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랫동안 잊힌 작가를 소개해보려고 한다. 작가의 이름은 안토샤 체혼테(Antosha Chekhonte). ‘체혼테’는 필명이다. 그는 1860년 러시아에서 태어났다. 체혼테는 모스크바대학교 의대생이었는데,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1880년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가 주로 쓴 글은 서너 장 분량 정도 되는 단편소설이었고 싸구려 잡지에 실렸다. 체혼테의 단편소설은 러시아의 사회 문제나 특정 계급의 인물을 풍자하여 웃음을 유발하는 형식이다. 일 년에 그가 쓴 단편소설의 수는 100편 이상이었다. 이 정도면 글을 대단히 많이 쓰는 편이다. 체혼테는 돈을 벌기 위해 짧은 글을 계속 썼다.

 

 

 

 

 

 

1886년에 체혼테는 그리고로비치(Grigorovich)라는 작가로부터 편지 한 통을 받는다. 그리고로비치는 당시 러시아 문단에서 알아주는 중진 작가였다. 편지에는 젊은 작가가 더 잘 되길 바라는 선배 작가의 진심 어린 충고가 있었다. 그리고로비치는 체혼테에게 가벼운 분량의 글을 빨리 쓰는 습관을 버리고, 진지하게 사색을 하면서 글을 써보라고 충고한다. 이 편지는 체혼테의 작가 활동에 큰 전환점이 된다. 1887년부터 발표된 체혼테의 작품들은 코믹한 소품 형식의 글에서 점점 멀어지는 경향을 보인다. 밝은 일상 속에 가려진 어둡고 무거운 삶의 한 단면을 소재로 쓴 글이 늘어났다. 이때부터 체혼테는 자신의 본명을 내세워 전업 작가로 활동하기 시작한다. 체혼테의 본명은 안톤 체호프(Anton Chekhov).

 

이 글을 읽으면서 체혼테의 정체를 일찍 간파한 독자가 있을 것이다. 장난으로 체혼테라고 소개한 체호프의 사진이 결정적인 힌트다. 러시아 문학을 전공한 로쟈 님이라면 이 글의 제목만 보고 체혼테가 누구인지 단번에 알아챘을 것이다.

 

체호프는 너무나도 유명한 단편소설의 대가이자 극작가다. 어떤 사람은 이 글을 쓴 의도가 궁금할 것이다. 내가 체혼테와 체호프를 마치 다른 사람인 것처럼 소개한 이유가 무엇인지 말이다. 체혼테와 체호프는 분명 같은 인물이다. 그러나 체혼테와 체호프의 작품은 따로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 체혼테는 문학적으로 깊이가 있고 성숙한 글을 쓴 체호프가 되기 전 단계인 프로토타입(Prototype, 초기 모델)이다.

 

대부분 사람은 체호프가 누군지 알고 있어도 그가 체혼테라는 필명을 썼다는 사실을 모른다. 그래서 처음부터 체혼테를 잊힌 작가라고 언급한 이유가 있다. 사실 체호프는 초창기에 작가 활동을 할 때 필명을 여러 개 사용했다. ‘체혼테는 가장 많이 알려진 체호프의 필명이다. 그 밖에 체호프가 사용했던 필명은 내 형의 동생’, ‘쓸개 빠진 놈이다. 체호프는 이런 우스꽝스러운 필명을 내세워 유머 작가로 활동했다. 문학 연구자들은 체호프가 짧은 분량의 유머 소설을 많이 쓴 1880년에서 1885년까지의 시기를 체혼테 시대라고 이름 붙였다. 체호프의 초기 작품들은 체혼테 시대에 나왔다. 그렇지만 이 시기에 나온 작품들은 크게 주목받지 못한다.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초기 작품들이 중기와 후기 작품들에 비해 문학적 우수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체혼테 시대의 작품 형식은 단조롭다. 어떤 장소에서 황당한 사건이 일어나거나 어리숙하고 무지한 인물이 등장하여 비웃음을 살만한 말과 행동을 한다. 이러한 형식의 글을 러시아에서는 스쩬까라고 한다. 스쩬까는 일정한 장소에서 일어나는 작은 사건을 소재로 한 글을 뜻한다. 체호프가 돈을 벌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이미 스쩬까가 유행했고, 대중은 잡지에 유통되는 짧고 유머러스한 글을 선호하고 있었다. 대중이 원하는 방향으로 글을 쓴 체호프는 사회 문제를 살짝 건드리기만 하지 엄할 정도로 비판하지 않는다. 그저 웃음을 나오게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만 보여준다. 체혼테 시대의 작품들을 보면서 나오는 웃음은 너무나도 가벼워서 빨리 증발한다. 웃음마저 금방 사라지니 급속도로 전개되는 짧은 이야기들도 기억 속에 잊히게 된다. 이런 독자의 반응은 크게 웃을 정도로 재미있지만, 아주 빠르게 나오는 개그의 대사나 한 장면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는 관객의 상황과 비슷하다. 따라서 체혼테 시대의 작품 중에서 대표작 몇 편을 꼽기가 어렵다. 사실 초기 작품들은 작품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자주 번역되지 않았다. 우리가 아는 체호프의 대표작은 중기 및 후기 작품에 속한다.

    

 

 

    

 

 

 

 

 

 

 

 

 

 

 

* [품절] 안톤 체호프 개와 인간의 대화: 안톤 체호프 선집 1(범우사, 2005)

* [품절] 안톤 체호프 《콘트라베이스와 로맨스: 안톤 체호프 선집 2(범우사, 2005)  

    

 

오래전에 범우사는 단편과 중편, 그리고 희곡을 수록한 다섯 권짜리 안톤 체호프 선집을 펴냈는데, 모두 절판되었다. 첫 번째 선집(개와 인간의 대화)과 두 번째 선집(콘트라베이스와 로맨스)에 체혼테 시대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개와 인간의 대화1885년에 발표된 작품이다. 아주 짧은 분량이지만, 술에 취한 관리가 자신을 향해 짖어대는 개에게 다가가 대화를 시도하는 장면이 재미있게 그려졌다.

    

 

 

 

 

 

 

 

 

 

 

 

 

 

 

 

* 안톤 체호프 처음 소개되는 체호프 단편소설(인디북, 2011)

* 안톤 체호프 체호프 유머 단편집(지만지, 2013)

 

    

 

개와 인간의 대화》는 절판되었지, 2010년대에 들어서 다행히 체호프의 초기작만 따로 모아 번역한 처음 소개되는 체호프 단편소설(인디북)체호프 유머 단편집(지만지)이 출간되었다. 그동안 국내에 출간된 체호프 단편 선집들은 중기 및 후기에 나온 작품 위주로 구성되었다. 이런 책에 수록된 초기작은 고작 한두 편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처음 소개되는 체호프 단편소설체호프 유머 단편집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단편 선집이며 체호프의 작품 세계에 들어서는 첫 번째 관문 역할을 하는 책들이다. 체호프 유머 단편집에 있는 이웃 학자에게 보내는 편지1880잠자리라는 주간지에 발표된 체호프의 공식적인 첫 작품이다. 처음 소개되는 체호프 단편소설에 있는 아버지라는 작품은 이웃 학자에게 보내는 편지와 같은 해에 발표된 체호프, 아니 체혼테의 다섯 번째 작품이다. 이 작품 역시 잠자리에 실렸다.

 

, 지금까지 체혼테의 작품과 체호프의 작품을 구분하는 방법을 소개했다. 프로토타입과 진캐(진짜 캐릭터)가 쓴 작품을 구분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1880년에서 1885년 사이에 나온 작품은 체혼테가 쓴 것이다. 체혼테 시대의 연도만 기억하면 된다. 체호프 단편 선집을 읽을 때 작품 끝부분에 있는 작품 발표 연도를 꼭 확인하시라(발표 연도를 밝히지 않은 번역본도 있다). 그러면 이 작품이 체혼테가 쓴 것인지, 체호프가 쓴 것인지 알 수 있다.

 

 

    

 

 

Trivia

    

 

 

 

 

 

 

 

 

 

 

 

 

 

 

 

* 안톤 체호프 체호프 단편선(민음사, 2002)

* 안톤 체호프 체호프 단편선(문예출판사, 2006)

    

 

 

독서 모임 우주지감-나를 관통하는 책읽기의 이번 달 선정 도서민음사문예출판사에서 나온 체호프 단편선이다. 민음사 판의 관리의 죽음, 거울과 문예 판의 복수자는 체혼테 시대의 작품들이다. 그런데 독서 모임을 위해 두 권의 책만 읽는 게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두 책 모두 중기 및 후기 작품들 위주로 수록되었지만, 체호프의 대표작 중 하나인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이 수록되어 있지 않다. TMI(Too Much Information)인데, 모임 날짜가 130, 이번 달 마지막 목요일이다. 모임 전날인 129일은 체호프가 태어난 날이고(어떤 번역본에는 117일로 되어 있는데 이 날짜는 율리우스 달력에 가까운 러시아 구력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현재 전 세계가 사용하고 있는 달력은 그레고리 달력이다), 체호프 탄생 160주년이 되는 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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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0-01-27 20: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진 보니까 알겠던데. 체호프라는 거.
그런데 1년에 단편 100편을 썼다니 대단하군.
글치 않아도 그의 책이 있긴한데...ㅠ

얄라알라 2020-01-27 21:11   좋아요 1 | URL
저도 지금 우와 신기해, 하며 읽다가 댓글에 ˝1년 단편 100편이라고요? ˝쓰려고 했는데 stella.K님께 찌찌뽕해야겠어요.

로쟈님께서 이 글 읽으시리라 확신합니다~

cyrus 2020-01-28 20:09   좋아요 0 | URL
To. stella.K // 저는 체호프 단편 선집 두 권 가지고 있어요. 역시 단편은 분량이 짧아서 좋아요. 금방 읽을 수 있으니까요. ^^

To. 얄라알라북사랑 // 언젠가는 제 글을 보시겠죠? ^^

Angela 2020-01-31 00: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진 본 순간! 제 최애 작가라는걸 알았죠 ㅎ

cyrus 2020-02-01 17:45   좋아요 0 | URL
수염 있는 체호프의 모습이 있는 사진은 워낙 유명하죠. ^^
 

 

 

 

 

 

 

 

라플레시아(rafflesia)는 세계에서 가장 큰 꽃이다. 이 식물은 독특한 외양을 자랑한다. 줄기도, 잎도, 진정한 의미에서의 뿌리도 없다. 우리 눈에 보이는 건 5개의 잎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적갈색의 꽃뿐이다. 이 거대한 꽃을 피우기 위해 다른 식물의 줄기나 뿌리에 기생하면서 자란다. 꽃에서 코를 찌르는 악취가 난다. 이 꽃이 내뿜는 고약한 냄새는 파리를 불러들인다. 파리가 수컷의 꽃가루를 암컷에게로 옮겨 수분이 이뤄진다.

 

 

 

 

 

 

그러나 개화 기간이 많아야 한 달 정도 걸리며 완전히 피어나도 일주일도 못 버티고 진다. 꽃이 지면 불에 타버린 것처럼 시커멓게 변한다.

    

 

 

 

 

 

 

 

 

 

 

 

 

 

 

 

 

 

 

 

 

 

 

 

 

 

 

 

  

* 샤를 보들레르, 김인환 옮김 악의 꽃: 앙리 마티스 에디션(문예출판사, 2018)

* 샤를 보들레르, 황현산 옮김 악의 꽃(민음사, 2016)

* 샤를 보들레르, 공진호 옮김 악의 꽃(아티초크, 2015)

* 샤를 보들레르, 윤영애 옮김 악의 꽃(문학과지성사, 2003)

    

 

 

보들레르(Baudelaire)의 시를 한 마디로 표현하면 라플레시아다. 보들레르는 1857년 시집 악의 꽃을 발표한다. 그러나 이 시집은 미풍양속을 해친다는 이유로 재판에 회부된다. 결국 여섯 편의 시를 삭제한 채 시집을 출판하라는 명령과 함께 보들레르는 벌금형을 선고받는다. 자연이나 사랑, 예술의 이상적인 아름다움에서 시상을 찾던 당대 시인들과 달리 보들레르는 사람들이 기피하는 추악한 현실에서 아름다움을 찾으려고 했다. 보들레르는 작가 겸 비평가인 테오필 고티에(Theophile Gautier)에게 보내는 악의 꽃헌사에서 지극히 겸허한 마음으로 이 병든 꽃을 바친다라고 쓴다. 그는 자본의 시궁창인 파리 한복판에 병든 꽃을 키우는 데 성공한다.

    

 

 

 

 

 

 

 

 

 

 

 

 

 

 

 

* 파트리크 쥐스킨트 향수(열린책들, 2009)

 

    

 

파트리크 쥐스킨트(Patrick Suskind)의 소설 향수(열린책들, 2009)의 주인공 그르누이(Grenouille)는 최고의 향수를 만들고픈 욕망에 사람들에게 사랑을 불러일으키는 특별한 향기를 탐한다. 보들레르는 ‘악의 꽃’을 위한 양분을 얻기 위해 파리 구석구석을 산책하면서 음산하고 퀴퀴한 냄새들을 모은다. 도시인들의 물질적 욕망에서 뿜어 나오는 꺼림칙하고 불쾌한 냄새. 보들레르가 형제라고 말한 도시인들, 즉 위선적인 독자[1]들은 문제작이 된 악의 꽃에 흥미를 느낀다. 독자들은 도덕적으로 해로운 냄새가 나는 줄 알면서도 그의 시에 호기심을 느낀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은 시집을 통해서 그동안 살면서 느끼지 못했던 자신의 마음에서 피어나는 추악한 욕망의 냄새를 맡는다. 악의 꽃을 대하는 그들의 모습은 마치 라플레시아의 악취에 홀린 파리와 같다. 오늘도 물질적 욕망을 추구하기 위해 도시에서 붕붕 날아다니는 파리들은 18세기 중반 파리의 악취를 간직한 보들레르의 시를 읽는다.

 

   

 

 

[1]

 

제일 흉하고 악랄하고 추잡한 놈 있으니!

놈은 야단스런 몸짓도 큰 소리도 없지만

지구를 거뜬히 박살내고

하품 한 번으로 온 세계인들 집어삼키리.

 

그놈은 바로 권태! 눈에는 무심코 흘린 눈물 고인 채

담뱃대 빨아대며 단두대를 꿈꾼다.

그대는 안다, 독자여, 이 까다로운 괴물을,

위선자 독자여, 내 동류, 내 형제여!

 

(독자에게중에서, 윤영애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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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0-01-09 15: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늦었지만 서재의 달인 등극 축하드리며 새해복많이 받으셔요^^

cyrus 2020-01-20 08:22   좋아요 0 | URL
오랜만입니다. 카스피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페크pek0501 2020-01-12 12: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때 악의 꽃, 시집에 반했었죠. ㅋ

cyrus 님, 새해에 좋은 일이 가득하시길...
건필을 기원합니다.

cyrus 2020-01-20 08:19   좋아요 0 | URL
답글과 새해 인사가 늦었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국내에 번역된 슈테판 츠바이크(Stefan Zweig)의 책이 꽤 많다. 대부분 사람은 츠바이크를 소설가 또는 전기(傳記) 작가로 기억한다. 츠바이크는 발자크(Balzac), 에라스뮈스(Erasmus), 마리 앙투아네트(Marie Antoinette) 등의 전기와 평전을 썼다. 그뿐만 아니라 시와 희곡도 썼다. 츠바이크가 작가로서 처음으로 선보인 작품은 시집이다.

 

 

 

 

 

 

 

 

 

 

 

 

 

 

 

* 최성일 책으로 만나는 사상가들(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2011)

 

 

츠바이크의 작품들은 그에 대해 잘 모르는 독자를 난감하게 만든다. 사실 필자도 그런 독자 중의 한 사람이었다. 번역서 중에 뭐부터 읽어야 할지 고르기 쉽지 않았다. 그래서 필자는 총 218명의 작가와 사상가의 쓴 책들을 사전식으로 정리한 출판 평론가 최성일 씨의 유작 책으로 만나는 사상가들을 참고했다. 이 책은 작가와 사상가를 처음 접하는 독자들에게 유용한 길잡이로 활용될 수 있다. 최성일 씨는 외국 저자의 국내 번역서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목록 형식으로 작성했다. 국내 번역서 목록은 번역서 한 권의 역사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참고자료가 된다. 이 책에 츠바이크의 국내 번역서 목록이 있다. 만약 최성일 씨가 지금 살아 계셨더라면 국내 번역서 목록이 수정된 개정 증보판이 나왔을 것이다. 최성일 씨 필생의 노력이 반영된 국내 번역서 목록은 2011년에 멈춰진 상태다. 그 이후에 최성일 씨가 관심을 보인 저자의 번역서들이 출간되었고, 이제는 누군가가 그 목록을 고쳐야 한다. 필자가 그 일을 하려고 한다. 현재 시점을 기준으로 보완해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 [절판] 슈테파니 츠바이크 나를 사랑한 고양이 시시(북스캔, 2003)

* [품절] 슈테파니 츠바이크 아프리카, 나의 노래(까치, 2005)

 

 

 

책으로 만나는 사상가들에 있는 츠바이크의 국내 번역서 목록을 수정하기 전에 먼저 오류부터 언급하고 싶다. 이 목록에 나를 사랑한 고양이 시시아프리카, 나의 노래라는 두 권의 책이 포함되어 있다. 이 두 권의 책을 쓴 저자는 독일 유대계 여성 작가 슈테파니 츠바이크(Stefanie Zweig). 성은 같지만 이름이 다르다. 슈테판 츠바이크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유대계 작가다. 최 씨가 책을 조사하는 과정 중에 작가 이름을 혼동한 것으로 보인다.

 

과거에 츠바이크의 작품이 중복으로 출판된 경우가 많았다. 그렇다 보니 내용은 같지만, 제목이 다른 번역서가 있다. 가장 많이 중복으로 출판된 츠바이크의 작품은 낯선 여인의 편지(Brief einer Unbekannten). 이 작품은 1962년에 국내에 번역되어 나온 것까지 포함해서 현재까지 총 14번이나 출간되었다. 특히 박찬기, 원당희의 번역은 여러 출판사를 거쳐 중복으로 출간되었다.

 

 

 

 

1. 모르는 여인의 편지

박찬기 옮김, 황혼의 이야기(육문사, 1962)에 수록

 

 

2. 미지의 여인의 편지

박찬기 옮김 (동민문화사, 1967)

 

 

3. 미지의 여인의 편지

박찬기 옮김 (주영사, 1974)

 

 

 

 

 

 

 

 

 

 

 

 

 

 

 

4. 모르는 여인으로부터의 편지

원당희 옮김 (고려원, 1991)

 

 

5. 모르는 여인의 편지

박찬기 옮김, 감정의 혼란(깊은샘, 1996)에 수록

 

 

6. 외사랑

이초록 옮김, 사랑의 슬픔(산들, 1997)에 수록

 

 

 

 

 

 

 

 

 

 

 

 

 

 

 

7. 나를 알지 못하는 당신에게

원당희 옮김 (사민서각, 1997)

 

 

8. 편지

안의정 옮김 (맑은소리, 1997)

 

 

 

 

 

 

 

 

 

 

 

 

 

 

 

9. 모르는 여인으로부터의 편지

안의정 옮김 (맑은소리, 2003)

 

 

 

10. 모르는 여인의 편지

박찬기 옮김, 황혼의 이야기(서문당, 2003)에 수록

 

 

 

 

 

 

 

 

 

 

 

 

 

 

 

 

 

11. 모르는 여인의 편지

원당희 옮김 (자연사랑, 2003)

 

 

 

 

 

 

 

 

 

 

 

 

 

 

 

 

 

12. 낯선 여인의 편지

김연수 옮김, 체스. 낯선 여인의 편지(문학동네, 2010)에 수록

 

 

 

 

 

 

 

 

 

 

 

 

 

 

 

13. 모르는 여인의 편지

송용구 옮김 (고려대학교출판부, 2011)

 

 

 

 

 

 

 

 

 

 

 

 

 

 

 

 

 

14. 모르는 여인의 편지

양원석 옮김, 마리 앙투아네트 / 모르는 여인의 편지(동서문화사, 2015)에 수록

 

 

 

낯선 여인의 편지다음으로 많이 중복으로 출판된 츠바이크의 작품은 황혼 이야기(Geschichte in der Dämmerung). 이 노벨레(Novelle)1911년에 출간된 첫 경험, 네 편의 이야기(Erstes Erlebnis. Vier Geschichten aus Kinderland)에 수록된 츠바이크의 초기 작품이다. 이 작품집에 수록된 노벨레는 다음과 같다.

 

 

1. 황혼 이야기(Geschichte in der Dämmerung)

2. 여자 가정교사(Die Gouvernante)

3. 타 버린 비밀(Brennendes Geheimnis)

4. 여름날의 사건(Sommernovellette)

 

 

2, 4번 노벨레를 제외한 나머지 두 작품은 번역되었다. 비록 번역되지 못한 작품이 몇 편 있으나 츠바이크의 소설을 읽으려고 한다면 이미 번역된 초기작부터 읽으면 된다. 1911년에 발표된 네 편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것은 타 버린 비밀이다. 1913년에 이 작품만 따로 출간되었으며 1933년과 1988년에 영화화되었다.

 

 

 

 

 

 

 

 

 

 

 

 

 

 

 

 

 

 

 

* 슈테판 츠바이크 타 버린 비밀(세창미디어, 2019)

* [품절] 슈테판 츠바이크 일급비밀(자연사랑, 2003)

 

 

 

타 버린 비밀2003년에 일급비밀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된 적이 있다. ‘일급비밀80년대를 풍미한 3인조 남성 댄스 그룹 가수 소방차의 노래 제목을 생각나게 한다. 그러나 일급이라는 표현은 원제의 의미와 완전히 다를 뿐만 아니라 소설의 핵심 주제인 비밀의 의미를 제대로 살리지 못한다. 다행히 최근에 타 버린 비밀이라는 제목으로 재출간되었다.

 

외교관 부인의 아들인 에드거(Edgar)는 우연히 만난 남작과 친하게 지낸다. 사실 남작은 부인을 유혹하기 위해 에드거에게 접근한다. 사랑을 위해서라면 물불 가리지 않는 어른의 감정을 잘 모르는 순수한 열두 살 소년 에드거는 처음엔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남작은 노골적으로 부인에게 추파를 던지고, 남작이 부인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점점 늘어난다. 두 사람의 관계를 가까이서 지켜본 에드거는 남작을 질투한다. 이제 에드거는 은밀한 곳에서 사랑의 밀어를 속삭이는 어른의 세계에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한다. 이 소설의 제목에 있는 단어이자 소설의 핵심 주제인 비밀은 에드거가 무척이나 궁금하게 여기는 어른의 세계. 타 버린 비밀은 어른의 세계에 접근하려고 애쓰는 소년의 정신적인 성장 과정을 세밀하게 그려낸 소설이다. 일급비밀타 버린 비밀은 같은 역자가 옮긴 작품이다. 제목만 달라졌다. 번역 문장도 약간 달라졌지만, 막상 읽어보면 크게 고친 티가 나지 않는다. 일급비밀타 버린 비밀에 있는 문장을 인용해서 비교해보면 그 사실을 알 수 있다.

 

 

 

 아이는 자신에게 그토록 친절하게 말을 걸어주는 이 낯선 신사에 대하여 너무 자의식이 강한 것 같아 보였다.

 남작은 대화를 나누며 한번도 아이에게 거만한 태도를 보인 적이 없었고, 오히려 매번 좀 당황해 했다. 그리고 이제 그는 행복한 감정과 동시에 부끄러움 때문에 무척이나 혼란스러운 상황에 빠지게 되었다. 그는 대화를 정말 지속시키고 싶었지만,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일급비밀19)

 

 아이는 자기에게 이토록 친절하게 말을 걸어 주는 이 멋있는 낯선 신사에게 대단히 자의식이 강한 모습을 보이려는 것 같았다. 그는 한 번도 건방진 태도를 보인 적이 없었고 항상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이제 그는 행복한 동시에 부끄러운 감정으로 몹시 혼란스러운 상황에 빠지게 되었다. 그는 기꺼이 대화를 지속시키고 싶었으나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타 버린 비밀26)

 

 

사랑의 슬픔외사랑첫사랑이라는 제목이 붙여진 두 편의 노벨레가 수록되어 있다. 이 두 편의 노벨레는 각각 낯선 여인의 편지황혼 이야기.

 

 

 

 

 

그런데 이 번역서는 두 작품의 원제를 잘못 썼다. 황혼 이야기의 원제가 ‘Erstes Erlebnis’라고 되어 있는데, ‘Erstes Erlebnis’황혼 이야기가 수록된 노벨레 모음집의 제목이다. 낯선 여인의 편지의 원제로 잘못 적혀 있는 ‘Amok(‘아모크또는 아목이라고 부른다)1922년에 발표된 노벨레 모음집의 제목이다. 여기에 수록된 소설은 낯선 여인의 편지환상의 밤(Phantastische Nacht), 달밤의 뒷골목(Die Mondscheingasse) 이다.

 

 

 

 

 

 

 

 

 

 

 

 

 

 

 

* [품절] 슈테판 츠바이크 감정의 혼란(깊은샘, 1996)

감정의 혼란’, ‘모르는 여인의 편지’, ‘달밤의 뒷골목’, ‘황혼 이야기수록

 

 

 

 

 

 

 

* [절판] 슈테판 츠바이크 태초에 사랑이 있었다(하문사, 1996)

달밤의 뒷골목과 같은 내용임.

 

 

 

 

 

 

 

* [품절] 슈테판 츠바이크 사랑의 슬픔(산들, 1997)

외사랑(= 낯선 여인의 편지)’, ‘첫사랑(= 황혼 이야기)’ 수록

 

 

 

 

 

 

 

 

 

 

 

 

 

  

* 슈테판 츠바이크 황혼의 이야기(서문당, 2003)

모르는 여인의 편지’, ‘마음의 파멸(Untergang eines Herzens, 1927)’, ‘황혼의 이야기수록

 

 

 

 

 

 

 

 

 

 

 

 

 

 

 

* 슈테판 츠바이크 환상의 밤(세창미디어, 2018)

* [품절] 슈테판 츠바이크 환상의 밤(자연사랑, 1999)

 

 

 

감정의 혼란황혼의 이야기에 공통으로 수록된 모르는 여인의 편지황혼의 이야기는 같은 역자가 번역한 것이다.

 

 

 

 

 

 태초에 사랑이 있었다라는 번역서 앞표지에 장편소설이라고 되어 있는데, 이 번역서의 원작은 단편 형식에 가까운 노벨레로 분류되는 달밤의 뒷골목이다. 그런데 소설이 시작되는 첫 문장(15~16쪽)은 원작에 없는 내용이다. 즉 역자가 원작에 없는 문장을 추가로 쓴 것이다. 소설을 장편인 것처럼 보이려고 일부러 쓸데없는 내용을 추가한 것일까. 왜 역자가 원작을 넘어선 번역을 했는지 도통 알 수 없다. 아무튼 태초에 사랑이 있었다는 츠바이크의 소설을 읽으려고 하거나 구매하는 독자들이 피해야 할 번역서다. 앞서 언급한 사랑의 슬픔도 마찬가지다. 필자는 이 책을 중고도서로 샀는데, 가격은 1,900원이었다. 금전적으로는 큰 손해를 본 건 아니지만, 괜히 샀다는 생각이 든다. 이미 필자는 모르는 여인의 편지황혼 이야기가 수록된 번역서를 가지고 있다. 이래서 구매자가 직접 작성한 번역서 목록과 리뷰가 있어야 한다. 그러면 나처럼 책 사는 데 헛돈을 쓴 독자가 생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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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10-28 1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래도 오바네요. 왜 역자가 내용에도 없는 걸 썼는지...

cyrus 2019-11-01 17:38   좋아요 0 | URL
8, 90년대에 나온 외국 작가의 번역본 중에 역자가 윤색한 것도 있었어요. 제가 ‘셔얼록 호움즈(셜록 홈스) 시리즈’ 문고본을 가지고 있는데요, 그 책도 원작에 없는 내용이 나와요. ^^;;

boooo 2019-10-28 1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체스로 시작했습니다. :)

cyrus 2019-11-01 17:39   좋아요 0 | URL
츠바이크의 후기 작품인데 아직 안 읽었어요. ^^

stella.K 2019-10-28 1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츠바이크를 <체스>로 알게 되었는데 그 소설은 정말 대단했지.
그후 몇권 읽긴했지만 지적인 면에선 뭐라할 수 없지만
딱히 나의 마음을 사로잡지는 않더군. 좋긴 좋은데 막 좋지는 않아.

그나저나 최성일 씨의 책은 읽었나?
난 몇년 전 사 놓고 안 읽고 있어. 중고로 너무 싸게 사서
어떤 책인가 사 봤지. 정가로만 살 수 있는 책이라면 안 샀을 텐데...
핑계지만 나이 드니까 이런 책은 점점 안 읽게되더군.ㅋ

cyrus 2019-11-01 17:43   좋아요 0 | URL
제가 가지고 있는 최성일 씨의 책은 <책으로 만나는 사상가들>뿐이에요. 도서정가제 시행 전에 샀어요. 그때는 지금보다 적립금을 쏠쏠하게 쓸 수 있었던 시절이었어요. 정말 이 책 사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전 형식의 책이라서 가끔 생각날 때마다 봐요. ^^
 

 

 

1인 전자책 출판사 페가나 북스2011년 아일랜드의 작가 로드 던세이니(Lord Dunsany)의 소설 페가나의 신들을 시작으로 해서 올해까지 11권의 던세이니 작품을 번역 출간했다. 작품 목록은 다음과 같다.

 

 

 

 

 

 

 

 

 

 

 

 

 

 

 

 

 

 

 

 

 

 

 

 

 

 

 

 

 

 

 

 

 

 

 

 

 

* [e-Book] 페가나의 신들(201110)

* [e-Book] 시간의 신들(20126)

* [e-Book] 웰러란의 검(20133)

* [e-Book] 몽상가의 이야기(20138)

* [e-Book] 판의 죽음(201411)

* [e-Book] 경이의 서(20156)

* [e-Book] 경이로운 이야기(20171)

* [e-Book] 세 반구 이야기(201711)

* [e-Book] 꿈의 땅에서 온 이야기(20184)

 

 

 

 

 

 

 

 

 

 

 

 

 

 

 

 

 

* [e-Book] 엘프랜드의 공주(20198)

* [e-Book] 로드 던세이니 단편선(20198)

 

 

 

 페가나의 신들시간과 신들은 단편집이며 완역본이다. 웰러란의 검, 몽상가의 이야기, 판의 죽음, 경이의 서, 경이로운 이야기, 세 반구 이야기, 꿈의 땅에서 온 이야기도 단편집이지만 몇몇 작품은 번역되지 않았다. 예전에 필자가 던세이니의 단편집에 수록된 이야기를 목록 형식으로 정리한 글을 쓴 적이 있다. 던세이니의 단편소설 목록을 알고 싶으면 필자의 졸문을 참고하면 된다

 

 

 

※ 「풍요 속의 몽상(2017422)

https://blog.aladin.co.kr/haesung/9295309

 

 

 

로드 던세이니 단편선9편의 단편집에 있는 모든 이야기를 수록한 합본이다. 던세이니는 단편뿐만 아니라 장편, , 희곡, 에세이까지 쓴 다작 작가이다. 엘프랜드의 공주(The King of Elfland’s Daughter)1924년에 발표된 장편 소설이다. 페가나 북스 공식 홈페이지에 이 소설을 간략하게 소개한 내용이 있는데, 그 내용에 보면 던세이니의 첫 번째 장편소설이라고 적혀 있다. 혼자서 던세이니의 작품을 번역하고 편집한 엄진 씨가 착각한 거로 보이는데 엘프랜드의 공주두 번째장편소설이다. 던세이니의 첫 번째 장편은 1922년에 발표된 환상소설 Don Rodriguez: Chronicles of Shadow Valley.

 

엘프랜드의 공주공주를 찾기 위해 모험을 떠나는 왕자(기사)를 주인공으로 한 중세 문학의 세계관이 반영된 소설이다. (Erl) 주민을 이끌어갈 차기 군주인 알베릭(Alveric) 왕자는 엘프랜드 왕국의 공주 리라젤(Lirazel)과 결혼하라는 부왕의 명령을 받는다. 엘프랜드는 인간 세상과 차원이 다른 요정 왕국이다. 엘프랜드 사람들의 시간 개념은 인간이 생각하는 시간 개념과 다르다. 엘프랜드에서의 하루(24시간)는 인간 세상의 10년과 같다. 엘프랜드에서는 시간이 흐른다라는 인식 자체가 없다. 그곳에는 영원한 아름다움이 존재하며 엘프랜드 사람들은 변화와 새로운 것을 추구하지 않는다. 그렇다 보니 리라젤은 아름다움을 손상시키는(노화) 시간의 힘을 두려워한다.

 

 

 

 

 

 

 

 

 

 

 

 

 

 

 

 

* 프리드리히 드 라 모테 푸케, 차경아 옮김 운디네(지만지, 2013)

 

 

 

 

 

 

 

 

 

 

 

 

 

 

 

 

* [개정판] 차경아 옮김 환상문학 걸작선 1(자음과모음, 2013)

* [구판 절판] 차경아 옮김 완역판 낭만동화집 1(자음과모음, 2006) [주1]

 

 

 

 

 

 

 

 

 

 

 

 

 

 

 

* [절판] 프리드리히 드 라 모테 푸케, 차경아 옮김 물의 요정 운디네(문예출판사, 2006)

* 프리드리히 드 라 모테 푸케 외 물의 요정의 매혹(이화여자대학교출판문화원, 2007) [주2]

 

 

 

 

인간을 사랑하는 요정(정령)은 오랫동안 유럽에서 신화, 전설 등에 자주 등장해왔다. 이 인물 설정은 낭만주의 작가들에게 영감을 준 모티프이기도 하다. 가장 유명한 요정은 운디네(Undine). 운디네는 강이나 연못에 사는 물의 요정이다. 그녀는 영혼을 가지지 않았지만, 인간을 사랑해서 아이를 낳으면 영혼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인간 세상에 정착해서 살아가려는 요정에 제약이 따른다. 운디네와 결혼한 인간이 그녀를 욕하면, 그녀는 물이나 연못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런데 이별이 끝은 아니다. 이별보다 더 가슴 아프고 잔인한 비극이 나온다. 운디네의 전 남편이 재혼을 하면 운디네가 다시 나타나 그의 목숨을 빼앗는다.

 

독일의 낭만주의 작가 푸케(Friedrich de la Motte Fouque)운디네는 물의 요정과 인간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다. 이 작품이 보여준 이성영역의 인간(남성)감성영역의 요정(여성)의 갈등과 실패한 사랑은 후대 작가들의 동화 작품에 영향을 주었고, 이 설정을 더욱 유명하게 만든 동화가 바로 안데르센(Andersen)인어 공주. 엘프랜드의 공주의 알베릭과 리라젤의 사소한 갈등 역시 운디네에 나오는 비극적인 설정과 유사하다. 그렇지만 이러한 설정은 독일 작가 푸케의 운디네로부터 영향을 받아서 만들었다기보다는 요정이 나오는 모국(아일랜드)의 전설과 민담에 영감을 받았다고 보는 게 옳다.

 

 

 

 

 

 

 

 

 

 

 

 

 

 

 

 

 

* [e-Book] 페가나 무크 Vol. 3(2019)

 

 

 

엘프랜드의 공주로드 던세이니 단편선을 읽기 전에 무료로 볼 수 있는 페가나 무크 Vol. 3을 먼저 보는 것이 좋다. 던세이니의 생애와 작품 세계를 요약해서 정리한 글이 수록되어 있다. 그리고 엄진 씨(무크지 본문에는 엄정진으로 표기되어 있다. 필명인가 아니면 본명인가?)가 추천하는 던세이니 단편 10이 소개되어 있다.

 

 

 

 

 

[주1] 구판에 오자 몇 개가 보인다.

 

[주2] 물의 요정을 주제로 한 단편소설과 시가 다섯 편씩 수록되어 있다. 다섯 편의 소설과 시를 쓴 사람 모두 독일인(루트비히 티크, 괴테, 푸케, E. T. A. 호프만, 에두아르트 뫼리케, 게르하르트 하우프트만, 하인리히 하이네, 아이헨도르프, 고트프리트 켈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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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9-09-17 15: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꼭 전자책으로만 책을 내는지 모르겠어.
전자책이 싸고 좋은 점도 있겠지만
나 같은 구식인은 전자책 별로야.
다른 출판사에서 종이책으로 내주려나?
하긴 난 어차피 종이책으로 나와도 못 읽을 것 같긴하지만
종이책으로 안 내주니 괜히 심술이 나려고 해.

cyrus 2019-09-17 16:11   좋아요 1 | URL
종이책으로 나오기 힘든 작품은 전자책으로 나올 수밖에 없어요. 종이책 만드는 출판사 대부분은 흔히 ‘고전’이라고 알려진 대중성 있는 작품들을 선호해요. 그래야 많이 팔릴 수 있으니까요. 던세이니의 전 작품을 종이책으로 나온다면 사려는 사람은 많지 않을 거예요. 출판사는 인지도가 낮은 작품을 내는 것을 꺼려해요. 그래서 1인 전자책 출판사들이 대단한 거예요. 한 사람이 안 팔리는 작품을 직접 번역하고 편집하고 출판 홍보를 하니까요. 그들도 알아요. 자신이 만든 소설이 너무 오래됐고 재미없다는 걸요. 그렇지만 문학적 가치가 있어서 포기하지 않고 번역하고 책을 만들어요.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 출판사의 책에 리뷰나 페이퍼가 없으면 안타까워요.
 

 

 

지난달 우주지감 독서 모임 지정 도서는 셰익스피어(Shakespeare)의 희극 한여름 밤의 꿈이었다. 2011년에 이 작품을 처음 읽었다. 8년 만에 다시 읽게 되었다. 20대 때 셰익스피어의 작품 리뷰를 몇 편 쓴 적이 있다. 오랜만에 과거에 썼던 글을 읽어보니 뜯어고쳐야 할 문장들이 많이 보였다. 또 한편으로는 글에서 드러나는 20대 때의 내 모습이 유치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 윌리엄 셰익스피어, 최종철 옮김 한여름 밤의 꿈(민음사, 2008)

* [품절] 윌리엄 셰익스피어, 이윤기 · 이다희 옮김 한여름 밤의 꿈(달궁, 2005)

 

 

 

 

8년 전에는 최종철 교수의 번역본(민음사)을 읽었다면, 올해는 이윤기 씨와 그의 따님 이다희 씨가 함께 번역한 번역본(달궁)도 같이 읽었다. 두 권의 책 모두 분량이 작다. 시간이 충분히 주어진다면 하루에 두 권을 동시에 읽을 수 있다. 국내에 출간된 한여름 밤의 꿈번역본 중에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은 민음사 판본이다. 그렇지만 이 책에 전체적으로 아쉬운 부분이 있다.

 

 

 

 

 

 

책 앞표지에 있는 그림 제목은 ‘The Awaking of Adonis’이다. 이 제목을 우리말로 풀어보면 잠에서 깨어나는 아도니스. 그림을 그린 사람은 19세기 중반 영국에서 라파엘 전파(Pre-Raphaelite Brotherhood) 회원으로 활동한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John William Waterhouse). 라파엘 전파의 영국 화가들은 성경이나 전설, 신화 속 한 장면을 즐겨 그렸다. 그래서 라파엘 전파의 그림은 화려한 색으로 꾸며진 한 편의 이야기. 라파엘 전파 화가들은 신화적인 주제를 현실감 있게 표현하려고 했다.

 

아도니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름다운 소년이다. 사랑과 아름다움의 여신 아프로디테(Aphrodite)는 자신보다 한참 어린 아도니스에 푹 빠져버린다. 그녀는 아도니스를 독점하고 싶어서 그를 상자 속에 넣고 감춘다. 그런 다음 아도니스가 있는 상자를 저승의 왕 하데스(Hades)의 아내 페르세포네(Persephone)에게 맡겨 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나 페르세포네도 아도니스의 아름다운 외모에 매료되어 아프로디테에게 아도니스를 돌려주기를 거부한다.

 

소년을 둘러싼 두 여성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제우스(Zeus)가 직접 중재에 나선다. 제우스의 판결에 따르면 아도니스는 일 년의 3분의 1을 페르세포네와 함께 저승에서 함께 살고, 나머지 3분의 1은 아프로디테와 함께 지상에서 생활한다. 그리고 남은 인생은 아도니스 본인이 원하는 대로 살아갈 수 있다. 사냥을 좋아한 아도니스는 저승보다는 지상에서 생활하는 것을 선호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나머지 삶 역시 아프로디테와 함께 보낸다. 아프로디테는 혼자서 사냥을 즐기는 아도니스에게 조심하라고 신신당부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도니스는 사냥하다가 멧돼지 이빨에 찔려 죽는다. 아도니스의 허망한 죽음에 비탄에 빠진 아프로디테는 아도니스가 죽어가면서 흘린 피에 신의 음료인 넥타르(Nectar)를 붓는다. 아도니스의 피가 흘린 자리에 붉은빛의 꽃이 피어나는데, 그 꽃이 바로 아네모네(Anemone).

 

 

 

 

 

 

 

 

 

 

 

 

 

 

 

 

 

 

* 오비디우스 변신 이야기(도서출판 숲, 2017)

* 윌리엄 셰익스피어 비너스와 아도니스(전예원, 2011)

* 윌리엄 셰익스피어 비너스와 아도니스(시와진실, 2003)

 

 

 

아도니스 이야기는 작가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는 인기 소재였다. 아도니스 이야기를 언급한 가장 오래된 문헌은 고대 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Ovidius)변신 이야기. 셰익스피어는 비너스와 아도니스(Venus & Adonis)라는 제목의 장시를 썼다. 비너스는 아프로디테의 영어 이름이다. 다만 그리스 신화와 비교하면 확연한 차이가 있다. 셰익스피어의 장시에 묘사된 아도니스는 아프로디테의 구애에 부담스러워 한다. 셰익스피어는 아도니스를 어른의 사랑을 잘 모르는 어린아이로 묘사했다.

 

워터하우스의 그림을 살펴보자. 아도니스가 누운 자리 주변에 붉은 아네모네가 피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아도니스에게 다가가는 여성은 아프로디테다. 아네모네 한 송이에 손을 내민 아이는 아프로디테의 아들 에로스(Eros). 화살(한 번 맞으면 각각 사랑 또는 혐오의 감정이 생기는 두 종류의 화살이 있다)이 담겨진 화살집을 보면 알 수 있다. 아도니스는 죽음이라는 깊은 잠에 빠진 상태다. 아프로디테는 아도니스의 피가 남아있는 자리에 신주를 부어 아도니스를 눈부시게 아름다운 꽃으로 다시 깨어나게(awaking) 만든다.

 

 

 

 

 

 

 

 

 

 

 

 

 

 

 

 

 

 

* 윌리엄 셰익스피어, 허종 옮김 로미오와 줄리엣(동인, 2016)

* 윌리엄 셰익스피어, 서경희 옮김 로미오와 줄리엣(을유문화사, 2016)

* 윌리엄 셰익스피어, 최종철 옮김 로미오와 줄리엣(민음사, 2008)

 

 

 

 

한여름 밤의 꿈에 아도니스와 관련된 내용이 없다. 아도니스와 아프로디테가 나오는 그림이 어째서 한여름 밤의 꿈표지 그림이 되었는지 의아하다. 한여름 밤의 꿈에 나오는 아테네의 품팔이꾼들은 직접 공연을 준비하고 연기를 한다. 그들이 공연하려는 작품은 피라모스(Pyramus)와 티스베(Thisbe) 이야기다. 이 이야기도 변신 이야기에 언급되어 있다. 피라모스와 티스베 이야기는 셰익스피어의 비극 로미오와 줄리엣의 원형이다.

 

 

 

               

 

 

피라모스와 티스베는 벽에 난 구멍을 통해 서로의 모습을 확인하고 사랑의 대화를 주고받는다. 워터하우스는 피라모스의 말을 듣기 위해 벽에 난 구멍에 귀를 기울이는 티스베의 모습을 그렸다. 이 그림이 한여름 밤의 꿈표지 그림에 적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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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01 13: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9-01 15:12   좋아요 0 | URL
맞아요. 자세하게 쓰기 귀찮아서 그냥 간단하게 ‘품팔이꾼’이라고 적었어요. 이윤기 씨가 그렇게 썼어요. ^^

카알벨루치 2019-09-01 1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벽에 난 구멍에 말을 하고 귀를 기울이는 장면 영화 <화영연화>가 연상됩니다

cyrus 2019-09-01 15:17   좋아요 1 | URL
카알벨루치님도 눈치 채셨군요. 독서모임 멤버 중에 영화를 많이 본 분이 계세요. 그 분도 피라모스와 티스베 이야기를 보고는 <화양연화>를 언급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