 정착하는 데는 시일이 좀 걸릴 것 같다. 명실상부한 학문적 융합이 이루어지기 위해 해결해야 할 현실적 과제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윌슨의 제자인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융합과 통섭을 인간 지성의 위대한 과업으로 생각하는 학자다. 그는 오랫동안 우리 사회에 통섭의 개념을 알리기 위해 노력해 왔다. 융합과 통섭, 한 번 들어도 이해하기 쉽지 않은 단어를 접한 사람이라면 학자들이 시도해야 할 과업이 우리 삶과 관련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최 교수는 융합과 통섭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꼭 필요한 삶의 방식이라고 말한다. 최 교수는 글 잘 쓰는 과학자로 유명하다. 그의 글을 읽으면 딱딱하고 어려운 개념의 의미가 머리에 쏙쏙 들어온다. 최 교수가 펴낸 《통섭적 인생의 권유》는 융합과 통섭의 문화에 접근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그가 말하는 ‘통섭적 인생’이란 과연 무엇일까? 최 교수는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통섭적 인생이 대체 무엇이냐고요? 그것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삶의 태도입니다. 첫째는 ‘받은 만큼 돌려주는’ 자연의 법칙대로 사는 태도입니다. 제가 사람들에게 자연을 이야기하고 환경을 이야기하는 속내에는 바로 이러한 뜻이 담겨 있습니다. 인간도 결국 지구 위의 작은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다른 동물도 인간처럼 감정을 느끼는 존재라는 것, 이러한 사실을 깨닫고 겸허한 자세로 자연의 일부가 되어 살아가는 것이 진정 아름다운 삶이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두 번째는 ‘피카소’처럼 사는 태도입니다. 피카소는 엄청난 다작을 통해 천재성을 발휘했습니다. 이를테면 공이 날아올 때마다 너무 재지 않고 방망이를 휘두르다 보면 단타도 치고 때로는 만루 홈런도 치게 된다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것을 시도하다 보면 언젠가는 자신만의 세계를 이룰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의외의 말이다. 최 교수는 통섭의 삶을 살아가려는 방법으로 인문학과 과학을 공부하라는 뻔한 제안을 하지 않았다. 최 교수가 애초에 다양한 학문을 이해할 수 있도록 지식의 양을 늘리는 공부를 제안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면, 우리는 이 책을 읽지 않아도 된다. 인간이 자연의 이치를 모르면 자연 앞에 겸손할 줄 모른다. 우리의 이기심은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소중한 자연을 파괴한다. 겸손과 배려가 묻어난 융합 문화는 여러 사람이 함께해야 형성될 수 있다. 그래야 우리가 만드는 재앙을 피할 수 있다. 겸손한 자세는 인간이 살아가면서 추구해야 할 아름다운 삶의 연장선이다.

 

통섭적 인생은 ‘천재’가 되기 위한 특별한 삶의 길이 아니다. 피카소는 노력파다. 그것도 즐기는 노력파다. 그는 익숙한 것과 결별을 시도했다. 그래서 새로운 시도에 두려워하지 않았고, 실패를 겪어도 붓을 굽히지 않았다. 자신이 하고 싶고, 좋아하는 일을 하는 데 실패한다고 해서 두려워할 필요가 있을까? 인간의 수명은 길어져 이제는 무료한 일상에서 벗어나 이곳저곳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져볼 기회가 충분히 있다. 인생의 후반전은 전반전 못지않게 중요하다. 전반전이 부진하더라도 후반전에 충분히 만회하면 된다. 전반전보다 더 나은 성과를 낸다면 인생 전체를 승리로 이끌 수 있다. 인생의 후반전은 진정한 삶을 찾을 수 있는 새로운 인생이다.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찾을 수 있다. 그 일이 예전에 내가 알지 못했던 낯선 분야일 수도 있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가 만들어 놓은 사고의 경계를 제거해야 한다. 이 칸막이를 제거하는 순간, 여러분은 융합과 통섭의 인생을 시작할 수 있다. 《통섭적 인생의 권유》를 읽는 시간이 바로 새로운 삶을 준비하는 하프타임(half time)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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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24 19: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5-24 20:00   좋아요 1 | URL
오타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가끔 한글 전환이 안 된 상태에서 글을 고치면 영자가 나옵니다. 글을 꼼꼼하게 읽지 않으면 오자를 찾지 못해요. 정말 고맙습니다. ^^

syo 2017-05-24 19: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관계 없는 이야기지만 cyrus님, 경상도 사람은 염소와 염소를 억양만으로도 구분할 수 있잖습니까? 유명한 ˝이의 이승˝처럼요.

cyrus 2017-05-24 20:02   좋아요 0 | URL
‘염소‘를 부를 때도 억양이 있었군요. 경상도 사투리로 염소를 ‘얌세이‘라고 합니다. 저는 얌세이가 얍삽한 사람을 부르는 사투리인 줄 알았어요. 경상도 토박이인데 정말 모르는 사투리와 억양이 많습니다. ㅎㅎㅎ

transient-guest 2017-05-25 07: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통섭/융합이 한때 정말 화두이자 대세였죠. 근데 어느 누구도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설명하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그나마 최재천 교수가 이쪽에서 먼저 시작한 분이긴 한데, 이분의 책도 조금 다른 이야기로 빠지는 경향이 없지는 않은 것 같아요. 저는 그저 산업혁명이래 주구장창 한 가지만 할 줄 아는 인간=전문가의 시대를 주장하고 교육해왔다면 (사실 이것도 소위 지도층이 나머지를 사용하기 위한 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만) 미래는 자기 분야의 전문가이면서도 두루 알고 두루 공부하고 경험한 사람들의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를 통섭/융합의 개념으로 보고 있습니다.

cyrus 2017-05-25 07:20   좋아요 1 | URL
요즘은 통섭보다는 융합으로 소개되는 것 같습니다. 사실 통섭이라는 단어 자체가 어렵게 느껴지는게 사실이에요. 제가 이 책의 별점을 많이 주지 못한 이유가 예전에 강연이나 다른 글에서 언급했던 내용을 반복하고 있어서 높이 평가하지 않았어요.

transient-guest 2017-05-25 07:24   좋아요 0 | URL
저는 전체적으로 고루하다는 느낌을 받는 부분이 있고, 제가 표현하기 힘들지만 조금 불편하고 멀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습니다. down-to-earth과는 다른... 예전에 잠깐 좋아했지만, 지금은 굳이 읽으려고 하지는 않는 저자입니다.

2017-05-25 07: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17-05-25 2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피카소’처럼 사는 태도가 인상적입니다.

장수 시대가 되고 보니 ‘아직 늦지 않았고 시간은 얼마든지 있어.‘라는 생각을 할 수 있으니
위안이 되네요.

cyrus 2017-05-26 14:29   좋아요 0 | URL
돈이 있어야 노후를 편안하게 보낼 수 있다고 합니다. 맞는 말이지만, 은퇴 연령까지 일할 수 없는 노릇입니다. 돈 들이지 않고, 즐길 수 있는 것이 분명히 있을 겁니다. 저는 독서와 글짓기라고 생각해요. 경북 칠곡에 사시는 할머니들은 시를 씁니다. 그분들이 쓴 시는 시집으로 나왔습니다. ^^
 
만남, 신영복의 말과 글 세트 - 전2권 - 신영복 1주기 특별기획 만남, 신영복의 말과 글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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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간 한반도의 키를 맡길 사람을 선택해야 할 시기가 왔다. 정치판의 승자와 패자는 선거 결과에 의해 결정된다. 상대방에게 더 큰 손해를 끼칠 수 있다면, 자기가 손해 보는 것을 기꺼이 감수하는 경쟁 구도이다. 본능적으로 상생의 질서보다는 상극의 구도를 더 선호하는 게임이다. 우리는 여전히 지역주의와 사상적 대립, 세대 간 갈등이라는 현실에 부딪히고 있다. 선거일이 다가오면서 후보 지지자들 간에 사회적 · 이념적 갈등까지 확대 증폭되는 정도다. 선거 이후에도 두고두고 정치 · 경제 · 사회 각 분야에 걸쳐 갈등 요소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특정 대선 후보자의 지지 세력은 이념적 · 정책적 순수성을 추구하려는 유혹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선택은 사회적 분열을 심화시킬 우려가 있다. 지도자를 잘못 선택함으로써 강력한 이념적 지지그룹의 활동을 암묵적으로 방조 되는 최악의 상황이 발생한다. 이들의 활동 영역이 점점 커질수록 정치적 · 이념적 틈새가 갈수록 넓혀져 ‘차이’를 발견하기 어렵게 된다. 틈새에 피어난 '검은 꽃'에 불쾌한 감정을 유발하는 힘을 발산한다. 그 검은 꽃이 바로 ‘갈등’이다. ‘갈등’이라는 검은 꽃은 사회 곳곳마다 군집 형태로 자라고 있다.

 

이 불쾌한 꽃들을 모조리 확 꺾기는 힘들어 보인다. 그러나 검은 꽃들이 무성하게 자라는 것을 그저 지켜볼 수만 없다. 신영복 선생의 말대로 ‘아픔을 외면하기보다는 일단 직시하고 나서 새로 시작하는 것’[1]이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다. 어떤 독자는 선생의 문장을 보면 볼수록 약간 짜증이 난다고 했다. 특히 우리나라의 역사-외세의 침략에 무기력했던 뼈아픈 과거의 역사-를 언급한 선생의 글에 다소 비극적이고 비관적인 분위기를 감지했다. 살아생전에 선생도 이 점에 공감했다. 그렇지만 필자는 이 또한 보기 나름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픔을 직시한 선생의 글에도 긍정적 측면이 있다. 선생의 글에 선험자의 깊은 성찰과 반성이 느껴진다는 점에서 희망의 근거가 된다. 선생의 글을 비판한 독자는 세상을 비관적으로 바라본 사람일 수 있다. 그 독자처럼 비극적 인식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 우리 사회에 많다. 일상이라는 핑계로 시대의 아픔을 외면하고, 급기야 다 같이 보듬어야 할 아픔의 눈물을 혐오하도록 강권하는 그들의 새까만 심장 한가운데에 ‘검은 꽃’의 뿌리가 깊게 자리 잡혀 있다. 그들은 ‘평화로운 사회’를 조성한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자기의 신념 혹은 편견에 충실한 나머지 상대방의 생각과 의견을 멋대로 재단한다. 그들의 위협적인 가위질은 권력의 이름을 빌린 무자비한 ‘검열’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검은 꽃 애호가들이 지지하고, 그들을 암묵적으로 두둔하는 권력자는 우리가 투표로 뽑은 것이다.

 

우리는 왜 이런 뼈아픈 반복을 겪게 되는 걸까. 그 이유가 새로 시작하기 전에 먼저 해야 할 반성과 성찰의 기회를 무시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민주주의가 개개인의 가능성을 최대한 끌어올리며, 끌어올린 능력들이 적법한 절차에 의해 상호 조정되면서 사회전체의 발전을 가져온다는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반성 없는 이상론'에 불과할 뿐 한국사회에서 이것이 제대로 기능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우리는 민주주의에 확신한 나머지 이상론에 매달렸다. 대선 후보자들은 ‘민주주의’를 거론하며 구체성이 결여된 야심만만한 이상론을 내세웠다. 이들은 자신들이야말로 ‘촛불 혁명’의 정신을 계승한 후보라고 주장한다. 20대의 청년 신영복은 민주주의를 긍정하는 이상주의적 사고방식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어설픈 결합을 긍정하는 이상론을 경계했다. 그가 학자가 되어서도 이상주의적 사고방식을 늘 경계했다.

 

민주주의를 긍정하는가. 더구나 그것의 자본주의와의 결합을 긍정하겠는가? 이 양자의 결합을 승인하는 것은 자본의 무제한한 횡포를 승인하는 게다. 자본측근자(資本側近子)를 제왕(帝王)으로 모시는 것이다.

 

(《냇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 141쪽)

 

자본측근자는 대중의 표를 얻기 위해 ‘민주주의’라는 옷을 잠깐 입힌 ‘포퓰리즘(populism)’을 내세운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어설픈 결합이 포퓰리즘을 만들어 사회를 퇴보시킨다. 포퓰리즘의 유혹을 이겨내지 못한 국민은 우민화되어 사회를 주체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변혁 역량이 줄어든다.

 

단순한 이익집단 간의 갈등이 아니라 국가적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는 실천의 능력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이 능력이 우리 삶을 침투하지 못하다 보니 이해관계자 간의 타협이 논리와 관용 그리고 인내에 입각한 연대 과정에서 벗어나고 있다. 연대감이 사라진 사회에서 사회구성원들은 최대한 강경한 자세로 자신의 전략적 위치를 확보한다. 이 과정에서는 민주적인 합리적인 조정절차는 무시되며, 힘 있는 소수에 의해 다수가 볼모로 잡히는 결과를 초래한다. 결국, 힘 있는 소수는 ‘승리자’가 된다. 선생은 승자와 패자의 구분이 모호한 모두가 ‘더불어 이기는 강한 승리자’[2]가 되라고 당부했다. 지금으로부터 25년 전에 밝힌 선생의 당부가 이상론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더불어 이기는 강한 승리자’는 사회 변혁을 위한 이론에 주목하는 동시에 실천을 병행한다. 누구나 혼자서 ‘강한 승리자’가 될 수 있다. 그렇지만 현실의 벽을 넘어서지 못하면 ‘외로운 패배자’가 된다. ‘더불어 이기는 강한 승리자’가 되려는 방법의 하나가 바로 선생이 자주 강조했던 ‘하방연대(下方連帶)’의 정신이다. 물이 자연스럽게 낮은 곳으로 흘러내리는 것처럼 우리는 사회적 약자와 더불어 손을 잡아야 한다. 낮고 약한 이들에게 손을 내밀어 인간적 가치를 실현하는 일이다. 놀랍게도 작년에 우리는 촛불의 힘으로 ‘하방연대’를 이루어냈다. 성별과 나이 구분 없이 사람들이 광화문에 거대한 촛불을 만들어 그동안 청와대의 지붕에 가려졌던 권력의 폐단이 보이도록 훤히 밝혔다. 그 연대의 중심에는 세월호 사고 유가족들도 있었다. 선생이 지금도 살아계셨더라면 아주 멋진 광경을 보면서 흐뭇해하셨을 텐데.

 

이틀 뒤에 결정될 새로운 지도자가 임기 내내 ‘검은 꽃들’을 전부 꺾을 거로 생각하지 않는다. 진보든 보수든 이념의 간격을 좁히는 일이 쉽지 않다. 지도자의 능력에만 의지할 수 없다. 지금부터가 ‘우리부터 잘해야 되는 시기’[3]이다. 우리가 갈등을 유발하는 ‘검은 꽃들’을 직접 꺾어야 한다. ‘검은 꽃들’이 사라진 자리에 다시 ‘갈등’이 살아남지 않게 함께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숲’을 가꾸어야 한다. ‘더불어 숲’을 조성하기 전에 먼저 우리의 손과 마음에 묻은 흙먼지, 즉 상대방을 미워하게 하는 ‘갈등’의 앙금까지 말끔히 털어내야 한다. ‘갈등’의 앙금이 묻은 더러운 손으로 상대방의 손을 잡을 수 없다. 서로를 미워해선 안 된다. '너나 잘해', '너는 틀렸어'라는 말을 삼가해야 한다. 근본적인 반성과 차분한 성찰은 ‘더불어 숲’이 잘 자라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준비 기간이다. 5월 9일 이후부터가 지도자의 실전이라면, 우리는 사회를 탄탄하게 만들기 위한 실천에 임해야 한다. 정말로 우리부터 잘해야 되는 시기가 왔다. 이 시기마저 또 놓치게 된다면...

 

 

 

 

 

 

[1] 『수많은 현재, 미완의 역사 - 희망의 맥박을 짚으며』 (대담: 홍윤기, 1998년, 《손잡고 더불어》 145쪽)

 

[2] 『모든 변혁 운동의 뿌리는 그 사회의 모순 구조 속에 있다』 (대담: 정운영, 1992년, 《손잡고 더불어》 113쪽)

 

[3] 『소소한 기쁨이 때론 큰 아픔을 견디게 해 줘요』 (대담: 이진순, 2015년, 《손잡고 더불어》 3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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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07 21: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5-08 11:06   좋아요 1 | URL
차기 지도자가 야당 인물이 되어도 대구 어르신들의 새누리 ᆞ자유한국당 사랑은 여전할 겁니다.

겨울호랑이 2017-05-07 22: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 제가 선거에 나간 것도 아닌데 많이 긴장되네요.. ㅋ

cyrus 2017-05-08 11:09   좋아요 2 | URL
촛불을 들었던 분들의 마음도 겨울호랑이님과 같을 겁니다. 대선 투표는 늘 중요한 일이지만, 내일은 역대 대선 중 가장 중요한 날로 기억될 것입니다. 향후 우리나라의 미래가 달린 일이니까요. ^^

dellarosa 2017-05-07 22: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장기적으로 봤을 때 결과적으로 모두가 행복했으면 합니다. 불가능할까요 ? 확실한 것은 우리나라가 미래에는 지금보다는 나은 사회가 되어 있으리라는 점입니다. ^^

cyrus 2017-05-08 11:19   좋아요 2 | URL
모두가 행복해하는 사회가 이상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현실적으로 놓고 보면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적대적으로 대하고, 혐오하는 상황은 사회통합에 반하는 일입니다.

나비종 2017-05-07 22: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빛은 매질을 경계로 굴절합니다. 있는 자리에서 어떤 매질을 향해 달려가느냐에 따라 꺾이는 방향이 달라진다죠.
결국 방향의 문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낮은 곳, 약한 이들에게 손을 내민다는 것도. 시선이, 마음이 어디를 향하느냐, 누구를 향하느냐에 대한 선택이니까요.
시험을 앞두고 D- 를 헤아리는 학생이 된 듯 긴장되네요, 저 역시.

cyrus 2017-05-08 11:22   좋아요 2 | URL
저는 우리 사회에 하상연대의 정신이 아직 살아있다고 믿습니다. 촛불 집회가 하상연대 정신이 만들어낸 변혁 운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내일 대구 투표 결과가 더 궁금합니다. ^^

transient-guest 2017-05-08 04: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회적 갈등과 충돌은 당분간 피할 수 없겠지만, 잘 정리되어 미래로 가는 시작이 되었으면 합니다.

cyrus 2017-05-08 11:24   좋아요 1 | URL
내일 투표 결과가 나온 이후부터 험난한 상황들이 연속적으로 생길 것 같습니다. 첫 단추를 잠그는 일이 제일 중요합니다. 그걸 막는 세력들의 견제가 만만치 않을 겁니다.

stella.K 2017-05-08 1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윤복 교수의 글이 그런데가 있었나?
오래 전 <더불어 숲>을 읽고 감동했었는데
그동안 한번쯤 더 읽어 보고 싶었는데
마음만 그렇다뿐 손도 못 대고 있었다.

촛불 집회 봐서라도 누가 대통령이 되든 정신 바짝 차리고
잘 해 줬으면 좋겠다. 정신 못 차리고 여전히 갈팡질팡하고
딴주머니 차고하면 이건 단순히 국민을 배신한 것이 아니라
민족에 대한 반역이지.
지금이야 저리 눈에 불을 키고 대통령이 못되 안달을 내겠지만
되고 나서도 정말 잘할 건지 의문일뿐이다.

cyrus 2017-05-08 22:57   좋아요 0 | URL
《손잡고 더불어》는 신영복 교수의 생전 인터뷰한 내용들을 정리한 책이고요, 《냇물아 흘러흘러...》는 미발표 글이 있는 유고집입니다. 역시 신 교수의 책을 읽으면 좋은 문장들을 많이 만납니다. ^^

저는 박근혜 싫어하던 사람들이 유승민이든 안철수든 누굴을 뽑아주는 건 이해할 수 있어요. 그런데 홍준표(혹은 조원진)를 믿고 뽑는 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내일 대구 투표 결과 기대됩니다. 내일은 대구 사람들이 정신을 차렸는지 못 차렸는지 확인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날입니다.
 
프로작 네이션 - 우울에 빠진 한 여자의 심리 보고서
엘리자베스 워첼 지음, 김유미 옮김 / 민음인 / 2011년 11월
평점 :
절판


 

 

우울증은 웃고 있는 사람들의 가면이다. 우울증을 얕보아서는 안 된다. 특히 가면을 쓴 우울증은 가벼운 우울증, 일시적인 슬픈 감정과 달리 심각한 양상일 가능성이 높다. 증세의 심각성을 알아차리기는 어려워 방치된 채 악화하기 쉽다. 우울증 환자들은 자신이 우울증에 걸려 있는지도 모른 채 마치 가면 뒤에 꼭꼭 숨어있는 듯 내면 깊숙이 틀어박혀 있다. 우울증이 전염병은 아니다. 하지만 마음과 마음이 가장 맞닿아 있는 가정에서는 그 어둠의 그림자가 그대로 가족들을 힘들게, 고통스럽게 한다.

 

엘리자베스 워첼의 《프로작 네이션》은 우울증을 가장 정확히 기록한 책이다. 변호사로 활동 중인 워첼은 자신의 우울증 경험을 상세하게 서술하여, 과소평가된 이 병이 한 인간을 어떻게 괴롭히는지를 실감 나게 소개하고 있다. 《프로작 네이션》이 ‘우울증은 누구나 걸릴 수 있으며 약으로도 치유 불가능한 병’임을 제대로 알려준 책이라는 데 큰 의의를 부여하고 싶다.

 

 

 

 

 

 

프로작(Prozac)은 우울증 치료제이다. 미국에선 프로작 같은 우울증 치료제가 우리나라 감기약만큼 유명하다. 그만큼 환자가 많고 많은 사람이 관심을 두고 있다는 증거다. 그러나 미국 식품의약처(FDA)는 2004년에 프로작을 포함한 모든 항우울제에 대해 복용 시 청소년들이 자살 충동이나 행위에 빠질 위험이 높아진다는 내용의 경고문을 부착하도록 지시했다. 항우울제를 복용할 경우 자칫하면 청소년을 자살로 내몰고 있다는 우려가 오래전부터 제기됐다.

 

과거에는 아동기에 우울증이 존재하느냐, 존재하지 않느냐에 대하여는 학자들 간에 많은 논란이 있었다. 1980년에는 타당성이 인정돼 아동의 정신질환 분류에서 공식적으로 아동기에도 우울증이 존재함이 받아들여졌다. 어린이도 우울증을 앓는다. 어린이들은 자존심 저하, 자기 비하 등의 인지적인 요소가 전혀 동반되지 않은 슬픈 감정이 나타날 수 있다. 예컨대 부모가 이혼하면 일반 아이들은 단순히 슬픈 감정을 표현하지만, 우울증이 있는 아이들은 자기 때문에 이러한 일이 일어났을지 모른다고 생각하여 자기질책 또는 부모들에 대한 원망이 함께 나타날 수 있다. 워첼은 너무 이른 나이에 부모가 이혼으로 갈라서는 현실을 받아들였고, 아버지로부터 사랑받지 못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워첼의 사례처럼 어린 시절 경험은 우울증의 주요한 원인이 된다.

 

워첼은 열두 살 때부터 십 년 넘게 우울증의 늪을 헤맸다. 약물치료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의사와 그녀의 어머니 때문에 겪었던 고통 등 자신의 경험을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그녀의 자서전은 우울증의 심리적 증상에 초점을 맞춘 우울증 자가 진단서이다. 사람들이 느끼는 우울의 정도는 각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대부분 세상 모든 일에 어떤 희망도 발견할 수 없는 기분, 세상이 끝난 것처럼 미래를 비관하는 태도, 세상에 오직 나 혼자라는 가슴 사무치는 고독감 등을 느낀다. 우울증에 빠진 워첼은 주변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다. 친구들과 어머니는 워첼의 우울을 ‘약을 복용하면 재발하지 않는 증상’으로 반응하며 우울증이 가져다주는 고통을 그저 사소한 투정이라고 생각한다.

 

우울한 기분이 든다고 반드시 약물치료에만 의존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일상생활이나 가정생활에서 우울 증상으로 문제가 생긴다거나 자살사고가 심하고 실제로 행동으로 옮기려 하는 경우, 전문적인 치료를 받아야 한다. 우울증은 저절로 좋아지기도 한다. 그러나 상당히 긴 기간이 소요된다. 그 기간 환자가 받아들여야 할 불이익은 크다. 자살시도로 생을 마감할 수도 있으므로 일정기간 심각한 증상이 지속한다면 빨리 치료를 받아 불행한 결과를 막아야 한다.

 

사람이 살면서 가장 듣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위로다. 그다음이 격려다. 이는 관심과 공감과 이해에서 나온다. 심적 고통의 늪에 빠졌다가도 누군가가 위로와 격려의 손길을 내밀면 대부분 그 아픔에서 해방될 수 있다. 워첼은 우울증에 탈출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심적 상태를 솔직히 인정하고, ‘자신을 치유할 수 있는 정신력’에 믿음을 가지라고 당부한다. '내 마음이니까 반드시 내가 고칠 수 있다'는 믿음을 갖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나의 삶’을 부정적으로 보는 끔찍한 상상에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우울증 환자의 도움을 요청받은 사람은 삶은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끊임없이 인식시키고, 용기를 북돋워 줘야 한다. 그 아픔에서 벗어나려는 우울증 환자들의 몸부림을 이해한다면, 극단적인 절망의 낭떠러지까지 내몰려 있는 몸과 마음을 살릴 수 있다. 우리의 관심과 포용력은 우울증의 늪에 빠진 이에게 생명을 구하는 귀한 밧줄이 된다.

 

 

 

 

 

 

* Trivia #1

 

 

홍보 문구를 만든 출판사 관계자가 워첼의 책을 제대로 읽었는지 의심스럽다.

 

 

 

* Trivia #2

워첼의 글에 J.D.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 실비아 플라스의 《벨 자》 등 유명 작가의 책이 잠깐 언급된다. 306쪽에 마거릿 앳우드(애트우드)의 《떠오르기(surfacing)》에 대한 워첼의 짤막한 평이 나온다. 《떠오르는 집》(서숙 역, 지학사, 1987)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다. ‘늦은 후기’에 워첼은 우울증 체험을 자전적으로 기록한 윌리엄 스타이론의 《가시적 어둠》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이 책은 《보이는 어둠》(임옥희 역, 문학동네, 2011)으로 번역되었다.

 

 

* Trivia #3

 

 

 

 

 

워첼은 갑상선 기능 항진증이라는 병이 있었고, 그녀가 복용했던 조증 치료제인 ‘리튬’은 갑상선에 문제가 일으키는 부작용이 있다. 20대 시절 모습과 최근 모습을 비교하면, 외모에 큰 변화가 있는 걸 확연히 알 수 있다. 그녀의 얼굴에 오랜 투병 생활과 약물 복용의 후유증에 시달린 흔적이 남아 있다. 2015년에 워첼은 유방암 판정을 받은 사실을 공개했다.

 

 

* Trivia #4

 

 

 

 

2015년에 열두 살 연하의 제임스 프레드와 결혼했다. 그녀의 결혼은 정말 축하할 일이다. 워첼은 만나던 남자에게 실연당했고, 자연 유산까지 겪는 등 정말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녀의 행복한 미소가 오랫동안 쭉 이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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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18 18: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3-20 15:15   좋아요 1 | URL
우리나라는 여전히 우울증을 가벼운 증상으로 생각합니다. 항우울제만 먹으면 금방 다 낫는 줄 압니다. 우울증이 ‘마음의 감기’라고 합니다. 한 번 걸린 감기는 감기약 먹으면 완치 가능하지만, 다시 감기가 찾아옵니다. 우울증도 그렇습니다. 평생 약물 치료로 살아가게 되는데, 문제는 약에 지나치게 의존하면 건강이 악화될 수 있어요. 우울증에 대한 잘못된 편견과 오해가 우울증 환자들을 더욱 괴롭게 합니다.

캐모마일 2017-03-18 2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을 읽고 저자가 궁금해서 검색해 봤는데, 유명한 분이었군요.... ㅎㄷㄷ 원서는 1994년에 출간됐고, 2001년에는 에세이를 원작으로 한 동명의 영화까지 나왔었네요. 꼭 한번 읽어봐야겠어요. 그리고 영화로도 만나보고 싶습니다.

cyrus 2017-03-20 15:17   좋아요 0 | URL
동명 영화에서 워첼을 분한 연기자가 젊은 시절 워첼과 무척 닮았어요.

라온 2017-03-20 05: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먹는 약이네요
 
독서만담 - 책에 미친 한 남자의 요절복통 일상 이야기
박균호 지음 / 북바이북 / 2017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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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여기서는 좋은 ‘리뷰(혹은 서평, 독후감)’로 표현하겠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리뷰란 일상 경험을 책 속 이야기와 버무려 자신의 마음속 이야기를 진솔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이런 리뷰는 책을 좀 더 쉽고 편안하게 전달한다. 그리고 그 글에서 살며시 배어 나오는 진한 감동까지 느낄 수 있다. 글을 자주 써본 사람이라면 이런 글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한 번쯤은 한다. 그런데 막상 써보면 어렵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글쓰기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글쓰기 교육은 논술이 중심이다. 대학 입시를 앞둔 학생들은 폭넓은 배경지식, 논리적 구성력 등을 습득한다. 다치바나 다카시가 강조한 대로 학생들이 다양한 분야의 지적 재료들을 가지고 좋은 글로 아웃풋(Out put, 출력)을 내면 모를까 우리나라 논술문 쓰기는 지식 입력과 출력 과정 양쪽이 완만하게 작용하지 못하는 구조이다. 학생들은 단기간 내에 전혀 모르는 분야의 지식을 억지로 머릿속에 집어넣는다. 논술 고사 당일 날에 머릿속에 담은 재료들을 하얀 시험지 위에 일목요연하게 쏟아낸다. 결국, 그 날 하루를 위해 학생들은 제대로 뜻도 모르는 현학적 용어를 써가며 자신 목소리가 아닌 누군가 가르쳐준 내용을 형식적 논리만을 시험지 위에 옮겨 적는다. 글 쓰는 일 자체가 ‘시험문제’로 직결되는 교육 환경은 자칫 글쓰기에 대한 흥미를 떨어뜨리고, 막연한 두려움만을 안겨준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 사소한 경험에서부터 자기만의 느낌과 생각을 담아 표현해보는 ‘생활 속 글쓰기’에 적응되면, 자연스럽게 논리적 글쓰기로 이어진다. 필자는 이런 과정을 생략한 채 리뷰를 쓰기 시작했다. 신문 칼럼을 많이 봤고, 사람들과 어울려 부대끼며 지내는 성격이 아니라서 ‘생활 속 글쓰기’를 어려워한다. 몇 차례 시도를 해봤으나 보는 사람들의 반응이 미미했고, 억지로 과거 경험을 떠올려 조금 과장해서 쓴다는 게 도저히 성에 차지 않았다. 필자의 리뷰가 재미없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내 탓이다. 필자는 이 상황을 팔자라고 생각하면서 알라딘이 망할 때까지 꾸준히 리뷰를 쓸 생각이다.

 

 

 

생활 속에서 직접 보고 느낀 것을 표현하며 자기 자신을 ‘글의 중심’에 세워보는 경험, 즉 ‘독서를 통한 앎과 삶이 조화를 이룬 글쓰기’를 실천한 사람이 박균호이다. (물론, 아주 능숙하게 ‘생활 속 글쓰기’를 실천하는 작가와 독자 들이 많다. 가장 유명한 작가가 ‘마태우스’ 서민이다) 최근에 그가 새로 선보인 《독서만담》의 부제를 한 번 보시라. ‘책에 미친 한 남자의 요절복통 일상 이야기’다. 그의 글은 리뷰인지 에세이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이건 나쁜 의미의 말이 아니다. 저자만의 개성이 뚜렷하게 드러난 글에서만 갖춰진 특색이다. 리뷰와 에세이라고 하면 책 또는 삶에서 우러나온 지혜와 교훈을 담아 쓰는 글이라는 공통된 선입견이 있다. 그러나 리뷰와 에세이에 거창한 담론을 담아야 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고정관념이다. 《독서만담》에 가득 담은 글을 읽어보면 리뷰와 에세이의 고정관념이 보이지 않는다.

 

책의 1장은 애서가들이 무릎을 탁 칠만한 내용으로 구성되었다. 첫 번째 글 제목은 ‘절판본과 탐욕의 끝’, 두 번째 글 제목은 ‘책 수집의 괴로움’이다. 애서가들은 이 글 제목들을 보자마자 벌써 어떤 내용이 나올지 짐작하리라. 1장 제목이 ‘하나도 쓸모없는 책 이야기’이지만, 이는 독자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주기 위한 작가의 의도적인 반어법이다. 애서가들은 전혀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다. 작가가 지금까지 어떤 희귀한 절판본을 구했는지 궁금해서 읽게 된다. 헌책과 절판본을 소유하게 된 작가의 무용담을 듣노라면 괜히 마음이 뿌듯해지면서 즐겁다. 그리고 귀한 책을 쉽게 양도하지 않으려는 주인들의 태도에 개탄을 금치 못한다. 하지만 책에 미친 이 남자도 계속 사도 끝없는 책 욕심이 얼마나 무섭고, 위험한지 알고 있다. 저자는 새 책을 사기보다는 오래된 친구와 같은 헌책을 재회하기로 결심한다.

 

2, 3장은 《독서만담》의 부제에 딱 어울리는 글들이 포진되어 있다. 솔직히 필자는 미혼이라서 부부나 가족 이야기에 관심 없다. 여전히 ‘남의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혼자 지낸 일상에 익숙한 탓이다. 그래도 SNS에 길들어져 버리는 바람에 남의 사소한 일상을 들여다보고 싶은 이 못된 심리가 남아 있어서 계속 끝까지 보게 된다. 다행히 이 책을 끝까지 보길 잘했다. 역시 작가의 글은 경험담으로 시작해서, 책 소개로 자연스럽게 마무리 짓는다. 야구를 좋아하는 독자가 ‘야구를 아무리 싫어해도’라는 글을 읽으면 ‘맞다, 맞아!’라고 연신 속으로 외치게 될 것이다. 이 글에 나오는 야구를 좋아하지 않는 아내와 딸이 ‘리모컨 컨트롤을 손에 꽉 쥔 주인’이 되어 거실 한가운데서 버틴다. 이 두 사람의 힘에 밀려 야구 TV 중계를 시청하지 못해 인터넷 중계로 시청하는 저자의 상황이 딱해 보인다. 필자는 서른이나 먹고 다 컸음에도 ‘거실의 여왕’으로서 오랜 세월 군림하는 어머니의 기세를 이기지 못한다. 고집은 자신의 입지를 더욱 위축하게 하는 필패의 지름길이다. 내가 조금 불편해도 한발 물러나서 양보하는 것이 좋다.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으로 야구를 볼 수 있는 세상에 감사하게 생각한다. 저자는 아내와 딸처럼 야구를 잘 모르는 여성들을 야구 팬으로 만들 수 있는 책 세 권을 선보인다.

 

 

 

 

잠깐!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작가는 아내와 딸이 야구를 좋아하지 않아서 ‘야구는 남자들의 운동, 여자들의 것이 아니다(107쪽)’라고 썼다. 개인의 경험을 근거로 야구는 ‘남자들의 운동’으로 규정하는 말은 요즘 야구에 향한 여성들의 관심 수준을 생각하면 ‘일반화의 오류’에 가깝다. 작년 잠실야구장에 울려 퍼지는 여성 관중의 함성이 눈에 띄게 높아졌고, 그만큼 야구를 직관(직접 경기장에 가서 관람)하는 여성들이 많아졌다. 야구장에 분 ‘여풍(女風)’이 없었으면 작년 ‘한 시즌 관중 800만’이라는 기록이 오지 않았다. 지금의 야구는 남자, 여자 모두의 것이다. ‘야구는 남자들의 운동, 여자들의 것이 아니다’라는 문장이 필자의 눈에 걸린다.

 

아, 리뷰를 쓰다 보니 오늘도 재미없는 내용이 되어버렸군. 내 리뷰야말로 ‘하나도 쓸모없는 책 이야기’이다. 그래서 읽어보면 무겁고 딱딱하지 않는 글을 써내려가는 작가의 능력이 부럽다. 생활 속에서 길어낸 작고 소소한 작가의 책 이야기는 솔직담백해서 좋다. 글쓰기 공포증이 있거나 편안하게 자기만의 글을 써보고 싶은 분에게 박균호의 《독서만담》으로 시작해보길 권한다. ‘이런 글이라면 나도 쓸 수 있겠다’는 가벼운 동기 부여는 글쓰기의 열쇠가 된다. 그리고 작가가 평범한 일상을 특별한 글감으로 어떻게 만드는지 직접 확인해볼 수 있다. 사실 《독서만담》을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1권 3득 효과’를 누릴 수 있다. 두 개의 이득은 앞서 언급했다. 그렇다면 나머지 한 개의 이득은? 그것 또한 글 초반부에 이미 언급했다. 그래도 모르겠다고? 모르면 어쩔 수 없다. 독자들이 내 글을 이해하지 못한 건 아무리 생각해도 내 탓이다. 아무튼 《독서만담》이 내 리뷰보다 더 재미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보장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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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균호 2017-03-08 20:3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의 잡문이 이토록 긴 논의을 할 거리가 있다는 것이 신기합니다. 글을 쓸 때 교훈이나 깊이 있는 내용을 담을 능력도 의지도 없다는 것이 제 글의 단점이기도 하고 ‘일부 독자‘에게는 장점이 될 수 도 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아무래도 야구를 극협하는 두 여자와 살다보니 요즘 야구장의 여성팬들을 등한시 하는 오류를 범하게 되나 봅니다. 뼈와 살이 되는 좋은 리뷰 정말 감사합니다. 편안한 밤 되십시요.

cyrus 2017-03-09 08:25   좋아요 1 | URL
책 잘 읽었습니다. 글에 매력이 느껴지지 않았으면 논의할 내용이 생각나지 않았을 겁니다. 박균호님의 글은 끝까지 읽게 만드는 매력이 있습니다. ^^

yureka01 2017-03-08 23: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이웃분에게 책 선물 받았습니다..이책이었어요.저도 다 읽으면 리뷰 올려볼께용~~~ㅋ

박균호 2017-03-09 00:22   좋아요 0 | URL
앗...그 고마운 분은 누구신지...ㅎㅎ 소중한 리뷰 미리 고맙다는 말씀 드려요.

cyrus 2017-03-09 08:25   좋아요 1 | URL
‘이웃분‘이 누군지 압니다. 유레카님도 자식을 둔 아버지라서 박균호님의 글에 많이 공감하실 겁니다. ^^

곰토낑 2017-03-09 0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yrus님 리뷰가 재미 없진 않다고 생각합니다 ㅎㅎ 굉장히 논리정연해서 정독하고 있습니다. 저같은 사람이 봐야할 책이네요. 야구가 남자의 것이라는 저 문장이 나오면 화낼지도 모르겠지만요.

cyrus 2017-03-09 08:29   좋아요 0 | URL
예전에 제 글이 너무 딱딱해보여서 나름 고민한 적도 있어요. 그런데 평소대로 글 쓰는 게 편했어요. 저보다 글 잘 쓰는 분들 따라하니까 힘들었어요.

제 글을 잘 읽어보면 허점이 보입니다. 저보다 똑똑한 분을 만나면 털립니다.. ㅎㅎㅎ

제 글도 비판 대상이 될 수 있고, 누구나 비판할 수 있습니다. 저는 비판을 가르침이라고 생각합니다. ^^

stella.K 2017-03-09 14: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이 망하면 그동안 좋은 인맥을 쌓아왔던 우리 알라디너들은
흩어져야 하잖아.
글 못 써도 좋으니까 당췌 그런 생각일랑 말고 열심히 쓰기나 하셔.ㅋㅋ

이 책 리뷰에 좋아요가 유독 많더라구. 그러니까 난 같이 상대적으로 낮은
사람은 쓰기가 부담되더라. 그래도 올리긴 올려야겠지?ㅠ

cyrus 2017-03-09 15:33   좋아요 0 | URL
알라딘이 사라져서 흩어져도 다른 인터넷 서점에서 만나겠죠. ^^

‘좋아요‘ 수에 너무 신경쓰지 마세요. 그거 생각하면 글 못 써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