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프레이야 > 이쁜 순수우리말 시어

* 까치노을 - 풍랑이 일 때 솟아오르는 하얀 물거품

* 구슬눈물 - 구슬처럼 둥글게 맺힌 눈물

* 다소니 - 사랑하는 사람

* 다손말 - 사랑하여 하는 말

* 명주바람 - 부드럽고 화창한 바람

* 미리내 - 은하수

* 발편잠 - 마음 놓고 편안히 자는 잠

* 보득솔 - 작달막하고 가지 많은 어린 나무

* 살싸하다 - 맵고 아리다

* 싸울아비 - 무사

* 작달비 - 굵고 거세게 내리는 비

* 장어구름 - 모양이 길고 빛깔이 몹시 검은 구름

* 할림비치 - 눈흘기기를 잘 하는 사람

* 희나리 - 채 마르지 아니한 생나무 장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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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라고 하면 이제 자신있다.

  내가 동구중학교를 다니면서 가장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독서를 뽑을 수 있을 정도로 나는 정말 열심히 책을 읽은 것 같다. 처음엔 그냥 국어 수업이 끝나고 한 10분, 20분 시간이 남을 때마다 국어선생님께서 소장하고 계신 책들을 가져오셔서 우리에게 읽으라고 하셔서 그냥 심심하니까.~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도 모르게 어느 순간부터 책의 매력을 느끼게 된 것 같다. 그리고 가장 큰 변화는 내 꿈과 내 가치관과 내 삶이 변화되었다는 점이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내 꿈을 더욱 구체화 시켰다. '그냥 선생님이 되고 싶어!' 라는 일반적인 생각에서 선생님에 관한 책들을 읽으면서 선생님은 학생들을 얼마나 사랑해야 하는지 등등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되었다.

  또 나의 고민을 마음속에 숨겨 놓고 꺼내지 않는 버릇이 있었는데 책을 읽고 독서 감상문을 쓰면서 내 고민을 털어놓게 되었다. 국어선생님께서는 줄거리는 짧게 느낌은 길게를 강조하셨다. 그래서 책을 읽고 그 책에 대한 나의 경험이나 생각을 주로 쓰게 되었다. 독서 감상문을 쓰면서 나의 고민들을 털어놓게 되었고 나의 감상문을 읽은 선생님이나 친구들이 조언을 해주기 시작했다. 그 뒤로 나는 많은 것이 변화되었다. 마음속에 고민을 쌓아 두는게 아니라, 책을 통해 나의 고민들을 날려 보내게 된 것이다. 이렇게 나의 삶이 변화되었다.

  국어선생님과 책을 읽고 독서 감상문을 쓰며 중학교 2년을 보내고 나는 고1이 되었다. 고1이 되어 느낀 것 도 정말 많이 있다. 내 친구는 한 달에 15만원씩 주고 논술을 배운다고 했다. 논술! 나도 걱정 많이 된다. 하지만, 두렵지 않다. 난 누구보다 독서의 위력을 알고 앞으로 독서를 하며 내 생각을 정리하다보면 논술 실력도 늘 거라는 걸 믿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서 수많은 간접적 체험을 할 수 있었고 나의 삶을 바꿔놓은 신비한 책의 매력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다. 머릿속에서 책속의 '현실'을 떠올리는 그 짜릿함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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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코와 도오루.

주인공 이름에 익숙해지는데도 꽤나 걸렸다.

이복형제인 이 두 명을 사이에 두고 일어나는 여러 친구들의 심리 상태가 꽤나 흥미진진하게 잘 나타나 있다. 특히 도오루와 다카코가 같은 반이면서도 한 번도 제대로 말을 해본 적이 없는데 그 친구들에 의해 보행제의 마지막에 이르러서 말문을 트고 서로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하는 부분에서 나까지 마음이 뿌듯해지는 것 같았다.

이 소설을 통해 가장 많이 얻은 소득이라면, 요즘 아이들의 연애관과 가장 근접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 국가가 다르니 다른 점도 있겠지만 요즘 아이들이 남녀 공학에서 이 정도의 이성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갖고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어쩌다 보니 방학때 일본 소설을 많이 읽게 되는데 나름대로 소득이 있었다.

다카코, 미와코, 안나의 우정도 도오루와 시노부의 우정도 너무나 부러울 정도로 돈독했다. 특히 미국에 떨어져있으면서도 다카코와 도오루의 화해를 도와주는 안나의 역할이 꽤나 호기심을 자극했다. 약간의 추리 소설적인 요소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안나의 남동생의 출현도 그렇고. 소설의 완성도보다는 사춘기에 겪을만한 여러 이성에 대한 호기심 내지는 이성교제에 대해 나름대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생겨서 기분이 좋았다. 우리 아이들이 이성에 대해 이렇게 생각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나 할까?

다시 정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상당히 기분이 유쾌해지는 책임에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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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울렸다. 점심시간-.

교실 다섯 칸 크기의 학교도서관으로 우르르 몰려오는 학생들의 발걸음 소리가 점점 크게 들린다. 지난 25일 점심시간의 서울 망우1동 송곡여고 도서관은 금세 1학년 학생들로 왁자지껄했다. 이게 무슨 영문인가. 책장에 몰려 책을 뒤지는 학생들이, 10분 정도 더 지나니, 열람실 한쪽에서 북새통을 이뤄 100여명으로 늘어났다. 이곳저곳에서 책장에 꽂힌 책을 뽑고 펼치고 넣고 인터넷에서 주제어 검색을 하고, “여기 있을 거야” “찾았다” 소리로 정신이 없다.


학교도서관에 ‘보물’이 있다


영락없이 무슨 숨겨둔 보물이라도 찾는 모습이다. “맞아요. 보물 찾기입니다. 신간·기증 도서들의 한쪽 면을 복사해 게시해두고 아이들이 그 면이 실린 책을 찾아오면 보물을 줍니다. 오늘은 1학년만 참여하는 날이죠.” 송곡여고 도서관에서 13년째 일하는 이덕주(38) 사서교수는 “더 많은 학생들이 도서관을 찾아 책과 친해지도록 기획한 행사 가운데 하나”라고 말했다. 그럼 보물은? “떡볶기 시식권, 동네서점 책 교환권, 그리고 2만원짜리 콘서트 티켓입니다. 콘서트 티켓 때문에 오늘 유난히 많이 몰리네요.” 1학년의 보물 찾기로 도서관이 떠들썩해도, 열람실 한쪽에 마련된 우아한 ‘온돌방’엔 다른 학생들이 눕거나 엎드려 쉬며 책을 읽고 있다.




이날 보물 찾기는 학생동아리인 도서관사랑봉사단(‘서랑’) 회원들이 준비했다. 30여명의 서랑 봉사단은 책장 정리, 대출·반납, 서가 청소 등 궂은 일을 도맡기도 하지만 독서토론, 영상뉴스 제작 같이 책과 도서관을 주제로 한 여러 문화활동을 펼친다. ‘서랑’ 이미현(16·1학년)양은 “우리 봉사단은 사서선생님의 ‘독선’을 견제하고 감시하기도 하지만(웃음), 선생님과 함께 우리 도서관을 누구나 찾을만한 곳으로 만드는 일을 하는 게 보람스럽다”고 말했다.

콘서트 티켓은 아니라도, 학교도서관에는 확실히 ‘보물’이 있다.

서울 용동초등학교 도서관의 배지혜(31) 사서교사도 학생·학부모와 함께 도서관에 숨은 보물을 찾는 사람이다. 대학도서관에서 5년 일했고 이곳 학교도서관 ‘책꿈터’에서 계약직 사서교사로 일한 지 1년이지만 “책을 읽으며 달라지는 아이들 모습을 볼 수 있는 이곳에서 해볼만한 일이 훨씬 더 많다”고 했다. “사서교사가 서가 정리나 대출·반납 업무만 하는 게 아닙니다. 도서관을 살아 있는 곳으로 만드는 건 사서교사 하기 나름이죠.“

그가 평소 하는 일을 보자. 그는 어린이책 출판사나 지은이와 협력해 교내 강연회를 기획한다. 또 학부모를 초청해 독서지도를 한다. 자주 도서관을 찾는 학부모들을 위해 독서통신문 보내기도 잊지 않는다. 담임교사들한테는 수업 때 활용할만한 어린이책 정보를 제공한다. 고학년, 저학년생한테 눈높이에 맞춘 독서지도를 매주 벌인다. 지난달엔 학부모, 학생, 출판사와 함께 인형극, 구연동화, 글짓기, 책 만들기 등 같은 ‘책잔치’를 열었다. 그러니까 “사서교사는 학생과 교사, 학부모, 그리고 출판사와 지은이, 게다가 지역 시민단체까지 서로 연결하고 소통하게 하는 중심이자, 적절하게 지식·정보를 재구성해 서비스하는 전문가“(이성희 인천 방축고 도서관 담당교사·35)다.


빗속 궐기로 쟁취한 ‘154의 사건’


최근에 학교도서관에 ‘사건’이 하나 있었다. 신문에도 방송에도 잘 보도되지 않았데도 사서교사들과 학교도서관 살리기운동을 한다는 사람들은 “역사적 사건“이라는 의미 달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내용인즉슨, 내년에 전국 공립 초중고등학교의 학교도서관에 154명 사서교사가 새로 임용된다는 소식이다. 이달 초에 교육인적자원부가 214명의 사서교사 자리를 늘리겠다고 밝힌 데 이어 전국 시도교육청이 인원을 조정해 154명 임용을 최종 고시했다. 전국 교사가 38만6천명(2004년)이나 되는 나라에서 고작 154명 교사 증원이 이처럼 ‘사건’으로 받아들여지는 건 왜일까.

거기엔 학교도서관 살리기운동을 벌여온 사람들의 작지만 큰 싸움이 숨어 있다. “154, 정말 뜻깊은 세 자릿수입니다. 현재 전국 초중고교 열 곳 가운데 아홉 곳에 학교도서관이 있다고 합니다. 또 2003년부터 교육부가 나서 학교도서관의 시설을 개선하는 지원사업이 펼쳐치고 있지요. 도서관이 친근한 문화공간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어요. 그런데 정규 사서교사가 운영하는 학교도서관은 3%도 되질 않아요.“ 이덕주 교사는 “보건소에 시설과 약은 있는데 의사·간호사는 없다고 생각해보세요, 지금 학교도서관이 그런 상황입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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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도서관법에 따라 1968년 첫 사서교사 33명이 학교에 임용된 이래 올해까지 임용된 사서교사의 정원은 313명이다. 이런 숫자는 전국 학교 1만826곳이고 그 가운데 89.6%가 도서관을 갖추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턱없는 인원이다. 그 수도 최근에야 갑자기 늘어났다. 사서교사 임용은 2000년엔 아예 없었고 2001년에 1명만 늘어났다. 2003년 33명, 2003년 45명, 2004년 34명으로 크게 늘었지만 올해엔 17명으로 다시 줄었다.

그러다 올해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학교도서관 문화운동 네트워크’(학도넷)의 공동대표인 김종성 계명대 교수(문헌정보학)는 “이건 학교도서관 역사에서 기억될 만한 사건”이라고 했다. “지난 9월에 내년도 사서교사의 대폭증원 계획이 정부예산 문제 탓에 백지화됐죠. 그러자 9월30일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학교도서관 관계자 700여명이 빗속에서 궐기대회를 열었습니다. 보수적이고 소극적인 면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 할만한 문헌정보학인들이 빗속에서 집단행동을 벌인 겁니다.“ 이렇게 확보된 154명 정원은 지난해에 비해 거의 10배 는 규모이고, 국내 공립학교 사서교사 전체의 절반에 이르는 숫자다. “그러니 역사적 사건은 절대 과장이 아닙니다.”


살아 있는 도서관 문화 부흥이 열쇠


그렇지만 학교도서관 사서교사들이 앞으로도 세 자릿수로 늘지는 불투명하다. 교육부 학교도서관담당 유경종(45) 사무관은 “교사 증원은 먼저 총예산이 결정되면 그에 따라 총 신규임용 교사 규모가 산출되고 그 틀 안에서 교과교사와 비교과교사의 비율이 조정돼 결정된다”며 “이런 시스템에서 2007년에 사서교사가 다시 얼마나 더 증원될지는 현재로선 예측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교과별 교사들의 증원 요구도 거센 상황에서 힘 없는 사서교사의 증원 규모는 미리 정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또 교육당국은 정규 사서교사가 아니라도 사서직원이나 계약직 사서교사를 사서전담인력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2005년 4월 현재 학교도서관의 사서 전담인력은 정규 교사 313명 외에 계약직 사서교사 1881명, 사서직원 57명이 있으며 그밖엔 교과교사들이 겸직하고 있다.

‘전국학교도서관 담당교사 모임’ 대표이자 학도넷 공동대표인 이성희(35) 교사는 “사서교사를 책 정리나 대출·반납을 하는 인력으로 이해해선 안 된다”라며 “지식·정보를 새로 조직해 학생·교사한테 서비스하는 전문적 협력자가 되려면 학교교육에서도 자기목소리를 낼 수 있는 정교사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사서교사 한 명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학교교육의 질이 확실히 달라진다는 게 여러 사례에서 확인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3%’의 사서교사 배치율을 몇 년 안에 당장 바꾸기 힘든 현실에서, 사서교사를 꾸준히 늘리는 동시에, 학교 밖의 협력자들과 함께 학교도서관 문화를 활성화하자는 대안도 모색되고 있다. 이성희 교사는 특히 “지역 시민사회단체나 학부모들과 함께하는 여러 문화행사들이 도서관을 중심으로 벌어져야 책의 창고가 아닌 도서관으로 살아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국 1만여곳 학교도서관이 살아난다면 우리 책문화엔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격주간 출판전문지 <기획회의>를 내는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한기호 소장은 학교도서관의 부흥이 좋은 책 출판의 여건을 만들어줄 것으로 내다봤다. “우리 책시장엔 수요의 한계가 뚜렷합니다. 개인 독자의 주머니에 기대어 팔리는 책만 내는 출판의 미래는 어둡습니다. 전국 1만곳 학교도서관이 안정화하고 책을 업으로 하는 전문가가 1만명이 되는 시대가 온다면, 학생·교사를 위한 좋은 책을 꾸준히 만들 통로가 국내 출판계에도 열릴 겁니다.” 그는 “학교도서관이라는 공적 영역이 넓어지면 출판도 살고, 기초학문·예술도 살고, 덩달아 좋은 책을 볼 수 있는 학생·교사의 교육 수준도 높아질 것”이라며 ‘학교도서관과 출판의 선순환’을 기대했다.

글·사진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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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진샘 2005-12-04 1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서교사는 아니지만 도서관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기 때문에 스크랩해둔다.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이들의 ‘그늘’이 될 수 있기를

 -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읽고 -


  1. 안타까운 기억 하나

“교장선생님 다른 데 말고 꼭 거기에 써주세요. 비가 오면 비를 맞지 않게, 여름이면 해가 너무 뜨겁지 않게, 거기에 지붕을 덮어주세요. 혹시 형을 기다리고 서 있는 어린 동생이 비 맞지 않도록……. 그래서 그걸 바라보는 형이 가슴 아프지 않도록…….”


  그 누군가에게 뜨거운 여름이면 시원한 ‘그늘’이 되어주거나, 비가 쏟아질 때 우산을 같이 나눈 적이 있었는가 생각해 보았다. 아니 나의 제자, 나의 피붙이에게는 그런 배려를 했을지언정 이 책에 나오는 윤수나 은수 같이 사회적 약자들에게 한 번도 손 한 번 제대로 내밀어 본 적이 없다는 것이 부끄럽고 가슴 아팠다. 더군다나 사회로부터 지워지지 않는 낙인이 찍힌 그들을 같은 인간으로서 이해하려고 해 본 적은 더더욱 없었다. 그들이 사회로부터 받았을 냉대, 무관심이 얼마나 컸을 것인가? 정윤수의 삶의 기록인 ‘블루노트’를 읽는 내내 가슴이 너무나 시려왔다. 그러면서 내 인생에 지워지지 않는 한 아이가 떠올랐다. 그 아이도 이런 삶을 살았을 터인데. 지금 그 아이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 것인가? 가슴 한 편이 싸해진다.

  

  몇 년 전, 결혼식을 하루 앞둔 어느 토요일. 결혼식에 가져갈 짐을 아침부터 급하게 꾸려 시댁으로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우연히 라디오 뉴스에서 들려오는 기사가 문득 우리 반 그 아이의 이야기가 맞을 거라는 직감이 강하게 들었다. 무섭도록 강하게. 모중학교 모양이 아버지에게 재떨이를 던져 아버지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단 몇 분도 안 되는 아나운서의 그 몇 마디를 듣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만 같았고, 온 몸이 떨려왔다. 결국 올 것이 온 것만 같은 그런 느낌. 며칠 전에 형사가 그 아이가 특정한 시간에 학교에 있었는지를 확인하러 왔을 때도 그 아이가 설마 그런 행동을 했을 거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는데 결국 일이 터지고야 말았다. 그 당시에는 빡빡한 학교 일정과 결혼을 앞두고 이런 저런 개인사로 인해 그 아이에 대해 잊고 지낼 때가 많았다. 아니 일부러 잊고만 싶었다. 내 힘으로는 그 아이를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처음부터 그 아이는 우리 학교에 정을 못 붙였다. 수시로 가출을 했고, 심지어 지방의 공장에 가서 한 달 남짓 일을 하다가 돌아오기도 했고, 강릉까지 놀러갔다가 그 곳으로 전근 간 체육 선생님의 도움으로 학교에 돌아오기도 했다. 그 아이를 찾기 위해 토요일까지 반납하며 친구를 동원해 지하철역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에서 그 아이를 잡아놓고 큰 소리로 훈계를 하기도 했었다. 그 아이가 무엇 때문에 집에 있을 수 없는지는 알지도 못한 채 말이다. 그 아이가 가정에서 어떤 삶을 살고 있었는지 그 때는 전혀 생각할 수조차 없었기에 그 아이를 배려할 수도 없었다. 어찌 그리 무심할 수 있었던 것일까? 한 번이라도 가정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봤더라면, 아니 그 아이 집에 같이 가 봤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많이 들었다. 아마도 나 또한 겉모양만 다 큰 어른일 뿐, 그에 걸맞는 성숙한 인격은 아직도 지니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아이가 알콜 중독자이며 끼니도 제대로 먹지도 못해 빈사상태인 아버지에게 매일 맞았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는 이미 모든 것이 종료된 뒤였다. 그 아이는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에 감호소에 가게 되었고, 그 곳에서 1년 남짓 교육을 따로 받게 되었다. 하지만 난 한 번도 그 아이에게 면회를 가보지도 않았고, 가볼 엄두도 내질 못했다. 그 때 나 또한 모든 것이 두려웠다. 그 아이에게 어떤 피치 못할 사정이나 사연이 있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나와는 전혀 다른 공간에 살고 있는, 그래서 근접해서는 안 되는 흔히 보통사람들이 ‘범죄자’에게 갖고 있는 선입관을 나도 모르게 갖고 있었을 것이다. 얼마나 무섭고도 지독한 편견인가? 아마도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이런 생각을 은연중에 사회 구성원들에게 심어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회적으로 규정지은 ‘범죄’를 저지른 그들을 집단적으로 격리시키는 것이 범죄를 예방하는 것이라고. 그리고 그들을 ‘사형’이라는 제도를 이용해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지게 해야 한다고.

  정윤수가 알콜 중독자인 아버지의 매질을 피해 동생과 함께 어느 누구의 도움도 닿지 않는 우리 사회의 밑바닥을 닥치는 대로 살아가는 부분을 읽지 않았다면 내가 가르쳤던 그 아이의 삶의 진실에 대해서 다시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을 것이다. 소년원에서 힘이 센 아이들이 둘러쌌을 때 윤수와 은수가 맛 보았던 극도의 불안이나 치욕도 몰랐을 것이고, 어른들의 앵벌이에 아무렇지도 않게 이용당하다 눈이 멀어 죽어 가는 동생을 쳐다볼 수밖에 없는 처절함이나 세상에 대한 끝없는 배신감도 절대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더군다나 살인자에게도 그만의 ‘양심’과 ‘진실’이 있을 수 있다는 것도 도저히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누군가 윤수가 그런 최악의 상황에 이르기 전에 단 한 번이라도 그의 이야기를 따뜻하게 들어주고, 조금만 배려해주었던들 그가 그렇게 되었을까?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 또한 그 아이에게 단 한 번도 따뜻하게 대해주었던 기억은 없다. 단지 빨리 그 아이에게서 벗어나서 덮어버리고픈 충동만이 아직도 강하게 남아 있을 뿐이다. 정윤수의 이야기를 읽으며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그 아이가 떠올랐던 것은 어떤 미안함이나 죄책감 때문일 것이다.



2. 사회적인 공명(共鳴)의 필요성


 우리들은 그저 이 책에 나오는 문유정처럼 나의 삶이 얼마나 버겁고 힘든지 세상이 알아주기만을 바라고 있지는 않았는가? 내가 아무렇게나 생각하는 일상의 지루하고 남루한 삶 조차도 너무나 간절히 바라는 그 누군가가 있다는 걸 잊고 있었다. 하지만 문유정은 정윤수라는 사형수를 만나면서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하룻밤만 지나면 처음으로 자신의 맘을 열어 이야기했던 정윤수가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는, 자신이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 앞에 오열하고 만다.

  윤수에게 닿을 수는 없지만 그와 아픔을 같이 하고픈 유정은 자신이 죽기보다 싫어하는 어머니를 용서하게 된다. 어렸을 때 부잣집 사촌 오빠로부터 강간을 당하고 집에 돌아온 유정을 감싸주고 이해해주기 보다는 오히려 ‘유정이 꼬리를 쳤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유정의 잘못으로만 생각했던, 그래서 사촌 오빠 보다도 더욱 이해할 수 없고 더 이상 얼굴을 마주하고 싶지도 않았던 어머니를, 내일이면 이 세상 사람이 아닐 윤수를 위해 힘겹게 용서를 했던 것이다. 이제는 누군가에게 베푸는 삶을 살고 싶기에, 산간 오지 학교의 아이들에게 자신의 얼마 되지도 않는 사비를 털어 학용품을 사서 보내고 그 아이들과 새 해 일출을 보고자 했던 윤수를 위해서. 그 아이들을 만날 수도 없고, 다시는 해가 떠오르는 것도 볼 수 없는 윤수를 위해서 유정이는 온 몸을 다해서 어머니를 용서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너무나도 가슴이 아팠다. 왜 우리 사회는 이토록 삶을 간절히 살고자하는 한 청년을 죽일 수밖에 없는 것인가? 아니, 그가 그토록 원하는 아이들과 함께 일출이라도 볼 수 있도록 배려도 해 줄 수 없는 것일까? 안타까웠다. 우리가 만들어 놓은 법과 사회 제도라는 것이 때로는 이렇게도 비인간적이고 사회적인 약자에게는 조금의 배려도 없는 것이었다니.

  문유정이 어머니를 힘겹게 용서하는 장면을 읽으면서 떠오른 단어가 ‘공명(共鳴)’이었다. 함께 울림. 유정이가 윤수를 위해 자신의 치부도 어머니에게 드러내었듯이 우리도 그들의 이야기를 조금이라도 들어줘야하는 것은 아닐까, 그들에게 또 한 번의 기회 정도는 주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우리도 그들이 느낀 아픔을 조금이라도 공유해야 한다. 적어도 우리가 그들을 같은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하고 있다면 말이다.

  그렇기에 사회적으로 사형 폐지론에 대해서 좀더 심도 깊게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스피릿 베어’라는 소설을 보면 사회적으로 아주 큰 죄를 지은 사람에게 다시 한 번 스스로 뉘우칠 수 있도록 ‘원형평결심사제도’라는 것을 시행한다. 절대로 혼자서는 도망칠 수 없는 무인도에 죄를 지은 사람을 풀어 놓고는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도움만 주고 모든 것을 홀로 해결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렇게 정신적으로 치유할 수 있도록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기회를 주는 것이다. 사형제도는 소설 속에서 문유정이 말한 것처럼 살인한 자에게 다시 법적으로 공인된 사형이라는 이름의 ‘살인’으로써 보복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죄를 지은 사람에게도 한 번 쯤은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을 수 있는 공간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적어도 사회적으로 같이 마음을 마주 울릴(공명) 필요가 절실히 요구된다. 모니카 수녀님의 헌신적인 모습은 아주 훌륭한 본보기가 될 수 있다. 모두가 꺼리는 그들의 손을 잡아주고 그들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처럼 슬퍼하고 이해해주던 그녀의 모습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은 비단 나뿐만은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3. 다시 일상으로


  뜨거웠던 여름, 계곡 산 그늘에서 이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책의 내용을 어렴풋하게나마 짐작만 하고 있었다. 그저 약간의 교훈을 가미한 한 사람의 안타까운 삶에 대한 이야기겠거니 하며 가볍게 책장을 넘겼다. 하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가슴이 답답해지면서 책장을 넘기는 것조차 힘들었다. 특히 문유정이 자신의 아파트 주변에서 한 아이를 둘러싸고 마구 때리는 아이들을 경찰에 신고하는 부분을 읽을 때는 숨이 턱에 찰 정도로 답답했다. 아무리 신고를 해도 곧장 달려오지 않는 경찰. 그리고 지나가는 사람들. 어쩌면 내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렇게 답답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렇게 지나쳤던 것이다. 어딘가에서 무차별적인 폭력에 노출된 채 누군가의 도움을 간절히 바라고 있을 그 아이들을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쳤던 것이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이제는 “누군가를 죽인 사람은 당연히 법적으로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나의 제자들에게도. 적어도 그들에게도 아무에게나 말 못할 사연이 있을 거라고, 그걸 어느 누군가에게 말하고 이해는 받아야 할 것이 아니냐고, 그래서 다시 시작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최소한 한 번 정도는 다시 기회를 주어야 하지 않겠냐고 이야기를 해야 한다. 이 울림에 더욱 힘을 실어 사회적으로 크게 울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다시는 정윤수 같이 안타까운 생명이 삶을 아예 포기하지 않도록 사회적인 ‘보살핌’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는 걸 느꼈다. 우리 사회가 윤수의 동생처럼 비오는 날 오갈 데가 없어 형을 기다리는 불쌍한 아이들이 비를 맞지 않도록 ‘운동장 가에 지붕’ 하나 정도 만들어 줄 수 있는 배려 정도는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 또한 사회적으로 버림받은 이들에게 작으나마 ‘그늘’이 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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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진샘 2005-11-24 15: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주체한 문예공모전에서 작은 상을 하나 수상했다. 사실 이 글에 인용된 그 아이에게 너무나도 미안하다. 그 아이에게 미안해서 수상식에는 못 갈 것 같다. 그냥 좀 뿌듯하다. 하지만 내 주변 샘들에게는 알리지 않으련다. 너무 부족하고 부끄럽기 때문에. 그래도 이것도 작은 삶의 기록이니까 이 곳에는 올리고 싶었다. *^^*

abraxas 2010-04-07 2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잘 읽었습니다.. 전 이 작품을 읽고 그저 사형제도 그 자체에 대해서만 논했는데 따뜻한 시선으로 서로를 품자는 이런 글이 나올 수도 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