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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의인들 - 역사의 땅 사상의 고향을 가다 한길인문학문고 생각하는 사람 2
박석무 지음, 황헌만 사진 / 한길사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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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국무총리는 언제. . .? 

정운찬 전 국무총리가 공식 사퇴를 밝힌 지 한 달 만에 9월 16일에 김황식 감사원장이 새 국무총리 후보에 내정되었다. 이번 주부터 추석 연휴로 인해서 김황식 총리 후보자의 청문회는 다음 주인 28~29일로 확정되었다. 김황식 총리 후보자가 내정되기 전까지 여러 명의 총리 후보자들이 거론되었지만 줄줄이 낙마한 이후 국정 운영에 큰 차질을 빚고 있다.

정운찬 전 총리는 공식 사퇴 입장을 언급하기 전부터 이미 여당의 6.2 지방선거 패배, 국회에서의 세종시 수정안 부결 결과에 대한 책임론을 운운하며 스스로 물러날 것임을 밝혔다. 이에 대해 이전부터 정 총리의 사의 결정에 대해서 고심하고 있던 이명박 대통령은 정 총리의 사퇴서를 수리하였다. 그리고 이 대통령은 정치 실무 감각이 뛰어나며 ‘세대교체’ 이미지를 줄 수 있는 차기 총리 후보를 내정할 것임을 시사하였다. 그 후로 후보 물색 작업 끝에 김태호 후보와 장관 후보 2명 등이 거론되었으나 오히려 이명박 정부의 국정 이미지에 손상만 입었다. 청문회를 통해서 총리 후보 내정자들의 과거에 있었던 부정적 의혹들이 불거진 것이다. 결국, 이명박 정부가 집권 후반기 국정이념으로 내세운 '공정한 사회'에 부합하지 못한 채 유력한 후임 총리로 떠올랐던 김태호 후보는 스스로 중도포기하고 말았다. 후임 총리 인선에 난항을 겪고 있는 정부로서는 ‘공정한 사회’에 적합한 총리를 찾는 방향으로 선회하였다. 총리 인선의 기간이 가면 갈수록 길어졌다. 그리고 엎친 데 겹친 격으로 외교통상부 특채 의혹까지 드러나게 되어서 정부에 대한 국내 여론의 시선이 곱지 않게 되자, 여러 명의 정치인들이 총리직 제의를 고사하기에 이른다. 정부의 오랜 고심 끝에 김황식 감사원장이 총리 후보자로 결정되었다.

짧으면서도 기나긴 총리 인선 기간 동안 민심은 냉담한 반응을 보이는 거 같다. 정부는 여러 명의 총리 후보 카드를 자신 있게 내밀었건만 인사청문회의 문을 통과하지 못하고 있으며 정부가 지향하는 ‘공정한 사회’ 실현에 부합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김황식 감사원장 역시 과거에 부동시(不同視)로 인한 병역 면제가 대두되면서 야당이 총리 임명의 동의 여부와 국민들의 냉담한 민심을 다시 얻을 수 있을지 추석 연휴가 지나고 지켜봐야할 일이다. 총리 인선에 관한 논쟁이 길면 길수록 국민들의 정치적 무관심이 커질 우려가 있다. 
 

  

한국인이라면 기억해야 할 조선의 의인들 
 
국무총리는 대통령을 보좌하고,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 각부를 거느리고 관할하는 아주 중요한 직책이다. 조선 시대의 국무총리와 유사한 직책을 꼽으라면 영의정(領議政)이 있다. 역대 조선 왕조의 영의정 중에는 이름만 들으면 아는 유명한 위인들이 거쳐 갔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황희, 한명회, 신숙주, 유성룡, 이항복 & 이덕형(舊 오성과 한음) 등이 있다. 이들 중에 유성룡, 이항복, 이덕형은 박석무 교수가 펴낸 『조선의 의인들: 역사의 땅 사상의 고향을 가다』에 소개되어 있다. 조선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24명의 의인(義人)들에 대한 기록물이다. 늘그막 생활을 하면서도 학문 수양을 게을리지 않았던 퇴계 이황부터 일본에게 국권을 빼앗긴 현실에 대한 울분을 자결로써 생을 마감한 매천 황현까지. 우리나라에서 태어난 사람이라면 꼭 기억해야 할 인물들이다. 
  

 


서애의 소프트 파워, 영재의 하드 파워

22명의 학자들 중에서 정부가 원했던 실무 처리 능력이 뛰어난 국무총리의 모습과 비슷했던 인물은 서애 유성룡(1542~1607)이 있다. 벼슬 생활하는 동안 쌓은 국정 운영의 경험을 통해서 국난들을 처리해나갔다. 특히, 서애가 51세였을 때 발발한 임진왜란 기간 동안 그의 뛰어난 국정 운영 능력이 빛을 발휘하였다. 특히, 서애는 화합의 달인이었다. 그가 주장한 인재 발굴의 10대 원칙에서는 신분이나 가문과 같은 조선 사회를 지배하고 있던 조건들을 따지지 않았다. 오직 학식이 있고, 임무 수행 능력이 뛰어난 호기 있는 인재를 등용할 것임을 주장하고 있다. 천한 신분 상태이거나 아직까지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 인재들을 발굴하여 등용하는데 노력하였다. 서애의 안목에서 고른 옥석의 인재는 권율과 이순신 등이 있다. 서애의 탁월한 안목이 이 두 사람을 천거하게 함으로써 전란에 휩싸였던 조선을 기사회생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서애는 뛰어난 학식과 국정 운영 능력을 갖췄음에도 불구하고, 그에게도 옥의 티가 있었다.   

 

 

   서애는 재주나 식견이 높아 임금께 올려 바치는 건의를 잘했다. 더욱이 경연에서  

  아뢰는 내용은 모두가 잘한다는 칭찬을 받았다. 그러나 때로는 일관된 마음으로  

  봉직하지 못하고 이롭고 해로운 점만 따지려는 부분이 있어 식자 들이 단점으로  

  여기기도 했다.

   - 박석무 『조선의 의인들』‘유성룡 편’ p 124, 서애에 관한 율곡 이이의 평 -

율곡 이이는 조선의 ‘미스터 쓴소리’가 못마땅했는가 보다. 서애 본인 입장에서는 간언(諫言)했을 뿐인데 그와 당시 활동했던 학자와 관리들에게 서애의 따끔한 지적이 무서웠을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단점으로는 성격이 너무 온화한 나머지 굳센 성품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단점보다 장점이 컸었기에 서애가 활동했던 시기부터 지금까지도 조선의 위대한 학자로 명망이 높다.    

 

 반면에 유성룡이 성품이 온화한 스마트 파워(Soft Power)형 정치인이었다면, 영재 이건창(1852∼1898)은 서애보다 뜨거운 애국심이 가득 찬 호기 있는 하드 파워(Hard Power)형 정치인이었다. 1894년 갑오개혁 이후부터 관직에 나아가지 않은 재야의 학자였지만, 한창 그의 이름이 조정에 알려졌을 때에는 암행어사로 활약했다. 영재는 자신보다 높은 벼슬자리에 오른 탐관오리일지라도 옳고 그름을 냉정하게 따져 판결을 냈다. 그의 날카로운 암행어사 실행 능력과 명성은 당시 고종황제의 귀에도 알려져 있었다. 고종황제가 지방의 관리들을 임명하면서 그들에게 ‘만약 잘못한다는 소리가 들리면 바로 이건창을 암행어사로 파견하겠다.’라고 당부했을 정도이다. (『조선의 의인들』‘이건창 편’ p 472) 그의 냉철한 비판 능력은 서양 열강과 일본의 조선 개입에 대해 조정을 향해 강력한 비판을 할 수 있었다. 영재의 지나친 쓴 소리는 고종황제에게 눈 밖에 나서 2년의 유배생활을 할 정도였다. 그리고 그는 소론이면서도 반대파였던 노론과의 관계를 소홀히 하지 않았으며 실학자들과도 교류를 하였다. 조선의 당쟁관계사를 기록한 <당의통략>(黨議通略)은 어느 당론에도 치우치지 않고 비교적 공정하게 서술되어 있어, 당쟁연구에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우리나라 국민들이 원하는 국무총리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필자는 우리나라의 새로운 국무총리가 서애 유성룡의 소프트 파워와 영재 이건창의 하드 파워가 조합되어 있는 정치를 펼쳐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국민들이 바라는 훌륭한 국무총리를 임명하기 위해서 정부가 고심하고 있는 것은 이해하고 있다. 국무총리라는 직함 자체가 대통령이 국회의 동의를 얻어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당의 이익 실현에 급급해 국무총리 자리 하나 가지고 여당과 야당이 논쟁을 질질 끌고 나가면 곤란하다. 국무총리 자리 하나 때문에 시끌벅적한 나라 분위기를 이어가서는 안된다. 혼란의 정세 속에서 대통령은 국가의 최고 통솔자답게 서애처럼 화합과 조정의 리더십이 발휘해야할 때이다. 정부는 자신들이 천명했던 ‘공정한 사회’라는 모토에 끼워 맞출 수 있는 총리 후보자보다는 ‘공정한 사회’를 원하고 있는 국민들의 민심에 맞출 수 있는 총리 후보자를 선택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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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록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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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끊임없는 자아 성찰의 기록 
 

모든 내용의 한 구절 하나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서 제대로 정독(情讀)한 것은 이 책이  

처음이다. 비록 양은 많지 않았지만 가볍게 읽혀지는 내용도 아니었고 문장 하나하나는 

그냥 스치기에는 아까운  주옥같은 명언들이었다. 황제인 아우렐리우스가 항상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기록한 에세이 형식의 글이다. 전쟁 중임에도 그는 자계(自戒)의 말을  

꾸준히 기록하였다. 그는 인간을 지키고 인도하는 것은 오직 철학이라고 말하고 있다.  

아우렐리우스가 말하는 철학은 스토아 철학을 가리킨다. 스토아 철학에서 주장하는  

삶의 기술은 자연에 따라 사는 것이다.『명상록』을 이루고 있는 내용에는 스토아 철학의  

사상이 물씬 풍긴다.  

 

  네 몫으로 주어진 사물들에 적응하고, 운명이 정해준 사람들을 사랑하되  

  진심으로 사랑하라   

                                                -『명상록』천병희 역, 제6권 p 101-


 밑줄 그을 수 없어서 미안하다

 

동네 도서관에서 빌린 것이라서 중요한 구절을 마음대로 좍좍 밑줄 그을 수 없었다. 

『명상록』은 총 12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권씩 읽고 나면 인상 깊었다거나 중요한  

구절들을 일일이 손으로 베껴 썼다. 내용이 너무 좋아서 그냥 눈으로 한 번 읽고  

반납하기에는 너무 아쉬웠다. 나는 도서관에서 정말 좋은 내용으로 구성된 책을 만나면  

두 번 정도 읽는 편이다. 하지만 또 언제 재회할지 모르는 일이다. 앞으로 살아갈 인생의 

시간은 많이 남아있지만 시간은 급류라는 표현처럼 무엇이든지 금방 휩쓸려간다. 

(『명상록』천병희 역, 제4권 p 66)  12권 전체 내용을 한 번 통독하고 나면 구절들을  

기록하기 위해 또 한 번 읽어야 했다. 가끔 번거로운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반복적으로  

읽으니깐 처음에 읽었을 때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던 숨겨진 문장들을 재발견하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가면 갈수록 기록 작업량이 조금씩 늘어나게 되었다. 야간 아르바이트가 

남긴  피곤함을 억누르고 얼마 남지 않은 자격증 공부의 중요성을 제쳐두면서까지 5일  

동안 『명상록』기록에 매달렸다. 지금도 생각하면 미련했던 5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통독을 통해서 제대로 내 자신에 대해서 명상할 수 있었던  

기회라고 나름 긍정적인 생각을 포장한다. 그리고 아우렐리우스는 전쟁 중에도 시간이 

나면 틈틈이 기록을 하였는데 나라도 못할쏘냐.  사족일지도 모르겠지만 『명상록』의  

구절을 제대로 읽고 싶다면 빌려서 읽는 것보다는 구입하는 것으로 추천하고 싶다.  

그만큼 소장 가치도 있으며 여러 번 읽어도 좋은 책이다. 

   

 너무나 겸손한 안니우스 씨   

아우렐리우스의 생애를 살펴보면 요즘 시대의 엄친아라고 말할 수 있다. 그의 할아버지는 

집정관을 세 번이나 지낸 사람이다. 집정관은 로마 공화정 최고 관직이다. 그리고 그의  

인척은 왕족이었다. 아우렐리우스가 황제가 되지 전에 원래 정식 이름은 마르쿠스  

안니우스 베루스(할아버지에게 입양되어 개명된 이름)이다. 그는 친가 쪽 할아버지에게  

입양되어 최고의 교육을 받았으며 아우렐리우스와의 핏줄이 연결되어 있으며 당시  

황제였던 하드리아누스의 총애를 받았다.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그런 젊은 아우렐리우스 

에게 ‘안니우스 베리시무스(Annius Verissimus, 진리를 좋아하는 안니우스)’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런 별칭과 소년 시절을 통해서『명상록』에서 표현하고 있는 삶의  

진리들은어린 시절부터 시작된 공부의 결과가 세월이 흘러 와인처럼 숙성된 것이다.  

라틴 어 Verissimus의 뜻에는 ‘진리를 좋아하는’ 뜻 이외에도 ‘진실한’, ‘진지한’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명상록』천병희 역, 옮긴이 서문 p 5~6) 천성인 진실하고 진지한 

성격 덕분에 문학사적으로 가치가 놓은 자기 성찰의 기록을 남겼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1권에서는 가족들, 소년 시절의 스승부터 자신과 친분이 있었던 철학자들까지
다양한 인물들의 이름을 언급하면서 이들 덕분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라는 황제가  

되었다고 말한다. 또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삶이 좋든 나쁘든 아우렐리우스는 항상  

신에게 감사했다.  

 

우리나라 서적과 다르게 외국 서적의 머리말이나 서문을 살펴보면 항상 감사하는  

사람들의 이름을 언급하면서 글로 마무리된다. 그 내용 기록에 할해하는데에 기본으로  

1장 이상이다. 저자의 가족들의 이름과 저술에 도움을 준 모든 사람들까지 보는 독자들이 

지나치게 생각할 정도로  열거한다. 그리고 저자가 크리스트 교이면 하느님에 대한  

감사도 빠지지 않는다. 목차로 들어가기 전 여백에는 저자가 존경했던 사람이나 친한  

가족의 이름을 넣어 자신이 쓴 책을 그에게 바친다는 식으로 짤막한 헌정사를 남긴다.  

외국 서적에는 그런 공통적인 서술이 보이는데 그런 서술 방식을 맨 처음 시작한 사람이  

아마도 아우렐리우스일 것이다. 그래서 1권을 읽게 되면 서론을 읽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진실한 사람 아니랄까봐 그와 만났던 인물과 신에 대한 감사를 세부적으로  

기록하였다. 재미있는 것은 아우렐리우스가 철학을 공부하게 된 것과 왕이 된 것 등  

자신이 이룩한 성과와 부족함 없는 삶을 누리는 것 모두가 신의 덕분이라고 언급한  

문장이다. 한편으로는 자기 자랑을  늘어놓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1권에는 자신이  

잘났으며 위대하다는 로마 황제다운  기질이 보이지 않는다. 아우렐리우스는 안니우스  

베리시무스인 것뿐만 아니라  안니우스 베르쿤디시무스 (Annius Verecundissimus, 

'겸손한‘이라는 뜻을  가진 Verecundus의 최상급)였다. 즉, 겸손한 안니우스였던  

것이다.  

 

 

 멍청한 건지 아니면 순진한 건지 
 

그런데 1권에서 그의 가족을 언급하는 내용 중에는 너무 겸손한 안니우스 씨가 멍청한  
것인지 아니면 너무 진지하고 착한 것인지 알 수 없는 흥미로운 구절이 등장한다.

  내 아내가 그토록 고분고분하고 곰살궂고 검소한 것도, 내 자식들을 위하여  
  유능한 스승들을 구한 것도 신들 덕분이다. 

                                                                -『명상록』천병희 역, 제1권 p 30 - 
 
아우렐리우스의 아내는 그다지 좋은 아내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의 아내도  
아우렐리우스처럼 왕족 출신이지만 아우렐리우스와의 반대로 정숙하지 못한 성격의  
소유자였다고 한다. 아내와 아우렐리우스 휘하의 장군과의 염문설이 떠돌았음에도  
불구하고『명상록』에는 그녀와 관련된 좋지 않은 언급과 그녀에 대한 악평은 한 줄도  
보이지 않는다. 고대 로마에도 자신의 아내의 행동을 눈감아주는 처용과 같은 대인배가  
있었다니..... 상상하건데 아우렐리우스의 아내는 소크라테스의 마누라 크산티페  

버금가는 악처(惡妻)였을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크산티페의 바가지 긁기 덕분에 자신의  

철학이 완성되었다고 한다. 아우렐리우스의 부인도 너무나도 착해빠진 남편에게 바가지를
분명히 긁었을 테다. 하지만 정숙하지 못한 악처를 둔 덕분에『명상록』이라는 훌륭한  
스토아 철학 작품이 탄생되었기에 아우렐리우스 입장에서는 이런 아내를 만나게 해준  
신이 고맙게 느껴졌을 것이다.    

하지만 신은 공평했다. 신은 아우렐리우스에게 엄친아의 능력을 부여해줬지만 아들에게는 
그런 혜택을 주지 않았다. 아우렐리우스에게는 자신의 자리를 이어받을 아들 3형제가  
있었다. 하지만 장남과 막내는 요절하고 그나마 남은 둘째는 아우렐리우스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지만 정신 이상 증세를 보이다가 결국 암살당하고 만다.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철인(哲人) 정치인

그는『명상록』, 이 단 한 작품으로 인해서 ‘철인(哲人) 통치자’로 지금까지도 알려지게 

되었다. 비록 그가 남긴 글은 황제로서의 정치적 활동에 별 도움은 주지 않았지만  

‘아우렐리우스’라는 이름을 가진 하나의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스스로  

터득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현재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삶의 방향을 알려주는  

나침반 역할을 하고 있다.

과거 조선의 왕들은 유교 경전을 통해서 학문 수양을 꾸준히 하였다. 그들의 일과에는
경전 읽기와 학자들 간의 대화는 빠지지 않았다. 왕들에게 공부란 나라를 올바르게  

다스리기 위한 왕도정치의 실현 목적이라는 동시에 왕 자신의 인격을 스스로 수양할 수  

있는 정신적 훈련이었다. 우리나라 조선의 왕들뿐만 아니라 좋은 정치를 베풀었던  

외국의 유명 정치가나 황제들의 일생을 살펴보면 공부를 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독일의 프리드리히 2세는 국민의 행복 증진을 우선한 계몽전체 정치를 펼침으로써  

프로이센의 영광을 확고히 다졌다. 독서라는 습관을 가지지 않았다거나 볼테르라는  

걸출한 사상가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오늘날의 독일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미국의 역대 대통령 중에서도 훌륭한 위인으로 칭송받는 조지 워싱턴이나 링컨,  

그리고 영국의 윈스턴 처칠 경과 같은 사람들은 어렸을 때부터 독서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이야기가 갑자기 독서로 빠져버리게 되었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독서를 통한 

인문학적 소양 갖추기의 중요성이다. 인문학적 소양은 단순히 지적 사고를 형성하기  

위한 것만이 아니다. 우리가 삶을 어떻게 살아나가야 할 것이며 하나의 문제 현상에 대한  

해결 방안을 제시해주기도 한다. 그래서 살아가는데 인문학 공부는 필요하다. 

가끔 미디어에서는 정치인들이 읽고 있다거나 그들이 추천한 책이 소개되기도 한다.  

물론 그들이 읽고 추천한 책은 읽어야 할 훌륭한 책들이다. 하지만 정치인들의 도서  

목록을 살펴보면 인문학 관련 책을 찾기란 드문 일이다. 어쩌면 인문학이 정치 활동에  

이익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치인에게는 자기 수양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국민들에게 올바르고 곧은 태도를 보여줘야 한다. 자기 수양이 제대로 되지  

않게 된다면 아무 생각 없이 성적 발언이나 막말을 해대는 수준 이하의 정치인이 나오기  

마련이다. 가끔 정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책과 관련된 언급을 하게 되면 유심히  

지켜본다. 그 사람들이 무슨 책을 읽었는지, 그리고 인문학 책 한 권이라고 읽었는지  

확인한다. 지금까지  내가 각종 미디어에서 본 정치인들 중에서는 인문학 책을 읽었다거나 

추천한 사람이 아직 나오지 않았다.  어쩌면 인문학 책 한 권이라도 읽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현재 인문학의 인기가 낮은 분위기를 감안하면 인문학에 대해 언급하지  

않은 정치인이 없어서 아쉽기만 하다.  자신의 조국인 슬로베니아의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처럼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정치인이  나올 것이라고 기대를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과연 ‘철인(哲人) 정치인’이 등장하는 날이 올 수 있을지 앞으로  

두고 봐야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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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의 정원
다치바나 다카시.사토 마사루 지음, 박연정 옮김 / 예문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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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생들이 생각하는 자신의 교양 수준

작년에 어느 구인구직 사이트에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흥미로운 설문조사를 했다. 그것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교양의 수준에 관한 것이었다. 조사 결과는 60% 이상인 어느  

정도의 교양을 갖췄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교양을 쌓는 방법에는 독서가 제일  

많이 꼽혔다. 언뜻 보기에는 설문조사에 관한 이 기사가 우리나라 대학생들이 예전보다  

어느 정도 교양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교양을 쌓기 위해서 독서를 하는 모습이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앞의 문장과 인용 기사를 잘 읽어보면  

썩 좋은 현상이라고 단정을 짓기에는 무리가 있다. 설문조사는 동일한 질문을 각 방면의  

사람들에게 제시하여 그 회답을 조사하는 방법이다. 조사에 참여한 대학생들의 교양  

수준을 수량적으로 측정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조사 참여 학생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교양이 어느 수준인지 확실히 모르고 있다. 재미있는 점은 대학생들이  

한 달에 읽는 책의 권수는 평균적으로 살펴보면 고작 3.5권이란다. 한 달에 3권씩 읽는다는 

가정 하에 계산하면 1년에 36권을 읽는다. 실제로 1년에 36권 읽는 것도 꽤 읽는 것이다.  

지금 대학생들에게는 취업이 혈안이 되어있는 만큼 교양을 쌓기 위해서 그 정도의
책을 읽는 것은 좋은 모습이다. 1년에 3권 이상 읽지 않는 우리나라 사회인들과 비교하면
36권 읽는 대학생들이 낫다. 하지만 여기서 감히 태클을 걸자면 정말 교양을 쌓는데  

그 수준에 걸맞은 책을 확실히 읽었느냐가 문제다. 특히나 대학 도서관 대출 도서  

Top 10 전체 순위를 차지하고 있는 도서 장르가 무협소설이나 에세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우리나라 대학생들의 독서 실태가 정말로 개선되어 있는지 불분명하다. 교양을 쌓기 위한 

독서를 한답시고 자기계발이나 실용 위주의 도서를 읽는다면 문제가 있다. 대학생들이  

‘교양’이라는 개념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독서를 하고 있다는 점이기 때문이다. 

 

 고전은 독서의 독(毒)인가? 
 

예전에 서울대에서는 대학생들이 고전을 읽기 위한 독서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서  

고전을 위주로 서울대 권장 도서 목록을 만들었다. 목록을 토대로 수업 시간에 활용하여  

학생들이 읽을 수 있도록 만드는 권장도서 활용 방안도 만들기도 하였다. 서울대가  

추진한 독서 프로젝트의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안 봐도 비디오다.  

수업을 통해서 고전 읽기가 어느 정도 학점 관리와 연결되어 있다면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읽을 수 있겠지만 그것은 일시적인 현상이다. 오히려 고전을 꺼리게 만드는  

인식이 형성될 수 있다.  학점을 위해서라면 울면서 겨자를 먹어야 한다는 식으로  

고전을 읽는 셈이다. 결국에는 고전의 참된 가치를 제대로 알지 못하게 되면 학생들의  

교양 형성에서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학생들이 생각하는 고전은  

그냥 고리타분한 옛날 책일 뿐이다. 학생들은 취업과 돈 버는 것에 도움도 안 되는데  

왜 학교에서는 고전 타령을 하는지 이해가 안 간다고 생각할 것이다. 우리나라  

대학생들에게는 고전은 삶의 이익이 없으며 오히려 읽으면 독(毒)이 되는 분야라고  

인식한다. 교양 형성의 기본이 고전인데 이를 기피하면 분명 심각한 현상이다. 

 

 교양 형성을 위해서는 고전을 읽을 필요가 없다?

그런데 지(知)의 거인 다치바나 다카시는 교양 형성에 대해서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고전을 읽을 필요가 없다, 최신 잡지나 학술서를 읽으면 된다.” (『지의 정원』 

p 108) 다치바나는 인문학에서부터 과학까지 다양한 분야를 섭렵한 교양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고전을 읽을 필요가 없다니? 하지만 사람 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하는 법이다. 

다치바나는 교양에 관심이 많은 독자들이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서 부연 설명을 하고 있다.
시대에 뒤떨어진 고전을 읽게 되면 정작 현대 사회에서 새로이 생성되는 최신 지식의  

섭렵에 유리되는 것을 염려한 말이다. 그리고 다치바나의 말을 더 깊이 파고들면  

현대에 걸맞은 고전을 읽으라는 숨겨진 뜻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그의 추천 도서  

목록을 살펴보면 ‘현대의 고전’이라고 부르는 도서들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독서 실태를 생각하면 다치바나의 말 한 마디가 한편으로는  

맞는 말이기도 하면서도 괜히 시샘이 나기도 한다. 일본의 독서 수준은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우리나라보다 독서 문화가 더 발달되어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가 없다.  

그의 말은 고전을 읽는 일본 독서 문화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우리나라 대학생부터  

사회인들은 전문적인 학술서나 관련 학술 잡지를 읽지 않는 또 다른 문제를 가지고 있다.  

대중적인 인문학과 사회과학 도서가 인기를 많이 받고 있는 만큼 정작 어느 정도
수준을 요하는 학술적인 도서는 출판하는 것마저 꺼리고 있는 것이 우리나라 출판  

시장의 현실이다. 다치바나는 과학 지식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지식인이기에 그가 말한  

‘최신 잡지’와 ‘학술서’에는 과학 관련 도서들도 포함하고 있다. 과학(이과 계열)도서에  

관심을 갖지 않고 인문학과 순수 문학(문과 계열) 도서를 지나치게 읽게 되면 균형 잡힌  

교양을 형성하기가 어려워진다. 영국의 소설가 C.P. 스노가 지적한 것처럼 두 문화 

(문과와 이과)간에는 소통이 불가능한 벽이 형성이 되고 결국에는 학문적 교류가  

불가능해짐으로써 진정한 교양이 완성되지 못할 것이다. 

 

 올바른 지식의 나무를 형성하자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우리나라 대학생들이 ‘교양’이라는 개념을 제대로 인식한 지 못한 채
독서를 하게 되면 그것은 공중누각의 교양 일뿐이다. 학생들뿐만 아니라 사회인들은
사람이 알아야 할 지식을 아는 것이 교양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잘못된 생각이다.
교양을 영어로 표현하면 ‘Culture’이다. 이 단어의 유래를 살펴보면 ‘경작하다’라는  

뜻이 담겨져 있다. 즉, 인간정신을 개발하여 풍부한 것으로 만들고 완전한 지적 인격을  

형성해 간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이 책에서 다치바나 다카시와 대담을 한 사토  

마사루는 지식과 교양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자신이 종사하는 분야에  

알아야 할 기본 상식이 지식이라면, 교양은 그 지식의 세계로 들어가기
위한 입장권이다’(같은 책, p 20)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 그리고 알아야 하는 지식만  

머릿속에 채웠다고 해서 교양인이 되는 것이 아니다. 두뇌의 밭에 심어놓은 교양을  

경작해야 올바른 지식이 형성되고 진정한 교양인이 될 수 있다. 다치바나 다카시와  

사토 마사루. 이 두 사람이 ‘지의 정원’에서 나누는 대화는 서로 어긋날 때도 있지만  

정작 이들을 서로 연결해주고 있고 공통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은 ‘무조건 책을  

읽으라는 것’이다. 교양을 경작하는 방법은 책을 읽는 방법 밖에 없다. 단, 자신의  

수준에 맞으면서도 다양한 분야를 넘나드는 유익한 책을 읽어야 한다.  

그리고 읽고 생각해야 한다. 지식의 나무를 자라기 위해서 물만 주게 된다면
그 나무를 제대로 자랄 수가 없다. 햇빛과 적당한 비료가 있어야 훌륭한 나무가 되듯이  

인문학, 과학, 종교, 문학이든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독서가 필요하다.  

그리고 자란 나무를 그대로 보기만 해서는 안된다. 다 자란 나무의 열매를 따던가 아니면  

나무의 그늘을 이용하여 햇빛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지식의 나무를  

관상용으로 만들지 말고 앞으로 살아가는데 활용할 수 있도록 생각하려고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 인용 관련기사 출처 및 링크

[대학생 60%, 자신이 교양 갖췄다고 생각...교양 쌓는 방법은 독서]  

시사서울 2009년 9월 4일자 입력
http://www.sisaseoul.com/news/articleView.html?idxno=9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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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조부 2010-11-06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치바나 다카시 의 팬인데도 아직 이 책을 못 읽었어요

읽게도ㅣ면 같이 감상 나누면 좋겠네요 ^^

cyrus 2010-11-06 16:05   좋아요 0 | URL
이 책에 대한 매버릭꾸랑님의 리뷰,, 기대하겠습니다.^^

비로그인 2010-11-06 2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 책. 책상 위에 두고 계속 미뤄두고 있네요 ^^

도쿄대생..은 나름 의미있게 읽었는데.. 이상하게 그 이후로 다치바나 다카시관심이 좀 적어져 버렸네요~ (근데 이 책은 왜 있냐능..^^)

cyrus 2010-11-06 23:32   좋아요 0 | URL
좋은 책을 소장하고 계시네요, 요즘 국내에 나온 책들이
일본과 긴밀하게 관련있다보니,, 약간 읽기에는 쉽게 다가서기
힘든거 같습니다. 그의 글이 우리나라 독자들이 알면 중요하지만요.
저도 다카시 노인의 저작중에 좋았던 책을 고르라면,,
국내 베스트셀러였던 <도쿄대생은~> 과 <나는 이런 책을~>을 꼽고
싶네요, 다시 읽어도 지금도 유효한 책이기도 하고요.
 
행복의 조건 - 하버드대학교. 인간성장보고서, 그들은 어떻게 오래도록 행복했을까?
조지 E. 베일런트 지음, 이덕남 옮김, 이시형 감수 / 프런티어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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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를 우울하게 만드는 뉴스 

7월에 들어서 우울한 소식들이 들리고 있다. 남아공 월드컵의 열기가 이제 막  

무르익어갈 무렵에 유명 연예인이 자살하였다. 사건 발견 당시 유서도 없었다고 한다.  

그를 자살로 몰고 간 원인을 알 수 있는 유서가 없었기에 그의 가족과 지인, 그리고 그를  

사랑했던 팬들은 자살 소식에 커다란 충격에 휩싸였다. 연예인 자살 소식의 여파는  

오래 지속되었다. ‘베르테르 효과’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이를 모방한 자살 사건이  

생겨났다. 공통적으로 자살의 원인은 우울증. 연예인 자살 소식에서 뿜어져 나오는  

우울 바이러스가 다른 사람들에게 전염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최근에 들리는  

또 하나의 우울한 소식은 우리나라 독거노인이 100만 명을 넘었다는 것이다.  

이 뉴스가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외로움과 가난을 이기지 못해 자살을 선택하는  

독거노인의 소식이 들려온다. 자살과 독거노인 문제. 우울한 소식을 접하고 있는  

우리들에게는 이 두 문제의 심각성이 와 닿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법은 없다. 우울한 소식 속의 타인이 나 자신일 수도 있으며  

자신과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일 수도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 사람들 대부분은 

자신이 우울 증세가 있으면서도 이를 그래도 방치하고 있다. 심지어 자신이 

우울증에 걸리는 지도 모르고 있다. 두 사건은 공통적으로 우울한 심리가 일으킨  

충동적인 행위이다. 우울한 사람들에게는 삶에 대해서 비관적으로 바라보며  

그들의 머릿속에는 오직 걱정과 염세적인 생각 등 마이너스 요인들이 자리 잡고 있다.  

살아가면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껴야 하는데 우울한 사람들에게는
밝은 면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다. 
 

 

 행복의 고정관념을 깨뜨리다

우리는 풍요로운 생활. 즉, 평생 쓸 수 있든 재화와 자신을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이  

있으면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믿는다. 천만에 말씀. 대중들에게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으며 나름 부족함이 없어 생활을 하는 연예인들의 자살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리고 세상은 내 마음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인생의 탄탄대로를 걷다가  

한 순간에 찾아온 불행으로 인해서 원하지 않는 인생의 결말이 이루어질 수가 있다.  

워낙 사회가 다양하고 복잡해질수록 인맥 관계의 중요성이 떠오르고 있지만 대부분  

인맥을 연결하는 사람의 수만 채우는데 급급할 뿐이지 평생 관중과 포숙아처럼  

서로 믿음의 끈이 이어져 있는 지우(知友)를 만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행복의 조건>이라는 책에서는 현실과 행복의 이상향의 괴리감 속에서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책에서 등장하는 저자의 연구 대상 집단은  

하버드 대학교 졸업생들, 이너시티 고등학교 중퇴자들, 그리고 중산층 여성들로 구성된  

터먼 여성 집단, 이 세 집단으로 나뉘어져 있다.  책 속에서 구성된 내용 대다수가  

연구에 참여한 이들의 삶을 기록한 수기이다. 그래서 우리와 다른 환경에서 자란 사람의  

이야기가 쉽게 눈에 익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책 속의 이들의 인생 이야기가 대부분  

지루한 내용도 아니며 남 일 같지 않은 이야기도 있다.  우리들은 으레 수재들이  

모인다는 하버드 대학에 입학하는 것만으로도 앞날이  보장되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책 속에서 등장하는 하버드대 졸업생들은 직업이 천차만별이다.  

하버드 대학 졸업자라고 해도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월급이  낮은 직업을 가진 사람부터  

기업 사장이나 예술가까지 다양하다.  잘 사는 사람들에게도 인생에 대한 고민과 불안,  

그것으로부터 야기되는 우울 증세까지 한 가지씩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고등학교에  

중퇴한 사람들 중에서도 성공한 사람들도 있었다. 풍요로운 환경이 꼭 행복을  

유지할 수 있다는 고정관념이 잘못 되었음을 반증하고 있다. 유년기 시절에 유복한  

생활 속에서 성장하였다거나 그 시절이 행복했더라도 노년에도 행복이 오래 간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다. 반대로 불행한 유년기를 보냈다고 해서 노년기에도 그 불행이  

계속되는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타인의 마음 이해하기

저자는 우리가 살아가는데 행복을 얻거나 유지하기 위해서는 성숙한 방어기제가  

형성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가 심리학자인 만큼 말이 전문적이다보니 이해가  

가지 않을 수가 있겠다. 쉽게 말하면 자신이 처한 불행이 만드는 우울증 형성을 방어하여  

행복을 유지할 수 있는 심리적인 대처 능력이다.

우선적으로 저자가 말하는 성숙한 방어기제의 조건으로는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는  

능력이다. 저자는 나이가 들면 들수록 ‘성숙한 방어기제’를 발현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이전에 남을 이해하고 도와주는 이타적인 활동의 경험이 축적해야만 가능하다고  

말한다. 젊은 세대들에게는 저자의 말에 주목할 가치가 있다.
우리들은 지금 살고 있는 현재의 삶이 행복하지 않다고 불평불만을 늘어놓는다.  

그리고 자신을 불행하게 만든 것은 자신이 아닌 남 탓으로 돌리고 있다. 하지만 행복은
무조건 얻는 것이 아니다. 타인에게 행복을 주게 되면 언젠가는 자신에게도 행복을  

얻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마음과 경험이 쌓이게 되면 자신의 인격이 성숙되는 것은  

물론이고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서 안정적인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반면에 노년기에 들어서는 기성세대들에게는 젊은 세대의 마음을 읽고 그들과  

어울리는 것이 중요하다. 부모들은 자녀들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한 채 자신에게 무조건  

권위와 복종을 내세우며 교육하고 있다. 그런 어긋난 교육이 미래에 부모와 자녀들  

사이의 관계도 어긋나게 된다. 저자는 자녀들의 말에도 귀 기울여야 하며  

젊은 세대들에게 유행하는 문화나 새로운 지식을 배우게 되면 삶이 즐거워지고  

행복해질 것이라고 말한다. 젊은 세대와 기성 세대 간의 단절된 우리 사회에게는  

저자의 말을 되새겨 봐야 한다. 

 

 추억 활용법..... 글쎄?

그리고 또 하나의 방어기제의 조건은 부정적인 현실을 직시하되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중요하며, 그 밖에도 긍정적이면서도 밝은 생각을  

한다거나 과거에 행복했던 기억들을 떠올리는 것이다. 사실 저자의 근거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이며  일리가 있다. 대부분의 심리치료사들이 우울증 환자들을  

치료할 때 사용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너무 지나치면 도리어 우울 증세가 심각해질 우려가 있다. 저자는 과거에 경험한  

사랑의 실연을 긍정적으로 재구성을 하면 행복했던 기억으로 전환할 수 있으며  

지금의 삶이  힘들 때 그 때의 소중했던 기억들을 떠올리라고 말한다.  

이 대목을 통해서 저자가 개인마다 가지고 있는 심리 요인의 특수성을 인지 못한  

것이 아쉽게만 느껴진다.  과거에 커다란 실연의 상처가 남은 사람들에게 저자의  

심리 요법을 적용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말이 있듯이  

정도를 지나침은 미치지 못함과 같다.  너무 행복했던 과거에 지나치게 받아들이게 되면  

그것은 집착일 뿐이며 과거에 안주하는 현실회피 형으로 변할 수 있다. 그러한 정서가  

현실에 적극적으로 맞서는 것을 피하게 됨으로써 가지고 있었던 우울 증세가 악화될  

뿐이다. 혹 떼려 하다가 도리어  혹을 붙여 오는 꼴이다. 이런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는 

정신과 전문의에게 상담을 하여 자신의 심리적 문제를 제대로 이해한 상태에서 적절한  

치료 요법을 찾아 우울증을  해결해야 한다. 
  

 

 

 정신적 고통 공유하기 
 

이번 유명 연예인 자살 소식으로 인해서 제일 슬퍼했던 사람은 그와 친분이 있었던 탤런트 

소지섭이었다. 하얀 뼛가루로 남게 된 친구가 납골당에 안치될 때까지 그는 장례식 자리를 

지켰다. 그리고 모든 장례식 비용도 자신이 부담하였다. 그만큼 그와의 끈끈한 우정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만약에 자살한 그가 친분이 있었던 소지섭과 정신적인 고통들을  

공유했었더라면 비극적인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우정은  

오랫동안 유지될 수 있었을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성숙한 방어기제 이외에도 항상 새로운 것에 배우는 것과 술과 담배를  

자제하고, 운동을 할 것을 권하고 있다. 물론 저자가 제시한 행복의 조건들은 우리가  

살아가는데 유익한 방식들이다. 하지만 행복한 삶을 위해서 자신이 처한 현실을  

받아들이고 극복하려는 의지가 필요하다. 그리고 힘들다고 혼자서 끙끙대고  
있는 것도 좋지 않다. 정신적인 아픔을 타인과 공유하면서 치유하는 것도 성숙한  
방어기제 형성에 도움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우울증의 위험성을  알면서도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적극적인 노력이  

보이지 않으며 심지어 자신이 우울증에 걸리고 있는지도 모르고 있다. 정말로 행복한  

삶을 위해서라면 일단 우리의 정신을 지배하고 있는 우울증적 정서들을 제거해야할  

것이다. 그리고 무턱대고 책 속에 있는 행복의 조건들을 억지로 따라하려거나 맞출  

필요가 없다. 오히려 역효과만 날 뿐이다. 행복을 찾기 위해서는 스스로 자신이 즐거움과  

보람을 느낄 수 있는 건전한 활동을 하고 삶을 유연하게 보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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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쳐야 미친다 - 조선 지식인의 내면읽기
정민 지음 / 푸른역사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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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년, ‘앎’에 대해서 고민하다

최근에 이 책을 다시 읽었다. 이 책을 처음 만난 때가 내가 고등학교 1학년이었다.
한창 사춘기가 나의 마음을 물들 무렵이었지만, 나의 정신은 사랑의 감정에 목이 말라  

갈구하는 베르테르보다는 그 나이에는 실용성이 없어 보일 거 같은 세상의 진리와  

지식에 몰두하면서도 만족감을 못 느껴하는 파우스트였다. 한창 입시 공부해야할  

시기에 나는 인문학이라는 울창한 숲에 드나드는 것을 좋아했다. 그래서 간혹 야간 자율  

학습 시간에 공부하다가 지치면 가방 속에 책을 꺼내 읽곤 하였다. 한창 수능 점수를  

올려야 할 시점인데도 불구하고 문제집을 푸는 것보다는 소설이나 인문학, 역사 관련  

도서에만 눈이 갔다. 특히 유독 인문학에 푹 빠져버렸다. 당시 윤리 시간에 배우고  

있었던 서양 철학을 배우게 되면 지겹게만 느껴지곤 했었는데, 직접 철학자들의 책을  

읽어보면 그들이 말하고 자 한 내용들이 쉽게 이해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혼자서 숲을 드나들게 되면 길을 헤매게 되는 법. 숲에 여러 가지 길 때문에  

우리가 헤매는 것처럼 인문학에도 서양 사상과 동양 사상, 인간 심리 등
여러 가지 분야가 갈라져 있으면서도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인문학에 도취된  

나머지, 무작정 달려들어 읽다가 후회하는 경우가 많이 있었다. 그리고 어느 길은  

목적지에 금방 도착하는 것도 있는 반면에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길도 있다.  

그러다 보면 길을 잃고 헤매게 된다. 이렇듯이 인문학의 길을 걷게 되면 얻을 수 있는  

깨달음에 도달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을 가다보면 체력은 바닥이  

나고 지치게 마련이다. 입시 공부라는 보이지 않는 짐을 짊어지고 있던 나에게는  

그 나이에 가이드 없이 인문학의 길을 가다가 자괴감 때문에 쉽게 지쳐버리곤 했었다.  

그래서 과연 내가 독서를 하고 있는 것이 정말 옳은 일인지 고민하게 되었다.

그런 정신적인 방황 속에서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당시, 우리나라 한시(漢詩)들을  

유려하게 풀어나가는 정 민 교수의 신간으로 알려질 무렵이었다. 튀는 제목에다가  

‘조선 지식인의 내면 읽기’ 라는 부제에 끌려 망설임 없이 이 책을 집었다. 한창 정 민  

교수의 이 책이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에 오를 정도로 인기가 많았고,  

이런 베스트셀러가 도서관에 나오게 되면 도서관 대출 인기도서가 된다.
먼저 선수 치는 사람이 임자이다. 많은 사람들이 베스트셀러 한 권 읽으려고 대출중인  

상태에서도 예약으로 찜한다. 대출중이면 그 사람이 다 읽을 때까지 길어야 1달 정도는  

기다려야 한다. 동네 도서관에 책장에 숨어 있는 이 책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이 어떻게  

보면 행운이었다. 
 

  

 그들은 미치지 않았다

미쳐야 미친다

워낙 튀는 제목에 쉬는 시간에 이 책을 읽고 있으면 주위 친구들은 무슨 책 제목이  

그러냐고 핀잔을 주곤 했다. 하지만 나는 제목 따위에 독서를 하는데 조바심을 내는 편이  

아니었다. 1장인 ‘벽(廦)에 들린 사람들’ 을 읽고 난 후부터 이 책에 빠져들었다.   

야간 자율 학습 첫 시간부터 읽기 시작해서 집에 돌아와서도 숙제를 잠시 미루고 계속  

읽다보니 어느 새 하루 만에 다 읽어버렸다. 제목 그대로 나도 모르는 사이
하루 동안 이 책에 미쳐버렸던 것이다.

‘벽’ 은 일상용어로 쉽게 풀이하면 ‘버릇’ 이다. 하지만 1장에 소개된 조선 시대의  

선비들은 ‘버릇’ 이라기보다는 광(狂)이었다. 자신의 생계에 별 도움도 안 되는데도  

만날 벼루를 깎는 정철조, 둔한 두뇌 능력 때문에 <사기(史記)>의 ‘백이전’ 이라는 내용을  

1억 1만 3천 번(!)을 읽은 김득신, 너무 가난하면서도 책 읽는 것만큼은 좋아했던  

‘책만 읽는 바보’ 이덕무. 이들은 주위 사람들의 비난과 조롱의 손가락질 속에서도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는 열정을 쏟았다.

오직 자신이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여 거기서 즐거움을 찾는 그들의 삶과 비교하면  

아무런 목적과 목표도 없이 단지 인문학과 독서를 치중하고 있는 나 자신이 민망해짐을  

느꼈다. 내가 인문학과  독서를 좋아한다고 하면서도 현실은 제풀에 지쳐버리고 싫증이  

나게 된 이유를 이제야 알게 되었다.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오만함을 떨기 위해서  

독서라는 행위를 겉포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무조건 인문학과 독서가 좋다는
허울을 내세우다보니 정작 내가 추구하려는 목적의식이 사라지게 되고 나중에는  

회의감에 빠져버린 것이다.

벽에 들린 선비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빠져 미쳤다고들 하지만,
미쳤다기보다는 자신만의 고유의 ‘버릇’, 즉, ‘습관’ 이며 하나의 ‘생활’ 이었다.
하지만 나는 단지 나의 이미지를 포장시키기 급급해서 좋아하는 일에 빠져버린
‘습관’ 인 척 가장(假裝)한 ‘광(狂)’ 이었던 것이었다. 
 

 

 감동적인 스승과 제자 간의 통(通)

이 책에는 ‘벽’ 에 들린 선조들 말고도 정신적 교감에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
자신이 추구하는 삶을 산 인물들도 있다.

다산 정약용과 그의 제자 황상의 이야기는 언제나 읽어도 가슴 뭉클하면서도
이 책에 소개된 허 균과 기생 홍랑의 플라토닉 러브보다 더 애틋하게 느껴진다.
유배 생활을 하게 된 다산이 강진으로 오게 되자, 그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황상은 그의 가르침을 받기 위해 직접 찾아왔다. 그의 나이 15세. <논어>에서 공자가  

열다섯 살의 나이에 학문의 뜻을 두었다고 말했듯이,
황상은 우연스럽게도 그 나이에 다산을 만나 학문의 뜻을 두게 된다.
세월은 흘러, 제자는 60세의 노인이 되어서도 45년 전의 스승의 가르침을
잊지 않고 항상 마음 속 깊이 새겨두고 있었다. 그리고 스승이 얼마나 그리웠으면  

스승의 자취가 남겨진 다산초당을 머물곤 했다. 이들의 정신적 교감은 떨어져 있음에도  

통(通)함이 있었던 것일까. 그래서 황상은 수십 년 만에 드디어 스승을 찾아간다.

황상은 단순히 스승을 하루만 만나는 것이 아니었다. 며칠 간 제자는 스승 곁에 지내며  

예전처럼 학문에 대해 담소를 나누었다. 그리고 스승은 직접 찾아 온 제자가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하자 무척 아쉬워했다고 한다. 그런 다산은 자신의 죽음을 알고 있었던  

것이었을까. 스승과 제자 간의 아름다운 만남은 이것이 마지막이었다. 황상이 떠난 뒤
며칠 뒤 다산은 세상을 떠났다. 
   

 

 첫째도 부지런함, 둘째도 부지런함, 셋째도 부지런함

소년 황상이 다산에게 질문을 한다.

  “선생님! 저는 머리도 나쁘고, 앞뒤가 꼭 막혔고, 분별력도 모자랍니다.
   저도 공부를 할 수 있을까요?“

다산은 소년의 고민에 긍정적인 답을 한다. 

  그럼 할 수 있고말고..... 첫째도 부지런함이요, 둘째도 부지런함이며,
   셋째도 부지런함이 있을 뿐이다. 너는 평생 ‘부지런함’ 이란 글자를
   결코 잊지 않도록 해라. 어떻게 하면 부지런할 수 있을까?
   네 마음을 다잡아서 딴 데로 달아가지 않도록 꼭 붙들어 매야지.”

                          - <미쳐야 미친다>『삶을 바꾼 만남』 p 183, 185 -

이 일화를 읽고 난 뒤 내 심장을 크게 요동쳤던 그 때의 전율이 생각난다. 

간결하면서도 정말 훌륭한 현자(賢子)다운 대답이다. 황상의 고민이 곧 나뿐만 아니라  

젊은이들이 청춘의 시기에서 한 번쯤 고민해봤을 것이다. 황상은 자신이 겪은 고통을  

‘병통’ 이라고 비유했다. 그만큼 병에 걸려 아파했던 것처럼, 황상은 자신의 지적 능력의  

한계를 깨닫게 되어 고통스러웠던 것이다. 무엇보다는 이 책을 읽을
당시에 나도 황상처럼 병통에 시달렸기에 이들의 문답이 더욱 가슴에 와 닿았다.
학교 공부를 해도 원하는 성적이 나오지도 않았고, 내가 좋아하는 인문학과 독서를 하게  

되면 시간만 잃을 뿐 얻는 것이 없었다. 그래서 나도 내 자신의 지적 능력을 원망할 때가  

많았다. 그러나 다산은 나의 병통을 깨끗이 낫게 해주었다. 결론은 ‘부지런함(勤)’.  

학문을 꾸준히 노력하라는 뜻이다. 다산은 황상에게 말해주고 싶은 것은 단순히 학문  

익힘에 대한 부지런함을 넘어서 자신의 이익보다는 정신적 풍족함을 위해서 일생동안  

학문에 노력하라는 것이다. 결국 진정으로 학문에 노력하게 되면 깨달음을 얻게 될 뿐만  

아니라 다른 일에도 자연스럽게 부지런하게 된다는 것이다. ‘부지런함’ 이란 인간이  

살아가는데 꼭 가지고 있어야 할 덕목이라는 깊은 뜻이 숨겨져 있다. 

 

 서러워라, 잊혀진다는 것은

이 책을 처음 만난 지 6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그래서 지금까지 이 책을 보면  

나의 벗이면서도 스승 같이 느껴진다. 처음 출간나왔을 때는 베스트셀러였으며 당시  

처음 봤을 때는 새 책 같았었는데.....역사 속에서 잊혀져간 마이너 선비들의 삶을 그린 

이 책도 그들과 따라 잊혀져가는 거 같다. 정말 잊혀진다는 것이 서럽기만 하다.
지금의 책은 많이 접혀지고 약간 훼손되었다. 세상에 나왔던 당시 제목을 더 튀게  

만들었던 회색빛 광채는 지금은 빛이 바래져 있었다. 하지만 사람은 늙으면 늙을수록  

더욱 더 정신적으로 성숙해진다. 책의 겉은 볼품이 없을지라도 한결같이 내 삶을  

바로잡아 주는 힘은 여전히 가지고 있다. 군대 생활을 제외하면 나는 해마다 이 책  

한 권은 꼭 읽었다. 그리고 이 책을 너무 좋아하는 나머지 ‘부지런함’ 을 강조했던 다산의  

말을 노트에 메모하기도 했다. 1년마다 가끔 공부하다가 권태감이 찾아오면 고등학생  

시절에 따로 노트에 적은 다산의 가르침을 보거나 도서관에 찾아가 이 책을 읽으면서  

정신을 가다듬곤 한다. 그리고 그 때 내 마음을 울렸던 그 감동을 느끼기 위해서.....  

그리고 그 여운을 잊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인생에서 가장 무거운 짐을 짊어지다 
 

고등학생 때에는 좋은 대학이라는 목표를 위해서 입시 공부의 짐을 짊었다.  

대학생이 되어서 그 무거운 짐을 내려놓아서 홀가분하다 싶었더니 이번에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취업이라는 짐을 짊어지고 있다. 그나저나 이번 짐은 고등학생 때보다  

왜 이렇게 무겁게 느껴지는 걸까? 그 이유는 짐 속에는 ‘나의 미래’ 라는 중요한  

귀중품이 있기 때문이다. 행복한 나의 미래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만약 여기서  

지쳐서 포기하게 되면 앞날은 불투명해진다. 짐이 무거워서 내려놓는다. 지쳐서 방심한  

사이에 ‘미래’ 라는 귀중품이 든 짐을 분실할 수 있다. 미래를 위해서라면 힘들어도  

끝까지 부지런할 수밖에 없다. 미래가 들어있는 짐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다산이 말한 것처럼 마음이 다른 데로 달아가지 않게 꼭 붙들어 매야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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