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와 아인슈타인 박사
링컨 바넷 지음, 송혜영 옮김, 박병현 감수 / 글봄크리에이티브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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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와 아인슈타인 박사(The Universe and Dr. Einstein). 어느 과학 교양서에 붙여진 평범한 제목이다. 제목만 보면 이 책이 무슨 내용인지 짐작할 수 있으리라. 《우주와 아인슈타인 박사》는 말 그대로 아인슈타인의 우주론(cosmology)을 쉽게 소개한 책이다. 이 책은 아인슈타인이 살아 있을 때인 1948년에 출간되었다. 그때 당시 아인슈타인은 독일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하여 프린스턴 고등연구소 교수로 활동하고 있었다. 이 책에 실린 추천사는 아인슈타인이 직접 썼다.

 

 

 나의 상대성이론의 핵심개념이 지극히 잘 소개돼 있으며, 더 나아가 우리가 알고 있는 물리학 지식의 현주소를 아주 적절하게 기술해놓았다.

 

(아인슈타인의 추천사, 6쪽)

 

 

아인슈타인이 언급한 ‘물리학 지식의 현주소’는 원전의 초판이 나온 1948년 당시의 과학 수준을 말한다. 《우주와 아인슈타인 박사》는 네 차례나 개정됐다. 아인슈타인이 세상을 떠나기 5년 전에 개정 2판이 나왔으며 아인슈타인 사후인 1957년에 개정 3판이 나왔다. 《우주와 아인슈타인 박사》의 저자 링컨 바넷(Lincoln Barnett)이 세상을 떠난 후인 1985년, 2014년에도 개정판이 나올 정도로 아인슈타인 물리학의 핵심을 잘 설명한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았다.

 

책 제목은 너무 평범하지만, 부제는 눈길을 끈다. ‘왜 우리는 상대성이론을 철학해야 하나?(Why should we philosophize the Theory of Relativity?)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부제가 번역본 제목으로 정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부제는 표제보다 더 독자들에게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과학 이론인 상대성이론과 철학은 무슨 관련이 있을까? 혹자는 부제를 보자마자 《우주와 아인슈타인 박사》가 ‘과학철학’을 논하는 책이 아닐까 봐 의구심 들 수도 있겠다. 이 책이 과학철학과 무관하다고 볼 수 없다. 과학철학은 과학에 바탕을 둔 세계관을 인식하는 방식에 관해 고찰하는 철학의 한 분야이다. 과학철학은 부분적으로는 인식론(epistemology)과 관련이 있다. 인식론은 진리를 인식하는 행위의 본질적인 의미와 그 행위의 한계 등을 탐구하는 철학의 한 영역이다. 그러므로 《우주와 아인슈타인 박사》가 말하는 ‘철학’은 인식론을 뜻한다.

 

책의 저자는 상대성이론이 과학적 가치를 뛰어넘어 존 로크(John Locke), 조지 버클리(George Berkeley), 데이비드 흄(David Hume)으로 이어지는 인식론자들의 이론적 체계를 발전시키는 철학적 기반이라고 말한다. 로크는 데카르트(Descartes) 다음으로 근대 인식론의 출발점을 제공한 사상가이다. 로크는 자신의 책 《인간 오성론》에서 ‘위치의 상대성’을 간접적으로 언급했다. 로크가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을 예견했다고는 볼 수 없지만, 그는 시간과 공간의 상태가 그것을 관찰하는 사람의 위치에 따라 상대적으로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특수상대성이론의 핵심은 광속(빛의 속도)과 물체의 등속 운동 등 자연계 내 물체의 모든 운동은 일정하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특수상대성이론을 어렵게 생각한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이 이론에는 우리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실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미 언급했듯이 관찰자의 위치에 따라서 일정하게 움직이는 광속과 물체의 등속 운동이 달라져 보인다. 로크가 생각한 ‘위치의 상대성’과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은 공통으로 ‘객관적 인식이 가능하다’라고 보는 인간의 합리적인 정신을 흔들어놓는다.

 

《우주와 아인슈타인 박사》는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과 일반상대성이론이 무엇인지 감이 잘 잡히지 않는 독자를 위한 입문서이다. 요즘 나오고 있는 아인슈타인 물리학 입문서들에 비하면 상당히 구식으로 느껴지지만, 이래 봬도 물리학의 달인 아인슈타인이 극찬한 전설의 책이다. 이 책에 인식론을 부연 설명한 내용이 없어서 상대성이론의 철학적 의미를 이해하는 데 조금은 어려울 수 있다. 그래도 이 책을 통해 특수상대성이론과 일반상대성이론을 잘 이해해도 반은 성공이다.

 

 

 

 

※ Trivia

 

 

* 지구 표면에서 적도 위의 두 점으로부터 북극을 꼭지점으로 그린 커다란 삼각형은 내각의 합이 180도라는 유클리드의 정리를 만족시키지 않는다. (158쪽)

 

‘꼭짓점’이라고 쓰는 게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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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쩐지 미술에서 뇌과학이 보인다 - 환원주의의 매혹과 두 문화의 만남
에릭 캔델 지음, 이한음 옮김 / 프시케의숲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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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미술을 주제로 한 책을 넘기다 보면 손이 갑자기 멈춰지는 곳이 있다. ‘도대체 뭘 그린 거지?’라는 의문을 품게 하는 바로 추상미술이다. 추상(抽象)은 현대미술을 이해하는 키워드다. 이는 칸딘스키(Kandinsky), 몬드리안(Mondrian), 폴록(Pollock), 로스코(Rothko) 등 현대미술사의 한 장을 차지하고 있는 이들의 그림으로 들어가는 문과 같다. 그렇지만 현대미술은 도통 무얼 그렸는지 알 수 없고 어렵게 느껴진다. 추상화는 색이나 선과 같은 순수 조형 요소만으로 이뤄져 있어서 한눈에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다. 형태나 색채가 한눈에 드러나는 구상화와 달리, 추상화는 ‘추상’이란 단어에서 드러나듯 ‘모양이나 모습을 없앤 그림’이라 작가와 시대 배경에 대한 이해 없이는 선뜻 다가서기란 쉽지 않다.

 

추상미술은 표현 방식에서 크게 두 가지 사조로 나뉘었다. 칸딘스키와 몬드리안으로 대표되는 추상표현주의와 신조형주의가 그것이다. 칸딘스키는 감정을 음악적인 선과 색으로 격렬하게 표현하여 ‘뜨거운 추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반면 몬드리안은 최소한의 형태 질서를 선과 색의 비례로 표현해 ‘차가운 추상’으로 자리매김했다. 추상미술은 눈에 보이는 사물을 재현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다양한 시점에서 바라본 사물의 형태를 재구성하는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사물을 객관적으로 보는 방식에서 주관적으로 보는 방식으로 옮겨간 것이다. 결국 관람자들은 화가의 주관적인 보기 방식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작품에 접근할 수 없다.

 

그렇다면 추상미술은 어려운 것인가? 저만큼 멀리 떨어져 있는 현대미술과 친해질 방법은 없을까? 있다. 《어쩐지 미술에서 뇌과학이 보인다》난해한 현대미술에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학문을 제시하는데, 그것은 바로 뇌과학이다. 이 책은 뇌과학적인 접근으로 현대미술을 다룬다. 저자인 에릭 캔델(Eric Kandel)은 기억이 저장되는 신경학적인 구조를 발견한 공로로 2000년에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생물학자이다. 그는 미술과 뇌과학의 통섭을 시도한다. 감성 중심의 예술, 그리고 냉철한 이성 중심의 과학. 아무래도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분야다. 그렇지만 찬찬히 생각해보면 의식과 무의식, 기억, 감정, 감각 등 뇌가 활동하면서 나오는 마음의 문제는 과학자와 예술가 모두의 관심 대상이었다.

 

저자는 미술과 뇌과학을 이어주는 연결고리‘환원주의’를 주목한다. 환원주의는 복잡한 현상을 기본적인 관점으로 설명하려는 입장이다. 저자는 환원주의가 현대미술을 효과적으로 이해하는 데 유용한 새로운 전략이라고 강조한다. 저자가 보기에 추상미술을 시도한 화가들은 직관적으로 환원주의적 방식을 선택하여 무의식적 감정을 표현하려 했다. 그림에 반응하는 뇌가 관람객의 마음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 이해한다면 추상미술 그림이 어렵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가령, ‘색채 추상화’로 유명한 로스코(Rothko)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자신도 모르게 명상의 세계로 이끌린다. 그래서 로스코의 그림을 실제로 보게 되면, 그 그림에서 뿜어져 나오는 고요한 분위기에 압도당한다. 로스코의 그림은 일체의 형상을 거부하고 ‘색으로만 침묵하는 그림’이다. 관람자들은 형태가 없는 그림에 감동하고 눈물을 흘리는 것일까?

 

그 이유는 그림을 보고 인식한 뇌가 ‘하향 처리(top-down processing)를 활발하게 일어났기 때문이다. 하향 처리는 우리 뇌에서 일어나는 감각 정보를 해석하는 과정을 말한다. 이 하향 처리가 일어나게 되면 뇌는 자꾸 무언가를 생각한다. 관람자는 형태가 있는 구상화를 보면 그것이 무엇을 그린 것인지 단번에 알아낸다(이때 뇌에 상향 처리가 이뤄진다). 그러나 추상화를 본 관람자의 머릿속에는 생각이 많아진다. 뇌는 하향 처리를 더욱 열심히 한다. 관람자는 그림을 보면서 과거에 있었던 경험이나 여러 가지 감정들을 떠올린다. 그리고 자신의 주관적인 생각과 감정을 그림에 투영하여 감상한다. 이때 관람자는 추상화를 보면서 감동한다.

 

현대미술은 시각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촉각과 청각, 후각 등 다양한 감각에 의존하면서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여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가장 적절한 방식을 선택하고 있다. 미술의 영역은 지금도 발전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제는 ‘그림은 아름다워야 한다’는 믿음을 버려야 한다. 우리 눈을 즐겁게 해주는 그림이 훌륭한 작품으로 인정받는 시대는 지났다. 동시대 미술의 작품 대부분은 ‘뇌를 즐겁게’ 해준다. 따라서 작품을 이해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능동적으로 작품에 개입하는 것이다. 내가 말하는 개입은 작품이 아름다움을 잘 구현해냈는지 평가하거나 작품의 우수성을 따지는 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림에 우리의 감정이나 상상력을 ‘투입’하자는 의미다. 그러려면 뇌가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추상미술 감상은 나름대로 관람자 본인의 주관적인 관점으로 해석해보는 개입으로 충분하다. 현대미술은 관람자에게 열려 있고, 관람자는 느끼는 대로 자유롭게 상상할 기회를 제공해준다.

 

 

 

 

※ Trivia

 

* 캐츠는 두 번째 전통인 ‘팝아트 예견했고, 특히 로이 릭턴스타인, 재스퍼 존스, 앤디 워홀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194쪽)

 

→ ‘을’을 ‘를’로 고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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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10 17: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5-15 11:44   좋아요 0 | URL
폴록의 그림에 영감을 받은 사진이라니, 어떻게 나올지 정말 기대됩니다. ^^

책을사랑하는현맘 2019-05-18 20: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현대 추상 미술은 관람자의 상상력을 요구하죠. 전 어렸을 때는 추상 미술이 너무 싫었거든요. 답이 없어서요. (주입식 교육의 피해자라고나 할까요) 그런데 지금은 좋네요. 나이가 들어가며 상상력과 자유를 배워 갑니다~^^
오랜만이죠? 건강히 잘 지내셨나요? 성실히, 꾸준히, 늘 독서와 리뷰 하시는 cyrus님이 계시니 오랜만의 서재가 낯설지 않네요!
(앗! 제가 아이디를 ‘책을 사랑하는 현맘‘에서 ‘숲속도서관‘으로 바꿨네요)

cyrus 2019-05-20 11:47   좋아요 0 | URL
오랜만입니다. 그동안 잘 지내고 계셨죠? ^^ 
시간이 지날수록 알라딘 서재에 처음 알게 된 분들의 닉네임이 하나씩 잊혀요. 그래도 ‘책을 사랑하는 현맘’이라는 닉네임은 기억하고 있어요. 이 닉네임이 정감이 가서 이걸로 계속 부르고 싶네요.. ㅎㅎㅎ
 
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 뇌과학자의 뇌가 멈춘 날, 개정판
질 볼트 테일러 지음, 장호연 옮김 / 윌북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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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이 없는 날들 속에 나와 너는 지쳐가고

또 다른 행동으로 또 다른 말들로

스스로를 안심시키지.

인정함이 많을수록 새로움은 점점 더 멀어지고

그저 왔다갔다 시계추와 같이

매일매일 흔들리겠지.

 

(김광석의 노래 일어나중에서)

 

 

 

술을 많이 마시면 온몸이 나른해지면서 졸음이 온다. 술 한 잔 마시면 그 속에 있는 알코올은 혈액으로 흡수된다. 시간이 지나면 알코올은 모든 몸 조직에 퍼진다. 알코올이 뇌에 도착하면 신체에 특별한 변화가 나타난다. 알코올의 마취작용이 뇌 중추 신경계의 기능을 무디게 만든다. 그래서 술을 마시면 뇌의 활동이 느려져 몸과 정신이 느슨해질 뿐 아니라 도취감마저 느끼게 된다. 술에 취한 상태는 기분을 좋게 하여 잠이 빨리 오게 만든다. 술잔을 여러 번 비우고 나면 감각신경부터 서서히 둔해지고 마침내 중추에 해당하는 척추신경에 이르러 반사 신경도 마비된다. 이때쯤 되면 첫 술잔의 쓰디쓴 술 한 모금에 인상을 찌푸리던 사람들도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과 자제력이 약해진다.

 

프랑스의 시인 보들레르(Baudelaire)는 시간에 구애받는 노예가 되지 않으려면 항상 취하라고 했다. 그것이 무엇이 되던 취하라. 그래야만 반복의 괴물인 시간을 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보들레르는 종교, 도덕과 아름다움이 주는 가치를 믿지 않았다. 그렇듯이 그는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라는 단일한 존재에 대해서도 의문을 품었다. 그는 도취감을 통해 피로감을 일으키는 이성에 벗어나려고 했지만, 한편으로는 언제 어디서든 순간에 일어나는 행복감에 몰입하는 삶의 철학을 말하기도 한다.

 

보들레르는 뇌졸중으로 쓰러지면서 졸지에 반신불수가 되었고, 말하는 능력을 잃어버렸다. 그러나 그는 오직 단 하나의 말은 잊지 않았다. 보들레르가 틈만 나면 입 밖으로 내뱉은 말은 다름 아닌 육두문자인 제기랄이었다. 보들레르는 뇌졸중으로 쓰러지기 전까지 쉽사리 채워지지 않은 허기진 마음을 채워보려고, 술을 마셔보기도 하고 대마초에 의존하기도 했다. 결국 그의 몸은 점점 망가져 너무 빨리 죽음의 길에 이르고 만다. 병상의 보들레르는 이 방법, 저 방법으로 자신의 불만족을 해소하려고 해봐도 끝내 참다운 안식과 행복을 느끼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쾌락에 의존한 인생살이를 통해 끔찍한 교훈을 얻은 보들레르는 지옥 같은 세상과 반죽음 상태에 이른 자신에 대한 구역질이 날 때마다 제기랄을 내뱉었다.

 

만약 인간이 이성과 언어 등을 담당하는 좌뇌를 상실한다면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며 무능력자(단독으로는 법적인 행위를 할 수 없는 자)가 되는 걸 감수해야 한다. 이토록 좌뇌는 인간의 실체, 라는 존재를 표현하는 핵심 기관이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라고 부르면서 설명할 수 있는 건 사람마다 좌뇌의 기능이 다르기 때문이다. 나는 좌뇌이며 좌뇌가 나인 셈이다. 어느 날 갑자기 뇌졸중에 걸려 좌뇌를 쓰지 못하게 된다면 말년에 욕쟁이 환자로 살다간 보들레르의 심경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뇌과학자는 뇌졸중 전조증상을 느끼자마자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촉망받는 젊은 과학자였던 질 볼트 테일러(Jill Bolte Taylor)19961210일 아침에 자신에게 뇌졸중이 왔음을 깨닫는다. 이때 당시 그녀의 나이는 서른 일곱이었다.

 

 

 

 

    

  연구소까지 가는 길을 머릿속에 떠올리고 있을 때, 갑자기 오른쪽 팔이 마비가 되어 옆으로 풀썩 떨어지며 균형을 잃었다. 그 순간 알았다.

  ‘맙소사, 뇌졸중이야! 내가 뇌졸중에 걸렸어!’

그리고 다음 순간, 이런 생각이 스쳤다.

  ‘우아, 이거 멋진데!’

일시적으로 황홀한 마비 상태에 빠졌다.

 

(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30)

    

 

 

뇌졸중 진단을 받은 그녀는 장래가 밝은 뇌과학자에서 환자가 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뇌과학자였다. 왜냐하면 그녀는 뇌 기능이 점점 상실되어가는 과정을 몸소 체험하며 관찰했기 때문이다. 흔치 않은 경험을 하게 된 그녀는 8년간의 치료 끝에 회복에 성공한다.

 

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는 뇌졸중 투병 생활을 한 뇌과학자가 쓴 책이다. 하지만 이 책은 단순히 환자로 살아가면서 경험하거나 느낀 것을 보여주는 투병일기에 머물지 않는다. 뇌졸중을 예방하는 방법과 뇌졸중 환자를 위한 식이요법을 알려주는 책도 아니다. 저자는 뇌졸중 경험으로 얻은 뇌에 관한 신비롭고 놀라운 통찰을 들려준다. 저자에게 뇌졸중은 절망의 병이 아니었다. 저자가 그토록 알고자 했던 뇌의 기능에 관해, 그리고 인간 존재의 경이로움을 일깨워준 ‘축복의 병이였다.

 

저자는 투병 생활을 하면서 우리 삶을 지배하는 뇌의 능력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는다. 특히 그녀는 뇌졸중이 오기 전까지 알아차리지 못했던 우뇌의 특별한 기능을 발견한다. 출혈로 인해 좌뇌가 완전히 멈추게 되자 그동안 조용히 잠들어있던 우뇌가 번쩍 눈을 뜨게 된다. 우뇌가 활발히 작동하면서 그녀의 의식은 일종의 열반 상태에 빠져든다. 대부분 사람은 좌뇌 위주로 사고하기 때문에 꼬리에 꼬리를 무는 크고 작은 생각들에 휩싸이면서 살아간다. 그렇다 보니 자신과 전혀 관련 없는 생각에 매달리게 되고, 오지 않는 미래에 대한 괜한 걱정으로 소중한 시간을 낭비한다. 우뇌는 좌뇌와 달리 낙관적이다. 평화를 좋아하며 사랑, 공감 같은 기분 좋게 만드는 감정을 표현하는 일을 한다. 우뇌가 활발하면 즐겁고 기쁜 일에 몰입할 수 있다. 좌뇌와 우뇌는 서로 다른 기능을 하고 있지만, 그 활동은 상호보완적이다. 그래서 저자는 좌뇌와 우뇌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살아간다면 세상을 균형 있게 바라볼 수 있다고 볼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뇌를 나이 들어서도 건강하게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은 나온 셈이다. 몸과 마찬가지로 지속해서 뇌에 일정하게 자극을 주면서 살아야 한다. 아침에 집을 나설 때 설렘이 느끼지 못할 때, 언제나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의 뇌는 자극에 대한 반응이 약해진다. 그냥 살아가는 것에 익숙해지면 안 된다. 언제나 반짝이는 눈으로 바라보는 아이들처럼 그렇게 세상을 바라보아야 한다. 변화 없는 삶, 도전하지 않는 삶은 단조롭고 지루하듯이 우리의 뇌는 자극이 없는 것을 싫어한다. ‘이 나이에 무슨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뇌를 신선하게 자극할 일을 찾아봐야 한다. 현실에 안주하면서 살아갈수록 뇌는 소리 없이 죽어간다. ()가 죽어 누워 있을 때 어떻게 해서든 일어나야 한다. 책을 다 읽고 난 후에 김광석의 노래 일어나를 들었다. 김광석의 노래를 들으면서 내()가 잘살고 있는지 안부를 묻고 싶어졌다.

 

 

 

 

 

 

일어나 일어나 다시 한 번 해보는 거야

일어나 일어나 봄의 새싹들처럼

      

 

 

리뷰 제목은 윌리엄 포크너(William Faulkner)의 소설 제목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을 패러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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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ta 2019-04-29 1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빠마 모습 보여주세요~

cyrus 2019-05-01 11:42   좋아요 0 | URL
레드스타킹 인스타에 가면 제 얼굴 사진 볼 수 있어요... ㅎㅎㅎㅎ

Vita 2019-05-01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 팔로잉했어 우리 싸이러스는 똑같구나~~~
 
호킹의 빅 퀘스천에 대한 간결한 대답
스티븐 호킹 지음, 배지은 옮김 / 까치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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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가 신(God)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주장하는 유신론자들에게 우주는 기적이 일어나는 신비스러운 세계이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행성이 규칙적으로 움직이고, 지구에 인간을 비롯한 다양한 생명체가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기적을 일으킨 존재가 신이다. 그러나 확실성을 추구해온 과학은 발전을 거듭할수록 종교의 불확실성에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지난해에 세상을 떠난 이론물리학자 스티븐 호킹(Stephen Hawking)은 신을 찾을 필요 없이 과학의 법칙으로 우주를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호킹의 마지막 책 《호킹의 빅 퀘스천에 대한 간결한 대답》(줄여서 ‘빅 퀘스천’)을 읽고 있자니 ‘오컴의 면도날(Ockham’s Razor)이 떠오른다. 중세 영국의 철학자 윌리엄 오컴(William of Ockham)은 논리적이지 않은 군더더기는 불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쉽게 풀자면, 가장 단순한 설명일수록 진리에 더욱더 가깝고 아름답다는 원칙이다. 현상을 설명하는 데 있어 가정(假定)은 최소한으로 해야 하며 쓸모없는 가정을 면도날로 잘라버리듯 제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호킹이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근거는 존재론적 검약의 원리인 ‘오컴의 면도날’에 따를 때 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없다는 데 있다.

 

호킹은 생전에 여전히 풀리지 않은 우주의 법칙,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인류의 운명에 대해 고민했다. 《빅 퀘스천》은 그 고민과 관련된 거대한 질문(Big Questions) 10가지에 대한 최후의 대답이다. 이 책은 그의 관심사를 확인할 수 있는데, 질문의 주제는 ‘지적 생명체 존재 여부’, ‘인공지능의 미래’ 그리고 ‘우주 식민지 건설 가능성’ 등이다. 그는 또 이 책에서 인류가 향후 천 년 안에 핵전쟁이나 환경 재난이 일어나서 지구가 심각한 타격을 입을 거라고 경고한다. 사실 그의 경고는 이 책이 처음은 아니다. 생전에 언론과 인터뷰를 했을 때나 대중 강연을 했을 때 얘기했던 내용이다. 호킹은 인류가 살아남으려면 우주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야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그는 미래의 인류를 위한 대안으로 ‘우주 식민지 시나리오’를 제시한다. 그는 달이나 화성에 인류가 정착할 수 있는 행성이라고 전망한다.

 

우주에 인류를 보내야 한다는 그의 야심 찬 생각에 동의하지만, ‘식민지’라는 표현을 왜 써야 했는지 궁금하다. 과연 우주 식민지는 지구를 대체하는 새로운 삶의 터전이 될 수 있을까? 지금까지 모든 사회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인류사는 전쟁의 역사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문명의 발전 과정에서 전쟁은 필수 불가결한 상황이다. 미래의 인류는 우주에서 새로운 문명을 세우려고 할 것이고, 지구와 비슷한 환경이 유지되는 우주의 신세계를 차지하기 위해서 전쟁도 불사할 것이다. 호킹은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은 인공지능의 발전에 누구보다도 우려를 표시한 학자이다. 그는 ‘성능 좋은 AI 무기’가 등장하게 되면 군비 확장 경쟁이 지속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지구를 넘어 우주로 뻗어가는 군비 확장 경쟁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인공지능 연구는 우주 개발 사업과도 깊이 연계돼 있다. 우주 식민지 개발이 착수하면 사람의 노동력이 투입되는 대신 인공지능 기술에 의존하는 일이 늘어날 것이다. 우주에서 군비 확장을 노리는 강대국들은 우주에서도 쏠 수 있는 미사일과 이에 대한 방어체계를 구축할 것이다. 실제로 미국 트럼프 정부는 2020년까지 ‘우주군’을 창설하고 이와 관련해 향후 5년간 80억 달러의 예산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주]. 우주 패권을 둘러싼 강대국 간의 경쟁이 심화한다면 냉전시대 우주 전쟁 시나리오가 재현될 가능성이 있다.

 

 

 나는 우리가 지구라는 행성 위에 살면서 우리의 미래에 대해서 무관심하게 행동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호킹의 빅 퀘스천에 대한 간결한 대답》, 205쪽)

 

 

출처는 확실하지 않지만, 호킹은 “자신을 장애인이라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장애인이 아니다”라는 말을 남긴 적이 있다. 그는 장애를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지 않았고, 장애에 갇혀 살지도 않았다. 오히려 연구를 통해 더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주체적인 삶을 살았다. 그칠 줄 모르는 호기심은 그의 삶을 완성했다. 호킹은 전 세계 장애인들에게 꿈과 희망을 전해주었던 시대의 영웅인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성공적인 미래를 만들어나가기 위해서 고개를 들어 우주를 바라보자는 그의 당부가 장애인들에게 공감을 살지 미지수다. 호킹은 지구라는 행성 위에 사는 인류를 ‘우리’라는 대명사로 호명하면서 미래에 무관심하다고 지적한다. 그가 말하는 ‘우리’에는 분명히 장애인들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비장애인이 꿈꿔야 할 미래와 장애인이 꿈꿔야 할 미래는 같지 않다. 호킹이 쓴 대명사 ‘우리’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는 미래의 의미를 보지 못하게 한다. 대부분 장애인은 이동권이 보장되어 마음 놓고 편하게 나들이할 수 세상을 원한다. 그것이 바로 그들이 꿈꾸는, 아주 현실적인 문제이자 ‘미래’이다. 장애인들도 우주를 향해 눈길을 돌릴 수 있고, 우주에서의 생활이 가능한 미래에 기대할 것이다. 그렇지만 장애인 이동권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 한, 그들이 우주에 정착하고 적응하려면 꽤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따라서 새로운 미래를 만들기 위해선 장애인 이동권에 대한 고민도 안고 가야 한다. 그런데 호킹의 글에는 그러한 고민의 흔적이나 문제의식이 보이지 않는다. 그의 글을 읽을 때마다 ‘장애인이라 생각하지 않은 장애인’, 즉 ‘비장애인’의 위치에 서서 쓴 것처럼 느껴지는 건 기분 탓인가. 호킹은 자기 생각을 ‘간결하게’ 쓰고 싶은 바람에 면도날을 너무 많이 휘두르고 말았다.

 

 

 

 

[주] <[달 착륙 50년 요동치는 우주패권] 美 우주군 선언 · 러는 우주방어 현대화…불붙는 ‘스타워즈’> (서울경제, 2019년 1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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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19-03-29 07: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과학을 사랑하는 직장동료가 이 책을 읽더니 제목만큼 간결하거나 쉽지 않다고 해서 엄두를 못 내고 시무룩했는데ㅠㅠ cyrus 님 존경합니다@_@;;;;;;;

cyrus 2019-04-08 05:43   좋아요 0 | URL
정말 쉽게 쓴 책입니다. 작년에 나온 <스티븐 호킹의 블랙홀> 일부 내용과 비슷해요. <스티븐 호킹의 블랙홀>은 번역한 이종필 씨의 해설이 곁들어 있어서 호킹의 업적을 이해할 수 있는 입문서로 좋습니다. ^^

페크(pek0501) 2019-03-30 16: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런 비판 자세 좋습니다. 응원합니다.

cyrus 2019-04-08 05:46   좋아요 0 | URL
비판 없는 독서는 재미없어요. 가끔은 저자의 생각에 의문을 품고, 도발하는 일도 있어야 해요. 그래야 책 읽을 맛이 나죠. ^^
 
진화의 배신 - 착한 유전자는 어째서 살인 기계로 변했는가
리 골드먼 지음, 김희정 옮김 / 부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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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스의 승리(Pyrrhic victory)라는 말이 있다. 많은 희생을 감수하면서 얻은 승리를 가리킬 때 쓰는 말이다. 고대 그리스의 명장 피로스는 로마와 싸워 승리를 거뒀지만, 자신도 적지 않은 손해를 봤다. 그의 부대는 수많은 장군과 숙련된 병사들을 잃었기 때문이다. 아군의 몰락을 불러올 승전이라면 패배한 것과 다름없다. 이것이 그 무섭다는 승자의 저주(The winner’s curse)이다.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 즉 인간이 지구상에 살아남은 것은 행운이다. 그러나 지금 인간은 새롭게 우리를 위협하는 질병 속에서 신음한다. 인간은 진화에 성공하여 오랫동안 지구상에 살아남은 승리자가 되었지만, ‘승자의 저주를 피하지 못한다. 질병과의 전쟁은 오늘의 일만은 아니다. 중세 유럽에 흑사병이 유행하여 인구의 4분의 1이 희생되고, 장원제가 붕괴하는 거대한 변화를 야기했다. 인플루엔자 치료제가 없었던 1918년에 전 세계를 휩쓴 스페인 독감은 제1차 세계 대전과 맞물려 유행하면서 5000만 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대재앙이었다. 육체적으로 매우 취약한 인간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물론 우리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알고 있다. 인간은 유전자 교환을 통한 유성 생식이 가능한 종이다. 유전자의 다양성은 인간의 장기적 생존에 매우 중요하다. 유전적 다양성이 풍부해질수록 질병 면역력이 강한 인간이 태어난다. 그러나 그들 중 일부는 특정 질병에 취약한 속성을 물려받을 수도 있다.

 

진화의 배신은 바로 이 문제를 다루고 있는 책이다. 닳고 닳은 소재지만, 저자의 시각만큼은 무척 참신하다. 심장병 전문 의사인 저자는 인류는 역사적으로 너무나 연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먼저 강조한다. 생존율을 높여주는 네 가지 유전 형질 덕분에 인류는 멸종하지 않았다. 저자가 제시한 유전 형질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 굶주림을 피하기 위해 필요 이상으로 음식을 먹으려는 유전 형질이다. 초기 인류는 굶어 죽지 않기 위해서 포만감을 느낄 정도로 음식을 먹었다. 그들이 살았던 시대는 식량이 귀한 시절이었다. 초기 인류의 과식은 생존을 위한 본능이었다. 그러나 현생 인류는 식량 부족에 대해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는 얼마든지 원하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과식이 일상화되면서 당뇨와 고혈압 같은 질병에 걸릴 확률은 높아진다.

 

두 번째, 물과 소금을 많이 섭취하려는 욕구이다. 초기 인류는 아사(餓死)뿐만 아니라 탈수로 인한 죽음의 공포도 시달렸다. 그러므로 탈수 방지를 위해 물과 소금을 많이 섭취하는 습관이 생겼고, 인류는 체내의 물과 소금을 적절히 보존할 수 있도록 진화되었다. 그러나 현생 인류는 소금에 중독되었다. 우리의 뇌는 짠맛을 통해 만족감을 느끼게 된다. 짠맛이 주는 만족감에 익숙해진 뇌는 그 맛을 잊지 못해 계속해서 짠 음식을 찾는다. 과도한 염분 섭취는 성인병을 일으키는 원인이다. 염분 섭취량이 많아지면 갈증이 유발되어 물을 많이 마시게 된다. 물을 너무 많이 섭취하면 체내의 염분이 부족해지고, 전해질이 희석돼 물 중독 증상이 나타나 생명을 위협할 수 있다.

 

세 번째는 위기 상황을 스스로 인식하거나 그것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는 생존 본능이다. 인류는 생명을 위협하는 상황(폭력, 살인, 전쟁 등)에 대해 두려움을 느낀다. 이러한 심리적 반응은 우리의 내면이 보내는 경고 신호이다. 위험한 상황일 수 있으니 얼른 피하라.’ 과거에 비하면 현생 인류는 비교적 안전한 세상 속에 살고 있다. 그렇지만 지나치게 두려워하고 불안에 떠는 성향은 우울증을 유발할 뿐만 아니라 자살까지 불러일으킨다.

 

마지막 네 번째는 과다 출혈을 막는 응고 작용이다. 혈액 응고가 정상적으로 이루어지면 과다 출혈로 목숨을 잃는 일은 없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현생 인류는 혈액 응고 작용으로 인해 목숨을 잃을 확률이 높아졌다. 응고가 너무 많이 일어나면 혈전이 생긴다. 혈전이 생기면 심장마비, 뇌졸중 발생 위험이 커진다.

 

네 가지 유전 형질 덕분에 각종 질병에 면역력이 강한 개체의 인류가 살아남았고, 자손도 남길 수 있었다. 하지만 저자는 현대에 들어서는 이 기능들이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승자의 저주에 빠진 인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저자는 미래의 인류가 겪을 수 있는 상황을 세 가지 시나리오로 제시한다. 하나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다음 후손들이 태어나기 전에 모든 인류는 각종 질병에 시달리다가 죽는다는 시나리오다. 두 번째는 건강해지기 위해 인류가 스스로 제 몸을 관리한다는 시나리오다. 세 번째는 날이 갈수록 발전하는 과학기술을 이용하여 건강을 유지한다는 시나리오다. 다만, 이 시나리오는 과학에 완전히 의존하는 인류의 탄생을 예고하는 포스트휴머니즘(post-humanism)에 가까운 발상은 아니다.

 

이 책은 유전자와 진화의 배신이 인간을 성인병 위험에 노출된 연약한 존재로 만들게 한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건강이 나빠진다고 유전자 탓만 할 수 없다. 앞서 언급했듯이 인간은 그동안 진화의 문턱을 수차례 넘어서면서 살아남은 지구의 승리자인 것처럼 살아왔다. 그렇지만 그 과정에서 인간은 얻은 것도, 잃은 것도 있었다. 그런데 인간은 승리감에 도취해서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자만과 방심은 금물이다. 진화의 배신은 인간을 진화의 배신에 속절없이 무너지고 마는 연약한 존재라는 점을 증명하기 위해 쓴 책이 아니다. 저자는 비관주의자도, 낙관주의자도 아니다. 이 책은 인간은 언제나 좋은 방향으로 진화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한다.

 

 

진화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인류주연의 장대한 드라마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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