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이 만든 가장 완벽한 도형, 나선
외위빈 함메르 지음, 박유진 옮김 / 컬처룩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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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 것만으로도 소름 끼치는 만화가 있다. 이토 준지(伊藤潤二)《소용돌이》는 기괴한 이미지와 상상력이 돋보이는 공포만화이다. 쿠로우즈라는 작은 마을에 사는 소녀 키리에는 남자친구인 슈이치로부터 “아버지가 이상하다”는 말을 듣는다. 슈이치의 아버지는 소용돌이 모양에 집착하고, 그 후 마을에서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사람들이 소용돌이와 나선 모양에 광적으로 집착하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마을 전체가 거대한 소용돌이 모양으로 변해버린다. 이 만화에서는 손가락 끝의 지문, 귓속 달팽이관, 하늘로 오르는 연기까지 황당할 만큼 온갖 군데서 소용돌이가 발견된다. 이토 준지는 우리 삶에 흔히 찾을 수 있지만 의식하지 못하던 그 단순한 형태를 공포의 소재로 삼았다.

 

슈이치의 아버지는 소용돌이의 매력에 빠져 결국 자기 자신이 소용돌이가 돼 죽는다. 슈이치의 아버지처럼 다양한 자연현상에서 나선을 찾는 데 열을 올리고 있는 과학자가 있다. 노르웨이의 고생물학자 외위빈 함메르(Øyvind Hammer)는 나선형 화석을 연구하다 나선의 매력에 푹 빠진 ‘나선 마니아’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여기저기서 나선형이 보이고, 그것에 대해 남들에게 얘기하지 않으면 참지 못하는 증상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리하여 이 노르웨이의 나선 마니아는 거대한 세상이 품고 있는 크고 작은 나선의 실체와 그 신비스러운 매력을 알리기 위해 책 한 권을 쓰게 됐다.

 

아주 오랜 옛날에 슈이치의 아버지와 같은 과학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자연계 속에 있는 나선이 세상의 질서일지도 모른다고 인식했다. 기원전 3세기 고대 그리스에 활동한 수학자 아르키메데스(Archimedes)는 나선을 수학적으로 정의한 논문을 썼다. 그의 이름이 붙여진 ‘아르키메데스 나선’은 일생 생활 속에서 친숙하게 볼 수 있는 나선의 기본 형태이다. 아르키메데스는 이 나선에 영감을 얻어 펌프를 고안했다. 그의 어이없는 죽음은 너무나도 유명하다. 아르키메데스는 시라쿠사가 로마에 함락된 것도 모르고 땅에 원을 그리며 연구에 몰두하고 있었다. 로마 병사가 자신의 집에 침입하자 화가 난 아르키메데스는 병사에게 “내가 그린 원을 밟지 마라!”라고 외쳤다. 물론, 병사는 칼로 그를 내리쳤다. 만약 아르키메데스가 ‘나선 마니아’였다면, 그가 죽기 전에 땅에 그렸던 것은 원이 아니라 나선이었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나선도 ‘완벽한 도형’이기 때문이다.

 

 

 

 

 

 

함메르는 나선처럼 아름답고, 영원한 느낌을 강렬하게 불러일으키는 도형은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가 쓴 책 제목은 《자연이 만든 가장 완벽한 도형, 나선》이다. 얼핏 보기에 나선은 완벽하지 않은 도형인 것 같지만, 인류는 나선 안에 일정한 규칙이 숨어 있으며 그 규칙을 찾아낼 수 있다고 믿었다.

 

 

 

 

 

 

 

실제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는 자연계 속에 있는 나선을 찾아낼 수만 있다면, 자연현상의 원리를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물이 흐르면서 생기는 소용돌이를 예리하게 관찰하여 자신의 노트에 스케치로 남겼다. 그는 나선이 마음에 들었는지 다양한 형태의 나선을 그림에 그려 넣었다.

 

이 책에 나선과 관련된 수학 공식이나 수학적인 내용이 나오긴 하지만, ‘고생물학자가 쓴 수학책’은 절대로 아니다. 저자는 우리를 포위하고 있는 수많은 나선을 소개하고 있을 뿐이다. 이 책을 보고 있으면 하루에 수십 개 정도의 나선을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선 형태만 보고도 ‘아르키메데스 나선’과 ‘로그 나선’를 구별할 수 있다. 당신이 어느 날인가부터 나선과 소용돌이 형태에 의식하기 시작했다면, ‘나선에 대한 광기’에 전염됐다고 봐야 한다. 독자는 이 책을 다 읽고 나서야 저자의 ‘음흉한 계획’을 알아차린다. 노르웨이의 나선 마니아는 자신의 증상을 전염시키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한다. 그는 책 머리말에서 이미 독자들에게 경고했다. 감수성이 예민한 분은 이 책을 읽지 않는 편이 좋을 것이라고. 그렇다면, 이 책의 정체는 무엇일까? 수학책인가 아니면 생물학책인가? 그것도 아니면 나선에 대한 광기를 전염시키는 마도서(魔導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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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믹 커넥션 - 우주에서 본 우리 사이언스 클래식 35
칼 세이건.제롬 에이절 기획, 김지선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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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어디에 있는 거지?”

 

 

외계 생명체의 존재 여부를 논할 때 자주 거론되는 말이다. 우주 어딘가에 우리와 같은 지적 생명체가 존재할까. 물리학자 엔리코 페르미(Enrico Fermi)는 이 문제를 토론하던 중 느닷없이 이런 질문을 던졌다. “외계인이 존재한다면 그들 모두 어디에 있는 거지?” 페르미가 방정식 계산을 해보니 우주에는 무려 100만 개의 문명이 존재해야 한다는 가설이 도출되었다. 그렇다면 이렇게 많은 외계 문명이 있다면 왜 아직 외계 생명체가 인류 앞에 나타나지 않은 걸까. 지금껏 외계 문명의 신호가 수신된 적은 없다. 페르미의 의미심장한 질문은 이론상으론 외계 문명이 존재하지만, 실제론 볼 수 없다는 ‘페르미의 역설’로 알려졌다.

 

만약 외계 생명체들이 태양계에 근접해 지구를 바라본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때에도 우리가 믿는 것처럼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며, 유일한 생명체가 사는 축복받은 별일까. 그들이 아무 생각 없이 바라본다면 지구는 작고 보잘것없는 변방 행성에 불과할 것이다. 우리는 끝없이 넓은 우주의 한편에 놓인 창백한 점에 불과한 지구라는 별에 사는 존재일 뿐이다. 천문학자 칼 세이건(Carl Sagan)은 우주에 티끌처럼 외롭게 떠 있는 지구를 ‘창백한 푸른 점’이라고 명명했다. 공허하며 침묵만 감도는 우주. 외계 생명체에 대한 그의 열정은 대단했다. 그는 외계 지적 생명체 탐사 프로젝트(SETI)를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1972년 세계 최초의 목성 탐사선 파이오니어 10호(Pioneer 10)를 발사했을 때 세이건이 한 일은 인간(남성과 여성)의 모습과 태양계 속 지구의 위치 등이 그려진 명판을 싣는 것이었다. 이 명판에 새겨진 메시지는 외계 생명체에게 보내는 지구인의 자기소개서다. 이후 세이건은 TV 시리즈 <코스모스(Cosmos)>로 ‘대중 과학자’로 자리매김했다. 천문학을 쉽고 감동적인 언어로 설명한 <코스모스>는 과학의 문외한들을 지구 밖으로 초대했다. 그만큼 과학의 경이와 신비를 일반 대중에게 널리 퍼뜨린 사람은 없었다.

 

사실, 세이건은 <코스모스>에 출연하기 전부터 이미 스타였다. 파이오니어 10호가 목성을 향해 탐사 궤도에 오른 뒤 이듬해 세이건이 쓴 《코스믹 커넥션(The Cosmic Connection)은 출간 첫해에만 50만 부가 팔렸다. 《코스믹 커넥션》은 TV 시리즈 <코스모스>의 프로토타입(Prototype, 초기형)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에서도 《코스모스》에서 볼 수 있는, 섬세하고 감성적이면서 정곡을 찌르는 세이건의 문체가 흐르고 있다. 출간된 지 40여 년이 지났고, 그사이 수많은 과학의 진전이 있었지만 《코스믹 커넥션》의 매력은 여전히 빛을 발한다. 대중적이면서도 문학적인 세이건의 문체는 온갖 과학 지식과 소소한 경험을 종횡으로 엮어 우주라는 거대한 주제를 명쾌하면서도 알기 쉽게 독자들에게 전달해주고 있다.

 

책은 1970년대 당시로써는 획기적인 성과였던 파이어오니 호와 매리너(Mariner) 우주 탐사 계획을 바탕으로 화성, 금성의 실체를 소개한다. 그밖에도 우주를 떠돌던 먼지가 의식 있는 생명이 되는 과정, 외계 생명체의 존재 문제 등 우주에 대해 인류가 알게 된 것들, 알게 된 과정들, 그리고 알아야 할 것들을 흥미진진하게 펼쳐 보인다. 책을 관통하는 것은 ‘우주의 위치에서 바라본 인간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다. 7년 뒤에 나올 《코스모스》가 이 질문의 연장선이라 볼 수 있다. 인간은 우주 일부이다. 그러므로 우주와 인간은 근본적으로 연결돼 있다. 인간은 가늠할 길 없는 우주라는 무한 공간의 부속일 수밖에 없으며, 그래서 유독 우주에 대해 알려고 한다. 우주를 알아가는 것은 인류 필연의 과정이자 필수적인 일이다. 이 과정을 통해 세이건은 인류가 무한한 우주 속에서 그만큼 나약한 존재임을 상기시켜주는 동시에 겸손함을 일깨운다.

 

 

 우리의 지구 중심주의에는 일상적인 편리함이 있다. 우리는 여전히 지구가 돈다기보다는 태양이 뜨고 진다는 식으로 이야기한다. 우리는 여전히 우주가 우리의 편의를 위해 돌아가고 있다고, 그리고 우리만이 살고 있다는 식으로 생각한다. 우주 탐사는 약간의 겸손함도 가져다주리라. (pp. 136)

 

 

지구 중심주의에 벗어나 우리의 위치를 우주에 이동시켜 ‘나’를 포함한 전 인류를 내려다본다면 인간의 존재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책에는 우주에 다른 생명이 있을 것을 확신하는 그의 마음이 절절하게 녹아있다. 그는 금성을 지구화하는 일이 가능하다고 낙관적으로 전망했으며 은하 어딘가에 있을 선진 외계 문명은 블랙홀을 이용해 우주를 이동할 것이라고 상상했다. 과거에 있을 법한 상상이 이렇게 재미있게 읽힐 수가 있다는 것을 느끼는 것이, 또한 이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즐거움의 하나이다. 비과학적인 가설과 상상은 그냥 웃어넘기자. 세이건은 누구보다 외계 생명체의 흔적을 열심히 좇았으면서도 늘 회의주의적 칼날은 놓지 않았다. 그는 점성술을 비판했고, 고대 인류에게 문명을 안겨준 외계 생명체가 존재했다는 주장(초 고대 문명설)을 부정했다.

 

《코스믹 커넥션》은 외계 생명체에 대한 탐사 프로그램의 의미를 다시 차분히 인식하게 되면서 동시에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수필 같은 책이다. 그의 명쾌한 논리, 그리고 그것에 덧붙여 그의 글을 읽는 이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만드는 그의 진솔하고, 인간적인 면모가 이 책의 재미를 배가시킨다. 이 책을 딱딱한 과학책의 범위를 벗어나게 만드는 것은 바로 우주를 사랑하는 수필가다운 면모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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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17 19: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9-18 12:17   좋아요 0 | URL
우주에 생명체가 존재한다면, 인간의 모습은 아닐 겁니다.

transient-guest 2018-09-18 0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외계인의 진위여부는 모르겠지만 UFO의 존재는 확실하게 믿습니다. 이런 종류의 책을 읽으면 갑자가 지구 위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보다 더 크고 멋진 것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ㅎ

cyrus 2018-09-18 12:24   좋아요 0 | URL
저는 UFO를 비과학적인 현상으로 봅니다만, UFO에 대한 대중의 폭발적 관심 덕분에 우주를 알고 싶어 하는 호기심이 자연스럽게 늘어났다고 생각합니다. 우주를 연구하는 천문학자들은 아마도 어렸을 때 t-guest님처럼 그런 생각을 했었을 겁니다. 그래서 천문학자가 될 수 있었던 거죠. ^^

페크(pek0501) 2018-09-20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래에는 우주 여행뿐만 아니라 어느 별에서 살 것인가를 스스로 선택해서 사는 세상도 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 지구에서 살 것인가, 아니면 다른 곳에서 살 것인가를...

cyrus 2018-09-21 18:32   좋아요 0 | URL
다른 행성에서 오래 살면 지구의 생활이 그리워질 수 있겠어요. 그런데 그때도 지구는 살기 좋은 행성으로 남아 있을까요? ^^;;
 
천 개의 태양보다 밝은 - 우리가 몰랐던 원자과학자들의 개인적 역사
로베르트 융크 지음, 이충호 옮김 / 다산북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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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7월 16일 새벽 4시, 미국 뉴멕시코 주 앨라모고도 부근 사막. ‘카운트다운 제로’와 함께 불덩어리가 치솟으면서 거대한 인공 햇빛이 떠올랐다.

 

 

천 개의 태양의 빛이 하늘에서 일시에 폭발한다면,

그것은 전능한 자의 광채와 같으리라.

나는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다.

 

 

 

현장에서 세계 최초의 원자폭탄 실험의 전 과정을 지켜보던 맨해튼 프로젝트(Manhattan Project)의 책임자 오펜하이머(Oppenheimer)는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가 읽었던 고대 인도의 경전 《바가바드 기타(Bhagavad Gītā)》에 나오는 구절이었다. 이제 이것과 똑같은 폭탄이 24일 후 일본의 한 도시 상공에서 투하될 것이었다. 미국 정부는 투항하지 않는 일본을 쓰러뜨리기 위해 이 ‘세계의 파괴자’를 내던질 계획이었다. 나가사키 주민들은 ‘팻맨(fat man)’라는 이름이 붙여진 원자폭탄이 터지면서 쏟아낼 비극의 태양을 맞게 될 운명이었다. 눈부신 섬광, 무시무시한 버섯구름과 함께 이날 이후 인류는 자신을 파멸시킬 수 있는 수단을 갖게 되었다. ‘천 개의 태양보다 밝은’ 원자력이 이렇듯 막대한 인류의 재앙을 초래할지 그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과거의 명저가 다시 태어났다. 《천 개의 태양보다 밝은》은 원자핵의 실체를 밝히려는 과학자들의 지난한 여정과 원자폭탄이 만들어진 과정을 그린 논픽션이다. 이 책의 국역본은 1961년에 출간됐지만 절판되었다. 저자 로베르트 융크(Robert Jungk)는 과학사에 뚜렷한 발자국을 남긴 물리학자들의 ‘아름다운 시절’과 ‘고통스러운 시절’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그들의 삶과 업적을 흥미롭게 풀어냈다. 러더퍼드(Rutherford), 아인슈타인(Einstein), 하이젠베르크(Heisenberg), 닐스 보어(Niels Bohr) 등 여러 과학자가 원자력 연구에 나섰지만, 누구도 원자핵의 힘이 엄청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없었다. 원자폭탄 개발에 참여한 과학자들은 미지의 에너지를 발견한 기쁨을 느낌과 동시에 원자폭탄이 가져올 어마어마한 파괴력을 두려워했다.

 

하이젠베르크는 우라늄을 핵무기의 수준으로 농축하는 일이 당시 독일의 상황에서는 매우 무리라는 것을 알고서는 안심했다. 그는 원자력 연구의 방향이 ‘전쟁터’가 아닌 ‘연구소’로 향해지길 바랐다. 하지만 독일에서 히틀러(Hitler)가 권력을 잡으면서 물리학자 사이에 두려움은 더 커졌다. 하이젠베르크도 원자폭탄을 이용한 독일의 승리를 바라지 않았다. 한편 미국의 물리학자들은 히틀러가 틀림없이 원자폭탄을 개발해서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갈 것으로 생각했다. 심지어 보어는 자신의 절친한 제자이자 동료인 하이젠베르크가 나치(Nazis) 정부의 원자폭탄 개발 프로젝트에 개입했다고 의심했다.

 

1941년 하이젠베르크는 보어가 있는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강연하게 되었고, 자신의 내적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보어를 만나 대화를 나누기로 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책은 이렇게 설명했다.

 

 

불행하게도 코펜하겐에서 하이젠베르크와 보어 사이에 중요한 면담은 처음부터 꼬이고 말았다. 보어는 하이젠베르크가 자신을 위해 열린 리셉션에서 독일의 폴란드 침공을 옹호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사실, 하이젠베르크는 자신의 속마음을 감추기 위해 사교계에서는, 특히 외국에서는, 개인적으로 말할 때와 다르게 말하는 버릇이 있었다. 하지만 보어는 전체주의 정권하의 강압적 환경에서 터득한 이중적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고,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다.

 

[중략]

 

하이젠베르크는 독일 물리학자들이 느끼는 강압적인 압력을 이해해달라고 호소하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러고 나서 서서히 조심스럽게 대화의 방향을 원자폭탄 문제로 돌렸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상대방이 같은 행동을 하기로 동의한다면 그런 무기의 제조를 막기 위해 자신과 자신이 속한 집단이 할 수 있는 일을 다 할 것이라고 솔직하게 선언하는 단계까지는 나아가지 못했다. 두 사람이 과도하게 신중한 태도로 이 문제에 접근하는 바람에 결국 대화는 목표했던 것에서 완전히 빗나가고 말았다.

 

(《천 개의 태양보다 밝은》 pp. 175)

 

 

보어는 하이젠베르크의 발언을 통해 독일이 원자폭탄 제조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독일 물리학자들에 대한 보어의 불신은 미국 정부에 원자폭탄을 설계해야 한다는 확실한 명분을 주었다. 진주만을 공격당한 미국의 입장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에 관여하지 않을 수 없었고, 종전을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원자폭탄을 선택했다.

 

제2의 전운이 감돌기 전에 유럽의 물리학자들은 지적인 모험을 연구의 가장 큰 목적으로 삼았다. 그때야말로 학자들의 뜨거운 열정을 느낄 수 있었던 ‘아름다운 시절’이었다. 하지만 ‘고통스러운 시절’은 예고 없이 찾아왔다. 정치 세력 간에 대량파괴 무기를 만들기 위한 경쟁이 불붙으면서 이들이 쌓아 올린 연구 성과는 원자폭탄이라는 무시무시한 괴물을 탄생시키는 데 활용됐다. 책은 역사의 거대한 물결에 휩쓸려 자신의 연구가 무기로 현실화하는 악몽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물리학자들의 고뇌와 시대적 아픔을 전달한다. 당시 과학자들이 지녔던 순수한 학문적 호기심, 과학기술의 새로운 도약을 향한 열정, 원자력의 힘에 대한 두려움 등은 가치의 우열을 가릴 틈 없이 하나의 용광로에 던져졌다. 원자폭탄은 어느 한 사람의 독창적 발명품이 아니라 혼돈의 시대가 만들어낸 현대과학의 총체였다. 이 책에 나오는 과학자들은 역사의 주인공이자 피해자였다. 혼돈의 시대는 과학자들을 연구실에서 불러냈고, 그들을 괴롭게 만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역사는 냉정하다.

 

 

 

 

 

※ Trivia

 

하이젠베르크는 독일이 점령한 코펜하겐에서 강연을 해달라는 초청을 받았다. 그는 이 일을 기화로 자연스럽게 옛 스승이자 친구인 닐스 보어를 찾아갔다. (pp. 173)

 

→ ‘기화로’를 ‘기회로’로 고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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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종 2018-09-05 07: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어와 하이젠베르크의 면담이 성공했다면 역사가 바뀔 수 있었을까요? 조금씩 어긋나면서 묵직하게 흐르는 역사를 보면, 일어날 수 밖에 없는 필연적인 사건이었는가 싶다가도, 그래도 인간의 의지에 의해서 바뀔 여지가 있지 않았을까 생각도 들고 그렇습니다.
뭐든 타이밍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선택의 변곡점에서 보다 나은 방향으로 진행될 수 있게 적절한 개입이 이루어질 절묘한 타이밍이요.
과학의 양면성은, 부작용이 두려워 멈추기에는 지적인 호기심이 못지 않게 강한 이들이 늘 안고 가야하는 딜레마인가 봅니다.

cyrus 2018-09-05 11:47   좋아요 0 | URL
서로 간의 오해를 불식시키면서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었다면 핵무기 개발 시기가 미루어졌을 거예요. 그렇게 된다면 냉전 시기에 핵무기가 만들어졌을 수도 있어요. 하이젠베르크와 보어와의 대화가 성공한다고 해도 분명 어느 시기부터 핵무기가 만들어지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

나비종 2018-09-05 11:57   좋아요 0 | URL
핵무기에 대해서는 제 생각도 cyrus님과 같습니다. 조금 늦어졌더라도 만들어졌겠죠?ㅡㅡ;
또, 일본이 아니었더라도 그 무기를 사용할 명분을 누군가는 만들어서 어딘가에서 한 번은 터졌을 거라는 것도. .
 
열두 발자국 - 생각의 모험으로 지성의 숲으로 지도 밖의 세계로 이끄는 열두 번의 강의
정재승 지음 / 어크로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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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끊임없는 선택을 하며 살아간다. 아침에 출근할 때 지하철을 이용할 것인가, 자가운전을 할 것인가를 선택해야 하고, 점심을 한식으로 할 것인지 중식이나 양식으로 할 것인지도 선택해야 한다. 사람을 만나 일을 처리하는 것도 선택이고, 언제 누구를 만나 어떤 이야기를 진행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도 선택이다. 이것이냐 저것이냐를 고를 때 합당한 이유를 갖지 않고 선택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선택의 연속으로 이어지는 인생은 모두 뇌의 기능에 의해 결정된다. 그래서 인간의 행복도 뇌의 기능에 달려있다. 결국 인생이란 뇌가 만들어낸 흔적들이다.

 

뇌를 연구하는 물리학자 정재승 교수는 17년 만에 단독으로 펴낸 《열두 발자국》(어크로스, 2018)을 통해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뇌가 어떻게 작동되는지 친절하게 알려준다. 이 책은 정 교수의 대표 강연을 엮은 것이다. 정 교수 특유의 유머까지 글로 옮겨놔서 그의 강연장에 와 있는 기분이 든다. 최근 인간의 심리와 감정은 모두 뇌의 작용에서 비롯됐다는 인식이 널리 퍼지면서 뇌과학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이 책에는 누구나 궁금해하는 인간의 행동과 심리에 대한 12가지 질문이 다뤄진다. ‘선택하는 동안 뇌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결정장애는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가?’, ‘창의적인 사람들의 뇌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순응하지 않는 사람들은 어떻게 세상에 도전하는가?’. 이 책을 통해 우리 일상생활에서 뇌가 어떻게 작용하는지 뇌의 실체를 하나씩 파헤치다 보면 복잡하고 어려운 것으로만 인식했던 뇌가 친근하게 느껴지게 된다.

 

흔히들 뇌는 이성적이고 기계적이며 근접하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한 메커니즘으로 작동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뇌는 컴퓨터처럼 정확하게 움직이지는 않는다. 자신의 선택을 합리화하기 위해 변명하고, 자신이 내린 결정에 후회하지 않으려고 마음을 속이기도 한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인간이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하는 것도 ‘뇌의 착각’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무수한 정보의 범람 속에서, 정보를 생산하고 받아들이는 주체는 뇌다. 우리는 그간 지식이나 정보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것에 비해, 그러한 지식과 정보를 생산하고 사용하는 주체인 뇌의 존재에 대해서는 등한시해왔다. 모든 사람은 뇌를 가지고 있지만 정작 착각하는 뇌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잘 알지 못한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다시피 뇌는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을 좋아한다. 두뇌 속에 없었던 길을 만들고, 그 길들은 더욱 빠른 지름길들을 만들어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린다. 그러나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라도 거기에 너무 많이 집중하면 다른 일들에 대한 관심에 둔해지기 쉽다. 따라서 정 교수는 일에 몰입하여 실행하되 낯선 정보, 낯선 경험들로 뇌를 지루함에서 탈피시키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끊임없이 세상으로부터 자극을 받는 창의적인 사람들의 뇌는 싱싱하다. 그 자극은 자신 안에 웅크리고 있을 때 오는 것이 아니라 사회와 활발히 교류하면서 얻어진다.

 

정 교수는 우리가 여태 알지 못했던 인간이라는 복잡한 숲과 그 숲이 자라는 '회색빛 땅' 뇌를 과학의 관점에서 다시 생각해 볼 기회를 제공해준다. 결정장애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 매번 계획을 실천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복잡한 뇌 속을 들여다보며 독자는 자기 자신을 이해하게 된다.

 

 

 이 책은 1.4킬로그램의 작은 우주인 ‘뇌’라는 관점에서 보편적인 인간을 다루고 있지만, 그 이야기는 여러분의 내밀한 삶의 이야기와 맞닿아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나를 발견하고 우리를 발견하는 경험을 공유하길 바랍니다. (프롤로그, 12쪽)

 

 

뇌를 이해하는 일은 인간의 자아 탐구라는, 어렵지만 손을 놓을 수도 없는 숙명의 과제이다. 뇌를 알아가는 것은 자기 자신을 알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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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8-08-11 10: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스타그램에 정재승 박사 책 리뷰 쓰면 어김없이 나타나신다는데 이 리뷰 올리시면 cyrus님도ㅎㅎ! 알쓸신잡 땜에 정재승 박사 목소리랑 시츄에이션이 잘 떠올라서 책 읽기가 더 유쾌할 듯요^^ 저도 조만간 읽을 예정요~헤헤

cyrus 2018-08-11 16:23   좋아요 0 | URL
인스타 계정은 없어요. 이런 졸문을 정 교수님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아요.. ㅎㅎㅎ
 
도덕의 궤적 - 과학과 이성은 어떻게 인류를 진리, 정의, 자유로 이끌었는가
마이클 셔머 지음, 김명주 옮김 / 바다출판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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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돌이켜보면 인류는 ‘이성’이라는 지적 능력으로 가장 찬란한 세계를 가꾸어 왔다. 그렇지만 인간의 이성은 자연에 대한 더욱 거침없는 행보를 하게 된다. 자연에 대한 개발이 ‘과학기술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장밋빛 미래를 가져올 것만 같았던 과학기술 문명. 그러나 이에 대한 위기의 파열음은 제1차 세계대전을 전후로 서구의 지성계에서 울렸다.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이성은 문명과 인간의 야만이 결합한 파괴에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한 채, 무력할 뿐이었다. 하지만 이성의 위기는 그 시대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과학기술 문명이 초래한 위험은 이제 국가의 경계를 뛰어넘어 초국가적이고 전 지구적 위협이 되었다. 현재 인류는 지구 온난화 현상에 의한 기상이변, 세계 경제를 장기 침체의 그늘로 몰아넣는 불평등, 종교 및 민족 간의 갈등에 의한 테러 등의 사태에 직면하고 있다. 지금의 위기는 과학기술을 기반으로 한 문명에서 시작됐다. 이를 다시 과학과 이성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과학적 회의주의자로 유명한 마이클 셔머(Michael Shermer)는 이 물음에 대해 과감하게 발상을 전환한다. 그는 과학과 이성을 통해 인류는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왔으며 앞으로도 도덕이 진보한 세계로 만들어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동안 윤리학자들은 과학기술 문명의 위기를 윤리적인 차원에서만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뉴스를 보고 있으면 인류는 도덕적으로 진보하고 있기보다는 퇴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강도, 살인, 강간 등 수없이 많은 사건이 일어나고, 일부 중동 및 아프리카에서는 민주주의 문제, 종교 분쟁, 테러 등 복잡한 현안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분명 인류는 도덕이 퇴보하고 있는 시대를 사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셔머는 과학과 이성이 도덕 진보의 밑거름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는 《도덕의 궤적》(바다출판사, 2018)이라는 책에서 자신을 ‘낙관주의자’라고 칭했다[주1]. 그의 지나친 낙관에 경계하는 독자들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셔머는 이성적 논증과 경험적 증거가 동원된 정당한 근거를 대면서 과학과 이성의 중요성을 설파한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도덕 감정을 갖고 태어나는 ‘감응적 존재(sentient being)이다. 감응적 존재는 감정, 지각, 감각, 반응, 의식이 있어서 어떠한 상황에 직면하면 생각하고 느낄 수 있다. 감응적 존재는 ‘더 좋은 상태’로 살아가기 위해 ‘진보적인 삶’을 지향한다. 따라서 도덕의 진보는 ‘감응적 존재의 생존과 번성’이 달린 문제이다. 셔머는 “도덕의 궤적은 정의를 향해 구부러진다”라는 마틴 루서 킹(Martin Luther King) 목사의 말을 인용하면서 과학과 이성이 도덕의 궤적을 점진적으로 구부러지게 만든 힘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다양한 근거를 제시한다.

 

과학혁명이 일어나고 계몽주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들어서면서 전근대 사회를 지배했던 종교적 초자연주의, 미신, 마술에 대한 믿음이 약화하였다. 이 시기부터 ‘도덕의 진보’가 전개됐다. 대부분 사람, 특히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종교의 등장으로 도덕이 진보되었다고 생각한다. 셔머는 이 통념에 반론을 제기한다. 그는 역사적으로 종교가 일으킨 도덕적 실수, 즉 도덕적 퇴보의 사례들을 열거한다. 마녀사냥, 십자군전쟁, 노예제도, 그리고 동성애 혐오. 종교는 오늘날까지도 과거에 일으켰던 도덕적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 보수 기독교 단체들은 퀴어 퍼레이드가 있는 날에 모여 반동성애 집회를 연다. 바티칸시국은 여성 참정권을 보장하지 않는 국가이다.

 

이 책에서 셔머가 강조하는 과학은 ‘기술 중심의 과학’을 뜻하지 않는다. 그는 ‘도덕과학’이라는 개념을 제시하는데, 이는 ‘과학에 기반을 둔 도덕’이기도 하다[주2]. 도덕과학은 과학적 방법론(경험적 조사와 합리적 분석)을 활용하면서 어떤 상황에 대해 옳고 그름을 따진다. 그래서 도덕과학은 경험과학이다. 민주주의의 부상, 여권 및 성소수자 권리 신장, 동물권 옹호 등은 ‘도덕적 진보의 증거’이며 이러한 성취의 힘은 과학과 이성이다. 그렇다면, 종교는 도덕적 진보를 위해 무엇을 했는가? 셔머는 종교가 인류의 전반적인 행복에 크게 기여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셔머는 ‘프로토피아(protopia)를 추구한다. 프로토피아는 단순하다.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세계를 만드는 것, 즉 도덕이 꾸준히 진보하는 세계이다. 마틴 루서 킹이 말했던 대로 결국 도덕의 궤적은 정의로 향해 구부러지게 되어 있다. 셔머는 한발 더 나아가 ‘민족국가’와 ‘국경’이라는 개념이 사라질 것이며 분권화된 수평적 위계의 도시국가가 등장하리라 전망한다. 저자의 전망이 실현될 수 있을지 좀 더 지켜봐야 할 듯하다. 미래에 대한 가능성에 대해 옳고 그름을 따지는 건 무의미한 일이다. 다만, 종교의 도덕적 퇴보를 비판하기 위해 기독교와 성경을 집중적으로 공격한(?) 저자의 해석은 꼼꼼히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종교학자들의 반론이 예상되는 대목이 보이는데, 저자는 성경이 ‘문학을 통틀어 가장 부도덕한 작품’이라고 말한다[주3]. 그리고 여성 억압과 노예제도를 정당화하는 성경 구절들을 인용하면서 기독교를 가루가 되도록 깐다. 사실, 내가 염려하는 것은 도덕과학에 대한 저자의 낙관적인 믿음이다. 과연 과학은 도덕의 진보를 위해 제대로 힘을 발휘할 수 있는가? 글쎄, 과학의 역사를 돌아오면 윤리를 배신한 사례가 있었다. 우생학과 731부대의 생체 실험은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감응적 존재’ 인간을 실험 대상으로 삼아 차별과 살육을 정당화한 사례이다. '퇴보한 과학'의 어두운 면도 조명해야 한다. 정형화된 성과 평가에 눈이 멀어 실험을 조작하고, 논문을 표절하는 우리나라 과학계의 현실을 생각하면 우리 사회에서 진정한 도덕과학 정착은 머나먼 환상처럼 여겨진다.

 

 

 

 

※ Trivia

 

471쪽에 프랑스의 사회학자 귀스타브 르봉의 대표작 《군중 심리(La Psychologie des foules)》를 ‘군중’으로 소개되었다. 원서명에 있는 ‘Psychologie(심리, 심리학)’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주1] 마이클 셔머, 김명주 옮김, 《도덕의 궤적》, 바다출판사, 2018, pp. 581.

 

[주2] 같은 책, pp. 25, pp. 270~271.

 

[주3] 같은 책, pp. 25, pp. 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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