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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좌파 - 민주화 이후의 엘리트주의 강남 좌파 1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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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남좌파의 등장

한 달뒤에 치뤄질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그리고 2012년 총선을 앞두고 진보진영과 보수진영이 각기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요즘 정치권에서 자주 거론되는 단어가 바로 '강남좌파' 이다.   진보, 중도. 보수성향 언론들은 앞다투어 소개할 정도로 오늘날 강남좌파 논의는 정치적으로 큰 이슈가 되었다.    통념적으로 볼 때 ‘강남 좌파’ 라는 말은 형용모순이다. 이제는 자본주의 체제의 상징이 되다시피한  ‘강남’ 이라는 지명과 이념적으로 자본주의 체제의 대척점에 서 있는 진보 진영의 ‘좌파’ 라는 표현이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강남좌파는 곧 부유한 진보주의자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진보주의 전통이 깊은 서구에서는 오래 전부터 부유한 진보주의자들을 일컫는 다채로운 용어들이 사용되어 왔다. 각국 문화를 반영한 용어들은 대개 말로만 진보적인 부자들의 위선을 풍자하는 부정적 의미의 조어들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계급적으로 상류층에 속하면서도 좌파 성향을 드러내는 사람' 이라는 함의도 갖게 됐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는 고급 승용차인 리무진을 몰고 다니면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다고 말하는 정치인들을 비아냥대는 의미로 ‘리무진 리버럴’ 이라고 부른다. 프랑스에서는 고급 요리인 철갑상어알을 먹으며 사회주의를 논한다는 의미로 부자 좌파들을 '캐비어 좌파' 라고 부른다.

강남좌파 역시 처음에는 이들과 비슷한 의미의 용어로 출발했다. 다만 서구의 용어가 보수진영의 비아냥거리는 용도 이상을 넘지 못했다면, 근래 한국의 강남좌파는 수동적으로 붙여진 부정적 이미지를 넘어선다는 데에서 차이가 있다. 고학력, 전문직의 중산층이면서 적극적으로 진보적 언행을 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그 사회적 영향이 커지면서 등장한 것이다. 

  

 

 '엘리트주의' 가 만들어낸 강남좌파

강준만 교수는 2006년에 월간 <인물과 사상>을 통해 "생각은 좌파적이지만 생활수준은 강남 사람 못지않은 이들" 이라며 '강남 좌파'를 처음으로 공론화시켰다.  그리고 때마침 강남좌파의 존재가  정치적 이슈가 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강남좌파를 석한 종합적인 결과물이 단행본으로 나올 수 있었다.

자주 거론되는 강남좌파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조국 서울법대 교수다. 그는 전형적인 강남좌파 아이콘으로 꼽힌다. 본인 스스로 강남좌파라고 자처할 정도로 차기 총선과 대선에서 보수파에 빼앗긴 정권을 진보 세력이 탈환하기 위한 이념적 당위성과 전략을 전파하고 있다.

그러나 강 교수는 모든 정치인은 강남좌파라고 분류하고 있다. 정치적 권력을 얻기 위해선 학벌, 학력에서 생활 수준까지 어느 정도의 사회적 성공을 거두어야 하므로 정치영역에서 활동하는 모든 좌파는 강남좌파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진보 좌파와 대립하는 보수 진영도 예외일수가 없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강남 지역으로부터 절대적인 지지를 얻고 있는 우파이면서도 강남 좌파적 언어를 사용하며, 반(反) 포퓰리즘적 언어로 밀어붙이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고 규정했다.  

그는 강남좌파를 이념 진영의 기준보다는 엘리트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권력을 둘러싼 갈등과 대립이 이루어지는 정계 속에서 자신의 정치적 의사가 지지받기 위해서는 이와 동일한 성향을 지닌 인물과 결탁하기 쉽다.  민주화 이후에 정치적 엘리트가 형성될 수 있었던 배경으로 우리나라 특유의 '인물 중심주의' 에  원인을 두고 있다.  최근에 줄줄이 터져나오는 MB 정부 측근 인사들의 권력형 비리를 봐도 알 수 있듯이 학벌, 연고 등을 통해 이루어진 자기동질적 집단의 특징에서 기인한 정치적 엘리트의 폐단이 발생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인물 중심주의가 곧 '엘리트주의' 인 것이다. 일반적으로 이들에게는 민생문제보다는 승진과 사리사욕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강 교수는 상류층 사람이 진보적 가치를 역설하는 건 하층계급에게 큰 힘이 되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지만 더 많은 권력을 얻는 수단으로 '진보' 이념을 이용한다는 점에서 위선적일 수 있다고 했다. 하층 계급의 절박함을 모르기 때문에 실현가능한 공약이 아닌 립서비스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정치인이나 고위 공직자 중에 존재하고 있는 기회주의적 강남 좌파로 가장하는 우파 진영을 경계했다. 좌파 성향의 입장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서도 개인적, 정치적 이익과 결부되는 '밥그릇 지키기 싸움' 에서 이기기 위해 겉으로 좌파 성향을 드러내는 행태를 비판한 것이다. 
  

 

 강남좌파 신드롬 이면에 숨겨진 엘리트주의의 문제점

강남좌파의 실체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점점 복잡해지는 양상이지만 강남좌파는 ‘있는 자=우파’ , ‘없는 자=좌파’ 라는 우리 사회에 오랫동안 남아있었던 이분법을 깨뜨리면서 환경 변화에 맞춰 자연선택적으로 진화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우파의 보수 진영이 두 번 연속해서 정권을 빼앗기면서 뉴라이트가 등장했듯 강남좌파는 진보주의자들이 변화된 사회 상황에 적응하며 진화한 좌파의 새로운 트렌드가 되었다.   

강남좌파는 부와 권력에 양심과 정의라는 상징 자본까지 가지려는 위선자로만 비춰지는 부정적 인식이 강하지만 강 교수의 주장대로 모든 정치인이 '강남좌파' 라고 해서 꼭 '있는 자' 들은 양심과 정의를 지켜서는 안 된다는 생각은 어불성설이다.  보다 나은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양심과 정의는 빈부귀천을 떠나 맘껏 누려야 하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신좌파 사회사상가인 앙드레 고르<프롤레타리아여 안녕>(생각의 나무, 2011)에서 전통 마르크스주의가 계급 해방의 주체로 제시한 프롤레타리아에 작별을 고한다.  프롤레타리아라는 계급이 이미 자본주의 가치관을 내면화한 지배질서에 편입됐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제 노동계급만으로 실업 및 고용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혁명의 주체' 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앙드레 고르의 주장처럼 지금은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시대가 아니다. 우리 사회가 그토록 찾고자했던 양극화 해법의 열쇠가 기득권층에 있을 수 있다. ‘진보의 진보’ 를 꿈꾸는 진정한 강남좌파라면 이 지점에서 뭔가 선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상징적 제스처에 머물게 된다면 '엘리트주의의 옷을 입은 진보' 라는 강남좌파에 대한 국민들의 부정적 인식을 벗어날 수 없게 된다.  정치인들에 대한 신뢰도 하락와 불신은 곧 국민들의 정치적 무관심으로 이어진다.  

강남좌파 진영이 진보 세력에서도 환영을 못받든 간에 결국 강남좌파는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 참여한 또 하나의 정치적 세력이다.    지금 우라나라 사회에는 경제적 위기와 대북관계 등과 같은 해결하기가 쉽지 않은 굵직한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정치인들이 '강남좌파' 라는 이슈에만 사로잡힌채 설전이 길어지게 된다면 정작 눈 앞에 보이는 근본적인 사회적 문제들을 도외시할 우려가 있다.

모든 정치인들이 '강남좌파' 라면 그 용어의 이면에는 숨겨져 있는 우리 사회에 작용하고 있는 엘리트주의의 문제점으로 비판적 접근이 필요하다.  정치인들은 엘리트로써의 허위의식과 정치 유혹을 떨치는 게 관건인 것이다. 그리고 이념을 기준으로 선을 그어 팽팽하게 다투기만 할 것이 아니라 이념의 허상에서 벗어나 '소통' 과 '화합' 을 통해 실천적 담론을 제시할 줄 알아야 한다.   정치적 욕망의 프레임에 갇히는 순간 우리나라의 보수와 진보 진영은 결판이 나지 않은 무의미한 대립 속에서 진부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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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도둑 2011-09-28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인가요? 논평을 하나 쓰신건가요? 빛이납니다..
저 10기 신청했는데...다시 활동하게 되었어요.
축하받을 일이죠?....혼자 자축하고 있답니다.,,^^

cyrus 2011-09-28 14:47   좋아요 0 | URL
오~~!! 축하해요, 꽃도둑님. 어느 분야에 활동하시는가요?
앞으로도 자주 볼 수 있겠네요 ^^

saint236 2011-09-28 1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타 플레이어가 없으면 안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스타 플레어에 걸맞는 실력이 없으면 흔히 먹튀라고 합니다. 스타 정치인에게 실력이라하면 다른 무엇보다 정치력이 아닐까요? 이것이 없는 정치인을 우리는 먹튀라고 규정한다면 지금은 먹튀의 세상이라고 추정할 수 있겠죠. 그냥 소설을 써보는 겁니다.^^(나꼼수 증후군입니다.)
 
나와 너의 사회과학 - 우리 삶과 세상을 읽기 위한 사회과학 방법론 강의
우석훈 지음 / 김영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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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과학' 의 부재 

지난 학기 때 전공과목으로 '사회학' 과목을 수강한 적이 있다.  사실 이 수업을 신청하기 전부터 행정학 관련 전공과목보다 내심 큰 기대를 걸었다.    하지만 기대했던만큼 수업 내용은 실망스러웠다.   '사회학' 이라는 제목답게 사회학에서 다루는 이론을 강조하는데만 그쳤을 뿐 정작 중요한 사회현상을 해석할 수 있는 분석 방법을 학생들에게 알려주지 못했다.   '사회학' 에서 '과' 자가 빠져버린 탓일까?       

이번 2학기에는 2학넌 전공과목으로 '사회과학방법론' 이라는 이름의 수업이 있다.  이름만 들어보면 사회 현상을 사회과학적 관점으로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듯하다.  하지만 수강신청했을 때 이 수업의 수강계획서를 보면서 내가 생각하고 있는 '사회과학' 과는 내용이 너무나도 달랐다.   '사회과학방법론' 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사회조사방법론' 에 가까웠다.   

최근까지만해도 언론매체와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인문학의 위기' 운운하여 학문 풍토의 문제점을 거론하였는데 인문학뿐만 아니라 이제는 사회과학에도 학문적 주체성과 존립성에 위기가 찾아오지 않았나 스스로 생각해보기도 한다.    여기서 말하고 있는 '사회과학' 이란 사회학, 행정학, 정치학 등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사회 현상을 지배하는 객관적 법칙을 이해하고 총체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내용을 뜻한다.  

그런데 '사회과학' 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어렵게 느껴진다.  사회에 '과학' 이 붙어 있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1980년대만 해도 대학생들 사이에서는 사회과학이 유행하였다.  그런데 이제는 대학가에서는 사회과학을 운운하는 대학생들을 만나기가 어려워졌다.  이제는 '취업' 과 '스펙' 에 집중하고 있다.   

<나와 너의 사회과학>에서 우석훈은 사회과학의 남성적인 측면 때문에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는 데 집중하다가 결국에는 사람들로부터 멀어졌다고 하였다.   사회과학은 사회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토론의 장을 만들었지만 시대가 흘러가면서 논쟁에서 이기기 위한 학문으로 변질된 것이다.   사회과학의 부재 이후, 우리 사회에는 경제 근본주의와 무한경쟁 자본주의만 남게 되었고 정치와 사회는 좌우로 나뉘어 소통이 불가능한 상태에 처했다.   이러한 상태가 진행되면서 우리나라 사회는 문제 투성이면서도 도통 해결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저자는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사회과학 르네상스' 를 제시한다.  그는 사회를 작동원리를 보다 깊고 보다 넓게 읽는 방법으로 사회과학 공부를 권하고 있다.   대결, 대립의 언어로서의 사회과학이 아닌 공감과 소통의 언어로 사용되어지는 사회과학을 가리킨다.   

사회과학을 공부함으로써 복잡한 사회현상을 분석하여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다거나 사회의 대안을 찾을 때 길잡이가 되어준다.   

 

 

  환원주의와 근본주의의 해악 (관련내용: 제7장 환원주의와 다원론)    

 

   

 노르웨이 테러 용의자 안드레스 베링 브레이빅,  

그는 무고한 시민들을 희생한 '가해자' 테러범이면서도  

동시에 '기독교 근본주의' 의 해악에 희생된 '피해자' 이다.  

 

 

지난 7월 22일, 글로벌 평화지수 세계 1위의 나라인 노르웨이에서 상상할 수도 없는 테러 사건이 발생했다. 십자군 전사를 자처하는 32세 청년이 정부청사에 대한 차량폭탄 테러와 이민 수용에 앞장선 노동당 캠프에 참가한 사람들에게 무차별 총격을 가해 100여 명이 사망했다.  

반인륜적이면서도 먼 나라 이야기 같은 노르웨이에서 발생한 극우 테러사건을 사회과학적 관점을 통해 우리가 보지 못하는 현상의 이면을 볼 수 있다.

환원주의는 다양한 현상을 기본적인 하나의 원리나 요인으로 설명하려는 경향이다. 환원주의는 결정론과 함께 과학의 양대 패러다임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막강한 위상을 자랑한다. 

자연과학과는 달리 인간의 의지가 개입되는 세상사를 한 개의 원리나 요인으로 설명하는 일원론적인 관점에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 사회, 언어, 기술 등 한 가지 요인으로 사회나 개인의 행동을 설명하는 이론들은 사회과학의 강력한 패러다임으로 자리잡고 있다. 복잡한 설명보다는 간단한 설명을 좋아하는 인간 습성은 과학의 세계뿐 아니라 일상생활 속에서도 환원주의가 뿌리내릴 수 있는 토양이다. 환원주의가 완고해지면 근본주의로 발전하게 된다. 그래서 환원주의는 극복과 경계의 대상일 수 밖에 없다. 

환원주의와 근본주의이 만들어낸 부작용이라고 할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가 '기독교 근본주의' 이다.    노르웨이에서 100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최악의 테러가 발생한 가운데 붙잡힌 테러범이 자신을 '기독교 근본주의자'라고 밝혀 사회적 관심이 증폭되기도 하였다.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은 자신과 다른 생각을 인정하지 않은 채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관철시키기 위해 폭력과 테러도 불사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다문화, 다종교, 다인종 사회를 부정하는 편이다.  이런 종교적 근본주의는 기독교에만 국한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종교의 특징만 다를뿐 자신들의 종교적 입지를 지켜내기 위해서 테러로 서방세계와 맞서려고 하는 '이슬람 원리주의자' 들의 입장과 일맥상통하다.   

우리나라에는 노르웨이의 테러범과 같은 극단적인 종교적 근본주의에 사로잡힌 경향은 아직 보이지 않지만 오랫동안 일원론, 환원주의적 원리가 작동되고 있는 우리나라 사회라도 예외가 아니다.    테러범은 가부장제 특성과 단일문화 전통이 강한 한국과 일본의 문화적 보수주의를 칭찬하면서 유럽이 앞으로 추구해야 할 모델 국가로 바라봤다.   우리나라는 외국인 노동자와 국제결혼 이민자들이 증가하면서 다문화 담론이 사회 전 분야에서 이뤄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반(反) 다문화적 경향이 자리잡고 있다.    

다문화 반대 움직임이 날로 커지고 조직화되는 시민단체 및 온라인 카페의 수가 급증하고 있으며 외국인 범죄와 결혼 이민자의 가출 사례 등 외국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퍼뜨려 반 다문화 정서를 부채질하고 있다. 자칫 이런 기류를 무시하고 방치할 경우 사회불안 요소로 비화될 수 있으며 우리나라에도 노르웨이의 사례와 같은 극단적인 사건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낙관적인 보장도 없다.   

  

 

 수다쟁이들을 위한 사회과학

노르웨이 테러범 사건과 같은 극단적인 현상의 이면에는 사회과학적 원리가 작동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현상의 원인과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을 찾을 수 있다.  즉, 우리가 겪고 있는 경제 위기, 정치 균열, 사회 갈등, 문화 충돌 등의 현상 속에는 사회과학 영역이 아닌 것이 없다.   

특히 1984년에서 1995년 사이, 한국 사회의 민주화 과정에서 사회과학의 학문적 공헌은 매우 컸다.  (<나와 너의 사회과학> pp 19)   그리고 1980년대 대학생들은 동아리 같은 소모임을 통해 스스로 공부하고 자발적으로 토론에 참여하였다.  (같은 책, pp 32)    삶의 양뿐 아니라 질이 한층 제고된 한국 사회의 미래 발전을 위해서도 사회과학의 공부는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사회과학이 차지하는 비중에 비해 여건은 좋지 않다. 2, 30년 전과 같은 사회과학을 전문적으로 공부하는 동아리를 결성하는 대학생들을 찾기가 어려우며 학문의 기본을 구성하고 있는 교양 커리큘럼에서 사회과학의 비중은 점차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문제의 심각성은 사회과학 내부에 존재하는 양극화다. 정치학, 법학, 행정학 같은 실용적이면서도 응용학문 성격을 띠는 사회과학 분과는 활기를 띠고 있지만, 정작 이들 학문을 밑바탕이 되는 기초학문 성격을 지니는 '사회학과' 는 위축되어 있다.  일부 사회과학 학과는 수강하는 학생들이 없어 폐과 직전이다.  

엘리트 남성의 전투 용어로 뒤덮인 사회과학의 언어가 여성을 포함한 생활인들의 일상용어로 바뀌어야 '사회과학의 르네상스' 가 가능하다고 역설하고 있다. 저자의 생각이 사회과학의 위기가 거론되고 있는 척박한 학문의 현실을 개선하기에는 조금은 미약한 감은 있지만 즐겁게 수다로 풀어낼 수 있을 정도로 모든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는 '수다쟁이' 들의 사회과학이 우리 사회에 필요하다.  그러한 환경 속에서라면 복잡한 세상을 자신의 눈으로 읽고 해석할 수 있는 능력과 안목을 스스로 높일 수 있을 것이다.  

 

  

 

P.S >  

사회현상을 바라볼 수 있는 기초적이면서도 중요한 사회과학적 방법들을 소개하고 있으며 각 챕터 끝에는 독자들이 직접 사회과학적 방법론들을 실제로 적용해보는 글쓰기 훈련을 할 수 있는 '쪽글' 이 구성되어 있는 점에서 본다면 이제 막 사회과학에 입문한 대학생들이 읽어도 좋은 책이다.    

하지만 몇 몇 내용들 중에는 대학생 독자들이 이해하기 어려울 소지가 있으면서도 잘못 소개한 부분도 있었다.    

 

알다시피 아인슈타인은 실험을 통해서 이론을 개진했다기보다는 이른바 '사고실험', 즉 계산을 토대로 이론을 만든 학자였죠.  그는 계산에 근거해 태양계에 행성이 하나 더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나중에 여러 사람의 노력으로 해왕성이 발견되죠.    (pp 115) 

 

* 과학주의와 해석학을 다루고 있는 제6장 '설명과 이해' 에 언급되는 내용 일부분이다.  아인슈타인이 해왕성의 존재를 예언한 것처럼 설명하고 있는데 이는 잘못된 내용이다.   아인슈타인은 자신이 발표한 일반상대성이론을 증명하기 위해서 강한 중력장 속에서는 빛이 구부러진다는 과학적 예상을 발표하였다.  그의 예상은 훗날 영국의 천문학자 아서 에딩턴을 중심으로 한 일식관측대에 의해서 증명되었다.     

해왕성의 존재에 대해서 수학적 계산을 통해 추정한 사람은 위르뱅 르베리에라는 프랑스의 천문학자다.  1846년에 르베리에가 시도한 계산을 의뢰받은 독일의 천문학자 갈레가 해왕성을 발견하였다.

  

선불교를 정리한 6조 혜능이 과연 돈오점수라고 이야기했는지 아니면 돈오돈수라고 이야기했는지 이것도 아주 오래된 선불교 논쟁이에요.   그런데 분명 <육조단경>이라는 책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텍스트를 조작한 것 아니냐며 도무지 믿지를 않았어요.  나중에 둔황 석굴에서 진본이 등장한 다음에야, 돈오돈수가 맏다는 걸 인정하게 됩니다.  이것 또한 이해와 해석의 문제였지요.   (pp 120)

 

* 이 문장 역시 제6장 '설명과 이해' 에 언급되는 내용 일부분이다.   여기서 '이해' 와 '해석' 의 차이점을 설명하기 위해서 돈오점수와 돈오돈수 논쟁를 사례로 들어 잠깐 언급되고 있다. 그러나 사회과학적 방법을 쉽게 설명하기 위해서 다양한 사레들을 인용하다보니 이에 대한 자세한 부연적인 설명을 놓치고 말았다.     인용한 부분만 읽어도 독자들은 돈오점수와 돈오돈수 논쟁이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없게 되며 논쟁의 의미를 모르게 되다보니 저자가 말하고자하는 의도마저 불분명해져 버렸다.  

 

4대강 사업 같은 경우는, 시간의 비가역성을 엉뚱하게 적용한 경우라고 할 수 있죠.  개발주의자들과 토건주의자들이 주로 쓰는 논리가, 이미 돈을 들였으니 그만둘 수가 없다는 거잖아요.  하지만 아무리 돈을 많이 들였어도 앞으로 치러야 할 비용이 더 크면 그만두는 게 이익입니다.  경제학에서는 그걸 '매몰비용 sink cost' 이라고 부릅니다.   (pp 195) 

* 매몰비용은 이미 지출되었기 때문에 회수가 불가능한 비용을 말한다. 물건이 깊은 물 속에 가라앉아 버리면 다시 건질 수 없듯이 과거 속으로 가라앉아 버려 현재 다시 쓸 수 없는 비용이라는 뜻이다.   이 책에서 매몰비용의 영문을 Sink Cost 라고 표기하고 있는데 정확한 영문은 Sunk Cost다.   Sunk는 '가라앉다' 라는 뜻의 Sink의 과거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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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 2011-09-20 0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서점에서 이 책을 좀 읽었었는데, 마치 강의를 하는 식대로 나름 쉽게 설명하려고 노력을 하는 것 같더라구요. 하기는 요즘에는 가장 밀려나 있는 것이 사회과학인 것 같기는 합니다(서점에서도 대부분 한갓진 구석에 배치되구요). 예전에만 하더라도 도리어 사회과학이 다른 많은 것을 포괄하는 것으로 대학생들 사이에 받아들여지기도 했는데..(사회과학 학회 같은데에 첫 커리로 철학책을 가지고 하는 것이 정석이었던 것처럼) 어쩌면 '사회과학'이라는 용어가 일종의 이념적 용어처럼 받아들여진 영향도 있지 않을까 싶구요.

학문의 유행도 사회의 어떤 경향 속에서 생겨나는 것이겠지만, 저역시도 씁쓸하게 생각되는 점들이 있네요.

cyrus 2011-09-20 16:15   좋아요 0 | URL
맞아요, 기본적인 사회과학 이론을 쉽게 풀어내고 있어서 좋았어요.
제가 알기로는 80년대 때 많이 읽혀졌던 사회과학 도서들이 마르크스
사상과 관련된 것들이 많은 걸로 알고 있어요, 한창 그 시기가
대학생들의 민주화 운동이 물꼬를 틀고 있었던 때라,,
맥거핀님 말씀처럼 오늘날 사회과학이라고 하면 이념적인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는 것도 당연한거 같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11-09-20 17: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회이론 중에서 환원주의가 정말 어려운 문제더군요.우리가 무슨 원인을 이야기할 때 개인문제를 극단적으로 강조하면 심리학 환원주의가 되고 사회문제만 극단적으로 강조하면 사회환원론(사회결정론)이 되는데 이 둘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가 정말 쉽지 않아요.이 문제는 철학분야의 인식론과도 겹치니까 그 분야도 한번 다뤄보세요.유물론과 관념론의 논쟁까지도 공부할 수 있으니 도움이 많이 될 거에요.

cyrus 2011-09-20 16:17   좋아요 0 | URL
맞아요, 환원주의도 어떠한 상황과 관점에 따라 종류가 다양했어요.
제 글에는 언급이 되지 않았지만 환원주의를 설명하고 있는 내용에도
유물론, 관념론이 언급되더군요, 저는 처음에 읽었을 때 이게 왜 나왔냐
생각이 들었는데.. ^^;; 환원주의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군요.

노이에자이트 2011-09-20 17:32   좋아요 0 | URL
에밀 뒤르켐의 사회실재론은 유물론이나 관념론 어느 범주에도 넣기가 좀 애매한데, 이것을 막스 베버의 방법론과 비교해보는 게 괜찮을 거에요.그 책에 사회실재론에 대해서도 나오나요?

에드워드 카<역사란 무엇인가> 중 제2장 '사회와 개인'에선 사회환원론과 심리학환원론의 문제를, 제4장 '역사에서의 인과관계'는 결정론과 인간의지의 관계를 다루고 있으니 에밀 뒤르켐과 막스 베버의 방법론을 비교한 후 다시 읽어보면 좋을 겁니다.물론 <역사란 무엇인가>를 먼저 공부해도 되고요.

cyrus 2011-09-21 16:07   좋아요 0 | URL
잘못 기억할 수도 있지만 제 기억으로는 사회실재론에 대해서 언급한 내용은
없었어요.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는 언젠가는 꼭 한 번 읽어보고 싶었는데
노자님이 권하시니 읽어야할 동기가 생겼네요, 좋은 정보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yamoo 2011-09-21 0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뒤르켐의 방법론과 베버의 방법론을 비교해 보는 것두 재밌을 거 같아요. 헌데, 비교하는 거 자체가 만만치 않을 거 같다는..ㅎㅎ

cyrus 2011-09-21 16:07   좋아요 0 | URL
맞아요, 갑자기 머리가 복잡해졌어요, 혹시 야무님도 도움이 되는
정보 알고 계신다면 알려주셔요 ^^

yamoo 2011-09-21 22:31   좋아요 0 | URL
환원주의에 대한 장단점을 균형있게 보여주는 책이 레이첼 칼슨의 <침묵의 봄>이에요. 정확히는 환원주의적 방법론에 입각한 책이지만요^^ 스탠릭 큐브릭 감독의 <닥터 스트레인지 러브>도 환원주의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명화라 생각합니다~
 
복지 국가 비타 악티바 : 개념사 22
정원오 지음 / 책세상 / 2010년 11월
평점 :
품절


  

  '무상급식 투표 결과' 에만 혈안이 된 복지 논쟁

대한민국 사회 최대의 쟁점인 무상급식에 대한 주민투표가 드디어 내일 실시된다.  투표 결과는 서울이라는 특정 지역이나 무상급식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선별적 복지론과 전면적 복지론이 정면 충돌하고 있는 상황이기에 국가 복지정책의 향후 진로가 판가름나는 중대한 기로에 놓여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투표결과에 눈물까지 흘리면서 자신의 시장직을 내건 모습이 보기에 민망하고 무모한 도박처럼 느껴진다. 투표율 33.3%의 벽을 넘을지 모든 국민은 투표 결과에 집중하고 있다. 이 투표율을 넘지 못하면 개표 자체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다보니 보수 진영 시민단체 쪽에서는 투표참여 문자 메시지와 홍보문를 전송함으로써 어떻게든 무상급식 도입을 막으려고 열을 올리고 있다.   

지금 우리나라의 모습을 보면 무상급식이라는 복지정책 도입의 의미보다는 투표 결과에 더 혈안이 되어 있는거 같다.   오 시장으로 대표되는 보수 진영 쪽에서는 무상급식은 빨갱이들이 선동하는 경제 파탄으로 가는 망국적 포퓰리즘이라고 규정하고 있으며 진보 진영 측의 야당에서는 오 시장에 내건 주민투표는 무의미하고 위법적인 행위라고 반박하고 나서 국민들에게 참여할지 말 것을 호소하고 있다.  수치로 결정되는 투표 결과에만 매달리는 복지 논쟁이 점점 가열되는 양상이다.    '무상급식' 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무상급식 투표 결과' 를 위한 싸움일까?  보수 세력은 어떻게든 투표율을 높이서라도 무상급식 도입을 막으려고 고군분투하고 있으며 진보 세력은 그저 투표에 참여하지 말라고 할 뿐 투표 결과에 따른 무상급식 도입을 위한 실질적인 방안 마련에 대한 어떠한 자세도 보이지 않고 있다.   국민들의 입장 역시 천차만별이다.  오 시장의 눈물 쇼(?)에 코웃음치면서도 복지 정책 도입으로 인한 사회적 변화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해본 사람이 몇 명이 있을까?   지방에 사는 주민들은 서울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그저 남의 나라 일처럼 생각하고 있다. 

정당과 국민들은 정작 '복지' 라는 핵심적인 본연의 의미에 대해서는 점차 잊혀져가고 있는 것이다.

 

  영국의 사례, 베버리지 보고서    

 

  

'요람에서 무덤까지' ,  윌리엄 베버리지 (1879~1963) 

 

영국은 이미 50여 년 전에 복지 정책 도입 논쟁이 있었다. 덕분에 우리나라보다 이미 복지국가 단계를 거치게 되었다.  그래서 1945년 전후에 벌어졌던 상황은 2011년 한국의 복지 논쟁에도 시사하는 바가 많다.  

2차 세계대전의 와중에 영국 정치지도자들은 국민 사기진작을 위해 종전 뒤 사회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려 했고, 전시 연립내각인 처칠 행정부는 1941년 이를 위한 위원회들을 구성했다. 윌리엄 베버리지는 그러한 위원회 가운데 하나인 ‘사회보험 및 관련 서비스에 관한 조사위원회’ 위원장이었다. 베버리지는 1년여의 활동을 거쳐 1942년 12월 보고서를 출판했고, 이 보고서는 선풍적 인기를 모았다.  그것이 바로 '요람에서 무덤까지' (from the cradle to the grave)라는 복지국가의 모토가 탄생된 '베버리지 보고서' 이다.   

베버리지 보고서는 부모 소득과 관계없이 아동이 성장할 수 있는 아동 수당, 누구나 자유롭게 치료를 받는 무료 의료시스템, 원하는 사람 누구나 일할 수 있게 하는 노동 정책을 제시하였다. 전쟁의 참화 속에서 실의에 빠진 영국 국민들은 복지정책 도입에 환영하였으나 현실적으로 정책에 도입할 재정적 여건을 충당하기에는 감당하기가 어려웠다.   노동당과 자유당은 국민들의 의사를 반영하기로 검토하였으나 반대로 보수당은 엄청난 재원이 필요하며, 전후 복구에 막대한 자금이 필요한 상황에서 복지 확대는 국가 백년대계에 어긋난나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국민의 폭발적 기대 속에서 기다릴 수 없었다.  세계대전이 종전됨에 따라 영국은 전시 의회를 해산하고 총선거에 돌입하였다.  선거 최대 쟁점은 전후 발전 방향이 아니라 베버리지 보고서의 실현 문제였다.  즉, 사회적 복지 제도가 도입될 수 있을지에 대한 여부였다.   국민들의 강력한 여론에 선거 전세에 불리함을 느꼈던 것일까?  복지정책 도입 반대 입장을 고수하던 보수당도 어정쩡한 입장에서 보고서 내용 실현을 공약했다.    그러나 노동당은 적극적 실천과 대대적 복지 확대를 내세웠다.  전시내각 해체 전부터 노동당은 주도적으로 복지정책이 도입될 수 있도록 이미 기틀을 확립하고 있었다.  

선거 결과 2차 대전 승리의 주역인 윈스턴 처칠 총리는 참패하고, 종전 두달만에 그때까지 단독 집권경험이 없었던 노동당에 정권을 내주었다. 집권한 노동당은 약속대로 국민 보험 제도와 산업 재해 보험 제도를 법적으로 실시하게 하였고 복지 국가로서의 영국으로 본격적으로 출범하게 되었다.    

 

 

  과연 한국은 '복지국가' 라고 규정할 수 있는가?       

이 책의 저자 정원오 성공회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영국의 사례를 들어 복지국가가 탄생하기 위한 필수 요건을 세 가지로 정리하고 있다.  

 

 첫째, 노동당처럼 사회 보장 정책 도입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하고,  

 둘째, 영국이 총선거를 통해서 복지국가로 전환될 수 있었듯이 민주주의 정치 과정 혹은 의회 민주주의 절차를 거쳐야 하며  

 셋째,  유럽 각국에는 노동자 계급의 이익을 대변하면서 민주적 방식으로 정치적 권력을 획득한 사민주의 혹은 중도 좌파 정당이 존재하고 있듯이 복지국가 존립에 이념적으로 가장 친화성이 있는 정파가 있어야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4대 사회 보험(국민연금, 건강보험, 고용보험, 산재보험) 제도등 사회 복지 서비스 체계가 갖추어져 있지만 사회 보장을 위한 재정적 규모면에서는 OECD 국가 중에서 복지비 지출 비중이 가장 낮아 이미 복지국가 단계를 거친 영국와 스웨덴 등과 비교하면 '걸음마' 수준에 불과하다.  

저자는 두 번째 요건에서는 '우리나라가 민주주의 정치 체제가 안정화되어 있다는 점을 부정하기 어렵다' (pp 156) 라고 결론을 내리고 있지만 최근 MB 정부의 노선 행보를 생각하면 민주주의적 가치가 점차 퇴행되고 있음을 역시 부정하기는 어렵다.    지금 최대의 쟁점에 서 있는 무상투표 주민투표는 오히려 복지국가로의 전환을 부정하려는 오 시장의 의도가 내포되어 있고 서울시의 주민투표 발의는 무상급식 시행여부와 시기 결정 등은 서울시 교육감 소관임에도 불구하고 권한을 침해했으니 법적으로 본다면 이 투표는 민주적 절차를 어긴 위법 행위다.   우리나라는 여전히 민주주의 절차가 지켜지지 못하고 있는 '민주주의 국가' 이다.  

우리나라에 남북 분단의 상황으로 인해서 좌파로 대표되는 진보세력의 입지는 여전히 미약하다.    좌파 이념의 민주노동당이 존재하고 있지만 현재 집권당인 한나라당과 대표적인 여당인 민주당의 정치적 영향력을 비교한다면 우리나라는 확실하게 정치적 권력을 획득한 중도 좌파 정당이 없으며 '복지' , '무상급식 도입 찬성' 을 옹호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복지 정책 도입에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수준이다.  그래서 복지 국가와의 친화성 수준은 낮을 수 밖에 없다.  

지금까지도 복지 국가 유형의 분류에 대한 구체적이면서도 통일적인 유형은 없지만 지금의 우리나라의 모습을 보면 '복지 후진국' 미국과는 별반 차이가 없다.   미국은 실질적인 사회 보험 제도가 도입되지 못했으며 사회 보장에 대한 국가의 재정 지출 비용 역시 유럽 복지 국가들에 비해 낮은 수준이다.   

 

 

  '어설픈 복지' 보다는 '보편적 복지'

이러한 영국의 사례는 우리나라에도 분명한 교훈을 준다. 안보 문제와 복지 문제가 충돌했을 때, 선거에서는 복지문제가 훨씬 큰 위력을 발휘한다는 점이다. 안보는 ‘모두의 문제’ 이고 복지는 ‘나의 생존과 관련된 문제’ 이기 때문일 것이다.  

1945년 집권하여 보편적 복지라는 베버리지의 꿈을 추진했지만 6년 뒤에 다시 국민으로부터 불신당하고 보수당에 정권을 내주고 되며 훗날 '영국병' 또는 '복지병' 이라고 불리우는 복지 정책의 부작용이 드러나기도 했지만  베버리지 보고서와 노동당의 사례는 보편적 복지를 실현하려는 국가에게는 교훈의 대상이다. 과감한 재정적 투자로 체감할 만한 수준의 급여가 이루어져야 하고, 치밀한 정책 기획력에 의해 대중에게 다가가야 한다는 점이다.  

어설프게 보편적 복지를 레토릭으로 주장하는 보수세력도 문제이지만 진보세력은 (투표 결과가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무상급식 투표율이 33.3% 미달된 결과에 성급하게 축배를 들어서는 안 된다.    

진정 가슴과 머리로, 국민들을 위한 보편적 복지를 실현할 준비가 필요하다.  복지국가로가 되는 것이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국민들 역시 복지정책 및 복지국가의 참된 의미 그리고 앞으로의 사회적 변화에 대해서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투표 결과가 어떻게되든 간에 우리의 삶에 매우 밀접한 영향을 주는 '복지' 라는 개념을 쉽게 무시할 수는 없다.   준비되지 않은 채 목소리로만 주창하는 보편적 복지는 오히려 역사와 발전을 더욱 후퇴시킬 수 있음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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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스 2011-08-23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루스님은 투표결과가 어땠으면 좋겠어요? 아예 33.3%가 안되면 훗날 또 어떤 식으로 다툴지 궁금해요. 무엇을 위한 선거고 무엇을 위한 투표인지, 어떤 게 진정한 복지인지 요즘은 의문이 들어요.

cyrus 2011-08-23 20:22   좋아요 0 | URL
저는 투표율이 미달되었으면 합니다. 투표율이 미달된다면
진보 여당은 투표 결과에 축배를 들기보다는 영국의 노동당처럼
무상급식 정책이 정착될수록 실질적으로 준비를 했으면 좋겠어요.
만약에 투표율이 넘는 예상 밖의 결과가 나온다고해서
복지 정책 도입에 대한 화두만큼은 오랫동안 쟁점화되었으면 해요.

양철나무꾼 2011-08-23 1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아침 손석희의 시선집중에서 내일 주민투표를 두고 공방이 있었어요.
전 당근 투표를 할 생각이 없지만,
주민투표 청구 측 얘기(그 여자가 이경자라는 이름였었나?)를 들어보니,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더군요.
또 어떤 어거지를 쓸지 말입니다.

cyrus 2011-08-23 20:24   좋아요 0 | URL
오늘도 뉴스를 보니 어떻게든 무상급식 도입을 막아보려고
별 수작을 다 하더군요. 무상급식 찬성론자를 빨갱이라고
하더니 이제는 무상급식하는 학생은 동성애자 된다고 하는 말도
안 되는 홍보까지 펼치네요 ^^;;

마녀고양이 2011-08-24 1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음, 그런데 영국이 복지 국가라 할 수 있는거 맞나요?
처칠 때에는 그런 논쟁이 있었는지 모르나, 대처 수상에 의해서 퇴보되었다는 글을 읽었던거 같기도 하고....... 여하튼 얼마 전 영국의 유혈 투쟁을 생각하면, 이 책의 논점이 얼마나 먹힐지 모르겠어요. 현재 영국의 양극화 현상과 실업 문제는 엄청나니까요.

cyrus 2011-08-25 19:57   좋아요 0 | URL
마고님 말씀 맞아요, 베버리지 보고서와 노동당의 승리로 영국은
복지국가였다가 1980년대부터 복지병이 발생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대처 수상이 당선됨으로써 신자유주의 노선으로 가게 되었죠.
오늘날에도 베버리지 보고서를 사회보장제도 확립의 기초로 평가를
받고 있어요.

그런데 복지에 반대하는 보수는 벌써부터 복지병 생길거라 운운하면서
망국 포퓰리즘이라고 반대하고 있던데 다른 복지국가의 교훈 삼아서
문제를 해결해나가도 좋을텐데 말이죠 ^^;;
 
마이 리틀 레드북 - 100명의 솔직한 초경 이야기 '여자는 누구나 그날을 기억한다'
레이첼 카우더 네일버프 엮음, 박수연 옮김 / 부키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월경에 대한 부정적 인식

여성들이 매월 주기적으로 겪는 월경. 좋든 싫든 어쩔 수 없이 치러야만 하는 이 생리 현상은 ‘여성으로 거듭나는 아름다운 불결함’ 이다. 특히 어린 나이에 불쑥 맞게 되는 첫 생리, 초경은 여성 입장에서는 두려움과 부끄러움으로 가득찬 충격적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많은 여성들은 초경을 혼자만의 기억으로 감춘 채 입밖에 내기를 꺼려한다.

여성의 생리를 바라보는 시각은 시대나 문화권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로 신성하지 못하거나, 부정타고, 불결하고, 재수없고, 더럽고, 귀찮은 등 부정적이고 금기시하는 이미지가 대부분이다. 심지어 여성 자신도 그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몸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인 경우가 있다.   

특히 '순결, 깨끗함' 을 강조하는 생리대 광고는 여성들로 하여금 월경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부추기는데 한 몫 하고 있다.  이는 생리란 원래 불편하고 지저분한 것이라는 전제에 기인한다. 생리대 광고에 출연하는 모델들을 보라.  한결같이 순결한 20대 여성들의 이미지를 사용하고 있지 않은가?    말할 수 없는 것, 감춰야 되는 것, 부끄러운 것, 불결한 것. 드러내지 않음으로 인한 여러 가지 월경에 대한 오해와 금기들이 형성되어져 왔다.

  

 

  초경에 대한 두려움

    

 

에드바르드 뭉크 <사춘기>  1895년

  

유년기는 혼자만의 공포든, 사회 속에서의 공포든 두려움 없이 지나가지 않는다. 어쨌든 모든 것은 중학생의 끔찍한 머릿속에서 나온다.  아이들은 비열해지고 10대 시절에 느끼게 되는 불안감으로 말미암아 더욱 더 취약해진다.  사춘기 또는 사춘기의 두려움 때문이다.  젖멍울이 맺히기 시작한 소녀들은 가슴이 절벽인 소녀들 앞에서 거만을 떤다.  탐폰이나 생리가 뭔지 모르는 아이는 지진아 취급을 받는다.  

- 에리카 종 [열네 살의 두려움] 중에서, <마이 리틀 레드 북> pp 35 -   

 

소설가 에리카 종의 표현은 초경을 마주하게 된 여성들이 갖게 되는 원초적 두려움을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다.    스티븐 킹의 소설 <캐리>의 초반부에 갑작스레 샤워실에서 월경을 하게 되는 캐리를 비웃고 놀리는 또래 친구들의 모습이 단지 캐릭터의 특징을 부각하기 위한 설정은 아니었나 보다.   실제로 또래 여자아이들끼리 월경을 시작하는 특정 여자아이를 집단적으로 괴롭히는 장면이 에리카 종의 에세이에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감수성이 예민하고 주변의 환경에 영향 받기 쉬운 사춘기 시기의 소녀들. 특히 입시 스트레스 및 교우관계 등에 얽매이는 오늘날의 대한민국 학생들에게는 월경이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고 심하면 피로와 불안감 그리고 우울증이 동반될 수 있다.   

<마이 리틀 레드 북> 속에 담겨진 월경과 관련된 추억담은 시대와 국경을 초월하여 모두 초경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 인간은 아직 알지 못하는 것을 대할 때 가장 큰 두려움을 느낀다. 그 미지의 것이 적대적인 존재일지라도 일단 정체가 밝혀지면 인간은 안도감을 느끼게 된다. 반면에 상대의 정체를 알지 못하면, 상상을 통해 두려움을 부풀리는 과정이 촉발된다 ' 라고 말한 프랑스의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표현대로 자신의 몸에서 기인된 신비스러운 첫 만남이 여성에게는 두려움이 증폭될 수 밖에 없다.  

대개 이런 경우의 증상들을 부모님이나 주변사람들에게 알리지 않고 참고 견디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부모들은 초경 시기가 사춘기와 겹쳐 '질풍노도의 시기' 라 그러려니 하고 오해하거나 그냥 넘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 초경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아버지 입장에서는 초경이라는 신체적 증상은 여성만 통하는 금기인마냥 내심 수줍어하기도 한다.    

내가 생리를 시작하자 아버지는 식물이 죽는다면서 물을 주지 말라고 했다.  

- 델마 캔들 [화분 물주기여 안녕], 같은 책 pp 42 -  

 

월경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제대로 갖춰지지 못하게 되면 오늘날의 입장에서 보면 말도 안 되는 왜곡된 금기마저 생기게 된다.  실제로 1920년대에는 생리 중인 여성의 몸에는 식물을 죽이는 '메노톡신' 이라는 물질을 분비한다는 학설이 존재하기도 했다.   

 

     

  초경, 여성의 잔치는 시작되었다 

 

엄마는 흑인 여성으로서 우리의 초경은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경험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제 엄마가 될 수 있으며, 몸과 감정 그리고 여러 가지 면에서 미래에 대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나의 중요한 날에 아빠는 덕담을 건넸다.  나는 개인적으로 큰 변화가 있다고 느끼지는 않았지만 아빠의 덕담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아빠는 내가 더는 꼬마가 아니라 어엿한 여성이라는 뜻으로 축하한 것이리라.   

- 자넷 루이스 [초경과 책임감] 중에서, 같은 책 pp 62 -

 

하지만 초경은 징조 없이 불쑥 찾아오는 불청객이 아니다.  이 시기에는 초경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함께 몸의 변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주변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주어야 한다.  미리 미리 생리대를 준비시키고 사용법을 알려주는 등 초경과 월경을 맞을 준비를 하는데 부모의 역할은 올바른 상식을 상세하게 알려줘야 하는 법이다.   

<마이 리틀 레드 북> 속 월경 이야기에는 단지 초경에 대한 두려움만 기록되어 있는 건 아니다. 자넷 루이스의 경험처럼 초경을 맞이한 자녀를 위해 부모가 적극적으로 초경에 대해 이해할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으며 특히 자녀의 초경을 막연히 두려운 증상이 아닌 어엿한 여성이 되었다는 의미로운 기억으로 만들어주기 위해서 성대한 축하 파티도 열어주기도 한다.  

 

나는 결혼으로 인하여 처음으로 자신이 이 지구라는 태양계의 제3혹성에 사는 인류의 일원이라는 것을 생생하게 실감하게 됐다. 나는 지구에 살고 있고, 지구는 태양의 둘레를 회전하며, 그 지구의 둘레를 달이 회전하고 있다. (중략) 

내가 그런 식으로 생각하게 된 것은 아내가 거의 정확하게 29일을 주기로 생리를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달의 참·이지러짐과 완전하게 호응하고 있었다 

- 무라카미 하루키 <태엽 감는 새> 중에서 -

  

모든 여성들의 깊고 깊은 속마음을 알 수는 없지만 월경 때문에 잠시나마 고통을 겪어야하는 그들에게는 이런 마음을 한번쯤은 가져봤을 수도 있지 않을까?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속 구절처럼 생리를 하게 되면 힘겨운 하루를 보내면서도 속 시원하게 누군가에게 하소연 할 곳도 없는 여성들의 말 못하는 고민을 이해할 줄 알고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는 남편이나 애인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여성에게 있어서 월경이라는 것은 한 달에 한 번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생활의 일부이다. 월경 기간 중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한 생리통과 심리적 변화 등이 일어나 고생을 하지만, 이것이 월경 때문이라는 것이 주변에 특히 남성에게 알려질까봐 심적 고통에 시달리기도 한다.

초경을 맞이한 여성이 자신의 몸에 대해 살펴보고 지켜보고 아낄 수 있는 권리, 월경을 하지 않는 여성 역시 자신의 몸을 알고 소중히 할 수 있는 권리. 아직도 이런 권리를 여성이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여성의 생리를 이해하면 여성이 보인다.  소중한 생명을 낳기 위해 28일을 주기로 신체에서 반복되는 여성생리를 잘 이해하고 대처하는 것은 여성자신 뿐만 아니라 남성들의 몫이기도 하다.  여성의 생리가 정상이라는 말은 곧 여성이 육체적으로, 정서적으로 여성의 생식기계가 특별한 이상없이 모든 기능이 안전하고 건강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월경하는 여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아직도 별반 달라지지 않은 것 또한 사실이다.  여성의 활발한 사회진출과 여성인권 보호차원에서 여성의 주장이나 권리의식이 신장됨으로 이제는 생리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보다는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생리를 바라보는 시각이 대두되고 있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고 늦은 감이 있지 않나 생각이 든다.    

사회 변화와 함께 여성의 사회 참여가 높아지면서 월경은 더 이상 ' 말 못하며 말해서는 안 될 대상 ' 은 아니다.  정작 여성으로서의 몸에 대해서 모른 채 살아간다면 월경에 대한 좋지 않은 기억은 오랫동안 강하게 자리잡을 것이고 자칫 스스로 건강을 해치는 원인이 될 수 있다.   

초경과 월경에 대한 정확한 이해야말로 진정한 여성으로서의 충만한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인생의 첫 관문인 것이다.     

    

 

P.S 좋은 책, 잘 읽었습니다. ***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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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13 15: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8-14 15: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8-13 15: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8-14 15: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이리시스 2011-08-14 0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다양한 책을 거리낌없이 읽어내시는 시루스님, 요즘 독서력이 최강이군요. 얼마 안남은 방학도 화이팅! 이 책 주제 참 흥미롭네요. 사실 여자들보다 남자들이 많이 읽어야 할 책인 듯한데.. 원래 남자분들 대상으로 나온 책은 아닌 거죠?

cyrus 2011-08-14 15:33   좋아요 0 | URL
시간이 많은 방학이라서 학기보다는 편한거 같아요. 벌써 다음 주에
2학기 수강신청 기간이네요. 방학도 얼마 안 남았네요.

남성을 대상으로 쓴 책이라보다는 아무래도 여전히 월경에 대해서
왜곡된 인식을 가지고 있는 여성을 위한 책이라고 봐도 좋을듯해요.
물론 남성도 읽으면 참 좋고요 ^^
 
룸살롱 공화국 인사 갈마들 총서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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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특유의 접대 문화

최근에 시청자들의 논란을 뒤로한 채 드라마 <신기생뎐>이 막을 내렸다.  드라마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첫 회가 방영될 때부터 드라마 속 설정이 시청자들 사이에서 커다란 화제가 된 동시에 '막장 설정' 이라는 극명한 평가를 받았다.   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기생들은 전통을 지키는 자존심을 유지하면서 한국 최고의 부유층들이 다닌다는 '부용각' 이라는 최고급 요정에 소속되어 있다. 하지만 그녀들이 자존심을 걸고 지키는 한국 전통문화가 한국사회에서 근절되어야 할 바로 ’술접대 문화‘ 라는 것은 몇 번의 에피소드를 보면 금방 드러난다.   

드라마 속의 부용각 소속 기생들은 마치 황진이처럼 노래와 춤을 선사하며 술 접대를 하고 있다. <부용각> 손님들은 ‘양주’ 를 마시며 ‘한국 전통’ 을 지키고, 또 현대판 기생들인 그녀들은 기생으로서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영어를 배우며 한국전통을 지켜 간다. 한국에선 바이어들에게 한국여성을 접대시키며 비즈니스를 한다는 사실이 이미 국제화되었는데, 이 드라마에서도 서구 비즈니스 손님들까지 등장시키며 ‘한국여성은 술접대용‘ 이란 전통을 세계적으로 알리고 있다. 이런 한국의 접대문화를 예쁘게 단장해 세계화시켜주고 있는 것이다.   <신기생뎐>뿐만 아니라 몇 몇 드라마에서도 진한 화장에다 야한 옷을 입은 젋은 여자들을 양쪽에 끼고 술을 마시는 접대 장면이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다.  

한 국내 언론매체의 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 국민과 공직자들이 생각하는 향응, 접대 문화가 가장 심각하다고 인식하는 분야가 '정치' 쪽인 것으로 나타났다. (연합뉴스, 2010년 7월 6일자)   그리고 기업에서도 접대 한 번 하는데 드는 비용이 평균 40만 원이 초과할 정도로 사회조직적 집단 내에서 접대문화는 빠질 수가 없다.  '룸살롱 접대' 를 관행으로 인정하는 정계와 기업의 모습을 통해 접대문화가 독특하면서도 올바르지 못한(?) 또 하나의 문화로 정착되었다.  

 
 

  우리나라 접대문화의 불편한 역사  

 

 

삼청각, 대원각과 함께 서울 3대 고급 요정 중의 하나였던 오진암이  

작년에 매각되어 철거됨으로써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서울 종로구 익산동에 위치했던 오진암은 1950~70년대 밀실 정치의 주무대였다. 

(사진출처: 한겨레)  


 

책의 저자 강준만 교수는 룸살롱의 전신인 '요정'이 전성시대를 구가한 해방정국을 그 발원지로 보고, 마침내 위세가 절정에 달한 현재까지 룸살롱 발달의 과정과 변모의 순간을 생생하게 전한다. 

1947년 서울에만 3천여개 이상의 요정이 있었으니, 요릿집과 기생집이 보통 사람들의 화제가 되지 않는다면 오히려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당시 요릿집과 기생집 출입은 정치 지도자들에서부터 경찰에 이르기까지 사회 전 분야에 걸쳐 만연된 관행이었다.  

1963년 광화문전화국의 최고 사용률을 기록한 업소는 요정이었다. 2위는 다방, 3위 여관, 4위는 언론사다. 1967년에 언론과 학계에서는 “요정정치를 청산해 달라”고 촉구했지만 그 당시 집권하고 있었던 박정희 대통령은 “ 야당 정치인에게 정치보복을 하더라도 여자관계만큼은 건드리지 말라 " 는 지시를 내릴 정도로 기생 파티의 가치를 인정하거나 높게 평가하는 인물이었다. 분명 좋은 제안임에도 불구하고 쉽게 받아들일 리 없었다.  이 때만해도 정계와 접대문화의 은밀한 관계는 땔래야 땔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위에서부터 늘 요릿집과 기생집을 출입하는데 암묵적으로 용인되고 있었던 접대문화가 쉽사리 근절될 리는 없었다. 

1970년대부터는 중산층을 대상으로 한 룸살롱과 이에 따른 '호스티스 문화' 가 번화가 한가운데에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룸살롱이 아닌 업소들도 룸살롱 흉내를 내기 시작했고 오늘날까지도 유사 룸살롱으로 인해 룸살롱의 엄격한 정의를 놓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룸살롱 '원맨밴드' 경력 33년인 A씨에 따르면, 국내에 룸살롱이 들어선 것은 1970년대 중반이며, 1세대 룸살롱은 서울 퇴계로 주변에 모여 있었다. 이후 이태원 근처에 '길싸롱', '밤길' 같은 룸살롱이 생기기 시작했다.   

88 서울올림픽은 ‘룸살롱 올림픽’ 이라 불릴 정도로 룸살롱이 흥행하기 시작하였다. 전두환 정권은 11개 대형 요정업체에 20억원이나 되는 돈을 특별융자했고, 요정 수십곳은 ‘모범업소’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번 책에서도 강준만 교수는 정계, 경영계에서 이루어지는 룸살롱 관련 사건뿐만 아니라 연예인 성 접대 사건 그리고 최근에 경기 불황으로 인해 룸살롱 접대부로 일하는 20대들의 현실까지 읽는 내내 얼굴이 화근거리고 민망함을 느낄 정도로 룸살롱 안에서 이루어지는 은밀한 밀실문화를 적나라하면서도 담담하게 소개하고 있다.  



 

  룸살롱에서 부패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부패의 막장으로 파고 들어가는 구조적 악습의 뿌리는 '패거리 문화' 에 있다. 그리고 이런 룸살롱 문화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칸막이' 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강준만 교수는  ‘칸막이' 는 연고, 정실 중심의 패거리 만들기의 필수 요소라고 분석하고 있다.  칸막이 현상의 이익을 쟁취하고자 하는 게 접대이고 주고받는 접대 속에 부정부패가 꽃을 피울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국가청렴도가 답보 상태인 우리나라가 공정한 사회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사회 각 부분에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는 부패 친화적 접대 문화의 개선이 필요하다.  횡령, 뇌물, 유용 등 전통적인 형태의 부패행위 외에 부패친화적 문화와 연계된 향응, 접대 등에 대해서도 부패의 범주에 포함시켜야 한다.    

룸살롱은 정치인과 판·검사, 재벌과 언론 등 권력 자본가, 엘리트들이 음주와 놀이를 기본으로 접대를 주고받은 장소다. 술자리 접대와 성상납 강요를 폭로한 문건을 남기고 자살한 탤런트 故 장자연씨는 한국 접대 문화의 희생양인 것이다.  

그리고 최근에는 경기 불황을 이유로 젋은 20대들이 학비와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서 본인 스스로 화려하면서도 음침한 룸살롱으로 향하고 있다. 권력자들의 노리개로 전락한 접대부(여성뿐만 아니라 남성들도)들 중에는 더욱 희망의 빛은커녕 어둠의 늪으로 빠져들어가는 파탄된 삶에 후회만 거듭하다가 자살을 선택하고 만다.   룸살롱 메커니즘은 부정부패의 꽃만 피우는 것이 아니다. 사회지도층이란 사람은 룸살롱에 들어서는 순간 악마가 되어 자신들의 쾌락을 충족하고 미래를 꿈꾸는 서민들의 희망을 짓뭉개기도 한다.  그만큼 이 사회는 곪을 대로 곪아 썩은 '룸살롱 공화국' 의 현실인 것이다.

먼저 떠나간 사람들은 숙제를 남겨 놓았다.  남은 사람들은 그 숙제를 나누어 풀어야 한다. 그리고 다시는 이란 비극적이고 불미스러운 일이 없도록 접대문화의 문제점에 대해서 끊임없이 제기하여 재고해야 한다. 우리 사회 각 부문에서 공동의 노력이 결실을 맺어야 비로소 제대로 된 반부패 청렴문화가 조성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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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7-28 0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기생뎐은 하두 어이가 없어서 처음부터 보지 않았습니다.
정말 웃기는 설정이었지요, 일본의 게이샤 흉내를 내고 싶었던걸까요?

룸싸롱이라, 시루스님..
이번에 남성 전용 클럽으로 회원 딱 300명인가만 모집하는 외국 체인점 생긴거 아세요?
영국에서 들여왔다던가... 부유층 전용으로 회비가 어마어마한데
남성들만의 장소를 만들거라고 합니다. ㅎㅎ. 머하는 짓거리랍니까..

cyrus 2011-07-28 19:34   좋아요 0 | URL
요즘 VIP 고객을 끌어들이기 위해서 외국 회사에서도 우리나라에
그런 클럽을 만든다고 하더군요. 노는 건 좋긴 좋지만 너무 과할 정도로
흥청망청 노는건 안 좋다고 생각해요. ^^;;

아이리시스 2011-07-30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끝에 쫌 봤어요. 신기생뎐. 이 책 흥미롭네요. 이런 걸 문화라고 하기도 좀 뭐한 것 같은데 우리나라 술문화,접대문화 저는 너무 잘못됐다고 보거든요. 접대가 꼭 술이라는 것도 그렇고 우리도 밤 몇 시 이후에는 술을 안팔았으면 좋겠다고까지 생각했어요. 미국 어느 주들은 요일제한,시간제한 그런 거 있다고 하던데............

아 맞다, 시루스님 장학금 축하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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