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과 전쟁 - 숨겨진 맛의 역사
톰 닐론 지음, 신유진 옮김 / 루아크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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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교단의 회칙은, 수도사의 식사는 검약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수도사들에게 필요한 음식의 양을 원장이 정하도록 하고 있었다. 그러나 요즘에는 우리 수도원에서도 수도사들은 식탁의 즐거움을, 탐닉까지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적잖게 누리는 편이다. [중략] 참회와 덕행의 모범을 좇는 수도원들도 힘겨운 지적 노동을 하는 수도사들에게, 모자라지 않을 정도의 실질적인 식사를 제공한다. 그러나 수도원장의 식탁은 늘 기름지다. 귀한 손님이 거기에 앉기 때문인데, 원장은 이로써 수도원 땅의 소출과 요리사의 솜씨를 과시하는 것이다. (움베르토 에코 《장미의 이름》 상권, 134쪽)

 

 

움베르토 에코의 장편소설 《장미의 이름》(열린책들, 2009) 중세 연구가들조차도 탄복할 정도로 시대 고증을 충실히 반영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박학다식한 에코가 고증하지 못한 것 있다. 그것은 바로 수도사들이 식사하는 장면(소설 상권 134쪽 참조)이다. 소설 속 수도사들은 어떤 음식을 먹었을까? 수도원장이 손님에게 자랑하는 ‘기름진 음식’의 정체도 궁금하다. 수도사들의 식탁을 묘사한 내용 중에 구체적으로 언급된 음식의 수는 단 두 가지뿐이다. 꼬챙이에 꿰어 구운 돼지고기와 닭 요리다.

 

소설을 쓸 때 고증이 어려운 묘사를 구상할 경우, 상상력이 반영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과거 사람들은 음식을 맛있게 먹느라 여념이 없어서 자신들이 뭘 먹었는지 기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유독 먹는 모습과 장면을 집중해서 보는 ‘먹방’‘쿡방(요리 방송)에 환호한다. 음식 관련 방송에 열광하는 주요 원인이 심리적 공허함, 1인 가족화와 경기불황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 현대인들은 먹는 것 또는 먹방을 시청함으로써 일종의 대리 만족을 느끼며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먹방과 쿡방은 우리의 눈과 귀를 자극하는 ‘푸드 포르노’의 사례로 비판받고 있지만, 사람들이 선호하는 음식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반영한 영상 텍스트이다. 그러므로 먼 훗날에 먹방 및 쿡방 유행이 시들어져도(과연 이런 날이 올까?) 후세 사람들은 과거의 기록으로 남게 된 먹방을 보면서 당대 사람들이 선호했던 음식을 확인하면서 직접 만들어볼 수 있다. 유튜브와 TV가 없었던 시대에 살았던 옛날 사람들은 자신들이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 자세하게 기록하지 않았다. 과거에 유행했던 숱한 요리법과 음식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서서히 모습을 감추었다.

 

음식 문화는 시대에 따라 주어진 재료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해 왔다. 음식을 어떻게 만들고 어떤 재료를 사용하면 어떤 변화과정이 일어나는지 등에 관한 과학적인 연구들은 많이 있다. 그러나 역사학적인 자료나 연구는 매우 미흡하다. 《음식과 전쟁》(루아크, 2018)은 거대 역사 속에 가려진 음식 문화를 복원한 책이다. 저자는 음식에 관한 희귀 고서적을 판매하는 서점을 운영하고 있다. 저자는 고대 요리책, 고문서, 삽화 등 오래된 자료에 기록된 음식, 식사 장면을 하나하나 살펴보며 우리가 잊고 있었던 ‘맛의 역사’를 추적해나간다. 이 책에 수록된 그림들은 독자의 눈을 즐겁게 할 뿐만 아니라 과거 식문화에 대한 훌륭한 단서가 되어준다.

 

맨발의 은자(隱者) 피에르는 당나귀를 타고 거리를 쏘다니며 이슬람과 전쟁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피에르는 1차 십자군 원정에 앞서 ‘민중 십자군’을 결성하여 원정길에 올랐다. 말이 십자군이었지 농민, 범죄자 등이 많이 섞인 오합지졸이었다. 민중 십자군의 패배가 눈앞에 드리우기 전에 피에르는 고향으로 피신했고, 그곳에 유대인의 잉어 양식 법을 전파했다. 전설에 따르면 예수가 피에르 앞에 나타나 두 가지 중대한 계시를 내렸다고 한다. 하나는 십자군 원정, 또 하나는 잉어 양식 법을 고향에 전파할 것.

 

유럽에 흑사병이 퍼지면서 프랑스 아미앵에서만 3만 명이 사망했다. 그런데 인근 도시에 발생한 엄청난 사망자에 비교해 프랑스의 수도 파리는 상대적으로 큰 화를 입지 않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저자는 이에 대해 흑사병이 창궐할 시기에 유행했던 레모네이드와 관련이 있다고 주장한다. 레모네이드는 세계 최초의 청량음료다. 레모네이드에 들어있는 구연산은 살균력을 지녔다. 레모네이드를 즐겨 마신 사람들도 모르는 사이 몸속으로 들어온 구연산이 잠복해 있던 전염병 세균을 없앴던 것으로 보인다.

 

루이 14세는 교활한 대식가였다. 그는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다양한 연회를 열었는데, 당시에는 ‘무엇을 먹는가’보다 ‘많이 먹는 것’이 중요했다. 당시는 많이 먹는 것이 권력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귀족들이 참석하는 루이 14세의 연회는 밤 10시에서 밤 10시 45분까지 정확히 45분 동안 진행되었다고 한다. 자신을 음해하는 귀족세력의 반란을 방지하기 위해서 매일 저녁에 만찬을 열었다. 왕의 저녁 만찬에 참석한 귀족들은 대화를 나눌 수 없었다. 귀족들이 침묵하고 있을 때 루이 14세는 마음껏 많은 종류의 음식을 맛보면서 배를 채울 수 있었다.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주제는 ‘식인(食人)이다. 식인 행위 자체를 금기로 여겼기 때문에 식인 풍습을 역사적이고 문화적으로 접근한 자료가 희박하다. 유럽인은 식인 풍습을 ‘야만적인 문화’라고 비판했고, 식인 행위를 정신병으로 규정했다. 그러나 조너선 스위프트, 대니얼 디포, 허먼 멜빌 등의 작가들은 식인 행위를 묘사한 작품을 썼다. 특히 찰스 디킨스의 작품에는 식인 행위를 암시하는 묘사가 많다. 저자는 디킨스가 인육을 먹고 싶어 하는 정신병을 앓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한다.

 

《음식과 전쟁》은 인류의 발전이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더 먹고 마시는 일에 밀접하다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수천 년을 이어져 오며 많은 이의 피와 살이 됐던 음식으로 역사를 들여다보는 저자의 글쓰기는 인간에 대한 또 다른 통찰을 제공한다. 음식은 단순히 맛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문화 또는 역사로 남게 되는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음식은 인간에게 필수적인 생존 수단일 뿐만 아니라, 본능적인 욕구를 채우는 것 이상의 큰 즐거움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음식을 모르고 음식 문화를 이야기할 수 없고, 음식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면 음식의 가치를 설명할 수 없다. 음식이 어떤 역사적 배경 속에서 오늘날까지 전해져 내려왔고, 그 속에 문화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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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 하면 흔히 대마초와 히로뽕 등을 떠올린다. 그만큼 많이 유통되기 때문일 것이다. 대마초는 마리화나, 해시시(하시시)라고도 불린다. 마리화나는 대마초의 잎을 말려 가루로 만든 것이고, 해시시는 말린 대마수지(꽃대 부분에 나오는 물질)를 반복 증류하여 용액 형태로 응축시켜 만든다. 해시시는 마리화나보다 환각성이 강하다.

 

 

 

 

 

 

 

 

 

 

 

 

 

 

 

 

 

* [절판] 샤를 보들레르, 테오필 고티에 외 《해시시 클럽》 (싸이북스, 2005)

* [절판] 조은섭 《포도주, 해시시 그리고 섹스》 (밝은세상, 2003)

 

 

 

프랑스의 시인 보들레르는 마약 중독자였다. 그는 ‘해시시 클럽’의 회원이었다. 해시시 클럽에는 테오필 고티에, 빅토르 위고, 제라르 드 네르발 등 당대 내로라하는 작가들이 가입했다. 그들은 정기적으로 모여 해시시를 즐겼고, 그 경험을 토대로 글을 남겼다. 《해시시 클럽》(싸이북스, 2005)에 수록된 보들레르의 글 『해시시의 시』는 1858년에 발표된 <인공 낙원>의 일부다. 이 책에서 보들레르는 해시시의 환각성을 ‘인공 낙원’으로 묘사했다. 그는 환각성 마약이 창작을 위한 삶의 질료가 되어줄 것으로 기대했었다. 그러나 보들레르는 해시시 클럽의 회원이었으나 해시시를 즐기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해시시가 주는 순간의 쾌락이 인간의 의지를 파괴한다고 생각했다.

 

중세 이슬람과 마약이 연결된 역사는 매우 길다. 암살자를 뜻하는 ‘assassin’은 아랍어 ‘하시신(hashishin)에서 유래됐다. 하시신은 ‘해시시에 중독된 사람’이라는 뜻으로 악명 높은 이슬람 비밀 암살단의 별칭이다. 이 비밀 암살단 이름은 우리가 아는 영어 ‘assassin’과 동일하다. 아사신은 이슬람 시아파의 한 갈래인 이스마일파의 과격 분파인 니자리파로, 암살을 정치적 무기로 삼았다. 당시 이슬람 주류 세력이었던 아바스 왕조의 실력자들을 잇달아 암살했고, 심지어 과격하기로 유명한 시아파마저도 아사신을 몹시 싫어했다. 아사신은 과격파도 철저히 지키던 무슬림 율법을 무시하는 극단적인 행보를 보였다.

 

 

 

 

 

 

 

 

 

 

 

 

 

 

 

 

 

 

 

 

 

 

 

 

 

 

 

 

 

 

 

 

 

 

 

 

* 마르코 폴로 《마르코 폴록의 동방견문록》 (사계절, 2000)

* 단테 알리기에리 《신곡 : 지옥편》 (민음사, 2007)

* 단테 알리기에리 《신곡 : 지옥》 (열린책들, 2009)

* 움베르토 에코 《장미의 이름-상》 (열린책들, 2009)

 

 

 

니자리파는 깊은 산속으로 숨어 들어가 생활했으며 그들이 세운 알라무트(Alamoot)는 난공불락의 요새로 알려졌다. 중세 학자들은 산에 은둔하는 니자리파의 우두머리를 산중 노인(또는 산노인[*], The Old Man of the Mountain)이라고 불렀다. 니자리파는 많은 군중이 보는 앞에서 공개적으로 적을 처단했다. 적에 대한 징벌과 대중에 대한 교훈이라는 이중의 목적을 겨냥한 것이었다. 마르코 폴로는 13세기 후반 폐허가 된 알라무트를 방문했고, 자신의 책 《동방견문록》에 아사신을 언급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알라무트 요새 안에 ‘비밀스러운 쾌락의 정원’이 있다. 쾌락의 정원은 암살단원들의 훈련 장소이자 양성소다. 니자리파는 암살단원을 ‘살인 병기’로 세뇌하기 위해 마약성 약물을 이용했다. 폴로를 비롯한 유럽인들은 아사신의 전설과 신화를 믿었고, 이로 인해 아사신은 마약을 먹고 사람을 죽이는 잔인한 암살자의 대명사로 알려지게 되었다. 단테 알리기에리《신곡》 지옥 편에도 아사신이 언급한 내용이 있다. 단테 역시 아사신을 ‘사악한 살인자’로 묘사했다.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열린책들, 2009) 을 번역한 이윤기도 ‘산노인’을 설명한 역주에서 아사신을 ‘마약에 취한 상태에서 공격한 자객’이라고 썼다.

 

 

  레바논 산중을 근거지로 회교 테러리스트 자객을 조직한 하산 이븐알사바에게 붙은 칭호. <자객(hashishiyya)>의 대명사로 불리기도 한다. 자객을 <하시시야>, 즉 <하시시 중독자>라고 부르는 까닭은 이 조직의 구성원들이 <하시시>라는 마약에 취한 상태에서 페르시아, 시리아, 소아시아 등지의 지배자들, 혹은 십자군 시대에는 기독교도들을 공격했기 때문이다. (《장미의 이름》 구판 상권, 323쪽)

 

 

이윤기 선생이 지금도 살아계셨더라면 이 역주 설명을 고쳤을 것이고, 새로운 개정판이 나왔을 것이다. 아사신을 ‘마약에 중독된 암살 집단’으로 묘사한 설명이 반론에 부딪혔기 때문이다.

 

 

 

 

 

 

 

 

 

 

 

 

 

 

 

 

 

 

* 버나드 루이스 《암살단 : 이슬람의 암살 전통》 (살림, 2007)

* 아빈 말루프 《아랍인의 눈으로 본 십자군 전쟁》 (아침이슬, 2002)

* 유발 하라리 《대담한 작전》 (옥당, 2017)

 

 

 

아사신은 니자리파의 악명 높은 암살 공격에 두려움을 떨던 유럽인들이 붙인 별칭이다. 니자리파는 자신의 암살단을 ‘아사신’이라고 부른 적이 없다. 니자리파 암살단의 정식 명칭은 ‘피다이(fidā’ī)다. 암살단이 마약에 중독된 상태에서 공격을 감행했다는 확증은 없다. 그리고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니자리파 암살단은 공격 대상의 허를 찌를 정도로 치밀하고도 대담한 작전을 펼쳤다. 이런 그들이 마약에 취해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 암살을 감행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마약에 취한 상태에서 암살을 시도하면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요새 안에 있다던 ‘쾌락의 정원’은 유럽인들의 과장된 상상이 만들어낸 가공 장소이다.

 

이미 오래전에 아사신의 신화가 허구임이 밝혀졌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에서는 아사신이 ‘마약 중독’이 결합한 암살의 대명사로 알려졌다. 아사신은 이슬람에 대한 서구의 편견이 반영된 단어다. 십자군 전쟁을 경험한 서구 기독교인들은 이슬람에 향한 증오심을 잊지 못했고, 이슬람의 폭력성을 후대에 전하기 위해 ‘아사신 신화’를 이용했다. 사실 아사신은 하시시와 전혀 관련이 없다. 아사신은 원래 이슬람권에서 상대를 경멸할 때 쓰는 단어였다. 아사신의 어원은 이슬람을 악의적으로 묘사한 서구의 기록에 의해 왜곡되어 전해졌을 가능성이 있다.

 

현재를 사는 우리는 과거를 고대, 중세, 근대로 나눈다.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우리는 중세시대와 가까운 삶을 살고 있다. 예컨대 무슬림을 바라볼 때 이슬람 종교의 잔학성과 비인륜적 관습에 먼저 초점을 맞추곤 한다. 그동안 우리나라에 소개된 이슬람의 실체는 과격하고 호전적인 이미지의 종교로 잘못 인식됐다. 모든 종류의 테러는 어떤 연유로 인해 그 누가 행하든 결코 정당화될 수 없는 비윤리적 행위다. 하지만 그들의 역사적 · 문화적 배경을 이해한다고 해서 그들의 무력 행위를 옹호하는 건 아니다. 이슬람에 대한 오해와 편견은 이슬람교와 그것을 바탕으로 한 이슬람문명과 그 역사를 두루 살펴야만 비로소 불식될 수 있다.

 

 

 

 

[*] 《장미의 이름》 구판 상권, 3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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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2 17: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6-13 13:05   좋아요 0 | URL
남미 마피아 카르텔의 돈줄이 마약이죠. 특히 멕시코 마피아는 정말 악명 높은 범죄조직이예요. 멕시코 출신 유튜버가 마피아 두목을 조롱하는 방송을 촬영했다가 살해당했고요,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한 정치인들이 암살당했어요.. ㄷㄷ
 

 

 

공허한 말, 웃음을 유발하는 언사를 입에 올리지 말지어다.” [1]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의 소설 장미의 이름(열린책들, 2009)에 나오는 이 문장은 중세 유럽의 웃음에 대한 입장이 잘 드러나 있다. 현세의 행복을 뜻하는 웃음은 경박하며, 내세를 지향하는 경건한 기독교적 세계관과 상반되는 것이므로 피해야 할 대상으로 여겼다.

    

 

 

 

 

 

 

 

 

 

 

 

 

 

 

* 움베르토 에코 장미의 이름(열린책들, 2009)

* [절판] 호르스트 푸어만 중세로의 초대(이마고, 2003)

    

 

 

 

 

 

 

 

 

 

 

 

 

 

 

* 만프레트 가이어 웃음의 철학(글항아리, 2018)

* 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 / 시학(도서출판 숲, 2017)

*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도서출판 숲, 2013)

    

 

 

10세기 초 성직자들은 독일 호엔알트하임(Hohenaltheim) 주교 회의를 통해 즐거워하는 육체는 죄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2]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는 웃음이 인간과 동물을 구분하는 특징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시학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웃음이 쓸모가 있다고 주장했다. 장미의 이름의 맹인 수도사 호르헤는 웃음이 신의 권능을 부인하는 해로운 악마의 선물로 여겼고, 시학2희극론사람 목숨을 빼앗는 위험한 금서로 만들었다. 그는 웃음을 사교의 덕 중 하나로 꼽은 니코마코스 윤리학의 존재를 알고 있었을까? 만약에 수도원 도서관에 웃음의 장점을 언급한 니코마코스 윤리학도 있었다면 호르헤는 이 책에도 독을 발랐을 것이다. 아무튼, 호르헤 같은 중세의 신학자나 성직자들은 진리 속에 있는 웃음을 추방했다. 그들은 경건함을 중시했다.

 

그렇지만 모든 중세 사람들이 웃음을 거부한 것은 아니다. 베네딕트 수도회의 창시자인 베네딕투스(Benedictus)바보의 웃음은 떠들썩하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조용히 웃는다라고 말했다. [3] 카르미나 부라나(Carmina Burana)는 중세 유랑 탁발승이나 음유시인들이 도덕, 사랑, 유희, 외설 등을 노래한 작자 미상의 세속시가집이다. 이 시가집이 처음 발견된 곳은 독일 남부의 베네딕트 수도원이다. 이 시가집을 만든 사람(공동의 저자일 수 있다)이 누군지 영원히 알려지지 않겠지만 중세에도 억압과 고통을 해방하는 웃음의 긍정적 기능을 옹호한 윌리엄 수도사 같은 인물이 있었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장미의 이름의 윌리엄은 프란체스코 수도회 소속의 가상 인물이다).

    

 

 

 

 

 

 

 

 

 

 

 

 

 

 

* 요한 하위징아 중세의 가을(연암서가, 2012)

    

 

 

웃음을 유일하게 허용하는 날이 있으니 그게 바로 축제가 있는 날이다. 중세의 문화를 연구한 요한 하위징아(Johan Huizinga)는 중세 사람들의 마음속에 두 개의 인생관이 공존했다고 주장했다. 하나는 경건한 삶을 지향하는 금욕주의적 인생관, 또 하나는 방탕하게 축제를 즐기는 세속적 인생관이었다. 실제로 교회가 지정한 1년은 일하는 날과 축제하는 날로 구분되어 있다. 하위징아의 표현을 빌리자면 중세 사람들은 모순적이면서 열정적인 인간[4]으로 살아왔다. 장미의 이름의 화자로 나오는 아드소모순적이면서 열정적인 중세인이라 할 수 있다. 소설에 묘사된 청년 시절의 아드소는 수도원에 몰래 들어온 마을 처녀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 그는 자꾸만 샘솟는 욕망을 억제하기 위해 신앙심에 의지한다. 이러한 그의 모습은 경건한 교회에 매일 빠짐없이 출석하면서도 향락적인 일탈을 꿈꿨던 중세 사람들의 인간상을 보여준다.

 

    

 

로저 베이컨의 학문 세계를 소개한 책들

    

 

 

 

 

 

 

 

 

 

 

 

 

 

 

 

 

 

 

 

 

 

 

 

 

 

* 유대칠 신성한 모독자(추수밭, 2018)

* S. P. 램프레히트 서양철학사(을유문화사, 2008)

* 아먼드 A. 마우러 중세철학(서광사, 2007)

* F. C. 코플스턴 중세철학사(서광사, 1988)

 

    

 

윌리엄이 웃음의 기능을 옹호한다고 해서 그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까지 받아들였다고 판단하는 것은 오산이다. 윌리엄이 입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스승이 로저 베이컨(Roger Bacon)이다. 로저 베이컨은 실제로 생존했던 영국의 스콜라 철학자이다. 그는 프란체스코 수도회 소속 수도사였지만, 과학과 수학에 지대한 관심을 가진 자연철학자였다. 베이컨은 열세 살(!)에 옥스퍼드 대학에 입학했다. 옥스퍼드 대학의 초대 총장은 로버트 그로스테스트(Robert Grosseteste). 그로스테스트는 옥스퍼드 대학을 대표하는 철학자로 명성을 얻었으며 베이컨에게 영향을 주기도 했다. 그래서 그로스테스트와 베이컨의 스콜라 철학을 옥스퍼드 파로 분류한다. 이 두 사람은 이슬람 국가에서 전해지게 시작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에 관심을 보였지만, 그렇게 열광적으로 지지하지 않았다. 오히려 과학적인 실험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긴 베이컨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이는 동시대 학자들을 비판했다. 베이컨은 귀납법과 연역법을 모두 사용하여 어떤 진리의 진실성 여부를 검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절판] 최정은 트릭스터, 영원한 방랑자(휴머니스트, 2005)

 

    

 

아먼드 A. 마우러(Armand Augustine Maurer)는 베이컨을 스콜라 철학 시대의 역설적인 인물이라고 평가한다.[5] 베이컨은 종교적 전통에 얽매이지 않은 학문적 시각과 태도를 유지했다. 과학(특히, 빛을 연구하는 광학)에 헌신한 그의 탐구 자세는 정통 교단으로부터 이단으로 몰리기도 했다. 그는 감옥에 수감되는 시련을 겪었다. 베이컨의 삶을 한마디로 말하면 트릭스터(Trickster)이다. 트릭스터는 사회가 만든 획일적인 규범의 한계를 넘어서는 대범한 용기를 가졌으며 자신의 욕망을 끝까지 추구한다. 트릭스터와 대비되는 인간상이 하마르티아(Hamartia). 이 용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 나온다. 하마르티아는 자신의 실수 또는 결함에 의해 불행을 초래하는 비극적인 인간이다. 하마르티아는 원래 신에 의해 눈이 먼 인물을 뜻한다. 윌리엄을 논쟁을 펼친 호르헤는 하마르티아에 속한다. 그는 신의 권능에 지나치게 믿은 나머지 자신과 다른 진리를 죄악시한다. 로저 베이컨은 진리를 탐구하는 사람이 겪는 네 가지 오류를 제시했는데, 특히 그가 엄중히 경고했던 오류는 무가치한 권위의 복종이다. 흥미롭게도 호르헤는 베이컨이 경고한 오류를 범했고, 베이컨의 제자인 윌리엄은 그와 논쟁을 할 때마다 고지식하고 권위적인 자세를 비판했다. 결국 호르헤의 치명적인 오류, 즉 결함은 끔찍한 연쇄 살인 사건을 발생하게 만들었고, 자신뿐만 아니라 수도원의 도서관까지 파멸시킨다. 호르헤는 신의 권능에 눈이 멀기 시작하면서부터 진리의 자유를 통제하는 악마가 된 비극적인 인간이다.

 

 

 

 

[1] 장미의 이름(열린책들, 2002) 154

[2] 중세로의 초대(이마고, 2003) 374

[3] 중세로의 초대(이마고, 2003) 375

[4] 중세의 가을(연암서가, 2012) 341~342

[5] 중세철학(서광사, 2007) 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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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8-05-29 22: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장미의 이름> 비디오를 구해 보겠다고
온 동네 비디오 가게를 돌아 다니던 기억이 나
네요.

정말 나중에 책으로 만나 보니 영화가 정말 책
의 발톱 만큼도 따라가지 못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하위징아의 <중세의 가을>도 읽어야 하는데...
소장각입니다만.

절판된 <트릭스터>도 땡기네요...

cyrus 2018-05-30 17:54   좋아요 1 | URL
최정은 씨의 <트릭스터>는 영화, 만화작품을 중세의 시각으로 분석한 책입니다. 저자의 해석이 흥미롭긴 한데, 중세 사상뿐만 아니라 고대, 근현대 철학까지 동원한 글이라서 읽느라 시간이 오래 걸렸어요. 다 읽진 않았고, 관심 있는 내용이 나오는 장만 읽었어요.
 

 

 

 

 

 

I got to have (just a little bit)

A little respect (just a little bit)

 

  

 

내가 원하는 건 오로지 작은 존중뿐이에요.” 미국의 가수 아레사 프랭클린(Aretha Franklin)이 부른 Respect는 문자 그대로 존중에 관한 노래다. 이 노래는 민권운동에 뛰어든 흑인들에게 영감을 주는 대표곡이 되었다. 사실 프랭클린이 부른 Respect는 리메이크 곡이다. 리메이크 버전 Respect가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게 된 이유는 프랭클린의 뛰어난 가창력 이외에 구체적인 메시지가 있는 노랫말에 있다. 프랭클린은 Respect를 애원하듯이 부르지 않는다. 차별받는 사회적 약자인 흑인여성으로서 살아온 프랭클린은 존중받을 권리에 대해 소리 높여 노래한다. 따라서 Respect인종의 다양성과 페미니즘을 아우르고 있는 노래라 할 수 있다.

 

 

 

 

 

 

 

 

 

 

 

 

 

 

 

 

 

 

 

* 패트리샤 힐 콜린스 흑인 페미니즘 사상(여성이론문화연구소, 2009)

* [절판] 앨리스 워커 어머니의 정원을 찾아서(이프, 2004)

 

 

 

아프리카계 미국인 출신의 소설가 앨리스 워커(Alice Walker)는 자신의 글에서 빌리 홀리데이(Billie Holiday), 아레사 프랭클린의 목소리에 평생 재갈이 물려 있다고 상상해 보라고 말한다. 아마도 그녀들은 오랜 억압에 가로막혀 질식당하고 말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정신적 노예상태에서 벗어나 주체적 인간으로 변모해 가는 흑인여성들의 자립적인 삶이 주목받지 못한다. 흑인여성의 목소리는 백인 중심 사회에 의해 배제되거나 지워진다. 그렇지만 흑인여성은 할머니에서 어머니에 이르기까지 대대손손 물려받은 정신적 유산을 소중히 여겼다. ‘정신적 유산이란 흑인여성이 즐겨 부르던 구전 노래들에 표현된 흑인여성으로서의 자존감이다.

 

 

 

 

 

 

 

 

 

 

 

 

 

 

 

 

 

 

 

* [읽을 예정인 책] 조라 닐 허스턴 그들의 눈은 신을 보고 있었다(문예출판사, 2014)

* 조라 닐 허스턴 그들의 눈은 신을 보고 있었다(문학과지성사, 2001)

 

 

 

조라 닐 허스턴(Zora Neale Hurston)은 미국 남부 흑인들의 언어와 문화를 수집한 민속학자였다. 그녀는 사람의 의식은 한번 깨우면 다시 재울 수 없다고 했다. 그녀가 찾고자 했던 원초적인 흑인 민중의 언어와 문화는 백인 앞에서 말문을 닫고 순응하면서 지내도록 강요한 통제적 이미지에 저항하는 수단이 된다. 특히 흑인여성은 글을 쓰거나 노래를 부르면서 개인적 목소리를 표현해 왔다. 이 과정에서 흑인여성은 백인이 부여한 통제적 이미지를 거부하면서 그동안 잊고 있었던 인간으로서의 자아 정체성을 회복하게 된다. 변화된 의식을 가진 흑인여성은 다시 재울 수 없다. 그들이 모이면 유대감으로 똘똘 뭉친 공동체가 나오게 되고, 하나의 집단으로 형상화된 목소리는 사회를 바꾸려는 행동으로 이어진다. 이것이야말로 흑인 페미니즘 사상이 강조하는 집단적 힘 기르기.

 

 

 

 

 

 

 

 

 

 

 

 

 

 

 

 

 

 

 

 

 

 

 

 

 

 

 

 

 

 

 

 

 

* 마커스 레디커 노예선(갈무리, 2018)

* 에릭 홉스봄 재즈, 평범한 사람들의 비범한 음악(PHONO, 2014)

* 김진묵 흑인 잔혹사(한양대학교출판부, 2011)

* [절판] 벤자민 콸스 미국 흑인사(백산서당, 2002)

 

 

 

흑인 역사를 논할 때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주제가 음악이다. 흑인 영가는 미국의 노예 흑인들이 만들어 부른 기독교 복음성가로 알려지기 시작했지만, 이 음악의 원류는 아프리카의 전승 음악이다. 아프리카 흑인이 미국으로 끌려가지 않았으면 흑인영가뿐만 아니라 재즈와 블루스, 도 없었을 것이다. 흑인에게 음악은 어떤 예술양식보다도 초월적이면서 동시에 현실적인 행동이다. 노예로 팔려와 희망을 가질 수 없는 처참한 상황에서 음악은 그들의 마음을 이어주고, 보듬어주는 의사소통 수단이었다. 종종 소설이나 영화에 보면 노예선에 갇힌 노예들은 꿈도 희망도 없는 무력한 존재로 등장한다. 그러나 노예선 내부 모습과 분위기를 증언하는 자료를 수집한 역사학자 마커스 레디커(Marcus Rediker)는 흑인들이 노래를 통해 자신들이 직면한 절망에 대항하는 집단적인 힘을 길러냈다고 주장한다. 그의 해석에 따르면 노예선은 바다 위에 움직이는 거대한 감옥이면서 동시에 아래로부터의 저항과 창의성이 발현된 장소로 볼 수 있다. 레디커가 발견한 기록들은 흑인여성이 저항과 창의성을 적극적으로 발휘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노예선에서는 노래가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때로는 선원들이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를 불렀지만, 보통은 아프리카인들이 밤낮으로 노래를 불렀다. 때로는 강제로 노래를 부르기도 했지만, 어떤 노래는 자발적으로 부르는 것이었다.” 이전에 노예선 선장이었던 어떤 사람의 설명에 따르면 남자들은 고향의 노래를 부르며 자신의 고향 문화에 관해 이야기했고 남자아이들은 거기에 맞춰 춤을 추며 즐겼다.” 모든 기록에서는 노예선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항상 여자가 맡았다. (마커스 레디커 노예선338)

 

 

재즈 비평가로도 활동했던 역사가 에릭 홉스봄(Eric Hobsbawm)은 재즈를 과거와 현재에 걸친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Uncommon People, 그가 쓴 재즈, 평범한 사람들의 비범한 음악의 원제이기도 하다)의 신념과 행위가 반영된 음악으로 봤다. 재즈는 미국 흑인들의 척박한 현실과 삶의 애환 속에서 탄생된 음악이다. 재즈를 만들거나 즐겨 부른 흑인들, 특히 빌리 홀리데이와 아레사 프랭클린 등과 같은 거장들은 평범하면서도 평범하지 않은 인간이다. 그녀들이 가수가 되지 못했더라면 노래를 잘 부르는 평범한 사람들이 되었을 것이고, 무대에 올라서도 무명으로 사라졌을 수도 있다. 홀리데이와 프랭클린이 거장이 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그녀의 노래에 응답한 평범한 사람들’, 즉 흑인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흑인 음악은 백인이 설립한 레코드 회사를 통해 세상에 알려지게 됐지만, 그 속에는 백인 사회가 외면하고 배제한 평범한 흑인의 삶이 표현되어 있다. 흑인 음악에는 구체적인 메시지가 담겨 있다. 메시지 없는 흑인 음악은 노래 속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흑인의 삶이 없을뿐더러 그 노래를 듣는 청자인 흑인들에게 감동을 주지 못한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흑인 음악에 고통스러운 삶을 산 흑인들의 한()의 정서가 반영되었다고 생각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한의 정서는 흑인 음악의 정의가 될 수 없다. 한의 정서만으로는 다양한 언어와 음색, 음률로 표현할 수 있는 흑인 음악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흑인 음악에서 표현된 의 의미를 어설프게 접근하면 흑인을 아픔과 부침이 많은 민족으로 상정하고, 흑인 음악을 피해자의 목소리로 이해하게 된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흑인을 타자로 대상화하면서 일어나는 편견으로 작용할 수 있다. 자신의 고통스러운 삶을 구구절절 드러내는 구슬픈 흑인 음악만 있는 게 아니다. 자신들도 소중하며 존중받을 가치가 있는 인간임을 당당하게 말하는 흑인 음악도 있다. 프랭클린의 Respect처럼 말이다. 흑인들이 노래를 부르거나 들으면서 느꼈던 것은 좌절과 포기가 아니라 그 무엇으로도 잠재울 수 없는 뜨거운 자유에의 열망과 인간다운 삶에의 의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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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8 13: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5-28 15:56   좋아요 2 | URL
요즘 흑인 가수들이 부른 노래를 유튜브에 찾아 듣고 있습니다. 빌리 홀리데이, 니나 시몬즈. 그녀들이 부른 곡들은 정말 최고입니다. 흑인 가수들이 부른 재즈라고 하면 우울한 가사와 선율로 만들어진 음악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프랭클린의 <Respect>처럼 밝고 경쾌한 분위기의 노래도 있어요. 저항적인 메시지를 유쾌한 음악으로 전달하는 그들의 예술적 능력이 부럽습니다.
 
니그로 - 아프리카와 흑인에 관한 짧은 이야기
W. E. B. 듀보이스 지음, 황혜성 옮김 / 삼천리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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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 차별은 역사적으로 끊이지 않는 아주 해묵은 문제다. 그만큼 뿌리가 깊다. 그래서 근절도 쉽지 않다. 인종 차별의 근원에는 서구 사회의 백인 우월주의가 자리 잡고 있다. 이런 인식은 고용, 교육 등 전반에 걸친 인종 갈등으로 이어진다. 서구 사회에는 사실 인종 차별이 일상화돼 있기도 하다. 특히 미국은 가장 극단적인 인종 차별이 벌어지는 사회다. 미국이 다양성을 포용하는 사회가 되기까지의 과정은 간단치 않다. 노예해방을 선언한 남북전쟁 이후로도 미국 남부에서 흑인 차별은 여전히 극심한 양상을 보인다.

 

인종, 피부색에 대한 차별은 어리석은 인간들이 만들어 낸 비극이다. 그러나 오해와 광기로 인한 비극은 늘 되풀이되었다. 근대적 의미의 노예제도는 15세기 유럽인의 신대륙 발견 및 식민통치가 본격화하면서 시작됐다.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포르투갈 등 유럽 제국은 19세기 초반까지 노예무역으로 떼돈을 벌었다. 목화 농장의 부족한 노동력을 메꾸기 위해 쇠사슬에 묶여 미국 남부로 끌려온 흑인들은 백인 농장주에 의해 착취당했다. ‘백인이 지배하는 미국’을 외치는 미국인들은 KKK(Ku Klux Klan)라는 비밀 폭력조직을 만들기도 했다.

 

만약 미국 드라마나 영화를 많이 본 시청자라면 흑인을 연상시키는 이미지는 대체로 부정적일 것이다. ‘갱(gang)’, ‘폭력’, ‘마약’은 흑인 문화를 설명하기 위해 빼놓을 수 없는 단어가 되었다. 이러한 고정관념은 흑인에 대해서 부정적인 이미지를 심어 줄 수 있다. 흑인 차별이 극심했던 20세기 초에 이미 흑인의 역사와 문화를 무시한 백인의 무지와 편견에 반기를 든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이 바로 흑인 최초로 하버드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윌리엄 에드워드 B. 듀보이스(William Edward Burghardt Du Bois)다. 1905년에 그는 나이아가라 운동을 통해 즉각적인 정치적 권리를 요구하는 급진적인 주장을 내세웠다.

 

1915년에 듀보이스가 쓴 《니그로》(삼천리, 2013)는 흑인과 아프리카에 대한 상식화된 편견을 대담하게 뛰어넘는 책이다. 듀보이스는 잘 알려지지 않은 아프리카의 역사와 문화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함으로써 흑인과 아프리카에 대한 왜곡된 고정관념을 전복한다. 흑인에 대한 고정관념이 특히 만연하고 심각한 이유는 피부색 또는 외모 때문이다. 듀보이스는 ‘인류의 동일성’을 근거로 인종을 정형화하거나 인종을 과학적으로 규명하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사실과 역사적 용례에 따르면, ‘니그로’는 아프리카의 더 검은 피부색 사람들, 즉 갈색 피부, 곱슬곱슬하거나 ‘짧고 곱슬곱슬한’ 머리카락, 두텁고 때로는 뒤집힌 입술, 얼굴에서 턱 부분이 발달된 경향, 길쭉한 두상이 특징적인 사람들을 가리키는 용어라고 보는 게 더 타당하다. 그렇지만 이런 유형의 니그로도 고정불변이거나 확정적인 것은 아니다. 피부색도 무척 다양하여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아주 새까맣거나 남빛이 아니다. 머리카락도 곱슬머리에서 풍성한 복슬 머리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고, 얼굴 각도와 두개골 모양도 무척 다양하다. (14~15쪽)

 

 

우리가 타자를 지각할 때 거의 자동으로 고려하는 요인이 성별, 나이와 함께 인종이다. 이처럼 인종에 대한 정보는 상대방을 지각하고 평가하는 데 최우선으로 사용되기 때문에, 흑인에 대한 고정관념이나 편견은 거의 모든 상황에서 암암리에라도 작동할 가능성이 높다. 서로 다른 피부색과 문화를 지닌 타자에 대하여 동일성을 강제하는 폭력은 지금까지도 횡행하고 있다.

 

오늘날의 아프리카를 생각하면 잦은 내전과 질병, 기아를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15세기 이전의 아프리카는 그렇지 않았다. 인류 4대 문명 중 하나인 이집트 문명의 발원지 아프리카는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대륙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광활한 대자연과 풍부한 광물 자원을 토대로 무역도 발달했었다. 《니그로》는 아프리카 문명의 찬란한 문화와 업적만을 상찬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식민지시대 이전부터 행해지던 서아프리카 내에서의 노예무역에 대해서도 비교적 객관적인 분석을 하고 있다. 통념과는 달리 대다수의 흑인 노예들은 백인 사냥꾼에 잡혀 온 것이 아니었다. 서아프리카에 위치한 베냉, 다호메이, 아샨티 왕국은 약소 아프리카 부족 마을을 침략하여 영토를 확장했을 뿐만 아니라 전쟁 포로들을 노예로 팔았다. 서아프리카의 아프리카 왕국들은 대서양을 건너온 유럽 노예 상인들의 높아진 수요에 맞춰 노예무역을 확대했다. 아프리카에서 구하기 힘든 총과 화약, 술 등을 얻기 위해서다. 듀보이스는 노예무역이 성행했던 역사에서 흑인 편견과 탄압의 원인을 찾는다. 그는 오랜 내전과 노예무역 그리고 식민지국 수탈로 인해 뛰어난 문화유산과 풍부한 자원을 가진 아프리카가 ‘거대한 노예 시장’으로 전락했다고 분석한다.

 

100여 년 전에 나온 책이지만 듀보이스가 지적한 대로 흑인에 대한 사회문화적 차별과 분리의 역사는 ‘현재 진행형’이다. 그는 이 책의 머리말 서두에서 “완벽한 흑인 역사를 말하기에는 아직 때가 오지 않았다”라고 썼다. 이제는 아프리카의 역사, 다양한 아프리카의 종교와 문화 그리고 언어 형성 배경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피부색에 따른 차별이 사라진 평등을 말하기에는 아직 때가 오지 않았다. 100년 전 듀보이스가 바라본 인종차별과 오늘날 인종차별은 다르다. 오늘날 인종차별은 단순히 편견과 인식의 잔존 문제가 아니라 국가와 기업, 종교 등이 조장하는 체계적인 ‘투명한 사회제도’로 작동된다. 흑인에 대한 차별 극복과 자유에의 여정은 아직 미완의 서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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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18 16: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5-19 20:37   좋아요 0 | URL
‘백인 남성/백인 여자‘를 구분하는 젠더 이분법이 있듯이 ‘흑인 남성/흑인 여성‘을 구분하는 젠더 이분법도 있어요. 그런데 백인을 선호하고, 흑인을 부정적으로 보는 편견과 차별로 인해 흑인 남성/여성은 억압을 받습니다. <흑인 페미니즘 사상>이라는 책에 흑인을 통제하는 부정적 이미지에 대한 사례들이 나옵니다. 사례들이 남의 나라 일이 아니에요. 우리나라에 사는 이민자 중에 유색인들이 있어요. 중동이나 동남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이죠. 이 사람들의 수가 늘어날수록 이들을 통제하는 편견과 차별이 형성될 것입니다.

AgalmA 2018-05-23 2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모 사피엔스가 아프리카에서부터 진출해 지금의 인류 기원의 씨가 된 걸 생각하면 인종주의는 진짜 웃긴 구분 아닙니까. 뿌리와 근원 그렇게나 좋아하는 서양이 이건 왜 간과한단 말입니까~ 하여간 인간은 참 자기 믿고 싶은대로 주장 개진하면서 객관 운운하는 거 맘에 안 들어요!
이런 논의에는 항상 울분이 터져서(아, 필립 로스...노벨상 못 타고 가셨네요ㅜㅜ)...좀 격노 어투인데 cyrus님께 불쾌감을 드리지 않았으면 싶네요^^;;

cyrus 2018-05-24 14:28   좋아요 1 | URL
요즘 중세철학, 중세 역사를 다룬 책을 보고 있어요. 시대를 불문하고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해석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느꼈어요.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에 수도사들이 논쟁하는 장면이 나와요. 이 장면에 대화가 안 통하는 사람이 반드시 나옵니다... ㅎㅎㅎ 제가 저런 시대에 살고 있었다면 답답해서 못 살았을 거예요.

필립 로스. 제가 유일하게 읽은 그의 작품이 <울분>입니다. 노벨 문학상 유력 후보자 중 최고령 작가가 밀란 쿤데라 아닌가요? 쿤데라 올해 나이가 아흔일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