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에 가기 전에 - 미리 보는 미술사, 르네상스에서 아르누보까지
아당 비로.카린 두플리츠키 지음, 최정수 옮김 / 미술문화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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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협찬받아 쓴 서평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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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점   ★★★☆   B+






전시해설사(docent)는 미술에 대한 지식과 안목을 바탕으로 관람객에게 전시된 작품을 설명해주는 사람이다. 소위 어렵다고 느껴지는 작품은 눈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에 중점을 두면서 감상해야 한다. 현대미술은 난해함의 극치라서 전시해설사의 역할이 중요하다. 전시해설사는 미술을 어렵다고 생각하는 관람객들에게 즐겁고 편안하게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해준다.

 

미술관에 가기 전에는 한 권의 책이 된 전시해설사다. 이 책은 미술 비전공자들도 몰입하게 만들 정도로 미술가와 작품들을 소개하는 전시해설사 역할에 충실하다. 놀랍게도 이 책을 쓴 두 명의 프랑스인은 전시해설사가 아니다. 한 사람은 예술 관련 도서를 만드는 일을 하고 있으며, 다른 한 사람은 미술 연구자다. 두 저자는 서양미술사에 자주 언급되는 유명한 미술가와 걸작들뿐만 아니라 실력은 뛰어났으나 거장들에게 가려진 미술가와 그들의 대표작도 소개한다. 150여 명의 미술가를 시대별 및 지역별로 분류했는데 13세기 중세 말부터 19세기 말 아르누보까지 서양미술사의 전체 흐름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아르누보 이후 현대미술과 고대 및 중세 미술은 다음에 나올 2권에 다룬다.

 

미술관에 가기 전에의 매력은 사족(Too Much Information)에 가까운 미술가와 작품에 관한 짤막한 이야기들이다. 두 저자는 전문 용어를 써가면서 작품을 가르치듯이 설명하는 전시해설사를 원하지 않는다. 그들이 선호하는 미술관은 즐거운 놀이터와 같은 곳이다. 놀이터 같은 미술관은 자유롭다. 이곳에 온 관람객은 작품을 감상하면서 전시해설사와 격의 없이 대화할 수 있다. 그리고 작품 감상과 전혀 관련 없는 미술가들의 재미있는 일화도 들을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저자들이 작품 분석 및 해설에 소홀한 것은 아니다. 미술가들의 주요 특징과 미술사 발전에 큰 영향을 준 작품들의 가치와 같은 핵심 내용을 밑줄로 표시해두었다.


그런데 이 책에 앙리 루소(Henri Rousseau)가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았다. 루소는 상상으로 이국적인 분위기의 풍경을 표현한 작품을 남겼다. 미술 교육을 받은 적 없는 아마추어 화가인 그는 원근법을 무시하면서 그림을 그렸는데, 그런 자신을 스스로 사실주의 화가라고 평가했다. 루소는 특정 미술사조에 분류하기 어려운 화가다. 피카소(Pablo Picasso)가 극찬한 루소가 왜 이 책에 포함되지 않았을까? 두 저자는 앵그르(Ingres),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 에두아르 마네(Edouard Manet)를 하나의 범주, 즉 미술사조로 분류할 수 없는 화가라고 평가한다. 그러면서 앵그르와 블레이크는 19세기 낭만주의, 마네는 19세기 사실주의 화가로 분류했다. 두 저자의 화가 선정 기준에 의문이 든다.


의문점이 또 하나 있다. 아르누보를 대표하는 화가 알폰스 무하(Alphonse Maria Mucha)를 소개한 내용이 왜 없을까무하가 관능적인 포스터를 그린 화가로 알려졌지만, 말년에 조국 체코의 역사를 주제로 한 연작 그림을 제작했을 정도로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남겼다이름은 한 번 언급되지만, ‘인명 색인에 그의 이름이 없다.


전시해설사는 정확한 정보를 관람객에게 전달해야 한다. 책이 된 전시해설사가 들려준 이야기에 정확하지 않거나 오류가 있다.






라파엘로(Raffaello)<라 포르나리나>는 제빵사의 딸이자 화가의 정부(情婦마르게리타 루티(Margarita Luti)를 그린 초상화로 알려져 있다(52). 그렇지만 <라 포르나리나> 속 인물이 누군지 확실하지 않다. 마르게리타 루티라고 추정한 것은 19세기부터 시작되었다그래서 이 작품을 젊은 여인의 초상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가운데에서 플라톤(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이목구비를 하고 있음)이 자신의 대화편 중 하나 티마이오스를 들고 손가락으로 하늘과 이데아의 세계를 가리키고 있다. 그는 윤리학을 들고 땅과 인간들의 법을 가리키고 있는 아리스토텔레스와 대화한다.

 

 그의 뒤에는 두 천문학자 차라투스트라와 프톨레마이오스가 천구의를 들고 있다.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을 설명한 내용 중에서, 53)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의 저서 윤리학의 정확한 제목은 니코마코스 윤리학(Ethika Nikomacheia)’이다. 차라투스트라(조로아스터)는 고대 페르시아에 발원한 조로아스터교의 창시자. 그는 마법사점성술사로 묘사되기도 하는데 점성술은 천체 현상을 관측하여 미래를 점치는 기술이다. 점성술은 비과학적인 방식이지만, 과거에 정식 학문으로 인정받았으며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Johannes Kepler)는 점성술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점성술사의 원어(Astrologer 또는 astrologist, 프랑스: astrologue)는 천문학자(astronomer, 프랑스: astronome)의 원어와 비슷해서 번역하면서 혼동하기 쉽다. 차라투스트라는 천문학자가 아니라 점성술사다.













 <180852>(마드리드 프리도 미술관)은 모든 유럽 국가의 봉기의 상징이 되고 나중에 피카소에게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프란시스코 데 고야, 170)

   


피카소에 큰 영향을 준 고야(Francisco de Goya)의 그림 제목은 <180853>이다. 피카소는 <1808년 5월 3일>의 구도를 참조해 <한국에서의 학살>(Massacre en Corée, 1951)을 그렸다.






 작업 중인 노동자들을 그린 최초의 그림 중 하나인 이 작품은 날 것의 사실주의로 살롱전 심사위원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카유보트의 <마룻바닥에 대패질하는 사람들>에 대한 설명문 중에서, 218)

 











<마룻바닥에 대패질하는 사람들>1875년에 완성된 작품이다. 카유보트보다 먼저 쿠르베(Gustave Courbet)가 일하는 노동자들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렸다. 그 작품이 바로 <돌 깨는 사람>(1849)이다. 그런데 일하는 노동자의 범주에 여성의 노동을 포함한다면 쿠르베의 작품이 최초는 아니다. 18세기에 활동한 프랑스의 화가 샤르댕(Jean-Baptiste-Siméon Chardin)부엌에서 일하는 하녀나 부인의 모습을 담은 작품 몇 점 남겼다.


209쪽에 영국 작가 오스카 와일드라고 되어 있는데, 와일드는 영국에서 주로 활동했지만,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태어났다.

 



 그의 할머니 플로라 트리스탕1840년대의 문인이자 사회주의 투사, 페미니스트로서 사회적 논쟁에 참여하고 국제주의를 표방한 주요 인물 중 한 명이었다.

 

(폴 고갱, 239)

 


플로라 트리스탕(Flora Tristan)은 고갱(Paul Gauguin)외할머니.






정오표

 


* 119: 다비트 테니르스(David Teniers) 

인명 색인(283)에는 다비트 테니어르스로 표기되어 있다.

 





* 211: 에술적 허용 예술적 허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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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6-28 13: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플로라 트리스탕과 고갱 이야기 소설로 본 기억나요. 카유보트의 대패질 그림 넘 좋아요 *^^*

cyrus 2022-07-02 08:40   좋아요 1 | URL
mini님은 호세 바르가스 요사의 <천국은 다른 곳에>을 읽어보셨군요. 고갱과 플로라 트리스탕을 소재로 한 소설이 있다는 걸 최근에 알았어요. ^^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에게 노란 집은 개인 작업실이 있는, 그런 단순한 거처가 아니다. 빈센트는 노란 집에서 자신과 친한 동료 예술가와 함께 생활하면서 작업하길 원했다. 1888년 빈센트는 아를(Arles)에 있는 노란 집에 네 개의 방을 빌렸고, 폴 고갱(Paul Gauguin)을 초대했다. 하지만 전혀 다른 성향을 가진 두 사람은 시시때때로 부딪혔다. 그해 1223일 빈센트는 정신 발작을 일으켜 고갱과 다툰 끝에 면도칼로 자기 귀를 잘랐다.


빈센트는 본인의 충동적인 성격과 주관이 뚜렷한 작업 방식을 충분히 이해할 줄 아는 넓은 포용력을 가진 화가를 만났어야 했다. 그러면 노란 집은 예술이 일상화된 멋진 장소가 되었을 것이다. 노란 집이 마음에 든 빈센트는 이렇게 썼다. 나는 살 수 있고, 숨 쉬고, 명상하고, 그림을 그릴 수 있다.”

















* 멀리사 와이즈 글, 케이트 루이스 그림 예술가가 사는 집: 지베르니부터 카사아술까지 17인의 예술가와 그들이 사는 공간(아트북스, 2021)




대부분 예술가는 빈센트처럼 자신만의 노란 집을 꿈꾼다. 자신의 예술적 아이디어를 마음껏 실험할 수 있으면서도 다른 예술가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새로운 영감을 얻을 수 있는 곳을 원한다예술가가 사는 집은 예술가의 개성과 창작 열정이 가득한 집의 내부를 글과 그림으로 소개한 책이다이 책의 공동 저자는 직접 예술가의 집을 방문했는데 한 사람이 그곳에 관한 이야기를 썼고, 또 다른 한 사람은 집 안 풍경을 관찰하면서 그렸다시간이 흐르면서 사라지거나 크게 달라진 예술가의 집은 정확히 재현하기 힘들다. 그런 경우에는 남아 있는 사진과 각종 기록을 참고하면서 그렸다고 한다.


이 책에 빈센트의 노란 집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글쓴이와 그린 이는 빈센트의 미적 감각이 반영된 노란 집의 내부 분위기를 묘사하기 위해 빈센트가 동생 테오(Theo van Gogh)에게 보낸 편지를 참고했으며 편지글을 인용하기도 했다.



 “오늘 아침에 해가 뜨기 한참 전부터 창문으로 샛별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시골을 보았다. …… (샤를프랑수아) 도비니와 (앙리) 루소가 한 일이 바로 그것이다.”  


(빈센트가 테오에게 보낸 편지, 예술가가 사는 집151)



빈센트는 바르비종 화파(École de Barbizon)를 존경했으며 그들의 화풍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바르비종은 파리 근교에 있는 작은 시골 마을이다. 이 마을 근처에 퐁텐블로(Fontainebleau) 숲이 있다. 이 숲의 경관과 시골 풍경에 매료된 화가들은 이곳에 정착해 그림을 그렸다. 그들을 가리켜 바르비종 화파라고 부르는데, 가장 대표적인 화가가 장 프랑수아 밀레(Jean-François Millet). 빈센트가 편지에 언급한 샤를 프랑수아 도비니(Charles François Daubigny) 역시 바르비종 화파에 속한 화가다.


빈센트는 편지에 도비니와 함께 루소를 언급했다. 예술가가 사는 집에 인용된 편지글에는 앙리 루소(Henri Rousseau)’라고 표기되어 있다. ‘루소라는 성을 가진 유명한 프랑스인 두 명이 있다. 장 자크 루소(Jean Jacques Rousseau)와 앙리 루소다. 장 자크 루소는 너무나도 유명한 사상가라서 여기서 길게 언급하지 않겠다. 앙리 루소는 세관원 출신의 화가다. 독학으로 미술을 공부해서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열대 지방의 풍경을 상상해서 그림을 그린 것으로 유명하다.


앙리 루소라고 표기한 사람이 책의 저자인지, 아니면 책을 번역한 역자인지 알 수 없다. 확실한 건 빈센트가 언급한 루소는 앙리 루소가 아니다. 성이 ‘루소’인 화가가 또 있다. 그 사람은 바로 테오도르 루소(Théodore Rousseau)테오도르 루소는 바르비종 화파의 지도자로 평가받는 화가다.


















* 빈센트 반 고흐, 정진국 옮김 고흐의 편지(펭귄클래식코리아, 2011)




편지글이 쓰인 정확한 날짜는 나오지 않지만, 빈센트가 생 레미(Saint Rémy)에 있는 정신병원에 있을 때 썼다는 것을 알 수 있다펭귄클래식 시리즈로 나온 고흐의 편지 2에 생 레미 시절에 쓴 고흐의 편지가 실려 있다. 188995일 또는 6일에 동생에게 보낸 고흐의 편지에 테오도르 루소를 포함한 바르비종 화파의 화가들이 언급된 내용이 있다.



 엉뚱한 일도 일어났어. 마네트 살로몽[주]에 현대미술에 관한 토론이 실렸는데, 어떤 화가와 또 한 사람이 무엇이 남게 될지이야기하면서 풍경화가들이 남을 거라고 하더구나. 이런 관점이 어느 정도는 입증된 셈이지. 이미 코로, 도비니, 뒤프레, 루소, 밀레는 풍경화가로 인정받고 있잖아.

 

(고흐의 편지 2179)



카미유 코로(Jean-Baptiste-Camille Corot)는 바르비종 화파로 분류되지만, 그는 바르비종에 정착하면서 그림을 그리지 않았으며 풍경화뿐만 아니라 신화나 역사적인 일화를 소재로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쥘 뒤프레(Jules Dupré)는 테오도르 루소와 친했던 바르비종 화파의 일원이다. 그러나 살롱 전에 여러 번 고배를 마신 테오도르 루소는 뒤프레가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을 정도로 명성을 얻게 되자 그와 절교했다.



















* 재원 편집부 엮음 카미유 코로(재원, 2005)

* [절판] 뱅상 포마레드 코로(창해, 2002)
































* 유니온아트 엮음 세계인이 사랑한 불멸의 화가 20: 장 프랑수아 밀레 자연과 농부(봄이아트북스, 2021)

 

* [절판] 김성진 엮음 인물로 보는 서양 미술사: 바르비종 미술(서림당, 2016)

 

* [절판] 전하현 바르비종과 사실주의: 바르비종 들먹여 뜬 7개의 별과 2개의 해(생각의나무, 2011)

 

* [절판] 노성두 외 자연을 사랑한 화가들: 밀레와 바르비종파 거장들(아트북스, 2005)

 

* [절판] 즈느비에브 라캉브르 외 밀레(창해, 2000)




코로와 밀레를 포함한 바르비종 화파를 깊게 다룬 책이 많지 않다. 몇 권 있긴 한데, 현재 절판된 상태다.





[주] 프랑스의 소설가 공쿠르 형제(Goncourt Frères)가 쓴 소설. 책을 즐겨 읽은 빈센트는 공쿠르 형제의 작품을 좋아했는데, 공쿠르 형제가 쓴 소설책이 있는 정물화를 그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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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ummii 2022-06-04 05: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절판 찾는 묘미^^b

cyrus 2022-06-05 18:54   좋아요 2 | URL
쉽게 구할 수 없는 책을 가지고 있으면 기분이 조크든요.. ㅎㅎㅎㅎ

얄라알라 2022-06-04 10: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 새벽배송으로 받은 알라딘.책상자 속에.앙리루소 티셔츠가 있었는데.cyrus님.글에서.한번.더 만나고 가네요^^

cyrus 2022-06-05 18:56   좋아요 1 | URL
제가 좋아하는 화가 중 한 사람이 앙리 루소예요. ^^

mini74 2022-06-04 2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고보면 바르비종파 그림들 , 밀레그림을 고흐가 많이 모사했네요. 고흐도 속하고 싶었던걸까요 아니면 바르비종과 비슷한 화파를 고갱과 만들고 싶었던 걸까요 절판된 책들 읽고싶어요. 도서관 검색이라도 해봐야겠어요. *^^*

cyrus 2022-06-05 19:00   좋아요 1 | URL
빈센트는 자신의 예술 세계를 이해해 줄 동료 화가들을 만나고 싶었을 거예요. ^^
 
반 고흐의 누이들
빌럼 얀 페를린던 지음, 김산하 옮김 / 만복당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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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점  ★★★★  A-






, 어머니, 빈센트는 진정한 나의 형제였습니다.”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가 죽은 지 며칠 후에 테오 반 고흐(Theodorus van Gogh)는 자신의 참담한 심정을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에 밝힌다. 빈센트와 테오는 서로 다른 몸에 들어있는 하나의 영혼이었다. 그들이 주고받은 수백여 통의 편지는 분리된 영혼을 더욱 끈끈하게 만들었다. 테오는 반쪽 영혼이 별이 된 지 일년 후 그의 곁으로 갔다.

 

형제가 남긴 방대한 편지가 워낙 유명하다 보니 많은 사람은 외로운 빈센트가 테오에게 많이 의존했다고 생각한다. 빈센트가 동생의 도움을 받으면서 예술 활동을 한 건 사실이다. 빈센트에게 테오는 경제적 후원자일 뿐 아니라 믿고 의지할 수 있는 혈육이었다. 하지만 빈센트와 정신적 교감을 나눈 혈육이 또 한 명 있다. 그 사람은 바로 빈센트가 가장 아꼈던 여동생 빌레민(Wilhelmien, 애칭 ’)이다.

 

빈센트의 그림을 좋아하는 예술 애호가들도, 심지어 빈센트의 생애를 조사하면서 연구한 학자들마저도 간과하거나 잘 모르는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다. 빈센트에게 세 명의 누이가 있었다는 사실을. 형제의 유명세에 가려진 세 누이의 삶을 조명한 반 고흐의 누이들을 쓴 저자 빌럼 얀 페를린던(Willem-Jan Verlinden)도 이 책을 쓰기 전까지 세 누이를 모르고 있었다. 반 고흐 가는 6남매로 이루어져 있다. 목사와 결혼한 안나(Anna)빈센트라는 이름이 붙여진 첫 아이를 출산하지만,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죽는다. 정확히 일 년 후에 태어난 아이는 죽은 형의 이름을 물려받는다. 그 이후로 안나(2), 테오, 엘리사벗(Elizabeth, 4, 애칭 리스’), (5), 코르넬리우스(Cornelius, 애칭 코르’)가 태어난다.

 

빈센트는 테오뿐만 아니라 누이들과 편지를 주고받았다. 편지는 빈센트가 살았던 당시에 멀리 떨어져 지낸 사람들이 유일하게 사용한 연락 수단이다. 반 고흐 가 사람들은 서로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근황을 확인했다. 저자는 지금까지 남아 있는 편지를 바탕으로 빈센트의 세 누이의 삶을 복원한다. 그리고 반 고흐 가의 후손들을 직접 만나면서 공개되지 않은 세 누이의 초상 사진과 그 밖의 자료를 얻는 데 성공한다.

 

반 고흐의 누이들이 이전에 출간된 수많은 빈센트 반 고흐 관련 책과 차별화되는 지점들이 있다. 첫 번째 지점, 저자는 각종 서신과 기타 자료에 남아 있는 세 누이의 시선으로 빈센트의 삶을 바라본다. 빈센트와 테오의 편지는 예술사적 가치가 있는 텍스트로 평가된다. 그동안 학자들은 예술을 주제로 한 편지 내용을 토대로 예술가 반 고흐의 삶을 복원하려고 했다. 그런데 문제는 오빠 빈센트에 대해 솔직하게 감정을 밝힌 누이들의 편지가 사료로 인정받지 못했다는 점이다. 둘째 안나는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 오빠 빈센트에 대한 불편한 심정을 드러낸다. 그녀가 생각하는 빈센트는 자기 주관이 뚜렷한 예술가가 아니라 아버지의 말을 따르지 않은 철부지 오빠다. 그러면서 제멋대로인 그를 인간적으로 좋아하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안나는 가부장 권위와 가족 간의 정을 중시했다. 그녀는 화가가 되고 싶은 열망이 거대해진 빈센트를 문제아로 취급했다. 두 사람의 관계는 같은 피로 이어진 관계에서 물과 기름 같은 관계로 변하게 되고, 가족에게 실망한 빈센트는 고향을 떠나 본격적으로 타국 생활을 시작한다. 반 고흐의 누이들은 연구가들의 손에 의해 달라붙은 예술가라는 덧칠을 완전히 벗긴 빈센트를 보여준다.

 

그래도 반 고흐의 누이들의 저자는 미술사가다. 당연히 이 책에 빈센트의 작품에 대한 저자의 분석 작업이 포함되어 있다. 두 번째 지점. 저자는 빈센트의 작품에 반영된 당대 유럽의 사회적 · 경제적 · 문화적 지형을 살핀다. 빈센트가 네덜란드에 살면서 그린 초기작 대다수는 방직공과 농민을 모델로 하고 있다. 시골 노동자의 생활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빈센트의 초기작들은 후기에 나온 걸작에 비해 주목도가 낮다. 하지만 저자는 이 작품들이 어떻게 사회적 상황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탄생하였는지 설명한다. 빈센트는 모델을 구하지 못해 마을에 사는 가난한 주민들을 모델로 삼아 그림을 그렸다. 여기서 저자는 근대화가 진행 중인 네덜란드의 궁핍한 시대를 읽어낸다. 빌과 빈센트는 문학에 관심이 많았다. 빈센트는 빌에게 보낸 편지에 자신이 읽은 책들, 특히 프랑스 작가들의 소설을 권했다. 빈센트의 작품 중에 책이 있는 정물화가 있다. 이 그림들과 문학에 관한 내용의 편지는 빈센트의 예술 활동 및 독서에 영향을 준 당대에 유행한 문학과 출판시장의 흐름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단서다.

 

세 번째 지점. 저자는 남성 중심의 역사가 주목하지 않은 여성의 우정을 소개하고, 그 속에서 흐르기 시작한 네덜란드 페미니즘 제1 물결의 성취를 언급한다. 네덜란드의 중산층 집안 출신 여성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노동은 사회복지 일이었다. 그러나 결혼한 여성은 일을 그만두어야 했다. 빌은 평생 독신으로 살았고, 가난한 환자들을 돌보는 간호사로 일했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 향상에 관심을 가지게 된 그녀는 암스테르담과 헤이그에서 활동한 페미니스트들을 만나 페미니즘 운동에 참여했다. 그리하여 헤이그에 여성을 위한 도서관이 세워졌고, 빌은 이 도서관 회원으로 활동했다. 테오의 아내 요한나 봉어르(Johanna Bonger, 애칭 ’)는 빈센트와 테오의 형제애를 세상에 알리는 데 이바지한 인물이. 요와 리스는 편지를 주고받을 정도로 친한 사이다. 그들은 편지로 책과 문학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편지에 나타난 두 사람의 관계는 올케와 시누이라기보다는 관심사가 비슷한 친구에 가깝다.

 

세 누이를 포함한 반 고흐 가의 여자들(어머니 안나와 요)은 오랫동안 반 고흐 형제의 주변인, 또는 예술과 무관한 인물로 소개되었다. 반 고흐의 누이들반 고흐 형제라는 이름의 먼지에 묻힌 여성들의 삶과 목소리를 이해하기 위한 책이다. 묵은 먼지를 털어낸 그녀들의 이야기는 고독한 천재가 아닌 예술에 푹 빠진 사람’ 빈센트 반 고흐를 볼 수 있는 창()이다.






※ 미주(尾註)알 고주(考註)



* 185

 

 뤼시앵[] 피사로1887년에 빈센트와 테오를 함께 그렸고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레크도 같은 해에 빈센트를 그린 바 있다.

 

 

* 229


 클로드 모네, 아르망 기요맹,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레크도 테오에게 추모의 편지를 보냈다. 카미유 피사로는 장례식에 직접 참석하지는 못했지만 대신 아들 루시앙[]을 보냈다.

 

 

[] 185쪽에 언급된 뤼시앵 피사로229쪽의 ‘카미유 피사로의 아들 루시앙은 같은 사람이다. 2쇄가 나오면 이름 표기를 하나로 통일해서 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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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gela 2022-04-10 11: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누이에 대한 이야기 처음이예요. 페미니즘 1 물결이라니~

cyrus 2022-04-11 20:34   좋아요 1 | URL
제가 빈센트를 좋아하는 독자라서 이 책 나오기 전에 진행된 북펀딩에 참여했어요. ^^

미미 2022-04-10 12: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문장이 인상적이네요! 저도 고흐에게 누이들이, 그것도 셋이나 있는 줄 몰랐습니다. 게다가 페미니스트였다니 반갑네요^^*

cyrus 2022-04-11 20:36   좋아요 2 | URL
테오의 아내도 훌륭한 사람이에요. 이 사람이 없었으면 빈센트와 테오가 주고받은 편지가 남아 있지 않았을 거예요. ^^

mini74 2022-04-10 13: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 관심있어서 눈여겨보고 있었는데 리뷰 읽으니 고민은 끝 ! 읽어야겠습니다 ~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

cyrus 2022-04-11 20:38   좋아요 2 | URL
고흐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책에 만족하실 겁니다. ^^

moonnight 2022-04-10 19: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토요일 신문에서 신간소개기사 읽었는데 벌써 읽으시고 리뷰까지 쓰셨군요. 존경@_@;;;; 고흐의 작품들은 좋지만 가족이라면 괴로웠겠다 싶던데요ㅜㅜ;;

cyrus 2022-04-11 20:40   좋아요 1 | URL
제가 <반 고흐의 누이들> 북펀딩에 참여했어요. 책은 지난주에 받았어요. 정해진 기간 안에 100자 평을 쓰면 북펀딩 정산금을 받을 수 있어요. 리뷰 안 쓰고 미루면 정산금 못 받을 거 후딱 썼습니다. ^^

stella.K 2022-04-10 20: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이런 책이 있었네.
누이들은 하나도 알려지지 않아서 난 부모가 테오 딱 두 형제만 난 줄 알았다.
언제 북펀드도 했었구만.
나도 언제고 읽어야겠다.^^

cyrus 2022-04-11 20:41   좋아요 2 | URL
제가 고흐 찐팬이라서 북펀드에 참여했어요. ^^
 
반 고흐의 누이들
빌럼 얀 페를린던 지음, 김산하 옮김 / 만복당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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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 형제’라는 이름의 먼지에 묻힌 반 고흐의 누이들의 목소리가 담긴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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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색은 대체로 불길한 느낌을 만들어주는 색이다. 밝은 분위기와 정반대로 칙칙하다. 그렇지만 몇몇 화가는 검은색이 최고의 색이라면서 추켜세웠다. 르누아르(Renoir)는 화려한 색채로 행복한 일상과 젊은 여성을 주로 그린 화가로 유명하다. 검은색을 잘 안 쓸 것 같은 그가 검은색을 색의 여왕이라고 했다. ‘무색(無色)’이라 하면 투명한 흰색을 떠올린다. 하지만 르누아르 이전에 활동한 화가들은 검은색을 무색으로 여겼다. 이유는 단순하다. 그들이 보기에 검은색은 빛이 없는 상태일 뿐이다. 그걸 색이라고 봐야 할 이유가 없었다. 검은색을 무시한 화가들의 생각이 틀린 건 아니다. 물리학적 관점에서 보는 검은색은 색의 부재이기 때문이다.

 














 

* 헤일리 에드워즈 뒤자르댕 검정: 금욕과 관능의 미술사(미술문화, 2021)

 

 


검은색에 대한 인식은 문화에 따라 다르다. 또 시대가 변할수록 검은색의 상징도 달라졌다. 해시태그 아트북(hashtag art book)’ 시리즈 첫 번째 책인 검정: 금욕과 관능의 미술사는 검은색은 그저 어둡기만 한 단색이라는 편견을 깨뜨린다. 검은색이 권력과 우아함을 상징하는 색으로 여기던 시대가 있었다. 차분하고 평온한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 검은색을 썼다. 검정은 고대 미술부터 현대미술까지 검은색이 품어온 다양한 시각적 해석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프리즘(prism)이다. 우리는 예술적 프리즘에서 나온 검은색에 여러 가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미국의 화가 제임스 휘슬러(James Whistler)는 그림은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다르다고 말했다. 검은색도 마찬가지다. 검은색은 아름다울 수 있다. 


그런데 이 예술적 프리즘에 흠집이 있다. 그 흠집이란 오역과 오류다. 먼저 오역부터 언급해본다

 


 휘슬러는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런던과 파리를 오가며 자유분방하게 살았다. 어머니가 미국에서 발발한 시민전쟁을 피해 그의 집에 왔을 때, 그는 매우 긴장했다고 한다. (38)

 

시민전쟁은 남북전쟁(Civil War)’의 오역이다.

 

80쪽 왼쪽 부분에 상징주의’가 무엇인지 간략하게 설명한 글이 있다. 글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상징주의는 1876에밀 졸라가 귀스타브 모로의 작품을 상징주의자의 작품이라고 명명하면서 시작되었다. 이상적이고 염세적인 미학을 추구했던 상징주의 작가들은 몽상과 심령, 잠재의식에 심취했다. 대표적인 인물로 구스타프 클림트, 오딜롱 르동, 귀스타브 모로, 페르낭 크노프, 제임스 앙소르, 스테판 말라르메, 조리스 카를 위스망스 등이 있다. (80)



에밀 졸라(Emile Zola)는 자연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다. 그는 인간의 삶을 과학적인 방법으로 접근하여, 있는 그대로 묘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 에밀 졸라 실험소설 외(책세상, 2007)




졸라의 논문 실험소설은 자연주의 문학의 등장을 알린 알린 선언문이다. 이 책에서 졸라는 자연주의 작가라면 상상력이 아닌 현실 감각을 갖추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랬던 그가 공상을 중시한 상징주의를 인정한 작가라고? 졸라가 이 내용을 보면 졸라 어리둥절하겠는데. 본인은 그렇게 말한 적이 없으니까.



















* 조이스 카를 위스망스 거꾸로(문학과지성사, 2007)


 


상징주의라는 명칭을 처음 제시한 사람은 프랑스의 시인이자 비평가인 장 모레아스(Jean Moréas). 그는 1886년에 상징주의 선언(Le Symbolisme)을 발표하면서 상징주의를 대표하는 이론적 지도자가 된다. 귀스타브 모로(Gustave Moreau)를 상징주의자로 평가한 사람은 조이스 카를 위스망스(Joris-Karl Huysmans). 재미있는 사실은 상징주의자 위스망스가 문단에 등단할 수 있도록 도와준 사람이 자연주의자 에밀 졸라다. 위스망스는 모로의 작품들을 상당히 좋아했다. 위스망스의 대표작 거꾸로의 주인공 데 제셍트(Des Esseintes)는 고독한 탐미주의자다. 그는 모로의 그림 두 점을 사들인 다음, 매일 밤 모로의 그림을 보면서 몽상에 잠긴다.







* [절판] 에드워드 루시 스미스 상징주의 미술(열화당, 1987)

 

 


국내에 상징주의 미술을 본격적으로 소개한 책을 찾기가 쉽지 않다미술평론가 에드워드 루시 스미스(Edward Lucie-Smith)상징주의 미술이 전부다. 스미스는 이 책에서 상징주의 문학을 졸라와 같은 소설가로 대표되는 고압적인 자연주의에 대한 항거(58)’라고 평가한다. 상징주의 미술1987년에 나온 책이라 절판되었고, 알라딘에 등록되지 않은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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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2-04-03 21: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 책 예전에 미니님 리뷰로 봤었는데 또 보니 반갑네요~! 검정색이 불길한건 까마귀 때문일까요? 😅 검은색이 부재 라고 볼 수도 있지만 또 여러가지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다니 예술은 신비한거 같아요~~!

전 그래도 옷 살때는 검정색을 즐겨삽니다 ㅋ

cyrus 2022-04-09 10:57   좋아요 2 | URL
저 같은 패션 테러리스트는 검은색 옷을 선호해요.. ㅎㅎㅎㅎ 검은색 옷만 있으면 다른 색깔의 옷을 고를 필요가 없거든요.. ^^;;

Angela 2022-04-04 23: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검은색 수트 시크해요~ㅎ

cyrus 2022-04-09 10:57   좋아요 1 | URL
검은색 정장에 잘 어울리는 남자를 보면 부럽습니다..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