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은 인간을 어떻게 진화시켰는가
애덤 윌킨스 지음, 김수민 옮김, 김준홍 감수 / 을유문화사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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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 같은 내 얼굴 예쁘기도 하지요. 눈도 반짝 코도 반짝 입도 반짝 반짝. 오이 같은 내 얼굴 길기도 하구나. 눈도 길쭉 귀도 길쭉 코도 길쭉길쭉. 호박 같은 내 얼굴 우습기도 하구나. 눈도 둥글 코도 둥글 입도 둥글둥글”

 

 

‘사과 같은 내 얼굴’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동요를 누구나 어릴 적 한 번 정도는 배워봤을 동요다. 사과 같은 얼굴은 앙증맞고 귀여운 아이들의 얼굴을 빗대어 표현한 것이다. 그런데 어릴 적에 동요를 듣고 있으면 정말 내 얼굴이 사과같이 예쁘긴 한지 생각한 적이 있었다. 얼굴 윤곽은 그 사람의 인상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다. 아름다운 얼굴에 대한 기준은 시대와 사회마다 다르지만, 호감 있는 얼굴은 얼굴 전체가 조화를 이루고 안정감을 준다. 우리는 스마트폰과 텔레비전을 보면서, 또 단순히 길을 걸을 때도 무심코 외모지상주의를 받아들이고 있다. 그 사람이 누구이든 무엇을 하든 어떻게 살아왔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단지 보이는 얼굴이 예쁘냐 아니냐에 초점이 있을 뿐이다. 외모가 사생활은 물론 취업이나 승진 등 인생의 성공까지도 좌우하게 된다고 믿는 사람들은 너도나도 다투어 외모 가꾸기에 나선다.

 

얼굴이 예쁘면 만사형통인가. 정말 얼굴은 꼭 필요한가. 인간에게 얼굴이 없다면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을까. 도대체 무슨 이유로 인간은 얼굴을 가지게 되었을까. 왜 얼굴에는 눈, 코, 입이 달려 있을까. 나는 얼굴이 있다는 사실을 당연하게 생각했지만, 얼굴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궁금하게 여긴 적이 없는 것 같다. 《인간을 어떻게 진화시켰는가》(을유문화사, 2018)는 이러한 궁금증을 해소한 책이다. 이 책은 얼굴의 해부학적 구조뿐만 아니라 얼굴이 탄생되는 진화 과정, 사회적 의미, 언어 능력 등 ‘얼굴이라는 세계’의 역사를 소개한다.

 

이 책을 쓴 저자는 진화생물학자이다. 저자는 ‘얼굴의 진화적 기원’을 설명하기 위해 생물학, 유전학, 뇌과학, 인류학 등 다양한 분야의 학문을 동원한다. 이 책에 다뤄진 내용이 너무나 다양하고 방대하다. 인내심을 가지고 읽어야 한다. 아니면 서론, ‘결론’에 해당하는 이 책의 각 장 끝부분 순으로 먼저 읽어도 좋다. 이 책에서 말하는 저자의 핵심 주장을 미리 파악하고 난 후에 얼굴과 관련된 지식을 총괄하여 정리한 ‘총론’에 해당하는 본문에 접근할 수 있다.

 

저자에 따르면 얼굴 진화의 핵심은 언어다. 언어는 인간에게 고유하다. 침팬지는 훈련을 통해 몇 개의 말을 배울 수 있지만, 얼굴 근육을 잘 움직일 수 없어 극히 제한된 단어만 발음할 수 있다. 얼굴 근육을 가진 인간은 언어를 통해 대량의 정보를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달할 수 있었다. 인간이 가진 얼굴 근육은 지구상의 어떤 동물보다 많다.

 

찰스 다윈은 표정이 진화의 산물이라고 했다. 다윈의 주장은 얼굴의 기원을 추적하기 위한 탐구의 시작점이다. 개가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리는 것은 막 공격을 하겠다는 신호다. 인간의 표정은 동물처럼 직접적인 표현이 아니라 상징적인 의사소통의 수단으로 사용된다. 진화는 인간이 표정을 통해 무언가 얻고자 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졌다.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누군가에겐 직접 그의 입을 통해 기분 상태를 듣지 않더라도 조심하게 된다. 멀리 맹수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순간 자신도 모르게 공포감을 느끼는 표정을 지음으로써 다른 사람의 도움을 불러올 수 있다. 얼굴은 인류 초기에 형성된 진화의 산물이다. 인간은 진화하는 과정에서 초기 인류의 조상에 가까운 유인원에 속하는 호미닌(hominin)과 다른 형태의 얼굴을 가지게 된다. 얼굴에 자란 털이 사라졌고, 주둥이는 짧아졌다. 인간의 얼굴은 손과 입을 이용하여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됐다. 얼굴 표정과 말하기 행위가 활발해지자 얼굴 근육을 움직이게 하는 뇌의 신경 회로와 언어를 생산하는 또 다른 신경 회로가 서로 연결되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얼굴이 완전히 발달하려면 그것을 촉진하는 화학적 물질이 필요하다. 신경능선세포에 의해 분비되는 섬유모세포성장인자8(FGF8)이 없으면 뇌가 만들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뇌가 발달하면 소닉 헤지호그(sonic hedgehog, SHH)라는 단백질이 분비된다. 이 물질은 얼굴의 형체를 결정할 뿐만 손가락과 발가락의 성장도 결정한다. 신경능선세포, FGF8, 그리고 SHH 이 세 가지 화학적 물질이 생소할 수 있지만, 알고 보면 인간의 생존에 직결된 신체 구조를 만들어내는, ‘절대로 없으면 안 될 존재’이다. 저자는 얼굴을 형성하는 유전적 기반을 설명하기 위해 타당성 있는 가설들을 제시하고, 비교 검토한다. 비록 확실한 결론을 내리지 않았으나 저자는 지금까지 나온 연구 결과들을 토대로 얼굴 발달에 관여하는 유전자가 최대 2만 개까지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 아마도 새로운 연구 결과들이 나온다면 책 속 저자의 견해는 수정될 것이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로 진화할 수 있었던 것은 얼굴의 진화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인간은 상대방의 얼굴을 인식하고, 상대방의 표정을 읽으며, 자신의 표정을 만들어 내고, 자신의 말을 전달한다. 손뼉이 마주쳐야 소리가 나듯이, 얼굴도 마주쳐야 말이 나온다.

 

 

얼굴을 인식하는 능력은 그 자체로 다가 아니라 흔히 사회적 상호작용의 서막을 여는 역할을 한다. 두 사람이 마주쳤을 때 서로를 인식한 후에 일반적으로 적절한 얼굴 표정을 지으며 짧은 말을 주고받는다. 사실상 대부분의 얼굴 표정은 사회적 상호작용에서 특히 대화를 나누는 도중에 만들어진다. (361쪽)

 

 

사람과 사람이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면서 대화를 나눈다는 것은 같은 공간에서 같은 시간을 공유하며 마음도 나누는 행위라는 의미가 있다. 1인 가구가 많아지면서 혼자 밥을 먹는 사람이 늘고 있다. TV나 스마트폰, 컴퓨터를 앞에 두고 김밥을 먹고, 햄버거를 먹고, 라면을 먹는 사람이 많다. 집 바로 옆에 사는 이웃인데도 얼굴만 몇 번 마주치고, 말 한마디 한 번도 나눠본 적이 없는 사이가 되기도 한다. 매일 말을 맞대고 얼굴을 마주 보고 살면서 느낄 수 있는 따뜻한 유대감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이러면 더 많은 소통을 가능케 하는 사회성이 결핍된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다. 사회적 상호작용을 불러일으키는 기능이 사라진 일부 얼굴은 퇴화의 조짐을 보인다. 사람보다는 스마트폰을 더 좋아하고, 이웃과 단절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이 시대 속에 얼굴은 본심을 위장하는 ‘가면’으로 남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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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renown 2018-05-01 1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름답다.잘생겼다. 라는 미의 기준이 언제부터 생겨나 오늘날 성형열풍으로
이어졌는지, 또 차별의 기준이 되었는지 궁금해지는군요.^^

cyrus 2018-05-01 18:45   좋아요 1 | URL
제가 서론을 책의 주제와 전혀 상관없는 내용으로 쓴 것 같군요. 사실 이 책에 ‘미의 기준’을 다룬 내용은 없어요. 미의 기준은 아주 오래된 시절부터 존재했죠. 움베르토 에코의 <미의 역사>를 보면 시대별로 나타난 미의 기준들을 살펴볼 수 있어요. ^^

stella.K 2018-05-01 1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사람이 사랑을 많이 받고 살았는가 아닌가가
얼굴에 나타나잖아. 밝기도 그렇지만 표정이 풍부하거든.
그게 얼굴 근육을 많이 써서라잖아.

딴 얘기지만 엊그제 머리 짜르러 미용실 갖는데
헤어 디자이너들은 머리 카락에서 그 사람의 나이를
알아 맞히지 않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나더군.ㅋ

cyrus 2018-05-01 21:39   좋아요 1 | URL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해서 친구 이외에 낯선 사람을 만나는 일이 없어요. 그래서 낯선 사람들과 대화를 하면 표정 관리를 못해요. 민망한 말을 듣거나 민망한 상황에 처하면 얼굴이 쉽게 붉어지고 그래요.. ㅎㅎㅎ

육안으로 머리카락을 보고 사람의 나이를 맞추는 건 불가능할 것 같아요. ^^;;
 
일곱 원소 이야기 - 주기율표의 마지막 빈칸을 둘러싼 인간의 과학사
에릭 셰리 지음, 김명남 옮김 / 궁리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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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화학의 발전은 주기율표의 등장으로부터 시작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원소에 대한 연구와 관심은 오래전부터 계속됐지만, 화학의 지식이 폭발할 수 있도록 한 원동력은 바로 멘델레예프의 주기율표 제작이었다. 지금의 주기율표를 완성하는 데 기여한 사람이 멘델레예프다. 주기율표는 ‘화학의 지도’이다. 이 믿음직한 지도를 가지고 있어야 화학의 세계를 여행할 수 있다. 주기율표는 원소를 성질의 대칭성에 따라 배열한 것이다. 그렇게 성질에 맞도록 배열하다 보면 빈칸이 생기고, 여기에 들어갈 원소를 과학자들이 찾아낸다. 멘델레예프는 주기율표를 만들면서 빈칸을 그냥 두었다. 다른 과학자들과 달리 그는 빈칸에 다른 원소를 억지로 채워 넣지 않았다. 대신에 빈칸에 채워지게 될 원소의 이름과 성질을 예측했다. 그의 예측은 정확했다.

 

주기율표는 이과 계열 학생들에게 암기의 고통을 안긴다. 그러나 주기율표 때문에 고통받는 과학자들도 있다. 《일곱 원소 이야기》 (궁리, 2018)주기율표의 빈 칸을 채우려고 했던 과학자들의 노력과 시련을 상세하게 기록한 책이다. 이 책에 나오는 일곱 원소는 프로트악티늄(Pa), 하프늄(Hf), 레늄(Re), 테크네튬(Tc), 프랑슘(Fr), 아스타틴(At), 프로메튬(Pm)이다. 이 일곱 원소는 멘델레예프가 남긴 빈칸을 차지하고 있다. ‘멘델레예프의 숙제’에 도전한 수많은 과학자들은 빈칸에 채워질 원소의 정체를 규명하기 위해 옥신각신했다. 미국의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먼“무언가를 발견하는 즐거움보다 더 큰 상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발견하는 즐거움’을 만끽하면서 과학을 갖고 놀았다. 그렇지만 일곱 원소를 발견하기 위해 뛰어든 과학자들은 ‘발견하는 즐거움’을 느낄 새가 없었다. 그들에게 주어진 멘델레예프의 숙제는 ‘발견하는 즐거움’보다 더 큰 상, 즉 ‘명예’를 건 숙명의 과제였다.

 

프로트악티늄은 발견되기 전까진 ‘우라늄에 든 미지의 물질 Urx’로 알려졌다. 독일의 화학자 리제 마이트너오토 한, 프리슈 슈트라스만 이 세 사람은 우라늄의 핵분열을 발견함으로써 원자폭탄 제조의 가능성을 열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오토 한은 국가의 부름을 받아 독가스 연구에 차출되었다. 실험실에 남게 된 마이트너는 혼자서 연구를 수행했고, 이 과정에서 프로트악티늄을 발견했다. 이 물질을 발견하기까지는 그녀는 엄청 고생했다. 마이트너는 한에게 보내는 편지에 연구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악티늄 실험에 쓸 백금 용기들을 주문했으니 며칠 안에는 받을 테고, 받자마자 시작할 겁니다. (…‥) 역청 실험이 지연된다는 데 화내지 마세요. 정말로 의지가 부족해서 그런 게 아니라 시간이 부족해서 그런 거니까요. 나 혼자서는 우리 셋이 함께 실험하던 때만큼 많은 일을 해낼 수가 없습니다. 어제는 고무관 3미터를 무려 22마르크나 주고 샀지 뭡니까! 청구서를 보고 꽤나 충격을 받았죠. (141쪽)

 

 

마이트너는 두 사람이 해야 할 연구까지 혼자서 진행했다. 그러나 독일에 나치 정권이 들어섰고, 유대인이었던 마이트너는 교수직을 박탈당한 채 스웨덴으로 도피했다. 마이트너와 한은 서로 떨어져 지내면서도 계속해서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핵분열 연구를 이어나갔다. 하지만 마이트너는 자신의 업적이 오토 한에게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봐야만 했다. 한은 핵분열 발견의 공로로 1944년엔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마이트너가 세상을 떠난 후 1992년에 109번 원소가 발견되었고, 새로운 원소는 그녀의 이름을 따 ‘마이트너륨(Mt)’으로 명명되었다. 사후에 그녀의 업적이 재조명되었으나 지금도 여전히 프로트악티늄을 발견한 공로는 오토 한으로 알려져 있다. 이 책은 프로트악티늄의 정체를 밝히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마이트너의 외로운 노력을 부각한다.

 

하프늄을 먼저 발견한 공로를 차지하기 위해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독일의 과학자들은 ‘총성 없는 전쟁’을 치러야 했다. 하프늄을 발견한 디르코 코스터죄르지 헤베시는 독일의 화학자 닐스 보어가 소장으로 몸담은 덴마크 코펜하겐 연구소 소속 학자였다. 하프늄은 72번 원소인데 코스터와 헤베시가 하프늄을 발견하기 전에 이미 프랑스 학자 팀이 72번 원소는 ‘셀튬’이라고 발표했다. 코스터와 헤베시는 프랑스 학자 팀의 주장을 반박하는 논문을 발표했는데 여기서부터 ‘전쟁’이 시작되었다. 공교롭게도 이 시기는 제1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였다. 총성은 멈췄으나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유럽 국가 간의 앙금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랑스와 영국은 연합국을 형성하여 독일과 맞붙었다. 연합국의 과학자들은 전쟁 중립국인 덴마크를 독일과 같은 편으로 여겼고, 코스터와 헤베시의 논문을 재반박했다. 이 ‘진흙탕 싸움’에 그 당시 물리학과 화학을 대표하는 러더퍼드와 보어까지 휘말렸다.

 

 

새 원소를 둘러싼 끔찍한 진흙탕 싸움이 싫습니다. 죄 없는 우리까지 말려들고 말았지요. (보어가 러더퍼드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171쪽)

 

 

하프늄이 정식으로 인정받기 전까지 영국의 <런던 타임스>는 자기 나라 출신 과학자가 72번 원소를 발견했다면서 자화자찬하는 사설을 싣기도 했다. 국수주의에 취한 영국은 웃지 못할 ‘흑역사’를 남겼다.

 

《일곱 원소 이야기》는 원소를 둘러싼 과학자들의 치열한 경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과학, 아니 인간적으로 말하자면 과학 업적에 대한 관심이 뜨거우면 과학자들은 국수주의에 빠지게 된다. 이런 정치적 접근은 오히려 과학 연구의 진전과 과학 발전을 가로막는다. 과학자로서의 국수주의적 시각은 연구 자료를 오독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하프늄의 발견 사례처럼 ‘국가 싸움에 학자 머리 터지는’ 상황도 발생할 수 있다. 《일곱 원소 이야기》를 다 읽고 나서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다. 주기율표는 누구를 위한 것일까. 주기율표를 외워야 하는 학생? 아니면 주기율표의 빈칸만 보면 참을 수 없는 과학자들? 지금도 주기율표는 학생과 학자들을 괴롭히고 있다. '화학의 지도'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당분간 학생과 학자들은 주기율표를 만나면 학을 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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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26 17: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4-29 23:34   좋아요 0 | URL
고등학생 시절에 정기(중간, 기말)고사 화학 시험을 친 적이 있어요. 시험 범위에 주기율표가 포함되어 있었어요. 화학 시험치기 전에 진짜 열심히 외운 게 주기율표였어요.. ㅎㅎㅎ
 
의식의 강
올리버 색스 지음, 양병찬 옮김 / 알마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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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태어나면서부터 세상의 이치를 아는 사람이 아니라, 옛것을 좋아하고 부지런히 아는 것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我非生而知之者, 好古, 敏以求之者也) [1]

 

 

공자《논어》 술이(述而) 편에서 자기 자신을 평한 말이다. 학문이란 배우고 실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옛것을 자기 것으로 소화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기 위해 사색을 많이 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무엇을 하지 않기 위해서 어떤 일을 하는 것보다 무언가를 간절하게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야말로 성공할 가능성도 높고 훨씬 즐겁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글을 쓰기 시작하는 단계에서 흥미와 열정을 쏟지 않는다면 좋은 글이 나오기 힘들다. 그러나 흥미를 갖고 글을 쓰기 시작한다면 전혀 다른 의미가 된다. 마음에서 우러나 그 무언가에 이끌려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빌 헤이스 올리버 색스가 삶을 마감하기 전까지 함께 했던 동성 연인이다(색스는 동성애자다). 빌 헤이스는 그 어느 때보다 자신의 인생을 마무리하는 글쓰기에 집중한 연인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2015년 8월, 어쩌면 그는 곧 죽을 수도 있었다. 나는 그날을 아주 생생하게 기억한다. 올리버는 갑자기 원기를 회복했다. 책상에 앉아 마지막 저서가 될 책의 목차를 불러줬다. 그 일은 ‘죽어간다는 것’의 ‘끔찍한 지루함’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반가운 기분전환거리였기 때문이리라. 올리버에게 지루함이란 그가 그동안 견뎌온 불편함보다 더 나쁜 것이었다. [2]

 

 

죽는 순간에 유난히 고운 소리로 운다는 백조. 색스의 마지막 책 《의식의 강》(알마, 2018)은 바로 그 아름다운 백조의 노래를 닮았다. 이 책은 색스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 언론에 발표한 열 편의 에세이를 선별하여 묶은 것이다. 색스는 자신에게 남겨진 길지 않은 삶을 가장 즐겁게 살기 위해 글로 자신의 인생을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의 글쓰기는 흥미와 열정을 동반한 행위이다. 세상과 관계를 청산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 시간에는 약간의 재미를 위한 시간도 있을 것이다.

 

색스의 글은 과학 에세이면서도 독자들에게 각별한 감동을 준다. 늘 주변에서 일어난 일들을 바탕으로 어려운 과학 이야기를 쉽고 흥미롭게 풀어낸다. 《의식의 강》에서는 인간과 과학의 한계를 절감하면서 자연과 생명에 경외와 찬미를 바친 색스의 생전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진화, 시간, 의식, 인간의 한계 등 심오한 주제를 응시하는 저자의 고독한 성찰은 ‘딱딱한 과학’을 ‘부드러운 문학’으로 바꾸어놓았다(그런데 이 책의 번역에 문제가 많다고 한다. 간혹 매끄럽게 읽혀지지 않은 문장들이 보인다).

 

『의식의 강』은 ‘인간’을 만든 ‘의식’이 과연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인간만이 시간에 대한 의식을 가지고 있다. 인간은 현재에 몰두하기보다는 보통 이미 흘러가 버린 과거에 연연한다. 그리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공포에 사로잡히며 언젠가 닥쳐올 죽음 앞에서 불안해한다. 따라서 인간은 현재의 순간순간이 제공하는 삶의 풍요를 그냥 놓치고 만다. 색스가 『의식의 강』 도입부에 언급한 보르헤스의 말에 의하면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시간 의식’이라는 강에 몸을 맡기면서 살아가는 ‘시간적 존재’이다. 고독을 느끼는 외로운 인간이나 죽음 앞에 한없이 무력감을 느끼는 인간은 혼자, 따로, 분절되어 살면서 ‘잉여롭게’ 의식을 흘려보내면서 산다. 그러나 인간은 개인의 의식을 주체적으로 활용하여 사상, 믿음, 관습이라는 보이지 않는 세계를 창조할 수 있다. 따라서 인간이 의식을 어떻게 능동적으로 선택하느냐에 따라 삶의 방향은 달라진다.

 

죽은 영혼은 ‘망각의 강’ 레테(Lethe)의 물을 마시며 이전 삶을 잊어버리게 된다. 망각은 죽음과 연결되며, 기억은 삶과 동의어인 셈이다. 사실 인간은 기억함으로써 생존에 필요한 정보를 축적하고, 시행착오를 줄이고, 해야 할 일을 해낸다. 색스는 인간이란 ‘뇌 마음대로’가 아닌 ‘내 마음대로’ 기억하는 오류투성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기억을 때로 망각의 강에 흘러 보내는 것도 창의적인 기술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인간의 기억은 오류를 범할 수 있고 취약하며 불완전하지만, 굉장히 유연하고 창의적이다. 우리의 뇌는 ‘우리가 읽고 들은 것’과 ‘타인들이 말하고 생각하고 쓰고 그린 것’을 통합하여, 마치 1차기억인 것처럼 강렬하고 풍부하게 만든다. 덕분에 우리는 타인의 눈과 귀로 보고 들을 수 있고, 타인의 마음속에 들어갈 수도 있으며, 예술, 과학, 종교가 포함된 문화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3]

 

 

유머는 단순한 웃음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거기에는 웃음의 대상에게 보내는 연민과 동정이 함께 들어 있다. 삶에 대한 애착과 반복되는 자기기만, 한 순간의 짧은 성찰 등이 뒤섞여 불안하고 부조리한 것이 인간의 천성이다. 그러나 건강한 유머에는 그것마저 여유롭게 관조하는 힘이 있다. 《의식의 강》 곳곳에는 건강한 유머가 배어 있다. 특히 『잘못 듣기』라는 글 후반부에 자신의 잘못 듣는 행위를 즐기는 색스의 긍정적인 태도가 눈길을 끈다. 저자의 낙관적인 모습은 좀 더 활기찬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마음의 근육을 튼튼하게 해주는 힘이 된다. 바로 그 유머 때문에 《의식의 강》은 독자에게도 낙관의 힘을 보태주고 있다.

 

 

 

 

 

[1] 김원중 역, 180쪽, 《논어》(휴머니스트, 2017)

[2] 《의식의 강》 뒤표지

[3] 『오류를 범하기 쉬운 기억』, 1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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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팬지 폴리틱스 - 권력 투쟁의 동물적 기원
프란스 드 발 지음, 장대익.황상익 옮김 / 바다출판사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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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서핑 중에 우연히 건진 짤막한 외국 유머를 소개해본다. 목사의 아내가 진화론을 듣고는 남편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여보! 우리 조상이 원숭이래요! 그게 사실이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그게 정말로 사실이라면 세상에 널리 알려지지 않기를 기도해요.”[1]

 

인류 지성사에서 진화론만큼이나 엄청난 오해와 비난을 받은 이론이 또 있을까 싶다. 찰스 다윈《종의 기원》이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 사람들은 “원숭이가 우리 조상님이냐!”며 분노를 드러냈다. 신이 세상 만물을 만들었다고 믿고 있던 창조론자들은 충격과 당혹감에 빠졌다. 그러나 진화론은 원숭이가 진화해서 인류가 되었다고 주장하는 이론이 아니다. 인간과 원숭이가 먼 옛날 공통조상으로부터 분화되어 서로 다른 진화의 길을 걷게 된 과정을 설명하는 이론이다.

 

철학자가 아니더라도 인간이라면 반드시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궁극적 질문에 봉착한다. 진부하면서도 심오한 질문이다. 이 질문에 답변한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이 무엇인지 똑 부러지게 설명하는 고전적 정의를 내린다. “인간은 정치적 동물(zōion politikon)이다.” 이 말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보편성을 가진 명제이다. 사람은 끼리끼리 모이는 성향이 있다. 이처럼 정치도 뜻이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정당을 만들어 정책을 추진한다. 정책을 추진하기 위한 당파들이 형성되면 서로 반목하여 당쟁이 일어난다. 시민과 정치인들은 특정 당파의 독재를 막기 위해 견제한다.

 

인면수심. 여기서 말하는 ‘수심(獸心)’은 짐승, 즉 동물의 마음이다. 못된 사람을 비난할 때 “짐승 같은 놈”이라고 욕하는 데서 잘 드러나듯이 동서양의 많은 사상은 인간과 동물의 본질적 차이만을 강조해 왔다. 예를 들어 레비스트로스는 ‘근친상간에서 벗어나면서 인간은 자연에서 문화로, 동물에서 인간으로 진보했다’고 주장했다. 문화는 인간이 동물과 구별되는 특징적인 생활양식이다.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 슬기로운 사람)’라고 자처하는 인간은 문화야말로 인간이 동물보다 한 단계 높은 곳에 있는 증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원숭이 무리가 고도의 정치행위를 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1982년에 나온 《침팬지 폴리틱스》(바다출판사, 2017)는 자부심이 강한 ‘호모 사피엔스’들을 난처하게 만든다. 이 책을 쓴 프란스 드 발은 1970년대 중반부터 네덜란드 아른험 동물원에 근무하면서 침팬지 사육장을 관찰했다. 침팬지 무리의 최고 자리를 놓고 벌어졌던 처절한 권력투쟁을 마치 한 편의 드라마처럼 세밀하게 보여주면서 침팬지도 ‘정치적 동물’이 될 수 있다고 역설한다.

 

침팬지 두 마리가 서로 싸우고 있을 때, 전세가 불리해진 침팬지는 제3의 침팬지를 향해 손을 내민다. 그러면 제3의 침팬지는 자신에게 손을 내민 침팬지의 편을 들어주면서 싸움에 가담한다. 침팬지 사회의 ‘연합’은 권력과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형성되며 무리는 두 개의 연합체로 나뉜다. 침팬지가 제3의 침팬지에게 손을 내밀면서 동료를 확보하는 과정은 악수하는 인간의 모습과 유사하다. ‘내 손에 무기가 없으니 싸우지 말자’에서 시작한 게 악수다. 악수는 상대방에 접근하여 싸울 의사가 없음을 드러내는 몸짓이다. 침팬지와 인간은 손으로 직접 접촉하는 행위를 통해 “나는 당신의 적이 아니다”라는 믿음을 상기시킨다. 침팬지는 자신과 싸운 동료와 화해할 줄 안다. 침팬지들은 싸움이 끝난 뒤 서로 껴안거나 털을 골라준다. 심지어 소리 내면서까지 키스를 한다. 크게 한 번 싸우고 나면 일체 대화조차 하지 않으려는 인간의 반응과 대조적이다.

 

저자는 침팬지 사회를 ‘정치’라는 틀로 설명하면서 정치의 기원이 인류의 역사보다 훨씬 일찍 형성되었다고 주장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암수 침팬지들의 행동 양식을 살펴보면 인간사회와 똑같이 펼쳐지는 권력 투쟁을 확인할 수 있다. 침팬지와 인간은 공통으로 ‘목적성을 가지고 생각(think purposefully)’하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침팬지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개인 또는 공공의 이익을 누리려는 강한 욕구를 가지고 있다. 다만 침팬지는 욕구를 노골적으로 드러내지만, 인간은 욕구를 노출하지 않으려고 애쓴다. 선거철만 되면 자신의 밥그릇을 숨긴 채 국민을 위해 봉사하겠다고 입만 털다가 국회의원 배지 달자마자 제 밥그릇 챙기기 여념 없는 정치인들은 후자에 속한다. 그렇다면 겉과 속이 다른 정치인은 침팬지와 인간의 중간 단계에 속하는 존재인가?

 

이 책에 읽을 때 짚고 넘어가야 할 내용이 있다. 저자는 수컷 침팬지 이에룬이 일인자였을 때 암컷 침팬지들과의 교미를 독점하는 모습을 ‘초야권’에 비유했다(246쪽). 서구 중세 시대부터 유래한 것으로 전해지는 초야권은 농노 처녀가 결혼 전날 영주와 먼저 잠자리를 해야 하는 풍습이다. 그동안 초야권은 권력형 성 착취의 전형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초야권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악습으로 판명이 났다. ‘초야권’을 언급한 문장에 대한 저자의 주에 따르면 초야권이 ‘영주가 신부의 침대에 발을 들여놓거나 침대 위에 올라가 신부 위를 지나가는 식의 상징적인 의미로만 사용’(331~332쪽)되었다고 나와 있다. 그런데 이런 설명은 “성 착취에 가까운 초야권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풍습”이라고 명시한다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미흡하다. 이럴 때 미흡한 설명을 보완하는 역주가 있어야 했다.

 

《침팬지 폴리틱스》는 침팬지들의 흥미로운 사례를 통해 독자들의 머릿속에 “인간도 동물”이라는 명제를 효과적으로 각인시켜준다.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답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은 정확했다. 그래도 인간과 똑같이 ‘정치하는 원숭이들’의 이야기를 선뜻 받아들이지 못한 사람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아마도 이 사람들도 유머에 나오는 목사의 아내처럼 ‘정치하는 원숭이’ 이야기가 세상에 널리 알려지지 않기를 바라고 있을지도 모른다.

 

 

 

 

[1] 원문 :

  The wife of a preacher, told years ago of Darwin’s theory of evolution, is reported to have exclaimed :

“Descended from the apes! My dear, we hope it is not true. But if it is, let us pray that it may not become generally known.” (출처 : [해외 유머-인류의 조상] 한국경제, 2001년 1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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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과학은 어렵습니다만 - 털보 과학관장이 들려주는 세상물정의 과학 저도 과학은 어렵습니다만 1
이정모 지음 / 바틀비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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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라면 누구나 과학으로 이 세상을 지배하는 자연의 힘을 알리고 싶은 욕망이 있을 것이다. 그러려면 대중이 과학을 이해해야 한다. 누군가 대중에게 과학의 가치를 이해시켜야 한다. ‘과학을 들려주는(보여주는) 과학자’는 단지 지식을 전달하고 생각을 표현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대중의 공감을 얻고 소통하여 원하는 바를 이루어내야 한다. 어려운 과학을 쉽게 설명해보자는 시도는 오래됐다. 그러나 과학을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은 달라지지 않았다. 과학 초심자를 위한 기본적인 책이 많은데도 대부분 사람은 과학을 어렵다고 여기고 기피한다. 사람들이 과학책을 안 읽는 것일까, 아니면 과학 초심자를 위한 책이 어려운 것일까?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 관장은 칼 세이건의 말을 빌리면서 “과학은 지식의 집합이 아니라, 생각하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너무 쉬운 과학’은 단순 암기 지식으로 변질된다. 과학을 공부해서 ‘생각’한다면 급변하는 시대 속에 전략적으로 사고하는 능력이 생긴다. ‘너무 쉬운 과학’은 재미가 없다. ‘너무 쉬운 과학’은 누군가를 가르칠 때 사용하는 지식이다. 누군가의 가르침으로 받은 지식은 머릿속에 남지 못한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지식을 가르치기보다는 상대에게 실마리를 주고 스스로 지식을 찾아내도록 전한 것으로 유명하다. 소크라테스식 공부법으로 지식을 습득하려면 반드시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너 자신을 알라”이다. 델포이 신전에 새겨진 이 글귀는 아무것도 모르는 자신의 수준을 똑바로 알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수준을 알았을 때, 비로소 겸손함을 배우고 진리를 사랑하게 되며 이러한 진리를 배우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게 된다.

 

이정모 관장이 강조하는 과학 공부는 소크라테스식 공부법과 통한다. 이정모 관장은 과학이 ‘실패하는 학문’이라고 말한다. 과학자인 본인도 과학은 잘 모른다고 말한다. 그는 과학을 공부하면서 겪는 실패와 좌절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겸손한 태도를 갖춘 사람은 진리를 사랑한다. 기꺼이 배울 마음을 가지면 지식은 저절로 따라오게 된다. 자신의 부족함을 알면 겸손해진다. 그래야 지식을 배울 마음을 갖게 된다. 과학은 이렇게 공부해야 한다. 그러고 보니 소크라테스와 이정모 관장 이 두 사람에게 공통점이 하나 더 있다. ‘수염’이다. 수염 없는 소크라테스와 이정모 관장의 모습은 상상할 수가 없다.

 

이정모 관장의 신작 《저도 과학은 어렵습니다만》(바틀비, 2018)은 살면서 알아두면 좋은 과학 상식만 들려주는 책이 아니다. 저자는 그냥 암기하고 지나치기 쉬운 과학 상식을 우리 일상과 세상과 엮어가면서 생각 거리를 준다. 우리는 왜 감자와 가지를 먹어야 하는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인데 우리는 감자와 가지를 먹는 이유를 모른다. 단지 배를 채우기 위해서 감자와 가지를 먹는 건 아닐 거다. 모든 식물은 광합성 작용을 한다. 식물은 태양이 주는 빛을 흡수해 광합성을 하고 열매를 맺는다. 태양에너지를 이용해서 광합성을 하는 식물은 지구 생태계를 지탱하는 기반이다. 인간과 동물은 식물을 먹어서 그 에너지의 일부를 사용하는 생명체이다. 광합성 원리를 이해한다면 감자와 가지를 먹는 이유를 알 수 있다. 이정모 관장의 표현을 빌리자면 우리는 감자와 가지를 먹고 있는 게 아니라 ‘햇빛을 먹고 있는 것’이다. 편식하는 아이들을 달래는 것은 부모와 아이 모두를 고통스럽게 만든다. 아이들은 특히 ‘채소’ 먹기를 아예 거부해 부모의 애가 타도록 만드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때 부모는 자신이 먼저 채소를 즐겨 먹는 모습을 보여주고, 아이들이 채소도 맛이 있다는 사실을 알도록 해주면 좋습니다. 아이들에게 채소를 먹일 때 ‘몸에 좋고 맛도 좋은 햇빛’을 먹고 있다고 알려주면 어떨까.

 

이 세상에 지적인 과학자들이 많은데 간혹 합리적이지 않은 모습을 보일 때가 있다. 특히 어떤 과학자들은 자신의 실패를 받아들이지 못해 실험 데이터를 조작하거나 학술논문을 표절하는 일을 저지른다. 앞서 말했듯이 과학은 ‘실패하는 학문’이며 과학자나 과학을 공부하는 사람은 과학이 주는 실패를 경험해야 한다. 그래서 이정모 관장은 과학관이 ‘과학을 보는 곳’이 아니라 ‘과학을 경험하는 곳’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경험’에 당연히 ‘실패’도 포함된다. 손으로 과학을 만져보는 경험은 인생에서 가장 특별한 순간으로 기억될 수 있다. 직접 과학 실험을 하면서 실패한 결과를 얻는 것도 마찬가지다. 실패에 익숙해져야 과학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되고, ‘훌륭한 과학자’로 성장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실패를 자랑스럽게 전시하는 과학관이 많아져야 한다. 그러면 과학에 대한 대중의 인식은 달라질 것이다. 과학은 무모하다. 그런 ‘무모한 도전’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과학이 최고 수준에 도달할 수 있었다. 과학자들이 생소한 분야의 연구에 매진할 수 있도록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회적 풍토가 조성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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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8-03-26 13: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과학은 생각하는 방법이라는 표현이 가장
와 닿네요.

예전에 한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황씨
사건의 폐해 그리고 오로지 성공지상주의
에 매몰된 사회에서 실패를 인정하는 일은
여전히 요원해 보이기만 합니다.

cyrus 2018-03-26 16:46   좋아요 0 | URL
정부가 적극적으로 과학 연구에 투자를 하더라도 ‘실패하는 과학‘이라는 인식이 형성되지 않은 이상 도전의식이 넘치고 정직한 과학자들을 육성할 수 없어요.

2018-03-26 13: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3-26 16:48   좋아요 1 | URL
‘비뚤어진 생각을 한 사람‘이 ‘생각하지 않는 사람‘보다 해악이 많고, 위험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