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초언니
서명숙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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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G세대로 빛나거나’ 88만원 세대로 빚내거나’, 그 양극화의 틈새에서 불안한 줄타기를 하는 20. 무언가 잘못된 것 같지만 어쩔 수 없다는 불안에 앞만 보고 달려야 하는 20. 그 한가운데에서 다른 길은 이것밖에 없다는 마지막 믿음으로.(<김예슬 선언> 중에서)

 

 

고려대 교정 건물에 붙여진 대자보의 주인공은 대학을 과감히 뛰쳐나왔다.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며 당돌하게 말이다. <김예슬 선언>을 읽었을 때 심장이 찔렸다. 고통스러웠다. 아팠던 이유는 대자보 속에 우리 모두의 문제가 보였기 때문이다. 그녀가 그만두고 거부하였던 것은 고작 대학이 아니다. ‘대학이라는 이름 아래 성공과 경쟁만을 강요하는 세상이다. 대학 문제는 우리 모두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일자리 문제와 교육 문제를 관통하는 핵심이다. 김예슬의 외로운 대항은 좋은 직장에 취직하기 위해 연애와 결혼을 포기하는 이십 대들을 슬프게 했다. 그 슬픔은 7년이 흐른 오늘에도 전혀 걷히지 않았다. 슬픔은 남아 있을 뿐 아니라 그 눈물이 피눈물이 되어 우리 발목을 차갑게 감싸고 있다. 7년 전 대학생이었던 이십 대는 이제 삼십 대가 되었다. 누군가는 결혼했고, 누군가는 여전히 취업을 준비하는 백수이고, 누군가는 직장에 취직해 삶에 충실히 하고 있다. 우리가 안고 있었던 고민은 고스란히 후배들에게 넘겨졌다. 영초 언니(문학동네, 2017)를 읽으면 가슴에 답답함을 느꼈던 7년 전 청춘들의 모습이 떠올린다.

 

책의 저자인 서명숙천영초와 함께 데모했던 대학 후배다. 영초 언니는 저자의 젊은 날의 초상이면서도 천영초 한 사람을 위한 자화상이다. 천영초는 70, 80년대 시대의 아픔 속에서 살아온 인물이다. 그녀는 부당한 권력에 당당하게 맞선 운동권의 전설이었다. 그렇지만 오늘날 그녀를 기억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저자에게 언니를 기억하는 회상하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다. 영초 언니는 그 당시 ‘386 운동권 세대가 겪어야 했던 처절한 고통을 보여주는 기록이다. 저자와 천영초는 386 세대가 헤쳐 나온 시대적 운명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인물들이다. 그런데 나는 왜 지금쯤이면 쉰을 바라보는 그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오늘날의 청년세대가 생각났을까?

 

386세대는 자유가 억압된 70년대와 민주화에 대한 희망이 차가운 환멸로 돌변한 80년대를 보냈다. 유년기에 유신독재를, 대학 시절엔 전두환 군부독재를 겪으면서 반쪽짜리민주화의 과정을 지켜본 이들이다. 그 시절의 대학은 최루탄과 휴교가 일상이었다. 대학생들은 화염병과 최루탄이 매캐한 거리에 뛰어들었고, 자유를 갈망하는 열정은 빨갱이로 낙인 찍혔다. 386 세대의 부모들은 경찰에 붙들리거나 고문당하는 자식을 볼 때마다 가슴 치는 나날을 보내야 했다. 성동구치소로 향하는 저자가 호송차 창문 넘어 도시의 풍경을 바라보면서 상념에 빠지는 장면이 있다.

 

 

호송차 창문에 얼굴을 바짝 붙이고 바깥 풍경을 내다보았다. 가로수의 새잎들이 연녹색으로 간질간질 움트는 5월의 거리 풍경은 눈물겹도록 사랑스러웠다. 지나는 이들의 얼굴도 다들 행복해 보였다. 난 언제나 저 거리, 저 풍경 속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나중에 돌아가게 된다고 해도 예전처럼 지낼 수 있을까. 창문 하나를 사이에 둔 세상은 피안의 세계처럼 아득했다. (164)

 

 

거리의 중심에서 소리 질렀던 저자는 이제 희망 없는 청춘의 실체를 감지한다. 그녀의 상념은 민주주의라는 공적 가치에 청춘을 바친 바보 같은 세대의 아픈 혼잣말이다. 나아가 희망 없는 청춘을 보냈던 삼십 대 독자들을 슬프게 하는 목소리이기도 하다. 지금의 삼십 대는 십 년 전만 해도 ‘88만 원 세대 또는 삼포 세대 등으로 불렸다. 청년세대를 규정하는 이름이 많지만, 의미가 썩 좋지 않다. 그 단어 속에 취업난과 고용 불안, 치솟는 학비에 시달리며 외로운 생존경쟁을 해내야 하는 이십 대의 차가운 현실이 반영되어 있다. 하지만 그들의 쓸쓸한 외침은 사회 전체를 진동할 합창이 되지 못했다. 기성세대는 울부짖는 청년들을 향해 나약하게 자책하지 말고, 더 노력해라고 닦달했다. 어떤 이는 그들 보고 빨갱이에게 사주받은 미성숙한 세력으로 규정했다. 정당한 분노마저 빨갱이로 몰아가는 작태가 낯설지 않다.

 

청년세대가 겪고 있는 이 세상은 80년대와 한 치도 다르지 않다. 80년대 전두환 정권의 등장은 반쪽짜리민주화로 귀결되었고, 끝까지 살아남은 정치 기득권 세력은 권력과 부를 불공정하게 독점했다. 정치 기득권 세력은 정치와 경제뿐 아니라 사회 곳곳에 암세포처럼 퍼진 적폐 세력이 되었다. 그리고 적폐 세력은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늘 권력 주변에 기생했고, 권력에서 흘러나오는 단물을 마음껏 빨아대면서 자란 악성 종양이 바로 최순실과 그녀의 딸 정유라. 정유라는 청년세대와 다른 삶을 살았다. 잘난 어머니 덕택에 돈을 걱정 없이 썼다. 그래서 그녀가 돈도 실력이야!”라는 말을 할 수 있었다. 그녀의 발언에 가슴 아픈 의문의 1를 당한 청년이 한 둘이 아닐 것이다. 오랫동안 비상식적인 세상으로부터 연패를 당하는 수모를 겪은 청년세대는 광장으로 나가 촛불을 들었다. 빛나는 촛불로 그동안의 긴 연패의 굴욕을 잊는 빛나는 1을 추가했다. 빛나는 1이 없었다면 최순실은 떵떵거리며 살면서 민주주의를 우습게 봤을 거고, 서명숙은 영초 언니를 쓰지 못했다. 지금 상상하기 끔찍하지만, 국정 농단 세력의 정부가 뻔뻔하게 지내고 있었어도 저자는 영초 언니를 썼을 것이다. 민주주의를 위해 삶과 청춘을 바친 사람들을 무시한 적폐 세력들은 저자의 이름을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추가했고, 영초 언니를 불온서적으로 지정했을 게 뻔하다.

 

민주 대 반민주 구도가 캠퍼스의 일상적 삶을 좌우하던 현실 속에서 대학을 다닌 386 세대의 이야기들이 지금의 청년들에게는 낯선 무용담으로 느껴진다. 그러나 영초 언니는 어려운 시절을 기어이 극복한 화려한 성공 미담을 부각한 386 세대의 이야기와는 전혀 다른 접근 방식으로 보여준다. 저자는 천영초를 영웅으로 미화하지 않는다. 그녀는 이야기 처음부터 끝까지 관찰자 시점으로 일관한다. 천영초를 포함한 386 세대가 기성 사회에 어렵게 적응하는 모습이 담긴 심리적 풍경(영초 언니 프롤로그 9)’을 지켜보고 서술한다. 천영초와 그의 남편 정문화는 여전히 사회변혁을 열망했으나 그들의 뜨거운 열정을 알아주고 동조하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었다. 운동권의 삶을 살았던 386 세대는 소수를 제외하고는 평생 경제적으로 가난하게 살고 있다. 천영초도 예외가 아니다. 정당 생활을 접은 천영초는 혁명자금을 모으려고 다단계 회사에 들어갔고, 똑똑했던 정문화는 경제 감각이 떨어져 궁핍한 생활을 보냈다. 천영초는 운동권 동지로서의 정문화를 사랑했지만, ‘가정을 책임지는 남편으로서의 정문화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저자는 기성 사회에 대한 경험이나 준비가 미흡한 386 운동권 세대의 씁쓸한 뒷모습까지도 낱낱이 기록했다. 젊은 날에 마땅히 누려야 할 자유와 꿈꿔야 할 미래를 빼앗겼던 386 세대는 삭막했던 청춘의 슬픈 결말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영초언니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건 우리 사회 전체를 확 바꿔놓을 혁명자금이 아니라 당장의 생활비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언니의 마지막 자존심이랄까, 스스로 믿고 싶어하는 바를 눈앞에서 박살내고 싶지는 않다. (261)

 

 

안타깝게도 삭막했던 청춘은 지금의 청년세대에게 대물림 되고 있다. 오늘도 청년들은 답답한 도서관 건물 안에서 좋은 직장, 좋은 결혼, 좋은 노후 생활을 위해 경주마처럼 달리고 있다. 앞으로 달려가야 할 길을 찾기 위해 혈안이 될수록 절망의 고리를 끊겠다는 의지가 사라진다. 경쟁으로 자신을 몰아넣고 있다. 영초 언니를 다 읽고 나니 여러 가지 걱정이 든다. 세월이 흘러 나 자신 또한 따뜻한 현실이라는 소파에 파묻히면서 제2, 3의 김예슬을 비웃을까 봐. 수십 년 후에 우리가 한때 열광했던 김예슬이 천영초처럼 잊힐까 봐. 쉽게 변하지 않는 세상을 다행이라 여기며 요즘 젊은이들은 그저 뭘 모르는 것들이라 손가락질할까 봐. 알게 모르게 시간이 지나면 청년세대도 기성세대가 된다. 저자가 천영초를 아직 완전히 잊지 못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 아닌가 싶다. 저자는 물결에 휩쓸려 정신없이 망각해버린, 그럼에도 언제나 의식 한쪽에 찜찜하게 남아 유령처럼 짓누르는 사회적 열망의 냄새를 여전히 맡고 있다. 영초 언니386 세대와 청년세대가 스스로 자신의 삶과 시대를 되돌아보게 해주는 특별한 책이다. 따라서 책 속에 변함없이 젊은 ‘20대의 영초 언니는 절대로 외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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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renown 2017-09-01 2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땅에서,얼마나 많은 ‘영초 언니‘ 가 외롭게 살다 갔을까요..

cyrus 2017-09-02 12:12   좋아요 0 | URL
남성의 역사에 파묻힌 언니들의 기록이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습니다.

북프리쿠키 2017-09-01 2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꼭 한번 읽어보고 싶네요.
좋은 글 보고 갑니다^^;

cyrus 2017-09-02 12:13   좋아요 0 | URL
이 책, 정말 좋습니다. ^^

2017-09-01 23: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9-02 12:15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현재 삶의 질을 과거와 비교해봤자 작은 위안만 얻을 뿐 크게 달라지는 일은 없습니다.
 
엄마의 골목 - 진해 걸어본다 11
김탁환 지음 / 난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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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일에 작성한 글이 마음에 안 들어서 수정을 했습니다. 그래서 ‘MSG’를 많이 넣어봤습니다. 문체에 변화를 줬습니다. 높임체로 글을 쓰는 일이 편하게 느껴졌습니다.

 

는 뻥이고, 이 글은 ‘IBK 기업은행 아름다운 은퇴’(가을호)에 게재될 예정입니다.

 

 

 

 

 

고향, 말만 들어도 가슴이 설렙니다. 어린 날의 기억들이 새근새근 살아 숨 쉬는 곳. 숨기고 싶은 속내까지 깡그리 드러내고 있는 곳. 지금도 고향에는 추억의 풍경이 고스란히 남아 있을까요? 세월은 가도 옛날은 남습니다. 일상에 파묻혀 살다가 어느 순간 스치는 바람결에 과거의 기억으로 빨려 들어갈 때 있습니다. 추억의 파노라마가 펼쳐지면 고향의 골목길 구석구석, 친구들 얼굴이 눈에 선합니다. 누군가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이 가장 아름다운 시절이라고 했지만, 꼭 그렇지만 않습니다. 두 번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과거의 경험으로 괴로운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이런 생각을 해봤을 겁니다. ‘이 고통스러운 기억을 감쪽같이 잊어버릴 수 없을까? 상처로 남을 기억을 잊고 살기보다, 상처받기 이전의 상태로 되돌아갈 수만 있다면…‥

 

여기 추억을 떠올릴 때마다 아픈 가슴을 쓸어내리는 분이 있습니다. 김탁환 작가의 엄마입니다. 그녀는 올해 일흔다섯입니다. 그녀가 다섯 살이었을 때 일본에서 경남 진해로 건너왔고, 지금까지 줄곧 그 지역에서 살아왔습니다. 엄마는 인생의 절반 동안 가난과 정신적인 핍박을 온몸으로 부둥켜안았고, 삶의 현장에서 의연하게 버티며 자식을 보살폈습니다. 남편과 사별한 뒤 30년을 혼자서 지냈습니다. “엄마는 강하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엄마의 위대한 사랑과 희생을 표현한 말이죠. 그렇지만 작가의 엄마는 추억 앞에만 서면 한없이 약해졌습니다. 엄마에게 추억은 즐거웠던 시간을 떠올리게 하는 포근한 단어가 아니었습니다. 엄마는 추억을 확인할 수 있는 소중한 사진들을 없애기 시작합니다.

 

 

  마흔네 살에 홀로되신 엄마는 아이들 손이 닿지 않은 책장 제일 구석에 앨범을 올려놓고, 사별한 남편이 그리울 때마다 꺼내 보곤 하였다. 믿기 힘든 대답이 돌아왔다.

  “그것들부터 제일 먼저 없앴지.” (14)

 

 

작가는 엄마와 함께 진해 동네 곳곳을 함께 걷습니다. 그런데 모자는 같으면서 다른 길을 바라보면서 걷고 있었습니다. 작가는 엄마와 함께 걷는 골목에 있고, 엄마는 엄마 본인 마음의 골목에 있었던 거죠. 그래서 작가는 이 두 골목을 하나로 이으려고 합니다. 그것이 바로 엄마만의 동네에서만 볼 수 있는 엄마의 골목입니다. 엄마의 골목은 작가가 엄마의 추억 부스러기들을 씨줄로 엮어 만든 책입니다. ‘엄마의 이야기를 알고 싶은 아들의 진심 어린 마음이 통했을까요. 엄마는 가슴속에 숨겨둔 추억들을 하나씩 떠올리며 아들에게 들려줍니다. ‘추억이라는 매개로 모자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흐뭇해집니다. 작가는 엄마와 함께했던 행복한 시간을 기록한 책의 제목을 엄마의 골목으로 정합니다. 엄마의 골목에는 어리고 느리고 어설프게 걸어온 지난날의 엄마 발자국과 그 곁에 나란히 찍힌 자식의 발자국이 겹쳐 있습니다. 모자가 진해 곳곳에 남겨둔 발자국들은 소중한 것을 찾아가는 아름다운 회귀의 흔적입니다.

 

 

 “‘엄마의 골목이 좋아요? ‘어머니의 골목이 좋아요?”

 “엄마의 골목!”

 “왜죠?”

 “더 가까운 느낌이 들어. 어머니는 안방에서 앞마당 정도 거리라면, 엄마는 안방을 벗어나지 않고 한 이불 속에 있는, 그런 기분!” (182)

 

 

옹알이를 시작한 아기가 처음으로 입 밖으로 꺼낸 단어는 무엇일까요? 저는 엄마라고 생각합니다. ‘엄마는 아기가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단어입니다. 아기는 엄마의 품속에서 먹고 자랍니다. 엄마들은 아기가 기억하지 못한 것들을 추억이라는 이름표를 붙여 자신의 품속에 간직합니다. 아기가 어느 정도 자랐을 때 소중한 추억을 들려주기 위해서죠. 다 자란 자식은 자신과 엄마의 이야기를 찾기 위해 엄마 품에 바짝 귀를 갖다 댑니다. 엄마의 품속 깊이 저장된 추억을 듣는 것은 특별한 일입니다. 자세히 듣고 싶으면 엄마를 꼭 안아주세요. 엄마를 편안하게 만들어 드리고 대화를 시작해보세요. 그러면 엄마는 품속에 있던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입을 엽니다.

 

숨이 차고 힘들게 세상살이를 하다가 잠깐 멈춰 서게 될 때, 우리는 뒤를 돌아보고 자신을 돌이켜보게 됩니다. 소중한 추억이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속 먼지와 때를 한 겹 닦아내는 기분이 듭니다. 세상살이가 각박해질수록 그리운 추억 찾기에 대한 집착은 더욱더 강해지고 끈끈해집니다. 엄마의 골목이 여러분의 가슴에 따뜻하게 다가갔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의 가슴을 아련하게 덮어주는 안방의 이불 같은 책이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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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7-08-16 14: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그럼 너 혹시 은행 다니니...? 아무튼 좋은 일이다. 축하한다!^^

cyrus 2017-08-16 15:27   좋아요 0 | URL
원고 청탁을 받아서 기업은행 온라인 웹진에 글을 싣게 되었어요. 제가 은행에서 일했으면 책 읽고 글 쓰는 시간이 없었을 걸요. ^^

곰곰생각하는발 2017-08-16 14: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 본격적으로 글쟁이 되시는 겁니까 ?

cyrus 2017-08-16 15:30   좋아요 0 | URL
부업입니다. (이름을 밝힐 수 없는) 알라디너 덕분에 은행 온라인웹진에 글을 싣게 되었어요. 계속 쓸 수 있을지 미지수입니다. ^^

양철나무꾼 2017-08-16 1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이 책을 참 좋게 읽어서, 님의 리뷰가 더 남다른가 봅니다.
좋은 리뷰 잘 읽었습니다.

근데, 더운 대구에서, 휴가는 다녀오셨습니까?^^

cyrus 2017-08-17 12:37   좋아요 0 | URL
휴가는 다음 주에 있습니다. ^^

2017-08-16 21: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8-17 12:42   좋아요 0 | URL
제가 뭘 쓰고 있는지 관심 없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그래서 저의 책 사랑을 알아주는 몇몇 분들이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페크pek0501 2017-08-17 1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은행 온라인웹진에 글을 싣게 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그렇게 열심히 쓰시더니... 그런 좋은 결과가 생기는군요.

cyrus 2017-08-17 12:43   좋아요 0 | URL
사람 만나는 일에도 운이 따라야하는 것 같습니다. 사실 운이 좋았습니다. 알라딘 서재에 저보다 글을 잘 쓰는 분들이 많습니다.
 
엄마의 골목 - 진해 걸어본다 11
김탁환 지음 / 난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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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고향이라는 말을 떠올리면 골목길 구석구석, 친구들 얼굴이 눈에 선하다. 그러나 너무도 빠른 변화의 세월에 기억력은 조금씩 마모된다. 엔간한 토박이가 아니고는 그 고향 어딘가에 남겨둔 ‘추억’이라는 보물을 현실에서 찾기란 불가능하다. 누군가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이 가장 아름다운 시절이라고 했지만, 꼭 그렇지만 않다. 두 번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과거의 경험으로 고통받았던, 혹은 고통받고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이런 생각을 해봤을 것이다. “이 고통스러운 기억을 감쪽같이 잊어버릴 수 없을까.” 상처로 남을 기억을 잊고 살기보다, 상처받기 이전의 상태로 되돌아갈 수만 있다면…‥

 

김탁환 작가의 어머니는 약한 분이다. 그녀는 가난과 정신적인 핍박을 온몸으로 부둥켜안으면서도 삶의 현장에서 의연하게 버티며 자식들을 가르쳤다. 이 정도면 ‘억척스럽고 강한 어머니’의 전형적인 모습이지만, 작가는 어머니를 약한 존재라고 말한다. 여기서 작가가 말하는 ‘약하다’는 것은 어머니에게 향한 ‘안쓰러운 마음’을 드러낸 감정 표현이 아니다. 작가의 어머니에게 ‘추억’은 즐거웠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포근한 단어가 아니었다. 그것은 떠올릴 때마다 가슴 저리게 하는 따가운 단어였다. 그녀는 추억의 ‘추’자만 들어도 한없이 약해지는 분이었다.

 

 

 마흔네 살에 홀로되신 엄마는 아이들 손이 닿지 않은 책장 제일 구석에 앨범을 올려놓고, 사별한 남편이 그리울 때마다 꺼내 보곤 하였다. 믿기 힘든 대답이 돌아왔다.

“그것들부터 제일 먼저 없앴지.”

 

(14쪽)

 

 

작가와 어머니는 함께 진해 곳곳을 걷지만, 서로 정반대의 길을 간다. 작가는 ‘엄마와 함께 걷는 골목’에 있고, 어머니는 ‘어머니 본인 마음의 골목’을 걷는다. 그래서 작가는 이 두 가지 골목을 합치려고 어머니와 진해를 걷는 시간을 늘려나간다. 아들의 진심 어린 마음이 통했을까. 어머니는 진해 곳곳에 남겨둔 자신만의 추억을 하나씩 떠올리며 아들에게 들려준다. ‘추억’이라는 매개로 모자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면 두 사람은 어디를 가도 안방에 깔린 이불에 들어가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작가는 책 제목을 ‘어머니의 골목’이 아닌 ‘엄마의 골목’으로 정했다.

 

 

“‘엄마의 골목’이 좋아요? ‘어머니의 골목’이 좋아요?”

“엄마의 골목!”

“왜죠?”

“더 가까운 느낌이 들어. 어머니는 안방에서 앞마당 정도 거리라면, 엄마는 안방을 벗어나지 않고 한 이불 속에 있는, 그런 기분!”

 

(182쪽)

 

 

이 글에서는 작가의 어머니를 높여 부르기 위해 ‘어머니’라는 호칭을 쓴다. 그렇지만 ‘어머니’보다 ‘엄마’라는 호칭이 더 친근감을 준다. 나는 다 컸는데도 여전히 나를 낳으신 분을 ‘엄마’라고 부른다. 가끔은 경상도 출신답게 경상도 사투리로 ‘어무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그 단어에 우러나오는 투박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래, ‘엄마’가 낫다. 죽을 때까지도 ‘엄마’라고 부르기로 했다. 예전에는 다 커서도 ‘엄마’라고 부르는 어른은 마마보이(mamma’s boy) 기질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다. 그리고 《엄마의 골목》을 읽으면서 ‘엄마’가 ‘듣기 싫은 말’이 아니라고 확신했다. 사실 말을 트기 시작하는 아기가 꺼낸 첫 번째 단어는 ‘엄마’다. ‘엄마’는 아이가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단어다. 그렇게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엄마’의 품속에서 먹고 자란다. 엄마들은 우리가 아기였을 때 기억하지 못한 것들을 ‘추억’이라는 이름표를 붙여 자신의 품속에 간직한다. ‘추억’의 중요성을 깨달은 자식은 엄마의 품속에 쌓인 그것들을 귀담아 듣는다.

 

 

“어떻게 그 많은 이야기를 품고만 살았어요?”

“하고픈 이야길 다 하고 살아, 그럼?”

“그건 아니지만…‥”

“나이를 먹는다는 게 뭔지 아니? 일흔 살을 넘기며 늙어간다는 게 뭔지 아느냐고.”

“…‥”

“이야기가 많아진다는 거야. 차곡차곡 이 가슴에 쌓이지. 그렇다고 그걸 전부 누군가에게 말해야겠다는 생각은 안 들어. 다만 이야기할 기회가 가끔 찾아오는 것에 감사할 따름이야. 네가 와서 이렇게 함께 걸으니, 네게 이런저런 이야길 하는 것이고.”

 

(156쪽)

 

 

어머니에게 할 수 있는 효도는 다양하다. 큰돈 들이지 않고, 당장에 효도하는 방법이 딱 하나 있다. 아주 간단하다. 그것이 뭐냐면…‥ 《엄마의 골목》 제일 마지막 장을 직접 확인하시라. 눈치 빠른 분이라면 벌써 이 글을 읽는 순간 알았을 것이다. 효도는 더 늦기 전에 빨리해야 한다. 일단 나부터 정신 단디 차리고, 효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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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종 2017-08-07 2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마 생각이 많이 나는 글이네요. cyrus님의 글들 중 보기 드물게 감성이 많이 묻어나는. .^^ 제게 엄마는 제일 존경하는 분이면서 제 글속에서 자주 숨쉬는 분이시죠. 좀 있다 전화부터 드려야겠습니다.ㅎㅎ

cyrus 2017-08-08 12:04   좋아요 0 | URL
가끔 글을 잘 쓰고 싶을 때가 있어요. 리뷰 대회에 응모하기 위해 글을 쓰면 평소보다 더 잘 쓰려고 노력합니다. 이때 제가 ‘리뷰 MSG‘를 칩니다. 책을 보기 좋도록 소개하기 위해 감성적인 수사를 많이 쓰는 것이죠. 이런 글에 익숙해지면 몸에 해로울 수 있으니 조심해야 됩니다. ^^

2017-08-08 00: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8-08 12:08   좋아요 1 | URL
저희 어머니도 매달 한번씩 양로원에 계시는 외할머니를 뵈러 갑니다. 저도 그곳에 한 번 간 적이 있었습니다. 외할머니가 저를 오랜만에 봐서 그런지 제가 누군지 기억 못 하셨습니다. 그 모습을 볼 때 가슴 아팠습니다.

나비종 2017-08-08 12: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리뷰 MSG ㅎㅎ 몸에 좋지는 않지만, 가~~끔은 아이스크림처럼 달콤한 글로 위로를 받을 때도 있죠.^^

cyrus 2017-08-08 12:45   좋아요 0 | URL
네. 적당한 것이 좋습니다. ^^

stella.K 2017-08-08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옛날에 연극 같이하던 남자 후배놈이
지 아버지한테 아빠, 아빠하는데 어찌나 어색하던지.
낼모레면 장가갈 놈이 그러더라구.ㅎㅎ
난 엄마한테는 엄마라고 하지만 아버지한텐 아버지라고 했거든.
딸인데도 아빠가 닭살스럽더라고.
그러니 습관이 무서운 거지.
그 후배 지금은 애가 둘인데 애들 앞에서도 아빠, 아빠할지 가끔은 궁금해.ㅋ

cyrus 2017-08-08 14:20   좋아요 0 | URL
저는 다른 사람과 대화를 나눌 때 부모님을 언급하면 호칭을 ‘아버지’, ‘어머니’로 써요. 그리고 아버지한테 ‘아빠’라고 못해요. 저는 ‘아빠’, ‘엄마’ 호칭을 쓰면서 높임말을 해요. ^^
 
숨결이 바람 될 때 - 서른여섯 젊은 의사의 마지막 순간
폴 칼라니티 지음, 이종인 옮김 / 흐름출판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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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린 강아지를 보면 정말 좋아한다. 가족처럼 지내고 싶다. 하지만 살아 있는 것들을 잘 보살피지 못한다. 강아지건, 병아리건 생명 있는 것들은 나에게만 오면 시름시름 앓다 내 곁을 떠나버렸다. 그때부터 나는 죽음에 대해 생각했다.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나 역시 동물의 죽음은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깊은 상처였다. 살아 있는 내가 살아 있는 것들을 보듬어주지 못하다니. 얼마만큼 사랑을 주고 얼마만큼 참아야 하는지 내게 그것은 절대 알아낼 수 없는 절망적인 경험이었다.

 

폴 칼라니티의 《숨결이 바람 될 때》는 죽음을 특정 관점에서 정의 내리려 노력하지 않는다. 죽음에 대한 철학적 분석도 없다. 이 책은 가끔 불현듯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맞닥뜨리는 나에게 진언처럼 다가온다. 일상에 바쁜 현대인들에게 죽음을 생각한다는 것은 어쩌면 삶에 대한 허무나 존재의 유한성에 대한 비탄을 의미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을 통해 죽음은 무섭거나 두려운 것이 아니라는 것, 아침에 일어나 옷을 갈아입듯 살고 죽는 게 그런 것, 죽음은 또 다른 삶이 과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폐암 말기 판정을 받은 의사 폴 칼라니티의 슬픔은 단정하다. 그는 시한부 판정을 받고 난 이후부터 죽음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가족의 사랑, 미래의 꿈들과 기약 없는 이별을 맞이해야 하는 현실에 괴로워한다. 그가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을 살펴보면 사람이 죽음을 받아들이면서 느끼는 복잡한 감정을 읽을 수 있다. 부정과 우울, 그리고 죽음을 늦추고 싶은 마음. 그의 글은 시종 질서정연한 채 한번 풀어 헤쳐지지도, 터뜨려지지도 않는다. 폴의 육체가 계속 쇠락하긴 하지만 분명 살아있다. 폴은 죽음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려고 스스로 질문한다. ‘계속 살아갈 만큼 인생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폴은 노화만큼이나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이라는 것을 일찌감치 파악한다. 그래서 그는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의미를 ‘죽기 전까지 내가 원하는 것을 하면서 잘 사는 일’이라고 담담하게 표현할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죽음과 씨름하면서 산다는 것은 결코 받아들이기 쉬운 일이 아니다.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강한 믿음 없이 그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죽음이 노화만큼 두려운 일이 되어가는 것은, 죽음은 ‘엄청난 사회의 병이고, 필요악’이라 여기는 사회문화적 환경과 나 자신이 그것을 받아들이는 태도에서 온다.

 

죽음을 일종의 패배로 여겨지는 이 세상에서 나 자신을 제대로 지키며 살아갈 수 있을까. 이러면 죽음을 편안한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여전히 혼란스럽기만 하다. 그때 폴은 내게 말했다. “죽음은 사람을 불안하게 만든다. 그러나 죽음 없는 삶이라는 건 없다.” 그리고 언제든지 죽을 수 있도록 준비를 하면 더 적극적인 삶을 살 수 있다고도 했다. 지금 당장 죽을 준비를 하자는 것이 아니다. 언제 어디서 또 누구에게 어떻게 다가올지 모르는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면서 지금 살아가고 있는 내 삶의 방식을 진지하게 성찰해 보는 것이다.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자신을 되돌아보는 소중한 자아 반성이다. 이와 같은 반성은 삶에 대해 더욱 겸허하고 진실한 자세를 갖게 한다. 죽음을 안다는 것은 곧 자신의 삶을 아는 것이다. 죽음이 바로 삶이 존재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죽음이 있어서 삶은 삶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언젠가 내 마지막 숨결이 삶의 종착역에 닿게 될 때 할 수 있는 선택은 두 가지다. 죽음을 받아들이거나 아니면 거부하는 것. 그 선택은 내 삶의 본질을 찾아낼 수 있느냐에 따라 다르다. 내가 소중한 존재이며 내 안에 있는 의지력을 믿는다면, 폴의 말처럼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느끼며 사는 것은 죽음보다 강하다고 확신한다. 그렇게 되면 죽음이 두렵지 않다.

 

《숨결이 바람 될 때》는 삶을 아름다운 소풍에 비유한 천상병의 시 『귀천(歸天)』을 떠올리게 한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죽음 이후의 삶을 T.S. 엘리엇의 시구(詩句) ‘잔잔한 바다 한가운데에 있는 손에 응하는 일’이라고 인용한 적이 있는 폴을 보면 그의 뇌리에 관류한 죽음의 의미는 차라리 평온한 축복처럼 살갑게 다가온다. 결국, 모든 순간의 삶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죽음을 준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며, 미래에 올 죽음을 깨닫는 것이 현재의 삶을 즐겁게 사는 데 필요하다는 사실을 아는 것, 매우 즐겁고 행복한 일이다. 평화로운 죽음이란 떠나는 사람과 그 곁을 끝까지 지켜주는 사람 모두가 최선을 다할 때 맞이할 수 있다. 때론 지나친 집착과 절망도 떠나보내는 사람을 힘들게 하는 법. 이 교훈은 내 뺨에 마지막 숨결을 남기고 떠난 동물들이 나에게 알려준 것이다. 죽음에도 조화가 필요하다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천천히 작별의 말을 나누고 세상을 떠날 수 있는 자연스러운 죽음이 허락되는 세상이 오기를 바란다. 그것이야말로 세상 소풍 끝내는 자의 마지막 자존심을 이해하고, 지켜주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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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01 12: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8-01 17:53   좋아요 1 | URL
<알쓸신잡> 전주 편 방송에서 본건데, 남부시장에 가면 ‘적당히 벌고 아주 잘 살자’라는 무구가 적힌 것이 있어요. 그 말이 참 좋았어요. 누구나 이런 삶을 살고 싶을 겁니다. 여유를 누릴 수 있을 정도로 벌면서 일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잦은 야근에 시달리고, 주말에 일 나가야하는 현실을 생각하면 적당히 버는 것이 시원찮고, 잘 사는 것도 아니에요. 일에 치여 살다 보면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부족할거고, 갑작스럽게 병마에 시달리기 시작한다면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일 겁니다.

2017-08-01 18: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7-08-01 14: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도 읽어보지 못했는데 나도 이 책 보면 천상병 시가 생각나.
무엇보다 죽기 전에 주변 정리를 잘 해 놓고 죽어야 할 것 같은데
문제는 내가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거지.
적어도 오늘은 아니겠구나 하며 자꾸 미룬다는 건데
나 죽기 전에 가장 시급하게 할 일은 책을 정리해 두는 건데
할 수 있을랑가 모르겠다.ㅋ

cyrus 2017-08-01 17:54   좋아요 1 | URL
죽는 날은 정확히 알 수만 있다면 저는 제가 모은 책들을 기부하고 싶어요. 그런데 제 책을 받아줄 장소가 없다고 생각하니까 더 슬퍼집니다. ^^;;

겨울호랑이 2017-08-01 1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물을 잘 키우는 사람이 있고, 식물을 잘 키우는 사람이 있다고 하네요. cyrus님은 후자일 수도 있을 것 같네요^^:

cyrus 2017-08-01 17:56   좋아요 1 | URL
아닙니다. 지금 생각해보니까 저는 둘 다 키울 자격이 없습니다... ㅎㅎㅎ
성격이 게으른데다가 책 읽는 데 정신이 팔려서 동물, 식물 관리를 소홀히 합니다.
 
꿈꾸는 카메라 - 세상을 향한 아름다운 소통
고현주 지음 / 흔들의자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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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민이 영혼을 잠식한다. 번민이 야금야금 갉아 먹어 상처 난 영혼들은 보듬어 여며야 하는데, 이들은 서로를 돌볼 여유가 없다. 위로받고 마음을 다잡아야 하는 사람들이 사적이면서도 개방된 표현 행위사진 찍기에서 행복을 찾으려는 몸짓은 자연스럽다. 한 장의 사진은 사진작가의 숨겨둔 감정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가 바로 세상에 있었음을 확인하고 증언한다. 이렇게 무언가에 대해 기록한다는 점으로 인해 사진은 늘 우리의 삶과 함께 해왔다. 우리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인류의 희로애락을 지켜온 것이다. 여기에 사진이 갖는 힘은 특별하다. 한 장의 사진은 여러 마디의 말보다 더 큰 명징함으로 우리 마음을 살며시 울린다.

 

이런 사진의 힘을 집약적이고도 감동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꿈꾸는 카메라(흔들의자, 2017). 이 책을 쓴 고현주 씨는 소년원의 아이들에게 사진으로 소통하는 법을 알려줬다. 그녀는 아이들이 직접 찍은 한 컷의 사진, 그리고 사진에 얽힌 짤막한 이야기를 신중하게 골라 한 권의 책으로 묶었다. 이 책에 실린 아이들의 사진은 프로 사진작가의 전문적인 솜씨에 비춰보자면 지극히 아마추어적이다. 하지만 글을 쓰고 사진을 찍는 일에 대한 저자 나름의 독특한 시각과 애정이 작은 부분 하나에까지 가득하다.

 

사진은 찍는 법을 가르치는 예술이 아니다. 먼저 사물을 천천히 바라보는 법’, 사물에 다가가 말을 거는 법’, 마음을 드러내는 법을 익힌 다음 서서히 자신과, 타인과, 사물과, 자연과 소통하는 길을 찾고, 그 길을 따라 세상에 한 발짝 성큼, 다가가는 일이다. (30)

 

카메라를 통해 대상을 천천히 바라보는 것은 사진작가가 상대에게 말 거는 소통의 한 수단이다. 아이들은 애정 어린 대상 또는 사소한 대상에 카메라를 가까이 닿아 자신의 감정을 표현한다.

 

 

 

 

 

사진에 찍힌 대상은 아이들의 감정 상태, 기억 그리고 희망적인 미래에 대한 꿈의 모습을 하는 조각품이 된다. 그러니까 그것은 아이들과 다른 모습을 하고 있지만, 분명 아이들의 진짜 모습이며 자연스럽게 아이들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사진과 글(, 에세이)은 결코 따로 떼어낼 수 없으며 늘 함께 어울리는 관계다. 그렇게 조화를 이루면서 더 큰 감동의 파장과 힘을 지닌다.

 

시는 가장 함축된 언어이다.

사진은 가장 함축된 빛이다.

함축된 빛과 언어가 만나 또 다른 빛그림이 그려진다.

 

(108~109)

 

글은 소박하지만, 사진이 더해짐으로써 메마른 감정을 북돋운다. 사진은 평범하지만, 글과 함께 어우러져 한층 따뜻하고 친밀하게 느껴진다. 과장되지도, 화려하지도 않으며, 마냥 친근하다. 이 책이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미덕은 아주 쉬운 공감의 언어와 가슴 깊이 와 닿을 반짝반짝 빛나는 사진이다. 독자는 사진을 준비 없이 보아도 그저 보는 것으로 알 수 있고, 자연스럽게 공감의 의미와 넉넉한 사랑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이 책을 보면서 두 가지 생각을 해 보았다. 한 가지는 현실에 뿌리박은 사진의 힘이 참으로 놀랍다는 것, 또 아이들에게 사진은 세상을 이어주는 다리, ‘이라는 사실이다. 수많은 말과 글로도 서로 제대로 소통하지 못하고 오히려 단절과 대립 속에 사는 이 시대에 사진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서로의 공감대를 형성한다. 사진을 찍고, 바라보고, 마음을 드러내는 이 모든 과정은 아이들을 세상의 주인공으로 만들어 준다. 아이들이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건 삶을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다.

 

 

 

사진은 도서출판 흔들의자공식 블로그(http://blog.naver.com/rcpbooks)‘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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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12 16: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7-13 14:36   좋아요 1 | URL
책에 나온 사진들은 꾸밈이 없어서 좋았습니다.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사진이 잘 나올까?’, ‘보정을 어떻게 해야 할까?’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이런 생각이 많아지면 좋은 사진 한 장 건지기 어렵습니다.

transient-guest 2017-07-13 15: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술 이전에 마음으로 대상을 볼 수 있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저는 사실 사진 찍는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잘은 모르겠지만, 그윽한 울림을 받는 사진이 가끔 있기는 합니다. 단순한 자연의 카피에서 표현이 되려면 카메라기술만으로는 안될 것 같아요

cyrus 2017-07-13 15:49   좋아요 1 | URL
맞습니다. 마음으로 대상을 본다는 것. 말로만 들어서는 쉬운 일 같지만, 지속적인 관심과 관찰력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