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 히로부미 안중근을 쏘다
김성민 글, 이태진.조동성 글 / IWELL(아이웰)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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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의 남경대학살 만행을 다룬 <난징 대학살> 저자 아이리스 장은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 과거를 되풀이한다"라고 말했다. 그녀의 말 앞에 과연 우리는 자유로운가. 1923년 9월, 관동대진재학살을 비롯해 일제와, 이후 군부독재의 광주 대학살 만행은 아픈 근현대사로 남아 있다.

나치의 만행과 진상을 밝히고, 이후 나치를 옹호하는 경우를 냉정하게 처벌한 독일과 달리 일본은 군국주의에 대한 목소리나 역사를 날조, 왜곡하는 자국 역사가들에 대해 여전히 관대하다. 위안부 문제에서 보듯 현재진행형으로 벌어지는 사안으로 봐도 우리는 일제 강점기가 과거가 아닌 현재로 인식해야 하는 이유를 말해준다. 

우리는 역사를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가. 반민특위는 흐지부지, 친일파가 쥔 기득권이 군사정권으로 이어진 게 멀지 않은 일이다. 해방 이후 64년만인 올해 11월 8일, 이제야 친일인명사전이 나왔다. 등재 사실을 두고 사죄하는 친일파 후손도 있으나, 대부분 사전 자체를 폄하를 하고 핏대를 세운다. 그렇게 망각은 정신 이상을 가져온다. 역사가 반복되지 않으려면 기억을 해야 한다. 올해는 안중근 하얼빈 거사 100주년을 맞이하는 해이다. 

‘안중근 의사’ 우리가 익히 배워 알고 있는 칭호이다. 허나 선비 사(士)를 쓰는 의사라는 칭호는 개인적 울분에 의한 의거를 의미하는 말로, ‘포수가 애국심으로 저지른 무모한 테러’라는 일본 법원의 손을 들어주는 말이다. 안중근은 대한의군 참모중장 자격으로 독립 전행을 하였고, 또 전쟁 포로 대우하라고 일본 법정에 요구했다.

올 한 해, 다양한 문화 장르에서 안중근을 기리는 작품들이 연이어 소개되었다. 일본 희곡작가의 눈으로 본, 감옥에 갇힌 이후 안중근의 사상을 다룬 연극 <겨울꽃>과 안중근의 하얼빈 거사를 중심에 놓고, 안중근 다시알기의 첨병 역할을 톡톡히 하는 50억 대작 프로젝트 창작 뮤지컬 <영웅> 등이 그렇다.

안중근의 아들 안준생이 이토 히로부미의 아들에게 공식 사과를 한 안타까운 실화를 다룬 짧은 단편 소설 <이토히로부미, 안중근을 쏘다>에서는 안중근은 등장하지 않는다. <이토 히로부미, 안중근을 쏘다>, 역설적 제목의 단편 소설은 호부견자(虎父犬子) 소리를 들는 안중근의 둘째 아들 안준생의 삶을 다룬다.

안중근 거사 이후, 일본의 극심한 탄압 속에서 제대로 된 보살핌을 받고 자라지 못한 안준생의 어렸을 적 삶은 비참했다. 안준생의 형은 일곱 살 때 누군가가 준 과자에 먹다가, 배고파할 동생과 나눠 먹을 심산으로 집으로 가지고 오는 길에 죽는다. 독살을 당한 것이다. 이토 히로부미의 아들에게 공식으로 사과를 하고, 죽음 대신 삶을 택한 안준생은 한때 임시정부의 암살 대상이었다.

안중생의 삶은 역사적 환호 뒤에 가려진 단면의 일부일 뿐이다. 안준생을 약재상을 돈을 벌어 그의 아들은 미국에서 의사로 살고 있다고 한다. 그렇게 영웅의 이야기는 뮤지컬의 장엄한 결말과 달리, 연극의 일본인까지 감동을 한 사상가의 면모를 드러낸 모습과 달리 감동으로 끝나지 않는다.

적어도 우리는 좀 더 많은 부분에 대해 외면했거나 무시했거나 왜곡해왔다. 독립군 가계의 비참한 대물림, 친일파 자손들의 득세는 여전히 풀지 못한 과제이다. 일제의 의해 훼손되어 함부로 다뤄진 안중근의 유해는 어디에 묻혔는지도 여전히 찾지 못했다.

거사 이후, 가족의 비참한 미래를 안중근이 짐작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을까. 안준생에게 아버지 안중근이 영웅일 수 있는가. 이면의 진실 때문에라도 우리가 안중근을 새롭게 다룬다면 보다 촘촘하게 접근해야 한다. 그 얘기들이 현실이 되지 않는 이상 일제 잔재 청산을 비롯해 반쪽짜리 역사를 바로 잡을 수 없다. 그리고 역사를 제대로 기억하지 않는 이상, 비극은 반복될 수 있다.

며칠 남지 않은 2010년은 안중근 순국 100주년이다. 내년에는 이 작품이 보다 치밀한 얼개를 가지고 다시 만나게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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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현의 얼굴 - 그의 카메라가 담는 사람, 표정 그리고 마음들
조세현 지음 / 앨리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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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수식이나 설명이 들어가지 않은 상태에서 오로지 사람이 가진 표정으로 이야기를 끌어내려 노력한다. 그럴 때 주변의 복잡한 배경은 이야기에 방해가 된다. 사람 하나면 충분하다. 그래서 내 카메라 앞에 선 사람은 사진을 찍는 그 순간만큼은 내 사진의 처음이요 끝이 된다. (99쪽)

사진을 볼 때 문득 렌즈의 사각 프레임 밖이 궁금해질 때가 있다. 웃고 있는 얼굴 옆으로 선 밖으로 잘려나간 그 자리에는 무엇이 있을까. 무엇이 있어서 저렇게 웃을까. 저 이는 왜 울고 있을까. 무슨 일이 있었길래. 사진기는 보고 싶은 모습만 보여주는 이기적인 매체이다.  

디지털 카메라가 보급되면서 컷 수가 늘고, 자르고 이어붙이는 편집이 비교적 손쉬워진 덕에 프레임 개념이 확장되었지만 자를 수는 있어도 더 많은 걸 보여주지 못하는 한계는 넘을 수 없는 벽이다. 한계를 넘는 자리에 작가의 상상력을 더한 회화가 있을 것이다. 사진이 회화만 못하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는 복제로 인한 아우라 소멸에만 있지 않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해주는 것. 사진의 힘이 거기까지 미친다면 앞으로 내가 한 장의 사진 속에 담아내야 할 것이 얼마나 많단 말인가. 벅찬 마음에 가슴 한구석이 뻐근했다. 사진가로서 또 다른 삶이 시작되는 경이로운 순간이었다. (53쪽)

유명 연예인 사진을 찍어 이름이 알려진 사진작가 조세현의 사진집 <조세현의 얼굴>에서는 수많은 컷 중 고르고 골라 실은 사진들 마냥 담담하게 시구처럼 적어내린 글귀에서 그 한계를 극복한 순간을 말한다. 자랑도 아니고, 그냥 자연스러웠던 그러나 분명 “경이로운 순간”의 경험이다.

<조세현의 얼굴>을 오가는 지하철에서 그만 다 읽고 말았는데, 여유 없이 글자만 좇아간 이유이다. 그래서 집에 와서 사진을 다시 한 장 한 장 넘겨보았다. 병마총으로 유명한 중국 시안[西安]에서 주민들의 편안한 일상을 담은 작품집 속 인물들은 하나 같이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다.

심지어 병마총도 ‘프로필’의 원뜻이라는 옆모습을 스스럼없이 내보인다. (옆모습이 사람의 진실한 모습을 보여준다고 한다. 생각해보니 외국인들 사진이 그렇다. 평평한 2차원에서 3차원으로 전환이다.) 카메라를 응시한다는 것,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웃음! 쫓겨서 카메라를 발기한 성기마냥 들이대는 낯선 관광객에 보여줄 표정이 아니다. ‘내 사진에는 유독 웃는 얼굴이 많다 (…) 거짓 웃음이 아니라 타인을 향한 호기심으로 스스로를 무장해제시키는 웃음’이라는 그이의 말은 돈 몇 푼으로, 혹은 유명 사진작가를 타이틀로 끌어낼 수 있는 게 아니다.

아무리 이야기해도 저 앞에 서 있는 사람은 계속 나를 의식한다. 그럼에도 자연스러운 모습을 찍어내는 것, 그게 내가 할 일이다. 특별한 비법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을 좀 더 편하게 해주는 것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다. (97쪽)

억지웃음을 지을 때가 많은 연예인들이 조세현을 부러 찾는 이유라면, 사진 찍는 기술 이전에 그의 ‘편하게 해주는 것’일 게다. 그것이 자연스럽게 연예인들의 참 표정을 끌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림자 연극 풍경을 담은 ‘표정들’ 외에는 한낮의 자연광 아래 찍은 사진들이다.

조세현은 그들의 삶에 맞춰 느릿느릿 시안 주민들의 속도에 맞추면서 그들과 렌즈 이전의 교감을 얼굴과 얼굴로 나누었을 것이다. 재빠른 손이 아닌 느긋한 발걸음으로 촬영한 사진은 사진을 찍기 이전의 과정이 사진 속에 담겨 있다. 사진이란 이런 것이구나, 후딱 읽히고 평범한 사람들의 표정에 싱겁다 싶었다가 집에서 느긋하게 바라보면서 깨닫는다.

2천 년 전 얼굴을 담은 병마총 군인들의 얼굴은 역시 비슷한 시기 시안에서 탄생한 그림자 연극을 총총한 눈으로 보는 마을 주민들의 얼굴과 겹친다. 한 밤의 어둠을 극장 삼아 마을 공터에서 주민 몇몇을 앞에 놓고 열리는 소박한 무대, 2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방식이다.

그런대도 우리는 생동감이 넘치는 진짜 얼굴을 무시하고, 본 따 만든 인형 얼굴만 대단하다, 대단하다 혀를 내두른다. 조세현이 말하는 ‘사람을 찍다 보면 카메라를 사이에 두고 그와 나의 눈이 늘 마주칠 수밖에 없는데, 사람의 눈을 마주하는 것은 그의 영혼을 마주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 마음을 다해 사진을 찍다 보면 눈빛으로 대화를 한다는 말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그것이 곧 소통이다. (98쪽)’이라는 말은 사진집을 읽는 나와 작가와 사이에도 마찬가지다.

사진을 읽다 보면 사진작가의 마음이 엿보이는 ‘경이로운 순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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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의 제국 - 영국 현대미술의 센세이션
임근혜 지음 / 지안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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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인상어 전용 죠스바, 얼린 대가리.젊은 미술가이자 책 편집자이기도 한 그녀와 일로 그녀의 작업실 겸 사무실에서 처음 만나서는 툭하고 좋아하는 작가를 물었을 때, 그녀가 너저분한 책상에서 잡지에서 뜯어낸 듯한 페이지에 본 <셀프> 첫 느낌이다.

“드라큘라 여름 간식을 딱”이라고 했다가 순간 순한 그녀가 쏘아보는 눈빛을 잠시 받았었다. 스스로 꽤 그럴듯한 농담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지 못한 반응에 설명을 해주면 감사하겠다고 했지만 그녀는 “맞는 말”이라고 하고는 그저 어깨를 으쓱하고 말았다. 아마도 그때부터 그녀와 인연이 될 가능성이 아주 없었는지 모르겠다.

<셀프>. 마크 퀸이 5년에 걸쳐 자신의 피 4ℓ(성인 한 사람분의 피)를 뽑아 제작한 자신의 두상조각. 전 세계에 딱 4점. 그 중 1점은 영하 10도로 냉동보관을 해야 하는 작품의 스위치를 청소부가 뽑아버리는 바람에 작품이 훼손되었다…고 한다. 이제는 그나마 들어서 알지만 좀 늦었다.

한 달에 하루 이틀, 그녀의 작업실에서 원고 퇴고와 수정을 했다. 시간을 아끼자는 명목이지만 그녀와 자연스럽게 밥을 먹고 얘기를 하고 싶었다. 그녀는 주로 아크릴판에 컴퓨터 그래픽으로 작업을 했다. 한국화 전공인 그녀와 다른 듯 혹은 담은 선이나 정서는 비슷한 듯 고개를 갸웃갸웃 거리고는 했다. 영국 현대 미술 계보와 작가들과 작품들과 활약상을 다룬 <창조의 제국>을 읽고서 그녀의 작품에 줄리언 오피의 영향이 얼마간이라도 스몄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녀가 하고 싶은 일인 미술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어쩔 수없이 해야 하는 일인 편집만 두고 집중을 해서 얘기를 나눴으니 어차피 그녀에게 난 ‘어쩔 수없이 만나야 하는 부류’에서 더도 덜도 아니었을 것이다. 혹시나 그녀가 나를 만났을 때마다 그리고 내가 가진 호감을 알게 되었을 때, 그녀의 속마음이 제이크 & 채프먼의 <지옥>같지만 않았길 바랄 뿐이다. 

런던대학교 골드스미스 칼리지에서 큐레이터십 석사 출신 임근혜가 <창조의 제국>에서 yBa(Young British Artist)에 대해 충실하게 소개할수록, 그녀와 내가 왜 인연이 될 수 없었는지 맞추지 못하고 덮어두었던 퍼즐의 몇 가지 힌트가 제공되었다. 영국의 현대미술을 이해하는 만큼 솔직히 현대 미술을 이해하지도 이해할 생각도 없는 나와의 의외로 많은 접점에 살짝 놀라고 말았다.

단순히 한때 내가 좋아했던 그녀가 미술가가 아니었다 해도 공유할 수 있는 건 현대인의 정서(주로 피폐한)가 작품에 잘 반영되었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고, 한편으로 6장(팝, 아트 그리고, 팝아트)에서 소개하듯 비틀즈, 블러 등 유명 뮤지션 앨범 커버, 맥주병 라벨, 그리고 그 영향을 손에 꼽기도 힘든 광고들에서 역으로 흘러든 정서를 내 것인 양 품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영국 미술잡지 아트 리뷰 11월호 기사에서 ’세계 미술계 영향력 있는 인물 100’ 작년 1위에서 올해 48위로 추락했다는 소식이 우리나라 일간지에도 소개되는 영국 현대미술의 대표 데미안 허스트의 <신의 사랑을 위하여>이 책 표지다. 실제 해골에 제작비 200억을 들여 8601개의 다이아몬드를 박아 940억에 팔린 작품답게, 집 밖에서 책을 펴들 때마다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진다.

그들이 보는 건 해골인가, 다이아몬드인가. 책을 읽을 때마다 보다 보니 꽤 친숙하다. 처음에도 혐오스럽거나 부럽지는 않았다. 욕망의 무한 질주 퍼레이드에 사는 대한민국 서울시민으로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살갗 뒤 친숙한 내면이지 않을까, 뒤표지는 크리스 오필리의 <아프로디지아>다. 포르노 이미지를 차용하고 코끼리 똥을 둥글게 뭉쳐 붙인 작품이다.

앞과 뒤, 입과 항문, 욕망과 배설, 다이아몬드와 똥. 앞 뒤 표지 컷 절묘한 구성에서 <창조의 제국>의 전체적인 성격을 짐작할 수 있다. 그 사이로 15장에 걸쳐 영국 현대미술 계보의 내장을 통과하는 동안 눈을 뗄 수 없는 370컷의 사진만 놓고도 꽤나 만족스럽다. 솔직히 말하자면 새로운 눈을 띄워주었다. 편집자 노트에서 밝히듯, 사진의 80% 정도를 작가들이 무료 게재를 허락하지 않았다면 작품 중 일부는 책에 실리지 못했거나 책값이 꽤나 올랐을 것이다. 어떤 이유로든 내가 보지 못할 뻔한 작품들이다.

출판사의 3년에 걸친 노력이 첫 번째 원동력이겠지만, 한편으로 그들의 비즈니스 감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줄리안 오피의 홈페이지에서 보듯, 작품을 곧 바로 티셔츠 등의 상품으로 만들어 파는 그들에게 <창조의 제국> 출간은 광고의 일환, 시장의 확보의 의중이 있기도 할 것이다. 데미안 허스트가 작품 게재를 허락하기 전에 책 내용을 확인했다는 이유도 마찬가지이다.

내년 1월 10일에 서울에서 아라리오 갤러리 20주년 기념 전시가 열린다. 이번 전시에서 유독 관심을 끄는 작품은 마크 퀸의 <셀프>, 그곳에 가면, 작년부터 연락을 하지 않게 된 그녀를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우연히 만난 것처럼 일 부탁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창조의 제국>을 꼼꼼하게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가 한 가지 더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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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소년은 눈물을 그쳤나요
이재웅 지음 / 실천문학사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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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시리다. 소설은 빠르게 훑고 지나가면서 읽지 않으면 문장 문장마다 아프게 속살을 헤집고 들어온다. 이재웅의 장편소설『그런데, 소년은 눈물을 그쳤나요?』에서는 희망 따위, 소년이 흘리는 눈물만큼이나 드물다.

소년은 울지 않는다. ‘내 주위 사람들은 모두 잘 울’지만 눈물을 흘려도 세상은 변하지 않는 걸 안 이상 ‘우는 건 바보 같은 짓’이라는 걸 알만큼 12살 소년은 늙어버렸다. ‘늙은’ 소년은 오로지 누나를 위해서만 운다. 영양실조로 손바닥 껍질이 하얗게 벗겨질 때마다 자라기 위해 허물을 벗는 것이라 했던 할머니가 죽고, 이북 누나와 살게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누나가 사는 방 네 개짜리 아파트는 좋은 옷과 음식과 고급 자전거가 있는 곳이다. 그러나 경비실 직원도 누나의 고객인 ‘여자 사업장’이자 그 '여자'인 누나를 곽호 아저씨가 감시하는 감옥이다. 사창가에서 나오기 위해 곽호 아저씨에게 1억을 빚진 누나는 물건 값을 턱없이 싸게 깎으려고 주인과 매번 싸우는 “할머니보다 몇 백 배는 가난한 여자”였다. 지독한 가난 뒤에 화려하게 포장한 더 지독한 가난이 지옥처럼 소년을 맞이하였다.

“인생에서 뭐가 문제인지 모르는” 철없는 누나와 싸우고 난 뒤, 가출한 소년은 고속버스터미널에서 무작정 고른 해남행 버스에 오르는 대신 대합실에서 눈물을 흘렸다. 지금 떠나면 영원히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걸 안 소년은, 앞으로 누나에게 정말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는 걸 안다. 이때 흘리는 눈물도 늙은이의 것이지 아이의 것이 아니다.

채팅방에서 소년을 사기 위해 경차를 몰고 나타난 -아마도 가난한- 서른아홉 이혼녀, 단속을 봐주는 대신 공짜로 자라는 제의에 “제 값 주고” 하는 걸 자존심이라 내세우는 경찰, ‘영계’를 내세워 창녀가 되고 싶으나 외모 때문에 그 마저도 포기하는, 소년만큼이나 늙고 가난한 소녀, 완주를 비롯해 세상은 충분히 저주스럽다.

그러나 “난 충분히 괴물이에요. 잔인한 괴물이에요”라고 외치는 소년을 더욱 몰아붙이는 건 “너는 좀 더 잔인한 것들을 경험해야 해. 고통스러운 것도. 넌 아직 어린애에 불과해”라는 곽호 아저씨의 말이 엄포로만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늙은 소년은 그 모든 것을 알고, 그 운명을 거부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도 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이 모든 것을 저주하며 자전거 타기에 열중하는 것뿐이다.’ 자전거 앞에 늘 나타나는 경사진 골목처럼, 좌절을 안기는 세상을 향한 소년의 힘겨운 페달질은 ‘거센 바람이 내 몸을 훑고 지나가면 살아 있다는 느낌’인 동시에 속울음, 눈물이 섞인 짜디 짠 바람이다. ‘나무들 가지에서는 파도 소리’다.

소년은 눈물을 그쳤는가, 소년의 울음은 “이 불안전한 고독을 떨쳐버릴 수 없을 것”이라던 작가 이재웅이 소설을 쓰는 내내, 귀에서 맴돌았을 것이다. 냉정하고 우울한 소설인 동시에, 우직하고 가장 놀라운 데뷔작이다.*
  

“울어도 상관없어. 가서 누나한테 이대로 일러바쳐도 좋아. 징징 울면서 일러바쳐. 너는 갈보가 벌어오는 돈으로 먹고사는 자식이야. 너 같은 자식에게 희망은 없어. 네가 어떤 현실에 놓여 있는지 알게 되면 살맛이 다 달아날 거다. 일찍 죽어버리는 게 좋아. 미래는 더 형편없을 테니까.”
그는 그런 말들이 열두 살짜리에게 상처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그건 맞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미 열두 살이 아니었다. (…) “나는 희망을 기대하지도 않아. 나도 죽어버렸으면 좋겠어. 하지만 죽기 전에 분명히 말해둘게. 너한테도 희망은 없어. 너는 콜택시를 몰다가 차 사고로 죽어버릴 거야. 우리 누나 같은 갈보하고 함께.” - 108P

“난 벌써 먹었어.” 나는 말했다. 누나가 그것을 먹었다. 나는 배고픔을 견디기 위해 대합실 한 쪽을 이유도 없이 노려보았다. 늙은 소년에게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228P

“우리가 회사와 싸우기 이전에 노조와 싸워야 한다는 건 비극이야. 그는 말했다. ”세상과 싸우기 이전에 자기 자신의 문제와 싸우는 게 비극이듯이 말이야.“ - 27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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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육 만들기 - 평생살찌지 않는 몸으로 건강하게 사는
이시이 나오카타 지음, 윤혜림 옮김 / 전나무숲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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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사는데 기본이 되는 세 가지 의식주(衣食住) 가운데,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옷을 입는다는 점이다. 잠을 자거나 먹지 않고 살 수 없어도 옷을 안 입고는 살 수 있는 게 동물이라면, 의복은 몸을 보호하는 1차 기능을 하지만 그보다는 인간이 인간인 이유, 문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1차적인 기능을 넘어서 옷은 이제 지위, 계급, 성별, 나이, 상황을 구분 짓는 사회적 잣대지만, 결국 몸을 감싸는 역할에서 더도 덜도 아니다. 옷이 몸이 될 수는 없는 법이지 않은가. 유니폼이 사회적으로 혹은 개인에게 끼치는 영향을 결코 무시할 수는 없지만, 옷은 자칫 몸에 대한 본래적 이해를 가로막기도 한다.  

엉뚱한 생각이지만, 만약 인간이 옷이 입지 않았더라면 비만이 세계적인 문제가 되었을까. 앙상하게 드러난 아프리카 아이들의 갈비뼈가 기아 문제를 환기시키는 이미지로 쓰인다고 볼 때, 역으로 뉴욕 시민들의 축 늘어진 뱃살을 가리지 않고 고스란히 드러낼 수밖에 없다면 비만 문제가 지금보다는 덜 심각할 것이다. 하지만 자, 당신이 지금 막 외출을 하는데 아프리카 아이들처럼 팬티 한 장 걸칠 수밖에 없는 세상이 온다면 눈앞에 놓인 조막만한 500Kcal 치즈케이크를 맘 놓고 먹을 수 있겠나?   

옷 뒤에 숨은 뱃살은 보지 못하는 대신 광고에서 보는 복근으로 대리만족을 하고, 모델이 선전하는 브랜드 옷을 입고 착각에 빠져 사는 건 아닌가. 뭐, 남 얘기가 아니다. 쌀쌀한 겨울이 오고 두꺼운 겉옷을 챙겨 입으면서, 바지허리가 조이는 걸 문득 알아채고 말았다! 날씨가 쌀쌀해지면서 활동량이 줄기도 했지만, 알게 모르게 겉옷이 내 뱃살을 가려줄 거라는 무의식이 부른 방심의 결과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신문, 인터넷, 라디오, TV 어디를 보나 널린 게 다이어트 관련 광고니 걱정 없다. 그리고 광고들은 슬슬 말하기 시작한다. “겨울부터 살을 빼야 여름에 자신 있게 비키니를 입을 수 있습니다!” 철마다 늘 하는 소리라는 걸 알면서 귀가 솔깃해지고 만다. 젠장, 당체 살은 찌긴 쉬운데, 왜 빼긴 어려운 거야? 것도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을수록 더 그러니. 이게 바로 나잇살이라는 건가?

인체 시스템은 매우 정교하기 때문에 예측하지 못하는 위기와 장래에 대비하여 남은 에너지를 몸 안에 ‘지방’으로 쌓아 둔다. 굳이 지방이어야 하는 이유가 있다. 지방은 다른 영양소보다 에너지 효율이 높기 때문이다. 이와 체내에 쌓아 두려면 에너지 효율이 높은 지방을 선택하는 것은 당연하다. 20P

<평생 살찌지 않는 몸으로 건강하게 사는 근육 만들기 (이하 근육 만들기)>의 설명은 살 때문에 고민을 해본 사람이라면 이제 상식으로 아는 얘기지만, 인간의 몸이란 의지나 이성과 다르게, 모든 생명체가 그렇듯이, 생존에 유리한 방향을 선택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나이가 들수록 기초대사량이 줄고 지방 축적이 점점 높아지는 것 역시 활동력이 떨어지는 상태를 대비하기 위한 전략이다.

앞서 의식주에서 옷이 인간이 인간인 이유라는 말은, 동시에 인간이 생물종으로 인간이라는 조건에 반하는 조건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옷을 입지 말라거나 투명한 옷을 입으라고 법을 제정할 수도 없는 일이고 보면(당장 나부터가 길길이 반대를 할 것이다), 해결책은 누구나 다 아는 얘기다. 살을 빼! 

<근육 만들기>는 누구나 다 아는 얘기에 한 마디 더하는 책처럼 보인다. 하지만 다이어트 열풍 뒤에 숨은 잘못된 상식을 바로 잡고, 살을 빼기 위해서는 식사 조절, 유산소 운동에 앞서 근육을 먼저 키워서 기초대사량을 높이는 몸으로 만드는 게 지방 소비의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인체 원리를 소개하는 책이다.

다이어트에 앞서 ‘건강’이라는 목표가 확고하다면 먼저 근육 트레이닝을 통한 무산소운동으로 기초대사율이 높은 몸을 만든 후에 유산소 운동을 지속적으로 하는 것이 좋다. 이것이 현재 운동생리학 관점에서 해 줄 수 있는 최선의 조언이다. 53P

한데 이 책이 재미있는 이유는, 근육생리학자인 이시이 나오카타 교수의 주장이 단순히 건강지침서에 그치지 않고, 운동생리학적 관점을 통해 사회문화적인 현상을 같이 짚어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식사 제한에만 의존하는 다이어트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원하든 대로 지방을 줄일 수는 있겠지만 동시에 근육도 줄어든다. (…) 근육이 줄어드는 다이어트는 대사 기능을 떨어뜨려 ‘살이 잘 빠지지 않는 몸’을 애써 만드는 꼴이 된다. 40P

살이 잘 빠지지 않는 몸이란 다시 말해 다이어트 최대의 적, 요요현상을 말한다. 요요현상이 비단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생체 시스템이 그런 것인데, 괜히 의지만 탓하지는 않았나? 이시이 교수가 이 책을 쓴 이유 중에는 수많은 다이어트 프로그램이 정보를 제대로 알려주지 않거나 심지어는 잘못된 정보를 알려주어 몸을 해친다는 것이다.

그 이유가 있다. 당연히 다이어트 프로그램으로 돈을 벌려면 단기간 내에 빠른 효과를 봐야하고, 그러니 자꾸만 단식을 권하게 한다. 유산소 운동이 살 빼는 데 좋다는 건 다 알지만, 이시이 교수는 ‘효율’로 따지자면 먼저 근육량을 늘리는 무산소 운동을 어느 정도 한 뒤에 유산소 운동을 하는 게 유산소 운동만 하거나, 순서를 뒤바꿀 때보다 훨씬 뛰어나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그러려면 적어도 3개월 동안은 꾸준한 무산소 운동을 통해 근육량을 늘려야 하고, 무산소 운동은 지방을 소비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어느 ‘고객’이라도 좋아할 리가 없다. 더욱이 몸매에 관심이 많은 여성들의 입장에서는 근육이라는 소리만 들어도 기겁을 하지 않는가.

그러니까 생리학적으로 살을 빼고 건강한 몸을 유지하는 데에 몇 가지 원칙이 있는데도, 여전히 이와는 전혀 다른 방식이 대부분의 다이어트 프로그램인 셈이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한 주에 2번, 하루 15~30 가량의 슬로우 트레이닝은 저자의 말에 따르면 ‘남녀노소’ 누구라도 쉽게 따라할 수 있는 방법이다. 한편으로 너무 쉬운 게 아닌가 싶지만 이 책에서 소개하는 몇 가지 원칙은 철저하게 과학적인 결과를 토대로 하고 있다. 비로소 현혹되지 않는 건강한 몸 가꾸기 프로그램을 찾았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사이즈가 점점 늘어나는 내 몸으로 보건대, 누구보다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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