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주의와 남성성 - 19세기 영국의 젠더 형성 대우학술총서 신간 - 문학/인문(논저) 573
박형지.설혜심 지음 / 아카넷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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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왕, EPL(English Premier League, 영국의 프로축구 1부 리그), 신사‥…. 영국 하면 떠오르는 것들이다. 영국은 신사(gentleman)의 나라다. 예절과 신의를 갖춘 교양 있는 남성을 칭하는 젠틀맨은 영국 사회의 중심체인 젠트리(gentry)’라는 중산층에서 유래됐다. 19세기 이전 영국의 중간계층 남성들은 어릴 때부터 신사의 덕목을 흠모하도록 교육받았다. 신사의 덕목은, 점잖고 예의 바를 것, 자존심을 지킬 것, 과묵할 것, 해서는 안 될 일을 하지 않을 것 등의 행동규율을 요구했다. 이러한 전통은 지금도 영국 사회 곳곳에 그 분위기와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이렇듯 영국 신사는 바람직한 남성상으로 통한다. 그러나 제국주의와 남성성을 읽으면, 영국 신사를 바라보는 인식이 달라질 것이다. 제국주의와 남성성은 영국 남성들의 성 정체성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만들어지고, 논의되고, 재구성됐는가를 살핀 책이다.

     

이 책의 주제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렇다. 신사는 제국주의와 가부장제가 만나서 생긴 산물이다. 영국 남성들은 육체적 우월성을 과시하기 위해 신사가 되고 싶었다. 영국 신사를 보면 강인한 이미지가 뚜렷이 떠오른다. 이 말은 곧 신사의 이미지가 상당히 굳어졌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설혜심 연세대 사학과 교수와 박형지 연세대 영문학과 교수는 풍부한 역사와 문화 지식을 바탕으로 영국 신사의 정적인 남성상을 분석한다. 제국주의가 전성을 구가하던 19세기 중반에 영국 남성들은 식민지 지배자로서 강인한 면모를 발산했다. 이 무렵 그들이 사용한 젠더 전략(gender strategy)신사가 되는 것이었다. 신사는 식민지 통치의 정당성을 강화하는 전략으로도 사용되었다. 강인하고, 냉철하고, 여성을 보호할 줄 아는 영국 신사는 대영 제국을 수호하는 영웅과 동일시했다.

     

영국 남성들이 신사 역할을 마음껏 수행(performance)할 수 있는 최적의 무대가 인도였다. 세포이 항쟁(Sepoy Mutiny)은 영국과 인도 양국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건이다. 이 사건은 1857년 영국에 고용된 인도인 용병이 일으킨 독립운동이다. 세포이 항쟁 이후 영국은 인도를 동인도회사를 통한 간접 통치에서 직할령으로 바꿨다. 인도에 거주하는 영국 여성이 인도인들에게 성폭행당했다는 소문이 나돌았고 영국군은 더욱 잔혹한 보복 살육을 자행했다. 애국심이 투철한 영국 남성들은 여성을 보호하기 위해 적을 용감하게 무찌르는 든든한 기사 역할을 자처했다. 영국 남성의 눈에는 영국 여성은 연약해서 보호받아야 하는 집안의 천사였다. 영국 남성들이 제국의 위상과 권위적인 엘리트 이미지를 유지하려면 강인한 남성성을 연출해야 했다.

     

제국주의와 가부장제의 만남이 차별적 위계질서를 허용하는 인종주의를 만들었다. 영국은 인도를 효율적으로 식민통치하기 위해 서양은 남성적이고 동양(인도)은 여성적이기 때문에 여성인 인도가 남성인 영국의 지배를 받는 것은 당연하다는 민족차별 정책을 폈다. 영국인들은 균형 잡힌 백인 남성의 신체를 완벽한 민족에 부합하는 기본 조건으로 생각했다. 그들의 이분법적 기준에 따르면 기형에 가까운 비정상적인 신체를 가진 민족은 열등하다. 19세기 대영제국의 신사들은 철저한 백인 우월의식에 젖은 오만한 인종주의자였다.

     

제국주의와 남성성19세기 영국 신사의 남성성 형성에 영향을 끼친 제국주의와 가부장제의 상관관계를 밝힌다. 19세기 영국 신사는 위선적이다. 영국 남성들은 신사가 되고 싶었고, 여성과 피지배층으로부터 우월적 지위를 인정받음으로써 가부장적 권위가 실추되고 있다는 불안감을 떨쳐낼 수 있었다. 신사의 덕목은 남성의 삶을 억압하는 도덕적 굴레였다. 절제와 도덕을 강조하는 신사의 덕목이 고정된 남성성을 만들게 했고, 이를 수행하는 영국 남성은 남성성이라는 사회적 무게를 견뎌내야 했다. 이 과정에서 남성은 식민지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삼아 성적 욕구를 해소했다. 여성에 대한 억압과 성폭력은 남성의 권력을 확인하는 수단이 되었다.남성은 강하고 만능이어야 하며 절대로 눈물을 보여서는 안 된다는 허위의 남성성을 우리는 역설적으로 신사의 덕목이라는 이름으로 배웠다. 이쯤에서 우리는 신사의 의미에 대해서 한 번쯤 생각해 봐야 한다. 신사는 절제된 마초(macho)’에 가깝다신사와 마초는 종이 한 장 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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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7-06-04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미니즘에 입각한 남성상이란 무엇일까요?

cyrus 2017-06-04 21:01   좋아요 0 | URL
어려운 질문이군요. 제가 지금 북플로 댓글을 보고 있어서 답변을 드리기 어렵네요.. ^^;;

2017-06-04 14: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6-04 21:11   좋아요 0 | URL
네. 가면 맞습니다. 자신을 포장하는 가면입니다.
 
빅토리아 시대의 사람들과 사상 아카넷 한국연구재단총서 학술명저번역 504
리처드 D. 앨틱 지음, 이미애 옮김 / 아카넷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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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슨, 인간이란 참으로 복잡다단한 존재 아닌가.”

 

- 셜록 홈즈 -

 

    

 

세상은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변한다. 그런데 사람들의 의식은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변화에 적응해 가는 사람들의 의식이 얼마나 보수적이고 방어적인가를 우리는 동시에 경험한다. 새것과 옛것 사이에 일어나는 혼란스러운 상황과 관련하여 떠오르는 성경 구절이 있다.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

     

새로운 현실은 이미 다가와 있는데 사람들은 여전히 낡은 부대를 버리지 못한다. 19세기 영국 빅토리아 시대(Victorian era)의 역사를 살펴보면 새 시대의 희망을 감지해야 할 사람들이 얼마나 보수적인지를 알 수 있다. 자본과 노동력에 바탕을 둔 산업혁명이 도래하면서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은 그 변화의 충격을 피부로 느꼈다. 소용돌이치는 문명의 변화 가운데서 솟아나는 끊임없는 과제들이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에게 도전장을 보냈다. 그런데 그것에 응전할 사람들은 소극적이었다. 새 포도주는 준비되어 있는데 그것을 담을 새 부대가 많지 않았다. 옛것에 익숙한 사람들은 총체적 변화의 상황을 위기의 상황으로 파악한다. 빅토리아 시대는 전통적 가치관이 붕괴하는 가치 혼란의 시대였다.

    

리처드 D. 앨틱(Richard D. Altick)빅토리아 시대의 사람들과 사상은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이 총체적 변화의 상황을 어떻게 대처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19세기 영국은 산업혁명의 바람을 일으키며 산업화, 도시화의 선봉을 달렸다. 이 과정에서 중산층과 상공업자들이 많이 등장하게 됐고, 부유한 중산층들은 상류층의 삶을 동경했다. 이때는 누구나 열심히 일하면 신분 상승이 가능했다. 누구나 어려움에 부닥칠 때 떠올리는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란 경구는 새뮤얼 스마일스(Samuel Smiles)자조론에 나오는 구절이다. 이 책은 수많은 사람에게 자수성가를 이룰 수 있는 꿈과 용기를 심어줬다. 하류 계층에 속한 노동자들은 이 책을 읽고 스마일스처럼 되기로 결심했다. 그들도 계층이 세습되는 구시대에 상상하지도 못했던 장밋빛 희망을 품을 수 있었다.

     

그러나 변화의 조짐이 두드러질수록 변화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위기의식을 느낀다. 영국 사회의 주류로 자리 잡은 복음주의자들은 신앙생활에 최우선 가치를 둔다. 그들은 성서를 글자 그대로 해석했고 결혼과 가족제도를 중시했다. 복음주의자들은 도덕과 윤리라는 이름으로 개인의 욕구를 규제했다. 각기 다른 이유 때문이긴 해도 도덕성 결여는 복음주의자와 공리주의자들도 똑같이 경멸한 사회악이었다. 공리주의자들은 인간 삶의 궁극적 목적이 행복이며, 좋은 삶의 판단 여부는 그 기준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좋은 결과를 불러오는 행위를 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옳다는 생각이 공리주의적 사고방식이다. 복음주의자들은 천국에 가서 신으로부터 구원을 받기 위해서 근면과 금욕을 강조했다. 엄격한 복음주의자들은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도박성 오락을 금지했고, 아이와 여성이 보는 책에 외설적으로 느껴지는 구절이 있으면 검열 · 삭제했다. 빅토리아 시대 영국 사회를 양분했던 두 세력은 부분적으로 호흡이 척척 맞는 사이였다. 복음주의자와 공리주의자 들은 개인의 자조(自助)를 강조하면서 도덕성을 회복하려고 노력했다.

     

오래된 부대를 고집하는 기득권층의 극심한 텃세로 인해 새 시대를 갈망하는 사람들은 신선한 새 포도주의 맛을 제대로 음미하지 못했다. ‘노오력의 배신에 분노한 노동자들은 기득권층에 향한 불만을 가졌다. 하지만 그들 마음속에 뿌리박힌 상대방에 대한 존중심과 감정 표현을 절제해야 하는 과묵한 성격때문에 계급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 ‘품위 유지를 강조하는 사회는 여성의 삶을 제약했다. 신사들은 여성에게 생산적인 활동을 요구하지 않았고, 여성이 스스로 경제권을 획득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을 간단하게 정의 내리기 쉽지 않다. 그 시대 사람들의 면보가 보수적이긴 해도 고리타분한 옛날 사람들로 규정할 수 없다. 새 포도주를 오래된 부대에 담으려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과감히 오래된 부대를 버리고 새 부대를 마련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처럼 빅토리아 시대에 옛것과 새것이 공존했다. 낡은 부대든 새 부대든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은 부대에 담은 새 포도주의 맛에 적응하려고 애썼다. 그들은 생동하는 시대 속에서 변화의 흐름에 맞게 적절히 처신했다. 그들은 변화무쌍한 삶을 살았다. 이 책의 역자는 빅토리아 시대를 한마디로 규정할 수 없는 복잡다단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고 했다. 빅토리아 시대를 살아본 셜록 홈즈(Sherlock Holmes)의 말이 맞았다.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은 참으로 복잡다단한 존재들이었다.

    

 

 

홈즈가 했던 말은 셜록 홈즈의 회상록(백영미 역, 황금가지)에 수록된 단편 증권 거래소 마지막 장면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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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종 2017-06-03 1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체의 관성처럼 인간에게도 변화하지 않으려는 타성이 어느 정도 있다고 보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혁을 추구하는 인간들도 있거든요.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가 되고 싶은데, 참 어렵습니다. 사람도, 사람만큼이나 복잡다단한 삶의 문제도. .^^

cyrus 2017-06-03 21:41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한 사회에서 변화를 과감하게 시도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다. 주류와 거리가 멀기 때문에 동시대인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요. 변화의 갈림길에 서면 고민이 많아져요. 낯선 변화의 길을 선택할 것인지 아니면 익숙한 길을 그대로 갈 것인지 고민해요. 정말 머리 아픈 상황이라서 결국은 익숙한 길을 가게 됩니다. 그래서 행동으로 변화를 추진하는 일은 어렵습니다.
 
살아남지 못한 자들의 책 읽기
박숙자 지음 / 푸른역사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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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에 공부하지 않고 재미있는 책만 읽고 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우리 집은 넉넉한 형편은 아니었지만 소중한 보물이 있었다. 책장에 가득 채워놓은 오래된 책들이었다. 나는 곰팡내가 풍기는 책을 읽어보기 시작했다. 확실히 거기에는 현실보다 재미있고, 영화보다 흥미진진한 일이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데 지루할 틈이 있다면 오히려 이상한 지경이다. 책 속에는 가장 가까운 친구가 있었다. 존경하는 과학자, 작가, 정치인 그리고 한 시대를 살다가 간 뛰어난 선인들도 있다. 노력에 따라서 그들을 만날 수도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 정성을 쏟아 읽은 책마다 번호를 매겨 나갔다. 그때는 읽은 책의 권수에 집착했다. 빨리 읽을 수 있는 얇은 책도 포함했다.

     

어느새 십여 년이 지났다. 우리는 정신없이 바쁘지 않으면 경쟁에서 낙오되는 그런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먹고사니즘에 치여 비타민처럼 필요한 책들을 외면하고 있다. 어린 시절 나와 함께 책을 읽던 친구들은 책과 담쌓은 지 오래다. 경쟁사회에서 낙오는 인생의 실패와 다름없이 여겨진다. ‘먹고사니즘의 열망이 클수록 민주적 가치고 나발이고 돈벌이에 도움만 된다면 뭐든지 허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먹고사니즘은 단순히 생존본능을 위한 투쟁 의식이 아니다. 지나친 경쟁 심리가 만들어낸 이기주의의 극치다. 이 세상에 낙오하지 않고 한가롭게 독서를 하는 일은 진정 불가능한 일인가. 잠시라도 책에 한눈을 팔면 우리 삶이 정말 불행해질까.

     

잠재했던 유전인자가 몇 대를 뛰어넘어 불쑥 나타나는 것을 격세유전이라 한다. 살아남지 못한 자들의 책 읽기를 읽으면 그 말이 실감 난다. 노후를 걱정하는 오늘의 6, 70. 이들을 ‘4 · 19세대라고 부른다. 그들에게도 사회에 대해 고민했던 시절, 인생의 꽃이라 불리는 20대 시절이 있었다. 1960년대는 문학청년, 문청(文靑)의 연대였다. 젊은이들의 관심은 시와 소설, 그리고 신춘문예를 통한 등단이었다. 대학생들은 <사상계>를 끼고 다녔고, 그들의 문화적 영웅은 김승옥이었다. 문학평론가 김현의 표현대로 4 · 19세대는 4 · 19혁명과 5 · 16 군사쿠데타 사이에서 20년간 방황했다. 민주화를 열망했던 젊은이들은 가능성과 좌절사이의 시대를 살아가는 동안 답답하고 허무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책을 손에 쥐었다. 그렇지만 책이 민주주의에 대한 허기, 미래의 위기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하지 못했다.

     

광장(최인훈의 소설)()준은 밀실도 광장도, 그것이 상징하는 남한도 북한도, 자유민주주의도 공산주의도 다 거부하고 나섰다. 결국, 남도 북도 아닌 중립국을 선택한 뒤 배를 타고 가다가 숨 쉬는 바다로 몸을 던진다. ()혜린은 우리나라 여성 최초의 독일 유학생이다. 그녀는 자기가 독일에서 경험한 것을 토대로 진실 어리게 글을 쓰고 싶어 했다. 환상수첩(김승옥의 소설)의 정우는 보다 나은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문학청년이었다. 하지만 어른들은 정우를 어쭙잖은 아이로 여겼다. 정우의 귓가에 울리는 무관심 하라라는 말은 혁명에 갈망한 청년들을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독일 유학생 (전)혜린은 자기가 경험한 것을 토대로 진실 어리게 글을 쓰고 싶었다. 그렇지만 그녀가 아무리 책을 닥치는 대로 읽었어도 번역하지 못한 것들이 너무 많았다. 번역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모국어와 외국어 사이의 괴리감을 견디지 못한 그녀는 소설을 쓰겠다는 소망을 채 이루지 못하고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태일은 근로기준법을 쉽게 알려줄 대학생 친구를 만나지 못해 종이에 적힌 법 한 글자 한 글자 보듬느라 힘겨워했다. 이 네 명은 젊은 4 · 19세대들의 사회적 · 심리적 한계상황을 겪었다. 네 명의 젊은이들은 답답하고 허무한 마음을 극복하지 못했고, 그들의 삶과 희망은 살아남지 못한 자들의 생애로 종이에 남게 되었다.

     

그 뒤로 80년대 사회변혁의 맹렬한 주역으로 대학생들이 나섰던 시절을 지나 이제는 모든 걸 포기해야 하는 절망에 빠진 오늘, 50년 전의 그 암담한 심경은 격세유전으로 재현되고 있는지 모른다. 다만 근본적으로 달라진 상황은 고뇌의 진원지가 정치가 아닌 경제라는 점이다. 60년대에는 노력만 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일말의 희망이 팽배했다. 학생들은 짜장면을 먹지 않고, 버스 등교 여덟 번 포기하면 200원짜리 삼중당 문고를 내 책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렇게 그들은 200원짜리 책을 읽었고, 책을 통해 희망으로 이어줄 삶의 길을 찾고 싶었다. 오늘날의 젊은이들에게 독서는 사치다. 그들이 아르바이트를 해서 힘들게 모은 돈은 입시 참고서, 어학 학습서, 취직 수험서를 마련하기 위한 비용이 된다. 한가롭게 소설을 읽을 수 없다. 독서하는 세대가 사라지면서 교양의 의미도 점차 희미해진다. 4 · 19세대가 공유한 교양은 삼중당 문고라면, 삼포세대의 교양은 취업상식 사전이다. 취업상식 사전은 내 책이 될 수 없다. 그들은 취업을 목표로 상식을 달달 외운다. 취업만 성공하면 지긋지긋한 책을 안 봐도 된다.

     

지금으로부터 50년이 지난 후에 후손들은 삼포 세대의 독서문화사를 어떻게 기록할까. 삼포세대가 역사로 기록될 앞날이 오려면 한참 멀었다. 사실 그보다 더 큰 걱정이 앞선다. 삼포세대가 겪은 좌절과 모멸감이 다음 세대에 이어질까 봐 걱정된다. 이 세상에 살아남지 못한 자들이 더 많아지면 안 된다. 살아남지 못한 자들의 책 읽기의 저자는 서문에서 살아남지 못한 자를 기억하는 일은 발 딛고 사는 세계에 아물지 않는 상처라고 말한다.

     

살아남지 못한 자는 우리가 발 딛고 사는 세계에 들씌워진 가면을 잠시 벗겨낸 자리에 남아 있는, 아물지 않는 상처이다. 그래서 우리 삶과 역사는 그 상처와 고통에 빚지고 있다. (8)

 

아주 오랫동안 깊게 파인 역사의 상처를 직면하는 일은 무척 괴롭고 아프다. 그렇지만 이 상처와 고통의 연속을 끝내려면 과거의 기록에서 교훈을 찾아내 미래를 위한 발판으로 삼아야 한다. 아픈 역사를 잊고, 덮는다고 해서 무너진 자존심이 회복되지 않는다. 오히려 아픈 역사가 만들어 낸 상처가 덧난다. 그 상처가 덧나면서 생기는 통증이 다음 세대에 이어진다. ‘살아남지 못한 자들의 이야기는 과거 사람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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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02 00: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6-02 07:02   좋아요 1 | URL
늦은 시간까지 공부하시는군요. 시험 공부할 때 틈틈이 보는 글이 재미있어요. ^^
 

 

 

 

 

 

 

 

 

 

 

 

 

 

 

 

 

 

 

 

 

 

 

 

 

 

 

 

 

 

 

 

 

 

 

 

 

 

 

 

 

 

 

 

 

 

 

 

 

 

셜록 홈즈 시리즈의 첫 작품 《주홍색 연구》(A Study in Scarlet)에 두 명의 런던 경시청 소속 경감이 등장한다. 토비아스 그렉슨(Tobias Gregson)레스트레이드(Lestrade). 이들은 홈즈의 수사 능력과 추리 실력을 돋보이기 위해 만들어진 경찰 캐릭터이다. 그렉슨이 등장하는 사건은 《주홍색 연구》 가 유일하다. 레스트레이드는 단편에서도 계속 등장한다. 결백한 사람을 용의자로 지목하거나 범인의 속임수를 간파하지 못해 사건 해결에 쩔쩔맨다. 홈즈는 허점 많은 레스트레이드의 수사 방식을 대놓고 깐다.

 

그렉슨과 레스트레이드는 서로 라이벌로 의식하는 사이다. 웃긴 점은 홈즈는 두 사람을 ‘틀에 박힌 사고를 벗어나지 못한’ 2% 부족한 인재라고 평가한다. 홈즈의 눈에는 그렉슨과 레스트레이드의 관계는 ‘도토리 키 재기’일 뿐이다. 그래서 홈즈는 왓슨(Watson)에게 능력이 고만고만한 경감들끼리 사건을 어떻게 해결하는지 지켜보는 일이 재미있을 거라고 말한다.

 

 

 

* 원문 :

 

“he and Lestrade are the pick of a bad lot. They are both quick and energetic, but conventional—shockingly so. They have their knives into one another, too. They are as jealous as a pair of professional beauties. There will be some fun over this case if they are both put upon the scent.”

 

 

* 황금가지 (2판, 44쪽) :

“그렉슨하고 레스트레이드는 형편없는 집단에서 그나마 나은 인재들입니다. 둘 다 민첩하고 의욕이 넘치지만 틀에 박힌 사고를 벗어나지 못했어요. 그건 정말 놀랄 정도입니다. 게다가 두 사람 다 서로를 미워하지요. 직업여성들처럼 질투심이 많거든요. 만약 둘 다 이 사건에 뛰어들었다면 일이 꽤 재미있어질 겁니다.”

 

* 현대문학 (주석판, 59쪽) :

“그레그슨과 레스트레이드는 형편없는 패거리 가운데서 그나마 발군이야. 둘 다 민첩하고 열정적인데, 생각은 틀에 박혔지. 혀를 내두를 정도로 말이야. 게다가 그들은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야. 직업여성처럼 질투가 심하거든. 둘 다 현장에 투입되었다면 일이 꽤 재밌어질 거야.”

 

* 엘릭시르 (50~51쪽) :

“아름다움을 다투는 사교계의 숙녀들처럼 서로를 질투하죠.

 

* 동서문화사 (37쪽) :

“게다가 둘이 서로 질투하는 걸 보면 꼭 장사꾼 여자 같단 말이야.”

 

* 코너스톤 (개정판) :

“게다가 그 둘은 여성들처럼 질투가 심해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이지.”

 

* 펭귄클래식코리아 (45쪽) :

“마치 창녀라도 되는 것처럼 서로 질투를 하죠. 두 사람 모두 이 사건에 관심을 두게 된다면 제법 재미가 있을 겁니다.”

 

* 문예춘추사 :

매춘부처럼 서로를 질투하고 있거든. 만약 두 사람이 이 사건을 수사하게 된다면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될 걸세.”

 

 

 

‘beauties’는 ‘beauty’의 복수형이다. 이 문장에 사용된 ‘beauties’는 명사로 ‘여자’로 해석한다. 단어 앞에 있는 ‘professional’을 결합하면 ‘(전문)직업을 가진 여자’가 된다. 홈즈가 언급한 ‘professional beauties’는 구체적으로 어떤 여자를 말하는 것일까? 수많은 주석가들은 ‘직업여성’이 누군지 궁금하지 않았는가 보다. 특히 정전에 나오는 사소한 단어 하나라도 놓치지 않고, 꼼꼼하게 주석을 단 레슬리 S. 클링거(Leslie S. Klinger)도 ‘professional beauties’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

 

직역을 선택한 번역가들은 ‘professional beauties’를 원문 그대로의 의미를 살려 ‘직업여성’으로 옮겼다. 반면 의역을 선택한 번역가들은 그냥 ‘여성(여자)’로 번역했다. 엘릭시르 판은 ‘사교계의 숙녀들’로, 펭귄클래식코리아 판과 문예춘추사 판에는 각각 ‘창녀’와 ‘매춘부’로 되어 있다. ‘professional beauties’를 ‘창녀’와 ‘매춘부’로 번역하게 된 이유가 정말 궁금하다. 

 

홈즈 시리즈는 잡지 <스트랜드 매거진(The Strand Magazine>)에 처음 발표되고, 잡지에 연재된 작품을 모아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그리고 미국에 발행되었는데 이 세 가지 텍스트마다 조금씩 단어의 차이가 있다. 클링거는 잡지에 연재된 텍스트와 단행본 텍스트를 포함한 영국 판본과 미국 판본을 비교하면서 미국 판본에 누락되거나 새로 추가된 단어와 문장을 주석으로 소개했다. 미국 판본이 나왔을 때 ‘professional beauties’를 ‘prostitutes(매춘부들)’로 인쇄될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지만, 클링거가 그 점을 언급하지 않는 걸로 봐서는 미국판에서 단어가 수정된 일은 없는 것 같다. 

 

 

 



 

 

 

 

 

 

 

 

 

* 이케가미 료타 《도해 메이드》 (AK커뮤니케이션즈, 2010)

 

 

‘professional beauties’를 이해하려면 빅토리아 시대(Victorian era)의 사회를 파악해야 한다. 빅토리아 여왕의 재위 기간은 1837년부터 시작해서 1901년까지다. 정확히 총 63년 7개월 2일이다. (빅토리아 여왕은 엘리자베스 2세의 고조모이다. 엘리자베스 2세는 고조모의 통치 기록을 깼고, 아흔을 넘은 그녀는 여전히 정정하다) 이 길고 긴 시기를 빅토리아 시대라고 말한다. 빅토리아 시대는 영국의 번영을 상징하는 화려한 시절이면서도 가장 보수적인 시절이었다. 도덕관이 엄격했고, 전통적 가부장제 사회의 질서를 유지 · 보존하려는 성향이 강했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나 진출의 기회는 여전히 제한되었다. 특히 중류 계층의 여성이 일할 수 있는 선택의 폭은 좁았다. 1880년대에 이르러 여성의 교육열이 높아지고, 남성의 경제력에 얽매인 여성들의 숨통이 서서히 트이기 시작했다.

 

 

 

 

 

 

 

 

 

 

 

 

 

* 레슬리 S. 클링거 엮음 《주석 달린 셜록 홈즈 1》 (현대문학, 2013)

* 레슬리 S. 클링거 엮음 《주석 달린 셜록 홈즈 5》 (현대문학, 2013)

 

 

 

중류 계층 여성이 가장 많이 선호한 직업은 가정교사(governess)였다. 학교를 다닌 여성이라면 충분히 노려볼만한 직업이었다. 《네 개의 서명》(The Sign of Four)의 사건 의뢰인이자 왓슨의 아내가 된 메리 모스턴(Mary Morstan)는 포레스터 부인(Mrs. Forrester) 댁의 가정교사였다. 홈즈 시리즈의 첫 번째 단편집 《셜록 홈즈의 모험》 마지막에 수록된 『너도밤나무 집』(The Adventure of the Copper Beeches)의 사건 의뢰인 바이올렛 헌터(Violet Hunter)의 직업도 가정교사다. 실제로 작가 코난 도일(Conan Doyle)의 누이도 가정교사로 일했다고 한다.

 

그런데 가정교사의 급여 수준은 그리 높지 않았다. 바이올렛 헌터는 가난한 가정교사로 등장하는데, 어려운 자신의 경제 사정을 견딜 수 없어 고심 끝에 고용인 루캐슬(Rucastle)의 이상한 제안을 받아들인다. 바이올렛 헌터처럼 고용인을 찾지 못하면 쫄쫄 굶어야 하는 생계형 가정교사가 상당히 많았다. 중류 계층의 여성은 유복한 가정의 자녀를 가르치는 일을 하면서 자신의 신분을 상류 계층으로 상승하기를 원했다. 하지만 가정교사가 처한 현실은 시궁창이었다. 가정교사가 되려는 여성들이 점점 급증했고, 취업 문턱은 좁아졌다. 경제적 독립을 꿈꾸기 시작한 상류 계층의 여성들도 가정교사를 선호했다. 이렇다 보니 한때 존경의 대상이었던 가정교사는 하녀와 동급으로 대우받는 직업이 되었고, 졸지에 ‘불쌍한 선생’으로 전락했다. 심지어 하녀들은 가정교사를 대놓고 무시했다. 가정교사 입장에서는 하류 계층 출신 여성 노동자인 하녀에게 무시당하는 상황이 굴욕으로 느껴졌다. 내가 생각하기에 홈즈가 말한 ‘질투심 많은 직업여성’은 서로 미워하는 가정교사와 하녀를 의미할 수 있다.

 

 

 

 

 

 

 

 

 

 

 

 

 

 

* 번 벌로, 보니 벌로 《매춘의 역사》 (까치, 1992)

 

 

흔히 영국은 ‘신사의 나라’라고 말한다. ‘신사’라 하면 예의범절을 지키는 올바른 성품의 남성 이미지가 먼저 떠오른다. 실상은 그렇지 않다. 빅토리아 시대는 사회 구성원들에게 엄격한 도덕적 규범 및 금욕을 요구했지만, 실제로 성적 문란이 팽배했다.

 

빅토리아 시대의 신사들은 은밀한 곳에서 매춘을 즐겼다. 그들은 여성은 조신하게 행동해야 한다면서 가부장제의 못을 참 열심히 박았다. 빅토리아 시대에 매춘사업을 규제하는 법이 시행되었지만, 허영의 시대에 당연히 매춘이 근절될 리가 없었다. 빅토리아 시대의 여성들이 매춘에 종사하는 원인 중 하나가 ‘열악한 경제 사정’이었다. 시원치 않은 봉급을 받고 공장에 일하는 여성 노동자 또는 취업이 불리한 하류 계층 여성 등이 매춘부가 되었다. 결혼 상대 혹은 결혼 자금이 없는 여성은 ‘동거 매춘부(cohabitant prostitutes)’가 되어 상류 계층의 남자를 만났다. 남자들은 동거 매춘부를 아내가 아닌 ‘섹스 파트너’로 대했다. 두 사람 사이에 낳은 사생아는 ‘매춘부의 자식’으로 취급했다.

 

 

 

 

 

 

 

 

 

 

 

 

 

* 이주은《아름다운 명화에는 비밀이 있다》 (이봄, 2016) 

 

 

과연 홈즈는 한 번이라도 매음굴에 가봤을까? 홈즈의 좋은 점만 보고 싶은 셜록키언(Sherlockian)이라면 생각하기도 싫은 궁금증이다. 그래도 홈즈 정전을 연구하는 주석가들에게는 그냥 넘어갈 리 없는 흥미로운 주제이다. 빅토리아 시대의 매춘은 ‘욕정이 일으키는 도시의 죄악’으로 여겼다.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은 매춘부를 ‘타락한 여성’으로 취급했고, 그들을 경멸했다. 신사들은 풍기문란과 성병의 주범을 매춘부에게 뒤집어 씌웠다. 그들은 인간으로 대접받지 못했고, 잭 더 리퍼(Jack the Ripper)는 다섯 명의 매춘부를 동물 죽이듯이 잔인하게 살해했다. 런더너(Londoners)들은 매춘부의 죽음을 슬퍼하기 보다는 정체 모를 살인자들의 공포에 벌벌 떨었다. 홈즈의 ‘professional beauties’에 매춘부는 확실히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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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7-05-25 12: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 생각으로는 충분히 창녀나 매춘부로 옮길 여지가 있어 보이는데요? cyrus님의 분석에서는 방점이 프로페셔널에만 찍혀 있지만, ˝뷰티˝에 비하나 비꼬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고 보면 어떨까요.

이를테면, 그들이 생각하는 ˝진짜˝ 아름다움과 완전히 상반되는 모습의 창녀나 매춘부들에게 비꼬는 표현으로 뷰티라고 부르는 경우도 생각해 볼 수 있을것 같아요. 제 정말 친한 친구 한 놈은 별명이 장동건이에요. 너무 못생겨서요. 이런 식의 역호칭은 꽤나 횡행하잖아요?

그 ˝프로페셔널˝과 ˝뷰티˝가 서로 보완적(?)으로 작용해서 창녀나 매춘부로 해석할 만한 여지가 생겨나는게 아닐까요?

cyrus 2017-05-25 12:41   좋아요 0 | URL
제가 ‘professional beauties‘를 비꼬는 의미를 쓸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syo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충분히 ‘매춘부‘로 해석할 수 있다고 봅니다.

종종 예술가들은 매춘부를 ‘자신이 아름답다고 착각하는 어리석은 여성‘의 상징으로 그리곤 했습니다. 이게 여성에 대한 남성의 편견이지만, 평소에 여성을 싫어하는 홈즈의 성격을 생각한다면 ‘직업 여성‘을 매춘부를 비꼬는 표현으로 쓸 수 있겠어요. 정말 예리한 분석입니다. ^^

cyrus 2017-05-25 1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수정 및 추가할 내용

제가 ‘professional beauties‘를 가정부와 하녀로 해석하는 가설을 주장했습니다.

알라디너 모 님(비밀댓글을 남기셔서 닉네임을 밝히지 않겠습니다)이 알려주신 정보에 따르면 ‘professional beauties‘은 빅토리아 시대에 활동했던 여성 사진 모델을 의미하는 단어였습니다.

‘professional beauties‘을 ‘직업여성‘, ‘사교계의 숙녀‘, ‘매춘부‘로 번역한 것은 ‘오역‘으로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원 글에서 professional beauties의 의미를 주장한 내용은 틀린 해석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7-05-25 14:58   좋아요 1 | URL
제가 알기로는 그때에는 그림 모델이 직업여성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사진의 역사를 봐도 빅토리아 시대 때 누드 사진이 꽤 팔렸습니다. 누드 사진은 그당시 대중의 사치품이었죠. 또한 초창기 영화를 보면 포르노가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번역을 직업여성이라거나 매춘부라고 하는 것이 반드시 억지는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cyrus 2017-05-25 15:50   좋아요 0 | URL
매춘부가 누드 모델을 한 적이 있으니까 곰발님의 의견도 일리가 있습니다.

빅토리아 시대의 문화에 대해 좀더 공부해야겠어요. ^^

레삭매냐 2017-05-25 1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다양한 버전의 책들이 있군요. 아마 저작권 시효가 만료가 되서 그런가 아닐까 조심스레 추정해 봅니다. 신사의 나라가 진정한 황금기였다는 빅토리아 시대에도 역시나 사회의 어두운 면은 존재하고 있었군요. 금욕적인 시대 조류가 역설적으로 어둠의 원인 중의 하나였다니...

cyrus 2017-05-25 20:28   좋아요 0 | URL
홈즈 시리즈도 저작권 시효가 만료돼서 다양한 번역본들이 많이 나와요. 전자책까지 포함하면 번역본 수가 꽤 많을 겁니다.

찰스 디킨스, 브론테 자매, 조지 엘리엇, 새커리 같은 영국의 작가들의 소설이 빅토리아 시대의 사회적 분위기가 잘 반영되었어요. 그런 점에서 빅토리아 시대를 이해하는 일이 흥미로워요. 그때 상황을 살펴보면 우리나라의 모습과 닮은 구석이 있어요.

yureka01 2017-05-25 2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이러다 셜록 논문한편 나올 기세 ㅎㅎㅎㅎ^^..좋습니다!~

cyrus 2017-05-25 21:45   좋아요 1 | URL
위의 댓글들을 보면 아시겠지만, 이 글은 실패한 글입니다. ㅎㅎㅎ

홈즈 시리즈가 생각보다 흥미로운 작품입니다. 지금도 셜록키언들은 홈즈를 읽고 분석해요. 정말 놀라운 분석이 있는 반면에 저처럼 어설픈 분석도 있습니다.

돌궐 2017-05-26 08: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국책 연구과제는 실패를 했어도 성실한 연구노트를 작성했다면 사업비를 환수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물론 그런 사업은 과학 기술 분야가 대부분이지만 인문학에서도 불가능한 건 아니라고 이 글을 보면서 생각했습니다.

cyrus 2017-05-26 14:25   좋아요 0 | URL
인문학 연구 자료는 과학 연구 자료와 비교하면 오류를 확인할 수 있고, 바로 잡을 수 있습니다. 역사 분야라면 돌궐님의 말씀처럼 불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다만, 학자들의 텃세부심을 줄인다면 실패를 해도 연구 활동이 이루어질 겁니다. ^^
 
5.18 특파원리포트 - 풀빛신서 153
한국기자협회 / 풀빛 / 1997년 5월
평점 :
절판


 

 

 

5월 18일의 아픔을 경험하지 못한 젊은이들에게 지난 80년 광주의 항거는 어느덧 ‘슬픈 과거’가 되었다. 5 · 18광주민중항쟁은 우리 사회에 민주주의 의식과 자주정신을 불어 넣어주고 드높인 기념비적 사건이다. 광주민중항쟁이 일어난 지 37년이 되었다. 그때의 진상을 밝히려는 노력도 하였고 피해를 받은 사람들에게는 보상도 주어졌다. 반면에 군부의 주역들은 대통령도 되었지만, 국민의 심판을 받아 감옥에도 갔다. 그러나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미완의 과제들이 수두룩하다. 군부에 의해 왜곡된 광주의 진실을 믿어주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폭도가 일으킨 사태’라고 주장하는 음모론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의 ‘임’이 북한의 김일성이라는 억측을 퍼뜨리는 사람도 있다. 우리 사회에는 아직 정치적으로 악용된 지역감정 등으로 인해 5 · 18광주민중항쟁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편견이 남아 있다.

 

5 · 18광주민중항쟁을 다룬 영화 <화려한 휴가>는 우리를 총소리와 사이렌 소리, 탱크 소리로 요란한 광주 도청으로 데려간다. 이 영화로 아무 죄 없는 광주 시민들이 짓밟혔다는 사실이 조금이라도 세상에 알려져서 다행스럽다. 그렇지만 귓전을 스치는 총소리에 공포를 떨어야 했던 시민들의 감정을 표현하는 데는 부족하다. 총알이 나를 향해 날아오는 것 같은 공포, 군부의 무자비한 폭력에 짓밟힌 피해자들의 고통, 억울함 등을 영화로 다 표현하기는 어렵다. 중요한 역사적 사건을 ‘보는 것’만으로도 한계가 있다. 역사는 읽혀야 한다. 5월의 광주 현장을 되살린 《5 · 18 특파원 리포트》(풀빛, 1997)는 우리가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역사의 진실을 담고 있다.

 

군부의 엄청난 위세 앞에 많은 국민, 그리고 언론은 고개를 숙여야 했다.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1980년 당시 『뉴욕타임스(The New York Times)』 서울 특파원으로 근무했던 헨리 스콧 스톡스(Henry Scott Stokes)는 5월 광주를 회상하는 글에 전두환‘Strongman’이라고 표현했다. 이 글을 우리말로 옮긴 역자는 ‘Strongman’을 ‘실력자’라고 번역했다.

 

 

우리는 광주를 당도하기 전에 여러 차례 검문소를 지났다. 군인들은 우리를 세우고 서류를 훑어보았으며, 우리가 기자들이라는 심재훈의 설명을 들었다. 그리고는 한 번 흘깃 쳐다보는 것이 전부였다. 만일 이것이 ‘실력자(Strongman)’ 전두환의 새 세상을 움직이는 모습이라면, 그의 힘은 그야말로 걸리적거릴 것이 없었다.

 

(헨리 스콧 스톡스, 38쪽)

 

 

스톡스는 광주를 포위한 전두환의 막강한 힘을 긍정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Strongman’을 쓴 거로 생각하지 않는다. 광주의 모든 교통로와 연락망을 차단하고, 외부인의 출입을 불허하도록 군인들에 지시한 전두환의 존재감을 반어적으로 비판한 것이다. ‘Strongman’은 나쁜 뜻도 가지고 있는데, 그게 바로 ‘독재자’이다. 스톡스의 ‘Strongman’은 이중적 의미를 담고 있다. 독재자(Strongman)는 신문 검열을 강화하여 광주를 철저히 통제했다. 군부는 저항하는 광주 시민들을 ‘북한 꼭두각시’로 몰아세웠으나 그들은 북한의 지령을 받은 간첩도 아니고, 폭도도 아니고, 불순분자도 아니었다. 목숨을 걸고 광주의 현장을 사실 그대로 취재한 외신기자들의 증언은 광주 항쟁을 악의적으로 왜곡하는 세력의 주장이 얼마나 터무니없는지 알 수 있게 해준다.

 

광주항쟁을 왜곡하는 세력들은 광주 시민군을 ‘북한의 지명을 받고 무장한 폭도’라고 주장한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시민군의 발포로 진압군이 방어 차원으로 맞대응했고, 총격전이 벌어진 것이다. 그런데 왜곡 세력의 주장은 거짓이다. 진압군의 발포가 있고 난 뒤 시민들이 생존을 위해 무기를 들었다. 2007년 국방부 과거사조사위원회의 조사 결과에서 밝혀진 사실이다. 그리고 시민군이 북한의 지령을 받고 치밀하게 준비했다면 무기를 다룰 줄 모르는 대학생을 왜 동원했겠는가.

 

 

우리 셋이 그들의 거처로 들어가 만난 대학생 지도자들은 아이들에 불과했다. 몹시 지치고 대단히 어려 보이는 젊은이들로, 무기를 어떻게 다루어야 좋을지도 모르고 있었다. (중략) 내가 받은 인상으로는 이 젊은이들은 훈련이라고는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었다. 그들이 거기에 선 채 졸다시피 하고 있을 때, 나는 문득 우리 중에 하나에게 일제사격이 가해지는 광경을 상상했다. 하지만 동시에 분명한 사실은 전두환으로서는 두려워할 것이 하나도 없다는 점이다.

 

(헨리 스콧 스톡스, 40쪽)

 

 

《5 · 18 특파원 리포트》를 일독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이유가 있다. 이 책에 위르겐 힌츠페터(Jürgen Hinzpeter, 1937~2016)의 글이 수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힌츠페터는 광주항쟁의 참상을 영상으로 기록해 전 세계에 알린 독일 출신의 언론인이다. 그가 진압군의 삼엄한 감시를 뚫기 위해 영상을 촬영한 필름을 과자 상자 속에 감춘 일화는 유명하다.

 

《5 · 18 특파원 리포트》의 1부는 외신 기자들의 글, 2부는 국내 기자들의 글이다. 이들 모두 광주에 직접 가서 취재한 현장 기자들이다. 광주항쟁 당시 조선일보 사회부에 활동했던 서청원 자유한국당 의원과 김대중 조선일보 고문의 글도 수록되어 있다. 김대중 고문은 조선일보 사회부장으로 광주항쟁운동 취재를 주관하고 있었다. 그러나 계엄 당국의 통제를 이겨내지 못했고, 광주를 취재한 것들을 신문지에 공개되지 못했다. 김대중 고문은 그 날을 회상하면서 광주항쟁을 제대로 보도하지 못한 자신의 결정에 후회한다고 밝혔다.

 

이 책에 광주항쟁과 함께 잊어서는 안 될 사람들이 언급된다. 윤상원과 전옥주. 윤상원은 시민군 대변인으로 활동했고, 전옥주는 ‘광주의 목소리’가 되어 항쟁이 있던 날 거리시위를 펼쳤다. 특히 윤상원을 바라보는 스톡스와 브래들리 마틴(Bradley Matin) 기자의 시선이 흥미롭다. 스톡스는 윤상원을 ‘순수한 제퍼슨(Thomas Jefferson, 1743~1826, 미국의 대통령) 민주주의자’로, 브래들리 마틴은 ‘과격한 항쟁 투사’라고 말한다.

 

5 · 18광주민중항쟁은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기 위한 수많은 시민의 땀과 눈물이 담겨 있는 소중한 역사이다. 혼란 속에서도 질서를 유지했던 이름 없는 이들의 노력은 자체로 평가받아야 한다. 그런데 민중항쟁을 그저 ‘과거의 불행’으로 치부하고, 자꾸 잊으려고 한다. 민중항쟁을 기념하는 것조차 이해하지 못한다. 민중항쟁은 다시 떠올리기 불편한 역사의 비극이 아니다. 불편한 역사를 잊어버린다고 해서 세상이 좋은 쪽으로 달라진 점이 있었던가. 역사에 대한 반성과 성찰이 없는 사회는 절망과 좌절의 역사를 다시 경험하게 된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려면 ‘광주의 진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광주의 진실’을 기록한 《5 · 18 특파원 리포트》는 2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에게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지혜와 용기를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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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18 21: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5-19 06:43   좋아요 0 | URL
팩트 폭력.. 맞습니다. 이미 지나간 일이지만 이번 대선 결과를 확인하면서 대구 경북에 샤이 자유한국당이 많이 있다는 점을 알았습니다.

AgalmA 2017-05-18 22:0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늘 jtbc에서 나치 만행을 부정한 영화 [나는 부정한다]와 광주 항쟁을 연결한 거 괜찮더군요.
당시 전남대병원 레지던트였던 분 인터뷰도 좋았고. 차례로 진료했기 때문에 안타깝게 사망한 사람에게 죄책감을 아직 가지고 있다고 말씀하시는 거 듣고, 전두환 이하 군부들 참 여러 사람 죽을 때까지 고통스럽게 한 죄인들이다 싶었습니다.

cyrus 2017-05-19 06:48   좋아요 0 | URL
어제가 특별한 날인만큼 뉴스룸이 어떻게 진행될지 기대했습니다. 본방사수 잘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최초 발포자‘를 밝혀야 합니다. 명령을 따를 수밖에 없었던 군인들 중에 시민들을 죽인 기억을 잊지 못해 트라우마를 겪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