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석의 여자들>을 읽고 리뷰해 주세요.
여자들 - 고종석의
고종석 지음 / 개마고원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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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은 글쓰기로만 먹고 살고 싶다는 개인적인 소망-부질없는, 그러나 다행히 곧 제정신을 차린-의 롤 모델로 꼽은 작가(중의 한명)이다. 해박한 지식도 지식이지만 문장력이 손에 꼽을 만하다. 그래서 고종석의 개인적 관심사에 전혀 관심이 없으면서도, 그의 다양한 관심사를 덩달아 따라가고 만다. 

‘고종석의 여자들’도 마찬가지. 고종석이 어떤 여자를 좋아하든 말든 나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일이다. (글쓰기로 먹고 산다는 소망을 버린 이유부터 고종석이 왠지 모르게 미워졌다고 해야 할까, 글쎄 애증이라고 정리하겠다.) 더욱이 자기 이름을 제목에 버젓이 들이밀다니 이건 좀 너무하는 게 아닌가 싶더란 마이다. 아무리 책을 펴낸 출판사 개마고원의 기획위원이기로서니 이건 좀 월권이 아닌가 싶어서 책을 펴들었다.

그리고 단번에 다 읽어버리고 말았다. 고종석이 눈길을 주면 알아서 지식이 고이는지, 장르를 넘나들며 박학다식함이 밑절미가 되지 않았다면 이 책에서 소개하는 34명의 여자들이 등가의 비중을 갖추지 못했을 것이다.

서너 장 분량으로 짤막하게 소개하는 34명은 고종석의 편애 말고는 딱히 하나로 묶을 만한 게 없다. 대부분 실존 인물이지만 개중에는 소설 등장인물도 간간히 등장한다. 그중 소설 ‘겨울여자’ 주인공 이화는 소설보다 동명 영화에 출연한 장미희에게 끌렸다고 고백을 한다.

그러니까 누가 그 따위 시시콜콜한 개인 관심사에 관심이 있나 말이다, 라고 따져 묻고 싶지만 그게 한 장을 또 넘기면 정신없이 빠져 들게 된단 말이다. 그런 이유가 분명 내가 아는 인물도 종종 등장 하는데, 내가 단편적으로 아는 그이와 고종석이 풀어낸 그이 사이 격차가 사뭇 크다보니, 당황스러우면서도 고개를 주억거리고 만다. 

실존 인물이라고 하나의 틀로 묶을 수 있는 건 또 아니다. 지천명의 나이에 다다른 고종석의 관심사는 오락연예 프로그램 ‘미수다’ 출신의 엽기 아가씨 후지타 사오리 양에 대한 이른 바, 삼촌덕후스러운 글이나 故 최진실에 대한 안타까운 소회부터 격정의 시대를 앞장서서 이끌었던 로자 룩셈부르크, 클라라 체트킨, 라 파시오니라아 등등 종과 획을 넘나든다. 

여자와 수다 떠는 것이 섹스하는 것보다(적어도 그 못지않게) 즐거운 여자 애호가 자노파일(gynophile)이라고, 솔직히 다소 구차하게 들리지만, 소개하는 증거랄지 TV, 서적이 아닌 실제로 각별한 친분을 쌓고 지내는 친구 황인숙 시인, 강금실 변호사까지 다양하고도 무궁무진하다.

그렇다고 이 책 제목이 여성들이 아니라 여자들인 이유가 있는 게, 여자들에 대한 전폭적 지지를 표방하는 것도 아니다. 분명 고종석의 글이나 사직으로 보건대, 분명 여성적인 구석이 다분하리라 여겨지지만 고종석은 스스로도 말하지만 냉정한 현실주의자이다.

그 뒤 나는 순전히 내 마음의 평안을 위해서, 강금실이 공인활동을 하는 것을 말려왔다. (…) 사실은 강금실의 속마음을 알고도, 그녀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를 예측하고도, 내가 부질없는 짓을 했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서울시장 출마를 앞두고 그녀가 의례적으로 의견을 물어왔을 때, 나는 반대했다. 그러나 나는 그녀가 결국 출마하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279쪽

현실주의자란 적당히 포기할 줄도 알고, 타협할 줄도 알아야 한다. 한편으로 야박하게도 들릴 만한 에피소드이다. 그러나 독자 입장에선 냉정하게 현실을 분석하고 정리하고 판단하여 한쪽으로 쏠리지 않으려는 고종석의 중심잡기가 실로 약이 된다.

고종석이 선동과 음모와 낭설이 팔 할이 넘는 정치판에 대한 짤막한 글을 써낼 때면, 다른 누구의 글보다 눈길이 먼저 가는 이유는 현실주의의 밑동에 깊숙이 뿌리 내린 고종석의 내공을  모르는 바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은 굳이 개인적으로 알아서 될 일도 아니고, 고종석의 책 한 권을 읽으면 단박에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니까 이 책은 굳이 부제를 달자면 ‘오십 줄 현실주의자의 여성 편력’ 쯤이 되겠다. 그리고 이왕 나무에 비교를 했으니 말인데, 굵게 뻗어 내린 뿌리부터 막 돋아나는 잎사귀까지 고종석의 과거와 현재를, 또 그이의 시인과 정치가라는 친구들에 대한 성향으로 보건대 미래까지 여자라는 기존으로 바라본 ‘고종석’이 도드라진다. 그래서 결국 이 책에 등장한 34명의 여자들이 또 가물가물하다.

글은 이렇게 쓰는 거라고, 또 한 수 가르치려는 게다. 젠장, 누가 원했느냔 말이다. 자꾸 사람을 들쑤시는데 아주 미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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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간이 아주 많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
페터 빅셀 지음, 전은경 옮김 / 푸른숲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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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간이 아주 많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 정말로 시간이 아주 많은 어른이 되고 싶은 건 모든 ‘어른’들의 소원이다. 하지만 이 ‘어른’들은 시간이 많은 이후의 삶을 담보로 모든 시간을 당겨쓰듯이 쪼개 쓰고 또 쪼개 쓴다. 성공을 하면 시간이 마치 통장예금처럼 늘어나기라도 한다는 듯이 말이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주글주글한 피부, 침침한 눈, 하얗게 바란 머리색, 굽은 허리에 놀라고 만다. 내가 원하는 여가가 찾아왔는데, 나는 그 시간을 쓸 몸이 아니다. 그리고는 아이러니하게도 다시 젊어지기 위해 별 짓을 한다. 이른바, 안티 에이징이라 불리는 화장품, 성형수술, 염색 혹은 가발, 코르셋, 안과 수술, 귓속에 숨기면 안 보이는 보청기…. 그러나 그런 것들이 얼마나 부질없는지는 거의 사그라지는 불을 보면 안다. 앞으로 절대 돌아갈 수 없다는 것과 하루하루가 마감을 앞두고 있다는 것 말이다. 

마감, 곧 새해가 된다. 새해가 되면 당연하다는 듯이 한해 목표와 계획을 세운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우리는 마감에 쫓기는 삶을 시작한다. 그런 삶이 당연하다는 듯이, 비록 채우지 못할지라도 좀 과하게 목표를 잡아야 고양이(호랑이는 못 그려도)라도 그릴 수 있다는 듯이. 

목적지에 언제 도착하는지 상당히 정확하게 예고되는데도, 아니 사실은 그래서 더 끔찍하다. 예고는 기다림을 고통스럽게 만든다. 예고는 기다림을 방해하니까. 우리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 42쪽

페터 빅셀의 <나는 시간이 아주 많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는 우리가 자기계발서라 부르는 ‘어른’들의 서가에서 만화책을 대신해서 들어차기 시작하는 종류의 책들을 ‘소가 닭보듯’이 대한다. 그는 기차에 막 올라탄 신병들이 떠드는 소리가 귀에 거슬린다. 하지만 그 이유는 좀 다르다. 만약 신병들이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로 말하면 얼마나 좋으랴. 내용을 모른다면 그들의 소음조차도 마음에 들텐데’라고 말한다.  

아니, 알아듣지도 못하는 외국어라면 더 시끄러운 게 아니라 마음에 들었을 거라고? 이 말은 그저 ‘듣기’의 즐거움에 대한 얘기다. 말을 알아듣는 순가, 우리는 ‘이해’를 하기 시작하고 또 그 이야기의 목적과 내용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 

어쩌면 ‘듣기’란 ‘이해하기’보다 훨씬 단계가 높은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결국 대단찮은 청중일 것이다. 언제나 성급하게 이해하려고 하니까.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우리는 진정으로 들을 수 있다. 103쪽

페터 빅셀이 말하는 시간이 많은 어른이라는 건 ‘정거장에서 동네 바보가 딱히 이유 없이 기차를 기다리듯이 무심코 기다리는 시간’이다. 어쩌면 가장 쉬울 것 같지만 현대인에게 가장 어려운 일이다. 잠시라도 뭔가를 하지 않으면 초조해지기 마련인 사람들. 하지만 기차가 오길 같이 기다리는 내내, 지적장애인 만이 시간을 제대로 즐기고 누릴 줄 알았던 게 아닐까, 하고 질문을 한다.

그 시간 동안 책을 읽든, 밥을 먹든, 짬을 내 글을 쓰건 기차 도착 시간이 내내 머릿속에서 맴도는 내내 우리는 미래를 담보로 과거와 현재를 포기하고 사는 셈이다.

1935년 생으로 전업 작가로 살아온 폐터 할아버지는 아마도 그리 오랜 시간이 남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이는 삶의 도착을 앞두고 시간에 쫓기고 초조하고 전전긍긍한 대신, 남은 시간을 충분히 즐기는 법을 아는 아주 시간이 많은 어른이다.

부인도 저 세상으로 떠난 지 오래, 한 집에 같이 살던 아이들도 독립한 지 오래. 개도 무서워서 키우지 않는 그이는 홀로 사는 독거노인이다. 이렇게 말하니 왠지 안타깝게 보이지만 그이는 집이 커진 게 아니라 도리어 작아졌다고 한다. 식구들의 빈자리가 쓸쓸하고 외롭지 않은 걸까.

내가 여기서 혼자 살면서부터 더 작아졌다. 집은 크기를 잃어버렸다. 내가 방에 앉아 있으면 오로지 이 방만 존재한다. 다른 방의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여기서 넷이 살 때는 다른 방들도 목소리를 지니고 있었는데. 141쪽

식구들이 떠난 자리가 외롭지 않은 게 아니라, 지난 과거에 연연해서 시간을 보내기보다 지금 주어진 시간을 ‘무심히’ 보내면서 즐기는 와중이다. 시간은 돈이다, 라는 격언을 두고 페터 빅셀은 돈도 그렇지만 시간은 절대 저축을 할 수도 없고, 그 가치가 변하지 않으니 자신을 내려놓고 주위를 보라고 한다.

대단치 않지만 지금 이 순간 보이는 작은 창문 너머 늘 보는 익숙한 풍경이 바로 ‘지구의 모든 세상’이다. 그의 얘기에 종종 끼어드는 사람들은 과거의 고인이 되었거나 스쳐 지나갔던 사람들일 때가 많은데, 누구는 세세하게 기억을 하면서 편지를 보내는가 하면(부칠 수 없는 편지라 쓰고는 곧 버리지만), 아니면 그때 그들이 제대로 기억나지 않아 고민에 빠진다.

작가가 기억을 못하는 그들은, 작가에게 강한 경험을 주지 않아서일 수도 있지만, 종종 생생하게 기억날 듯하면서 기억이 나지 않는 게 신기하다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 그보다는 그 당시 작가 자신이 남들처럼 미래를 위해 과거를 저당 잡혔던 정신없이 시간을 ‘낭비’했던 시기가 아니었을까 싶다.

아름다운 날들을 며칠 함께 보내고 그를 떠나보낼 때, 역에 서서 눈으로 기차를 좆으며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내가 그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나에게 그가 얼마나 소중한지 말하는 것을 잊었기 때문이다. 당연함의 저주, 말해지지 않는 것의 저주, 부족한 결단력의 저주, 가정법의 홍수 속에서 스스로를 잃어버리는 저주…. 65쪽

비우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마치 불교의 구도자처럼 면벽수행을 해도 정작 내 안에서 차오르는 수많은 상념과 잡념들, 그것들의 정체가 내 자신의 전부라면 참 부질없을 수도 있겠다 싶다. 생일 때면 한 해가 정신없이 가버렸다고 말한다. 나도 입버릇처럼 얘기하는 데, 12월 말이 되면서 역시 그렇게 말하고는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그리고 난 ‘정신없이 바쁘게 살았으니 다행이야, 라는 식으로 은근히 폼을 잰다.

그래서 뭐가 남을까. 부와 명예와 밝은 미래? 글쎄 주로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를 담은 이 책에서 유독 눈에 띄는 대목이 있다.

어쨌든 모든 권력은 공포다. 권력은 자신이 퍼뜨리는 공포를 먹고 산다. 나는 권력 획득과 유지를 즐거워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아직도 이해할 수 없다. 권력을 원하는 사람들은 일단 공포를 퍼뜨려야 한다. 권력자들은 그들을 두려워하는 사람들로부터 왜 그다지도 사랑받을까? 153쪽

‘미래’라고 말하는 ‘권력’(아무려나 비슷한 속성의)에 휘둘려 공포에 휘둘려 살았다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예측 가능하고 쭉쭉 진행된 계획이 마냥 행복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 바쁘게 산다고 하면서 내가 놓치는 게 뭔지 생각을 해봐야, 아니 생각을 비워야겠다.

농부들의 격언이 올해 맞지 않았더라도 다음 해에 다시 기회가 있었다. 나는 적어도 일기예보가 잘 맞지 않던 어린 시절을 보낸 게 기쁘다. 일기예보에서 비가 온다고 해도 눈을 기다리고, 날씨가 추워진다고 해도 따뜻하기를 기대할 수 있었으니까. (…) 그러나 큰 눈 때문에 너무 오래 걸린 취리히발 졸로투른행 기차에서 우리는 ‘오늘’이 아닌, 일기예보 속의 과거를 살았다. 미래에는 늘 희망이 없다. 우리가 미래를 알 때는. 40쪽

이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40여 편에 이르는 작품들을 수록했다. 1부 「기다림을 기다리며」에서는 현대사회에서 점점 잊혀져가는 기다림의 미덕과 기다림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2부 「작은 세상, 큰 세상」편은 화려한 겉을 벗어내고, 소박한 소통 방식을 드러내는 소중한 순간을 그려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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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 히로부미 안중근을 쏘다
김성민 글, 이태진.조동성 글 / IWELL(아이웰)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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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의 남경대학살 만행을 다룬 <난징 대학살> 저자 아이리스 장은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 과거를 되풀이한다"라고 말했다. 그녀의 말 앞에 과연 우리는 자유로운가. 1923년 9월, 관동대진재학살을 비롯해 일제와, 이후 군부독재의 광주 대학살 만행은 아픈 근현대사로 남아 있다.

나치의 만행과 진상을 밝히고, 이후 나치를 옹호하는 경우를 냉정하게 처벌한 독일과 달리 일본은 군국주의에 대한 목소리나 역사를 날조, 왜곡하는 자국 역사가들에 대해 여전히 관대하다. 위안부 문제에서 보듯 현재진행형으로 벌어지는 사안으로 봐도 우리는 일제 강점기가 과거가 아닌 현재로 인식해야 하는 이유를 말해준다. 

우리는 역사를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가. 반민특위는 흐지부지, 친일파가 쥔 기득권이 군사정권으로 이어진 게 멀지 않은 일이다. 해방 이후 64년만인 올해 11월 8일, 이제야 친일인명사전이 나왔다. 등재 사실을 두고 사죄하는 친일파 후손도 있으나, 대부분 사전 자체를 폄하를 하고 핏대를 세운다. 그렇게 망각은 정신 이상을 가져온다. 역사가 반복되지 않으려면 기억을 해야 한다. 올해는 안중근 하얼빈 거사 100주년을 맞이하는 해이다. 

‘안중근 의사’ 우리가 익히 배워 알고 있는 칭호이다. 허나 선비 사(士)를 쓰는 의사라는 칭호는 개인적 울분에 의한 의거를 의미하는 말로, ‘포수가 애국심으로 저지른 무모한 테러’라는 일본 법원의 손을 들어주는 말이다. 안중근은 대한의군 참모중장 자격으로 독립 전행을 하였고, 또 전쟁 포로 대우하라고 일본 법정에 요구했다.

올 한 해, 다양한 문화 장르에서 안중근을 기리는 작품들이 연이어 소개되었다. 일본 희곡작가의 눈으로 본, 감옥에 갇힌 이후 안중근의 사상을 다룬 연극 <겨울꽃>과 안중근의 하얼빈 거사를 중심에 놓고, 안중근 다시알기의 첨병 역할을 톡톡히 하는 50억 대작 프로젝트 창작 뮤지컬 <영웅> 등이 그렇다.

안중근의 아들 안준생이 이토 히로부미의 아들에게 공식 사과를 한 안타까운 실화를 다룬 짧은 단편 소설 <이토히로부미, 안중근을 쏘다>에서는 안중근은 등장하지 않는다. <이토 히로부미, 안중근을 쏘다>, 역설적 제목의 단편 소설은 호부견자(虎父犬子) 소리를 들는 안중근의 둘째 아들 안준생의 삶을 다룬다.

안중근 거사 이후, 일본의 극심한 탄압 속에서 제대로 된 보살핌을 받고 자라지 못한 안준생의 어렸을 적 삶은 비참했다. 안준생의 형은 일곱 살 때 누군가가 준 과자에 먹다가, 배고파할 동생과 나눠 먹을 심산으로 집으로 가지고 오는 길에 죽는다. 독살을 당한 것이다. 이토 히로부미의 아들에게 공식으로 사과를 하고, 죽음 대신 삶을 택한 안준생은 한때 임시정부의 암살 대상이었다.

안중생의 삶은 역사적 환호 뒤에 가려진 단면의 일부일 뿐이다. 안준생을 약재상을 돈을 벌어 그의 아들은 미국에서 의사로 살고 있다고 한다. 그렇게 영웅의 이야기는 뮤지컬의 장엄한 결말과 달리, 연극의 일본인까지 감동을 한 사상가의 면모를 드러낸 모습과 달리 감동으로 끝나지 않는다.

적어도 우리는 좀 더 많은 부분에 대해 외면했거나 무시했거나 왜곡해왔다. 독립군 가계의 비참한 대물림, 친일파 자손들의 득세는 여전히 풀지 못한 과제이다. 일제의 의해 훼손되어 함부로 다뤄진 안중근의 유해는 어디에 묻혔는지도 여전히 찾지 못했다.

거사 이후, 가족의 비참한 미래를 안중근이 짐작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을까. 안준생에게 아버지 안중근이 영웅일 수 있는가. 이면의 진실 때문에라도 우리가 안중근을 새롭게 다룬다면 보다 촘촘하게 접근해야 한다. 그 얘기들이 현실이 되지 않는 이상 일제 잔재 청산을 비롯해 반쪽짜리 역사를 바로 잡을 수 없다. 그리고 역사를 제대로 기억하지 않는 이상, 비극은 반복될 수 있다.

며칠 남지 않은 2010년은 안중근 순국 100주년이다. 내년에는 이 작품이 보다 치밀한 얼개를 가지고 다시 만나게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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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현의 얼굴 - 그의 카메라가 담는 사람, 표정 그리고 마음들
조세현 지음 / 앨리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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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다른 수식이나 설명이 들어가지 않은 상태에서 오로지 사람이 가진 표정으로 이야기를 끌어내려 노력한다. 그럴 때 주변의 복잡한 배경은 이야기에 방해가 된다. 사람 하나면 충분하다. 그래서 내 카메라 앞에 선 사람은 사진을 찍는 그 순간만큼은 내 사진의 처음이요 끝이 된다. (99쪽)

사진을 볼 때 문득 렌즈의 사각 프레임 밖이 궁금해질 때가 있다. 웃고 있는 얼굴 옆으로 선 밖으로 잘려나간 그 자리에는 무엇이 있을까. 무엇이 있어서 저렇게 웃을까. 저 이는 왜 울고 있을까. 무슨 일이 있었길래. 사진기는 보고 싶은 모습만 보여주는 이기적인 매체이다.  

디지털 카메라가 보급되면서 컷 수가 늘고, 자르고 이어붙이는 편집이 비교적 손쉬워진 덕에 프레임 개념이 확장되었지만 자를 수는 있어도 더 많은 걸 보여주지 못하는 한계는 넘을 수 없는 벽이다. 한계를 넘는 자리에 작가의 상상력을 더한 회화가 있을 것이다. 사진이 회화만 못하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는 복제로 인한 아우라 소멸에만 있지 않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해주는 것. 사진의 힘이 거기까지 미친다면 앞으로 내가 한 장의 사진 속에 담아내야 할 것이 얼마나 많단 말인가. 벅찬 마음에 가슴 한구석이 뻐근했다. 사진가로서 또 다른 삶이 시작되는 경이로운 순간이었다. (53쪽)

유명 연예인 사진을 찍어 이름이 알려진 사진작가 조세현의 사진집 <조세현의 얼굴>에서는 수많은 컷 중 고르고 골라 실은 사진들 마냥 담담하게 시구처럼 적어내린 글귀에서 그 한계를 극복한 순간을 말한다. 자랑도 아니고, 그냥 자연스러웠던 그러나 분명 “경이로운 순간”의 경험이다.

<조세현의 얼굴>을 오가는 지하철에서 그만 다 읽고 말았는데, 여유 없이 글자만 좇아간 이유이다. 그래서 집에 와서 사진을 다시 한 장 한 장 넘겨보았다. 병마총으로 유명한 중국 시안[西安]에서 주민들의 편안한 일상을 담은 작품집 속 인물들은 하나 같이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다.

심지어 병마총도 ‘프로필’의 원뜻이라는 옆모습을 스스럼없이 내보인다. (옆모습이 사람의 진실한 모습을 보여준다고 한다. 생각해보니 외국인들 사진이 그렇다. 평평한 2차원에서 3차원으로 전환이다.) 카메라를 응시한다는 것,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웃음! 쫓겨서 카메라를 발기한 성기마냥 들이대는 낯선 관광객에 보여줄 표정이 아니다. ‘내 사진에는 유독 웃는 얼굴이 많다 (…) 거짓 웃음이 아니라 타인을 향한 호기심으로 스스로를 무장해제시키는 웃음’이라는 그이의 말은 돈 몇 푼으로, 혹은 유명 사진작가를 타이틀로 끌어낼 수 있는 게 아니다.

아무리 이야기해도 저 앞에 서 있는 사람은 계속 나를 의식한다. 그럼에도 자연스러운 모습을 찍어내는 것, 그게 내가 할 일이다. 특별한 비법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을 좀 더 편하게 해주는 것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다. (97쪽)

억지웃음을 지을 때가 많은 연예인들이 조세현을 부러 찾는 이유라면, 사진 찍는 기술 이전에 그의 ‘편하게 해주는 것’일 게다. 그것이 자연스럽게 연예인들의 참 표정을 끌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림자 연극 풍경을 담은 ‘표정들’ 외에는 한낮의 자연광 아래 찍은 사진들이다.

조세현은 그들의 삶에 맞춰 느릿느릿 시안 주민들의 속도에 맞추면서 그들과 렌즈 이전의 교감을 얼굴과 얼굴로 나누었을 것이다. 재빠른 손이 아닌 느긋한 발걸음으로 촬영한 사진은 사진을 찍기 이전의 과정이 사진 속에 담겨 있다. 사진이란 이런 것이구나, 후딱 읽히고 평범한 사람들의 표정에 싱겁다 싶었다가 집에서 느긋하게 바라보면서 깨닫는다.

2천 년 전 얼굴을 담은 병마총 군인들의 얼굴은 역시 비슷한 시기 시안에서 탄생한 그림자 연극을 총총한 눈으로 보는 마을 주민들의 얼굴과 겹친다. 한 밤의 어둠을 극장 삼아 마을 공터에서 주민 몇몇을 앞에 놓고 열리는 소박한 무대, 2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방식이다.

그런대도 우리는 생동감이 넘치는 진짜 얼굴을 무시하고, 본 따 만든 인형 얼굴만 대단하다, 대단하다 혀를 내두른다. 조세현이 말하는 ‘사람을 찍다 보면 카메라를 사이에 두고 그와 나의 눈이 늘 마주칠 수밖에 없는데, 사람의 눈을 마주하는 것은 그의 영혼을 마주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 마음을 다해 사진을 찍다 보면 눈빛으로 대화를 한다는 말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그것이 곧 소통이다. (98쪽)’이라는 말은 사진집을 읽는 나와 작가와 사이에도 마찬가지다.

사진을 읽다 보면 사진작가의 마음이 엿보이는 ‘경이로운 순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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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의 제국 - 영국 현대미술의 센세이션
임근혜 지음 / 지안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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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인상어 전용 죠스바, 얼린 대가리.젊은 미술가이자 책 편집자이기도 한 그녀와 일로 그녀의 작업실 겸 사무실에서 처음 만나서는 툭하고 좋아하는 작가를 물었을 때, 그녀가 너저분한 책상에서 잡지에서 뜯어낸 듯한 페이지에 본 <셀프> 첫 느낌이다.

“드라큘라 여름 간식을 딱”이라고 했다가 순간 순한 그녀가 쏘아보는 눈빛을 잠시 받았었다. 스스로 꽤 그럴듯한 농담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지 못한 반응에 설명을 해주면 감사하겠다고 했지만 그녀는 “맞는 말”이라고 하고는 그저 어깨를 으쓱하고 말았다. 아마도 그때부터 그녀와 인연이 될 가능성이 아주 없었는지 모르겠다.

<셀프>. 마크 퀸이 5년에 걸쳐 자신의 피 4ℓ(성인 한 사람분의 피)를 뽑아 제작한 자신의 두상조각. 전 세계에 딱 4점. 그 중 1점은 영하 10도로 냉동보관을 해야 하는 작품의 스위치를 청소부가 뽑아버리는 바람에 작품이 훼손되었다…고 한다. 이제는 그나마 들어서 알지만 좀 늦었다.

한 달에 하루 이틀, 그녀의 작업실에서 원고 퇴고와 수정을 했다. 시간을 아끼자는 명목이지만 그녀와 자연스럽게 밥을 먹고 얘기를 하고 싶었다. 그녀는 주로 아크릴판에 컴퓨터 그래픽으로 작업을 했다. 한국화 전공인 그녀와 다른 듯 혹은 담은 선이나 정서는 비슷한 듯 고개를 갸웃갸웃 거리고는 했다. 영국 현대 미술 계보와 작가들과 작품들과 활약상을 다룬 <창조의 제국>을 읽고서 그녀의 작품에 줄리언 오피의 영향이 얼마간이라도 스몄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녀가 하고 싶은 일인 미술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어쩔 수없이 해야 하는 일인 편집만 두고 집중을 해서 얘기를 나눴으니 어차피 그녀에게 난 ‘어쩔 수없이 만나야 하는 부류’에서 더도 덜도 아니었을 것이다. 혹시나 그녀가 나를 만났을 때마다 그리고 내가 가진 호감을 알게 되었을 때, 그녀의 속마음이 제이크 & 채프먼의 <지옥>같지만 않았길 바랄 뿐이다. 

런던대학교 골드스미스 칼리지에서 큐레이터십 석사 출신 임근혜가 <창조의 제국>에서 yBa(Young British Artist)에 대해 충실하게 소개할수록, 그녀와 내가 왜 인연이 될 수 없었는지 맞추지 못하고 덮어두었던 퍼즐의 몇 가지 힌트가 제공되었다. 영국의 현대미술을 이해하는 만큼 솔직히 현대 미술을 이해하지도 이해할 생각도 없는 나와의 의외로 많은 접점에 살짝 놀라고 말았다.

단순히 한때 내가 좋아했던 그녀가 미술가가 아니었다 해도 공유할 수 있는 건 현대인의 정서(주로 피폐한)가 작품에 잘 반영되었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고, 한편으로 6장(팝, 아트 그리고, 팝아트)에서 소개하듯 비틀즈, 블러 등 유명 뮤지션 앨범 커버, 맥주병 라벨, 그리고 그 영향을 손에 꼽기도 힘든 광고들에서 역으로 흘러든 정서를 내 것인 양 품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영국 미술잡지 아트 리뷰 11월호 기사에서 ’세계 미술계 영향력 있는 인물 100’ 작년 1위에서 올해 48위로 추락했다는 소식이 우리나라 일간지에도 소개되는 영국 현대미술의 대표 데미안 허스트의 <신의 사랑을 위하여>이 책 표지다. 실제 해골에 제작비 200억을 들여 8601개의 다이아몬드를 박아 940억에 팔린 작품답게, 집 밖에서 책을 펴들 때마다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진다.

그들이 보는 건 해골인가, 다이아몬드인가. 책을 읽을 때마다 보다 보니 꽤 친숙하다. 처음에도 혐오스럽거나 부럽지는 않았다. 욕망의 무한 질주 퍼레이드에 사는 대한민국 서울시민으로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살갗 뒤 친숙한 내면이지 않을까, 뒤표지는 크리스 오필리의 <아프로디지아>다. 포르노 이미지를 차용하고 코끼리 똥을 둥글게 뭉쳐 붙인 작품이다.

앞과 뒤, 입과 항문, 욕망과 배설, 다이아몬드와 똥. 앞 뒤 표지 컷 절묘한 구성에서 <창조의 제국>의 전체적인 성격을 짐작할 수 있다. 그 사이로 15장에 걸쳐 영국 현대미술 계보의 내장을 통과하는 동안 눈을 뗄 수 없는 370컷의 사진만 놓고도 꽤나 만족스럽다. 솔직히 말하자면 새로운 눈을 띄워주었다. 편집자 노트에서 밝히듯, 사진의 80% 정도를 작가들이 무료 게재를 허락하지 않았다면 작품 중 일부는 책에 실리지 못했거나 책값이 꽤나 올랐을 것이다. 어떤 이유로든 내가 보지 못할 뻔한 작품들이다.

출판사의 3년에 걸친 노력이 첫 번째 원동력이겠지만, 한편으로 그들의 비즈니스 감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줄리안 오피의 홈페이지에서 보듯, 작품을 곧 바로 티셔츠 등의 상품으로 만들어 파는 그들에게 <창조의 제국> 출간은 광고의 일환, 시장의 확보의 의중이 있기도 할 것이다. 데미안 허스트가 작품 게재를 허락하기 전에 책 내용을 확인했다는 이유도 마찬가지이다.

내년 1월 10일에 서울에서 아라리오 갤러리 20주년 기념 전시가 열린다. 이번 전시에서 유독 관심을 끄는 작품은 마크 퀸의 <셀프>, 그곳에 가면, 작년부터 연락을 하지 않게 된 그녀를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우연히 만난 것처럼 일 부탁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창조의 제국>을 꼼꼼하게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가 한 가지 더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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