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염과 남자에 관하여 (2019년 세종도서 교양부분 선정) - 남자 얼굴 위에서 펼쳐진 투쟁의 역사 (서양 편)
크리스토퍼 올드스톤-모어 지음, 마도경 옮김 / 사일런스북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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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 나가지 않고 집에서 지낸 지 어느덧 11일이 되었다. 밖에 나갈 일이 없어서 면도를 안 한 지 사흘이 지났다. 원래 이틀에 한 번씩은 면도한다. 면도하지 않으면 얼굴에 수염이 거뭇거뭇하게 자라난다. 내 피부가 하얘서 수염이 유난히 도드라져 보인다. 그래서 자주 면도를 한다. 어제 친한 동생한테 연락이 왔는데 이 녀석도 거의 집에서 지내고 있다. 그 녀석도 면도를 안 하고 있다면서 셀카 사진을 찍어 내게 보여줬다. 이 친구는 나보다 수염이 빨리 자라는지 구레나룻도 꽤 많이 자라나 있었다. 그는 체격이 크다. 이대로 수염이 쭉쭉 자란다면 두 달 뒤에 그는 임꺽정과 같은 모습으로 변해 있을 것 같다.

 

인류 역사상 가장 먼저 면도를 한 사람은 누구일까? 사실 누구도 궁금하지 않은 질문이다. 면도가 과연 역사적인 행위’로 볼 수 있는지 의심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이런 사람이 수염과 남자에 관하여라는 책을 보게 되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수염과 남자에 관하여남성의 외모에 큰 영향을 미치는 수염과 그것을 제거하는 면도의 역사를 보여주는 책이다. 이 책의 부제는 남자 얼굴 위에서 펼쳐진 투쟁의 역사. ‘투쟁의 역사라고 하니 거창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 그동안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수염과 면도를 다시 보게 된다.

 

저자는 수염 기르는 행위와 면도를 단순히 남성성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사회가 인정하는 남성이 되기 위한 수단이라고 말한다. 수염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 얼굴은 사회가 요구하는 남성의 조건 또는 남성성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읽을 수 있는 지표. 수염과 면도의 역사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수염 기르는 행위를 개인 취향의 문제로 볼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러한 입장을 반박할 수 있는 수많은 사례를 보여준다. 수염은 정치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때론 지도자의 권위나 정치적인 메시지를 대중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상징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면도의 역사는 생각보다 엄청 오래됐다. 면도를 시작한 최초의 인류는 고대 수메르와 이집트의 남성들이다. 고대인들이 면도하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신분을 철저하게 구분하기 위해서다. 왕족과 귀족은 수염을 길렀으며 성직자들은 면도했다. 왕족은 땅을 정복하고 지배하는 자신들의 능력을 과시하기 위해 수염을 길렀다면, 성직자는 신성한 신의 세계에 도달하기 위해 불손한 수염과 털을 말끔히 제거했다. 고대 이집트의 최고 통치자인 파라오(Pharaoh)는 유일하게 턱수염을 기를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귀족은 함부로 턱수염을 기를 수 없었다. 이집트 여왕도 수염이 통치자의 권위를 상징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왕비에서 파라오가 된 하트셉수트(Hatshepsut)는 가짜 턱수염을 달았다. 이렇듯 수염에 대한 고대 이집트인들의 인식은 수염의 정치적 의미를 보여주는 첫 번째 역사적 사례로 볼 수 있다.

 

시대가 변하면 수염 스타일과 수염에 대한 인식도 변한다. 고대 이집트인뿐만 아니라 고대 그리스인들도 수염의 상징을 중요하게 생각했고, ‘남성으로서의 권위를 인정받기 위해서 수염을 길렀다. 그러나 세계를 정복하려는 알렉산드로스(Alexandros)가 등장하면서 수염에 대한 고대 남성들의 인식이 달라진다. 알렉산드로스는 면도를 선호했다. 그러면서 그를 따르는 병사들도 면도하게 되고, 알렉산드로스가 정복한 영토에 사는 남성들도 수염을 밀었다. 그 후 400년 동안 면도는 남성 얼굴의 정석으로 자리 잡는다 흉상이나 동상으로 만들어진 알렉산드로스의 외모는 수염이라고 찾아보기 힘든 청년의 말끔한 얼굴이다. 과거에 수염이 있는 남성이 존경을 받았다면 알렉산드로스의 시대에 이르면서 면도한 남성이 존경의 대상이 되었다.

 

턱수염을 선호하는 시대가 찾아오긴 했으나 유행은 오래 가지 않았다. 그래도 어느 사회든 유행을 따르지 않는 부류가 있기 마련이다. 남성 철학자들은 턱수염이야말로 남성성과 남성미를 드러내는 진정한 표상이라고 주장한다. 좀 더 시간이 지나면서 종교인들도 수염을 옹호한다. 고대 및 중세의 종교인들은 왕족만 수염을 기를 수 있었던 과거를 소환한다. 교회의 지도자들은 예수가 남자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의 남성적인 권위를 높이기 위해 수염을 옹호한다. 그러면서 턱수염이 있는 예수의 얼굴이 그려진 성화(聖畫)가 유행한다. 종교인들이 턱수염을 찬양하는 분위기가 지속되면서 예수의 권위는 한층 더 높아지고, 교회의 남성 지도자들의 지배력은 강화된다.

 

유럽 남자들이 다시 수염을 밀기 시작한 시기는 17세기 이후다. 저자는 턱수염이 퇴조하는 시기가 계몽주의가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시기와 일치한다고 주장한다. 그래도 여전히 수염을 고집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수염과 권위적인 남성성을 동일하게 생각했다. 특히 황제의 얼굴이 어떻게 생기느냐에 따라서 남성들의 수염 스타일은 달라졌다. 루이 나폴레옹(Louis Napoléon)17세기 이후 유럽에서 턱수염을 기르기 시작한 군주다(그의 큰아버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Napoléon Bonaparte)유럽의 알렉산드로스가 되고 싶었던지 항상 수염이 없는 얼굴을 유지했다). 프랑스 남성들은 루이 나폴레옹처럼 턱수염을 길렀다. 턱수염이 남성의 영웅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상징이 된 것이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면도한 남성이 멋진 남성미의 상징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대중은 깔끔하게 면도한 남자를 선호하게 되고, 수염은 예술가 또는 사회질서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상징이 된다.

 

수염의 역사는 투쟁의 역사라기 보다는 인정 투쟁의 역사에 더 가깝다. ‘투쟁의 역사로 본다면 수염을 선호하는 세력과 면도를 선호하는 세력이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서로서로 비방하면서 공격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수염의 역사를 인정 투쟁의 역사로 보면 서로 다른 두 세력의 관계 양상을 다르게 볼 수 있다. 그들은 자신과 다른 입장을 가진 세력을 제압하기보다는 그들의 남성성과 대조하면서 자신이 생각하는 남성성을 인정받으려고 했다. 그러니까 수염을 선호하는 세력은 수염과 남성성의 연관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면도를 선호하는 세력의 입장과 비교하게 되고, 수염의 중요성이 사회로부터 인정받아야 하는 이유를 설득력 있게 전달하려고 했다. 면도를 선호하는 세력들도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자신들의 입장을 고수했다. 이 두 세력은 서로서로 남성성을 인정해주기를 원했던 것이다. 수염과 면도를 둘러싼 오랜 인정 투쟁의 역사는 남성성의 정의와 남성 얼굴의 스타일이 끊임없이 변하고 다양해졌다는 사실을 증명해준다.

 

 

 

 

Trivia

 

 

* 그래서 그리스도라는 인물에 약간의 인간미 부여하는 것이 불가피했으며, 성녀 가타리나 수도원의 화가는 그리스도에게 중간 길이의 평범한 턱수염을 부여하여 이 작업을 용케 해낸 셈이다. (115)

 

약간의 인간미를 부여하는 것이라고 써야 한다.

 

 

* 히틀러의 절친한 여인 알베르트 슈페어는 훗날 한 장의 종이에 히틀러와 스탈린의 이름이 우호적 관계로 함께 묶여 있는 모습을 본 것은 나의 상상을 초월한 충격적이고 흥미로운 돌발사태였다라고 고백했다. (342)

 

히틀러(Hitler)의 최측근 중 한 사람인 알베르트 슈페어(Albert Speer)남자.

 

 

* 닐 암스트롱과 부즈 올드린은 짧게 깎은 머리로 달에 도착했으나 [생략] (356)

 

버즈 올드린(Buzz Aldrin)으로 표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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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03 20: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3-04 14: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3-03 20: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3-04 14: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20-03-03 2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재미있겠는데요.. ㅎㅎ

cyrus 2020-03-04 14:50   좋아요 0 | URL
이 책에 관심 가지실 줄 알았습니다. ^^

페크(pek0501) 2020-03-04 1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시대가 변하면서 무엇에 대한 인식이 바뀌는 것 - 변화가 흥미롭습니다.
요즘 코로나19도 우리의 생활 패턴을 변화시키고 있지요.

cyrus 2020-03-04 14:52   좋아요 0 | URL
모든 사람이 다 그렇진 않겠지만, 코로나 사태 이후로 사람들은 손 씻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인식했을 것입니다. ^^;;

2020-03-05 03: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3-05 13: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1920년대 조선에는 신식 교육을 받은 신여성이 등장했다. 나혜석, 허영숙(한국 여성 최초의 개업의, 춘원 이광수의 부인), 황애시덕(애국부인회를 조직한 독립운동가) 등이 일본에서 공부하고 귀국해 여자유학생친목회를 결성하고, 여성 독자를 위한 교양지 <여자계(女子界)>를 창간한 것은 한국 여성사에서 중요한 사건으로 손꼽힌다. 조선의 문학계와 미술계를 대표하는 유명한 신여성이 나혜석이라면, 음악계에는 윤심덕이 있다. 예술가로서의 길을 걸었던 두 사람의 여성해방론과 신념은 시대를 앞서 있었다. 1920년대 조선에는 여전히 구시대적 사고방식이 남아 있었다. 여성이 결혼하지 않고 사회생활을 하는 것을 용납하지 못했고, 신여성이 지향하는 자유 연애론에 눈살을 찌푸리면서 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여권 신장에 앞장선 두 사람으로서는 그 시절을 살아가기가 결코 녹록치 않았다.

 

 

 

 

 

 

 

 

 

 

 

 

 

 

 

 

 

 

* [우주지감 9월의 책] 나혜석, 장영은 엮음 나혜석, 글 쓰는 여자의 탄생(민음사, 2018)

* [품절] 나혜석 경희 ()(종합출판 범우, 2006)

* [품절] 이상경 나는 인간으로 살고 싶다(한길사, 2009)

 

 

 

 

 

 

 

 

 

 

 

 

 

 

 

 

 

 

 

* 헨리크 입센 인형의 집 (예술의전당 에디션)(민음사, 2018)

* 헨리크 입센 인형의 집(민음사, 2010)

* 헨리크 입센 인형의 집(열린책들, 2010)

 

 

 

나혜석은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로 많이 알려졌지만, 소설과 시를 쓴 작가이기도 하다. 1918<여자계>에 발표한 자전적 소설 경희는 구시대적 통념에 저항하는 새로운 여성상을 제시한 여성주의 텍스트이다. 일본에서 유학 생활을 하고 조선에 돌아온 경희는 여성도 남성과 똑같이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주체이자 결혼의 주체라고 한다. 나혜석은 경희라는 인물을 통해 조선의 여성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의 문제를 끊임없이 고민한다. 또 여성 스스로가 결혼을 주체적으로 선택하고 책임을 져야 한다는 내 · 외부적 갈등도 소설 속에 생생하게 담아내고 있다. 결국 경희는 입센(H. Ibsen)의 희곡 인형의 집에 나오는 노라(Nora)처럼 가부장제가 작동하는 가정을 등지기로 결심한다.

 

 

 

 

 

 

 

 

 

 

 

 

 

 

 

 

* 김경일 신여성, 개념과 역사(푸른역사, 2016)

 

 

 

인형의 집은 나혜석을 포함한 신여성들에게 영향을 준 희곡이다. 19211월부터 <매일신보>인형의 집인형의 가()라는 제목으로 번역 연재되었다. 나혜석은 신문에 연재되는 희곡을 위해 직접 삽화를 그렸다. 제일 마지막 회에 나혜석이 쓴 동명의 노랫말이 실렸다. 나혜석의 인형의 가경희()(종합출판 범우)에 수록되어 있다. 윤심덕은 도쿄음악학교 졸업발표회를 위한 인형의 집공연에 노라 역을 맡았다. 나혜석과 윤심덕은 남성에 종속된 여성으로 사는 삶을 거부하고, 한 인간으로서 독립하려는 노라를 찬미하고 동경하고 있다.

 

신여성, 개념과 역사(푸른역사)의 저자 김경일은 나혜석과 윤심덕을 2세대 근대 여성으로 분류한다. 2세대 근대 여성은 봉건적 가족제도와 결혼제도에 대한 비판과 도전을 통해 사회전반에 걸친 개조와 개혁을 달성하려고 했다. 그녀들의 꿈은 여성의 개성과 평등에 기반을 둔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일본의 식민지라는 조선의 특수한 시대적 환경은 그녀들의 신념을 마음껏 펼치지 못하게 만드는 유리 장벽이었다. 나혜석과 윤심덕은 봉건적 가족제도와 결혼제도를 비판하면서 여성의 개성과 평등을 강조했고, 자유연애를 서슴없이 말했다. 특히 나혜석은 1934년에 이혼 고백장-청구(靑邱) 씨에게라는 글을 써서 조선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이 글을 통해 나혜석은 자신이 이혼에 이르게 된 경위와 그 과정에서 전 남편 김우영이 보인 편협함, 그리고 남성 이기주의 등을 상세하게 언급했다. 이혼 고백장는 남성 중심 사회에 대한 공개적인 도발이었다. 그러나 이글이 발표되자 대중은 격렬하게 그녀를 비난했다. 전근대적인 남성 중심 사회에 벗어나지 못한 남녀 모두가 그녀를 향해 돌을 던졌다. 나혜석은 글쓰기를 통해 자기 존재를 증명하려고 했다. 그녀는 잠시 붓을 내려놓고 펜이라는 날카로운 무기를 들어 여성을 억압하는 시대에 맞서 싸웠다.

 

하지만 자유주의 계열의 신여성에 속한 나혜석과 윤심덕을 제외한 일부 신여성들은 여성 해방보다는 민족 해방을 먼저 생각했다. 민족주의와 사회주의의 등장으로 인해 여성의 자유를 강조하는 여성해방론이 설 자리는 축소되었다. 남성 지배의 사회 분위기를 질타한 나혜석은 주류 남성 지식인들의 비방과 냉소에 시달렸지만, 사회주의 계열 신여성은 남성 지식인들의 비방으로부터 조금은 자유로울 수 있었다. 사회주의 계열의 신여성들의 목표는 민족 해방이었고, 그녀들은 새로운 공산주의 국가를 만드는 대의에 헌신하는 존재로 인정받았다.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계열의 남성 지식인들의 눈에는 나혜석과 같은 자유주의 계열의 신여성을 안 좋게 보였을 것이고, 그녀들은 이기적이고 속물 같은 부르주아 여성으로 인식되었다.

 

나혜석은 이혼 고백장에서 이혼 후 자신을 향한 비난과 냉대를 혼자서 감당해야 하는 처절한 심정을 토로한다.

 

 

 

 세상의 모든 신용을 잃고 모든 공분 비난을 받으며, 부모 친척의 버림을 받고 옛 친구를 잃은 나는 물론 불행하려니와 이것을 단행한 씨[김우영]에게도 비탄, 절망이 적지 아니 할 것입니다. 오직 나는 황야를 헤매고 암야에 공막(空漠, 텅 비고 쓸쓸함)을 바라고 자실(自失, 자기 존재를 잊을 정도로 얼이 빠져)하여 할 뿐입니다.

 떨리는 두 손에 화필과 팔레트를 들고 암흑을 향하여 가는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광망(光芒)의 순간을 구함인가. 너무 크고 너무 중한 상처의 충격을 받는 내게는 각각으로 절박한 쓸쓸한 생명의 부르짖음을 듣고 울고 쓰러지는 충동으로 가슴이 터지는 것 같사외다.

 

(나혜석 이혼 고백장중에서, 나혜석, 글 쓰는 여자의 탄생157)

 

 

 

 

황야를 헤매고 암야에 공막을 바라고 자실한 상태에 이른 나혜석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가슴 속을 파고드는 암울함과 처절함이 우러나오는 윤심덕의 노래 사의 찬미가 떠오른다. 윤심덕은 이 노래를 취입한 레코드가 나오기 전에 극작가 김우진과 함께 현해탄에 몸을 던졌다. 이혼 고백장에 있는 자실이라는 단어가 자살로 느껴지는 건 기분 탓일까? 그러나 나혜석은 절망을 딛고 다시 한 번 갱생하기 위해 세상의 모든 조소와 질책을 감수하면서 행진을 계속할 것이라고 결심한다.

 

 

 

(1)

황막한 광야를 달리는 인생아

너의 가는 곳 그 어데이냐

쓸쓸한 세상 험악한 고해에

너는 무엇을 찾으러 가느냐

 

(2)

웃는 저 꽃과 우는 저 새들이

그 운명이 모두 다 같구나

삶에 열중한 가련한 인생아

너는 칼 위에 춤추는 자로다

 

(3)

허영에 빠져 날뛰는 인생아

너 속였음을 네가 아느냐

세상의 것은 너에게 허무니

너 죽은 후엔 모두 다 없도다

 

(후렴)

눈물로 된 이 세상에

나 죽으면 그만일까

행복 찾는 인생들아

너 찾는 것 허무

 

 

윤심덕의 불꽃 같은 삶은 짧고도 강렬했다. 세상은 그녀의 용감한 신념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세상은 오로지 그녀가 자살한 이유를 알고 싶어 했고, 그녀와 김우진과의 관계에 관음증적인 호기심을 느꼈다. 주류 사회를 불편하게 만든 언행으로 인해 나혜석은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고립된 채 살다가 행려병자로 쓸쓸히 생을 마감했다. 나혜석과 윤심덕은 세상에 안주하기보다는 자신들의 원대한 꿈을 펼치지 못하게 하는 세상에 정면으로 부딪치는 삶을 선택했다. 그녀들은 자신에게 다가올 비극을 알면서도 각자가 원하는 삶을 찾으려고 열중한 칼 위에 춤춘 자들이었다.

 

 

 

Trivia

 

신여성, 개념과 역사85(초판 1)오자가 있다. 2세대 근대 여과 급진주의라고 적혀 있다. ‘2세대 근대 여성과 급진주의로 고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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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25 22:5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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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9-09-28 15:29   좋아요 0 | URL
목숨을 바치면서까지 자신의 신념을 끝까지 지키는 사람들을 보면 대단해요. 저는 그렇게 하라고 하면 절대로 못 하겠어요.. ^^;;

stella.K 2019-09-26 1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경희> 범우사에서 나왔네.
애석하게도 절판이야. 다른 책도 봤는데 읽고 싶은 게 많더군.
기획을 잘 했던 것 같은데 잘 안 알려진 것 같아.
나도 이제 처음 알았다.
옛날에 범우사 알아 줬는데. 처음 책을 읽는 사람들은
범우사 아니면 삼중당이었는데 지금은 그 명성이 완전 묻혔지?
난 옛날에 냈던 책으로만 먹고 살려나 했더니
그래도 최근 간간이 책을 내긴 했더군.
나혜석은 희곡이 있어 함 읽어보려고 해.

cyrus 2019-09-28 15:33   좋아요 0 | URL
범우사의 행보가 너무 조용해서 지금도 새 책을 내놓고 있는지 알아봤어요. 지금도 범우문고가 나오네요.. ㅎㄷㄷ 그런데 예전에 나온 책들의 일부는 절판됐어요. 나혜석의 희곡을 따로 실은 책이 있을 거예요. ^^
 



자주 가는 도서관에서 익숙한 책을 만났어요! :)

- 2019. 9.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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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18 19: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9-18 19:28   좋아요 1 | URL
제목을 안 적었네요.. ㅎㅎㅎ
<네 멋대로 읽어라>입니다. 알라디너 stella.k님이 쓴 책이에요. :)

2019-09-18 20: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9-19 11:52   좋아요 0 | URL
책이 진열대 중앙에 있어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에 잘 띌 거예요. ^^

2019-09-18 22: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9-19 11:54   좋아요 1 | URL
네, 책을 보자마자 기쁜 마음이 들었어요. ‘내가 아는 책’인데 이상하게도 ‘내가 쓴 책’인 것처럼 느껴졌어요. ^^

얄라알라북사랑 2019-09-20 1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stella.K님의 책이라니, 모르고 휘릭 봤을 때랑...마음이 달라집니다. 다시 찾아 읽어야겟어요

cyrus 2019-09-21 11:32   좋아요 0 | URL
예전에 읽은 책이라서 그런지 보자마자 알아봤어요. 안 읽은 책이라면 대충 보고 지나쳤을 거예요.. ^^;;
 

 

 

살롱(salon)은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진 단어다. 첫 번째 의미는 손님을 맞이하는 응접실이다. 두 번째 의미는 그곳에서 열리는 사교 모임이다. 세 번째 의미는 활동 중인 화가들의 그림들을 모아서 정기적으로 개최하는 전시회다.

 

 

 

 

 

 

 

 

 

 

 

 

 

 

 

 

 

 

* 강준만 룸살롱 공화국(인물과사상사, 2011)

 

 

 

우리나라에 알려진 살롱의 의미는 앞에 언급한 것들과 다르다. 여종업원이 술 시중을 들어주는 유흥주점을 룸살롱이라고 부른다. 이곳에 칸막이가 있는 방들이 있다. 우리 사회의 오래된 폐부인 접대 문화를 분석한 강준만은 한국을 룸살롱 공화국’, ‘칸막이 공화국이라고 지적했다. 은밀한 접대는 칸막이를 해야 하고, 칸막이를 우아하게 만들어놓은 곳이 바로 룸살롱이다. 룸살롱의 전신은 요정(料亭)이다. 해방 이후 우리나라를 통치한 미군정에 빌붙으려는 세력들은 요정에서 미군정의 주요 인사들을 접대했다. 요정은 권력을 차지하고 싶은 자들이 늘 드나들었고, 밀실 접대를 통해 권력의 한 축이 된 사람들은 룸살롱의 고객이 되었다.

 

 

 

 

 

 

 

 

 

 

 

 

 

 

 

 

* [절판] 하이덴-린쉬 유럽의 살롱들(민음사, 1999)

* 서정복 살롱 문화(살림, 2003)

* 메릴린 옐롬, 테리사 도너번 브라운 여성의 우정에 관하여(책과함께, 2016)

 

 

 

이제부터 진짜로 살롱에 대해서 살펴보자. 17~18세기 유럽의 귀족과 지식인들은 응접실에 모여 찻잔을 기울이며 과학과 문학, 예술과 정치 등을 논했다. 허영에 찬 상류층의 모임이라는 비판이 있지만, 살롱에서 이뤄진 방대한 정보와 지식의 교류는 프랑스 대혁명과 계몽주의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살롱은 여성해방의 공간이기도 했다. 사회적 영향력이 있는 살롱의 여주인들은 재기와 언변을 바탕으로 유명 인사들을 끌어들이려 각축전을 벌이기도 했다. 그녀들의 삶과 전설은 유럽의 살롱들(민음사)이라는 책에 자세히 나와 있다. 이 책의 부제는 지금은 몰락한 여성 문화의 황금기. 유럽의 살롱들은 프랑스, 독일, 영국의 살롱 문화의 특징과 각국의 살롱 문화를 대표하는 여성들의 주요 활동을 살펴볼 수 있는 책이다. 20세기까지 이어진 살롱은 정숙한 여성의 역할을 강요해온 가부장적 사회 규범을 타파하는 여성 해방의 자유로운 무대였다. 유럽의 살롱들은 절판되었는데, 이 책의 빈자리를 살롱 문화(살림)가 대신하고 있다.

 

남성 중심의 문화와 역사 기록에 가려진 여성의 다양한 우정과 연대 방식을 주목한 여성의 우정에 관하여(책과함께)도 여성의 살롱 문화를 비중 있게 언급한 책이다. 살롱 문화를 이끌어간 영국 여성들은 블루스타킹(bluestocking)이라는 별명이 붙여졌다. 1750년대는 영국의 살롱 문화가 활발히 이루어진 시기였다. 이 시기에 가장 주목받은 살롱의 여주인은 엘리자베스 몬터규(Elizabeth Montagu). 그녀의 모임에 자주 참석한 식물학자 벤저민 스틸링플릿(Benjamin Stillingfleet)는 블루스타킹을 착용했다. 그가 모임에 불참하게 되자 몬터규는 벤저민의 부재를 아쉬워했다. 그 후로 몬터규의 살롱 회원들은 블루스타킹을 착용하기 시작했다. 블루스타킹을 신은 사람은 모임에 열심히 활동하는 똑똑한 사람을 상징하게 됐고, 자연스럽게 지적인 살롱 회원을 의미하는 별명으로 남게 됐다. 그러나 여성이 남성 중심 사회에 개입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 일부 사람들은 살롱에 참석하는 여성들을 가리켜 블루스타킹이라고 불렀다. 이때부터 블루스타킹은 유식한 여성을 비하하는 말이 됐고, 19세기 초에는 여성 참정권 운동에 뛰어든 여성을 조롱하는 말로 쓰이기도 했다.

 

 

 

 

 

 

 

 

 

 

 

 

 

 

 

 

 

* 한일근대여성문학회 옮김 세이토(어문학사, 2007)

* 정애영 히라쓰카 라이초(살림, 2019)

 

 

 

미국과 영국의 여성 참정권 운동에 영향을 받은 일본의 여성주의자들은 19119월에 <세이토(靑鞜, 청탑)>라는 여성문예 잡지를 창간했다. 세이토는 블루스타킹을 한자어로 바꾼 단어이다. 이 잡지 창간 및 편집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히라쓰카 라이초(平塚雷鳥)천재적인 여성의 등장을 역설한 글 원래 여성은 태양이었다<세이토> 창간호에 게재했다. 원래 여성은 태양이었다는 처음에 이렇게 시작한다.

 

 

 원래, 여성은 태양이었다. 진정한 인간이었다.

 지금, 여성은 달이다. 타인에 의해 살아가고 타인의 빛에 의해 빛나는 병자와 같은 창백한 얼굴의 달이다.

 지금 세이토는 태어났다.

 현재 일본 여성의 두뇌와 손에 의해 세이토는 처음 태어났다.

 

 

(히라쓰카 라이초, 원래 여성은 태양이었다중에서, 세이토39)

 

 

 

 

여성은 태양이었다가부장제 사회 한가운데에 근대 일본 여성주의의 시작을 알리는 선언이다. 라이초는 이 글에서 대지를 비추는 태양처럼 빛나는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여성이야말로 진정한 인간이라고 주장한다.

 

 

 

 

 

 

 

 

 

 

 

 

 

 

 

 

* [우주지감 9월의 책] 나혜석, 장영은 엮음 나혜석, 글 쓰는 여자의 탄생(민음사, 2018)

* [절판] 이상경 나는 인간으로 살고 싶다(한길사, 2009)

 

 

 

라이초와 <세이토>는 각각 일본의 신여성 운동을 대표하는 인물과 매체로 되었고, 일본에 유학한 조선의 여성주의자들은 이 잡지를 통해 주체적인 인간으로서의 여성의 삶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조선보다 한 발 앞선 일본의 여성해방 운동에 영향을 받은 여자 유학생들은 여자유학생친목회라는 이름의 단체를 만들어 19176[]<여자계(女子界)>를 발간했다. 여자유학생친목회 회원 중에 그 유명한 나혜석도 포함되어 있다. <여자계>우리나라 최초의 여성잡지 혹은 학술지로 평가받는다. 나혜석은 이 잡지를 통해 여성을 순종적으로 만드는 현실(결혼)과 여성해방의 이상 사이에 고뇌하는 신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소설 경희를 발표한다. 나혜석은 자신의 글 이상적 부인에 라이초를 간접적으로 언급할 정도로 그녀를 신여성 운동의 본보기로 삼았다.

 

 

 

 

 

 

 

 

 

 

 

 

 

 

 

 

* [절판] 박노자 우리가 몰랐던 동아시아(한겨레출판, 2007)

 

 

 

그러나 라이초는 영국과 미국으로부터 들어온 우생학을 옹호했으며 일본의 파시즘에 협조하는 행보를 보였다. 그녀는 여성의 인권 신장을 위해서 국가에 봉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녀의 모습은 일본의 아시아 침략과 일본의 조선 지배를 옹호한 조선의 신여성들의 모습과 비슷하다. 신여성의 태양라이초는 1930년대부터 신여성의 욱일(旭日)이 되기 시작했다. 종전 이후에 라이초는 반전 운동가로 활동했다. 그러나 그녀가 반전 운동을 했다고 해서 신여성 운동의 한계가 잊히는 건 아니다. 박노자의 우리가 몰랐던 동아시아(한겨레출판)에 수록된 신여성의 명암, 히라쓰카 라이초는 단순히 일본 신여성 운동의 한계를 지적하는 글이 아니라 그녀들에게 영향을 받은 조선 신여성 운동의 한계까지 되돌아보게 만드는 글이다.

 

몇 년 전부터 나혜석을 필두로 해서 신여성을 조명한 책들이 많이 나왔다. 그러나 대부분의 책은 신여성의 ()만 소개하는 데 그친다. 시대를 앞서간 선배라고 해서 너무 띄워주면 곤란하다. 태양 빛을 너무 많이 쬐면 암(癌)이 생긴다. 훌륭한 선배가 있다면 그와 정반대로 살아가는 불량한 선배도 있기 마련이다. 불량한 선배들의 과거 행적은 여성 운동의 오점이자 흑역사로 남게 되지만, 이와 같은 일이 재현되지 않으려면 그것을 밟고넘어야 한다. ‘신여성의 암(暗)은 그냥 건너뛸 수 없는 페미니즘의 문제이다.

 

 

 

 

[] 안타깝게도 <여자계>의 창간호는 현재 남아 있지 않다. 현재 남아있는 <여자계> 원본은 2호와 6호 뿐이다. 그래서 <여자계> 창간호 발행연도가 정확하게 언제인지 분명하지 않다. 나혜석의 일대기를 정리한 나는 인간으로 살고 싶다(한길사)의 저자 이상경<여자계>의 창간호 발행연도를 ‘19177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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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조는 유학을 국가통치의 기본 이념으로 삼았다. 당시 유학의 주류를 이뤘던 성리학은 인간 심성에서부터 우주 운행에 이르기까지 태극, 음양, 이기(理氣) 등의 이치로 사물의 현상과 원리를 해명하는 학문이다. 성리학자들은 이를 바탕으로 개인의 인격 수양과 인간관계의 의리는 물론, 사회와 국가의 운영에까지 도덕에 기초한 이상을 구현하려 했다.

 

천자문을 익힌 아이들은 서당에 가서 소학(小學)을 읽고 배운다. 유교 사회에서는 본래 바른 생활습관과 품성을 배양하기 위한 인격 수양을 중시했다. 소학은 충효 · 예절 · 윤리 등을 알려주는 인격 수양의 지침서이다. 조선 시대의 사대부 여성들은 결혼하기 전에 소학과 같은 기초적인 유교 경전을 읽었다. 그러나 그녀들은 사대부 남성들과 함께 공부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

 

소학에 있는 유교윤리를 그대로 실천하고 산다면 그 사람은 바로 성인이요 군자인 것이다. 유교 경전을 읽으면서 배운 것을 실천으로 옮기는 여성도 군자가 될 수 있다.

 

 

 

 

 

 

 

 

 

 

 

 

 

 

 

 

 

* 정옥자 사임당전(민음사, 2016)

 

 

 

5만 원 지폐에 등장하는 신사임당을 얘기하면 우선 현모양처가 떠오르고 율곡 이이의 어머니로 기억된다. 하지만 이것은 16세기 노론(老論: 조선 시대 붕당의 한 정파)의 수장이었던 송시열이 주도한 노론의 대모(大母) 만들기프로젝트에 의해 형성된 이미지다. 이이의 제자들은 노론에 속했고, 사임당은 스승을 낳은 위대한 어머니로 알려지게 됐다. 사임당은 탁월한 그림 실력으로 유명했다. 그러나 몇몇 사대부들은 신사임당의 그림 실력을 칭송하면서도 자녀 교육과 정숙한 행실에 더 초점을 맞추어 평가했다. 사임당전(민음사)의 저자인 정옥자 교수는 사임당에 대한 노론의 평가가 그녀의 예술가적 면모를 의도적으로 은폐했다고 보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노론은 사임당의 행실에서 확인할 수 있는 유교적 가치를 예술가적 면모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어쨌든 화가 사임당은 잊히고 훌륭한 어머니 사임당만 남게 되어 지금까지 알려졌다.

 

이이는 사임당의 셋째 아들이다. 그는 어머니를 기리기 위해 <선비행장>이라는 제목의 글을 썼다. 선비는 세상을 떠난 사임당을, 행장(行狀)은 고인의 행실을 적은 글이다. 이 글에서 이이는 어머니의 그림 실력을 높이 평가했으며 그녀의 학식과 인격을 언급했다. 그렇다면 이이가 고인이 된 사임당을 가리켜 선비라는 호칭을 사용한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선비는 학식과 인품을 갖춘 사람에 대한 호칭이다. 공자(孔子)와 그의 제자들부터 시작해서 조선시대에 이어져 온 유학자들은 유교 이념을 실현하는 인격을 선비로 확립하였다. 이이는 유교 이념을 철저히 수련하고 실천한 사임당의 행실에 주목하여 선비라는 호칭을 썼다. 따라서 <선비행장>화가 사임당선비 사임당이라는 뛰어난 면모를 동시에 보여주는 중요한 글이다.

 

사임당과 이이의 명성에 완전히 가려지는 바람에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사임당의 맏딸이자 이이의 손위 누이인 이매창작은 사임당이라고 불렸을 정도로 학식과 예술 실력을 두루 갖춘 여성이다. 사임당의 막내아들 이우의 8대손인 이서는 <집안에 내려오는 서화첩 발문>에 이매창을 부녀자 중의 군자라고 언급했다.

 

 

 

 

 

 

 

 

 

 

 

 

 

 

 

* 김경희 임윤지당 평전(한겨레출판, 2019)

 

 

 

임윤지당군자라고 해도 손색이 없는 훌륭한 성리학자이다. 사대부 여성이 학문에 정진할 수 없는 불리한 시대 속에 윤지당은 공부와 연구에 매진한다. 성리학을 공부한 그녀는 성인과 범인(凡人)이 본래 같은 성품을 타고났다고 보며 이를 전제로 하여 남성과 여성의 본성에 하등의 차이가 없다는 결론을 도출한다. 그러면서 윤지당은 여성도 군자가 될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녀는 일평생 유교 경전과 성리학을 연구하여 군자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 노력했다.

 

윤지당은 앞서 언급한 사임당과 비교되기도 한다. 사임당이 시와 그림을 중심으로 한 교양과 예술에 몰두했다면, 윤지당은 사상과 역사, 문장, 교양을 두루 겸비한 학자였다. 현재까지 윤지당이 쓴 것으로 알려진 시는 단 한 편도 남아 있지 않다. 사임당이 이이라는 대학자를 아들로 두어 유복했다면, 윤지당은 남편과 아들 모두 일찍 세상을 떠나 박복했다는 점이 대비된다. 두 사람이 각각 예술과 학문에 탐닉할 수 있었던 공통적인 배경에는 개방적인 집안 분위기가 있었다. 두 사람의 어머니는 자녀 교육에 관심이 많았고, 딸에게도 인격 수양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 [절판] 이영춘 강정일당(가람기획, 2002)

 

 

 

윤지당의 영향을 받은 여성 성리학자는 강정일당이다. 그녀는 사임당과 윤지당보다 경제적 형편이 어려운 집안에서 태어나 자랐고, 남편의 집안도 가세가 완전히 기울어진 명문가 출신이었다. 정일당은 길쌈과 바느질로 생계를 책임졌다. 시댁의 가계를 책임지던 정일당은 나이 서른이 되어서야 비로소 학문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것도 바느질하면서 틈틈이 경전을 읽고 공부한 것이 전부다. 정일당의 공부는 확고한 생각과 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녀는 천성을 기준으로 한 남녀의 차별이 없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이러한 믿음은 정일당보다 조금 먼저 태어나서 활동한 윤지당으로부터 이어받은 것이다.

 

성인이 되고자 하는 삼당군자(신사임당, 임윤지당, 강정일당)의 노력은 오랫동안 계속해 왔지만, 학문적으로 이론화되고 또 그 생각이 공유된 적은 별로 없다. ‘성품에 남녀의 차이가 없다는 말은 남녀가 역할은 달라도 인간 자체로는 같다는 뜻이다. 우리가 아는 보통 조선 시대의 여성의 삶은 남성 중심의 역사 서술이 놓친 반쪽짜리 삶이다. 역사의 기록 밖으로 밀려나 있던 조선 시대 여성들의 모습이 학계를 넘어서 일반 대중에게도 많이 알려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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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04 12: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9-05 11:54   좋아요 0 | URL
‘유관순이냐, 사임당이냐’는 식으로 화폐 인물 선정에 대해서 논의를 한다면 오히려 잃을 게 많아지는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어요. 저는 두 분 모두 훌륭하며 역사에 길이 남을 업적을 이루었다고 생각합니다. 사임당의 예술가적 면모를 잘 모르거나 높이 평가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게 무슨 업적이냐고 말합니다. 그림 그리는 일을 사임당의 개인적인 활동으로 보는 것이죠. 그런 논리라면 위대한 화가뿐만 아니라 소설가도 화폐 인물 후보에 들어가지 못하게 됩니다. 다른 나라의 화폐에는 소설가, 화가, 음악가의 얼굴이 들어가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훌륭한 예술가들이 있으며 당연히 화폐의 얼굴이 될 자격이 있습니다.

2019-09-05 13: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카스피 2019-09-04 16: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신사임당을 우리는 조선시대 현모양처의 대명사처럼 알고 있는데 실제로는 뭐랄까 현대 여성처럼 자기주장과 개성이 강한 여장부였다고 하더군요^^

cyrus 2019-09-05 11:57   좋아요 0 | URL
‘현모양처’ 이미지나 그녀의 예술적 능력 때문에 사임당을 지폐 인물로 선정하는 것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예술적 능력도 화폐 인물의 자격 조건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