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르섹슈얼리티 - 초현실주의와 여성예술가들1924-47
휘트니 채드윅 지음 / 동문선 / 199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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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초현실주의(surrealism)꿈과 무의식 세계를 지향하는 사조다. 초현실주의자들은 친숙한 사물들을 엉뚱한 방식으로 배치하여 보는 사람에게 충격을 주도록 하였다. 그들은 초현실주의가 인간에 잠재된 무의식 세계를 해방하게 만드는 이념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초현실주의자들이 강조하는 것은 사회적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상상력이다.

 

자유로운 창조를 가능하게 하는 초현실주의는 여성에게 새로운 세계를 보여준다. 여성 초현실주의자들이 보고 싶은 세계는 여성을 속박하고 억압하는 가정의 울타리가 사라진 세상이다. 남성 초현실주의자들도 여성의 자유에 관심을 보였지만, 여성이 처한 현실적인 문제에 소극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들은 여성의 자유자신의 성적 욕망을 숨기지 않는 개방적인 태도로 해석했다. ‘여성의 자유를 자기 입맛대로 해석한 남성 초현실주의자들은 창작에 영감을 주는 뮤즈(Muse)와 같은 여성상을 제시한다. 그들은 여성상에 팜 앙팡(femme-enfant: 아이 같은 여성)이라는 이름까지 붙인다. ‘아이 같은 여성은 꿈과 무의식 세계에 있는 존재이다. 그녀들은 남성을 유혹하여 이들을 현실 세계에서 해방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아이 같은 여성이미지는 오랫동안 남성 초현실주의자들의 문학 작품과 예술 작품의 단골 소재가 된다. 이로 인해 여성 초현실주의자들은 남성 초현실주의자들에게 예술적 영감을 준 조력자로 알려진다. 그러나 실제로 여성 초현실주의자들은 남성을 위한 조력자에 머무르지 않았으며 창작 활동에 전념했다. ‘예술가로 살아온 그녀들의 진짜 모습은 남성 초현실주의자들이 만든 비현실적인 여성상에 가려졌다. 전시회를 열어 자신들의 작품들을 알리느라 여념이 없었던 남성 초현실주의자들은 여성 동료들의 업적을 제대로 언급하지 않았다.

 

 

 

 

 

 

 

미국의 미술사가 휘트니 채드윅(Whitney Chadwick)은 초현실주의자들이 남긴 모든 기록물(잡지, 회고록 등)과 전시 카탈로그를 조사하고, 생존한 여성 초현실주의자들을 직접 만나 인터뷰를 한다. 십 년 동안 초현실주의 연구에 매진한 그녀는 여성 예술가들에 대한 기록이 적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그리하여 채드윅은 1985년에 Women Artists and the Surrealist Movement를 발표하여 미술사에 기록되지 않은 여성 초현실주의자들의 예술 활동을 소개한다. 이 책은 1992년에 쉬르섹슈얼리티: 초현실주의와 여성 예술가들 1924-47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다. 쉬르(sur)‘~위에를 뜻하는 프랑스어 전치사. 그래서 초현실주의를 뜻하는 프랑스어를 쉬르리얼리즘(surréalisme)이라고 읽는다. 쉬르섹슈얼리티는 섹슈얼리티를 넘어서다(초월하다)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런데 쉬르섹슈얼리티는 사전에 나오지 않는 단어이며 학계에서 많이 사용되는 용어가 아니다. 이 단어를 누가 만들었는지 알 수 없지만, 번역본 제목으로 쓰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번역본의 표제가 되어야 할 초현실주의와 여성 예술가들은 엉뚱하게도 부제가 되었다. 이 책에 나오는 여성 초현실주의자들은 자유분방한 연애를 즐겼다. 그녀들은 정숙한 아내’, ‘일부일처제’의 틀에 갇힌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넘어서려고 했다. 하지만 Women Artists and the Surrealist Movement는 여성 초현실주의자들의 개방적인 섹슈얼리티를 보여주기 위한 책이 아니다. 이 책의 핵심 주제는 열정적으로 예술 활동에 참여한 여성 초현실주의자들의 삶이다.

 

Women Artists and the Surrealist Movement페미니즘 미술사의 명저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하지만 이 책을 번역한 출판사는 원서의 명성에 흠집을 냈다. 계속 보기 힘들 정도로 외국어 표기와 번역이 엉망이다. 심지어 잘못된 내용도 있다. 고쳐야 할 게 너무 많아서 이 서평에 전부 다 언급하기 힘들다. 농담이 아니라 이 책의 정오표를 따로 만들어야 한다. 책의 역자 이름은 편집부. 편 씨의 성을 가진 집부라는 이름의 역자는 아닐 테고, 전문 번역자가 아닌 출판사 편집부 직원 여러 명이 참여했을 것으로 추측된다예전부터 번역 문제로 독자들의 원성을 산 출판사의 명성(?)을 확인할 수 있는 번역본이다. 책의 번역이 이상하다고 느껴지면 그 책을 만든 출판사를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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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06 15: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3-06 15: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3-10 17: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책 수집은 현재진행형이다. 책 수집을 중단하게 만든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책 모으는 버릇은 죽을 때까지 지속된다. 집에서 생활하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여태까지 사놓고 한 번도 펼쳐보지 않은 책들에 눈길이 간다.

    

 

 

 

 

 

 

 

 

 

 

 

 

 

 

 

* [절판] 반 고흐 명작 400(마로니에북스, 2008)

* [절판] 마그리트 명작 400(마로니에북스, 2008)

* 달리 명작 400(마로니에북스, 2008)

    

 

 

온종일 글자로 채워진 책을 보면 지루하다. 그럴 땐 도판이 많은 책을 읽는다. 특히 명작 400시리즈는 가끔 생각날 때마다 보는 도판집이다. 이 시리즈는 유명 예술가가 그린 작품 400선을 어떠한 한 줄의 설명 없이 도판으로 보여주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물론 이 책에 아예 도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서문, 예술가 연보, 색인은 있다. ‘명작 400시리즈로 나온 모든 책의 서문을 쓴 사람은 호주의 미술비평가 로버트 휴즈(Robert Hughes). 국내에 출간된 명작 400선 시리즈는 총 다섯 권이다. 반 고흐(Vincent van Gogh), 마티스(Henri Matisse), 마그리트(René Magritte), 달리(Salvador Dali), 피카소(Pablo Picasso).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책은 반 고흐, 마그리트, 달리. 나머지 두 권을 구매하면 시리즈 전체를 소장하게 되는데, 책 한 권 모으는 일이 쉽지 않다. 현재 달리를 제외한 나머지 네 권은 품절 또는 절판 상태다. 이 책들이 알라딘 온라인 중고 샵이나 알라딘 오프라인 서점에 나올 확률은 낮다. 그러나 정가의 50% 정도 할인된 가격으로 판매되므로 오매불망 기다릴 수밖에 없다. 품절 또는 절판된 책들이 판매자 중고 샵에 등록되어 있지만, 중고가 금액이 책의 정가보다 높다.

 

반 고흐와 달리는 국적, 성장 과정, 활동 시기가 완전히 다른 예술가이다. 예나 지금이나 고흐를 평가하면 광기에 사로잡힌 미치광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달리도 생전에 눈에 띄는 기이한 행동과 발언을 일삼은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달리의 특이한 행동은 병적인 증세라기보다는 세상 사람들의 존경과 관심을 받고 싶어서 하는 과장된 퍼포먼스(performance)에 가깝다. 반 고흐와 달리의 공통점은 광기가 아니다. 이 두 사람의 진짜 공통점은 농민 화가에 관심을 가졌다는 사실이다.

    

 

 

 

        

 

 

 

농민 화가의 정체는 바로 장 프랑수아 밀레(Jean-Fracois Millet). 그는 농촌의 풍경을 그리는 화가가 아니라 농민들의 생활상을 있는 그대로 묘사함으로써 미술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기에 이른다. 반 고흐는 밀레를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그러나 그는 밀레의 작품 몇 점을 모사했을 정도로 밀레를 존경했다. 반 고흐는 동생 테오(Theo van Gogh)에게 보낸 편지에서 밀레를 젊은 화가들의 아버지라고 언급했다(18854). 반 고흐가 가장 좋아한 밀레의 그림은 너무나도 유명한 밀레의 대표작 만종이다. 반 고흐는 밀레의 그림에서 어떤 매력을 발견한 것일까. 반 고흐는 밀레의 그림에서 평범한 미학의 매력을 발견한다. 밀레는 농촌에 생활하면서 농민들에게서 화려하고 소란스러운 도시에 볼 수 없는 생명력을 발견한다. 도시인들은 농민의 삶을 그저 평범한 일로 치부한다. 당연히 도시 생활에 익숙한 예술가와 비평가들은 농촌 생활에 대해 잘 모르거나 낯설어한다. 그들은 밀레의 그림을 이해하지 못한다. 오히려 불평등 문제에 관심 없거나 혁명을 두려워하는 보수적인 비평가들은 밀레가 정치적인 의도를 보여주기 위해 가난한 농민들을 그린다고 비난한다. 하지만 밀레는 자신의 정치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농민의 모습을 그리려고 하지 않았다. 밀레는 농민들의 엄숙한 모습에 매료되었고, 잔잔하게 흘러나오는 고귀한 아름다움을 재현했다. 그래서 밀레의 그림은 종교화 같은 느낌이 든다. 반 고흐는 밀레처럼 평범한 농민을 소재로 삼아 종교화 같은 숭고한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밀레와 반 고흐의 관계는 그림으로 이어진 스승과 제자에 가깝다.

 

 

 

 

 

 

    

 

달리는 고흐 못지않게 밀레의 그림에 상당히 애착을 느낀 예술가이지만, 그는 밀레의 그림에 과도한 상상을 덧붙여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만종을 자세히 들여다본 달리는 감자를 담은 바구니가 있는 자리에 원래 농민 부부의 죽은 아기를 안치한 관이 그려져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의 발언은 만종의 무서운 진실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지게 만든 원인이 된다. 실제로 만종에 자외선을 투사하여 분석해 본 결과, 그림 속 바구니의 위치에 작은 관과 비슷한 형체를 발견했다. 그러나 그 형체가 정말로 죽은 아기의 관인지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만종에 대한 달리의 해석을 믿는 호사가들(항간에 떠도는 무서운 이야기를 주로 소개하는 블로거들도 포함된다)은 처음에 밀레가 죽은 아기의 관이 그려진 만종을 그렸다가 친구의 충고(‘그림이 너무 무섭다’)를 듣고 난 후 바구니로 고쳤다고 주장한다. 말도 안 되는 주장이다. 그런 주장은 밀레의 친구 알프레드 상시에(Alfred Sensier)가 쓴 밀레 전기 자연을 사랑한 화가 밀레()에 나오지 않는다.

 

 

 

 

 

 

    

 

아무튼 달리는 만종을 보면서 불길한 기운을 느꼈고, 만종에 자신의 심리 상태를 반영한 그림들을 그렸다. 달리는 만종에 나오는 인물들과 대상(괭이, 바구니, 외바퀴 수레)을 다양한 방식으로 그렸.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만종의 저녁놀 풍경은 달리의 그림에서는 황량한 사막이 된다. 달리는 적막한 기운이 감도는 환상적인 풍경을 표현하여 초자연적인 숭고함을 전달하려고 했다. 거대한 사막으로 표현된 상상의 공간 한가운데에 서 있는 인간의 이성은 나약하고 초라하다. 만종을 패러디한 달리의 그림은 카스파 다비트 프리드리히(Caspar David Friedrich)가 그린 풍경화의 초현실주의적 버전이라 할 수 있다.

 

 

 

 

 

 

 

 

 

 

 

 

 

 

 

 

 

 

 

 

 

 

 

 

 

 

 

 

 

 

 

 

 

 

 

* [절판] 즈느비에브 라캉브르 외 밀레(창해, 2000)

* 박서보 엮음 밀레(재원, 2003)

* [절판] 노성두 외 자연을 사랑한 화가들(아트북스, 2005)

* [절판] 박홍규 빈센트가 사랑한 밀레(아트북스, 2005)

 

 

 

 

반 고흐와 달리의 생애와 예술을 소개한 책들은 많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밀레에 관한 책은 생각보다 적다. 게다가 그 책들 대부분은 절판되었다. 창해 ABC’ 시리즈로 나온 밀레백과사전 형식으로 편집된 문고본이다. 재원 출판사의 밀레는 도판집이다. 아무래도 도판집의 특성상 작품에 대한 해설이 많지 않다. 미술사학자 노성두 외에 여러 명의 필자가 참여한 자연을 사랑한 화가들(아트북스)은 밀레와 그의 절친한 동료 화가들이 속한 바르비종파(École de Barbizon)에 관한 책이다. 다작으로 유명한 박홍규 교수의 빈센트가 사랑한 밀레(아트북스)는 밀레와 반 고흐의 연관성에 초점을 맞춘 책이다. 밀레의 그림이 반 고흐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알고 싶으면 이 책을 참고하면 된다. 앞서 언급한 상시에의 밀레 전기는 가난한 무명 화가 밀레를 일약 스타 화가로 올려놓게 한 책이다. 그러나 상시에는 밀레의 그림을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일을 했다. 그림이 잘 팔리려면 고객에게 화가와 그의 작품을 대대적으로 홍보해야 한다. 결국 상시에의 밀레 전기는 밀레의 그림을 상품으로 알리려고 만들어진 전기로 위장한 광고인 셈이다. 따라서 후대의 연구자들은 상시에를 밀레에 부와 명예를 가져다준 은인으로 평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밀레의 그림을 팔기 위해 화가의 독창성을 막은 상업주의자라고 비판한다. 자연을 사랑한 화가들도 상시에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는데, 이 책에 따르면 상시에는 밀레의 작품을 팔기 위해 밀레 신화를 꾸며 낸 장본인이다. 상시에는 밀레를 착하고 신앙심 깊은 인물로 묘사했는데 실제 밀레의 성격은 전기에서 묘사된 모습과 다르다고 한다. 그러므로 상시에의 밀레 전기는 100% 신뢰하면서 읽지 않는 것이 좋다.

 

 

 

 

 

Trivia

      

* 달리 명작 400134쪽에 황혼의 자폐증이라는 제목의 그림 도판이 있다. 밀레의 만종을 패러디한 그림인데, 황혼의 자폐증은 오역이다. 원제는 ‘Atavism at Twilight’이다. ‘Atavism’격세유전을 뜻하는 단어다. 따라서 올바른 작품명은 황혼의 격세유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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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0-03-04 16: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저게 다 절판됐구나. 다시 나오지도 않네.ㅠ
대단하고 부럽다.

cyrus 2020-03-04 22:57   좋아요 0 | URL
세 권 모두 알라딘 서점, 알라딘 온라인 중고샵에서 구매했어요. ^^

2020-03-04 17: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20-03-04 23:01   좋아요 0 | URL
‘해설 없는 그림 감상’에 장단점이 있어요. 장점은 그림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해줘요. 하지만 해설에 익숙한 사람들은 그림을 감상하는 데 불편함을 느낄 거예요.

저도 신경숙의 소설을 읽지 않았어요. 그래서 저 소설 표지에 있는 그림이 달리의 작품이라는 사실을 최근에 알았어요. ^^
 
단숨에 읽는 여성 아티스트 - 16세기부터 오늘날까지 가장 뛰어난 여성 예술가 57인의 삶과 작품
플라비아 프리제리 지음, 김영정 옮김 / 시그마북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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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없었는가?(Why Have There Been No Great Women Artists?) 1971년 미국의 미술사학자 린다 노클린(Linda Nochlin)은 이 도발적인 제목의 논문으로 남성 중심의 세계 미술계에 문제를 제기했다. 그녀는 예술이란 오로지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한 개인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사회구조 속에서 발생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위대한 여성 미술가가 나올 수 없었던 원인은 여성에게 불리한 사회 환경과 교육제도 때문이라는 것이다. 미술뿐 아니라 모든 영역의 예술이 이 질문에서 벗어나지 않아 보인다. “왜 위대한 여성 아티스트는 없었는가?” 단숨에 읽는 여성 아티스트에 부제를 붙인다면 이런 이름이 적합하지 않을까.

 

단숨에 읽는 여성 아티스트16세기부터 현재까지 위대한 여성 예술가 57인의 삶을 조망한 책이다. 연대순으로 여성 예술가들의 생애와 작품 관련 정보를 요약하여 서술했다. 이 책은 여성 화가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은 여성 사진작가, 조각가, 행위예술가들도 소개하고 있어서 동시대 예술을 선도하는 여성 아티스트들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지금까지 미술사는 남성 중심, 서구 중심으로 기록되었다. 단숨에 읽는 여성 아티스트아시아, 남미 출신의 여성 예술가들이 나오는데, 이런 구시대적 경향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책에 소개된 유럽과 영미 출신 여성 예술가와 비교하면 아시아, 남미 출신의 여성 예술가의 수는 적은 편이며 아프리카 출신의 여성 예술가는 단 한 명도 없다. 또 아쉬운 점은 여성 건축가도 없다는 것이다.

 

단숨에 읽는 여성 아티스트는 책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50여 명이 넘은 여성 예술가를 하루 만에 알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이 책은 미술 지식이 없는 독자들이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입문서이다. 독자들이 짧은 시간에 여성 예술가들에 대한 내용을 이해할 수 있도록 전문적인 작품 분석은 과감히 생략했고, 여성 예술가들의 주요 업적과 대표작을 간략하게 언급했다. 미술에 대한 관심도가 중급 이상인 독자들은 이 책 한 권을 읽는 것만으로도 아주 중요한 예술가 몇 명이 빠진 듯한느낌을 받을 것이다. 특히 자기가 좋아하는 여성 예술가가 이 책에 언급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아쉬움이 크게 느껴질 것이다. 나는 이 책의 저자가 무슨 기준으로 위대한 3을 제외한 채 57인의 여성 예술가를 소개했는지 궁금하다. 내가 생각하는 위대한 3은 너무나도 유명한 여성 예술가이기 때문이다(이번 주 안으로 이들이 누군지 설명하는 글을 공개하겠다) . 단숨에 읽는 여성 아티스트는 분명 좋은 책인데, 여러모로 부족한 점이 많다.

 

 

 

 

Trivia

 

 

* 책 뒤에 여성 중심의 세계사 연표용어 해설이 있다.

 

 

* <용어 해설> 170쪽에 입체파를 설명한 내용이 있다. 그 내용의 첫 문장은 이렇다.

 

 

조지 바로크와 파블로 피카소로부터 시작된

현실 표현에 대한 접근법 중 하나.

    

 

조지 바로크가 아니라 조르주 브라크(Georges Braq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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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11 09: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20-03-01 19:00   좋아요 0 | URL
여성이 그린 작품을 대놓고 무시하는 시절이 있었어요. ‘예술’로 취급 안 한 것이죠. ^^;;

페크pek0501 2020-02-11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입문서, 환영합니다.

cyrus 2020-03-01 19:00   좋아요 0 | URL
정말로 누구든지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입문서입니다. ^^

카스피 2020-02-12 14: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에는 안나오지만 저는 로댕의 연인으로 유명했던 카미유 클로델 역시 안타까운 여성 예술가란 생각이 듭니다.카미유는 비롯 소아바미역시만 딸의 재능을 알아본 아버지의 전폭적인 지지아래 유명 예술가로서의 재능을 꽃피우려고 했지요.그런데 이때 로댕을 만나게 되과 그와 20살의 나이차임에도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로댕은 그녀 덕에 예술적 영감을 받으면서 조각가로서 승승장구를 하게 되지만 까미유는 로댕의 연인이란 타이틀 덕분에 그녀의 작품은 실제 예술적 평가를 못 받았다고 하지요.

cyrus 2020-03-01 19:01   좋아요 0 | URL
제가 리뷰한 책에 카미유 클로델이 빠져 있습니다... 제가 소개하고 싶은 여성 예술가 중 한 명을 맞추셨네요. ^^

Angela 2020-02-18 0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흥미로운 책이네요. 읽어봐야 겠어요~단숨에 읽는다니 더 좋아요 ㅎ

cyrus 2020-03-01 19:02   좋아요 0 | URL
금방 읽을 수 있는 책이라서 다 읽고 나면 아쉬울 거예요.. ^^;;
 
오버레이 - 먼 과거에서 대지가 들려주는 메시지와 현대미술에 대한 단상
루시 R. 리파드 지음, 윤형민 옮김 / 현실문화A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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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남서부에 있는 다트무어(Dartmoor)코난 도일(Conan Doyle)의 소설 바스커빌 가의 개에 나오는 지역이다. 예로부터 다트무어에 전혀 내려오는 유령 개의 전설을 셜록 홈스(Sherlock Holmes)가 명쾌한 추리로 해결해버린다. 바스커빌 가의 개는 홈스의 동료 왓슨 박사(Dr. Watson)의 활약상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왓슨은 혼자 다트무어에 가서 사건의 단서들을 수집한다. 홈스가 아주 복잡한 사건을 맡은 상태라 런던을 떠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다트무어에서 지내는 동안 자신이 직접 전설의 유령 개가 나타났다는 곳을 관찰하고, 지역 주민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사건의 실마리를 찾으려고 한다. 그런 다음에 자신이 보고 들은 것들은 편지로 써서 런던에 있는 홈스에게 보고한다. 홈스에게 보내는 왓슨의 편지를 보면 다트무어의 자연경관을 묘사하는 내용이 나온다. 왓슨은 다트무어에 거주했던 고대인들이 남긴 고인돌과 거석들을 언급한다. 실제로 영국의 남서부 지역에 가면 고대 거석들을 만나볼 수 있다. 영국 남서부 지역에 있는 고대 거석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솔즈베리 평원에 있는 스톤헨지(Stonehenge).

 

1977년 영국의 미술비평가 루시 리파드(Lucy Lippard)는 다트무어에서 산책하다가 땅바닥에 있는 무언가에 발이 걸려 넘어졌다. 리파드는 자신을 넘어지게 만든 물체가 열석(列石)의 한 일부라는 것을 확인한다. 그녀는 돌을 만졌다. 그 순간 현현(顯現: 평범하고 일상적인 대상 속에서 갑자기 경험하는 새로운 감각 혹은 통찰)와도 비슷한 체험을 한다. 그리고 그녀는 이 특별한 체험을 매개로 고대 미술을 현재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그 현현의 소산이 바로 오버레이(overlay)라는 제목이 붙여진 한 권의 책이다.

 

오버레이는 덮어씌우다라는 의미를 지닌 단어이다. 시간에 따라 관습과 문화는 조금씩 변한다. 그러나 리파드는 매일 변화하는 것들을 오버레이로 규정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고대의 문화와 관념 위에 이전과 다른 새로운 문화와 관념들이 하나하나씩 덮어씌워지고, 그런 일련의 과정을 거쳐서 지금의 현대미술이 만들어진 것이다. 미술의 역사를 거대한 지층의 형태와 같다고 보면 된다. 리파드는 이 오버레이라는 개념을 통해 오랜 시간 켜켜이 쌓인 지층처럼 역사를 이어온 미술이 어떻게 발전했는지를 보여준다.

 

이 책은 현대인들이 소홀하게 여기는 선사시대의 미술과 그 문화에 주목한다. 선사시대 미술은 미술사의 첫 장을 장식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를 사는 우리는 머나먼 과거의 미술과 문화를 낯설어하며 그것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어떤 이는 이렇게 반문할 것이다. 선사시대의 돌덩어리를 이해하는 일은 고고학자들의 몫인데 왜 미술 연구가들이 그것을 주목하는지 알 수 없다고. 또 고대 거석문화가 현대미술과 무슨 연관이 있느냐고 말이다.

 

알게 모르게 현대 미술가들은 고대 유적지와 유물에 매료되었고, 여기에 영감을 얻어 작품을 만들었다. 그래서 리파드는 고대 문화에 영감을 얻은 예술가와 그들의 작품들을 언급하면서 세월의 간극을 뛰어넘어 고대미술과 현대미술을 이어주는 연결고리를 주목한다. 그 연결고리는 일상과 예술이 한 겹으로 포개져 있던 과거에 대한 그리움(nostalgia)이다. 과거의 예술은 화려하지 않다. 고대인들은 주변에 구할 수 있는 친숙한 소재들을 재료로 삼아 공예품을 만들거나 그림을 그렸다. 예를 들면 고대인들은 돌을 강렬한 기운을 지닌 것으로 여겼고,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기 위해 거석을 세우거나 인형을 만들었다. 고대인의 일상 속에는 예술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래서 미술사가들은 미술의 기원이 선사시대에서 찾는다.

 

오버레이1983년에 출간된 책이다. 책 속에는 과거가 되어버린 그때 당시의 예술 경향이 소개되어 있다. 이때는 대지 미술과 퍼포먼스 미술이 유행하고 있었다. 저자는 자연을 소재로 거대한 작품을 만드는 대지 미술 예술가들의 창작 의도는 태초의 자연 상태나 선사시대의 상태로 회귀하는 것이라고 분석한다. 대지미술은 갑자기 등장한 새로운 미술이라기보다는 지나간 시간과 문화가 오버레이 되면서 만들어진 원시적 지층에 남아있는 고대미술의 흔적이다.

 

이전 세대의 예술을 거부한다고 해서 새로운 예술이 나오는 건 아니다. 모든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예술작품을 만들려면 과거를 알아야 한다. 세계 미술사를 바꾼 창의적인 작품들은 단순히 과거를 뛰어넘은 예술가 한 사람의 천재성에서 나왔다기보다는 과거에 접속하려는 예술가들이 고대미술의 장점에 영감을 얻어서 만들어진 것이다. 오버레이 된 미술은 역사’로 남은 인류의 문화적 유산이 아니다. 과거와 현재가 넘나드는 곳이며 지금도 과거의 예술적 아이디어가 살아 숨쉬고 있는 역동적 현장이다.

 

 

 

 

Trivia

    

 

 

  

* 34쪽에 있는 도판(데니스 오펜하임(Dennis Oppenheim)의 대지 미술 작품 <별의 활주(Star skid)>, 위의 사진이 오펜하임의 작품)18쪽에 있는 도판(영국 다트무어에 있는 청동기 시대의 열석)으로 잘못 실려 있다.

    

 

 

* 천문고고학의 기원은 1740윌리엄 스튜켈리가 스톤헨지가 북서 방향, “낮이 가장 긴 날 태양이 떠오르는 곳 부근을 향한다고 지적한 데서 시작된다. 그 시절에 스톤헨지는 로마인들이 세운 것으로 여겨졌지만, 스튜클리는 멀리 떨어져 있는 고대의 고분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 (154)

 

스튜클리스튜켈리의 오식이다.

 

    

 

* 우리가 민주주의의 올가미에 걸리면어떻게 되는지에 대해 쾌할하면서도 절망 섞인 견해를 밝히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226)

 

쾌할하면서도쾌활하면서도로 고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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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ULA : 현대미술의 여섯 가지 키워드
오시안 워드 지음, 이슬기 옮김 / 그레파이트온핑크 / 2017년 5월
평점 :
품절


 

 

혼자 보는 미술관의 저자인 미술평론가 오시안 워드(Ossian Ward)는 자신만의 감각으로 미술작품을 감상하라고 조언한다. 그는 이 책에서 백지상태를 의미하는 단어인 타블라 라사(TABULA RASA)를 강조한다. 선입견이 없는 상태로 그림을 보라는 것이다. ‘타블라 라사는 열 개의 알파벳으로 이루어진 단어인데, 이 책에서는 작품 감상과 관련된 열 가지 공식의 앞 글자를 뜻하기도 한다. ‘TABULA’시간(Time), 관계(Association), 배경(Background), 이해하기(Understand), 다시 보기(Look Again), 평가하기(Asses)를 의미한다. ‘RASA’리듬(Rhythm), 비유(Allegory), 구도(Structure), 분위기(Atmosphere). 이 공식들은 20세기 이전에 나온 고전미술 작품을 감상할 때 사용할 수 있다.

 

그렇다면 현대미술 작품은 어떻게 감상해야 할까. 혼자 보는 미술관이 국내에 출간되기 전에 이미 현대미술 작품에 접근하는 방식을 설명한 워드의 책이 나왔다. 책 제목은 TABULA: 현대미술의 여섯 가지 키워드. 원제는 ‘Ways of Looking’이다. 이 제목을 보자마자 어디서 많이 본 듯한 기시감을 느낀 독자가 있다면 그 사람은 분명 존 버거(John Berger)다른 방식으로 보기(Ways of Seeing)을 읽었거나 그 책을 알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다른 방식으로 보기1972년에 초판이 나온 이후 미술 전공자들의 필독서로 꾸준히 사랑을 받아온 책이다. 이 책 역시 미술 작품을 감상하고 평가하는 새로운 방식을 알려준다. 버거는 작품을 감상하려면 면밀한 조사와 분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으며 작품을 미술사적 의의로부터 분리하고자 했다. 미술평론가들이 작품에 부여한 미적 가치와 해석들에 의존하지 않고 그림을 바라보는 감상법을 제시했다. 워드는 이 책에 영감을 얻어 ‘TABULA RASA’라는 미술작품 감상 공식을 만들게 된다.

 

TABULA: 현대미술의 여섯 가지 키워드혼자 보는 미술관의 전작이라 할 수 있다. ‘TABULA’는 현대미술 작품에 접근하기 위한 여섯 가지 열쇠이다. 현대미술은 관람객들을 당혹스럽게 할 정도로 난해하며 공격적이다. 그리고 현대미술 작품에서는 그것을 만든 창작자와 그 작품을 보려는 관람객 간의 경계가 없다. 관람객이 작품을 만드는 창작자가 될 수 있다. 현대미술을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다. 워드가 말한 대로 현대미술 작품도 백지상태, 즉 영(zero)의 상태로 감상하면 된다. 작품을 감상하면서 느낀 여러 가지 반응과 생각들을 미술평론가들의 해석과 비교하지 않아도 된다. 대부분 미술평론가와 큐레이터는 어려운 용어를 사용해가면서 작품을 분석하고 비평한다. 워드는 이런 미술 전문가들이 현대미술의 문턱을 터무니없이 높아지게 만든 주범이라고 비판한다. 워드 자신도 전문가의 한 일원으로 반성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는 현대미술에 대한 선입견(‘현대미술 자체가 어렵다’, ‘미술을 공부해본 사람들만 이해할 수 있는 고급문화’)을 해체하기 위해 ‘TABULA’를 제시한다.

 

그러나 ‘TABULA’로 미술작품을 감상하면서 나온 다양한 반응들은 무조건 정답이 될 수 없다. ‘TABULA’를 모든 미술작품을 이해하는 데 도움 되는 완벽한 공식으로 여겨선 안 된다. 이러한 생각들은 미술작품 감상을 방해하는 선입견이 될 수 있다. 열쇠를 너무 오래 쥘 필요가 없다. 우리가 열려고 하는 현대미술은 시시각각 변하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TABULA’ 열쇠가 맞지 않는 기상천외한 작품들이 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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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20-02-03 0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열쇠를 너무 오래 쥐어선 안 된다 ^^

cyrus 2020-02-03 20:28   좋아요 0 | URL
마지막 문장은 나름 기발한 문장이라고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

초란공 2020-02-03 0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혼자 보는 미술관을 쓴 분이군요. 책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cyrus 2020-02-03 20:30   좋아요 1 | URL
<혼자 보는 미술관>을 읽다가 예전에 저자의 또 다른 책이 나왔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내용의 순서에 상관없이 <혼자 보는 미술관>, <TABULA> 순으로 읽어도 됩니다. ^^

2020-02-03 11: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20-02-03 20:33   좋아요 1 | URL
설 연휴 때 연락한다는 게 깜빡 잊고 못했네요. 코로나 바이러스가 얼른 사라져야 할텐데... 날씨가 좋아지면 한 번 봬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