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의 문화 - 현대 경제의 지적 기원
조엘 모키르 지음, 김민주.이엽 옮김 / 에코리브르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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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진보한다’는 명제를 부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역사의 진보나 발전의 방식에 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서 입장이 갈린다. 《역사란 무엇인가》(까치, 2015)로 유명한 카(E. H. Carr)는 역사의 진보를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의 모든 시간을 하나로 통합하는 총체적인 진보로 해석한다. 프랑스 아날학파를 대표하는 페르낭 브로델은 전통적 역사학이 단기적 시간 속에 매몰된다는 점을 비판하며 장기지속, 중기지속, 단기지속이라는 시간의 세 층위에 따라 역사를 바라봤다. 물론, 역사의 흐름은 단선적이지 않다. 역사를 살펴보면 우연한 사건이 역사의 큰 물결을 변화시킨 경우를 발견할 수 있다. 역사는 너무나도 변화무쌍하고, 복잡하다. 루이 알튀세르의 말을 빌리자면 역사는 ‘예견할 수 없는 길’이다.

 

‘사후 확증 편향(Hindsight Bias)’라는 용어가 있다. 어떤 사건이 발생한 다음에는 그 일이 사실로 인상에 강하게 남고 그 결과, 사전에 예측한 일의 가치를 과대평가하는 현상을 말한다. 처음에는 그런 결과가 나올 줄 전혀 몰랐으면서도 사건이 지난 뒤에 우리는 자신이 처음부터 그런 결과를 알고 있었던 것처럼 말한다. 오늘날 우리가 아는 역사는 어느 문명보다도 번성한 유럽 문명을 중심으로 기록된 역사다. 그래서 서양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유럽 문명의 경제적 번영이 처음부터 예견된 일인 것 같은 느낌이 들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우리는 유럽을 ‘세계 경제의 중심’으로 우뚝 서게 만든 원동력, 즉 진보의 힘에 부러워한다. 또 진보적인 세상을 만들려고 했던 유럽 지식인들이 얼마나 위대한 인물인가 하고 감탄할 수도 있다.

 

하지만 관점에 따라 역사는 다르게 보인다. 유럽을 바라보는 관점과 시각도 마찬가지다. ‘유럽은 이렇다’라는 해석이 어떤 이에게는 서구중심주의로 비칠 수 있고, 또 어떤 이에게는 서구중심주의 비판론으로 비칠 수도 있다. 경제사학자 조엘 모키르《성장의 문화》(에코리브르, 2018)는 ‘세계의 패권’을 차지한 유럽의 역사적 배경에 주목한다. 저자는 독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유럽은 언제 세계의 패권을 차지했을까? 어째서 중국은 유럽처럼 세계의 패자로 군림하지 못했을까?” 저자는 유럽 패권의 역사, 그중에서도 유럽 문명이 가장 자랑스러운 전성기로 믿어 의심치 않는 근대 초기(1500~1700년) 경제 성장의 역사‘문화’라는 새로운 관점으로 파헤친다.

 

서구 역사가들은 유럽이 특유의 합리성과 과학 기술을 바탕으로 근대 자본주의를 ‘발명’했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모키르는 1500년부터 1700년까지 2백 년의 유럽사를 분석해 새로운 결론을 제시한다. 그는 근대 초기 유럽의 경제 발전에 기여한 문화적 토대는 ‘계몽주의’라고 말한다. 계몽주의 지식인들은 소수의 엘리트 계층이었다. 그들은 과학과 기술 등 ‘유용한 지식’에 관심을 가졌으며 인류의 무한한 진보를 꿈꿔왔다. ‘국경을 초월한 사랑’이 있듯이 지식애(知識愛)도 국경은 무의미하다. 유럽의 지식인들은 서로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새로운 지식을 공유했고, 유용한 지식이 활용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의견을 나누기도 했다. 저자는 아이디어가 공유되는 초국가적 네트워크를 ‘편지 공화국’이라고 표현한다.

 

그러나 진보가 가져다주는 혜택을 누리려면 현상 유지를 선호하는 기득권 세력과의 충돌이 불가피하다. 오늘날 계몽주의 지식인들은 인간의 이성과 과학을 통해 도달할 수 있는 이상적 세상을 만들려는 개혁자로 인정받는다. 하지만 혁신을 거부하는 그 시대 사람들이 바라본 계몽주의 지식인들은 ‘별종’에 가까웠다. 모키르는 이 ‘소수의 별종’을 가리켜 ‘문화적 사업가(Cultural Entrepreneurs)’라고 말한다. ‘문화적 사업가’는 현 체제를 받아들이지 않으며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을 정도로 도전 정신이 강하다. 이 책에서 모키르는 유럽의 운명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대표적인 문화적 사업가로 프랜시스 베이컨아이작 뉴턴을 꼽는다.

 

계몽주의의 영향으로 형성된 ‘유럽 특유의 문화’는 문화적 사업가들조차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를 만들어냈다. 모키르는 경제 번영이라는 성공적인 결과를 필연이 아닌 ‘우연’이라고 말한다. 근대 유럽이 번영하게 된 데에는 여러 시기적 요건들이 맞아떨어졌다. 종교개혁 이후 각각의 종교들은 자신들의 교리의 우월성을 보여주기 위해 교육 홍보에 열을 올렸다. 예수회 같은 일부 종파는 유용한 지식에 관심을 가졌고, 그것을 학생들에게 가르치기도 했다. 이렇게 경쟁적으로 교육을 가르치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대중이 유용한 지식에 접근하는 기회가 늘어난다. 그러므로 ‘성장의 문화’를 단순히 우연적인 현상으로 보면 안 된다. 앞서 언급했듯이 역사는 단순하지 않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우연이든 필연이든 문화가 유럽의 운명 자체를 바뀌게 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문화가 만든 번영’을 이해하려면 복합적인 분석이 필요하다. 《성장의 문화》는 경제학 방법론과 문화진화론 방법론 등을 이용하여 근대 유럽의 번영기를 다채롭게 접근하여 분석한다.

 

그렇다면 다시 저자의 질문으로 돌아가자. 왜 중국은 세계의 중심이 되지 못했을까? 중국은 유용한 지식에 대한 믿음, 지식을 자유롭게 공유하는 인적 네트워크 등과 같은 개방적인 문화적 풍토가 생기지 않았다. 중국도 유럽에 뒤처지지 않을 정도로 교육 수준이 높았고 발전 가능성이 높은 나라였다. 중국은 번영의 열매가 자라나는 지식의 씨앗을 가지고 있음에도 제대로 발아할 수 있는 환경적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중국과 유럽과의 수준 격차는 벌어졌다.

 

경제가 성장하려면 지식은 긴밀하게 연관돼 있고 끊임없이 변화해야 한다. 문화적 사업가는 신선도 좋은 지식을 갈구했고, 그것을 경제적 이익을 증진하는 데 사용하려고 했다. 그러나 변화가 두려운 사회는 문화적 사업가의 활동을 막는 규제를 강화한다. 중국이 우위를 유지하지 못하고 정체되고 만 것은 바로 현 체제에 순응하려는 편향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사회도 그런 편향을 고치지 못하고 있다. 《성장의 문화》가 보여준 역사의 교훈은 ‘예견할 수 없는 길’을 걷고 있는 우리에게 미래사회의 희망적 모델이 될 수도 있고, 닮지 말아야 할 반면교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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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8-04-19 23: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역사가 진보한다는 명제를 부정합니다. ㅎㅎ
심지어 진보나 발전을 거부합니다. ^^
아마 저만 아닐걸요. ^^

cyrus 2018-04-20 11:42   좋아요 1 | URL
저도 북다이제스터님의 생각과 같습니다. 진보를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믿는 것에 거부감을 느낍니다. ^^
 

 

 

백남준은 상식에 벗어난 기행을 펼치는 전위예술가로 명성을 날렸다. 1960년 독일, 무대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던 백남준은 갑자기 벌떡 일어나 울면서 뛰어다니다 도끼로 피아노를 부쉈다. 그리고 가위를 든 채(!) 객석 맨 앞줄에 앉은 전위음악가 존 케이지에게 달려갔다. 백남준은 케이지의 넥타이를 가위로 싹둑 잘라버렸다. 관객들이 어리둥절해 있는 사이 그는 유유히 무대를 빠져나와 방송으로 알렸다. “여러분, 공연은 끝났습니다”

 

 

 

 

 

 

그의 공연은 ‘피아노포르테를 위한 연습곡’이라는 제목으로 알려지게 됐다. ‘피아노포르테를 위한 연습곡’은 기존의 권위와 관습을 타파하는 백남준 특유의 예술관을 잘 드러난 공연으로 평가받는다. 이 공연에서 눈여겨 볼 부분은 가위로 넥타이를 자른 백남준의 행동이다. 넥타이는 서구문화권에선 남성 권위를 상징하는 장식물이다. 백남준은 늘 넥타이를 매는 남자들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서 넥타이를 잘랐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넥타이 자르기는 남성에 대한 공격, 권위에 대한 공격이며, 서구 문화에 대한 공격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만약에 백남준이 ‘여성’이라면, 아니 여성 전위예술가가 넥타이를 자르는 행위를 했다면 관객과 평론가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백남준의 공연과 다른 상반된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이 여성은 예술가로 인정받지 못하고, ‘남성 혐오주의자’로 비난받았을 것이다. 프로이트라면 넥타이를 자르는 여성이 남성의 거세 공포를 환기하는 상징이라고 해석했을 것이다.

 

 

 

 

 

 

 

 

 

 

 

 

 

 

 

 

 

 

 

* 마리아 미즈 《가부장제와 자본주의》(갈무리, 2014)

* 찰스 버그먼 《오리온의 후예》(문학과지성사, 2010)

 

 

 

가위는 ‘무기’가 될 수 있다. 인류사는 무기와 함께 발전했다. 금속을 제조하고 가공하는 기술이 향상되면서 무기가 발달하였고, 군주는 영토 확장에 더욱 치열하게 몰두했다. 이른바 ‘제국’이 탄생하는 것이다. 무기를 만들 줄 알고, 무기를 능숙하게 다룰 줄 아는 남성은 권력을 쥔 세력으로 급부상했다. 수렵 채집 사회의 남성과 여성은 비교적 평등했다. 원래는 남성과 여성 모두 사냥을 했지만, 농경사회 이후에 남성은 사냥을, 여성은 양육을 담당했다. 역사적으로 남성과 여성의 ‘성별 분업 노동’이 시작된 것은 ‘무기’와 관련이 있다. 이런 분업의 형태가 수만 년 동안 유지되면서 집 안에 머무는 여성은 남성으로부터 통제받고, 착취당하는 ‘남성의 전유물’로 전락한다.

 

마리아 미즈《가부장제와 자본주의》(갈무리, 2014)에서 ‘사냥꾼-남성’ 모델 중심으로 형성된 젠더 이분법 및 성별 노동 분업이 남성들은 수혜자로 등극하고, 여성들은 극단적으로는 ‘노예’로 전락시켰다고 말한다. 찰스 버그먼《오리온의 후예》(문학과지성사, 2010)는 사냥이 ‘남성 대 여성’, ‘인간 대 자연’, 그리고 ‘문명 대 식민지’로 이분법으로 구분하는 기준이 되는 '남성성'의 역사를 들려준다. 오리온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사냥꾼이다. 그는 아르테미스 여신이 쏜 화살에 맞아 죽고 별자리가 된다. 오리온은 ‘사냥꾼-남성’ 모델에 근접하는 남성성의 원형이다. 이 영웅적인 사냥꾼의 신화에 매료된 남성은 권력에 대한 욕망을 남성만이 가지고 있는 원초적 욕구로 인식했고, 사냥 행위를 통해 ‘자연’ 또는 ‘여성’을 지배하려는 욕구를 분출했다.

 

 

 

 

 

 

 

 

 

 

 

 

 

 

 

 

 

 

 

* [절판] 조지 L. 모스 《남자의 이미지》(문예출판사, 2004)

* 에드워드 루시-스미스 《남자를 보는 시선의 역사》(개마고원, 2005)

* [품절] 플로랑스 타마뉴 《동성애의 역사》(이마고, 2007)

 

 

 

 

《남자의 이미지》(문예출판사, 2004), 《남자를 보는 시선의 역사》(개마고원, 2005), 《동성애의 역사》(이마고, 2007) 등은 폭력, 권위주의, 남성 우월주의를 표면화한 남성성이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설명한다. 이 세 권의 책을 쓴 저자들의 설명은 크게 차이가 없다. 18세기 독일의 미술사가 빙켈만은 고대 그리스 조각에서 ‘고귀한 단순함과 고요한 위대함’을 발견했다. 그는 그리스 조각에 나타난 남성성을 ‘이상적인 아름다움’이라고 추켜세웠다. 고대 그리스의 미술은 주로 신과 영웅에 속하는 남성을 누드로 표현했다. 빙켈만은 고대 그리스 조각으로 재탄생한 남성의 신체가 ‘용기’와 ‘명예’와 같은 도덕성을 상징한다고 봤다. 고대 그리스인들과 빙켈만은 벌거벗은 남성의 몸을 조형의 백미로 추구했다. 그런데 문제는 고대 그리스인과 빙켈만 같은 신고전주의자들은 남성만을 ‘인간’으로 인식했다는 것이다. ‘사냥꾼-남성’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시대 속에서 여성은 ‘인간’이 될 수 있는 기본 자격조차 갖추지 못한 존재였다.

 

 

 

 

 

 

 

 

 

 

 

 

 

 

 

 

 

 

* 티투스 리비우스 《리비우스 로마사 1》(현대지성, 2018)

* [품절] 조이한 《그림에 갇힌 남자》(웅진지식하우스, 2006)

 

 

 

 

신고전주의 화가 자크 루이 다비드『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는 ‘사냥꾼-남성’에 부합하는 아름다움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다비드는 이 작품에서 고대 로마 역사가 티투스 리비우스《로마사》에 나오는 호라티우스 삼형제 이야기 중 한 장면을 그렸다.

 

 

 

 

 

 

전투에 나가기 전 삼형제는 조국을 위해 승리를 맹세한다. 형제들의 비장한 표정에 죽음을 불사하겠다는 각오가 드러난다. 이들의 결의는 칼을 건네는 아버지 앞에서 맹세하는 모습에서 두드러진다. 이처럼 호라티우스 형제의 모습에서 ‘조국 수호’라는 대의를 위해 무기를 드는 강인한 남성성이 느껴진다.

 

 

 

 

 

 

 

 

 

 

 

 

 

 

 

 

 

 

* 허버트 스펜서 《진보의 법칙과 원인》(지만지, 2004)

 

 

 

 

제국주의 시대에도 ‘사냥꾼-남성’ 남성성은 건재했다. 근대 이후 남성은 가부장적 권력과 경제력을 내세워 가족 및 사회의 ‘지배자’ 지위를 유지했다. 그리고 남성은 세계로 눈을 돌려 식민지를 통치하는 ‘지배자’로 군림했다. 허버트 스펜서가 주장한 사회진화론은 남성성과 결합해 여성 차별, 식민지(피식민지 여성) 정복 등을 정당화하는 이념이 되기도 했다. 사회진화론자들은 찰스 다윈이 제시한 ‘진화’를 ‘진보’와 동일하게 보는 오류를 범했다. 백인 남성 지식인들은 ‘이성’, ‘문명’, ‘진보’는 남성의 세계에 속하고, ‘자연’은 여성의 영역에 속한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반제국주의’, ‘반자본주의’를 앞세운 마르크스와 그의 사상을 이어받은 독일 사회민주당은 유럽의 식민지 지배를 옹호하기도 했다.

 

마리아 미즈는 남성과 여성을 이분법으로 구분하여 남성의 ‘자연’과 ‘여성’ 지배를 용인하는 구분을 ‘식민주의적 구분’이라고 했다. 그리고 ‘식민주의적 구분’에 익숙한 백인 남성을 자본주의적 가부장제의 화신’이라고 표현하면서 비판했다.

 

 

  세계는, 최소한 우리 모두가 사는 세계는 유한하기 때문에, 다른 것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자본주의적 가부장제의 화신인 백인남성은 현실의 유한성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는 신처럼, 강하고 영원하며 전지전능하기를 원한다. 그래서 그는 낮은 곳에서, 좀 더 원시적인 것에서부터 좀 더 높고 복잡한 수준의 존재로 영원히 진보하고 진화한다는 발상을 발명해 왔다. 이런 발상은 주로 유대인이나 아리아인과 같은 가부장적 유목민의 정복이라는 역사적 경험에 그 물질적 뿌리를 두고 있다. 유대교나 기독교의 신학자는 자연을 정복하고 복속시키면서 영원히 팽창할 권리라는 발상에 필요한 종교적 정당성을 부여해 왔다.

  진화적 변화라는 발상은 서구의 ‘선진’ 국민이 진보에 대해 가진 생각의 중심이 되었다. 그들은 모든 ‘뒤처진’ 국민에게 진보의 상징이 되었다. 같은 방식으로 남성은 여성에게 진보의 상징이 되었다. 

 

 (마리아 미즈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430쪽)

 

 

 

식민지라는 용어 자체가 옛말이 된 지금도 ‘남성-사냥꾼’ 남성성, ‘식민주의적 구분’에서 비롯된 여성차별 등은 여전히 남아 있다. 과학 기술 발전의 덕을 보면서 ‘진보’의 정점에 도달한 인류는 ‘낙관적인 진보’에 도취했던 과거 인류의 행동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 유발 하라리 《호모 데우스》(김영사, 2017)

*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김영사, 2015)

 

 

 

이제 인류는 지적 능력을 바탕으로 신의 영역을 넘보는 존재(호모 데우스, Homo Deus)가 되려고 한다. 유발 하라리는 과학 기술을 현명하게 사용하지 못할 경우 ‘파멸’이라는 불행한 대가를 얻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여성은 과학기술에 대한 진입장벽에 마주친다. 여성이 과학기술계에 진입했다 할지라도 결혼과 출산으로 과학기술 활동을 계속하기가 어려워진다. ‘신이 된 인간’에 속하게 될 인류 대부분은 남성이다. 그들이 선호하는 생명공학, 인공지능 등 과학기술은 인류 전체를 위협하는 ‘무기’가 될 수 있다.

 

국가주의, 영웅 신화, 가부장제가 강화된 사회일수록 위계질서와 폭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남성 중심의 위계질서가 공고화된 사회일수록 성폭력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권력 관계에서 소외된 남성일수록 과도한 남성성의 발현을 통해 남자다움을 인정받으려고 한다. 아직도 일부 남성들은 ‘남성-사냥꾼’ 남성성이 찬양받던 시절을 그리워한다. 그 시절 남성들은 ‘가부장적 권력’, ‘경제력’으로 표상되는 남성성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당당히 드러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남성이 ‘강인한 남성성’을 연기하면서 수행하던 시대는 끝났다. 이제는 남성 스스로 넥타이를 잘라내야 한다. 그리고 호모소셜(homosocial, 남자들의 연대)을 유유히 빠져나와 자신 있게 말해야 한다.

 

 

“남성 여러분, 이제 세상은 달라졌습니다. 권위를 내세운 우리의 공연은 끝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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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아 2018-04-05 15: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위계질서에 의한 폭력과 권위에서 소외된 남성의 남성성 발현은 왠지 서로 충돌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강자, 기득권자에게 스스로 변화할 것을 주문하는 것은 역사이래 실천된 적이 없는것 같아요. 그래서 미투 운동 처럼 사회적 약자가 세력화되는 움직임이 필요한 것 같구요.
세상이 변화할 수 있도록 모두가 인식의 틀을 깨는 노력이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좋은 리뷰 잘 보고 갑니다.~~

cyrus 2018-04-05 18:21   좋아요 0 | URL
이번 국내 미투 운동을 계기로 조금씩 성 범죄에 대한 인식이 달라질 거로 예상해보지만, 여전히 미투 운동을 무시하고 성 범죄의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도 세상에 변화를 주는 노력이 계속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행복하자 2018-04-08 0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콜바이네임 속에 그리스 동상과 향연등 그리스 미소년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오는데.. 남주인공 엘리오의 모습을 보면서 저런 소년의 모습이 서양인들에게는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년에서 벗어나려는 나이대의 묘한 느낌의 남자몸.. 일부러 그렇게 찍었겠지만 섹시하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cyrus 2018-04-10 13:47   좋아요 0 | URL
토머스 만의 소설을 영화화한 <베니스에서의 죽음>에 나오는 음악가 아센바흐가 좋아하는 소년이 꽃미남이에요. 그 영화에도 미소년에 바라보는 서양인의 시선을 확인할 수 있어요.

지금행복하자 2018-04-10 14:47   좋아요 0 | URL
그 배우저도 알아요 베르샤이유장미의 오스칼이 부활하면 그런 모습이 아닐까생각했어요
정말 예뻤어요
 
대담한 작전 - 서구 중세의 역사를 바꾼 특수작전 이야기
유발 하라리 지음, 김승욱 옮김, 박용진 감수 / 프시케의숲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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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특수부대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다. 이길 수 없는 전투를 영화처럼 극복하고 승리하는 모습을 기대한다. 액션 영화 속 신출귀몰한 주인공들은 대부분 특수부대원이다. 람보는 미 육군 특수부대 그린베레 출신이며 ‘007’ 제임스 본드는 영국 해군 특수부대 출신이다. 하지만 영화는 영화일 뿐이다. 영화와 현실은 당연히 차이가 있다. 현실에선 특수부대에 맡긴 임무가 최악의 결과로 종료되는 경우가 많다. 특수부대의 수행 능력이 크게 모자라서가 아니라, 상황 자체가 워낙 좋지 않아서 성공 가능성이 희박하기 때문이다.

 

특수부대의 원조는 영국 육군 공수특전단(SAS)이다. 제2차 세계대전 중인 1941년 북부 아프리카 사막의 독일군 후방을 교란하기 위해 1941년에 창설됐다. 특수부대는 현대전에서 중요한 전력으로 꼽히고 있다. 그러나 유발 하라리《대담한 작전》(프시케의숲, 2017)은 특수부대의 기원을 ‘중세와 르네상스’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책은 하라리의 대표작 《사피엔스》(김영사, 2015), 《호모 데우스》(김영사, 2017)보다 먼저 나왔다. 하라리는 중세 전쟁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담한 작전》은 《극한의 경험》(옥당, 2017)과 더불어 전쟁사를 다룬 하라리의 책이다.

 

이 두 권의 책보다 먼저 나온 대표작들의 영향력이 매우 커서 그런 것일까. 《극한의 경험》과 마찬가지로 《대담한 작전》에 대한 독자의 평가는 인색하다. 어떤 독자는 중세의 특수작전을 설명하는 데 참고할만한 사료가 부족한 점을 지적했고(하라리는 서문에서 이 책의 한계점을 밝혔다), 또 다른 독자는 《대담한 작전》을 시오노 나나미《로마인 이야기》(한길사)와 비교하여 하라리의 필력이 나나미보다 떨어진다고 평했다. 역사 전공자 하라리와 역사 비전공자 나나미(그녀는 철학과를 졸업했으며 이탈리아에 거주하면서 로마사를 독학했다)는 비교 대상 자체가 될 수 없다. 《대담한 작전》이 《사피엔스》보다 재미가 떨어지는 점은 알겠는데 하라리가 나나미보다 못한 평을 받는 건 어이가 없다. 《로마인 이야기》는 ‘대체역사소설’에 가깝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이 관심 있는 역사적 인물(특히, 율리우스 카이사르)이나 특정 사건에 대한 이야기에 상상력을 덕지덕지 덧붙여서 쓰는 서술을 구사한다. 더 심한 건 나나미는 사료를 잘못 인용하거나 사료를 누락하는 오류까지 저지른다.

 

하라리가 연구한 ‘서구 중세 역사 속 특수작전의 기원’은 역사적 사료가 부족할 수밖에 없는 주제이다. 본인도 부족한 여건 속에서 시작한 연구를 집대성한 책의 한계를 인정했다. 그는 ‘누구’처럼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아전인수 격으로 역사를 해석하지 않았다. 하라리는 사료가 부족한 점을 인정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참고한 사료의 진위성을 의심해보기도 했다. 역사적 사실에 대해 정명을 내리기까지는 객관적이고 체계적인 연구가 충분하게 진행돼야 한다. 하라리는 가능한 한 균형 있게, 또 객관적으로 기술하려고 노력했다. 사료가 부족하여 채울 수 없는 역사의 공백기에 적절한 상상력을 가미했다.

 

책 이야기를 하려다가 서론이 길어졌다. 하라리는 중세와 르네상스에 일어난 여섯 가지 전쟁들을 살펴보면서 특수작전의 본질을 발견한다. 중세 시대에 기사(군인)들은 기사도라는 높은 윤리를 요구받았다. 이것은 기독교 윤리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용기, 예의, 명예 등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기사들은 승리를 위해서라면 전면전을 불사했다. 그들은 암살, 납치, 매수, 기습 작전 등이 허용되는 특수부대의 전투 방식을 기사의 명예에 흠집 나게 하는 ‘반칙’으로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특수작전이 감행된 중세의 전쟁을 입증할 수 있는 사료가 남아있지 않은 것이다. 중세 기사들도 한 번쯤은 특수작전을 고려했을 것이다. 하지만, 엄청난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특수작전이 실패하면 단숨에 전세가 뒤집힐 수 있고 군의 사기는 떨어진다. 《대담한 작전》은 중세 시대 특수작전들의 성공 요인뿐만 아니라 실패 요인까지 짚는다.

 

특수부대가 ‘대담한 작전’으로 승리를 거둘 거란 기대는 미디어가 만든 환상이다. 하라리의 정의에 따르면 특수작전은 ‘보편적이지 않은 은밀한 전투방법’이다. 특수작전이 감행된 전쟁의 경과 및 결과에는 극히 복잡하고 다양한 배경이 얽혀 있어서 하나의 관점으로 설명할 수가 없다. 특수작전의 세계는 우리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특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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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04 15: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4-04 18:58   좋아요 1 | URL
아시아로 연구 범위를 확장시키면 닌자도 특수부대로 볼 수 있겠어요. ^^

레삭매냐 2018-04-04 15: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떤 작가의 모든 책이 좋을 거라는 환상
은 애당초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제임스 설터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cyrus 2018-04-04 18:59   좋아요 0 | URL
유발 하리리의 《사피엔스》, 《호모 데우스》는 제 기대에 미치지 못했지만, 《극한의 경험》, 《대담한 작전》은 좋았습니다. ^^
 
리비우스 로마사 1 - 1000년 로마의 시작 리비우스 로마사 1
티투스 리비우스 지음, 이종인 옮김 / 현대지성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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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만큼 다양한 인간 군상이 스쳐 지나간 시대는 많지 않다. 에드워드 기번《로마제국 쇠망사》(민음사, 2008~2010)테오도르 몸젠《로마사》(푸른역사, 2013~2015, 현재 3권까지 출간)처럼 통사를 다룬 책도 유용하겠지만, 로마의 생생한 모습에 접근하고 싶다면 티투스 리비우스《로마사》를 읽어보면 어떨까. 로마를 이해하려면 리비우스의 책부터 먼저 시작해야 한다. 리비우스는 142권이라는 어마어마한 분량으로 이루어진 《로마사》를 썼다. 그는 열권씩 묶어 순차적으로 집필했다. 현재까지 남아 있는 문헌은 1~10권과 21~45권이다. 이번에 첫선을 보인 《리비우스 로마사 1 : 1000년 로마의 시작》(현대지성, 2018)은 원서 1~5권을 번역한 것이다.

 

로마의 역사는 바구니에 담겨 테베레 강물에 버려진 쌍둥이 형제 로물루스와 레무스부터 시작된다. 목축업자 파우스툴루스는 어미 늑대가 쌍둥이 형제에게 젖을 먹이는 모습을 발견하고, 그들을 데려가 키운다. 목축업자 아내의 보살핌 속에 성장한 형제는 형제는 테베레 강 하구에서 점령한 지역을 분할해 통치한다. 그러나 형제 사이는 나빠졌고 형이 동생을 죽여 오늘날의 로마를 건국한다. ‘로마’라는 국호는 건국자 로물루스의 이름을 따서 지어진 것이다.

 

‘오만왕’ 타르퀴니우스의 아들 섹스투스 타르퀴니우스는 자신과 친분이 있는 콜라티누스 장군의 아내 루크레티아에 흑심을 품었다. 콜라티누스가 집을 비운 사이에 타르퀴니우스는 루크레티아를 위협하여 성폭행했다. 루크레티아는 남편과 아버지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난 뒤 자살하고 말았다. 오만왕의 폭정에 불만을 품은 백성들은 섹스투스 타르퀴니우스의 만행까지 전해 듣자 분노를 터뜨렸다. 오만왕이 폐위되면서 왕정은 무너졌고 공화정이 수립되었다. 리비우스는 루크레티아 사건의 경위와 급박하게 조성된 혁명의 분위기를 잘 묘사하고 있다.

 

로마를 지탱해 온 정의와 공정, 그리고 희생이라는 도덕적 가치들은 초대 집정관 루키우스 유니우스 브루투스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50여 년 동안 익숙해진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이행한 대개혁의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브루투스는 무엇보다 왕정복고 시도라는 도전에 직면하게 된다. 브루투스의 두 아들이 왕정복고를 시도한 타르퀴니우스 가의 음모에 가담한 사실이 드러난다. 브루투스는 두 아들의 사형 집행을 지시하고 지켜본다. 공화정으로 이행한 직후의 로마 내에 어수선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만약 집정관이 로마 내부 결속에 힘을 쏟지 않았으면 막 싹이 튼 공화정이 뿌리째 뽑혀버렸을 것이다. 사익보다 공익의 논리를 앞세운 브루투스의 지도력에 감화된 로마인들은 단결했다. 공적인 의무 앞에 사욕을 엄격히 분별해내고 자제하는 로마인의 도덕적 엄정함과 희생정신은 현대 독자들에게 공명을 불러일으킨다.

 

리비우스는 역사 속 인물 각각의 개성을 살리고,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는 역사적 사건의 전개 과정을 극적으로 재구성하는 데 탁월한 재능을 보인다. 《로마사》를 번역한 이종인은 리비우스의 위대함을 ‘예술적 서술 방식’이라고 평가한다. 실증주의 역사관을 고집한 몸젠의 ‘과학적 서술 방식’과 비교하면 확연한 차이를 느낄 수 있다.

 

가이우스 무키우스는 혼자서 에트루리아 왕을 암살하려다가 적군에 잡히고 만다. 그는 왕이 보는 앞에서 자신의 오른손을 불에 그슬려 고통을 참는 모습을 보여준다. 가이우스의 용기 있는 행동에 감탄한 왕은 그를 풀어주고 로마와 휴전 협정을 맺는다. 가이우스의 오른손은 큰 화상을 입은 바람에 영영 쓸 수 없게 되지만, 그의 용기에 감탄한 로마인들은 그에게 ‘무키우스 스카이볼라’라는 명예로운 호칭을 부여한다. ‘스카이볼라’는 왼손잡이를 뜻하는 단어이다. 원서 2권에서 무키우스 스카이볼라의 말은 리비우스의 손에 거쳐 이렇게 살아난다.

 

 

 “나는 로마인이다. 내 이름은 가이우스 무키우스. 나는 나의 적인 당신을 죽이려고 여기에 왔다. 나는 남을 죽이려고 하는 용기 못지않게 기꺼이 죽을 용기도 있다. 용감하게 행동에 나서고 그에 따라 고통을 당하는 것이 우리 로마인의 행동 방식이다.” (141쪽)

 

 

권력이든 부든 모든 것은 세월과 함께 스러지고 만다. 그리고 인간은 삶의 유한성을 벗어나기 힘들기에 리비우스는 로마 제국의 영광을 기술하는 일에 자신감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는 필생의 역작을 남기려는 자신의 업적이 잊힐지도 모른다고 고백한다. 리비우스가 로마의 역사에 매료된 까닭은 무엇일까. 그 역사 속에는 ‘무한히 다양한 인간 경험’(원서 1권 서문, 17쪽)이 있고, 역사가는 그것을 기록한다. 그래서 리비우스는 인간 경험을 상당히 현실적으로 그린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자신과 함께 살았던 로마인들에게 묻는다. “로마의 과거를 보면서 지금의 우리(로마인)는 잘살고 있는가?”

 

리비우스는 초창기 로마의 성장 과정을 살펴보면서 교훈을 얻으려고 한다. 초기 로마의 성장에서 교훈을 얻는다면 무엇일까. 그는 로마인의 정신에 스며든 도덕적 가치에 주목한다. 정의와 공정, 희생은 로마 초기부터 쇠락하기 직전까지 로마의 진정한 강점이었다. 탐욕과 부패한 권력에서 나오는 악덕은 미풍양속을 해칠 뿐만 아니라 사람을 병들게 만든다. 번영한 국가도 앓는 병을 로마도 예외 없이 경험한다. 리비우스는 병든 사람을 치료하는 가장 좋은 약이 ‘역사의 연구’라고 말한다. 악덕은 로마뿐 아니라 초기의 고성장을 경험한 거의 모든 국가가 앓는 병이다. 지금의 우리 사회도 예외가 아니다. 책의 서문에는 로마사와 로마인에게 배우는 교훈이 적혀 있다. 이런 점에서 리비우스가 들려주는 역사에 대한 통찰은 우리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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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31 22: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4-01 15:42   좋아요 1 | URL
로마는 농사지을 땅을 둘러싼 내부 갈등이 심각했어요. 귀족과 평민은 땅을 더 가지려고 신경전을 벌였어요. 땅 때문에 계급 갈등이 생긴 거죠. 그래서 정치하는 기득권층은 내부 갈등을 잠재우려고 로마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단결심을 강화했어요. 그 당시 로마는 이웃 나라의 침략에 시달리고 있었거든요. 우리나라 상황과 비슷해요. 우파는 자신들의 문제점이나 자신들에게 향한 비판을 숨기려고 ‘북한’과 ‘애국’을 항상 내세우잖아요. 이런 식으로 내부 부패와 불만을 잠재우는 거죠.

oren 2018-04-03 2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마의 전설적인 역사가 티투스 리비우스의 <로마사>가 드디어 국내에도 번역되어 나왔군요. 저는 리비우스의 명성을 『몽테뉴의 수상록』을 통해 처음 접했었는데, 나중에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 마키아벨리의 『로마사 논고』, 셰익스피어의 작품 『루크리스의 강간』,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등에서 거듭 반복해서 ‘로마사 이야기‘를 접하면서 리비우스의 대단한 명성을 더욱 실감하게 되었답니다.(☞ http://blog.aladin.co.kr/oren/9163630)

cyrus 님이 이 글에서 사례로 소개한 ‘오만왕‘ 타르퀴니우스의 아들에 의해 저질러진 ‘루크레티아 성폭행 사건‘은 셰익스피어조차 『루크리스의 능욕』이라는 방대한 설화시로 재탄생시킬 만큼 유명한 사건인데, 이 또한 셰익스피어가 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는 하나, 결국 해당 이야기의 원전은 역사가 리비우스로부터 전해졌던 셈이겠지요.(셰익스피어는 『루크리스의 강간』의 줄거리를 같은 작가 오비디우스, 그러나 그의 다른 작품인 「로마 달력」제2권에 실린 루크리스 관련 이야기에서 빌려 왔다. 물론 리비우스의 『로마사』제1권에도 같은 사건과 인물을 다루는 기록이 있는데, 이는 인물들의 심리를 파고드는 오비디우스의 시 형식의 이야기 전개와 달리 산문체 역사 서술의 일부다. - 최종철,『셰익스피어 전집 10』, <루크리스의 강간>, 역자 서문)

한편, 무키우스 스카이볼라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는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도 등장하는데, 이 또한 톨스토이가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을 열심히 읽은 덕분이 아니었나 싶더군요.^^( ☞ http://blog.aladin.co.kr/oren/8974716)

유니우스 브루투스가 ‘공화정‘을 수호하기 위해 아들 둘을 죽인 끔찍한 사건에 대한 이야기는 마키아벨리의 『로마사 논고』에 여러 차례 등장하는데(☞ http://blog.aladin.co.kr/oren/9429341), 제가 가장 최근에 읽은 찰스 디킨스의 소설에도 그 이야기가 여러 차례 거듭 언급되어 있어서 아주 흥미로웠답니다.^^

* * *

오, 영국인들이여, 로마의 브루투스(로마를 배반한 두 자식을 사형에 처한 루키우스 브루투스를 말함-역자주)는 자기 자식을 사형시키지 않았습니까? 오, 승리를 눈앞에 둔 친구들이여, 스파르타의 어머니들은 도망가는 자식들을 적군의 칼끝으로 내몰지 않았습니까? 그렇다면 조상님들과 찬양하는 동료들과 그리고 앞으로 태어날 후손들까지 있는 우리가, 신성하고 거룩한 명분을 좇아 세운 텐트 바깥으로 배반자들을 집어던지는 것이 코크타운 노동자들의 신성한 사명 아니겠습니까? 공중의 바람도 그렇다고 대답하고 그 대답을 동서남북 사방으로 퍼뜨리고 있습니다. 그러니 노동자총연맹을 위해 만세삼창을 합시다!
- 찰스 디킨스, 『어려운 시절』, <제2권 4장 노동자 형제들> 중에서


cyrus 2018-04-04 12:38   좋아요 0 | URL
그 전에 읽은 몸젠의 로마사를 지루하게 느껴져서 그런지 리비우스의 로마사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인물들의 대화 장면을 묘사한 부분을 읽었을 때 역사소설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마키아벨리의 <로마사 논고>를 안 읽어봤는데, 오히려 그게 잘 된 것 같아요. <리비우스 로마사>를 읽지 않고 <로마사 논고>를 읽는 것과 번역된 <리비우스 로마사>와 <로마사 논고>를 비교하면서 읽는 것에 느낌의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
 

 

 

 

“저 여자가 만든 치즈를 먹고 나서 배탈이 났다. 저 여자는 치즈에 사람을 해치는 마술을 부렸다. 저 여자는 분명 사악한 마녀다.”

 

이것은 황당한 이야기가 아니다. 치즈를 만든 여성을 마녀로 고발한 사람의 증언이다. 마녀로 고발된 여성이 마녀재판에 회부되면 무조건 죽게 된다. 고발 진술을 뒷받침할만한 증거가 전혀 없는데도 무고한 여성은 항변조차 하지 못한 채 유죄 판결을 받는다. 15세기부터 18세기 말까지 유럽에서 수만 명 목숨을 앗아간 마녀사냥은 종교적인 이유에서 시작되었다. 유럽인들은 마녀가 기독교 신앙을 버리고 악마를 섬기는 대가로 마력을 받아 인간 사회에 재앙을 불러오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볼 때 마녀사냥은 종교적인 것이 아닌 다른 이유로 자행되었다.

 

 

 

 

 

 

 

 

 

 

 

 

 

 

 

 

 

 

 

* [절판] 브라이언 P. 르박 《유럽의 마녀사냥》 (소나무, 2003)

* [품절] 카를로 진즈부르그 《마녀와 베난단티의 밤의 전투》 (길, 2004)

* 쥘 미슐레 《마녀》 (봄아필, 2012)   

 

 

 

사람들은 두려운 상황에 놓이게 되면 불안을 해소하는 전략을 마련한다. 괜히 소리를 지르거나 무작정 폭력을 행사한다. 만일 불안을 해소하려 한다면 우선 당면한 사태에 대한 충분한 정보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불안을 일으키는 대상(또는 원인)이 파악되지 않고, 이 두려운 상황이 언제까지 지속할지도 예측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이때 흔히 나타나는 불안 해소 전략이 희생양(scapegoat)을 만드는 법이다. 공포를 분노로 바꿔 희생양을 향해 분출시킴으로써 공포의 긴장에서 벗어나려는 것이다. 내부 결속을 위해 희생양은 우선 밖에서 찾지만, 여의치 않을 경우 내부에서라도 만들어 낸다. 마녀사냥 광풍은 바로 ‘희생양 만들기’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유럽의 마녀사냥》(소나무, 2003)은 마녀사냥 광풍을 체계적으로 분석하여 발단 원인을 지배층(권력자, 성직자, 지식인 등)의 집단적 불안에서 찾는다. 유럽 근대 세계의 탄생은 미래에 대한 불안도 동시에 증폭시켰다. 16세기 종교개혁 운동은 근대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마르틴 루터는 성서가 종교적 권위의 유일한 원천이라며 교황의 권위에 도전했다. 루터가 시작한 종교개혁은 기독교 세계를 크게 분열시켰다. 그 결과 근 천 년 이상 교회가 누려오던 절대적인 권위가 크게 흔들리게 되었다. 그러나 종교개혁 이후에도 마녀사냥은 줄어들지 않았다. 루터와 칼뱅을 비롯한 종교 개혁가들은 성서의 가르침을 근거로 악마의 존재를 규정했으며 개신교의 악마론은 마녀에 대한 공포를 부추기는 데 일조했다. 따라서 종교개혁도 마녀사냥 확산에 기여를 했다고 볼 수 있다.

 

근대 유럽 국가의 특징은 국가 권력의 중앙 집권화이다. 그렇지만 근대 초기의 유럽 국가는 어느 정도 지방 자치권을 인정하고 있었다. 지방 권력은 마녀재판을 진행하는 주도권을 가지고 있었다. 종교개혁은 유럽의 사법제도에도 일정 부분 변화를 가져왔다. 마녀사냥이 가장 극심했던 16세기에 교황의 권위가 축소되면서 마녀재판을 주도한 교회 법원의 사법권이 지방 세속 법원으로 넘어갔다. 그리하여 지방 관리가 마녀 혐의자를 심문하여 처벌을 내릴 수 있었다.

 

《유럽의 마녀사냥》을 쓴 브라이언 P. 르박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영향을 받은 스콜라 철학이 마녀에 대한 유럽 지식인들의 믿음을 뒷받침한 지적 기반이라고 주장한다.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신봉한 지식인들은 마녀가 악마의 도움을 받아 흑마술을 부린다고 생각했다. 르네상스 시대에 중세 스콜라 철학에 도전한 신플라톤주의 철학이 등장했다. 신플라톤주의자는 인간 스스로 우주의 기운을 받으면 마술을 부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신플라톤주의는 유럽 지식층의 주류 학문으로 자리 잡지 못했고 스콜라 철학에 익숙한 기득권층의 태도를 바꾸는 데 실패했다. 이러한 학문적 변화가 있었음에도 마녀와 흑마술에 대한 믿음은 르네상스 시대까지 지속하였다.

 

쥘 미슐레는 마녀가 종교를 맹목적으로 믿는 지배계층의 희생양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르박은 미슐레의 해석을 ‘낭만적인 해석’으로 규정한다. 그리고 마녀를 기존의 사회 체제에 거부하는 반동 세력으로 보는 해석을 비판한다. 그렇게 주장하는 이유는 간단명료하다. 마녀들이 사회를 개혁하려는 목적으로 마녀 집회에 모인다는 증거가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16세기 이탈리아 지방의 농민들이 이단 심문을 받은 기록들을 토대로 마녀사냥을 분석한 카를로 진즈부르그는 자신의 책 《마녀와 베난단티의 밤의 전투》(길, 2004) 서문에서 미슐레의 마녀 연구를 언급한다. 그러나 진즈부르그도 마녀를 해석한 미슐레의 관점을 ‘반역적 마녀에 대한 낭만주의적 찬미’라고 평가한다.

 

 

진즈부르그는 ‘밤의 전투’로 알려진 베난단티(Benandanti) 비밀 모임이 어떻게 ‘마녀 집회(sabbath)’로 알려지게 되었는지 추적한다. 베난단티는 흉년을 부르는 마녀들에 대항하는 신성한 존재였다. 농민들은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각각 베난단티와 마녀로 연기하면서 서로 싸움을 벌이는 행사를 갖는다. 농민들은 베난단티가 승리한 그해에는 풍년이 든다는 미신을 믿었다. 베난단티 역할을 맡은 농민은 자신이 영적인 힘을 가진 존재인 것처럼 말한다.

 

 

저는 베난단티입니다. 왜냐하면 일 년에 네 번 사계재일 때 밤마다 싸우러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가기 때문입니다. 저는 보이지 않게 영적으로만 가고 육체는 남아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받들기 위해 나가며, 마녀들은 악마를 받듭니다. 우리는 서로 싸웁니다. 우리는 회향단으로 싸우고 그들은 수숫대로 싸웁니다.

 

(베난단티 역할을 맡은 바티스타 모두코의 진술, 진즈부르그의 책 51쪽)

 

 

베난단티 모임에 참석한 농민들의 증언을 확인한 이단 심문관들은 ‘풍요제’를 ‘악마를 숭배하는 마녀 집회’로 규정했다. 육체와 영혼이 분리되는 영적인 체험에 고백한 농민의 진술은 베난단티 모임을 불리하게 만든 원인이 되었다. 이단 심문관들은 농민들의 진술을 통해서 베난단티의 이단적 성격을 찾아내려고 했다. 결국, 농민들의 민중 문화를 이해하지 못한 이단 심문관들은 농민들의 의식이 반영된 연례행사를 탄압했다. 즈부르그는 마녀 사냥 광풍 속에 왜곡되고 잊힌 베난단티 모임의 실체를 복원하여 지배계층에 억압받는 민중 문화에 주목한다.

 

하지만 진즈부르그의 해석도 르박의 시선에서 비켜갈 수 없다. 르박은 환상적인 요소가 강한 베난단티 역할자의 진술만 가지고는 베난단티 모임이 실제로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결과적으로 진즈부르그의 해석도 미슐레의 낭만적인 해석을 그대로 답습하는 데 그치게 된다.

 

르박과 진즈부르그의 마녀 연구는 “누가 마녀를 만들었는가?”라는 질문에서 시작된다. 두 사람이 얻은 결론은 비슷하다. 민중이 마녀를 만들지 않았다. 지배계층이 마녀를 만들었고, 민중은 지배계층이 운영하는 이단 심문소가 남긴 기록(마녀로 고소한 사람들의 증언, 마녀 혐의를 받은 사람들의 진술)을 확인하면서 마녀에 대한 공포심을 느끼기 시작했다. 마녀가 존재하기 전에 마녀를 규정하는 논리들이 먼저 만들어졌다. 마녀를 규정하는 논리는 마녀가 아닌 시대적 불안을 제거하기 위해 동원된 희생양들만 양산했다. 시몬 드 보부아르의 명언을 빌리자면 ‘마녀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유럽의 마녀사냥은 한 사회가 비가시적인 특정 대상에 공포감을 느끼고 있을 때 그 사회가 빚어내는 비인간성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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