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반찬 필요없다 초간단 한그릇 요리 - Living Cook 4
웅진리빙하우스 편집부 지음 / 웅진리빙하우스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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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간단 간편한 요리로 바쁜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자! 영양가만은 놓치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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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찌를 일등으로>를 리뷰해주세요.
꼴찌를 일등으로 - 野神 김성근
김성근 지음, 박태옥 말꾸밈 / 자음과모음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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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KBS 예능 프로 <천하무적 야구단>을 꽤 즐겨보게 되었다. MBC <무한도전>과 동시대에 맞대결을 펼치는 이 리얼리티 프로는 제목 그대로 오합지졸 연예인 야구단이 제대로 야구의 참맛을 알아가면서 더불어 성장하는 모습이 재미가 쏠쏠하다. 

나이 마흔부터 열여섯까지 당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10명이 펼치는 좌충우돌 야구 경기는 어느새 웃음 대신 긴장감을 주고 있다. 몇몇은 정말이지, 꽤나 진지해 보인다. 그렇다. 야구는 마냥 즐거울 수 없는 경기이다. 무게 141.7~148.8g 둘레 22.9~23.5cm의 공 한 개를 사이에 두고 사투가 벌어진다. 각각의 베이스는 말 그대로 말 그대로 링의 사각 코너이다.

예능이니 그렇지, 실제 야구중계를 보면 야구 선수 면면을 집요하게 따라잡지 않는다. 카메라가 따라잡는 시선은 오로지 공이다. 그래서 야구의 긴장감이 어느 정도인지, 왜 투수들이 입에 마우스피스를 끼고 올라오는지 잘 모른다. (투구를 할 때마다 꽉 깨무는 악력으로부터 이빨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관중에게는 쪽발이, 제자들에게는 악마라고 불렸던 남자, 김성근. 야신이라는 별호 뒤에 따라붙는 별명이다. 운동 종목 가운데 가장 신사적이고 과학적이라는 운동인 야구를 하면서 그는 왜 그런 푸대접을 받아야만 했을까. 아니, 왜 그런 소릴 듣게 되었을까. 그의 야구는 재미가 없다, 승부에 연연한다는 혹평을 듣는다. 여전히 고교야구 감독 시절을 잊지 못하는지 작전이 많이 걸린다.

연봉 몇 억짜리의 프로 선수가 번트를 대는 꼴은, 관중의 입장에서 보면 그다지 반가운 일은 아니다. 응원하는 팀이 이기면 좋지만, 프로야구 정규시즌의 승부라는 게 국가끼리 대결도 아니고 사실 누가 이겨도 그만이지 않은가.

하지만 경기에서 지면, 지는 일이 자꾸만 반복되면 감독이 제일 먼저 욕을 먹고, 자리에서 물러난다. 김성근의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를 생각하면 운동장에서 퇴장을 해도 될법하건만 그는 여전히 현역을 원한다.

<꼴찌를 일등으로>, 야신 김성근의 자서전 제목은 그의 인생처럼 꽤나 직설적인이다. 마치,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 따위의 꼴찌부터 일등까지 일직선으로 스윽 그면 그만일 것 같은 제목을 달았지만, 그의 인생은 내내 일등으로 오르는 과정이었다. 그는 그야말로 야신이다.

그의 인생에 찬사를 보내려는 게 아니다. 평생 야구만 보고 산 그의 일구이무(一球二無), 야생야사(野生野死)의 승부가 ‘삼겹살존’이 생길 정도로 느긋하게 즐기려는 프로야구의 속성과 잘 맞는지 모르겠다. 눈 옆을 가리고 달리는 경주마처럼 산 그의 생에는 70~80년대 한국 근현대사의 질곡이 야구와 관련해서 잠깐 언급된다. 책에서 밝혔듯, 일본에서 조센징이라는 차별을 받지 않고 야구를 할 수 있었다면 김성근은 애초에 한국에 오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다만, 덕장, 용장, 맹장 등 내로라하는 야구감독 중에서 그의 자서전이 두드러진다. 그가 여전히 현역이기 때문이다. 그가 이끄는 SK는 9월 8일 기준으로 선두 기아와 3게임차 2위를 달리고 있다. SK를 당연하게 강팀이라고들 하지만 SK에는 이렇다 할 스타 선수가 드물다. 올해에는 전력보강도 없었다. 그런데도 2등을 달리고 있다. 놀랄만한 일이지만 ‘만년 2위 감독’은 김성근에게 따라붙는 또 하나의 치욕이자 오명이다. 올해는 기아의 돌풍이 워낙 거세서 SK가 한국시리즈에서 우승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김성근 감독으로 강한 요청으로 SK는 다른 구단보다 일찍 전지훈련을 떠나고, 2군도 같이 간다. 몇몇 스타에 의존하지 않고도 살아남는 비결이다.

책 속의 몇몇 대목은 승리의 감동과 감격으로 채워져 있다. 그래서 올해 SK의 성적은 또 다른 관심사다. 자서전이 선전포고를 한 셈이다. 어쩌면 그이만큼 성적이 안 좋았을 때 욕을 먹고, 퇴사를 당하는 경우도 드물다. 학연과 지연을 무시하고, 구단의 간섭을 누구보다 싫어하는 그이니만큼 당연하다.

하지만 그는 SK가 아니어도, 분명 어디에서건 현장에 있을 것이 확실하다. 감독직에서 내려오는 순간이 바로 그의 마지막이 아닐까 싶기까지 하다.  

야구가 좋아 18살의 나이로 피붙이 한 명 없는 낯선 한국 땅으로 건너온 재일교포 김성근, 5년 만에 무식하리만치 혹사한 어깨로 인해 5년 만에 야구선수의 짧은 생을 마감한 뒤에도 현장에 남기 위해 코치로 감독으로 야구장을 떠나지 않은 그. 야신 이전에 야인으로 이 팀 저 팀을 떠돌면서도 끝끝내 야구장을 지킨 그 만큼 야구복이 잘 어울리는 감독을 알지 못한다.

머리를 짧게 깍은 그의 뒷모습은, 등번호와 이름이 아니라면 현역 선수들과 구분이 되지 않는다. 지금도 선수들에게 펑고 훈련을 시키기 위해 운동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고 김성근, 막 선발 출격을 앞둔 21살 김성근이 그 자리에 있다. 그의 몸은 언제나 현역, 일구이무(一球二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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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담 빠담, 파리>를 리뷰해주세요.
빠담 빠담, 파리
양나연 지음 / 시아출판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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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차게 도전한 파리 가이드, 하지만 1년 남짓한 파리 생활로 파리를 제대로 알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긴 한다. 다만 단순히 놀러간 게 아니라, 앞서 이끄는 가이드 임무를 맡았으니 그냥 1년은 아니고, 농축한 1년임에는 틀림없지 싶다.  

그녀는 특기가 한국말을 주물락 주물락 반죽을 하고 요리조리 자르고 더해 승부를 거는 개그작가인데, 말도 안 통하는 파리에서 가이드가 뭔 뚱딴지인가 싶다. 더욱이 파리 루브르 박물관나 오르세 미술관에 슬랩스틱 코미디의 전설 찰리 채플린 마네킹이라도 하나 있지도 않은데 전직과 연관이 없어도 너무 동떨어진 그곳으로 떠나는 도전은, 하면 못 할 것도 없겠지만, 평범한 장삼이사들 하기에는 만만치 않을 게 확실하다.  

더욱이 고참 개그작가에서 파리 가이드로의 전환이 우연히 딱 한 번 찾아간 파리 휴가에서 기인을 했다니, 양나연의 배짱이랄까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 이 책은 “너 뭐하니? 너도 인생 질러봐!”라는 당부를 어필한다.

1년 만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개그작가 생활을 하는 그녀를 두고, “뭐야? 고작 1년?”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어느 정도 일에 적응을 해서 인정받는 가이드가 되었는데, 다시 그 길에서 과감하게 나오는 결단 역시도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것이다.

‘내키는 대로’ 떠나되 어느 자리에서건 최선을 다하는 자세로 살다 보니, 어느새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다는 고백은 미니홈피에서 읽을 만한 소소한 일상이지 싶지만 해피엔딩은 언제 알아도 참 즐거운 일이다.

이 책을 읽고선 그녀가 가이드로 일할 당시 홍삼 원액이라도 마신듯 힘을 얻었다는 가이드 평을 찾아보았다. 즐겁다, 재미있다는 칭찬은 다른 가이드도 마찬가지겠지만, 지루할 줄 알았던 박물관 관람이 ‘심하게 우끼시더’라는 평은 그녀만의 개그작가라는 독특한 이력에서 나왔을 터였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학창 시절 내내 ’웃기는 반장‘이라는 딱지를 달고 살았다’는 책날개 소개로 보아 그녀의 천성 자체가 남을 즐겁게 하는 참으로 즐거운 사람이구나 싶다. 다시 말해 어렸을 적부터 만나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재주를 타고난 그녀이고 보니 ‘인생 지르기’가 통하지 않을 수가 있나. 좀 엉뚱하지만 역시 사람은 능력 이전에 사람이 되는 게 먼저이구나 싶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앞으로 여행 작가의 꿈을 키우겠다는 그녀의 도전이 기대된다. 혹시 그녀가 길에서 만나는 사람이 내가 된다면 그 역시 즐거운 여행이 되지 않겠는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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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청년 바보의사>를 리뷰해주세요.
그 청년 바보의사
안수현 지음, 이기섭 엮음 / 아름다운사람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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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한때 열심히 교회를 다녔다. 가난한 서울 변두리에서 크게 성장한 교회의 중심에는, 70년대 한국사회가 그랬듯이 카리스마 있는 목사가 있었다. 지금, 좋지 않은 일로 가끔 가십거리에 등장하는 그의 이름을 볼 때마다 자괴감이 들곤 한다. 사람을 보고 신앙을 갖는다는 게 얼마나 큰 낭패로 돌아올 수 있는지 절절하게 깨달았다.

“그 시절, 정말 아깝다.”

하지만 앞서 이끄는 누군가가 있지 않고 어떻게 믿음을 쌓아갈 수 있는가. 아예 삶 자체가 태어날 때부터 얽히고설킨 촘촘한 인드라망인 것을. <그 청년 바보의사> 故 안수현이 아직 세상에서 열심히 살고 있었을 때 만약 만났다면 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을까.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안암병원에 입원이라도 했다면 한밤중에 찾아와 병상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그를 볼 수 있었을까.

아무려나, 모르겠다. 내내 신앙인으로 살았던 이야기를 일기 형식으로 남긴 책에서도 그를 만났다고 다 신앙인 되는 건 아니었듯 하니 그가 진짜 예수님이 아닌 이상 그의 진득한 노력이 다 결실을 맺지는 못했으니. 하지만 그를 만났다면 열심히 살아야겠구나, 싶어 내 살아온 삶이 부끄러워서 얼굴이 붉어지고 말았겠다.

의대를 다니는 내내, 인턴으로 정신없이 바쁘게 공부하고 환자를 돌보는 내내, 집에 숨길 정도로 신앙생활에 충실했던 기록을 읽으면서 내 얼굴이 벌게지는 이유는 그가 의사여서도 기독교인이어서도 아니었다.

목사들의 간증을 보면 누구나 어려운 시절을 겪고, 열심히 살았다는 얘기쯤은 나온다. 하지만 곰곰이 들어보면 그런 기록은 결국 자신을 향한 기록인 게 얼마나 많은가. 자신이 성공하는 게 마치 하나님의 성공인양 자만에 빠진 그들의 설교는 정말이지 신물이 난다. 전도사도 아닌 안수현의 남긴 일지가 굳을 만치 굳은 내 맘을 녹인다면, 그 이유는 자신이 아니라 오로지 남을 향한 기록이기 때문이고, 그만큼 그가 세상 가장 낮은 자로 세상에 오신 그분의 삶을 따르려는 노력 때문이다.

적어도 <그 청년 바보의사>는 그의 내면의 신앙 기록이라기보다는 의사로, 친구로, 선배로, 후배로, 때론 길에서 처음 만나는 낯선 이로 남을 위해 기도하고, 선물을 하고, 위로를 하고, 보듬고, 안아주고, 도와준 기록이다. 연애를 줄이면 줄였던 그는 ‘독신의 은사’를 받은 게 아닐까 싶었다고 한다. 그의 기록은 아주 세세하다. 신앙 모임에 늦게까지 같이 한 후배들을 태우고 다니느라 ‘차를 구입한 지 39주 만에 25,000km를 돌파’했다는 식이다. 글 곳곳에서 재미가 톡톡하게 묻어난다. 사무적이지도 않고 자랑하려고 늘어놓은 치장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그의 행적은 이스라엘을 내내 걷고 또 걸으며 사람들을 만났던 예수님의 궤적을 많이 닮았다. 의사로 환자를 돌보는 모습이 그러하거니와 예배당 안에서 두 손을 모으는 데 그치지 않고, 늘 두 발로 부지런히 다니는 행적이 그러하다.

동료 의사들이 기억하길, 그는 의대 과정에서 낙제를 한 적도 있고, 성적도 뛰어나지는 않았다. 하지만 2000년, 의약분업으로 대부분의 의사들이 파업에 나섰을 때, 햇병아리 의사인 그는 병상을 지켰다. 엄격한 수직 사회인 의료계에서 별 신통치도 않는 인턴이 개인적인 신앙심을 내세워 파업에 동참하지 않는다니, 용납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한편으로 안수현 혼자 많은 병동을 책임지는 상황을 쌤통이라고 여겼을 테고, 다른 한편으로 그래도 그가 있어 다행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동료 중 누구도 그를 탓하지 않았습니다. 그에게 지고의 가치는 자신을 필요로 하는 환자 곁에 함께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모두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동료들이 그의 파업 불참을 당연하게 여겼으리라는 점, 한 가지는 확실한 듯하다. 종교를 달리할지언정 그의 손길이, 그의 기도가 환자들에게 얼마나 많은 위안과 힘이 되었을지 머릿속에서 떠올려보면 내 가슴마저 뜨거워진다.

그 젊은 시절, 아깝다, 라는 생각을 고쳐먹기로 했다. 이제 그보다 더 많은 삶을 살았고, 앞으로 더 살아갈 나는 정말 열심히 살고 있는가. 안수현이 보여준 행적이 근저에는 신앙에 있을 것이나 신념을 향한 그의 자세는 지금 게으른 나를 두들겨 깨운다.

누구보다 이 책을 제사장이라는 직분을 권위로 여기고 교회 안에서 틀어쥐고만 있는 목사를 비롯한 종교지도자들이 읽어야 한다. 그리고 “의사는 병원의 제사장”이라는 전언이 하는 말의 참뜻을 알아듣는 의사들이 읽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주변에서 보면 예수님은 고사하고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정말 했는지 의심스러운 의사들이 꽤 많다.

“(유다는) 요셉을 애굽에 팔아버렸던 형이지. 그는 며느리 다말에게서 아이까지 낳는 패륜을 저지르는 사람이야. 그의 인간성은 죄악덩어리지만 단지 예수님의 계보에 속해있다는 이유로 점점 더 주님을 닮아가거든. 나도 그렇게 되길 바라.”

그의 미니홈피에는 그가 ‘부재의 사역’을 하고 있다는 글이 올라온다. 그는 죽었으나 여전히 살아 있다. 살았으나 죽은 삶을 살고 있지는 않는가. 이제 그의 고백을 나의 고백으로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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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도무지 헤어나올 수 없는 아홉 가지 매력>을 리뷰해주세요.
자전거, 도무지 헤어나올 수 없는 아홉 가지 매력
윤준호 외 지음 / 지성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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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스웨스트 환경기구의 수석 연구원 존 라이어가 <지구를 살리는 7가지 불가사의한 물건들>에서 첫 번째로 소개하는 물건이 바로 자전거다. 요즘 연비를 올린 하이브리드 자가용이 족족 출시되고 있지만 두 발로 직립보행을 하는 대신 디스크, 관절질환, 치질이라는 대가를 톡톡히 치르는 인간에게는 역시 두 발로 달리는 자전거가 제격이다. 

경제적이고 윤리적이며 환경친화적이며 몸 건강과 정신 건강에 두루두루 좋은 자전거 타기의 장점은 자전거 애호가 아홉 명의 소회를 담은 <자전거, 도무지 헤어 나올 수 없는 아홉 가지 매력>에서 두고두고 강조하는 부분이다.  

이들을 두고 대한민국 대표 자전거 애호가라고 하기는 그렇지만, 아무려나 자전거에 푹 빠진 이들의 면면을 보면 밴드 멤버, 음악 평론가, 만화가, 라디오 디제이 등등 자동차의 속도만큼이나 자본주의의 정점을 향해 치달리는 한국 사회에서 나름의 독자적인 생존법을 구가하는 이들이다. (대표적인 예가 자전거 메신저(택배)인 지음 씨인데, 기호를 넘어 삶에서 우러나오는 자전거에 대한 그의 얘기는 꽤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목표를 향해 고속도로의 일직선을 추구하는 자동차와는 달리, 가는 길 내내 시골길 마냥 다양한 변주가 가능한 자전거와 그들의 삶이 조화를 이룬 덕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누구라도 어린 시절부터 배우기 쉽고 간편한 자전거와 함께 한 추억이 있지 않은가.

운동과는 담을 두 겹으로 쌓고, 삼겹살을 자랑하던 내가 음식조절을 하지 않았음에도 한때나마 10Kg 감량을 성공할 수 있었던 건 오로지 자전거 타기의 즐거움 덕분이었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자전거를 다시 끄집어내는 게 맞는데, 저자들처럼 마냥 즐거워할 수만도 없는 게 나름 사연이 있다. 우선, 이 자리를 빌어서 대략 5~6년 전 초봄, 충정로 파출소 앞에 세워두셨던 자전거 주인에게 심심한 사과를 보낸다.  

설마 파출소 앞에 두었는데, 하고 안심을 하셨겠지만 새벽 2시까지 원치 않는 술에 취한데다 지갑을 잃어버려서 집은커녕 사우나를 갈 수도 없는 상황에다 파출소의 환한 간판 덕에 자전거가 흐릿한 눈에도 단박에 들어왔다. 

아무려나 느닷없는 객인을 싣고도 얌전히 달려주는 자전거가 쓰린 속을 달래주었다. 슬슬 속력을 내봤다. 새벽 찬 기운이 술기운을 슬슬 몰아내주기도 했지만 오랜 만에 타본 자전거는, 어린 그 시절처럼 제법 흥미진진한 구석이 있었다. 

차마 차도로 나갈 엄두는 못 내고 인적이 드문 인도로 슬슬 달렸는데, 지하도 말고는 건널목을 좀처럼 찾기 힘든 세종로 4거리 앞에서 냅다 이순신 동상 앞으로 가로질러간 기억이 생생하다. 쉬다가 타다가를 반복하면서 장장 여섯 시간 걸려서 기어이 집에 도착했다. 바로 출근을 해야 할 시간이었지만 난 냅다 퍼져서 오후 늦게까지 잠이 들고 말았다. 

아! 사과를 한다고 해놓고서는 절도 행각을 마치 추억 여행처럼 기술하고 말았다! 이왕 말나온 김에 좀 더 뻔뻔하게 들이대자면, 그때 자전거가 없었다면 아마 길바닥에서 노숙을 하다가 구완와사가 왔을지도 모르거니와, 까맣게 잊고 지냈던 자전거의 매력을 되찾을 일도 없었을 것이다. 새벽녘에 잠자는 서울 한복판을 관통하는 기분과 온몸이 녹이 슨 듯 어마어마한 근육통에 시달렸던 한 주가 떠오른다. 

미술평론가 반이정의 ‘두바퀴의 수난사 : 빈곤한 자전거 도둑들의 도시’를 읽고는 내내 가시처럼 걸려 있던 그때의 일이 떠올랐다. 이후 마당 한쪽에 있는 자전거를 볼 때마다 죄책감에 시달렸는데, 결국 이웃집 아이의 차지가 되고 말았다. 

그 이후로 사거나 받아서 자전거를 내내 타고 다녔는데, 인과응보인지 툭하면 도난당했다. 지하철 입구 거치대에 세워둔 수십 대의 자전거 중에서 내 자전거만 쏙 없어졌을 때에는 정말 누가 보고 있나 싶기도 했다. (그때 이후로 번호키 자물쇠는 사지 않는다.) 

딱 봐도 질긴 녀석으로 자물쇠를 구해 걸었더니 안장을 쏙 빼가는 일이 벌어졌다. 일부러 키에 맞춘다고 싯포스트(seatpost)를 늘이고 전립선 보호 안장으로 바꾼 지 일주일도 안 되어 벌어진 일이었다. 이후로 목(?) 없는 자전거는 창고에 처박힌 채로 나올 줄을 모른다. “타고 가다가 그냥 사고나….” 저주가 입 밖으로 튀어나오다가 멈춘다. 

하! 누가 누구를 탓하랴! 그리하여 자전거 주인께 사과를 올린다. 자전거 저주를 제발 풀어주시길 바란다. 그리고 내 자전거를 가져간 이들이여! 부디 오래오래 아껴주길 바란다. 

주자가 <근사록>에서 말하길 ‘공자의 논어를 읽어서, 읽기 전과 읽은 후나 그 인간이 똑같다면 구태여 읽을 필요는 없다’라고 했던가, <자전거, 아홉가지 매력>을 읽고 자전거를 타지 않는다면 구태여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없을 것이니.

아무래도 이야기가 많이 빗나갔지 싶은데, 뭐 이런 게 또 자전거가 건 저주(?)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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