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31 | 32 | 33 | 34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문학으로 역사 읽기, 역사로 문학 읽기
주경철 지음 / 사계절 / 2009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Prologue  

이 책, 너무나 읽고 싶었다. 동네 도서관에 소장되지 않아서 다른 도서관에 찾아가서 대출하였다. 문학과 역사의 만남이라는 주제도 흥미로웠고 대중들을 위해 서양사에 관한 책을 쓰는 저자 주경철 교수도 내가 선호하는 지식인들중의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얇은 분량이라는 점에서 약간 아쉬웠지만 저자가 소개하고 있는 문학작품들이 사람들에게 많이 읽혀지고 있는 친숙한 작품에다가 전문적인 내용을 쉽게 풀어내는 저자의 필력은 마음에 들었다. 예전에 저자의 이름을 대중에게 알리게 된 <대항해 시대>를 읽다가 포기했던 적을 감안하면(책 분량이 600페이지를 넘는다) 이 정도로 만족하는 것으로 감지덕지해야만 했다. 

그런데, 차례를 훑어보고 나서 무척 난감하였다. 책을 읽기 전에 책의 차례를 먼저 확인하고 읽어봤어야 했었다. 저자가 소개하는 문학작품들 대부분 내가 아직 읽어보지 못한 것들이었기 때문이었다. 간략한 줄거리 정도는 기본으로 습득하고 있지만, 원전의 내용을 읽어보지 못한 상태에서 저자의 분석을 읽기에는 찜찜한 구석이 들기도 했다. 그나마 원전으로 읽어본 작품이라면 최근에 읽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보물섬>과 페로의 동화 <푸른 수염>, 그리고 <아라비안 나이트> 뿐이었다. 그리고 아주 예전, 어렸을 때 읽어본 작품에는 고작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 그리고 <이솝 우화집>이었다. 과거 평소에 문학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 나의 문제적 독서 습관의 폐해를 상기시켜 주었다.  

결국에는 모든 책의 내용들을 읽고 말았다. 흥미로운 내용들이 많았지만 아직 읽어보지 못했던 작품들의 줄거리를 미리 알게 되어버렸다. 읽는 내내 왠지 대놓고 스포일러에게 당한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고 그냥 책을 쓰기만 한 저자를 스포일러라고마냥 비판할 수도 없고, , ,  이번 독서는 그냥 아무렇지 않은듯 쿨하게 읽고 넘어가야만 했다. 

  

 루이스 스티븐슨의 모순

사실, 이 책의 내용들 중에서 예전에 읽었던 작품들에 대한 내용에 더 눈길을 갈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내가 읽으면서 느꼈던 생각들과 어느 정도 일치한 것도 있었으며 열린책들에서 나온 <보물섬>에서 소개하고 있는 역자 후기 내용과 비슷한 것도 있었다.  특히, 스티븐슨의 <보물섬>에 관한 내용을 읽었을 때는 며칠 전에 읽었던 작품의 내용이 머릿속으로 그려졌다. 그리고 이 작품과 관련된 내용에는 서양사적 키워드인 '해적' , '제국주의' 가 언급되어 예전에 읽었던 역시 주경철 교수가 쓴 <문명과 바다>라는 책도 떠올랐다. 진작에 같이 읽었으면 참 좋았을 것 같다는 후회가 들기도 했다. 내용은 다르지만 내용을 다루고 있는 주제들이 서로 연관성 있는 책들을 동시에 읽는 것은 보다 입체적인 독서를 할 수 있고, 내용들을 쉽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스티븐슨이 <보물섬>을 집필하면서 말하고자하는 주제와 작품 전개가 서로 모순이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보물섬>에는 재화에 대한 인간의 끝없는 탐욕의 위험성을 말해주고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보물섬>에서 선한 캐릭터로 등장하는 주인공 짐 호킨스와 리브지 선생, 그리고 히스파니올라 호에 승선하는 인물들도 악한 캐릭터로 대비되는 롱 존 실버와 그 밖의 해적들처럼 플린트 선장이 숨겨놓은 보물을 찾기 위해서 위험한 모험을 하게 된다.  그리고 보물을 획득한 호킨스 일행은 자신들의 목숨을 위협하였던 해적들에게는 한 푼 어치도 주지 않는다.

그러면, <보물섬>의 주인공 짐 호킨스의 행동은 작가가 말하고자하는 주제와 동떨어지게 된 셈이다. 짐 호킨스가 보물을 찾아나선 것도 본질적으로는 재화에 대한 욕심이 있어서 가능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어린이들부터 어른들까지 대부분 이 작품을 읽고 나면 보물을 찾기 위해서 히스파니올라 호에 위장잠입하여 반란을 일으킨 롱 존 실버는 나쁜 인물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짐 호킨스는 악의 간계에서 벗어난 의로운 소년이라고 인식한다.  

  

 

  의로운 해적, 프랜시스 드레이크  

저자는 <보물섬>을 쓴 스티븐슨의 이 애매모호한 모순이 생기는 이유와  이 소설을 읽은 독자들이 '짐 호킨스-롱 존 실버' 로 대립되는 구도로 인식하게 되는 결정적인 이유를 '국가' 라는 기준이라고 말하고 있다. 국가를 위해서 폭력을 행사하면 의로운 인물이 되고, 국가의 공적인 활동에 반하여 폭력을 행사하면 해적, 불한당이 되는 것이다.   

작품 속, 짐 호킨스 일행에 대한 묘사는 본 독자들에게 조국을 위해서 목숨을 바쳐 보물을 찾으려는 선한 인물로 비춰지기 쉽도록 하는 효과를 주고 있다.

   
 

" 선장, 이 집은 배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소. 놈들이 겨냥하는 것은 저 국기임에 틀림없소. 저걸 거두는 게 낫지 않겠소? "   " 내 국기를 내리라뇨! " 선장이 소리쳤다.  " 안 됩니다. 그렇게는 못 합니다. "  

  - 스티븐슨 <보물섬> 중에서, 주경철의 책 p 147 -

 
   

반란을 일으킨 실버 일행들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면서까지 히스파니올라 호의 스몰렛 선장은 조국의 국기를 내리는 행위는 적들에게 굴복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고 있다.   

스티븐슨이 주경철 교수의 분석대로 자신의 소설을 국가라는 기준으로 상반되는 구도를 착안했는지 확인할 바가 없지만, 역사적 사료에서는 저자의 주장을 설득력있게 뒷받침해주고 있다. 16세기 엘리자베스 여왕이 통치하던 영국은 '절대 해가 지지 않는' 이라는 수식어가 붙일 정도로 유럽 대륙에서 막강한 국력을 떨치게 되었다. 영국이 강대국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원동력에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훌륭한 통치력도 있었지만, 프랜시스 드레이크의 공도 무시할 수 없다.  

프랜시스 드레이크는  영국의 대표적인 해적으로 이름을 날렸다. 특히 그 당시 영국과 양강 대립국인 스페인의 무역선들을 노렸다.  그래서 스페인으로서는 드레이크라는 해적 선장, 그보다 더 영국이라는 나라를 껄끄럽게 보였을 것이다. 결국, 두 나라는 유럽 대륙에서의 강대국을 결정지을 치열한 전쟁을 치르게 되었는데, 드레이크의 활약으로 영국은 스페인을 대파하면서 이전에 유럽 강대국이었던 스페인을 밀어제치고 당당히 신흥 강국으로 급부상하게 되었다. 국가를 위한 대활약을 펼친 드레이크는 엘리자베스 여왕으로부터 '경' 의 칭호를 받게 되는 영광까지 얻게 된다. 지금도 드레이크는 해적 선장에서 영국의 바다 영웅으로  스타덤에 오르게 되는 인물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  

  

 

  자본주의와 무력 

살육과 비인간적인 폭력을 일으켰을지더라도 국가에 올바른 일을 하냐 안 하냐에 따라서 그 인물의 행적이 평가되는 것이 역사의 특징이다. 비단 드레이크 선장뿐만 아니라 역사 속에서도 엇갈린 평가를 받는 인물이 한 명 더 있다. 바로 인류 최초 세계일주 항해를 한 페르디난드 마젤란이다.마젤란과 같은 항해가들이 활동했던 신항로 시대에는 강대국들이 자행한 살육의 역사가 있기에 가능했다.  3월 6일은 마젤란이 괌에 상륙하는 역사적인 날이다. 그래서 이 날이 되면 스페인에서는 해마다 마젤란의 업적을 기념하기도 하며 괌에는 마젤란 상륙 기념비가 새워져 있다. 하지만 그 기념적인 사건 뒤에는 괌에 살고 있는 원주민들을 무참하게 살해한, 어두운 기록이 있다. 그리고 맨 처음 괌에 상륙할 당시, 마젤란은 이 섬을 라드론(Ladron)이라고 명칭을 붙여줬다. Ladron은 스페인어로 '도둑' 이라는 의미이다. 당시 괌 원주민들이 마젤란이 타고 있던 배에 침입하여 물건을 훔쳐갔기 때문이었다.  원주민들 입장에서는 마젤란 일행들이 낯선 존재로 보였을 것이다. 그러다보니 이방인에 대한 호기심과 두려움이 교차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래서 마젤란 일행의 배에 물건들을 훔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마젤란은 괌에서만 자란 원주민들이 도리어 자신들을 위협하는 존재로 인식했다. 그러니 그 곳 원주민들을 잔인하게 죽이는 자행을 한 것이다.  

신항로 개척 시대의 항해가들, 그리고 해적들. 두 바다 위의 모험가들에 대한 역사적인 평가는 엇갈려져 있지만, 이들 활동의 근본에는 자본주의라는 뿌리가 연결되어 있다. 세계 일주를 한 마젤란이나 남의 배에 침입하여 약탈을 행하는 해적들이나, 다 돈을 벌기 위해서 바다 위를 떠도는 것이다. 그리고 그 돈을 벌기 위해서는 무력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무시할 수 없었다.   

지금도 해적은 사라지지 않았다. 최근에 소말리아 해적들에게 피랍당한지 217일 만에 석방된 삼호 드림호의 사건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자본주의와 무력의 관계는 필수불가결이다. 이번에 피랍된 시기가 역대 최장 기간이었으며 석방되는 조건으로 해적들이 요구한 가격도 역대 최고가로 기록되었다.  해적들이 어마어마한 액수를 요구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배후에 해적들과 손을 잡은 외국 브로커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자본을 얻기 위해서 세상은 가면 갈수록 영악해지고 있는만큼 이번 사건은 단순 해적에게 피랍당한 사례로 봐서는 안 된다. 점점 더 영악해진 자본주의 세상을 이해를 해야만 이번 일과 같은 국가 이미지에 해가 되는 불미스러운 일을 겪지 않을 것이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이조부 2010-11-13 0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경철은 자기 분야에서 제 몫을 분명히 하는 학자라고 생각합니다.

위의 책은 접하지 못했지만, 예전 작품인 테이레시아스의 역사를 읽고

감탄했던 기억이 납니다. 고은 강연을 대학시절 접했는데 그 할아버지도

주경철 칭찬하던게 생각나요.

주경철 도 분명히 실력있는 학자이지만, 연세대학에 있는 김명섭 도

지지 않습니다. 시간이 허락되면 한길사에 나온 <대서양 문명사>를 권합니다.

조선일보를 통해서 1주일에 한 번씩 손바닥칼럼 주경철의 글을 50회 이상

스크랩 했는데, 별 시덥지 않은 이야기를 주로 해서 뭥미 싶더군요.

칭찬을 앞에서 쫘악 해놓고, 뒤통수 치는것 같은데 주경철이 조선일보에 기고하는게

참 거시기 하긴 해요 쩝

cyrus 2010-11-13 21:03   좋아요 0 | URL
매주 토요일마다 중앙일보에도 기고합니다. 중앙일보에는 경제와 관련된
서양사에 대한 칼럼입니다. 제가 서양사에 좀 관심이 많은 편인데
이와 관련된 좋은 책 추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이조부 2010-11-13 2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학에서 국제관계학을 공부했는데도 저는 서양사를 몰라요 ㅋㅋ


진지하게 공부하는게 아니라 가벼운 마음으로 심심할때 보기 좋은 만화책이

있어요. 굽시니스트 작 제2세계대전 이라고요~ 2권짜리 책인데 얼마 전에

함께 공부하던 동생들한테 그 책을 선물했는데 두 녀석 다 이건 뭥미 하더군요 ㅋ

전쟁쪽으로 관심이 있고, 만화라는 장르를 좋아하면 추천 ㅎㅎ
 
문명과 바다 - 바다에서 만들어진 근대
주경철 지음 / 산처럼 / 2009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유년 시절의 로망, 해적  


 


내가 아주 어렸을 때 K 방송국에서 하던 그 만화 피터팬,  

알고 보니깐 그 유명한 미국의 20세기 폭스사에서 제작한 것이었다.  

혹시나 해서 찾아봤는데 사진이 있었다. 

험상궂게 생긴 저 후크와, 그리고 이 작품에서는 꽁지머리로 묶고 다닌 피터팬과  

조그만 팅커벨.....  나에게는 디즈니의 피터 팬보다 이 피터 팬이 더 친숙하게 느껴진다.

사진을 보고나니 점점 잊혀지고 있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올린다....ㅠㅠ  


  
영화 <후크> 포스터, 이 영화도 꽤 재미있게 봤었다.     

어렸을 때 처음 봐서는 몰랐는데..... 

어른이 되고 난 뒤에 이 어린이용 영화가 

초호화 감독과 캐스팅이 만들어 낸 작품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피터 팬 역: 로빈 윌리엄스, 팅커벨 역: 줄리아 로버츠, 후크: 더스틴 호프만. 

 .....  감독은.....    스티븐 스필버그 ㅎㄷㄷ)

 

 
오다 에이치로 작 <원피스>
  

속세에 때 묻지 않았던 순진무구한 어린 시절에 해적을 동경하는 상상을 하곤 했었다.  
이제 막 애기 티를 벗고 난 뒤였을까.....?     

기억은 잘 나지는 않지만 K 방송국에서 만화 '피터 팬'을 본 적이 있다.  

그 때가 너무 오래 되어서 내용은 잘 기억은 안 나지만 항상 마지막에는 우리 착한 주인공 피터 팬그 특유의 웃음과 포즈는 기억이 난다. 그러나 피터 팬의 앙숙 후크 선장에 대한 기억이 더 남는다. 잔혹하고 악한 후크의 냉혈한 심장에는 예전의 순했던 성격과 악한 성격을 가지게 된 아픈 과거의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커다란 배와 수십 명의 부하들을 거느리는 후크 선장의 위풍당당한 모습이 부럽기도 하였다. 어린 남자 아이들의 마음에도 은연히 남성다운 남성이라는 본성이 있었는가 보다.  

그리고 사춘기에 들어서도 해적과 관련된 이야기는 나의 마음을 자극하게 만들었다.  

중학교 때 쯤에는 일본에서 만든 만화 <원피스>가 유행하고 있었다. 주인공 루피가 해적왕이 되기 위해서 동료들과 거친 바다를 모험한다는 해적 판타지 액션 모험 로망 만화(?)였다. 1권부터 초창기 시리즈의 이야기가 참 재미있었는데.....  군대 갔다오고 다시 읽으려니깐 이미 시리즈는 50권이나 넘어섰으니 다시 읽을 수도 없고..... 이야기는 가면 갈수록 안드로메다로 향하고 있고..... 

어쨌든 나에게 해적이란 캐릭터는 남을 잔인하게 죽이고, 보물을 약탈하는 악한이면서도
광대한 바닷가를 떠돌며 모험을 즐기줄 아는 마초라고 생각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해적의 탄생  

주경철 교수의 『문명과 바다』에는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해적의 모습이 아닌 다양한 역사적 사료들에서 찾아 낸 새로운 얼굴의 해적을 보여주고 있다. 그들은 단지 바다라는 거대하고 위험한 장소와 맞서서 모험과 유흥을 즐기는 마초가 아니었다.

15~16세기 유럽 대륙에 휩쓸기 시작한 신항로 개척의 영향으로 가난에 허덕이던 유럽의 하층민들은 좀 더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을거라는 믿음 아래 ‘바다’로 눈길을 돌렸다. 그들은 ‘바다’에 가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상업에 종사하는 부유한 상류층들은 하층민의 심리를 이용하여 자신들의 돈벌이를 위한 목적으로 삼으려고 하였다. 상업인들은 항해사 모집 포스터에 "바다 위의 재화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당신들의 모험심을 자극하기 위해서 바다가 손짓하고 있다."라는 식의 허위 광고를 게재하였다.    
 

이런 광고 문구를 보고 돈이 궁한 하층민들 중에 혹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바다라는 미지의 장소를 알지 못했고, 평생 바다라는 곳에 가보지도 못한 하층민들은 망설임 없이 바로 배의 항해사에 모집하였다. 가난한 무직자에서부터 노숙자까지..... 가난하다는 사람들이 모두 모여 항해사가 될려고 하였다. 그들은 바다 위의 힘든 생활보다는 빛나는 금화들을 만지작거릴 수 있다는 기대감에 가득 차 있었다.  

  

'집 나가면 개고생 한다'라는 말이 있다. 항해 경험이 초짜였던 하층민들의 삶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개고생..... 그리고 죽음이었다. 

 

선박 주인들은 여러 명의 하층민 항해사들을 노예 다루듯이 부려 먹었다. 육지에서도 윗 사람 밑에서 노예처럼 일했는데 바다에서도 그 막노동 생활을 하고 있으니 후회가 절로 들었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선박 안에서의 일은 힘든 노동이나 다름 없었다.  그리고 이들은 끝이 보이지 않은 광대한 바다 앞에서 겁에 질려있었다거나 운이 없게도 태풍과 만나면 파도에 휩쓸려 죽기도 하였다.  당시 선박 위생 환경이 열악했던 터라 전염병이 퍼지게 되면 살아남는 사람은 극소수였다. 육지에 있을 때보다 더 열악한 생활을 해야 한 항해사들에게는 하루종일 고통스러운 삶을 사는 것보다는 차라리 죽는 것이 나을지도 모를 것이다.  

 

거지 같은 삶에 지친 일부 항해사들은 좀 더 나은 생활을 위해서 자신이 타고 있던 선박에서 반란을 도모하기 시작한다. 반란에 성공하여 거대 선박 한 척을 차지하게 되면 이들은 바다를 떠돌면서 남의 선박에 침입하여 약탈을 자행하고 마는데.....  

  

그들이 바로 '해적'인 것이다. 약탈을 통해서 재화를 차지한 그들은 드디어 막혔던 삶의 해방 통로를 찾은 것이었다. 이 때부터 해적들이 바다 위를 활개치면서 다니게 되었다. 

 

 

 

 바다 위에 싹을 틔운 공동체 사회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 변할수록 해적도 변하였다. 단순히 약탈을 자행하는 바다의 도둑에서 벗어나 바다 위에 새로운 사회를 만드는 개척자가 되었던 것이다.

해적은 일반 선박과 달리 노동 강도가 적으며 방식도 다르며 앞에서 언급한 항해사의 삶과 비교하면 해적은 귀족이었다. 그래서 일반 항해사들 중에서도 해적단으로 들어가는 일은 그 당시로서는 그렇게 특별하지 않은 모습이다. 그러나 만화 원피스에 등장하는 나미처럼 돈만 밝히고 자기 이익을 채우려는 해적 일원이 꼭 한 명이 있기 마련이다. 해적단에 이런 일원이 한 사람이 있게 된다면 그 해적단 내에서 분쟁과 반란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해적들은 해적단 내에서의 반란을 방지하기 위해서 자신들의 법을 만들게 된다.  

 

  

  1. 모든 승무원은 현안에 대해 동등한 표결권을 가진다. 어느 때든 노획한 식료품과  

    주류에 대해 동등한 권리를 가지며, 공동선을 위해 절약하기로 결정한 경우를  

    빼고는 그것들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다. 

  2. (전략) 동료의 보석이나 돈을 한 푼이라도 사취하면 무인도에 내버린다. 
    동료의 것을 훔치면 코와 귀를 자르고, ‘사는 게 고생스러울 것이 확실한’  

    해변에 하선시킨다. 

  3. 주사위든 카드놀이든 돈을 가지고 도박을 해서는 안 된다.

  6. 소년이나 여자를 배에 데려와서는 안 된다. 여성을 유혹하여 배에 데려온 것이  

     발각되면 사형에 처해진다.

  8. 배 안에서는 서로 때려서는 안 되며, 언쟁이 있을 경우 육지에 내려서 칼이나  

     권총으로 결정한다.  

  9. 각자 1천 파운드의 저축금을 채울 때까지 현재 삶의 방식을 계속해야 하고,
    (중략) 근무 중에 불구가 된 사람은 공공 기금에서 800은화를 받고, 부상자들은  

    부상 정도에 따라 배분받는다.

 -「바르솔로뮤 로버츠의 해적 규약」중 일부, 『문명과 바다』에서 재인용 - 
 


해적 규약 내용을 살펴보면 우리가 생각했던 해적의 생활과 다르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해적들이 이 규약을 확실히 지켰을런지 알 수는 없지만, 해적 생활 내부에도 공동체적인 사회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약탈한 재물에 대해 동등한 소유의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점과 동료의 재물을 탐하는 자에게는 처벌을 내린다는 규정은 이채롭기만 하다. 평등을 강조하는 민주주의와 법으로 일원을 다스리는 법치주의를 엿볼 수가 있다. 그리고 오늘날의 상해보험 제도와 유사한 제도가 있다는 것도 눈길을 끈다. 해적들은 단순히 배를 타면서 바다 위를 떠도는 깡패가 아닌 나름 민주주의적 원리를 갖추고 있는 바다 위의 사회 집단인 것이다. 

    

  

 

 

 해적에 대한 선입견을 깨뜨리다  

 

쓸데없는 상상이지만 자유분방한 분위기의 밀짚모자 해적단원들에게도 이 법을 적용한다면..... 

루피와 그의 일행들이 배 위에서 다투기도 하는데 규약 제6조에 의거하면 육지에서 싸워야한다.

상디의 잔소리에도 불구하고 부족한 식량을 축내는 루피는 규약 제1조 식료품 평등권 소유에  

위배됨으로 처벌 받아야 한다. 

 

만화, 영화에서 비춰지는 해적의 모습은 실제 해적의 모습과 다르지만 해적이 모두 다 나쁜 것은 아니다. 이례적이지만 17세기 엘리자베스 1세(1558~1613) 치하 때 드레이크(1545?~1596)라는 선장이 당시 무적함대 스페인과의 전쟁에서 큰 공을 세우는데, 그 공로로 '경'이라는 칭호까지 부여받는다. 그러나 과거에 그는 스페인 선박을 위주로 해적 활동을 하였다. 말하자면 나라를 위해 활동한 애국심이 있는 해적인 셈이다. 국가간 대립이 잦았던 옛날 유럽에는 드레이크 이외에도 적국 선박을 노려 약탈을 자행하는 해적들이 활동하였다. 

 

지금도 아프리카에도 해적들이 활동하고 있다. 예전에 우리나라 선박이 소말리아 해적단에게 잡혀 곤혹을 치른 적이 있었다. 이들은 원래 약탈 목적으로 활동했지만 최근에는 자국의 내전 상황에도 개입하고 있다. 소말리아 정부는 점점 더 커져만 가는 자국의 극 이슬람 무장세력들을 막기 위해서 해적과 손을 잡았다. 소말리아 해적의 군사력이 자국의 군사력보다 막강하기 때문이다. 세계 해적 소탕 작전을 주창한 UN으로서는 골치 아픈 일이다.  

 

세계와 소말리아 정세에 대해서 깊이 아는 게 없지만 요즘 악의 집단으로 변모하는 해적들의 모습과 뉴스를 접하게 되면 어렸을 때의 동경하던 해적은 그냥 어린 시절에만 가능했던 순수한 동경이라는 생각에 서글퍼지기만 하다.   

 

"나는 해적왕이 될꺼야!" 라고 외치면서 일반 사람들의 평범함을 뛰어넘는 4차원적인 성격이면서도 남을 위해 올바른 일을 하고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루피와 같은 유쾌한 해적.....  

 

이제는 만화 속에서만 볼 수 있는 상상 속의 해적인 것일까?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노이에자이트 2010-10-09 1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적들의 도덕률이 있었군요.
동아시아의 해적에 대해 저술하려면 아무래도 일본해적들...왜구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겠는데...왜구에는 중국인,동남아인까지 참가해서 다국적이었다고 하더군요.우리나라 제주도 사람들도 있었다고 하는데요.

cyrus 2010-10-09 17:43   좋아요 0 | URL
이 책에도 우리나라와 관련된 해양사가 언급됩니다.
왜구는 물론이고 우리나라에 최초로 들어온 외국인 하멜의 이야기까지요.
하지만 저자가 서울대 서양사학 전공이다보니
우리나라 해양사의 비중을 크게 다루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해적 이야기도 서양의 이야기만 되어 있기도 하구요.
갑자기 동양의 해적에 관해서 설명한 역사책이 출간되어 있는지
궁금하네요^^

노이에자이트 2010-10-10 14:24   좋아요 0 | URL
진순신 <중국사> 명나라 편에 동아시아 해적 이야기가 있더군요.드레이크 처럼 조정에 큰 영향을 끼친 해적도 있더라구요.

cyrus 2010-10-10 15: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국 해적 중에도 영국의 드레이크 견줄만한 인물이 있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좋은 정보의 댓글을 남겨주신 노이에자이트님 감사합니다^^
 
조선 풍속사 1 - 조선 사람들, 단원의 그림이 되다 푸른역사 조선 풍속사 1
강명관 지음 / 푸른역사 / 201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막장으로 치닫는 교권의 현실   

2개월 전, 어느 학교의 교사가 거짓말을 했다고 의심이 되는 학생을 발로 가격을 하는 장면이 담은 폭행 수준의 체벌 동영상이 공개되어 사회적으로 물의를 빚었다. 학생에게 폭행을 가한 교사는 '손바닥으로 한번 맞으면 쓰러진다'는 의미로 학생들 사이에서는 ‘오장풍’이란 별명으로 불릴 정도로 체벌을 잘 하는 교사로 알려져 있었다. 이 동영상 한 편으로 인해서 학생 체벌의 필요성에 대한 논란이 제기되었다. 논란을 종식시키기 위해서 이번에 새로 선출된 곽노현 교육감은 서울 내 모든 학교에 체벌을 전면 금지하는 방안을 추진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일회성 체벌로 인해서 해임 처분이 없었던 전례를 뒤엎고 교육청 징계위원은 오장풍 교사를 해임 처리하기로 결정했다. 일회성의 체벌을 이유로 교단을 떠나야 한다는 높은 수준의 징계를 내린 점은 가혹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교사가 피해 학생에게 가한 체벌 수준은 교사로서의 도가 지나친 것이었기에 해임 처리는 당연한 것이었다.  

오장풍 교사 문제는 이렇게 일단락되었지만 교사들의 심각한 체벌 문제는 여기저기서 시한폭탄처럼 한 개씩 폭발하고 있다. 어느 학교의 교장이 학생들의 복장 불량을 검사하는 교사의 행동에 책임을 물어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그 교사에게 엉덩이를 체벌한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그 전에도 발생했던 일이지만 부모가 교사를 폭행하는 사건도 간혹 뉴스에서 접하기도 한다. 이렇듯 교사들 입장에서는 곽 교육감의 체벌 전면 금지 정책을 반기지 않는다. 안 그래도 교권이 추락한 마당에 도리어 교권이 더 약해질까 봐 걱정한다. 심지어 몇 몇 일부의 학생들은 교육감의 정책을 빌미 삼아 교사들의 체벌에 대해 눈 까딱하지 않는다. 오히려 학생들을 체벌하려는 교사들을 이상하게 여긴다. 제자들이 잘 되기 바라는 스승의 마음이 담긴 ‘사랑의 매’는 이제 옛 말이 되어버렸다. 

 

 

 

서당 내 분위기 = 오늘날의 교실 분위기 
 


 

 

 

 

 

 

 

 

 

  

 

 

 

 

이 그림은 누구나 다 아는 김홍도의 [서당]이라는 작품이다. 옛날의 교육기관인 서당에서의 한 장면을 재미있게 그리고 있다. 이 그림을 보게 되면 쉽게 지나칠 수 없는 점은 그림 속 중앙에 배치된 울고 있는 아이의 중심으로 하는 인물들에 대한 뛰어난 묘사이다. 훈장님 앞에서 공부한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는지 종아리를 맞고 난 뒤, 눈물을 훔치고 있고 주위의 학생들은 그 모습을 보고 킥킥거리며 웃고 있다. 그리고 훈장님은 울고 있는 제자를 한심하게 쳐다보고 있다. 학창 시절 때에 되돌아보면 만날 선생님께 자주 꾸중과 체벌을 감수하는 말 안 드는 친구가 교실에 한 명은 꼭 있다. 선생님에게 자주 혼나다보니 주위 친구들은 이제 그 친구가 선생님한테 혼나는 장면만 보게 되면 재미있어 하게 된다. 해를 당하지 않는 자만이 느낄 수 있는 여유라고 해야 되나?  어쨌든 그림 속 서당 안의 모습은 지금의 교실 안의 모습과 분위기가 비슷하다. 
 

재미있게도 스승에게 체벌을 맞는 학생들의 생각도 옛날이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게 없다. 선생님에게 거하게 꾸중을 듣고 난 뒤에 자신을 혼낸 선생님에 대한 미움을 친구들 앞에서 뒷담화를 통해 표출하게 된다. 이런 일은 학창 시절에 다 있어봄직한 일들이지만 어떤 학생은 선생님에 대한 비난의 화살은 부모님에게 까지 고하기에 이른다. 대부분 정상적인 부모님들은 이런 자식을 호되게 꾸짖기 마련이다. 그러나 고슴도치가 제 새끼를 이뻐한다는 말이 있듯이 일명 ‘고슴도치 형 부모’들은 이 일을 가만히 넘어가지 않는다. 자식을 혼냈던 선생님에게 따지기 위해서 학교에까지 찾아와서 한바탕 소란을 일으킨다. 금지옥엽(金枝玉葉) 같은 제 자식이 학교 내에서 불리한 처사를 받았다는 이유로 교사에게 손찌검을 하는 부모들 대부분이 고슴도치 형 부모들이다. 어리석은 고슴도치 부모에 그 고슴도치 새끼이다. 조선 시대에도 그런 학생들이 있었던가 보다. 이덕무는 이런 고슴도치 부모와 아이가 되지 말아야 한다고 경계를 하고 있다.     

 

   스승이 엄하면 모자란 아이놈은 반드시 싫어하고 괴로워하여 자기 부형에게 이렇게  

  말한다.
  “제 선생님은 잘 못 가르칩니다.”  

  그리고는 스승을 배반하고 물렁하고 속된 사람을 선생으로 삼아 따르니, 부형이 된  

  사람은 반드시 그 간사한 거짓말을 속속들이 살펴 호되게 꾸짖는 것이 옳다.

  - 이덕무 <사소절>중에서, 『조선풍속사 1』강명관, p 273~274 -   
 

 

 

입신양명(立身揚名)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출구, 서당  


요즘 학교 수업은 어떻게 진행되는지 모르겠지만 필자가 학생이었을 때에는 대부분 선생님들의 강의는 일명 주입식 교육이었다. 분필가루들이 심하게 흩날릴 정도로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할 내용들을 칠판 한 가득 안에 써놓고 쭉 설명을 한다거나 어떤 선생님은 수업 시간 50분 동안 내내 스탠딩 코미디언 뺨치는 입담으로 학생들에게 설명하기도 한다. 이렇다보니 평소에 학습이 저조한 학생들은 그 날 배운 내용들을 바로 이해하지 못하는 단점이 있다. 그러나 30여 명의 학생들을 위해서 목 쉬어가면서 하루 종일 서서 가르치는 선생님들의 열정과 수고는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서당에서 학습 분위기도 주입식 교육 방식과 유사하다. 훈장님이 <천자문>과 같은 한문 책 속의 구절을 학생들 앞에서 암송하면 학생들은 그 구절을 따라 읽고 외우게 된다. 시험 치는 방식도 비슷하다. 교과서 속 중요한 내용을 잘 암기하여 주관식 문제를 풀듯이 조선 시대의 시험 방식도 훈장님 앞에서 배웠던 구절들을 암송해야 하고, 답안지에 풀이를 작성해야 했다.   

 

조선 시대 서당의 주입식 교육도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 당시에는 지위 상승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한문 텍스트의 독해 및 작문 능력이 필수적이었다. 유교의 경전들만 제대로 이해하고 있으면 눈 앞에 벼슬길이 훤하였다. 그래서 서당은 과거에 응시하기를 원하는 지방 사람들에게는 입신양명할 수 있는 유일한 교육 공간이었다.  박세채가 쓴 <남계서당학규>라는 문헌에서는 서당 내에서 유교를 기본으로 하는 성리학 이외의 학문을 공부해서는 안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성리학 이외의 학문은 도가 사상이나 불교를 포함하고 있다. 오직 과거에서 벼슬을 하기 위해서는 성리학만 잘 이해하고 있으면 되었다.    

 

수험생들이 보다 유리한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서 수능 시험에서 수리와 외국어 영역의 비중을 늘게 하고 탐구 영역을 축소화시키는 최근의 교육 정책과 비교하면 지금과 같은 특정 과목에 편향하는 그릇된 교육 시스템이 옛날부터 이어져오고 있었던 셈이다. 자신의 제자들이 좋은 대학을 보내고 싶은게 선생님의 마음이다. 그래서 제자들이 공부해야할 내용들을 충실히 가르치기 위해서 노력한다. 선생님들 중에서 그럴 분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되지만 제자들에게 단지 대학을 가기 위해서 편향된 학습을 유도하는 것은 도리어 제자들의 정신적 성장을 막는 것이다. 학생들에게 공부의 즐거움을 깨닫게 해주고 올바른 학습 성취로 대학에 진학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선생님의 역할이다.  

 


호랑이 선생님, 누룽지 선생님 그리고 훈장님

28년 전에 <호랑이 선생님>이라는 드라마가 방영했었다. ‘호랑이 선생님’이라고 불리는 허봉수라는 교사와 초등학교 5학년 5반 학생들 간의 학교생활을 그린 우리나라 최초 학교를 주재로 한 어린이들을 위한 드라마이다. 필자가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 방영했던 터라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그 당시로서는 신선한 드라마였고 5년 동안 방영할 정도로 꽤 인기가 있었던 걸로 알고 있다. 허봉수는 ‘호랑이 선생님’이라는 별명답게 제자들 앞에서는 엄격한 모습을 보여주지만 속마음은 자식처럼 제자들을 사랑하는 마음씨 따뜻한 교사로 등장한다.

<호랑이 선생님>이 방영된 지 16년 뒤에는 역시 학교의 교사와 제자 간의 이야기를 포맷으로 한 <누룽지 선생과 감자 일곱 개>라는 드라마가 방영되었다. 이 드라마를 본 지 세월이 꽤 지나서 기억은 가물가물하지만 7명밖에 없는 어느 시골 마을의 분교에 서울에서 온 선생님(유동근 분)이 새로 부임하여 그 곳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푸근한 인상의 노총각 교사로 분한 유동근 씨의 연기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마음씨 착한 선생님과 선생님의 말을 고분고분히 따르면서 성장하는 학생들. 비록 드라마 속 이야기이지만 지금의 막장 교실 분위기와 비교하면 옛날에는 제자가 선생님에게 대든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 때 그 시절의 교실은 선생님과 제자들 간의 정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의 부제는 ‘조선 사람들, 단원의 그림이 되다.’이다. 조선 시대의 생활상들은 이제 단원이 남긴 그림으로만 확인할 수 있다. 단원의 <서당> 속 학습 능력이 부진하고 마음이 여린 제자를 보면서 찡그리고 있는 훈장님의 표정 뒤에는 어떻게 하면 올바른 아이로 만들 것인지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단지 제자가 학습 부진아라고 해서 그를 미워해서 꾸중하는 것이 아니다. 다 잘 되라고 훈계하는 것이다. 단원의 그림을 보면서 그림 속 훈장님, 그리고 엄격한 호랑이에다가 마음씨가 착한 누룽지 같은 선생님이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집가고 장가가고 송기호 교수의 우리 역사 읽기 2
송기호 지음 /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 201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두 번 죽는 조선의 신부들 
   
신부는 초록 저고리 다홍 치마로 겨우 귀밑머리만 풀리운 채 신랑하고 첫날밤을 아직 앉아 있었는데, 신랑이 그만 오줌이 급해져서 냉큼 일어나 달려가는 바람에 옷자락이 문 돌쩌귀에 걸었습니다. 그것을 신랑은 생각이 또 급해서 제 신부가 음탕해서 그 새를 못 참아서 뒤에서 손으로 잡아당기는 거라고, 그렇게만 알고 뒤도 안 돌아보고 나가 버렸습니다. 문 돌쩌귀에 걸린 옷자락이 찢어진 채로 오줌 누곤 못 쓰겠다며 달아나 버렸습니다. 
 그러고 나서 40년인가 50년이 지나간 뒤에 뜻밖에 딴 볼일이 생겨 이 신부네 집 옆을 지나가다가 그래도 잠시 궁금해서 신부방 문을 열고 들여다보니 신보는 귀밑머리만 풀린 첫날밤 모양 그대로 초록 저고리 다홍 치마로 아직도 고스란히 앉아 있었습니다. 안쓰러운 생각이 들어 그 어깨를 가서 어루만지니 그때서야 매운 재가 되어 폭삭 내려앉아 버렸습니다. 초록 재와 다홍 재로 내려앉아 버렸습니다. 

                                            - 서정주 [신부] 원문,『미당 시전집 1』민음사 - 
 

이 시는 신랑이 옷자락이 돌쩌귀에 걸린 것을 신부가 음탕해서 잡아당기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달아나버리는데, 40~50년이 경과한 뒤, 신부가 고스란히 제 모습대로 앉아 ‘매운 재’가 되어 버렸다는 민중 설화를 모티프로 하고 있다. 신부의 죽음은 일부종사(一夫從事)하는 열녀(烈女)로서의 매서운 신념을 암시하면서, 유교적 이념의 정신세계를 나타낸다. 그리고 ‘초록 재’, '다홍 재‘는 그 현세적 가치를 뛰어넘어 영원한 아름다움으로 승화되고 있다.

시가 설화적인 내용이다 보니 신부의 죽음이 비현실적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신부가 재가 되기 전까지 평생 기다리는 일련의 과정은 조선 시대의 여성의 모습이라서 낯설지가 않다. 조선 시대의 여성들에게 결혼은 단지 가문의 대를 잇기 위한 필수적인 예식이다. 결혼을 거부할 수 있는 선택권도 가지고 있지 않았으며 신랑이 누군지도 모른 채 원치 않는 결혼을 해야만 했다. 결혼식이 끝난 뒤, 얼굴을 모르는 신랑이 올 때까지 사랑방에 기다린다. 간혹 사극을 보면 신랑이 신부의 얼굴이 못 생긴 것을 알고, 합방을 거부하고 줄행랑 치고 마는 에피소드가 있다. 실제로 이런 일이 있었는지 알 길은 없지만, 신부가 마음에 안 든다거나, 대를 이을 아들을 낳지 못하면 신랑은 씨받이라는 명목으로 첩을 두는 것을 인정하는 사회이니 만큼 남성 중심주의의 조선 사회에서는 도망가는 신랑이 비일비재했을 것이다. 이런 상황을 처한 신부로서는 어쩔 수 없이 평생 시집살이의 서러움 속에서 살다가 생을 마감했다.  

미당은 자신의 시에서 신부의 비극적 죽음을 정절이라는 이름으로 미화하고 있고, 평생 자신을 기다리다가 죽은 신부에 대한 신랑의 미안함도 드러나 있지 않다. 여성들에게 정절을 강조했던 남성 중심적이며 폐쇄적인 유교 사상의 뉘앙스가 풍기고 있다. 자신들에게 부당했을 유교 사회를 원망하면서 죽었을 조선 여인들에게, 미당은 이들의 죽음을 유교 사회에 걸맞은 숭고한 죽음으로 포장함으로써 조선의 신부들을 두 번 죽이고 말았다.        

 

 

위기의 조선의 주부들   

조선 사회에는 여성들에게 삼종칠거(三從七去)를 강조하였다. 시집 가기 전에는 아버지에게, 시집 가서는 남편에게, 남편이 죽으면 아들에게 복종한다고 했다(삼종). 그리고 시부모에게 순종하지 않는 것, 아들을 못 낳는 것, 음란한 것, 질투하는 것, 나쁜 병이 있는 것, 말이 많은 것, 남의 물건을 훔치게 되면 버림받는다고 했다(칠거). 삼종칠거 중에서 여성들이 갖춰야 할 유교적 소양은 남편에 대한 복종이다. 결국에는 남성의 지위를 정립해주고 있는, 남성들을 위한 사상인 셈이다. 여성들은 남편이 죽으면 개가를 할 수 없었으며 한 남편을 향한 수절을 죽을 때까지 지켜야 했다. 나라에 전란이 일어나면 남편이 죽으면 조선의 부인도 따라 죽었다. 심지어 남편과 아들을 살리기 위해서 부인이 먼저 목숨을 바치기도 했다. 지금으로서는 여성들의 이런 행동이 극단적으로 보이지만, 당시 사회로서는 당연한 일이었으며 전란에 억울하게 희생당한 여성들은 열녀로 추앙받았다. 

지금은 남편이 죽고 홀로 남은 여자를 미망인(未亡人)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조선 시대에서 부르는 미망인은 지금의 뜻과 차이가 있다. 원래는 남편 따라 죽지 못한 여자, 혹은 남편이 죽었는데도 죽지 않은 부인들을 가리킬 때 불렀다. 병자호란 때 어쩔 수 없이 공녀(貢女)로 청나라에 가야만 했던 여성들은 전란이 끝난 뒤, 고국으로 살아 돌아왔다. 그러나 나라는 그들을 매정하게 돌아서버렸다. 
 

  잡혀갔던 여인은 비록 그들의 본심은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변란을 만나 죽지 못했 

 으니 절개를 잃지 않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이미 절개를 잃었으면 남편 집과는 의리가 

 이미 끊어진 것이니, 억지로 다시 합치게 해서 사대부의 가풍을 더럽힐 수는 결코 없을 

 것이다. 
 

 - 인조실록 16년(1638) 3월 11일, 송기호『시집가고 장가가고』 

  「처와 첩」에 재인용, p 121 - 
 

‘화냥년’이라는 주위에 멸시의 시선을 받아서 서러운 마당에 조정에서는 유교적 의리에 어긋난다는 이유만으로 쌀쌀하게 대하고 있으니 공녀들에게는 하루하루를 사는데 고역이었을 것이다. 이들은 살아있으나 이미 죽은 자나 다름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의 아내가 적에게 잡혀 오면 남편은 무정하게 쫒아내 버렸으며, 새로이 처를 맞아들였다. 앞에서 언급했던 칠거에는 적에게 포로로 잡힌 아내를 쫓아내라는 사항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남편들은 유교와 권위를 앞세워 횡포를 부렸다. 
  

    

남편을 위해서 먼저 죽는 ‘레이디퍼스트’ 

 

나라에서는 열녀의 행적과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해 열녀가 살았던 마을에 열녀문을 세웠다. 그러나 열녀문을 세운 의도 뒤에는 조선의 여성들에게 정절을 강조하려는 암묵적인 강조가 숨어 있다. 그리고 강조의 근원에는 남성이 우월하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그런 열녀문이 열녀를 기리기 위해서 세웠다기보다는 조선의 유교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남성들의 권위를 은연중에 드러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여성을 위한 남성의 정중한 매너와 태도를 ‘레이디퍼스트(Lady-first)'라고 부른다. 여성들은 이런 매너를 갖추지 않은 남성들을 보면 우습게 여긴다. 그러나 조선 사회에서는 반대로 여성들이 남성들을 위해서 예의와 도리를 지켜야했으며 그런 태도를 보이지 못한 여성들은 비웃음과 멸시의 대상이 되어야 했다. 만약 조선 사회에서 ’레이디퍼스트’라는 단어가 통용되었다면 남편보다 먼저 죽는 열녀를 지칭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문명과 질병 한길그레이트북스 97
헨리 지거리스트 지음, 황상익 옮김 / 한길사 / 2008년 4월
평점 :
품절


 

이번에는 더 센 놈이 온다. 슈퍼박테리아

작년에 전 세계를 강타했던 신종 플루가 남기고 간 공포가 사람들의 기억에 사라지고 있어가고 있는 즈음에 이번에는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슈퍼박테리아의 등장으로 열도가 공포로 떨고 있다. 특히, 발병의 근원지가 병원이라는 점과 이를 은폐하고 있었던 병원 관계자의 대처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지난 2월에 문제의 병원 환자 8명이 슈퍼박테리아에 감염되어 그 중 4명이 사망하였다. 그리고 시간이 가면 갈수록 감염자와 사망자 수도 늘어나서 현재는 집계된 감염자 수가 46명이며 사망자는 27명이다. 여론에서 언급되고 있는 슈퍼박테리아의 정식 병명은 '아시네토박터 바우마니'이다. 증상은 패혈증, 폐렴 증세가 나타나며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항생제에 강한 내성을 보이고 있다. 면역력이 강한 사람들에게는 슈퍼박테리아에 감염될 우려는 낮지만 면역력이 낮은 중병 환자들에게는 치명적이다. 현재로서는 슈퍼박테리아에 대항할만한 항생제가 없다. 슈퍼박테리아의 등장 때문에 발등에 불이 떨어진 일본 정부 입장에서는 감염 확산을 막을 수 있는 대책만이 그나마 슈퍼박테리아로부터 시민을 보호할 수 있는 최우선적이며 현실적인 방법일 뿐이다. 
      

인류 질병 잔혹사 

역사를 되돌아보면 강력한 질병들이 등장하여 전 세계를 휩쓸고 지나갔다. 헨리 지거리스트의『문명과 질병』에는 역사 속에서 맹위를 떨쳤던 악명 높은 질병들을 소개하고 있다.

14세기 중세부터 17세기 절대왕정 시기까지 페스트가 전 유럽에 창궐하였으며, 그 당시 취약했던 위생 환경과 미숙한 의학 기술 덕분에 페스트 이외에도 콜레라, 결핵 등과 같은 전염병도 유행하여 많은 유럽 시민들의 사망자수를 늘리는 데 일조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피바람이 전 세계에 불고 난 뒤인 1918년에는 스페인 독감이 유행하였다. 2년 동안 2500만~50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는데 중세 시기 때 유행했던 페스트 사망자보다 훨씬 많은 수이다. 이 책이 1943년에 발표한 것이라서 질병의 역사는 여기까지 소개되어 있지만, 세계적 질병의 유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산업화의 발전과 동시에 보다 높은 의학기술이 보유하게 된 선진국은 과거에 치료할 수 없었던 병들과 종말을 고했지만 개발도상국이나 빈곤 국가에서는 아직도 말라리아, 콜레라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의학기술이 발달할수록 세균들은 항생제의 내성에 강하도록 스스로 계통번식을 하였다. 이후로 에볼라 바이러스, 에이즈가 등장하였으며 2003년에는 사스(SARS, 중증 급성 호흡기 증후군), 2009년에는 신종 플루의 등장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지구를 떠나지 못하고 있는 판데믹포비아 

역사 속에서 인간들을 고통스럽게 한 불치병들은 의학기술로 인해 지구상에서 떠났지만, 인간들이 느끼는 질병에 대한 공포는 아직 지구를 떠나지 못하고 있다. 이전 병들보다 더 강력한 질병이 지구를 찾아오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보건기구에서는 세계적으로 전염병이 대유행하는 상태를 총 6단계로 지정하고 있는데 그 중 가장 최고 위험 등급을 판데믹(Pandemic)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리스어로 ‘pan’은 ‘모두’, ‘demic’은 ‘사람’이라는 뜻으로, 전염병의 대유행을 의미하고 있다. 지금까지 판데믹 경보를 내린 사례는 1918년 스페인 독감과 최근 신종 플루를 포함해서 단, 4번뿐이다. 사람들 사이의 전염이 급속히 퍼지기 시작하여 세계적인 유행병이 발생할 수 있는 초기 상태를 4단계로 두고 있으며 5단계는 병의 유행이 임박했다는 상태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그리고 병의 유행이 심각하면 6단계 판데믹으로 등급이 상승된다.

그러나 사람들은 여론에서 언급되는 전염병 경보 단계 가지고 지나치게 질병에 대한 두려움에 빠져 호들갑을 떤다. 그리고 공포의 감정이 너무 지나치면 판데믹포비아(Pandemicphobia)까지 이르게 되어 사회생활에 지장을 주게 된다. 자신의 몸에서 조금이라도 이상 현상이 일어난다거나 발견된다면 곧 죽을 병 걸린 것 마냥 착각하기 쉽다. 신종 플루가 한창 유행했을 때 마스크와 손 소독제의 매출이 증가했으며 사람이 많이 모여 있는 공공기관에서는 손 소독기를 설치하여야만 했다. 이전에 설치되었던 손 소독기에 눈길을 주지 않았던 사람들은 혹시나 자신도 병에 걸릴 우려 때문에 손 소독기를 사용에 의존하게 된다. 이번에 발생한 슈퍼박테리아의 경우에도 면역력이 강한 사람에게는 무해함에도 불구하고, 시민들 사이에 병에 대한 불필요한 공포감이 확산된다고 대한의사협회가 지적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의 판데믹포비아는 과거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지금과 같은 의학기술이 본격적으로 갖춰진 시기는 20세기부터이다. 유럽 중세부터 산업혁명이 일어났던 18세기까지는 의학 기술이 제대로 발달되지 않아 전염병과 각종 질병의 유행 앞에 많은 사람들이 속수무책으로 희생당해야만 했다. 그러다보니 당시 유럽 사회를 지배하고 있었던 기독교가 질병을 치유할 수 있는 유일한 타개책이었다. 불치병에 걸린 환자들은 자신이 살면서 큰 죄악을 저질렀기 때문에 신이 큰 벌을 내렸다고 생각했다. 페스트 환자들은 신 앞에서 면죄와 동시에 자신의 병을 낫기 위해서 자해를 가하였다. 지금으로 보면 비현실적인 방법이지만 사람들은 어떻게든 질병의 고통과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온갖 노력하였다. 정신병 환자들에 대한 당시 사람들의 시선과 반응은 황당하기만 하다. 사람들은 정신병 환자들을 신을 반하는 악마나 마녀로 규정하였다. 무고한 특정 사람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려는 대중의 행동을 뜻하는 ‘마녀사냥’ 도 신이 내린 벌이었던 질병에 대한 당시 사람들의 두려움 속에서 탄생되었다.  

그리고 성서에는 병을 낫게 하는 예수의 존재가 언급되다보니 사람들은 기독교에서 숭배되는 성인(聖人)이 그려져 있는 이콘화(Icon)라든가 소유하고 있었던 소지품을 가지고 있으면 병을 낫는다고 믿었다. 심지어 성인이 죽은 뒤에라도 손가락, 귀, 코와 같은 신체 일부를 절단하는 일도 발생하기도 했다. 기독교 성인에 대한 사람들의 치유 의식은 왕의 안수(按手) 의식으로 발전하게 된다. 막강한 종교의 힘 덕분에 나라를 지배하는 왕도 신적 존재가 되었다. 그래서 왕이 직접 병든 시민들을 치료하게 해주는 안수 의식이 생겨났다. 중세 때부터 시작되었던 안수 의식은 18세기에 이르러 샤를 10세까지도 이어졌다. 하지만 안수 의식은 치료술이라기보다는 종교적 성격이 강한 치료를 위한 의식일 뿐이었다. 단순히 왕이 직접 병자의 몸에 살짝 손으로 접촉하고 마는 것뿐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기 나라를 다스리는 왕의 안수 능력을 믿었다. 영국의 찰스 1세가 처형당하였을 때, 처형식에 있었던 영국 시민들이 처형대로 몰려와 왕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수건에 묻히려는 웃지못할 해프닝이 있었다. 처형당한 찰스 1세는 한낱 권력에서 밀려나 죽은 사람이 되었지만 이전에 왕이라는 신성한 존재였기에 시민들은 찰스 1세의 피가 치유 능력이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질병의 힘을 극복하지 못한 문명의 진보

『문명과 질병』을 번역한 황상익 서울대 교수는 서론에서 문명의 진보가 어느 정도 질병을 극복해왔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문명의 진보가 질병을 극복하려고 했다기보다는 무시무시한 질병의 파급 효과를 어떻게 대처했으며 적용했다고 생각된다. ‘극복’이라는 단어 자체에는 악조건이나 적을 이겨 내 굴복시킨다는 사전적 의미가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앞에서 언급했던 질병 유행의 역사를 되짚어보면 문명의 진보가 질병을 극복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아무리 발달된 의학기술로 통해 악명 높았던 질병을 지구상에 퇴치했다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의학기술로도 소용없는 강력한 질병들이 등장하였다.  

이웃나라 일본에서 슈퍼박테리아 때문에 떨고 있는만큼 우리나라도 슈퍼박테리아의 손아귀를 피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헨리 지거리스트는 질병 역사의 순환성을 이해하고 앞으로 발생할 강력한 질병 퇴치를 위해서 국제적인 문제로 바라볼 것을 주장한다. 그는 보건정책의 권위자로서 보건의료 서비스 구축론자이다. 전 세계적으로 판데믹이 유행하게 되면 다국적 제약회사들의 신약 개발에 시동을 건다. 그러나 일부 음모론자들 사이에서는 개발도상국들은 거대 제약회사의 독점에 휘둘려서 그들의 배만 부르게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신약 개발이 질병에 맞서야하는 인류 생존에 걸린 일이니 만큼 제약회사의 신약 개발 투자를 제한하는 것은 억측이다. 오히려 질병에 대한 안일한 대처가 후에 더 많은 질병의 희생자가 늘어지고, 보건 대책에 대한 경제적 비용을 더 부담할 우려가 있다. 헨리 지거리스트의 주장처럼 세계 문제를 주관하는 국제 사회단체와 다국적 제약회사가 서로 손을 맞잡아 질병 퇴치에 앞장서야 한다. 질병 역사의 순환성 속의 질병 vs 문명의 대결 결과는 장군 멍군이다. 항상 질병이 발생하면 그 질병을 이길 수 있는 의학기술이 등장하곤 하였다. 비록 점점 발달되어가는 문명의 진보가 질병의 힘을 완전히 극복하지 못하더라도 인류는 스스로 질병에 맞서 살아남으려는 강한 생존 욕구를 가지고 있으며 이미 검증된 의학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이상, 앞으로의 세계적인 환난을 슬기롭게 대처할 수 있는 희망을 가져본다.

  


* 인용 관련 기사 출처 및 링크

[일본 ‘슈퍼박테리아’ 파문 확산] YTN, 2010년 9월 8일 입력
http://www.ytn.co.kr/_ln/0104_201009080653364349  

[의협, 슈퍼박테리아 "불필요한 공포감 확산"] 머니투데이, 2010년 9월 10일 입력
http://www.mt.co.kr/view/mtview.php?type=1&no=2010091011125658272&outlink=1

[슈퍼 박테리아, "더이상 치료제가 없다!"] 뉴스한국, 2010년 9월 11일 입력
http://www.newshankuk.com/tv/nhtv_view.asp?articleno=s201009110030181941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31 | 32 | 33 | 34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