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랭 드 보통의 영혼의 미술관
알랭 드 보통.존 암스트롱 지음, 김한영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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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 참 빠르다. 벌써 5월 말이다. 젠장, 벌써 한 해의 절반이 지나갔다니. 매번 시간의 끝에 서있으면 허덕거린다. 시간은 자신의 비밀을 말하지 않고, 아직 새로운 하루를 맞이할 준비가 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고단하고 치열했던 지난날을 반추하고 나만의 영혼이 성숙되어야하는데 말이다.

 

우리는 살면서 투명한 유리벽에 갇힌 듯한 기분을 느낄 때가 있다. 유리벽 밖으로 세상은 보이는데 정작 만져지지 않는 답답함은 우리를 지치게 만든다.

 

인생이 답답하고 지치면 알랭 드 보통의 『영혼의 미술관』에 가보자. 화보집을 연상시키는 크기의 책으로 들어서는 순간, ‘유리벽’에 둘러싸인 인생살이에 작은 희망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유리벽 밖 세상으로 우리를 인도해주는 좋은 비상구가 된다.

 

 

 

 

피에르 만초니  「예술가의 똥」  1961년

 

그러나 『영혼의 미술관』에 입장하기가 쉽지 않을지도 모른다. 책이 두껍고 무거운 편이지만 여전히 ‘미술’이라는 단어가 어려워서 그 곳으로 들어가기가 머뭇거릴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미술을 왜 어려워하는 걸까. 나만의 생각일 수 있겠지만, 그건 결국 미술이 우리 삶에 밀착할 정도로 와 닿지 않기 때문이다. 현대미술은 똥인지 작품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다. 실제로 똥이 예술작품이 되는 것이 현대미술이다. 피에르 만초니라는 예술가는 자신의 똥을 깡통으로 포장해서 ‘예술작품’이라고 규정했다. 제목은 ‘예술가의 똥’, 제목만 봐도 그의 예술적(?) 의도를 충분히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예술가’라는 단어가 없다면 그냥 똥이다. 미술작품이 될 수 없다.

 

현대미술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이미 오래전에 마르셀 뒤샹은 공장에서 만들어진 화장실 변기에 사인만 한 채 미술관에 전시했다. 데미안 허스트는 포름알데히드 용액이 담긴 유리관에 죽은 상어 시체를 보관해 130억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가격으로 팔렸다. 예술가가 자신의 예술적 의도와 상징성을 드러내는 걸 꺼려하면서 대중에게 자신의 작품을 이해해달라고 떼를 쓰는 경우가 많다. 특히 이 세상에 없는 예술가의 작품일수록 대중은 더욱 곤혹스럽다. 뒤샹은 화장실 변기를 왜 예술작품이라고 우기는 걸까? 너무나 궁금해서 따지고 싶어도 예술가에게 직접 물어볼 기회가 없다. 죽은 예술가는 말이 없다.

 

우리가 예술을 멀리하게 만드는 가장 큰 문제는 주류 예술계가 예술을 비싸게 다루는 방식 때문이다. 개인의 이해나 감성이 부족하다고해서 예술을 어렵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예술은 예술가들을 위한 고결한 영역이 아니라 우리 삶을 위한 감상의 영역이 되어야 한다.

 

예술에 대한 사람들마다 각각 인식의 차이가 있겠으나 그림을 보고 감상하는데 있어 정답이란 없다고 본다. 눈으로 그림을 보면서 머리로 예술가의 의도를 억지로 알아내려고 하면 예술이 어렵게 느껴진다. 예술가가 그림을 그린 이유와 그림 속에 숨어 있는 여러 가지 상징성 등을 알면 좋지만, 오히려 감상하는데 방해가 될 수도 있다. 지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그림을 보는 것과 그림을 구성하고 있는 색채와 묘사가 마음에 들어서 그림을 보는 것은 다르다. 전자는 그림을 읽는 것이고, 후자는 그림을 감상하는 행위에 가깝다. 그림을 읽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예술을 좀 더 친근하게 접근하기 위해서는 감정이 끌리는 대로 그림을 보는 것이 낫다. 괜히 똑똑하게 보이려고 그림 앞에서 힘 줄 필요는 없다. 우선 별 흥미를 못 느끼는 작품일지라도 그 시대 예술가의 입장에서 받아들이고 자신의 경험과 사고방식에 연결점을 찾는 것도 좋다.

 

고단한 세월에 단단하게 뭉쳐진 마음의 응어리를 풀기 위해서는 예술의 역할은 가장 중요하다. 그림을 볼 때 자신만의 자유롭고 엉뚱한 시선도 괜찮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세상, 자아와 타자 등 이분법적 논리에 갇힌 ‘유리벽’을 파괴시킬 수만 있다면.

 

예술에 관심을 가진다면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드는데 도움이 된다. 삶이 고단할수록 아름다운 그림은 우리를 더 감동시킨다. 아름다운 그림이 슬픔을 전달해서가 아니다. 그림을 볼 때 그 아름다움과 대비되는 삶의 고단함과 슬픔을 떠올리게 되기 때문이다. 즉, 인생의 고난을 겪으며 성숙해질 때 예술의 아름다움을 더욱 더 음미할 수 있다.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  「해변의 암초」  1825년경

 

“예쁜 미술작품의 쾌감은 불만족에서 기인한다. 만일 인생이 고되지 않다고 느낀다면, 아름다움은 현재와 같은 호소력을 갖지 못할 것이다.” (20쪽)

 

 

예술은 우리가 마주하게 될 삶의 조건을 진지하게 바라볼 수 있도록 한다. 특히 낭만주의적 의미로 숭고함을 지닌 작품들이 그러하다. 별이나 대양, 거대한 산맥이나 대륙의 단층을 묘사한다.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의 「해변의 암초」를 마주하면 삶의 좌절은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주라는 광대한 세상의 부분적인 과정임을 알게 된다. 그 앞에서 우리는 즐거운 공포에 휩싸이고 영원의 존재 양상에 비해 인간의 불행이란 게 얼마나 사소한지 느끼면서 인간의 보잘것없음을 깨닫는다.

 

드 보통은 예술의 7가지 기능으로 기억, 희망, 슬픔, 균형 회복, 자기 이해, 성장, 감상을 분류한다. 『영혼의 미술관』의 전시실은 드 보통의 분류대로 7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나쁜 기억을 교정해 주고, 희망을 주며 삶에서 슬픔이 차지하는 정당한 위치를 깨닫게 해서 슬픔에 대한 내성을 키우게 한다.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한 균형 잡힌 시각을 갖게 하며 자기 자신을 좀 더 이해하도록 이끌고, 경험을 확장시키는 길잡이 노릇을 한다. 마지막으로 감수성을 회복하고 옛것을 새로운 방식으로 보도록 이끌어준다. 전시 순서(목차)대로 보는 것보다는 마음 가는대로 평소 관심 있는 전시실에 들어가도 좋다. 슬픔을 견디기 어렵다면 ‘슬픔’ 전시실에 가면 되고, 이번 기회에 자신을 성찰하고 싶다면 ‘자기 이해’ 전시실로 간다. 『영혼의 미술관』은 그저 그림을 보기 위한 엄숙한 곳이 아니다. 우리의 고통을 치유할 수 있는 자유롭고 편안한 곳이다.

 

‘균형 회복’이라는 이름이 붙인 전시실에 가면 삶에 허전한 부분을 채우고 보완하는 방법을 발견하게 된다. 예술이 주는 균형감은 우리가 본능적으로 좋아하는 질서를 다시금 확인하게 하며, 우리의 열정을 자극시킨다. 예술은 우리의 어떤 타고난 약점들, 심리적 결함이라고 할 수 있는 삶의 약점들을 보완해준다. 『영혼의 미술관』에 가면 반갑게도 한국의 백자 항아리를 만날 수 있다. 드 보통은 백자를 통해 겸손의 미덕을 본다. 한국의 백자는 완벽하게 이상적인 타원형으로 이루어지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부의 시선에서 한 발 벗어나 있다. 스스로를 특별하게 봐달라고 요구하지도 않는다.

 

 

 

 

니콜로 피사노  「목가시 : 다프니스와 클로에」  1500~1501년경

 

그는 여기서도 ‘사랑’을 얘기한다. 전작에서도 ‘사랑’을 주제로 글을 쓴 만큼 ‘사랑’을 논하지 않는 드 보통은 그의 벗겨진 머리처럼 허전하다. 사랑. 우리 인생에 있어서 행복과 즐거움을 주기도 하지만, 뜨거운 마음이 식어버리면 치명적인 상처로 변해 때때로 우리를 괴롭히기도 한다. 사랑에 쉽게 지배당한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이 두 단어로 이루어진 감정을 절대로 잊지 못한다. 사랑이 없는 삶은 풀 한 포기 자라지 않은 허허벌판의 사막과 같다. 그 곳 한가운데에 서 있기만 하면 갈증이 생긴다. 사랑은 곧 우리 메마른 영혼의 갈증을 해소시켜준다. 그래서 사랑을 느끼기 위한 우리의 호기심과 노력은 멈출 줄 모른다. 니콜로 피사노의 그림 「목가시 : 다프니스와 클로에」 는 그동안 살아가면서 잊고 있었던 사랑의 감정을 되살려준다.

 

예술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예술이 어렵다하더라도 우리는 반드시 예술을 찾게 된다. 우리 삶에서 사랑이 절대로 없어서는 안 되는 것처럼 결국 예술도 우리 삶에서 때려야 뗄 수 없다. 예술은 세상의 유리벽에 갇혀 훌쩍해진 영혼을 살찌우게 만든다. 예술은 사랑의 교훈을 담은 이미지를 창조하고 우리의 마음 앞에 붙들어놓는 역할을 한다.

 

이제 예술로서 우리가 잊고 있던, 잃어버린 삶의 일부를 찾아야 한다. 그림을 통해 치유와 위로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어려운 일이 아니다. 숟가락 하나라도 품격 있는 것을 고르는 일부터 주거. 도로 등 환경을 개선하는 일까지, 광범위하면서도 구체적인 생활상의 일들이다. 『영혼의 미술관』을 전체적으로 다 둘러봤다면 이런 문장이 적힌 출구로 나가면 된다.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의 궁극적 목표는 예술작품이 조금 덜 필요해지는 세계를 건설하는 것이어야 한다” (232쪽)

 

과유불급이라고 아무리 좋은 것도 지나치면 독이 된다. 예술에 너무 좋아하는 나머지 일상과 동떨어지게 된다면 ‘치유를 위한 예술’이 아니라 ‘예술을 위한 예술’이 되고 만다. 예술 자체가 인생의 최고 목적이 아니다. 예술지상주의는 현실 지향을 포기하는 것과 다름없다. 스스로 예술이라는 벽에 갇히게 된다. 과연 드 보통의 생각대로 예술작품이 덜 필요해지는 세계가 올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세상은 점점 더 각박해져만 가고, 지친 현대의 영혼들은 또다시 『영혼의 미술관』으로 찾으러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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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 1916-1956 편지와 그림들 - 개정판 다빈치 art 12
이중섭 지음, 박재삼 옮김 / 다빈치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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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편지는 시가 된다. 그리움이 넘치면 시인은 편지를 쓴다. 곽재구는 ‘진정으로 너를 사랑한다는 한마디 새벽 편지를 쓰기 위하여’(새벽편지), 윤동주는 ‘긴긴 잠 못 이루는 밤이면 행여 울었다는 말을 말고 가다가 그리울 때도 있었노라고’ 절절한 마음을 시로 남겼다.  그리움으로 쓰는 편지가 인연의 끈이 되기도 한다. 괴테의 시에 차이코프스키가 곡을 붙인 ‘그리움을 아는 자만이’라는 가곡을 듣고 있으면 가슴 한구석이 아주 깊이 가라앉는 느낌이 든다. 한국에도 이 노래만큼이나 구구절절한 그리움을 표현한 화가가 있다. 이중섭이다.

 

 

 

 

이중섭하면 일단 고등학교 때 배운 대충의 지식으로 무지하게 가난했었다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다른 면에서 이중섭은 신화적인 존재였다. 민족적 정서를 화폭에 옮겨놓으면서 한국 근대 미술의 선구자로서 또는 천재화가로서 인정받아왔다. 그의 궁핍했던 삶이 이런 신화에 보다 많은 후광을 낸 것도 사실이다. 이런 신화적 요소를 벗고 이중섭의 예술 세계를 다시 보자는 말이 나올 정도니, 그의 삶 자체 하나하나가 역사와 예술 속에서 얼마나 고단했는지 반추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화가 이중섭의 편지는 수많은 편지 중 언제나 애잔한 빛을 띤다. 이중섭은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에게 한 번도 부치지 못한 편지를 그림으로만 남겼다. 화가의 그리움이 진하게 배어있는 편지는 그림이 된다. 불우한 천재. 한 뼘의 수식어로 남은 그의 삶을 편지가 전하고 있다.

 

작가들은 보통 자신의 세계를 작품으로 말한다. 거기에 몇 가지 기록이나 주위 사람들의 소회가 덧붙여져 한 작가의 생애가 만들어진다. 그래서 우리가 들여다 볼 수 있는 작가의 삶은 피상적일 수밖에 없다. 간혹 그들이 속살을 드러내는 경우가 있는데, 일기나 편지를 통해서이다.

 

6.25 전쟁으로 인해 피난 온 서귀포에서의 2년이 채 못 되는 시간이 이중섭에겐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꿈같은 나날이 된다. 어쩌지 못하는 가난 때문에 아내 이남덕 여사는 아이들을 데리고, 일본으로 돌아갔다.

 

 

 

 

 

 

이중섭  「여자를 기다리는 남자」  1941년

 

 

“빨리빨리 아고리(이중섭, 턱이 길다고 붙인 애칭)의 두 팔에 안겨서 상냥하고 긴긴 입맞춤을 해주어요. 언제나(지금도) 상냥한 당신 일로 내 가슴은 가득 차 있소. 하루빨리 기운을 차려 내가 좋아하는 발가락 군(이남덕, 발가락이 예쁘다고 붙인 애칭)을 마음껏 어루만지도록 해주시오. 아! 나는 당신을 아침 가득히, 태양 가득히, 신록 가득히, 작품 가득히, 살아하고 사랑하고 열애해 마지않소.” (73쪽)

 

 

일본에 있는 아내로부터 편지가 온 날이면 이중섭은 잠을 설쳤다. 여비를 마련해 준다는 친구 시인 구상의 권유에도, 서울에 여는 전시회를 위해서 새벽부터 담뱃갑 은박지에 그림을 그렸다. 아들 태성이도 그리고 태현이도 그렸다. 그 아이들이 이중섭을 타고 엉덩이를 굴러대는 그림도 그렸다. 두 아이와 아내가 자신과 함께 과일 따먹는 그림도 그렸다. 고기하고 노는 아이도 그렸다. 그리고 밤새 그 그림과 이야기를 했다.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 동봉한 이중섭의 그림

 

 

한 장을 가득 채우고도 못내 아쉬운 이중섭의 그리움은 편지지의 귀퉁이마다 작은 삽화로 다시 그려진다. 떨어져 있는 세 식구를 향해 팔을 벌린 자신의 모습, 네 식구가 서로 껴안고 있는 모습, 아내의 얼굴 등을 구석구석에 채워 넣었다. 멀리 떨어져 있는 가족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리면서 이중섭의 마음속에는 사랑하는 아내를 살포시 껴안고 싶고, 아이들과 마음껏 뛰어놀고 싶었을 것이다.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사는 예술가만큼 불완전한 존재가 있을까. 예술가란 이중섭이 그린 벌거벗은 어린이의 모습처럼 천진하고 현실감이 없어 누군가의 손길이 필요하다. 지독한 궁핍 속에서도 그림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았던 이중섭이 몸과 마음을 부려놓고 기댈 곳은 아내뿐이었을 것이다.

 

이중섭이 아내에게 보낸 편지는 마치 늘 가까이에 있는 아내에게 일상에 대해서 소곤거리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였을까. 책을 읽는 내내 자신이 얼마나 궁핍한지, 아내와 두 아들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큰지, 예술에 대한 갈망 때문에 얼마나 힘든지에 대한 그의 육성을 듣고 있는 것 같다.

 

‘나의 거짓 없는 희망의 봉오리, 나의 귀여운, 나의 기쁨의 샘, 가장 아름다운 나의 아내, 소중한 나의 남덕 군’ 이렇듯 이중섭이 아내에게 보낸 편지에는 사랑의 수식어가 넘친다. 그러나 그 수식어들은 공허하다 못해 슬프기까지 한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 듣기 좋은 말들을 무작위로 쏟아내고 있는 것 같아 그가 처해 있는 현실이 얼마나 절박한지를 깨닫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의 아내는 이 편지를 받고 얼마나 감격스러웠을까, 또 보고 싶은 마음에 얼마나 울었을까?

 

그러나 역설적으로 화가의 애절한 사연과는 다르게 그림을 오랫동안 보게 되면 분명 가난 속의 행복이 느껴진다. 고통스럽거나 찌들려 보이지 않는다. 아이들의 몸짓이 즐거워 보인다. 가족들이 행복해 보인다. 마음이 편하지 않으면 그릴 수 없는 그림이라 여겨진다. 적어도 서귀포에 생활하면서 그렸던 그림들이 그렇다. 한 평 반도 채 안 되는 공간에서 그린 그림들, 저토록 좁은 공간에서 행복한 그림을 그릴 수 있었을까? 이중섭 그림의 진가는 거기에 있다고 본다.

 

 

 

 

이중섭  「바닷가에서 물새와 노는 소년들」

 

 

먹을 것 입을 것 잠자리 그 어느 것 하나 제대로 갖춘 것은 없었지만 바닷가에서 아이들과 뒹굴어가며 게를 잡고 그림을 그렸던 이중섭. 그가 얼마나 행복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아내에게 전하는 저 아름다운 말은 가족의 사랑에서 느껴지는 행복을 말해주고 있다. 가난의 고통을 홀로 뼈저리게 느꼈을텐데 이중섭은 행복이 물질적인 조건에 있다는 것을 강력히 거부한다.

 

 

“돈 걱정 때문에 너무 노심하다가 소중한 마음을 흐리게 하지 맙시다. 돈은 편리한 것이긴 하지만, 돈이 반드시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지는 못하오. 중요한 건 참 인간성의 일치요. 비록 가난하더라도 절대로 동요하지 않는 확고부동한 부부의 사랑 그것이오. 서로가 열렬히 사랑하고 사랑하고 사랑하고 사랑한다면 행복은 우리 네 가족의 것이 아니겠소.” (59~60쪽)

 

 

 

어떤 이들은 이중섭의 그림이 단지 이중섭의 이상향을 그렸을 뿐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나는 그렇다고 보지 않는다. 그림 속의 행복은 현실에 가장 가까웠을 것이다. 이중섭은 가난 속에서도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그림으로 보여줬다. 그걸 누렸을 것이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그 어떤 것을 소유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단지 행복감을 표현하려 했던 수단으로 다가온다.

 

제주도 피난민 시절, 제대로 입지도 먹지도 못했는데 어떻게 행복할 수 있냐고 반문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했던 생활에 또 무엇이 필요했겠는가. 마음이 편하면 입는 것 먹는 것 잠자리는 그리 대수롭지 않다. 먹지 않아도 배부르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이중섭은 예술에서 중요한 것은 참 인간성의 일치이자 확고부동한 부부의 사랑이라고 강조한다. 이중섭에게 예술은 지고한 애정의 표현이다. 참된 애정이 충만함으로써 마음이 맑아지고 그로써 우주의 모든 것이 올바르게 마음에 비추어 훌륭한 작품이 탄생된다고 했다. 사랑이 이런 과정을 거쳐 예술혼으로 승화된다.

 

이중섭은 있는 그대로를 재현하는 기능공보다는 자신의 시각으로 사물을 변조하는 창조자의 꿈을 가지고 좀 더 엄밀하고 강렬한, 보다 새로운 표현에 대한 갈망이 컸다. 대담하고 다이내믹하면서도 몽환적인 붓 터치나 단순화하면서도 생동감 넘치는 선묘(線描) 그리고 선명하고 강렬한 원색은 확실히 매력적이다.

 

 

 

 

이중섭  「소」  1953년경

 

 

작품 제작에 대한 열정은 지극했다. 그는 오로지 가족과의 재회를 고대하며 매일 꼭두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제작에 몰두했다. 작품제작에 대한 불같은 열정은 그의 아내에 대한 진한 사랑과 바로 조응한다. 그가 그린 소는 단순히 들판에서 풀을 뜯어먹는 한가한 소가 아니다. 붉은 노을을 배경으로 한 황소의 눈빛은 무언가 강한 메시지를 전하려 하고 있다. 내가 가난과 불행 속에서 버텨내면서 살아갈 수 있는 힘의 근원은 사랑과 열정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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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jjoker 2014-04-29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드마라에 나왔었죠 ㅡ 책이랑 그의삶에 대해 ㅡ 반가운 마음이 한켠에 댓글을 남깁니다 ㅡ 좋은글 감사합니다

cyrus 2014-04-30 14:21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 tjjoker님. 맞아요. 갑자기 이 책이 관심을 받길래 읽어보기 시작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드라마 덕분에 책이 뜬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
 
20세기의 위대한 피아니스트 살림지식총서 418
노태헌 지음 / 살림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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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투르 루빈슈타인 - 쇼팽 '녹턴 No.1'

 

 

"행복의 비결은 바로 삶을 조건 없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좋은 삶이든 나쁜 삶이든 말이지요.”

 

피아니스트 아르투어 루빈슈타인은 자유로운 영혼이었고 삶을 지극히 사랑했다. 그는 무대에 오르는 것을 즐겼고, 무대에 나타나는 것만으로도 청중의 마음을 사로잡은 진정한 로맨티스트였다.

 

4살 때부터 한번 들은 멜로디를 기억할 정도로 '신동' 소리를 들으면서 성장했다. 젊은 루빈슈타인의 즉흥 연주는 청중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으나 비평가들은 그의 연주 테크닉에 부족함을 지적하면서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자신의 재능을 믿고 있던 루빈슈타인은 이러한 자신의 모습에 실망감을 느꼈을 터. 이때부터 루빈슈타인은 노력형 천재로 변신한다. 자신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서 열심히 연습했다. 그의 쇼팽 연주가 무미건조하다는 평도 들었으나 루빈슈타인은 쇼팽을 향한 음악적 애정을 굽히지 않았다.
 
그의 테크닉은 곡예에 가까울 정도로 뛰어나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탁월한 전달력이다. 초인적인 포르티시모에 이어서 펼쳐지는 서정적인 패시지는 비할 바 없이 맑고 섬세하다. 그는 항상 열정적이고, 유쾌하고, 부드럽다. 그는 어떤 곡이든 구조와 논리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음악혼의 정수를 명료하게 청중의 마음으로 전달한다. 지성과 감성의 완벽한 조화다. 그의 레퍼토리 중심에는 쇼팽이 있다.

 

루빈슈타인이 쇼팽을 좋아했다면 여류 피아니스트 클라라 하스킬은 모차르트를 사랑했다. 구부정한 자세, 헝클어진 잿빛 머리. 그녀의 모습은 마녀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그녀가 두 손을 건반 위로 올려놓는 순간, 사람들은 모두 숨을 죽일 수밖에 없었다. 영롱한 선율, 그것은 천상의 소리였다.

 

하스킬은 가혹한 운명을 타고났다. 눈부신 재능과 탁월한 감성으로 세계 음악계의 샛별로 떠오른 18살의 그녀에게 청천벽력과 같은 불행이 닥친다. 다발성 신경경화증. 뼈와 근육, 세포가 엉겨 붙는 무서운 병이었다. 허리는 구부러졌고 한창 피어나야 할 얼굴은 노파처럼 변해버렸다. 그녀에게 남은 것은 죽음과 같은 고독과 절망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모차르트 연주는 역경 속에서 오히려 더 빛을 발했다. 찰리 채플린은 그녀를 아인슈타인, 처칠과 함께 3대 천재로 꼽을 정도였다. 하느님과 모차르트는 곁에 두고 그녀의 음악을 듣고 싶었을까. 그녀는 지하철 계단에서 넘어져 머리를 다친 뒤 66세를 일기로 무거웠던 몸의 짐을 벗었다.

 

글렌 굴드는 기존의 피아니스트와는 다르게 기존의 정형화된 연주 관습을 파격적으로 뛰어넘은 혁신적이고 개성적인 연주를 선보였다. 지금도 음악사에서 회자되고 있을 정도로 흥미로운 에피소드를 남겼던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연주 녹음은 클래식 음악계에 선풍적인 바흐 붐을 불러일으켰다.

 

역사적인 골드베르크 변주곡 연주도 유명하지만 파격적인 기행은 그를 더욱 유명하게 만들었다. 피아노를 연주하는 굴드의 모습은 독특하다. 갈색 뿔테 안경을 눌러쓰고 자신이 직접 제작한 낮은 피아노 의자에 앉아 온 몸을 피아노 앞에 바짝 붙이고 손가락을 눕혀 건반을 어루만지듯이 연주했다. 하지만 그는 1964년 이후로는 일체의 공개적인 콘서트를 갖지 않고, 녹음실에 틀어박혀 자신의 의도대로 되풀이해 연주 편집할 수 있는 스튜디오 작업에만 전념했다.

 

『20세기의 위대한 피아니스트』는 20세기 가장 빛난 9인의 피아니스트들을 엄선하여 소개한 책이다. 그들의 연주 스타일은 물론 음악에 미친 영향력과 소소한 삶의 이야기들까지 다루어 위대한 피아니스트들의 웃음과 눈물을 이해하는 계기를 만들어준다. 특히 저자가 직접 추천한 명반 리스트가 더해져 더욱 피아노를 이해하는 길잡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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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8-08-29 2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이러스님 음악에도 조예가 있으시네요! 굿뜨!

cyrus 2018-09-01 11:01   좋아요 1 | URL
한때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기도 했어요. 요즘은 책이 더 좋아서 클래식 음악을 안 듣는 날이 많아졌어요. ^^;;
 
살림지식총서 예술-인간 정신의 위대한 발현 세트 - 전5권 - 플라톤 아카데미 행복한 책날개 선정도서 살림지식총서
권용준 외 지음 / 살림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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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투르 루빈슈타인  - 쇼팽 '녹턴 No. 1'

 

 

“행복의 비결은 바로 삶을 조건 없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좋은 삶이든 나쁜 삶이든 말이지요.”

 

피아니스트 아르투어 루빈슈타인은 자유로운 영혼이었고 삶을 지극히 사랑했다. 그는 무대에 오르는 것을 즐겼고, 무대에 나타나는 것만으로도 청중의 마음을 사로잡은 진정한 로맨티스트였다.

 

4살 때부터 한번 들은 멜로디를 기억할 정도로 '신동' 소리를 들으면서 성장했다. 젊은 루빈슈타인의 즉흥 연주는 청중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으나 비평가들은 그의 연주 테크닉에 부족함을 지적하면서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자신의 재능을 믿고 있던 루빈슈타인은 이러한 자신의 모습에 실망감을 느꼈을 터. 이때부터 루빈슈타인은 노력형 천재로 변신한다. 자신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서 열심히 연습했다. 그의 쇼팽 연주가 무미건조하다는 평도 들었으나 루빈슈타인은 쇼팽을 향한 음악적 애정을 굽히지 않았다.
 
그의 테크닉은 곡예에 가까울 정도로 뛰어나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탁월한 전달력이다. 초인적인 포르티시모에 이어서 펼쳐지는 서정적인 패시지는 비할 바 없이 맑고 섬세하다. 그는 항상 열정적이고, 유쾌하고, 부드럽다. 그는 어떤 곡이든 구조와 논리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음악혼의 정수를 명료하게 청중의 마음으로 전달한다. 지성과 감성의 완벽한 조화다. 그의 레퍼토리 중심에는 쇼팽이 있다.

 

 

루빈슈타인이 쇼팽을 좋아했다면 여류 피아니스트 클라라 하스킬은 모차르트를 사랑했다. 구부정한 자세, 헝클어진 잿빛 머리. 그녀의 모습은 마녀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그녀가 두 손을 건반 위로 올려놓는 순간, 사람들은 모두 숨을 죽일 수밖에 없었다. 영롱한 선율, 그것은 천상의 소리였다.

 

하스킬은 가혹한 운명을 타고났다. 눈부신 재능과 탁월한 감성으로 세계 음악계의 샛별로 떠오른 18살의 그녀에게 청천벽력과 같은 불행이 닥친다. 다발성 신경경화증. 뼈와 근육, 세포가 엉겨 붙는 무서운 병이었다. 허리는 구부러졌고 한창 피어나야 할 얼굴은 노파처럼 변해버렸다. 그녀에게 남은 것은 죽음과 같은 고독과 절망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모차르트 연주는 역경 속에서 오히려 더 빛을 발했다. 찰리 채플린은 그녀를 아인슈타인, 처칠과 함께 3대 천재로 꼽을 정도였다. 하느님과 모차르트는 곁에 두고 그녀의 음악을 듣고 싶었을까. 그녀는 지하철 계단에서 넘어져 머리를 다친 뒤 66세를 일기로 무거웠던 몸의 짐을 벗었다.

 

글렌 굴드는 기존의 피아니스트와는 다르게 기존의 정형화된 연주 관습을 파격적으로 뛰어넘은 혁신적이고 개성적인 연주를 선보였다. 지금도 음악사에서 회자되고 있을 정도로 흥미로운 에피소드를 남겼던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연주 녹음은 클래식 음악계에 선풍적인 바흐 붐을 불러일으켰다.

 

역사적인 골드베르크 변주곡 연주도 유명하지만 파격적인 기행은 그를 더욱 유명하게 만들었다. 피아노를 연주하는 굴드의 모습은 독특하다. 갈색 뿔테 안경을 눌러쓰고 자신이 직접 제작한 낮은 피아노 의자에 앉아 온 몸을 피아노 앞에 바짝 붙이고 손가락을 눕혀 건반을 어루만지듯이 연주했다. 하지만 그는 1964년 이후로는 일체의 공개적인 콘서트를 갖지 않고, 녹음실에 틀어박혀 자신의 의도대로 되풀이해 연주 편집할 수 있는 스튜디오 작업에만 전념했다.

 

『20세기의 위대한 피아니스트』는 20세기 가장 빛난 9인의 피아니스트들을 엄선하여 소개한 책이다. 그들의 연주 스타일은 물론 음악에 미친 영향력과 소소한 삶의 이야기들까지 다루어 위대한 피아니스트들의 웃음과 눈물을 이해하는 계기를 만들어준다. 특히 저자가 직접 추천한 명반 리스트가 더해져 더욱 피아노를 이해하는 길잡이가 될 것이다.

 

 

※  플라톤 아카데미 행복한 책날개 선정도서 - 20세기의 위대한 피아니스트 (노태헌 저, 살림지식총서 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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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의 위대한 지휘자 살림지식총서 417
김문경 지음 / 살림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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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cene #1  같지만 다른 곡의 해석

 

클래식 애호가들은 흔히 “같은 곡이라 하더라도 지휘자의 해석에 따라 다르게 들린다”고 말한다. 좀 더 쉽게 설명하기 위해서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지휘자로 평가받는 카라얀과 번스타인을 예로 들겠다.

 

같은 곡으로 오케스트라 연주를 지휘하는 이들의 모습을 동영상으로 보게 되면 확연한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이들의 지휘 장면을 시간으로 재면 같은 부분을 연주하는 데 번스타인은 25초, 카라얀은 21초가 걸린다고 한다. 즉 템포가 다르다는 점은 쉽게 알 수 있다. 번스타인이 느릴 때는 느리게 빠를 때는 더 빠르게 하는 스타일이라면 카라얀은 전반적으로 빠르고 박력 있다고 볼 수 있다. 긴 교향곡 전체를 비교해서 듣는다면 이런 차이는 더 명확해질 것이다. 곡에 대한 해석은 물론 지휘자마다 표정도 손짓도 다양하다. 이처럼 직접 콘서트장에 클래식 음악 연주를 듣는다면 음반을 통해서 느낄 수 없는 지휘자의 음악적 해석을 만끽할 수 있다. 그들의 뛰어난 지휘가 없다면 우리의 귀를 즐겁게 하고 심장을 울리게 만드는 연주가 되지 못했으리라. 

 

음악가들 중에서도 정말 뛰어난 실력을 가진 사람, 위대한 음악가를 부를 때 마에스트로나 비르투오조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악기 연주에 있어서 매우 뛰어난 테크닉과 실력을 가진 연주자를 비르투오조(Virtuoso, 명인 名人)라고 부르고, 특별히 지휘자일 경우에 그 사람을 가리켜 마에스트로(Maestro)라고 부르는 게 일반적이다.

 

 

 

 Scene #2  개성이 뚜렷한 20인의 지휘자 

 

클래식 음악사에 뚜렷한 자취를 남긴 유명 지휘자 20명의 예술혼과 일생을 간략하게 조명하고 정리한 『20세기의 위대한 지휘자』에는 그야말로 지휘봉 하나로 청중, 아니 전 세계인의 귀와 마음을 압도했던 명지휘자들이 등장한다.

 

흔히 지휘자라고 하면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의 강마에가 먼저 떠올릴 것이다. 기인의 풍모가 느껴질 정도로 고집불통인데다가 남들 앞에서 독설을 마다하지 않는다. 만약에 그렇게 생각한다면 여기 나오는 몇 몇 지휘자들은 상당히 억울함을 느낄 수 있겠다.

 

그래도 독선적이면서도 자신의 음악 세계를 끝까지 밀고 나가는 ‘완벽형’ 혹은 ‘독재자형'인 강마에의 스타일과 가까운 지휘자라면 아르투로 토스카니니일 것이다. 이탈리아판 강마에라고 보면 된다.

 

토스카니니가 추구한 음악세계는 완벽한 음(音) 자체였다. 그는 음의 멜로디와 세밀한 흐름까지 완벽하게 암기할 정도로 오로지 음악에 충실했다. 연주자 개인의 감정에 따른 군더더기와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하에 이루어지는 음과 템포와 리듬에 대한 자의적인 해석을 거부했다. 오직 작곡가의 의도에만 충실했다. 이로써 그의 지휘는 음악을 객관적인 궤도에 올려놓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그 같은 지휘를 고집하는 그를 ‘독재자’라고 비꼬기도 했다.

 

그는 리허설 때 단원들의 연주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지휘봉을 꺾거나 악보를 찢는 등 과격한 성격으로 유명했다. 지휘봉이 쉽게 부러지지 않으면 손수건이나 윗옷을 찢기도 했다. 틀린 음이나 어설픈 음을 발견하면 ‘노! 노!’(No! No!)라고 불같이 호령을 토해냈고, 단원들은 그런 그를 ‘토스카노노’라고 불렀다. 그의 ‘No!' 성격은 진짜 독재자도 포기할 정도로 완고했다. 무솔리니가 이끄는 파시스트의 찬가 연주를 거부하여 그는 무솔리니의 눈 밖에 나서 미국으로 망명했으니 실은 무솔리니가 고집을 굽혔다는 일화도 전해 내려오고 있다. 진실에 어떻든지 간에 아무리 권력으로 세계를 호령하는 독재자도 지휘봉 하나로 음악을 호령하는 고집스러운 독재자를 이길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보다 더한, 어쩌면 강마에를 뛰어넘을 정도로 독설을 입에 달고 사는 지휘자가  등장했으니 그가 바로 세르지우 첼리비다케이다. 그의 독설을 겨냥하는 상대는 재미있게도 이 책에서 등장하는 명지휘자들이다. 그의 독설 집중 포격을 맞은 지휘자의 이름을 열거하면 혀를 내두른다. 토스카니니, 카를 뵘, 번스타인 심지어 ‘음악의 황제’ 카라얀까지도. 첼리비다케는 카라얀을 ‘유능한 비즈니스맨 아니면 귀가 먹은 인간’이라고 언급했다.

 

토스카니니, 첼리비다케와 반대로 브루노 발터는 유순한 성격의 지휘자라고 보면 된다. 토스카니니, 푸르트뱅글러의 명성에 약간 가려진 면이 있지만, 그래도 당대의 여느 지휘자들보다 인간적이고 겸손했으며 이러한 그의 인품이 언제나 음악에 잘 녹아들어 있다. 그래서 그의 음악적 해석은 상당히 온순하면서도 따스한 느낌이 든다.

 

푸르트벵글러는 탁월한 지휘 능력에 지금도 클래식 마니아 사이에 회자될 정도로 훌륭한 녹음의 명반을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나치 협력자’라는 낙인 때문에 명성마저도 흠 잡히고 마는 불행한 지휘자다. 그는 나치의 ‘제3제국’을 대표하는 음악가로 나치 친위대 공연이나 히틀러의 생일 축연을 지휘한 경력으로 인해 제2차 세계 대전 후 전범재판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음악 활동이 나치 선전의 정치적 목적으로 사용되는 사실을 알았기에 각종 핑계를 대면서 나치와의 관계에 거리를 두려고 노력했다. 다행히 무죄 판결을 받아 베를린필 상임 지휘자로 복귀해 죽을 때까지 재직했다.

 

그의 지휘 자세는 독특하다. 그의 지휘를 바라본 소프라노 가수는 ‘눈에 보이는 음악의 물결’이라고 표현했지만, 연주할 때 그의 손짓을 주목해야 하는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입장에서는 까다로운 지휘자였다. 지휘 자세가 어색할 정도로 부자연스럽고 격정적인 동작은 흡사 경련에 가깝다. 그래서 단원들은 어디서 음을 내야 할지 난감할 정도였다고 한다.

 

 

 

 Scene #3  강마에가 그리워지는 이유  

 

『20세기의 위대한 지휘자』는 지휘자의 유명한 일화를 통해 그들의 예술성을 접근하고 있어서 지휘자의 세계를 알고 싶은 독자를 위한 흥미로운 클래식 음악 입문서로 적당하다. 그리고 20인의 지휘자별 디스코그래피 중에 들을만한 명반 CD와 연주 현황 녹음 영상과 일부 음반의 미흡한 부분까지 정리하고 있다. 생존해 있는 현역 지휘자들이 좀 더 추가됐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여기에 소개된 지휘자들은 꼭 기억해 두면 좋은 마에스트로들이다.

 

가끔 우리는 과거의 명장을 그리워할 때가 있다. 지금도 카라얀의 흔적을 그리워하고, 그의 명반과 연주 실황 영상을 감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과거 명성을 날리던 옛 지휘자들을 그리워하고 기억하는 것은 단순히 꼭 옛날 지휘자라서 그런 걸까. 예술의 본령은 개성인데 시간이 점점 지나면서 토스카니니, 카라얀, 번스타인 같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개성이 뚜렷한 지휘자를 보기가 어려워졌다. 지휘자의 개성이 사라질수록 그 음악의 개성도 사라진다. 그저 ‘지휘’라는 행위만 남아있을 뿐이다.

 

지휘자를 바라보고 선호하는 이유는 사람들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진짜 위대한 지휘자는 곡을 철저히 분석하고 오케스트라를 혹독하게 훈련시킬 정도로 카리스마 넘치는 지휘자일 것이다. 그래서 예전에 우리가 강마에의 모습을 그렇게도 열광했던 것일까. 과연 먼 훗날에 토스카니니나 첼리비다케처럼 강마에 같은 명지휘자가 등장하게 될까. 갑자기 드라마 속 가상의 지휘자인 강마에가 그리워진다. 오히려 그런 괴팍한 모습이 지휘자 본인에게는 오로지 완벽한 음악으로 빚어내기 위해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자신만의 역량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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