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가고 장가가고 송기호 교수의 우리 역사 읽기 2
송기호 지음 /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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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죽는 조선의 신부들 
   
신부는 초록 저고리 다홍 치마로 겨우 귀밑머리만 풀리운 채 신랑하고 첫날밤을 아직 앉아 있었는데, 신랑이 그만 오줌이 급해져서 냉큼 일어나 달려가는 바람에 옷자락이 문 돌쩌귀에 걸었습니다. 그것을 신랑은 생각이 또 급해서 제 신부가 음탕해서 그 새를 못 참아서 뒤에서 손으로 잡아당기는 거라고, 그렇게만 알고 뒤도 안 돌아보고 나가 버렸습니다. 문 돌쩌귀에 걸린 옷자락이 찢어진 채로 오줌 누곤 못 쓰겠다며 달아나 버렸습니다. 
 그러고 나서 40년인가 50년이 지나간 뒤에 뜻밖에 딴 볼일이 생겨 이 신부네 집 옆을 지나가다가 그래도 잠시 궁금해서 신부방 문을 열고 들여다보니 신보는 귀밑머리만 풀린 첫날밤 모양 그대로 초록 저고리 다홍 치마로 아직도 고스란히 앉아 있었습니다. 안쓰러운 생각이 들어 그 어깨를 가서 어루만지니 그때서야 매운 재가 되어 폭삭 내려앉아 버렸습니다. 초록 재와 다홍 재로 내려앉아 버렸습니다. 

                                            - 서정주 [신부] 원문,『미당 시전집 1』민음사 - 
 

이 시는 신랑이 옷자락이 돌쩌귀에 걸린 것을 신부가 음탕해서 잡아당기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달아나버리는데, 40~50년이 경과한 뒤, 신부가 고스란히 제 모습대로 앉아 ‘매운 재’가 되어 버렸다는 민중 설화를 모티프로 하고 있다. 신부의 죽음은 일부종사(一夫從事)하는 열녀(烈女)로서의 매서운 신념을 암시하면서, 유교적 이념의 정신세계를 나타낸다. 그리고 ‘초록 재’, '다홍 재‘는 그 현세적 가치를 뛰어넘어 영원한 아름다움으로 승화되고 있다.

시가 설화적인 내용이다 보니 신부의 죽음이 비현실적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신부가 재가 되기 전까지 평생 기다리는 일련의 과정은 조선 시대의 여성의 모습이라서 낯설지가 않다. 조선 시대의 여성들에게 결혼은 단지 가문의 대를 잇기 위한 필수적인 예식이다. 결혼을 거부할 수 있는 선택권도 가지고 있지 않았으며 신랑이 누군지도 모른 채 원치 않는 결혼을 해야만 했다. 결혼식이 끝난 뒤, 얼굴을 모르는 신랑이 올 때까지 사랑방에 기다린다. 간혹 사극을 보면 신랑이 신부의 얼굴이 못 생긴 것을 알고, 합방을 거부하고 줄행랑 치고 마는 에피소드가 있다. 실제로 이런 일이 있었는지 알 길은 없지만, 신부가 마음에 안 든다거나, 대를 이을 아들을 낳지 못하면 신랑은 씨받이라는 명목으로 첩을 두는 것을 인정하는 사회이니 만큼 남성 중심주의의 조선 사회에서는 도망가는 신랑이 비일비재했을 것이다. 이런 상황을 처한 신부로서는 어쩔 수 없이 평생 시집살이의 서러움 속에서 살다가 생을 마감했다.  

미당은 자신의 시에서 신부의 비극적 죽음을 정절이라는 이름으로 미화하고 있고, 평생 자신을 기다리다가 죽은 신부에 대한 신랑의 미안함도 드러나 있지 않다. 여성들에게 정절을 강조했던 남성 중심적이며 폐쇄적인 유교 사상의 뉘앙스가 풍기고 있다. 자신들에게 부당했을 유교 사회를 원망하면서 죽었을 조선 여인들에게, 미당은 이들의 죽음을 유교 사회에 걸맞은 숭고한 죽음으로 포장함으로써 조선의 신부들을 두 번 죽이고 말았다.        

 

 

위기의 조선의 주부들   

조선 사회에는 여성들에게 삼종칠거(三從七去)를 강조하였다. 시집 가기 전에는 아버지에게, 시집 가서는 남편에게, 남편이 죽으면 아들에게 복종한다고 했다(삼종). 그리고 시부모에게 순종하지 않는 것, 아들을 못 낳는 것, 음란한 것, 질투하는 것, 나쁜 병이 있는 것, 말이 많은 것, 남의 물건을 훔치게 되면 버림받는다고 했다(칠거). 삼종칠거 중에서 여성들이 갖춰야 할 유교적 소양은 남편에 대한 복종이다. 결국에는 남성의 지위를 정립해주고 있는, 남성들을 위한 사상인 셈이다. 여성들은 남편이 죽으면 개가를 할 수 없었으며 한 남편을 향한 수절을 죽을 때까지 지켜야 했다. 나라에 전란이 일어나면 남편이 죽으면 조선의 부인도 따라 죽었다. 심지어 남편과 아들을 살리기 위해서 부인이 먼저 목숨을 바치기도 했다. 지금으로서는 여성들의 이런 행동이 극단적으로 보이지만, 당시 사회로서는 당연한 일이었으며 전란에 억울하게 희생당한 여성들은 열녀로 추앙받았다. 

지금은 남편이 죽고 홀로 남은 여자를 미망인(未亡人)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조선 시대에서 부르는 미망인은 지금의 뜻과 차이가 있다. 원래는 남편 따라 죽지 못한 여자, 혹은 남편이 죽었는데도 죽지 않은 부인들을 가리킬 때 불렀다. 병자호란 때 어쩔 수 없이 공녀(貢女)로 청나라에 가야만 했던 여성들은 전란이 끝난 뒤, 고국으로 살아 돌아왔다. 그러나 나라는 그들을 매정하게 돌아서버렸다. 
 

  잡혀갔던 여인은 비록 그들의 본심은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변란을 만나 죽지 못했 

 으니 절개를 잃지 않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이미 절개를 잃었으면 남편 집과는 의리가 

 이미 끊어진 것이니, 억지로 다시 합치게 해서 사대부의 가풍을 더럽힐 수는 결코 없을 

 것이다. 
 

 - 인조실록 16년(1638) 3월 11일, 송기호『시집가고 장가가고』 

  「처와 첩」에 재인용, p 121 - 
 

‘화냥년’이라는 주위에 멸시의 시선을 받아서 서러운 마당에 조정에서는 유교적 의리에 어긋난다는 이유만으로 쌀쌀하게 대하고 있으니 공녀들에게는 하루하루를 사는데 고역이었을 것이다. 이들은 살아있으나 이미 죽은 자나 다름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의 아내가 적에게 잡혀 오면 남편은 무정하게 쫒아내 버렸으며, 새로이 처를 맞아들였다. 앞에서 언급했던 칠거에는 적에게 포로로 잡힌 아내를 쫓아내라는 사항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남편들은 유교와 권위를 앞세워 횡포를 부렸다. 
  

    

남편을 위해서 먼저 죽는 ‘레이디퍼스트’ 

 

나라에서는 열녀의 행적과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해 열녀가 살았던 마을에 열녀문을 세웠다. 그러나 열녀문을 세운 의도 뒤에는 조선의 여성들에게 정절을 강조하려는 암묵적인 강조가 숨어 있다. 그리고 강조의 근원에는 남성이 우월하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그런 열녀문이 열녀를 기리기 위해서 세웠다기보다는 조선의 유교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남성들의 권위를 은연중에 드러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여성을 위한 남성의 정중한 매너와 태도를 ‘레이디퍼스트(Lady-first)'라고 부른다. 여성들은 이런 매너를 갖추지 않은 남성들을 보면 우습게 여긴다. 그러나 조선 사회에서는 반대로 여성들이 남성들을 위해서 예의와 도리를 지켜야했으며 그런 태도를 보이지 못한 여성들은 비웃음과 멸시의 대상이 되어야 했다. 만약 조선 사회에서 ’레이디퍼스트’라는 단어가 통용되었다면 남편보다 먼저 죽는 열녀를 지칭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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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과 질병 한길그레이트북스 97
헨리 지거리스트 지음, 황상익 옮김 / 한길사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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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더 센 놈이 온다. 슈퍼박테리아

작년에 전 세계를 강타했던 신종 플루가 남기고 간 공포가 사람들의 기억에 사라지고 있어가고 있는 즈음에 이번에는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슈퍼박테리아의 등장으로 열도가 공포로 떨고 있다. 특히, 발병의 근원지가 병원이라는 점과 이를 은폐하고 있었던 병원 관계자의 대처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지난 2월에 문제의 병원 환자 8명이 슈퍼박테리아에 감염되어 그 중 4명이 사망하였다. 그리고 시간이 가면 갈수록 감염자와 사망자 수도 늘어나서 현재는 집계된 감염자 수가 46명이며 사망자는 27명이다. 여론에서 언급되고 있는 슈퍼박테리아의 정식 병명은 '아시네토박터 바우마니'이다. 증상은 패혈증, 폐렴 증세가 나타나며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항생제에 강한 내성을 보이고 있다. 면역력이 강한 사람들에게는 슈퍼박테리아에 감염될 우려는 낮지만 면역력이 낮은 중병 환자들에게는 치명적이다. 현재로서는 슈퍼박테리아에 대항할만한 항생제가 없다. 슈퍼박테리아의 등장 때문에 발등에 불이 떨어진 일본 정부 입장에서는 감염 확산을 막을 수 있는 대책만이 그나마 슈퍼박테리아로부터 시민을 보호할 수 있는 최우선적이며 현실적인 방법일 뿐이다. 
      

인류 질병 잔혹사 

역사를 되돌아보면 강력한 질병들이 등장하여 전 세계를 휩쓸고 지나갔다. 헨리 지거리스트의『문명과 질병』에는 역사 속에서 맹위를 떨쳤던 악명 높은 질병들을 소개하고 있다.

14세기 중세부터 17세기 절대왕정 시기까지 페스트가 전 유럽에 창궐하였으며, 그 당시 취약했던 위생 환경과 미숙한 의학 기술 덕분에 페스트 이외에도 콜레라, 결핵 등과 같은 전염병도 유행하여 많은 유럽 시민들의 사망자수를 늘리는 데 일조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피바람이 전 세계에 불고 난 뒤인 1918년에는 스페인 독감이 유행하였다. 2년 동안 2500만~50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는데 중세 시기 때 유행했던 페스트 사망자보다 훨씬 많은 수이다. 이 책이 1943년에 발표한 것이라서 질병의 역사는 여기까지 소개되어 있지만, 세계적 질병의 유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산업화의 발전과 동시에 보다 높은 의학기술이 보유하게 된 선진국은 과거에 치료할 수 없었던 병들과 종말을 고했지만 개발도상국이나 빈곤 국가에서는 아직도 말라리아, 콜레라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의학기술이 발달할수록 세균들은 항생제의 내성에 강하도록 스스로 계통번식을 하였다. 이후로 에볼라 바이러스, 에이즈가 등장하였으며 2003년에는 사스(SARS, 중증 급성 호흡기 증후군), 2009년에는 신종 플루의 등장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지구를 떠나지 못하고 있는 판데믹포비아 

역사 속에서 인간들을 고통스럽게 한 불치병들은 의학기술로 인해 지구상에서 떠났지만, 인간들이 느끼는 질병에 대한 공포는 아직 지구를 떠나지 못하고 있다. 이전 병들보다 더 강력한 질병이 지구를 찾아오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보건기구에서는 세계적으로 전염병이 대유행하는 상태를 총 6단계로 지정하고 있는데 그 중 가장 최고 위험 등급을 판데믹(Pandemic)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리스어로 ‘pan’은 ‘모두’, ‘demic’은 ‘사람’이라는 뜻으로, 전염병의 대유행을 의미하고 있다. 지금까지 판데믹 경보를 내린 사례는 1918년 스페인 독감과 최근 신종 플루를 포함해서 단, 4번뿐이다. 사람들 사이의 전염이 급속히 퍼지기 시작하여 세계적인 유행병이 발생할 수 있는 초기 상태를 4단계로 두고 있으며 5단계는 병의 유행이 임박했다는 상태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그리고 병의 유행이 심각하면 6단계 판데믹으로 등급이 상승된다.

그러나 사람들은 여론에서 언급되는 전염병 경보 단계 가지고 지나치게 질병에 대한 두려움에 빠져 호들갑을 떤다. 그리고 공포의 감정이 너무 지나치면 판데믹포비아(Pandemicphobia)까지 이르게 되어 사회생활에 지장을 주게 된다. 자신의 몸에서 조금이라도 이상 현상이 일어난다거나 발견된다면 곧 죽을 병 걸린 것 마냥 착각하기 쉽다. 신종 플루가 한창 유행했을 때 마스크와 손 소독제의 매출이 증가했으며 사람이 많이 모여 있는 공공기관에서는 손 소독기를 설치하여야만 했다. 이전에 설치되었던 손 소독기에 눈길을 주지 않았던 사람들은 혹시나 자신도 병에 걸릴 우려 때문에 손 소독기를 사용에 의존하게 된다. 이번에 발생한 슈퍼박테리아의 경우에도 면역력이 강한 사람에게는 무해함에도 불구하고, 시민들 사이에 병에 대한 불필요한 공포감이 확산된다고 대한의사협회가 지적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의 판데믹포비아는 과거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지금과 같은 의학기술이 본격적으로 갖춰진 시기는 20세기부터이다. 유럽 중세부터 산업혁명이 일어났던 18세기까지는 의학 기술이 제대로 발달되지 않아 전염병과 각종 질병의 유행 앞에 많은 사람들이 속수무책으로 희생당해야만 했다. 그러다보니 당시 유럽 사회를 지배하고 있었던 기독교가 질병을 치유할 수 있는 유일한 타개책이었다. 불치병에 걸린 환자들은 자신이 살면서 큰 죄악을 저질렀기 때문에 신이 큰 벌을 내렸다고 생각했다. 페스트 환자들은 신 앞에서 면죄와 동시에 자신의 병을 낫기 위해서 자해를 가하였다. 지금으로 보면 비현실적인 방법이지만 사람들은 어떻게든 질병의 고통과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온갖 노력하였다. 정신병 환자들에 대한 당시 사람들의 시선과 반응은 황당하기만 하다. 사람들은 정신병 환자들을 신을 반하는 악마나 마녀로 규정하였다. 무고한 특정 사람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려는 대중의 행동을 뜻하는 ‘마녀사냥’ 도 신이 내린 벌이었던 질병에 대한 당시 사람들의 두려움 속에서 탄생되었다.  

그리고 성서에는 병을 낫게 하는 예수의 존재가 언급되다보니 사람들은 기독교에서 숭배되는 성인(聖人)이 그려져 있는 이콘화(Icon)라든가 소유하고 있었던 소지품을 가지고 있으면 병을 낫는다고 믿었다. 심지어 성인이 죽은 뒤에라도 손가락, 귀, 코와 같은 신체 일부를 절단하는 일도 발생하기도 했다. 기독교 성인에 대한 사람들의 치유 의식은 왕의 안수(按手) 의식으로 발전하게 된다. 막강한 종교의 힘 덕분에 나라를 지배하는 왕도 신적 존재가 되었다. 그래서 왕이 직접 병든 시민들을 치료하게 해주는 안수 의식이 생겨났다. 중세 때부터 시작되었던 안수 의식은 18세기에 이르러 샤를 10세까지도 이어졌다. 하지만 안수 의식은 치료술이라기보다는 종교적 성격이 강한 치료를 위한 의식일 뿐이었다. 단순히 왕이 직접 병자의 몸에 살짝 손으로 접촉하고 마는 것뿐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기 나라를 다스리는 왕의 안수 능력을 믿었다. 영국의 찰스 1세가 처형당하였을 때, 처형식에 있었던 영국 시민들이 처형대로 몰려와 왕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수건에 묻히려는 웃지못할 해프닝이 있었다. 처형당한 찰스 1세는 한낱 권력에서 밀려나 죽은 사람이 되었지만 이전에 왕이라는 신성한 존재였기에 시민들은 찰스 1세의 피가 치유 능력이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질병의 힘을 극복하지 못한 문명의 진보

『문명과 질병』을 번역한 황상익 서울대 교수는 서론에서 문명의 진보가 어느 정도 질병을 극복해왔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문명의 진보가 질병을 극복하려고 했다기보다는 무시무시한 질병의 파급 효과를 어떻게 대처했으며 적용했다고 생각된다. ‘극복’이라는 단어 자체에는 악조건이나 적을 이겨 내 굴복시킨다는 사전적 의미가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앞에서 언급했던 질병 유행의 역사를 되짚어보면 문명의 진보가 질병을 극복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아무리 발달된 의학기술로 통해 악명 높았던 질병을 지구상에 퇴치했다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의학기술로도 소용없는 강력한 질병들이 등장하였다.  

이웃나라 일본에서 슈퍼박테리아 때문에 떨고 있는만큼 우리나라도 슈퍼박테리아의 손아귀를 피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헨리 지거리스트는 질병 역사의 순환성을 이해하고 앞으로 발생할 강력한 질병 퇴치를 위해서 국제적인 문제로 바라볼 것을 주장한다. 그는 보건정책의 권위자로서 보건의료 서비스 구축론자이다. 전 세계적으로 판데믹이 유행하게 되면 다국적 제약회사들의 신약 개발에 시동을 건다. 그러나 일부 음모론자들 사이에서는 개발도상국들은 거대 제약회사의 독점에 휘둘려서 그들의 배만 부르게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신약 개발이 질병에 맞서야하는 인류 생존에 걸린 일이니 만큼 제약회사의 신약 개발 투자를 제한하는 것은 억측이다. 오히려 질병에 대한 안일한 대처가 후에 더 많은 질병의 희생자가 늘어지고, 보건 대책에 대한 경제적 비용을 더 부담할 우려가 있다. 헨리 지거리스트의 주장처럼 세계 문제를 주관하는 국제 사회단체와 다국적 제약회사가 서로 손을 맞잡아 질병 퇴치에 앞장서야 한다. 질병 역사의 순환성 속의 질병 vs 문명의 대결 결과는 장군 멍군이다. 항상 질병이 발생하면 그 질병을 이길 수 있는 의학기술이 등장하곤 하였다. 비록 점점 발달되어가는 문명의 진보가 질병의 힘을 완전히 극복하지 못하더라도 인류는 스스로 질병에 맞서 살아남으려는 강한 생존 욕구를 가지고 있으며 이미 검증된 의학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이상, 앞으로의 세계적인 환난을 슬기롭게 대처할 수 있는 희망을 가져본다.

  


* 인용 관련 기사 출처 및 링크

[일본 ‘슈퍼박테리아’ 파문 확산] YTN, 2010년 9월 8일 입력
http://www.ytn.co.kr/_ln/0104_201009080653364349  

[의협, 슈퍼박테리아 "불필요한 공포감 확산"] 머니투데이, 2010년 9월 10일 입력
http://www.mt.co.kr/view/mtview.php?type=1&no=2010091011125658272&outlink=1

[슈퍼 박테리아, "더이상 치료제가 없다!"] 뉴스한국, 2010년 9월 11일 입력
http://www.newshankuk.com/tv/nhtv_view.asp?articleno=s2010091100301819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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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 태어나서 - 한국인의 삶과 죽음 송기호 교수의 우리 역사 읽기 1
송기호 지음 /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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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인을 위한 강좌는 없다

노인들이 뿔났다. 화난 이유는 국립중앙박물관회에서 운영하는 한국사 관련 시민강좌의 수강자격 

을 63세 미만으로 제한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노인들은 박물관회의 제한 규정은 ‘노인차 

별’이라고 반발하였고 국가인권위원회에까지 이 문제를 거론하였다. 박물관회 측은 노인 수강자 

 격 제한은 노인들의 건강상 문제를 고려해서 30년 전부터 있었으며 노인을 대상으로 한 강좌가  

마련되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내년부터 60대 이상, 이하로 나누어 운영한다거나 70대 미만으로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관련기사를 쭉 읽고나니 박물관회 측의 설명이  

앞뒤가 맞지 않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노인을 위한 강좌가 마련되었다면 63세 이상  

노인들은 노인 대상으로 한 강좌에 수강하면 되었을 것이고 굳이 노인차별을 언급하면서까지  

화를  낼 이유도 없을 것이다. 박물관회의 말이 정말 사실인지 한 번 국립중앙박물관회 홈페이지 

를 확인하였다. 노인들이 이의를 제기한 그 문제의 강좌는 ‘특설강좌’이다. 특설강좌 모집대상에 

 ‘전통문화에 관심이 많은 분’이라고만 기재되어 있을 뿐 63세 미만 제한이라는 말은 없었다.  

홈페이지에 게시된 강좌 모집 안내에 분명히 노인 제한이라는 말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국립중앙 

박물관에 찾아가서 현장 접수를 했을 것이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접수를 담당하는 직원이 나이  

제한을 언급하면서 강의 신청을 받아주지 않으면 63세 이상 노인들의 입장에서는 황당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특설강좌 이외에 다른 강좌들의 모집 요강에도 나이 제한이라는 말은 없었다.  

다만 박물관회 측에 서 있다고 말한 순수 노인들을 위한 강좌는 단 한 개도 찾을 수가 없었다.  

수강신청을 원하는 노인들이 홈페이지 속 모집 안내를 믿고 신청했다간 뒤통수를 얻어맞을 수  

있는 오해의 소지가 있다. 늙는 것도 서러운 마당에 노인 차별에다가 강좌 모집 안내를 제대로  

홍보하지 않은 박물관회의 처사에 노인들이 뿔난 이유가 있었다.  

 

  

 우리가 몰랐던 조선 사회의 노인에 대한 인식 

옛날에는 유교 사상의 영향에 의해서 노인을 공경하는 사회였다. 어른과 어린아이 사이에는 사회 

적인 순서와 질서가 있어야 한다는 장유유서(長幼有序)라는 덕목이 있는데 이를 실천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노인 공경이었다. 지금까지도 유교적 사상이 짙은 노인 공경에 대한 전통이 이어져 오 

고 있다. 항상 식사할 때는 나이가 높은 윗사람이 먼저 해야 한다는 기본적인 밥상머리 교육과  

신체적으로 약한 노인을 위해서 자리를 양보할 수 있도록 만든 버스의 경로석이 있다. 이렇듯,  

리 생활 곳곳에 노인 공경과 관련된 사회적 문화가 남아 있다.

그러나 예법과 예의를 중요시한 조선 시대에서도 노인 차별이 있었던 듯하다.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에는 노인을 무시하는 사람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다.

  옛날 양대녕이 약관일 때 주한과 주앙 두 사람과 함께 한림원에 있었는데 이 두 사람은 

  이미 머리가 하얗게 새었다. 매사를 논할 때마다 양대녕은 그들을 업신여겨서 “두
  노인
은 어떻게 생각합니까.”하면 주한은 매우 불쾌하여 “그대는 늙은이를 그리 깔보지 

  마소. 필경은 이 백발을 남겨서 그대에게 선사할 것이네.”했다. 이에 주앙은 “백발을
  남겨서 그에게 주지 마오. 다른 사람이 또 그를 깔보는 것을 못하게 해야죠”했다. 그  

  뒤 양대녕은 과연 나이 오십도 못 살았다. 

  - 박지원『열하일기』구태이문 편, 송기호『이 땅에 태어나서』‘태어나서 살고지고 1’  

     p 135 재인용 -

노인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태어났고 오래 살았기에 젊은 사람과 차원이 다른 삶의 진리 

가 축적, 형성되어 있다. 하지만 정신은 성숙되더라도 육체는 점점 약해지고 이전과 다른 신체적 

변화를 갖게 된다. 젊었을 때 혈기왕성했던 힘은 노인이 되면서 무거운 것조차 들 수 없게 되어버 

리고, 탱탱했던 피부에는 주름이 생겨온다. 시력도 급격히 떨어지게 되어 돋보기안경 없이는
살 수 없게 된다. 조선 사회는 농경 사회이다 보니 기본적으로 농사일에 투입할 수 있는 노동력이  

중요하다. 아무리 노인들이 삶의 스승으로서 대우받는다 하더라도 사회적 활동을 제대로 할 수 없 

는 약자였다. 일정한 연령에 달하면 직장에서 자동적으로 퇴직하는 정년제처럼 조선 시대 관리  

사회에서도 이와 유사한 제도가 있었다. 문종 시대에는 70세가 되면 스스로 벼슬자리에 물러나 

야 하는 치사(致仕)제도라는 것이 있었다. 벼슬자리에 물러나게 되면 해당 고을에서 매달 술과  

고기를 보내왔다고 한다. 퇴직 이후에 받게 되는 오늘날의 퇴직연금과 비슷하다. 우리 사회는 일 

을 계속 하고 싶어도 정년제에 따라 스스로 퇴직하는 것이 상례인 반면에 조선의 치사제도는 지금 

 정년제와 비교하면 효력이 미미했을지도 모른다. 70세가 넘어서도 국가의 필요에 의해 퇴관  

하지 못한 자에게는 궤장(几杖)이라는 지팡이를 하사하는 일이 있었다. 70세의 사대부의 입장에 

 은퇴는 활동력이 상실된 노인이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최후의 선택이며 오랜 세월 어렵게 키 

워 온 권력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고령이지만 건강에만 이상이 없다면 사대부들에 

게는 지금까지 올라온 높은 벼슬자리를 스스로 물러나고 싶은 마음이 없었을 것이다.  
 

 

 그들이 노인이 되고 싶어 하는 이유 
 

노인을 공경해야한다는 유교적 이념이 내세운 사회를 지향하는 조선 사회에서도 은근히 노인을  

무시하고 차별하는 모습이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노인’이 되고 싶어 했다. 즉, 늙더라도 오래 

살고 싶어 했다는 것이다. 조선 시대의 평균 인구 수명은 지금과는 많이 다르다. 옛날에는 의학  

기술이 많이 발달하지 못해서 지금은 간단히 치료만으로 치유할 수 있는 병에도 사람들은 제대로 

된 치료도 받지 못한 채 죽을 수밖에 없었다. 특히 전국에 전염병이 휩쓸었다하면 엄청난 인명 피 

해를 입었다. 그리고 사회적 형편이 좋지 않은 서민들은 먹는 것도 부실하다보니 굶어 죽는 사람 

도 많았다. 다양한 문제로 인해서『열하일기』속 양대녕처럼 50세를 넘기지 못하고 죽는 사람이 

다반사였으며 심지어 20세를 넘기지 못하고 죽는 어린이들도 많았다. 이런 상황에 오죽했으면  

태종도 50대에 이른 자신이 노인이라고 생각했으며 10년 뒤에 죽게 될 것이라고 말했겠는가. 

(태종은 자신의 예언대로 하지 못했다. 60세를 넘기지도 못한 채 55세의 나이로 사망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50세가 되어도 특별한 잔치는 하지 않는다. 60세가 되어서야 환갑잔치를  

하게 될 뿐이다. 그러나 조선 시대에는 50세가 되면 잔치를 열었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영조는 오순 어연례를 했다는 기록이 있다. 당시 평균 인구 수명이 50세임을 감안하면 50세가 된  

영조는 어느 정도 오래 살았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오순잔치는 영조가 단순히 50세가 된 것을 
축하하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앞으로 영조가 장수하여 나라를 다스리기를 바라는 간절한 염원도  

겨져 있다. 그런 화려한 잔치를 열어서인지 영조는 82세의 나이로 역대 조선 왕들 중에서 가장  

오래 살았다.   

   

 

 유령 노인 

여러 가지 역사적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장수하는 사람들은 국가적인 경사였다. 조정에서는 

대대적으로 조선 인구의 수명을 조사하여 장수한 사람이 있으면 포상으로 많은 곡식을 내리기도 

했다. 그리고 해마다 8월에는 전국의 노인들을 궁궐로 초대하여 양로연(養老宴)이 치러지기도  

했다. 그래서 일부는 포상과 국가적인 연회에 눈이 멀어 나이를 속여 보고하는 일도 있었다.

최근에 이웃나라 일본이 장수 인구 통계 결과가 허위라는 것이 밝혀져서 장수 국가 이미지에 큰  
손상을 입었다. 일본 최고령자로 알려진 111세의 노인이 실제로 30여 년 전에 사망한 것으로 밝혀 

졌으며 100세 이상 고령자 노인 가운데 25명은 소재 불명자라고 한다. 이런 오류가 발생한  

이유는 고령 인구에 대한 조사를 제대로 하지 않은 일본의 행정시스템에도 문제가 있지만  

‘장수’에 대한 열망이 낳은 인간의 욕심도 배제할 수 없다. 사망한 111세 노인의 가족은 생전에  

노인이 받았던 연금을 받기 위해서 30여 년 동안 사망 사실을 숨기고 있었던 것이며 인구 조사가 

정기적으로 실시하게 되면 노인이 살아있다고 허위 신고하기도 했다. 그래서 일본에는 호적상 

에서는 존재를 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이미 죽은 사람이 된 노인들을 이른바 ‘유령 노인’이라고  

한다. 조선과 일본의 이런 모습은 불행하게도 오래 살고 싶어하는 장수를 향한 열망과 돈에 집착 

하는 물질 만능주의와 절묘하게 결합되어 나타난 특수적 사회 문제이다.  

 

 

 장수국가가 된다고 해서 좋기만 할까?

 

T.S. 엘리엇의 시 <황무지>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한번은 쿠마에서 나도 그 무녀가 조롱 속에 매달려 있는 것을 보았지요. 

  애들이 <무녀야, 넌 뭘 원하니?> 하고 물었을 때 그녀는 대답했지요. 

  <죽고 싶어> 

 

  - T.S. 엘리엇 <황무지> 황동규 역, 민음사, p 44 -  

 

시의 구절에 등장하는 무녀는 태양의 신 아폴로에게 손안에 든 먼지만큼의 많은 햇수의 수명을 

달라고 소원을 빌었다. 그래서 그는 아폴로로부터 어마어마한 수명을 부여받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무녀는 늙어만가고 거의 죽은 시체와 다름없는 메마른 모습으로 변하게 된다. 

그 이유는 어마어마한 수명만큼의 젊음도 달라는 말을 안 했기 때문이다. 결국, 무녀는 죽음보다 

도 못한 죽은 자가 되어 세상 사람들에게 조롱을 받는다.  

 

우리 인간도 무녀와 같이 장수의 꿈이 자신들에게 어떤 영향을 초래하는지 모르는 채 무작정  

바라기만 한다. 우리나라 전국에 노년층이 많아질수록 사회 내 계층 분포의 격차가 심해질  

뿐이고 사회적 자본도 노년층 복지에 편향될 우려도 있다. 그렇게 되면 과도한 집중 투자로  

인해서 경제 발전에 악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장수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도 그렇게 좋은  

현상이라고는 볼 수가 없다.  불과 몇 년 전에는, 장수하는 사람들은 건강한 사람의 표상(表象) 

으로 결부시켰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의학 기술도 발달된 만큼 인간의  수명도  

연장된다. 이제는 노년층도 많아지고 있는 추세인만큼 오래 사는 것도 당연하게 여겨진다.   

어쩌면 일본과 같은 경우처럼 자식이 부모를 부양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부모가  자신이 받은  

연금으로 자식을 부양하고 먹여살리게 될지도 모른다. 일본의 소식이 남 일처럼 여겨서는 안  

된다.  먼 훗날, 초고령 사회가 되어버린 우리나라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일본의 사례를 교훈삼아 

우리나라도 초고령 사회의 진입를 막을 수 있는 다양한 정책들이 마련되어야 할 시점이다.  

 

  

 

 

* 기사 출처 및 링크, 관련 홈페이지   

  

[박물관 시민강좌, 노인은 오지 말라?] 한국일보 8월 10일자
http://news.hankooki.com/lpage/society/201008/h2010081002304721950.htm  

 

국립중앙박물관회 
http://www.mumes.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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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의 유토피아 - 우리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꿈꾼 세계 키워드 한국문화 5
서신혜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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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 엘도라도, 샹그릴라 
 

 『○○투어, 유토피아를 찾아 떠나는 국내 섬 여행』데일리안 2010년 5월 25일 입력 
 

 『윤증현 “공짜점심은 없다..... 유토피아적 주장』노컷뉴스 2010년 3월 23일 입력

우리나라 대중 매스컴에서는 ‘이상향(理想鄕)’이라는 단어보다는 ‘유토피아(Utopia)'라는 

말을 자주 쓴다. 그리고 대중들도 매스컴에 주는 전달의 영향에 의해서 현실 세계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 즉, 유토피아라고 부른다. 요즘은 유토피아의 뜻이 확대되어  

다음과 같은 기사 제목과 같이 차용되고 있다. 인간의 손이 거치지 않은 원시적인  

아름다움을 갖춘 섬을 유토피아라고 말하며, 현실에서는 실현 불가능한 사상이나  

제도에도 ‘유토피아적(Utopian)'이라는 단어로 비유된다. ‘유토피아’는 영국의 정치가인  

토머스 모어가 쓴 공상 소설의 제목에서 유래되었다. 그리스 어로는 ‘아무데도 없는 나라’ 

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제목 그대로 ‘유토피아’라는 이상 사회를 이루고 있는 국가의  

생활상을 묘사하였는데 작품 의도는 당시 영국의 사회를 비판하고 있다. ‘유토피아’ 말고도 

이상 세계를 뜻하는 단어들이 있다. 아마존 강에 있다는 전설의 황금 도시  

‘엘도라도(El Dorado)’, 제임스 힐튼의 동명 제목 소설로 인해 알려지게 된 평화와  

행복의 도시 ‘샹그릴라(Shangri-La)’. 재미있게도 이 세 가지  이상향들은 각각 유럽,  

아메리카, 아시아 대륙을 대표하고 있다. 그리고 유토피아처럼 말  그대로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세계이다. 1997년에 중국 정부는 소설 속의 ‘샹그릴라’가  

티베트에 위치하고 있는 ‘중뎬’이라는 지역임을 공식 발표를 하였고 4년 뒤에는 지명을  

아예 ‘샹그릴라’로 개명하였다. 티베트는 지리적으로 고원이 많고 천연의 자연 상태를  

간직하고 있어서 이상 세계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다. 하지만 현재까지도 중국과  

티베트와의 관계가 냉랭한 분위기임을 감안하면 어떻게든 친(親) 티베트적인 모습을  

전 세계에 알려야 하는 중국의 ‘샹그릴라’ 공식 발표는 미덥지가 않게 느껴진다.  

‘샹그릴라’는 소설 속에서만 그려지는 이상 세계로 기억되는 것이 오히려 나을 거 같다. 
 

 

 우리나라에도 유토피아가 있었을까? 
  

그런데 대부분 사람들은 TV나 신문 속에서 등장하는 ‘유토피아’라는 단어를 많이 보고  

들어봤음에도 불구하고 용어의 유래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이다.  

심지어 유토피아라는 단어의 뜻을 모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에는 

‘유토피아’와 같은 이상 세계를 지칭하는 단어가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매스컴의 영향으로 인해서 이상 세계=유토피아’ 라는 서구적인 인식에 사로잡혀  

정작 우리나라의 이상 세계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다. 나날이 갈수록 홍수 흐르듯  

유입되고 있는 서구 문화의 영향과 제대로 된 우리나라의 유토피아 문화에  

대한 연구가 부족한 것이 원인이다.

하지만 오랜 가뭄 끝에는 단비가 한 번이라도 내리는 법. 우리나라의 유토피아 문화에  

관한 도서가 출간되었다. 분량은 많지 않지만 저자는 역사 속에 사라져 가고  

있던 우리나라 고유의 유토피아를 복원하였으며 유토피아와 관련된 선인들의  

문헌 자료와 일화, 그리고 그림까지 배치하여 독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구성하였다. 
  

 

 한국적인 유토피아의 세 가지 키워드

책에서는 이상 세계에 대한 다양한 기록들을 엿볼 수 있다. 안평대군의 꿈을 화폭에 담은
안견의 <몽유도원도>에서부터 연암 박지원의 <허생전> 속의 허생이 세운 이상 국가까지.
이름만 들어도 알고는 있었으나 그것이 평소 매스컴에서 자주 등장하는 유토피아인 줄  

몰랐던 것이다.  그러나 서양의 이상향과 한국의 이샹향의 특징을 비교하면 차이가 있다. 

서양의 이샹항은 대부분 사회 현실 속의 문제를 비판하거나 해결하는데 목적이 두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이상향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첫째는 자연친화적이다. 문헌 자료에 등장하는 이상향은 항상 사람의 인적이 드문  

산 속에 자리 잡고 있으며 현실 세계에서 보기 드문 자연의 아름다움을 가진 곳으로  

묘사된다. 특히 이상향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자연물은 바로 ‘복숭아’다. 옛날부터  

복숭아를 먹으면 천수를 누린다고 하였다. 그래서 오래 사는 산신들이 사는 세계에는  

꼭 복숭아나무가 있다고 믿어왔다. 안평대군은 자신이 무릉도원에 가게 되는 꿈을  

꾸었는데 꿈에서 본 장면들이 너무나 아쉬워서 자신과 친분이 있었던 화가 안견에게  

그림으로 그려줄 것을 부탁하였다. 안견이 그린 <몽유도원도>에는 사람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없는 자연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 그림의 오른쪽을 꿈 속 이상향으로  

표현했듯이 이상향을 상징하는 복숭아나무 밭이 펼쳐져 있다. 이 밖에도 이상향을 그린  

다른 그림들도 인간의 모습을 찾을 수 없는 평온한 분위기가 감도는 자연의 모습으로  

표현하였다.  

 

두 번째 특징은 장수(長壽)를 하고 싶은 소망을 담았다는 점이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조상들이 꿈꿔왔던 이상 세계는 속세를 떠나 자연에 칩거하는 신선들이 모여 사는  

세상이라고 생각했다. 재미있는 것은 이상 세계와 현실 세계의 시간은 상대적이라는  

점이다. 조상들의 문헌에 살펴보면 현실 세계에서 살았던 사람이 우연히 이상 세계에  

들어가게 되어 몇 일간 그 곳에서 지내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리고 다시 현실 세계에  

돌아보면 자신이 살았던 현실은 이미 수십 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는 것을 알게 된다.  

즉, 이상 세계의 하루는 현실 세계의 10년과 맞먹는다. 장수를 누릴 수 있는 이상 세계는  

모든 이들이 한 번쯤은 꿈꾸어보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실현 불가능하다.  

하지만 조상들은 장수를 하고 싶다는 즐거운 상상을 하면서도 이런 이상 세계를 통해서  

인생무상(人生無常)을 나타내고자 하였다.

세 번째 특징은 유교적인 이상 세계를 구현했다는 점이다. 토머스 모어는 당시  

영국 사회의 부조리를 극복하기 위해서 유토피아라는 현실에서 선보이지 못한 새로운  

세상을 만든다. 우리나라의 학자들도 토머스 모어처럼 당시 조선 시대의 사회를  

개선하기 위한 이상 세계를 꿈꿔왔다. 그리고 그들의 사회에는 왕은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사람들이 계급 없이 공동체적 삶을 지향하고 있다. 하지만 조선을 지배하고 있던  

유교 사상은 버리지 않았다. 공동체적인 삶을 지향하는 만큼 이웃끼리 서로 도우면  

살아야 했으며 웃어른을 공경하는 기본예절은 유지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학문을  

공부하여 정신적 수양도 해야 한다고 하였다. 조선 사회에 뼛속 깊이 자리 잡은  

유교이념을 탈피하지 못한 점도 있지만 좀 더 사회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 보다  

현실 세계와 같은 이상 세계를 구상했다는 점은 눈 여겨 봐야할 부분이다. 
 

 

 판미동 사람들, 이상적인 사회 공동체를 세우다 
  

영국의 로버트 오언이나  프랑스의 샤를 푸리에는 당시 산업혁명으로 근대화된  

유럽 사회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서 새로운 이상 사회를 건설하려고 시도를 하였다. 

그러나 당시 사회 문제에 대한 인식의 부족으로 그들의 사상은 실현되지 못했다.

이들 이외에도 새로운 이상적 공동 사회를 만들려는 시도는 계속 되었으며 

시도 끝에 이상적 사회 공동체가 형성되었으나 장기적으로 지속되지 못했다. 

유토피아 실현의 역사를 살펴보면 성공보다는 실패의 결과들이 많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실제로 이상적인 사회 공동체가 있었으며 그것도 무려 100년  

가까이 유지되었다고 하면 믿을 수 있겠는가?  저자는 관련 문헌 자료들을 통해 서

경기도 가평군의 판미동이 우리나라에서 세운 이상적 사회 공동체라고 주장하고 있다.  

신석이라는  명망 높았던 가문이 이곳에 정착하여 사회 공동체를 세웠다고 한다.  

그리고 유교 이념을 유지하면서도 공동체 일원 모두 평등함을 갖춘 그들만의 사회  

제도를 만들었다. 무엇보다도 재미있는 점은 판미동 사람들은 개방적이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이상향들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으면서도 존재하고  있는 역설적인 공간이다.

그만큼 이상 세계가 있다고 해도 현실 세계 사람들이 그곳을 찾기란 힘들다.
이상향에서 사는 사람들은 현실 세계의 사람이 자신들의 구역에 들어오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으며, 그 사람이 현실 세계로 돌아가게 되면 자신들의 세계에 대해서 비밀을 

유지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하지만 판미동 사람들은 다른 지방에서 온 낯선 사람들에게 

먼저 인사를 건넸다고 한다. 인사성 밝은 사람들을 보면 그 사람이 판미동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정도로 판미동은 유명해지고 전국에도 알려지게 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판미동 사회 공동체도 100년 이상은 넘기지 못했다. 전국에 알려진
소문에 의해서 공동체 관리가 어려운 것도 있었으며 신석 집안의 후손이 벼슬에 올라
서울로 이주하게 되면서 판미동은 자연스럽게 해체되었다. 하지만 서양에서도
이루지 못했던 이상 사회 건설을 우리나라 조상들은 실현시켰으며 심지어 100년 동안
유지되었다는 점은 중요한 의미이다. 

 

 상상하라, 그러면 이루어지게 되리라

우리나라 사람들은 외국 문화를 접하게 되면 문화적 충격을 받는다. 그들의 상상력이  

집약된 영화나 만화들을 보게 되면 어떻게 저런 생각을 했을까하는 감탄이 나올 정도로  

작품성이 뛰어나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만화나 제임스 캐머런의  

영화가 나오지 않는 것에 대해서 문화적 자괴감에 빠지게 된다. 심지어 문화적 현실의  

문제점의 근원은 유교 사상에서 기인한 조선 사회의 고정적이며 폐쇄된 문화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근거는 어불성설이다. 조너던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에 나오는 라퓨타 섬의 학자들처럼 조선의 지식인들이 상상력을  

학문에서 무시한다거나 단순히 가부좌 틀어서 사서삼경을 읊은 것은 아니다.  

그들은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이상 세계를 꿈꾸었다. 다양한 상상의 나래를  

펼친 결과물들은 기록으로 남겼다. 그리고 한층 더 개방적인 사고를 가졌던 지식인들은  

상상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 시도하였다. 그래서 이상 사회를 건설하기에 이른다.  

이래도 우리나라 문화는 상상력이 결여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인간이 살아가는데  

완벽한 세상을 만든다는 것은 절대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며 그것에 대해  

상상한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공상주의자들이 하는 생각이라고 치부하기 쉽다.  

하지만 고정된 사고의 틀과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발전은  

불가능하다.  그런 공상주의자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세상이 만들어진 것이다.  

‘당신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은 전부 실제하는 것이다’ 라고 말한 파블로 피카소의  

말처럼 우리가 헛된 망상이라고 생각했던 일들이 언젠가는 현실로 다가올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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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움직이는 다섯 가지 힘 - 욕망 + 모더니즘 + 제국주의 + 몬스터 + 종교 다섯 가지 힘
사이토 다카시 지음, 홍성민 옮김 / 뜨인돌 / 2009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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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잡탕 축구 팀?

대망의 월드컵 결승 팀이 결정지을 4강전이 내일 펼쳐진다. 4강전을 치를 네 나라들은  

모두 수십 년 만에 준결승 문턱까지 진출한 터라 이번 경기의 결과에 따라 희비가 교차될  

것이다. 아프리카 첫 월드컵의  우승팀이 누가 될 것인지 전 세계 축구팬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특히, 4강에 진출한 국가 중에서 전차군단 독일이 강력한 월드컵 우승  

후보로 물망에 오르고 있다. 8강전에 또 하나의 강력한 우승 후보였던 아르헨티나를  

4골이나 넣으면 완승하였기 때문이다. 이에 독일 국민들은 이번 독일의 월드컵
우승에 대한 기대가 한껏 높아지고 있다. 그런데 독일의 월드컵 우승을 달갑게 여기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독일 극우파 네티즌들은 독일 축구팀이 

다문화 팀이라고 말하면서 비(非) 독일적이라는 이유로 4강전에서 탈락하기를  

바라고 있다. 그리고 자신의 국가 축구팀을 ‘잡탕’이라고 비하하기도 한다.  

독일 축구팀의 구성원들을 살펴보면 외국계 선수가 무려 11명이나 된다.
축구계의 모차르트 포돌스키와 독일 최고의 골잡이 클로제는 폴란드 태생이다.  

메수트 외칠은 터키, 보아텡은 가나, 사미 케드라는 튀니지, 카카우는 브라질계이다.  

극우파 네티즌들의 독일 대표팀 비하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심지어 외국계 축구  

선수들이 골을 넣기를 바라는 것보다는 순수 혈통 독일 선수들이 골을 넣어 월드컵에서 

우승하기를 바라기도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독일의 이번 월드컵 성적을 살펴보면  

클로제는 4골이나 넣었고, 다른 외국계 독일 선수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이처럼  

외국계 선수들의 뛰어난 활약에도 불구하고 독일 내에서의 극우파들의 비난은
이번 월드컵이 처음이 아니다. 4년 전, 자국에서 펼쳐진 월드컵에서 독일은 조별 예선에서
폴란드와 맞붙게 되었다. 경기 결과는 1:0으로 독일이 우승하였다. 경기가 끝나면 우승  

국가의 선수들이 우승의 기쁨을 만끽하여 기분 좋게 웃으면서 패배한 상태 팀의 선수들을 

격려하는 모습이 자연스럽다. 하지만 클로제와 포돌스키만은 우승의 기쁨에 대한 웃음이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클로제는 담담하게 그라운드를 떠났으며 포돌스키의 눈가에는  

눈물이 촉촉하였다. 비록 지금은 독일 국적이지만 태생은 폴란드였기 때문이다.  

비록 팀은 이겼어도 자신들이 자랐던 예전의 나라 사람들 앞에서 기쁨을
표현하기가 불편하였을 것이다. 이를 본 독일 극우파들이 가만히 보고 있을 리가 없다.
그들의 행동에 대해서 독일인으로서의 행동답지 않다면서 비난을 하였다. 그리고  

독일에서만 다문화 대표 팀에 대한 비난이 있는 것은 아니다. 프랑스 대표 팀도 독일처럼 

대부분 외국인 선수들로 구성되어 있다. 프랑스 최고의 스타 플레이어었던 지네딘  

지단은 알제리계이다. 우리나라 박지성 선수의 소속 팀 절친이자 이번 월드컵 주장을  

맡은 에브라는 세네갈 출신이다. 하지만 월드컵 우승을 넘보고 있는 독일과 비교하면  

상황이 좋지만 않다. 1무 2패에다가 고작 1골이라는 초라한 성적으로 예선 탈락을 하여  

너무 일찍 고국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월드컵 예선 경기 전부터 프랑스 축구 팀 내부는 

조용한 날이 없었다. 선수들은 감독의 조직 운영에 불만을 품어 반발하여 훈련을  

거부하기도 하였다. 심지어 프랑스 축구팀의 희망이었던 아넬카는 감독과의 불화로  

인하여 월드컵이 치러지는 도중에 퇴출되는 최악의 상황이 펼쳐졌다. 이런 프랑스  

축구팀의 불협화음에 분노한 사르코지 대통령은 축구팀이 귀국하는 대로 감독 및  

선수들과의 면담과 청문회를 하기로 하였다. 고국에 돌아와 청문회 자리에서도 감독과  

선수들은 서로 네 탓이다라는 둥 다툼은 끝나지 않았다. 프랑스 축구팀의 몰락에 대해서 

프랑스 사회평론가들은 대표 팀의 구성원이 다양한 국적의 인종이 모여 있는 만큼  

그들 간의 이기주의와 분파주의가 낳은 대립이 스스로 자멸로 몰아넣었다고 말했다. 
 

 

 독일 극우파들의 정체 
 

다민족 다문화 국가는 미국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점점 발달되어 가는 통신 및 교통  

기술의 발달과 국경의 벽을 허물고 있는 글로벌 사회인만큼 자기가 태어난 나라를  

떠나서 다른 나라에 살거나 아예 새로운 국적을 얻어 살기도 한다. 그래서 유럽  

대륙에서도 미국처럼 다문화 국가로 변모하고 있다.
특히 1999년부터 유로화가 통용됨에 따라 유럽 국가들 사이에서도 경제적인 교류뿐만  

아니라 문화적 교류도 증가하였다. 하지만 사회 현상이 다민족 다문화로 변화할수록  

자신들의 민족이 우수하고 타 민족을 무시하는 인종문제가 있기 마련이다.  

특히 독일과 같은 경우에는 과거 나치스 정권이 주창한 반 유대주의, 백색인종지상주의  

사상의 잔재가 아직도 남아있다. 독일 축구팀을 비판한 극우파들은 네오나치즘과  

일맥상통하다. 이들은 독일인을 위한 독일을 슬로건으로 하며, 독일 민족의  

우위와 국민 공동체의 건설, 전후체제의 비판, 동서 어느 진영에도
속하지 않는 반 유대주의적 성향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악화되어가는 독일의  

경제 상황의 원흉을 외국인 노동자나 난민이라고 지목하면서 ‘외국인은 물러가라’,  

독일인을 위한 독일’이라는 구호 아래 살인과 방화를 서슴지 않고 있다. 독일의 통일  

이후에도 더욱 기승을 부려 지금까지도 독일의 가장 큰 사회문제로 등장하고 있다.  

프랑스에도 국가 내 타 민족을 차별하는 현상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특히 차별받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폭동을 일으켜서 많은 사상자를 내기도 하였다.  

공교롭게도 월드컵을 치르고 있는 남아공도 과거에 아파르트헤이트로 인하여 민족차별의 

역사를 경험한 적이 있으며 지금은 과거보다 많이 줄어들었지만 아직까지도 곳곳에서  

백인이 흑인들을 차별 및 폭력을 가하는 사건이 일어나고 있다.  
  

 

 

 제국주의의 원인이 남성이라고?

현재 유럽의 사회 현상을 살펴보면 사이토 다카시가 주장하고 있는 역사를 움직이는 

힘의 영향을 보고 있는 거 같다. 세계사를 움직이게 한 힘은 욕망, 모더니즘, 제국주의, 

몬스터, 종교라는 다섯 가지 키워드로 표현하고 있다. 이 다섯 가지 힘은 세계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지금도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은 여전하다. 세계는 화합과  

존중의 시대를 표방하여 교류를 하고 있지만 앞에서 언급했던 독일과 프랑스의 사례를  

보면 ‘제국주의’라는 구시대적 힘이 아직까지 죽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세계사에서 전쟁이라는 행위는 필수불가결이다. 인간은 항상 남을 지배하려는 습성이  

있다. 남의 물건이 탐이 나면 빼앗고 싶어지고, 상대방이 자기보다 약하면 우월감을  

가지게 되어 상대방을 지배하고 싶어진다. 특히 남성이라는 생물학적 존재는
여성보다 남을 지배하려는 욕망이 무척이나 강하다. 그래서 세계사에서 그려지는 전쟁의
영웅들은 모두 다 남성이다. 다만 역사는 시대에 따라서 역사가들의 평가가 달라지며
심지어 왜곡될 수 있는 위험성이 있는 학문이다. 사료만 가지고 단순히 남성들은  

전쟁광이다, 남성은 여성보다는 욕망이 가득하고 자신을 위한 일이라면 난폭해진다고  

단정 짓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남성들만의 역사 속에서는 여성 지배자들의 기록도 있다.
무적함대 스페인을 무찌른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나 자신의 남편을 폐위시키고 스스로
지배자가 된 러시아의 여제 예카테리나 2세가 있다. 사이토 다케시는 남성의 야망이
제국주의를 낳게 한 근본적인 원인이며 이에 대한 근거로 알렉산더와 스파르타 등의  

예를 들어가며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고 세계를 악의 구렁텅이로 빠뜨린 죄인으로  

남성이라고 말하기에는 근거가 미약하다. 결국 남성이든 여성이든 지구상에  

존재하는 인간들은 남을 지배하고 싶은 욕망을 전쟁이라는 대결 행위를 통해  

남을 억압하여 해결하는 존재이다. 
 

 

 지나친 욕심이 부른 로마 제국의 몰락 
 

상대방을 지배하려면 자신은 상대방보다 조금이라도 우월해야한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심리도 가지게 된다. 피지배자의 입장에서  

보면 남이 자신에게 이래라 저래라 간섭하고 무시하면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핍박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지배자보다 우월하게 만들거나 아예 그를 쓰러뜨려 역전의  

상황을 만들어야한다. 역사를 살펴보면 지배당한 자들은 지배자들에게 당한 억압과  

고통의 기억들을 지우기 위해서 자신들만의 고유한 민족성을 버리지 않으며
그런 민족성을 토대로 같은 민족들끼리 똘똘 뭉쳐 지배자로부터 독립을  

원하기도 한다. 이에 지배자들은 가만히 놔둘 리가 없다. 피지배자들이 반역을 하게  

되면 자신에게는 손해가 되기 때문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지배자들은 피지배자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서 조금씩 그들을 풀어주기도 한다. 책에서 등장하는 카이사르의 

정책이 그 예이다. 로마 제국은 황제만 신으로 생각하는 지배 계층과 다른 신을 믿지  

않는 특징을 가진 유대교와 기독교 사상의 피지배 계층 간의 충돌이 잦았다. 하지만  

로마는 사회적 내분 속에서도 굳건히 제국으로서의 위용을 떨치게 된다. 

카이사르는 국가 내의 종교에 대해 관용 정책을 펼쳤기 때문이다. 피지배자들만의  

고유한 민족성과 종교를 인정하는 것이다. 오래 된 로마 제국 시대부터
다 민족 다 문화에 대한 포용성을 보여주고 있던 셈이다. 하지만 나날이 갈수록 로마  

제국의 영토가 커져만 갈수록 지배자들의 욕심도 커져만 갔다. 영토 확장을 통해 다른  

나라의 지배하여 자신들의 부와 노예들을 점차적으로 불려나갔다. 그러므로 자연스럽게  

로마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완충 요소인 포용성이 사라지게 된다. 지배자들의 부를  

증식시키기 위한  방법에는 전쟁 밖에 없다. 하지만 자신의 목숨을 바쳐야하는 전쟁에  

참여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들은 피지배자들을 전쟁에 참여하게 만들어버린다.
결국 피지배자들은 전쟁터에서 목숨을 바쳐야만했고, 지배자들은 가만히 앉아서 자신의  

생을 부귀영화로 누리고 있었던 것이다. 부당한 사회에 참을 만큼 참았던 피지배자들은  

마음 한 구석에 웅크리고 있던 자신들의 민족성을 표출하여 자신들의 독립을 주장하게  

된다. 타 민족을 이해하지 않고, 오히려 억압하고 지배하려는 욕망이 결국  

로마 제국의 붕괴를 초래하게 되었던 것이다. 
 

 

 프랑스 잡탕 대표팀의 쓸쓸한 결과

로마 제국의 잘못된 사회 시스템도 프랑스 축구팀의 상황과 유사하다.
어떻게 보면 스포츠도 전쟁처럼 이겨야 하는 대립 행위이다. 축구가 다른 스포츠 종목보다 

전 세계를 흥분하게 만들고 미치게 하는 인기 종목이다. 대륙의 축구 최강 팀이
한자리에 모이는 월드컵에서 황금빛 트로피와 우승의 영광을 거머쥐기 위해서 스포츠
전쟁을 벌인다. 남성들이 서로 피 튀기면서 전쟁에서 싸우듯이 월드컵도 남성들이
땀 흘리며 그라운드에 구르면서까지 공 하나 가지고 적의 골대에 골을 넣거나
자기의 골대에 골이 들어가지 않게 막는 치열한 전쟁이다.
전쟁사에서 항상 우승자가 역사의 기록에 남기듯이 월드컵에서 우승하게 되면
영광의 기록이 평생 따라붙게 된다. 사실 프랑스도 이번 월드컵만큼 우승의 기대가  

컸을 것이다. 4년 전 독일 월드컵에서 아깝게 준우승에 머물렀으니깐.  

축구팀 구성 선수들을 살펴보면 충분히 우승할 수 있는 팀이다. 프랑스 축구팀이 

플레이가 뛰어난 다른 국적의 선수들을 발탁하였고, 프랑스인이 아닌 타 국가 선수를  

주장으로 뛰게 한 것은 잘못된 방법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우승만을 바란 나머지  

우승을 하기 위한 기본적인 과정을 무시하고 말았다. 축구팀 선수들을 살펴보면 티에리  

앙리, 아넬카, 말루다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타 플레이어들과
기본적으로 탄탄한 플레이를 선보이는 선수들로 구성되어 있다. 축구는 기본적으로
선수들 간의 팀워크가 잘 이루어져 있으면 한 두 사람의 유능한 공격수가 있는 팀이
부럽지가 않다. 우리나라 대표 팀은 비록 박지성 이외에 세계적으로 유능하다는  

유명 선수는 없다지만 공수 간의 완벽한 조화로 원정 월드컵 16강 진출의 쾌거를 올렸다.
그러나 감독은 스타 플레이어들을 과신하였다. 그리고 스타 플레이어들을 위한 축구  

운영으로 월드컵 우승을 노렸다. 하지만 월드컵 경기 전부터 치른 평가전에서 기대치에 

떨어지는 경기 운영을 나타내자 축구 팬들은 감독의 능력에 비난을 하였다.  

하지만 감독은 자신의 지휘 능력이 언젠가 월드컵에서 진가를 발휘할 것이라고 믿었다.  

팀 내 자기가 다스리는 선수들이 자신의 경기 운영에 불만을 가져도 변함이 없었다.  

오히려 그는 축구팀 전체를 이끌어가는 지배자라는 인식으로 독불장군식으로 

밀고나갔으며 심지어 그에게 반발하는 선수는 다음 경기 출전 명단에 제외시켰다.
선수들의 의견을 존중하기는커녕 무시했으며 오히려 자신의 눈에 거슬리는 선수에게는 
반항에 대한 죄로 부당한 권력을 행사하였다. 선수들의 경기 능력에 대한 다양성을  

무시하게 되어 정작 월드컵 무대에서는 과거의 화려한 아트 사커는 실종되어버리고  

결국에는 예선 탈락이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들고 일찌감치 짐을 싸서 자신들의 나라로  

돌아가게 되었다. 
 

 

 외국의 사회 현상은 남 일이 아니다 
 

사이토 다케시가 주장하고 있는 다섯 가지 힘은 앞에서 설명한 욕망과 제국주의뿐만  

아니라 요즘 금값이 상승하는 것도 과거 16세기 유럽의 금본위제 현상과 다를 게 없다.
금을 화폐와 동일시한 금본위제 사회는 당시 상권을 지배하고 있던 귀족들이 자신들의  

부를 축적시키기 위해 그들만을 위한 환경을 만들었다. 지금도 세계가 경기 불황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시기를 이용하여 금을 보유하고 있던 부자들이 다시 한 번 과거의  

사례를 답습하듯이 예전에 가치가 하락되었던 금값을 상승하게끔 만들고 있다.  

결국 역사는 수레바퀴처럼 돌고 도는 것이다. 그리고 세계를 움직이고 있는  

무형의 힘이 바다 건너 편 유럽에서만 일어난다고 해서 도외시하면 안 된다.  

이런 그릇된 사고는 굳이 세계사를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느냐는 식으로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무형의 힘은 우리나라 사회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세계가 금값이 올라가자 우리나라에서도 금값이 상승하였다. 그리고 IMF 외환 위기 

이후로 눈길 한 번 안 주었던 금이 다시 한 번 우리에게 황금빛 욕망을 부추기고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도 다양한 국가의 인종들이 생활하고 있으며 특히나 한국으로  

귀화하는 외국인의 수도 증가하였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외국인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으며 한국 국적을 얻어도 피부색이 다르고 서구적인 외모를 가진  

외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을 하고 있다. 특히 돈을 벌기 위해 맨몸으로 이국땅에 

들어와 어렵게 일을 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차별은 심하다. 우리나라도 과거에  

제국주의에 물들고 있던 일본의 지배를 받았다. 과거에 지배당하고 억압받았던
안 좋은 추억들을 지우고 싶어한 것일까?  우리나라는 과거에 일본이 했던 제국주의적  

행동을 무의식적으로 물려받은 것을 그대로 타 국가의 사람들 앞에서 지배자인마냥 

행세를 하고 있다. 역사를 움직이고 있는 무형의 힘이 하나의 국가와 민족에게 미치는
영항이 참으로 무시무시하기만 하다. 단순히 세계사에 흥미가 있어서 보는 것도 좋겠지만  

우리 주위에 일어나고 있는 사회 현상들을 좀 더 다양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보기를  

원한다면 이 책을 꼭 읽으라고 추천하고 싶다.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이해할 수 있는  

힘이 길러질 것이다.  
 

 

 

 

 

인용 관련기사 출처 및 링크 

 

[무서운 극우파…"독일인이지만 독일 우승 안 바라"] 씨앤비뉴스 7월 7일 입력 

http://news.cnbnews.com/category/read.html?bcode=118939  

 

[도메네크 프랑스 감독, `남 탓'...청문회 출석] 세계일보 7월 1일자 

http://sportsworldi.segye.com/Articles/Sports/Soccer/Article.asp?aid=20100701002504&subctg1=10&subctg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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