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한 작전 - 서구 중세의 역사를 바꾼 특수작전 이야기
유발 하라리 지음, 김승욱 옮김, 박용진 감수 / 프시케의숲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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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특수부대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다. 이길 수 없는 전투를 영화처럼 극복하고 승리하는 모습을 기대한다. 액션 영화 속 신출귀몰한 주인공들은 대부분 특수부대원이다. 람보는 미 육군 특수부대 그린베레 출신이며 ‘007’ 제임스 본드는 영국 해군 특수부대 출신이다. 하지만 영화는 영화일 뿐이다. 영화와 현실은 당연히 차이가 있다. 현실에선 특수부대에 맡긴 임무가 최악의 결과로 종료되는 경우가 많다. 특수부대의 수행 능력이 크게 모자라서가 아니라, 상황 자체가 워낙 좋지 않아서 성공 가능성이 희박하기 때문이다.

 

특수부대의 원조는 영국 육군 공수특전단(SAS)이다. 제2차 세계대전 중인 1941년 북부 아프리카 사막의 독일군 후방을 교란하기 위해 1941년에 창설됐다. 특수부대는 현대전에서 중요한 전력으로 꼽히고 있다. 그러나 유발 하라리《대담한 작전》(프시케의숲, 2017)은 특수부대의 기원을 ‘중세와 르네상스’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책은 하라리의 대표작 《사피엔스》(김영사, 2015), 《호모 데우스》(김영사, 2017)보다 먼저 나왔다. 하라리는 중세 전쟁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담한 작전》은 《극한의 경험》(옥당, 2017)과 더불어 전쟁사를 다룬 하라리의 책이다.

 

이 두 권의 책보다 먼저 나온 대표작들의 영향력이 매우 커서 그런 것일까. 《극한의 경험》과 마찬가지로 《대담한 작전》에 대한 독자의 평가는 인색하다. 어떤 독자는 중세의 특수작전을 설명하는 데 참고할만한 사료가 부족한 점을 지적했고(하라리는 서문에서 이 책의 한계점을 밝혔다), 또 다른 독자는 《대담한 작전》을 시오노 나나미《로마인 이야기》(한길사)와 비교하여 하라리의 필력이 나나미보다 떨어진다고 평했다. 역사 전공자 하라리와 역사 비전공자 나나미(그녀는 철학과를 졸업했으며 이탈리아에 거주하면서 로마사를 독학했다)는 비교 대상 자체가 될 수 없다. 《대담한 작전》이 《사피엔스》보다 재미가 떨어지는 점은 알겠는데 하라리가 나나미보다 못한 평을 받는 건 어이가 없다. 《로마인 이야기》는 ‘대체역사소설’에 가깝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이 관심 있는 역사적 인물(특히, 율리우스 카이사르)이나 특정 사건에 대한 이야기에 상상력을 덕지덕지 덧붙여서 쓰는 서술을 구사한다. 더 심한 건 나나미는 사료를 잘못 인용하거나 사료를 누락하는 오류까지 저지른다.

 

하라리가 연구한 ‘서구 중세 역사 속 특수작전의 기원’은 역사적 사료가 부족할 수밖에 없는 주제이다. 본인도 부족한 여건 속에서 시작한 연구를 집대성한 책의 한계를 인정했다. 그는 ‘누구’처럼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아전인수 격으로 역사를 해석하지 않았다. 하라리는 사료가 부족한 점을 인정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참고한 사료의 진위성을 의심해보기도 했다. 역사적 사실에 대해 정명을 내리기까지는 객관적이고 체계적인 연구가 충분하게 진행돼야 한다. 하라리는 가능한 한 균형 있게, 또 객관적으로 기술하려고 노력했다. 사료가 부족하여 채울 수 없는 역사의 공백기에 적절한 상상력을 가미했다.

 

책 이야기를 하려다가 서론이 길어졌다. 하라리는 중세와 르네상스에 일어난 여섯 가지 전쟁들을 살펴보면서 특수작전의 본질을 발견한다. 중세 시대에 기사(군인)들은 기사도라는 높은 윤리를 요구받았다. 이것은 기독교 윤리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용기, 예의, 명예 등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기사들은 승리를 위해서라면 전면전을 불사했다. 그들은 암살, 납치, 매수, 기습 작전 등이 허용되는 특수부대의 전투 방식을 기사의 명예에 흠집 나게 하는 ‘반칙’으로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특수작전이 감행된 중세의 전쟁을 입증할 수 있는 사료가 남아있지 않은 것이다. 중세 기사들도 한 번쯤은 특수작전을 고려했을 것이다. 하지만, 엄청난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특수작전이 실패하면 단숨에 전세가 뒤집힐 수 있고 군의 사기는 떨어진다. 《대담한 작전》은 중세 시대 특수작전들의 성공 요인뿐만 아니라 실패 요인까지 짚는다.

 

특수부대가 ‘대담한 작전’으로 승리를 거둘 거란 기대는 미디어가 만든 환상이다. 하라리의 정의에 따르면 특수작전은 ‘보편적이지 않은 은밀한 전투방법’이다. 특수작전이 감행된 전쟁의 경과 및 결과에는 극히 복잡하고 다양한 배경이 얽혀 있어서 하나의 관점으로 설명할 수가 없다. 특수작전의 세계는 우리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특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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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04 15: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4-04 18:58   좋아요 1 | URL
아시아로 연구 범위를 확장시키면 닌자도 특수부대로 볼 수 있겠어요. ^^

레삭매냐 2018-04-04 15: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떤 작가의 모든 책이 좋을 거라는 환상
은 애당초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제임스 설터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cyrus 2018-04-04 18:59   좋아요 0 | URL
유발 하리리의 《사피엔스》, 《호모 데우스》는 제 기대에 미치지 못했지만, 《극한의 경험》, 《대담한 작전》은 좋았습니다. ^^
 
리비우스 로마사 1 - 1000년 로마의 시작 리비우스 로마사 1
티투스 리비우스 지음, 이종인 옮김 / 현대지성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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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만큼 다양한 인간 군상이 스쳐 지나간 시대는 많지 않다. 에드워드 기번《로마제국 쇠망사》(민음사, 2008~2010)테오도르 몸젠《로마사》(푸른역사, 2013~2015, 현재 3권까지 출간)처럼 통사를 다룬 책도 유용하겠지만, 로마의 생생한 모습에 접근하고 싶다면 티투스 리비우스《로마사》를 읽어보면 어떨까. 로마를 이해하려면 리비우스의 책부터 먼저 시작해야 한다. 리비우스는 142권이라는 어마어마한 분량으로 이루어진 《로마사》를 썼다. 그는 열권씩 묶어 순차적으로 집필했다. 현재까지 남아 있는 문헌은 1~10권과 21~45권이다. 이번에 첫선을 보인 《리비우스 로마사 1 : 1000년 로마의 시작》(현대지성, 2018)은 원서 1~5권을 번역한 것이다.

 

로마의 역사는 바구니에 담겨 테베레 강물에 버려진 쌍둥이 형제 로물루스와 레무스부터 시작된다. 목축업자 파우스툴루스는 어미 늑대가 쌍둥이 형제에게 젖을 먹이는 모습을 발견하고, 그들을 데려가 키운다. 목축업자 아내의 보살핌 속에 성장한 형제는 형제는 테베레 강 하구에서 점령한 지역을 분할해 통치한다. 그러나 형제 사이는 나빠졌고 형이 동생을 죽여 오늘날의 로마를 건국한다. ‘로마’라는 국호는 건국자 로물루스의 이름을 따서 지어진 것이다.

 

‘오만왕’ 타르퀴니우스의 아들 섹스투스 타르퀴니우스는 자신과 친분이 있는 콜라티누스 장군의 아내 루크레티아에 흑심을 품었다. 콜라티누스가 집을 비운 사이에 타르퀴니우스는 루크레티아를 위협하여 성폭행했다. 루크레티아는 남편과 아버지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난 뒤 자살하고 말았다. 오만왕의 폭정에 불만을 품은 백성들은 섹스투스 타르퀴니우스의 만행까지 전해 듣자 분노를 터뜨렸다. 오만왕이 폐위되면서 왕정은 무너졌고 공화정이 수립되었다. 리비우스는 루크레티아 사건의 경위와 급박하게 조성된 혁명의 분위기를 잘 묘사하고 있다.

 

로마를 지탱해 온 정의와 공정, 그리고 희생이라는 도덕적 가치들은 초대 집정관 루키우스 유니우스 브루투스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50여 년 동안 익숙해진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이행한 대개혁의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브루투스는 무엇보다 왕정복고 시도라는 도전에 직면하게 된다. 브루투스의 두 아들이 왕정복고를 시도한 타르퀴니우스 가의 음모에 가담한 사실이 드러난다. 브루투스는 두 아들의 사형 집행을 지시하고 지켜본다. 공화정으로 이행한 직후의 로마 내에 어수선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만약 집정관이 로마 내부 결속에 힘을 쏟지 않았으면 막 싹이 튼 공화정이 뿌리째 뽑혀버렸을 것이다. 사익보다 공익의 논리를 앞세운 브루투스의 지도력에 감화된 로마인들은 단결했다. 공적인 의무 앞에 사욕을 엄격히 분별해내고 자제하는 로마인의 도덕적 엄정함과 희생정신은 현대 독자들에게 공명을 불러일으킨다.

 

리비우스는 역사 속 인물 각각의 개성을 살리고,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는 역사적 사건의 전개 과정을 극적으로 재구성하는 데 탁월한 재능을 보인다. 《로마사》를 번역한 이종인은 리비우스의 위대함을 ‘예술적 서술 방식’이라고 평가한다. 실증주의 역사관을 고집한 몸젠의 ‘과학적 서술 방식’과 비교하면 확연한 차이를 느낄 수 있다.

 

가이우스 무키우스는 혼자서 에트루리아 왕을 암살하려다가 적군에 잡히고 만다. 그는 왕이 보는 앞에서 자신의 오른손을 불에 그슬려 고통을 참는 모습을 보여준다. 가이우스의 용기 있는 행동에 감탄한 왕은 그를 풀어주고 로마와 휴전 협정을 맺는다. 가이우스의 오른손은 큰 화상을 입은 바람에 영영 쓸 수 없게 되지만, 그의 용기에 감탄한 로마인들은 그에게 ‘무키우스 스카이볼라’라는 명예로운 호칭을 부여한다. ‘스카이볼라’는 왼손잡이를 뜻하는 단어이다. 원서 2권에서 무키우스 스카이볼라의 말은 리비우스의 손에 거쳐 이렇게 살아난다.

 

 

 “나는 로마인이다. 내 이름은 가이우스 무키우스. 나는 나의 적인 당신을 죽이려고 여기에 왔다. 나는 남을 죽이려고 하는 용기 못지않게 기꺼이 죽을 용기도 있다. 용감하게 행동에 나서고 그에 따라 고통을 당하는 것이 우리 로마인의 행동 방식이다.” (141쪽)

 

 

권력이든 부든 모든 것은 세월과 함께 스러지고 만다. 그리고 인간은 삶의 유한성을 벗어나기 힘들기에 리비우스는 로마 제국의 영광을 기술하는 일에 자신감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는 필생의 역작을 남기려는 자신의 업적이 잊힐지도 모른다고 고백한다. 리비우스가 로마의 역사에 매료된 까닭은 무엇일까. 그 역사 속에는 ‘무한히 다양한 인간 경험’(원서 1권 서문, 17쪽)이 있고, 역사가는 그것을 기록한다. 그래서 리비우스는 인간 경험을 상당히 현실적으로 그린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자신과 함께 살았던 로마인들에게 묻는다. “로마의 과거를 보면서 지금의 우리(로마인)는 잘살고 있는가?”

 

리비우스는 초창기 로마의 성장 과정을 살펴보면서 교훈을 얻으려고 한다. 초기 로마의 성장에서 교훈을 얻는다면 무엇일까. 그는 로마인의 정신에 스며든 도덕적 가치에 주목한다. 정의와 공정, 희생은 로마 초기부터 쇠락하기 직전까지 로마의 진정한 강점이었다. 탐욕과 부패한 권력에서 나오는 악덕은 미풍양속을 해칠 뿐만 아니라 사람을 병들게 만든다. 번영한 국가도 앓는 병을 로마도 예외 없이 경험한다. 리비우스는 병든 사람을 치료하는 가장 좋은 약이 ‘역사의 연구’라고 말한다. 악덕은 로마뿐 아니라 초기의 고성장을 경험한 거의 모든 국가가 앓는 병이다. 지금의 우리 사회도 예외가 아니다. 책의 서문에는 로마사와 로마인에게 배우는 교훈이 적혀 있다. 이런 점에서 리비우스가 들려주는 역사에 대한 통찰은 우리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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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31 22: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4-01 15:42   좋아요 1 | URL
로마는 농사지을 땅을 둘러싼 내부 갈등이 심각했어요. 귀족과 평민은 땅을 더 가지려고 신경전을 벌였어요. 땅 때문에 계급 갈등이 생긴 거죠. 그래서 정치하는 기득권층은 내부 갈등을 잠재우려고 로마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단결심을 강화했어요. 그 당시 로마는 이웃 나라의 침략에 시달리고 있었거든요. 우리나라 상황과 비슷해요. 우파는 자신들의 문제점이나 자신들에게 향한 비판을 숨기려고 ‘북한’과 ‘애국’을 항상 내세우잖아요. 이런 식으로 내부 부패와 불만을 잠재우는 거죠.

oren 2018-04-03 2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마의 전설적인 역사가 티투스 리비우스의 <로마사>가 드디어 국내에도 번역되어 나왔군요. 저는 리비우스의 명성을 『몽테뉴의 수상록』을 통해 처음 접했었는데, 나중에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 마키아벨리의 『로마사 논고』, 셰익스피어의 작품 『루크리스의 강간』,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등에서 거듭 반복해서 ‘로마사 이야기‘를 접하면서 리비우스의 대단한 명성을 더욱 실감하게 되었답니다.(☞ http://blog.aladin.co.kr/oren/9163630)

cyrus 님이 이 글에서 사례로 소개한 ‘오만왕‘ 타르퀴니우스의 아들에 의해 저질러진 ‘루크레티아 성폭행 사건‘은 셰익스피어조차 『루크리스의 능욕』이라는 방대한 설화시로 재탄생시킬 만큼 유명한 사건인데, 이 또한 셰익스피어가 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는 하나, 결국 해당 이야기의 원전은 역사가 리비우스로부터 전해졌던 셈이겠지요.(셰익스피어는 『루크리스의 강간』의 줄거리를 같은 작가 오비디우스, 그러나 그의 다른 작품인 「로마 달력」제2권에 실린 루크리스 관련 이야기에서 빌려 왔다. 물론 리비우스의 『로마사』제1권에도 같은 사건과 인물을 다루는 기록이 있는데, 이는 인물들의 심리를 파고드는 오비디우스의 시 형식의 이야기 전개와 달리 산문체 역사 서술의 일부다. - 최종철,『셰익스피어 전집 10』, <루크리스의 강간>, 역자 서문)

한편, 무키우스 스카이볼라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는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도 등장하는데, 이 또한 톨스토이가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을 열심히 읽은 덕분이 아니었나 싶더군요.^^( ☞ http://blog.aladin.co.kr/oren/8974716)

유니우스 브루투스가 ‘공화정‘을 수호하기 위해 아들 둘을 죽인 끔찍한 사건에 대한 이야기는 마키아벨리의 『로마사 논고』에 여러 차례 등장하는데(☞ http://blog.aladin.co.kr/oren/9429341), 제가 가장 최근에 읽은 찰스 디킨스의 소설에도 그 이야기가 여러 차례 거듭 언급되어 있어서 아주 흥미로웠답니다.^^

* * *

오, 영국인들이여, 로마의 브루투스(로마를 배반한 두 자식을 사형에 처한 루키우스 브루투스를 말함-역자주)는 자기 자식을 사형시키지 않았습니까? 오, 승리를 눈앞에 둔 친구들이여, 스파르타의 어머니들은 도망가는 자식들을 적군의 칼끝으로 내몰지 않았습니까? 그렇다면 조상님들과 찬양하는 동료들과 그리고 앞으로 태어날 후손들까지 있는 우리가, 신성하고 거룩한 명분을 좇아 세운 텐트 바깥으로 배반자들을 집어던지는 것이 코크타운 노동자들의 신성한 사명 아니겠습니까? 공중의 바람도 그렇다고 대답하고 그 대답을 동서남북 사방으로 퍼뜨리고 있습니다. 그러니 노동자총연맹을 위해 만세삼창을 합시다!
- 찰스 디킨스, 『어려운 시절』, <제2권 4장 노동자 형제들> 중에서


cyrus 2018-04-04 12:38   좋아요 0 | URL
그 전에 읽은 몸젠의 로마사를 지루하게 느껴져서 그런지 리비우스의 로마사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인물들의 대화 장면을 묘사한 부분을 읽었을 때 역사소설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마키아벨리의 <로마사 논고>를 안 읽어봤는데, 오히려 그게 잘 된 것 같아요. <리비우스 로마사>를 읽지 않고 <로마사 논고>를 읽는 것과 번역된 <리비우스 로마사>와 <로마사 논고>를 비교하면서 읽는 것에 느낌의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
 

 

 

 

“저 여자가 만든 치즈를 먹고 나서 배탈이 났다. 저 여자는 치즈에 사람을 해치는 마술을 부렸다. 저 여자는 분명 사악한 마녀다.”

 

이것은 황당한 이야기가 아니다. 치즈를 만든 여성을 마녀로 고발한 사람의 증언이다. 마녀로 고발된 여성이 마녀재판에 회부되면 무조건 죽게 된다. 고발 진술을 뒷받침할만한 증거가 전혀 없는데도 무고한 여성은 항변조차 하지 못한 채 유죄 판결을 받는다. 15세기부터 18세기 말까지 유럽에서 수만 명 목숨을 앗아간 마녀사냥은 종교적인 이유에서 시작되었다. 유럽인들은 마녀가 기독교 신앙을 버리고 악마를 섬기는 대가로 마력을 받아 인간 사회에 재앙을 불러오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볼 때 마녀사냥은 종교적인 것이 아닌 다른 이유로 자행되었다.

 

 

 

 

 

 

 

 

 

 

 

 

 

 

 

 

 

 

 

* [절판] 브라이언 P. 르박 《유럽의 마녀사냥》 (소나무, 2003)

* [품절] 카를로 진즈부르그 《마녀와 베난단티의 밤의 전투》 (길, 2004)

* 쥘 미슐레 《마녀》 (봄아필, 2012)   

 

 

 

사람들은 두려운 상황에 놓이게 되면 불안을 해소하는 전략을 마련한다. 괜히 소리를 지르거나 무작정 폭력을 행사한다. 만일 불안을 해소하려 한다면 우선 당면한 사태에 대한 충분한 정보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불안을 일으키는 대상(또는 원인)이 파악되지 않고, 이 두려운 상황이 언제까지 지속할지도 예측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이때 흔히 나타나는 불안 해소 전략이 희생양(scapegoat)을 만드는 법이다. 공포를 분노로 바꿔 희생양을 향해 분출시킴으로써 공포의 긴장에서 벗어나려는 것이다. 내부 결속을 위해 희생양은 우선 밖에서 찾지만, 여의치 않을 경우 내부에서라도 만들어 낸다. 마녀사냥 광풍은 바로 ‘희생양 만들기’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유럽의 마녀사냥》(소나무, 2003)은 마녀사냥 광풍을 체계적으로 분석하여 발단 원인을 지배층(권력자, 성직자, 지식인 등)의 집단적 불안에서 찾는다. 유럽 근대 세계의 탄생은 미래에 대한 불안도 동시에 증폭시켰다. 16세기 종교개혁 운동은 근대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마르틴 루터는 성서가 종교적 권위의 유일한 원천이라며 교황의 권위에 도전했다. 루터가 시작한 종교개혁은 기독교 세계를 크게 분열시켰다. 그 결과 근 천 년 이상 교회가 누려오던 절대적인 권위가 크게 흔들리게 되었다. 그러나 종교개혁 이후에도 마녀사냥은 줄어들지 않았다. 루터와 칼뱅을 비롯한 종교 개혁가들은 성서의 가르침을 근거로 악마의 존재를 규정했으며 개신교의 악마론은 마녀에 대한 공포를 부추기는 데 일조했다. 따라서 종교개혁도 마녀사냥 확산에 기여를 했다고 볼 수 있다.

 

근대 유럽 국가의 특징은 국가 권력의 중앙 집권화이다. 그렇지만 근대 초기의 유럽 국가는 어느 정도 지방 자치권을 인정하고 있었다. 지방 권력은 마녀재판을 진행하는 주도권을 가지고 있었다. 종교개혁은 유럽의 사법제도에도 일정 부분 변화를 가져왔다. 마녀사냥이 가장 극심했던 16세기에 교황의 권위가 축소되면서 마녀재판을 주도한 교회 법원의 사법권이 지방 세속 법원으로 넘어갔다. 그리하여 지방 관리가 마녀 혐의자를 심문하여 처벌을 내릴 수 있었다.

 

《유럽의 마녀사냥》을 쓴 브라이언 P. 르박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영향을 받은 스콜라 철학이 마녀에 대한 유럽 지식인들의 믿음을 뒷받침한 지적 기반이라고 주장한다.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신봉한 지식인들은 마녀가 악마의 도움을 받아 흑마술을 부린다고 생각했다. 르네상스 시대에 중세 스콜라 철학에 도전한 신플라톤주의 철학이 등장했다. 신플라톤주의자는 인간 스스로 우주의 기운을 받으면 마술을 부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신플라톤주의는 유럽 지식층의 주류 학문으로 자리 잡지 못했고 스콜라 철학에 익숙한 기득권층의 태도를 바꾸는 데 실패했다. 이러한 학문적 변화가 있었음에도 마녀와 흑마술에 대한 믿음은 르네상스 시대까지 지속하였다.

 

쥘 미슐레는 마녀가 종교를 맹목적으로 믿는 지배계층의 희생양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르박은 미슐레의 해석을 ‘낭만적인 해석’으로 규정한다. 그리고 마녀를 기존의 사회 체제에 거부하는 반동 세력으로 보는 해석을 비판한다. 그렇게 주장하는 이유는 간단명료하다. 마녀들이 사회를 개혁하려는 목적으로 마녀 집회에 모인다는 증거가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16세기 이탈리아 지방의 농민들이 이단 심문을 받은 기록들을 토대로 마녀사냥을 분석한 카를로 진즈부르그는 자신의 책 《마녀와 베난단티의 밤의 전투》(길, 2004) 서문에서 미슐레의 마녀 연구를 언급한다. 그러나 진즈부르그도 마녀를 해석한 미슐레의 관점을 ‘반역적 마녀에 대한 낭만주의적 찬미’라고 평가한다.

 

 

진즈부르그는 ‘밤의 전투’로 알려진 베난단티(Benandanti) 비밀 모임이 어떻게 ‘마녀 집회(sabbath)’로 알려지게 되었는지 추적한다. 베난단티는 흉년을 부르는 마녀들에 대항하는 신성한 존재였다. 농민들은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각각 베난단티와 마녀로 연기하면서 서로 싸움을 벌이는 행사를 갖는다. 농민들은 베난단티가 승리한 그해에는 풍년이 든다는 미신을 믿었다. 베난단티 역할을 맡은 농민은 자신이 영적인 힘을 가진 존재인 것처럼 말한다.

 

 

저는 베난단티입니다. 왜냐하면 일 년에 네 번 사계재일 때 밤마다 싸우러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가기 때문입니다. 저는 보이지 않게 영적으로만 가고 육체는 남아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받들기 위해 나가며, 마녀들은 악마를 받듭니다. 우리는 서로 싸웁니다. 우리는 회향단으로 싸우고 그들은 수숫대로 싸웁니다.

 

(베난단티 역할을 맡은 바티스타 모두코의 진술, 진즈부르그의 책 51쪽)

 

 

베난단티 모임에 참석한 농민들의 증언을 확인한 이단 심문관들은 ‘풍요제’를 ‘악마를 숭배하는 마녀 집회’로 규정했다. 육체와 영혼이 분리되는 영적인 체험에 고백한 농민의 진술은 베난단티 모임을 불리하게 만든 원인이 되었다. 이단 심문관들은 농민들의 진술을 통해서 베난단티의 이단적 성격을 찾아내려고 했다. 결국, 농민들의 민중 문화를 이해하지 못한 이단 심문관들은 농민들의 의식이 반영된 연례행사를 탄압했다. 즈부르그는 마녀 사냥 광풍 속에 왜곡되고 잊힌 베난단티 모임의 실체를 복원하여 지배계층에 억압받는 민중 문화에 주목한다.

 

하지만 진즈부르그의 해석도 르박의 시선에서 비켜갈 수 없다. 르박은 환상적인 요소가 강한 베난단티 역할자의 진술만 가지고는 베난단티 모임이 실제로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결과적으로 진즈부르그의 해석도 미슐레의 낭만적인 해석을 그대로 답습하는 데 그치게 된다.

 

르박과 진즈부르그의 마녀 연구는 “누가 마녀를 만들었는가?”라는 질문에서 시작된다. 두 사람이 얻은 결론은 비슷하다. 민중이 마녀를 만들지 않았다. 지배계층이 마녀를 만들었고, 민중은 지배계층이 운영하는 이단 심문소가 남긴 기록(마녀로 고소한 사람들의 증언, 마녀 혐의를 받은 사람들의 진술)을 확인하면서 마녀에 대한 공포심을 느끼기 시작했다. 마녀가 존재하기 전에 마녀를 규정하는 논리들이 먼저 만들어졌다. 마녀를 규정하는 논리는 마녀가 아닌 시대적 불안을 제거하기 위해 동원된 희생양들만 양산했다. 시몬 드 보부아르의 명언을 빌리자면 ‘마녀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유럽의 마녀사냥은 한 사회가 비가시적인 특정 대상에 공포감을 느끼고 있을 때 그 사회가 빚어내는 비인간성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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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은 부산물이다 - 문명의 시원을 둘러싼 해묵은 관점을 변화시킬 경이로운 발상
정예푸 지음, 오한나 옮김 / 378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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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발전은 우연인가, 필연인가? 영국의 역사가 에드워드 H. 카(Edward H. Carr)‘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는 정의를 내리면서 ‘과거를 해석하면 미래를 통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과거란 현재의 시점에서 보면 이미 지나간 시간, 즉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순간이다. 이러한 과거에 인간이 한 일과 생각을 밝히는 것이 역사다. 역사는 인과관계라는 시간의 실타래로 엉켜 있다. 역사를 연구하는 일은 ‘원인’을 알아내는 일이다. 그러나 역사적 사건이 단일한 원인만을 갖는 것은 아니며, 여럿인 경우가 많다. 역사가는 이것들을 파악해 내고, 단순하게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정리한 후 역사적 사건 속의 상호관계를 파악한다. 이것이 역사가의 해석이다. ‘원인(들)’을 탐구하면서 역사적 사건들을 인과의 계열 속에 배열하는 것이 역사가 고유의 기능이다.

 

오랫동안 사람들은 인류 문명의 발달을 인간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데 익숙했다. 그들은 문명화되는 과정이 역사의 필연성에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했고, 문명이 번영으로 가는 길을 상승하는 계단처럼 매끄럽게 이어지는 단일한 경로로 간주하곤 했다. 이러한 필연성의 근저에는 모든 역사적 사건에는 원인이 있으며 같은 원인은 같은 결과를 이끈다는 믿음이 가정되어 있다. 80년대 대학가에서 카의 명저 《역사란 무엇인가》(까치, 2015)만큼 가장 많이 읽힌 역사책도 찾기 어렵다. 카가 이 책에서 보여준 역사적 필연성, 진보에 대한 확신, 그리고 역사를 주도해 나가는 인간의 주체성은 민주화를 열망하는 대학생들의 세계관에 부합되는 내용들이었다.

 

그러나 역사 속에서 원인과 결과 사이의 필연성을 찾는 일은 무의미하다. 90년대 들어 소련의 공산주의 체제가 무너지면서 역사에 단일한 지향점과 목적이 있고, 역사적 진보를 논증할 수 있다는 믿음이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문명의 발전이 지극히 우연일 수 있다는 생각이 받아들여지기 시작한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다. 중국의 사회학자 정예푸(鄭也夫)는 필연성을 찾으려는 문명사 연구에 비판적이다. 그가 쓴 《문명은 부산물이다》(37∞, 2018)는 문명사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 책이다. 이 책의 결론부터 말하자면, 문명은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다.

 

정예푸는 문명 발전에 기여한 여섯 가지 핵심 요인족외혼, 농업, 문자, 종이, 조판인쇄, 활자 인쇄 등이 역사의 필연인지, 우연인지를 분석한다. 이러한 여섯 가지 요인들은 인류가 필요해서 만들어진 산물인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것은 작은 우연들이 겹쳐져서 생긴 산물이다.

 

원시 인류 사회까지만 해도 같은 부족 안의 근친상간이 대부분이었다. 부부의 개념도 없었다. 이후 부족들 간의 접촉이 활발해지면서 족내혼이 일반화됐다. 인류학자들은 부족사회 안에서 근친상간 금기가 형성되어 족외혼으로 발전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예푸는 족외혼이 종족 퇴화를 막기 위한 목적에 의해서 생긴 것이 아니라고 반박한다. 그는 영국의 인류학자 웨스터마크(Westermarck)의 가설을 지지하면서 족외혼을 ‘외부에 대한 성적 취향’의 산물로 봤다. 웨스터마크는 같이 생활한 성장한 이성, 즉 가족 구성원에게 성적 매력을 느끼지 않기 때문에 족외혼이 보편화하였다고 주장했다.

 

수렵 및 채집 생활을 하고 있었던 인류는 야생 벼를 우연히 발견하여 그것을 땅에 심었다. 그들은 야생 벼를 수확하는 법을 습득했다. 그러나 식량이 부족해지는 비수확기는 이제 막 농업을 하기 시작한 인류가 겪는 시련이었다. 그것은 ‘농경사회’를 이룩하게 될 인류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하지만 인류는 한 곳에 정착하기 시작했고, 인구가 점점 늘어나고 있던 터라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농업을 선택했다.

 

문자의 발명과 종이의 탄생은 학문 발전과 지식 전달 수단으로, 인류의 문화 발달과 문화 형성에 아주 큰 공헌을 했다. 정예푸는 종이가 발명되기 이전의 시대에 주목하여 조판인쇄가 발달한 과정을 추적한다. 종이가 나오기 전에는 점토판에 도장을 찍는 관습이 있었다. 종이가 등장하면서 인류는 종이에도 도장을 찍었다. 종이에 도장을 찍는 행위는 조판인쇄의 기원인 셈이다.

 

《문명은 부산물이다》는 정독하기가 쉽지 않은 책이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필자는 이 책의 3장(문자), 4장(제지), 5장(조판인쇄), 6장(활자 인쇄)을 훑어봤다. 왜냐하면, 저자가 인용하면서 설명하는 한자의 구조, 중국의 종이문화 및 각종 용어가 생소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면 중국 문헌뿐만 아니라 서양 문헌들까지 참고하는 저자의 폭넓은 지식 편력에 깜짝 놀랄 것이다. 친절하게도 이 책의 역자는 독자들이 저자가 참고한 책들을 확인할 수 있도록 국역본 제목까지 알려줬다. 1장, 2장, 그리고 이 책의 결론에 해당하는 7장만 봐도 이 책에서 저자가 강조하려는 핵심 내용이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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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13 16: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2-13 17:39   좋아요 1 | URL
인간이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을 보면 인간은 ‘역사’ 속에 영원히 갇힌 존재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

페크pek0501 2018-02-14 10: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사란 무엇인가》를 읽고 감탄하던 때가 떠오릅니다.
역사뿐만 아니라 모든 건 해석의 문제인 것 같아요.
˝사실은 없다. 해석만이 있을 뿐이다.˝(니체)라는 문장을 새삼 생각해 봅니다.

cyrus 2018-02-14 15:22   좋아요 0 | URL
역사를 바라볼 때 균형 잡힌 시각을 가지고 해석하면 좋은데, 이게 쉽지 않아요. ^^;;
 
오컬트, 마술과 마법 - 고대 주술부터 현대 마법까지 오컬트 대백과사전
크리스토퍼 델 지음, 장성주 옮김 / 시공아트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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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컬트(Occult)마법, 심령현상, 무속 신앙은 현실에서는 무시당하기 쉽다. 오컬트 마니아들이 믿는 영적인 힘은 우리 눈으로 확인이 안 된다는 점도 그렇지만, 과학적으로 검증할 수 있냐는 것이 가장 큰 논란거리다. 기이하게도 과학이 발달하면 할수록 오히려 오컬트가 더욱 주목받는다. 다양한 초자연적 현상들이 과학의 원리로도 여전히 설명이 안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중문화가 그런 ‘어두운 매력 덩어리’를 절대 놓칠 리가 없다. 무엇보다 표현의 자유가 있는 소설, 영화야말로 오컬트와 환상의 궁합을 이룰 수 있다.

 

인간이 왜 유령에 호기심을 갖고, 과학이 부정하는 마법에 대해 꾸준히 관심을 두는지에 대한 이유를 알고 싶다면 ‘오컬트의 보고(寶庫)’인 《오컬트, 마술과 마법》(시공아트, 2017)을 펼쳐보시라. 이 책을 읽으면 ‘오컬트란 무엇인가’에 대해 어느 정도 기초적인 지식을 얻을 수 있다. 이 책에 ‘신기하고 이상한 것’들뿐만 아니라 그것에 푹 빠진 사람들의 이야기도 있다.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고, 음이 있으면 양이 있듯이 세상에는 꼭 한 가지가 지배하는 것은 아니다. 천사의 반대편에 악마가 있었고, 과학과 함께 연금술이 존재했으며, 기도하는 성직자의 대척점에 주문을 외우는 마법사들이 있었다. 이런 것들을 한꺼번에 묶어 부를 수 있는 이름이 바로 오컬트다.

 

《오컬트, 마술과 마법》은 ‘연대기적 접근’을 통해 고대부터 현대까지 이어지고 있는 오컬트의 영향력을 생생한 도판과 귀중한 유물 등과 함께 보여준다. 따라서 이 책은 오컬트와 관련된 유물 및 그림까지 한눈에 볼 수 있는 백과사전이라 할 수 있다. 마법사, 점성술, 카발라(Kabbalah, 고대 유대교의 신비주의 사상), 연금술, 노스트라다무스(Nostradamus), 샤머니즘(Shamanism), 프리메이슨(Freemason, 비밀 단체), 심령술 등 미스터리, 음모론을 논할 때 반드시 나오는 필수 요소들이 《오컬트, 마술과 마법》에 요약 정리되어 있다. 이 책의 장점은 서구 오컬트 문화에만 치중하지 않는 구성 방식이다. 저자는 우리나라에 생소한 일본의 무속 신앙, 아프리카 및 라틴아메리카의 민간 신앙까지 다룬다. 아주 적은 내용이지만, 저자는 ‘동아시아의 마법’을 소개한 장에 우리나라의 도깨비를 언급했다(282쪽).

 

오컬트는 인간을 둘러싼 자연환경의 실체를 밝혀내는 학문이었다. 현실을 뛰어넘는 초자연적인 힘에 대한 갈망, 불투명한 미래를 알고 싶은 호기심은 늘 인간의 마음속에 있었고, 그 속에서 오컬트는 자연스럽게 등장해 당시 사람들의 삶에 중요하게 작용했다. 지금도 성행하는 점술, 타로(Tarot)는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오컬트를 배척하는 기독교의 힘이 유럽 전역에 확장될수록 마법과 신비주의의 관심도 커졌다. 기독교는 유일신의 영적인 힘을 믿지만, 민간신앙과 밀접한 마법은 인간인 마법사의 의지대로 신비로운 힘을 부리려고 한다. 그래서 마법과 신비주의 사상은 신을 거역하는 죄를 부추기는 ‘이단’이라고 비난을 받았다. 마법은 고대 로마 때부터 박해를 받아왔다. 로마 시대에 제정된 코르넬리우스(Cornelius) 법은 마법을 불법으로 규정했다. 중세 말기, 르네상스 초기에 있었던 마녀사냥의 참혹한 역사는 마법에 대한 서구문화의 적대감을 잘 보여준다.

 

세계에 드리운 미혹과 망상, 미신과 사이비를 거부하는 회의주의자들에겐 《오컬트, 마술과 마법》을 황당무계한 내용만 가득한 책으로 생각할 수 있다. 나는 회의주의자다. 그렇지만 나는 이 책을 ‘별점 네 개’를 주고 싶다. 《오컬트, 마술과 마법》을 쓴 저자는 ‘오컬트에 관심이 많은 예술사 전문가’이다. 그는 예술, 문학 분야에 새겨진 ‘오컬트의 희미한 흔적’을 보여준다. 《오컬트, 마술과 마법》을 읽는다면 우리가 소설을 읽고, 영화를 보면서 지나쳤던 ‘시시콜콜한 오컬트 지식’을 다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어느 정도 비과학적인 현상에 대해 회의주의적 태도를 보인다. 19세기 중반 미국 전역에 심령술 인기를 일으킨 폭스(Fox) 자매의 영매 능력과 유럽에 유행한 심령사진들이 ‘조작’이라고 분명하게 밝혔다. 또 그는 “마법은 언제나 기술일 뿐이지 결코 과학이 아니다”라는 제임스 조지 프레이저(James George Frazer, 《황금가지》를 쓴 종교학자)의 말을 인용하여 현대의 오컬트가 ‘개인의 발전’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고 말한다. 개인이 오컬트에 지나치게 심취하면 주변 사람들의 몸과 정신을 위협하는 사이비 종교 하나 만들어낼 수 있다. 오컬트를 악용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명예와 권위를 드높이기 위해 오컬트 지식을 끌어들인다. 그건 '개인의 발전'을 위해서 오컬트를 이용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사기술을 맹신하는 가엾은 사람들은 오컬트를 ‘과학’이라고 믿는다. 이런 사람들 때문에 오컬트는 부정적인 뉘앙스를 가진 단어로 오해받는다.

 

건강한 오컬트는 자유로운 상상의 세계로 이끌어주는 유익한 지식이다. 그래서 오컬트는 ‘어두운 매력 덩어리’다. 오컬트가 완전히 사라져버린 시대를 상상할 수 없다. 레이 브래드버리(Ray Bradbury)의 단편 소설 『추방자들』에 환상, 공포, 불가사의한 요소가 있는 문학을 ‘금서’로 규정하여 불태우는 미래 사회가 나온다. 나는 그런 세상에 살고 싶지 않다. 상상력 충만한 책 없이 무슨 재미로 사나. ‘상상할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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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31 13: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1-31 17:47   좋아요 1 | URL
적당한 상상력은 좋죠. 상상력이 과하면 허무맹랑한 ‘음모론’이 생겨요. ^^

표맥(漂麥) 2018-02-01 16: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실제론 그러지 못하면서 마음 속으로 아주 좋아하는 분야 입니다.^^

cyrus 2018-02-02 13:22   좋아요 0 | URL
저도 오컬트 좋아합니다. 현실성 떨어지는 정보를 지나치게 믿지 않는다면 즐길 수 있는 분야입니다. ^^

카스피 2018-02-01 2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저도 이분야 넘 좋아하는데 의외로 국내에선 책이 많이 없더군요^^

cyrus 2018-02-02 13:23   좋아요 0 | URL
맞아요. 오컬트 분야 책이 잘 안 팔리니까 절판되기 쉬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