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을 말하다 2 - 이덕일 역사평설 조선 왕을 말하다 2
이덕일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0년 11월
평점 :
품절


 

  이덕일의 ' 조선 왕 ' 슈퍼스타 King

작년 기억이 남는 대한민국 방송 핫 트렌드를 꼽으라면 바로 공개 오디션 프로그램의 인기일 것이다.  특히, 작년에 두 번째로 케이블 방송에서 기획한 <슈퍼스타 K 시즌 2> 같은 경우에는 케이블 프로그램 자체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기도 하였다. 이 오디션 프로그램에 크게 뜰 수 있었던 것은 쟁쟁한 경쟁률을 뚫고 선정된 1인의 우승자에게 부여되는 어마어마한 상금과 '가수' 로 단숨에 성장할 수 있다는 메리트 덕분이었다.  유독, 공개 오디션 프로그램 같은 경우에는 우승자에 대한 스포트라이트를 집중하기 마련이지만, <슈퍼스타 K 시즌 2> 같은 경우에는 우승자 허각 뿐만 아니라, 준우승자 존박을 포함한 ' Top 11 ' 안에 든 참가자들도 연예인 못지 않은 인기를 끌기도 하였다.   

그리고, 시청자들이 <슈퍼스타 K>에 채널을 고정할 수 있었던 것은 오디션 참가자들을 향해 독설과 함께 냉정한 심사평을 날리는 <슈퍼스타 K> 심사위원 연예인들의 발언이다.   특히, 2009년 시즌 1과 작년 시즌 2에서 심사위원으로 활동한 이승철은 우스갯소리로 2010년 케이블 TV 독설상에 수상해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솔직하고 거침없는 독설 심사로 숱한 화제를 몰고 왔었다. 가수 뺨치는 훌륭한 실력을 갖춘 참가자라도 이승철의 독설 작렬은 피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네티즌들의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독설과 가까운 심사평을 날린 이승철의 한 마디 한 마디 뒤에는  '가수' 가 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하는 후배들을 위한 마음이 담겨져 있다.  이들이 자신보다 더 훌륭한 가수로 만들어주기 위해서 진심어린 충고를 한 것이다.  

이승철이 2010년 케이블 TV 최고의 독설가라고 한다면, 2010년 역사계 최고의 독설가라면 이덕일이었다.   그에게 '독설가' 라는 수식어를 붙기에는 억지스러운 감은 있긴 하다.  원래, 국어사전에서의 ' 독설가 ' 라는 의미는 ' 남을 해치거나 비방하는 모질고 악독스러운 말을 잘하는 사람 ' 을 뜻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독설가' 는 모질고 악독스러운 말을 하는 사람으로 의미가 변질되었다.   

하지만, 이덕일의 '독설' 은 국어사전의 정의와 같이 나쁜 의미에서 붙여준 것은 아니다.  역대 조선 왕들을 향한 이덕일의 ' 독설 ' 은 수많은 문헌들을 철저히 고증하여 균형적인 시각으로 평가를 내리고 있다. 아무리 훌륭한 성군이라도 이덕일은 문헌에 남아 있는 성군 치세의 작은 흠 하나라도 놓치지 않고 있다.

특히, 책의 앞부분 ' 저자의 글' 에서 이덕일은 고종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는 오늘날의 역사학계에 대해 반문을 하고 있다.   

한편 근래 들어 고종은 ‘개명 군주’ 이자 ‘ 근대화를 앞장서 이끈 군주’ 라는 식으로 호평받고 있다. 그러나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고종은 전제왕권을 꿈꾸며 많은 인재를 죽였는데, 급진 개화파 김옥균은 물론 온건 개화파 김홍집도 죽이고, 농민의 리더 전봉준도 죽였다. 독립협회도 강제로 해산시켰다. 근대국가 수립에 목숨 걸 인재와 세력을 모두 제거한 결과 주위에는 이완용 같은 출세주의자만 남게 되었다. 또한 고종은 실현 불가능한 전제 국가 수립에 집착하면서 모든 변화를 거부했다.   

- 이덕일 <조선 왕을 말하다 2> ' 저자의 글 ' 중에서 -

   

 

  나쁜 왕 :  ' 벌거벗은 임금님 ' 이 된 고종   

  

고 종 (1852~1919, 재위 1863~1907) 

 

이 책의 마지막 내용인 ' 고종 ' 편 464 페이지를 보게 되면 위의 고종 사진 밑에는 이렇게 단 한 줄의 글이 적혀 있다.  

재위 44년 간 나라를 망국으로 이끌었다.
 

아무리 수많은 문헌을 토대로 고종의 업적에 대해 평가를 내렸다고 하지만, 고종에 대한 이덕일의 평가는 심사위원으로서의 이승철의 독설 못지 않다.  특히, 고종을 ' 망국 군주 ' , ' 무능력한 왕' 등 부정적인 수식어들을 언급할 정도로 그의 무능력한 치세에 대해 날카롭게 지적을 하고 있다.  ' 개명 군주 ' 에서 한순간에 나라를 망쳐버린 ' 망국 군주 ' 로 격하되고 있다.  

고종 재위 시기에는 근대화 발전으로 앞당기고 있었던 이웃나라 일본의 ' 메이지 유신 ' 과 문호 개방을 목적으로 호시탐탐 조선을 노려왔던 서양 열강들의 내정 간섭이 잦았다. 고종이 세상 물정에 대한 눈치가 없었고 무능력했다지만, 그도 분명히 한반도 내외의 시류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일본으로 조사 시찰단을 파견하여 새로운 서양 문물을 시찰하게 한 점과 미국과 영국 간의 수호조약을 체결하기도 하였다.  서양 문호 개방을 위한 근대화의 씨앗이 이제 막 움트려고 한 것이다.

하지만, 고종은 자기 스스로 ' 근대화 ' 라는 씨앗이 자라지 못하게 하고 말았다. 그의 머리속에는 전제군주제라는 기존 사회 유지에 대한 집착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앞에서 먼저 인용된 ' 저자의 글 ' 에서도 알 수 있듯이 조정 내에서 김옥균, 김홍집 등을 필두로 한 개화세력의 힘이 날로 커지게 되자 고종은 이들을 제거하였고,  이완용과 그 밖의 친일파들을 등용되게 하였다. 고종은 자신의 왕권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 근대국가로 발전할 수 있는 싹을 제거하다보니 친일파라는 잡초가 자라나고 있는 것을 미처 보지 못했다. 결국 친일파라는 잡초를 그대로 놔둔 고종은 허무하게 대한제국이 일본의 손아귀에 넘어가는 것을 봐야만 했다.   

역대 선조 왕들과의 업적과 평을 점수로 환산해본다면, 고종의 점수는 아마도 최하위권일 것이다. 그의 업적은 안데르센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 에 나오는 어리석은 왕을 연상케 한다.  동화 속의 왕은 착한 사람에게만 보인다는 '투명 옷 ' 이라는 재단사의 거짓말에 속아넘어가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올누드로 백성들 앞에서 ' 투명 옷 ' 을 뽐낸다.  재단사가 말한 ' 투명 옷 ' 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완전 100% ' 뻥 ' 이었던 것이다.  

고종은 재위 시절,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보수 사대부 세력 그리고 개혁을 주장하는 친러파, 친일파 세력들의 달콤한 말에 쉽게 휘둘러다니는 왕이었다.  특히, 재위 초기 때는 아버지 흥선 대원군의 섭정의 영향이 무척 컸다.  왕권 강화 목적으로 대원군은 경복궁 중건을 실시하였지만, 이는 시대착오적이었다. 공사 자금이 부족해지자, 자금을 모을 수 있도록 강제로 원납전을 징수하도록 하였다.  경복궁 중건에다가 원납전으로 이어지는 대원군의 시대착오적인 정치제도 콤보(?)는 국가재정의 혼란을 가중시켜버렸으며 공교롭게도 아들 고종 역시 정책 실패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를 피할 수가 없게 되었다.   고종은 사회 분위기가 좋으면 대세의 흐름을 따랐으며 반면에 자신에게 불리한 상황이 오게 되면 다른 세력으로 선회를 하는 모습을 보였다.  

근대화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는 기회를 고종이 스스로 차 버렸던 이유도 ' 전제군주 ' 라는 유명무실한 ' 투명 옷 '  하나에 집착해서 생긴 고종 최대의 정치적 실수였던 것이다.  

  

 

  좋은 왕 : 슈퍼스타 King 1등이라 해도 손색이 없는 세종 

고종이 '망국 군주' 라는 꼬리표 때문에 역대 왕들 중에서 꼴찌를 차지하고 있다면, 반대로 최고의 군주 1위는 단언 제4대 왕 세종(1397~1450, 재위 1418~1450)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선호되는 인물 중의 한 사람인 세종의 업적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한자 앞에서 우매한 백성들을 위해서 훈민정음을 반포하도록 지시하였으며 집현전을 통해 나라를 이끌어 갈 젊은 인재를 양성하는 동시에 학문 진흥에도 앞장섰다.  그리고, 능력 위주의 등용을 중요시하여 관노 출신의 과학자 장영실이 등장할 수 있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세종 역시 고종처럼 왕권의 힘을 강화할 수 있는 중앙집권 체제로 운영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세종은 자신의 정치적 모토를 실현된 반면에 고종은 무능한 왕이라는 오명만 얻고 말았다.  

하지만, 공부를 열심히 한 사람이 교과서 하나 제대로 보지 않은채 공부를 아예 하지 않은 사람보다 시험성적이 당연히 좋게 나오는 것처럼 세종과 고종은 자신들이 지향하는 정치적 모토가 같았음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당연히 서로 엇갈려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세종은 단순히 왕권 유지에만 치중하기보다는 항상 나라의 안정과 발전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졌다. 그는 공법상정소를 설치하여 토지에 따라 세율을 달리하는 정책을 내세웠지만 조정에서는 이 제도에 결함이 있음을 지적하였다.  이는 세종에 대한 문헌 중에서 유일하게 찾아볼 수 있는 세종 치세의 오점이기도 하다. 조정의 쓴소리를 듣는 세종 입장에서는 무척 귀가 따가웠을터지만, 세종은 이들의 충언을 깊게 받아들였다.   그리고, 제도를 새롭게 시정한 전제상정소를 설치하여 보다 나은 전세 개혁을 추진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간언일 수도 있는 신하들의 목소리를 세종이 제대로 귀를 기울일 수 있었던 것은 꾸준한 공부 덕분이었다. 세종에게는 공부는 자기수양의 일부였으며 배운 것들을 정치 현안 해결에 응용하려고 시도하였다.   특히, 세종은 학자들에게 책을 많이 읽을 것을 권하였으며 경연을 통해서 학자들과 함께 학문 토론을 즐겼다.  

조선 사회라고 하면 항상 먼저 연상되는 것이 ' 유교 ' 이다.  지금도 우리나라 사회에 뿌리깊게 남아 있는 유교 사회 이데올로기는 많은 이들에게도 세종의 학문수양이 유교와 관련된 공부라고 오해를 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세종은 유교 공부에만 편식하지 않았다. 정작 그는 경서보다는 역사에 대해 많이 배울 것을 강조하였다고 한다.  특히, 그가 선호하면서 자주 읽었던 역사서는 <좌전>과 <자치통감>이었으며 세종은 학자들과 함께 <자치통감>을 통해서 강론을 펼치는 것을 무척 좋아하였다.  

책과 학문을 향한 세종의 무한 애정은 사가독서라는 제도를 만들게 되었다. 사가독서는 학자와 관리들에 휴가를 주어 학문에 전념하게 한 제도이다.  일종의 독서 휴가제인 셈이다. 공부는 자기수양하는 동시에 나라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 밑바탕이라고 생각하는 세종의 학문관을 엿볼 수 있는 제도이다.  

재미있게도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1819~1901, 재위 1837~1901)도 관리들에게 3년에 한 번씩 ' 셰익스피어 베케이션 (Shakespeare Vacation)’ 이라는 독서 휴가제를 부여하였는데 휴가 동안 셰익스피어 작품 5편을 정독하여 독후감을 제출하는 것이다.  그러나 빅토리아 여왕이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재미있게 읽으라고 해서 권장하는 차원에서 휴가를 내려주는 것이 아니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읽어보면서 민중의 심리를 파악할 수 있는 통찰력을 얻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정치인들이 보다 나은 선정을 펼 수 있는 것은 기본적으로 민중의 마음을 읽어낼 수 있는 능력이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세종과 빅토리아 여왕, 두 군주의 독서 휴가제는 서로 내용은 다르지만 의도와 목적은 같았다. 나라를 다스리는 군주와 정치인들이 가져야 할 기본 덕목은 나라의 발전 및 선정과 연계되는 끊임없는 공부라는 점이다.  무엇보다도 세종이 빅토리아 여왕보다 수백년 전부터 실용적인 공부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과 독서 휴가제를 세계 최초로 실시했다는 점에서 세종의 업적을 눈여겨 봐야할 대목이다.  

  

 

  어중간한 왕 :  국운이 따라주지 못했던 현종  

현종 시대는 전혀 상반된 두 가지 요소가 공존하는 기묘한 시기였다. 지배층인 사대부는 자의대비의 상복 입는 기간이란 형이상학적 문제를 가지고 격렬하게 논쟁했다.  반면에 피지배 백성은 개구 이래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흉년과 대기근에 시달렸다.  

- <조선 왕을 말하다 2> '현종' 편, p 70 -   

역대 조선 왕들 중에서 제 18대 왕 현종(1641~1674, 재위 1659~1674) 은 인지도가 낮은 축에 속할 것이다.  현종의 대표적인 업적을 꼽으라면 공물을 쌀로 통일하여 바치게 하는 대동법을 실시한 점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현종의 업적을 제대로 아는 이는 극소수이다.  

현종에 대한 후세의 역사가들의 평가 역시 그리 좋지 못하다. 아니, 그의 치세가 잘했다고 볼 수 없으며 그렇다고 잘못했다고 딱히 말할 수도 없는, 정말 어중간하기 때문이다. 특히, 아버지 효종(1619~1659, 재위 1649~1659)의 갑작스런 승하는 아직 정치적 능력이 미숙하지 않은 젊은 현종에게는 나라를 다스려야한다는 막중한 책임이 정신적인 부담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리고, 현종의 치세동안 죽은 아버지의 그림자가 따라다녀야만 했으며 때때로 현종의 발목을 잡기도 하였다. 

효종은 인조(1595~1649, 재위 1623~1649)의 둘째아들이었지만, 장자였던 소현세자가 의문의 죽음을 맞게 되자 그가 대신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  효종이 죽은 뒤에 효종의 계모인 자의대비의 복상(服喪) 문제로 대두된 예송논쟁(기해예송)은 서인과 남인 간의 갈등의 골이 깊어지게 만드는 정치적인 문제로 자리잡게 되었다.   

우암 송시열을 중심으로 한 서인은 효종은 종법상 인조의 둘째아들이기 때문에 종법에 따라 1년상을 입어야한다고 주장했지만 남인 계열의 윤선도 등은 비록 차자이지만 왕위의 계승을 이어받았기 때문에 3년상을 입어야한다고 반박하고 나섰다.   결국, 현종은 1년상을 주장한 서인의 손을 들어주었으며 송시열의 서인 계열은 집권할 수 있었다.  하지만, 1674년 현종의 어머니가 죽자 또다시 한 번 예송논쟁이 불거지게 되자, 현종은 이번에는 남인의 주장에 손을 들어주었으며 서인은 실각하게 되었다.   이처럼, 두 차례의 예송논쟁은 서인과 남인 간의 갈등을 더욱 심화시켰다.  

하지만, 예송논쟁은 현실상으로는 무의미한 쓸데없는 논쟁이었다. 서인과 남인이 이토록 복상 문제 가지고 대립을 했던 결정적인 이유는 유교적 이념의 정치적 정당성을 확립하기 위해서였다. 자신들이 주장하는 유교적 이념의 확립은 곧 사회 정국의 변동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중요한 변수였다.   자신들의 세력 집권을 위해서 이론 논쟁에 치중해야했던 서인과 남인 간의 갈등의 실마리를 현종은 냉정하게 해결의 매듭을 제대로 짓지 못했다.

그리고, 현종은 어떻게 보면 시기를 잘못 타고 태어난 왕일지도 모른다. 그가 살았던 16세기에는 전세계적으로 소빙기라는 기후변화가 찾아왔었다. 이전과 다른 기후변화는 조선 팔도에 가뭄, 홍수, 냉해, 태풍이 잦게 되었으며 설상가상으로 병충해까지 찾아와 한반도의 오재(五災)는 장기간 흉년을 면할 수 없게 되었다.  가난에 허덕이는 백성들은 끼니를 구할 수 없게 되자, 살육과 약탈을 자행하기에 이르렀다.   갑작스런 자연재해 때문에 민심이 흉흉해지자 현종은 백성들의 민생을 안정시키기 위한 강구책을 마련하기 시작하였다.  전시를 대비하기 위해 저장한 군량미를 일시적으로 방출하였으면 왕실에 바치는 공물과 관리의 녹봉을 삭감시켜 백성들을 먹여 살린 쌀을 확보하도록 마련하였다. 그리고, 현종 자신도 금주를 하는 등 어떻게든 민심 회생을 위해서 안간힘을 썼다.   이제 막 자신이 꿈꿔왔던 정치적 이상의 날개를 활짝피려던 현종은 34세의 젋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제대로 된 업적을 남기지 못한 채 현종은 어중간한 임금으로 기록에 남기게 되었다.  

    

  

  지금 MB에게 필요한 건 , , ,

재미있게도 ' 좋은 왕, 나쁜 왕, 어중간한 왕' 이 세 명의 왕들의 이야기에는 요즘 우리나라 현실과 유사한 면이 보이고 있다.   

고종과 흥선 대원군이 끝까지 고집했던 경복궁 중건과 원납전 징수 그리고 백성들의 반발과 뒤이어 찾아온 경제적 파탄은 정부가 미련을 못 버리고 있는 4대강 사업의 암울한 미래상일지도 모른다. ' 4대강 살리기 ' 라는 명목 아래에 진행되는 사업에만 치중하게 된다면 작년에 주장했던 ' 서민 살리기 ' 는커녕 본사업에 투입되는 비용으로 거둬들이는 세금 때문에 민심이 추락할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북한의 김정은은 자신의 권력 강화 목적으로 1700억원을 들여 자신만의 초호화 주택을 신축했다고 한다. 지금도 북한들의 수많은 주민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는데 말이다.  

그리고, 북한과 남한 전체에 구제역이 확산되면서 축산업자들의 시름은 가면 갈수록 깊어져만 가고 있는 마당에 구제역 확산 방지에 대한 정부의 늑장 대응은 이미 확산된 구제역의 손길을 막을 수없는 상황으로 만들었다.  구제역 확산이나 작년과 같은 배추 파동과 같은 특수적인 재해에 대해서 국민들이 2차 피해를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2011년 신년사로 MB는 신년화두로 ' 일기가성(一氣呵成)' 을 언급하면서 올해에는 한반도 평화와 경제 성장이 확신되는 해이므로 국운이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살려 선진국 문턱을 단숨에 넘어야한다고 강조하였다.   

신년사에 걸맞게 희망적인 분위기만 돋구는 처음 들어본 어렵기만한 사자성어를 화두로 제시하는 것보다는 누구나 다 알면서도 앞으로의 정책 방향에 걸맞는 화두를 제시했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온고지신(溫故知新). 지금 MB에게 필요한 건 이것이다. ' 옛 것을 알면서 새 것도 안다 '  

세종이 역사를 공부함으로써 곧 마주하게 될 정치적 현안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웠던 것처럼 MB와 모든 정치인들은 지금까지 겪어온 사회적 쟁점들을 되돌아보면서 국민들에게 신뢰감을 줄 수 있는 선정을 베푸는 능력이 함양되어야 할 것이다.  

남은 임기동안 MB가 어떻게 정치적 능력을 보이는가에 따라서 훗날 그의 리더십에 대한 평가가 정당하게 내려질 것이다.     

좋은 대통령이 될지, 아니면 나쁜 대통령이 될지 지켜봐야할 것이다. 뭐라고 단정적으로 평가내릴 수 없는 어중간한 대통령이 되지 말기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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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1-01-03 1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이 리뷰 정말 마음에 드는군요. 맞아요!!!
세종 때 얼마나 나라가 태평성세를 구가했습니까?
그런 대통령 좀 안 나오나요?
오늘 책을 읽다가 문득 어느 나라든 정부는 정의롭지 못하구나
이익만을 추구하다 나라를 말아먹을지도 모를 정부를 우리는 언제까지
지켜봐야하는 걸까?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ㅜ

cyrus 2011-01-03 15:18   좋아요 0 | URL
세종은 우리나라 대표적인 성군인 이유도 있지만,
정말 이 책에서 세종의 업적들을 살펴보니, 요즘 정치인들에게
귀감이 될 수 있는 사례들이 많이 있더군요,
MB 이외에도 많은 정치인들이 이런 책을 읽어보면 좋다는 생각이 드네요.

마녀고양이 2011-01-03 1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덕일 님 책 중에 이 책은 일부러 안 샀는데,
사이러스님이 급 땡기게 만드시는군요.

이덕일 님은 편파적이고 너무나 독자적인 시각이라고 불만을 토로하시는 분들도 많더라구요. 머,, 이러나 저러나 역사에 흥미를 이끌고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며 잼난 책을 쓰시는 분이니 저는 좋아합니다만....

MB는....... 시궁창으로? 아하하.

사이러스님 즐거운 새해 되셔요!

cyrus 2011-01-03 16:04   좋아요 0 | URL
이 책은 마고님이 자세하게 내용을 간략하세 살펴보시고
사는게 나을거 같아요. 마고님 말씀대로 고종에 대한 이덕일 씨의 관점은
독자적이고 편파적인 느낌을 지울 수가 없더라구요.
특히, 고종의 무능함을 고종 시기에 활동했던 일본의 메이지 천황을
자주 비교하여 부각시켜서 내심 불편하기도 했었구요.
하지만, 다른 왕들에 대한 이야기는 흥미롭고 재미있었습니다.
 
조선을 사로잡은 꾼들 - 시대를 위로한 길거리 고수들 이야기
안대회 지음 / 한겨레출판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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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희노애락을 느꼈을까?  

요즘은 텔레비전을 켜면 TV 프로그램들을 부족함 없이 볼 수 있다. 케이블 방송과 같은 경우에는 24시간 TV 프로그램들을 방영하고 있다.   자다가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먼저 찾는게 리모컨이고 자연스럽게 텔레비전을 키게 된다. 모든 이들이 잠든 새벽에도 텔레비전을 켜면 케이블 방송에서는 오락 프로그램과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는 드라마들이 재방영된다. 텔레비전은 컴퓨터와 더불어 실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가전제품이 되었다.  시청자의 눈과 감각을 충족시켜주는 텔레비전은 '바보 상자' 라는 좋지 않은 별명이 붙을 정도로 무조건 좋은 효과를 주는 것만은 아니다.   어린이 시청자들의 교육에 유해할 수 있는 잘못된 언어 남발과 단순히 방송 시청률 올리기에 급급하기 위해서 과도하게 설정된 요즘 방송 프로그램의 등장은 TV의 대표적인 단점 중의 하나이다.  하지만, TV가 시청자를 '바보' 로 만드고 정서에 좋지 않은 고철 덩어리라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 TV를 통한 유용한 교양 및 지식 전달 효과는 무시할 수 없다. 무엇보다도 사람들이 TV를 볼 수 밖에 없는 이유는 TV를 통해서 여러가지 감정들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월드컵이나 올림픽과 같은 국제적인 스포츠 대회에서 우승하는 한국 선수들을 보면서 시청자인 우리도 운동선수들처럼 승리의 열광을 맛보게 되고, 인기 드라마 속 착한 주인공을 끝까지 괴롭히는 악역 캐릭터를 보면 자신도 모르게 드라마에 감정에 몰입되어 화가 나게 된다.  부모 없이 동생과 단칸방에 사는 불우이웃을 보면서 연민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개그 프로그램에서 펼쳐지는 희극인들의 개그는 사람들을 웃게 만든다.  이렇듯, TV는 우리 생활에 땔래야 땔 수 없는 필수품인 것이다.  TV 없으면 무슨 재미로 살아갈지, 생각하면 끔찍하기도 하다. 

TV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던 조선 시대의 사람들은 무슨 재미로 살았을지 궁금하기도 하다. 이들의 삶에도 우리들의 삶처럼 웃음과 눈물이 공존했을법한데 희노애락의 감정을 전달해준 그들이 누구였을까?   

 

 

   18세기 조선시대의 ' 스타킹 '

 일요일 오후에 모 방송국에서 하는 시청자 오디션을 표방하고 있는 예능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스타킹' 이 있다.  가수 뺨치는 노래실력을 가지고 있는 평범한 직장인이나 독학으로 악기 연주를 배움으로써 전문가 수준 실력을 갖추게 된 40대 주부 등 우리 삶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아주 평범한 사람들의 숨겨왔던 재능을 우리는 시청자로서 보고 있다. 

우리는 TV로 전파되는 평범한 사람들의 재능과 끼를 보면서 웃음과 감동을 느끼게 된다. 이렇듯, 조선 시대 사람들도 자신들처럼 평범한 일상 속에서 살고 있는 이들의 숨겨진 재능을 구경하면서 감정의 카타르시스를 느꼈던 것이다.  특히, 이들의 등장은 조선 사회를 지배하고 있었던 유교 계급의 영향이 붕괴되고 신흥 상인들의 등장으로 도시와 시장이 형성된 18세기 때 이루어졌다.  

임진왜란 이후 양반 계층의 몰락과 동시에 기존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이 형성되기 시작하였으며 기존의 양반 중심의 문화는 18세기에 이르러 평민들도 참여하는 문화로 변화하게 되었다. 

 

      

  모든 사람들도 책을 읽을 수 있는 즐거움을 선사하다   

앞에서 언급했지만, 양반 중심의 유교사회에서 '책' 은 양반 식자층들을 위한 전유물이었다.  서민들은 책이란 것을 읽어볼 수도 없었으며 평생 조선 시대의 사람으로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글자를 모르는 문맹으로 살아가야만 했었다.   

그러다가, 18세기 조선 후기에 이르러서는 남녀노소 모든 이들도 책을 읽을 수 읽게 되었다. 특히, 지금 ' 고전소설 ' 이라고 불리우는 <홍길동전><춘향전><심청전> 등의 등장은 양반뿐만 아니라 평민들도 읽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이미 높아질대로 높아진 조선의 문맹률 때문에 소설을 읽을 수 있는 평민은 극소수였다.  

<홍길동전><춘향전> 등은 조선 후기 문학을 대표하는 고전소설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 당시 평민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었기에 가능하였다.  평민들이 대중적인 소설을 접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소설을 읽어주는 낭독자들의 등장이다. 평민들은 한문으로 이루어진 책을 읽을 수는 없었지만, ' 말 ' 은 알아들을 수가 있었다.  그 당시만해도 사람들이 자주 드나드는 번화가 곳곳에서는 소설을 읽어주는 낭독자들을 찾을 수가 있었다.  그들은 이 일을 직업으로 삼아 대다수 문맹자인 평민들에게 소설 읽기의 즐거움을 선사해주었으며 이들에게도 교양과 지식을 제공하는 ' 지식 교류자' 역할을 자처하였다.   평민들은 이들 덕분에 '독서' 라는 행위를 할 수 있었으며 조선 후기 특유의 대중문화가 형성될 수 있었다.    

  

 

老 = 怒

  내 이름은 삼월이, 조선의 당찬 老처녀    

주위 시선에도 굴하지 않는 당당한 노처녀라는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 ' 내 이름은 김삼순 ' 이 '김삼순 신드롬' 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대중적인 인기를 끌 수 있었던 것은 대한민국 노처녀로 살아가는 여성들에게 많은 공감을 주었기 때문이다.  결혼을 하지 않은(못한) 채 ' 노처녀, 노총각 ' 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달고 살아야 하는 30대를 넘어선 남녀들은 주위 시선에 부담스러워 했듯이, 혼인할 시기를 넘어선 조선남녀들도 사회로부터 그리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아야만 했었다.  

요즘 대한민국 남녀들에게는 결혼은 사치라고 생각하면서 부담스러워 한다. 결혼을 함으로써 짊어져야 할 가정을 먹여살려야 하는 경제적 부담을 결혼 기피 1순위로 꼽고 있는 것은 경제 사정이 썩 좋지 않은 현실이 만들어낸 대한민국 남녀의 결혼관이라는 것을 반증하고 있다.  조선 시대의 결혼 기피도 역시 지금이나 별반 다를게 없었다.  

특히 평민들에게는 결혼이라는 삶의 관문은 우러러 볼 수 없을 정도로 너무 높았다. 혼인을 하는데 필요한 혼수를 마련할 경제적 여건이 없으면 결혼은 꿈도 꿀 수 없었다. 돈이 없어서 결혼을 못하는 노처녀, 노총각 평민들이 많아지게 되자, 조정 관리들도 근심할 정도로 하나의 사회문제로 대두되기 시작하였다. 조정에서는 결혼 못하는 백성들의 증가는 사회적 안정을 훼손할 수 있는 문제로  바라보았다. 그래서 가난한 노처녀, 노총각들을 장가갈 수 있도록 경제적 여건을 마련해주는 사회적 제도를 도입하기도 하였으나 사회적인 제도 도입만으로 이들의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되지는 못했다.  그리고, 이런 결혼 제도는 조선남녀들로 그리 탐탁치 않게 여겼다.  서로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지 못한 채 어쩔 수 없이 강제적으로 결혼을 해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런 제도까지 마련했음에도 결혼을 하지 못한 조선남녀들은 평생 주위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피할 수가 없었다. 결혼 못하는 남녀는 곧 ' 돈 없는 가난한 사람 ' 이라는 이미지가 성립되었다. 특히 노처녀들에 대한 조선 사람들의 관점은 그 때 당시 천시받았던 과부와 맞먹을 정도로 심하였다.

하지만, 이런 시대 분위기 속에서도 자신이 ' 노처녀 ' 라는 것을 떳떳하게 여기는, 요즘 말로 말하는 '용자' 가 있었으니, , ,   일부 문헌 속에 등장하고 있는  ' 삼월이 ' 라는 여자이다.  

조선 시대에서 존재했던 독특하고 기이한 인물들의 행적을 기록한 조수삼의 <추재기이>에서는 삼월이를 50살의 노처녀로 기록하고 있다.  조수삼의 기록에 의하면 삼월이는 언제나 처녀 복장을 한 채 시장 한가운데서 떡 장사를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그 수입으로 화장품을 구입하여 자신의 외모를 가꾸는데 사용하였다.  50살의 할머니나 다름 없는 삼월이가 처녀처럼 화장을 하고 다닌 것은 조선 땅에 살고 있는 모든 남자들을 남편으로 여기는 그녀만의 독특한 가치관에서 반영된 것이었다.  그녀의 등장은 그 당시 사람들로서는 눈길을 안 줄 수 없을 정도로 유명하게 되었으며 그녀와 관련된 민요도 나오게 되었다.   돈이 부족할 정도로 경제적 여건이 부족했던 조선의 노처녀, 노총각과 다르게 삼월이는 직접 스스로 돈을 벌어 연애보다는 자신의 외모 가꾸는데만 인생을 살았는데, 어떻게 보면 조선 시대의 'OL족' 였던 것이다.  OL족이란 소득수준은 중간계층이면서도 소비수준은 최상류층에 맞먹게 행동하는 직장여성을 가리키며 이들은 소비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려고 한다.   

처녀인데 남편이 많다는 / 동구 밖 삼월이. 

   - <조선을 사로잡은 꾼들> 안대회, 한겨레출판, p 149 -  

 

삼월이에 대한 조수삼의 기록은 단 몇 줄 밖에 안 되어서 그녀의 자세한 일대기를 확인할 길은 없지만,  삼월이에게도 '노처녀 = 가난한 여자' 라는 콤플렉스를 시달리면서 살았을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이 경제적 자립뿐이라는 것을 스스로 터득할 수 있었다.  

그러나, 조선 땅에 제대로 박혀버린 노처녀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는 그녀 혼자서 상대하기가 버거웠을 터이다. 그녀에 대한 <추재기이>의 또 다른 기록에 의하면 술에 취한 삼월이가 교수형에 처해져서 목만 덩그러이 매달려 있는 죄수의 얼굴을 때리기도 했다고 한다.  삼월이의 일화를 통해서 조수삼은 삼월이 특유의 다부진 모습을 표현하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노처녀' 라는 이유만으로 홀대받아야 하는 조선 사회에 향한 일종의 분노 표시가 아닐까하는 생각도 해본다. 외모만 가꾸는데만 좋아하는 삼월이의 마음 속에도 한 여자로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껴보고 싶어했을 것이다. 그녀의 기이한 행동은 50살 할머니가 되어서 진정 자신을 사랑해준 이성을 찾지 못해서 일어난 히스테리일 수 있겠다.

   

 

 

잃어버린 동생을 찾아 떠돌아다니는 장애인 노래꾼, 통영동이

김동인의 단편소설 <배따라기>에는 자신의 과오 때문에 헤어져야 했던 유일한 혈육인 동생을 찾아 배따라기를 부르면서 전국을 떠도는 나그네가 등장한다.  잃어버린 동생을 찾기 위해서 배따라기를 구슬프게 부르면서 전국을 방황하는 소설 속 나그네처럼 조선 역사 속에서도 이와 유사한 인물이 실제로 살았었다. 

자신의 성과 이름 대신에  스스로 '통영동이' 라고 불렀던 무명씨는 자신이 열 살 때 잃어버린 동생을 찾기 위해서 노래를 부르면서 전국을 떠돌게 되었는데, 무명씨는 생활하는데 온전치 못한 장애인이었다.  전해내려오는 기록에 의하면 통영동이는 두 눈은 실명하였으며 한 쪽 다리를 절고 있는 불구자로 묘사하고 있으며 그가 실명된 이유에는 잃어버린 동생에 대한 그리움에 사무쳐 밤낮동안 울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통영동이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전국을 방랑하면서 수많은 노래들을 부르고 구걸 행위를 하였다.

'통영동이' 라는 별칭에는 통영 출신이라는 뜻만 있을 뿐, 그에 대한 기록은 너무 간략할 정도로 자세하지 않다. 그리고 그가 전국을 떠돌아 구걸을 하면서 불렀다는 노래는 온갖 새를 묘사한 <백조요>라는 곡만 전해내려오고 있다.  그가 그토록 찾고 싶어했던 동생을 찾았는지 알 수 없지만, 통영동이는 김동인의 소설에 등장하는 ' 배따라기 ' 나그네처럼 동생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한 자신만의 구슬픈 노래를 불렀을 것이다. 그가 불렀다던 노래들이 알려져 있지 않아 아쉽지만, 통영동이의 애절한 목소리는 듣는 이들에게도 자신의 불우한 인생사를 공감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했을 것이다.  

  

 

 

  무뚝뚝한 조선을 웃게 만든 유쾌한 예능인들, 길거리 재주꾼  

<추재이재>에 기록된 인물들 중에서는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다양한 재능을 가진 길거리 재주꾼들에 대한 묘사가 많다.  앞에서도 언급한 소설 읽어주는 낭독자처럼 도시 주변에는 지나가는 사람들 앞에서 자신만의 장기를 보여줌으로써 돈을 벌면서 살아갔다.   

입 하나만으로 온갖 새 종류의 소리를 낼 수 있는 구기(口技)의 달인,  익살스러운 이야기를 재미있게 말하는 재담꾼, 훌륭한 기교를 갖춘 길거리 악기 연주자 등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특기를 직업 삼아 살아갔다.  그리고 많은 대중들로부터 인기를 얻을 정도로 조선의 '인기 스타' 였다. 

요즘과 같으면 그들은 '연예인' 과 유사하다. 입으로 다양한 소리를 낼 수 있는 조선의 구기 연기인들은 1970년대 성대 모사의 달인이었던 원로 개그맨 남보원이나 연예계에서 가장 다양한 소리를 구사할 줄 안다는 개그맨 정종철를 보는거 같다. 그리고 사람들을 웃게 만들고 자신들의 말을 귀 기울이게 만들 정도로 훌륭한 입담을 가진 재담꾼은 대한민국 최고의 MC 유재석과 재치있는 입담으로 유명한 김제동 급인 것이다.

  

 

   ' 조선의 폴 포츠' 달문, 추남 거지에서 조선 최고의 광대가 되다

무엇보다도 재미있는 것은 하루 아침에 유명인사가 되다가, 한순간에 몰락할 수 있는 연예인의 굴곡된 인생 경로 역시 조선 시대의 재주꾼들에게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전국 양반들과 기생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던 광대 달문이 그 대표적인 인물이다.  문헌에 의하면 그는 못생긴 외모를 가진 추남 거지로 기록되고 있다.  그가 얼마나 못 생겼으면 연암 박지원도 자신의 글에서 자신이 직접 본 달문은 못 생겼다고 기록하였다. 그러나, 못생긴 외모와 거지라는 천한 신분은 달문의 출세에 커다란 장애가 되지 않았다.  겉모습은 추했지만 속은 무척 따뜻한 성품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달문은 주위 거지들과 어울리는 동안 그 당시 유행하던 각종 연희들을 습득하였다.  그래서, 그의 재능에 대한 소문은 길거리를 통해서 전국으로 퍼지기 시작했으며 달문은 조선 사람들이 인정하는 최고의 광대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착한 성품과 전국으로 떠도는 소문통에 의해서 달문은 조선 최고의 스타 광대가 된 이유도 특이하지만, 결혼도 못할 법한 못생긴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최고의 광대가 된 과정 역시 예전에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선사한 폴 포츠와 수잔 보일을 연상하게 한다. 이 두 사람에게는 못생긴 외모 때문에 가수가 되지 못한다는 사회의 선입견을 깨뜨리고 오랫동안 갈고 닦은 실력 하나만으로 많은 이들에게 인기를 얻는 연예인이 되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어떻게 보면 광대 달문은 조선의 ' 폴 포츠 ' 였던 것이다.    

하지만, 자신에게 향하는 대중들의 시선과 인기가 너무 과하게 되면 자칫, 자신의 연예인 활동 혹은 인생 전부를 한 순간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는 독이 될 수 있다.  

수많은 전국 연희 공연을 통해 나름 짭짤한 수입을 거둔 달문은 주위의 권유로 인해 사업을 하게 되었는데 그 때부터 달문은 돈의 달콤한 맛에 맛들어버렸다. 그리고 기방에 자주 드나들어 기생의 치마폭에 둘러싸이는 일도 많아지게 되었다. 이렇다보니, 큰 인기에 비해서 그는 그렇게 부유한 생활을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공연에서 얻은 어마어마한 수익만으로도 달문도 양반층으로 급부상할 수 있는, 완전 인생 역전의 주인공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달문에 대한 기록에서는 그가 부유한 생활을 했다는 기록을 찾을 수 없다.  대부분, 그의 공연과 기방에서 노는 장면에 대한 기록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생활로 인해서 인기만큼이나 자신에 대한 가십거리 역시 전국으로 알려지게 되고 심지어 왜곡되어 전해지기 마련이다.  

달문은 생뚱맞게도 역모 사건에 휘말려 체포되었다.  역모를 꾀한 이들이 당시 달문의 스타일을 흉내낸 것도 있었지만, 그들 중의 주모자가 자신이 달문의 동생이라고 말하는 바람에 관련 없는 달문은 설상가상으로 곤혹을 치러야 했다.  오랜 심문 끝에 달문은 역모 사건에 관련 없다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역모를 일으키게 할 정도로 사회의 미풍양속을 해쳤다는 죄목으로 달문은 귀양(!)을 가게 되었다.  가벼운 형벌이었기에 그의 귀양살이는 짧았으며 풀려난 뒤에도 다시 광대 활동을 했지만, 갑작스럽게 종적을 감추고 말았다.   

무슨 이유 때문에 달문이 종적을 감추었는지 밝혀지지 않았지만, 간간히 전해져 내려오는 달문의 인생은 연예인으로서의 인생사를 보는 거 같기도 하다.  한 순간의 경험 때문에 대중들의 시선에서 사라지고 마는 불행한 연예인들처럼 말이다.

 

   

  조선 후기를 장식한 조선 문화의 아웃사이더

이 책에서 소개된 조선의 길거리 재주꾼들과 독특한 개성을 가진 인물들에 대한 기록은 대부분 조수삼의 <추재기이>에서 인용되었다. (저자는 이 책을 조수삼의 <추재기이>와 같이 읽어볼 것을 권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이야기는 사람들의 입으로 통해 전해내려오는 소문들을 토대로 기록한 것이어서 자세하게 기록되지 않아서 아쉬운 단점이기도 하다. 평민들을 주체로 한 살아 숨쉬는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조선 후기의 문화라고 정의할 수 있지만, 여전히 조선의 사대부 의식의 잔재는 남아 있었다. 이렇다보니 길거리 재주꾼들은 대중들의 많은 인기에도 불구하고, 그에 비례하는 대접은 부족하였으며 역사적 기록에서도 의도적으로 많이 배제되어야만 했다.  

세계적인 명배우였던 찰리 채플린"인생은 가까이서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보면 희극이다." 라고 말하였다.  조금 떨어져 있는 거리를 통해서 이들의 재주를 지켜본 조선 시대 사람들은 무척 즐거운 희극으로 보았지만, 반대로 타인에 의해 기록되어 알려지지 않았던 그들의 내밀한 일상을 조금 더 가까이 보게 되면 조선 문화의 ' 아웃사이더 ' 로 살아간다는 인생의 서러움과 자조감이 묻어나 있는 비극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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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0-12-17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아, 좋은 리뷰!

조선 시대 하면, 머랄까 국사 책에서 배운대로, 우리와 같은 사람이 아닌 허구의 대상처럼 느껴지잖아요. 이야기 속 인물같고, 우리같이 자잘한 고민을 했을까 싶구. 그런데 <엽기 조선왕조실록>을 엄청나게 웃으면서도 한층 가까와진 느낌을 받았었답니다.
지금 읽으신 책에 대한 리뷰도 그런 느낌이네요. ^^

지금은 정보가 넘쳐나서 덜 하지만,
예전에는 우리나라나 외국이나 모두 책=지식=(돈 또는 혁명) 등의 공식이 가능했잖아요. 그래서 금했나봐요. 책이란 곧 힘인거잖아요. 아마, 인류가 홀랑 망하고, 몇 안 되는 사람만이 남으면 또 그럴지도 모르겠어요... (희안한 상상 중~)

cyrus 2010-12-17 17:22   좋아요 0 | URL
사실 이런 역사책 리뷰는 지루하기 마련인데 재미있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마고님의 상상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을 보는거
같아요. 어떻게 보면 멸망에서 살아남은 인간이 책을 소유하고,
또 그 책은 특권층만의 소유물이 될 수 있겠네요^^

노이에자이트 2010-12-18 1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이야기거리가 왕조사나 제도사에 치중한 역사보다 더 재밌지요.어차피 생활사를 모르면 역사는 맹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장터 같은 데서 많은 사람들을 모아놓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은 성대보호를 위해 무슨 약을 먹었을까요...

일제시대만 해도 20대 초반이 넘으면 노처녀 소리를 들었고 80년대만 해도 20대 후반에 접어들면 노처녀였죠.요즘은 애기 낳을 수 있는 마지막 연령까지도 노처녀라고 하는 것 같기도 하고...아무래도 평균수면이 길어질수록 노처녀 연령도 더 느슨해진 것 같아요.환갑도 못넘기고 죽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던 옛날엔 노처녀의 기준이 훨씬 더 엄격했겠지요.

cyrus 2010-12-19 19:37   좋아요 0 | URL
저도 한국사 같은 경우에는 풍속사, 생활사가 더 끌리더군요. 선조들의
삶을 가깝게 볼 수 있다는 점도 흥미롭고요. 그러고보니 저 역시 노자님의
궁금중에 대해 무척 궁금하기도 합니다. 책의 저자인 안대회 교수가 옮긴
<추재기이> 역시 읽어보고 싶네요.
 
바나나 - 세계를 바꾼 과일의 운명
댄 쾨펠 지음, 김세진 옮김 / 이마고 / 2010년 9월
평점 :
품절


  

 다음 가사 속 단어의 연관성은?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빨개면 사과,    
     
    사과는 맛있어, 맛있으면 바나나

    바나나는 길어, 길으면 기차, 기차는 빨라 . . .
 
   

가사를 보는 순간, 어릴적에 많이 불렀던 구전노래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원숭이 엉덩이부터 시작해서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산인 백두산으로 끝나는 작사, 작곡사 미상의 이 노래는 끊임없이 연관된 단어들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식으로 이어져 있다. 

그런데 갑자기 이 노래 가사에서 등장하고 있는 굵게 표시된 단어들에는 재미있는 연관성이 있다. 

  원숭이,  사과,  바나나,  기차 

아무리 뚫어지게 네 단어를 쳐다봐도 연관성을 찾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원숭이가 제일 좋아하는 주식이 바나나라는 것을 알겠는데, 사과와 기차는 바나나와는 무슨 상관이라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번에 출간된 댄 쾨펠이라는 미국의 저널리스트가 쓴 <바나나: 세계를 바꾼 과일의 운명>이라는 책을 한 번 읽어보신 분들은 이미 눈치 챘을 것이다. 그렇다. 연관성을 알아내기 위한 결정적 힌트는 '바나나' 에 있다. 다시 말하자면, 바나나 특유의 모양처럼 길고 긴 역사를 알면 원숭이, 사과, 기차와의 연관성을 알 수 있다.  

     

 

  사실, 아담과 이브가 에덴동산에서 먹었던 것은 , , ,  

구약성서 [창세기]에 등장하는 아담과 이브 이야기는 너무나도 많은 이들이 다 알고 있는 성서 속 내용이다. 하느님이 만든 인류의 시조인 아담과 이브는 뱀의 유혹에 넘어가버려 금단의 열매인 선악과, 즉 사과열매를 따 먹게 됨으로써 그 죄로 인하여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된다. 그래서 아담의 목에는 그 때 먹었던 사과가 걸려 있어서, 목젖(Adam's apple)이라는 남성만이 가질 수 있는 신체적 특징이 생겼다는 기원 역시 유명하다. Adam's apple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아담이 먹은 열매가 사과라는 성서 속 기록을 증명해주고 있다.  

그런데 댄 쾨펠은 바나나의 역사에 관한 자료들을 수집하면서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성서 속 기록을 뒤집는 새로운 문헌을 발견하게 되었다. 고대 히브리어와 그리스어로 쓰여진 가장 오래된 성서에는 아담과 이브가 먹은 선악과가 사과라는 내용을 찾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성서에서 선악과가 사과로 표현되기 시작한 것은 성 히에로니무스로부터 비롯되었다. '선악' 과라고 쓰여진 히브리어를 라틴어로 'malum' 이라고 번역을 하였는데, 성서 관련 연구자들은 히에로니무스가 이 라틴어 단어를 쓴 의도가 '악의적인, malicious' 와 비슷한 어감에서 착용한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히에로니무스가 사용한 'malum' 은 '사과' 로도 번역될 수 있어서 후세의 성서 기록자와 화가들은 아담과 이브가 먹었던 선악과를 사과라고 표현했던 것이다. 그리고 성서에서는 자신들이 나체인 것을 깨닫게 되자 수치심에 무화과 잎사귀를 가린다고 표현하고 있는데, 재미있는 것은 옛날에는 바나나를 무화과로 불렀다는 것이다. 즉, 고대의 선인들이 아담과 이브가 먹은 선악과를 사과라고 생각했던 것은 바나나라는 식물의 존재를 알지 못한 상황이 낳은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 이 책에는 저자가 찾았다던 최고(最古)의 성서 원본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소개되지 않아서, 근거의 진위성에 대해 의심이 든다. 댄 쾨펠은 단지 '히브리어와 그리스어로 쓰인 가장 오래된 성경 원본들' (p 24)' 이라고만 밝히고 있다 

 

 

  기차의 등장과 함께 시작된 바나나 사업

16~17세기 유럽의 신항로 개척 이후 열대지방에만 자라는 특별한 과일이었던 바나나는 전 세계 대륙으로 보급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바나나를 통한 무역도 이 시기부터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아메리카 대륙에 정착된 바나나는 19세기 중반 이후부터 미국인들의 입맛을 사로잡게 되었다. 바나나 무역을 담당하던 로렌조 도우 베어커라는 사람은 본격적으로 바나나 사업을 시작하게 되는데 그가 만든 회사가 보스턴 프루트였다. 1900년에는 UFC(미국의 유명한 이종격투기 단체인 UFC가 아니다. 이종격투기 단체의 약자는 Ultimate Fighting Championship이고, 바나나 회사 UFC의 약자는 United Fruit Company이다)로 개명되었고, 지금은 치키타로 알려져 있는 세계적인 바나나 회사로 성장하였다.

그러나 초반 바나나 사업의 출발은 좋지 못했다. 앞에서도 이미 언급했지만 바나나는 고온다습한 열대기후 지방에서만 자라는 과일이다. 열대기후와 전혀 다른 아메리카나 유럽 대륙에서 바나나가 쉽게 자랄 수는 없었던 것이다. 18세기 중반, 바나나 최다 원산국은 코스타리카였는데 사실은 코스타리카가 바나나 최다 원산국이 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다.  

미국의 한 사업가가 코스타리카에 국유 철도 건설을 하게 됨으로써 바나나 운송에 대한 최대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었다. 코스타리카 국토는 숲으로 이루어져 있으나 철도 건설로 인하여 수많은 열대우림들이 파괴되어 갔다. 그리고 사업가는 좀 더 많은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서 철로 주변의 개간지에 바나나나무를 심었다. 중앙아메리카대륙과 미국을 연결하는 대형 철도가 있으니 코스타리카에 자란 품질 좋은 바나나를 기차를 통해서 쉽게 운반할 수 있는 길이 마련된 것이다. 더군다나 미국의 바나나 사업을 담당하는 UFC와 그 밖의 나머지 경쟁 회사들에게는 기차와 철도 덕분에 자신들의 이익도 챙길 수 있었다. 

그러나 철도 건설과 바나나 사업 뒤에는 코스타리카에 자라던 수많은 야생의 나무들은 베어지고, 철도 건설에 수많은 노동자들이 착취당해야만 했던 암울한 문제점이 있었다.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찾고자 노동 개혁을 주장하지만 미국 정부의 개입으로 이들의 노동 착취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미국 정부라는 든든한 백이 있었기에 코스타리카와 더불어 중앙아메리카대륙 바나나 원산국이었던 과테말라 정부의 국가 운영권은 엉뚱하게도 바나나 회사 UFC로 넘어가게 되는 사태까지 벌어진다. 과테말라 전체 바나나 경작지의 70%는 UFC의 소유였다. 그리고 이 소유권을 유지할 수 있는 기간은 놀랍게도 무려 99년(!)이었다. 과테말라를 통치할 수 있을 정도의 막강한 권리를 얻은 UFC는 빼앗은 국력의 힘을 이용하여 이들 나라의 노동자들을 쉽게 착취할 수 있다. 그리고 노동자들이 저항을 하게 되면 미군들이 이들을 억압하였다. 그래서 UFC, 아니 치카타는 세계 최대의 바나나 수입 회사로 발전할 수 있었다.  

 

 

  슬픈 열대 과일, 바나나  

바나나에 의해서 생긴 암울한 역사는 바나나 원산지의 노동자들을 착취한 것뿐만이 아니다. 파나마병이라는 지금까지도 발병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으로 인해 바나나들이 죽어가게 되자 바나나 회사 입장에서는 막대한 손해를 보게 되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파나마병을 이길 수 있는 좋은 품종의 바나나를 만들어야 했다. 병, 해균의 위험성에 강하는 야생 바나나와 맛이 좋은 복제 품종 바나나끼리 교배하여 좋은 품질과 병에 강한 내성을 두루 갖춘 바나나로 만들게 되었다. 이런 교배식으로 인해서 열대우림의 야생 바나나는 절멸의 길로 걷게 되었으며 지금도 학계에서 지정된 야생 바나나 수는 얼마 되지 않는다. 지금도 시장과 대형마트에 팔고 있는 바나나는 야생 바나나가 아닌 복제와 개량을 거듭하여 만들어진 바나나이다. (사실, 야생 바나나는 원래 사람이 먹을 수 없을 정도로 딱딱한 열매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연구를 통해 개량된 바나나 역시 무시무시한 파나마병을 피할 수가 없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바나나 회사가 제시한 해결방안은 바나나나무에 강력한 살충제를 뿌리는 것이었다. 살충제 덕분에 바나나 열매는 병을 피할 수 있었지만, 바나나 나무 경작지에서 고된 노동에 시달려야하는 노동자들에게는 치명적인 병을 얻게 되었다. 바나나 회사가 개발한 살충제는 인체에 유해한 성분이 가득했던 것이다. 살충제에 접촉한 노동자들의 피부는 파랗기 시작하였고 심한 열병에 걸렸다. 그리고 얼마 안 가 사망에 이르게 되었다.  살충제의 위험한 위력에도 불구하고 바나나 회사는 지금도 살충제 이용을 고수하고 있다. 노동자들보다는 자신의 손에 많은 돈을 쥐어질 수 있는 바나나를 위해서 말이다. 바나나 경작지 노동자들은 바나나보다 못난 대접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미국의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이 이 책에 대한 평에서도 밝혔듯이 바나나의 역사는 곧 슬프고 암울한 세계화의 역사이다. 우리가 시중에 팔고 있는 초콜렛이 아프리카 대륙의 카카오 농장에서 착취당하고 있는 원주민 노동자들의 손에서 만들어졌듯이 바나나 역시 초콜릿 가공 과정과 유사한, 세계화의 그늘에서 탄생된 악마의 과일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강대국으로부터 노동력을 착취당하면서까지 자신들이 길러낸 바나나를 바나나 원산국인 라틴 아메리카나 아프리카 사람들은 제대로 먹지 못한다는 점이다. 요즘 세계의 식량 고갈 문제가 대두되고 있는만큼 바나나는 개도국 및 빈곤국가 사람들의 배고픔을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주식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바나나를 재배할 수 있는 권한은 정부라는 든든한 지원군이 버티고 있는 바나나 수입 회사들의 손에 쥐어져 있다. 이런 상황이 이어진다면 세계의 식량 부족 문제는 해결되지 못할 것이다.

바나나의 길고도 암울한 역사를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이상, 당분간은 시중에 팔고 있는 맛있는 바나나를 먹게 되면 목구멍에 쉬이 넘어가지 못할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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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조부 2010-11-17 2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디셈버 별이 될게 들어봤어요.

정말 비슷한데요~ 동생도 같이 들어봤는데 녀석은 잘 모르겠다고 하네요.

표절판정의 기준은 중요하겠지만, 결국은 작곡가의 양심에 맡기는 수 밖에 없지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cyrus 2010-11-18 21:04   좋아요 0 | URL
조영수 작곡가 측에서 표절 시비에 대해 입장은 밝힌 적은 없다지만
디셈버 측에서는 표절이 아니라고 주장했다고하네요.
그래서 이번 표절 시비는 조용히 묻어갔네요^^

sslmo 2010-11-18 05: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리고 바나나 텔레비젼에서 봤는데요,완전 초록색이더라구요.
그걸 후숙시킨다고 한더군요.
알면 못 먹을 과일들 넘 많아요.
전 바나나를 제일 편안해 하는데...
옛날에...공부 좀 했을 때...바나나 한송이 가지고 들어가면 다 먹을 때까지 안 나오고 공부도 했었는데 말이죠~^^

다이조부 2010-11-18 08:06   좋아요 0 | URL


고시생이었나요? ㅋ

cyrus 2010-11-18 21:07   좋아요 0 | URL
바나나뿐만 아니라 다른 과일도 사람들의 입맛을 위해서
(물론 그 의도 뒤에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과일을 팔기 위한 것도
있겠지만요) 약품 처리는 피할 수 없는거 같아요.
바나나 한 개 뒤에는 이런 안 좋은 이야기가 있지만
그렇다고 바나나 섭취 반대를 하기에는 그렇고,,,
바나나 뒤의 어두운 세계화의 그늘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에서 만족해야겠습니다.

꽃도둑 2010-11-18 1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망할넘의 바나나, 니가 한 짓을 다 고하렷다.
아니 저 대단하신 다국적기업과 그 기업들을 눈감고 밀어주는 각 나라 정부의 목을 비틀어야 노동착취당하는 농민들을 구할 수 있을까요?,,,그나마 공정무역을 통해 들어온 물건을 사면 되지만...그것으로는 약하다는 생각은 합니다.
다음 가사 속 단어의 연관성은?
퀴즈 풀려고 들어왔다가....에혀~ 열만 받고 나가네요.ㅜ.ㅜ

cyrus 2010-11-18 21:10   좋아요 0 | URL
예전에 신간평가도서에서 이 책 소개하신 분이 있었던 같던데,,
그래서 한 번 읽어봤는데 우리가 자주 먹는 바나나 뒤에
이런 좋지 않은 이야기들이 있어서 안타깝기도 했습니다.
빈곤국의 사람들은 바나나를 먹어보지 못하는 점에서 씁쓸했습니다.

도란도란 2010-11-18 1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cyrus님!^^ 알찬 서재 잘 구경하고갑니다
저는 이음출판사에서 나왔어요~
저희가 이번에 미국에서 베스트셀러를 연일 차지하여 화제가 되고있는 도서
<모터사이클 필로소피> 한국판 출판 기념으로 서평단을 모집하고있거든요^^
책을 사랑하시는 cyrus님께서 참여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 이렇게 리플 남기고가네요
저희 블로그에 방문해주세요~! :)

다이조부 2010-11-18 21:06   좋아요 0 | URL


어~ 이 블로그에도 있네요 하하하

난 왜 이런 공지를 못 받을까요 ㅋㅋㅋ

cyrus 2010-11-18 21:13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어떻게 재 서재를 알고 오셨는지 모르겠지만,
덕분에 저는 좋은 출판사 블로그를 알게 되었네요.
방금 출판사 블로그 확인해봤는데, 리뷰를 개인 블로그와
온라인 서점 블로그, 두 곳에 올려야하더군요,
제가 개인적으로 바쁘고 개인 블로그를 만들지 않아서
서평단에 참여는 못할거 같습니다. 그래도 서재 블로그에는 자주
들리겠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10-11-19 16: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전 신문의 신간소개에 이 책이 소개될 때 성서해석 문제에 관심이 갔는데 그다지 명확한 건 아니군요.

중남미의 미국대사관과 유나이티드 프루츠, 그리고 ITT는 미국의 공작정치를 상징하는 조직들이죠.
 
문학으로 역사 읽기, 역사로 문학 읽기
주경철 지음 / 사계절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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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rologue  

이 책, 너무나 읽고 싶었다. 동네 도서관에 소장되지 않아서 다른 도서관에 찾아가서 대출하였다. 문학과 역사의 만남이라는 주제도 흥미로웠고 대중들을 위해 서양사에 관한 책을 쓰는 저자 주경철 교수도 내가 선호하는 지식인들중의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얇은 분량이라는 점에서 약간 아쉬웠지만 저자가 소개하고 있는 문학작품들이 사람들에게 많이 읽혀지고 있는 친숙한 작품에다가 전문적인 내용을 쉽게 풀어내는 저자의 필력은 마음에 들었다. 예전에 저자의 이름을 대중에게 알리게 된 <대항해 시대>를 읽다가 포기했던 적을 감안하면(책 분량이 600페이지를 넘는다) 이 정도로 만족하는 것으로 감지덕지해야만 했다. 

그런데, 차례를 훑어보고 나서 무척 난감하였다. 책을 읽기 전에 책의 차례를 먼저 확인하고 읽어봤어야 했었다. 저자가 소개하는 문학작품들 대부분 내가 아직 읽어보지 못한 것들이었기 때문이었다. 간략한 줄거리 정도는 기본으로 습득하고 있지만, 원전의 내용을 읽어보지 못한 상태에서 저자의 분석을 읽기에는 찜찜한 구석이 들기도 했다. 그나마 원전으로 읽어본 작품이라면 최근에 읽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보물섬>과 페로의 동화 <푸른 수염>, 그리고 <아라비안 나이트> 뿐이었다. 그리고 아주 예전, 어렸을 때 읽어본 작품에는 고작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 그리고 <이솝 우화집>이었다. 과거 평소에 문학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 나의 문제적 독서 습관의 폐해를 상기시켜 주었다.  

결국에는 모든 책의 내용들을 읽고 말았다. 흥미로운 내용들이 많았지만 아직 읽어보지 못했던 작품들의 줄거리를 미리 알게 되어버렸다. 읽는 내내 왠지 대놓고 스포일러에게 당한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고 그냥 책을 쓰기만 한 저자를 스포일러라고마냥 비판할 수도 없고, , ,  이번 독서는 그냥 아무렇지 않은듯 쿨하게 읽고 넘어가야만 했다. 

  

 루이스 스티븐슨의 모순

사실, 이 책의 내용들 중에서 예전에 읽었던 작품들에 대한 내용에 더 눈길을 갈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내가 읽으면서 느꼈던 생각들과 어느 정도 일치한 것도 있었으며 열린책들에서 나온 <보물섬>에서 소개하고 있는 역자 후기 내용과 비슷한 것도 있었다.  특히, 스티븐슨의 <보물섬>에 관한 내용을 읽었을 때는 며칠 전에 읽었던 작품의 내용이 머릿속으로 그려졌다. 그리고 이 작품과 관련된 내용에는 서양사적 키워드인 '해적' , '제국주의' 가 언급되어 예전에 읽었던 역시 주경철 교수가 쓴 <문명과 바다>라는 책도 떠올랐다. 진작에 같이 읽었으면 참 좋았을 것 같다는 후회가 들기도 했다. 내용은 다르지만 내용을 다루고 있는 주제들이 서로 연관성 있는 책들을 동시에 읽는 것은 보다 입체적인 독서를 할 수 있고, 내용들을 쉽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스티븐슨이 <보물섬>을 집필하면서 말하고자하는 주제와 작품 전개가 서로 모순이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보물섬>에는 재화에 대한 인간의 끝없는 탐욕의 위험성을 말해주고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보물섬>에서 선한 캐릭터로 등장하는 주인공 짐 호킨스와 리브지 선생, 그리고 히스파니올라 호에 승선하는 인물들도 악한 캐릭터로 대비되는 롱 존 실버와 그 밖의 해적들처럼 플린트 선장이 숨겨놓은 보물을 찾기 위해서 위험한 모험을 하게 된다.  그리고 보물을 획득한 호킨스 일행은 자신들의 목숨을 위협하였던 해적들에게는 한 푼 어치도 주지 않는다.

그러면, <보물섬>의 주인공 짐 호킨스의 행동은 작가가 말하고자하는 주제와 동떨어지게 된 셈이다. 짐 호킨스가 보물을 찾아나선 것도 본질적으로는 재화에 대한 욕심이 있어서 가능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어린이들부터 어른들까지 대부분 이 작품을 읽고 나면 보물을 찾기 위해서 히스파니올라 호에 위장잠입하여 반란을 일으킨 롱 존 실버는 나쁜 인물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짐 호킨스는 악의 간계에서 벗어난 의로운 소년이라고 인식한다.  

  

 

  의로운 해적, 프랜시스 드레이크  

저자는 <보물섬>을 쓴 스티븐슨의 이 애매모호한 모순이 생기는 이유와  이 소설을 읽은 독자들이 '짐 호킨스-롱 존 실버' 로 대립되는 구도로 인식하게 되는 결정적인 이유를 '국가' 라는 기준이라고 말하고 있다. 국가를 위해서 폭력을 행사하면 의로운 인물이 되고, 국가의 공적인 활동에 반하여 폭력을 행사하면 해적, 불한당이 되는 것이다.   

작품 속, 짐 호킨스 일행에 대한 묘사는 본 독자들에게 조국을 위해서 목숨을 바쳐 보물을 찾으려는 선한 인물로 비춰지기 쉽도록 하는 효과를 주고 있다.

   
 

" 선장, 이 집은 배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소. 놈들이 겨냥하는 것은 저 국기임에 틀림없소. 저걸 거두는 게 낫지 않겠소? "   " 내 국기를 내리라뇨! " 선장이 소리쳤다.  " 안 됩니다. 그렇게는 못 합니다. "  

  - 스티븐슨 <보물섬> 중에서, 주경철의 책 p 147 -

 
   

반란을 일으킨 실버 일행들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면서까지 히스파니올라 호의 스몰렛 선장은 조국의 국기를 내리는 행위는 적들에게 굴복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고 있다.   

스티븐슨이 주경철 교수의 분석대로 자신의 소설을 국가라는 기준으로 상반되는 구도를 착안했는지 확인할 바가 없지만, 역사적 사료에서는 저자의 주장을 설득력있게 뒷받침해주고 있다. 16세기 엘리자베스 여왕이 통치하던 영국은 '절대 해가 지지 않는' 이라는 수식어가 붙일 정도로 유럽 대륙에서 막강한 국력을 떨치게 되었다. 영국이 강대국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원동력에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훌륭한 통치력도 있었지만, 프랜시스 드레이크의 공도 무시할 수 없다.  

프랜시스 드레이크는  영국의 대표적인 해적으로 이름을 날렸다. 특히 그 당시 영국과 양강 대립국인 스페인의 무역선들을 노렸다.  그래서 스페인으로서는 드레이크라는 해적 선장, 그보다 더 영국이라는 나라를 껄끄럽게 보였을 것이다. 결국, 두 나라는 유럽 대륙에서의 강대국을 결정지을 치열한 전쟁을 치르게 되었는데, 드레이크의 활약으로 영국은 스페인을 대파하면서 이전에 유럽 강대국이었던 스페인을 밀어제치고 당당히 신흥 강국으로 급부상하게 되었다. 국가를 위한 대활약을 펼친 드레이크는 엘리자베스 여왕으로부터 '경' 의 칭호를 받게 되는 영광까지 얻게 된다. 지금도 드레이크는 해적 선장에서 영국의 바다 영웅으로  스타덤에 오르게 되는 인물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  

  

 

  자본주의와 무력 

살육과 비인간적인 폭력을 일으켰을지더라도 국가에 올바른 일을 하냐 안 하냐에 따라서 그 인물의 행적이 평가되는 것이 역사의 특징이다. 비단 드레이크 선장뿐만 아니라 역사 속에서도 엇갈린 평가를 받는 인물이 한 명 더 있다. 바로 인류 최초 세계일주 항해를 한 페르디난드 마젤란이다.마젤란과 같은 항해가들이 활동했던 신항로 시대에는 강대국들이 자행한 살육의 역사가 있기에 가능했다.  3월 6일은 마젤란이 괌에 상륙하는 역사적인 날이다. 그래서 이 날이 되면 스페인에서는 해마다 마젤란의 업적을 기념하기도 하며 괌에는 마젤란 상륙 기념비가 새워져 있다. 하지만 그 기념적인 사건 뒤에는 괌에 살고 있는 원주민들을 무참하게 살해한, 어두운 기록이 있다. 그리고 맨 처음 괌에 상륙할 당시, 마젤란은 이 섬을 라드론(Ladron)이라고 명칭을 붙여줬다. Ladron은 스페인어로 '도둑' 이라는 의미이다. 당시 괌 원주민들이 마젤란이 타고 있던 배에 침입하여 물건을 훔쳐갔기 때문이었다.  원주민들 입장에서는 마젤란 일행들이 낯선 존재로 보였을 것이다. 그러다보니 이방인에 대한 호기심과 두려움이 교차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래서 마젤란 일행의 배에 물건들을 훔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마젤란은 괌에서만 자란 원주민들이 도리어 자신들을 위협하는 존재로 인식했다. 그러니 그 곳 원주민들을 잔인하게 죽이는 자행을 한 것이다.  

신항로 개척 시대의 항해가들, 그리고 해적들. 두 바다 위의 모험가들에 대한 역사적인 평가는 엇갈려져 있지만, 이들 활동의 근본에는 자본주의라는 뿌리가 연결되어 있다. 세계 일주를 한 마젤란이나 남의 배에 침입하여 약탈을 행하는 해적들이나, 다 돈을 벌기 위해서 바다 위를 떠도는 것이다. 그리고 그 돈을 벌기 위해서는 무력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무시할 수 없었다.   

지금도 해적은 사라지지 않았다. 최근에 소말리아 해적들에게 피랍당한지 217일 만에 석방된 삼호 드림호의 사건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자본주의와 무력의 관계는 필수불가결이다. 이번에 피랍된 시기가 역대 최장 기간이었으며 석방되는 조건으로 해적들이 요구한 가격도 역대 최고가로 기록되었다.  해적들이 어마어마한 액수를 요구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배후에 해적들과 손을 잡은 외국 브로커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자본을 얻기 위해서 세상은 가면 갈수록 영악해지고 있는만큼 이번 사건은 단순 해적에게 피랍당한 사례로 봐서는 안 된다. 점점 더 영악해진 자본주의 세상을 이해를 해야만 이번 일과 같은 국가 이미지에 해가 되는 불미스러운 일을 겪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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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조부 2010-11-13 0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경철은 자기 분야에서 제 몫을 분명히 하는 학자라고 생각합니다.

위의 책은 접하지 못했지만, 예전 작품인 테이레시아스의 역사를 읽고

감탄했던 기억이 납니다. 고은 강연을 대학시절 접했는데 그 할아버지도

주경철 칭찬하던게 생각나요.

주경철 도 분명히 실력있는 학자이지만, 연세대학에 있는 김명섭 도

지지 않습니다. 시간이 허락되면 한길사에 나온 <대서양 문명사>를 권합니다.

조선일보를 통해서 1주일에 한 번씩 손바닥칼럼 주경철의 글을 50회 이상

스크랩 했는데, 별 시덥지 않은 이야기를 주로 해서 뭥미 싶더군요.

칭찬을 앞에서 쫘악 해놓고, 뒤통수 치는것 같은데 주경철이 조선일보에 기고하는게

참 거시기 하긴 해요 쩝

cyrus 2010-11-13 21:03   좋아요 0 | URL
매주 토요일마다 중앙일보에도 기고합니다. 중앙일보에는 경제와 관련된
서양사에 대한 칼럼입니다. 제가 서양사에 좀 관심이 많은 편인데
이와 관련된 좋은 책 추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이조부 2010-11-13 2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학에서 국제관계학을 공부했는데도 저는 서양사를 몰라요 ㅋㅋ


진지하게 공부하는게 아니라 가벼운 마음으로 심심할때 보기 좋은 만화책이

있어요. 굽시니스트 작 제2세계대전 이라고요~ 2권짜리 책인데 얼마 전에

함께 공부하던 동생들한테 그 책을 선물했는데 두 녀석 다 이건 뭥미 하더군요 ㅋ

전쟁쪽으로 관심이 있고, 만화라는 장르를 좋아하면 추천 ㅎㅎ
 
문명과 바다 - 바다에서 만들어진 근대
주경철 지음 / 산처럼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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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년 시절의 로망, 해적  


 


내가 아주 어렸을 때 K 방송국에서 하던 그 만화 피터팬,  

알고 보니깐 그 유명한 미국의 20세기 폭스사에서 제작한 것이었다.  

혹시나 해서 찾아봤는데 사진이 있었다. 

험상궂게 생긴 저 후크와, 그리고 이 작품에서는 꽁지머리로 묶고 다닌 피터팬과  

조그만 팅커벨.....  나에게는 디즈니의 피터 팬보다 이 피터 팬이 더 친숙하게 느껴진다.

사진을 보고나니 점점 잊혀지고 있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올린다....ㅠㅠ  


  
영화 <후크> 포스터, 이 영화도 꽤 재미있게 봤었다.     

어렸을 때 처음 봐서는 몰랐는데..... 

어른이 되고 난 뒤에 이 어린이용 영화가 

초호화 감독과 캐스팅이 만들어 낸 작품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피터 팬 역: 로빈 윌리엄스, 팅커벨 역: 줄리아 로버츠, 후크: 더스틴 호프만. 

 .....  감독은.....    스티븐 스필버그 ㅎㄷㄷ)

 

 
오다 에이치로 작 <원피스>
  

속세에 때 묻지 않았던 순진무구한 어린 시절에 해적을 동경하는 상상을 하곤 했었다.  
이제 막 애기 티를 벗고 난 뒤였을까.....?     

기억은 잘 나지는 않지만 K 방송국에서 만화 '피터 팬'을 본 적이 있다.  

그 때가 너무 오래 되어서 내용은 잘 기억은 안 나지만 항상 마지막에는 우리 착한 주인공 피터 팬그 특유의 웃음과 포즈는 기억이 난다. 그러나 피터 팬의 앙숙 후크 선장에 대한 기억이 더 남는다. 잔혹하고 악한 후크의 냉혈한 심장에는 예전의 순했던 성격과 악한 성격을 가지게 된 아픈 과거의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커다란 배와 수십 명의 부하들을 거느리는 후크 선장의 위풍당당한 모습이 부럽기도 하였다. 어린 남자 아이들의 마음에도 은연히 남성다운 남성이라는 본성이 있었는가 보다.  

그리고 사춘기에 들어서도 해적과 관련된 이야기는 나의 마음을 자극하게 만들었다.  

중학교 때 쯤에는 일본에서 만든 만화 <원피스>가 유행하고 있었다. 주인공 루피가 해적왕이 되기 위해서 동료들과 거친 바다를 모험한다는 해적 판타지 액션 모험 로망 만화(?)였다. 1권부터 초창기 시리즈의 이야기가 참 재미있었는데.....  군대 갔다오고 다시 읽으려니깐 이미 시리즈는 50권이나 넘어섰으니 다시 읽을 수도 없고..... 이야기는 가면 갈수록 안드로메다로 향하고 있고..... 

어쨌든 나에게 해적이란 캐릭터는 남을 잔인하게 죽이고, 보물을 약탈하는 악한이면서도
광대한 바닷가를 떠돌며 모험을 즐기줄 아는 마초라고 생각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해적의 탄생  

주경철 교수의 『문명과 바다』에는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해적의 모습이 아닌 다양한 역사적 사료들에서 찾아 낸 새로운 얼굴의 해적을 보여주고 있다. 그들은 단지 바다라는 거대하고 위험한 장소와 맞서서 모험과 유흥을 즐기는 마초가 아니었다.

15~16세기 유럽 대륙에 휩쓸기 시작한 신항로 개척의 영향으로 가난에 허덕이던 유럽의 하층민들은 좀 더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을거라는 믿음 아래 ‘바다’로 눈길을 돌렸다. 그들은 ‘바다’에 가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상업에 종사하는 부유한 상류층들은 하층민의 심리를 이용하여 자신들의 돈벌이를 위한 목적으로 삼으려고 하였다. 상업인들은 항해사 모집 포스터에 "바다 위의 재화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당신들의 모험심을 자극하기 위해서 바다가 손짓하고 있다."라는 식의 허위 광고를 게재하였다.    
 

이런 광고 문구를 보고 돈이 궁한 하층민들 중에 혹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바다라는 미지의 장소를 알지 못했고, 평생 바다라는 곳에 가보지도 못한 하층민들은 망설임 없이 바로 배의 항해사에 모집하였다. 가난한 무직자에서부터 노숙자까지..... 가난하다는 사람들이 모두 모여 항해사가 될려고 하였다. 그들은 바다 위의 힘든 생활보다는 빛나는 금화들을 만지작거릴 수 있다는 기대감에 가득 차 있었다.  

  

'집 나가면 개고생 한다'라는 말이 있다. 항해 경험이 초짜였던 하층민들의 삶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개고생..... 그리고 죽음이었다. 

 

선박 주인들은 여러 명의 하층민 항해사들을 노예 다루듯이 부려 먹었다. 육지에서도 윗 사람 밑에서 노예처럼 일했는데 바다에서도 그 막노동 생활을 하고 있으니 후회가 절로 들었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선박 안에서의 일은 힘든 노동이나 다름 없었다.  그리고 이들은 끝이 보이지 않은 광대한 바다 앞에서 겁에 질려있었다거나 운이 없게도 태풍과 만나면 파도에 휩쓸려 죽기도 하였다.  당시 선박 위생 환경이 열악했던 터라 전염병이 퍼지게 되면 살아남는 사람은 극소수였다. 육지에 있을 때보다 더 열악한 생활을 해야 한 항해사들에게는 하루종일 고통스러운 삶을 사는 것보다는 차라리 죽는 것이 나을지도 모를 것이다.  

 

거지 같은 삶에 지친 일부 항해사들은 좀 더 나은 생활을 위해서 자신이 타고 있던 선박에서 반란을 도모하기 시작한다. 반란에 성공하여 거대 선박 한 척을 차지하게 되면 이들은 바다를 떠돌면서 남의 선박에 침입하여 약탈을 자행하고 마는데.....  

  

그들이 바로 '해적'인 것이다. 약탈을 통해서 재화를 차지한 그들은 드디어 막혔던 삶의 해방 통로를 찾은 것이었다. 이 때부터 해적들이 바다 위를 활개치면서 다니게 되었다. 

 

 

 

 바다 위에 싹을 틔운 공동체 사회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 변할수록 해적도 변하였다. 단순히 약탈을 자행하는 바다의 도둑에서 벗어나 바다 위에 새로운 사회를 만드는 개척자가 되었던 것이다.

해적은 일반 선박과 달리 노동 강도가 적으며 방식도 다르며 앞에서 언급한 항해사의 삶과 비교하면 해적은 귀족이었다. 그래서 일반 항해사들 중에서도 해적단으로 들어가는 일은 그 당시로서는 그렇게 특별하지 않은 모습이다. 그러나 만화 원피스에 등장하는 나미처럼 돈만 밝히고 자기 이익을 채우려는 해적 일원이 꼭 한 명이 있기 마련이다. 해적단에 이런 일원이 한 사람이 있게 된다면 그 해적단 내에서 분쟁과 반란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해적들은 해적단 내에서의 반란을 방지하기 위해서 자신들의 법을 만들게 된다.  

 

  

  1. 모든 승무원은 현안에 대해 동등한 표결권을 가진다. 어느 때든 노획한 식료품과  

    주류에 대해 동등한 권리를 가지며, 공동선을 위해 절약하기로 결정한 경우를  

    빼고는 그것들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다. 

  2. (전략) 동료의 보석이나 돈을 한 푼이라도 사취하면 무인도에 내버린다. 
    동료의 것을 훔치면 코와 귀를 자르고, ‘사는 게 고생스러울 것이 확실한’  

    해변에 하선시킨다. 

  3. 주사위든 카드놀이든 돈을 가지고 도박을 해서는 안 된다.

  6. 소년이나 여자를 배에 데려와서는 안 된다. 여성을 유혹하여 배에 데려온 것이  

     발각되면 사형에 처해진다.

  8. 배 안에서는 서로 때려서는 안 되며, 언쟁이 있을 경우 육지에 내려서 칼이나  

     권총으로 결정한다.  

  9. 각자 1천 파운드의 저축금을 채울 때까지 현재 삶의 방식을 계속해야 하고,
    (중략) 근무 중에 불구가 된 사람은 공공 기금에서 800은화를 받고, 부상자들은  

    부상 정도에 따라 배분받는다.

 -「바르솔로뮤 로버츠의 해적 규약」중 일부, 『문명과 바다』에서 재인용 - 
 


해적 규약 내용을 살펴보면 우리가 생각했던 해적의 생활과 다르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해적들이 이 규약을 확실히 지켰을런지 알 수는 없지만, 해적 생활 내부에도 공동체적인 사회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약탈한 재물에 대해 동등한 소유의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점과 동료의 재물을 탐하는 자에게는 처벌을 내린다는 규정은 이채롭기만 하다. 평등을 강조하는 민주주의와 법으로 일원을 다스리는 법치주의를 엿볼 수가 있다. 그리고 오늘날의 상해보험 제도와 유사한 제도가 있다는 것도 눈길을 끈다. 해적들은 단순히 배를 타면서 바다 위를 떠도는 깡패가 아닌 나름 민주주의적 원리를 갖추고 있는 바다 위의 사회 집단인 것이다. 

    

  

 

 

 해적에 대한 선입견을 깨뜨리다  

 

쓸데없는 상상이지만 자유분방한 분위기의 밀짚모자 해적단원들에게도 이 법을 적용한다면..... 

루피와 그의 일행들이 배 위에서 다투기도 하는데 규약 제6조에 의거하면 육지에서 싸워야한다.

상디의 잔소리에도 불구하고 부족한 식량을 축내는 루피는 규약 제1조 식료품 평등권 소유에  

위배됨으로 처벌 받아야 한다. 

 

만화, 영화에서 비춰지는 해적의 모습은 실제 해적의 모습과 다르지만 해적이 모두 다 나쁜 것은 아니다. 이례적이지만 17세기 엘리자베스 1세(1558~1613) 치하 때 드레이크(1545?~1596)라는 선장이 당시 무적함대 스페인과의 전쟁에서 큰 공을 세우는데, 그 공로로 '경'이라는 칭호까지 부여받는다. 그러나 과거에 그는 스페인 선박을 위주로 해적 활동을 하였다. 말하자면 나라를 위해 활동한 애국심이 있는 해적인 셈이다. 국가간 대립이 잦았던 옛날 유럽에는 드레이크 이외에도 적국 선박을 노려 약탈을 자행하는 해적들이 활동하였다. 

 

지금도 아프리카에도 해적들이 활동하고 있다. 예전에 우리나라 선박이 소말리아 해적단에게 잡혀 곤혹을 치른 적이 있었다. 이들은 원래 약탈 목적으로 활동했지만 최근에는 자국의 내전 상황에도 개입하고 있다. 소말리아 정부는 점점 더 커져만 가는 자국의 극 이슬람 무장세력들을 막기 위해서 해적과 손을 잡았다. 소말리아 해적의 군사력이 자국의 군사력보다 막강하기 때문이다. 세계 해적 소탕 작전을 주창한 UN으로서는 골치 아픈 일이다.  

 

세계와 소말리아 정세에 대해서 깊이 아는 게 없지만 요즘 악의 집단으로 변모하는 해적들의 모습과 뉴스를 접하게 되면 어렸을 때의 동경하던 해적은 그냥 어린 시절에만 가능했던 순수한 동경이라는 생각에 서글퍼지기만 하다.   

 

"나는 해적왕이 될꺼야!" 라고 외치면서 일반 사람들의 평범함을 뛰어넘는 4차원적인 성격이면서도 남을 위해 올바른 일을 하고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루피와 같은 유쾌한 해적.....  

 

이제는 만화 속에서만 볼 수 있는 상상 속의 해적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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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0-10-09 1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적들의 도덕률이 있었군요.
동아시아의 해적에 대해 저술하려면 아무래도 일본해적들...왜구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겠는데...왜구에는 중국인,동남아인까지 참가해서 다국적이었다고 하더군요.우리나라 제주도 사람들도 있었다고 하는데요.

cyrus 2010-10-09 17:43   좋아요 0 | URL
이 책에도 우리나라와 관련된 해양사가 언급됩니다.
왜구는 물론이고 우리나라에 최초로 들어온 외국인 하멜의 이야기까지요.
하지만 저자가 서울대 서양사학 전공이다보니
우리나라 해양사의 비중을 크게 다루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해적 이야기도 서양의 이야기만 되어 있기도 하구요.
갑자기 동양의 해적에 관해서 설명한 역사책이 출간되어 있는지
궁금하네요^^

노이에자이트 2010-10-10 14:24   좋아요 0 | URL
진순신 <중국사> 명나라 편에 동아시아 해적 이야기가 있더군요.드레이크 처럼 조정에 큰 영향을 끼친 해적도 있더라구요.

cyrus 2010-10-10 15: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국 해적 중에도 영국의 드레이크 견줄만한 인물이 있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좋은 정보의 댓글을 남겨주신 노이에자이트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