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사는 남자의 방에는 퀴퀴한 홀아비 냄새가 진동한다. 내 방도 예외가 아니다. 냄새를 없애려고 실내 방향제와 섬유 탈취제를 뿌려봤지만, 별 소용이 없다. 몸에 나는 체취에 굉장히 많이 신경 쓰는 편이다. 친구, 그것도 절친한 벗으로부터 ‘홀아비 냄새가 난다’라고 농담 섞인 핀잔을 들은 적이 있다. 그 말을 듣고 난 이후부터 한동안 대인관계 형성에 어려움을 느꼈고, 자신감이 떨어졌다.

 

 

 

 

 

 

 

 

 

 

 

 

 

 

 

 

 

 

 

* 피에르 라즐로 《냄새란 무엇인가?》 (민음인, 2006)

* [품절] 마르코 라울란트 《호르몬은 왜?》 (프로네시스, 2007)

 

 

 

남자한테서 풍기는 체취의 가장 기본적인 원인은 땀이다. 특히 겨드랑이처럼 체모가 많은 부위에 ‘아포크린(apocrine)’이라는 땀샘이 있다. 아포크린에 나오는 땀이 ‘암내’의 원인이다.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testosterone)이 분해되면 특이한 향이 나는 안드로스테롤(androsterol)과 안드로스테논(androstenone)이라는 화합물이 만들어진다. 안드로스테롤은 남자의 모낭 끝부분, 그중에서도 겨드랑이와 음모에 집중적으로 분포돼 있으며 사향 냄새를 풍긴다. 안드로스테논은 남성 페로몬의 일종으로, 땀으로 체외에 배출된다. 피부에 사는 세균과 만나면 지린 오줌 냄새 비슷한 악취가 생긴다. 여성의 땀 속에도 안드로스테논이 들어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약 30%에 이르는 성인은 안드로스테논이 유발한 냄새를 느끼지 못하며, 사람에 따라서는 바닐라 향기로 느끼기도 한다.

 

 

 

 

 

 

 

 

 

 

 

 

 

 

 

 

 

 

 

* 알랭 코르뱅 《악취와 향기》 (오롯, 2019)

* [품절] 마크 스미스 《감각의 역사》 (수북, 2010)

* [절판] 콘스탄스 클라센 외 《아로마: 냄새의 문화사》 (현실문화, 2002)

 

 

 

악취와 향기를 구분하는 기준은 사회문화적 분위기와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 후각은 고대로부터 노예 노동, 식민지, 인종과 계급 착취체제가 정착되는 시기까지 중요한 구실을 했다. ‘타자’를 정하고, 그들을 특정 짓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면서, 후각은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을 철저하게 나누는 근거가 됐다.

 

 

 

 

 

 

 

 

 

 

 

 

 

 

 

 

 

 

 

 

* 파트리크 쥐스킨트 《향수》 (열린책들)

 

 

 

파트리크 쥐스킨트(Patrick Suskind)의 소설 《향수》에 나오는 주인공은 후각에 민감하다. 이 소설에서 그는 ‘변태’ 또는 ‘타락한 하층계급’으로 묘사되어 있다. 실제로 근대 유럽인들은 사회적으로 주변부에 속하는 사람들에게서는 악취가 나고, 교양인들에게서는 향기가 난다고 생각했다. 《향수》는 프랑스의 역사학자 알랭 코르뱅(Alain Corbin)《악취와 향기》에 영감을 받아서 쓴 소설이다. 《악취와 향기》는 후각이 역사적이지만, 보편적이지 않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악취와 향기에 대한 학자와 대중의 반응은 특정한 사회 · 역사적 정황에 따라 달라졌다. 《악취와 향기》는 감각이 타자를 어떻게 규정짓는지를 재조명하는 책이다. 예전에도 《악취와 향기》와 비슷한 주제를 다룬 몇몇 책들이 나온 적이 있다. 《감각의 역사》후각을 포함한 ‘오감’이 권위와 서열의 기준으로 자리 잡는 과정에 주목한 책이다. 《아로마: 냄새의 문화사》는 후각이 서구 문화와 비(非)서구 문화에서 어떻게 구성되고, 억압되는지를 흥미롭게 보여준다. “냄새는 정치적인 것이고, 권력이다” 이 세 권의 책을 관통하는 공통의 주제이다.

 

 

 

 

 

 

 

 

 

 

 

 

 

 

 

 

 

 

* 엘리즈 티에보 《이것은 나의 피》 (클, 2018)

* 박이은실 《월경의 정치학》 (동녘, 2015)

* 마사 C. 누스바움 《혐오와 수치심》 (민음사, 2015)

 

 

 

 

 

 

 

 

 

 

 

 

 

 

 

 

 

 

* [품절] 메리 더글러스 《순수와 위험》 (현대미학사, 1997)

* 방원일 《메리 더글러스》 (커뮤니케이션북스, 2018)

 

 

 

후각에 의존한 인간의 평가는 인종 및 계급 문제뿐만 아니라 ‘젠더 문제’와도 연결되어 있다. 과거에 남성의 정액은 남녀의 성적 욕망을 부추기고, 생명체 전체에 영향을 주는 ‘생명의 본질’로 인식 받았다. 정액은 비릿한 밤꽃 냄새가 난다. 18세기 학자들은 활동력이 왕성한 남자일수록 정액 특유의 ‘메슥거리는 냄새’가 심해진다고 생각했다. 반면 고자한테는 정액 냄새가 나지 않는다고 했다. 학자들은 남성의 정액이 품고 있는 ‘영기(靈氣)’를 강조했다.

 

남성 학자들은 여성의 월경혈을 몸에 빠져나오는 ‘나쁜 피’로 생각했고, 그것을 성스러운 것을 오염시키는 위험한 물질로 취급했다. 영국의 문화인류학자 메리 더글러스(Mary Douglas)가 지적했듯이 대부분의 문화권에서 체액은 몸 안에 있을 때는 아무렇지도 않지만, 밖으로 배출되는 순간 불결하거나 위험한 것으로 규정된다. 우리는 우리 몸이 냄새나고, 불결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몸의 불완전함’을 은폐하려면 ‘불결한 존재’로 규정할 수 있는 또 다른 대상, 즉 타자가 필요하다. 미국의 철학자 마사 누스바움(Martha Nussbaum)의 주장처럼 ‘불결한 타자’에 오랫동안 장애인, 성소수자, 유색인종, 그리고 여성이 자리하고 있었다.

 

 

 

 

 

 

 

 

 

 

 

 

 

 

 

 

 

 

* 이화여자대학교 아시아여성학센터 《우리들의 목소리 1》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2015)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월경과 월경혈은 금기와 억압의 대상이었다. 유대인들은 남성 할례의 피를 성스럽다고 생각하는 반면 월경혈은 끔찍한 것이라고 여겼다. 네팔에 거주하는 여성들은 생리 기간에 격리 생활을 해야 한다. 네팔 서부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월경을 ‘차우파디(chhaupadi)라고 부른다. 월경 중인 여성은 자기 집에 들어갈 수 없고, 우유와 유제품을 먹지 못한다. 종교와 관련된 건물 안에도 들어가지 못한다. 네팔 사람들은 ‘월경 금기’를 믿는다. 그들에게 월경은 음식을 부패하게 만드는 원인이고, 신을 모독하는 현상이다. 월경 중인 여성은 집에서 멀리 떨어진 움막 속에 혼자 산다. 그녀는 월경기가 끝날 때까지 소금 묻힌 빵으로 연명하면서 움막 안에 지내야 한다. 네팔 정부는 여성을 차별하는 악습을 금하라는 명령을 내렸지만, 여전히 월경 금기를 믿는 네팔 사람들이 많다. 네팔의 젊은 남녀들로 구성된 ‘사마비카스 네팔(Samabikas Nepal)이라는 사회단체는 차우파디 전통을 폐지하는 일이 앞장서고 있으며 ‘차우파디 없는 지역 만들기’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냄새를 맡을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냄새를 맡지 못하면 음식 맛도 느낄 수 없고 다른 감각도 둔해져 삶이 울적해진다. 그렇지만 ‘냄새에 스며든 권력’은 누군가에게는 저주가 된다. ‘냄새에 스며든 권력’을 가진 자는 자기보다 아래인 타자를 ‘불결한 냄새가 나는 존재’로 규정하여 자신의 우월한 지위를 확인한다. 이 과정에서 타자에 대한 혐오와 수치심이 확산한다. 냄새에 대한 부끄러움은 내 몫이 아니다. 냄새가 조금 난다고 해서 스스로 ‘죄인’ 취급하지 말자. ‘죄인’이 되는 순간, 누군가에게 종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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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09 15: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4-10 18:44   좋아요 0 | URL
겨울에 샤워를 자주 안 합니다. 2주에 한 번씩 합니다. 그래서 겨울에 유독 홀아비 냄새가 자주 나는 것 같습니다. 날씨가 좋아지면 샤워를 자주 해야겠어요.. ^^;;

syo 2019-04-09 2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홀아비냄새가 난다˝는 말은, 방에서 난다는 게 아니라 바깥에서 만났는데 들은 거라면 ‘솔로 생활 청산하고 애인 만들어라/결혼해라‘로 번역되는 대사 아닌가요..... 진짜 난다는 뜻이었단 말인가....

cyrus 2019-04-10 18:45   좋아요 0 | URL
syo님의 말씀처럼, 말 한 마디에 두 가지 의미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ㅎㅎㅎ
 

 

 

이번 주 목요일인 11일에 낙태죄(형법 269)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나온다. 헌법재판소는 작년 2월부터 낙태죄 처벌 조항이 위헌인지 확인해 달라는 헌법소원을 심리해왔다. 인공 임신중절(낙태)을 형법으로 금지한다는 것은 시민의 재생산권(reproduction rights), 즉 임신과 출산 전 영역을 국가가 통제하고 관리해야 한다는 입장을 반영하는 것이다. 낙태죄 폐지를 찬성하는 사람들은 재생산권이 그 당사자인 개인, 여성에게 있다고 주장한다. 재생산이란 임신, 출산, 양육 등 가사노동을 하는 여성의 활동이다. 재생산권은 말 그대로 여성 자신이 재생산 여부를 주체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 성관계, 임신, 피임, 출산 그리고 임신 중절 등이 이 권리에 포함된다.

 

임신중절은 형법상으로 1953년부터 불법이다. 다만 1973년부터 모자보건법(母子保健法, 141)에 의해 임산부 또는 그 배우자가 대통령령으로 정한 우생학적 ·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 질환, 혹은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 강간 혹은 근친상간에 의해 임신한 경우, 마지막으로 임산부 건강에 위험이 있을 때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여러 가지 사회경제적인 이유(원치 않는 임신, 양육에 대한 경제적 부담감 등)로 임신중절을 하려는 행위는 허용하지 않아서 대부분의 임신중절은 법을 어기면서 행해진다. 무허가 임신중절 시술은 시술자 여성의 건강을 해치거나 목숨을 잃게 만드는 원인이다.

 

2010년에 임신중절 근절 운동을 주도하는 산부인과 의사들의 모임인 프로 라이프(pro-life) 의사회가 불법 낙태 시술을 한 산부인과 병원 3곳을 고발한 일이 있었다. 프로 라이프는 태아의 생명을 중시하여 낙태 범죄화를 옹호하는 입장이다. 임신중절을 찬성하고 여성의 선택권을 중시하는 입장은 프로 초이스(pro-choice)이다. 미국에서는 오래전부터 프로 라이프 대 프로 초이스논쟁이 사회적으로 중요한 이슈가 돼 왔다.

 

 

 

 

 

 

 

지난달 마지막 날인 일요일(331)에 대구에서 열린 페미니즘 이어 달리기 14탄의 강연 주제는 낙태죄 폐지에 관한 것이었다. 이 날 강연자는 녹색병원 산부인과 과장인 윤정원 님이다.

 

 

 

 

 

 

 

 

 

 

 

 

 

 

 

 

 

 

* ‘성과 재생산 포럼기획 배틀그라운드(후마니타스, 2018)

* 이은의, 윤정원, 은유, 박선민, 오수경 불편할 준비(시사인북, 2018)

 

    

 

사실 지금도 그렇지만, 우리나라 낙태죄 폐지 운동은 모자보건법의 낙태죄 적용 예외 규정을 사회경제적인 이유에 의한 인공 임신중절로 개편해야 한다는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앞서 설명했듯이 낙태죄 폐지 운동을 통해 성취하고자 하는 목표는 여성의 재생산권과 자기 통제권이다. 장애을 뜻한다. 그렇기 때문에 낙태라는 단어를 자주 쓸수록 마치 임신 중 여성 인권 단체인 장애여성공감은 이러한 논의만으로는 장애 여성의 재생산권을 충분히 다룰 수 없다면서 비판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 바로 ()과 재생산 포럼이다. ‘성과 재생산 포럼은 장애 여성의 재생산권과 이것이 가지는 사회적 의미, 여기서 발생하는 다양한 연대의 가능성을 논의했다. 그러한 논의가 담긴 책이 바로 배틀그라운드. 이 책에 윤정원 님이 쓴 글 인권과 보건의료의 관점에서 본 임신 중지가 실려 있다. ‘낙태죄 폐지 논란문제를 이해하기에 앞서 가장 먼저 알아야 할 것이 바로 재생산권의 의미이다. 불편할 준비에 실린 윤정원 님의 글 산부인과 사용 설명서 생리에서 낙태죄까지를 읽어 보면 재생산권의 의미뿐만 아니라 정부와 사회가 여성의 재생산권에 얼마나 무관심했는지 알 수 있다. 여성의 재생산권은 건강권과 직결되어 있다. 여성의 몸을 출산을 위한 도구로 여기는 인식의 틀은 예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게 없다.

 

그날 강연은 인공 임신중절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높이는 시간으로 꾸며졌다. 낙태죄 폐지를 찬성하는 페미니스트들은 낙태대신에 임신 중절이라는 단어를 주로 많이 쓴다. 낙태(落胎)배 속에 있는 아기를 떨어뜨리는 것(없애버리는 것)을 뜻한다. 그렇기 때문에 낙태라는 단어를 자주 쓸수록 마치 임신 중절을 선택한 여성들이 생명을 존중하지 않는 것으로 인식하게 만든다. 인공 임신중절이 안전한 의료서비스로 보장하지 못한다면, 여성의 건강권은 위협받는다. 외국의 경우를 보면 음성적인 임신 중절 시술이 오히려 여성들의 건강을 심각하게 훼손하기 때문이다. 불법 임신 중절 시술은 여성들에게 정신적 육체적으로 심각한 후유증을 남길 뿐만 아니라 사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불법 임신 중절 시술로 인한 불의의 사고는 의료 사고로 인정받지 못한다.

 

임신 중절의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지금까지 언급한 수술 유산(surgical abortion)이다. 또 하나는 약물 유산(medical abortion)이다. 약물 유산은 약을 먹으면서 유산을 유도하는 방식이다. 가장 많이 알려진 유산 유도약(언론에서는 먹는 낙태약이라고 쓰던데, 이 단어 역시 낙태처럼 임신 중절에 대한 부정적인 의미를 상기한다)미페프리스톤이다. 흔히 우리나라에서는 미프진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미프진은 여성의 몸에서 나오는 호르몬인 프로게스테론을 억제하여 임신할 수 없게 한다. 미프진을 복용하면 생리통과 비슷한 복통이 일어나거나 하혈 증세가 발생할 수 있다. 그러나 미프진 복용 후의 치사율은 극히 낮으며(미국에서 2000~2011년 동안 미프진을 처방받아 복용한 152만 명 중 패혈증으로 사망한 사례는 단 8건에 불과했다[]), 이미 2005년에 필수의약품 목록에 포함되었을 정도로 약의 안전성은 입증되었다. 하지만 낙태를 범죄로 보는 우리나라에서는 미프진은 국내에 반입할 수 없다. 2000년에 미프진 도입 논의가 잠시 있었지만, 보건복지위의 식약청 국정감사에서 먹는 낙태약은 생명 경시 풍조를 조장하고 청소년의 성생활 문란을 부추길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오면서 정식으로 도입되지 못했다.

 

여성에게 출산과 양육은 인생을 바꿀 만큼 중요하다. 여성이 임신을 지속할 것인지 또는 임신 중절을 선택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선택의 문제다. 나는 프로 초이스를 지지한다. 이번 주 목요일에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좋게 나오길 바란다. 그러나 임신 중절을 전면적으로 허용하든, 제한적으로 허용하든 그날의 결론은 길었던 논쟁의 끝이 아닐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낙태죄 폐지는 끝이 아닌 또 다른 논의의 시작이다.

    

 

 

 

 

 

 

 

 

 

 

 

 

 

  

* 장애여성공감 기획 어쩌면 이상한 몸(오월의봄, 2018)

* [레드스타킹 선정 도서] 수전 웬델 거부당한 몸(그린비, 2013)

 

 

     

낙태에 반대하면서도 장애를 가진 아이라면 낙태가 가능하다고 보는 모자보건법은 장애인의 몸과 생명권을 철저하게 배제하는 사고방식을 강화한다. 프로 초이스가 합법적 임신 중절을 강조하면서 장애인 낙태를 허용하는 것 또한 문제가 있다. 두 가지 입장 모두 철저하게 우생학적으로 태아의 생존을 결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장애인 인권 운동가와 장애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낙태죄 폐지를 신중하게 접근한다(물론, 이들도 낙태죄 폐지를 찬성한다). 장애여성공감은 장애인을 낙태시킬 수밖에 없는 모자보건법의 문제점을 인정하면서도 문제의 근원인 사회적 차별을 도외시한 채, 임신 중절을 전면 허용해야 한다고 외치는 ()장애 여성들의 피상적인 입장을 비판하고 있다. 장애인은 이 세상에 태어날 권리가 있으며 이것 또한 장애 여성의 재생산권에 달린 문제이다. 이런 점에서 장애 여성의 재생산권을 이야기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인간을 정상/비정상으로 나누는 우리 사회의 이분법적 사고를 폭로하는 것이며, 이는 낙태죄 폐지 운동에 장애 여성도 함께 할 수 있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 원 출처: Ushma D Upadhyay et al.(2005), Incidence of Emergency Department Visits and Complications After Abortion, Obstetrics & Gynecology. 본 내용은 윤정원 님의 강연 글을 참고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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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08 15: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4-08 18:29   좋아요 1 | URL
임신과 피임은 남성, 여성 모두 선택할 수 있는 행위인 만큼 그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합니다. 하지만 아이를 낳은 순간, 여성이 모두 짊어지게 됩니다. 대표적인 예는 미혼모 여성입니다. 피임의 중요성을 모르거나 임신 문제를 온전히 여성에게 떠넘기는 남성들이 문제입니다. 이러니 혼자 남은 여성은 임신 중절을 선택하게 되고, 임신 중절을 선택한 여성은 ‘성적으로 문란한 여자’, ‘아이를 돌보기를 포기하는 여자’라는 낙인이 찍힙니다.

카스피 2019-04-09 1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결혼전의 남녀가 서로 사랑을 나눌수는 있습니다.하지만 결혼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면 남녀 모두 피임에 신경을 써야하는 것이 상식이 아닐까 싶습니다.물론 여기에는 남성의 책임이 좀더 크지 않나 싶어요ㅡ.ㅡ

cyrus 2019-04-09 12:16   좋아요 0 | URL
남자가 실천할 수 있는 피임 방법은 콘돔입니다. 그런데 콘돔 착용이 불편하다고 여기거나 착용하는 과정이 귀찮다는 이유로 콘돔 없이 섹스를 하려는 남자들이 있습니다. 이러니까 피임을 하지 못하면 온전히 여성에게 책임이 전가됩니다.

카스피 2019-04-15 15:57   좋아요 0 | URL
뭐 조만간 먹는 남성용 피임약이 나온다고 하니 그떄까지 남녀모두 자세하면 좋을듯 싶습니다^^

AgalmA 2019-04-14 16: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번 <스켑틱> vol 17 에서 프로라이프와 프로초이스 논점이 각각 틀린 게 있다고 말하죠. 태아의 의식이 발동하는 시점부터는 흐음...정말 낙태를 하기 어려운 상황이라 고려되더군요. 왜 여자만 임신이 돼 가지고! 페미니즘 관련한 사항이기도 하니 cyrus님도 그 칼럼 꼭 읽어 보셔야 할 듯/

cyrus 2019-04-17 13:40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꼭 읽어봐야겠어요. 낙태죄 위헌 판결 이후부터 태아의 의식이 발동하는 시점에 대한 논쟁이 생길 것으로 보입니다.
 

 

 

난 행복해지거나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야.” 낮은 자존감 때문에 괴로운 사람들이 흔히 하는 생각이다. 상대방의 말 한마디에 쉽게 상처받거나 다른 사람의 시선이 신경 쓰여 눈치 보일 때, 스스로 초라하게 느껴진다. 자존감이 바닥까지 내려가면 숨이 막힌다.

    

 

 

 

 

 

 

 

 

 

 

 

 

 

* 너새니얼 브랜든 자존감의 첫 번째 계단(교양인, 2018)

* 너새니얼 브랜든 자존감의 여섯 기둥(교양인, 2015)

    

 

     

2014년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40여 년 동안 자존감(self-esteem)을 연구한 캐나다 출신의 심리학자 너새니얼 브랜든(Nathaniel Branden)은 자존감의 정의를 자신에게 행복해질 권리가 있다는 믿음이라고 말했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상대방에게 휘둘리지 않는다. 상대방보다 못하다고 주눅 들지도 않으며 상대방보다 많이 잘났다고 자만하지도 않는다. 어제보다 성장한 오늘의 자신을 자랑스러워하고, 오늘보다 나아질 내일이 오길 기대한다. 브랜든은 건강한 자존감이 유지하도록 받쳐주는 두 가지 요소로 자기 효능감(self-efficacy)자기 존중(self-respect)을 꼽는다. 자기 효능감이 능력에 대한 믿음이라면, 자기 존중은 자신의 가치에 대한 확신이다.

 

브랜든은 자존감을 결정짓는 여섯 가지 실천 방식여섯 기둥(또는 계단)으로 비유한다. 그중 첫 번째 실천 방식은 의식하기(consciousness). 의식하며 산다는 것은 자신이 어떤 능력을 갖췄든 간에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목표를 이루기 위한 삶을 말한다. 이런 사람들은 내면을 관찰하고 들여다본다. 자신의 가치관과 목표에 부합하지 않는 행동을 하면 스스로 개선한다.

    

 

 

 

 

 

 

 

 

 

 

 

 

 

 

* 김태형 가짜 자존감 권하는 사회(갈매나무, 2018)

 

    

 

반면 경계해야 할 자존감이 있다. 그게 바로 가짜 자존감(pseudo self-esteem)이다. ‘가짜 자존감은 겉으로는 자기 효능감과 자기 존중을 꾸며내지만 정작 그 실체는 없다. 그렇다면 자기를 속이는 가짜 자존감은 개인의 행동에서 비롯된 일탈인가? 오로지 개인의 내면을 의식하는 데 초점에 맞춘 자존감 높이는 연습을 한다고 해서 낮아진 자존감이 회복될 수 있을까? 가짜 자존감 권하는 사회는 자존감 문제로 고통받는 이유를 개인이 아닌 사회에서 찾는다. 가짜 자존감 권하는 사회는 낮아진 자존감 문제를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고 있으며 이 문제를 반드시 고쳐야 할 인 것처럼 떠들어댄다. 아무래도 자존감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하는 세상의 조언을 따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강박마저 느낀다. 날마다 거울 앞에 우두커니 서서 혼잣말로 나는 행복해, 나는 정말 좋은 사람이야라고 중얼거린들 이상과 현실의 괴리는 사라지지 않는다. 실제로는 자신의 사회적 가치가 높지 않은데도 그것을 높게 평가하는 것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 권력, 건강 등의 가치가 행복한 삶을 위한 객관적인 기준으로 강조하는 지금 이 사회에서 개인 스스로 자존감을 지켜내기란 쉽지 않다. 따라서 사람의 가치를 평가하는 기본적인 사회적 가치관이 변하지 않는 한 자존감을 높이려는 개인적인 노력은 헛된 수고에 불과하다.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건강한 자존감을 가질 수 없다.

    

 

 

 

 

 

 

 

 

 

 

 

 

 

 

* 김진영 아침의 피아노(한겨레출판, 2018)

 

    

 

자존감 문제를 환자장애인에게 적용하면 자존감 연습은 그들을 위한 대안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픈 환자의 몸은 장기 근무를 피하는 게으른 몸으로 낙인찍히고, 늘 노동시장에서 배제된다. 암 투병 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몸과 정신을 관통하는 크고 작은 외부의 시선들을 단상 형식으로 기록한 김진영 철학아카데미 대표암 환자로서 살아가는 자신의 무기력한 정체성을 의식하는 듯한 글을 남겼다.

 

 

이런 무기력 상태는 어리석다.

무엇이든 노동이 필요하다.

 

(아침의 피아노, 19)

       

자꾸 사람들을 피하게 된다. 위안을 주려는 마음을 알면서도 외면하게 된다. 병을 앓는 일이 죄를 짓는 일처럼, 사람들 앞에 서면 어느 사이 마음이 을의 자세를 취하게 된다. 환자의 당당함을 지켜야 하건만…‥

 

(같은 책, 30)

 

 

아프고 장애가 있는 몸은 정상/비정상을 구분하는 사회 체계안에서 타자로 살아간다. 국가와 사회는 온전한 몸을 가진 건강한 비장애인을 (노동력과 재생산 능력을 모두 갖춘) 국민에 부합하는 정상의 표준으로 만든다. 이로 인해 환자와 장애인은 이등 국민’, ‘비정상적인 타자’, ‘문제 있는 타자가 된다. ‘정상의 표준에 맞지 않는 그들은 경제적 자립 생활이 불가능하고, 재생산 능력이 없는 무기력한 존재로 차별받는다.

 

 

 

 

 

 

 

 

 

 

 

 

 

 

 

 

 

 

 

 

 

* 비사이드 콜렉티브 퀴어 페미니스트, 교차성을 사유하다(여성문화이론연구, 2018) / 전혜은 아픈 사람정체성수록

 

* 장애여성공감 어쩌면 이상한 몸(오월의봄, 2018)

 

    

 

거대한 의료 시스템은 질병이나 장애 유무 여부에 상관없이 개인에게 건강이라는 이름으로 몸의 정상화를 요구한다. 비장애인은 의료기술에 의존하면서 자신의 몸이 정상임을 인정받고 싶어 한다. 의료 시스템을 주도하는 의사와 의학 전문가들은 환자와 장애인에게 조금 더 나아질 수 있을 거라는 기약 없는 희망, 조금 더 노력하면 정상인(건강한 비장애인)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감을 심어준다. 그들의 위안은 장애를 고유한 삶의 방식으로 인정하지 않고, ‘정상인의 범주로 편입시키려는 위장 수사에 가깝다. ‘의 위치에 있는 의료 전문가는 장애 문제를 소외하고, 환자와 장애인은 의 위치가 되어 결핍된 존재’, ‘거부되어야 할 존재로 남는다. 장애를 극복하는 장애인 서사는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장애인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것 같지만, 이 역시 장애를 개인의 문제로 규정하는 인식을 불러일으킨다. ‘장애 극복인 장애인의 몸이 의 비장애인의 몸과 비슷하게 만드는 과정이다. 인간의 한계를 극복한 장애인서사의 이면에는 장애인의 몸을 비정상적인 을로 바라보는 의 시선이 전제되어 있다.

 

퀴어 이론과 페미니즘 장애학을 연구한 전혜은환자장애인이라는 호칭이 아프거나 몸이 불구인 사람들의 정체성을 온전히 설명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그녀는 자신의 글 아픈 사람정체성에서 퀴어 이론과 장애학 이론을 접목시켜 아픈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탐색하는 시도를 선보인다. 그녀가 제안한 아픈 사람정체성은 장애인과 환자들이 받는 차별 및 부정적 낙인 이미지를 덜어내고, ‘정상이라는 표준에 가려져야했던 그들의 질병 · 장애 경험을 한층 더 부각시켜준다. 따라서 아픈 사람정체성은 자신의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 악셀 호네트 인정 투쟁(사월의책, 2011)

* 이현재 악셀 호네트(커뮤니케이션북스, 2019)

* 철학아카데미 처음 읽는 독일 현대철학(동녘, 2013) / 문성훈 악셀 호네트의 인정 이론과 병리적 사회비판수록

    

 

 

아픈 사람정체성을 가진 사람들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으려면 아픈 몸장애의 몸을 그대로 인정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한 사회로 발전하게 되면 아픈 사람정체성을 가진 사람은 질병 · 장애 경험을 마음껏 이야기할 수 있으며 타인과 관계를 맺는 주체가 된다. 독일의 철학자 악셀 호네트(Axel Honnet)가 주장한 대로 내 경험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삶은 개인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사회적 존재로서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받을 때 건강한 자아가 형성된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긍정적 자기의식과 정체성, 그리고 건강한 자존감을 가지기 위해 인정 투쟁(recognition struggle)을 한다. 장애인들이 몸을 차별하는 권력과 크고 작은 편견들에 도전하여 자신들의 경험 서사를 알리는 것 또한 인정 투쟁의 한 방식이다. 장애인을 소외시키는 차별과 배제의 권력은 그들의 삶과 목소리를 은폐하고 침묵시킬 뿐만 아니라 그들의 정체성과 자존감마저 박탈시킨다. 장애가 자존감이 될 수 있는 가치가 되려면 장애인들에게 어떻게 나를 사랑한 것인가[]를 묻는 자기의식을 강요해선 안 된다. 바꿔야 할 사람은 장애인이 아니라 비장애인이다. 비장애인은 다양하고 복잡한 장애인의 정체성과 경험 서사가 어떤 것인지 의식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 너새니얼 브랜든의 책 자존감의 여섯 기둥의 부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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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18 13: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3-18 16:12   좋아요 0 | URL
돈의 힘 앞에 장사 없습니다... ^^;;
 
우리는 처녀성이 불편합니다 - 젠더불평등을 만든 처녀막의 무의미성
조너선 앨런.크리스티나 산토스.아드리아나 슈파르 지음, 이혜경 옮김 / 책세상 / 2019년 1월
평점 :
절판


 

 

 

주로 프로이트(Freud)의 정신분석학을 이야기하면 ‘리비도(Libido)’라든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Oedipus complex)’와 같은 것을 많이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에 못지않게 알아두어야 할 개념이 하나 더 있는데 바로 ‘남근 선망(penis envy)이다. 프로이트는 리비도, 즉 성적 충동이 유아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모든 인간의 중요한 본능 가운데 하나라고 주장했다. 그는 유아기와 유년기에 일어난 사건이 평생을 좌우하며 남자아이는 어머니에게 성욕을, 여자아이는 남근 선망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러나 ‘남근 선망’은 다음 세대 정신분석학자들에 의해 비판받았다.

 

프로이트의 ‘남근 선망’은 여자의 성적 만족이 남자에 의존한다는 의미인데, 오늘날 연구 결과에 따르면 오히려 여자는 클리토리스에서 오르가슴을 느낀다. 프로이트와 그의 추종자들은 클리토리스의 중요성을 축소했다. 클리토리스를 무시한 프로이트에서 볼 수 있듯이 남성들은 클리토리스로 오르가슴을 느끼는 여성, 즉 자위하는 여성은 ‘남근을 가진’ 남성에게 열등감을 느끼는 불감증 환자로 간주해 왔다. 클리토리스가 여성 쾌락의 중심으로 우뚝 서면 성적 파트너로서의 남성은 필요가 없어진다. 그리하여 클리토리스는 남근 중심의 남성성을 위협하는 ‘이빨 달린 질(vagina dentata)신화와 결부되어 드러난다.

 

남성들은 지난 수천 년간 여성성을 둘러싼 각종 금기를 설파하느라 무수한 말을 쏟아냈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 월경에 대해 말하는 것에 대한 금기와 터부 문화가 남아 있다. 여성이 생리를 하면서 나오는 피는 불결한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처녀와 처녀 아닌 여성을 구분하게 만드는 처녀성(처녀막, 처녀 혈)은 특별하다고 생각한다.

 

처녀성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우리는 처녀성이 불편합니다》는 처녀성에 둘러싼 ‘문화적 환상’들을 분석한 8편의 논문을 모은 책이다. 이 책의 원제는 ‘처녀 선망(Virgin Envy)이다. 대부분 남성은 순결한 처녀를 애정의 대상으로 원한다. 또 어떤 여성은 좋은 남성과의 첫날밤을 위해서 처녀성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성은 처녀성, 처녀막 없이 살면 안 되는가? 그게 꼭 있어야 할까? 이 말에 처녀 선망에 사로잡힌 남성과 여성들은 놀라움과 의심이 반반 섞인 반응을 보일 것이다. 처녀막이 없는 여자는 ‘섹스를 밝히는 여자’, ‘헤픈 여자’라는 말을 듣게 된다. 처녀막 존재 여부는 ‘처녀 감별법’ 또는 ‘헤픈 여자 감별법’의 기준이 된다. 처녀성과 처녀막에 대한 편견을 믿는 사람들은 이성과의 첫 성 경험, 신혼여행의 첫날밤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다. 여성에게 남성이 페니스를 집어넣으면 질 입구에 있는 처녀막이 찢어지게 되는데 그때 나오는 피가 여성이 처녀임을 증명해준다. 그래서 보수적인 성 문화에 영향을 받으면서 자란 사람들은 여성이 결혼 전까지 반드시 처녀성을 지켜야 한다는 의식이 강하다. 만약 처녀성을 상실하면 결혼의 결격 사유가 되기도 한다. 이렇듯 처녀 선망은 남근 선망 못지않게 어디서든 발견할 수 있는 ‘문화적 환상’이다.

 

이 책의 1부에 속한 첫 번째 논문과 두 번째 논문은 문학작품 속에 묘사된 ‘처녀성 검사’를 비판적으로 분석한 것이다. 처녀성이 귀한 대접을 받은 시기는 중세 유럽이다. 이 시기에 나온 로맨스 문학 작품들에서 처녀성은 여성의 으뜸 덕목으로 언급된다. 남성 작가들이 묘사한 처녀성 검사는 남성 독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해온 주제로만 그치는 게 아니다.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통제하게 만드는 편견으로 재생산된다. 문학에서만 표현 가능한 처녀 선망과 그에 따른 문화적 환상은 오늘날 서구 로맨스 문학의 한 장르인 ‘오리엔탈 셰이크 로맨스 소설(Orientalist Sheikh romance novel)로 이어진다. ‘셰이크’는 이슬람 사회에서 지위나 명망이 높은 남성을 일컫는 호칭이다. 오리엔탈 셰이크 로맨스 소설에 중동의 귀족이나 왕족을 만나 사랑에 빠지는 서양의 여주인공이 꼭 등장한다. 여주인공은 중동의 처녀성 검사를 받게 되는 일종의 시련을 경험하며, 자신이 사랑하는 중동 남자를 위해 스스로 처녀성을 바친다. 처녀성을 상실한 여주인공은 ‘아내’, ‘어머니’라는 정체성을 부여받게 된다. 첫 번째 논문은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의 틀 안으로 구겨 넣은 현대 로맨스 문학작품의 처녀성이 ‘문화적 환상’이라는 점을 밝힌다.

 

두 번째 논문은 중세 로맨스 문학이 유행하던 시기에 만들어진 ‘처녀막 환상’과 처음으로 성 경험을 한 여성이 직접 기록한 ‘처녀성 상실 고백 장르’의 처녀성을 비교하여 분석한다. 문학작품 속 여주인공은 처녀성을 상실하는 순간, 처음으로 쾌락에 눈을 뜬다. 그러나 현실의 여성은 그렇지 않다. 첫 경험을 한 여성들은 평생 잊지 못할 고통을 느낀다. 문학작품 속 처녀성은 ‘쾌락의 세계로 초대하는 문’으로 묘사되지만, 그것은 실제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설명하는 데 전혀 관련 없는 남성 중심적 사고가 만들어낸 환상에 불과하다.

 

 

 

 

 

 

 

 

 

세 번째 논문은 영화로도 유명한 뱀파이어 로맨스 소설 《트와일라잇(Twilight)에서 구현된 처녀성과 그것에 관해 가치를 부여해온 미국 특유의 금욕주의적 성 문화를 분석한 글이다. 이 논문을 쓴 글쓴이는 《트와일라잇》에 ‘처녀성 상실’을 ‘혼외 성관계의 위험성’으로 보는 보수적인 성 문화가 반영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네 번째 논문은 텔레비전 시리즈 <트루 블러드(True Blood)>에 등장하는 뱀파이어 제시카 햄비(Jessica Hamby)의 ‘재생하는 처녀성’을 비판적으로 분석한 글이다. 글쓴이는 ‘뱀파이어 여성’의 재생하는 처녀성 역시 남성을 위해 종속되는 ‘생물학적 여성’의 처녀성의 운명과 비슷하다고 주장한다.

 

책 3부에 속한 두 편의 논문은 ‘퀴어 이론(queer theory)’의 관점으로 분석한 처녀성을 주제로 한 글이다. 처녀성은 ‘생물학적 여성’의 섹슈얼리티에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다. 시스젠더(cisgender) 남성, 동성애자, ftm(female-to-male) 트랜스 남성도 처녀일 수 있다. 그래서 이 책의 3부 제목은 ‘남자도 처녀다, 퀴어 남성의 처녀성’이다. 이 책의 집필진들은 퀴어 이론적 관점으로 젠더퀴어(genderqueer, LGBT)의 처녀성 경험을 분석한 연구가 진행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레즈비언이나 mtf(male to female) 트랜스 여성의 처녀성에 대한 연구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국내 퀴어 연구가, 퀴어 페미니스트들이 관심을 가져볼 만한 주제이다.

 

《우리는 처녀성이 불편합니다》는 처녀성 신화에 대한 편견을 단숨에 날려버리는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면 그동안 미디어에 의해 생산 · 유통되어 온 처녀성 신화가 문학이나 예술이 만들어 낸 허상임을 확인할 수 있다. 처녀성은 ‘처녀막’과 전혀 관련이 없다. 그리고 처녀성과 처녀막은 처녀를 감별하는 기준이나 근거가 아니다. ‘처녀막’은 여성의 몸을 설명하는 남성 중심주의적 관점이 반영된 이름이다. 처녀막 대신에 ‘질 막’, 또는 ‘질 둘레 막’으로 써야 한다. 사실 바뀌어야 할 것은 여성의 몸 또는 섹슈얼리티에 대한 이 사회의 규정이다. 처녀성 신화는 여성의 몸, 섹슈얼리티 경험을 설명하는 서사가 될 수 없다. 그런데 이 사회, 특히 일부 남성들은 ‘처녀성 없는 여성’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처녀막이 상실되지 않은 여성이 ‘처녀의 정체성’을 유지해주는 정상적인 섹슈얼리티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처녀성 신화 자체가 남녀 모두를 자유롭지 못하게 한다. 애인이나 배우자의 처녀성 상실을 의심하는 남자들, 그런 남자들의 의심이 두려워서 ‘이쁜이 수술(처녀막 재생 수술)’을 하는 여자들. ‘실체가 없는 것’ 하나 때문에 서로서로 눈치 보는 관계가 계속되는 한, 남녀는 파국의 종착점을 향해 달린다. 이 파국을 피하는 길은 하나밖에 없다. 현실과 동떨어진 처녀성 신화를 폐기하는 일이다.

 

 

 

 

 

※ Trivia

 

 

* 책 19쪽에 글쓴이의 이름인 크리스티나 산토스(Christina Santos)의 영어 철자가 잘못 인쇄되었다. ‘h’가 빠진 ‘Cristina’로 적혀 있다.

 

 

* 역사 속 성인를 연상시키는 시각적 언어를 참조하여, 저먼은 세바스티안의 이야기를 재창조한 후 그를 종교적 금욕에 몰두한 인물로 변형시킨다. (22쪽)

 

‘성인을’로 고쳐야 한다.

 

 

* 제시카의 영원한 뱀파이어 처녀성은 ‘바람직한’ 여성이란 주로 외적으로 규제되는 존재라는 생각을 강화면서, 여성의 성적 정체성, 경험 혹은 욕망을 자유분방하고 솔직하게 표출하지 못하도록 억제한다. (123쪽)

 

‘강화하면서’의 오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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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같은 기계’ 혹은 ‘기계 같은 인간’이 등장하는 시대가 올까. 명확한 답변을 내리기 어렵지만, ‘가능하다’는 낙관론이 확산하고 있다. 확실한 것은 인공지능(AI)을 넘어선 초인공지능(Artificial Super Intelligence, 이하 ‘ASI’)의 등장은 시간문제라는 점이다. 초인공지능은 인간의 지적 수준을 넘어선 초월적인 지능이다. 그것은 생물공학과 결합해 생물 또는 기계의 형태가 될 수도 있고, 컴퓨터처럼 스스로 업그레이드가 가능한 인공두뇌로 구현될 수 있다. 미래의 인류는 우리 자신보다 더 영리한 존재와 마주치게 될 것이다.

 

 

 

 

 

 

 

 

 

 

 

 

 

 

 

 

 

 

* 닉 보스트롬 《슈퍼 인텔리전스》 (까치, 2017)

* 레이 커즈와일 《특이점이 온다》 (김영사, 2007)

 

 

 

자연선택의 틀 안에서 이뤄지던 진화를 인간이 직접 결정하는 날이 멀지 않았을지 모른다. 인류가 과학기술을 이용해 스스로 진화한다는 주장은 이미 20년 전에 등장했다. 영국 옥스퍼드대학 철학과 교수 닉 보스트롬(Nick Bostrom)이 주도해 주창한 ‘트랜스휴머니즘(transhumanism)이다. 《특이점이 온다》의 저자인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Ray Kurzweil)은 사이보그화된 트랜스휴먼(transhuman)의 등장을 예고하면서 급격한 기술 변화로 인류의 삶이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바뀌는 시점(singularity, 특이점)이 올 거라고 말한다.

 

 

 

 

 

 

 

 

 

 

 

 

 

 

 

 

 

 

 

 

 

 

 

 

 

 

 

 

 

 

 

* 유발 하라리, 재레드 다이아몬드, 닉 보스트롬 외 《초예측》 (웅진지식하우스, 2019)

* 유발 하라리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김영사, 2018)

* 유발 하라리 《호모 데우스》 (김영사, 2017)

*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김영사, 2015)

 

 

 

다른 한편에선 인간이 초인공지능에 밀려 무력한 존재로 전락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유발 하라리(Yuval Harari)는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의 시대는 끝나고, ‘호모 데우스(Homo Deus)의 시대가 될 것으로 예측한다. 진화 끝에 살아남은 호모 사피엔스가 스스로 그 역사의 막을 내리고 ‘신이 된 인간(호모 데우스)’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빛의 속도로 진보하는 기술은 인간을 더 이상 한계를 갖지 않는 신으로 만들어 버리고, 호모 데우스는 새로운 종교를 만들어 낸다. 엄청난 양의 데이터가 인간을 완벽하게 통제하는 ‘데이터 교(Dataism)다. 하라리는 데이터를 신처럼 받드는 한편 인간 스스로 자유의지를 부정하고, 빅 데이터와 알고리즘의 분석 결과에 의존하는 미래 사회를 묘사하기 위해 이런 용어를 만들어냈다.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에서는 모든 권위가 인간으로부터 빅 데이터와 알고리즘으로 넘어가는 ‘디지털 독재’를 우려한다. 최근에 나온 학자들의 대담집 《초예측》에서도 하라리는 인간과 기술의 진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높인다. 인공지능으로 인해 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잃고 ‘쓸모없는 계층(useless class)으로 전락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인류 3부작(《사피엔스》, 《호모 데우스》,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에서 누누이 밝힌 기존 입장을 재차 강조했다. 《초예측》의 대담자로 참여한 닉 보스트롬은 트랜스휴먼의 시대는 필연적으로 등장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인공지능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 로랑 알렉상드르, 장 미셸 베스니에 《로봇도 사랑을 할까》 (갈라파고스, 2018)

 

 

 

트랜스휴머니스트들은 생물학적인 인간은 기계에게 패배할 운명이라며 인간이 기계에게 추월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기술과 결합해 ‘증강 인간’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같은 급진적인 시나리오 때문에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특이점’에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로봇도 사랑을 할까》는 트랜스휴머니스트와 트랜스휴머니즘을 비판하는 철학자가 열두 가지 주제를 놓고 벌인 (토론을 방불케 하는) 대화록이다. 트랜스휴머니스트 로랑 알렉상드르(Laurent Alexandre)는 트랜스휴머니즘의 흐름을 빨리 적응하는 나라일수록 세계 질서를 선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트랜스휴머니즘이 우리 삶을 편리하게 해줄 것으로 믿는다. 이렇다 보니 그는 트랜스휴머니즘에 대해 지나치게 낙관적이고 안이한 인식을 하는 경우가 있다. 그의 장밋빛 전망은 트랜스휴머니즘의 등장으로 서서히 부활하기 시작하는 우생학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는 인간은 인간의 역량을 뛰어넘은 인공지능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철학자 장 미셸 베스니에(Jean-Michel Besnier)는 이 트랜스휴머니스트의 낙관론에 적절히 제동을 걸어 트랜스휴머니즘으로 인해 일어날 수 있는 윤리적 문제를 환기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나온 트랜스휴머니즘 찬반 입장들을 살펴보면 늘 반복되는 한계가 있다. 트랜스휴머니즘에 대해 고민하고 토론하는 장에 ‘여성’과 ‘장애인’, ‘노년층’, ‘성소수자’는 배제되어 있거나 ‘주변화된 존재’인 것처럼 언급된다. 대부분 트랜스휴머니스트와 그들을 비판하는 학자는 ‘남성’, ‘시스젠(cisgender)’이며, 그들이 트랜스휴머니즘 담론을 독점하고 있다. 트랜스휴머니즘을 비판적으로 보는 유발 하라리는 동성애자이지만, 그는 자신의 성 정체성을 공개했을 뿐, 트랜스휴먼의 시대가 성소수자의 삶에 미칠 영향에 대해 진지하게 언급한 적이 없다.

 

 

 

 

 

 

 

 

 

 

 

 

 

 

 

 

 

 

 

* 도미니크 바뱅 《포스트휴먼과의 만남》 (궁리, 2007)

 

 

 

《포스트휴먼과의 만남》은 트랜스휴먼, 더 나아가 순수한 생물학적 인간이 완전히 사라진 ‘포스트휴먼(posthuman)의 미래 사회 모습을 보여주는 책이다. 이 책의 부제는 ‘포스트휴먼 1세대로 살아갈 바로 지금 살아있는 세대를 위한 안내서’인데, 단점이라면 이 책은 ‘포스트휴먼 1세대로 살아갈 여성’에게 전혀 유익하지 않다는 점이다. 여성의 건강권에 대해서 단 한 줄도 언급 없이 ‘시험관 아기’ 시술을 낙관적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리고 유전공학 기술로 만들어진 여성의 가슴을 ‘멋진 발명품’, ‘사춘기 남학생들을 위한 차세대 수음 보조기’라고 언급한다.

 

 

 

 

 

 

 

 

 

 

 

 

 

 

 

 

 

 

 

* [품절] 척 팔라닉 《질식》 (랜덤하우스코리아, 2009)

 

 

 

척 팔라닉(Chuck Palahniuk)의 소설 《질식》의 일부 장면을 인용하면서 포스트휴먼을 감각적 쾌락을 추구하는 존재로 상상한 내용은 불쾌감을 유발한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삶으로부터 최대한의 흥분감을 맛보고 싶어한다”고 척 팔라닉은 자신의 소설 『질식』에서 단언하다. 그는 작품 속에 퇴폐적이면서 약간 정신이 돈 듯한 인물들을 등장시킨다. [중략] 『질식』에서는 비행기와 공항에서 자기들 시간의 대부분을 보내는 쿨하스적인(건축가 렘 쿨하스를 가리키는 말로 출장이 잦음을 빗대어 하는 말―역주) 국제적 사업가들이 등장하는데, 이들은 러시안 룰렛에 비견할 수 있는 섹스놀이를 고안해낸다. 비행기 화장실에 들어가 문을 잠그지 않고 기다리다가 제일 처음 화장실 문을 밀고 들어온 승객에게 자신을 제공하는 것이 이들이 생각해낸 놀이다. 이들은 “아무 곳도 아닌 허공을 날아 히드로 공항에서 요하네스버그 공항에 도착하기까지 14시간 동안 적어도 10번 정도의 모험을 즐기며 자신이 살아 있음을 느낀다.” 이는 마치 낚시를 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당신이 남자라면 가장 좋은 방법은 화장실 변기에 앉아서 당신 거시기를 공중에 내놓은 다음 당신 거시기가 정오를 가리키게 될 때까지 열심히 혼자서 작업을 하라. 그런 다음 가만히 기다리면 된다. 더 이상 해야 할 일은 없다. 플라스틱 변기에 앉아 그럴 듯한 모험이 시작되기를 기대하면서 기다린다면 훨씬 기분이 나을 것이다.” “아예 문을 열고서 당신 마음에 드는 사람이 들어오면 그때 볼일을 보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이 놀이에서 가장 흥미를 돋우는 대목은 도전과 위험 감수로 인하여 아드레날린의 분비가 왕성해진다는 점이다. [중략]

  척 팔라닉 소설의 주인공들은 인생에 어떤 의미가 있다는 생각을 버린 사람들이며, 자신들의 실존을 좀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보겠다는 생각을 단념한 지 오래다. [중략] ‘답이 없다는 게 정답’임을 알기 때문에 이들은 스스로의 삶을 가지고 끊임없이 채널 돌리기를 시작하는 것이다. 이들은 삶을 최대한 밀도 있는 순간들의 연속으로 만들 수 있는 놀이를 고안한다. 그러므로 이들의 삶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를 모델로 삼아 구축한 것이나 다름없다.

 

(《포스트휴먼과의 만남》, 194~196쪽)

 

 

 

《포스트휴먼과의 만남》을 쓴 저자는 소설에 묘사된 ‘범죄 행위’에 가까운 섹스 놀이를 포스트휴먼의 시대에 일어날 법한 상황으로 제시한다. 심지어 포스트휴먼 시대의 ‘게이’를 ‘섹스에 혈안이 된 인간과 동물의 잡종’이라고 묘사한다. 동성애자를 ‘변태성욕자’로 보고 있다.

 

 

 신종 게이는 예전처럼 남자와 여자의 잡종이 아니라 인간과 동물의 잡종으로 섹스에 혈안이 된 자들이었다. 예를 들면 성인 남자(여자도 가능하다)와 카멜레온이 반반씩 섞여 긴 혀의 움직임이 매우 유연한 자들이 여기 속한다. ‘모피로 된 비너스’, 다시 말해서 온 몸이 모피로 덮인 여자들도 있다.

 

(《포스트휴먼과의 만남》, 228쪽)

 

 

동성애자는 도덕적으로 타락하여 쾌락만을 좇는 변태성욕자가 아니다. 유발 하라리가 이 대목을 본다면 무슨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

 

 

 

 

 

 

 

 

 

 

 

 

 

 

 

 

 

 

* 슐라미스 파이어스톤 《성의 변증법》 (꾸리에, 2016)

 

 

 

《로봇도 사랑을 할까》의 장 미셸 베스니에는 인공 자궁을 여성 해방에 기여하는 발명품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던 철학자 앙리 아틀랑(Henri Atlan)을 언급한다. 그러나 1970년대에 이미 여성 해방을 위한 획기적인 수단으로 인공 자궁의 실현 가능성을 언급한 여성이 있으니 그녀가 바로 슐라미스 파이어스톤(Shulamith Firestone)이다. 1970년에 그녀는 자신의 책 《성의 변증법》에 인공 자궁에서 태아를 잉태해 남성도 임신과 출산을 할 수 있게 한다고 주장했다. 로랑 알렉상드르는 인공 자궁 기술을 예찬하면서도(그는 미래지향적인 모든 과학 기술을 찬양한다) ‘남자도 임신과 출산을 할 수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임신과 출산 경험이 없는 ‘남성’ 트랜스휴머니스트들은 ‘인공 생식’ 기술의 등장에 지나치게 열광한다. 그들은 인공 생식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는 ‘여성의 몸’을 등한시한다. 그리고 ‘인공 생식’ 기술이 등장하면 ‘불임’을 ‘치료해야 할 문제’로 보게 만든다. 모든 인간에게 생식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 불임은 무조건 치료해야 할 문제인가? ‘불임은 무조건 고쳐야 한다’는 식의 발상은 불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여성의 몸을 ‘열등한 몸’으로 규정하면서 배제한다.

 

트랜스휴먼 시대에 대해 본격적으로 논의하려면 우리 삶을 관통하는 젠더, 연령, 계층, 장애 유무 등의 여러 가지 사회적 · 문화적 배경들을 고려하는 포괄적인 합의가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미래를 향한 기술 발전의 최우선 목표는 모든 인간에게 삶의 성취를 제공하는 일을 만들어내는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다. 특정한 인간을 주변화하고 소외하는 트랜스휴머니즘이 장악한 미래는 인간 존재의 존엄성 자체가 쓸모없어진 디스토피아(dystopia)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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