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사냥은 무지와 군중심리, 광기를 본질로 한다. 전염병, 기근 등 갑작스러운 재앙의 원인에 대해 당시 지식의 수준으로는 설명할 수 없었다. 국가는 흉흉해진 민심을 통제하기 위한 방책이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교황은 이단 심문관들에게 마녀재판을 주관하는 권한을 부여했다. 마녀재판으로 희생된 마녀들은 대개 평범한 여성들이었다. 재난이 닥쳐오면 마녀의 저주 때문이라 하여 무고한 여성들이 마녀의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죽어갔다.

 

 

 

 

 

 

 

 

 

 

 

 

 

 

 

 

 

 

 

 

 

 

 

 

 

 

 

 

 

 

 

 

* 주경철 《마녀 : 서구 문명은 왜 마녀를 필요로 했는가》 (생각의 힘, 2016)

* 양태자 《중세의 잔혹사 마녀사냥》 (이랑, 2015)

* [절판] 이케가미 슈운이치[슌이치] 《마녀와 성녀》 (창해, 2005)

* 제프리 버튼 러셀 《마녀의 문화사》 (르네상스, 2004)

* [절판] 제프리 버튼 러셀 《악마의 문화사》 (황금가지, 1999)

* 장 미셸 살망 《사탄과 약혼한 마녀》 (시공사, 1995)

 

 

 

마녀재판의 희생자 가운데는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도 적지 않았다. 현대에 와서 ‘마녀사냥’은 대중의 잘못된 믿음을 악용해 무고한 사람을 죄인으로 만들거나 여론몰이 등으로 희생시키는 상황을 의미하는 단어로 사용된다.

 

 

 

 

 

 

 

 

 

 

 

 

 

 

 

 

* 쿠사노 다쿠미 《도해 마술의 역사》 (AK커뮤니케이션즈, 2016)

* 쿠사노 다쿠미 《도해 흑마술》 (AK커뮤니케이션즈, 2015)

* 하니 레이 《도해 근대마술》 (AK커뮤니케이션즈, 2012)

 

 

 

‘악마는 무엇인가?’, ‘마녀는 존재하는가?’라는 문제는 유럽 중세 및 르네상스의 오랜 종교적 질문이었다. 마녀재판이 절정기에 달했던 시기는 새로운 인문주의적 인간성이 성립된 르네상스 시대였다. 초기 기독교는 선과 악, 신과 악마를 구분 짓지 않았다. 신은 전지전능한 존재다. 신의 신비로운 힘을 느끼는 영적 체험은 ‘신의 은총’이다. 기독교가 말하는 인간은 오직 신의 은총으로 구원받을 수 있는 타락한 존재다. 즉 인간은 자신의 구원을 위해 어떤 능동적인 역할도 할 수 없다. 마술을 이용해 기적과 저주를 내리는 마법사들이 활동하게 되자 기독교는 마술을 이단이란 이름 아래 탄압하기 시작했다.

 

 

 

 

 

 

 

 

 

 

 

 

 

 

 

 

 

 

* 야콥 슈프랭거, 하인리히 크라머 《마녀를 심판하는 망치 : 말레우스 말레피카룸》

(우물이있는집, 2017)

 

 

 

말레우스 말레피카룸(Malleus Maleficarum)으로 알려진 《마녀를 심판하는 망치》는 마녀가 존재하는 이유와 그들을 고문하고 심문하는 방법이 기술된 책이다. 이 책은 전 유럽에 마녀사냥의 광기가 번지도록 기름을 붓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이 책을 쓴 두 명의 저자는 종교 재판소의 이단 심문관으로 활동한 성직자다. 야콥 슈프랭거(Jacob Sprenger)는 독일 출신, 하인리히 크라머(Heinrich Kramer)는 프랑스 출신이다. 어떤 학자는 《마녀를 심판하는 망치》의 정당성을 높이기 위해 크라머가 명망 있는 이단 심문관 야콥 슈프랭거의 이름을 가져왔다고 주장한다. 이 책이 나오기 전까지 독일 가톨릭은 마법의 힘과 마녀의 존재를 믿지 않았다. 그런데 슈프랭거크라머는 마녀를 부정하는 성직자들의 입장에 반대했고, 마법은 ‘악마가 가진 초자연적인 힘’이며 마녀는 이 악마의 힘을 이용하는 사악한 존재로 규정했다. 자신들의 ‘마녀론’을 합리화하기 위해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같은 권위 있는 종교인들의 글을 인용하기도 했다. 전문가의 의견에 호소하는 ‘권위에 의거하는 논증’은 마법의 단죄를 정당한 것으로 보이게 했다. 그러나 《마녀를 심판하는 망치》는 이성적인 판단과 근거가 빈약한 책이다. 이케가미 슌이치(池上俊一)는 《마녀를 심판하는 망치》의 내용에 ‘여성에 대한 강박적인 두려움’을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 니시무라 유코 《그림과 사진으로 풀어보는 마녀의 약초상자》

(AK커뮤니케이션즈, 2017)

 

 

 

마녀재판이 유럽 전역을 휩쓸기 전까지 마녀는 마을 외진 곳에 혼자 살면서 민간 처방이나 주술을 행하던 여성 정도로 인식되었다. 《그림과 사진으로 풀어보는 마녀의 약초상자》는 약을 제조하는 법, 약초의 효능에 대한 지식을 습득한 ‘현명한 여인들’이 마녀로 오해받은 이유를 설명한다. 이단 심문관들은 ‘현명한 여인들’이 만든 약을 ‘마녀의 연고’라고 판단했고, 이 연고를 몸에 바르면 동물로 변신하거나 빗자루를 타면서 하늘을 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단 심문관들은 무고한 여인들을 추궁했으나 끝내 ‘마녀의 연고’ 재료를 알아내지 못했다. 심지어 산파도 마녀사냥의 주요 표적이 되었다. 성경 ‘창세기’ 편에 따르면 신은 낙원에서 추방당한 하와(Ḥawwāh)에게 ‘출산의 고통’을 주었다. 산파는 산모의 출산을 돕는 일을 하는데, 이단 심문관은 성경 구절을 근거로 산파를 ‘신이 내린 출산의 고통을 부정하는 자’로 규정했다.

 

 

 

 

 

 

 

 

 

 

 

 

 

 

 

 

 

 

 

* 시부사와 다쓰히코 《흑마술 수첩》 (어문학사, 2017)

* 쥘 미슐레 《마녀》 (봄아필, 2012)

 

 

 

 

 

 

 

 

 

 

 

 

 

 

 

 

* 폴 카루스 《악마의 탄생》 (청년정신, 2015)

* [구판, 절판] 폴 카루스 《악마의 역사》 (더불어책, 2003)

 

 

 

프랑스의 역사가 쥘 미슐레(Jules Michelet)와 독일의 과학철학자 폴 카루스(Paul Carus)는 '민중을 현혹하는 마녀(악마)'라는 인식에 반론을 제기한다. 쥘 미슐레는 마녀가 ‘민중의 몸과 마음을 치료하는 의사’였다고 주장했고, 폴 카루스는 이단으로 규정 받아 종교로부터 탄압받은 지식인들이 세상을 진보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봤다. 마녀 집회에 참여하는 것이야말로 민중의 목소리를 가까이 들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기회였다. 이단 심문관들은 마녀 집회를 ‘신과 교회를 부정하는 이단세력들의 모임’, ‘악마들의 문란한 축제’로 인식했다. 그러나 마녀 집회를 바라보는 그들의 생각은 과도한 상상력이 덧붙여진 편견이다. 마녀 집회는 ‘민중의 축제’였으며 그것이 종교의 힘에 철저히 지키려는 지배계급의 눈에는 자신들의 권위를 위협하고 부정하는 행위로 보였다. 오컬트에 관심 많은 일본의 작가 시부사와 다쓰히코(澁澤龍彥)는 마녀 집회에 참여한 민중들이 중세 계급사회와 종교적 질서를 거부하고, 성(sex)의 자유를 외친 아나키스트라고 주장한다.

 

악마와 마녀는 인간의 의지와 관계없이 존재하는 것인가, 아니면 인간의 어두운 내면이 반영돼 의인화한 것인가라는 주제는 여전히 논란으로 남아 있다. 과학에 대한 믿음이 절정에 달한 지금도 사람들은 ‘마법’과 ‘악마의 존재’에 관심을 가진다. 마법은 암울한 현실에 얽매인 인간의 ‘현실 초월의 욕구’를 충족시켜준다. 반면 현실 지향적인 지식은 때로 이성을 마비시키는 가장 강력한 독이 되기도 한다. 그 독을 품은 지식인 및 종교인들은 ‘악마에 관한 지식’을 이용하여 마녀사냥을 주도했고 막강한 힘을 과시했다. 그들이야말로 민중을 못살게 군 진짜 악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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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29 15: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1-29 17:19   좋아요 1 | URL
별 것도 아닌 이유 가지고 마녀로 몰아세우는 사례도 있습니다. 옛날에 우유나 치즈를 만드는 일은 여성이 맡은 일이었어요. 상한 우유나 치즈를 먹고 복통에 시달린 사람들은 우유와 치즈를 만든 여성이 ‘사악한 힘’을 가졌다고 비난했어요. 그때는 음식을 상하게 만드는 세균의 존재를 몰랐을 것이고, 음식이 상하는 원인을 ‘초자연적인 힘’이라고 생각하기 쉬웠죠.
 

 

 

알라딘 서점을 이용하다 보면 가끔 사고 싶은 책을 못 사는 상황이 생긴다. 서점을 방문하기 전에 미리 읽고 싶은 책을 ‘찜’해봤자 아무 소용없다. 다른 손님이 그 책을 선점하면 빈손으로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지금도 간발의 차이로 내 손에 들어오지 못한 책들이 내 눈앞에 아른거린다. 이케가미 슌이치(池上俊一)《여성에게 문화는 있었는가》(사계절, 1999)는 ‘놓쳐 버린 책’ 중 한 권이다.

 

 

 

 

 

 

 

 

 

 

 

 

 

 

 

 

 

 

 

* [절판] 이케가미 슌이치 《여성에게 문화는 있었는가》(사계절, 1999)

* [품절] 이케가미 슈운이치 《마녀와 성녀》(창해, 2005)

 

 

 

책의 원제는 ‘마녀와 성녀(魔女と聖女)’다. 1999년에 첫 번역본이 나오고, 2005년 다른 출판사가 새로운 번역본을 내놓았다. 두 번째 번역본의 제목은 원제를 그대로 썼다. 일본인 저자명이 ‘슌이치’로 표기되지 않아서 ‘슈운이치’로 검색해야 《마녀와 성녀》가 검색 결과에 나온다. 그런데 두 책 모두 현재 구할 수 없다.

 

마녀와 성녀. 여성을 바라보고 평가할 때 사용되는 이 두 가지 개념은 상반되지만, 서로를 이어주면서 옥죄는 ‘연결고리’가 있다. 그 ‘연결고리’가 바로 여성에 대한 남성의 편견이다. 이 책은 ‘선과 악’이라는 극단적 이분법에 희생당한 여성의 역사를 다룬 책이다. 저자는 중세에서 시작된 여성 혐오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밝히고 있다. ‘마녀사냥’은 악마가 행하는 마법의 집회와 이단 밀교가 존재한다는 믿음 아래 산발적으로 유럽으로 번지기 시작했다. 기독교 교리에 어긋나는 악마가 존재한다고 철석같이 믿은 사람들은 무고한 여성을 마녀로 몰아 종교재판에 부쳤다. 마녀사냥에 억울하게 희생당한 여성 대부분은 약초에 관한 지식을 가졌거나 중매쟁이(뚜쟁이) 노릇을 하는 소외 계층(아웃사이더)이었다.

 

 

마녀로 치부되던 여자들은 사회적으로 빈궁한 아웃사이더들이었다. 도시인은 적고 대부분이 농촌의 가난한 여성이었다. 그녀들은 밑바닥 사람들과 사귀었다. 사람들은 비밀의 힘, 예언의 힘을 지닌 그녀를 의지했다.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그녀에게 병든 가축을 내맡기고, 주문을 걸게 하고, 사랑에 필요한 도움을 받았다. 그녀들은 약초에 대한 지식을 지니고 있고, 산파술에 정통하고, 독극물 조합법을 알고 있으며, 연애를 돕거나 혹은 방해할 수 있는 약물 조합법을 알고 있었다. [1]

 

 

마녀를 대하는 중세 및 르네상스 시대 사람들의 시선은 문학 작품에 묘사된 뚜쟁이를 통해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라 셀레스티나(La Celestina)는 탐욕스럽고 고약한 뚜쟁이 노파를 상징하는 전설상의 인물이다. 그녀는 스페인 최초의 사실주의 소설로 평가받는 페르난도 데 로하스(Fernando de Rojas)의 작품에 등장한다.

 

 

 

 

 

 

 

 

 

 

 

 

 

 

 

 

 

 

* 페르난도 데 로하스 《라 셀레스티나》(을유문화사, 2010)

* 프란시스코 데 케베도 이 비예가스 《케베도 시선》(지만지, 2015)

 

 

 

셀레스티나는 남녀 주인공의 애정을 방해하는 주술을 사용한다. 로하스의 《라 셀레스티나》는 미겔 데 세르반테스 사아베드라(Miguel de Cervantes Saavedra)프란시스 데 케베도(Francisco de Quevedo)와 같은 스페인 황금세기를 대표하는 작가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케베도는 『셀레스티나에게 부쳐』라는 시를 쓰기도 했다.

 

 

 

이 차가운 대지에

모든 사람들의 존경을 한 몸에 안은 자가 잠들어 있다.

그 노파에 대한 찬사는

수많은 펜으로도 모자라리라.

 

그녀는 별을 즐기기 위해

하늘나라에 들어가기를 싫어했지.

그건 자기가 더럽힐 수 없는

아가씨들 사이에서는 있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2]

 

 

 

 

이 시에 나오는 ‘펜(pluma, 스페인어)’은 작가들이 쓰는 펜(pen)과 깃털이라는 두 가지 의미(새의 깃털로 만든 펜)를 담고 있다. ‘노파에 대한 찬사’는 뚜쟁이들이 받는 형벌로 해석한다. 형벌 집행인들은 벌거벗은 뚜쟁이의 온몸에 기름과 꿀을 바른다. 그런 다음에 뚜쟁이를 깃털이 잔뜩 깔린 땅바닥에 뒹굴게 한다. 깃털이 달라붙은 뚜쟁이는 사람들이 보는 광장 한가운데에 세워 둔다. 죄인에게 굴욕감을 주는 형벌로 보이겠지만, 사실은 죄인에게 신체적 고통을 주는 잔인한 형벌이다. 몸에 달라붙은 수많은 깃털이 전신의 피부를 찌르기 때문이다. 뚜쟁이가 받는 형벌은 유럽 전역을 휩쓴 ‘마녀사냥’ 재판 유행에 탄생한 고문 방식 중의 하나로 볼 수 있다.

 

말도 안 되는 누명을 씌워 ‘마녀’로 낙인찍힌 여성이 있는 반면에 종교에 헌신하는 여성은 ‘성녀’로 추앙받았다. 수녀가 종교적인 환시인 신비체험을 경험하면 ‘신의 현현(顯現)’으로 간주했다. 여기서 문제점은 수녀의 신비스러운 체험을 두고도 교회가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그들의 운명이 ‘마녀냐, 성녀냐’로 갈라지는 갈림길에 서게 된다는 사실이다. 봉건 시대에 궁정 문학이 유행하자 ‘마리아 숭배’ 사상이 나타났다. 기사들은 아름다운 귀부인을 ‘마리아’로 비유하여 그녀를 보호하는 일이 자신들의 명예로운 임무라고 생각했다. 극단적인 여성 숭배는 여성의 삶을 해방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마녀사냥 재판이 사라졌어도 여성의 삶을 옥죄는 여성 혐오는 여전했다.

 

이케가미 슌이치의 책의 분량은 얇은 편이다. 그렇지만 저자는 중세사회의 이중 모순적 여성관, 마녀와 성녀의 탄생 배경 속에 작용한 여성 혐오의 주요 장면들을 빠짐없이 잘 정리했다. 그리고 잘 알려지지 않은 중세 여성의 삶과 문화를 알 수 있다. 절판된 책에 잘못된 점을 지적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냐만 그래도 혹시 모를 재출간을 위해서 고쳐야 할 부분을 짚어본다.

 

《마녀와 성녀》 프롤로그 8쪽에 보면 ‘남색마’를 ‘incubus(인큐버스)’라고 표기했다. 여기서 말하는 ‘남색마’를 마녀를 가리킨다. 그런데 인큐버스는 남성의 모습을 한 몽마(夢魔)를 부를 때 쓰는 이름이므로 '마녀=인큐버스'라는 관계 성립이 맞지 않다. 인큐버스는 잠자는 여성의 꿈에 침범하여 성적으로 유혹하는 악마이다. 남성의 성욕을 부추기는 몽마는 여성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succubus(서큐버스)’라고 한다. 따라서 인간 남성을 유혹하는 마녀를 ‘서큐버스’라고 부르는 게 맞다.

 

 

 

 

 

 

 

 

 

 

 

 

 

 

 

 

 

 

* 장 미셸 살망 《사탄과 약혼한 마녀》(시공사, 1995)

* 제프리 버튼 러셀 《마녀의 문화사》(르네상스, 2004)

* 양태자 《중세의 잔혹사 마녀사냥》(이랑, 2015)

 

 

 

 

 

 

 

 

 

 

 

 

 

 

 

 

* 거다 러너 《역사 속의 페미니스트》(평민사, 2007)

* 안체 슈룹, 파투 그림 《페미니즘의 작은 역사》(숨쉬는책공장, 2016)

 

 

 

 

슌이치의 책은 절판되었어도 역사 속 마녀와 성녀, 마녀 사냥의 근원을 추적한 책들을 쉽게 구할 수 있다. 마녀 사냥은 여성사에서 절대로 빠질 수 없는 주제이다. 여성을 억압하는 현실을 피하기 위해 대부분 여성들이 선택한 것은 수녀가 되어 독신으로 살아가는 삶이었다. 그러나 수녀들의 안식처인 교회 역시 ‘여성을 위한 유토피아’가 되지 못했다. 여성에 대한 편견에 사로잡힌 남성 성직자들은 수녀들만 사는 교회가 ‘이단 종파를 가르치는 장소’인지 감시했고, 적극적으로 종교 활동을 하는 수녀들의 능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남성 중심의 종교 권력 체제에 굴하지 않고, 용기 있게 신의 목소리를 높인 수녀들의 삶을 조명한 책으로 거다 러너(Gerda Lerner)《역사 속의 페미니스트》(평민사, 2007), 《페미니즘의 작은 역사》(숨쉬는책공장, 2016)의 ‘중세의 페미니즘’ 편 등이 있다.

 

 

 

 

 

 

 

 

 

 

 

 

 

 

 

 

 

 

 

 

 

 

 

 

 

 

 

 

 

 

 

 

* 아일린 파워 《중세의 여인들》(즐거운상상, 2010)

* 요한 하위징아 《중세의 가을》(연암서가, 2012)

* [품절] 크리스틴 드 피장 《여성들의 도시》(아카넷, 2012)

* [축약본] 크리스틴 드 피장 《숙녀들의 도시》(지만지, 2011)

 

 

 

 

역사학자 아일린 파워(Eileen Power)의 저서는 중세 여성의 경제 활동을 복원한 역사서의 고전이다. 극단적 여성 숭배를 드러난 중세 궁정 문학을 알고 싶으면 중세 문화를 집대성한 요한 하위징아(Johan Huizinga)《중세의 가을》을 참고하면 된다. 슌이치의 책 마지막 부분에 중세 시대의 여성 혐오 담론에 맞서 '펜'을 무기 삼아 정면으로 반박한 크리스틴 드 피장(Christine de Pizan)의 업적이 나온다. 아쉽게도 그녀가 쓴 《여성들의 도시》 완역본은 ‘품절’이다.

 

 

 

 

[1] 《마녀와 성녀》 19쪽

[2]  안영옥 역, 《케베도 시선》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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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15 22: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1-16 11:46   좋아요 0 | URL
음식의 역사에 대한 책에서 본 건데요, 여자들이 모여서 음식을 먹는 행위가 불경죄에 해당되었다고 합니다. 그 죄가 통용되던 시대는 기억나지 않지만, 먹는 행위마저 혐오로 덮어씌우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다는 것 자체가 무섭습니다.

겨울호랑이 2018-01-15 2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살다보면 때론 인연이 아닌 책들도 있는 것 같네요... 인연이 있다면 언젠가 다시 만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cyrus 2018-01-16 11:49   좋아요 1 | URL
맞아요. 오랫동안 간절히 원하던 책을 우연히 만나는 순간이 짜릿한 게 너무 좋습니다. 그래서 헌책방이나 알라딘 서점에 자주 들락거려요. ^^;;
 
유령의 자연사 -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유령 현상에 대하여
로저 클라크 지음, 김빛나 옮김 / 글항아리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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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은 유령이 많이 출몰하는 나라로 알려져 있다.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유령은 헨리 8(Henry )의 두 번째 왕비 앤 불린(Anne Boleyn)의 유령이다. 그녀가 참수된 런던탑 주변에 밤마다 목 없는 앤 불린의 유령이 떠돈다는 도서 전설이 있다. 유령을 믿는 사람은 있어도 한 번 본 사람은 없다. 로저 클라크(Roger Clarke)가 그런 사람이다. 그는 열네 살의 나이에 최연소로 영국 심령연구학회(Society for Psychical Research, SPR) 회원이 되었다. 클라크는 유령이 자주 목격되는 고스트 스팟(Ghost Spot) 여러 군데를 방문했지만, 허탕만 치고 돌아와야만 했다. 그리하여 클라크는 한 가지 결론을 내린다. 유령은 한 차례 목격된 후에는 다시 나타나지 않는다.’ 그는 유령의 실체를 규명하는 대신에 유령 목격담의 역사를 되짚어 보는 작업에 몰두했다. 그러면서 시대별로 유령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사회적 인식과 반응을 확인했다. 유령의 자연사는 유령의 존재를 인식하고, 유령과 함께 살아가는 인간의 다양한 내면 모습을 볼 수 있는 책이다.

 

 

 

 

 

 

유령의 자연사유령에 관한 책이 맞다. 하지만 이 책의 주인공은 유령이 아니다. 혹시 당신이 무시무시한 유령 이야기를 접하고 싶어서 유령의 자연사를 읽어보려고 한다면, 나는 말리겠다. 유령의 자연사유령을 주제로 한 책이지, ‘유령의 역사에 관한 책은 아니다. 따라서 끔찍하고 무서운유령 이야기를 기대하는 독자들에게 이 책은 다소 지루할 수 있다. 사람들이 보고 싶어 하는 심령사진이 많지 않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심령사진으로 알려진 레이넘 홀의 브라운 레이디(The Brown Lady of Raynham Hall)’를 제외한 나머지는 조작한 것으로 판명된 가짜 심령사진들이다. 어느 일간지에 실린 책 소개 단신에는 이 책을 유령 백과사전으로 소개했다.[1] 어디서 구라를!

 

유령 목격담의 역사를 다룬 책이라고 해서 절대로 만만하게 보면 안 된다. 저자는 유령 이야기를 즐기는 옛사람들의 대중심리를 간파하여 유령의 실체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본다. 흔히 유령이라면 하면 단순히 사람을 놀라게 하는 불가사의한 존재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유령의 자연사는 이 통념을 반박한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유령은 감정의 영역[2]이다. 유령은 보이지 않는 실체를 믿고 싶은 사람들의 환상과 열광이 만들어낸 그림자. 인간은 자신의 마음속에서 만들어낸 유령이라는 그림자에 놀라 경기를 일으키고 뒷걸음질 친 것이다. 고스트 헌터(Ghost Hunter)의 원조는 신학자들이었다. 그들은 사람을 괴롭히는 악령의 실체를 확인하는 동시에 악령에 맞설 수 있는 신의 존재를 증명하려고 했다. 빅토리아 시대(Victorian era, 1837~1901)에 강신술, 교령회가 유행하기 시작하면서 유령을 불러들이는 영매는 대중의 인기를 한 몸에 받았다. 당연히 유령 이야기는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유령이 목격되는 장소는 사람들이 자주 찾는 명소가 되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 유령을 내세워 돈 좀 벌어보려는 사기꾼들이 기승을 부렸다. 그래도 유령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식지 않았다.

 

 

 

 

 

 

개인의 출신 배경과 직업 등에 따라 유령의 개념을 인식하는 태도가 결정된다. 상류층과 하류층은 유령을 믿는 성향이 강하고, 중산층은 유령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인다. 하지만 계급을 초월하여 전 국민이 유령을 믿는 흠좀무(‘, 이게 사실이라면 좀 무섭군.’)’한 상황이 나올 때도 있다1차 세계 대전 당시 영국 전역에 알려진 몽스의 천사들(Angels of Mons)’쇼비니즘(chauvinism, 맹목적 애국주의)이 만든 유령 이야기다. 몽스라는 지역에서 독일군과의 혈투를 벌인 영국군은 궁지에 몰렸지만, 하얀 형상의 천사의 도움을 받아 극적으로 승리했다. 몽스 전투에 참전한 영국 군인들은 이 기적 같은 일을 목격했다고 증언했다. 그런데 영국인들은 천사의 사실 여부를 의심하지 않았고, 영국 정부와 언론은 몽스의 천사를 영국군의 수호성인이라고 선전했다. 누구도 몽스의 천사를 의심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것을 믿지 않으면 반애국자로 몰렸기 때문이다.

 

 

 

 

 

 

인간은 불확실한 것에 접하면 확실한 것으로 보려는 경향이 있다. 그것이 곧 그 인간의 지식이나 경험을 바탕으로 해석되는 것이다. 그래서 유령을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은 허술하기 짝이 없는 유령 목격담에 쉽게 흥분한다. 과학이 발달해도 유령이 사라지는 일은 절대로 없다. 누군가는 명성을 얻기 위해 유령을 만들고, 그 유령을 믿어 의심치 않는 사람들이 계속 나올 것이다. 결국, 유령은 망자의 영혼이라기보다는 인류의 감정 안에 탄생하는 욕망 덩어리. 지금도 사람들은 조작과 착각이 뒤섞인 욕망 덩어리를 보기 위해 어디든지 달려간다. 보고 싶은 마음이 강할수록 보이지 않는 것을 더 보고 싶어 한다. 유령을 보려는 헛된 욕망에 매달리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그들을 기만하는 욕망 덩어리는 재생산된다.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고, 비슷한 유령을 만들어 낸다. 정말 유령은 만들어 내기가 쉽다.

 

 

      

 

[1] [<책꽂이-새 책200> 유령의 자연사] 서울경제, 20171111

 

[2] 유령의 자연사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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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8 12: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12-08 17:01   좋아요 1 | URL
<처녀귀신>이라는 제목의 문화사 분야의 책이 있습니다. <유령의 자연사>와 <처녀귀신>을 같이 읽고 있습니다. 서양인이 유령을 보는 관점과 우리 조상님들이 귀신을 보는 관점에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는지 궁금했거든요. ^^
 
- 섹스와 아름다움과 생존에 대한 이야기
가브리엘 글레이저 지음, 김경혜 옮김 / 토트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옛날 사람들은 서양 백인을 보면 코쟁이라고 했다. 솟아 있는 서양인의 콧날 때문에 이런 별명이 생겼다. 하지만 코쟁이는 인종차별적인 단어다. ‘코쟁이에 신체적 특징에 대한 편견과 조롱의 의미가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코쟁이가 불편한 단어로 느껴지지 않는다면 동양인을 비하하는 눈 찢기동작을 생각하면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오뚝한 코 모양을 선호한다. 이미지 변신을 위해 눈 성형 다음으로 많이 하는 것이 코 성형이다.

 

가브리엘 글레이저(Gabrielle Glaser)(토드, 2010)를 읽어 보면, ‘유행은 돌고 돈다라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왜냐하면, 수백 년 전 사람들도 못생긴 코를 원하지 않았고, 코의 크기와 모양에 관심을 가졌다. 이미 유럽에서 코 성형 수술이 성행했다. 코 성형 수술에 대한 기록에 근거하면, 16세기 이탈리아에 피부를 이식하여 인조 코를 만드는 성형 수술이 이루어졌다. 코는 절대로 없어선 안 될 신체 기관이다. 코가 없으면 입으로만 숨을 쉬어야 하는데, 호흡이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는다. 게다가 입이 벌린 상태가 지속하면 턱이 길어지는 안면 변형이 일어난다. 코가 없어서 후각마저 상실된다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다. 의 저자는 한동안 냄새를 맡을 수 없는 증상을 겪어 고생한 적이 있다.

 

인류와 악취와의 전쟁은 절대로 끝나지 않는 영전(永戰)이다. 향수는 악취와의 전쟁에 승리하기 위해 노력한 인류의 땀과 눈물이 들어가 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좋은 향기가 신의 땀과 눈물에서 나온 것으로 생각했다. 악취를 피하고 싶은 마음은 세계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다. 종교의 힘이 막강했던 시대에 악취는 악마의 향기로 인식되었다. 14세기 중반 유럽에 페스트(Plague, 흑사병)가 창궐했을 때 도시 전역에 악취가 진동했다. 그 당시 사람들은 페스트를 신의 징벌로 해석했고, 수도사를 페스트를 막아주는 수호자로 생각했다. 관상학이 유행하면서 코 모양으로 사람의 성격을 읽는 법이 등장했다. 프랑스인들은 상대방의 지성을 칭찬할 때 탁월한 코를 가졌어.”라는 표현을 썼다. 유럽 남성들은 코를 사람들 앞에 공개하는 페니스라고 생각했다. 옛날 유럽인들은 코와 페니스의 상관관계를 정설인 것처럼 믿었다.

 

알쓸신잡(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을 선호하는 독자에게 를 추천하고 싶다. 정말 코에 관한 흥미진진한 내용이 많다. 그런데 저자는 이 책 한 권을 완성하기 위해 3년 동안 준비했다던데, 집필 기간에 비교하면 결과물의 내용이 많지 않다. 번역본 분량이 총 238쪽이다. 문학과 예술 소재로 사용된 에 대한 내용이 없어서 아쉽다. 저자가 조금만 더 심혈을 기울여서 집필했으면 풍성하고 알찬 코의 문화사한 권이 나왔을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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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3 13: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12-03 16:39   좋아요 1 | URL
유럽의 악취가 얼마나 심했냐면 문 밖으로 나가는 순간, 악취를 피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 시대 사람들은 외출을 어떻게 했을까요? ^^;;

겨울호랑이 2017-12-03 14: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 관상법에서도: ‘코‘의 중요성은 다른 여느 기관보다 월등한 것 같더군요^^

cyrus 2017-12-03 16:40   좋아요 1 | URL
맞아요. 허영만 화백의 <꼴>에 코 관상에 대한 내용이 있던 걸로 기억해요. ^^

sprenown 2017-12-04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건 정말 ‘알아두면 쓸데 있는 신비한 잡학‘이네요.^^. 갑자기 킁킁 거리면서 거울보고 싶어지네요.ㅎㅎ

cyrus 2017-12-04 14:43   좋아요 0 | URL
코가 잘 막히는 편이라서 괴롭습니다. 겨울에 코감기 걸리면 삶의 의욕이 나지 않아요.. ^^;;

데미안 2017-12-05 2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느 다큐에서도 말했습니다. 후각이 맛을 결정한다고! 코는 결국 즐거운 생활의 기본적 요소가 아닐까요?

cyrus 2017-12-06 13:19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냄새 없이 음식의 맛을 본다면 앙꼬 없는 진빵을 먹는 기분일 거예요. ^^;;
 

 

 

 

로마가 등장하기 전 이탈리안 반도에 에트루리아인이 살고 있었다. 에트루리아(Etruria)는 이탈리아 중부에 있던 고대 국가다. 에트루리아인의 역사를 알려줄 자료가 남아 있지 않아서 그들의 기원을 놓고 다양한 주장이 나왔다.

 

 

 

 

 

 

 

 

 

 

 

 

 

 

 

* 헤로도토스, 천병희 역 역사(도서출판 숲, 2009)

* 헤로도토스, 김봉쳘 역 역사(, 2016)

 

 

 

헤로도토스(Herodotus)는 에트루리아인의 선조가 소아시아(아나톨리아 반도)의 고대 왕국 리디아(Lydia)인이라고 주장했다. 2007년에 유전자 DNA 검사 결과 헤로도토스의 견해가 사실임이 확인되었다.[1]

 

 

 

 

 

 

 

 

 

 

 

 

 

 

 

* 테오도르 몸젠 몸젠의 로마사 1(푸른역사, 2013)

* 테오도르 몸젠 몸젠의 로마사 2(푸른역사, 2014)

 

 

 

테오도르 몸젠(Theodor Mommsen)은 이탈리아 초기 민족을 이아퓌기아인’, ‘에트루리아인’, ‘이탈리아인으로 분류했다. 로마에 에트루리아의 문화 및 관습을 전파한 로마의 전설적인 왕 타르퀴니우스 프리스쿠스(Tarquinius Priscus)는 에트루리아인으로 알려졌는데, 몸젠은 이 전설적인 내용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에트루리아인에 대한 몸젠의 평가가 야박하다.

 

몸젠의 역사관은 실증주의 역사학이다. 레오폴트 폰 랑케(Leopold von Ranke)가 이끈 실증주의 역사학은 객관적으로 증명 가능한 사료에 주목한다. 랑케는 오로지 실재했던 사실만을 기술하고자 했다. 사료에 대한 비판적 검증을 통해 그는 문헌 안에서 역사적 사실만을 가려내려고 했던 것이다. 하지만 랑케의 후계자들은 실증주의 역사관을 교묘히 이용하여 애국심을 강요하는 민족주의를 표방했다. 몸젠은 실증주의에 입각해 로마의 역사적 사실을 객관적으로 기술했지만, 역사적 상상력이 반영된 전설이 연구 가치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몸젠은 그리스 정신을 이어받아 발전한 로마를 치켜세우는 반면 에트루리아를 그리스 정신을 어설프게 흉내 내는 2% 부족한 나라로 평가했다. 그는 실증주의라는 학문적 외피를 쓴 채 로마 문명의 우월성을 부각하기 위해서 결과적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 에트루리아 문화를 저평가했다.

 

 

 

 

 

 

 

 

 

 

 

 

 

 

* 미르치아 엘리아데 세계종교사상사 1(이학사, 2005)

* 미르치아 엘리아데 세계종교사상사 2(이학사, 2005)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나 종교가 있었고, 주술적 성격을 갖는 종교의식이 성행했다. 고대 그리스 도시 엘레우시스 주민들은 대지의 여신 데메테르(Demeter)를 숭배했고, 1년에 두 번씩 여신을 숭배하는 축제를 벌였다.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는 그리스인들의 관심은 엘레우시스 비의(Eleusinian Mysteries)’라는 비밀종교를 탄생했다. 로마에는 주신(酒神) 바쿠스(Bacchus, 그리스 신화의 디오니소스에 해당)를 숭배하는 밀교가 유행했다. 바쿠스는 이탈리아 남부와 로마 및 에트루리아 등의 이탈리아 전반에서 널리 숭배되었다.

 

 

에트루리아 인들은 전조와 기적을 해석하는 데 몰두했다. 번개 해석법과 내장 해석법 등 비의(悲意) 해석법이 생겨났으며, 이런 것들에서 우리는 복채를 뜯어내려는 욕심을 엿볼 수 있다. (1권 제12258~259)

 

 

미르치아 엘리아데(Mircea Eliade)는 인간이 하나의 존재로 살아가는 것 자체가 종교 행위라고 말했다. 고대의 종교 제의는 척박한 자연환경을 이겨내고 풍요로운 희망을 꿈꾸는 염원이 담겨 있다. 에트루리아의 주술 문화를 인간의 욕심이 만들어 낸 부정적인 문화로 보는 것은 부당하다.

 

 

무역과 해적질로 일찍이 커다란 부를 축적한 에트루리아에서만 오직 예술이, 혹은 그렇게 부르길 원한다면 기술이 일찍이 뿌리내렸다. (1권 제15336)

 

 

에트루리아 인들의 작품은 라티움이나 사비눔 사람들에 비해서 그 합목적성이나 실용성뿐만 아니라 내면성과 아름다움에 있어서도 크게 뒤떨어진다. 트루리아 사람들은 희랍의 호화 건축을 모방했으되 저열한 수준이었다. 에트루리아 예술은 수공업적 훈련과 적응의 숙련도를 보여주는 주목할 만한 증거일 뿐, 중국 사람들처럼 천재적 수용의 증거라고 할 수는 없다. 이탈리아 예술의 역사에서 에트루리아를 맨 앞자리에서 맨 뒷자리로 밀어내 버릴 것을 단호하게 결심해야 할 것이다. (1권 제15339~340)

 

 

에트루리아 예술 작품의 일반적 성격은 재료와 양식에 있어 일정하게 나타나는 지나친 천박함과 내적 발전의 완전한 결여다. 희랍 장인이 대강 소묘한 곳에 에트루리아의 제자는 학생다운 땀을 쏟았던 것이다. 희랍 작품들의 가벼운 재료와 절제된 비례 대신 에트루리아 작품들에선 과시적 크기와 사치스러움 혹은 단순한 진기함만이 강조된다. (2360)

 

 

몸젠은 에트루리아 미술을 로마 미술보다 뒤떨어진 것으로 취급했다. 특히 로마사 1에서 몸젠은 에트루리아 미술을 이탈리아 예술사의 뒷자리로 밀어내려는 단호한 의지를 드러냈다. 그의 견해만 보고 에트루리아 미술을 후진적 문화로 평가해선 안 된다. 에트루리아 미술은 그리스 미술에 바탕을 두었지만, 그리스 미술을 로마에게 전해준 에트루리아 미술의 영향력를 무시할 수 없다.

 

 

 

 

 

 

 

 

 

 

 

 

 

 

* 낸시 H. 래미지, 앤드류 래미지 로마 미술(예경, 2004)

* 토마스 R. 호프만 로마 미술, 어떻게 이해할까?(미술문화, 2008)

 

 

 

몇몇 고대 그리스의 식민도시들과 무역을 한 에트루리아는 그리스 문화를 영향을 받을 수 있었고, 축적한 부를 통해 사치스러운 예술품 또는 장신구를 제작했다. 하지만 에트루리아 미술은 그리스 미술을 어설프게 모방하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리스에 대리석과 석회암이 풍부했기 때문에 그리스인들은 보존성이 뛰어난 훌륭한 건축물을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에트루리아는 대리석과 석회암처럼 단단한 재질의 암석이 부족했다. 에트루리아인들은 흙벽돌과 목재를 건축물 재료로 사용했다. 그래서 온전한 형태의 에트루리아 시대 건축물이 남아 있지 않고, 겨우 파편만 남아 있을 뿐이다. 만약에 에트루리아가 대리석과 석회암 지대였다면 그리스와 로마 중심으로 서술된 고대 미술사의 내용이 달라졌을 것이다. 에트루리아의 조각 예술은 그리스 조각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독자적인 표현과 양식을 발전시켰다. 에트루리아 등신상은 그리스 등신상보다 생동감이 느껴진다.

 

에트루리아 미술이 로마 미술의 발전 양상에 영향을 끼쳤는지는 더 많은 연구와 논의가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까지 출토된 유물을 토대로 에트루리아 미술의 수준을 확인해보면 에트루리아 미술과 로마 미술은 같은 뿌리에서 나왔음을 추정할 수 있다. 모든 시대는 그 시대 나름의 고유한 가치와 역할과 개성이 있다. 그러므로 어떤 한 시대에 등장한 예술은 그 시대가 갖고 있는 독자적인 개성에 대한 이해이며, 그 시대의 예술에 대한 평가는 그 시대의 가치에 기초해서 이뤄져야 한다. 몸젠은 사실과 해석이 공존하는 절충주의 방식으로 에트루리아 미술을 평가했으나 자신의 감상에 치중한 주관적 견해에 머무르고 말았다.

 

 

 

[1] [연구팀 결국 헤로도투스 견해가 맞았다”] 연합뉴스, 2007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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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renown 2017-11-16 16: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에서도 일제강점기에 이병도를 비롯한 실중주의 사학자가 득세한 이후 아마 지금까지도 주류로 이어져 오고 있는 것 같아요..

cyrus 2017-11-16 17:09   좋아요 0 | URL
이병도를 비판하는 사회주의 역사학자들은 서울대학교에서 활동한 이병도와 그의 제자들의 권위주의적 활동을 비꼬기 위해서 ‘서울대 학파’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AgalmA 2017-11-16 19: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중요한 지적을 해 주셨네요. 많은 예술 사관들이 문화의 특정 부분의 우수성을 강조하는데, 그런 문화를 만든 사람들이 사는 환경과의 관계를 간과하는 게 꽤 된다고 생각합니다. 말씀하신 대로 에트루리아인이 흙벽돌과 목재로 건축물을 지은 것이나 기타 등등 우리가 보고 싶은 것만 볼 게 아니라 그들의 특수성을 더 중심으로 봐야겠지요. 비교가 객관성이나 정확성을 담보한다고 생각하지만 이미 가치 판단적일 때가 많죠.

cyrus 2017-11-17 17:02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예술사를 논할 때 과거 예술사조를 후대의 예술사조와 비교하면서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판단하는 것은 문제가 있어요.

짜라투스트라 2017-11-16 2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에트루리아까지... 역시 멋져요!!

cyrus 2017-11-17 17:04   좋아요 0 | URL
역사학에서 로마가 워낙 많이 언급되는 주제라서 에트루리아를 살피지 못하고 간과되는 경향이 있어요. 저도 그랬어요. 책을 다시 읽으니까 처음 읽었을 때 보지 못했던 것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

transient-guest 2017-11-17 03: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에트루리아는 로마 이저의 로마라고 할 만큼 훌륭한 해상문명을 이룩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로마를 주인공으로 하는 책에서는 대부분 로마를 셋업하기 위한 도구로 쓰이는 것 같습니다. 몸젠을 (지루한 책) 권위자로 내세우며 quote하기를 즐긴 시오노 나나미나 몸젠의 자세가 비슷하게 느껴지는 건 결국 비슷한 성향과 목적의식 때문인지도 모르겠네요. 좀 다른 이야기지만 고대 중근동을 얘기할 때 유대민족/유대신에 대한 책은 많지만 다곤, 바엘, 아세라를 숭배했던 부족/국가/문명에 대한 책은 얼마 없는 것과 묘하게 겹친다는 생각도 드네요.

cyrus 2017-11-17 17:07   좋아요 1 | URL
몸젠의 《로마사》가 완역되면 로마를 바라보는 몸젠의 시선이 어떤지 확인할 수 있을 거예요. 1, 2권만 봐서는 로마를 치켜세우는 몸젠의 서술 방식을 판단하는 것은 이른 감이 있지만, 일단 저는 그게 불편하게 느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