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은 부산물이다 - 문명의 시원을 둘러싼 해묵은 관점을 변화시킬 경이로운 발상
정예푸 지음, 오한나 옮김 / 378 / 2018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문명의 발전은 우연인가, 필연인가? 영국의 역사가 에드워드 H. 카(Edward H. Carr)‘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는 정의를 내리면서 ‘과거를 해석하면 미래를 통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과거란 현재의 시점에서 보면 이미 지나간 시간, 즉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순간이다. 이러한 과거에 인간이 한 일과 생각을 밝히는 것이 역사다. 역사는 인과관계라는 시간의 실타래로 엉켜 있다. 역사를 연구하는 일은 ‘원인’을 알아내는 일이다. 그러나 역사적 사건이 단일한 원인만을 갖는 것은 아니며, 여럿인 경우가 많다. 역사가는 이것들을 파악해 내고, 단순하게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정리한 후 역사적 사건 속의 상호관계를 파악한다. 이것이 역사가의 해석이다. ‘원인(들)’을 탐구하면서 역사적 사건들을 인과의 계열 속에 배열하는 것이 역사가 고유의 기능이다.

 

오랫동안 사람들은 인류 문명의 발달을 인간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데 익숙했다. 그들은 문명화되는 과정이 역사의 필연성에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했고, 문명이 번영으로 가는 길을 상승하는 계단처럼 매끄럽게 이어지는 단일한 경로로 간주하곤 했다. 이러한 필연성의 근저에는 모든 역사적 사건에는 원인이 있으며 같은 원인은 같은 결과를 이끈다는 믿음이 가정되어 있다. 80년대 대학가에서 카의 명저 《역사란 무엇인가》(까치, 2015)만큼 가장 많이 읽힌 역사책도 찾기 어렵다. 카가 이 책에서 보여준 역사적 필연성, 진보에 대한 확신, 그리고 역사를 주도해 나가는 인간의 주체성은 민주화를 열망하는 대학생들의 세계관에 부합되는 내용들이었다.

 

그러나 역사 속에서 원인과 결과 사이의 필연성을 찾는 일은 무의미하다. 90년대 들어 소련의 공산주의 체제가 무너지면서 역사에 단일한 지향점과 목적이 있고, 역사적 진보를 논증할 수 있다는 믿음이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문명의 발전이 지극히 우연일 수 있다는 생각이 받아들여지기 시작한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다. 중국의 사회학자 정예푸(鄭也夫)는 필연성을 찾으려는 문명사 연구에 비판적이다. 그가 쓴 《문명은 부산물이다》(37∞, 2018)는 문명사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 책이다. 이 책의 결론부터 말하자면, 문명은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다.

 

정예푸는 문명 발전에 기여한 여섯 가지 핵심 요인족외혼, 농업, 문자, 종이, 조판인쇄, 활자 인쇄 등이 역사의 필연인지, 우연인지를 분석한다. 이러한 여섯 가지 요인들은 인류가 필요해서 만들어진 산물인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것은 작은 우연들이 겹쳐져서 생긴 산물이다.

 

원시 인류 사회까지만 해도 같은 부족 안의 근친상간이 대부분이었다. 부부의 개념도 없었다. 이후 부족들 간의 접촉이 활발해지면서 족내혼이 일반화됐다. 인류학자들은 부족사회 안에서 근친상간 금기가 형성되어 족외혼으로 발전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예푸는 족외혼이 종족 퇴화를 막기 위한 목적에 의해서 생긴 것이 아니라고 반박한다. 그는 영국의 인류학자 웨스터마크(Westermarck)의 가설을 지지하면서 족외혼을 ‘외부에 대한 성적 취향’의 산물로 봤다. 웨스터마크는 같이 생활한 성장한 이성, 즉 가족 구성원에게 성적 매력을 느끼지 않기 때문에 족외혼이 보편화하였다고 주장했다.

 

수렵 및 채집 생활을 하고 있었던 인류는 야생 벼를 우연히 발견하여 그것을 땅에 심었다. 그들은 야생 벼를 수확하는 법을 습득했다. 그러나 식량이 부족해지는 비수확기는 이제 막 농업을 하기 시작한 인류가 겪는 시련이었다. 그것은 ‘농경사회’를 이룩하게 될 인류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하지만 인류는 한 곳에 정착하기 시작했고, 인구가 점점 늘어나고 있던 터라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농업을 선택했다.

 

문자의 발명과 종이의 탄생은 학문 발전과 지식 전달 수단으로, 인류의 문화 발달과 문화 형성에 아주 큰 공헌을 했다. 정예푸는 종이가 발명되기 이전의 시대에 주목하여 조판인쇄가 발달한 과정을 추적한다. 종이가 나오기 전에는 점토판에 도장을 찍는 관습이 있었다. 종이가 등장하면서 인류는 종이에도 도장을 찍었다. 종이에 도장을 찍는 행위는 조판인쇄의 기원인 셈이다.

 

《문명은 부산물이다》는 정독하기가 쉽지 않은 책이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필자는 이 책의 3장(문자), 4장(제지), 5장(조판인쇄), 6장(활자 인쇄)을 훑어봤다. 왜냐하면, 저자가 인용하면서 설명하는 한자의 구조, 중국의 종이문화 및 각종 용어가 생소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면 중국 문헌뿐만 아니라 서양 문헌들까지 참고하는 저자의 폭넓은 지식 편력에 깜짝 놀랄 것이다. 친절하게도 이 책의 역자는 독자들이 저자가 참고한 책들을 확인할 수 있도록 국역본 제목까지 알려줬다. 1장, 2장, 그리고 이 책의 결론에 해당하는 7장만 봐도 이 책에서 저자가 강조하려는 핵심 내용이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8-02-13 16: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2-13 17:39   좋아요 1 | URL
인간이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을 보면 인간은 ‘역사’ 속에 영원히 갇힌 존재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

페크pek0501 2018-02-14 10: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사란 무엇인가》를 읽고 감탄하던 때가 떠오릅니다.
역사뿐만 아니라 모든 건 해석의 문제인 것 같아요.
˝사실은 없다. 해석만이 있을 뿐이다.˝(니체)라는 문장을 새삼 생각해 봅니다.

cyrus 2018-02-14 15:22   좋아요 0 | URL
역사를 바라볼 때 균형 잡힌 시각을 가지고 해석하면 좋은데, 이게 쉽지 않아요. ^^;;
 
오컬트, 마술과 마법 - 고대 주술부터 현대 마법까지 오컬트 대백과사전
크리스토퍼 델 지음, 장성주 옮김 / 시공아트 / 2017년 10월
평점 :
품절


 

 

오컬트(Occult)마법, 심령현상, 무속 신앙은 현실에서는 무시당하기 쉽다. 오컬트 마니아들이 믿는 영적인 힘은 우리 눈으로 확인이 안 된다는 점도 그렇지만, 과학적으로 검증할 수 있냐는 것이 가장 큰 논란거리다. 기이하게도 과학이 발달하면 할수록 오히려 오컬트가 더욱 주목받는다. 다양한 초자연적 현상들이 과학의 원리로도 여전히 설명이 안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중문화가 그런 ‘어두운 매력 덩어리’를 절대 놓칠 리가 없다. 무엇보다 표현의 자유가 있는 소설, 영화야말로 오컬트와 환상의 궁합을 이룰 수 있다.

 

인간이 왜 유령에 호기심을 갖고, 과학이 부정하는 마법에 대해 꾸준히 관심을 두는지에 대한 이유를 알고 싶다면 ‘오컬트의 보고(寶庫)’인 《오컬트, 마술과 마법》(시공아트, 2017)을 펼쳐보시라. 이 책을 읽으면 ‘오컬트란 무엇인가’에 대해 어느 정도 기초적인 지식을 얻을 수 있다. 이 책에 ‘신기하고 이상한 것’들뿐만 아니라 그것에 푹 빠진 사람들의 이야기도 있다.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고, 음이 있으면 양이 있듯이 세상에는 꼭 한 가지가 지배하는 것은 아니다. 천사의 반대편에 악마가 있었고, 과학과 함께 연금술이 존재했으며, 기도하는 성직자의 대척점에 주문을 외우는 마법사들이 있었다. 이런 것들을 한꺼번에 묶어 부를 수 있는 이름이 바로 오컬트다.

 

《오컬트, 마술과 마법》은 ‘연대기적 접근’을 통해 고대부터 현대까지 이어지고 있는 오컬트의 영향력을 생생한 도판과 귀중한 유물 등과 함께 보여준다. 따라서 이 책은 오컬트와 관련된 유물 및 그림까지 한눈에 볼 수 있는 백과사전이라 할 수 있다. 마법사, 점성술, 카발라(Kabbalah, 고대 유대교의 신비주의 사상), 연금술, 노스트라다무스(Nostradamus), 샤머니즘(Shamanism), 프리메이슨(Freemason, 비밀 단체), 심령술 등 미스터리, 음모론을 논할 때 반드시 나오는 필수 요소들이 《오컬트, 마술과 마법》에 요약 정리되어 있다. 이 책의 장점은 서구 오컬트 문화에만 치중하지 않는 구성 방식이다. 저자는 우리나라에 생소한 일본의 무속 신앙, 아프리카 및 라틴아메리카의 민간 신앙까지 다룬다. 아주 적은 내용이지만, 저자는 ‘동아시아의 마법’을 소개한 장에 우리나라의 도깨비를 언급했다(282쪽).

 

오컬트는 인간을 둘러싼 자연환경의 실체를 밝혀내는 학문이었다. 현실을 뛰어넘는 초자연적인 힘에 대한 갈망, 불투명한 미래를 알고 싶은 호기심은 늘 인간의 마음속에 있었고, 그 속에서 오컬트는 자연스럽게 등장해 당시 사람들의 삶에 중요하게 작용했다. 지금도 성행하는 점술, 타로(Tarot)는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오컬트를 배척하는 기독교의 힘이 유럽 전역에 확장될수록 마법과 신비주의의 관심도 커졌다. 기독교는 유일신의 영적인 힘을 믿지만, 민간신앙과 밀접한 마법은 인간인 마법사의 의지대로 신비로운 힘을 부리려고 한다. 그래서 마법과 신비주의 사상은 신을 거역하는 죄를 부추기는 ‘이단’이라고 비난을 받았다. 마법은 고대 로마 때부터 박해를 받아왔다. 로마 시대에 제정된 코르넬리우스(Cornelius) 법은 마법을 불법으로 규정했다. 중세 말기, 르네상스 초기에 있었던 마녀사냥의 참혹한 역사는 마법에 대한 서구문화의 적대감을 잘 보여준다.

 

세계에 드리운 미혹과 망상, 미신과 사이비를 거부하는 회의주의자들에겐 《오컬트, 마술과 마법》을 황당무계한 내용만 가득한 책으로 생각할 수 있다. 나는 회의주의자다. 그렇지만 나는 이 책을 ‘별점 네 개’를 주고 싶다. 《오컬트, 마술과 마법》을 쓴 저자는 ‘오컬트에 관심이 많은 예술사 전문가’이다. 그는 예술, 문학 분야에 새겨진 ‘오컬트의 희미한 흔적’을 보여준다. 《오컬트, 마술과 마법》을 읽는다면 우리가 소설을 읽고, 영화를 보면서 지나쳤던 ‘시시콜콜한 오컬트 지식’을 다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어느 정도 비과학적인 현상에 대해 회의주의적 태도를 보인다. 19세기 중반 미국 전역에 심령술 인기를 일으킨 폭스(Fox) 자매의 영매 능력과 유럽에 유행한 심령사진들이 ‘조작’이라고 분명하게 밝혔다. 또 그는 “마법은 언제나 기술일 뿐이지 결코 과학이 아니다”라는 제임스 조지 프레이저(James George Frazer, 《황금가지》를 쓴 종교학자)의 말을 인용하여 현대의 오컬트가 ‘개인의 발전’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고 말한다. 개인이 오컬트에 지나치게 심취하면 주변 사람들의 몸과 정신을 위협하는 사이비 종교 하나 만들어낼 수 있다. 오컬트를 악용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명예와 권위를 드높이기 위해 오컬트 지식을 끌어들인다. 그건 '개인의 발전'을 위해서 오컬트를 이용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사기술을 맹신하는 가엾은 사람들은 오컬트를 ‘과학’이라고 믿는다. 이런 사람들 때문에 오컬트는 부정적인 뉘앙스를 가진 단어로 오해받는다.

 

건강한 오컬트는 자유로운 상상의 세계로 이끌어주는 유익한 지식이다. 그래서 오컬트는 ‘어두운 매력 덩어리’다. 오컬트가 완전히 사라져버린 시대를 상상할 수 없다. 레이 브래드버리(Ray Bradbury)의 단편 소설 『추방자들』에 환상, 공포, 불가사의한 요소가 있는 문학을 ‘금서’로 규정하여 불태우는 미래 사회가 나온다. 나는 그런 세상에 살고 싶지 않다. 상상력 충만한 책 없이 무슨 재미로 사나. ‘상상할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8-01-31 13: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1-31 17:47   좋아요 1 | URL
적당한 상상력은 좋죠. 상상력이 과하면 허무맹랑한 ‘음모론’이 생겨요. ^^

표맥(漂麥) 2018-02-01 16: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실제론 그러지 못하면서 마음 속으로 아주 좋아하는 분야 입니다.^^

cyrus 2018-02-02 13:22   좋아요 0 | URL
저도 오컬트 좋아합니다. 현실성 떨어지는 정보를 지나치게 믿지 않는다면 즐길 수 있는 분야입니다. ^^

카스피 2018-02-01 2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저도 이분야 넘 좋아하는데 의외로 국내에선 책이 많이 없더군요^^

cyrus 2018-02-02 13:23   좋아요 0 | URL
맞아요. 오컬트 분야 책이 잘 안 팔리니까 절판되기 쉬워요. ^^;;
 

 

 

 

 

 

 

 

마녀사냥은 무지와 군중심리, 광기를 본질로 한다. 전염병, 기근 등 갑작스러운 재앙의 원인에 대해 당시 지식의 수준으로는 설명할 수 없었다. 국가는 흉흉해진 민심을 통제하기 위한 방책이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교황은 이단 심문관들에게 마녀재판을 주관하는 권한을 부여했다. 마녀재판으로 희생된 마녀들은 대개 평범한 여성들이었다. 재난이 닥쳐오면 마녀의 저주 때문이라 하여 무고한 여성들이 마녀의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죽어갔다.

 

 

 

 

 

 

 

 

 

 

 

 

 

 

 

 

 

 

 

 

 

 

 

 

 

 

 

 

 

 

 

 

* 주경철 《마녀 : 서구 문명은 왜 마녀를 필요로 했는가》 (생각의 힘, 2016)

* 양태자 《중세의 잔혹사 마녀사냥》 (이랑, 2015)

* [절판] 이케가미 슈운이치[슌이치] 《마녀와 성녀》 (창해, 2005)

* 제프리 버튼 러셀 《마녀의 문화사》 (르네상스, 2004)

* [절판] 제프리 버튼 러셀 《악마의 문화사》 (황금가지, 1999)

* 장 미셸 살망 《사탄과 약혼한 마녀》 (시공사, 1995)

 

 

 

마녀재판의 희생자 가운데는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도 적지 않았다. 현대에 와서 ‘마녀사냥’은 대중의 잘못된 믿음을 악용해 무고한 사람을 죄인으로 만들거나 여론몰이 등으로 희생시키는 상황을 의미하는 단어로 사용된다.

 

 

 

 

 

 

 

 

 

 

 

 

 

 

 

 

* 쿠사노 다쿠미 《도해 마술의 역사》 (AK커뮤니케이션즈, 2016)

* 쿠사노 다쿠미 《도해 흑마술》 (AK커뮤니케이션즈, 2015)

* 하니 레이 《도해 근대마술》 (AK커뮤니케이션즈, 2012)

 

 

 

‘악마는 무엇인가?’, ‘마녀는 존재하는가?’라는 문제는 유럽 중세 및 르네상스의 오랜 종교적 질문이었다. 마녀재판이 절정기에 달했던 시기는 새로운 인문주의적 인간성이 성립된 르네상스 시대였다. 초기 기독교는 선과 악, 신과 악마를 구분 짓지 않았다. 신은 전지전능한 존재다. 신의 신비로운 힘을 느끼는 영적 체험은 ‘신의 은총’이다. 기독교가 말하는 인간은 오직 신의 은총으로 구원받을 수 있는 타락한 존재다. 즉 인간은 자신의 구원을 위해 어떤 능동적인 역할도 할 수 없다. 마술을 이용해 기적과 저주를 내리는 마법사들이 활동하게 되자 기독교는 마술을 이단이란 이름 아래 탄압하기 시작했다.

 

 

 

 

 

 

 

 

 

 

 

 

 

 

 

 

 

 

* 야콥 슈프랭거, 하인리히 크라머 《마녀를 심판하는 망치 : 말레우스 말레피카룸》

(우물이있는집, 2017)

 

 

 

말레우스 말레피카룸(Malleus Maleficarum)으로 알려진 《마녀를 심판하는 망치》는 마녀가 존재하는 이유와 그들을 고문하고 심문하는 방법이 기술된 책이다. 이 책은 전 유럽에 마녀사냥의 광기가 번지도록 기름을 붓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이 책을 쓴 두 명의 저자는 종교 재판소의 이단 심문관으로 활동한 성직자다. 야콥 슈프랭거(Jacob Sprenger)는 독일 출신, 하인리히 크라머(Heinrich Kramer)는 프랑스 출신이다. 어떤 학자는 《마녀를 심판하는 망치》의 정당성을 높이기 위해 크라머가 명망 있는 이단 심문관 야콥 슈프랭거의 이름을 가져왔다고 주장한다. 이 책이 나오기 전까지 독일 가톨릭은 마법의 힘과 마녀의 존재를 믿지 않았다. 그런데 슈프랭거크라머는 마녀를 부정하는 성직자들의 입장에 반대했고, 마법은 ‘악마가 가진 초자연적인 힘’이며 마녀는 이 악마의 힘을 이용하는 사악한 존재로 규정했다. 자신들의 ‘마녀론’을 합리화하기 위해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같은 권위 있는 종교인들의 글을 인용하기도 했다. 전문가의 의견에 호소하는 ‘권위에 의거하는 논증’은 마법의 단죄를 정당한 것으로 보이게 했다. 그러나 《마녀를 심판하는 망치》는 이성적인 판단과 근거가 빈약한 책이다. 이케가미 슌이치(池上俊一)는 《마녀를 심판하는 망치》의 내용에 ‘여성에 대한 강박적인 두려움’을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 니시무라 유코 《그림과 사진으로 풀어보는 마녀의 약초상자》

(AK커뮤니케이션즈, 2017)

 

 

 

마녀재판이 유럽 전역을 휩쓸기 전까지 마녀는 마을 외진 곳에 혼자 살면서 민간 처방이나 주술을 행하던 여성 정도로 인식되었다. 《그림과 사진으로 풀어보는 마녀의 약초상자》는 약을 제조하는 법, 약초의 효능에 대한 지식을 습득한 ‘현명한 여인들’이 마녀로 오해받은 이유를 설명한다. 이단 심문관들은 ‘현명한 여인들’이 만든 약을 ‘마녀의 연고’라고 판단했고, 이 연고를 몸에 바르면 동물로 변신하거나 빗자루를 타면서 하늘을 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단 심문관들은 무고한 여인들을 추궁했으나 끝내 ‘마녀의 연고’ 재료를 알아내지 못했다. 심지어 산파도 마녀사냥의 주요 표적이 되었다. 성경 ‘창세기’ 편에 따르면 신은 낙원에서 추방당한 하와(Ḥawwāh)에게 ‘출산의 고통’을 주었다. 산파는 산모의 출산을 돕는 일을 하는데, 이단 심문관은 성경 구절을 근거로 산파를 ‘신이 내린 출산의 고통을 부정하는 자’로 규정했다.

 

 

 

 

 

 

 

 

 

 

 

 

 

 

 

 

 

 

 

* 시부사와 다쓰히코 《흑마술 수첩》 (어문학사, 2017)

* 쥘 미슐레 《마녀》 (봄아필, 2012)

 

 

 

 

 

 

 

 

 

 

 

 

 

 

 

 

* 폴 카루스 《악마의 탄생》 (청년정신, 2015)

* [구판, 절판] 폴 카루스 《악마의 역사》 (더불어책, 2003)

 

 

 

프랑스의 역사가 쥘 미슐레(Jules Michelet)와 독일의 과학철학자 폴 카루스(Paul Carus)는 '민중을 현혹하는 마녀(악마)'라는 인식에 반론을 제기한다. 쥘 미슐레는 마녀가 ‘민중의 몸과 마음을 치료하는 의사’였다고 주장했고, 폴 카루스는 이단으로 규정 받아 종교로부터 탄압받은 지식인들이 세상을 진보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봤다. 마녀 집회에 참여하는 것이야말로 민중의 목소리를 가까이 들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기회였다. 이단 심문관들은 마녀 집회를 ‘신과 교회를 부정하는 이단세력들의 모임’, ‘악마들의 문란한 축제’로 인식했다. 그러나 마녀 집회를 바라보는 그들의 생각은 과도한 상상력이 덧붙여진 편견이다. 마녀 집회는 ‘민중의 축제’였으며 그것이 종교의 힘에 철저히 지키려는 지배계급의 눈에는 자신들의 권위를 위협하고 부정하는 행위로 보였다. 오컬트에 관심 많은 일본의 작가 시부사와 다쓰히코(澁澤龍彥)는 마녀 집회에 참여한 민중들이 중세 계급사회와 종교적 질서를 거부하고, 성(sex)의 자유를 외친 아나키스트라고 주장한다.

 

악마와 마녀는 인간의 의지와 관계없이 존재하는 것인가, 아니면 인간의 어두운 내면이 반영돼 의인화한 것인가라는 주제는 여전히 논란으로 남아 있다. 과학에 대한 믿음이 절정에 달한 지금도 사람들은 ‘마법’과 ‘악마의 존재’에 관심을 가진다. 마법은 암울한 현실에 얽매인 인간의 ‘현실 초월의 욕구’를 충족시켜준다. 반면 현실 지향적인 지식은 때로 이성을 마비시키는 가장 강력한 독이 되기도 한다. 그 독을 품은 지식인 및 종교인들은 ‘악마에 관한 지식’을 이용하여 마녀사냥을 주도했고 막강한 힘을 과시했다. 그들이야말로 민중을 못살게 군 진짜 악마였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8-01-29 15: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1-29 17:19   좋아요 1 | URL
별 것도 아닌 이유 가지고 마녀로 몰아세우는 사례도 있습니다. 옛날에 우유나 치즈를 만드는 일은 여성이 맡은 일이었어요. 상한 우유나 치즈를 먹고 복통에 시달린 사람들은 우유와 치즈를 만든 여성이 ‘사악한 힘’을 가졌다고 비난했어요. 그때는 음식을 상하게 만드는 세균의 존재를 몰랐을 것이고, 음식이 상하는 원인을 ‘초자연적인 힘’이라고 생각하기 쉬웠죠.
 

 

 

알라딘 서점을 이용하다 보면 가끔 사고 싶은 책을 못 사는 상황이 생긴다. 서점을 방문하기 전에 미리 읽고 싶은 책을 ‘찜’해봤자 아무 소용없다. 다른 손님이 그 책을 선점하면 빈손으로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지금도 간발의 차이로 내 손에 들어오지 못한 책들이 내 눈앞에 아른거린다. 이케가미 슌이치(池上俊一)《여성에게 문화는 있었는가》(사계절, 1999)는 ‘놓쳐 버린 책’ 중 한 권이다.

 

 

 

 

 

 

 

 

 

 

 

 

 

 

 

 

 

 

 

* [절판] 이케가미 슌이치 《여성에게 문화는 있었는가》(사계절, 1999)

* [품절] 이케가미 슈운이치 《마녀와 성녀》(창해, 2005)

 

 

 

책의 원제는 ‘마녀와 성녀(魔女と聖女)’다. 1999년에 첫 번역본이 나오고, 2005년 다른 출판사가 새로운 번역본을 내놓았다. 두 번째 번역본의 제목은 원제를 그대로 썼다. 일본인 저자명이 ‘슌이치’로 표기되지 않아서 ‘슈운이치’로 검색해야 《마녀와 성녀》가 검색 결과에 나온다. 그런데 두 책 모두 현재 구할 수 없다.

 

마녀와 성녀. 여성을 바라보고 평가할 때 사용되는 이 두 가지 개념은 상반되지만, 서로를 이어주면서 옥죄는 ‘연결고리’가 있다. 그 ‘연결고리’가 바로 여성에 대한 남성의 편견이다. 이 책은 ‘선과 악’이라는 극단적 이분법에 희생당한 여성의 역사를 다룬 책이다. 저자는 중세에서 시작된 여성 혐오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밝히고 있다. ‘마녀사냥’은 악마가 행하는 마법의 집회와 이단 밀교가 존재한다는 믿음 아래 산발적으로 유럽으로 번지기 시작했다. 기독교 교리에 어긋나는 악마가 존재한다고 철석같이 믿은 사람들은 무고한 여성을 마녀로 몰아 종교재판에 부쳤다. 마녀사냥에 억울하게 희생당한 여성 대부분은 약초에 관한 지식을 가졌거나 중매쟁이(뚜쟁이) 노릇을 하는 소외 계층(아웃사이더)이었다.

 

 

마녀로 치부되던 여자들은 사회적으로 빈궁한 아웃사이더들이었다. 도시인은 적고 대부분이 농촌의 가난한 여성이었다. 그녀들은 밑바닥 사람들과 사귀었다. 사람들은 비밀의 힘, 예언의 힘을 지닌 그녀를 의지했다.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그녀에게 병든 가축을 내맡기고, 주문을 걸게 하고, 사랑에 필요한 도움을 받았다. 그녀들은 약초에 대한 지식을 지니고 있고, 산파술에 정통하고, 독극물 조합법을 알고 있으며, 연애를 돕거나 혹은 방해할 수 있는 약물 조합법을 알고 있었다. [1]

 

 

마녀를 대하는 중세 및 르네상스 시대 사람들의 시선은 문학 작품에 묘사된 뚜쟁이를 통해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라 셀레스티나(La Celestina)는 탐욕스럽고 고약한 뚜쟁이 노파를 상징하는 전설상의 인물이다. 그녀는 스페인 최초의 사실주의 소설로 평가받는 페르난도 데 로하스(Fernando de Rojas)의 작품에 등장한다.

 

 

 

 

 

 

 

 

 

 

 

 

 

 

 

 

 

 

* 페르난도 데 로하스 《라 셀레스티나》(을유문화사, 2010)

* 프란시스코 데 케베도 이 비예가스 《케베도 시선》(지만지, 2015)

 

 

 

셀레스티나는 남녀 주인공의 애정을 방해하는 주술을 사용한다. 로하스의 《라 셀레스티나》는 미겔 데 세르반테스 사아베드라(Miguel de Cervantes Saavedra)프란시스 데 케베도(Francisco de Quevedo)와 같은 스페인 황금세기를 대표하는 작가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케베도는 『셀레스티나에게 부쳐』라는 시를 쓰기도 했다.

 

 

 

이 차가운 대지에

모든 사람들의 존경을 한 몸에 안은 자가 잠들어 있다.

그 노파에 대한 찬사는

수많은 펜으로도 모자라리라.

 

그녀는 별을 즐기기 위해

하늘나라에 들어가기를 싫어했지.

그건 자기가 더럽힐 수 없는

아가씨들 사이에서는 있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2]

 

 

 

 

이 시에 나오는 ‘펜(pluma, 스페인어)’은 작가들이 쓰는 펜(pen)과 깃털이라는 두 가지 의미(새의 깃털로 만든 펜)를 담고 있다. ‘노파에 대한 찬사’는 뚜쟁이들이 받는 형벌로 해석한다. 형벌 집행인들은 벌거벗은 뚜쟁이의 온몸에 기름과 꿀을 바른다. 그런 다음에 뚜쟁이를 깃털이 잔뜩 깔린 땅바닥에 뒹굴게 한다. 깃털이 달라붙은 뚜쟁이는 사람들이 보는 광장 한가운데에 세워 둔다. 죄인에게 굴욕감을 주는 형벌로 보이겠지만, 사실은 죄인에게 신체적 고통을 주는 잔인한 형벌이다. 몸에 달라붙은 수많은 깃털이 전신의 피부를 찌르기 때문이다. 뚜쟁이가 받는 형벌은 유럽 전역을 휩쓴 ‘마녀사냥’ 재판 유행에 탄생한 고문 방식 중의 하나로 볼 수 있다.

 

말도 안 되는 누명을 씌워 ‘마녀’로 낙인찍힌 여성이 있는 반면에 종교에 헌신하는 여성은 ‘성녀’로 추앙받았다. 수녀가 종교적인 환시인 신비체험을 경험하면 ‘신의 현현(顯現)’으로 간주했다. 여기서 문제점은 수녀의 신비스러운 체험을 두고도 교회가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그들의 운명이 ‘마녀냐, 성녀냐’로 갈라지는 갈림길에 서게 된다는 사실이다. 봉건 시대에 궁정 문학이 유행하자 ‘마리아 숭배’ 사상이 나타났다. 기사들은 아름다운 귀부인을 ‘마리아’로 비유하여 그녀를 보호하는 일이 자신들의 명예로운 임무라고 생각했다. 극단적인 여성 숭배는 여성의 삶을 해방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마녀사냥 재판이 사라졌어도 여성의 삶을 옥죄는 여성 혐오는 여전했다.

 

이케가미 슌이치의 책의 분량은 얇은 편이다. 그렇지만 저자는 중세사회의 이중 모순적 여성관, 마녀와 성녀의 탄생 배경 속에 작용한 여성 혐오의 주요 장면들을 빠짐없이 잘 정리했다. 그리고 잘 알려지지 않은 중세 여성의 삶과 문화를 알 수 있다. 절판된 책에 잘못된 점을 지적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냐만 그래도 혹시 모를 재출간을 위해서 고쳐야 할 부분을 짚어본다.

 

《마녀와 성녀》 프롤로그 8쪽에 보면 ‘남색마’를 ‘incubus(인큐버스)’라고 표기했다. 여기서 말하는 ‘남색마’를 마녀를 가리킨다. 그런데 인큐버스는 남성의 모습을 한 몽마(夢魔)를 부를 때 쓰는 이름이므로 '마녀=인큐버스'라는 관계 성립이 맞지 않다. 인큐버스는 잠자는 여성의 꿈에 침범하여 성적으로 유혹하는 악마이다. 남성의 성욕을 부추기는 몽마는 여성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succubus(서큐버스)’라고 한다. 따라서 인간 남성을 유혹하는 마녀를 ‘서큐버스’라고 부르는 게 맞다.

 

 

 

 

 

 

 

 

 

 

 

 

 

 

 

 

 

 

* 장 미셸 살망 《사탄과 약혼한 마녀》(시공사, 1995)

* 제프리 버튼 러셀 《마녀의 문화사》(르네상스, 2004)

* 양태자 《중세의 잔혹사 마녀사냥》(이랑, 2015)

 

 

 

 

 

 

 

 

 

 

 

 

 

 

 

 

* 거다 러너 《역사 속의 페미니스트》(평민사, 2007)

* 안체 슈룹, 파투 그림 《페미니즘의 작은 역사》(숨쉬는책공장, 2016)

 

 

 

 

슌이치의 책은 절판되었어도 역사 속 마녀와 성녀, 마녀 사냥의 근원을 추적한 책들을 쉽게 구할 수 있다. 마녀 사냥은 여성사에서 절대로 빠질 수 없는 주제이다. 여성을 억압하는 현실을 피하기 위해 대부분 여성들이 선택한 것은 수녀가 되어 독신으로 살아가는 삶이었다. 그러나 수녀들의 안식처인 교회 역시 ‘여성을 위한 유토피아’가 되지 못했다. 여성에 대한 편견에 사로잡힌 남성 성직자들은 수녀들만 사는 교회가 ‘이단 종파를 가르치는 장소’인지 감시했고, 적극적으로 종교 활동을 하는 수녀들의 능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남성 중심의 종교 권력 체제에 굴하지 않고, 용기 있게 신의 목소리를 높인 수녀들의 삶을 조명한 책으로 거다 러너(Gerda Lerner)《역사 속의 페미니스트》(평민사, 2007), 《페미니즘의 작은 역사》(숨쉬는책공장, 2016)의 ‘중세의 페미니즘’ 편 등이 있다.

 

 

 

 

 

 

 

 

 

 

 

 

 

 

 

 

 

 

 

 

 

 

 

 

 

 

 

 

 

 

 

 

* 아일린 파워 《중세의 여인들》(즐거운상상, 2010)

* 요한 하위징아 《중세의 가을》(연암서가, 2012)

* [품절] 크리스틴 드 피장 《여성들의 도시》(아카넷, 2012)

* [축약본] 크리스틴 드 피장 《숙녀들의 도시》(지만지, 2011)

 

 

 

 

역사학자 아일린 파워(Eileen Power)의 저서는 중세 여성의 경제 활동을 복원한 역사서의 고전이다. 극단적 여성 숭배를 드러난 중세 궁정 문학을 알고 싶으면 중세 문화를 집대성한 요한 하위징아(Johan Huizinga)《중세의 가을》을 참고하면 된다. 슌이치의 책 마지막 부분에 중세 시대의 여성 혐오 담론에 맞서 '펜'을 무기 삼아 정면으로 반박한 크리스틴 드 피장(Christine de Pizan)의 업적이 나온다. 아쉽게도 그녀가 쓴 《여성들의 도시》 완역본은 ‘품절’이다.

 

 

 

 

[1] 《마녀와 성녀》 19쪽

[2]  안영옥 역, 《케베도 시선》 13쪽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8-01-15 22: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1-16 11:46   좋아요 0 | URL
음식의 역사에 대한 책에서 본 건데요, 여자들이 모여서 음식을 먹는 행위가 불경죄에 해당되었다고 합니다. 그 죄가 통용되던 시대는 기억나지 않지만, 먹는 행위마저 혐오로 덮어씌우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다는 것 자체가 무섭습니다.

겨울호랑이 2018-01-15 2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살다보면 때론 인연이 아닌 책들도 있는 것 같네요... 인연이 있다면 언젠가 다시 만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cyrus 2018-01-16 11:49   좋아요 1 | URL
맞아요. 오랫동안 간절히 원하던 책을 우연히 만나는 순간이 짜릿한 게 너무 좋습니다. 그래서 헌책방이나 알라딘 서점에 자주 들락거려요. ^^;;
 
유령의 자연사 -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유령 현상에 대하여
로저 클라크 지음, 김빛나 옮김 / 글항아리 / 2017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영국은 유령이 많이 출몰하는 나라로 알려져 있다.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유령은 헨리 8(Henry )의 두 번째 왕비 앤 불린(Anne Boleyn)의 유령이다. 그녀가 참수된 런던탑 주변에 밤마다 목 없는 앤 불린의 유령이 떠돈다는 도서 전설이 있다. 유령을 믿는 사람은 있어도 한 번 본 사람은 없다. 로저 클라크(Roger Clarke)가 그런 사람이다. 그는 열네 살의 나이에 최연소로 영국 심령연구학회(Society for Psychical Research, SPR) 회원이 되었다. 클라크는 유령이 자주 목격되는 고스트 스팟(Ghost Spot) 여러 군데를 방문했지만, 허탕만 치고 돌아와야만 했다. 그리하여 클라크는 한 가지 결론을 내린다. 유령은 한 차례 목격된 후에는 다시 나타나지 않는다.’ 그는 유령의 실체를 규명하는 대신에 유령 목격담의 역사를 되짚어 보는 작업에 몰두했다. 그러면서 시대별로 유령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사회적 인식과 반응을 확인했다. 유령의 자연사는 유령의 존재를 인식하고, 유령과 함께 살아가는 인간의 다양한 내면 모습을 볼 수 있는 책이다.

 

 

 

 

 

 

유령의 자연사유령에 관한 책이 맞다. 하지만 이 책의 주인공은 유령이 아니다. 혹시 당신이 무시무시한 유령 이야기를 접하고 싶어서 유령의 자연사를 읽어보려고 한다면, 나는 말리겠다. 유령의 자연사유령을 주제로 한 책이지, ‘유령의 역사에 관한 책은 아니다. 따라서 끔찍하고 무서운유령 이야기를 기대하는 독자들에게 이 책은 다소 지루할 수 있다. 사람들이 보고 싶어 하는 심령사진이 많지 않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심령사진으로 알려진 레이넘 홀의 브라운 레이디(The Brown Lady of Raynham Hall)’를 제외한 나머지는 조작한 것으로 판명된 가짜 심령사진들이다. 어느 일간지에 실린 책 소개 단신에는 이 책을 유령 백과사전으로 소개했다.[1] 어디서 구라를!

 

유령 목격담의 역사를 다룬 책이라고 해서 절대로 만만하게 보면 안 된다. 저자는 유령 이야기를 즐기는 옛사람들의 대중심리를 간파하여 유령의 실체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본다. 흔히 유령이라면 하면 단순히 사람을 놀라게 하는 불가사의한 존재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유령의 자연사는 이 통념을 반박한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유령은 감정의 영역[2]이다. 유령은 보이지 않는 실체를 믿고 싶은 사람들의 환상과 열광이 만들어낸 그림자. 인간은 자신의 마음속에서 만들어낸 유령이라는 그림자에 놀라 경기를 일으키고 뒷걸음질 친 것이다. 고스트 헌터(Ghost Hunter)의 원조는 신학자들이었다. 그들은 사람을 괴롭히는 악령의 실체를 확인하는 동시에 악령에 맞설 수 있는 신의 존재를 증명하려고 했다. 빅토리아 시대(Victorian era, 1837~1901)에 강신술, 교령회가 유행하기 시작하면서 유령을 불러들이는 영매는 대중의 인기를 한 몸에 받았다. 당연히 유령 이야기는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유령이 목격되는 장소는 사람들이 자주 찾는 명소가 되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 유령을 내세워 돈 좀 벌어보려는 사기꾼들이 기승을 부렸다. 그래도 유령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식지 않았다.

 

 

 

 

 

 

개인의 출신 배경과 직업 등에 따라 유령의 개념을 인식하는 태도가 결정된다. 상류층과 하류층은 유령을 믿는 성향이 강하고, 중산층은 유령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인다. 하지만 계급을 초월하여 전 국민이 유령을 믿는 흠좀무(‘, 이게 사실이라면 좀 무섭군.’)’한 상황이 나올 때도 있다1차 세계 대전 당시 영국 전역에 알려진 몽스의 천사들(Angels of Mons)’쇼비니즘(chauvinism, 맹목적 애국주의)이 만든 유령 이야기다. 몽스라는 지역에서 독일군과의 혈투를 벌인 영국군은 궁지에 몰렸지만, 하얀 형상의 천사의 도움을 받아 극적으로 승리했다. 몽스 전투에 참전한 영국 군인들은 이 기적 같은 일을 목격했다고 증언했다. 그런데 영국인들은 천사의 사실 여부를 의심하지 않았고, 영국 정부와 언론은 몽스의 천사를 영국군의 수호성인이라고 선전했다. 누구도 몽스의 천사를 의심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것을 믿지 않으면 반애국자로 몰렸기 때문이다.

 

 

 

 

 

 

인간은 불확실한 것에 접하면 확실한 것으로 보려는 경향이 있다. 그것이 곧 그 인간의 지식이나 경험을 바탕으로 해석되는 것이다. 그래서 유령을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은 허술하기 짝이 없는 유령 목격담에 쉽게 흥분한다. 과학이 발달해도 유령이 사라지는 일은 절대로 없다. 누군가는 명성을 얻기 위해 유령을 만들고, 그 유령을 믿어 의심치 않는 사람들이 계속 나올 것이다. 결국, 유령은 망자의 영혼이라기보다는 인류의 감정 안에 탄생하는 욕망 덩어리. 지금도 사람들은 조작과 착각이 뒤섞인 욕망 덩어리를 보기 위해 어디든지 달려간다. 보고 싶은 마음이 강할수록 보이지 않는 것을 더 보고 싶어 한다. 유령을 보려는 헛된 욕망에 매달리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그들을 기만하는 욕망 덩어리는 재생산된다.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고, 비슷한 유령을 만들어 낸다. 정말 유령은 만들어 내기가 쉽다.

 

 

      

 

[1] [<책꽂이-새 책200> 유령의 자연사] 서울경제, 20171111

 

[2] 유령의 자연사38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7-12-08 12: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12-08 17:01   좋아요 1 | URL
<처녀귀신>이라는 제목의 문화사 분야의 책이 있습니다. <유령의 자연사>와 <처녀귀신>을 같이 읽고 있습니다. 서양인이 유령을 보는 관점과 우리 조상님들이 귀신을 보는 관점에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는지 궁금했거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