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 인텔리전스 - 경로, 위험, 전략
닉 보스트롬 지음, 조성진 옮김 / 까치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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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 Artificial Intelligence)은 컴퓨터를 이용해 구현되는 지적능력을 뜻한다. 인공지능 연구의 목표는 크게 두 가지다. 인간의 지적 능력을 기계에 부여하려는 목표가 하나이고, 그렇게 하는 데 필요한 사람의 지적능력이 어떻게 발달되었는지 밝혀내는 목표가 다른 하나다. 하지만 인공지능의 비약적인 성장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비관론자는 인간성에 대한 무관심 등의 문제가 발생하여 미래를 통제 불능 상태로 몰고 갈 것이라고 지적한다. 인공지능이 인류에게 축복을 줄 것인가 아니면 재앙을 초래할 것인가에 대한 해석은 아직도 뜨거운 논쟁거리로 남아있다.

 

현실적으로 인간과 거의 흡사한 인공지능은 아직 완전하게 실현되지 않은 상태다. 그러나 많은 학자가 예견하듯 인공지능의 발전 가능성은 이미 검증된 기술로 여겨질 정도로 우리 곁에 바짝 다가왔다고 할 수 있다. 소설 및 영화 2001 : 스페이스 오디세이(황금가지, 2017)와 영화 <매트릭스>, <터미네이터>는 인공지능이 지배하는 인류의 암울한 미래를 그렸다. 컴퓨터가 자발적 진화를 거듭해 인간보다 더 똑똑해진 뒤 인류를 멸망시킨다는 시나리오다. 초지능(superintelligence)의 탄생은 공상과학소설 속 허황한 상상일 뿐일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중립적인 인공지능 비관론자 닉 보스트롬(Nick Bostrom)은 초지능의 탄생은 시간문제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닉 보스트롬은 초지능의 미래를 가장 설득력 있게 전망한 철학자다. 2014년에 발간된 슈퍼인텔리전스 : 경로, 위험, 전략(까치, 2017)은 초지능 시대 인간의 삶과 그 그림자를 구체적으로 짚어낸다. 그런데 만연체의 문장이 읽는 속도를 방해한다. 책에 어려운 내용이 가득한데, 한 번 읽고 이해하기 쉽지 않다.

 

초창기의 인공지능은 인간의 도움을 받아 학습하는 단계를 실행하는 씨앗 인공지능(seed AI)’이다. 여기가 초지능으로 향하는 경로의 시작점이다. 씨앗 인공지능은 소정 기간의 훈련으로 스스로 문제를 처리하는 능력을 갖춘다. 그렇다면 지능은 물론 감정까지 가진 초지능 기계로 발전하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 닉스트롬에 따르면 세 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한다. 느린 도약, 빠른 도약, 중간 속도의 도약. 느린 도약은 말 그대로 꽤 오랜 시간을 두고 인공지능이 발달하는 과정이다. 길어야 백 년이다. 이때 인간은 인공지능의 역할이 많아지는 변화에 천천히 적응할 수 있다. 인공지능이 단 며칠 만에 초지능으로 도약하는 상황(빠른 도약)이 찾아오면, 갑작스러운 변화에 신중하게 대처할 여유가 없다. 이제 인간은 초지능의 도약에 슬슬 긴장해야 한다. 중간 속도의 도약은 몇 달, 또는 몇 년 동안에 일어나는 과정이다. 초지능에 대처할 만한 시간은 있지만, 도약으로 인해 발생한 새로운 문제를 해결할 시간이 부족하다. 6인지적 초능력의 핵심 내용은 인공지능에 의한 통제력 장악 시나리오. 초지능 기계가 인공지능 기계와 다른 점은 인간이 만든 시스템을 전략적으로 제거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상황에 따라 스스로 적응하는 능력이 있다는 뜻이다.

 

여러 가지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비할 수 있는 통제 방법은 있다. 초지능을 통제하는 전략이 한두 개가 아니다. 그중에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통제 방법이 로봇의 3대 원칙이다. 작가 아이작 아시모프(Isaac Asimov)는 로봇이 인간을 공격하는 상황을 대비해 로봇의 3대 원칙을 만들었다. 첫째, 로봇은 인간을 다치거나 위험에 빠지도록 해서는 안 된다. 둘째, 로봇은 첫째 규범에 저촉되지 않는 한 인간이 내린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셋째, 로봇은 첫째와 둘째 규범에 저촉되지 않는 한 자신의 존재를 보호해야 한다. 간접적 규범성은 독자들이 이해하기 힘든 통제 방법이다. 9통제 문제에 잠깐 언급되고, 13선택의 기준 선택하기에 다시 나온다. 이 책에 나오는 간접적 규범성의 대표적인 예가 일관 추정 의지. 이름만 보는데도 현기증이…‥. 그 내용이 꽤 철학적이라서 복잡해 보일지는 모르겠으나 과학적 기술에도 비과학적으로 취급되는 철학적 사고로 설명하려는 저자의 시도가 돋보인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 지능이 발달하게 되면 자기보다는 자기 주변에 먼저 눈길을 돌리게 된다. “엄마, 나는 누구예요?”라고 묻는 아이가 있겠지만 대부분 아이는 저게 뭐예요?”라고 묻는다. 아이는 자신의 정체보다는 자신을 둘러싼 세상에 호기심을 가진다. 보스트롬은 인간을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쥐면서 놀고 있는 어린아이로 비유한다. 그 폭탄이 바로 초지능이다. 초지능이 이 세상을 장악하면 지능 대확산(intelligence explosion)이 일어날 것이다. 우리는 터지지 않은 폭탄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혼잣말하듯이 묻고 있다. “저게 뭐예요?” 왜 혼잣말로 묻느냐고? 엄청난 폭발성(explosiveness)을 지닌 초지능의 위력을 상세하게 알려주고, 지능 대확산 이후 도움을 요청해야 할 어른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초지능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 채 그걸 무턱대고 손대려고 한다. 결국, 더 많은 위기와 도전에 직면하게 될 초지능의 미래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을 만큼 머리를 맞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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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7-07-08 11: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985년 나온 영화 「백 투더 퓨처 」시리즈를 보면 30년 전에 상상한 2015년의 모습이 지금과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여러 가지 가능성을 고려한다면, 생각대로 이루어지는 일은 그다지 많지 않다고 여겨지네요^^:

cyrus 2017-07-09 16:20   좋아요 1 | URL
1940년대에 초창기의 컴퓨터가 나오기 시작할 때 학자들은 20년 후에 인간을 뛰어넘는 컴퓨터가 만들어진다고 전망했습니다. 컴퓨터가 가정에 보급되었을 때도 학자들은 20년 후에 초지능의 시대가 올 거라고 전망했습니다. 지금도 사람들은 20년 후의 미래를 생각합니다. 인공지능 기술이 발전될 가능성은 많지만, 완전히 실용화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겁니다. ^^

yamoo 2017-07-10 2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공지능...이 주제는 대체로 컴퓨터와 연결되더군요. 아니면 신경생리학과 심리철학...대체로 전문어가 산재해 있어 읽기 쉽지 않은데 말이죠. 리뷰 내용을 보니, 읽으면 참 유익한 책일듯한데, 읽고 있는 책 때문에 언제 읽을지 기약이 없네요. 그냥 이런 책도 있구나...생각하고 있다가 다시 눈에 밟힐 때 구매하도록 할까봅니다~ㅎ

흐미~ 그러고보니, 까치 출판사네요...까치 출판사의 책들은 믿고 보는 편인지라..언젠가는 구매할 책인듯하네욤~

cyrus 2017-07-10 21:59   좋아요 0 | URL
이 책, 절반의 내용은 어려웠습니다. 공식도 나옵니다. 이런 책은 qualia님 같은 분이 읽고 평해야 합니다. ^^
 

 

 

기원전 6세기, 그리스의 가장 큰 섬인 크레타에 에피메니데스(Epimenides)라는 사람이 살았다고 한다. 그는 모든 크레타 섬 사람들은 거짓말쟁이다라는 말을 했다.

 

 

 

 

 

 

 

 

 

 

 

 

 

 

 

 

* 마틴 가드너 이야기 파라독스(사계절, 2003)

 

 

 

문제는 그도 거짓말을 일삼는 크레타 사람 중 한 명이다. “모든 크레타 사람은 거짓말쟁이다라는 말이 참이라면 그는 거짓말을 한 것이다. 반대로 모든 크레타 사람은 거짓말쟁이다라는 말이 거짓이라면 그는 참말을 하고 있다. 도대체 어느 것이 참인지 거짓인지 헷갈린다. 에피메니데스의 한 마디는 이처럼 스스로 진실이면서 거짓이고, 거짓이면서 진실이기도 한 모순의 연속이다. 논리학에서 지금까지도 논쟁거리가 되는 거짓말쟁이의 역설(Liar Paradox)’이다. (마틴 가드너, 15)

  

1947, 명제의 참과 거짓을 판별하는 프로그램이 내장된 논리 기계가 처음으로 미국에서 개발되었다. 기계 개발자들은 이 기계에 거짓말쟁이의 역설을 입력해봤다. 그러자 기계는 시끄러운 기계음을 내면서 참, 거짓, , 거짓을 교차하는 형태로 무한 반복했다. (마틴 가드너, 19)

 

 

 

 

 

 

 

 

 

 

 

 

 

 

 

 

 

 

* 마틴 데이비스 수학자, 컴퓨터를 만들다(지식의풍경, 2005)

* 박정일 튜링 & 괴델 : 추상적 사유의 대단한 힘(김영사, 2010)

 

 

 

앨런 튜링(Alan Turing)은 논리적인 생각을 표현한 프로그램을 집어넣으면 그 기록된 대로 수행할 수 있는 컴퓨터를 만들고 싶었다. 그가 고안한 튜링 기계(Turing Machine)는 수식과 언어를 연산 처리해낼 수 있는 기계이며 현대 컴퓨터의 전신이라 할 수 있다. 20세기 수학계를 군림한 힐베르트(Hilbert)명제들의 참과 거짓을 판별하는 방법이 있다고 선언했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이 세상의 모든 수학 문제 또는 명제는 명쾌하게 해결되어야 한다. 그러나 튜링 기계는 힐베르트의 믿음을 깨뜨려버렸다. 그 기계조차도 , 거짓을 판별할 수 없는 복잡한 문제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여준 것이다.

 

 

 

 

 

 

 

 

 

 

 

 

 

 

 

 

 

 

* 더글러스 호프스태터 괴델, 에셔, 바흐(까치, 1999)

* 이진경 수학의 몽상(휴머니스트, 2012)

 

 

 

사실 튜링 기계보다 한 발 먼저 힐베르트의 믿음을 박살 내버린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쿠르트 괴델(Kurt Godel)이다. 괴델은 불완전성 정리를 통해 인간 이성의 한계를 수학적으로 증명했다. 어떤 대상에 대한 절대적이고 완전한 설명을 제시할 수 있는 수학 명제나 해결 방식은 없다. 그의 주장은 모든 수학적 정리는 증명할 수 있다완전성 정리가 지배적인 시절 나온 것으로 불완전성 정리라고 이름 붙여졌다. 괴델의 정리는 결국 20세기 수학 기초이론의 핵심이 되었고 컴퓨터라 해도 풀 수 없는 수학적 문제가 있다는 생각으로 발전되어 인공지능 개발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했다.

 

구글과 페이스북은 가짜 뉴스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이 두 회사는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정보를 자동 분석해 참인지 거짓인지를 구분해주는 프로그램 개발에 열중하고 있다. 과연 인공지능의 시대에 거짓이 사라지게 될까? 인공지능이 인간의 교묘한 거짓을 잘 찾아내도 이 세상에 거짓말쟁이들이 계속 나올 것이다. 그리고 그 수많은 거짓말쟁이 중에 컴퓨터 알고리즘이 포함될 수 있다. 정보를 편집, 변형, 조작하는 기술을 가진 컴퓨터 프로그램 또는 인공지능이 등장한다면 사실인 정보와 가짜인 정보를 구분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거짓을 가려내는 똑똑한 기계의 도움을 받으면 정보를 검증하여 분석하는 작업 절차가 간소화된다. 하지만 최종적인 결정은 우리 인간의 몫이다. 기계에 의존한 삶이 보편화하면서 스마트폰이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대신하고, 계산기가 암산을 대신하는 등 암기와 사고 등 뇌의 기능을 인터넷이 대신해 주면서, 뇌를 사용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하고 있다. 이제 거짓 정보를 가려내는 일도 인공지능에게 맡기려고 한다.

 

어쩌면 미래 사회에 이런 상황이 펼쳐질 수 있다. ‘거짓말하는 기계거짓말을 찾아내려는 기계간의 대결. 가짜 정보를 악용하려는 사람들은 거짓말하는 기계를 이용하여 공공기관 및 시민의 약점을 노릴 것이다. 해커가 거짓말을 찾아내려는 기계의 시스템에 침투해서 거짓말쟁이의 역설과 유사한 명령어를 입력시킬 수 있다. “내가 입력시키는 모든 명령은 거짓이니 받아들이지 말 것.” (마틴 가드너, 19쪽) 기술이 향상되어도 기술 자체로 거짓말을 원천적으로 차단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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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7-07-05 15:2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고대 이집트에서 피라미드 설계 기술이 시대에 따라 발전되었지만, 결국 도굴꾼을 이기지 못했다는 사실이 떠오르네요^^:

cyrus 2017-07-05 18:22   좋아요 3 | URL
제가 표현하고 싶은 생각에 딱 어울리는 비유입니다. 맞습니다. 좋은 기술이 나오면 역으로 그 기술을 뒤집거나 넘어서는 새로운 기술이 나오게 됩니다. 희망의 빛이 길게 드리워지면, 반드시 그림자도 생깁니다. ^^

2017-07-05 17: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7-05 18:27   좋아요 2 | URL
거짓을 좋게 표현하면 ‘허구’입니다. 소설은 사실을 전제로 해서 만든 허구적인 이야기에서 시작된 장르입니다. 허구적인 이야기를 들려주는 문화(구술문화)가 발달되니까 인간의 언어 능력이 향상되었고, 그 부작용으로 거짓말이 나왔을 거로 추정할 수 있겠군요.
 

 

 

 

 

 

 

 

 

 

 

 

 

 

 

 

 

 

 

 

 

 

 

 

 

 

* 토마스 다비트 나는 영혼의 표정을 그린다 :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마루, 1998, 구판)

* 토마스 다비트 레오나르도 다 빈치 : 영혼의 표정을 그린 화가(RHK, 2006, 개정판)

* 댄 브라운 다 빈치 코드(문학수첩, 2013, 개정판)

    

 

 

고대 로마의 건축가 비트루비우스(Vitruvius)<건축 10>라는 책에서 건축의 아름다움에 대한 견해를 밝힌다. 그는 건물 치수가 비례를 이루고 있으면 건물 외관이 우아해진다고 서술했다. 그는 그리스 신전은 모두 비례에 의해 만들어지며 그 비례는 인체에서 얻어진다고 했다. 비트루비우스는 인간의 몸이 아름다운 비례를 이룬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비트루비우스의 이론을 그림에 적용한 사람이 바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 그의 소묘 비트루비우스의 인체 비례도는 기하학 지식을 동원해 사람의 몸을 그려낸 작품이다. 여기서 표현된 비례는 바로 고대와 중세 때 이상적인 건축물을 짓는데 적용됐다.

 

 

 

 

 

다 빈치 코드를 보면 루브르 박물관장 자크 소니에르(Jacques Saunière)가 죽으면서 레오나르도의 수학적 흔적을 남긴다. 소니에르는 누구나 눈에 익었을 레오나르도의 인체 비례도에 등장하는 벌거벗은 남성과 같은 모양으로 몸을 만들고 죽어갔다. 소니에르는 자신의 흉부 위에 펜타 그램(pentagram)을 그려 놓았다. 펜타 그램은 기하학에서 황금비를 설명할 때 언급되는 오각형이다. 정오각형의 한 변과 그 대각선의 비를 구해보면 황금비인 1:1.618이 된다.

    

 

 

 

 

 

 

 

 

 

 

 

 

 

 

 

 

* 마틴 켐프 레오나르도(을유문화사, 2006)

* 마틴 켐프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유문화사, 2010)

* 토비 레스터 다 빈치, 비트루비우스 인간을 그리다(뿌리와이파리, 2014)

    

 

레오나르도는 인간을 하나의 소우주로 봤다. 그래서 그는 인체의 완벽한 구성이 우주에 감춰진 자연의 원리와 일치한다고 생각했다.

    

 

인간을 일컬어 소우주라고 부르는 것은 참 적당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의 몸을 이루는 구성 요소가 물, , 공기, , 네 가지라고 보면, 바로 자연을 이루는 네 가지 구성 요소와 똑같기 때문이다. 몸속을 순환하는 피는 자연의 바다에 해당한다. 사람의 허파는 공기를 들이쉬고 내쉬면서 부풀었다가 가라앉기를 반복한다. 이것은 밀물과 썰물이 주기적으로 드나들면서 육지와 바다가 번갈아 날숨과 들숨을 쉬는 것과 같다.”

 

(토마스 다비트 나는 영혼의 표정을 그린다 :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82)

    

 

레오나르도는 산, , 바위 등을 관찰하여 지구의 몸이 작동되는 방식을 유추했다. 그는 자연과 인간을 분리하지 않았다. 자연과 인간을 동일한 유기체로 보는 소우주론설계자로서의 신이 만들어 낸 자연 질서를 이해하기 위한 관점을 제공해 주었다. 레오나르도와 르네상스(Renaissance) 시대의 화가들은 자연을 거울에 비추어 낸 것처럼 있는 그대로 그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레오나르도는 눈을 영혼의 창이라고 했다. 그가 가장 중시했던 오감 중 하나가 바로 시각이었다. 그는 눈으로 보는 행위를 세상의 모든 형태를 이해하고, 자연을 모방할 수 있는 특별한 능력으로 봤다. 그래서 레오나르도는 평생 자연과 인간을 조사하고, 그림과 글로 기록하는 일에 매진했다.

 

 

 

 

 

 

 

 

 

 

 

 

 

 

 

 

* 로버트 루빈슈타인, 미셸 루번스타인 생각의 탄생(에코의서재, 2007)

    

 

자연 세계에 대한 레오나르도의 유추 방식은 패턴 인식을 이용한 발상이었다. 뇌는 어떤 대상에서 패턴을 찾아 인식하려는 욕구가 있다. 레오나르도의 패턴 인식은 여러 가지 대상의 특징을 포착하여 조합하는 능력이다. 패턴의 유사성을 바탕으로 각 현상을 서로 연계하는 것이다. 그는 인체의 비례를 연구하여 인간의 움직임을 역학적으로 접근할 수 있었고, 인체의 움직임과 새의 비행을 비교했다. 레오나르도는 새의 날개에 착안해 비행기를 구상했다.

 

 

 

 

 

 

 

 

 

 

 

 

 

 

 

 

* 김대식 인간을 읽어내는 과학(21세기북스, 2017)

    

 

레오나르도는 눈을 천문학의 지휘자라고 극찬했다. 자연에서 발생하는 모든 현상을 바라보는 눈의 능력 덕분에 위대한 예술이 탄생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데카르트는 눈으로 세상을 이해하는 것을 부정했다. 그는 내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진짜가 아니다라고 결론을 내렸다. 데카르트는 감각 기관으로서의 눈을 의심했다. 그는 악마가 인간의 인식을 기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의심했다. 데카르트는 악마의 실체를 밝혀내지 못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데카르트가 두려워했던 악마가 누군지 안다. 악마의 정체는 바로 뇌 앞부위에 있는 전두엽이다. 뇌를 오케스트라에 비유하면, 지휘자는 전두엽이다. 전두엽은 여러 뇌 기능을 조율하는 역할을 한다. 감정을 조절하고, 이성적 판단을 한다. 인간의 특징이 바로 고도로 발달한 전두엽이다. 이때까지의 전두엽은 '천사'다. 그런데 간혹 전두엽이 눈앞에 있는 사물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판단하기 전에 뇌의 편도체(감정을 조절하는 부위)가 먼저 반응하는 경우가 있다. 이때부터 전두엽은 짖궂은 '악마'로 돌변하고, 착시 현상이 생긴다.

 

레오나르도의 패턴 인식법으로 도출한 소우주론은 논리적인 사고방식과 거리가 멀다. 레오나르도는 자연을 끊임없이 관찰하면서 확인된 것들을 기록했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그 다음이 문제다. 레오나르도는 관찰한 것 중에 유사한 정보 요소들을 선택, 조합해서 하나의 우주론을 만들었다. 소우주론은 비과학적인 내용이지만, 그의 탐구 정신은 선택의 정당화를 건설적으로 사용한 사례로 볼 수 있다.[1] 관찰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쉬운 일이지만, 그 과정에서 일상적인 현상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일은 어렵다. 레오나르도는 표면적인 분석에 그치지 않고 그 이상을 추구한 예술가였다. 그래서 전 세계의 모든 것, 자연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부터 이해하고자 노력했다. 이는 그를 과학적인 사고를 하도록 이끌었으며 과학은 그의 예술을 완성하는 수단이자 목적이 되었다. 레오나르도는 예술에서 혁명을 이루었고, 과학에는 혁신을 불러왔다.

    

 

 

[1] 인간을 읽어내는 과학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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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15 17: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6-15 18:25   좋아요 1 | URL
맞습니다. 전두엽은 사람의 감정을 지배하는 기능이 있습니다. 사이코패스는 전두엽의 기능이 일반 사람보다 떨어져있습니다.
 
인간을 읽어내는 과학 - 1.4킬로그램 뇌에 새겨진 당신의 이야기
김대식 지음 / 21세기북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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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살아가며 많은 정보를 받아들이고 그 정보를 뇌 속에 저장한다. 대부분 사람은 뇌가 있다는 걸 의식하지 않고 살아간다. 1.4kg에 불과한 회백색 단백질 덩어리는 깊이를 측정하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하다. 지구상에 사는 인구는 75억 명이지만 한 사람의 뇌 속에 살아 움직이는 신경세포의 수는 140억 개에 이른다. 지구는 넓고 크지만, 우리의 뇌는 그보다 더 크고 무한하다. 뇌를 해부학적으로 연구한 과학자들은 고도의 사유 능력을 관장하는 뇌의 부위를 핀셋으로 집어내듯 밝혀내려고 했다. 그러나 결과는 그리 신통치 않다. 수준 높은 사고는 뇌의 여러 부위가 협력함으로써 가능하다는 게 최근 연구의 잠정적 결론이다.

 

인간을 읽어내는 과학은 절대 서로 무관하지 않은 뇌과학과 인간의 행위 간의 밀접한 관계를 통해 인간 존재의 근원을 추적한다. 호흡하고 심장을 뛰게 하는 생명 활동에서부터 복잡한 감정의 표현들, 학습과 기억, 상상 그리고 자아 성찰까지 뇌가 하지 않는 일은 없다. 뇌는 인간의 신체 중에서 물질이면서 정신을 가진 유일무이한 부위이다. 김대식 교수는 철학적인 질문인 진정한 나는 누구인가?”를 과학적으로 궁구한다. 이 책의 주제가 과학과 철학의 접목이라고 해도 좋을 듯하다. 독자들은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당혹감을 감추지 못할지도 모른다. 진정한 의 정체성은 우리가 아는 상식과는 달리 혼란스럽기 그지없다. 성자(聖者)들은 흔히 진정한 나는 내 안에 있다, 깨달음이 진정한 나를 찾는 길이라고 안내한다. 그러나 뇌과학의 관점으로 보면 인류가 여태껏 생각하던 는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한 뇌의 총체적인 기능이라고 볼 수 있다.

 

인간이 를 구축할 수 있는 것은 따지고 보면 순전히 덕분이다. 우리가 사실이라고 굳게 믿는 이 기억은 거의 만들어진 것에 가깝다. ‘· 우뇌의 기능 분화설을 발표한 과학자 로저 스페리(Roger Sperry)는 뇌를 현실을 있는 그대로 알아보지 못하며 나의 선택을 정당화하는 기계[1]라고 주장했다. 뇌를 뛰어난 기계 혹은 컴퓨터에 비유하는 생각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착각일 뿐이다. 상황에 대처하는 이성적 사고라는 것은 뇌의 신경세포를 자극해 얻는 반응의 일종이다. 인간은 뇌에 저장된 우연한 경험들을 결합하여 필연의 이야기로 만들어 낸다. 지식과 체험을 통해 뇌 속에 담긴 정보는 오늘날의 를 규정짓는다. 스페리의 주장은 우리의 뇌가 우리를 속이고 인간은 자신이 내린 결정을 정당화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다.

 

김대식 교수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라는 데카르트(Descartes)의 철학적 명제를 나는 뇌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과학적 명제로 바꾸어 놓았다. 데카르트의 명제가 갖는 효과는 인간이 생각하는 존재가 됐다는 점이다. 이성을 가지고 세계를 파악할 수 있고, 그렇게 파악한 것을 무기 삼아 세계를 지배할 힘이 인간에게 생긴 것이다. 그런데 과학자들이 묻는다. ‘는 어디서 나온 거야? 내가 생각하는 것이 과연 내 생각이야? 뇌를 활용하는 주체는 인데, 그 정보가 거꾸로 를 통제한다. 이런 에게서 뇌를 빼면 시체 또는 좀비다.

 

이 책을 읽다가 멀쩡한 를 잃어버릴 듯한 두려움에 사로잡힐 수 있다. 그러나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 나의 뇌를 인식한다는 것은 삶에 대한 생각의 틀을 바꾸는 사고 전환이다. 뇌는 신체의 한 기관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무한한 가능성을 온전히 활용해야 할 소중한 대상이다.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바란다면, 자신의 뇌를 어떻게 제대로 사용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한다. 뇌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의식이 필요하다. 나의 뇌 속에 있는 숱한 고정관념과 편견 등을 하나씩 걷어내면, 그동안 살면서 의식하지 못한 본질적 자아를 발견한다. 결국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탐색의 여정은 자신을 성찰하는 행위. 뇌의 본질적 기능을 이해하는 것이 온갖 정보 속에 덧씌워진 를 올바르게 보는 길이다.

  

 

 

[1] 인간을 읽어내는 과학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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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17-06-14 1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뇌과학에 관한 책이 쏟아지고 있는 거 같습니다. 데카르트의 존재론을 비판하는 데서부터 인지부조화 그리고 실수에 대한 주제까지... 저두 이 분야의 책을 주섬주섬 모으다 보니 책의 주제가 한 3부류 정도 나눠지는 듯합니다. 어쨌거나 일독하면 매우 유익한 책들인 것만은 분명하고 읽고 나면 내가 아주 유식해진 기분이 들곤하는 책들이죠~^^

cyrus 2017-06-14 20:04   좋아요 0 | URL
한 번 본 지식을 다 이해했다고 착각하는 것도 뇌가 일으키는 자기정당화 경향인 것 같습니다. ^^

2017-06-14 22: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6-14 23:34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인간이 다가 오지 않는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뇌의 발달에서 비롯된 인간 고유의 사고 행위입니다. 인간은 살아남기 위해 생존 방식을 늘 생각해야했고,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잊기 위해 종교를 만들었어요. 이 모든 일이 뇌가 있어서 가능한 것이죠. ^^

AgalmA 2017-06-15 0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 명제 참 잘 지은 듯ㅎ
생각 좀 한다하는 분들 이 문장 응용하지 않고는 못 배기나 봐요.
바바라 크루거 - ˝나는 소비한다 고로 존재한다.(I shop therefore I am) ˝ 등등ㅎ

cyrus 2017-06-15 09:46   좋아요 0 | URL
바리에이션이 많은 명언입니다. 아무나 끼워 맞춰도 문장을 만들 수 있어요. ^^
 
물고기는 알고 있다 - 물속에 사는 우리 사촌들의 사생활
조너선 밸컴 지음, 양병찬 옮김 / 에이도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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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기가 만든 『작은 연못』은 양희은 특유의 청아한 목소리가 돋보이는 동요 느낌의 곡이다. 이 곡은 동요처럼 단순하고 가사 역시 동화를 들려주듯 에둘러 말하지만,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깊은 산 오솔길 옆 자그마한 연못엔

지금은 더러운 물만 고이고 아무것도 살지 않지만

먼 옛날 이 연못엔 예쁜 붕어 두 마리

살고 있었다고 전해지지요 깊은 산 작은 연못

어느 맑은 여름날 연못 속에 붕어 두 마리

서로 싸워 한 마리가 물 위에 떠오르고

여린 살이 썩어 들어가 물도 따라 썩어 들어가

연못 속에선 아무 것도 살 수 없게 되었죠.

깊은 산 오솔길 옆 자그마한 연못엔

지금은 더러운 물만 고이고 아무 것도 살지 않죠.

 

 

박정희 정권의 유신체제 아래에서 금지곡이 쏟아졌다. 전두환 신군부 정부가 출범하고서도 금지곡 지정은 계속됐다. 지금 생각해도 얼토당토않은 이유였다. 『작은 연못』은 노랫말이 불온하다는 이유로 금지곡으로 지정되었다. 그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다. 서로 싸운 붕어 두 마리가 등장하는 노랫말이 남한과 북한의 냉전 구도 혹은 박정희와 김대중의 정치적 대립을 연상케 한다는 이유로 금지곡이 됐다는 추측이 있다.

 

영화 『니모를 찾아서』의 주인공 ‘니모’로 잘 알려진 클라운피쉬(clownfish)는 대표적인 해수관상어다. 클라운피쉬의 또 다른 종류인 토마토클라운피쉬는 니모처럼 귀여운 외모를 가졌지만, 공격적인 성향이 강하다. 같은 종끼리도 영역 다툼을 할 정도로 자신만의 영역을 가지려고 한다. 물고기의 세계에서도 동종 다툼이 간혹 일어난다. 그렇지만 물고기들은 싸우기 위해 힘을 과시하지 않는다. 싸움을 피하고자 자신에게 접근하려는 적에게 위험 신호를 보낸다. 복어는 적을 만나면 입으로 공기를 한껏 빨아들여 자신의 몸뚱이를 크게 팽창시킨다. 이렇게 적에게 과시하는 행동의 전술은 물리적 충돌을 피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암컷들 간의 치열한 서열 다툼이 벌어지면, 수컷 한 마리가 중재에 나서서 활동하는 경우가 있다. 시클리드(cichlidae)의 한 종류인 골든 음부나(golden mbuna) 집단에 평화 유지군 역할을 하는 수컷이 꼭 있다. 그런데 이 녀석의 중재 방식은 누가 봐도 속 보이는 전략이다. 평화 유지군을 맡은 수컷은 싸운 두 명의 암컷 중에 영역에 들어온 낯선 쪽에 손을 들어준다. 평화 유지군에게 인정받은 암컷은 집단의 새로운 일원이 되는 동시에 수컷의 짝짓기 상대가 된다.

 

복어와 골든 음부나의 사례에서 우리가 공통된 한 가지 사실을 알 수 있다. 물고기도 인간처럼 보고, 느끼고 살아간다. 한때 물고기는 새와 함께 지능이 낮은 동물로 오해를 받았다. 최근 새의 지능을 재평가하는 실험 결과가 속속들이 나오면서 새는 인간의 편견에 벗어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물고기는 인간이 만들어낸 ‘어리석은 동물’ 목록에 여전히 포함되어 있다. 《물고기는 알고 있다》는 물고기를 바라보는 인간의 편견을 완벽하게 깨뜨리는 책이다. 우리는 물고기가 단 몇 초 동안만 기억할 것으로 생각하지만, 놀라울 정도의 학습 및 기억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물고기는 되는 대로 헤엄치는 것이 아니다. 대구, 넙치 등의 물고기는 인간의 청각을 뛰어넘는데, 인간이 듣지 못하는 초저주파를 감지한다. 이들은 음향 정보에 따라 장애물을 피하는 등 주도면밀하게 동선을 선택한다. 아울러 젊은 물고기들은 나이 든 물고기들로부터 이동하는 과정 및 방법을 배워 수개월 동안 기억한다.

 

그런데 인간은 이 훌륭한 능력을 갖춘 물고기를 ‘원시적인 존재’로 생각한다. 동물에 대한 인간의 편견은 포획을 일삼는 행위를 정당화하는 위험한 근거가 된다. 《물고기는 알고 있다》의 저자 조너선 밸컴(Jonathan Balcombe)물고기가 인간처럼 감각을 느끼지 못하고, 학습 능력이 떨어진다고 믿는 지독한 편견이 물고기의 생태계를 파괴하는 원인으로 지적한다. 어부들은 물고기를 남획할 때 다 자란 성어(成漁)만 잡고, 치어는 바다로 돌려보낸다. 물고기 개체 수가 확 줄어드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치어만 남아있는 물고기 집단은 다 자란 물고기에게 이동 방법을 배우는 기회가 없다. 한 집단에 공유되는 생존법을 학습하지 못한 물고기는 생존 확률이 떨어진다.

 

《물고기는 알고 있다》를 읽으면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수조 속에서 살아가는 물고기의 실체를 다시 보게 된다. 그리고 지구라는 '우주의 연못' 속에 사는 인간의 존재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물고기는 자신의 목숨을 낚아채는 낚싯바늘의 실체를 알고 있다. 물고기가 갈고리로 된 낚싯바늘에 걸리다가 운 좋게 살아남으면, 낚싯바늘이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위험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물고기는 위험천만한 결과를 초래하는 실패를 잊지 않는다. 한 번 당한 이후부터 갈고리처럼 생긴 것만 봐도 피한다. 인간은 실패를 학습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같은 실패를 반복한다. 최악의 상황을 여러 번 겪고 나서야 실패의 교훈을 뒤늦게 깨닫는다. 인간의 어리석음은 끝이 없고, 같은 실패를 반복한다. 물고기는 절대로 멍청한 동물이 아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한 번 크게 당하고도 위험한 상황을 또 겪는 우리 인간이야말로 멍청하다.

 

《물고기는 알고 있다》는 생선회를 좋아하는 미식가, 낚시꾼들로서는 불편할 것 같다. 조너선 밸컴은 여가용 낚시를 물고기의 죽음과 부상을 초래하는 행위로 규정한다. 그는 ‘미늘 없는 낚싯바늘’ 사용을 제안한다. 낚시꾼 입장에서는 저자의 제안이 어이없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저자의 말에 일리 있다. 물고기 대신에 시간을 낚았다는 주나라의 공신 강태공은 곧은 낚싯바늘을 사용했다고 한다. 낚시와 관련된 강태공의 전설적인 일화가 허구에 가깝지만, 곧은 낚싯바늘도 물고기를 잡기 위한 도구이다. 영국에는 이미 미늘 없는 낚싯바늘이 유행이라고 한다. 강태공 소리를 듣는 낚시꾼이라면 미늘 없는 낚싯바늘로 물고기 한두 마리를 잡아 봐야 한다. 하루 동안 낚시를 해서 물고기 한 마리 못 잡을 때가 있다. 낚시꾼들이여, 자책하지 마시라. 낚시꾼 당신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물고기는 당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아주 똑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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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23 12: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5-23 21:28   좋아요 0 | URL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로 방사능과 오염수 일부는 바다로 유출되었습니다.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물고기 생태계에 악영향을 줄 수 있어요. 당연히 방사능에 오염된 물고기를 섭취한 인간도 위험해요. 이런 문제를 생각한다면 물고기 남획을 긍정적으로 볼 수 없습니다.

페크pek0501 2017-05-23 2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진이 일어나기 전에 우리 인간보다 먼저 동물들이 땅의 변화를 알아챈다고 하지요.
이것만 봐도 인간이 가장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건 우리의 착각이겠지요?

cyrus 2017-05-24 08:57   좋아요 0 | URL
동물들의 감각은 풀어야 할 게 많은 연구 대상이지만, 확실히 인간의 감각보다 뛰어난 건 사실입니다. ^^

AgalmA 2017-05-24 0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시 시대 수렵생활 본능을 낚시로 대체하는 많은 남성 인류와 생선회, 초밥 좋아하는 식객들 그래도 잡을 건 잡겠죠-,-;

cyrus 2017-05-24 08:59   좋아요 0 | URL
생선 없는 식탁은 상상하기 싫습니다. 저는 생선회를 좋아해서 이 책을 읽고 마음이 복잡했습니다. ^^;;

레삭매냐 2017-05-24 14: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한 십년 쯤 전에 낚시 엄청하러 다녔었는데 말이죠.
어신이 손에 전해질 때 그 짜릿함은 정말 ~~~

지금은 낚시 줄 매는 법도 잊어 버린 것 같네요.

여가용 낚시에 미늘 없는 낚시바늘 써야 한다는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cyrus 2017-05-24 16:13   좋아요 0 | URL
낚시 마니아들의 말로는 물고기를 낚아챌 때 느껴지는 손맛이 좋다고 하더군요. 제 친구도 가끔 저한테 낚시 같이 가자고 조릅니다. 며칠 전에 <물고기는 알고 있다>를 읽고 나서 낚시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어요. ^^;;

2017-05-24 16: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5-24 16: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5-24 16:1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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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24 16: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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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24 16:1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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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24 16:1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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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17-05-25 07: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물고기는 흔히 brainless로 보긴 하는데, 예전에 관상어도 주인이 들어오면 좋아서 마구 움직인다는 얘기를 듣고, 생각을 해본 적이 있어요. 결국 생명이 있는 건 우리가 이해를 못할 뿐이지만, 어떤 지성체라는 생각이 듭니다.

cyrus 2017-05-25 07:32   좋아요 0 | URL
일반 가정에서 기르는 관상어들은 불쌍해요. 그저 사람이 주는 먹이를 받아 먹고, 물속을 헤엄치면서 지내는 게 전부죠. 인간은 물고기의 지능이 단순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관상어가 혼자서 즐길 수 있는 놀이기구를 만들지 않아요.

transient-guest 2017-05-25 07:28   좋아요 0 | URL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네요. 연장선상에서 보면 산업축산이 얼마나 비참한 건지 새삼 인지하게 됩니다. 소나 돼지 닭은 좀 멀게 느끼지만 사실 사진으로 보는 보신탕으로 사육되는 개농장이나 수송을 보면 업자가 옆에 있으면 두들겨패고 싶을 정도로 화가 날 때가 있어요. 사실 깊이 생각하면 힘들어서 그렇지 동물학대 이상으로 나쁜 산업형축산을 보면서 채식주의자가 되어야하나 고민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cyrus 2017-05-25 07:33   좋아요 0 | URL
생선회, 낚시 좋아하는 사람은 조너선 밸컴의 책을 읽어선 안 돼요. 정말 고민이 많아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