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촉각 공감각
조엘 살리나스 지음, 정유선 옮김 / 성안당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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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뇌는 주변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해석한다. 보이는 것을 보고, 들리는 것을 들으면서 주변 상황을 인식한다. 하지만 어떤 뇌는 종종 이 같은 인지 과정에서 벗어난 특이한 기능을 활성화하기도 한다. ‘책’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퍽퍽한 식감의 삶은 닭고기 맛이 난다고 느껴지는 사람이 있다. 특정 글자나 숫자를 보면 색깔이 보인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통증을 느끼는 상대방을 보면 자신도 통증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 이 세 사람의 반응은 마약에 취해서 나오는 환각 증상이 아니다. 거울-촉각 공감각(mirror-touch synesthesia)’ 능력자(줄여서 ‘공감각자’)들이 실제로 경험하는 일이다.

 

공감각자들은 전쟁 영화를 보는 것이 고문이다. 이들은 상대방의 신체에 가해진 물리적 충격을 보는 것만으로 그 자극이 마치 자신의 몸에 가해진 것처럼 감각 반응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공감각자들은 물건을 보면 맛을 느끼거나 이름에서 색깔을 보는 경험을 한다. 공감각자 중에는 비범한 예술적 감각을 가진 이들도 많다. 화가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먼(Richard Feynman, 그는 살아있었을 때 삼바 춤을 즐겼고 봉고라는 타악기를 수준급으로 연주했다), 가수 빌리 조엘(Billy Joel) 등이 있다.

 

신경과 의사인 조엘 살리나스(Joel Salinas)는 공감각자다. 그는 《거울 촉각 공감각》에서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공감각 능력이 무엇인지 알려준다. 저자는 자신의 공감각 능력을 뇌과학의 관점으로 설명하면서 인간의 감각과 뇌의 활동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쉽게 풀어낸다. 이 책 머리말의 첫 문장은 남들과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경험하는 공감각자의 삶을 함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나는 나를 배반한다.  (16쪽)

 

 

공감각자의 뇌는 상대방의 경험을 인식한다. 그 순간 공감각자의 몸은 ‘상대방의 몸’이 되고, 그 몸에 ‘내 감각’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공감각자는 ‘강제적으로’ 공감한다. 거울-촉각을 몸소 느껴보지 못한 사람은 공감각자들이 평생 ‘나 자신과 싸움’을 하면서 살아간다고 생각할 것이다. 틀린 건 아니다. 실제로 저자는 공감각 능력으로 일상생활에 불편함을 겪었다. 공감각자의 뇌는 스펀지가 물을 흡수하듯이 다른 사람을 인식하면서 확인된 정보를 받아들인다. 저자는 자신의 뇌가 다른 사람의 경험과 감정에 지나치게 몰두하지 않도록 더욱 신경을 써야 했다. 외부 반응에 아주 예민한 공감각자는 늘 겪어야 하는 거울-촉각 경험을 피하고자 바깥세상과 단절된 채 살아가기도 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거울-촉각 공감각이 그 능력을 갖춘 사람을 불행하게 만드는 저주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거울-촉각 공감각은 병리적인 현상이나 장애가 아니다. 거울-촉각 공감각도 세상을 경험하는 방식 중의 하나이다. 거울-촉각 공감각도 장점이 있다. 저자는 환자들의 정서적 · 신체적 경험을 느끼고 받아들이는 ‘입체적인 의사’이다. 그는 이 경험을 통해 환자들의 진심을 확인하고, 그들이 느꼈을 통증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어느 정도인지 알게 된다.

 

 

 눈앞에서 환자가 세상을 떠날 때마다 나도 죽은 것처럼 느껴졌다. 그 느낌은 결코 약해지는 법이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여러 번 죽었다. 환자가 죽는 것을 볼 때, 죽음 속으로 사라지기 전 마지막 순간을 내 몸에서 체험했다. 헛된 공포의 마지막 순간, 또는 침묵의 특전이었다. 나는 이러한 순간마다 달갑지 않았고, 우발적이며 충격적이고 혼란스러운 죽음을 막기 위해 항상 무언가, 무엇이라도 해야 했다. 환자의 마지막 순간의 의식을 존중하고, 그들 삶에서 마지막 순간의 증인이 되고 싶었다. 환자의 마지막 바람은 존중받아야 하고 아무 결함 없이 확실히 이행되어야 한다.  (194쪽)

 

 

환자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는 의사들이 많다. 이런 의사들은 아프다고 칭얼대면서 찾아오는 환자들을 돌려보내기 위해 효과가 미미한 약을 처방한다. 그것은 인간의 고통에 대한 최소한의 관심이 없는 행동이다. 환자와의 정서적 거리감을 조금이라도 줄여보려는 의사들은 저자의 공감각 경험 사례를 참고했으면 한다.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로써 과학적인 진단과 분석, 즉 ‘의술’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아울러 환자의 통증과 고통 및 두려움까지 공감하며 귀담아 들어주는 ‘인술’이야말로 질병으로 고통받아 병원을 찾는 환자들을 위해 갖춰야 할 덕목이다.

 

《거울 촉각 공감각》은 색다른 능력을 가진 신경과 의사의 자서전이 아니다. 이 책은 ‘공감’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게 만든다. 공감. 얼핏 들으면 평범하고 쉬운 단어이지만 그 의미가 모호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동안 공감을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라고 믿어왔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은 좋은 말인데도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 누구나 공감의 중요성을 말하지만, 대부분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얼추 생각하는 선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저자가 말하는 공감은 이러한 단순히 ‘생각하기’에만 있지는 않다.

 

 

 공감은 단지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왜 그 일이 일어나는지 생각할 정도로 신경 쓰는 것이다.  (386쪽)

 

 

정말로 진지하게 공감을 하려면 눈이라는 거울에 단순히 비친 상대방이 나 자신의 정신적 공간 안으로 들어와야 한다. 즉 ‘나’와 상대방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만약 어떤 사람이 된다면 그 사람의 감정을 파악할 수 있고, 그 사람이 행동하는 이유를 깊이 이해할 수 있다. 물론 상대방에 향한 과도한 몰입은 경계해야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떤 사람에게 공감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공감하지 못해도 괜찮다. 공감 능력이 남들보다 떨어졌다는 생각으로 자책하지 않아도 된다. 상대방을 생각해주는 공감도 좋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이다. ‘내가 원하지 않은 공감’, ‘강제적인 공감’ 같은 억지스러운 공감은 진지한 공감을 위해 비워야 할 우리의 정신적 공간을 비좁게 만든다. 그런 공감은 ‘나’를 속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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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과학은 어렵습니다만 2 - 털보 과학관장과 함께라면 온 세상이 과학 저도 어렵습니다만 2
이정모 지음 / 바틀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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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그 책에 대한 리뷰를 썼는데도 책의 내용을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는 변명을 해보지만, 반드시 기억하고 있어야 할 기본적인 사실을 자꾸 잊어버리는 것은 문제가 있다. 과학책을 읽고 있을 때, 그 책 속에 있는 과학 지식이 내 머릿속에 쏙쏙 들어오는 기분이 든다. 그러나 자신감은 오래 가지 못한다. 책을 덮고 난 후부터 문제가 생긴다. 과학책에 있는 내용을 이해했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그것을 말로 설명하기 시작하면 머리가 새하얘지고 말문이 막혀버린다. 누군가가 나에게 불쑥 “특수상대성이론과 일반상대성이론의 차이가 뭐예요?”라든가 “이기적인 유전자가 무슨 뜻이에요?”라고 질문한다면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을 것이다.

 

책을 많이 읽으면 똑똑해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분명히 똑똑한 애서가들이 있다. 그러나 예외는 있다. 나 같은 헛똑똑이는 책 읽는 것 자체를 즐기기만 하는 딜레탕트(dilettante, 호사가)에 가까운 독자이다. 즉 나는 책을 좋아하지만, 아는 게 많지 않은 사람이다. 이 말은 겸손의 표현이 절대 아니다.

 

최근에 책의 내용을 쉽게 잊어버리는 문제의 원인을 알아냈다.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의 칼럼 모음집인 《저도 과학은 어렵습니다만 2》에 첫 번째로 실린 글은 암기 학습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내용이다. 독일에 유학 생활은 한 이정모 관장은 자신을 가르친 독일인 교수가 내는 구두시험에 어려움을 느낀다. 구두시험에 좋은 성적을 받으려면 교수가 가르쳐준 내용을 암기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암기를 잘하지 못한 이정모 관장, 아니 학생은 외워야만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시험 방식에 불만을 가진다. 이정모 학생은 교수에게 직접 찾아가 암기 중심의 교육에 문제 있다는 식으로 따진다. 그러자 교수는 깜짝 놀라는 반응을 보이며 대답한다.

 

 

 “아니, 누가 그런 쓸데없는 소리를 했는가! 학습은 암기일세. 자네 머릿속에 있어야지 책 속에 있는 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번쩍이는 아이디어는 책이 아니라 자네 머리에서 나와야 하네. 그러니 열심히 암기하게나.”

그리고 덧붙였다.

“이해는 완전한 암기를 위한 준비과정이지.”

 

(『누가 그런 쓸데없는 소리를 했는가』 중에서, 13쪽)

 

 

이정모 학생은 교수의 말에 동의한다. 과학관장이 된 이정모 학생은 교수의 죽비 소리를 들었던 그 날을 회고하면서 창의성보다 더 중요한 게 암기라고 강조한다. 혹시 지금까지 나온 내용만 보면서 이정모 관장이 주입식 암기교육을 옹호한다고 단정하지 마시길 바란다. 이 글의 전문을 보면 알겠지만, 이정모 관장은 암기와 주입식 암기 교육을 확실하게 구분한다. 이정모 관장도 그렇고, 나도 주입식 암기교육을 반대한다. 이정모 관장이 말하는 ‘좋은 암기’란 반드시 알아야 할 지식을 이해하기 위해 선행되어야 할 기본기다. 독일인 교수는 스무 번 외우고 스무 번 잊어버리면 저절로 외워진다고 말한다. 독서도 마찬가지다. 책 속에 있는 내용을 확실하게 건져서 내 머릿속에 담으려면 일회성 독서만 가지고는 안 된다. 외워야 할 내용은 무조건 외워야 한다. 그러려면 책을 여러 번 읽어야 한다. 꼭 위편삼절(책을 엮은 가죽끈이 3번씩이나 끊어질 정도로 읽어야 한다는 뜻의 사자성어)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 잊을 때가 되었다 싶으면 책을 읽으면 된다. 그러면 저절로 외워진다.

 

이정모 관장이 말했듯이 과학은 어렵다. 그런데 과학이 어렵다는 이유로 과학 공부를 피할 수 없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이 있잖은가. 정말 재미있고, 쉽게 풀어쓴 과학책은 많다. 이정모 관장이 쓴 과학책이 재미있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요즘에는 만화로 된 과학책이 나오고 있다. 읽을거리가 많다. 과학책을 반복해서 읽고, 알아야 할 내용을 암기하는 습관을 들인다면 어렵게 느껴지던 과학이 친숙하게 느껴질 것이다. 과학은 어렵습니다만, (포기하지 않고/그래도) 과학책을 읽어야겠습니다.

 

 

 

※ 《저도 과학은 어렵습니다만》 2권이 전작과 다른 점: 부록으로 이정모 관장의 인터뷰가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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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23 05: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5-23 12:38   좋아요 0 | URL
귀찮은 방식이지만, 책을 읽을 때도 정말 외워야 할 내용은 꼭 외워야겠어요.... ㅎㅎㅎㅎ
 
우주와 아인슈타인 박사
링컨 바넷 지음, 송혜영 옮김, 박병현 감수 / 글봄크리에이티브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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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와 아인슈타인 박사(The Universe and Dr. Einstein). 어느 과학 교양서에 붙여진 평범한 제목이다. 제목만 보면 이 책이 무슨 내용인지 짐작할 수 있으리라. 《우주와 아인슈타인 박사》는 말 그대로 아인슈타인의 우주론(cosmology)을 쉽게 소개한 책이다. 이 책은 아인슈타인이 살아 있을 때인 1948년에 출간되었다. 그때 당시 아인슈타인은 독일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하여 프린스턴 고등연구소 교수로 활동하고 있었다. 이 책에 실린 추천사는 아인슈타인이 직접 썼다.

 

 

 나의 상대성이론의 핵심개념이 지극히 잘 소개돼 있으며, 더 나아가 우리가 알고 있는 물리학 지식의 현주소를 아주 적절하게 기술해놓았다.

 

(아인슈타인의 추천사, 6쪽)

 

 

아인슈타인이 언급한 ‘물리학 지식의 현주소’는 원전의 초판이 나온 1948년 당시의 과학 수준을 말한다. 《우주와 아인슈타인 박사》는 네 차례나 개정됐다. 아인슈타인이 세상을 떠나기 5년 전에 개정 2판이 나왔으며 아인슈타인 사후인 1957년에 개정 3판이 나왔다. 《우주와 아인슈타인 박사》의 저자 링컨 바넷(Lincoln Barnett)이 세상을 떠난 후인 1985년, 2014년에도 개정판이 나올 정도로 아인슈타인 물리학의 핵심을 잘 설명한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았다.

 

책 제목은 너무 평범하지만, 부제는 눈길을 끈다. ‘왜 우리는 상대성이론을 철학해야 하나?(Why should we philosophize the Theory of Relativity?)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부제가 번역본 제목으로 정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부제는 표제보다 더 독자들에게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과학 이론인 상대성이론과 철학은 무슨 관련이 있을까? 혹자는 부제를 보자마자 《우주와 아인슈타인 박사》가 ‘과학철학’을 논하는 책이 아닐까 봐 의구심 들 수도 있겠다. 이 책이 과학철학과 무관하다고 볼 수 없다. 과학철학은 과학에 바탕을 둔 세계관을 인식하는 방식에 관해 고찰하는 철학의 한 분야이다. 과학철학은 부분적으로는 인식론(epistemology)과 관련이 있다. 인식론은 진리를 인식하는 행위의 본질적인 의미와 그 행위의 한계 등을 탐구하는 철학의 한 영역이다. 그러므로 《우주와 아인슈타인 박사》가 말하는 ‘철학’은 인식론을 뜻한다.

 

책의 저자는 상대성이론이 과학적 가치를 뛰어넘어 존 로크(John Locke), 조지 버클리(George Berkeley), 데이비드 흄(David Hume)으로 이어지는 인식론자들의 이론적 체계를 발전시키는 철학적 기반이라고 말한다. 로크는 데카르트(Descartes) 다음으로 근대 인식론의 출발점을 제공한 사상가이다. 로크는 자신의 책 《인간 오성론》에서 ‘위치의 상대성’을 간접적으로 언급했다. 로크가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을 예견했다고는 볼 수 없지만, 그는 시간과 공간의 상태가 그것을 관찰하는 사람의 위치에 따라 상대적으로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특수상대성이론의 핵심은 광속(빛의 속도)과 물체의 등속 운동 등 자연계 내 물체의 모든 운동은 일정하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특수상대성이론을 어렵게 생각한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이 이론에는 우리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실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미 언급했듯이 관찰자의 위치에 따라서 일정하게 움직이는 광속과 물체의 등속 운동이 달라져 보인다. 로크가 생각한 ‘위치의 상대성’과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은 공통으로 ‘객관적 인식이 가능하다’라고 보는 인간의 합리적인 정신을 흔들어놓는다.

 

《우주와 아인슈타인 박사》는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과 일반상대성이론이 무엇인지 감이 잘 잡히지 않는 독자를 위한 입문서이다. 요즘 나오고 있는 아인슈타인 물리학 입문서들에 비하면 상당히 구식으로 느껴지지만, 이래 봬도 물리학의 달인 아인슈타인이 극찬한 전설의 책이다. 이 책에 인식론을 부연 설명한 내용이 없어서 상대성이론의 철학적 의미를 이해하는 데 조금은 어려울 수 있다. 그래도 이 책을 통해 특수상대성이론과 일반상대성이론을 잘 이해해도 반은 성공이다.

 

 

 

 

※ Trivia

 

 

* 지구 표면에서 적도 위의 두 점으로부터 북극을 꼭지점으로 그린 커다란 삼각형은 내각의 합이 180도라는 유클리드의 정리를 만족시키지 않는다. (158쪽)

 

‘꼭짓점’이라고 쓰는 게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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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쩐지 미술에서 뇌과학이 보인다 - 환원주의의 매혹과 두 문화의 만남
에릭 캔델 지음, 이한음 옮김 / 프시케의숲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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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미술을 주제로 한 책을 넘기다 보면 손이 갑자기 멈춰지는 곳이 있다. ‘도대체 뭘 그린 거지?’라는 의문을 품게 하는 바로 추상미술이다. 추상(抽象)은 현대미술을 이해하는 키워드다. 이는 칸딘스키(Kandinsky), 몬드리안(Mondrian), 폴록(Pollock), 로스코(Rothko) 등 현대미술사의 한 장을 차지하고 있는 이들의 그림으로 들어가는 문과 같다. 그렇지만 현대미술은 도통 무얼 그렸는지 알 수 없고 어렵게 느껴진다. 추상화는 색이나 선과 같은 순수 조형 요소만으로 이뤄져 있어서 한눈에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다. 형태나 색채가 한눈에 드러나는 구상화와 달리, 추상화는 ‘추상’이란 단어에서 드러나듯 ‘모양이나 모습을 없앤 그림’이라 작가와 시대 배경에 대한 이해 없이는 선뜻 다가서기란 쉽지 않다.

 

추상미술은 표현 방식에서 크게 두 가지 사조로 나뉘었다. 칸딘스키와 몬드리안으로 대표되는 추상표현주의와 신조형주의가 그것이다. 칸딘스키는 감정을 음악적인 선과 색으로 격렬하게 표현하여 ‘뜨거운 추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반면 몬드리안은 최소한의 형태 질서를 선과 색의 비례로 표현해 ‘차가운 추상’으로 자리매김했다. 추상미술은 눈에 보이는 사물을 재현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다양한 시점에서 바라본 사물의 형태를 재구성하는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사물을 객관적으로 보는 방식에서 주관적으로 보는 방식으로 옮겨간 것이다. 결국 관람자들은 화가의 주관적인 보기 방식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작품에 접근할 수 없다.

 

그렇다면 추상미술은 어려운 것인가? 저만큼 멀리 떨어져 있는 현대미술과 친해질 방법은 없을까? 있다. 《어쩐지 미술에서 뇌과학이 보인다》난해한 현대미술에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학문을 제시하는데, 그것은 바로 뇌과학이다. 이 책은 뇌과학적인 접근으로 현대미술을 다룬다. 저자인 에릭 캔델(Eric Kandel)은 기억이 저장되는 신경학적인 구조를 발견한 공로로 2000년에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생물학자이다. 그는 미술과 뇌과학의 통섭을 시도한다. 감성 중심의 예술, 그리고 냉철한 이성 중심의 과학. 아무래도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분야다. 그렇지만 찬찬히 생각해보면 의식과 무의식, 기억, 감정, 감각 등 뇌가 활동하면서 나오는 마음의 문제는 과학자와 예술가 모두의 관심 대상이었다.

 

저자는 미술과 뇌과학을 이어주는 연결고리‘환원주의’를 주목한다. 환원주의는 복잡한 현상을 기본적인 관점으로 설명하려는 입장이다. 저자는 환원주의가 현대미술을 효과적으로 이해하는 데 유용한 새로운 전략이라고 강조한다. 저자가 보기에 추상미술을 시도한 화가들은 직관적으로 환원주의적 방식을 선택하여 무의식적 감정을 표현하려 했다. 그림에 반응하는 뇌가 관람객의 마음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 이해한다면 추상미술 그림이 어렵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가령, ‘색채 추상화’로 유명한 로스코(Rothko)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자신도 모르게 명상의 세계로 이끌린다. 그래서 로스코의 그림을 실제로 보게 되면, 그 그림에서 뿜어져 나오는 고요한 분위기에 압도당한다. 로스코의 그림은 일체의 형상을 거부하고 ‘색으로만 침묵하는 그림’이다. 관람자들은 형태가 없는 그림에 감동하고 눈물을 흘리는 것일까?

 

그 이유는 그림을 보고 인식한 뇌가 ‘하향 처리(top-down processing)를 활발하게 일어났기 때문이다. 하향 처리는 우리 뇌에서 일어나는 감각 정보를 해석하는 과정을 말한다. 이 하향 처리가 일어나게 되면 뇌는 자꾸 무언가를 생각한다. 관람자는 형태가 있는 구상화를 보면 그것이 무엇을 그린 것인지 단번에 알아낸다(이때 뇌에 상향 처리가 이뤄진다). 그러나 추상화를 본 관람자의 머릿속에는 생각이 많아진다. 뇌는 하향 처리를 더욱 열심히 한다. 관람자는 그림을 보면서 과거에 있었던 경험이나 여러 가지 감정들을 떠올린다. 그리고 자신의 주관적인 생각과 감정을 그림에 투영하여 감상한다. 이때 관람자는 추상화를 보면서 감동한다.

 

현대미술은 시각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촉각과 청각, 후각 등 다양한 감각에 의존하면서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여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가장 적절한 방식을 선택하고 있다. 미술의 영역은 지금도 발전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제는 ‘그림은 아름다워야 한다’는 믿음을 버려야 한다. 우리 눈을 즐겁게 해주는 그림이 훌륭한 작품으로 인정받는 시대는 지났다. 동시대 미술의 작품 대부분은 ‘뇌를 즐겁게’ 해준다. 따라서 작품을 이해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능동적으로 작품에 개입하는 것이다. 내가 말하는 개입은 작품이 아름다움을 잘 구현해냈는지 평가하거나 작품의 우수성을 따지는 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림에 우리의 감정이나 상상력을 ‘투입’하자는 의미다. 그러려면 뇌가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추상미술 감상은 나름대로 관람자 본인의 주관적인 관점으로 해석해보는 개입으로 충분하다. 현대미술은 관람자에게 열려 있고, 관람자는 느끼는 대로 자유롭게 상상할 기회를 제공해준다.

 

 

 

 

※ Trivia

 

* 캐츠는 두 번째 전통인 ‘팝아트 예견했고, 특히 로이 릭턴스타인, 재스퍼 존스, 앤디 워홀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194쪽)

 

→ ‘을’을 ‘를’로 고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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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10 17: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5-15 11:44   좋아요 0 | URL
폴록의 그림에 영감을 받은 사진이라니, 어떻게 나올지 정말 기대됩니다. ^^

책을사랑하는현맘 2019-05-18 20: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현대 추상 미술은 관람자의 상상력을 요구하죠. 전 어렸을 때는 추상 미술이 너무 싫었거든요. 답이 없어서요. (주입식 교육의 피해자라고나 할까요) 그런데 지금은 좋네요. 나이가 들어가며 상상력과 자유를 배워 갑니다~^^
오랜만이죠? 건강히 잘 지내셨나요? 성실히, 꾸준히, 늘 독서와 리뷰 하시는 cyrus님이 계시니 오랜만의 서재가 낯설지 않네요!
(앗! 제가 아이디를 ‘책을 사랑하는 현맘‘에서 ‘숲속도서관‘으로 바꿨네요)

cyrus 2019-05-20 11:47   좋아요 0 | URL
오랜만입니다. 그동안 잘 지내고 계셨죠? ^^ 
시간이 지날수록 알라딘 서재에 처음 알게 된 분들의 닉네임이 하나씩 잊혀요. 그래도 ‘책을 사랑하는 현맘’이라는 닉네임은 기억하고 있어요. 이 닉네임이 정감이 가서 이걸로 계속 부르고 싶네요.. ㅎㅎㅎ
 
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 뇌과학자의 뇌가 멈춘 날, 개정판
질 볼트 테일러 지음, 장호연 옮김 / 윌북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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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이 없는 날들 속에 나와 너는 지쳐가고

또 다른 행동으로 또 다른 말들로

스스로를 안심시키지.

인정함이 많을수록 새로움은 점점 더 멀어지고

그저 왔다갔다 시계추와 같이

매일매일 흔들리겠지.

 

(김광석의 노래 일어나중에서)

 

 

 

술을 많이 마시면 온몸이 나른해지면서 졸음이 온다. 술 한 잔 마시면 그 속에 있는 알코올은 혈액으로 흡수된다. 시간이 지나면 알코올은 모든 몸 조직에 퍼진다. 알코올이 뇌에 도착하면 신체에 특별한 변화가 나타난다. 알코올의 마취작용이 뇌 중추 신경계의 기능을 무디게 만든다. 그래서 술을 마시면 뇌의 활동이 느려져 몸과 정신이 느슨해질 뿐 아니라 도취감마저 느끼게 된다. 술에 취한 상태는 기분을 좋게 하여 잠이 빨리 오게 만든다. 술잔을 여러 번 비우고 나면 감각신경부터 서서히 둔해지고 마침내 중추에 해당하는 척추신경에 이르러 반사 신경도 마비된다. 이때쯤 되면 첫 술잔의 쓰디쓴 술 한 모금에 인상을 찌푸리던 사람들도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과 자제력이 약해진다.

 

프랑스의 시인 보들레르(Baudelaire)는 시간에 구애받는 노예가 되지 않으려면 항상 취하라고 했다. 그것이 무엇이 되던 취하라. 그래야만 반복의 괴물인 시간을 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보들레르는 종교, 도덕과 아름다움이 주는 가치를 믿지 않았다. 그렇듯이 그는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라는 단일한 존재에 대해서도 의문을 품었다. 그는 도취감을 통해 피로감을 일으키는 이성에 벗어나려고 했지만, 한편으로는 언제 어디서든 순간에 일어나는 행복감에 몰입하는 삶의 철학을 말하기도 한다.

 

보들레르는 뇌졸중으로 쓰러지면서 졸지에 반신불수가 되었고, 말하는 능력을 잃어버렸다. 그러나 그는 오직 단 하나의 말은 잊지 않았다. 보들레르가 틈만 나면 입 밖으로 내뱉은 말은 다름 아닌 육두문자인 제기랄이었다. 보들레르는 뇌졸중으로 쓰러지기 전까지 쉽사리 채워지지 않은 허기진 마음을 채워보려고, 술을 마셔보기도 하고 대마초에 의존하기도 했다. 결국 그의 몸은 점점 망가져 너무 빨리 죽음의 길에 이르고 만다. 병상의 보들레르는 이 방법, 저 방법으로 자신의 불만족을 해소하려고 해봐도 끝내 참다운 안식과 행복을 느끼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쾌락에 의존한 인생살이를 통해 끔찍한 교훈을 얻은 보들레르는 지옥 같은 세상과 반죽음 상태에 이른 자신에 대한 구역질이 날 때마다 제기랄을 내뱉었다.

 

만약 인간이 이성과 언어 등을 담당하는 좌뇌를 상실한다면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며 무능력자(단독으로는 법적인 행위를 할 수 없는 자)가 되는 걸 감수해야 한다. 이토록 좌뇌는 인간의 실체, 라는 존재를 표현하는 핵심 기관이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라고 부르면서 설명할 수 있는 건 사람마다 좌뇌의 기능이 다르기 때문이다. 나는 좌뇌이며 좌뇌가 나인 셈이다. 어느 날 갑자기 뇌졸중에 걸려 좌뇌를 쓰지 못하게 된다면 말년에 욕쟁이 환자로 살다간 보들레르의 심경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뇌과학자는 뇌졸중 전조증상을 느끼자마자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촉망받는 젊은 과학자였던 질 볼트 테일러(Jill Bolte Taylor)19961210일 아침에 자신에게 뇌졸중이 왔음을 깨닫는다. 이때 당시 그녀의 나이는 서른 일곱이었다.

 

 

 

 

    

  연구소까지 가는 길을 머릿속에 떠올리고 있을 때, 갑자기 오른쪽 팔이 마비가 되어 옆으로 풀썩 떨어지며 균형을 잃었다. 그 순간 알았다.

  ‘맙소사, 뇌졸중이야! 내가 뇌졸중에 걸렸어!’

그리고 다음 순간, 이런 생각이 스쳤다.

  ‘우아, 이거 멋진데!’

일시적으로 황홀한 마비 상태에 빠졌다.

 

(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30)

    

 

 

뇌졸중 진단을 받은 그녀는 장래가 밝은 뇌과학자에서 환자가 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뇌과학자였다. 왜냐하면 그녀는 뇌 기능이 점점 상실되어가는 과정을 몸소 체험하며 관찰했기 때문이다. 흔치 않은 경험을 하게 된 그녀는 8년간의 치료 끝에 회복에 성공한다.

 

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는 뇌졸중 투병 생활을 한 뇌과학자가 쓴 책이다. 하지만 이 책은 단순히 환자로 살아가면서 경험하거나 느낀 것을 보여주는 투병일기에 머물지 않는다. 뇌졸중을 예방하는 방법과 뇌졸중 환자를 위한 식이요법을 알려주는 책도 아니다. 저자는 뇌졸중 경험으로 얻은 뇌에 관한 신비롭고 놀라운 통찰을 들려준다. 저자에게 뇌졸중은 절망의 병이 아니었다. 저자가 그토록 알고자 했던 뇌의 기능에 관해, 그리고 인간 존재의 경이로움을 일깨워준 ‘축복의 병이였다.

 

저자는 투병 생활을 하면서 우리 삶을 지배하는 뇌의 능력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는다. 특히 그녀는 뇌졸중이 오기 전까지 알아차리지 못했던 우뇌의 특별한 기능을 발견한다. 출혈로 인해 좌뇌가 완전히 멈추게 되자 그동안 조용히 잠들어있던 우뇌가 번쩍 눈을 뜨게 된다. 우뇌가 활발히 작동하면서 그녀의 의식은 일종의 열반 상태에 빠져든다. 대부분 사람은 좌뇌 위주로 사고하기 때문에 꼬리에 꼬리를 무는 크고 작은 생각들에 휩싸이면서 살아간다. 그렇다 보니 자신과 전혀 관련 없는 생각에 매달리게 되고, 오지 않는 미래에 대한 괜한 걱정으로 소중한 시간을 낭비한다. 우뇌는 좌뇌와 달리 낙관적이다. 평화를 좋아하며 사랑, 공감 같은 기분 좋게 만드는 감정을 표현하는 일을 한다. 우뇌가 활발하면 즐겁고 기쁜 일에 몰입할 수 있다. 좌뇌와 우뇌는 서로 다른 기능을 하고 있지만, 그 활동은 상호보완적이다. 그래서 저자는 좌뇌와 우뇌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살아간다면 세상을 균형 있게 바라볼 수 있다고 볼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뇌를 나이 들어서도 건강하게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은 나온 셈이다. 몸과 마찬가지로 지속해서 뇌에 일정하게 자극을 주면서 살아야 한다. 아침에 집을 나설 때 설렘이 느끼지 못할 때, 언제나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의 뇌는 자극에 대한 반응이 약해진다. 그냥 살아가는 것에 익숙해지면 안 된다. 언제나 반짝이는 눈으로 바라보는 아이들처럼 그렇게 세상을 바라보아야 한다. 변화 없는 삶, 도전하지 않는 삶은 단조롭고 지루하듯이 우리의 뇌는 자극이 없는 것을 싫어한다. ‘이 나이에 무슨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뇌를 신선하게 자극할 일을 찾아봐야 한다. 현실에 안주하면서 살아갈수록 뇌는 소리 없이 죽어간다. ()가 죽어 누워 있을 때 어떻게 해서든 일어나야 한다. 책을 다 읽고 난 후에 김광석의 노래 일어나를 들었다. 김광석의 노래를 들으면서 내()가 잘살고 있는지 안부를 묻고 싶어졌다.

 

 

 

 

 

 

일어나 일어나 다시 한 번 해보는 거야

일어나 일어나 봄의 새싹들처럼

      

 

 

리뷰 제목은 윌리엄 포크너(William Faulkner)의 소설 제목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을 패러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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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ta 2019-04-29 1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빠마 모습 보여주세요~

cyrus 2019-05-01 11:42   좋아요 0 | URL
레드스타킹 인스타에 가면 제 얼굴 사진 볼 수 있어요... ㅎㅎㅎㅎ

vita 2019-05-01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 팔로잉했어 우리 싸이러스는 똑같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