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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플랜 사차원 유럽 여행 - 읽고만 있어도 좋은
정숙영 지음 / 부키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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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름대로 일상을 떠나자는 목표아래,  서해 끝 안면도에서 동해 끝 속초 가까이에 있는 청간정까지 여행을 떠났건만 전혀 '비일상'이라고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떠남'의 종지부에 남은 것은, 동해 여행을 시댁 식구들과 함께해서 불편했던 사소한 것들을 남편에게 짜증섞인 말로 퍼부은 것, 아직도 보살핌의 손길이 필요한 너무 어린 나의 아이들이 귀찮아졌다는 것, 그리고 산더미 같은 빨래,  그 와중에 아이들 저녁 밥 먹이다 깨뜨려 산산조각이 된 유리컵의 날카로운 조각들. 일상의 잔해들은 너무나 신랄하다 못해 우렁각시라도 나타나 하루만 나의 역할을 완벽하게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소망이 생긴다. 이게 무슨 일상 탈출이냐! 처참해진다. ㅜ.ㅜ

  더군다나 동해 바다 앞에서 2박 3일 동안 장맛비만 구경하다가 돌아온 심정이란... 그 와중에 동해 여행 첫날부터 승용차 '와이퍼'가 고장나 도로에서 3시간 남짓 절절매기까지 했으니 말 다했다. 그러나 어쩌랴? 또 평소의 그 체념 앞에 무덤덤해지고 만다. 내가 떠나봤자지, 뭐. 그래도 그 와중에 이 "노플랜 사차원 유럽여행"을 갖고 다니며 틈틈이 읽으며 나름대로 일상의 지겨움을 날려버린 것만 같아 나 자신이 기특할 따름이다. 평소에는 멀미나서 달리는 승용차 안에서 잡지도 제대로 못 보던 내가 고장난 차량 안에서도 굴하지 않고 이 책을 읽었으니 말이다. 그만큼 이 책은 나 자신을 조금씩 조금씩 빨아들이고 있었다. 그리고 자꾸 내 가슴이 방망이질쳤다. 어떻게해서든지 한 번은 떠나봐야하지 않을까? 뭐, 떠나면 어떻게 되긴 될 것 같은데... 전혀 예상 밖이었다.

  이 책을 읽기 시작할 때만 해도, 좋아하는 분이 추천한 책이니까 그리 나쁘지는 않겠지 하며 읽기 시작한 건데 다른 어떤 '여행기'보다 흡입력이 월등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엄청난 '귀차니스트'에다가 게으름의 대가라고도 할 수 있다. 배낭여행이라면 코방귀를 뀌고는 돈이 배로 들지언정 난 가이드 설명 들으며 패키지로 떠나련다. 그 고생길을 왜 사서 가냐? 여행도 좀 편하게 가자고. 이런 생각을 평소에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또래인 정박사와 욱의 여행기 중 스위스에서 캠핑하는 부분, 하루 종일 시골의 한적한 마을을 자전거 타고 여유롭게 다니는 모습을 보니 너무나 부러워 한 번은 꼭 스위스에서 캠핑을 하고 말리라는 각오가 슬슬 타올랐다. 그리고 나 또한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에서 막연히 느꼈던 프랑스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 낼 수 있었다. 어떻게 그 강렬한 느낌을 그동안 잊고 있었을까? 일상은 사람을 이리도 무감각하게 만드는군. 나도 빠리에 정말로 가고 싶어졌다.

 세상의 흐름과는 무관하게 나대로의 흐름대로 2003년에는 '싸이'나 '디카'와는 전혀 거리가 먼 생활을 하며 첫째 아들에게 이리저리 치이며 둘째를 나을 준비를 하고 있던 나의 인생은 제대로 굴러간 것일까? 한심하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정박사의 삶이 부러운게 사실이다. 그 당시 '무직'이 몸떨리게 싫었다는 정박사에게는 나의 '투덜거림'은 너무 과분하겠지만 남들이 말하는 정해진 길로만 주~~~욱! 살아온 나의 삶에는 뭔가 빠져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는 곁에 있는 가족들도 버거워 더이상의 인간관계 진전은 보이지도 않은채 매일 매일을 살아나가는 나의 삶. 좀 다시 돌이켜봐야만 할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정박사의 이 책 너무 맘에 들고, 처음에는 좀 거부감이 생기던 정박사의 '날표현'(직설적인 표현이라고 해야 되나?)은 읽으면 읽을수록 정박사의 여행기와 딱 들어맞는 체화된 문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나도 정박사처럼, 여행에서 '김군'과 같은 로망을 한 번쯤은 만들어보고 싶다. 아님 나의 삶을 되돌아볼 수 있는 멋있는 사람들도 만나고 싶다. 어찌되었든 일은 저질러야만 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런데 과연 가능할 것인가? 딸린 식구들을 어떻게 '처리'(좀 심한가? 그래도 정말 솔직한 심정이다. ㅜ.ㅜ)하고 떠날 것인지 좀 길게 현실적으로 생각해 봐야겠다. ^^;;

 자, 현실에 진저리나게 질린 이들이여!! 이 책을 읽고 다시 활력을 되찾을 수 있기를. 그런대로 괜찮은 여행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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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소녀 카르페디엠 8
벤 마이켈슨 지음, 홍한별 옮김, 박근 그림 / 양철북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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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의 내용이 생소한 ‘과테말라 내전’에 관한 것이라는 걸 알았을 때는 그 쪽에 대한 배경지식이 전혀 없다는 것이 꽤나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한 장, 한 장 읽어가다보니 손에서 책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주인공인 15살 소녀 가브리엘라, ‘나무 소녀’에게 점점 빠져 들어갔다. 15살인 그녀가 혼자 감당하기엔 너무나 잔인하고 소름끼치는 이야기들이, 그에 비해 너무나도 편안한 삶에 익숙해져버린 나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어놓는 것만 같았다.  

  가브리엘라가 어른이 되는 의식인 ‘킨세아녜라’중에 나타난 군인이 호르헤 오빠를 잡아가는 대목을 읽을 때만 해도, 가브리엘라처럼 호르헤가 어딘가에서 살아서 다시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랬고 그럴 수 있을 거라고만 단순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병으로 몸이 안 좋던 가브리엘라의 엄마가 돌아가시고, 아빠가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기면 동생들을 자식처럼 잘 돌봐주라고 가브리엘라에게 부탁하는 부분을 읽을 때에는 뭔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결국 마누엘 선생님과 같이 학교에서 공부를 배우던 아이들이 군인들에 의해 무참히 죽어가는 걸 눈 앞에서 지켜보게 되고, 가브리엘라의 삶의 터전이자 근원인 고향 마을이 무조리 불타버린 것을 온 몸으로 확인하는 부분을 읽을 때는, 어떻게 이 모든 것들이 한 순간에 일어날 수 있는지 멍해졌다.

  가족들과 마을 사람들이 무수한 총알에 죽고 무참히 마을이 불타는 순간, 막냇동생이 “엄마! 엄마! 엄마!”하고 가브리엘라를 애타게 찾았을 것을 생각하는 부분을 읽을 때는 잠시 책을 덮어두고 마음을 가다듬어야만 했다. 한참 어리광을 부릴 알리시아 또래인 네 살바기 딸 아이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 어린 아이들이 누군가의 욕심에 의해 만들어진 전쟁에서 무참히 죽어가야만 했다니. 도대체 그들은 누구를 위해서, 무엇을 위해서 그리도 무참히 죽어가야만 했던 것인지 씁쓸하기만 했다. 나 자신이 사회의 일정 부분을 이끌어가야 할 어른으로서 너무나도 큰 책임감을 느끼게 해 주는 대목이었다.  

  하지만 ‘읍내의 학살’에 나오는 그 생생한 죽음의 현장을 묘사한 부분을 읽을 때는 잔인하고 피에 굶주린 군인들의 모습이 너무나 치를 떨게 했다. 그 극악무도한 죽음의 현장을 15살 어린 나이에 나무 위에서 혼자 지켜봐야만 했을 가브리엘라가 안쓰럽기 짝이 없었다. 그 현장에서 같이 죽지 못하고 혼자 살아 남은 죄책감에 시달리는 가브리엘라를 꼭 안아주고 싶었다. 절대 비겁한 행동이 아니었다고. 어느 누구도 너를 ‘겁쟁이’라고 욕할 수 없을 거라고 따뜻하게 말해주고 싶었다.

  모든 것을 잃고, 삶의 희망이었던 알리시아마저 잃어버린 뒤 가브리엘라는 혼자 만의 세계에 빠져버리고 만다. 혼자만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에 몸도 마음도 편안히 둘 수 없었던 그녀가 그 누구도 도울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며 하루 하루를 견뎌나가는 부분은 마음을 안타깝게만 했다. 하지만 자연에서 태어나 나무를 벗하며 살아온 가브리엘라는 지옥같은 수용소 생활에서도 스스로 삶의 희망을 찾아 나선다. 그리고 그 희망을 꿈을 잃어버리고 모든 것을 잃고 살아가는 다른 아이들에게 나누어준다. 간신히 다시 찾은 막내 동생인 알리시아는 전쟁으로 인해 하나뿐인 혈육인 언니에게조차 말문을 닫아버린다. 이런 알리시아에게 가브리엘라는 ‘무서운 것이 있다고 피해 달아나면 안되고 무서운 현실에 당당히 맞서야 나무소녀가 될 수 있다고. 그러려면 먼저 말을 해야 한다’고 이야기해준다. 사실 이 말은 누구보다도 가브리엘라 자신에게도 해 주고픈 말이었을 것이다. 어느 곳으로 가야하는지 아무도 가르쳐주지도 않고 모든 것이 막막하기만 한 가브리엘라는 자연 속에서 다시금 ‘힘’을 얻게 된다.

  그리고 다짐을 한다.

  언젠가는 과테말라로 돌아가, 어린 시절 그 곳에 남겨 두고 온 아름다움을 다시 찾을 것이다. 그 아름다움은 이미 내 마음 속에 깃들어 있는 아름다움과 같을 것이다. 언젠가 과테말라로 돌아가 마리오라는 이름의 특별한 선생님을 찾을 것이다. 그리고 돌아가서 학살에 대해 알릴 것이고, 돌아가서 우리 민족의 노래를 찾을 것이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 준 노래, 한밤 내 영혼이 고요하게 가라앉을 때 바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들을 수 있는 그 노래를.


  이 책을 다 읽고, 전쟁을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가브리엘라 또래의 우리 아이들에게도 꼭 읽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무소녀의 생생한 증언들을 통해 전쟁이 얼마나 사람을 잔인하게 만들 수 있는지, 그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비참하고 치욕적인 죽음을 당해야만 했는지 반드시 알아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지금 이렇게 편안히 살아가는 남아있는 사람으로서의 도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나라 역시 한국 전쟁이라는 크나큰 전쟁의 소용돌이를 겪었을 뿐만 아니라 나무소녀의 증언 못지 않은 죽음의 현장이 있었을 것이다. 아직도 풀리지 않은 ‘학살’의 흔적 또한 남아 있다. 밝혀지지 않은 진실들을 후세에게 알릴 뿐만 아니라 다시는 인류의 큰 재앙인 ‘전쟁’이 절대 일어나지 않도록 발벗고 나서야 할 것이다.

  또한 문명의 이기에 익숙해져서 자연과 유리된 삶을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자연과 동화되어 결국은 ‘나무’(자연)으로부터 해답을 찾아내는 나무소녀의 삶은 큰 가르침을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자연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공존하는 삶의 해법을 우리도 찾아가야할 때가 아닌가 싶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이 재생용지를 사용했다는 것에도 큰 의미를 두고 싶다.

  나의 제자들과도 이 책을 읽으며 나무소녀의 아픔을 함께 느끼고 모두가 평화로운 세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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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처럼 2006-07-07 1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진샘님, 책을 읽으며 느꼈던 감동을 님의 글을 통해 다시 느끼고 갑니다.

수진샘 2006-07-27 2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읽기에 그리 편하지 않은 이 긴 글을 읽어주신 그 자체가 고맙기만 합니다. 이 책 정말 많은 걸 생각하게 했어요.
 
십시일反 - 10인의 만화가가 꿈꾸는 차별 없는 세상 창비 인권만화 시리즈
박재동 외 지음 / 창비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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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생이 되기 전까지 돈이 없고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사람들과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차별 받는 사람들에 대해서 생각해볼 여유조차 없었다. 그런데 대학교 1학년 때 강제철거를 반대하는 시위에 참가했던 선배가 술자리에서 눈물을 흘리며 인사불성이 되도록 술 마시는 것을 보고는 큰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가난한 철거민들을 위해 진심으로 눈물을 흘리고 분통을 터뜨리는 그 선배의 모습이 집에 돌아온 후에도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았다. 그 선배의 모습을 보며 나 또한 가슴이 아팠고, 다음 세대에는 모두가 ‘평등’하고 ‘평화’로운 세상에서 살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일기장에 어설프게나마 적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제는 직장을 갖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하루 하루를 정신없이 보내고 있다. 그저 학생일 때 느끼는 ‘남녀차별’과 결혼 후 육아와 직장 생활의 틈바구니에서 느끼는 여자로서 ‘삶의 무게’는 너무나도 차이가 크다는 걸 절실히 느끼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홍승우의 만화는 여성을 차별하는 사람들에게 일침을 놓고 있다. 엄마 뱃 속에서부터 사회의 차별을 의식하며 살아가야 하는 딸들, 직장에서 똑같이 일하고 왔는데도 불구하고 항상 시댁의 눈치만 봐야하는 며느리들, 결혼 후 남편의 삶의 무게까지 짊어지고 살아가야 하는 아내들의 모습을 보며 바로 나의 모습을 보는 것만 같아 마음이 너무 무거워졌다. 특히 시어머니가, 남편에게 집안일을 도와 달라고 하는 며느리에게 한 ‘하루 종일 직장에서 시달리는 애한테 무슨 일을 또 시켜?’ 이 말은 너무나도 정곡을 찌른 표현이었다. 이 말을 듣고 이 세상의 어느 며느리가 부아가 나지 않겠는가? 작가가 남자인데도 불구하고 어떻게 여자의 입장을 이리도 명쾌하게 대변할 수 있는지 감탄을 금치 않았다. 이것도 ‘남녀차별’적인 발언일까?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으로서의 삶도 그리 순탄치 않다. 유승하의 ‘새봄 나비’에서 주인공의 모습은 우리 사회가 장애인들에게 최소한의 삶의 조건조차 마련해 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잘 나타내고 있다. 어떻게든 아들을 되찾아 다른 엄마들처럼 행복하게 살고 싶은 뇌성마비 장애인인 주인공에게 사회가 해 줄 수 있는 말은 ‘저, 말이죠. 다른 장애인들처럼 그냥 조용히 사세요.’일 뿐인 것이다. 결국 이 주인공에게서 모든 ‘희망’과 ‘행복’을 빼앗고 죽음으로 내몰은 우리는 이런 ‘차별’조차 너무 당연하게만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다시금 반성을 할 필요가 있다. 남들처럼 두 다리로 평범하게 걷지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아들을 만나러 학교에 가서도 아들 이름도 제대로 부르지 못 하는 ‘엄마’의 마음을 우리는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보았는가?
  이 책에서는 요즘 점점 큰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의 ‘차별’받는 모습도  극명하게 잘 드러내고 있다. 아직도 우리 나라 노동자들은 일본 등 선진국에서 약소국가의 민족이라고 차별을 받으며 어렵게 생활을 꾸리고 있는데, 국내에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우리보다 약한 외국인을 그저 돈이 없다고, 우리와 다르다고 천대하고 멸시하며 인간적으로 못할 행동을 서슴지 않고 하고 있다. 고도의 경제 성장 속에서 어쩌면 정작 중요한 것을 잊은 채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최호철의 ‘코리아 판타지’에서 주인공이 ‘나도 피부 검은 친구들이 차별 받을 때는 아무런 느낌이 없었는데... 그 순간, 내가 차별 당하는 것도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된다는 걸 몰랐어.’라고 말하는 부분은 많은 것을 일깨워주고 있다. 나도 누군가에게 차별 당할 수 있다는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우리는 종종 잊고 사는 것이다.
  특히 한 몽골 외국인 노동자가 한국에서 일하다가 정신이상자가 되어 몽골로 돌아갈 때 미처 가지고 가지 못한, 가족들을 위해 샀던 선물을 돌려주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외국인노동자의 집 ‘김해성 목사’의 글을 읽으며 참으로 가슴이 아팠다. 우리 사회는 낯선 외국인 노동자와 ‘상표도 떼지 않은 빨간 여아용 운동화와 아주 고급스러운 여성용 운동화, 그리고 움직이며 짖어대는 장난감 강아지’ 조차 나누지 못할 만큼 인색하고 배려심이 없었던가? 김해성 목사의 마지막 글은 그런 의미에서 가슴에 큰 울림을 주고 있다.

  ‘선물도 하나 없이 빈 손으로 돌아온 아빠를 바라보는 어린 딸과, 큰 돈을 벌어 오겠다고 떠났지만 결국은 초췌한 모습으로 돌아온 병든 남편을 맞는 부인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어떻게 이들을 위로할 수 있을까. 작지만 소중한 이 선물을 어떻게 돌려줄 수 있을까.’

  내가 대학 시절 막연하게 느꼈던 ‘다음 세대에는 모두가 평등한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그 말이 우리 사회에서 현실화되기까지는 아직도 멀기만 하다. 하지만 이 책을 어린 학생들이 읽으며 어려서부터 주변의 불합리하고 불평등한 모습을 보며 ‘옳지 못하다’고 말할 줄 알고 실천하는 참된 삶을 산다면 우리 사회도 그리 어둡지만은 않다고 본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 본다. 나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그 누군가를 ‘남’이라고 규정짓지는 않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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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치여행
가쿠다 미츠요 지음, 김난주 옮김 / 해냄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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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쿠다 미쓰요의 "납치 여행"을 간신히 다 읽었다.

21개월된 딸, 44개월될 아들 사이에서 내 시간을 내기란 너무나도 힘들다. 오늘은 딸아이의 손에 이끌려 아파트 곳곳을 누비는 틈틈이 조금씩 시간을 내서 일주일 만에 정말로 간~신~히 다 읽은 것이다.

그런데 조금은 뭔가 아쉬운 느낌이랄까, 뭐 그런 느낌이다. 로드 무비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 너무 가볍게 끝난 것 같기도 하고,  아직 정리되지 않지만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이게 이 작가가 즐겨 쓴다는 "여운"의 느낌일까? 아쉬움, 부족함, 가벼움=여운?? 알 수 없다. 내가 이 작품을 너무 평가절하한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기도 한다. 아무래도 작년에 읽은 "여름이 준 선물"에 버금가는 감동을 주지 못해서 자꾸 아쉽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리라. 

그래도 이 책을 읽으며 떠오르는 몇 가지 인상적인 장면들이 많다.

바닷가에서 자신의 속이야기까지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해주던 치즈와의 만남, 아빠를 납치범이라고 온 천하에 알리고 경찰서에까지 갔던 일, 밤바다에서 아빠와 수영하며 느꼈던 황홀한 기분, 절에서 자며 공동묘지 근처를 한밤에 거닐며 보았던 반딧불이의 신비로운 불빛(할머니가 들려 주었던 으시시한 소문 이야기), 공원에서 바베큐를 먹고 버려진 텐트 속에서 잠을 자며 캠핑하던 일, 버려지고 바퀴에 바람이 다 빠져 덜컹거리는 자전거를 새벽까지 타고 아빠 친구집에 가서 돈을 꾸던 일(가다가 중간에 라면 하나를 아빠와 같이 나눠 먹던 일이며, 12시가 넘을 즈음 지쳐 공원에서 서로에게 기대어 잠을 잤던 기억도 부러운 장면 중 하나이다.) 

어쩌면 나도 하루같은 이런 여행을 꿈꾸는 것인지 모른다. 하지만 무작정 떠나자는 생각 뒤로 줄줄이 따라오는 온갖 근심, 걱정들... 밥은 어떻게 먹지? 잠은 어디서 자고? 돈은 얼만큼 쓰게 될까? 빨래는 어디서 하지? 더위와 고생에 지쳐 너무 지저분해 보이지 않을까? 갔다 와서 괜히 갔었다는 생각이 들면? 하여튼 걱정이 한도 끝도 없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을 감수하고 떠나는 자에게 이 책에서 보여준 것과 같은 값진 체험이 주어지는 것이다. 물론 하루의 아버지처럼 현대 사회에서 요구하는 것(책임감이 강하고 매사에 꼼꼼하며 미래에 닥칠 일에 대비할 수 있으며 항상 깔끔하고 깨끗하고 항상 규칙적으로 출근했다 퇴근하는 모범적인 사람? 재미없는 사람 아닐까?)을 모두 만족할 수 없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지만...

하루의 아버지보다도 이 책에서 주목하는 사람은 하루의 이모 유코이다. 참으로 맘에 드는 인물이다. 이 소설에서 그리 많이 언급된 인물은 아니지만 인생을 즐길 수 있는 하루의 아빠와 코드가 어느 정도 맞는 인물이 아닐까 싶다.

"선택할 수 있는 것 중에서 제일 소중한 것을 고르고 나면 선택할 수 없는 것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어지거든. 싫으면 잊어버려도 되고, 좋으면 같이 있어도 되고. 그런 것들이 아무래도 상관없어진 후에 생각해 보니까, 그렇게 싫은 것도 아니라는 걸 알겠더라구. 그래서 내가 너희 집에 자주 놀러 가잖니." 146쪽

하루는 유코 이모의 이 말을 이해할 수 없다고 되어있지만 나로서는 참으로 맘에 드는 말이다. 유코가 언니와 엄마가 싫었다고 자기 조카인 하루에게 고백하는 것처럼, 나도 사실은 나의 아빠라는 사람이 정말 너무너무 싫고 유코가 말한 것처럼 부모는 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없는 것인지 안타깝기만 했다. 하지만 지금은 최상의 선택 내지 탁월한 선택은 아닐지라도 나를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남편(결국 이 사람이 유코가 말하는 선택할 수 있는 것 중에서 제일 소중한 것이 되는 것일까?)이 있기에 아빠 와의 불편한 관계도 참을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지금 생각났는데 이 소설이 그리 탐탁치 않았던 것은 바로 아빠와 딸의 여행이라는 설정으로 인해 내 맘이 계속 불편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만약 나보고 이런 설정 하에서 지금의 우리 아빠와 단 둘이 여행을 하라고 했다면 나는 미쳐버렸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아빠를 싫어하는 나 자신을 용납하기가 힘들고 이런 나를 나의 자식들은 어떻게 생각할 지 상상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고통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아빠는 싫다는 나의 생각은 아마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난 아직도 친정에 얹혀 살고 있다.

이번 방학 때는 제발 이 지겨운 공간을 떠나 단 일주일이라도 하루와 같은 조금은 초췌하고 보기에는 지저분할 지라도 자유분방한 여행을 떠났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나의 이런 감정 변화에 둔감한 남편은 아직도 여행을 떠나려는 마음 조차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얼른얼른 서둘러야 하는데. 방학을 이렇게 서로의 감정을 긁으며 같은 공간에서 죽일 수는 없지 않은가?

하루가 부러울 뿐이다. 그런 아빠를 두었다는 것이. 아빠 와의 잊지 못할 추억거리가 있다는 것이. 아마도 이 모든 추억거리들이 하루를 키우게 될 것이다. 여름이 준 선물에서 할아버지와의 추억이 류를 자라게 한 것 처럼. 그러고 보니 두 소설 사이에도 비슷한 점이 있었군. 놀라운 발견이다. 아니, 뭐 그렇게 놀라울 것도 없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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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준 선물 - 쉼표와 느낌표 1
유모토 가즈미 지음, 이선희 옮김 / 푸른숲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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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최시한 님의 "모두 아름다운 아이들"과 좀 비슷한 느낌을 받은 책이다. 특히 '류'의 시선이 그런 느낌이 많이 들게 했다. 결국 어른들은 보지 못하는 소중한 것들을 찾아내는 아이들의 따뜻한 시선. 작가가 드라마작가였다는 이력과 책의 겉표지가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한 1년을 처박어두었던 책인데 이번 여름을 맞이해서 한 번 읽어 보았는데 나의 지나간 학창시절이 많이 떠올랐다.

  그냥 이상하게 잊고 지내던 기억들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떠올랐다.

  고3 때. 서태지가 "됐어, 됐어, 이런 가르침은 됐어." 노래를 하며 대다수의 10대들을 열광시킬 때도 별 감흥없이 보내던 나는 어쩌면 닿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갖고 멀리 있는 "S대"를 향해 오로지 공부만 하려고 노력을 했다. 그런데 아마도 가을의 문턱이었나 보다. 2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한 아이가 자살을 했다는 아주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 날 밤 12시까지 야자를 하던 우리 학교는 아주 이례적으로 보충이 끝난 직후 아이들을 모두 집으로 돌려보냈다. 참 예민하던 그 시기, 난 이렇게 죽자사자 공부를 하는 이유조차 모른채 한 친구의 죽음을 맞이했다는 충격으로 학교에서 집까지 거의 1시간을 하염없이 걸었다. 끝모를 생각을 하면서... 물론 그 친구의 죽음은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뿐만은 아니었지만. 2학년 때 수학여행으로 대전엑스포에 가서 컴퓨터점을 본 뒤, 그 친구는 몇 가지 질병으로 죽을 것이라는 말을 하며 유쾌하게 웃었던 기억이 갑자기 난다. 이런 기억들도 나를 키워준 것 중에 하나겠지.

  이 친구가 어려울 때도 여기에 나온 할아버지 같은 분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냥 나도 이 책에 나온 할아버지와 같은 존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려울 때마다 어떠한 지침을 보여 주는 그런 존재. 그냥 가끔 사는 게 너무 힘들 때 들려 수박이나 같이 먹으며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그런 곳. 그런 의미에서 류, 모리, 하라는 정말 운이 좋은 녀석들이다.

  살다보면 이런 저런 힘든 사연을 갖고 그 안에 갖혀버릴 때가 있다. 그런 사람들한테 권하면 좋을 것 같다. 여름이 끝나기 전에 읽어서 참 기분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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