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해석자는 ‘더‘ 좋은 해석이 아니라 ‘가장‘ 좋은 해석을 꿈꾼다.이 꿈에 붙일 수 있는 이름 하나를 장승리의 시 <말>의 한 구절에서 얻었다."정확하게 사랑받고 싶었어."

내게 이 말은 세상의 모든 작품들이 세상의 모든 해석자들에게 하는 말처럼 들렸다. 그렇다면 해석자의 꿈이란 정확한 사랑의 표현에 도달하는 일일 것이다...

저는 인간이 과연 어디까지 섬세해질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상상할 수 있는 한 가장 섬세한 사람이 되어볼 수는 없을까 생각합니다. 저 자신을 대상으로 삼아 실험해보고 싶습니다. -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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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9-19 12: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청공님
추석 연휴 동안 가족과 행복한 시간 보내세요
해피 추석~


∧,,,∧
( ̳• · • ̳)
/ づ🌖

청공 2021-09-19 14:26   좋아요 1 | URL
스콧님~^^
추석인사까지 챙겨주셔서 감사해요.
보름달 들고 있는 고양이인가요? 귀여워요. 저런거 어떻게 만드시는지~ 감탄~
스콧님두 즐건 추석보내세요~^^
 

아빠의 나약함과 결핍감을 발견하면서 과거에 그가 부재하거나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깨달았다. 아빠는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 ㅡ강인한 해결사ㅡ을 할 수 없을 때, (사라지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사라져야만 했다. (침묵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침묵해야만 했다. 가부장제는 약함을 여성성으로, 강함을남성성으로 환원하므로 아빠는 자신이 강하지 못할 때 보이지도, 말하지도 말아야 했다. 아빠 또한 남성의 감정을 억압하는가부장제의 피해자가 아니었을까?

스스로가 위태롭게 느껴질 때마다 아빠의 편지들을 읽었다. 이토록 나를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되새겼다. 나는 착한 딸이었다. 내가 아무리 못되게 굴고 모진 말을 해도 아빠에게 그것은 변하지 않는 진실이었다. - P166

공간의 분배에서 할머니와 가장 대비되는 사람은 엄마였다. 집안 상황이 좋았을 때 할머니에게는 할머니 방이, 나와 동생에게는 각자의 방이, 아빠에게는 취미생활을 위한 방이 있었다. 그러나 명문 빌라처럼 방이 넉넉했던 집에서도 엄마는 자기만의 방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그 불공평을 인식한 뒤 내가 엄마만 방이 없다는 사실을 지적하자 엄마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괜찮아, 집 전체가 다 내 방이지." 엄마의 뜻과 달리,그 말은 엄마의 처지를 정확하게 보여주고있었다. 며느리, 아내, 엄마인 여자는 집 안의 어느 곳에나 있어야 하므로 집 안의어느 곳도 소유해서는 안 되었다. 엄마는 장소 그 자체였다. - P141

원하는 모든 것을 이룰 수는 없어도 원하는 하나쯤은 성취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혁명가, 모험가, 몽상가, 방랑자, 무정부주의자는 될 수 없어도 문학을 하는 사람은 될 수 있을 거라고생각했다. 하지만 문학을 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것은 혁명가,모험가, 몽상가, 방랑자, 무정부주의자를 모두 합친 사람이 되겠다는것이나 마찬가지다. - P92

서남부 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인 정남규가 검거되었다. 열세 명이 사망하고 스무 명이 중상을 입은뒤였다.
왜 서남부지역이었나는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강남구 등 부유층이 사는 동네엔 CCTV가 너무 많아 범행을 저지를 수 없었습니다. 살인을 쉽게 하기 위해 방범시설이 갖춰져 있지않은 곳, 서민이나 저소득층이 거주하는 지역을 범행 장소로 삼았습니다."  - P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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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년 전, 다이엘 바렌보임이 이끄는 서동시집의 내한공연은 그야말로 꿈의 무대였다. 8월 15일, 장소는 임진각 평화공원, 그리고 베토벤 <합창>교향곡 연주.  당시 바렌보임은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갈등들이 우리의 음악으로 멈출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남북한 국민이 함께 모여서 음악을 감상할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며 한국 공연을 결정한 이유를 밝혔다. 광복절에 울려 퍼지는 웅장한 합창 소리를 들으며, 그날 임진각 평화공원에 앉아있던 관객들은 화합에 대해 생각해 봤음직하다.

<평행과 역설>은 이스라엘 출신의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과 팔레스타인 문학비평가인 에드워드 사이드가 5년에 걸쳐 나눈 대담을 담은 책이다. 스스로 피아니스트이기도 하고 음악에 관한 에세이를 다수 써온 사이드는 바렌보임과 음악 관련 전문지식뿐만 아니라 교육, 철학, 정치 등 여러 분야의 현안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다. 

    

 

바렌보임과 사이드는 독일 바이마르에서 괴테 탄생 250주년 행사를 기획하며 서동시집 오케스트라를 창단했다. 바이마르 워크숍에서 처음 만난 아랍국가와 이스라엘 젊은이들 사이에는 “아랍 음악은 아랍 사람만이 연주할 수 있다. 그렇다면 베토벤 음악은 독일 사람만 연주할 자격이 있다는 건가”라며 서로 다른 민족적 정체성 때문에 긴장감이 맴돌았다. 하지만 베토벤 교향곡 7번을 함께 연주하며 하모니를 이루는 과정을 통해 그들은 하나가 된다. 바렌보임은 분쟁은 타자를 모르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라며 중동국가 젊은 음악가들을 이끌고 오랜 기간 지휘를 해왔다.

    

 

바그너는 친 나치 작곡가일까. 바그너 곡 연주가 금지된 이스라엘에서 바렌보임은 왜 연주를 하려는 걸까. 바그너는 작곡과 오페라 대본을 직접 썼고 다수의 산문을 남겼다. 그는 “모든 유대인을 불태워버려라”라는 글을 썼던 반유대주의자였다. 바렌보임은 바그너가 “그의 오페라에서 유대인 등장인물이 전혀 존재하지 않으며 반유대주의를 암시하는 장면이나 대사도 전혀 없다.” 그리고 “정말로 오페라에서 반유대주의를 예술적으로 표현하고 싶다면 그는 숨기지 않을 것”이라며 이스라엘에서 바그너 연주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이스라엘에서 1948년 바그너 음악에 대한 연주를 보이콧한 일부 여론을 비판하며 바그너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현세대들은 바그너 음악을 들을 권리가 있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바렌보임이 바그너에게 열중하는 이유는 정치적인 부분보다는 “음악적”인 이유가 컸다. 그는 바그너가 기존 오페라 작곡가들과는 다르게 음의 연속성을 기반으로 작곡했기에 연구할 가치가 있다고 높이 평가했다.

    

 

바렌보임이 음악 작품을 철학적으로 해석하는 부분도 눈에 띈다. 그는 베토벤의 교향곡은 존재에 대한 물음을 가지고 있기에 협주곡 5번 2악장을 연주할때 “어떻게 신성이 구현되었는지 매우 쉽게 이해가 가능하다"고 보았다. 프랑스 혁명에서 영감을 받은 베토벤은 음악에서도 투쟁과 용기를 담으려 한 작곡가이다. 바렌보임은 “점점 세게 연주하다가 갑자기 여리게 연주”하는 기법은 고도의 연습을 요구하기에 연주자는 온 몸으로, 과감하게 투쟁하듯 곡을 연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평행과 역설>은 사이드와 바렌보임의 음악에 대한 전문적인 견해와 주관적인 해석이 담긴 책이다. 음악을 중심으로 사이드와 바렌보임이 나눈 대화는 다양한 이슈를 넘나든다. 국가 간 정치적인 분쟁 문제, 문학과 음악이 할 수 있는 사회적인 역할에 대해 ,획일적으로 전문화 된 교육에 대한 숙고, 인간의 감정의 내적과정과 음악이 고립된 채 사회적 발전에 도움을 줄 수 있는가 등. 다양한 생각거리를 던져주고 있기에 <평행과 역설>은 토론의 장으로 가져가기 좋은 책이다.

 

 

다만, 클래식 음악 애호가가 아니라면 바렌보임이 베토벤과 바그너의 작품을 음악 용어를 예를 들어 해석하는 부분에서  멈칫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바렌보임은 일반 청중들이 아닌, 오랫동안 클래식 피아노를 연주하고 사랑해 온 에드워드 사이드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독자들은 <평행과 역설>에 언급된 음악을 감상하며 두 지성의 우정어린 대화에 천천히 귀를 기울여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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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9-08 00:4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에드워드 사이드의 이책 저도 좋아합니다
바렌 보임이 개인적인것(병든 아내 버린)을 떠나 유대인임에도 자신의 소신을 밝혀서,,,
가장 깨어있는 음악가라고 생각합니다.
2021년 빈필 신년 음악회때 바렌보임의 피아노 연주 노장임에도 훌륭했습니다.
음악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면, 지금 이순간이라고 ,,,

청공 2021-09-09 06:33   좋아요 1 | URL
뒤프레.넘 안타깝죠? 개인사와 작품을 연관지어 예술가를 평가해야할지, 분리해야 하는건지 늘 어려워요.바렌보임 올해 내한공연이 취소된 거 최근에 알게 되었어요. 스콧께서 신년음악회 관련 페이퍼를 쓰셨던거 같기도 하고 아닌거 같기도 하네요ㅎㅎ 워낙 글을 많으쓰셔서^^ 바렌보임 음반은 스콧님 페이퍼에 여러 번 올라온 것 기억나구요.^^ ˝음악으로 세상을 바꿀 수있다면, 지금 이순간˝에 밑줄 쫙~
 

과거 정치인들이 자기 지식의 한계를 알 필요성에 관해 지혜로운 말을 하는 것을 좋아했다면, 오늘날 권력을 쥔 엘리트들은 무지의 공유를 통해 보통 사람들과 연대하고 있음을 보여 주고 싶어 한다.

 권력은 늘 사람들이 진실을 드러내기를 꺼리는 태도에 의존한다. 벌거벗은 임금님 이야기는 누구나 알고 있다. 오늘날 바뀐 게 있다면 사람들이 진실에 눈감는 데서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라 진실에 대한 무지에 의해 하나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 P47

환상은 우리의 현실 인식을 형성한다. 그래서 우리가 새로운 지식 ·진실 사실을 발견해도 환상은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환상이 "현실 세계"가 돌아가는 방식과는 거의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종종 주체의 환상은 "현실 검증"에 대한 방어막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자신을 훼손할 수도 있는 해석에 대한 방어막 역할도 한다.따라서 사랑하는 대상에 관한 진실이나 정보가 아무리 많아도 사랑하는 사람의 인식은 바꿀 수 없다.
- P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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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와 예술가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하고 말입니다. 정치가는 협상의 기술만 제대로 정복하고 있으면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지요. 말하자면 서로 다른 정파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영역이 어디인가를 찾아내고 타협할 여지가 있는 곳은 어디인가를 찾아낸 후, 그들을 협상 테이블에 가능한 한 가까이 불러모아 올바른 순간에 바로 정치가의 몫이 아닐까요.

반면 예술가의 표현은 어떤 것에서도 협상을 받아들이면 안 되고, 오히려 협상에 대한 완전한 거절로만 결정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커다란 용기지요. 그러므로 나는 이러한 성격을 가지는 갈등은 정치적 수단이난 경제적 방법을 통해, 또는 중재를 통해 해결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이런 갈등은 모든 사람이 예술적 해결책을 사용할 수 있는 용기를 필요로 합니다. - P122

음악을 공부한다는 것은 세계에 관하여, 본질에 관하여, 인간이란 존재와 인간관계에 관한 많은 것들을 배우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모로 인생에 대한 최고의 교육이라 할 수 있죠.
그러나 동시에 음악은 세상으로부터의 도피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음악의 이런 이중성과 더불어 우리는 역설에 직면하게 됩니다.

세상에 관해, 본질과 세계에 관해, 그리고 종교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심지어 신에 관해서까지도 그토록 많은 것을 가르쳐주는 음악이, 분명 많은 것을 가르쳐줄 수 있는 바로 그것이 정확히 그 모두로부터 벗어나는 수단이 될 수 있다니, 이게 어떻게 가능한 일일까요? 음악이 가진 효과에 대한 대단히 흥미로운 발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 P181

공통된 담론이라는 개념 자체가 이제는 사라졌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우리의 교육이 극도로 전문화되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재정 지원 자체가 지식의 파편화에 적합하도록 맞추어져 있는 것도 문제죠. 이 때문에 분야는 가면 갈수록 쪼개어지고, 그 하나하나에 가는 손은 합한 전체보다 더 많은 형국이 되었습니다. 학문에서는 이런 현상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이데올로기적인 주입이 포함된 것도 사실입니다. - P217

인문주의적 사명은 서로 다름을 유지할 수 있도록 허락하는 것입니다. 정체성을 긍정하면 따라오는 지배의 논리나 호전성은 허용되어서는 안 되겠죠 - P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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