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목요일에 주문한 100단어로 읽는 중세 이야기를 토요일 오후에 읽기 시작했고, 바로 다음 날에 완독했다. 후딱 읽은 책이지만, 나의 귀중한 주말을 앗아간 문제의 책이다
















* 김동섭 100단어로 읽는 중세 이야기: 어원에 담긴 매혹적인 역사를 읽다(책과함께, 2022)




이 문제의 책을 비판하기 위한 자료를 찾느라 주말에 도서관 서너 군데를 이리러지 돌아다녔다. 도서관을 들락날락하면서 피와 눈물은 흘리지 않았지만, 땀은 많이 흘렸다비판적인 견해를 포함한 서평을 쓰면 글의 분량이 많아진다. 이러면 배보다 배꼽이 큰 서평이 되고 만다. 그래서 일단 배꼽’을 먼저 써보기로 한다.





* 32

 

 헨리 8세는 무려 여섯 왕비를 맞이했다. 그중 둘은 참수를 당했고, 한 명은 화병으로 죽고,[1] 한 명은 해산 중에 죽었으며, 또 한 명은 이유도 모른 채 소박을 맞아 쫓겨나 마지막 왕비만이 왕의 임종을 지켜보았다.

 


[1] 헨리 8(Henry VIII)의 여섯 왕비를 결혼한 순서부터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아라곤의 캐서린(Catherine of Aragon), 앤 불린(Anne Boleyn), 제인 시모어(Jane Seymour), 클레페의 앤(Anne of Cleves), 캐서린 하워드(Catherine Howard), 캐서린 파(Catherine Parr).

 

참수당한 왕비는 앤 불린과 캐서린 하워드다. 해산 중에 사망한 왕비는 제인 시모어다. 왕에게 쫓겨난 왕비는 아라곤의 캐서린이다. 클레페의 앤의 사인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학자들은 그녀가 암으로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캐서린 파는 헨리 8세가 죽은 해에 제인 시모어의 오빠 토머스 시모어(Thomas Seymour)와 재혼했다. 이듬해에 딸을 출산했지만, 며칠 뒤에 산욕열로 세상을 떠났다.


저자는 화병으로 죽은왕비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 주장의 출처가 궁금하다. 아라곤의 캐서린이 세상을 떠나자 헨리 8세 또는 앤 불린에 의해 독살되었다는 소문이 퍼졌다. 소문의 진원지는 캐서린의 시신을 부검한 의사가 작성한 보고서였다. 의사는 보고서에 그녀의 심장이 새까맣게 변했다고 썼다. 현대 의학 전문가들은 암세포가 퍼진 심장에 검은 종양이 생긴 것으로 보고 있다


화병은 미국 정신의학회가 편찬한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DSM-IV>‘hwa-byung’으로 표기되어 등재되었다. 그러나 2013년에 나온 다섯 번째 개정판인 <DSM-5>‘hwa-byung’ 항목이 삭제되면서 현재 화병은 정식 병명으로 분류되지 않는다.





* 133~134

 




 1537년에 태어난 제인 그레이는 헨리 8세의 증손녀(헨리 8세의 누이동생인 메리의 외손녀)였다. 헨리 8세에 이어 잉글랜드 왕위에 오른 에드워드 6세는 병약한 소년이어서[2] 주위에서는 누가 다음 왕이 될지 수군거렸다. (중략) 하지만 메리 공주는 격노하며 자신이 왕위를 계승할 자격이 있다고 주장했고, 왕실 자문회의도 메리의 손을 들어주었다. 결국 제인은 8만에 왕좌에서 내려왔다.[3] 그리고 얼마 뒤에 참수되었다. 역사에서는 그녀를 레이디 제인 그레이라고 부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에드워드 6세(Edward Ⅵ)는 태어날 때부터 건강했다. 헨리 8세는 자신의 후계자인 에드워드 6세를 애지중지 키웠다. 헨리 8세의 수석 비서관은 왕의 발육 상태를 정기적으로 지켜봤다. 그는 프랑스 대사에게 한 말에서 왕자의 건강한 상태를 언급했다. 왕자님의 건강이 좋으며, 힘껏 젖을 빨고 계십니다.”
















* [절판] 안드레아 배럼 인문학, 상식에 딴지걸다: 지적인 사람은 절대 참을 수 없는, 황당하고 뻔뻔한 역사의 착각(라의눈, 2015)

   



에드워드 6세는 네 살 때 말라리아에 걸렸다가 완치되었다. 이듬해 다섯 살이 된 왕자를 만난 프랑스 대사는 그가 잘생겼고, 강인하며, 같은 또래 아이들에 비해 엄청나게 큰 몸집이었다라고 증언했다. 영국 인명사전에 왕자가 검술과 마상 창술 겨루기를 즐겼다는 내용이 있다. (인문학, 상식에 딴지걸다188~189)
















* 엘리너 허먼 독살로 읽는 세계사: 중세 유럽의 의문사부터 김정남 암살 사건까지, 은밀하고 잔혹한 역사의 뒷골목(현대지성, 2021)




궁전 안에 테니스 경기장이 있었는데, 1551년의 기록에 따르면 이 해에 왕자가 뛴 테니스 경기 횟수는 293회다. (독살로 읽는 세계사142)

















* 앨리슨 위어 헨리 8세의 후예들: 메리 1, 에드워드 6, 엘리자베스 1, 레이디 제인 그레이(루비박스, 2005)




소년 왕을 미화하는 의도가 보이긴 하지만, 당대 사람들은 에드워드 6세를 건장하고 똑똑한 청년으로 묘사했다. 특이하게도 소년 왕의 왕성한 활동량을 강조한 증언과 반대되는 기록도 있다. 헨리 8세의 후계자들의 저자 앨리슨 위어(Alison Weir)에드워드 6세가 스포츠 활동보다는 머리를 쓰는 지적인 여가 활동을 선호했다고 주장한다. 소년 왕은 운동 신경이 좋았지만, 시합을 보는 것에 만족했다. 하지만 앨리슨 위어도 에드워드 6세의 병약한 소년 왕 이미지를 부정한다. 소년 왕이 스포츠 활동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의 신체가 부실하고, 어렸을 때부터 병약하다고 단정 지어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 (헨리 8세의 후계자들35)



[주3] 제인 그레이(Jane Grey)는 왕위에 오른지 9일 만에 폐위되었다(1553710~1553719). 그래서 그녀의 별명은 ‘9일 여왕이다.





* 169

 

 기원전 52년 골 지방의 알레시아 전투에서 카이사르의 로마 군단에 항복한 켈트족의 수장 베르킨케토릭스(Vercingetorix)의 이름은 rix가 있다. 그러고 보니 전설의 아서 왕과 실존 인물 베르킨게토릭스의 공통점이 발견된다. 두 영웅 모두 이민족의 침략에 맞서 싸웠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 사람은 전설 속에 남았고 한 사람은 로마로 끌려가 처형되었다.[4]



[4] 갈리아인(골 족)은 프랑스에 터를 잡은 켈트인이다. 켈트인은 프랑스 이외에 영국 남부, 아일랜드, 벨기에 등지에 살던 부족인데, 여러 부족을 단합하여 로마군에 맞선 인물이 베르킨게토릭스다.
















*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천병희 옮김 갈리아 원정기(도서출판 숲, 2012)

 

* 장 크리스토프 뷔송, 에마뉘엘 에슈트 13인의 위대한 패배자들: 한니발부터 닉슨까지, 패배자로 기록된 리더의 이면(책과함께, 2021)




베르킨게토릭스는 전술상의 한계와 판단 착오 등으로 카이사르의 로마군에 패했다. 그러나 갈리아족의 후예인 프랑스인들은 침략자 카이사르와 대등하게 맞서 싸운 베르킨게토릭스를 영웅으로 칭송한다. 최후의 항전인 알레시아 전투에서 패배를 직감한 베르킨게토릭스는 자유를 찾기 위해 함께 고군분투한 부족을 위해서 스스로 로마의 포로가 되었다. 베르킨게토릭스가 항복하는 장면은 카이사르의 갈리아 원정기7에 나온다.


갈리아 원정기7권은 갈리아 정복에 성공한 카이사르가 자화자찬하면서 마무리 짓는다. 본인을 역사의 승리자로 묘사한 카이사르는 알레시아 전투 이후에 패배자가 된 베르킨게토릭스의 행보와 최후를 언급하지 않았다. 13인의 위대한 패배자들은 카이사르가 쓰지 않아서 생긴 갈리아 원정기7권의 공백을 채워준다. 13인의 위대한 패배자들은 승자 위주의 기록으로 가득한 역사에 가려진 열세 명의 패배자를 재조명한 책이다.


이 책에 있는 베르킨게토릭스의 최후를 서술한 글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다베르킨게토릭스는 죽었다. 그러나 그의 전설은 살아났다.” 

 




* 176

 




 에드워드라는 이름은 빅토리아 여왕에 이어 20세기 초에 왕위에 오른 에드워드 7세에서 다시 등장한다. 하지만 모친이 62[5] 동안 왕좌에 있었기 때문에 에드워드 7세는 왕위에 오른 지 10년도 안 되어 세상을 떠나고 만다.

 

[5] 빅토리아 여왕의 재위 기간은 1837년부터 그녀가 사망한 1901년까지다. 여왕은 64년 동안 왕좌에 있었고, 그녀의 통치 기간을 빅토리아 시대라 한다.





* 184

 




 앙리 2세가 마상 시합에서 사고로 절명한 뒤에 장남 프랑수아 2세가 급사하고, 동생 샤를 9세 역시 유전병인 결핵[6]으로 요절한다.

 

[6] 과거에 불치병이었던 결핵은 유전병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독일의 병리학자 로베르트 코흐(Robert Koch)가 결핵균을 발견하면서 결핵은 유전병이라는 인식이 틀렸음이 밝혀졌다. 결핵은 결핵균이 공기를 통해 전파되면서 생긴다.





* 389

 




 영국에서는 엘리자베스 1세와 빅토리아 여왕을 비롯해 여왕이 일곱 명[7]이나 나왔지만, 프랑스에서는 단 한 명의 여왕도 찾아볼 수가 없다.

 

 


* 391




 

 마틸다는 왕이 될 자격이 충분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사회의 유리천장에 부딪혀서 왕이 되지 못한 불운의 여인이다. 이후 영국에서 첫 여왕이 출현한 것은 1553메리 1에 이르러서다[8]. (중략) 70년 넘게 왕위를 지키고 있는 엘리자베스 2(재위 1953~)[9]가 바로 그런 여왕들이다.

 


[7, 8] 마틸다 이후에 나온 영국 여왕은 제인 그레이다. 고작 9일 동안 왕위에 올랐기 때문에 그녀를 영국 국왕으로 인정해야 하는지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래서 다수의 역사가는 메리 1세를 영국의 첫 여왕으로 보고 있다.

 

저자는 영국에 일곱 명의 여왕이 나왔다고 썼다. 따라서 마틸다를 제외한 일곱 명의 여왕은 제인 그레이(재위 1553710~1553719), 메리 1(재위 1553~1558), 엘리자베스 1(재위 1558~1663), 메리 2(재위 1689~1694), (재위 1702~1714), 빅토리아 여왕(1837~1901), 엘리자베스 2(재위 1952~). 그런데 저자는 영국 최초 여왕이 메리 1세라고 주장했기 때문에, 영국 역대 여왕은 일곱 명이 아니라 여섯 명이다.

 


[9] 엘리자베스 2세가 왕위에 오른 연도가 틀렸다. 1953이 아니라 1952이다.





* 440







 신화의 이해의 발행 연도는 2013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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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버 2022-08-11 23:4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역사 관련 책이니만큼 출판사에서 팩트체크를 좀 더 철처하게 했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요 .... 늘 cyrus님의 바로잡기를 보면서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더운 여름 건강 유의하시고 시원한 여름밤 되시길 바랍니다.

cyrus 2022-08-15 08:27   좋아요 2 | URL
책 속에 검토해야 할 내용이 하나 더 있어서 자료를 알아보는 중이에요. 요즘 쓸 거리가 많아지고 있어요... ^^;;

새파랑 2022-08-12 07: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피해갈수 없는 사이러스님이군요. 주말을 빼앗은 책이라니 ㅎㅎ 역사책도 있는 그대로 믿으면 안되나 봅니다~!!!

cyrus 2022-08-15 08:31   좋아요 2 | URL
역사를 축약해서 쓴 책은 꼼꼼하게 읽어야 해요. 세부적인 내용이 빠져 있는 경우가 많거든요. ^^;;

mini74 2022-08-12 08: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토실토실 튼튼해보얐던 에드워드 6세 초상화가 떠오르네요. 그 시대 초상화라 과장도 있었겠지만 ㅎㅎ 사이러스님의 땀이 저 포함 많은 분들에게 도움이 됩니다. 고맙습니다 *^^*

cyrus 2022-08-15 08:33   좋아요 1 | URL
책을 살지 말지 고민하는 독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글을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햇살과함께 2022-08-12 10: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cyrus님에게 걸리면 다 죽었어 ㅎㅎ
출판사에서 엄청 감사해야 할 독자입니다!!

cyrus 2022-08-15 08:34   좋아요 1 | URL
이 글을 인스타그램에도 공개했어요. 그런데 출판사 측의 답변이 없네요. 제 글에 관심 없는가 봐요. ㅎㅎㅎ

레삭매냐 2022-08-12 10: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화병이 공식 질병이라고 하더니
이제는 아닌가 보네요.

대단하십니다 역시나 싸이러스 브로!

cyrus 2022-08-15 08:35   좋아요 2 | URL
화병을 우울증과 유사한 증상으로 보시면 됩니다. ^^

서니데이 2022-08-12 23: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에는 수정해야 할 부분이 꽤 있었네요.
오타나 번역에서 달라진 내용도 있겠지만, 원서에서 잘못 서술된 내용도 있을 수 있겠어요.
잘읽었습니다. cyrus님, 즐거운 광복절 연휴 보내세요.^^

cyrus 2022-08-15 08:38   좋아요 2 | URL
저자가 책을 쓰기 위해 수집한 자료에도 오류가 있을 수 있어요. 그래서 책을 비판하는 서평을 쓸 때 자료를 신중하게 살펴보는 편이에요. ^^

2023-03-19 17: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셜록 홈즈 다시 읽기 - 홈즈의 비밀을 푸는 12가지 키워드
안병억 지음 / 열대림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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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협찬받고 쓴 서평이 아닙니다.




평점


2.5점   ★★☆   B-






1837년부터 시작된 영국 빅토리아 시대(Victorian Age)는 소설의 황금기다. 이 시대에 훌륭한 작가들이 무수히 활동했다. 당대 최고의 인기 작가는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였다. 그는 빅토리아 시대의 번영에 가려진 각종 사회적 문제와 빈민층의 애환을 묘사했다. 윌리엄 새커리(William Thackeray)조지 엘리엇(George Eliot)의 소설은 베스트셀러였다남성 필명으로 소설을 발표한 브론테 자매(Brontë sisters)는 앞의 세 사람에 비하면 생전에 명성을 얻지 못했지만, 사후에 그녀들의 작품은 걸작으로 칭송받는다조지 메러디스(George Meredith)앤서니 트롤럽(Anthony Trollope)국내에 번역된 작품이 없지만, 이 두 사람의 이름은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빅토리아 시대에 여성이 소설의 생산 주체이자 소비 주체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독자의 흥미를 유발하는 통속소설이 유행했다. 이혼, 삼각관계, 불륜, 사기 등 자극적인 소재를 다룬 통속소설의 홍수에 휩쓸리지 않고, 지금도 널리 읽히고 있는 소설이 있다. 그 소설이 바로 아서 코난 도일(Arthur Conan Doyle)셜록 홈스(Sherlock Holmes)’ 시리즈홈스 팬들은 셜록 홈스 시리즈 전 작품을 경전이라고 부른다.


셜록 홈스 시리즈는 추리소설 또는 범죄소설로 분류된다. 이렇다 보니 이 작품을 빅토리아 시대를 이해하기 위한 소설로 언급되는 경우가 드물다홈스는 종종 방 안에서 리볼버 권총으로 사격 연습을 한다. 머즈그레이브 전례문(The Adventure of the Musgrave Ritual)[주1]에 그가 맞은편 벽에 총을 쏘면서 ‘V.R.’이라는 글자를 새기는 장면이 나온‘V.R.’은 빅토리아 여왕(Victoria Regina)의 머리글자다. 


셜록 홈스 시리즈는 빅토리아 시대의 정치 · 사회 · 문화적인 분위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소설이다셜록 홈즈 다시 읽기: 홈즈의 비밀을 푸는 12가지 키워드는 홈스와 그를 창조한 코난 도일이 살았던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을 자세히 보여주는 돋보기. 소설 속에 사는 인간과 소설 밖에서 산 인간의 삶에는 급속한 산업화와 제국주의의 부상 등이 겹친 영국의 시대상이 스며 있다책으로 된 돋보기는 <경전>을 깊이 읽기 위한 열두 가지 주제를 확대해 독자들에게 보여준다.


첫 번째 주제는 컨설팅 탐정(consulting detective)’이다. 홈스는 명석한 두뇌를 가진 탐정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다. 또 한편으로는 시대가 만든 컨설팅 탐정이기도 하다. 산업화의 물결이 출렁이는 런던은 자본주의의 중심지였다. 그러나 물결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빈곤과 무질서가 얼룩져 있었다. 도시가 번성할수록 빈민들은 더 가난해졌다. 경찰이 손 쓸 수 없을 정도로 범죄가 판을 쳤다. 자본주의가 뿜어낸 수증기는 스모그(smog)가 되어 런던 전역을 덮쳤다. 누런빛을 띤 스모그는 무지와 범죄의 온상이 되었다. 유능한 컨설팅 탐정 홈스는 독한 스모그에 갇힌 런던을 구원하는 존재이다. 그합리적인 이성을 지향하는 계몽주의와 고삐 풀린 자본주의가 혼재된 빅토리아 시대가 낳은 인물이다.


책 돋보기 렌즈는 홈스의 명성에 가려져 잘 알려지지 않은 코난 도일의 삶에 초점을 맞춘다. 제국주의의 영화를 누린 런던의 지식인과 작가들은 대영제국의 패권주의를 옹호했다. 코난 도일은 대영제국이 일으킨 전쟁을 지지하는 글을 썼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전쟁에 참전해서 대영제국의 첨병이 되고자 했다. 몇몇 단편에는 식민지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도일의 편견이 드러나 있다. 창백한 병사(The Adventure of the Blanched Soldier)[주2]는 식민지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둘러싼 영국과 보어인(Boer, 남아공에 정착한 네덜란드인) 간의 전쟁을 배경으로 한 단편이다. 보어전쟁을 지지한 도일은 이 소설에서 전쟁에 참전한 영국군을 영웅처럼 묘사했다.


계몽주의적 탐정 홈스는 이성의 범위에서 한참 벗어난 초자연 현상과 유령의 존재를 부정한다. 이와 정반대로 홈스를 창조한 도일은 심령주의에 심취했다. 그는 과학과 이성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신비한 현상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도일을 흥분하게 만든 유명한 초자연 현상이 코팅리의 요정(Cottingley fairies)’ 사건이다이 사건의 발단은 코팅리라는 마을에 사는 소녀와 요정들이 함께 찍힌 사진이었다. 가짜로 판명된 사진이었지만, 도일은 사진 속 요정이 진짜라고 주장했다. 의사가 되기 위해 의학을 공부했던 도일은 어쩌다가 심령주의에 빠졌는가. 그는 이 세상에 이성의 힘이 미치지 못한 불가사의한 스모그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희뿌연 스모그를 걷어낼 수 있는 유일한 학문이 심령주의라고 믿었다.


셜록 홈스 시리즈는 단순히 흥미진진한 추리소설이 아니다. 빅토리아 시대라는 이름으로 남은 역사를 품은 지층과 같은 소설이다. 독자는 역사의 지층 속에 있는 영국인들의 삶과 가치관을 발굴하면서 읽을 수 있다지금도 수많은 홈스의 열혈 팬 셜로키언(Sherlockian)과 홈지언(Holmesian)은 <경전>을 수없이 반복해서 읽는다. 그들은 사소한 문장 하나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문장 속에 감춰진 색다른 의미를 찾아내거나 거기에 새로운 해석을 부여한다셜록 홈즈 다시 읽기는 <경전>을 다시 읽게 만들며, 홈스와 코난 도일을 다시 보게 만든다. , 홈스 시리즈를 아직 읽지 않은 독자에게는 이 책을 권할 수 없다. 작품 결말이 나오기 때문이다. 반드시 홈스 시리즈의 모든 작품을 다 읽고 난 후에 책 돋보기를 사용하시라.


그런데 셜록 홈즈 다시 읽기 홈스 마니아라면 분명히 지적할 수 있는 대목이 몇 개 보인다책 돋보기가 생각보다 정확하지 않다후속 개정판 셜록 홈스 또다시 읽기가 나와야 할 듯하다.


 얼룩무늬 밴드(The Adventure Of The Speckled Band)[주3]는 도일 본인이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한 단편 중 하나다. 이 작품에서 홈스는 추론과 소거법을 사용해서 한 여인의 목숨을 앗아간 존재를 밝힌다. 홈스는 그 존재의 정체가 인도에서 제일 위험한 연못 독사(swamp adder, 늪 살모사’로 번역한 책도 있다)’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홈스 연구자들은 홈스의 결론에 치명적인 결함이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인도에 늪 독사라는 종이 존재하지 않는다. 홈스가 목격한 독사의 정체는 무엇일까? 


윌리엄 스튜어트 베어링굴드(W. S. Baring-Gould)는 가장 유명한 셜로키언이며 경전연구가다. 그는 경전을 토대로 홈스의 (가상) 일대기를 정리한 베이커 가의 셜록 홈즈(Sherlock Holmes of Baker Street: A Life of the World's First Consulting Detective, 1962)를 썼다이 책에 홈스의 가족사가 나온다.



* 72

 



 부모님은 형 마이크로프트와 누나 쉐린포드 그리고 홈스를 데리고 

유럽 대륙을 자주 여행했다.



마이크로프트(Mycroft Holmes)는 <경전>에 유일하게 등장하는 홈스의 혈육이다. 셜록 홈즈 다시 읽기의 저자는 쉐린포드(Shellingford)누나라고 잘못 소개했. 베어링 굴드의 책에 언급된 쉐린포드는 홈스의 ‘맏이다. 마이크로프트는 둘째 형이다. 쉐린포드는 1845년에, 마이크로프트는 1847년에, 그리고 막내 셜록은 1854년에 태어났다. 셜록 홈스의 아버지는 장남 쉐린포드가 자신의 땅을 물려받아 대지주가 되길 원했다[주4].


셜록 홈즈 다시 읽기의 여섯 번째 주제는 신여성이다. 너도밤나무 집(The Adventure Of The Copper Beeches)[주5]에 등장하는 의뢰인인 바이올렛 헌터(Violet Hunter)의 직업은 가정교사. 가정교사는 당시 영국의 젊은 신여성이 선호한 직업이다. 저자는 빅토리아 시대의 가정교사는 돈을 벌고 어느 정도 대접을 받으며 독립적인 인격체로 살아갈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117). 하지만 저자의 견해는 사실과 다르다. 실제 가정교사의 급여는 매우 낮은 수준이었다. 교양이 있는 직업인데도 하녀로 취급받았다. 그리고 남성 고용주에게 괴롭힘을 당하거나 성범죄의 표적이 되기 쉬웠다[주6].



* 231




 영국 소설가 브램 스토커1897년에 드라큘라를 출간했다.



브램 스토커(Bram Stoker)는 영국에서 작가로 활동한 아일랜드 출신이다.




* 참고 문헌 240




시공사 시간과공간사



전두환 전 대통령의 아들이 설립한 출판사와 시간과 공간사는 서로 다른 회사다.






*


[1] 셜록 홈스의 회상록(The Memoirs of Sherlock Holmes)에 수록.

 

[2] 셜록 홈스의 사건집(The Case-Book of Sherlock Holmes)에 수록.

 

[3] 셜록 홈스의 모험(The Adventures of Sherlock Holmes)에 수록.

 

[4] 정태원 옮김, 베이커 가의 셜록 홈즈, 태동출판사, 2011, 10쪽과 16쪽 참조.

 

[5] 셜록 홈스의 모험에 수록.

 

[6] 레슬리 S. 클링거 주석 및 편집, 승영조 옮김, 주석 달린 셜록 홈즈 1: 셜록 홈즈의 모험, 현대문학, 2013, 509~510쪽 주석 12번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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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2-08-06 14: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이쿠 좀더 정교한 조사가 필요했는데 부족했나 봅니다. 이런 걸 탁 캐치해내시는 cyrus님 완전 신기~!!

cyrus 2022-08-07 14:14   좋아요 0 | URL
저 역시 잘못 알고 있는 지식을 사실이라고 착각할 때가 있어요. 그래서 스스로 개선하기 위해 책을 더 찾게 되고, 읽으려고 해요. 책을 읽으면서 내가 옳다고 믿었던 지식이 틀렸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다시 태어나는 기분이 들어요. ^^

얄라알라 2022-08-06 15: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스모그를 걷어낼 유일한 학문이 심령주의라고, 도일이 믿었다는 점은 cyrus님의 글을 읽지 않고서는 반대로 생각했을 점이네요. 이런 깊이로 공부하고 책 읽어야 하나봅니다. 셜록 홈즈 시리즈 좋아했다면서도 수박 겉만 핥다가 뜨끔하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cyrus 2022-08-07 14:25   좋아요 0 | URL
셜록 홈스 이야기를 깊이 읽으려면 영국사와 빅토리아 시대의 문화를 알아야 해요. 이런 방식으로 읽으면 단편 한 편 다 읽는 데 시간이 걸려요. 공부하듯이 소설을 읽는 것을 추천하고 싶지 않습니다. ^^

새파랑 2022-08-07 08: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협찬받아 쓰셨다면 별 두개를 안주셨겠죠? ^^ 역시 사이러스님의 날카로움을 피해갈 수 없군요~!!

cyrus 2022-08-07 14:33   좋아요 1 | URL
협찬받은 책이 생각보다 완성도가 떨어지고, 개선해야 할 내용이 있으면 그게 왜 문제가 되는지 솔직하게 씁니다. 그리고 낮은 평점을 매깁니다. ^^

안병억 2022-08-07 11: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이러스님, 세심한 리뷰와 문제 지적 감사합니다. ‘셜록 홈즈 다시 읽기’의 머리말은 국내외 셜록키언의 다른 해석이나 비평을 언제든지 환영한다고 쓰고 있습니다(p.7). 아래의 답변을 드립니다. 저자가 수용한 사실상의 오류는 2판 인쇄에 반영하겠습니다.
1) 셜록의 누나를 쉐린포드로 오해했습니다. 유명한 홈지언 정태원 선생님의 번역본 출판사도 착각했습니다.
2) 아일랜드는 1921년 독립하기 전까지 통합왕국 영국(UK)에 속했습니다. 브램 스토커는 아일랜드 출신이지만 국적은 영국입니다.
3) 신여성의 표본으로서 가정교사의 처우 문제
-지적하신대로 가정교사의 봉급은 낮았고 종종 집주인의 범죄 표적이 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영석 교수의 저서 <<제국의 초상>>(푸른역사, 2009) 5장 딸들의 반란에서 분석하듯이 당시 교육받은 여성이 일할 수 있는 일자리는 매우 제한되었고 남녀 간 임금차별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또 ‘경전’에 의뢰인으로 나오는 가정교사 가운데 <너도 밤나무집>의 바이올렛 헌터를 제외한 나머지 여성들은 비교적 집주인으로부터 인정을 받고 보수도 괜찮은 편이었습니다. 그래서 저자는 “이들은 돈을 벌고 어느 정도 대접을 받으며 독립적인 인격체로 살아갈수 있었다.”라고 해석했습니다. 어느 정도를 강조합니다.

cyrus 2022-08-07 14:59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안병억 교수님. 제 서평을 보시고 이에 대한 답변을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브램 스토커가 살았던 시기에 아일랜드는 영국의 속국이었죠. 그 당시 역사적 배경을 생각하면 스토커의 국적은 영국이 맞아요. 하지만 이제는 영국 식민지였던 아일랜드에 태어난 인물의 국적을 아일랜드로 표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위키피디아 영문판의 ‘브램 스토커’ 항목에는 ‘Irish author’로 되어 있어요. 안 교수님의 말씀대로라면 윌리엄 예이츠와 제임스 조이스의 국적도 영국이어야 합니다.

예전에 어떤 책에서 본 건데요, 그 책을 쓴 저자는 영국 출신 노벨상 수상자에 아일랜드인까지 포함했어요. 다른 사람은 이 부분을 어떻게 볼지 모르겠으나 저는 영국 출신 노벨상 수상자와 아일랜드 출신 노벨상 수상자를 구분해서 보는 편입니다.

안 교수님이 언급한 <영국 제국의 초상>을 읽어 보겠습니다. 빅토리아 시대 가정교사의 실상을 여러 각도로 바라보고 이해하는 데 참고가 될만한 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영국 제국의 초상>을 읽은 후에 빅토리아 시대 신여성과 가정교사를 주제로 한 글을 새로 써보려고 합니다. 새로 쓰는 글에서는 일방적으로 안 교수님의 견해를 지적한 저의 견해가 틀렸음을 인정하고, <영국 제국의 초상> 속 내용을 반영하겠습니다. 제가 찾아보지 못한 책을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나카노 교코의 서양기담 - 무섭고도 매혹적인 21가지 기묘한 이야기
나카노 교코 지음, 황혜연 옮김 / 브레인스토어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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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점


2점   ★★   C





책을 협찬받아 쓴 서평이 아닙니다.





역사는 정사(正史)와 야사(野史)로 나뉜다. 정사는 정확한 사실에 바탕을 둔 역사다. 야사는 민간에서 전해지는 역사다. 정사는 엄밀한 고증에 충실하여서 건조한 편이다. 반면 야사는 정사에서 다루지 않는 은밀하고도 은폐된 사료에 주목한다. 야사가 정사보다 더 흥미로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기담(奇談)은 야사에 속하지만, 사실보다는 허구일 가능성이 높다풍문에 떠도는 이야기에 호사가들 개개인의 상상력이 덧붙여지면 기담이 된다어디부터 어디까지 사실인지 알 수 없는 기담은 역사책에 보기 힘들다. 나카노 교코의 서양 기담은 당대를 떠들썩하게 만들었지만 정작 역사책에 제대로 기록되지 않은 기이하고 무서운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다저자는 하멜른(Hameln)의 피리 부는 사나이, 도플갱어(doppelgänger) 전설, 드라큘라(Dracula), 엑소시스트(exorcist), 백악관에 출몰하는 유령 등 미스터리 마니아가 좋아할 만한 21가지 기담을 소개한다.



 세상에는 과학이나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기묘한 일이 때때로 일어난다. 이를 거짓이나 착각으로 일축하기보다, 오랫동안 입에서 입으로 전해온 이야기에는 무언가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고 믿는 마음이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 아닐까. 어렴풋한 진실의 조각이 묻혀 있는 느낌도 든다. 무엇보다 신비로운 사건에는 매력이 가득하다.

 각양각색의 기담을 부디 한껏 즐기시기를.

 

(에필로그 나카노 교코의 초대장중에서, 175)



저자는 기담을 모아놓은 자신의 책을 독자들에게 보내는 초대장이라고 말한다그래서 에필로그 제목이 나카노 교코의 초대장이다저자의 초대장을 받는 독자들은 과학으로 설명하기 힘든 기담을 거짓이 아니라고 믿을 것이다. 저자는 이런 마음이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기담을 모으는 것과 듣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하지만 진실 한 점 찾기 힘든 기담을 무조건 실제로 일어난 일이라고 우기면 바람직하지 않다. 기담에 향한 지나친 믿음은 현실에 대한 냉철한 판단을 흐리게 만든다.


나카노 교코의 서양 기담은 독자들에게 선뜻 내놓고 싶지 않은 부끄러운 책이다. 21가지 기담을 채워 독자들의 흥미를 유발하는 저자의 초대장에 문제가 많다. 여기에 사실과 다른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저자는 와전된 내용을 검증하지 않고, 마치 사실인 것처럼 전달하고 있다나는 이 초대장을 찢어버리고 싶다허구에 가까운 기담을 재미로 즐기면 안 되느냐고 생각하는 혹자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진실이 아닌 이야기가 퇴색되어가는 일말의 진실마저 지워버리면 곤란하다.



 현재 일반에 공개된 고문실에는 철의 처녀(여성 형태의 사람을 집어넣고 쇠못이 박힌 문을 닫아서 죽이는 도구), 가시 의자, 손가락 나사, 달군 인두, 거꾸로 매달아서 가두는 우리 등 무시무시한 고문 도구가 전시되어 있다. (41)

 


영국의 칠링엄 성(Chillingham Castle)에 전쟁 포로를 죽이기 위해 만든 고문실이 있다. 일반인에게 공개된 고문실에 실제로 중세 시대에 사용된 고문 도구들이 진열되어 있다. 그곳에 철의 처녀라는 별명이 더 유명한 아이언 메이든(iron maiden)도 있다. 아이언 메이든은 야만적이고 잔혹한 중세의 형벌을 상징하는 고문 도구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중세 시대에 아이언 메이든을 고문에 사용되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아이언 메이든은 실제로 사용된 고문 도구가 아니다18세기 작가들이 쓴 문학 작품에 묘사된 내용을 토대로 만들어진 것이다.



 고대 그리스인은 길을 지배하는 저승의 여신 헤카테와 여행자의 수호신인 헤르메스에게 십자로를 바쳤으며 길 위에 신성한 돌을 올리고 기도했다. (141)



헤카테(Hekate)마법과 주술의 신이다. 이승과 저승의 경계 또는 저승으로 향하는 문을 지키는 수호신이기도 하다.



하프의 명수 오르페우스는 바쿠스의 무녀들에게 찢겨 죽었다. (147)

 


하프와 비슷하게 생긴 발현악기가 리라(lyra). 그래서 아폴론(Apollon)이나 오르페우스(Orpheus)가 연주하는 악기를 하프로 번역되는 경우가 많지만, 리라는 구조상 하프와 다르다.



 한 사람의 옷에서는 방사성 물질이 검출되었다. 여자는 갈비뼈가 9개나 부러지고 심장에서 출혈이 다량 발생하였으며 입에서는 혀만 통째로 사라진 참혹한 모습이었다

                                    (165, ‘21화 디아틀로프 사건)

 


디아틀로프 사건1959년 러시아 우랄산맥에서 아홉 명의 탐사대가 전원 사망한 미제 사건이다. 디아틀로프(Dyatlov)는 희생된 탐사대장의 이름이다. 당시 소련 정부는 단순한 조난 사고라고 발표했지만, 사고의 원인은 여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이 사건을 조난 사고라고 보기 어렵게 만드는 여러 가지 의문점이 있는데, 특히 호사가들이 주목한 의문점은 두 명의 희생자가 입은 옷에 검출된 다량의 방사성 물질, 혀만 사라진 여성 대원의 시신이다. 그러나 이 모든 내용은 사실이 아니다. 두 명의 희생자는 방사성 물질을 다루는 일을 했으며 그들의 옷에 검출된 방사성 물질은 과하게 높은 수치는 아니었다. 시신의 혀는 금방 부패하기 쉬운 부위다. 사망한 여성 대원의 혀는 예리한 도구로 잘려 나간 것이 아니라 미생물에 의해 썩으면서 사라진 것이다. 나머지 사망자들의 혀 역시 금방 썩어서 없어진 상태였다. 희생자와 관련된 사실과 다른 내용은 사건을 과장되게 보도한 황색언론이 만든 허위 정보다. 문제는 이 잘못된 정보가 필터링되지 않은 채 지금도 인터넷에 공유되고 있다. 저자는 사실인 걸로 착각하고 그대로 썼다. (참고 자료: 이상한 옴니버스 [우랄산맥 미스터리 실종 사건의 진실]) https://blog.naver.com/medeiason/120141143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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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3-10 2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 이심전심입니다 ~

cyrus 2022-03-19 15:08   좋아요 1 | URL
명화 몇 점이 포함된 불가사의 모음집 같았어요.. ^^;;

감은빛 2022-03-11 09: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말씀하신 것처럼 많은 사람들은 건조하고 딱딱한 정사보다는 이런 류의 야사에 훨씬 더 관심이 있고, 그래서 금방 널리 퍼지죠. 인터넷 시대에는 더더욱 그런 것 같아요

cyrus 2022-03-19 15:14   좋아요 1 | URL
소문과 괴담을 재미로 가볍게 받아들이면 괜찮은데, 이걸 진짜라고 박박 우기는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 동조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생기지 않아요. 그냥 무시합니다. 소문이 사실로 판명되면 자신의 주장이 옳았다면서 과시할 겁니다. 우연히 얻어걸렸을 뿐인데 말이죠. ㅎㅎㅎ
 




히파티아(Hypatia)는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태어나고 활동한 수학자이자 철학자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학자인 아버지로부터 다양한 학문을 교육받은 수재였다. 성인이 된 히파티아는 학생들에게 기하학과 철학, 천문학을 가르치는 교사로 활동했다. 그는 아버지와 함께 수학 교과서의 주석을 썼다. 이 주석서는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한 교과서로 사용되었다. 히파티아 혼자 수학자 디오판토스(Diophantos)와 천문학자 프톨레마이오스(Ptolemaeos)의 책에 대한 주석서를 썼지만, 안타깝게도 온전한 상태의 문헌이 남아 있지 않다.

 

히파티아는 뛰어난 학자였지만, 많은 사람은 그의 끔찍한 최후를 생전 활동보다 더 많이 기억한다. 후대의 역사가들은 히파티아를 그리스 최후의 여성 수학자 또는 기독교에 희생당한 학문의 순교자로 평가한다. 알렉산드리아는 과학이나 철학, 기하학 등의 학문을 자유롭게 공부할 수 있는 문화가 형성되었고, 수많은 장서를 보유한 도서관이 있는 학문의 도시였다. 그러나 이러한 분위기에 불만을 느낀 기독교인들은 히파티아의 지적 활동을 이교도의 소행으로 보기 시작했다. 특히 알렉산드리아의 교부 키릴로스(Kyrillos)는 기독교의 교리를 보호하기 위해 철학과 수학을 이교도의 학문으로 규정하여 배격했다키릴로스를 추종한 기독교 광신도들은 마차에 타고 있던 히파티아를 습격해 폭행을 가했다. 그들은 히파티아를 발가벗긴 다음 굴 껍데기로 피부를 벗기는 고문을 자행했다(어떤 고대의 역사가는 히파티아가 키릴로스의 사주를 받은 광신도들에게 살해당했다고 주장했다. 히파티아의 피부를 벗길 때 사용한 도구가 날카로운 도자기 파편이라고 기록한 문헌이 있다). 잔인한 고문을 당한 히파티아는 산 채로 불에 태워졌다.
















* 에드워드 기번 로마제국 쇠망사 4(민음사, 2009)

* 칼 세이건 코스모스(사이언스북스, 2006)




후대의 학자들, 특히 계몽주의자와 과학사학자들은 히파티아의 죽음을 고대 그리스부터 시작된 모든 학문이 기독교의 영향력에 의해 매몰된 암흑시대’의 시작으로 봤다. 프랑스의 계몽주의 사상에 영향을 받은 영국의 역사가 에드워드 기번(Edward Gibbon)로마제국 쇠망사에서 히파티아의 죽음을 성인으로 추대된 키릴로스의 품성에 지울 수 없는 오점이라고 평가했다(447519). 칼 세이건(Carl Sagan)코스모스에서 히파티아를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마지막 등불을 지킨 여인(58)’으로 소개했고, 그 역시 히파티아의 죽음 이후를 고대 과학이 쇠퇴하기 시작한 암흑시대’였다고 주장했(662).


작가와 예술가들은 히파티아를 아름다운 외모를 지닌 비운의 천재로 묘사했다. 히파티아의 삶을 소재로 한 영화 <아고라>는 기독교가 지배한 비이성적인 시대에 맞서다가 희생된 천재 학자의 모습을 재현했다.




















































* 김정희 수학 아라비안나이트(RHK, 2009)

 

* 김형근 아테네 학당: 인류의 위대한 거인들과의 만남(영림카디널, 2011)

 

* 클리퍼드 픽오버 수학의 파노라마: 피타고라스에서 57차원까지 수학의 역사를 만든 250개의 아이디어(사이언스북스, 2015)

 

* 김홍식 세상의 모든 지식(서해문집, 2015)

 

* 마이클 J. 브래들리 달콤한 수학사 1: 탈레스의 증명부터 피보나치의 수열까지(Gbrain, 2016)

 

* 김진용 수학과 문명의 스케치(2, 경문사, 2016)

 

* 이만근 아라비아에는 아라비아 숫자가 없다(경문사, 2016)

 

* 줄리아 피어폰트, 만지프 타트 페미니스트 99(민음사, 2018)

 

* 차길영 교실 밖으로 꺼낸 수학이 보이는 세계사(지식의숲, 2019)

 

* 신기영 수학은 자유이다(수정증보판, 북스힐, 2020)

 



히파티아의 죽음은 기독교가 학문의 자유를 탄압한 사례 중 하나로 알려졌다. 과학 또는 수학의 역사를 다룬 책을 쓴 저자들은 히파티아의 최후에 관한 전설을 인용하면서 그녀를 종교의 광기에 희생당한 학자로 묘사했다(수학과 문명의 스케치, 수학은 자유다, 수학의 파노라마, 달콤한 수학사 1, 아라비아에는 아라비아 숫자가 없다, 아테네 학당, 세상의 모든 지식, 페미니스트 99). 몇몇 저자는 히파티아가 여성이라는 이유로 남성 중심의 사회로부터 차별을 받았고, 결국 마녀로 몰려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했다고 썼다(교실 밖으로 꺼낸 수학이 보이는 세계사, 수학 아라비안나이트).


하지만 지금까지 알려진 히파티아의 죽음에 얽힌 이야기와 이에 대한 후대의 평가는 사실과 다르다. 시간이 흐를수록 히파티아는 아름다운 외모와 뛰어난 재능을 모두 가진 특별한 여성으로 알려지게 되었고, 반기독교주의자들은 기독교의 종교적 광신을 비판할 때 히파티아를 거론했다히파티아의 죽음에 대한 전설은 기독교를 비판한 계몽주의 사상가와 반기독교주의자의 입맛에 맞게 윤색되었다. 미화된 전설을 그대로 받아들인 학자들은 고대부터 전해 내려온 학문적 유산을 가차 없이 파괴하여 유럽 지성사를 후퇴시킨 원인으로 과학과 철학을 거부한 기독교를 지목했다지식을 체계적으로 검증하고 비판하는 회의주의자로 알려진 칼 세이건도 전설을 인용하면서 히파티아의 죽음에 대한 편파적인 해석을 고수했다.

















* [품절] 마리아 드스지엘스카 히파티아: 고대 그리스가 사랑한 여인(우물이있는집, 2002)




체코의 역사가 마리아 드스지엘스카(Maria Dzielska) 히파티아 기독교를 공격할 때마다 거론된 히파티아 신화에 가려진 진실을 밝힌 책이다. 마리아는 히파티아를 종교적 광신의 희생자가 아니라 키릴로스와 히파티아의 친구인 로마 제국의 제독 오레스테스(Orestes) 사이에 일어난 정치적 대립에 휘말린 희생자였다고 주장한다. 오레스테스는 기독교인이었다. 히파티아는 기독교인들을 호의적으로 대했으며 관직에 등용된 기독교인들에게 존경받는 학자였다.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고 싶었던 키릴로스는 히파티아와 친하게 지내는 오레스테스가 거슬렸고, 이를 빌미로 히파티아를 이교도로 몰아세워 탄압했다. 히파티아가 죽고,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파괴된 이후에도 고대 과학과 철학은 발전했다그리고 마리아가 쓴 히파티아 전기에 따르면 죽음을 맞이한 히파티아의 실제 나이는 60세였다. 소설과 그림 속에 묘사된 ‘젊고 아름다운(관능적인) 여성히파티아는 왜곡된 전설이 만들어낸 이미지다.
















* [절판] 로널드 L. 넘버스 엮음 과학과 종교는 적인가 동지인가(뜨인돌, 2010)




과학과 종교는 적인가 동지인가》는 과학을 배척한 기독교라는 오래된 통념을 반박하는 학자들이 모여 만든 책이다. 이 책에 히파티아의 죽음을 고대 학문이 쇠퇴하는 시점으로 보는 해석에 반론을 제기하는 내용의 글이 수록되어 있다. 이 글의 글쓴이는 마리아의 히파티아 전기를 인용했다.
















* 김용관 수냐의 수학 영화관: 영화로 수학 읽기, 수학으로 세상 읽기(궁리, 2013)




영화의 주요 소재로 다루어지거나 간접적으로 묘사된 수학과 수학자들과 관련된 이야기를 모은 수냐의 수학 영화관에 히파티아의 생애와 학문적 성과를 소개한 내용이 나오는데, 저자는 히파티아가 기독교인들과 원만하게 지냈던 사실을 언급하면서 그의 죽음을 기독교에 의한 희생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주장한다(163). 국내에 출간된 교양 과학도서의 저자들은 히파티아 전설을 제대로 검증하지 않은 채 인용했다. 하지만 수냐의 수학 영화관의 저자(자신을 수학 스토리텔러라고 소개했으며 수냐는 저자의 별칭이며 비어 있음’, 0을 뜻하는 인도어다)는 히파티아의 죽음에 대한 과장된 해석에 의해 부풀려진 전설을 비판적으로 보고 있다


히파티아의 최후과 관련된 전설이 너무 많이 알려지다 보니 일부 페미니스트는 히파티아를 남성 중심 기독교의 희생양이었다고 주장한다. 이 견해 또한 역사적 사실과 맞지 않다. 히파티아는 젊은 학생들의 스승이었다. 그의 강의를 듣기 위해 수많은 인파가 모여 줄을 섰다고 한다. 그의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은 고위직 관리나 성직자가 되었고, 히파티아를 직접 찾아가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물론 히파티아를 남성 중심의 학계에 침범한 여성으로 보거나 그의 재능을 받아들이지 못한 기독교인 남성들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여자가 아닌 현자로 살아온 히파티아의 모습을 보여주는 사료들이 남아 있다. 그러므로 히파티아를 단순히 성차별을 받으면서 살아온 여성으로 볼 수 없다.


지금까지 살펴본 히파티아 전설과 그의 죽음을 바라본 학자들의 입장을 살펴보면 공통으로 ‘젊은 여성’, ‘순교’, ‘희생이라는 단어가 들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남성 작가와 예술가들은 히파티아의 여성성과 관능적인 매력을 부각했다면, 학문의 자유를 중시한 학자와 사상가들은 히파티아를 기독교에 맞서다가 희생당한 최후의 천재로 만들었다. 그들은 곳곳에 비어 있는 형태로 전해져온 알렉산드리아 현자의 생애에 자신들이 보고 싶은 것들을 채워 넣었다. 결국 히파티아의 생애에 대한 진실은 완전히 잊혔다. 역사적 진실과 정당한 평가가 있어야 할 자리에 부실하기 짝이 없는 가공된 전설만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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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5-19 2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신이 보고싶어하는 것만을 보는 것은 너무 흔히 저질러지는 일이고 경계해야 할 일이에요. 히파티아의 죽음이 이렇게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이용당해 온 것은 오늘 또 처음 알았네요. 항상 cyrus님 글에서 많이 배우고 갑니다. ^^

cyrus 2021-05-23 17:44   좋아요 0 | URL
역사를 공부해보면 전설이 진실로 잘못 알려진 사례들을 확인할 수 있어요. 저도 히파티아에 대한 진실을 최근에 알았어요. ^^

2021-05-20 02: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21-05-23 17:50   좋아요 1 | URL
히파티아의 죽음을 ‘마녀사냥’의 예로 언급하는 저자들이 있어요. ‘마녀사냥’ 하면 중세의 어두운 역사를 대표하는 사건으로 생각하지만, 실제로 마녀사냥과 마녀 재판은 르네상스 시대에도 있었어요. 갑자기 생각났는데, 어렸을 때 저는 뜨거운 쇳물에 아기를 넣어 만들었다는 에밀레종의 전설을 실제로 믿었답니다. 에밀레종의 인신공양 전설은 1920년대에 나온, 사실과 거리가 먼 이야기입니다. ^^

mini74 2021-05-20 10: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히파티아의 죽음에 대해 새로운 사실을 알고 갑니다 이렇게 왜곡되고 이용강하다니 ㅠㅠ

cyrus 2021-05-23 17:51   좋아요 1 | URL
히파티아의 삶과 업적에 대해 조사하면 할수록 괜히 제가 부끄럽더라고요. 저도 히파티아를 그저 끔찍한 최후를 맞은 여성 천재로만 알고 있었거든요. ^^;;

초딩 2021-06-04 22: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cyrus 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
행복한 금요일 밤 되세요~

새파랑 2021-06-04 22:24   좋아요 0 | URL
저도 정말정말 축하드려요^^

서니데이 2021-06-04 22: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cyrus님 축하드립니다^^

이하라 2021-06-05 1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yrus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보이지 않은 역사 - 한국 시각장애인들의 저항과 연대
주윤정 지음 / 들녘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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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점   ★★★★   A-






장애 역사(disability history)는 비장애인에게 생소한 분야이다. 장애 역사에 대한 생소함을 풀어줄 책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아마도 비장애인들은 장애 역사를 다룬 책이 단 한 권도 본 적이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들이 보지 못한 책은 세상에 나오지 않은 책’, 즉 미출간된 책이라는 의미로 귀결된.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다다른 나라에 비해 늦은 편이지만, 우리나라도 장애 역사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으며 연구 성과물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비장애인은 이런 자료를 접할 기회가 없다. 그래서 비장애인들의 눈에는 장애 역사를 정리한 책들이 보이지 않았다책이 보이지 않으니까 역사 속에 있는 장애인들의 삶마저 보지 못한다.


보이지 않은 역사는 비장애인들의 눈에 보이지 않았던 우리나라 시각장애인의 역사에 관한 책이다보이지 않은 역사의 저자는 시각장애인 구술사 조사를 하기 위해 다양한 집단에 속한 시각장애인들을 만났다안마 일에 종사하는 시각장애인(안마 맹인), 점을 보는 시각장애인(점복 맹인), 구걸로 생계를 이어나가는 시각장애인(구걸 맹인)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맹인 공동체의 역사를 기록하고 전승하는 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저자는 글자를 읽지 못하는 시각장애인들이 어떻게 역사를 기록했고, 대대로 전승해왔는지를 살핀다.


시각장애인의 역사에 차별만 있는 게 아니다. 그 속에 저항연대도 있다. 차별, 저항, 연대. 이 세 개의 단어는 우리나라 시각장애인들의 삶이 압축되어 있다어느 분야에서 뚜렷한 족적을 남긴 인물을 중심으로 서술된 주류 역사에 사회적 약자들의 역사가 들어갈 자리는 없다사회를 재편한 근대화를 중요하게 보는 역사학자들은 장애인을 시대적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집단으로 인식했다이러한 인식이 반영된 단어가 바로 문맹이다글자를 보지 못한 시각장애인은 글자를 모르는 문맹’이 되었. 


근대화는 계몽(enlightenment)과 궤를 같이 한다근대성이 시작되자 눈뜬 채 잠든 무지몽매한 대중을 깨워주는 시각 매체와 활자 매체(신문, 영화, 신식 문화를 소개한 인쇄물)가 보급되었다. 하지만 시각장애인은 시각 매체와 활자 매체에서 나오는 빛을 볼 수 없었다. 조선의 근대화에 앞장선 학자와 서구 선교사들은 시각장애인을 불쌍하고, 무능한 존재로 인식했다. 이때부터 시각장애인을 돕는 선교사들의 자선 활동과 조선을 통치한 일제의 시혜 정책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조선을 통치한 일제의 시각장애인 보호 정책은 자신들의 문명화 사명(civilizing mission)’을 알리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그들에게 포섭당한 시각장애인들은 도움을 받고 살아야 하는 존재’ 또는 근대화에 맞춰 재교육을 받아야 하는 대상’으로 전락했다.


식민화, 탈식민화, 근대화의 과정에서 시각장애인들은 독자적인 생활 방식을 유지하면서 살아왔다. 그들은 차별에 맞서 저항해왔으며 자신들의 생존과 직결된 안마 사업권을 지키기 위해 서로의 몸을 줄로 묶어 다니면서 투쟁했다. 시각장애인의 구술 문화는 시각장애인 공동체를 설명해주는 집단 기억을 형성하게 했고, 공동체의 유산이 대대로 후손들에게 전해지면서 역사가 되었다. 역사 속에 남은 시각장애인들의 모습은 무능한 사회적 약자가 아닌 사회 변화와 차별에 적극적으로 대응한 주체적 인간이다보이지 않은 역사는 주류 역사 서술 방식에 익숙한 독자와 다양하고 역동적인 장애인의 세계를 보지 못하는 비장애인의 눈을 트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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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게레멕 브로니슬라프 브로니슬라프 게레멕(Bronisław Geremek)

* 21

 

엘레나 그로스 노라 엘렌 그로스(Nora Ellen Groce)

* 71각주

 

거대한 변혁』 → 『거대한 전환(The Great Transform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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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21-03-02 20: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cyrus 님의 폭넓은 독서에 감탄합니다!
이런 책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다행이란 생각이 드네요.

cyrus 2021-03-03 11:24   좋아요 1 | URL
도서관에서 우연히 만난 책입니다. 책을 만든 출판사가 나름 인지도가 높은 편인데, 독자들의 주목을 많이 받지 못해서 아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